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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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개건방향에 대하여

 - 김일성주석 단군릉개건관계부문 일군협의회에서 한 연설 1993 10 20

한철규 주해 6-3-30

 

(단군릉 개건의 의의)

오늘협의회에서는 단군릉개건문제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단군릉을 잘 개건하는 것은 우리 나라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오랜 역사국이고 우리 민족이 생겨난 때로부터 하나의 피줄을 이어온 단일민족이며 혁명의 수도 평양이 단군의 태가 묻힌 조선민족의 원고향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이번에 고고학자들이 단군릉을 발굴하고 거기에서 단군의 유골과 그의 안해의 유골을 찾아냈으며 단군의 유골이 지금으로부터 5,011년전의 것이라는 것을 확증함으로써 단군이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라 고조선의 실재한 건국시조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단군릉을 잘 꾸려놓으면 조선민족이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것을 선전하는데도 좋고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을 교양하는데도 좋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인민은 단군의 유골이 발굴되고 그것이 5,011년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소식에 접하여 대단히 기뻐하고 있으며 조선민족이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있습니다.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 속에서는 물론, 일본과 중국에서도 우리가 단군의 유골을 발굴한 것과 관련하여 계속 커다란 반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단군은 신화적인 존재로 전해져왔습니다.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로 전해오게 된 것은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이 원시조인 단군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면서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전설을 많이 지어낸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묘향산과 구월산에 단군과 관련한 전설들이 많은데 나는 어렸을 때 아버님한테서 단군에 대한 전설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단군의 유골이 발굴되고 유골의 연대가 과학적으로 확증됨으로써 전설로만 알려지고 전하여오던 단군이 반만년전에 실지로 존재하였던 사람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우리 고고학자들이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을 발굴하고 그것이 5,011년전의 것이라는 것을 확증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너무 기뻐서 김정일동지에게 그것이 사실인가고 물어보았습니다. 김정일동지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면서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이 나왔고 단군유골의 연대는 고고학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들에서 현대적인 측정기구로 수십번이나 측정하여 과학적으로 확증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단군의 유골을 검증한 데 의하면 그의 키가 170센치미터이상 되는데 당시 사람으로서는 상당히 크고 체격이 웅장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단군의 유골연대는 현대물리학의 첨단기술의 하나인 전자상자성공명법을 적용하여 현대적 측정기구로 측정하였기 때문에 매우 정확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현대과학을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나 단군의 유골에 대한 연대측정결과를 믿지 않을 수 없으며 만일 그것을 믿지 않으면 현대과학의 첨단기술을 부정하는 것으로 됩니다.

단군릉에서 단군의 유골을 발굴하고 단군이 반만년전의 실재한 인물이라는 것을 고증한 것은 우리 민족의 유구성과 단일성, 발상지를 확증하는데서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커다란 성과입니다. 단군릉발굴사업을 통하여 우리 인민은 민족의 원시조를 찾게 되었으며 우리 나라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동방의 선진문명국이고 우리 민족이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떳떳이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군릉이 고조선의 건국시조의 무덤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판명됨으로써 고조선으로부터 연면히 계승되어온 고구려, 고려의 시조왕들의 무덤이 모두 우리 나라 북반부에 있다는 것이 실증되었습니다. 고조선건국시조의 무덤인 단군릉과 고구려시조왕의 무덤인 동명왕릉은 평양시에 있고 고려시조왕의 무덤인 왕건왕릉은 개성시에 있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의 발상지를 논증하는데서 위력한 증거로 됩니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을 강점하고 우리 나라를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말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습니다. 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다음 단군과 관련한 역사책들과 우리 나라 고대사와 관련한 책들을 빼앗아 불태워버렸으며 나중에는 조선민족을 말살하기 위하여 ≪동조동근론≫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일제의 간악한 조선민족말살책동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의 귀중한 역사자료와 민족유산들이 없어지고 민족의 전통이 여지없이 짓밟혔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일제의 주구로 전락되어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놈들의 ≪동조동근론≫을 지지하여 나섰습니다.

