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장군님 모셨던 사람들을 찾아서
 

 

조 국 진 (<구국전선> 평양특파원)
 

위대한 김정일영도자님을 모셨던 사람들은 이북의 그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도자와 민중이 하나의 대가정을 이룬 이북 특유의 현상이라 하겠다.

우리는 김정일영도자님의 탄신절을 맞으며 그분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 속에 살아오는 수많은 사람들 중 몇 사람을 만나보았다.
 

평범한 교수를 스승으로
 

우리는 먼저 김일성종합대학으로 향했다.

위대한 김정일영도자님의 탄생일이 박두해옴에 따라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영도자님의 영도사적이 깃든 이 대학으로는 각 계층 사람들이 수많이 찾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인파 속에 묻혀 정치경제학부에서 교육연구사업을 하는 원사교수 박사 전용식(78살)선생을 찾았다.

【기자】 이렇게 자리를 같이해주어 고맙습니다.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오늘도 선생님을 스승으로 존경하신다는데…

【전용식】 이름없는 평범한 교수에 불과한 저를 과분하게 내세워주신 장군님의 덕망에 대해 생각할 때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 오릅니다.

주체84(1995)년 1월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우리 대학을 두고 말씀하시면서 제 이름을 불러주시고 경제학부의 그 선생은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이라고, 이런 훌륭한 사람들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습니다. 이 때 장군님께서는 인간은 스승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저에게 수령님의 존함이 새겨진 금시계를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한번도 위대한 장군님의 스승이라고 자부해본 일이 없지요. 왜냐하면 저는 내 직분인 강의를 했다면 장군님께서는 온 나라 인민들을 깨우쳐주시고 이끌어주시는 인민의 자애로운 스승이시기 때문입니다.

【기자】 김정일영도자님의 대학 시절에서 특이한 점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전용식】 장군님께서는 1960년대 초 우리 대학에서 배움의 나날을 보내시었는데요. 장군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우리 식으로 대하는 주체적 안목을 틔워주시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입교 첫 시기에 벌써 교과목들이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포착하셨습니다.

누구나 대수롭지 않게 보는 이 문제를 사대주의, 교조주의 온상으로 보시고 교육에서 주체를 세우도록 대책하신 분이 우리 장군님이십니다.

우리 경제학이 오늘처럼 주체의 정치경제학으로 되고 우리 나라 교육 전반이 주체성을 고수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시기 장군님께서 정립해주신 주체적 시각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일정한 경제적 난관을 겪고 있지만 주체성이 구현된 자립적 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가 축성되어 있는 한 반드시 극복될 것이며 오늘의 고생을 웃으며 추억할 그날이 꼭 온다고 우리 인민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항일의 여 투사의 추억
 

우리는 항일투사 김옥순여사를 만나보기 위해 김정숙탁아소로 갔다.

우리가 탁아소에 들어섰을 때 그는 어느 한 넓은 방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자】 김정일영도자님의 탄생일을 맞으며 그분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담을 좀 들었으면 하는데요.

【김옥순】 나도 2월명절을 맞을 때면 생각이 깊어져 오늘도 여기로 오게 되었소. 말이 난김에 내 평생 잊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그게 아마 장군님께서 탄생하신지 1돌이 되던 때 일이라오.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위한 군정훈련이 한창이던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우리 여대원들과 한명의 남대원을 부르시어 백두산 밀영으로 먼저 들어가라고 말씀하시었소.

밀영에 도착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어서 들어가자고, 밖에서 해를 다 보낼 셈인가고 하시면서 내 손을 잡아 이끄시었소. 우리가 고향집에 들어섰을 때 장군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시었지요.

나와 우리 동무들은 장군님께서 주무시는 쪽을 바라보다가 한순간 굳어졌수다. 글쎄 장군님께서 덮고 주무시는 포단이 쪽모이포단이더란 말이요.(손바닥을 펴고 조각크기를 그어보이며) 그것을 보니 정말 억이 막혔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께서 탄생하시었을 때 우리 동무들이 아드님을 위해 적구에 내려가거나 정치공작원들에게 부탁하는 것을 엄하게 단속했다고 하더군.

그러니 그들은 생각다 못해 입고 있던 군복에서 솜을 뜯어내고 여대원들의 배낭에 있던 천조각들을 모아 포단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기자】 그때 장군님 생일은 어떻게 쇠었는지요.

【김옥순】 여사께서는 장군님 첫돌 생일만이라도 좀 차려보자는 대원들의 의향을 들으시고는 절대로 안된다고 거절했지요.

그래서 대원들이 성의껏 소박한 기념품을 준비해드렸수다. 나무권총, 나무칼, 쌍안경 등 놀이감과 내가 가지고 있던 털실로 옷가지와 장갑, 양말을 떠서 드렸수다.

우리 어린이들이 해마다 받아안은 장군님의 사랑의 선물들에는 자신께서 누려보시지 못한 행복을 이 애들에게 다 안겨주시려는 우리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이 어려있는 것이라오.

정말 우리 세상은 아이들의 천국이지요.
 

