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스승, 자애로운 어머니

-존경하는 김정숙여사께서 이남혁명가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이야기-


 


위인의 초상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색바래지 않고 영원히 빛난다.

그토록 남북 민중의 총애를 받으신 존경하는 김정숙여사의 탄생 80주년을 앞둔 이즈음 여사에 대한 각별한 그리움으로 가슴 태우고 있는 우리 이남 전위투사들의 마음속에 더욱 선명히 안겨지는 여사이시다.

존경하는 김정숙여사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이남의 딸들을 위대하신 장군님께 무한히 충직한 견결한 혁명가로, 반미구국항전의 용맹한 투사, 애국자들로 키워주신 위대한 스승, 자애로운 어머니이시다.

일찍이 이남의 빨치산 처녀들을 자애의 한 품에 안으시어 반미구국항쟁의 영웅으로, 훌륭한 애국자로 키워주신 존경하는 김정숙여사의 위인상, 사랑의 이야기를 아래에 전한다.
 

친어머니의 사랑으로 한 품에 안으시어
 

새 조국건설의 열망으로 남북이 세차게 들끓고 있던 1948년 영광스러운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을 위한 남북총선거에 참가하기 위해 강릉지구 민중대표로 이북에 들어간 두 여성이 있었다.

그들은 이정숙(당시 20세)과 김춘옥(23세)양이었다. 그녀들은 선거가 끝난 후 배우고 싶던 소원을 풀기 위해 이북의 모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그 해 9월24일 상오 9시,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녀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고향은 어디인가, 부모형제들의 소식은 아는가, 학원생활이 힘들지 않는가를 다정하게 물으시고 그녀들이 이남에서 벌인 투쟁이야기도 들어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배들이요! 동무들은 지난날에도 잘 싸웠지만 앞으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하오 라고 뜨거운 믿음을 주시면서 한국혁명과 조국통일에 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그녀들에게 크나큰 사랑과 배려를 베풀어주시었다.

국사로 1시간이 새로우신 장군님이시지만 그날 그분께서는 그녀들을 위해 3시간 이상을 바치시었다. 그러시고도 헤어지실 때에는 못내 서운해 하시며 오래도록 발길을 돌리시지 못하시었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의 한국혁명가들에 대한 사랑은 그토록 뜨거운 것이었다.

위대하신 장군님의 햇빛 같은 사랑을 그대로 안으시고 그날 하오 4시, 그녀들이 머물고 있던 합숙으로 존경하는 김정숙여사께서 몸소 찾아오시었다.

흰광목겹저고리에 까만치마를 받쳐 입으신 첫눈에도 준수한 인품이 느껴지는 젊으신 분이 두 여성간부들과 함께 커다란 보꾸러미를 안고 그녀들의 방으로 들어오시었다.

그분께서는 어리둥절하여 한옆에 서있는 그녀들을 친동생처럼 다정하게 껴안아주시며 <장군님께서 말씀 다 들었어요. 산에서 싸우느라고 고생이 많았겠습니다.>라고 하시며 몹시 반가워 하시었다. 그러시고 밝은 미소를 함뿍 피워올리시고 동행한 여성간부들을 돌아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었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두 건강하고 순박한 처녀들입니다. 이 동무들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처럼 맑고 순결한 동무들입니다.>

한없이 부드럽고 그윽하고 그러면서도 마디마디가 명쾌한 음성이시었다.

그분을 동행해 온 한 중년부인이 <장군님 사모님이십니다>하고 귀띔해주어서야 그녀들은 깜짝 놀라며 급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었다. 그리고는 그처럼 검박하시고 소탈하신 존경하는 김정숙여사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두 손을 모아쥔 김춘옥양의 손을 눈 여겨 보신 여사께서는 놀라신 어조로 <이런!… 손을 얼궜었군요!…>하시며 그녀의 두 손 안팎을 자세히 살펴보시는 것이었다.

<…심하게!… 아직도 이렇게 푸릇푸릇한걸 보니… 얼마나 저리고 쑤셨을까… 심하게도 얼궜었군요…> 거듭 걱정 어린 말씀을 하시었다.

여사께서는 그녀의 손을 놓지 않으신 채 <손이 이렇게 얼었으니 고생이 많았겠어요… 발도 얼었을 테지. 어디 발을 한번 봅시다.>하시었다.

김양은 <…발은 일없습니다…>하며 치마자락 속에 발을 감추었다.

그러자 여사께서는 <내 눈은 못 속여요. 자, 한쪽 발을 이리 줘요.>하시며 그녀의 발을 끌어당겨 손수 양말을 벗기시었다. 그녀의 퉁퉁 부은 발잔등을 손가락으로 꼭꼭 눌러보시며 <발이 이 정도로 얼었으니 얼마나 아프겠어요… 지금도 밤에는 근질근질 쏘겠지. 우리도 산에서 싸울 때 손발을 얼구고 고생을 많이 했어요. 빨치산의 날개는 발인데 경험이 없다나니 이렇게 심한 동상을 입었군요. 손발을 얼귀보지 못한 사람은 이 고통을 모릅니다.>하시며 못내 가슴 아파하시었다.

그녀의 동상은 태백산에서 유격투쟁을 하면서 강릉 일대의 12개 경찰지서를 습격하는 전투 때 입은 것이었다. 동상은 몹시 심했으나 언제 한번 그토록 살뜰한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한 그녀였다. 춘옥양은 뜨거운 눈물을 여사의 손등에 점점이 떨구었다. 그 눈물 자국을 얼른 닦아올리려고 급히 손을 내밀던 그녀는 잠시 주춤했다. 여사의 손에는 그녀가 입은 동상보다 더 험한 동상 자리가 있었다.

그녀는 격정을 못참고 <사모님, 사모님의 손은 저보다 더 심한 동상을 입으시었습니다>하며 여사의 두 손을 꼭 쥐었다.

여사께서는 자신께서도 몇번이나 동상 입은 적이 있다고 하시면서 잠시 말씀을 끊으시었다가 다정한 음성으로 이렇게 가르치시었다.

<…언독은 잘 빼면 돼요. 자그마한 베자루 네개를 만들어서 콩을 담고 그 속에 손발을 넣는 게 제일 좋아요. 물론 약도 있지만 우리 조상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알아낸 그 방법이 간단하고 지저분하지도 않고 제일 좋아요. 그래도 언독이 잘 빠지지 않으면 얼음이 버적버적한 물에 손발을 담가야 해요. 물론 손발이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저리고 아프지만 인내성 있게 참아야 합니다. 목숨을 내걸고 적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쯤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이렇게 콩자루와 얼음물에 번갈아 가면서 손발을 넣으면 아무리 심하게 배긴 언독도 깨끗이 뺄 수 있습니다.>

진정이 넘치게 안겨오는 자상한 가르치심이었다.
 