해방전에 최남선, 이광수 같은 자들은 민족을 배반하고 ≪동조동근≫과 ≪내선일체≫를 떠벌이면서 우리 인민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광탄하였습니다. 그때 최남선과 이광수는 일제에게 추종하여 우리 항일유격대를 귀순시켜보려고 삐라까지 써서 뿌리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였습니다.

당시 이름있는 지식인들가운데서 홍명희는 일제의 ≪동조동근론≫을 반대한 양심적인 지식인이었습니다. 이돈화도 일제의 ≪동조동근론≫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도교의 월간잡지 ≪개벽≫의 편집사업을 맡아보면서 글을 많이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을 강점하고 민족말살정책을 악랄하게 감행하였지만 우리 민족을 말살하지 못하였습니다.

참으로 단군릉을 발굴하고 단군유골을 찾아낸 것은 우리 나라 고고학의 위대한 승리이며 조선민족의 크나큰 자랑입니다.

(단군과 고조선역사에 대한 연구사업)

역사학계에서는 이번에 이룩한 고고학의 성과에 토대하여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에 대한 연구사업을 더욱 심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지난날 시대주의자들과 일제의 어용학자들에 의하여 우리 민족의 고대역사가 적지 않게 왜곡되었습니다. 우리는 주체적 입장에 튼튼히 서서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에서 왜곡되었거나 잘못된 것을 모두 바로잡아야 합니다.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고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여자로 변한 곰과 관계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단군신화는 무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군릉 개건 방향)

단군이 조선민족의 원시조라는 것이 확증된 것만큼 단군릉을 건국시조의 무덤답게 잘 개건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고구려시조왕의 무덤인 동명왕릉을 훌륭하게 꾸려놓았고 고려시조왕의 왕건왕릉도 지금 개건하고 있습니다. 왕건왕릉개건공사는 왕건의 생일이 1월 30일이기 때문에 다음해 1월 30일에 개건식을 할 수 있도록 올해말까지 공사를 끝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단군릉을 개건하면 우리 나라건국시조왕들의 무덤을 다 꾸려놓는 것으로 됩니다.

단군릉은 조선민족의 원시조의 무덤이므로 동명왕릉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개건하여야 합니다. 조선민족의 원시조를 내세우는 의미에서 단군릉은 동명왕릉보다 높이도 더 높게 만들고 무덤도 동명왕릉처럼 흙으로 쌓지 말고 돌로 피라미드식으로 크게 쌓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군릉을 돌무덤으로 꾸리려면 철근 같은 것은 얼마 들지 않지만 돌은 많이 들 것입니다. 단군릉을 개건하는데서 돌공사가 중요한 것만큼 돌가공을 잘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단군릉을 크게 개건하려면 산등성이를 많이 깎아내야 하므로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지만 볶아치지 말고 공사를 질적으로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단군릉안에 사람들이 들어가 볼 수 있게 능뒤에 문을 내며 무덤칸은 관대를 2개 놓고 사람들이 여러명 들어가서 돌아볼 수 있도록 크게 만들어야 합니다.

단군의 유골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합니다. 단군의 유골은 우리 민족이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는 것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유골이 영구보존되도록 하는 것이 단군릉을 꾸리는데서 기본으로 되어야 합니다. 단군과 그의 안해의 유골을 영구보존할 수 있게 유리관에 넣고 밀봉한 다음 무덤칸에 놓도록 하여야 합니다.

