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의 5년, 거룩한 자욱
 
 
하늘도 울고 땅도 울던 주체83(1994)년 7월의 그날로부터 어느덧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절반세월이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만고절세의 위인이신 김일성주석님은 영원한 태양으로 우리 겨레와 세인들의 마음속에 영생하고 계시는 것이다.

사랑의 미소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부짖고 호우가 억수로 퍼붓던 그날, 백두산이 자기의 산자락에 황토물을 내뿜으며 통곡하고 남해가 파도를 일으켜 몸부림치며 오열하던 그날, 너무도 갑자기 당한 민족의 대국상 앞에 누구보다 단장의 슬픔을 안고 계신 분은 김정일영수님이시었다. 민족구성원 개개인의 슬픔이 아무리 크다 한들 김정일영수님의 통절한 그 슬픔에야 어이 비기랴.

7천만 우리 민족은 눈물 속에 김정일영수님을 우러러 보았고 지구촌 역시 애수에 찬 눈길로 이북을 지켜보았다.

효성을 떠나 명인이 없고 충성을 떠나 위인이 없다는 명언 그대로 김정일영수님은 희세의 명인이시고 위인이시다. 영수님께서는 가슴이 무너지는듯한 아픔 속에 주석님과 영결해야 할 이북민중들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주석님께서 밝은 미소를 지으시는 대형 태양상을 제작토록 하시고 영결식 날 평양의 연도를 지나가게 하신 것이다. 한평생 사랑하던 민중에게 사랑의 미소를 남기시며 말이다.

지금도 평양시민들과 이북민중들은 5년전 그 나날을 회고하며 주석님의 미소를 가슴에 새기고 있을 뿐 아니라 그날에 다진 맹세대로 김정일영수님을 더 잘 받들어모시고 주체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결의를 다진다.

평양시 중구역 동안동에 살고 있다는 한명희 아줌마(48세)는 우리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때 연도에서 수령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대형 초상화를 보는 순간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인민들을 그토록 따뜻이 안아 보살펴주시던 수령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습니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장군님은 정말 위인이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어찌 그뿐이랴. 김정일영수님께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자!』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주석님의 뜻을 끝까지 실현하실 웅지를 선언하시었다.

민족의 소원을 헤아리시어

김정일영수님께서는 주석님의 급서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5년 세월 역사가 알지 못하는 최고경지의 숭고한 충효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김일성주석님을 영원한 민족의 태양으로 천세만세 높이 모시려는 것은 김정일영수님의 드팀없는 신념이고 의지이고 실천이다. 주석님을 자주민족의 원시조로 옹립하시려는 영수님의 충효지심은 충효의 최고 결정체인 금수산기념궁전을 마련하신 데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영수님께서는 주체의 최고성지 금수산기념궁전에 위대한 주석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모심으로써 우리 겨레의 소망도 풀어주셨다. 당시 한민전 평양대표부 조일민대표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주석님께 큰 절을 올린 다음 참관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저는 무엇보다 주석님께서 집무를 보시던 금수산의사당을 영원한 태양의 집으로 되게 해주신 김정일영도자님께 깊이 머리숙여 감사의 큰 절을 드리고 싶다. 실로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주석님을 그리워하며 만나뵈옵는 것을 최대의 소원으로 간직하고 단 한번만이라도 직접 존안을 뵈옵고 싶어하는 이남민중들의 소망을 헤아려 주셨다. 민족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이곳을 찾아 절세의 애국자이시고 영원한 민족의 태양이시며 대성인이신 김일성주석님께 큰 절을 올려야 한다.』

만고절세의 충효자이신 김정일영수님께서는 주석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길이 모시게 하셨을 뿐 아니라 주체연호와 태양절을 제정토록 하시어 주석님께서 세월과 더불어 영생하도록 하셨다.

세계를 또 한번 놀래운 충효

주석님께서 서거하신 후 4년이 지난 주체87(1998)년 9월 우리 민족과 세계의 이목은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가 열리는 평양에 집중되어 있었다. 한것은 영수님께서 지금까지 미루어 오셨던 국가주석 추대가 바야흐로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이 희원하고 세인들이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그렇게 되길 바라던 관심사가 예고되자 한반도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도 김정일영수님의 국가주석 추대환영위원회를 결성하고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누가 김정일영수님의 그 깊고 깊은 충효심을 다 알 수 있었으랴.