참다운 인생관을 안겨주시어
 

존경하는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녀들의 이름과 나이를 물으시었다.

이양의 이름과 나이를 들으신 여사께서는 몹시 기뻐하시었다.

<내 이름과 똑 같구만. 정숙이가 또 한명 생겼어요. 조선에는 정숙이라는 이름이 많기도 하지… 우리도 산에서 싸울 때 감장정숙, 노란정숙, 파란정숙이 있었는데 이것은 유격대에 입대할 때에 입고 온 의복 색깔에 따라 지은 거예요. 나는 감장정숙이었어요.>

여사께서는 자신께서 걸어오신 보람찼던 항일투쟁의 나날을 추억하시듯 그윽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었다.

<…나도 동무들만한 때에는 달리는 범도 잡을 것 같았습니다. 정말 세상에 무서운 것, 두려운 것, 못해낼 것이 없었어요.

이 시절에 훌륭한 일을 많이 해야 해요. 아까운 청춘시절을 헛되이 보내면 안돼요.

빨치산투쟁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사람이 있어야 통일도 되고 조국도 빛나고 민족의 자랑도 떨치게 되는 것입니다…>

뜻이 깊은 말씀이시었다.

알기 쉽게 하시는 말씀 속에 담긴 깊은 뜻이 그대로 그녀들의 심장 속에 새겨졌다.

여사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었다.

<…우리도 산에서 싸울 때에는 온 몸이 얼어서 감각을 잃은 때도 있고 땀과 비로 군복이 마르는 날이 없었고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 투쟁했습니다. 더구나 지하투쟁할 때에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때도 많았지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으로서 사는 보람이 있고 영예가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한번 세상에 태어난 바에야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한몫 기여하였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야 어떻게 되든지간에 자기 혼자만 편안히 살면 된다는 식으로 그날 그날 밥이나 먹고 흥타령이나 부르며 허송세월을 보내서야 무슨 사는 보람이 있겠습니까.

장군님의 말씀대로 하루를 살아도 똑똑히 살아야 합니다.>

참된 인생관의 심오한 진리가 어려있는 귀중한 말씀이시었다.

여사께서는 반미구국투쟁의 길에 나섰던 이정숙양의 부모가 적들에게 학살된 경위를 자세히 들으시고는 분노가 서린 음성으로 말씀하시었다.

<정숙이, 내 말을 명심하세요. 동무는 꼭 자기의 부모와 오빠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에도 원수놈들에게 부모를 잃은 동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두 눈은 항상 원수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글이글 타번지었습니다. 하기에 그들은 전투 때에는 누구보다 먼저 총창을 비껴들고 돌격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들은 부모를 대신하여 마지막까지 잘 싸웠습니다.

해방된 오늘에 와서 이들이 다 조국의 기둥이 되었어요. 정숙이도 조국이 통일되면 나라의 기둥이 되어야 해요.>

존경하는 김정숙여사께서는 화제를 그녀들이 벌인 투쟁이야기로 이끌어가시었다.

여사께서는 그녀들이 몇시간 전 위대한 장군님께 말씀 올린 투쟁이야기의 내용을 다 알고 계시었다. 그래도 다시 더 자세히 물으시면서 과분한 치하도 해주시고 또 잘못된 점들은 일일이 일깨워주기도 하시는 것이었다.

김춘옥양이 여사께 정숙양이 산에서 싸울 때 보초를 서는 <토벌대>놈의 총을 뒤로 가서 날쌔게 빼앗아 온 사실을 말씀 올리자 매우 기뻐하시었다.

<참 용감하고 대담했어요. 고추는 작아도 맵다고 하더니 정숙이와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지…혁명가는 용감하고 대담한 혁명적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우물쭈물하면서 이것저것 제기만 하면 결정적 순간을 다 놓치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혁명을 못합니다.

정숙동무의 그 대담한 기질이 내 마음에 꼭 들어요. 예로부터 조선여성은 남성들 못지않게 용감하고 슬기로웠습니다. 일상생활에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우리 조선여성들은 사회생활에서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고 부정의를 증오하는 데로부터 그런 용감성과 대담성이 나오게 되지요. 다시 말하면 원수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 혁명에 대한 높은 자각, 무비의 희생정신, 이런 것이 그와 같은 대담성을 낳게 하지요.>

방안에는 혁명에 대한 신념과 열정의 기운이 넘쳐났다.
 

귀중한 경험담도 들려주시고
 

존경하는 김정숙여사께서는 가지고 오신 꾸러미를 푸시고 사과를 꺼내놓으시더니 손수 깎으시어 <자, 이거나 들면서 이야기하자구. 강원도빨치산 처녀동무, 강원도도 사과고장은 아니라던데 어서 들어요.>하시며 정숙양에게 몸소 사과를 쥐어주시었다.

사과를 두손으로 받아드는 이양의 눈가엔 이슬이 가랑가랑 맺혔다.

여사께서는 사과를 또 깎으시며 다정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었다.

<동무들은 사과를 왜 능금이라고 불렀는지 모를 거예요. 그것은 옛날에 임금만 먹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인민들이 다 골고루 먹게 되었어요…

우리는 산에서 싸울 때 사과를 먹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산에서 자랄 때 사과가 어떻게 생겼는가고 물어보면 그저 이렇게 둥굴둥굴하게 생겼다고 손시늉으로 말하군 했어요…

나는 어려서 두만강을 건너 만주 땅으로 갔기 때문에 그때에는 사과를 한 조각도 먹어보지 못했지요. 가겟방에서 가끔 빛을 보이는 사과를 눈으로만 보았어요. 그러다가 빨치산에 들어가서 일제놈들의 수송대를 치고 사과상자를 빼앗아 처음으로 먹어보았는데 얼마나 맛이 있던지…

그런데 이런 것을 일본놈들이 다 빼앗아간다고 견딜 수 없었어요…>

일제에게 배앗긴 조국을 안으시고 몸부림치시던 수난의 그 세월을 생각하시는 듯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창문밖에 시선을 보내시던 여사께서는 그녀들을 바라보시며 <동무들이 산에서 투쟁하자니 식량도 곤란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라고 외우시더니 다시 말씀을 이으시는 것이었다.

<유격투쟁 할 때 제일 곤란한 것이 식량이지요. 굶는 것을 부자집 아이들 밥 먹듯 하니까요…

산에서 싸울 때 밀가루를 섞어서 만든 송기떡, 쑥떡은 제일 고급음식이었지요. 그래서 지금도 드문드문 해먹어보는데 그때처럼 맛이 없어요. 며칠씩 굶다가 그것을 한 개 먹으면 어찌나 맛이 있던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부자놈들이 아무리 진수성찬을 먹는다 해도 음식의 진맛은 모를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많기 굶어본 것도 빨치산이고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것도 빨치산인 것 같애요…>

여사께서는 즐겁게 웃으시고 나시어 말씀을 계속 하시었다. 귀중한 체험을 하나라도 더 말씀하시어 이남혁명가들에게 양식으로 되게 하시려는 여사의 심정은 정녕 뜨거운 것이었다.

