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뒤에는 7월이 있다
 
 
이 춘 석
 

북침의 화염을 몰아왔던 50년 6월의 도발자들은 53년 7월에 쓰디쓴 고배를 마셨다.

6월은 도발의 달, 저주의 달로 되었고 7월은 승리의 달, 축복의 달로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6월뒤에는 7월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단순히 6월이 가면 7월이 온다는 세월의 흐름을 뜻하는 성구가 아니다. 도발자들에게는 언제나 징벌과 파멸이 차례진다는 심각한 교훈과 준엄한 경고의 의미를 주고있다.

도발의 6월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상처를 입혔던 50년 6월이었다.

45년의 8·15부터 50년의 6·25에 이른 5년간 미국은 이남에 대한 점령통치와 이북에 대한 침략준비라는 쌍두마차를 타고 지배와 침략의 쌍나발을 불어댔다.

미국에 있어 한반도는 세계제패를 위한 「대륙에로의 건늠다리」였고 아시아라는 「고기덩어리」를 잘라내는 「단검」이었다.

이로부터 한반도전체에 대한 지배를 실현하는 것이 미국의 속계산이었다.

『한반도전역에 대한 정복에 의하여 우리는 불라디보스토크와 싱가포르사이의 전지역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는 우리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란 어디에도 없게 될 것이다.』

미극동사령관 맥아더의 이 폭언은 세계지배를 참망한 미국의 진의를 드러내놓은 것이다.

미국은 이 땅의 곳곳에서 군용도로, 비행장, 군항 건설을 다그쳤고 북침무력증강에 혈안이 됐다.

당시 일본의 한 출판물은 미국이 한국에 15만명의 지상군과 경찰, 20만명의 예비군, 3천명의 공군과 1만명이상의 해군 등 도합 40만명의 북침병력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49년 한해에만도 1억9천만달러상당의 군사장비를 국군에 넘겨주어 북침준비에 만전을 기했다고 했다.

개성-금천-평양방향과 옹진-신천-사리원방향, 연천-갈마방향, 화천-금화방향, 양양-고성방향 등 이북에 대한 전면공격을 실행할 「알-3」북침작전계획이 성안됐다.

그에 토대해 38선일대에 수많은 공격진지들을 구축하고 모든 무력을 공격형으로 전진배치했다.

한편 미본토와 극동지역에서 항공모함과 대형폭격기들을 한반도에 신속히 투입할 수 있게 했다.

이 무렵 38선전역에서 매일같이 예비전, 시험전인 무장도발을 감행했고 미국민간인들을 극비리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소개했다.

면밀한 준비끝에 미국대통령 특사 덜레스가 38선을 시찰하고 상황을 최종점검한데 따라 북침명령이 내려졌다.

이렇게 되어 저주할 6·25전쟁의 불길이 치솟았다.

전쟁의 화염이 휩쓴 그 3년간에 우리 민중이 당한 고통과 우리 민족이 겪은 재난을 무엇으로 헤아릴 수 있으랴.

남북전역에서 수백만의 인명피해와 수많은 전재민이 발생했고 도시와 농어촌, 학교와 병원, 주택들이 잿더미로 화했다.

6·25북침전쟁이야말로 미국에 의해 빚어진 우리 겨레의 대재앙이었다.

오늘 이 재앙이 우리 겨레에게 또다시 되풀이되려 하고 있다.

세월은 49년으로 흘러갔어도 북침에 대한 미국의 야망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세계「유일초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은 오만방자하게도 세계경찰역을 놀면서 이 행성에서 자주세력을 억제하자면 「북조선부터 제압」해야 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내에서 최근 「차후작전대상으로 북조선」을 떠올리는 논조들이 파다히 퍼지고 있는 가운데 클린턴이 『임의의 장소에서 임의의 시각에 유고슬라비아에서와 같은 군사작전을 진행할 수 있다』고 호언한 것은 우연한 일치라 할 수 없다.

이북에 대한 「선제공격」과 「전쟁종결이후 점령통치단계」까지 짜놓은 「작전계획 5027-98」은 곧 6·25때의 「알-3」북침작전계획의 증보판이다.

