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민족민주운동
 
 
 

2000년 반미자주화운동





20세기를 마감하는 2000년이 저물어간다. 우리 민중은 그 어느 때보다 반미자주화의 기치를 더욱 높이 치켜들고 이 해를 빛나게 장식했다.

무엇보다도 각계민중은 민족자주의 입장에서 침략자, 약탈자, 평화의 파괴자로서의 주한미군의 정체를 바로 인식하고 반미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섰다.

올해에만도 연이어 드러나는 6·25전쟁시기의 양민학살사건, 술집여인살해사건, 매향리폭탄투하사건, 한강독극물방류사건, 미군전차에 의한 벼피해사건 등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각종 범죄사건들에 의해 우리 민중의 반미감정은 극도에 달했다. 거기에다 예속적이고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개정이 당치않은 구실로 계속 지연되어 반미감정은 더욱 고조되었다.

지난 3월1일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 반미, 반일의 구호밑에 대규모적인 집회와 시위투쟁이 격렬히 벌어졌다.

이날 서울에서 벌어진 반미투쟁에는 한총련, 시민사회단체들 등 수많은 군중이 대학로에서 미군철수와 지난 전쟁시기 감행된 미군의 양민학살사건들을 철저히 밝힐 것을 요구했다.

4월15일에는 1천여명의 대학생들과 각계층 시민들이 서울시내의 공원에서 반미시위를 벌였다.

시위자들은 미국이 도발적인 군사훈련을 연이어 벌여놓고 한반도에서 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 있는데 항의했으며 지난 전쟁시기 감행된 미군의 양민학살만행에 대한 조사와 사죄를 요구했다.

그들은 『양키는 물러가라』고 소리높이 외치며 반미구호판들을 들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보다 앞서 3월17일에는 국방부청사앞에서 2백50여명의 시민들이 미국방장관의 방한을 반대해 항의집회를 가졌다.

그들은 『계속되는 미군의 만행에 대해 사죄하라』,『양키는 물러가라』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계속되는 미군의 만행을 준열히 단죄, 규탄했으며 불평등하고 예속적인 「한미행정협정」의 개정과 미군범죄의 근절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투쟁은 이튿날인 18일에도 계속되었다. 이날 한미국방장관사이의 회담이 벌어지는 것과 때를 같이해 회담장소인 국방부청사에 집결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사회단체성원들과 대학생들은 미국방장관이 건물로 들어가지 못하게 길을 가로막고 정문을 봉쇄했다. 이어 시위자들은 학살만행들에 대한 미국정부의 사죄와 미군범죄자들을 엄격히 처벌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며 정문에 썩은 달걀을 던졌다. 결국 미국방장관은 하는 수없이 동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우리 민중의 반미투쟁은 매향리폭탄투하사건이후 더욱 고조되었으며 이 투쟁에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종교인 등 각계층민중이 참여하는 대중적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6월6일,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미군사격장 인근주민들과 청년학생, 시민사회단체회원 등 2천여명은 폭격성피해에 대한 보상과 사격장폐쇄를 요구해 대규모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또한 「한미행정협정」의 개정을 촉구하며 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미공군사격장 정문까지 1Km의 평화의 인간띠잇기행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 미군기지철조망을 잘라내고 말뚝을 뽑는 등 격렬히 항의했다.

미공군의 사격훈련이 진행되는 속에 매향리사격장안의 섬을 잇따라 점거하는 투쟁도 벌였다.

6월20일 오전 김모(20, 청주교대 3년)양 등 한총련소속 대학생 6명이 인근주민의 배를 타고 농섬에 들어가 1시간여동안 농성을 벌였고 이날 오후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최모신부 등 3명이 다시 농섬에 진입했다. 이에 앞서 이날 낮 12시에는 마을주민 3명이 외신기자 2명과 함께 농섬점거를 시도했다.

지난 기간 반미운동이 지역별로 벌어지고 또 미군에 의한 범죄사건이 저질러질 때마다 진행됐다면 올해는 반미운동이 경향각지에서 세차게 벌어졌으며 매월 3주 일요일을 미군철거운동의 날로 정하고 반미투쟁을 거세차게 벌여왔다.

다음으로 올해 반미운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각계민중운동단체들이 공동연대투쟁을 힘있게 벌인 것이다.

