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나라
 


「미래음악회」 회원 김유정


 


평양의 학생소년예술단과 교예단이 서울에 내려와 대절찬 속에 공연을 펼쳤다. 환상의 세계에서도 보기 어려울만큼 황홀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북음악을 다년간 연구해온 본인에게 있어 그들의 공연은 더더욱 감명깊었었다. 이미전부터 깊이 느껴온 바이지만 공연무대에서 울린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은 이북은 참말로 「노래의 나라」라는 것이다.

세계의 어지러운 흐름에도 오염을 모르고 흔들리지 않는 이북이다. 이런 이북을 떠받침해 주는 것이 바로 노래이다.

평양의 어린 사절들과 선남선녀들의 희한한 공연에 곁들어 「노래의 나라」 이북에 대한 경하의 정을 여기에 적는다.

1

이북에서는 사람들의 하루가 노래로 시작되고 노래로 저문다. 나는 이것을 평양의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그리고 이북을 다녀온 이들의 말을 통해 알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북의 아침거리는 학생취주악대가 장식한다. 이북의 어디서건 아침출근길에 나서면 먼저 맞아 주는 것이 취주악대의 낭랑한 주악이다. 서양쟈즈의 호른이나 색스폰의 야생적인 소리와 근본 다른 금관악의 명랑하고 또랑한 아름다운 소리다. 놀라운 것은 중학 1~2년생의 10대 아동들로 악대를 이룬 것이다.

악대의 지휘자중에는 어린 소녀도 있다. 어딘가 발랄한 기질과 천재성으로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이번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꼬마배우를 방불케 하는 소녀, 그 소녀의 은백색 지휘봉끝에서 씩씩하고 흥겨운 주악음이 쏟아져 나온다. 그 이듬이 일터로 가는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약동하는 희열과 열정을 준다.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기도 하면서 꼬마악단에 인사를 보낸다. 거기에 화답하듯 악대는 더 힘차게 나팔을 분다. 솟아오르는 아침해와 더불어 이북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노래를 안고 일터로 간 사람들이기에 노래는 해종일 그들의 벗으로 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래 속의 일터는 어디에서나 보게 된다.

평양텔레비전을 통해 본 평양-남포고속도로건설장은 말그대로 불꽃이 튕기는 맹렬한 전장이다.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 시기에 거의나 맨주먹으로 달려 온 청년건설자들은 청춘의 끓는 피와 심장으로 공사를 진척시켜 나가고 있다. 쇠망치와 정대, 곡괭이와 삽만을 가지고 암반앞에 선 그들에게 힘을 주고 용맹을 준 것은 다름아닌 노래였다 한다. 쇠망치를 휘둘러대는 청년도, 들것으로 흙과 돌을 나르는 처녀들도 하나같이 힘찬 노래선율에 자기들의 일손을 맞춘다. 휴식참엔 또 노래춤판으로 들썩인다. 이북 텔레비전의 화면에 비쳐진 건설장의 구호 「희망찬 우리 앞길 노래로 열자!」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건설장만이 아니다. 참삶이 창조되는 곳곳에서 희열과 낭만의 노래가 울리고 있다.

저녁은 저녁대로 노래 속에 흘러 간다.

지난해 방북했던 D일간지 기자의 말이다.

『어느 기계공장에 다닌다는 한 노동자의 가정을 찾았어요. 뜻밖에도 가족오락회중이었습니다. 저녁상을 물린 방안에서 열두살의 누나가 손풍금을 타고 열살난 동생이 귀엽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박자를 맞추고 할머니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전문 연예인도 못미칠 기량에 탄복했습니다. 어느 예술학원에 다니느냐 물었더니 평양학생소년궁전 음악소조에 다닌다는 겁니다.

참으로 노래 속에 웃음이 피고 노래 속에 행복이 흐르는 가정이었습니다. 그 한가정만이 아니었어요. 불밝은 아파트 창문마다로 노래소리, 웃음소리 넘쳐 흐르는 이북의 저녁풍경이었습니다.』

기자가 말하던 소년이 혹시 이번 소년예술단 공연에서 제일 많이 박수갈채를 받았던 바로 그 재간동이가 아니었던지.

이북에서는 「전국근로자들의 노래경연」이 텔레비전방송의 인기프로로 꼽히고 있다. 노래공연에는 노동자, 농민, 공무원, 대학생을 비롯해 각계각층이 참가한다. 그중에서도 이채를 띠는 것은 가정주부들의 노래경연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는 그들의 정신세계의 축도다.

