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30일

통일여명 편집국

 

 

태양의 수호성, 민족의 어머니 3

 - ≪태양의 수호성, 민족의 어머니≫

통일여명 편집국 6-2-13

 

 

차 례

 

첫 민주선거의 날에 / 새 정권이 탄생하던 나날에 / 백두산 여장군의 염원

5.1절 경축행사준비의 나날에 / 첫 여자기술학교의 탄생

몸소 열어주신 돌격로 / 능숙한 정황판단 / ≪혁명양식≫

동지를 위해 걸으신 밤길 / ≪하얗게 쓸린 귀밀 쌀≫ / 피바다를 잊지 말자

백두의 여장군의 기지 / 민중의 딸이라고 하시며 / 몸소 씨앗을 뿌리시며

다그치신 행군 길 / 잊지 못할 설날에 / 항일전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한 알의 옥수수를 두시고도 / 예견성 있게 취해주신 조치

스키훈련의 나날에 / 경위대원들과 나누신 담화

어린이들을 위해 바치신 겨울밤 / 무기를 소제하듯 / 첫 여성낙하산병

위대한 공헌 / 한 벽돌공장에 깃든 이야기 / 스스로 지키신 규정

 

첫 민주선거의 날에

반만년 민족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주선거를 실시하게 된 1946년 11월 3일이었다.

이날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여사께서는 평양시 중구 중성선거구에서 역사적인 첫 민주선거에 참가하셨다. 항일의 여성영웅으로 그토록 명성이 자자한 김정숙여사를 모시고 선거에 참가하게 된 유권자들의 감격과 기쁨은 끝이 없었다. 흥겨운 농악이 선거장에 울려 퍼지고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며 선거를 경축하고 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 애국의 한 표를 바치고 나오시자 군중들은 환호를 올리며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삽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여사를 에워쌌다. 여사께서는 그들의 환호에 따뜻이 답례를 보내시며 뜻깊은 연설을 하셨다.

≪김일성장군님의 영도 밑에 우리나라 공산주의자들은 인민이 주인이 된 정권을 세우기 위해 피 어린 투쟁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 경사로운 이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는 참다운 공산주의자들과 혁명선열들에 의해 이루어진 이 성과를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민주권을 더욱 공고 발전시키기 위해 장군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새 조선 건설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계속해서 지난날 정권이 무엇인지, 선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의 노동자, 농민들이 오늘은 선거에 참가해 자기 의사를 표명할 수 있고 각급 정권기관에 위원으로 선출되어 나라 일을 의논할 수 있게 된 데 대해 긍지 높게 말씀하셨다.

군중들은 저마다 발돋움을 하며 나라의 주인 된 자각과 애국의 열정을 가슴깊이 심어주시는 김정숙여사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러는 그들을 정겹게 둘러보시며 ≪오늘 선거에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우리 여성들이 당당한 유권자로 참가했고 또 많은 여성들이 각급 인민위원회 위원후보자로 추천되어 선출됐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의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경사스러운 일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뜨겁게 호소하셨다.

≪모든 여성들은 김일성장군님의 이 크나큰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건국의 터전에 더 많은 땀을 흘립시다!≫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하신 이 격동적인 연설은 오늘도 우리 겨레의 가슴마다 깊이 간직되어 있다.

새 정권이 탄생하던 나날에

혁명의 위대한 어머니 김정숙여사께서는 너무도 일찍 우리 곁을 떠나셨기에 민중주권을 다지는 선거에 많이 참가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새 정권의 탄생과 그 강화 발전을 위해 몇 번 안 되는 선거 때마다 영원불멸할 자국을 남기셨다.

항일의 나날 장재촌 유격구에서 인민혁명정부수립을 위한 사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때의 일이다.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어느 날 구 정부(아직 소비에트정부로 남아 있었다.)의 한 일꾼을 만나기 위해 그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셨다. 그 일꾼과 함께 그동안 인민혁명정부수립을 위한 사업과정에 대해 의견을 나누시던 여사께서는 아직 유격구의 일부 사람들이 새로 세우게 될 인민혁명정부의 성격과 사명을 잘 알지 못하고 있더라고 하시면서 그에 대한 해설선전사업을 자신에게 맡겨줄 것을 제기하셨다.