◇ ◇
 

만나보는 사람마다 전하는 위대한 김정일영도자님에 대한 가슴 뜨거운 추억은 그대로 장군님의 높은 덕망과 민중적 풍모의 일단을 보여주는 이북 민중의 심중의 고백이었다.

백두의 밀림에서 첫걸음을 내디디신 김정일장군님의 거룩한 자욱이 이남 땅에도 이어질 그날을 민중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조선유적유물도감」에 깃든 이야기
 
문화보존총국 윤봉구씨
 

2년전 이북에서 편찬발행한 도서 「조선유적유물도감」은 「유네스코」는 물론 세계 역사학계의 저명한 학자, 교수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유적유물도감」은 상고시대로부터 이조 말기까지 1백만년 이상에 걸치는 민족사의 방대한 물질적 자료(1천3백3개 대상의 유적, 근 1만여점의 유물)를 9천9백48매의 사진과 2천2백54매의 도면, 여러 가지 도안으로 편찬발행한 물질전사격의 대역사과학도서로서 국보적 의의가 큰 민족의 만년재보라 하겠다.

나는 「조선유적유물도감」의 편찬발행을 전담했던 이북의 문화보존총국 부총국장 윤봉구씨(80살)를 만났다.

윤봉구씨는 『이 도감은 위대한 김정일영수께서 편찬발행의 설계도를 펼쳐주시고 10여차에 걸쳐 도서편찬의 규모와 구성, 편집원칙과 내용, 번역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친히 자금과 자재, 설비 등 모든 것을 충분히 보장해 주신 결과』라고 말했다.

윤봉구씨가 김정일영수로부터 「조선유적유물도감」을 편찬발행할 과업을 직접 받은 것은 주체71(1982)년 8월이었다 한다.

그때 그분께서는 도감을 주체의 사회역사원리에 토대하여 유적유물을 가지고 민족의 역사를 엮은 물질전사격의 역사도서로, 직관도서의 수요가 높아진 세계적 추이에 걸맞게 유적유물의 면모를 다각적으로 형상처리한 사진, 도면, 복원모형 등으로 과학적 설명문까지 안받침하여 독자적인 체계를 이룬 품위있는 직관도서로 잘 편찬하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더욱이 도감이 단일민족으로서의 우리 민족의 공통성이 잘 반영되게 하며 이남과 해외에 있는 유적유물도 다 편찬하여 조국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전민족적 도서로 만들라고 가르치시었다.

문화보존총국의 학자, 연구원, 사진가들은 그분의 말씀을 크나큰 흥분과 격정속에 받아안고 도감편찬작업에 달라붙었다 한다. 그 과정에 난관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유적유물을 역사시기에 따라 배열하느냐, 유형별로 배열하느냐, 기술자료집으로 편찬하느냐 하는 등의 문제를 놓고 편찬성원들내에서 논의가 분분했다 한다.

이러한 때 편찬성원들이 고심하는 문제에 과학적 해답을 주신 분이 바로 김정일영수이시다.

주체72(1983)년 1월5일 그분께서는 도감을 역사시기에 따라 유형별로 편집하며 도감에서 성을 쌓은 연대는 처음 쌓은 연대로 하고 고쳐 지운 건물은 그 건물이 시사하는 건축술의 연대를 기준으로 해당권에 포함시키게 하라고 하시었다. 그리고 설명문을 우리 글로 할 뿐 아니라 요점적 대목들은 다른 나라 글로도 서술하여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널리 자랑하게 하시었다.

그 후에도 김정일영수께서는 자주 도감편찬정형을 알아보시고 필요한 참고자료와 최신설비들도 보내주시었다 한다.

특히 그분께서는 도감에 공중촬영한 유적유물사진을 넣고싶어 하는 편찬성원들의 의향을 헤아려보시고 당시의 긴장한 정세 속에서도 친히 비행기까지 보내주시었다. 그분의 사랑이 깃든 비행기를 타고 편찬성원들은 평양과 여러 지방의 유적유물들을 마음껏 공중촬영할 수 있었다. 윤봉구씨는 나에게 도감 제20권을 펼쳐보이면서 김정일영수께서 민족문화의 보존관리와 그 개화발전에 기울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영도업적을 길이 전하기 위해 이 도서에 주석님께서 1994년 7월6일에 친히 보아주시고 비준해주신 「단군릉 최종형성안」을 담게 해주시었다고 말했다. 선대수령의 업적에 대한 그분의 무한대한 충효지심을 읽게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참으로 「조선유적유물도감」은 김정일영수의 사랑의 소산이고 탁월한 영도의 결과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도감이 완성되었을 때에 그 모든 성과를 편찬성원들에게 돌려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윤봉구씨에게 「김일성훈장」을, 이 도감에는 「인민상」을 수여해 주시는 은정깊은 배려를 해주시었다.

나는 「조선유적유물도감」에 깃든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대한 영수를 모실 때 한 민족의 오늘도 위대하지만 민족사도 찬란히 빛뿌리게 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구국전선」평양특파원 조 국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