예로부터 주부는 집안의 해님이라 했다. 어느 집이나 주부의 얼굴에 그늘이 비끼면 침울해지고 웃음이 비끼면 밝아진다. 주부들의 얼굴에 한 가정, 한 나라의 기쁨과 슬픔의 온갖 사연이 비껴있다고도 할 수 있다. 여러해째 계속되어 온 고난찬 생활 속에서 힘겨웠을 그들, 비록 얼굴들은 볕에 탔어도 환하게 웃으며 열정에 넘쳐 노래를 부른다. 자강도에서 온 여인도, 함경북도에서 온 새각시도, 환갑넘은 황해남도의 할머니도 고마운 어버이의 품을 노래하고 생활을 노래하며 미래를 노래한다. 강요해서는 그렇게 밝을 수가 없는 얼굴들이고 눈빛들이다.

참으로 별세상이다. 나는 음악의 나라라고 하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도 가보았지만 이런 광경은 볼 수 없었다.

이북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우린 어딜 가나 노래랍니다. 남녀노소 구별없이 노랠 부르죠. 길을 가도 노래, 건설장에서도 노래, 노동자도, 대학생도, 총쥔 군인도 노래를 떠나서는 그 무엇도 의미를 갖지 못하죠. 아마도 세상에 이런 나라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 이북은 전민이 노래 속에 사는 노래의 나라다.

2

노래를 들으면 인간의 내면을 알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되며 민중의 마음도 읽을 수 있다.

이북의 노래는 밝고 아름답고 씩씩하다. 그것은 민중의 생활에 깊이가 있고 밝음과 아름다움이 있으며 씩씩함이 있는 까닭이리라.

생이란 무엇인가 누가 물으면

우리는 대답하리라

마지막 순간에 뒤돌아볼 때

웃으며 추억할 지난날이라고

세월이 간대도 잊을 수 없는

조국에 바쳐진 순간이라고

「생이란 무엇인가」, 이 이북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충격을 금치 못한다. 세계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생과 조국, 그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신성하고 숭엄한 관계에 있다. 피를 주고 살을 주고 하나의 떳떳한 사회인으로 살 수 있는 자주적인 생명을 준 사회주의조국을 위한 생은 영원한 것이다. 조국은 그 품에 바쳐진 참다운 생을 영원히 빛내준다.

생에 대한 철학은 심오하다. 그 심오함이 하나의 노래소절에 비껴 있다. 노래는 가슴을 울려준다. 끝없는 여운을 남겨준다. 그런 노래는 세계 어느 나라 가곡집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북의 노래들엔 인생의 목표와 꿈이 있다. 이상과 소망과 염원이 있다. 거기엔 조국을 사랑하고 노동당을 신뢰하고 자기의 영수를 끝없이 흠모하는 숭고한 정신세계가 그려져 있다.

그 무한한 정신세계는 아동들의 노래에서도 엿볼 수 있다. 폭풍같은 반향을 일으킨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꼬마들이 부른 모든 노래들에도 순결한 동심의 정신세계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이북에선 나라의 미래까지도 튼튼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북에서 노래는 인생의 안내자, 생활의 길동무로 되고 있다. 스스로 자기 삶의 위치를 알게 하고 그 삶에 충실하려는 의욕을 샘솟게 하는 원동력이며 오늘에의 희열과 낭만을 주고 내일에의 지향과 포부를 주는 원천이 바로 노래다.

이북 땅 어데서나 노래는 삶을 아름답고 고상하게 하고 값있고 복되게 하며 사람들을 애국에 불타게 하고 고난도 맞받아 나가는 용기를 가지게 한다. 가장 뜨거운 사랑과 가장 강렬한 증오를 알게 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고결한 정신을 갖게 한다. 사랑의 봄비도 내려주고 청춘의 꿈도 키워 준다. 한마디로 이북의 노래는 생을 아름답게 꽃피워 주는 영양소이며 향기롭게 가꾸어 주는 활력소이다. 이북노래의 가사 하나하나, 선율 하나하나를 더듬어 보느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깨끗이 정화되어 짐을 느낀다.

그래서 이북노래는 우리 이남사람들의 심장도 틀어 잡는다.

이북노래 「휘파람」,「여성은 꽃이라네」는 우리 이남에서도 다 아는 애창곡으로 되어 있지 않는가. 인정의 따스함과 생활의 즐거움이 넘쳐나서 부르는 노래다.

언젠가 이웃에 사는 젊은이가 이 노래를 부르고 나서 하는 말이 이북동포들의 삶이 부럽다고 했다. 정말 우리 모두에게 그런 삶이 부럽기만 하다. 그래서 이남에서는 「바꿔」라는 노래가 나와 그처럼 온 천지를 휩쓸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다 바꾸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 이남사람들이 북의 노래를 더 즐겨 부르는 것이리라.