이 계획에 따라 지금 미국은 한반도에 전쟁무력을 계속 증파하고 있다. 발칸전에 투입됐던 항공모함 「키티호크」호와 유도미사일순양함 「모빌 베이」호, 「빈센스」호가 이미 한반도와 그 주변에 이동배치됐다.

일본 오키나와의 해병대무력과 미국본토의 항공모함, 전술기대대, 전략폭격기들이 임의의 시각에 한반도에 투입될 수 있게 대기태세에 있다.

휴전선상에서 북침도발소동이 계속되고 미국민간인들의 일본소개훈련까지 진행되는 가운데 북침의 첫 발화점으로 삼은 서해무장도발사건이 발발됐다.

50년 6·25전야의 상황을 텔레비전녹화로 보는듯 싶다.

한반도에는 새로운 6·25전란이 배태돼 있다.

이 땅에 전쟁의 암운을 몰아오는 세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그 미국에 그 미국이다.

참으로 미국은 변할줄 모르는 침략세력이다. 따라서 우리 겨레의 변치 않는 과녁도 미국이다.

미국은 우리 민족의 저주와 증오의 표적이며 숙적이다.

이 땅에 미국이 있는한 전운도 가실 수 없고 평화도 도래할 수 없다.

여기에 49년전 도발의 6월이 새겨주는 의미가 있다.

참패의 7월

6월의 도발자들은 오판했다. 그들은 이북을 너무도 몰랐다. 백악관과 펜터건은 상대를 건국이 갓 선포되고 유격군이 정규군으로 개편된지 2년밖에 안되는 「유아」로만 여겼다.

근 200년의 침략전쟁사에서 단 한번의 패전도 몰랐다는 미국,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승국의 「명예」와 「횡재」까지 얻어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진 미국은 북과의 전쟁을 「땅짚고 헤염치기」로 치부했다.

그래서 미군사령관들은 6.25의 불을 지르고는 『아침은 해주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호언했다.

미국은 「북진」이 「즐거운 여행」으로 될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천만에였다.

미국은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을 맞는 꼴로 되었다. 일찍이 맞서본적 없는 신생강자와 맞다들어 호된 타격을 받았다. 잘못 고른 상대였던 것이다.

미국을 혼비백산케 한 이북의 실체는 어떠했는가.

일제의 1백만 관동군과 단독으로 싸워 이긴 강군과 피로써 찾은 조국을 지켜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강민이 거기에 있었다.

정의로운 수호전쟁의 진두에는 삼도왜적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던 항일의 전설적 영웅,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 김일성대장군께서 계셨다. 위대한 영장을 모신 군민은 무적필승이다.

미국은 이것을 몰랐다. 상대를 모르는 우민한 자는 백전백패하기 마련이다.

미국은 북침전쟁을 도발한지 3일만에 도리어 서울을 함락당했다. 16개 다국적군까지 투입했으나 패전의 대세를 돌려세우지 못했다.

3년간의 한국전에서 태평양전쟁 4년동안에 입은 손실의 근 2.3배나 되는 치명타를 당한 미국이었다. 「하늘의 제왕」이라는 「B-29」를 비롯한 5만여대의 전투기로 제공권을 장악했다던 미공군은 신화적인 인민군「비행기사냥꾼조」의 총탄세례를 받아 무려 1만2천2백여대나 되는 비행기를 잃었다. 「바다위에 떠다니는 섬」이라던 순양함 「팔치모르」호를 위시한 5백60여척의 미군함선들이 북의 어뢰정, 소형함정들과의 해전에서 수장됐다. 「정예」와 「상승」을 자랑하던 미군 40만을 포함해 1백56만의 도발자들이 함정골에서 살상포로됐다.

전쟁사상 최초의 고전을 겪은 미국은 한국전기간 대통령이 전격교체되고 유엔군사령관이 3명이나 경질되는 전무한 비극속에 마침내 참패의 항복서에 서명하는 수치를 기록했다.

휴전협정에 수표한 유엔군사령관 클라크는 『나는 역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영예롭지 못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었다고 고백했다. 전 미국무장관 마샬은 『신화는 깨어지고 말았다. 미국은 남들이 생각하던 것처럼 그렇게 강력한 나라가 아니었다』고 실토했다.

