「국민의 정부」는 없다
 
 
-재야인사 조상수씨가 8·15광복 54주년을 맞으며 쓴 글-
 

8·15광복 54주기가 다가온다.

지난 54년동안 이 땅에서는 여러 번 정권교체가 있었다. 그 모든 정권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배척을 받고 비운의 막을 내렸다.

지난해 2월 현란한 간판을 들고 출범한 「국민의 정부」에도 지금 검은 댕기가 드리워져 있다.

개장이 파장이라고 「국민의 정부」는 개정한지 1년반도 못돼서 벌써 국민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국민의 정부」의 현상황은 최악의 위기에 몰려 허둥대던 「문민」정권의 말기증상을 연상케 한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요 필연이라 하겠다. 「문민」독초에서 돋아난 「국민」인 까닭이다.

이면동심의「대통령」병자

김대중은 「취임사」에서 『50년만에 이루어진 여야정권교체』에 대해 역설하며 「문민」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현정권이 「문민」정권과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일치성, 공통성만 부각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부터가 그렇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비록 이름이 다르고 얼굴은 같지 않아도 동명동질의 대통령병자이다.

『어릴 때부터 책상위에 「김영삼대통령」이라고 써놓고 공부했다』,『40년동안 대통령학만 공부했다』고 한 김영삼이나 『대통령이 되기 위해 40년동안 대통령경륜을 닦아왔다』는 김대중은 다같이 누가 대통령소리만 해도 히스테리를 일으킬 정도로 집권욕에 환장한 권력광신자들이다.

그들이 정계에 나선 것도, 또 수십년동안 야당울타리안에서 「민주투사」흉내를 낸 것도 오로지 권력탈취를 위한 병적 광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그들을 가리켜 「민주투사」가 아니라 「권력투사」라고 야유한다.

병적인 사유의 일치가 행동의 일치를 불렀는지 그들은 하는 짓도 신통히 같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다같이 정적에게 몸을 판 대가로 권좌를 차지했다.

30년동안 야권에서 「민주화의 기수」로 자처하던 김영삼은 하루아침에 국민을 배반하고 광주살인마의 품에 안긴 값으로 대권을 넘겨받았다. 당시 김영삼은 자기의 정치매춘행위를 『독재를 청산하기 위해 독재의 소굴에 뛰어든 중대결단』으로 미화했다.

한때 「역사의 인동초」니, 「행동하는 양심」이니 하면서 자기를 「민주화의 상징」으로 추어올린 김대중도 하루아침에 민주를 배신하고 「유신」본당과 입을 맞춘 보답으로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그때 김대중도 자기의 정치적 배신행위를 『민주화를 위한 중대한 정치적 선택』으로 분칠했다.

시사평론가들이 『김대중의 집권으로 「문민」독재가 10년 임기를 맞게 됐다』, 『「국민의 정부」는 「문민」 2기정권』이라고 평한 것은 김대중의 임기 5년이 김영삼의 임기 5년의 연장에 불과함을 꼬집은 것이었다.

「문민」을 빼어닮은 「국민」

「국민」은 모양새에서도 「문민」의 꼴 그대로이다. 「문민」의 서슬푸른 악법들과 폭력기구들이 그대로 유지보강됐다. 정부부처들도 이전같이 파쇼광들과 민주변절자들로 꾸려졌다. 색바랜 「문민」간판을 「국민」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

정책을 봐도 「준비된 대통령」,「실력있는 대통령」의 준비된 정치철학이나 내실있는 정강은 없고 모두 버림받은 「문민」의 반국민적 정책기조를 각색한 것 뿐이다.

민중은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한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는 「문민정부」와 마찬가지로 사대매국과 파쇼폭정, 남북대결과 영구분열을 추구하고 있다.

사대매국은 「문민」이나 「국민」의 공통체질이다.

김영삼은 집권하자마자 워싱턴에 찾아가 자기의 대통령당선이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읊조리며 미국에 감지덕지 사의를 표했고 미군의 한국영구주둔을 애걸했다. 일본에 찾아가서는 『천황페하 만세』를 열창하고 『불미스러운 과거를 역사에 맡기자』며 상품시장, 문화시장 개방놀이를 벌였다.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막겠다』던 쌀시장을 미국에 통째로 열어놓은 김영삼은 「국제화」, 「세계화」를 떠들며 국제금융자본을 마구 끌어들여 이 땅에 금융위기를 몰아왔다.