무덤칸안에 단군의 유골은 남쪽을 향하여 오른쪽에 놓고 안해의 유골은 그 왼쪽에 놓으면 될 것입니다. 옛날 우리 나라의 풍습에 결혼식이나 환갑잔치를 할 때 남자와 여자의 서는 자리를 남쪽을 향하여 부동여서로 정하고 남자는 동쪽에 서고 여자는 서쪽에 서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문글자 좋을 호자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좋을 호자는 여자 여자옆에 아들 자자를 붙인 글자인데 여자 여자는 왼쪽에 쓰고 아들자 자는 오른쪽에 쓰지만 아들자 자를 기준으로 하여 보면 남자의 오른쪽에 여자가 있는 것으로 됩니다. 남자가 왼쪽에 서고 여자가 오른쪽에 서는 것을 남좌여우라고 합니다. 부부가 살다가 죽은 다음에는 남자와 여자의 위치를 바꾸어 남편의 시체는 안해의 오른쪽에 놓고 안해의 시체는 남편의 왼쪽에 놓게 되어 있습니다. 공민왕의 무덤을 보아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단군릉안에 벽화는 원상대로 회복하기 어려우므로 그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옛날책에 단군릉안에 벽화가 있었다는 것이 소개된 것을 보면 거기에 벽화가 있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벽화가 지금 단군릉안에 흔적으로라도 남아있다면 몰라도 다 없어져 어떤 벽화였는지 알 수 없는 조건에서 그려놓기 곤란합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라고 하더라도 고조선의 벽화를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사람들이 고조선시기의 사람들보다 그림을 그리는 재간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고조선시기의 벽화를 보지도 못한 조건에서 아무리 상상하여 잘 그린다고 하여도 그때 사람들이 그린 것처럼 그릴 수 없습니다. 단군릉안에 벽화를 잘 그려놓아도 거기에 벽화가 있었다는 것이나 보여 주는 것으로 되지 역사가치가 없으므로 벽화를 그려놓지 말고 참관자들에게 설명을 할 때 옛날에 벽화가 있었지만 다 없어졌다고 알려 주는 것이 낫습니다.

안악3호무덤의 벽화는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 벽화에는 짐승을 잡아 걸어놓은 것을 비롯하여 그 시기의 풍속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안악3호무덤이 고구려의 고국원왕의 무덤으로 확증되었으면 좋습니다.

개성시에 있는 왕건왕릉안에는 벽화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왕건왕릉안의 벽화가 못쓰게 되지 않게 잘 보존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단군릉의 돌기단을 높게 하지 말고 알맞춤하게 하여 밑에서도 범돌조각상을 비롯한 돌조각상들이 올려다보이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능을 돋보이게 하느라고 돌기단을 너무 높게 하여 밑에서 돌조각상이 올려다보이지 않으면 좋지 않습니다. 돌기단을 높인다고 하여 능이 더 돋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1안대로 돌기단을 낮추어 돌조각상이 잘 보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돌기단을 낮추더라도 기단벽에 부각장식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능문은 고조선의 건축형식맛이 나게 돌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해방전에 출판물에 난 단군릉의 사진에도 돌로 세운 능문이 있는 것만큼 단군릉의 능문을 돌로 세우는 것이 역사적 사실로 보아도 맞고 고조선의 건축형식에도 맞습니다. 목조건축형식으로 된 고구려건축형식의 능문은 동명왕릉에 이미 만들어놓은 것만큼 단군릉에 또 만들어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군릉에 능문을 세우지 않아도 일없지만 고조선무덤맛이 나게 능문을 돌로 세우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단군릉을 개건하는 것은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우리 인민들에게 평양에 돌무덤형식으로 된 고조선건국시조의 무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므로 단군릉에 제당은 건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남조선사람들이나 해외동포들이 단군릉을 보러 와서 제사를 지내겠다고 할 수 있으므로 상돌은 만들어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남조선에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인이 몇십만명 된다고 하는데 그들이 단군릉을 보러 올 수 있습니다. 앞으로 북남내왕이 실현되면 대종교인들이 중근동나라들에서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이 예루살렘과 메카로 해마다 순례하듯이 단군릉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꾸드스라고도 부르는데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을 예수가 태어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성지라고 하고 있으며 예수의 출생연도를 기준하여 서력을 쓰고 있습니다. 남조선에 있는 대종교인들은 단군이 출생한 연도를 기준으로 하여 단기를 쓰고 있습니다. 올해를 단기 4326년이라고 한다는데 이번에 단군의 유골을 발굴하여 계산한 것보다 연대가 짧습니다. 올해를 단기 4326년이라고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단군릉을 잘 꾸려놓으면 대종교인들이 평양에 와서 단군릉을 보고 좋아할 것입니다.

