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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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문제에 대하여

 - 김일성주석 당사상사업부문일군들앞에서 한 연설 1967 5 25

한철규 주해 6-3-19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문제에 대한 해석방법)

최근 당대표자회문헌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일부 학자들과 사상사업을 담당한 일군들속에서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에 대하여 구구한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이러한 문제들을 취급한 논문이 나오자 더욱 의견들이 분분하여 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한 자료들도 연구하고 또 학자들과 의견도 교환하여 보고 간단한 결론을 주었는데 들은 동무들이 제각기 자기류로 해석해서 전달하다보니 많은 점들이 왜곡되게 되었습니다. 논의되고 있은 문제가 당대표자회문헌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만큼 결코 이것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오늘 이에 대해서 좀 자세히 말하려고 합니다.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문제도 다른 모든 과학이론적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우리 당의 주체사상에서 출발하여 풀어야 할 것입니다. 결코 고전의 명제에 매달려 교조주의적으로 이 문제를 풀려 하여도 안되며 사대주의사상에 사로잡혀 이 하는 식으로 해석하려 하여도 안됩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의 의견서를 보아도 그렇고 일부 동무들의 논문을 읽어보아도 그렇고 모든 동무들이 거의 다 고전의 명제들을 교조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대주의적 편향에 빠져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구경은 우리 당이 생각하는 것과는 판판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설정하고 나갑니다. 이렇게 하여서는 결코 문제를 정확하게 연구하고 풀 수 없습니다. 오직 사대주의가 없고 교조주의가 없이 자기의 머리로써 문제를 풀어야만 옳은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과도기에 관한 맑스의 인식)

먼저 과도기문제에 대하여 말하여봅시다.

과도기문제를 옳게 해명하기 위하여서는 고전가들, 특히 맑스가 어떤 역사적 환경에서, 어떤 전제밑에서 이 문제를 설정하였는가 하는 것을 먼저 고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보건대는 첫째로 맑스가 사회주의에 관한 정의를 내리고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에로의 과도기 또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 문제를 설정할 때 분명히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를 염두에 두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사실을 똑똑히 인식하여야 과도기문제를 옳게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문제로 삼는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도시 뿐 아니라 농촌까지도 완전히 자본주의화되어 자본주의적 관계가 전 사회를 지배하게 됨으로써 농촌에 농민은 이미 존재하지 않고 공업노동자와 함께 농업노동자가 있게 되는 그러한 자본주의나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맑스가 자기 학설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염두에 두었던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란 이러한 자본주의나라였던 것이며 그가 늘 보아왔으며 거기에서 살고 활동한 영국같은 나라가 바로 이러한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문제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맑스는 먼저 노동계급과 농민간의 계급적 차이가 없는 그러한 조건을 전제로 하고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현대의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을 본다하더라도 그 나라들에서는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하여 농촌까지도 완전히 자본주의화하였으며 따라서 도시와 농촌에 다같이 노동계급이 유일한 근로계급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자본주의나라에는 수만개의 농장이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아주 고도로 기계화되어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농촌의 전기화, 화학화, 수리화도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한사람의 농업노동자가 30정보의 땅을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사실상 노동계급과 농민간의 계급적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농업생산력이 공업생산력과 거의 같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공업노동자는 공장에서 일하고 농업노동자는 전야에서 일한다는 노동조건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는 이러한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주권을 잡은 다음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적 단계를 비교적 짧은 기간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에는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의 두 계급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주의혁명에서 자본가계급을 때려부시고 그 소유를 수탈하여 전민소유제로 만들기만 하면 과도기의 임무를 비교적 짧은 기간에 수행할 수 있고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로 빨리 갈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결코 맑스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공산주의로 갈 수 있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생산력이 높이 발전되고 노동계급과 농민의 계급적 차이 없다 하더라도 착취계급의 잔여세력을 청산하며 사람들이 머리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잔재를 없애기 위한 과도기의 임무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첫째로 반드시 이 점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계속혁명에 대한 맑스와 레닌의 견해)