<산에서는 산나물, 나무 열매, 풀 뿌리 이런 것이 아주 귀중한 식량입니다.

동무들도 알겠지만 단오 전에 가시 돋힌 풀은 다 먹을 수 있어요. 말리웠다가 겨울에 먹으면 다 식량이 되어요. 산나물을 많이 먹으면 눈도 잘 보이고 병도 없어지고 기운도 납니다.>

존경하는 김정숙여사의 이야기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다 여사께서 직접 체험하신 사실들이어서 더욱 귀중하게 들렸다.

여사께서는 말씀을 재미있게 엮어나가시었다.

<산에서도 노력만 하면 별음식을 다 해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장군님의 식사를 보장해 드리면서 깡통에다 구멍을 내어 옥수수 국수도 눌렀습니다. 그리)고 강가의 모래톱에다가 콩을 묻어서 콩나물도 길러서 장군님께 대접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을 몸 가까이 모시고 조국의 광복과 겨레의 해방을 위하여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시던 장구한 나날 여사께서 몸소 쌓으신 귀중한 경험들은 그대로 그녀들의 심장 속에 깊이 새겨졌다.

여사께서는 천천히 말씀을 이으시었다.

<총을 들고 싸우건, 지하투쟁을 하건, 여성은 여성다워야 해요. 모든 면에서 여성답고 아름답고 알뜰해야 됩니다. 적들과 싸울 때에는 남자들 못지 않게 용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다운 풍모를 잃어버리면 안되지요. 외모도 단정히 하고 바느질, 뜨개질도 잘하고 음식도 잘 만들 줄 알고 시부모, 시동생들도 잘 받들고 세간살이도 알뜰하게 해야 해요.

우리는 맑은 아침의 나라인 조선의 딸인 것만큼 고유한 조선여성의 아름다운 품성을 가져야 합니다.>

참으로 다심한 친어머니의 가르치심이었다.

여사께서는 머리가 길면 산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이 많으니 최근 유행되는 파마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었다. 여사의 사랑은 끝이 없었고 더욱 뜨거웁고 살뜰하였다.
 

혁명을 하자면 배워야 한다시며
 

시간은 퍼그나 흘렀다. 여사께서는 공부하기가 힘들지 않는가고 물으시었다.

이양이 <…공부하는 것은 힘듭니다. 어릴 때 배우지 못한 공부를 이제 배우자고 하니 머리가 아픕니다>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씀 올리었다.

<그래도 해야 해요!…>

다짐을 두시듯 절절히 말씀하신 여사께서는 만년필과 수첩을 내놓으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써보라고 하시었다. 당시 이북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글공부를 시작한 이양은 서툴게 겨우 써놓고 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사께서는 다정하신 눈길로 그녀가 쓴 글을 보시며 <큼직큼직하게 잘 썼어요. 첫술에 배가 부르겠어요…>하고 치하해 주시고 말씀을 이으시었다.

<…산에서 싸울 때 우리 유격대원들은 나무꼬챙이로 땅에다 글쓰는 연습을 했어요.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잘 싸우고 큰일을 하자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사께서는 이번에는 이양에게 신문을 주며 읽어보라고 하신 다음 그녀가 잘 읽지 못하자 매일 당보나 잡지 같은 것을 읽는 것을 습관하여 아무 글이나 마음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여기서는 해방 후 문맹퇴치운동을 벌여 나이 많은 분들까지 다 글을 배웠어요. 물론 처음 배우는 글이고 처음 해보는 공부니까 남들을 따라가기가 힘들겠지만 단단히 결심하고 학습을 잘 해야 합니다.>

이정숙양은 <꼭 명심하겠습니다>하고 똑똑한 목소리로 말씀 올렸다.

여사께서는 그녀가 대견하신 듯 미소를 담으신 눈길로 바라보시며 <우이 정숙이가 총을 잘 쏘아요?>하고 물으시었다.

그 말씀에 그녀는 활기를 띠며 여사께 응식을 부리듯 말씀 드렸다.

<사모님께서 총을 잘 쏘신다는 소문을 우리도 다 들었습니다. 총을 잘 쏘는 방법을 좀 가르쳐주십시오.>

사실 그녀들은 이남에서부터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부인께서 신기에 도달한 명사수라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었었다. 그녀들은 여사께서 적들의 전화선도 먼발치에서 영낙없이 쏴끊어버리)시고 풀 속에서 기는 꿩과 날아가는 새도 단방에 명중시키시며 캄캄한 밤에 미친듯이 짖어대며 몇백발자국 뒤에서 좇아오는 일본놈 <토벌>대의 군견도 소리나는 쪽에 대고 어림짐작으로 쏘셔도 틀림없이 맞히신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얼마나 황홀해 했는지 모른다.

김양도 말씀올렸다.

<축지법을 쓰시며 신출귀몰하시는 장군님의 전설과 함께 사모님의 신기한 사격술도 전설처럼 들었습니다…>

여사께서는 겸손의 미소를 지으시고 잠시 계시다가 천천히 말씀을 시작하시었다.

<요리사는 음식을 잘 만들어야 하고 제봉공은 바느질을 잘 해야 하는 것처럼 빨치산은 총을 잘 쏘아야 합니다. 백두산에서 싸울 때 우리 빨치산들은 누구나 다 총을 잘 쏘았습니다. 사격술도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의식적인 노력을 거쳐야 됩니다.>

여사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시었다가 더욱 열정을 담으시어 말씀하시었다.

<빨치산투쟁을 해본 사람만이 총알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알아요. 빨치산의 총알은 동지들의 피와 목숨의 대가로 얻어진 것만큼 절대로 빗나가는 총알이 없어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꾸준하게 연습하는 것이 명사수로 되는 비결입니다.

조준연습을 많이 해야 해요. 짬만 있으면 앉아서도 서서도 또 길을 가면서도 조준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총이 자기 몸의 한부분처럼 되어버려서 마치 그릇이나 옷가지를 쥘 때 손을 뻗치면 그것들이 손에 잡히는 것처럼 쏘려고 마음먹은 것은 틀림없이 맞히게 됩니다. 조준을 안해도 그쪽으로 총신을 돌려대고 당기면 맞아요.