젊은이들 속에서는 이북의 「동지애의 노래」,「조선의 별」,「우리는 혁명의 계승자」노래도 큰 인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 보네
 
 

가는 길 험난하다 해도

시련의 고비 넘으리

불바람 휘몰아쳐 와도

생사를 같이 하리라

천금주고 살 수 없는

동지의 한없는 사랑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 보네

이남의 젊은이들치고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마음과 뜻을 함께 하는 동지, 그 동지란 말의 참뜻이 절절하게 안겨 오는 노래다. 그러한 동지, 동지만 있으면 못해 낼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북에서 김일성주석님과 꼭같으신 김정일장군님은 민중 모두의 어버이이시고 뜨거운 동지이시다.

김정일장군님만큼 민중 매 사람을 천금처럼 생각하시고 아껴주시는 분은 없다. 찬바람 빗바람을 다 막아주시고 생사운명을 함께 하시는 장군님이시다. 그래서 이북민중은 하나같이 장군님을 우러러 받들고 그분을 옹위해 모진 역경도 꿋꿋이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이북노래들은 참으로 뜻이 깊고 멀리 앞을 내다보게 한다.

노래이자 삶인 이북의 노래에서 나는 이북동포들의 행복한 생활을 보며 민족의 밝은 내일을 본다. 인류의 아름다운 이상과 미래를 본다.

3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공연에서 보았듯이 이북어린이들의 노래는 황홀하고 신비롭다. 사람들의 넋을 빼앗을 정도다 어른들의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왔던 평양교예단의 음악에서도 그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마다에 무한한 용맹과 낭만의 나래를 달아주는 교예, 그 교예의 매 종목을 경쾌하고 씩씩한 음악이 더욱 훌륭하게 장식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북노래에 매혹될 때마다 떠올려지는 생각이 있다. 어떻게 되어 이북의 노래가 이남에서는 바라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그렇듯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었을까. 어떻게 되어 그렇듯 고상한 정신세계를 주는 인류이상의 음악으로 떠오를 수 있었을까.

원래 음악은 인간생활의 기쁨과 슬픔을 가락에 담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음악에는 민중의 삶과 지향이 담겨져 있다 한다.

계급사회에서 음악은 착취배들의 향락을 위한 것으로, 민중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수단으로 되었었다. 고조선때 여옥의 「공후인」으로부터 시작되어 세계에 자랑높던 우리의 전통음악도 궁중의 내실에서 울리면서부터 점차 민중에게서 멀어져갔다. 왕조시기 「봉황가」나 「권주가」는 민중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역사의 전진을 추진하는 맥박으로 될 수 없었다. 일제통치하에서 우리 민중은 자기의 노래를 빼앗겼다. 「번지없는 주막」이나 「눈물젖은 두만강」에 계몽의 꿈을 얹어 보았지만 나라잃은 민족의 슬픔조차 제대로 담을 수 없었다.

그러던 노래가 이북에서 마침내 민중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북에서는 노래가 그대로 민중의 삶과 투쟁 그 자체로 되었다.

나는 그것이 희세의 위인을 모신 덕분임을 깨달았다.

연세대의 한 동료교수는 나에게 김정일장군님의 저서 「음악예술론」을 기념으로 주면서 이 저서를 읽어보면 세계가 한눈에 들 것이라고 했다. 밤새워 읽었었다.

저서에는 우리 시대 음악이 어떤 음악으로 되어야 하며 그것이 누구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가가 밝혀져 있다. 우리 시대는 민중이 주인이 되어 자기 운명을 자기 힘으로 개척해 나가는 자주의 시대이므로 음악도 마땅히 자주시대 민중의 음악으로 되어야 한다고 밝혀져 있다. 저서는 인류음악의 오늘뿐아닌 미래까지도 밝힌 음악이론의 대백과요 대전서다.

그것이 전문음악평론가도 아닌 정치대가의 저서임을 생각할 때 놀라움은 더욱 크다. 그분께서 하신 다음의 말씀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혁명적인 노래는 투쟁의 대오에 높이 울리는 진군가이며 시대의 행진곡이다.』

영수님의 이 말씀의 뜻을 알자면 조국광복성전의 봉화가 오른 그날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한다.

민족수난의 그날 압록강을 건느시어 항일대전의 기치를 드셨던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눈보라 세찬 항일의 혈전만리를 노래로 헤쳐 오셨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노래를 사랑하시고 음악의 가치를 소중히 하셨던 주석님께서는 광복직후와 6.25전시 그리고 휴전후와 사회주의건설시기에도 늘 노래로 승리에서 승리를 기록하셨다.

주석님의 의지를 김정일장군님께서 이으셨다. 일찍이 천부의 음악적 재능을 받아안으신 그분께서는 음악을 몹시도 사랑하신다고 한다. 유년시절 벌써 「축복의 노래」,「조국의 품」 등 많은 노래를 지으시어 이북민중을 기쁘게 해주셨고 고급중학을 마치시고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시면서는 노래 「조선아 너를 빛내리」를 지으셔 앞날의 포부와 결의를 담으셨다. 음악을 변혁의 무기로 보신 장군님께서는 노래에서 영도의 철학을 발견하셨다.

