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연석회의 50돌에 부쳐


 


4월 남북연석회의(1948년)가 열린 때로부터 어느덧 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4월 남북연석회의의 역사적 경험은 온 민족이 민족대단결의 기치 밑에 굳게 뭉쳐 단합된 힘으로 투쟁하면 통일의 숙원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한평생을 바쳐 이룩하신 민족대단결의 전통과 경험에 의거하여 통일성업을 완성하는 것은 민족사의 부름이며 주석님의 생전의 뜻을 이어 우리 세대에 통일성업을 완성하시려는 것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확고한 결심이고 의지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에 따라 이북은 지난 2월 정당, 단체 연합회의를 소집하고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민족의 출로를 함께 열어나갈 것을 호소하였다.

민족대단결은 통일위업에 민족의 총력을 기울일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며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결정적 담보이다.

민족대단결의 기치 밑에 통일운동을 가속화하는 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세의 지배와 외세의존을 철저히 반대배격하고 통일위업을 민족주체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실현하려는 입장과 자세를 변함없이 견지하는 것이다.

민족자주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는 데서 기본이다. 민족 내부문제는 어디까지나 주체성, 민족성의 원칙에서 출발하여 민족주체의 힘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

이 땅에서 반북대결정책이 연북화해정책으로 바뀌지 않고서는 언제 가도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없고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실현할 수 없다.

우리 민중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안기부를 해체하기 위한 실질적인 투쟁을 통해 연북화해와 통일을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를 제거함으로써 민족의 단결과 통일에 유리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남에 있건 북에 있건 해외에서 살건 누구나 사상과 제도,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대단결의 기치 밑에 하나로 굳게 뭉치며 통일성업에 특색있는 기여를 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민족대단결의 위대한 기치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제시하셨으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석님의 통일유훈을 관철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겨 실현하기 위한 위대한 경륜을 펼치시었다.

민족의 태양이시고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김정일장군님의 영도 따라 전민족이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통일운동을 힘있게 떠밀고 나갈 때 우리가 그처럼 바라는 통일의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채수항>
 

4월남북연석회의의 역사적 의미


 


4월 남북연석회의는 민족이 있고야 정당도 있고 주의주장도 있다는 공통된 인식 아래 남과 북의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민족분열위기를 타개해갈 공동대책을 토의하고 행동통일을 창출해낸 첫 민족대회합인 것으로 하여 역사적 의미가 자못 크다 하겠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발기에 의하여 소집된 이 회의에는 이북의 3개 정당, 12개 단체, 이남의 41개 정당, 단체 등 도합 56개 정당, 단체 대표 6백95명이 참석했다.

주체37(1948)년 4월19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막을 올린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일치하게 미국과 이승만일파의 망국적인 5.10단선을 규탄하고 그것을 저지, 파탄시키기 위해 민족분열을 우려하는 각 당, 각 파, 각 계층 민중들을 하나의 거족적 구국전선에 결집시킬 것을 주장했다.

특히 참석자들은 4월21일에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충만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보고를 청취하고 그분께서 제시하신 4개항목의 구국대책을 민족공동의 구국대강으로 채택했으며 그분을 조국통일의 구성으로 높이 받들어모셨다.

당시 회의 결과에 관해 김구, 김규식은 내외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남북 제 정당, 사회단체연석회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우리 민족도 주의와 당파를 초월하여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번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라고 만족한 평가를 내렸다.

4월 남북연석회의의 역사적 의의는 애국애족의 일념 아래 이북의 공산주의자들과 이남의 민족주의자들이 합작과 단합을 실현함으로써 조국통일이 공산주의와 민족주의간에 주의상 대립이나 투쟁이 아니라 애국자와 매국노, 민족자주역량과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유린하는 미국과 사대매국집단 사이의 첨예한 투쟁이라는 것을 보여준 데 있다.

또한 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외세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고 우리 민족은 외세의 지배와 간섭 없이도 능히 민족자력으로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철의 의지를 내외에 엄숙히 선언한 데 있다.

4월 남북연석회의가 있은지 50년이 지난 오늘 우리 앞에는 내외분열주의세력의 반통일책동을 물리치고 기어이 우리 대에 조국통일을 성취해야 할 역사적 과업이 나서고 있다. 시대와 역사 앞에 나선 이 중대한 과업을 다하자면 온 겨레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3대헌장을 필승의 보검으로 삼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영도 따라 통일애국의 길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분열은 매국이고 통일은 애국이라는 대의 밑에 애국애족의 일념이 있고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각 당, 각 파, 각 계층 민중은 주의주장과 당리당략을 초월하여 단합해야 하며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위한 하나의 강력한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는 조국통일의 만능의 열쇠인 조국통일3대헌장이 있다.

특히 우리에게는 통일운동의 위대한 구심점, 민족의 위대한 영수 김정일장군님이 계신다.

각계 민중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두리에 똘똘 뭉쳐 그분께서 가리키시는 통일애국의 길로 나갈 때 우리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강영균>
 

그날의 일화


 


역사적인 4월남북연석회의의 나날 평양에 간 백범 김구는 이북 현실에서 바람직한 참정치, 내 민족의 참모습을 새삼 발견하고 회생의 미소를 띠었다.

김장군님의 공산주의

48년 4월21일 평양의 특급호텔 현관에 안신호씨가 나타났다.

<이게 누구시오?! 안신호씨가 아니요?>

김구는 놀랐다. 도산 안창호선생의 누이동생이 북에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평양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이다.