이렇게 총이 제것으로 될 때까지 익히면 되는 거지요. 꼭 맞히겠다는 정신이 중요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솜씨가 몸에 푹 밸 때까지 꾸준하게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총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솜씨가 서투르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리고 유격대원은 아무 총이나 다 다룰 줄 알아야 해요. 권총으로부터 보총, 중기관총, 수류탄까지 다 다룰 줄 알아야 해요. 나도 그것들을 다 가(R)보았는데 손에 익히기만 하면 틀림없이 들어가 맞아요…>

여사께서는 옛날 한석봉이라는 글공부하는 아들과 떡장수하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실감 있게 해주시면서 불을 켜지 않고 떡장수어머니가 떡을 곱게 써는 것처럼 총을 쏘는 것도 그렇게 숙달되어야 한다고 뜨겁게 가르치시었다.

참으로 여사의 말씀은 명사수의 더없는 보감이었다.

그녀들은 여사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심장 속에 깊이 새겨넣었다.

이정숙양은 여사의 얼굴을 한참 동안 우러러 보다가 <장군님께서는 축지법을 쓰신다는데 사모님께서도 축지법을 쓰십니까?>하고 물었다.

여사께서는 그녀의 물음에 소리 내어 웃으시다가 자세를 바로 하시고 <장군님의 전술이 하도 유명하여 그런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 것이지요. 정말 장군님의 전술은 말 그대로 신출귀몰하였어요.

동무들도 장군님의 전술대로 싸우면 아무리 우세한 적도 타승할 수 있습니다.>하고 힘있게 말씀하시었다.
 

자심한 사랑은 끝이 어딘지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 떠나실 시간이 되었다.

여사께서는 큼직한 종이꾸러미 2개와 돈을 그녀들 앞에 내놓으시었다.

『돌아가서 동무들과 나누어 써요. 바늘이랑, 실이랑 소용될 것 같아서… 그리고 아까 말한대로 파마도 하고 또 극장에도, 영화관에도 가봐요.…』

여사께서는 이어『동무들은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에도 다녀와요. 아마 할아버님과 할머님께서는 남반부에서 싸우다가 온 동무들을 만나면 매우 반가워 하실거예요. 』라고 하시었다.

그러시고도 여사께서는 웃음을 띠시고 『국수를 좋아하는 정숙동무는 유명한 평양냉면도 사먹고…』하시었다.

친어머니인들 이처럼 자심하실 수가 있을까. 격정은 그냥 솟구쳐 올랐다.

『사모님!…』하고 울먹이는 이정숙양의 등을 쓸어만지시는 여사의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 여사께서는 그것을 감추시듯 급히 밖으로 나가시었다.

여사께서 주시고 가신 꾸러미안에는 각각 10여미터의 흰 옥양목과 6타래를 하나로 묶은 흰 실과 검은 실, 크고 작은 각종 바늘쌈지, 12개씩 포장한 크림과 분 등이 들어있었다.

그날 저녁 그녀들은 여사께서 주신 돈으로 제일 잘한다는 국수집에 가서 쟁반국수도 사먹고 연극구경도 하였다.

빨치산의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를 만나뵈온 것은 그녀들에게 있어 최상의 영광이었고 행운이었다.

그날 밤 그녀들은 넘치는 행복을 속삭이며 뜬눈으로 한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었다.

여사께서 운전사편에 그녀들에게 새 옷을 보내주시었다. 방안으로 달려들어와 보자기를 푼 그녀들은 아이들처럼 환성을 질렀다. 실안개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담청색 모직바탕에 줄무늬가 간 춘추양복 두벌에 그것을 받쳐입을 흰 블라우스와 속치마 그리고 살색이 도는 긴 명주양말이 각각 쌍을 지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은 여사의 끝없는 사랑에 목메어 그저 울기만 하였다.

여사 자신께서는 그처럼 수수한 광목옷을 입으시고 군인용 면양말을 신고 지내시면서도 그녀들에게는 그토록 난생 처음보는 모직양복을 해주시는 여사의 고귀한 사랑에 그녀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참이나 그냥 서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 보내주신 모직양복을 입고 파마까지 하고 길거리에 나선 그녀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 같았다.

그녀들은 그길로 여사께서 전날에 하신 말씀대로 우리 겨레의 마음의 고향인 만경대를 찾아가 김보현할아버님과 이보익할머님께 큰 절을 올리고 살뜰한 사랑을 받고 돌아왔다.

이정숙양은 여사의 말씀을 명심하고 글쓰기와 신문읽기를 꾸준히 하여 짧은 시일에 문맹을 완전히 퇴치하고 신문독보책임자로 되었으며 학습과 생활의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었다.

위대한 사랑속에 이남변혁운동가들은 튼튼히 자라났다.
 

통일을 위해 함께 싸우자 하시며
 

행복의 요람 속에서 해가 바뀌어 주체38(1949)년 봄이 되었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3월7일 국제부인의 날 39돌 기념행사에 참가하도록 이정숙, 김춘옥양과 서울 영등포 등지에서 지하투쟁을 하다가 이북으로 들어간 신삼칙씨를 불러주시었다.

이양과 김양은 여사께서 지어주신 그 사랑의 옷을 입고 갔다.

그녀들이 평양에 있는 중앙여맹청사 2층으로 올라가 봄볕이 따사로이 비껴드는 밝은 방에 들어가니 뜻밖에도 그곳에 자나깨나 그리워마지 않은 김정속여사께서 여맹간부들과 함께 계시었다.

여사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활짝 피워올리시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시었다. 그리고 살뜰한 정이 넘쳐흐르는 음성으로 『내 동생들이 왔구만! …』하시며 반달음으로 다가오시어 이양과 김양을 한품에 안아주시었다.

『보고싶었어! 더 건강해졌군요!』

여사께서는 친동생, 친딸을 애무하시듯 그녀들을 붙들고 놓지를 못하시었다.

잠시 후 곁에 있던 신삼칙씨가 여사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여사께서는 겸손하신 몸가짐으로 인사를 받으시고 그녀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초면입니다. 건강합니까?… 이렇게 남조선에서 싸우다가 온 동무들을 만나는 게 제일 반갑습니다.』하고 말씀하시었다.

그녀들을 이끄시어 자리에 앉히신 여사께서는 김춘옥양의 두손을 다시 잡으시고 자세히 들여다 보시었다.

『언독을 뺐구만!…』기쁨어린 말씀이시었다. 그녀는 지난 겨울에 여사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해서 동상을 치료했던 것이다.

여사께서는 그녀의 손등과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만져보시고 꼭꼭 눌러보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었다.

『…깨끗이 쏙 다 빠졌어! 이렇게 빼느라고 고생했겠는데 그래도 됐어!…이젠 주의해서 다신 얼구지 말고…다시 얼구면 큰일이야!…』

자애로움이 마디마디에 진하게 스며있는 말씀이시었다.

여사께서는 김양의 손을 놓으시고 이양쪽으로 돌아앉으시며 눈가엔 여전히 웃음을 띠시었으나 짐짓 엄한 음성으로 물으시었다.

『공부를 못하겠다더니 이젠 좀 어때요. 지금도 힘들어요?…』

이양이 대답 대신 수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김양이 대신 말씀올렸다.