지난 5월16일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1백20여 개 시민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개정 국민운동은 주한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을 개정할 것을 다시한번 촉구했다.

10월4일 원주환경운동연합과 원주기독교청년회 등 15개 사회단체는 「캠프 이글폐유방류범시민대책위원회」결성을 위한 대표자회의를 갖고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투쟁하기도 했다.

10월7일에는 매향리폭격장폐쇄 범국민대책위원회,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개정국민운동,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노근리주민대책위원회 6개 단체가 서울역광장에서 「미국반대 국민행동의 날」집회를 가졌다. 「매향리미군폭격장폐쇄, 한미행정협정전면개정, 환경범죄책임자처벌, 양민학살진상규명, 전역미사일방위체제, 국가미사일방위체제철회를 위한 국민행동의 날」로 이름 붙여진 이날 집회에는 수많은 각계층 민중이 참여해 반미시위를 벌였다.

우리 민중의 이같은 반미운동은 미군이 결코 「벗」이 아니라 침략자, 약탈자라는 것, 주한미군을 그대로 두고서는 언제가도 이땅의 자주화, 민주화는 물론 우리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이룩할 수 없다는 피의 교훈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각계애국민중은 새해에도 올해의 경험을 잘 살려 반미운동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야 할 줄로 안다.

<조 연 택>
 


2000년 노동운동결산





2000년 한해를 보내면서 올해 노동운동을 결산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2000년은 실로 엄청난 한해였다.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되고 6·15공동선언이 발표되면서 남북화합과 협력, 교류가 활성화되고 우리 민족의 통일열기가 비등되었다.

이 기류를 타고 올해 노동운동은 생존권 투쟁과 함께 반미자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질량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생존권보장을 위한 투쟁과 정치투쟁을 연계해

무엇보다도 올해 노동운동은 생존권보장을 위한 투쟁을 반정부정치투쟁과 연계해 연초부터 연말까지 끈기있게 벌어졌다.

노동계는 올해 임금인상투쟁을 4·13총선과 연계해 전개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1월 11일 올해 임금인상요구율을 15.2%로 확정하고 임투를 정치투쟁과 연계해 4월총선에서 반개혁후보 낙선운동 등 투쟁을 벌일 방침을 밝혔다. 또 민주노총은 주 5일 근무제와 구조조정반대, 조세개혁과 사회보장활동 등 3대 개혁요구를 정치쟁점화할 계획을 밝혔다.

한국노총도 1월 17일 산별대표자회의와 중앙위원회를 잇따라 열고 올해 임금인상요구율을 13.2%로 확정했으며 임투를 부적격자에 대한 낙선운동 등 정치투쟁과 연계해 벌이겠다고 밝혔다.

노동계가 올해 두자리수 임금인상요구를 제시한 것은 1996년이후 처음이며 그것은 IMF체제 2년동안 현 정권의 고통분담놀이에서 노동자들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제, 임금삭감과 임금동결 등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 당해온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그같은 반노동자적인 정책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이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올해 생존권투쟁에서 3월단체교섭과 4월총선투쟁, 5월총파업 일정에 발맞추어 투쟁했다.

양대 노총은 총선시민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천부적격자 낙선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각각 낙천, 낙선운동 대상자 선정기준을 만들어 명단을 발표하고 총선투쟁에 적극 참가했다.

노동자들이 올해 임투기간 진행한 파업건수와 참가인원수는 노동부통계에 따르더라도 지난해 같은 기간(5월 19일까지)에 비해 크게 증가했는데 노사분규가 발생한 사업장은 54군데로 3군데가 늘어났고 파업참가자는 141% 증가했다.

5월 31일 민주노총은 예정대로 서울 종묘공원에서 2만여명 노조원들의 참가하에 파업결의대회를 가졌으며 6월초까지 총파업에는 서울대학병원을 비롯한 50개 병원노조와 한국중공업을 비롯한 금속연맹산하 제조업체노조 등 185개 노조, 13만 7천여명의 노조원들이 쟁의행위찬반투표를 거쳐 총파업에 들어간 것으로 집계되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공동투쟁, 노학, 노농연대투쟁도

올해 노동운동의 기본특징은 생존권과 민주주의적 권익보장을 위한 투쟁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공동으로, 그리고 노학, 노농연대로 연중 대규모 정치집회와 시위로 진행된 점이다.