우리가 과도기에 관한 맑스의 학설을 고찰하고 이 문제를 옳게 해명하는데 있어서 둘째로 고려하여야 할 점은 계속 혁명에 관한 맑스의 견해입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맑스는 전독점자본주의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정치 및 경제의 불균등적 발전을 똑똑히 볼 수가 없었고 따라서 그는 구라파의 중요자본주의나라들에서 거의 동시에 연속적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았으며 세계혁명이 비교적 빨리 승리하리라고 인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맑스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를 비교적 짧은 역사적 기간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과도기에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시간적으로 상응하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를 뗄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반드시 이 점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레닌도 역시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를 제기할 때 기본상 맑스의 입장을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레닌이 살고 활동한 러시아는 맑스가 살고 활동한 영국이나 독일과는 달리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이지만 발전된 자본주의나라가 아니라 뒤떨어진 자본주의나라였기 때문에 맑스와 같이 과도적 단계인 사회주의단계를 짧게 보지 않고 비교적 오랜 기간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레닌도 맑스의 견해에 따라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제도를 때려부시고 정권을 잡기는 하였으나 아직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적 차이가 남아있는 그러한 사회가 물론 공산주의사회는 아니고 완전한 사회주의사회도 아닌 과도기적 사회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완전히 실현되려면 계급으로서의 자본가들을 때려부시는 것만으로써는 안되고 노동자와 농민간의 차이를 없애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레닌은 결국 노동계급이 자본가계급을 때려부신 다음 노동계급과 농민의 차이가 없는 무계급사회를 실현할 때까지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 또는 공산주의에로의 과도기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과도기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근본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도기에 대한 편향적 시각)

그런데 문제는 우리 동무들이 맑스와 레닌의 명제들을 그것이 나오게 된 시대와 역사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교조주의적으로 해석하는데 있으며 특히는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상응하며 서로 뗄 수 없는 것으로 보는데 있습니다.

물론 자본가계급을 때려부신 다음에 노동계급과 농민의 차이가 없어진 무계급사회를 실현하여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에로의 과도기가 끝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또한 모든 나라들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전 세계적 규모에서 혁명이 승리할 경우에는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상응하게 되고 과도기가 끝나면 프롤레타리아독재도 없어지며 국가가 조락하게 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나라 또는 일부 지역에서 사회주의가 건설되고 무계급사회가 실현되면 전 세계적 규모에서 혁명이 승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과도기는 끝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세계에 자본주의가 남아있는 한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없어질 수 없으며 더욱이 국가의 조락에 대해서는 말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관한 문제를 옳게 해명하기 위하여서는 맑스나 레닌의 명제에 교조주의적으로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사회주의건설의 실천적 경험에서 출발하여 이 문제를 해석해야할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라는 개념을 쓰고 있는데 그들은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에로의 과도기, 다시 말하면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로의 과도기라는 개념을 어떠한 의미에서도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회주의로부터 공산주의에로의 점차적 이행이라는 말은 쓰고 있습니다.

우경기회주의적 편향은 과도기를 노동계급이 주권을 쟁취한 때로부터 사회주의제도의 승리까지로 보며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 기간을 일치시키는데서 과도기가 끝나면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역사적 사명이 끝나는 것으로 보는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에 선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제1단계인 사회주의의 완전하고도 종국적인 승리가 이루어지고 공산주의의 전면적 건설에로 넘어가게 됨으로써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자기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였으며 프롤레타리아독재가 더는 필요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맑스-레닌주의와 어긋나는 우경기회주의적 견해입니다.

그러면 좌경기회주의적 견해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좌경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과도기문제를 이전에는 우경기회주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똑같이 보아오다가 요즘에는 공산주의가 몇대후에 가서야 실현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부터 출발하여 과도기를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로의 과도기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목적은 우경기회주의를 비판하려는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경적 편향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과도기문제에 대한 이런 견해를 우리는 옳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런 사람들은 다같이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를 보는데서 편향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도기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라고 불러도 좋고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에로의 과도기라고 불러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사회주의라는 것이 공산주의의 첫단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일부 동무들이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좌경기회주의적 견해에 따라 과도기를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까지로 보거나 우경기회주의적 견해에 따라 사회주의의 승리까지로 보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도기문제에 관한 논쟁의 중점은 사회주의에로의 과도냐, 공산주의에로의 과도냐 하는 술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도기의 계선을 어디에서 긋느냐 하는데 귀착됩니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계선을 잘못 그어가지고 혼돈되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우경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그은 계선이나 좌경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그은 계선이나 다 문제가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라는 것은 노동자와 농민의 차이가 없는 무계급사회일 뿐 아니라 정신노동과 육체노동간의 차이도 없고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 고도로 발전된 사회입니다. 그런 것만치 과도기를 이러한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까지로 보는 것은 사실상 계선을 긋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도기를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까지로 볼 뿐 아니라 한 나라에서는 공산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혁명이 다 되어야 비로소 공산주의에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세계혁명이 다 되기 전에는 과도기가 끝날 수 없는 것으로 됩니다. 만일 우경적 입장에 선 사람들이 과도기를 사회주의의 승리까지로 보면서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일치시켰다면 이런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까지로 보면서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상응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이 사람들의 이러한 견해는 지나친 것입니다.