백악관의 비위를 맞추다 못해 70대 단신에 어울리지 않게 40대 장신의 상전을 따라 아침달리기를 하느라 헐떡거린 김영삼의 몰골은 가히 세인의 조소를 자아낼만 하였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그를 가리켜 『아침저녁으로 백악관의 기분을 맞추느라 얼굴을 폈다 찡그렸다 표정관리를 하기에 여념이 없는 미국의 시골마름』이라고 평했었다.

김대중은 김영삼에 뒤질세라 청와대에 입주하자 미국에 찾아가 자기의 「대통령당선」이 「미국의 승리」라고 아양을 떨었고 주한미군이 『통일이후에도 남아있어야 한다』고 구걸질을 했다. 또 일본에 가서는 일왕을 「천황」으로 개어올리고 서울왕림을 거듭 간청했다. 지어 김영삼이 제창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그대로 되풀이하며 독도영유권과 황금어장을 섬겨바쳤다.

그는 김영삼의 굴욕적인 자세를 비난하며 「재협상」을 운운하던 국제통화기금의 신탁통치를 이의 한번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민족경제, 국민경제의 시대는 지나갔다』며 「문민」집권자의 「세계화」구호를 그대로 내들고 외자유치붐을 일으켰다. 기업팔기, 설비팔기, 땅팔기, 시장팔기 등 전무한 한국팔기마당을 벌여놓았다.

워싱턴에 잘 보이려고 미국회에서 체신머리없이 서툰 영어로 연설했고 『월가가 세계경제의 심장』이라고 했으며 교민들을 모아놓고는 『미국의 개척정신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목청을 돋구었다.

그래서 일본의 「마이니치」신문까지도 『한국의 통치자는 방미기간 전적으로 미국에 매달리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내어 주변 나라들의 비난을 샀다』고 야유했다.

파쇼폭정 역시 「문민」과 「국민」은 공통생리이다.

「국민」이 여소야대정국을 깨고 국회를 여당의 난무장으로, 식물국회로 전락시킨 것도, 정보정치, 학원탄압, 노동계탄압 등 대국민탄압을 강행하는 것도 「문민」때의 그 본새대로다.

96년 말 김영삼 신한국당패들이 「안기부법」과 「노동법」 등 11개 악법을 단 7분동안에 기습통과시켰을 때 김대중은 그것을 『독재여당의 새벽쿠데타』로 비난하며 장외투쟁을 벌였었다.

그때로부터 꼭 2년후인 지난 1월5일부터 7일까지 김대중쿠데타군은 1백40여개의 법안들을 날치기통과시켰다.

15초마다 한건씩 통과시킨 속도에서도 기록적이지만 3일동안 연속 날치기를 강행해 「문민」선배의 뺨을 치고 세계신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문민」독재 때 「현대판 마녀사냥」으로 지탄되던 한총련핵심들에 대한 색출소동도, 통일민주세력에 대한 분열와해책동도 「국민」독재하에서 계속되고 있다.

감옥들에는 「문민」시절의 3배가 넘는 양심수들이 차넘치고 있다.

살인적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수백만 노동자들의 명줄을 끊고 생존권을 요구하는 그들의 파업현장에 전투경찰과 헬기, 불도저까지 투입해 유혈탄압을 가하고 있다. 심지어 파업노동자들의 가족들에게 최루탄을 퍼부어 젖먹이 유아들을 질식시키고 임신부의 배를 군화발로 짓밟아 실신시켰다.

오죽하면 「문민」파시스트로 악명을 떨친 김영삼까지도 김대중을 독재자라고 비난하겠는가.

반북대결과 분열책동에서도 「문민」과 「국민」은 쌍동이이다.

지금 국민은 문민의 대북공조론을 토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곱씹고 있다. 김대중이 광고하고 있는 「대북포용정책」도 북을 「개혁, 개방」에로 유도해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운운한 김영삼의 「대북정책」을 껍데기만 바꾸어놓은 것이다.

김영삼은 남북합의서 이행과 남북관계개선에 관해 떠들며 대화와 통일에 관심이나 있는 듯이 가장했었다. 실지로는 북의 「핵문제」를 빌미로 남북합의서를 백지화했고 기존의 대화창구들을 폐쇄시켰으며 남북관계를 대결과 적대관계로 경직시켰다.

김대중도 입으로는 남북간 화해협력과 남북합의서 이행을 외우며 대화와 통일을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북을 「주적」으로 선포하고 미국이 불어대는 북의 「지하핵시설의혹」나발과 「미사일위협」곡조에 맞추어 반북대결춤을 추며 남북관계를 더욱 냉각시키고 있다.