순간 구 정부 일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수립될 새 정권에 대해 자기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게다가 혁명대오 안에 잠입한 종파사대주의자들과 좌경기회주의자들은 좌경적이며 그릇된 정권노선들을 유포시키면서 일체 사적 소유를 부인하고 반일적인 경향을 가진 부농들과 중농들의 토지와 집짐승까지 몰수하는 행태를 보였다.

구 정부 일꾼은 잠시 망설였다.

김정숙여사의 혁명적 풍모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나 자기들도 어쩌지 못하는 그 어려운 일을 선뜻 맡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속마음을 헤아려 보신 듯 백두의 여장군께서는 조용히 웃으시며 ≪그럼 오늘 저녁부터 선전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날 저녁 장재촌 학교의 크지 않은 두 칸 짜리 교실에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 반일자위대원들까지도 터질 듯이 다 모였다. 남달리 아는 것도 많고 인정도 깊으며 노래도 잘 부르시는 김정숙여사께서 인민혁명정부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는 소식이 완고한 노인들까지도 자리를 차고 달려오게 했던 것이다.

연탁에 나서신 백두의 여장군께서는 ≪새로 서게 될 인민혁명정부는 노동자, 농민은 물론 각계각층의 광범한 반일대중이 다같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책들을 실시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인민혁명정부의 정강에 대해 알기 쉽게 차근차근 해설해주셨다.

≪…인민혁명정부 통제구역 내에 있는 모든 노동자, 농민, 유격대 병사, 지휘관 및 학생, 상인 기타 반일, 반만, 반제 대중 및 그들의 가족은 남녀, 종족, 종교신앙의 차별 없이 다같이 혁명정부의 공민으로서 평등권을 가지며 16살 이상은 모두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게 됩니다. …≫

너무도 구수하게 이야기하기에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는 자기 집 송아지 문제까지 제기했다. 사연인 즉 그 집에서 지주 놈의 ≪윤두소≫를 길러주고 그 값으로 송아지를 받았는데 앞으로 새 정부가 서면 송아지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웃음을 지으시고 ≪인민혁명정부는 인민들이 피땀으로 마련한 재산은 무엇이나 철저히 보호해드린다≫고 하면서 그 여인이 고마운 새 정부에 대해 잘 알도록 일깨워주셨다. 그리고는 ≪앞에서 해설한 인민혁명정부의 정강은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대중의 이익을 철저히 옹호할 뿐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권리, 안정된 생활조건을 담보하는 가장 민중적이며 혁명적인 정강≫이라고 다시금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분은 그 후에도 낮에 밤을 이어 군중들 속에 들어가 강연, 해설, 담화 등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주석님께서 내놓으신 인민혁명정부노선에 대해 널리 해설 선전하셨다. 항일의 불길 속에서 새 정권이 탄생하던 나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바치신 불타는 충성심은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 있다.

백두산 여장군의 염원

광복조국의 첫 기슭에서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하신 김정숙여사의 말씀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자, 기술자들이 없어서 건국사업을 더 빨리 못하고 있습니다. 기차가 있어도 기관사가 없어서 짐을 실어 나르지 못하고 공장을 돌리려고 해도 기술자가 없습니다. …누가 멎어 있는 공장을 돌리고 숨죽은 용광로에 불을 지펴야 하겠습니까?≫

어느 공장에서 주석님께 큰 기술자는 그만두고라도 도면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보내달라고 눈물겨운 편지를 보내왔다고 그리도 절절하게 호소하시던 어머님의 숭고한 영상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정녕 잊을 수 없다.

오늘 인공위성 ≪광명성 1호≫의 성과적 발사에 이어 30만 배 전자현미경 완성과 산소열법에 의한 철 생산방법의 완성 등 과학기술의 포성을 날마다 쏴 올리고 있는 이북의 과학자, 기술자들의 장한 모습을 어머님께서 보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여사께서 광복된 조국 땅에서 일하신 기간은 4년밖에 되지 않았다. 너무도 짧은 나날이었다. 하지만 부강한 자주독립국가건설과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을 위해 그분이 바치신 심혈과 노고가 그 얼마인지 모른다. 그 나날에 주석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요즘 보고가 올라오는 것을 들어봐도 정숙 동무는 인민들 속에 들어가 내가 풀자고 생각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무척 애쓰고 있소.≫

김정숙여사께서 함경북도 일대에서 사업하시던 1945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그분은 이날 청진역을 찾으셨다. 철도복구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역 구내는 말이 아니었다. 한쪽에는 일제 놈들이 도망치면서 파괴해버린 화차들과 유리가 깨진 객차들이 널려 있었다. 끊어진 레일과 침목이 여기저기에 나뒹굴었다.