회의에서는 헌법을 「김일성헌법」으로 명명하고 사회주의조선의 시조로서의 김일성주석님의 영생을 법문에 새기고 주석님을 공화국의 첫 주석인 동시에 영원한 주석으로 영원히 모실 것을 법화했던 것이다.

김정일영수님의 국가주석추대를 일일천추로 갈망해 오던 우리 겨레와 세인들은 아쉬움보다도 그분의 숭고한 충효심에 또 한번 감탄했다.

그때 그 소식에 접하여 자유기고가 정상진씨는 「구국전선」에 투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 지구촌에 국가가 출현하고 국가정치가 시작된 때로부터 수천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왔지만 언제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희한하고 훌륭한 선례는 없었던 줄로 안다. 실로 하늘도 머리숙일 숭고한 도덕의리요 최상 최고의 미덕이라 하겠다.』

위대한 김정일영수께서는 국가의 최고직책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변함없이 높이 추대되셨다.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은 지워지지도 변하지도 않는 법이다.

김정일영수님께서는 그 어느 직책에 계셔도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로, 21세기의 태양으로 계시는 것이다.

참다운 충효를 지닌 인물이 있을 때 국운이 튼다고 했다. 충과 효의 최고화신이신 김정일영수님을 모시어 우리 민족의 미래는 창창하고 낙관적이다.

그날의 맹세

주석님께서 서거하신 때로부터 5년, 달수로 치면 예순달, 일수로 치면 1천8백여일 그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만고절세의 충과 효로 엮어진 나날이었고 성스러운 주체의 혁명실록이 변함없이 굳건히 이어진 역사이기도 하다.

수령의 영생위업은 선대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투철한 신념과 가장 숭고한 도덕의리를 간직한 후계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주체83(1994)년의 그 가슴터지던 어느날 김정일영수께서는 배신자, 변절자들에 의해 공산주의자들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있는데 대해 분격을 금치 못해 하시며 자신께서는 어버이 수령님을 변함없이 받들어 모심으로써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수령을 절대적으로 옹호보위하는 산모범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결연히 말씀하셨다 한다.

지금까지의 국제관례에 따르면 국가수반이나 국왕이 서거하면 정치적 공백을 없애기 위해 지체없이 후임자를 내세우는 것이 상례로 되어 왔다. 심지어 권력에 환장한 음모가, 야심가들은 채 식지도 않은 시신을 앞에 놓고 권력쟁탈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북의 경우에는 그와 완전히 달랐다. 온 나라 전국민이 상제가 되어 주석님을 추모했다. 지난 5년간 그 어떤 사소한 불미스러운 정치적 파동도 없었고 오직 주석님의 영생만을 기원하며 김정일영수께서 국가수위에 추대되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주석님 서거 1백일 추모제에 즈음하여 김정일영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다.

… 수령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으니 당과 국가지도기관을 새로 구성하는 사업을 빨리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들이 제기되지만 우리는 이 사업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수령님의 영구 앞에서 인민들이 목놓아울던 비분이 아직도 가셔지지 않고 있는데 당과 국가지도기관을 새로 선거하고 만세를 부르는 것은 전사의 도리가 아니다. 우리의 정치체제는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수령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나 서거하신 지금이나 변함없이 수령님의 전사로서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해 나갈 것이다. …

위대한 김정일영수께서는 그날의 맹세대로 지난 5년세월 주석님의 뜻대로 노동당과 국가, 군대를 현명하게 영도해 오셨으며 이 과정에 동서고금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충효의 새 역사를 아로 새기셨다.

숭고한 모습

-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 -

이것은 민족최대의 국상을 당했을 때 행여나 그 무슨 변화라도 있을까 왈가왈부하던 반북세력들을 향해 하신 김정일영수의 엄숙한 선언이었다.

영수께서는 주석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으시고 새해의 첫 사업도 금수산기념궁전에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김일성주석님을 찾아뵙고 경건히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셨고 현지지도도 주석님의 거룩한 자욱이 새겨진 곳으로부터 하시며 현지에 도착하셔서도 먼저 주석님의 현지교시판과 사적지부터 찾으신다고 한다.

주체86(1997)년 4월15일 태양절에 있은 일이라고 한다.

