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기>
 
 
나는 강성대국, 일심단결의 실상을 보았다
 

나는 지난 9월 이북에서 진행된 공화국창건 50돌 경축행사를 보았다.

「구국전선」특파기자로 평양에 주재한지 수년이 됐지만 내가 이번처럼 그렇게 감격과 환희속에 민족적 자긍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축제속의 이북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를 앞둔 평양의 모습은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거리들은 인공기와 조선노동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대형 플래카드와 구호들, 각종 장식물들로 아름답게 단장되어 축제분위기를 더 한층 돋구어주고 있었다.

개선문을 지나면서 모란봉쪽을 바라보니 김일성경기장 앞광장에서 매스게임을 준비하는 수많은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시내 곳곳에서도 건국절 경축행사를 준비하느라고 명절옷차림에 손에 손에 꽃다발과 수기를 든 시민들이 거리를 메우며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연속된 자연재해와 제국주의연합세력의 악랄한 고립압살책동 속에서도 시민들의 활력에 넘친 모습을 보니 나 역시 기운이 솟았다.

만수대예술극장 앞 분수대에서 만난 대보동에 산다는 한 주민은 『남조선집권자들과 제국주의반동들이 우리가 금시 붕괴될 것처럼 떠들었지만 우리는 오히려 폭풍우 속에서 강성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천출위인 김정일장군님께서 진두에 서계시지 않습니까』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평양의 여러 곳에서 본 『21세기의 태양 김정일동지 만세!』라는 대형구호가 깊은 의미를 부각시키며 나의 가슴에 새겨지는 것이었다.

이북동포들은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와 건국절 50돌을 맞으며 많은 것을 건설했다.

임흥로터리로부터 신미동에 이르는 20여리의 「9.9절거리」를 최상의 수준에서 훌륭히 완공했고 2만명 수용능력의 4.25여관과 해주-옹진, 신강령-부포 사이 광궤철도를 건설했다. 또한 평양집적회로공장, 순천비닐론연합기업소 카바이드직장 3호전기로, 10월13일청년제련소전기용광로, 평양타조목장을 새로 조업 또는 개건확장했다. 그리고 15개 시, 군들에서 중소형 발전소들을 건설해서 군의 전력수요를 자력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것은 어려운 속에서도 영도자님의 주위에 똘똘 뭉쳐 『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을 하고 있는 이북형제들의 견인불발의 신념과 의지를 감득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9월4일 저녁이었다.

숙소에서 다음날 취재준비를 하고 있는데 관리원 박씨가 다급히 들어오며 말하는 것이다. 『빨리 텔레비 스위치를 넣으십시오. 중대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내가 재빨리 응접실에 있는 TV스위치를 넣자 흥분된 여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이북에서 첫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단번에 성공했다는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기뻐 서로 두손을 맞잡고 환성을 올렸다. 우리 민족이 인공위성을 발사하다니, 세계의 대국들만이 할 수 있다는 최첨단 과학기술의 종합체라고 일컫는 운반로켓과 위성을 1백% 자기의 지혜와 기술, 자재로 개발해 그것도 단번에 성공했으니 참으로 민족적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큰 일을 그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비결이 이북민의 정신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김일성주(R)님의 유훈대로 민족의 위상을 만방에 선양하시려는 김정일영수와 그분을 높이 받들어 모시고 자력갱생하는 이북동포들의 충의, 말하자면 영수와 민중간의 일심단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광명성 1호」의 발사는 21세기가 김정일시대로 될 것임을 만방에 알리는 장엄한 예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경사, 대경사

9월5일, 나의 마음은 이북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가 열리는 만수대의사당으로 향해 있었다.

이남에서 우리 동지들이 일구월심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민족의 어버이 김일성주석님을 너무도 뜻밖에 잃고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땅을 치며 통곡했던 우리들이 그 모진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자리를 차고 일어선 것은 또 한분의 김일성주석님이신 김정일영도자님께서 계셨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언제나 마음속에 민족의 영수로 모셔온 우(R)들이었지만 이번에 또다시 영도자님을 이북의 최고직책에 추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감격과 기쁨은 한량이 없었다.