사람들은 미합참의장 브렛들리가 6·25전쟁을 『잘못 고른 시간에 잘못 고른 장소에서 잘못 고른 적에 대한 잘못한 전쟁』이었다고 한 비명을 오늘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워싱턴이 잘못 택한 북침도발은 결국 비참한 패배로 막을 내렸던 것이다. 때는 1953년 7월27일이었다.

그때로부터 7월은 이북이 도발자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한 전승의 달로, 미국이 역사상 첫 참패를 당한 패전의 달로 역사에 자리매김됐었다.

참으로 7월은 이북에 있어 위대한 영장의 주위에 군민이 일심단합해 조국수호전에 결사분기할 때 필승불패함을 보여준 위대한 승리와 영광의 달이었다. 반면에 미국에는 「강대성의 신화」가 부서져버린 「수치와 절망의 달」이었다.

승리한 7월의 의미는 흘러간 오늘 반세기의 역사에도 뚜렷이 각인되어 세계를 깨우치고 있다.

7월의 대승을 안아오신 세기의 명장 김일성대장군의 출중한 지략과 품격은 오늘 천출명장이신 김정일장군에 의해 빛나게 승계되고 있다. 경모하는 김정일장군께서는 7월의 전승을 위대한 선군정치로 역사에 찬연히 부상시켜나가신다.

명장이 있는 곳에서는 승전고가 울리기 마련이다.

역사와 인류는 북미핵대결전을 통해 김정일장군의 무비의 지략과 영활무쌍하심을 경탄의 시선으로 보았다. 김정일장군께서 민족의 최고이익을 지켜주신 것은 이북만이 아니라 이남에 있어서도 쾌거였고 쾌승이었다.

우리 민중이 우러르는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는 서방의 고립압살정책에도 민족의 존엄과 사회주의를 생명같이 지켜주며 빛내어주시는 정치이다.

남들은 달러에 민족의 존엄을 팔고 사회주의를 팔아도 이북은 절대로 그에 유혹되지 않고있으니 얼마나 장하고 멋있는 정치인가.

그래서 온 세상의 각광을 받는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이고 세인이 선망해마지 않는 이북의 사회주의다.

역사가들은 지금 이북이 지난 5년간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로 쌓아온 기적을 제국주의와의 총포성없는 대전의 일대 승리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김정일장군께서는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연합세력의 협공으로부터 민족의 존엄을 철옹성으로 지켜나가고 계신다.

그 길에서 수령결사옹위정신, 총폭탄정신, 자폭정신이 충만된 강군, 강민의 대오가 숲처럼 자라나고 인공위성「광명성 1호」를 우주에 쏴올린 이북이다. 북의 전력과 국력은 50년전의 몇백, 몇천배로 막강해졌다.

이제는 또 강성대국으로 도약하는 이북이 아닌가.

이북의 내일은 창창하다.

우리 민중은 이북의 장래에서 통일조국의 내일을 확신한다.

그런 신념에서 본인은 『6월뒤에는 7월이 있다』는 말을 재삼 강조해두고저 한다.

이제 어떤 침략세력이든 제2의 6·25를 도발한다면 그 뒤에는 반드시 제2의 7·27이 따를 것이다.

만약 제3의 6·25를 일으킨다고 해도 그 뒤에는 또 제3의 7·27이 반드시 따르게 될 것이다.

미국도 그리고 그 사타구니에 붙어 연명해가는 한국당국자들도 북침열에 환장이 된 머리를 식혀야 하며 파멸의 묘혈을 파는 어리석은 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도발의 6월과 참패의 7월이 오늘 미국호전계층과 이남호전세력에 주는 엄숙한 경고이다.
 

* * *

6월뒤에는 7월이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외침이고 선언이다.

여기에는 이제 북침이 재발한다면 이북민중과 함께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에 분기하려는 우리 이남민중의 의지가 담겨져있다.

우리 겨레는 영원히 7·27과 함께 있을 것이다.

언제나 7·27로 승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