마중 나온 철도일꾼들과 함께 이런 어수선한 역구내며 작업장을 돌아보시던 여사께서는 그들에게 기관사는 몇 명이며 기관차를 수리할 수 있는 기술자는 몇 명이나 되는가를 알아보셨다. 일꾼들로부터 기관사는 몇 명 없고 조수를 한 사람들과 기관차 수리를 하던 사람들이 얼마간 있을 뿐이라는 보고를 받으시고 잠시 깊은 사색에 잠기셨던 여사께서는 원래 일제 놈들이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기껏해야 조수나 수리공으로밖에는 쓰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지금 형편에서 그만한 기술자를 가지고 있는 것도 다행이니 그들을 아끼고 사업조건과 생활조건을 잘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건국의 나날 김정숙여사께서는 과학자, 기술자, 지식인들을 더없이 귀중히 여기셨다. 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눈보라 세찬 험한 산길도, 비 내리는 진탕 길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찾아가 사랑을 주시고 힘을 주셨다. 역사의 그 나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겁던 마음을 털어 버리고 빛나는 새 삶을 받아 안게 되었던가.

1945년 11월 30일이었다.

이날 김정숙여사께서는 한 의사를 만나주셨다. 그 의사는 일제시기 독학으로 의학을 배워 개인병원을 차려놓고 경영하면서 일본 사람들을 치료해준 것 때문에 광복의 열기 속에서 번민으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뜻밖에도 백두산의 여장군을 만나 뵙는 영광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여사께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우리 같은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하고 솔직한 질문을 했다. 그때 여사께서는 그에게 ≪선생이 일제 때 의학공부를 하고 의사를 한 것이 무슨 죄가 된다고 그러십니까≫라고 하면서 ≪장군님께서는 일제 기관에서 복무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나쁜 사람들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기술을 가지고 있는 동무와 같은 지식인을 귀중히 여기신다≫고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시면서 일제 기관에서 복무한 지식인들 가운데서 민족적 양심을 저버리고 완전히 놈들의 개가 된 사람도 있지만 절대다수는 그렇지 않다고, 일제 놈들은 같은 의사라도 조선 사람에게는 심한 차별대우를 했다고 하시면서 ≪동무도 그런 차별대우 속에서 은근히 일제를 미워하고 가난한 조선 사람들을 동정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커다란 믿음도 안겨주셨다.

혁명의 어머니의 이런 불보다 뜨거운 사랑과 믿음이 없었더라면 광복 후 곡절 많은 운명의 길을 걸을 뻔했던 당시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두고 봐라. 공산당이 당신 같은 사람들을 그냥 두는지. 일시적으로 써먹고 내버린다≫고 떠든 적들의 악선전과 모략책동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적 양심을 지켜 건국사업에 헌신할 수 있었겠는가.

이남의 과학자, 기술자들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높이 받들어 모시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과 민족의 부강 번영을 이룩해 나가는 길에서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깡그리 바치려는 애국의 한마음으로 가슴을 불태워야 할 것이다.

5.1절 경축행사준비의 나날에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5.1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연길현 공청의 크지 않은 방안에서는 진지한 협의회가 진행되었다. 5.1절을 성대히 기념할 데 대한 주석님의 지시를 집행하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는 회의였다.

이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회의 참가자들의 일치한 의사에 따라 행사준비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셨다. 그리고 왕우구 북동과 차방동, 맥동을 비롯한 여러 마을들을 위생적으로, 문화적으로 꾸리면서 꽃 체조와 연예공연을 준비할 데 대한 분공을 받으셨다.