정오가 가까워올 무렵이었다. 숙소 앞 거리에서 만세의 환호소리가 울리어 나가보니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며 돌아갔다.

최고인민회의에서 위대한 김정일영도자님을 이북의 최고직책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했다는 것이다.

평양의 거리거리는 환희와 감격으로 설레였고 가는 곳 마다에 흥겨운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헌법이 수정보충되었는데 그 서문에 김일성주석님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신다는 것을 명문화했다. 또한 회의에서는 김일성주석님께서 제9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시정연설을 숭엄한 분위기 속에서 경청했다.

나는 그 보도를 들으며 김일성주석님을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시고 주석님의 위업을 끝까지 이어가시려는 영도자님의 숭고한 뜻을 알 수 있었다.

정말 김정일영도자님의 충효심은 그 높이를 잴 수 없고 그 심도를 가늠할 수 없다.

선대수령에 대한 숭고한 충효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꾸리시어 우리 겨레와 세계 진보적 인류의 소원을 풀어주신 영도자님은 충효의 화신이시고 도덕의리의 귀감이시다.

이번에도 영도자님께서는 수령님은 건국의 어버이이시고 공화국의 첫 주석이신 동시에 마지막 주석이라고 하시면서 주석제와 주석직함은 오직 수령님의 존함으로만 영원히 남도록 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충과 효라는 말이 생겨 수수천년을 내려오지만 언제,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역사갈피에서도 김정일영수의 충효처럼 숭고한 충효는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의사진행과정을 새겨보면 볼수록 영도자님의 숭고한 충효심과 함께 그분의 선견지명과 빛나는 예지에 대해 다시 한번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영도자님께서 현시기 국가사업, 민족위업수행에서 국방을 그 무엇보다 최우선에 놓으신 것이다.

누구나 오늘날 한반도가 처한 실상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면 특히 제국주의연합세력의 포위속에서 단신으로 민중중심의 사회주의제도를 굳건히 고수하고 빛내어나가는 이북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사활적인 문제인가를 알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나는 민족의 운명을 지켜주고 빛내어주시기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김정일영도자님의 숭고한 애국애족적 풍모앞에 다시 한번 깊이 머리 숙이며 마음 속으로 감사를 드리었다.

일심단결의 환호

9월9일, 평양은 이른 아침부터 명절을 맞이하는 기쁨에 설레이었다.

김일성광장을 중심으로 대통로에는 인민군열병종대들과 화려한 명절옷차림을 한 시민들이 꽃다발과 깃발을 비롯한 각종 장식물을 들고 정렬해 있었다.

오전 9시, 드디어 열병식과 경축시위가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도 위대한 영도자님께서 등단하실 때 터져오른 그 만세의 환호성을 잊을 수 없다. 천출위인을 또다시 국가의 최고직책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한 감격과 첫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쏴올려 강성대국의 위용을 만방에 과시한 기쁨이 한데 어울려 천지를 진감시킨 그 만세의 환호성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영광의 그 만세의 환호를 들으며 천출위인 김정일장군님을 숭앙하는 이북민의 충성의 열도를 알 수 있었고 그분의 주위에 하나로 똘똘 뭉쳐진 일심단결의 힘을 볼 수 있었다.

특색있게 입장하는 군악단의 모습도 참으로 볼만했지만 늠름한 열병대오의 씩씩한 모습은 처음부터 우리를 경탄시켰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의 열병식을 보아왔지만 그 짜임새라든가 그렇듯 기백넘치고 의기양양한 열병식은 난생 처음 보았다.

열병식에는 김일성주석님의 초상기를 가운데 정중히 모시고 옹위하며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군기종대가 선두에서 나갔고 뒤이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종대를 비롯해 50개 종대가 힘차게 행진해 나갔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여기에도 경애하는 영도자님의 웅심깊고 세심한 지도가 어려있다고 한다.