3월말부터 4월초에 걸쳐 대우 자동차노조원 1만여명이 해외매각을 반대해 전면파업을 벌였고 현대와 기아자동차노조가 총파업을 진행했다.

4월 1일 민주노총과 전국연합 등 32개 단체대표 6천여명은 서울역광장에서 신자유주의 반대와 생존권쟁취를 위한 민중대회를 열었다. 이날 민주노총과 농민단체들은 결의문에서 구조조정중단과 농가부채탕감 등 6개항을 정부에 요구했다.

5월 1일 노동절을 전후하여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대규모 기념집회를 열고 주 5일 근무제실시와 구조조정중단, 자동차산업 해외매각반대, 임금인상, 비정규직차별철폐와 정규직화 등을 강력히 촉구했다. 4월 29일 서울역 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진행한 집회에는 한총련소속 대학생 2천 5백여명이 조직적으로 참석하여 노학연대투쟁을 벌였다. 이날 민주노총은 서울역광장 등 전국 9개 지역에서 노동자와 농민, 학생 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노동절 110주년기념과 총파업결의대회를 열었고 집회후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5월 1일 한국노총도 4천여명의 노조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집회를 가졌다.

이날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영세사업장 노조원들은 서울 종묘공원에서 근로기준법 완전적용을 위한 노동자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권익찾기투쟁에 나섰다. 그들은 올들어 잇따라 노조를 결성한데 이어 산별노조결성움직임까지 보였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그후 7월과 8월, 9월과 10월, 11월과 연말까지 서울역광장에서,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서울 종묘공원에서, 사직공원에서,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반정부집회와 전국노동자대회를 수차에 걸쳐 열었다. 그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중단과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 공무원 및 실직자의 단결권보장과 부당노동행위처벌강화, 공안탄압중단, 국가기간산업민영화, 해외매각철회, 관치경영철폐, 노동법개악반대, 약사법재개정, 노동3권의 위축과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와 아셈정상회의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싸웠다.

반미자주화, 조국통일투쟁도 힘있게 벌여

올해 노동운동은 민중생존권을 위한 투쟁과 함께 반미자주화, 조국통일투쟁을 밀접히 결합하여 끈기있고 완강하게 벌어졌다.

지난 6월 경기도 매향리 쿠니사격장철폐투쟁이 반미투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한미합동조사단(이광길소장)의 매향리 주민피해가 미군폭격훈련과 무관하다는 무례하고 기만적인 발표에 더욱 분노한 주민들은 『미군사격장폐쇄』등의 구호를 외치며 미군철수투쟁에 떨쳐 나섰다. 경향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시민, 종교인, 환경운동가 등 수천명의 각계 각층 민중들이 연일 매향리 사격장철폐투쟁에 참가하여 주한미군철수를 외치며 치열하게 투쟁했다. 지난 6월 6일 3천여명이 참가한 사격장철조망 걷어내기투쟁이나 6월 17일 2천여명이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결집한 사격장폐쇄투쟁은 6월항쟁이래 최대의 치열한 격전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투쟁에는 경향각지에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의료인, 종교인 등 130여개 시민, 사회단체가 참가하였다. 매향리 사격장철폐투쟁은 50여년간 저질러진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범죄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민중의 자주의식과 투쟁의지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지고 점차 조직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들은 매향리 사격장폐쇄투쟁외에도 지난 5월 13일 전국연합과 민주노총이 조직한 서울종묘공원집회에 참가하여 광주민중항쟁진상규명과 미군철수, 소파개정을 촉구했다. 그들은 시민, 환경단체들이 조직한 미군 한강독극물방류사건 규탄집회 등에도 적극 참가하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여 싸웠다.

올해 노동자들은 6·15남북공동선언의 채택이후 조국통일의 기운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조건에 부응하여 통일운동을 힘있게 벌여왔다.

노동자들은 6·15공동선언을 적극 지지하였으며 8·15통일행사준비위원회 결성에도 적극 참가했다.