또한 우경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과도기를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는 때까지로 보는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과도기를 사회주의제도의 승리까지로 보는 것은 국내적으로는 전복된 착취계급 잔여분자들과의 계급투쟁을 그만두고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와 평화적으로 살면서 세계혁명을 하지 않으려는 사상관점에서 나온 것입니다. 더구나 과도기가 끝나면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없어진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근본적으로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경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정한 것을 기계적으로 따라가도 안되고 좌경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정한 것을 표준잡아도 안됩니다.

(과도기에 대한 김일성의 견해)

우리는 어디까지나 주체를 철저히 세워 우리 나라 혁명과 건설의 실천적 경험에 기초해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우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문제에 대한 고전가들의 규정은 당시의 역사적 조건과 그들이 출발한 전제밑에서는 완전히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것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식민지농업국가의 매우 뒤떨어진 생산력을 물려받은 조건에서 사회주의혁명을 하였으며 세계에 자본주의가 아직도 상당한 힘으로 남아있는 환경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를 옳게 해명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우리의 이러한 구체적 현실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 나라에서 과도기를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까지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치며 사회주의까지로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고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되면 곧 과도기가 끝난다고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맑스-레닌주의창시자들이 말한 데 근거해서 문제를 보아도 그렇고 우리의 실지투쟁경험에 비추어보아도 그렇고 노동계급이 정권을 잡은 다음에 자본가계급을 때려부시고 사회주의혁명을 했다고 해서 완전한 사회주의사회가 건설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때든지 사회주의제도의 수립을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완전한 사회주의사회는 어느 때에 가서 실현될 것입니까?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는 노동계급과 농민간의 계급적 차이가 없어지고 중산층, 특히 농민대중이 우리를 적극 지지하게 되어야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농민들이 노동계급화되기 전까지는 그들이 우리를 지지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확고한 것으로 되지 못하고 어느 정도 동요성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사회주의 물질적 기초 강화의 필요성)

노동계급이 정권을 잡는 것은 사회주의혁명의 시초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완전한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자면 혁명을 계속 전진시켜 사회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튼튼히 닦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보고나 연설들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부 동무들에게 사대주의사상이 있다보니 우리 당 문헌은 잘 연구하지도 않고 남들이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데 많은 관심을 돌려왔습니다. 이것은 매우 옳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의 현실에 튼튼히 발을 붙이고 거기에서 모든 문제를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혁명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력이 매우 뒤떨어져 있으며 노동계급과 농민간의 차이는 사회주의혁명을 한 다음에도 매우 오래동안 남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오늘 세계에는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는 얼마 되지 않고 대다수 나라들은 우리 나라나 또한 우리와 유사한 나라와 같이 지난날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였던 뒤떨어진 나라들이거나 지금도 예속상태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을 한 다음에도 비교적 오랜 기간 생산력을 발전시켜야 무계급사회를 건설하고 사회주의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본주의발전단계를 정상적으로 거치지 못한 것만큼 자본주의하에서 마땅히 해결하였어야 할 생산력발전의 과업을 오늘 우리 사회주의시대에 와서 실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자본주의단계에서 해결하여야 할 임무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하여 결코 사회를 자본주의화하여 자본가를 우정 길러가지고 그것을 때려부신 다음 다시 사회주의를 건설하느라고 그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정권을 잡은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사회를 되살릴 것이 아니라 무계급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자본주의혁명단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이 임무를 사회주의제도밑에서 수행하여야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사회주의의 물질적 기초를 계속 튼튼히 닦아서 생산력을 적어도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리고 노동계급과 농민의 차이를 완전히 없애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농촌을 자본주의화한 정도로 기술혁명을 하여 농사일도 기계로 하고 화학화와 수리화도 하며 8시간노동제도 실시하여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하자고 우리는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동무들은 테제도 잘 연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 당 문헌에 근거하여 자기머리로 문제를 풀어나갈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의 중심사상은 무엇입니까? 테제의 기본사상은 농촌에서 기술혁명을 하여 농업생산력을 높이 발전시키는 것과 함께 사상혁명과 문화혁명을 하여 기술, 사상, 문화 영역에서 노동계급과 농민간의 차이를 점차 없애협동적 소유를 전인민적 소유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리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업들은 농민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도와 방조가 없이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우리 당의 방침은 공업의 튼튼한 토대에 의거해서 농민들을 물질기술적으로 도와주어 농촌에서 기술혁명을 실현하자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농촌에 뜨락또르도 많이 보내고 비료나 농약도 많이 대주어 화학화도 하며 수리화도 하여야 합니다. 이와 함께 노동계급은 농민들의 사상개조를 도와주고 문화적 영향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농민이 완전히 노동계급화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에서 농민을 노동계급화하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방도로 농민을 노동계급화하고 노동계급과 농민의 차이를 없애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대주의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당의 주체적 입장에 튼튼히 서서 농민의 노동계급화 문제도 풀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테제의 정신을 관철하고 사회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튼튼히 닦아 생산력을 높은 수준에까지 올려야 하며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없애고 인민생활을 유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지난날의 중산층을 완전히 쟁취할 수 있습니다. 중산층이 동요하지 않게 되고 그들이 우리를 완전히 지지하게 되기까지는 사회주의가 공고히 되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사회주의가 완전히 승리하였다고 볼 수 없습니다. 중산층이 우리를 적극 지지할 때에만 우리가 사회주의를 완전히 실현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주의건설을 전진시켜 중산층을 우리편에 완전히 쟁취하게 될 때, 노동계급과 농민의 차이를 없애고 무계급사회를 건설하게 될 때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의 임무가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도기는 무계급사회 달성 때까지)