『이젠 공부를 잘 합니다. 학습열의가 대단합니다.』

『그래. 용쿠만!』이렇게 기뻐하시던 여사의 안색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가만, 앞니가 왜 그렇게 됐어요?』

여사께서 한쪽끝이 입쌀알만큼 떨어져 나간 이양의 앞니를 보신 것이다. 자세히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잘 알리지 않아 늘 함께 지내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자그마한 것을 여사께서는 첫눈에 알아보셨던 것이다.

『…넘어지면서 돌에 닿아 그렇게 됐습니다.』이양이 앞니를 손으로 가리우며 부끄러운 듯 낮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여사께서는 그녀의 손을 꼭 쥐시며 『그만하길 다행이구만. 벌레가 먹기 전에 인차 때야겠어.』하시었다.

그때 충청남도 서산군에서 유격투쟁을 하다가 48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 때 이남에서 한 선거날인을 가지고 이북으로 간 여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두 귀에 입은 동상을 치료하느라고 볼에까지 가제를 대고 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녀를 따뜻이 맞으시고 얼마나 고생했느냐 위로해 주시면서 가슴이 아프신 듯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경험들이 없으니 손발도 얼구고 귀도 얼구고… 미제원수놈들과 그 앞잡이놈들이 아니라면 왜 이런 고생들을 하겠어요.…』

이어 여사께서는 확신에 넘치신 어조로 말씀하시었다.

『…우리도 그런 고생, 그런 투쟁을 거쳐서 나라를 찾았어요. 고생끝에 낙이 있다고 아무리 어렵고 힘겨워도 조국통일을 위해 우리 다 같이 힘을 합쳐 싸웁시다.

갈라진 우리 조국과 민족을 우리 힘으로 통일하고 한나라 한강토에서 3천만 우리 동포가 모두다 자유와 행복을 누릴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여사께서 하시는 말씀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녀들의 가슴속에 신념의 불꽃으로 깊이깊이 새겨졌다.

그날 보고대회는 저녁 6시경부터 김정숙여사를 모시고 진행되었다. 모임이 끝난 뒤 그녀들은 다시 휴게실로 갔다.

잠시 후 그곳으로 나오신 여사께서는 정겨운 눈길로 그녀들을 마주보시다가 말씀하시었다.

『…그런데 그냥 보내기가 서운해서…기념으로 받으세요. 마음뿐인데 하나씩 차고다녀요.…』

여사께서는 그녀들에게 여성용 팔뚝시계를 선물로 주시었다. 거기에는 진정 이남변혁운동가들에 대한 여사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여사께서는 그녀들과 헤어지시면서 내일 오후에 차를 보낼테니 어디 가지들 말고 있으라고 이르시었다. 그녀들이 의아해 하자 여사께서는 의미심장하게 웃으시며 『미리 알면 재미없어요. 그럼 내일 다시 만납시다.』하시고 떠나시었다.

그날 밤 그녀들은 난생 처음 차보는 팔뚝시계, 김정숙여사의 그처럼 따뜻하고 살뜰한 사랑과 크나큰 믿음이 깃든 그 귀중한 시계를 꼭 그러안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힘있게 울리며 심장에 챙챙 맞혀오는 초침소리를 들으며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여사의 사랑과 높으신 뜻을 받들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한몸 깡그리 바치리라 굳게 굳게 마음다졌다.
 

명사격으로 과녁에 새겨주신 「정숙」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위대한 사랑은 사격장에서도 이어졌다.

다음날 하오 3시, 여사께서 보내주신 승용차를 타고 이양과 김양을 비롯한 그녀들이 간 곳은 모란봉 사격장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항일유격대의 군복차림을 하시고 허리에 권총과 함께 대여섯개의 탄창을 차고계셨다.

군복을 입으신 여사의 모습에는 백만대군을 전율케 하시던 백두산 여장군의 기상이 그대로 넘쳐나고 있었다.

『자 이제는 알만해요? 왜 오라고 했는지…남조선의 빨치산 처녀들이 얼마나 총을 잘 쏘는지 봅시다.』

여사께서는 사격장 지휘관에게 총들을 가져오라고 이르시고는 『빨치산은 무슨 총이나 다 다룰 줄 알아야 해요. 적들로부터 빼앗은 무기는 무엇이나 척척 다룰 수 있어야 해요.』하시었다.

여사의 말씀에 따라 실탄사격준비가 갖추어졌다. 소총의 사격거리는 2백미터, 권총의 사격거리는 30미터였다.

소총은 일본제인 「38식」, 「99식」, 미국제인 「카빈」, 「엠-1」이었고 권총은 독일제인 「모제르」와 미국제인 「콜트」등이 준비되었고 과녁도 여러 개가 있었다.

먼저 소총사격부터 했는데 이정숙, 김춘옥, 신삼칙의 순서로 쐈다.

여사께서는 그녀들의 사격 자세와 조준방법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었다.

소총사격에서는 세 명이 다 「우」의 좋은 성적을 맞았다. 명중신호가 오를 때마다 여사께서는 『훌륭해요! 아주 잘 쏴요! 이만하면 미국놈을 까부수겠어요.』라고 하시며 몹시 기뻐하시었다.

이어 권총사격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권총사격은 잘 되지 않았다.

『권총을 처음 잡아보니까 안맞는 게 당연하지요. 무슨 총이나 손에 익지 않으면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심을 가지고 정확히 조준하면 틀림없이 들어가 맞아요.』

여사의 가르치심은 뜨거웠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그럼 우리 정숙에게 선물을 하나 만들어 줄까.…』하시었다. 모두는 호기심이 동했다.

여사께서는 침착하시면서도 익숙하고 날랜 솜씨로 소형「모제르」권총을 꺼내드시고 거기에 탄창을 끼우시었다.

그녀들은 숨을 죽이고 여사를 우러렀다.

여사께서는 언제나 짓고 계시던 자애롭고 부드러우신 안색은 씻은듯이 거두시고 영채도시는 눈을 조금 쪼푸리시듯 하시면서 왼손으로 허리를 짚으시고 권총을 쥐신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리시었다.

여사께서는 언제 팔을 멈추셨는지 벌써 「땅!」하는 첫 총성이 울리고 연이어 「땅땅땅…」하는 연발사격소리가 뒤따랐다. 첫 탄창의 탄환이 다 나가자 재빨리 두번째 탄창을 갈아끼우시고 이번에는 오른팔을 머리 높이로 들어올리셨다가 총구를 내리시면서 역시 연발로 사격하시었다. 세번째 탄창부터는 과녁쪽으로 총구를 바로 내디시며 조준도 하시는 것 같지 않게 쏘시었다. 이렇게 여사께서는 총신을 식혀가시면서 대여섯 탄창을 쏘시었다.