그날 저녁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함께 분공을 받은 여성에게 행사준비계획을 세워보자고 하셨다. 그러자 그는 자기는 이런 일이 처음이어서 아무런 의견도 내놓을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저 과업을 주는 대로 움직이겠다고 했다. 여사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더니 그럼 자신의 생각을 내놓겠다고 하시며 적 통치구역의 노동자, 농민 대표들이 와서 보고 감탄할 수 있도록 마을의 집들을 깨끗이 거두고 마을 어귀로부터 행사가 진행되는 북동학교 운동장에 이르는 길과 구 정부까지 가는 길에 석비레를 깔며 양 옆에는 나무들을 심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그는 두말없이 찬성했다.

다음날 왕우구 북동에서는 마을 공청원들과 아동단 핵심성원들의 협의회가 진행되었다. 여사께서는 회의에서 5.1절을 성대히 기념하자는 김일성장군님의 지시를 알려주신 다음 이것을 잘 집행하는 것은 공청원들과 아동단원들의 영예로운 임무라는 것을 강조하시면서 이미 세운 계획에 따라 공청원들에게는 마을을 가꿀 과업을 주시고 아동단원들에게는 분열행진연습과제를 주셨으며 연예대원들에게는 공연준비를 하면서 경축행사장에 놓을 꽃을 준비하는 과업을 주셨다. 온 유격구 마을이 부글부글 끓었다. 2∼3일 후에는 마을의 면모가 몰라보게 일신되었다. 차방동과 맥동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나날에 김정숙여사께서는 아동단원들의 분열행진훈련과 연예공연준비 등 경축행사준비를 위해 밤낮 없이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셨다.

특색 있게 준비되고 있는 꽃 체조 훈련장에도, 단련이 부족한 아동단원들이 애를 먹이곤 하는 분열행진 연습장에도 백두의 여장군께서 함께 계셨다. 다른 공청일꾼들이 손을 놓고 나가떨어진 어려운 문제들도 그분이 가시면 척척 해결되었다. 5.1절 경축행사준비는 모든 면에서 빈틈없이 진행되어갔다.

드디어 5.1절이 왔다.

5.1절 경축행사가 진행될 북동학교의 넓은 운동장은 이른 아침부터 연길현 안의 왕우구, 팔구, 의란구, 삼도만 등 각 유격구들에서 온 군중들과 적 통치구역에서 온 대표들, 참관단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일제를 타도하자!≫, ≪인민의 주권인 인민혁명정부 만세!≫, ≪전 세계 노동자들은 단결하라!≫, ≪토지개혁 만세!≫ 등 현수막들과 구호 판들이 행사장 여기저기에 세워졌다.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인민혁명정부의 일꾼들과 함께 주석단에 오르시자 기관총의 예총 소리가 북동의 산줄기를 울렸다.

경축보고에 이어 여러 대표들의 축하연설이 있고 뒤따라 진행된 장엄한 시위행진과 아동단원들의 분열행진,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꽃 체조, 경축의 밤을 뜻깊게 장식한 이채로운 연예공연…

경축행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아담하고 깨끗하게 가꿔진 마을과 빈틈없이 진행된 희한하고 훌륭한 행사를 보며 주석님의 의도대로 높은 수준에서 행사를 보장하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능란하고 세련된 정치활동에 탄복을 금치 못해했다. 그때 그분의 나이는 16살이었다.

첫 여자기술학교의 탄생

강성대국건설의 일선에서 놀라운 기적과 혁신을 창조해 가는 이북의 과학자, 기술자들 속에는 나라의 꽃으로 불리는 여성들도 많다.

여성과학자. 얼마나 고귀한 칭호인가.

지난날 일제 식민지통치하에서 천대와 무권리 속에서, 가정의 좁은 울타리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과학탐구의 길에 들어선 것은 조국이 광복된 후였다.

1946년 11월 하순이었다.

여성동맹 중앙위원회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백두의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여성일꾼들을 만나주셨다.

그들에게 회의와 관련해 귀중한 가르침을 주신 여사께서는 이날 ≪광범위한 여성들을 새 조국 건설에 적극 참가시키는 것은 오늘 여성동맹 앞에 나서고 있는 중요한 과업≫이라고 하시면서 그 실현을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주셨다.