<그래 신호씨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지내시오?>

<김일성장군님의 덕분으로 온 집안이 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노동당원입니다. 남포시 여맹위원장 겸 여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일하고 있어요. 자식들은 대학에도 다니구… 생활에 아무 불편과 걱정을 모르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게 다 참말이요?>

김구는 이북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가고 물었다.

<신앙을 믿고 안믿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자유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하늘을 믿어도 미국의 하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하늘을 믿지요. 장군님께서는 그런 신앙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김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장군님께서 이북에서 베푸시는 정치가 그런 공산주의라면 자기는 무엇 때문에 한평생 공산주의를 반대하였던 것인가?! 장군님의 공산주의, 이북의 공산주의라면 자기의 과거를 회개하고 백번 받아들이고 싶었다.

안신호는 말했다.

<장군님의 공산주의는 지금까지의 기존 개념으로는 잴 수 없는 제일 좋은 정치이념이라고 봅니다.

그분의 공산주의를 다는 알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엔 우리의 민족성원 모두를 바른 길로 이끌어 애국자로 키우고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선양하며 우리 인민이 착취와 억압을 모르는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됩니다.>

아무리 들어봐도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적인 정치이고 이상적인 북의 현실이었다.

만경대와 백범

4월 어느날 백범 일행은 김일성장군님의 만경대 고향집을 찾았다.

김구는 마침 뜨락에서 울바자를 엮고 계시던 김보현선생님과 감회 깊이 상면하게 됐다. 김보현선생님이 장군님의 조부님이심을 알고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조부님께서는 손님이 김구임을 아시고 1896년 치하포에서 왜놈장교 츠치다를 처단하고 체포되어 인천감옥에서 고생하던 중 탈옥해 각지를 전전하다가 만경대 근방 영천암주지로 은신해 있던 그 김구씨가 아니냐고 옛일을 상기하며 매우 반기셨다.

조부님께서 옛일을 그렇게까지 자세히 상기해주신 데 대해 백범은 무척 감동해 사의를 표시했다.

일행은 추녀낮은 수수한 초가가 장군님 고향집이라는 데 대해 매우 놀랐다. 뜨락 안팎과 헛간, 부엌까지 두루 살펴봤으나 수수한 농쟁기들과 간단한 살림도구밖에는 값나가는 물건이라고는 볼 수 없고 그룻에는 남은 잡곡밥이 담겨져 있을 분이어서 일행은 더욱 놀랐다.

백범은 정중히 장손이 장군님이신데 할아버님께서는 여생을 편히 쉬시지 않으시고 고생을 하시는가고 물었다.

<내 손자는 그렇지만 나는 농민이 아니요. 예로부터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 하였는데 우리가 농사를 잘 지어야 손자가 보는 나라의 정사가 잘될 것 아니요.>

귀로에 오른 김구는 숙연한 어조로 조부님을 만나 뵙고 많은 교육을 받았다고, 일생에서 처음으로 크게 감동됐다고 말했다.

<과시 그 손자님에 그 조부님이시로군!>

백범은 오래도록 경탄을 금치 못해 했다.

김구는 평양 체류일정이 끝나가던 어느날 동료들에게 말했다.

<나는 일생을 반공으로 살아왔는데 김일성장군님과 같으신 분을 일찍이 뵈옵지 못한 것이 크게 한이 되오. 내 한생의 오류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요.

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가겠소. 이 길만이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이요.>

참으로 뜻 깊은 인생전환의 선언이었다.

<기성철>
 

출판물을 통해 본 4월


 


<남북회합은 순조로이 잘 진행되었다. 그곳에서는 조선민족의 부동의 의사를 표시한 역사적인 제 결정이 행하여졌다. 그런데 기자가 무엇보다도 감격한 것은 남북 각 정당 대표자들의 회합을 지배하는 화기만만한 공기였다. 물론 이번 회합에는 오늘 조선의 각종 사상과 정견을 대표한 사람들이 모이었다.>(<북조선기행>, 1948년 8월1일)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며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서는 우리 민족도… 주의와 당파를 초월하여서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번 행동으로써 증명한 것이다. 이 회의는 자주적, 민주적 통일조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남조선 단선, 단정을 반대하며 미소양군 철퇴를 요구하는데 의견을 일치하였다.

이것은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적 신발전이며 우리에게 큰 서광을 주는 바이다…

우리가 이것으로써 만족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거두어진 성과를 가지고 최후의 성공을 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애국동포 전체가 일치하게 노력하는데 있을 뿐이다.>(<자유신문>, 1948년 5월7일)

<내가 북조선의 현실을 보고 확고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북조선 민주개혁의 위대한 지도자인 김일성장군님의 영명한 민족지도에 감격하였다는 그것 뿐이었다. 현실을 떠난 정치는 있을 수 없다. 김일성장군님의 과거의 찬란한 민족해방사는 오늘의 북조선 민주개혁의 성과에서 더욱 빛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와 일문일답이 있을 때에도 언어구구에 그분은 자신만만히 말했으나 재래의 정치가들이 정견을 말할 때와 같이 오만불손한 태도는 티끌만치도 없었다. 그분은 어디까지든지 다정스러운 인민의 벗이었다……

36세의 젊은 민족의 영명한 지도자 그분도 젊지만 북조선의 민주건설은 더욱이나 젊다. 젊은 세대와 젊은 지도자, 힘차게 굳세게 얼마든지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북조선기행> 조선중앙일보 출판부 1948년 8월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