총성이 멎고 사위에 정적이 깃들자 여사께서는 그녀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고 밝게 웃으시며 『제대로 되었겠는지 모르겠는데 맞은 자리에 나무못을 끼워서 가져와 봐요.』하시었다.

이양이 과녁으로 달려나가 한참 총탄자리에 나무못을 꽂아나가다가 『어마나!』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윽고 『세상에-! 어쩌면!…』하고 연속 감탄을 터뜨리며 이양이 과녁을 안고 달려왔다. 과녁을 본 모두의 경탄과 기쁨은 절정에 달했다. 과녁 한가운데에 「정숙」이라는 두 글자가 탄흔으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가로 세로 빗겨간 획은 더 말할 것 없고 「정」자의 「ㅇ」받침까지 조금도 이지러진데가 없이 동그랬다.

『제대로 됐어요?』

여사께서 부드럽게 물으셨을 때에야 그녀들은 과녁을 그분께 보이며 한마디씩 했다.

『제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말로만 전해 듣는 사람은 정말 곧이 들으려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귀신도 울고 가겠습니다. 정말…』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녀들의 찬사를 받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훈련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공부를 더 잘하고 사격도 잘 해서 조국통일을 하는 싸움에 한몸 바치자요.』

김정숙여사께서 명사격으로 과녁에 새겨주신 두글자 「정숙」, 그 두 글자에 얼마나 깊은 뜻이 어려있는 것인가.

이남변혁운동가들에 대한 여사의 영원한 사랑과 크나큰 기대와 뜨거운 믿음이 탄흔으로 인각된 것이다.
 

장군님의 심려를 그대로 안으시고
 

사격이 끝난 다음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녀들을 봄향기 짙은 산기슭 잔디밭에 둘러앉히시었다. 여사께서 손수 만드신 음식이 차려졌다. 그날 제일 인상깊은 것은 팥밥이었다. 구운 고기와 물고기에 철이른 오이김치며 풋고추까지 곁들어 있어 음식은 간소했으나 별미였다.

여사께서는 그녀들 앞으로 음식 그릇들을 밀어놓으시며 많이 들라고 몇번이고 권하시었다.

『나는 동무들과 함께 있는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라고 하시며 그녀들을 다정하게 둘러보시던 여사께서는 정색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조국통일을 위해서 잠도, 휴식도 미루고 계시는 장군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기 위해 여성의 몸으로 총을 잡고 나선 동무들은 참으로 귀중한 동무들입니다.

동무들은 아마 장군님께서 조국통일문제 때문에 얼마나 심려하시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박달나무마저 얼어터지는 장백의 밀림 속에서 휴식도,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고 15성상 싸워오신 장군님께서는 해방된 오늘엔 조국통일문제 때문에 깊이 심려하시며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며 매일밤 밝히고 계십니다.

마음같아서는 나도 동무들과 같이 총을 잡고 조국통일을 위한 성전에 떨쳐나서서 장군님의 심려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 동무들이 내 마음도 합쳐서 조국통일을 위한 장군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기 위해 앞장서 싸워주세요.』

여사께서는 말씀을 끊으시고 믿음에 찬 눈길로 그녀들을 바라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었다.

『동무들은 산에서 총을 잡고 싸우다가도 필요할 때에는 군중 속에 들어가서 지하공작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공작방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피어린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자신께서 직접 체험하신 귀중한 경험들을 들려주시는 여사의 말씀은 진정 백과전서적이었다.

여사의 말씀은 계속 되었다.

『…그리고 항상 경각성을 높이고 밀정을 조심해야 합니다. 놈들은 교활하고 음흉합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경각성을 높이고 여성군중 속에 푹 파묻혀 색깔을 내지 말고 앞뒤가 딱딱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놈들이 끈을 잡지 못합니다.

이와 함께 적들과 불의에 맞다들어 피치못할 정황에 부닥쳤을 때에는 당황하지 말고 침착해야 하며 제정신을 가지고 주도권을 쥐고 선수를 써야 합니다.』

여사께서는 눈빛을 빛내이시며 말씀을 계속 하시었다.

『혁명은 간고하고 장기적입니다. 그 과정에 동요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는데 그들을 잘 이끌어야 해요.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말고 핏값을 하겠다는 각오를 굳건히 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였습니다. 불행하게도 한 여대원이 적들에게 체포되었는데 일제 원수놈들이 그의 두눈을 빼내고 젖가슴을 도려냈어도 그는 한마디도 불지 않고 혁명조직을 지키었으며 혁명적 지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여대원은 우리 빨치산의 모범이었으며 자랑이었습니다.

동무들도 장군님의 전사답게 그렇게 싸워야 해요.

사람이 한번 죽지 두번 죽겠어요? 혁명가는 하루를 살고 한 순간을 숨쉬어도 참되게 살아야 합니다.

나는 동무들이 장군님의 뜻을 받들고 잘 싸우리라고 믿어요. 그래야 앞으로 다시 만나도 면목이 서고 기쁨이 있지요.』

그녀들은 여사를 우러러 무한히 격동된 마음을 진정 못하고 있었다. 이정숙양이 상기된 얼굴로 벌떡 일어서서 바른 자세를 하고 여사 앞에 굳게 결의다지었다.

『사모님 말씀 명심하고 잘 싸우겠습니다.』

여사께서는 『그래, 우리 정숙이가 그렇게 하겠단 말이지요. 그럼 무엇을 가지고 약속한다.?…』하시며 그녀를 대견스레 바라보시었다.

이양이 잠시 생각하다가 씩씩하게 말하였다.

『적 장교놈의 권총을 빼앗아 가지고 와서 사모님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여사께서는 그녀의 손을 꼭 쥐어주시며 기뻐하시었다.

『그럼 꼭 그렇게 약속해요. 정숙이의 선물을 기다리겠어요.』

김정숙여사를 모시고 사격장에서 보낸 반나절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이남의 빨치산 여대원들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뜻깊은 한때였다.
 

영원한 충성의 한길을 가자시며
 

원래 강원도 강릉에서 화전민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모진 가난 속에서 고생스럽게 자란 이정숙양은 반미구국항전에서 부모와 오빠를 잃고 자신이 탈취한 무기를 들고 어린 나이에 유격투쟁에 참가한 후 그 언제 한번 배불리 먹어보지 못했으며 살뜰한 정도 모르고 지내왔다. 그 어려운 싸움의 길에서 열병에 걸려 무척 고생도 했다.

그런만큼 김정숙여사께서는 그에게로 쏠리는 정이 더 하시었다. 여사께서는 그녀를 댁으로 데리고 가시어 『내동생』,『우리 정숙이』하고 다정히 부르시며 건강하고 아름답게 비다듬어 주시었다.