여사께서는 주석님께서 얼마 전에도 지금 국가경제기관들에 속기사, 부기원, 타자수들이 많이 필요한데 이런 여성사무원들을 여맹에서 많이 양성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과업을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주석님의 가르침대로 여성사무원, 여성기술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여자기술학교를 평양에 먼저 시범적으로 내오자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순간 일꾼들의 가슴은 솟구치는 격정으로 끓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여자기술학교. 그것은 오직 주석님의 여성해방사상을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시는 백두의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께서만이 내놓으실 수 있는 획기적인 발기였다.

여자기술학교 창설문제는 온 나라 여성들의 관심과 기대 속에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모든 사업을 여맹 자체의 힘으로 해나가려니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반동 놈들의 방해책동이 더욱 심해갔다.

어느 날 여자기술학교 설립준비위원회 성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준비사업과정에 나타난 일련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들에게 학교를 내오는 목적에 대해 다시금 똑똑히 알려주시면서 놈들의 반동적 주장의 본질을 낱낱이 밝혀주셨다.

≪지금 일부 사람들이 여자들에게 기술교육을 주어 사회에 내보내면 여자들이 여성다운 데가 없어진다고 한다는데 그것은 여성들을 양순하고 나약한 가정주부로 만들려고 하는 매우 해로운 주장입니다.

이것은 본질에 있어서 여성들을 자기들의 무제한한 착취와 농락의 희생물로 만들려는 착취계급의 주장 그대로입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날 기술을 배우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기풍으로 되고 있는 지금 이것을 외면하는 것은 심히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하시면서 여성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그와 같은 그릇된 태도와 관점을 바로잡아주라고 간곡한 가르침을 주셨다. 그리고 학과를 설정하는 문제, 수업연한문제, 교육강령과 그 방법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구체적이고도 세심한 지도를 주셨다.

백두의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해 1947년 2월 1일, 마침내 첫 여자기술학교가 문을 열게 되었다.

오늘 이북의 여성 과학자, 기술자들이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갈 신심과 열의가 그처럼 높은 것은 그들은 자기들에게 오늘의 기쁨과 영광을 안겨주기 위해 광복 후 그 어려운 상황에서 첫 여자기술학교 창설에 온갖 심혈과 노고를 바치신 백두의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소 열어주신 돌격로

주석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승리적으로 조직 영도하신 수많은 전투들에는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불멸의 공적이 어려있다. 이와 관련해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런 말씀으로 뜨겁게 회고하셨다.

≪김정숙동무는 또한 남달리 총명하고 영리한 사람이었고 어렵고 복잡할 때에는 대단히 침착한 사람이었으며 한평생 조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한 아주 근면한 사람이었습니다.≫

항일혁명투쟁사의 한 갈피를 빛나게 장식하고있는 15도구전투 때였다.

당시 15도구는 일제가 매우 중시하던 ≪토벌≫거점의 하나였다. 적들은 여기에 많은 병력과 함께 14도구와 반절구, 국내의 신갈파와 호인, 혜산 등지에 배치된 무력을 아무 때고 출동시킬 수 있도록 대기시켜 놓았다. 그 때문에 전투는 시작부터 어렵게 진행되었다.

한 습격조가 서쪽 정문을 은밀히 통과하려는 순간 서산포대에서 맹렬한 사격이 시작되었다. 이때 몸소 전투를 지휘하시던 주석님께서는 적들의 주의가 서문에 쏠린 기회를 이용해 놈들로 하여금 갈피를 잡지 못하게 두개의 습격조를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도록 하시는 한편 사령부호위 기관총소대를 파견해 토성의 동쪽 모서리를 허물어버리도록 하셨다.

이날 전투에 참가하신 김정숙여사께서는 기관총소대원들과 함께 행동하셨다. 은밀하면서도 재빠른 동작으로 토성 밑에 이르신 여사께서는 단검으로 토성 벽을 파내셨다. 뒤따라 폭약을 가지고 소대장이 달려왔다. 그때 벌써 여사께서는 성벽 밑에 작지 않은 구멍을 내셨다.