이와 같이 좌우경적 편향을 가진 사람들과는 다르게 과도기의 계선을 무계급사회까지로 긋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고 사회주의개조가 실현된 다음 노동계급과 농민의 계급적 차이가 없어질 때까지를 무슨 사회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물론 과도기에 속하기는 하지만 착취없는 사회인 것만큼 사회주의사회라고 불러야지 달리는 부를 수 없습니다.

물론 과도기가 끝났다고 해서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로 곧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과도기가 끝나도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로 들어가자면 혁명과 건설을 계속해서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 수준에까지 생산력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과도기문제를 이와 같이 보는 것은 맑스와 레닌의 규정에 부합되는 것이며 새로운 역사적 조건과 우리 나라에서의 혁명과 건설의 실천적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완전한 결론은 아니고 초보적 결론입니다. 동무들이 이 방향에서 더 연구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과도기 이후에도 프롤레타리아독재는 필요)

과도기를 이와 같이 규정하여야 한다면 프롤레타리아독재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우에서 말한바와 같이 고전가들은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상응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 나라에서 무계급사회가 실현되고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지면, 다시 말하여 과도기의 임무가 완수되면 프롤레타리아독재가 더는 필요 없게 될 것입니까?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독재가 과도기의 전기간에 있어야 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과도기가 끝난 다음에도 그것은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까지 반드시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주의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하고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실현함으로써 농촌기술혁명을 수행하고 협동적 소유를 전인민적 소유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리며 농민을 노동계급화하고 노동계급과 농민의 차이를 없애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생산력수준이 각자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보수를 받는 공산주의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때에 가서도 계속 사회주의를 건설하여야 하며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계속 투쟁하여야 할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독재 없이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은 뻔합니다. 다시 말하여 과도기가 끝나도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까지 프롤레타리아독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세계에 자본주의가 아직 남아있고 한 나라 또는 일부지역에서 공산주의를 실현하였을 때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세계혁명이 아직 완수되지 못하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남아있는 조건에서는 한 나라 또는 일부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실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회는 제국주의의 위협을 면치 못할 것이며 외부의 원쑤들과 결탁한 내부의 원쑤들의 반항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 가서도 국가는 조락될 수 없으며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의연히 남아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나라 또는 일부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우리가 승인하는 한에 있어서는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이렇게 떼어보는 것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우리가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를 이와 같이 보는 것은 결코 맑스-레닌주의를 수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입장은 맑스나 레닌이 써놓은 명제들을 새로운 역사적 조건과 우리 나라의 구체적 실천에서 창조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조주의와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맑스-레닌주의의 순결성을 고수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롤레타리아독재와 계급투쟁과의 관계)

프롤레타리아독재와 관련하여 계급투쟁문제에 대하여 몇가지 간단히 말하려 합니다. 계급투쟁이 있는 한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있는 것이고 프롤레타리아독재는 계급투쟁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형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때려부시는 때의 계급투쟁과 자본주의를 때려부신 다음의 계급투쟁은 그 형태가 다릅니다. 이것은 우리 당 문헌에 이미 똑똑히 밝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것을 똑똑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좌경적 혹은 우경적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혁명을 할 때의 계급투쟁은 자본가들을 계급으로서 청산하기 위한 투쟁이고 사회주의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은 통일단결을 목적으로 하는 투쟁이며 그것은 결코 사회성원들이 서로 반목질시하기 위해서 하는 계급투쟁은 아닙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는 계급투쟁을 하되 통일과 단결을 목적으로 하여 협조의 방법으로 계급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은 사상혁명이 계급투쟁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농민을 노동계급화하기 위하여 농촌을 협조해 주는 것도 계급투쟁의 한 형식입니다. 왜냐 하면 노동계급의 국가가 농민들에게 기계도 만들어주고 화학비료도 대주고 수리화도 해 주는 목적이 구경은 농민을 계급으로서 없애고 완전히 노동계급화하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급투쟁을 하는 목적은 농민을 노동계급화하여 계급으로서의 농민을 없앨 뿐 아니라 지난날의 인텔리와 도시소자산계급을 비롯한 중산층을 혁명화하여 노동계급의 모양대로 개조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계급투쟁의 주요형식입니다.

