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수정은 있을 수 없다
 

거칠고 험난한 역경 속에서도 좌절을 모르고 자주, 민주, 통일의 궤도를 따라 억세게 진군하고 있는 것이 이 땅의 민족민주운동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운동권 일각에서 이에 보조를 같이 하지 않으려는 목소리가 울려나오고 있다.

그것이 바로 민족의 통일도 포기할 수 없지만 세계의 흐름에 낙오돼서도 안된다면서 「열린 민족주의」,「시대의 변화에 맞는 신민족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민족문제,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이북에 대해서는 「개방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이남에서는 남북합의서 국회비준운동이나 미군기지임대료징수운동 같은 것을 운동의 기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적 자유와 생존권을 위한 노동운동을 「계급이기주의」라고 매도하는가 하면 험난한 분단의 남녘땅에서 『개혁적이지 않으면 외연을 넓힐 수 없고 우유부단하지 않으면 중심을 세워나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언행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그 발상이 위험하므로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그들은 엄연한 현실에 대한 인식결핍과 판단무능은 더 말할 것 없고 민족민주운동에 대한 관점이 분명히 퇴색했다.

사물현상에 대한 과학적 고찰과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할 때 그에 능동적으로 반응, 대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인줄 안다.

구태여 부언한다면 오늘날 세계가 자주의 길로 나가고 있는 것은 인류역사 발전단계의 합법칙적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21세기를 눈앞에 둔 진보적 인류는 대망의 새 세기를 자본주의, 제국주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주의 세기로 빛내려 하고 있다.

바로 그 중심에 이북이 우뚝 서있다. 오늘 이북은 자주의 강국으로 세계제국주의연합세력과 단연히 맞서 우리 민족의 존엄을 꿋꿋이 지켜가고 있다. 따라서 이북을 어떻게 보고 대하는가 하는 것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이남운동권의 입장과 자세를 규정하는 중요한 척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운동권안의 일부 사람들이 감히 이북에 대한 「개방 유도」요 뭐요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땅의 정치현실은 세계의 흐름에 너무도 거리가 멀게 경직되어 있지 않는가.

오늘 지구촌에서 찾아보기 드문 식민지, 외국군사기지로 남아 외세의 지배와 예속, 민족분열의 비극이 악순환되고 살인적인 파쇼통치가 강행되고 있는 것이 이 땅의 현실상황이다. 이같은 현실을 끝장내기 위한 투쟁의 길에 과감히 나설 대신 「개혁」이요, 「우유부단」이요 하는 것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서슴없이 내뱉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운동권에 들어섰는가고 말이다.

「신민족주의」의 구호를 들고 감히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우리의 투쟁을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행동으로,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는 운동으로 보는 것이야 말로 민족의 존엄과 민중의 불행과 고통을 외면한 반역행위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들은 국민 각계가 피타게 절규하고 있는 민족자주와 사회의 민주화에 대해서는 함구무언이다. 그들은 기껏해서 남북합의서 국회비준운동이나 미군기지임대료징수운동과 같은 것을 기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살벌한 현실상황에서 그런 요구자체도 해결될 수 없고 또 설사 해결된다고 해도 그것으로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민족최대의 소원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민중이 피어린 투쟁과정에서 경험한 뼈저린 교훈이다.

우리 민중이 살 길은 싸우는 길밖에 없다.

외세와 그에 야합된 사대매국집단의 식민지파쇼통치와 분열주의책동이 날로 우심해지고 있는 반면에 각 계층 민중의 자주, 민주, 통일기운이 비상히 팽배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보다 높은 투쟁목표를 내세우고 과감히 싸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이 「국가보안법」철폐와 안기부해체, 주한미군철수와 평화협정체결, 민족대단결과 연방제통일을 전면에 제기하고 그 실현을 위해 줄기차게 투쟁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정당하고 바람직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합의서 국회비준운동이나 미군기지임대료징수운동을 주장해 나서는 것을 냉철히 분석해보면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그 속에 안주하려는데 그 진의도가 있지 않는가 생각된다. 결국 이것은 변혁지향적이고 애국적인 민족민주운동을 개량주의적인 시민운동으로 전락시켜 운동권의 분열, 말살을 꾀하고 있는 파쇼당국의 간교한 음해책동에 말려들어가는 행위라고밖에 달리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잘못된 사고방식은 제때에 바로 잡아야 한다. 일시적이나마 운동실천에서 혼란과 동요속에 묻혔던 사람들은 잘못을 시급히 시정하고 정상궤도에 들어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 어떤 사나운 풍파가 몰아쳐오고 내외정세가 어떻게 변하든지 우리의 살길인 자주, 민주, 통일의 궤도를 따라 억세게 매진해야 한다.

여기에 시대와 민족, 민중 앞에 지닌 영예롭고 막중한 역사적 책무를 다하는 비결이 있는 것이다.