소대장은 너무 기뻐 마음속 환성을 올리며 급히 폭약을 장진하려고 했다. 이때 여사께서는 ≪소대장 동무,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이제 보니 놈들이 강변 돌로 성을 쌓았군요. 그러니 밑돌 몇 개만 더 뽑으면 토성이 저절로 무너질 것 같아요≫라고 하시면서 더욱 기운차게 성 돌을 뽑아내시는 것이었다. 그분은 조급해하는 소대장에게 ≪폭파소리가 나면 적들의 주의가 여기로 쏠릴 수 있다≫고 하시면서 기본대오가 은밀히 성안으로 들어가도록 성을 조용히 무너뜨리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소대장도 대원들도 아차 하면 생명을 내대야 하는 위험한 순간에도 정황을 침착하게 판단하시고 행동하시는 백두여장군의 담력과 의지에 다시금 탄복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곧 김정숙여사를 도와 나섰다.

성 밑돌을 몇 개 더 뽑아냈을 때였다. 그렇게도 든든해 보이던 성벽이 물먹은 담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주석님의 직접적인 지휘 아래 아군의 승리로 끝난 15도구전투의 돌격로는 백두산 여장군의 지략과 담력에 의해 이렇게 열렸다.

능숙한 정황판단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1939년 6월 지하공작을 하시던 나날에 남기신 이야기는 오늘도 만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해준다.

어느 날 저녁 무렵 김정숙여사께서는 몇 명의 소조원들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서두수 강변 후인동 뒤쪽 산기슭에 이르셨다. 희미한 달빛 속에 마을이 보였다. 띄엄띄엄 널려 있는 유벌 노동자들의 합숙이며 화전농가들에 등불을 켠 집은 없었다.

전에 이곳을 몇 번 다녀간 적이 있는 한 소조원이 여사께 마을의 주민구성과 그들의 생활형편에 대해 말씀드렸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여사께서는 소조원들과 함께 하산해 강기슭으로 나가셨다. 강에는 나루터가 있었는데 사공에 대한 파악이 없어 그것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며칠째 많은 비가 내린 뒤여서 수량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소조원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들에게 어서 강을 건너자고 하시면서 ≪우리가 7∼8년이나 이역의 험한 강을 건너 다녔는데 제 나라에 와서 물이 좀 불었다고 주저해서야 되겠습니까. 내 걱정은 말고 어서 적당한 지점으로 강을 건너갑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안전한 도하지점을 찾아냈다. 쉽게 강을 건넌 일행이 마을 옆 골짜기에 붙으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마을의 어느 한 집의 개가 짖어대는 것이었다. 잇달아 온 마을의 개들이 따라 짖었다. 소조원들은 바짝 긴장해 산기슭에 붙어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누구 하나 내다보는 사람도 없었고 개 짖는 소리도 금방 멎었다. 그것은 소조원들을 긴장시켰다. 그러자 여사께서는 ≪이곳에서는 조직이 움직이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시며 어서 떠나자고 소조원들을 이끄셨다. 순간 소조원들은 의아해졌다. 정말 아무런 정황도 나타나지 않았다. 긴장감은 순간에 사라졌다. 그들은 김정숙여사를 따라 걸으면서 줄곧 방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했다.

김정숙동지가 이 마을이 처음이겠는데 어떻게 조직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아실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를 일이었다. 얼마 후 한 소조원이 이에 대해 여사께 물어보았다. 이때 여사께서는 웃으시며 그 전에 연길에서 활동할 때에 보니 밤에 통신연락을 다니는 사람들이나 비밀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실수로 개들이 짖게 되는 경우에 조직이 활발히 움직이는 곳에서는 누구 하나 내다보지 않고 저마다 자기 집 개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여 짖지 못하게 하곤 했다고 말씀하셨다. 소조원들은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풍부한 지하활동경험과 능숙한 정황판단에 탄복하고 또 탄복했다.

≪혁명양식≫

항일혁명투쟁은 말 그대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과 시련에 찬 노정이었다. 그러나 모진 굶주림도 겪어야 했던 그 나날 우리의 혁명선열들은 삶은 옥수수를 일등 가는 진미로 여기면서 웃으며 이 길을 헤쳤다. 그때 투사들은 삶은 옥수수를 ≪혁명양식≫이라고 즐겨 불렀다. 그 배경에는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남기신 잊지 못할 이야기가 깔려 있다.

유격구 방어전투 때였다.