최전방의 1211고지를 거치시어 지혜산에 오르신 영수께서는 태양절을 전선길에서 맞이하다보니 금수산기념궁전에 가서 주석님께 경의를 드리지 못했다시면서 사적비 앞에서 친히 수행원들에게 차렷구령을 주시고 탄생 85돌을 맞으시는 주석님께 삼가 경의를 드리셨다 한다.

지난 5년동안 김정일영수께서는 김일성주석님께서 생전에 구상하셨거나 교시하셨던 문제를 관철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헌신하셨다.

영수께서는 민족의 근본을 찾아주기 위해 심혈을 다 기울이신 주석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단군릉의 개건을 완공토록 하시고 직접 현지에서 지도하셨고 주석님께서 구상하셨던 청류다리 2단계와 금릉2동굴 건설을 짧은 시일내에 완공개통하도록 하셨으며 평양-묘향산관광도로가 개통되었을 때에는 주석님생각이 너무도 간절하시어 주석님 생전에 도로를 완공하지 못한데 대해 대단히 가슴아파하셨다 한다.

끊임없는 영도

오늘도 김정일영수께서는 주석님 모습그대로 주석님께서 한평생을 바쳐 그토록 사랑하셨던 민중을 찾아 끊임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가고 또 가신다.

평양방송에 따르면 주석님께서 서거하신 후 5월 현재까지 군부대를 시찰하신 것만 해도 3백30여곳이며 가신 길은 무려 12만3백50리에 달한다고 한다.

현지지도의 길위에 생겨난 사랑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은가. 희천의 한 여공은 지난해 6월 경애하는 김정일영수를 뵈옵고 격정에 넘쳐 이렇게 말했다 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공장을 찾으시어 우리들의 사업과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친어버이의 심정으로 보살피시는 것을 보았을 때 어쩌면 어버이 수령님과 저리도 똑 같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버이 수령님께서 다시 소생하시어 찾아오신 것만 같았습니다.』

사상도 주석님의 사상 그대로이고 영도도 주석님의 영도방식 그대로이며 풍모도 주석님 그대로이신 김정일영수께서는 주석님의 유훈을 받들어 지난 5년간 사상유례없는 험로역경을 헤치시며 주석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위업을 승리적으로 영도해 오신 것이다.

지난 3월말 영수께서는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언명하셨다 한다.

『… 나는 어떤 고생을 무릅쓰고라도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기어이 실현하여 이 땅위에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참으로 김정일영수는 충효의 화신이실 뿐 아니라 투철한 후계자이시다. 지난 5년간은 이북민중과 우리 민족이 김일성주석님과 똑같으신 또 한분의 천출위인을 모신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체험한 나날이었다.

강성대국건설을 위해

만고의 충신이시고 절세의 효자이신 김정일영수님께서 5년전 그 피눈물속에 다지신 맹세는 민중의 어버이 김일성주석님께서 맡기고 가신 이북민중들을 보다 더 잘 살게 하고 주석님께서 찾아주시고 민중의 참세상으로 세우신 조국을 강성대국으로 건설하시는 것이었다.

영수께서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비범한 예지와 탁월한 지략, 무비의 담력으로 준엄한 폭풍우를 승리적으로 헤쳐오셨다. 그분께서는 김일성주석님의 유훈교시를 한치의 드팀도 없이 실천하여 강성대국건설의 초석을 마련하셨다.

청류다리 2단계와 금릉2동굴, 9·9절거리와 4·25여관을 비롯해 평양에 새로 일떠선 수많은 기념비적 창조물들, 안변청년발전소와 전국 도처에 건설된 중소형발전소들, 평양-묘향산관광도로와 칠보산, 구월산, 정방산을 비롯한 유원지와 명승지들, 개벽천지를 이룩한 강원도의 대규모 자연개조사업 그리고 세상을 놀래운 인공위성「광명성 1호」의 성공적 발사, 산소열법제철의 성공, 대홍단 감자농사, 30만배율전자현미경 발명…