여사께서는 다음날로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시어 상한 치아를 든든하게 때고 백금으로 곱게 해넣도록 해주셨다. 그리고 얼마나 치마저고리가 입고 싶겠느냐고 하시면서 자주색 끝동을 드린 파란색 비단저고리에 남색뉴똥치마며 내의와 속치마를 다 새로 해입히셨다.

삼베치마 하나 변변히 입어보지 못한 이양은 그 때 새 옷을 꼭 그러안고 여사의 사랑이 너무도 고마워 울고 또 울었다.

어느날 그녀를 시장으로 데리고 가신 여사께서는 무엇이 먹고 싶은가고 하시면서 군고구마를 한보자기 사시어 『동생, 어서 실컷 먹으라구』하시었다. 여사께서는 찰떡도 쳐주시고 빈대떡도 부쳐주시었다. 그분께서 해주시는 음식들은 무엇이나 맛이 별스레 좋았다.

그녀는 여사의 이런 살뜰한 보살피심속에 날이 다르게 얼굴이 피어났다. 얼굴에 다문다문 박혔던 주근깨는 씻은듯 말끔히 없어지고 거밋거밋하던 얼굴은 우유빛으로 새뽀얗게 피었는데 발그레 홍조가 어려 청춘과 건강이 넘쳐흘렀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이양의 학습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친히 지도해 주시었다. 여사께서는 매일 아침 위대하신 장군님께서 보신 신문을 그녀에게 가져다 주시면서 『당보는 당의 목소리예요. 매일 세끼 식사하는 것처럼 당보를 보는데 습관이 되어야 해요.』라고 하시며 그날 신문은 그날로 꼭꼭 보도록 하시었고 신문에 실린 주요 내용들을 차근차근 해설해 주기도 하시었다.

여사께서 하시는 일을 좀 거들어드리려고 하면 어느새 일감을 빼앗으며 말씀하시곤 하시었다.

『그건 내가 할테니 정숙이는 공부해요.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임무라고 장군님께서는 늘 가르치셨어요. 꼭 명심해서 공부를 해야 해요.』그러시고는 등을 밀어 공부를 하라고 방으로 들여보내곤 하시었다.

여사께서는 조용한 저녁시간이면 「자유가」며 「여성해방가」,「사향가」등 혁명가요들을 조용조용히 부르시며 배워주시었고 그 내용을 설명해 주기도 하시었다.

여사께서는 노래를 많이도 알고 계셨고 또 잘 부르시었다.

여사께서 언제 주무시고 언제 일어나시는지 그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장군님을 모시는 여사의 정성에는 늦은 밤, 이른 새벽이 따로 없었고 또 눈에 뜨이지도 않았다. 장군님께 언제나 더운 진지를 올리시기에 온갖 지성을 다하셨고 댁의 안팎은 항상 정갈하였다.

그녀가 오늘은 내가 마당을 꼭 쓸리라 결심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면 벌써 여사께서 언제 쓰셨는지 마당은 깨끗했고 물까지 뿌려져 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받들어 모시는 여사의 정성과 일거수일투족은 그녀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장군님에 대한 충성의 불씨를 심장속에 깊이 심어주었다.

이남땅의 한 이름없는 딸에게는 그토록 아끼는 것이 없이 비단옷을 해입히시고 색다른 음식을 차려먹이시면서도 여사 자신의 생활은 너무도 검박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댁에서 지내실 때에는 기운 양말을 신으시었고 귀중하신 자제분께도 기운 양말을 신기시고 기운 바지를 입히시었다. 진지도 찬밥을 드시는 때가 많으셨다.

이양이나 댁을 찾는 손님들이 그에 대해 섭섭하게 말씀올리면 『일없어요. 나나 아이들이야 기운 양말을 신으면 뭐래요. 조국이 통일되지 못하고 인민들이 아직 다 잘 살지 못하는데…』하곤 하시었다.

어느덧 위대한 사랑의 보름이 지났다. 이양은 여사와 헤어져야 하였다.

떠나는 날 아침, 여사께서는 이양의 숱많은 머리에 기름칠을 해서 손수 빗겨주시면서 말씀하시었다.

『머리가 참 소담해요. … 이렇게 차리니 얼마나 고와요. 세상 꽃들이 다 아름다운 정숙이가 부러워 눈물을 흘릴거야.…앞으로 조국을 통일하고 시집갈 때에는 내가 정숙이의 잔치를 차려주겠어요. 그런데 결혼은 꼭 혁명하는 사람끼리 동지결혼을 해야 돼요. 정숙이에게는 그게 좋아요.

정숙이는 부모와 오빠까지 다 피살되었으니 누가 잔칫상을 차려주겠어요.

그러나 걱정할 건 없어요. 장군님이 계시고 내가 있지 않아요. 섭섭지 않게 잘 해줄테니.…』

그러시고는 그녀를 꼭 그러안아 주셨다.

여사께서는 떨어지기 서운해서 울먹해 있는 이양의 손을 꼭 쥐시고 『너무 섭섭해 하지 말아요. 혁명하자면 이렇게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는 또 만나곤 하는 거예요. 명심할 것은 나나 정숙이나 우리는 다 장군님의 품속에서만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 두 정숙이는 변함없는 영원한 충성의 한길을 걸어가자요.』라고 하시었다. 여사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배어있었다.

이정숙양은 눈물속에 여사를 하직하였다.
 

위대한 사랑은 충성의 꽃으로  (그 뒤의 이야기)
 

위대한 사랑은 무한한 충성을 낳는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은정깊은 사랑을 받은 그녀들은 반미구국성전에서 용맹하였고 그 길에서 충성의 꽃으로 피어났다.

1949년 봄 신삼칙씨는 서울로 나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변절자의 밀고로 적들에게 잡히는 몸이 되었다.

적들의 고문은 혹독하였다. 그러나 신씨는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죽음의 고문 앞에서도 조직을 지켜 견결하였다.

적들은 그녀를 발가벗기고 쇠줄로 결박한 다음 서울거리를 끌고 다니며 「빨갱이년」을 구경하라고 했다.

어느날에는 그녀를 트럭에 싣고 서울공설운동장에 가서 강제로 끌려나온 사람들 앞에서 공화국을 반대하는 반공연설을 하라고, 그러면 살려준다고 했다.

그러나 적들은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만을 따르는 그녀의 깨끗한 마음과 견결한 구국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녀의 강의한 신념과 혁명절개 앞에 전율하였다.

신삼칙씨는 교형리들이 트럭에 밧줄을 매고 사지를 찢어죽이는 마지막 순간에도 『김일성장군님 만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소리높이 외쳐 29살의 길지 않은 생을 빛나게 장식하였다.

이정숙, 김춘옥양은 위대하신 장군님과 김정숙여사의 믿음과 사랑을 안고 1949년 4월 이북을 떠나 태백산 준령을 타고 이남으로 나왔다.