그분께서는 노래가 사람을 아름답고 고상하게 하고 용맹스럽고 슬기롭게 하며 난관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고 보셨다.

음악이 정치실현에 복무하고 정치를 정서적으로 안받침하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는 이 세상 누구도 내놓지 못한 음악정치의 사상을 밝히신 김정일장군님이시다. 그분은 인간과 음악이 불가분리인 것처럼 음악과 정치도 불가분리의 것이라는 지론을 세우시고 음악을 정치와 밀착시키셨다.

인류사상 음악을 즐긴 위인은 있었지만 그것을 정치화한 위인은 없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노래로 민중을 일심단합시키셨다. 노래로 사람들을 어떤 광풍도 이겨내는 철의 인간, 신념의 인간, 절해고도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변혁과 창조의 인간으로 키우셨다.

노래로 삶의 터전을 가꿔주시고 투쟁의 폭풍도 불러주시는 그분이시다. 온 나라가 언제나 노래 속에 흥성이도록 노래마당도 마련해 주신다. 매해 설날이면 전국의 아동들이 설명절을 즐기도록 설맞이노래마당을 펼쳐주신다. 크고 작은 명절때에는 음악회와 경축노래모임으로 극장무대를 장식하게 해주신다. 그래서 이북의 아동들이 그렇듯 음악의 천사가 되어 노래의 황홀경을 펼쳐 놓을 수 있는 것이리라. 이북민중이 부르는 노래에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심어주신 깊은 철학과 번뜩이는 사상이 있다. 한번만 불러도 심장이 뛰고 용맹의 나래가 돋힌다. 적진에도 서슴없이 뛰어드는 총폭탄도 된다.

김정일장군님께서 높이 칭찬해주시고 내세워주시는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의 노래는 방사포의 일제사격과 같이 세상을 들었다 놓는다. 정신이 번쩍 들고 힘이 용솟게 한다. 그 노래를 들으면 무서울 것이 없다는 사상이 절로 난다. 「공훈합창단」이라는 것 자체가 장군님께서 친히 지어주신 세상에 없는 독특한 이름이라 하겠다.

이북의 견결한 「수령결사옹위」,「총폭탄」,「자폭」의 정신은 노래 속에 백배로 투철해 간다.

이북민중은 노래를 부르며 터전을 다지고 노래를 부르며 낙원을 가꾼다. 노래로 미래를 열고 내일에 산다. 「고난의 행군」도 노래로 헤쳤고 강성대국도 노래로 건설한다.

김일성주석님을 잃은 민족사의 최대국상, 여러해째 계속된 혹심한 자연피해, 제국주의의 고립압살책동, 그 모든 역경을 이북민중은 노래를 부르며 이겨냈고 물리쳐 버렸다. 노래와 더불어 영도자와 민중이 혼연일체를 이루었다.

이북민중은 자기 영수에 대한 열렬한 신뢰심과 뜨거운 충성심을 노래에 담는다. 누구나 그분에 대한 흠모의 송가를 짓고 누구나 그분을 우러러 노래를 부른다. 산촌의 애어린 소녀가 경애하는 장군님을 흠모하여 혁명일화를 가사화한 50편의 노래를 창작한 이야기와 1세대 노간부가 「3대장군 나는 잊지 못해」라는 흠모의 노래를 지어 백두산3대장군을 칭송한 이야기는 한없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노래와 더불어 그분의 두리에 뭉쳐진 이북민중이다.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높이 들자 붉은기」, 「신심높이 가리라」… 노래들은 그분과 생사운명을 함께 할 이북민중의 굳세인 각오를 실감하고도 남게 한다.

일심단결의 대가정에 울려퍼지는 충성의 노래, 결사옹위의 노래, 그 노래로 더욱 융합된 대오는 깨뜨릴 수도 허물 수도 없다. 그 위력은 원자탄이나 수소탄에 비할바 없다.

이북에서 해마다 열리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했던 한 외국인은 말했다.

『조선의 음악을 보니 불타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느낌이다. 사막을 걷어 내고 푸른 숲이 우거지게 하려면 조선의 음악을 따라야 한다.』

옳은 말이다. 이남의 음악도 바로 일어서려면 이북의 음악을 따라야 한다.

시대와 역사가 위인을 만나야 빛날 수 있듯이 음악도 위인을 모셔야 꽃필 수 있다.

꺼지지 않는 것이 노래다. 노래로 살고 노래로 강성부흥해 가는 영원한 이북이다. 이북은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노래로 이기며 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