이러한 기적들이 바로 김정일영수의 열화같은 충효심과 현명한 영도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순경시기에도 아름찰 이 하나하나의 거창한 성과들이 일촉즉발의 첨예한 정세속에서 그리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엄혹한 환경속에서 이루어진 것은 희세의 영도자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능라도에서 만난 김창호 (62세)씨는 청류2다리와 금릉2동굴이 건설되던 때를 회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지 넉달만인 11월 9일이었지요. 아침에 직장에 출근하니 중대보도를 한다고 알려주더군요. 그런데 글쎄 중대보도는 수령님께서 생전에 구상하셨던 청류2다리와 금릉2동굴을 당창건 50돌까지 건설할데 관한 우리 장군님의 명령이 아니겠습니까. 우린 그때 만세를 불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처럼 우리 장군님께서도 역시 그 어떤 대적이 달려들어도 눈썹하나 까딱 안하시는 백두산형의 영장이시라는 것을 다시한번 깊이 느꼈지요.』

사실 당시 그 중대보도는 지구촌을 들었다 놓았다. 김정일영수께서 미국의 「핵사찰」,「영변폭격」위협에는 아랑곳 하지않으시고 평화적인 건설명령을 하달하신 것이다.

이북민의 기세 또한 충천했다.

『어버이수령님을 갑자기 잃은 다음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내리신 명령이어서 누구나 감동이 컸고 자각 또한 높았습니다. 한분밖에 안계시는 우리 장군님께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가 어떻게 장군님을 받들어 모시는가를 실천으로 보여드리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들을 했습니다. 어쨌던 그 방대한 공사를 단1년동안에 끝내는 기적을 창조했으니까요.』

이 공사에 동원되었던 인민군중좌(중령) 유광춘의 말이다. 강성대국건설 초석은 바로 이와 같이 영수의 충효심과 이북민중의 충성심이 결합되어 마련된 것이다.

귀중한 체험

지난 5년은 위대한 김정일영수께서 주석님의 뜻과 구상을 빛나게 실현하여 이북을 더욱 부강번영할 강성대국으로 부상시킬 초석을 마련하신 빛나는 연대이다.

주체84(1995)년 새해의 첫 아침.

영수께서는 이북민중에게 친필서한을 보내시어 위대한 주석님의 전사, 위대한 주석님의 제자답게 내 나라 내 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하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차게 일해나갈 것을 호소하시고 친히 「고난의 행군」 진두에 서시었다. 영수께서는 대소한의 맵짠 설한풍속을 헤치시며 북방 자강도의 강계시를 찾으시어 하루에만도 10여개의 단위를 현지지도하신 것을 비롯하여 이북 곳곳을 찾으셨다.

김일성주석님 서거후 올해 5월까지 영수께서 시찰하신 인민군 부대, 구분대들은 3백30여 곳, 영수께서 가신 노정은 무려 12만 3백50여리에 달한다고 하니 그 노고를 어이 다 헤아릴 수 있으랴.

『우리는 지난 5년간 난관과 시련도 많았지만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을 체험했습니다. 우리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앞으로 이보다 더한 고난과 난국이 닥쳐온대도 능히 극복하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강성대국을 건설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 5년세월 우리 장군님께서 이것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인민대학습당 노대에서 만난 김책공업종합대학 차경복(19세)군의 말이다. 그의 얼굴에는 김정일영수에 대한 신뢰감이 차넘치고 있었다

그렇다. 김정일영수의 현명한 영도하에 지난 5년간 이북민은 다른 민족들이 수십수백년이 걸려도 체득할 수 없는 숭고한 사상정신적, 물질적 부를 창조했다. 미제와 반민족세력들이 염불처럼 외우던 이른바 「조기붕괴」가 아니라 김정일영수의 주위에 똘똘 뭉쳐 강성대국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북민은 누구나 5년세월을 돌이켜 보며 김정일영수의 현명한 영도와 헌신적인 노고에 대해 생각한다.

달리는 차안에서 쪽잠에 드시고 노상에서 주먹밥, 누릉지로 끼니를 에우시며 강성대국의 확고한 전망을 마련하신 김정일영수,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는 구호를 외치며 김정일영수의 부르심에 한사람같이 분기한 이북민중, 영수와 국민이 일심단결되어 열어가는 강성대국의 진로는 그 전망이 확고하고 목표가 위대한 것이 특징이다.

오늘도 김정일영수께서는 공장에서 농촌으로, 전선에서 전선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 가신다. 나는 미구에 우리 민족, 우리 조국이 위대한 김일성강성민족, 김정일강성대국으로 위용떨치리라는 것을 굳게 확신한다.

1999.6 <구국전선>평양특파원 조국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