1998.11 이 철 민
 
 

운동가의 신념
 

요즘 이북을 헐뜯다 못해 운동권까지 북과 연결시켜 비난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어용나팔수중에는 이전 운동권출신도 있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아서원」에 들렸다가 뜻밖에도 사람들의 구설중에 오르고 있는 그들을 보았다.

다리부러진 노루 한곳에 모인다고 했던가. 그들은 한쪽 구석에 앉아 거나하게 취해 술을 마시었는데 주변 손님들이 아니꼽게 그들을 쳐다보며 수군거리었다.

한때 노동운동의 「지도자」로,「주사파대부」로 노동자들과 청년학생들 속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두 사람, 경찰의 수배를 받을 때 여염집 아낙네들까지 숨겨주고 도와주던 그들이 오늘은 술집에서조차 뭇사람들의 경멸을 받고 있는 것을 보니 그들의 정상이 참말로 가긍스럽다.

그들은 운동가로서의 신념이 없었고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의 수모를 받고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양심과 신념은 사회적 존재가치를 규정짓는 근본담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신념이 없는 인간은 바람따라 돛을 다는 비겁한 속물로써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

사회변혁을 위한 길에 나선 운동가의 경우 신념은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운동가에게 있어서 신념이란 생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만일 신념을 저버린다면 운동가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동지와 조직, 사회와 집단, 조국과 민족의 버림을 받기 마련이다.

그들은 왕년에 민중의 편이라고 자처하면서 자주, 민주, 통일을 외치며 노동자, 청년학생들의 데모대오에 앞장섰고 세계의 각광을 받고 있는 이북을 극구 찬양도 하고 주체사상이야말로 영원한 민중의 사상이라는 글도 썼다.

그런데 그들은 급전된 세계 정치기류와 시련 앞에서 신념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으며 안기부밀실에 끌려가 매를 맞고 투항변절하고 말았다. 인간추물로 굴러떨어지다나니 결국 지난날 제 입으로 토했던 열변까지 모조리 부정해 버리는 치졸한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들이 쉽사리 신념을 저버리고 전향하게 된 사상적 근저에는 일개인의 명예와 공명, 출세욕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원래 누구를 막론하고 일신의 명예나 출세, 사리사욕에 빠지게 되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직과 집단, 나라와 민족도 안중에 없다.

바로 그들이 이런 유형의 추물이다.

그들은 동료들과 조직 앞에서 돋보이기를 좋아했고 자고자대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들은 당초부터 운동권에 뛰어든 것이 조직과 집단,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나서는 것보다 일신의 명예, 공명을 떨쳐보자는데 그 본심이 있었다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운동가의 신념을 지킬 수 없었다.

그들은 공장가와 대학 캠퍼스의 군중 앞에서 싸우자고 열변을 토할 수 있어도 『주체, 내가 나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글을 남기고 목숨을 서슴없이 바친 서강대의 김의기학생이나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한 친구가 되고 싶다』는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분신한 노동자 박명진열사처럼 신념의 강자로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귀중한 것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아니라 일개인의 생명이기 때문에 동구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이북이 서방의 끈질긴 고립압살정책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위구심을 느끼고 사상적 동요가 일어나게 되었으며 종당에는 쉽사리 전향하고 말았다.

이 땅의 운동가는 누구보다 애국심이 강하고 신념이 투철해야 한다.

이 땅에서 식민지파쇼통치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민족자주와 사회민주화를 실현하며 분열의 비극을 끝장내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은 파란만장의 혈로를 헤쳐야 하는 험로역경이다. 따라서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필승의 신념이 없이는 이 엄혹한 시련과 난관을 과감히 뚫고 나가려는 투철한 의지가 발현될 수 없다.

수많은 유명무명 운동가들이 스스로 투쟁에 뛰어들어 한몸을 기꺼이 바치고 있는 것은 주체의 정로를 따라 나아갈 때 자주, 민주,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필승의 신념과 확고한 의지를 지녔기 때문이다. 설사 그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종신토록 옥중고초를 겪어야 할지언정 신념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 이런 운동가야말로 우리 시대의 참인간이다.

더러운 목숨을 부지하려고 안기부의 프락치로 둔갑해 「친북빨갱이논쟁」을 펴면서 사회변혁운동의 주적을 모호하게 하고 민족민주운동의 분열, 파괴를 꾀하고 있는 비열한들의 운명은 역사가 준엄히 심판할 것이다.

신념을 지키는 애국자는 죽어서도 영생하지만 신념을 버린 변절자는 살아도 죽음의 나락에서 헤매일 뿐이다.

애국애족에 투철한 변혁운동가들은 그 어떤 사나운 풍파 속에서도 필승의 신념을 안고 헌신분투함으로써 우리 민중, 민족의 숙원인 자주, 민주, 통일의 지평을 기필코 열어놓고야 말 것이다.

1998.12 최 철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