올해 조국통일을 향한 온 민족의 열망이 높아진 가운데 민주노총은 농민, 학생, 빈민 등 각계 대중을 대표하는 대중조직들과 함께 준비위원회에 망라되어 조국통일운동의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노동자들은 통일운동의 주체로 나서고자 하는 확고한 기조아래 노동자통일선봉대를 조직하였으며 노동자통일한마당을 성대히 진행했다.

노동운동단체들은 북의 노동당 창당기념초청을 6·15공동선언취지에 맞는 것이라며 적극 환영하였으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대표의 방북을 실현했다.

민주노총은 금강산에서 남북노동자통일토론회에 참가하기로 하는 등 통일운동의 주역으로 나서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통일운동의 주역으로 나서게 됨으로써 이제 통일운동이 명실상부하게 전계급, 계층의 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신 대 진>
 


2000년 농민운동





2000년을 보내면서 농민운동을 돌이켜 본다.

올해 농민운동은 당국의 수입개방농정을 반대하고 적정농산물가격을 받기 위한 투쟁으로 힘차게 벌어졌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추곡수매시기에 추곡가인상투쟁을 벌여온 각지 농민들은 올해 막대한 양의 외국산 농산물이 밀려들어와 큰 타격을 받게 되자 대규모의 반미, 반정부투쟁을 벌였다.

대표적인 실례로 지난 7월 25일 서울에서 진행된 전국농민대회를 들 수 있다.

각지에서 상경한 농민들과 대학생 등 1만명이 참가한 전국농민집회에서는 농산물시장을 개방한데 대해 미국정부와 한국정부를 규탄했다. 8명의 시위지도자들은 흰천위에 『농산물수입정책을 폐지하라』는 혈서를 썼고 다른 시위자들은 비닐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온 과일과 남새 및 흙을 탄압경찰들에게 던지며 싸웠다. 그들은 『김대중정부는 참회하라』,『미국을 타도하라』라는 구호를 외쳤으며 미국이 서울에 시장개방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농산물수입중지와 빚을 면제해줄 것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농민들은 또한 수박을 실은 화물트럭위에 대형성조기를 씌우고 거기에 불을 달았다.

전국농민대회가 진행된 이날은 서울에서 농산물무관세협상이 거의 타결단계인 3차협상이 열린 날이다. 이에 맞춰 전농이 이례적으로 농번기에 농민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한 것은 농민들이 대외종속적인 농업협상을 극복하는 것이 가지는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농민들은 반미자주를 외치며 투쟁에 나섰던 것이다. 지금의 개방농정아래 더욱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식민지농업을 온전한 자주농업으로 만드는 일이 농민들이 사는 길이라는 자각이 그들의 가슴에 용솟음치고 있었던 것이다.

7월 25일 전국농민대회상경투쟁에 앞서 지난 5월 19일 가락동 농민집회를 비롯하여 전농산하 도연맹, 군농민회별로 수입개방으로 인한 농산물가격 폭락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7·25전국농민대회이후 보성군, 함안군, 창원시, 의성군, 춘천시 등에서 올해 오렌지와 포도, 마늘, 고추, 방울토마토 등 외국산 농산물이 밀려들어와 큰 타격을 받게 된 현장농민들이 대규모마늘집회를 비롯한 집회, 시위, 길거리농성 등 지속적인 투쟁을 벌이었다. 분노한 농민들은 『농축산물가격보장!』, 『농가부채해결!』, 『WTO수입개방반대!』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고 생산한 채소, 과일들을 짓뭉개버리며 현정부의 농업말살정책을 규탄했다.

전농 등 21개 농민단체들로 구성된 농가부채특별법제 제정을 위한 농민단체협의회는 11월 17일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농가부채특별법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농민단체협의회는 농산물수입개방에 따른 국내농산물가격폭락으로 전국 4백 50만명의 농민부채는 39조원으로 늘어났다며 농가부채에 대한 상환유예와 장기상환조치 등 부채경감을 위한 특별법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한편 이날 13명의 농민대표들은 여의도 국회본관 민주당 총재실을 점거해 단식농성을 벌였고 2백여명의 농민들은 한나라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농가부채특별법제정을 요구했다.

올해 농민운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주요 투쟁들이 대학생, 노동단체들과 연대공동으로 전개된 것이다.