당시 이남땅에서는 미제와 그 주구배들을 반대하는 전민중적 항쟁의 불길이 세차게 일어나고 있었다. 도처에서 무장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에 당황한 원수들은 악명높은 국군「백골부대」를 선두로 군경을 총동원하여 「대토벌」전을 악착같이 벌이고 있었다. 매일 같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강원도 삼척군 청옥산 유격근거지에 도착한 그녀들은 가열한 전투의 불길 속에 뛰어들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녀들은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과 김정숙여사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깊이 간직하고 싸웠다.

이정숙양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세수를 깨끗이 하고 복장을 정돈하고는 북녘하늘을 향해 『장군님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사모님 옥체건강하십니까?』하고 아침인사를 드렸으며 밤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장군님, 사모님 편히 주무십시오』하고 밤인사를 드리는 것을 매일 같이 어느 하루 빠짐이 없는 일과로 집행하였다.

그녀는 학습장소나 전투장이나 가림이 없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대하신 김일성장군님의 항일유격대의 전투경험담과 김정숙여사께서 해주신 귀중한 말씀을 들려주고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혁명가요들을 배워주었다. 그리고 어버이 수령님과 여사의 고매한 덕망에 대해 눈물겹게 이야기하면서 여사의 숭고한 모범을 따르도록 대원들을 고무하였다.

산으로 기어오르는 「백골부대」놈들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어느날, 이정숙양은 연대장놈의 면상에 명중탄을 안기고 놈의 권총을 노획하였다. 그녀는 그 권총을 김정숙여사께 올리겠다고 정히 간수하고 틈만 있으면 닦고 또 닦으며 여사를 몹시도 그리워했다.

그해 가을 오십천 건너마을에 둥지를 틀고 있는 「백골부대」에 대한 야간습격전투를 성과적으로 끝마치고 돌아온 날에도 이정숙양은 나직한 목소리로 간절히 말했다.

『…뵙고 싶어요! 사모님께서 그 때 들려주시던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여 못견디게 뵙고 싶어요!…』

『그래!…』

김양도 그녀의 어깨를 꼭 껴안고 눈물이 그렁하여 속삭이듯 말하였다.

『사모님께서도 우리들을 잊지 않으시고 생각해주실 거야. … 정숙이가 장군님과 사모님의 말씀 받들어 용감하게 싸우고 있는 소식을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리움 속에 가을도 다 가고 그해 겨울도 무사히 넘겼다.

유격대는 많은 전투들에서 큰 전과를 올렸고 여사께서 간곡하게 가르쳐 주신대로 손발을 잘 간수하여 한사람의 동상자도 내지 않았다.

1950년 3월8일 그녀들은 여사를 한자리에 모셨던 그날을 뜨겁게 생각하며 국제부인의 날 40주년 기념모임을 싸우는 태백산 중턱에서 보초를 세워놓고 가졌다.

그날은 온종일 전투가 치열하였다.

다음날인 3월9일, 날이 밝으면서부터 전투는 치열하게 벌어졌다. 온종일 굶으며 싸웠다. 식량도 떨어지고 탄환도 떨어졌다. 형세는 매우 급박했다.

하오 늦어서부터 부대는 유리한 지점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져가던 그 때 부대가 퇴각하는 쪽과는 반대방향에서 갑자기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들려왔다. 이정숙양의 노래소리였다.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든 김양은 급히 그쪽으로 건너갔다.

아니나 다를까. 대퇴부에 관통상을 입은 이정숙양은 몸을 일으키고 노래를 부르며 적들을 자기쪽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적들은 그녀에게로 점점 조여들고 있었다. 거리는 30미터나 될까 말까 했다.

김양을 발견한 이양은 『언니, 이 권총을 사모님께 꼭 전해줘요! 그리고 저의 마지막 인사도…』하며 품속에 간수했던 권총을 꺼내 볼에 꼭 대었다가 김양의 품에 안겨주는 것이었다. 적들을 쏘아보던 이양은 자신의 소총을 김양에게 주며 『통일되는 날 이 정숙이의 총을 꼭 메고 열병식에 나가줘요.…』하고는 말릴새도 없이 수류탄 두개만을 억세게 틀어쥐고 저쪽 반대편 능선으로 갔다. 그녀가 부르는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산너머에서 여전히 힘차게 들려왔다. 그녀가 간 쪽으로 적들이 우르르 모여 갔는데 잠시후 『김일성장군님 만세!』소리와 함께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그 때 이정숙양의 나이는 22살이었다.

50년 6월25일 전쟁이 터진 뒤, 서울이 해방된 다음에야 이정숙양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김정숙여사, 온 남녘민중이 그처럼 경모해마지 않던 여사께서 서거하신 것을 알고 김양은 목놓아 울었다. 인민군대의 전략적 후퇴 때 다시 북으로 들어간 김춘옥양은 평양을 통과하는 기회에 여사께서 누워계시는 모란봉으로 뛰어올라 갔다.

여사의 영전에 그대로 쓰러진 그녀는 잔디를 쥐어뜯으며 울었다.

『사모님! 춘옥입니다. … 춘옥이가 왔습니다! … 사모님!…』

한참 뒤 멀기쳐오는 오열을 가까스로 참고 품속에 고이 간수했던 이정숙양의 선물권총을 꺼내놓았다.

『사모님, 정숙이가 올려달라던 권총입니다. 그런데 사모님께서도 가시고 정숙이도 못오고 이 권총만 왔습니다.…』

그대로 오열을 터치며 태를 쳤다.

김춘옥양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 여사의 영전에 맹세했다.

『사모님!

사모님의 생전의 뜻대로 어버이 장군님을 높이 받들어 모시고 영원히 충성 다하겠습니다.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실현하겠습니다! …』

그녀의 그날의 맹세는 이남변혁운동가들 모두의 서약 그대로였다.

그후 주체55(1966)년 3월초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김춘옥씨를 만나주시었다. 그분께서는 김춘옥씨 등이 이남에서 총을 들고 싸운 이야기, 이정숙양의 장렬한 최후에 대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들어주시면서 「진짜배기」영웅들이고 「애국자」들이라고 높이 평가해 주시었다.

그러시고는 심중한 안색을 지으시고 태백산에서 많은 애국자들이 전사하였다고 하시면서 조국이 통일되면 거기에 그들의 비석을 크게 세워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위대하신 김정일영수께서는 그녀들의 충성심과 애국적 공적을 높이 평가하시어 김춘옥씨에게 공화국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그리고 이정숙씨에게는 공화국 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었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는 진정 우리 이남변혁운동가들의 위대한 스승이시고 자애로운 어머님이시다.

오늘도 김정숙여사께서 이남의 변혁운동가들에게 안겨주신 고귀한 뜻과 크나큰 사랑은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김정일영수에 대한 불타는 충성과 반미구국항전, 조국통일투쟁의 일념 속에 영원히 살아빛나고 있다.
 

<기성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