3국에서의 당국회담마저 결열시키고 민간급 협력교류도 방해하며 휴전이후 최악의 서해무장도발사건까지 일으킨 「국민」호전광들이다.

대화와 통일에 관심이 없는 「국민」집권자가 이번 8·15에 그 무슨 「대북제안」이란 것을 내놓을 것이라 하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라 하겠다.

대결과 분열만을 일삼는 그가 내놓는 「대북제안」이란 저들의 반통일정체를 가리우고 국민과 세인을 기만하기 위한 사기극에 불과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준비된 대통령」의 정치학점-영점

「국민」과 「문민」은 다같이 정치저능아이다.

그들은 통치력에서 수준미달이다.

그들이 내든 정치구호와 벌여놓은 정치놀이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민중을 현혹시키는 숱한 정치광고들이 어제도 나왔고 오늘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민중의 조소와 지탄속에 이미 파산됐고 오늘 또 파산운명에 처해있다.

김대중이 내든 「제2의 건국」구호는 김영삼의 「신한국창조」구호를 본딴 것이고 「국민」의 개혁놀이는 「문민」때에 선을 보였다가 내버려진 것들이다.

사람들은 「문민」때에 「금융실명제」, 「행정개혁」,「군개혁」, 「사법개혁」,「교육개혁」,「노동개혁」, 「정치개혁」, 「역사바로세우기」… 등 미처 그 이름도 따라외울 사이 없이 매일 같이 새로운 개혁광고들이 쏟아져나왔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요란한 개혁소동은 김영삼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1회용 「깜짝쇼」내지 정적제거, 친정체제구축을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았었다.

결국 「신한국창조」는 망국적인 「쉰한국창조」로, 「역사바로세우기」는 「역사거꾸로세우기」로 화했고 개혁놀이는 「문민」정권의 파멸을 자초한 「환란의 요술피리」가 되고 말았다.

김대중이 연출하는 개혁놀이 역시 자기의 인기올리기와 정적제거, 친정체제구축을 위한 3류급 정치신파극에 불과하다.

「국민의 정부」의 개혁놀이에 대해 『현정권이 「문민」정부가 차려놓았던 개혁광고전시회를 다시 개장했다. 우선 순위도 없이 백화점식으로 진열된 현정권의 방대한 개혁광고는 「문민」때 이미 쓴맛을 보았던 것들이다』, 『현정권의 「제2의 건국」은 「제2의 망국」을 자초할 것』이라는 비난이 터져나오고 있다.

김대중이 운명을 걸고 벌여놓았던 개혁놀이는 오늘 총파산됐다. 권력층의 내분과 알력은 극에 달했고 국정은 마비됐다. 부정추문사건은 연이어 터져 정권말기증상이 집중표출되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걸어온 지난 1년반의 행적은 「정치9단」이라는 김대중의 실력이 남의 머리를 빌려 통치해 온 「정치초단」 김영삼의 흉내도 제대로 못내는 「정치무단」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각계에서는 『김대중이 「준비」를 너무 오래하다나니 링위에 오르자마자 힘이 빠졌다』, 『70대의 「정치9단」은 청각, 시각, 후각, 방향각마저 마비돼 용도폐기됐다』는 조소와 비난이 그치지 않고 있다.

연전에 국내정치학자 2백4명을 대상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정치에 점수를 매기게 한 적이 있었다.

5개의 항목에 걸쳐 1백점만점으로 순위를 매긴 결과 김영삼정권까지 전직대통령 7명중 7명이 다 낙제점수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김영삼은 제일 낙후한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받은 점수는 「문민」정부보다 더 낮은 영점이다.

김영삼은 이미 국민들로부터 다시는 이 세상에 복제해서는 안될 악인들 가운데서 히틀러와 도죠보다도 앞자리에 찍혀있었다.

그가 이끈 「문민」정권이 다시는 재현돼서는 안될 반역정권으로 낙인되고 이미 파멸된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므로 「문민」을 승계한 「국민」도 마땅히 더 이상 존속돼서는 안될 반국민정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대중은 대선 때 『이 땅에서 독재와 군정종식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겠다』고 공약한바 있다.

오늘 국민은 「문민」독재의 전철을 밟으며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는 김대중에게 공약대로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교수대에 오르라고 촉구하고 있다.

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역설해 온 김대중이 이제 진짜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은 오직 국민의 요구대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길밖에 없을줄 안다.

「국민의 정부」는 이미 저승으로 갔다. 민중은 「문민」과 합장한 「국민」을 보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