전농은 4월 1일 서울역광장에서 민주노총, 전국연합 등 32개 단체대표 6천여명이 벌인 「신자유주의 반대와 생존권쟁취를 위한 민중대회」에 대표들을 참가시켰고 그들과 함께 부채탕감 등 6개항을 정부에 요구해 싸웠다. 전농은 4월 29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절기념집회에도 참석하여 공동투쟁을 벌였다. 7월 25일 서울 전국농민대회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참가해 농학공동투쟁으로 강력히 진행되었다. 또한 8월 3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진행된 반정부집회에는 농민과 대학생 1천여명이 참석하여 농축산물가격보장과 농가부채특별법제정 등 농민들의 생존권보장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다.

올해 농민운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또한 미군기지반환 및 폐쇄와 미군에 의한 피해보상투쟁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5월 경기도 평택시 농민들은 2만여평의 미군소유 땅 반환을 강력히 요구해 싸웠다.

농민단체들은 또한 6월에 진행된 화성군 매향리 미군사격장철폐투쟁과 미군한강독극물방류규탄투쟁에도 노동자, 학생, 시민 환경단체들과 함께 공동으로 참가했다.

지난 10월과 11월에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식현리와 파평면 장파리, 동두천일대 농민들은 주한미군탱크들이 사전 예고도 없이 길옆에 널어놓은 벼 천수백가마니분을 모두 깔아뭉개버린데 대해 거센 항의를 하면서 피해보상을 미군당국에 강력히 요구해 싸웠다.

올해 농민운동은 6.15남북공동선언발표이후 변화되는 정세의 요구에 걸맞게 통일운동에도 마땅한 주목을 돌렸다.

올해 대학생들의 여름 농활은 6월 말~7월 초까지 경북지역 14개 시군 2백여개 마을에서 전국 21개대학 5천여명이 참가하여 실시했는데 현지 농민들은 대학생들의 농활기간중에 남북농민씨름대회 예선전, 통일글짓기, 그림그리기 등의 통일한마당행사에 참가했다.

이보다 앞서 전농은 6월 2일 남북농민들의 자주교류사업을 통해 민족의 통일과 자주농업실현을 앞당기기 위하여 이북의 「조선농업근로자동맹」에 남북농민통일대동제를 제안했었다. 그리고 전농은 조국통일위원장, 부의장, 강원도연맹의장, 정책실장 등 4명을 조선노동당창건 55주년 기념행사에 파견하여 민족의 단합과 단결을 강화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했다.

올해 농민운동의 이러한 실태는 농민운동 자체발전의 측면에서는 물론 반미자주화와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의 측면에서 봐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2000년 농민운동을 경험삼아 21세기 새해 농민운동이 힘찬 전진을 이루어 낼 줄로 안다.

<정 동 국>
 

큰 걸음을 내디딘 시민단체투쟁


 


우리의 민중운동은 20세기 마지막 해 2000년을 빛나게 장식하고 21세기 첫해를 바라보고 있다.

외세와 파쇼가 난무하는 식민지 한국풍토하에서도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한국민중운동은 지칠줄 모르고 굴함없이 전개되어 커다란 진전을 이룩했다.

이 자랑찬 대중운동의 진전 속에는 시민단체들의 참여와 역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80년대에 이어 90년대 중반기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민단체투쟁은 특히 2000년 대중운동에서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운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

우선 시민단체들은 반외세자주화투쟁에서 한몫을 담당수행했다.

경실련,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녹색연합 등 1백여개 시민단체들은 미군의 노근리양민학살사건, 고엽제살포사건, 여성살해사건, 매향리폭탄투하사건 등이 연속 터져 나오자 이를 계기로 반미집회와 시위를 계속 벌였다. 시민단체들은 반미집회와 시위에서 매향리사격장폐쇄와 소파전면개정, 미군철수 등을 주장했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지난 7월 미군의 한강독극물무단방출사건과 매향리폭격장에서의 열화우라늄탄 투하사실자료조사활동을 벌이었으며 그 사실을 밝혀냈다.