길이 4백15㎝, 넓이 2백16㎝인 주석님의 초상기를 군기들의 호위속에 나가게 한 것은 건국의 어버이 김일성주석님께 최대의 경의를 드리며 영원히 공화국의 주석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려는 투철한 신념과 의지를 반영해서이고, 열병대오를 50개 종대로 한 것은 공화국창건 50돌을 뜻해서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열병식행진곡도 이전과는 달리 「김일성대원수 만만세」를 비롯해서 주석님을 칭송하고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 모시려는 신념의 노래, 시대의 명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심단결의 경이적인 화폭은 평양시민들의 열광적인 경축시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손에손에 꽃다발과 인공기, 당기를 들고 영도자님을 우러러 만세를 부르는 모습은 정녕 뜨거운 격정과 감동없이는 볼 수 없었다.

열광적으로 꽃다발을 흔드는 그들의 얼굴은 기쁨과 감격의 눈물에 젖어있었고 힘차게 휘날리는 깃발밑에서 빛나는 그들의 눈빛은 영도자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반짝이고 있었다.

위인숭배의 감정이 넘쳐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가 싶다.

나 역시 건강하시고 정력에 넘치신 영도자님을 뵈옵는 순간 감격의 눈물이 앞섰고 동지들과 남녘민중의 목소리까지 합쳐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언제나 뵙고 싶었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 영도자님을 모시고 진행되는 이 영광의 대축전장에 한민전 전위투사들과 남녘민중의 마음을 안고 저희들이 왔습니다. 주체조국의 융성번영과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영도자님께서 부디 만수무강하시옵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경하의 인사, 만수축원의 마음을 안고 모여온 가슴과 가슴들이 하나가 되어 터치는 만세의 환호성, 그것은 그야말로 절절함과 열렬함에 있어서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무한대한 것이며 그것은 오직 김일성광장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라 하겠다.

영도자님을 우러러 목청껏 만세를 부르는 시위군중들의 모습을 놀라움과 격정속에 바라보던 한 외국인은 이런 말을 했다. 『정말 굉장하다. 열병식과 군중시위는 조선이 두번째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과 같다. 김정일동지의 주위에 굳게 뭉친 조선인민의 일심단결은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필승불패의 초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날 오후 김일성경기장에서는 평양시내 학생들의 매스게임 「영광빛나는 김일성조선」이 공연됐고 밤에는 경축야회 및 횃불행진이 김일성광장에서 있었다.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민족의 위대한 힘이 있다.

김정일영수를 민족의 수위에 높이 모시고 세계의 앞장에서 21세기를 주도하며 나아가는 통일조국의 미래상이 눈앞에 안겨왔다.

「구국전선」평양특파원 조 국 진
 
 

우주의 "혜성"
 
 
최 백 (우주공학 박사)
 

북의 인공위성발사 소식에 온 지구촌이 끓고 있다.

북의 미사일발사설이 나온지는 여러 해 되지만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대국들만이 하고 있는 인공위성을 쏴올린 것은 기상천외한 일이다.

나는 북의 인공위성발사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이에 관해 전문가적 시각에서 심층투시해 본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단방에 성공

인간이 우주정복의 부푼 꿈을 안고 로켓을 날려온 역사는 두세기를 가까이 한다. 그러나 인공위성을 쏴올린 역사는 반세기도 되지 않는다.

이 역사의 갈피속에 기록된 세계 위성발사 실태를 보면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특히 최초의 인공위성발사에서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었다.

다른 나라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서방나라들에서 쏴올렸다고 하는 첫 인공위성들인 미국의 「뱅가드TV 3」, 일본의 「라므다-4S-1」, 유럽우주기구의 「ESRO-2A」는 모두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채 실패하고 말았다. 시험위성 발사단계에서 이 나라들의 실패회수를 보면 미국은 9회, 일본은 4회, 유럽우주기구는 10회나 된다.

일본「아사히연감」에 따르면 인공위성 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은 1958년에 17개중 10개, 59년에는 20개중 9개, 60년에는 31개중 14개, 61년에는 46개중 12개가 실패했으며 62년 1월에는 7개중 6개가 실패했다.

이런 사실에 연유하여 사람들은 흔히 일에서 실패하면 「뱅가드계획」이라 꼬집는다. 이 유모어는 미해군의 위성 「뱅가드」발사계획이 실패한데서 유래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뱅가드계획」에 따라 57년부터 3년동안 위성을 11회나 쏴올렸지만 성공한 것은 겨우 3회 뿐이었다. 60년이후 미국은 다른 나라와 함께 혹성탐사를 위해 26개의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었으나 18회나 실패함으로써 이것 역시 「뱅가드계획」으로 되고 말았다.