적들은 영하 30도의 혹한에 떨면서도 이미 차지한 계선에서 좀처럼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놈들은 미친개 무리처럼 산을 싸다니며 도처에 불을 지르고 수색을 거듭했다. 그래서 유격구의 수많은 집들이 불에 타버리고 식량난까지 겹쳐 끼니를 때우는 날보다 건너는 날이 더 많게 되었다. 끼니를 때운다고 해야 마른 옥수수 이삭을 통째로 불에 구워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을 먹으니 혀가 갈라지고 혓바늘이 돋아서 먹기가 어려웠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유격대원들의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애타게 노력하셨다.

어느 날 깊은 숲 속에 가셨던 여사께서는 얼핏 보기에도 너덧 섬은 실히 됨직한 옥수수를 발견하셨다. 그것을 보시는 순간 무척 기쁘셨다. 그러나 방아가 없으니 옥수수를 찧어먹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 혀가 갈라지고 입안이 헤진 대원들 앞에 옥수수를 불에 구워 내놓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셨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셨던 김정숙여사께서는 가마에 맑은 샘물을 길어다 부으셨다. 그리고 옥수수 알들을 정성껏 안치고 삶기 시작하셨다. 대원들이 잡은 한 사발 남짓한 새우도 함께 넣어 끓이셨다. 잠시 후 가마에서는 옥수수 알을 삶는 냄새와 새우가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겼다. 한 시간 가량 삶으니 옥수수 알은 하얀 밥알이 튀어나오는데 보기에도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보름 이상 굶다시피 한 대원들은 환성을 올렸다. 그들은 차고 있던 법랑 컵에 삶은 옥수수를 받아 가지고 맛있게 들기 시작했다. 기뻐하며 맛있게 드는 대원들을 바라보시는 여사의 마음은 한결 가벼우셨다.

이때 한 지휘관이 싱글벙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정숙동무가 별식요리를 발명했는데 뭐라고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소? 정숙 동무가 이 별식을 만들었으니 어디 이름을 지어보시오.≫

얼굴에 담뿍 웃음을 띄우고 즐겁게 대원들을 바라보시던 여사께서는 ≪찧지도 않은 옥수수 알을 삶은 게 무슨 별식인가요. 배가 고플 때야 아무거나 다 맛있는 별식이지요≫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쨌든 우리가 가장 곤란한 때 혁명사업을 도왔으니 ≪혁명양식≫이라고나 할까요.≫

순간 대원들은 그 이름이 정말 좋겠다고 저마다 떠들썩했다. 그리하여 옥수수 알을 푹 삶은 이날의 별식이름이 ≪혁명양식≫으로 불리게 되었다. 유격구의 나날과 더불어 그 후 항일혁명투쟁의 전 기간 이 ≪혁명양식≫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에게 큰 힘을 준 귀중한 양식으로 되었다.

동지를 위해 걸으신 밤길

동지를 위해서라면 가시덤불길이라도 천리이건 만리이건 달려가시는 것이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고결한 혁명가적 풍모이다.

항일혁명투쟁시기였다.

어느 날 밤 김정숙여사께서는 길을 떠나셨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번갯불이 하늘을 째는 듯하고 천둥소리가 산발을 뒤흔들어 놓았다. 몰아치는 비바람은 걸음을 옮겨놓을 수 없게 했고 칠흑 같은 어둠은 앞길을 가려볼 수 없게 했다. 여사께서는 돌부리에 채워 발을 상하셨다. 길섶의 나뭇가지에 사정없이 옷자락이 째지기도 했다.

드디어 마을에 당도하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어느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그분은 조용히 문을 두드리셨다. 깊은 잠에 들었던 주인은 밖을 내다보다가 여사를 알아보고 소스라쳐 놀랐다. 빗물에 젖은 옷과 진창으로 험해진 신발… 묻지 않아도 모진 비바람 속에서 얼마나 큰 고생을 겪으셨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사께서는 창살 같은 빗속에서도 웃음을 짓고 계셨다.

그는 얼마 전의 일이 떠올라 죄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때 김정숙여사께서는 혁명조직을 복구하기 위해 한밤중에 그의 집을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그때 그와 일가족들은 깜짝 놀라며 바깥동정부터 살폈다. 여사께서는 안심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무척 난처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으로 왜 오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을 위해서도 그렇고 자신을 위해서도 날 밝기 전에 빨리 이 마을을 떠나주시기를 바랍니다.≫ 첫마디부터가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여사께서는 적들의 만행이 얼마나 심했으면 사람이 이다지도 변하랴 하는 생각으로 놈들에 대한 증오심이 끓어오르셨다.