또한 우리 제도하에서는 외부로부터 반혁명세력의 파괴적 영향이 들어오며 내부에서 전복된 착취계급의 잔여분자들이 준동하기 때문에 그들의 반혁명적 책동을 진압하기 위한 계급투쟁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 농민, 근로인텔리들의 통일과 단결을 목적으로 협조의 방법으로 그들을 혁명화하고 개조하는 계급투쟁의 기본형식과 함께 외부와 내부의 원쑤들에 대하여 독재를 실시하는 계급투쟁의 형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사회에서 계급투쟁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연히 계속되며 다만 그 형식이 달라질 뿐입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계급투쟁문제를 이와 같이 보는 것은 완전히 옳은 것입니다.

(인텔리의 혁명화)

계급투쟁문제와 관련하여 인텔리의 혁명화문제에 대하여 몇마디 더 강조하려 합니다. 우리가 아직도 인텔리를 혁명화하기 위한 방도를 완전히 세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텔리를 혁명화하기 위하여 그들을 공장에 보내어 노동자들과 같이 섞어 일하도록 해봤는데 그것이 꼭 좋은 방법인가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가 인텔리를 양성한 것은 그들을 글도 씌우고 과학과 기술도 연구하게 하고 교원도 시키자고 한 것인데 공장에 보내어 노동을 시킬 바에야 처음부터 노동자로 만들 것이지 무엇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서 그들을 키우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방법도 신통한 것은 못됩니다.

물론 인텔리를 노동자들에게 접근시켜서 노동자들의 조직성, 강의성 그리고 그들이 육체노동으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헌신성을 배우도록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인텔리혁명화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작가들이 공장에 적게 나간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떤 작가들은 공장에 가서 노동을 하고도 그리 큰 발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에 보내서 노동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인텔리를 혁명화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당생활을 비롯한 여러 가지 조직생활을 강화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일부 인텔리들은 당생활을 비롯한 여러 가지 조직생활을 강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조직생활에 잘 참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생활을 강화하고 조직생활을 하면 마치도 자유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간부들가운데도 당정책을 어기는 동무들은 역시 당생활을 잘 안하고 당학습을 잘 안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중앙당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당생활을 강화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고 나와도 배운 것을 잘 써먹지 못하며 혁명적으로 일하고 생활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텔리를 혁명화하기 위하여서는 그들이 혁명적 조직생활을 잘하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당세포생활을 강화하며 안다고 자랑하지 말고 당학습을 잘하여 혁명적 사상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또한 비판받기를 두려워하거나 남을 비판하기를 꺼려하지 말고 비판과 호상비판을 강하게 하며 조직규율을 엄격히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혁명화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당이나 또는 어떤 사회단체의 조직생활에서 집단주의사상을 길러야 하며 조직에서 혁명과업에 대한 엄격한 분공을 받고 그것을 어김없이 실천하는 혁명적 기풍을 가져야 합니다. 당원들과 맹원들은 당정책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그를 선전하여야 하며 당정책대로 혁명과업을 꼭꼭 실천하는 혁명가가 되어야 합니다. 혁명가란 참다운 공산주의자입니다. 공산주의자는 결코 자기만 위하는 이기주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습니다. 혁명가들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일하며 생활하는 공산주의적 기풍을 가져야 하며 노동계급과 전체인민을 위하여 일하는 당성, 계급성, 인민성으로 단련되어야 합니다.

결국 인텔리들이 당조직생활을 비롯한 모든 조직생활을 잘 안하면 못쓰게 되고 맙니다. 이러한 실례는 많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오랜 인텔리거나 새 인텔리거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자유주의와 소부르조아사상을 없애고 자신을 혁명가로 단련하기 위하여 당조직생활을 비롯한 여러 가지 조직생활을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나는 동무들에게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이만하면 당대표자회문헌연구과정에서 논의된 문제들이 대체로 인식되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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