실패는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연간에만도 러시아에서 우주비행사를 실은 우주왕복선의 대사고, 미국 「아폴로」위성의 대사고, 지난 9월10일 「제닛트-2」로켓에 실려 발사된 미국통신위성 「글로벌 스타」의 사고는 국제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제닛트-2」로 말하면 중형로켓 가운데서 기술적으로 가장 완비된 최신형으로 광고되었었다. 그런데 30회의 발사 가운데서 7회나 실패한데 이어 또다시 실패한 것이다.

결국 최초의 성공적인 인공위성발사는 아직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이북이 첫 인공위성 발사에서 성공했으니 이것은 대국들의 허장성세를 보기 좋게 눌러버리고 주체강국의 위상을 우주에 선양한 경이적인 사변이라 할 수 있다.

실로 단발성공의 위성발사는 이북이 과학문명시대인 20세기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쾌거로 된다. 동시에 그것은 21세기를 마중하는 인류에게 우주정복의 밝은 미래를 열어주는 역사적 장거라 할 것이다.

1백%의 국산화

인공위성 개발에서 1백% 국산화란 말은 사실상 신화적인 용어로 통하고 있다. 그것은 인공위성 개발자체가 막강한 기술인력과 고도의 기술수단, 많은 자금, 강력한 자립산업의 뒷받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술인력 하나만 보더라도 연구원 수가 적어도 인구가 1만명당 15~16명선에 이르렀을 때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인공위성은 첨단과학기술의 집합체인만큼 그 개발은 필연코 이 분야의 고급두뇌진을 요구한다.

미국과 러시아가 남 먼저 위성발사국으로 부상할 수 있게 된 중요한 요인은 2차 세계대전시기 독일의 로켓공학기술자들과 그들이 제작한 최초의 로켓 「V-2」형을 획득한데 있었다.

인공위성개발은 또한 막대한 자금투자를 요하는 국력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초보적인 계산에 따르더라도 위성 1개를 제작, 지구궤도에 진입시키는데는 수억달러가 든다.

인공위성에는 고열과 고압에 견딜 수 있는 신소재들, 발열량이 높은 연료제와 산화제, 최첨단 전자제품들과 1만 수천 가지의 기기품들이 들어간다. 이 모든 것을 자체로 해결하려면 현대적인 금속, 화학, 기계, 전자 산업분야들로 이루어진 강력한 자립산업이 있어야 한다. 운반체의 강도를 보장하자고 해도 수만톤급의 프레스가 있어야 하고 산화제의 순결도를 보장하자고 해도 정교한 원소분리기들이 있어야 하며 연료탱크의 기술적 요구를 보장하자고 해도 특수강질의 초고압탱크와 압축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해도 이 모든 것을 1백% 자체로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오늘 지구촌에는 여러 개의 위성자립국이 있다고 하지만 위성의 모든 요소들을 1백% 자기의 것으로 생산제작해 발사한 나라는 없다.

처음으로 지구 궤도진입에 성공한 최초의 인공위성들인 미국의 「엑스플로러」는 귀화한 독일인 폰 브라운 등에 의해 개발된 「주피터」로켓에 실려 발사된 것이며 프랑스의 「프랑스1-A」와 유럽우주기구의 「HEOS-1」은 미국과 공동으로, 일본의 「오오스미」는 미국로켓기술로, 영국의 「에리알」(S-51)과 나토의 「나토-1」은 미국의 로켓으로, 독일의 「디아르」는 프랑스 로켓으로 쏴올린 것들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인공위성 초대국들인 미국과 러시아는 특수금속재들을 독일에서, 정밀계기류들은 스웨덴에서 수입하고 있다. 상업위성국의 제왕으로 자처하는 프랑스도 유도장치는 벨기에에서, 원격송수신장치는 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조립하고 있다.

위성개발국들이라고 하는 일본, 독일, 영국도 그 부품들은 자국산보다 외국산이 더 많다.