이같은 사실이 발표되자 다른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투쟁에 합세해 나서고 노동자, 학생, 교수 등 각계각층에로 확산되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7월15일 민주노총, 녹색연합 등 30여개의 시민사회단체소속 1천5백여명은 서울 용산역광장에서 미군독극물방류를 규탄하는 반미집회를 열고 미군사령관의 사죄와 미군철수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시민단체들은 8월3일 주한미군지위에 관한 한미협정 1차협상의 한미합의문이 공동발표되었을 때에도 일제히 반발하여 나섰으며 미국정부를 직접 상대하여 소파전면개정을 위한 대규모의 집회를 계속 했다. 9월에는 방미대표단을 구성하여 미행정부와 미의회에 자기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투쟁을 벌였다.

시민단체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지방들에서도 진행되었다.

「군산미군기지 우리 땅 찾기 시민모임」은 지난 3월3일까지 1백15차에 걸쳐 금요집회를 꾸준히 개최했다. 이같은 투쟁은 군산 뿐아니라 전북지역 전체의 투쟁으로 확대되어 진행되었다.

시민단체들은 미군양민학살과 독도영유권문제가 제기되었을 때에도 친미, 친일파 청산운동에 나섰다.

시민단체들의 반외세, 민족자주화 투쟁은 민중의 반미자주화투쟁의 대중화, 활성화에 기여했다.

시민단체들은 민주민권과 생존권투쟁에도 적극적이었다.

이 투쟁에서 특이할 사례는 지난 4.13총선투쟁이다.

4.13총선투쟁시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연합회」는 부정선거감시와 정보공개를 통한 유권자바로알기위한 운동에 나섰다.

8백9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망라된 「반부패국민연합」이 낙선운동에 나섰다.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 4백2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총선시민연대」를 발족하고 1백여명에 달하는 공천부적격자명단을 발표한뒤 3월30일을 「유권자권리선언의 날」로 정하고 전국의 주요 대도시들에서 동시 다발집회를 개최했으며 부적격자낙천, 낙선운동에 나섰다.

지금까지 시민사회단체가 선거투쟁에 대중적으로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당국자들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이같은 선거운동을 「불법행위」로 몰아 탄압하려다가 시민사회단체들과 유권자들의 강한 반발에 못이겨 선거법 87조를 삭제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경실련, 녹색연합, 민족문제연구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민주노총, 전농 등 2백48개 시민사회단체들은 9월28일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를 결성했으며 당국의 박정희기념관추진을 반통일적, 반민족적 기득권세력들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려는 폭거로, 범죄행위로 강력히 규탄하면서 중단을 요구해 싸웠다.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32개 시민단체가 참가하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준비위원회성원들은 지난 11월27일부터 부패방지법과 인권위원회법제정, 국가보안법개정 등을 요구하여 명동성당에서 여러날동안 농성투쟁을 벌였는데 이 농성투쟁에는 3백50여개 단체성원들이 합세했었다.

그밖에도 시민단체들은 노동자, 농민, 학생 등이 벌이는 자주, 민주, 통일 운동에 연대하여 투쟁했다.

실로 시민단체투쟁은 큰 걸음을 내디디었으며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이 동 국>
 

2000년 청년학생운동


 


2000년 올해에 우리의 학생운동은 역사 앞에 책임적이고 민족 앞에 양심적이며 국민 앞에 헌신적인 모습으로 힘있게 전진했다.

무엇보다 학생운동은 공안당국의 총칼탄압과 회유기만에도 한총련을 고수하고 자주, 민주, 통일의 기치높이 변함없이 투쟁의 길을 걸어왔다.

돌이켜 보면 올해 학생운동앞에는 시련과 난관이 중첩되었다. 공안당국은 학생운동을 근원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한총련을 「이적단체」, 「폭력단체」로 매도하면서 탄압의 도수를 높여왔다.

수많은 한총련대의원들과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파쇼경찰에 체포, 구속되었고 정보모략기구들은 학생운동권의 내부분열과 와해를 꾀하여 돈을 뿌려가며 프락치를 박아넣거나 어용학생회를 조작하는 등 온갖 교활한 수법을 총발동했다. 한편 파쇼경찰은 한총련의 집회를 허용할 수 없다면서 50개중대 6천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한총련 제8기 출범식을 막아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했다.