천도교청우당위원장을 하다가 사망한 최덕신도 단군숭배자였습니다. 그는 조선사람을 단군을 조상으로 하는 배달민족이라고 하면서 미국에 있을 때 ≪배달신보≫라는 신문도 발간하였습니다. 지금 그의 부인이 천도교청우당위원장을 하고 있는데 그가 베이징에 가서 남조선천도교 교령을 만나 다음해에 동학당란 100돌을 남조선천도교인들과 같이 기념할 데 대한 문제를 토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실현되면 대종교인들 뿐 아니라 남조선의 각계각층 사람들이 공화국북반부에 많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다 맞이하여야 합니다.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 대한 선전을 널리 하여야 합니다. 지금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 대한 반향이 항일무장투쟁시기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내놓았을 때처럼 큽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내놓았을 때 국내외혁명가들 뿐 아니라 애국적 청년학생들, 종교인들까지 그 강령을 지지하여 나섰습니다. 그때 천도교 함경남도 도정이었던 박인진도 조국광복회대강령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나섰습니다. 박인진은 그때 삼수, 갑산, 풍산, 북청 일대의 천도교인들을 관할하였습니다. 내가 지난해에 박인진의 부인을 만났는데 그후에 그가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단군릉을 남조선사람들과 해외동포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와보아도 손색이 없게 잘 꾸려야 합니다.

단군릉을 개건하는 것과 함께 단군과 관련되어 있은 다른 유적들도 다 잘 꾸려야 합니다. 단군릉을 개건할 때 단군유적들도 같이 꾸려놓아야 사람들이 그 유적들을 보고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더 잘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단군유적들은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서 보조적 역할을 합니다.

단군과 관련된 유적 이 단군릉주변에도 있고 묘향산과 구월산에도 많습니다. 단군릉주변에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있으면 그것도 사람들이 참관할 수 있게 보존하며 단군이 배놀이를 하였다는 단군호도 꾸리고 그 주변을 유원지식으로 정리하여야 합니다.

묘향산에 단군이 활쏘기연습을 하였다는 단군대와 천주석이 있는데 그곳도 잘 꾸려놓아야 합니다. 단군이 묘향산에서 활쏘기연습을 한 것이 사실일 수 있으므로 그곳을 잘 꾸리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묘향산에 단군과 관련한 건물이 있었으면 그것도 꾸리고 거기에 단군의 상상화를 그려붙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옛날에 솔거가 단군을 상상하여 그렸다는 단군의 초상이 있는 것만큼 그것을 그려붙이고 사람들에게 단군의 상상화를 그려붙였다고 설명해주면 될 것입니다.

구월산에 있는 단군대도 정비하고 단군사도 복구해놓아야 합니다. 환웅이 곰과 관계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전설은 무시하여야 하므로 구월산에 있는 단군굴은 꾸리지 않아도 됩니다.

단군릉에 있는 기적비는 해방전에 민족주의자들과 유지들이 일제의 단군말살책동으로부터 단군을 보호하기 위하여 돈을 모아 단군릉을 꾸리고 세워놓았던 것이라고 해설하여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늘 내가 방향을 준대로 단군릉복구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협의하여 단군릉을 고조선의 건국시조의 무덤답게 잘 꾸려야 하겠습니다. 단군릉복구위원회 성원들이 일을 책임적으로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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