다른 인공위성 보유국들의 경우에는 타국과의 협력으로 위성을 개발하거나 통째로 사다가 자국자호를 붙여 쏴올리는 것이 상례이다. 캐나다의 「ISIS-1」은 미국의 발사장에서 미국의 로켓으로 쏴올린 것이며 이스라엘의 「오페크」1, 2는 미항공우주국과 유럽우주기구의 도움을 받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공동으로 조립한 것이다.

그런데 이북에서 쏴올린 인공위성은 설계로부터 제작, 발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자기의 지혜와 자기의 기술, 자기의 자금과 자기의 산업으로 실현된 1백% 국산화된 것이라 한다.

더욱이 인공위성 발사기술은 대륙간 탄도미사일기술과 직결된 것이어서 어느 나라에서나 엄격한 수출규제대상으로 되고 있다. 특히 북의 경우에는 서방세계의 철저한 기술경제적, 군사적 봉쇄를 받고 있어 어느 나라로부터도 기술이나 부품을 수입할 수 없는 실정이다.

러시아의 우주협회 부총재는 러시아가 이북으로부터 기술지원을 요청받은 일도, 이북의 인공위성 제작, 발사에 협력한 바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었다.

그렇다면 이북의 인공위성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그것은 바로 자력갱생으로 개발된 것이다. 나는 이 사실 앞에서 『우리 식이 제일』이고 『자력갱생만이 살 길』이라는 슬로건을 삶의 신조로 삼고 「강성대국건설」에 매진하는 이북의 참모습을 깊이 새겨보게 된다.

참으로 우주공간에는 수많은 위성이 떠돌고 있지만 1백% 제힘으로 개발된 위성은 오직 하나 「광명성 1호」뿐인 줄로 안다.

세계적인 과학기술 수준

인공위성은 현대과학기술의 결정체이다. 그것은 그 개발이 물리학, 수학, 화학, 천문학 등 기초과학분야는 물론 지구물리학, 전자공학, 금속공학, 열공학, 기계공학, 유체역학, 탄도학, 연료학, 재료역학, 연소이론, 자동제어이론 등 현대과학과 첨단기술의 총집산으로 이루어지는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공위성의 기술수준이자 그 나라의 과학기술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이북에서 쏴올린 인공위성은 과학기술면에서도 북이 세계최고의 수준에 있다는 것을 말하여준다.

나는 추진체와 유도장치, 제어기술과 통신설비 그리고 인공위성의 수명문제를 놓고 이런 평가를 내리게 된다.

인공위성 개발발사에서 관건문제는 추진체라 할 수 있다.

인공위성을 지구의 공기저항권을 벗어나 고도 2백킬로미터 이상 되는 우주공간의 궤도에 진입시키자면 초속 8킬로미터의 제1우주속도를 보장할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로켓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3천5백도의 열에 견디어내는 특수엔진을 제작해낸다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다단계로 연결된 로켓들이 순차적으로 연소되어 자동적으로 분리되고 다른 것이 시동되는 기술은 인공위성 발사국들에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기술적 난문제이다. 바로 수십년의 인공위성 개발역사를 갖고 있다는 미국이 86년 1월에 쏴올린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도 고체연료로켓의 탱크폭발로 발사된지 73.621초만에 공중폭발되고 말았다. 프랑스를 주축으로 하는 유럽선진국들로 구성된 우주기구도 1단엔진은 영국이, 2단엔진은 프랑스가, 3단엔진은 독일이 맡아 제작하여 조립하기로 했으나 1단과 2단 사이의 분리, 시동에서의 거듭되는 실패로 로켓개발을 단념하고 그것을 발사체 보유국에 의뢰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경제대국이라고 하는 일본이 쏴올린 「라므다 4S-1」도 2단분리, 시동사고로 실패했다.