그러나 청년학생들은 파쇼경찰의 폭압을 박차고 부산대에서 지난 5월26일부터 3일간 제8기 한총련출범식을 갖고 이희철 조선대총학생회장을 제8기 의장으로 선출했다. 뒤이어 전국여자대학협의회, 조국통일위원회 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 출범식도 가졌다.

이것은 청년학생들이 한총련을 고수하고 자주적인 새 세상을 투쟁으로 안아올 불굴의 의지와 기개를 남김없이 보여준 커다란 성과이다.

다음으로 올해 청년학생운동에서 주목되는 것은 학생운동이 자주, 민주, 통일의 구호밑에 전국적 범위에서 줄기차게 벌어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청년학생들 속에서 반미자주화투쟁이 그 어느때보다 거세차게 진행된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15일 1천여명의 대학생들이 서울시내 중심의 한 공원에서 『양키는 물러가라』고 소리높이 외치며 반미구호판을 들고 반미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미국이 도발적인 군사훈련을 연이어 벌여놓고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항의했고 지난 전쟁시기 양민학살만행에 대한 조사와 사죄를 요구했다.

10월 7일에는 1천여명의 대학생들이 『양키는 물러가라』, 『미국은 사죄하고 보상하라』, 『사격장을 백악관으로 옮기라』는 구호를 외치며 수십개의 반미구호판들을 들고 서울의 번화가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외에도 5월9일 고려대 4학년 이모씨 등 대학생 3명이 미대사관에 들어가 기습시위를 벌였고 6월20일에는 청주교대 3학년 김모양 등 한총련소속 대학생 6명이 매향리사격장이 있는 농섬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는 등 각종 형태의 반미투쟁이 계속 벌어졌다.

이것은 미국이 우리의 「우방」도, 「벗」도 아니며 침략자, 약탈자, 살인자라는 것을 더욱 똑똑히 깨달은 청년학생의 의롭고 정당한 투쟁이다.

올해 학생운동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과의 공동연대투쟁을 강화한 것이다.

청년학생들은 노학연대, 농학연대에 특별히 관심하고 활동했다.

지난 4월29일 청년학생들은 노동자들과 함께 서울을 비롯한 전국 9개 지역에서 노동절 1백10주년 기념 및 총파업결의대회를 갖고 주 5일근무제실시, 비정규직차별철폐와 정규직화, 자동차산업해외매각중단, 임금인상과 단협 원상복구 등을 촉구하며 투쟁을 벌였다.

청년학생들은 또한 7월25일 전국농민회소속 농민들과 대학로에서 집회를 갖고 농축산물가격보장과 농가부채해결, 미국의 수입개방압력에 항의해 대형성조기를 불태우며 투쟁했다.

그밖에도 청년학생들은 민주노총이 5월31일부터 주 5일근무제 등을 요구해 벌인 총파업에도 동참했고 6월29일부터 7월8일까지 경북지역 14개 시, 군 2백여 개 마을에서 전국 21개대학 5천여명이 여름농활에 참가했다.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도 우리의 청년학생들은 선봉에 섰다.

서울의 여러 대학 총학생회는 지난 4월19일 4.19봉기 40돌에 즈음해 각 대학별로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 홍익대학교, 명지대학교 총학생회는 4.19정신승계 마라손대회를 가졌고 중앙대학교와 동국대학교 총학생회는 교내에서 4.19기념모임을 갖고 항쟁투사들의 투쟁정신을 되새겨보며 그들처럼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3월20일에는 전지역 65개 대학 총학생회 대표들이 대학등록금인상을 반대해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학등록금을 일방적으로 정하고 재정문제를 부당하게 처리해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가로막아 나서고 있다고 항의했다.

청년학생들은 지난 8월13일과 14일 한양대학교와 명동성당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는 8.15통일대축전행사를 갖고 남북공동선언기념탑쌓기와 장기수송환식 그리고 통일을 주제로 한 각종 행사를 진행했다.

참으로 올해 학생운동은 정의에 과감하고 불의를 용납치 않는 불퇴전의 기개와 용맹으로 빛나게 장식했다.

청년학생들은 20세기를 마감하는 올해 운동을 경험삼아 21세기를 떠메고 나갈 민족의 희망이고 미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2001년 새해에는 자주, 민주, 통일의 선봉장으로 자기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하리라고 본다.

<조 연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