그런데 이북이 이번에 다단로켓을 자체의 기술로 개발해 인공위성을 자기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킨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1,2단은 액체연료이고 3단은 고성능 고체연료이면서 최신형인 구형엔진으로 구성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분리, 시동, 작동도 사전에 계산된 수치에 따라 정확히 되었다. 이것은 이북의 로켓개발기술의 완벽성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 분야의 과학기술공학이 세계적으로 매우 앞선 자리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위성개발에서 또 하나의 중핵적인 문제는 유도장치와 제어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컴퓨터 네트워크로 형성된 초현대적인 원격제어장치들과 최첨단기술이 도입되게 된다. 그러므로 위성대국들이 인공위성개발에서 가장 골몰하고 있는 것도 이 구성요소들이며 사고율이 가장 큰 점도 바로 이것들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인공위성발사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사고도 그리고 전자기술분야에서 제노라고 하는 일본이 쏴올린 「카파 4호」의 사고도 바로 유도장치의 고장과 제어기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첫방에 성공한 이북의 위성은 사전에 계산된 궤도로 정확히 비행하여 지구궤도에 들어서서 돌고 있다. 그것도 여러 가지 복잡한 여건을 고려해 가장 이상적인 시간과 발사각도, 고도를 변경시켜가면서 자기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시켰다.

또한 인공위성은 자기 궤도에 들어섰다고 해서 저절로 궤도를 따라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계속 변하는 지구와 달, 태양의 인력과 태양풍이라고 하는 하전미립자의 영향으로 인공위성의 자세와 위치가 수시로 흐트러지게 된다.

일본의 「라므다 4S-4」가 자기 궤도에서 이탈하여 떨어지게 된 것도 바로 4단자세제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북의 지상관측소는 우주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천태만상을 정확히 포착해가면서 위성의 자세와 위치를 바로잡아가며 자기 위성에 대한 관측일지와 예보까지 세상에 상세히 공개하고 있다. 이것은 이북이 자기 식대로 개발한 유도장치의 성능이 완전무결할 뿐 아니라 제어기술이 최상의 수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공위성의 임무는 그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과학위성인 경우에는 우주공간의 각종 탐측자료들을 지상관측소에 보내주는데 있다.

이 임무수행을 위해서는 인공위성과 지상관측소 간에 초현대적인 컴퓨터송수신네트워크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분야에서 첨단기술의 선두주자로 자처하는 일본이 다섯번째만에 겨우 성공한 「오오스미」위성의 전파송신시간은 30시간으로 예정하였으나 15~16시간만에 전파가 두절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북이 처음으로 쏴올린 「광명성 1호」에서 울려 퍼진 위인들에 대한 송가전파만도 9일 동안 계속 전송되었다.

이것은 이북의 교신네트워크가 위성과 하나로 결속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사실을 놓고 한국의 언론계에서는 기술적 면에서 80년대에 이미 1백50미터의 주체사상탑 탑신위에 45톤의 봉화를 올려놓는 건축공법으로 일본의 어깨를 딛고 올라섰던 이북이 90년대에 일본위성보다 2백시간이나 더 긴 위인송가송신으로 그의 정수리를 딛고 올라서게 되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으니 이것은 참으로 민족의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공위성의 수명은 그의 재질과 기술수준을 평가하는 또 하나의 중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한국전문가들의 박약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북인공위성의 수명이 2년이상으로 공시된 것이다.

러시아에서 최초로 쏴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Ⅰ」의 수명이 3개월, 「스푸트니크 Ⅱ」의 수명이 5개월, 미국 「오로라」(MA-7)의 수명이 4시간 56분, 「디스카버리」1, 2의 수명이 각각 2일간, 이탈리아의 「산마르코」 1, 2의 수명이 각각 9개월, 6개월, 유럽우주기구의 「ESRO-1B」의 수명이 54일, 오스트레일리아 「레사터-1」의 수명이 43일간이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이북위성의 수명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그것도 비교적 낮은 고도에서 이같은 수명을 갖는다는 것은 위성의 소재와 전원, 제어시스템의 기술상태가 매우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광명성 1호」의 모든 기술적 성능은 최상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놓고 이북이 오늘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을 모르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누가 최후에 웃는가 보자」는 든든한 뱃심으로 강행군을 해나가고 있는 참의미를 깨닫게 된다.

자주정치의 소산

이북의 인공위성발사에 미국이 전율했고 일본이 기절했으며 청와대가 혼비백산했다.

사실상 미국은 자기들의 전례에 따라 5년전에 「노동 1호」를 시험발사한 이북이 다음번에 중거리미사일 「대포동 1호」를 발사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발사된 것은 그 모든 단계를 뛰어넘어 워싱턴의 상공을 날아도는 인공위성이었다.

그래서 한국이나 일본이 유일초대국으로 우상화해온 미국의 정보신화가 산산조각나게 되었다. 첩보위성으로 『지상의 15센티미터의 물체까지 포착』할 수 있고 『배구공과 농구공까지 식별』할 수 있다고 하던 미국이 이북에서 발사된 것이 인공위성인지 탄도미사일인지 하는 것조차 식별못했으니 이 얼마나 가관인가. 미국정계에서는 이 사실을 놓고 이것은 파키스탄의 핵시험을 사전에 포착못했던 것보다 더 큰 실책이라는 비명이 울려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이 미국이 던져주는 잘못된 사주정보에 따라 알레르기성 「미사일발작증」을 일으킨 것은 더욱 가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일본당국은 이북의 위성발사에 겁을 먹었으면 묵묵부답으로 가만있기라도 하는 편이 나았으나 공연히 탄도미사일트집을 부려 세상사람들을 웃기고 망신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아직 「정치난장이」라는 세론의 평을 면할 수 없다.

세계가 공인하고 있는 것처럼 인공위성과 대륙간 탄도미사일간의 차이는 기술적 간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있다. 인공위성의 각도와 탄두를 바꾸어놓으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된다. 이것은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없다』,『만일 적들이 건드린다면 지구상의 어디에 있건 섬멸적인 타격을 안길 것이다』라고 한 평양의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공위성개발이 국력평가의 정수인만큼 인공위성을 자력으로 제작발사했다는 것은 무엇이나 다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이북은 사상대국, 정치대국, 군사대국, 과학기술대국의 위상을 겸전하고 우주강국으로 도약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북의 성공적인 인공위성발사는 한국일간지들이 정평한 것처럼 『강성대국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축도』이고 『세계 7대위성국서열에 진입한 사변』인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두고 남북을 대비적으로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리도 20여년전부터 인공위성 개발에 모질음을 쓰며 기술구걸의 길에도 나서보았으나 맛본 것은 차디찬 냉대뿐이었다.

간난신고끝에 7차에 걸쳐 단거리유도미사일시험을 했다는 것도 모두 실패로 주저앉아 버렸다. 미국의 설계와 기술, 연료혼합기술로 짜깁기해 발사했던 로켓도 한번은 계산된 고도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실패했고 또 한번은 발사된지 20.8초만에 연기와 함께 바닷속에 곤두박히는 쓴 맛을 보았다.

그래서 체면불구하고 남의 인공위성을 사서 남의 발사장을 빌려 시험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남의 사대정치하에서는 과학기술도 발전시킬 수 없고 인공위성의 국산화에 대해서도 엄두를 낼 수 없음을 나는 체험으로 절감했다.

자기 결심에 따라 과학기술도 연구개발하지 못하고 「미사일주권」마저 빼앗긴채 워싱턴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체제에서 어찌 인공위성의 국산화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북에서의 인공위성 발사성공은 바로 자주정치의 소산이다. 세계 유일초대국인 미국과 단독고전으로 맞선 정치, 군사적 대결장에서 어제는 「노동 1호」를, 오늘은 「광명성 1호」를 꽝꽝 쏴올리는 이북의 담대성과 경이적 대성공은 백두산같은 담력과 뱃심을 지니신 김정일장군님께서 펴시는 자주자활의 주체노선이 있어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제국주의의 끈질긴 봉쇄와 압살정책하에서도 인공위성발사와 같이 서방을 뺨치는 북의 이 위용이야말로 김정일장군님과 같으신 자주정치의 위인만이 세우실 수 있는 현대역사의 대기념비이다.

우리 이남이 살아갈 길은 오로지 자주에 있다. 자주에 통일도 있고 번영도 있다. 이것이 바로 무변광대한 우주공간에 혜성같이 나타난 이북의 「광명성 1호」가 가르쳐주는 참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