어느덧 날은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여사께서는 사업을 일단 미루기로 하셨다. 여사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양심적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 우리는 장 동무가 공청원으로서 끝까지 혁명적 양심을 지니고 깨끗하게 살리라고 믿어요. 다음에 또 찾아오겠어요. …≫

그런데 김정숙여사께서 오늘 또다시 찾아오신 것이었다.

≪동무가 보고싶어서 왔어요. 난 그 후에도 동무의 생각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장씨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분을 방안으로 이끌었다. 식구들도 모두 그분께 마른 옷을 갈아 입힌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하면서 떨쳐 일어났다.

남자들도 홀로 걷기 무서워 두셋씩 짝을 지어서야 다니는 밤길을 혼자 몸으로 걸어 찾아오신 고마운 동지, 몇 달 전 그 밤엔 그렇게도 매정하게 문전에서 돌려보냈건만 못난 자기를 위해 또다시 어려운 걸음을 하신 여사의 뜨거운 사랑 앞에 장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정숙 동무, 나는 사람이 아니오. 나를 실컷 때려주시오.≫

귀중한 동지를 다시 찾은 감격에 김정숙여사께서도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셨다.

그 후 여사의 손길 아래 변함 없이 혁명의 길을 걸은 장씨는 마을의 파괴된 혁명조직을 복구하고 동지들을 묶어세우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하얗게 쓸린 귀밀 쌀≫

신흥촌 가까운 어느 마을에서는 ≪하얗게 쓸린 귀밀 쌀≫에 대한 이야기가 항일무장투쟁시기로부터 전설처럼 전해져오고 있다. 그것은 주석님의 가장 충직한 혁명전사이신 김정숙여사에 대한 잊지 못할 이야기이다.

김정숙여사께서 주석님을 모시고 부대와 함께 신흥촌이 가까운 한 마을에 내려가셨을 때의 일이다. 마을의 혁명조직에서는 주석님을 한 부녀회원의 집에 모셨다. 여사께서는 그 옆집에 배낭을 내려놓으시고 부녀회원의 집에 가시어 주석님의 저녁식사준비를 함께 하셨다. 주석님께서는 저녁식사 후에도 지하공작원들과 지방조직 책임자들에게 귀중한 가르침을 주시며 자정이 넘도록 사업하셨다. 여사께서는 그때까지 부엌에서 부녀회원의 일손을 도우시며 부녀회사업도 요해하시고 여성들을 교양하는 방법도 알기 쉽게 깨우쳐주셨다. 그러면서도 자주 밖으로 나가 조용히 집 둘레를 돌아보곤 하셨다.

이윽고 주석님께서 계시는 방에 불이 꺼진 후에야 그분은 숙소로 정한 이웃집으로 가셨다. 그때는 벌써 삼경이 가까운 깊은 밤이었다. 여사께서 자리에 막 누우시려는데 갑자기 밤의 고요를 깨뜨리며 쿵, 쿵 방아 찧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한밤중에 웬 방아소릴까?≫ 여사께서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셨다. 방아소리는 바로 주석님께서 주무시는 집 마당에서 들렸다. 부녀회원이 주석님께 아침식사를 지어드릴 귀밀 쌀을 찧고 있었던 것이다.

여사께서는 그의 정성이 더없이 고마우셨다. 그러시면서도 방아소리에 주석님께서 잠 못 드실 것이 걱정되셨다.

≪어머니, 다른 곳엔 방아가 없나요? 방아소리에…≫

부녀회원은 자기의 실수를 깨달았다.

≪늙은 것이 미련해서 그 생각을 미처 못했소. 저 마을 끝 집에도 방아가 있다오.≫

김정숙여사께서는 부녀회원과 함께 찧던 귀밀을 함박에 담아 이고 그곳으로 가셨다. 부녀회원은 얼마 안 되는 낟알이니 혼자서도 잠깐이면 된다고, 어서 들어가 쉬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여사께서는 그와 함께 방아를 찧으셨다.

≪이젠 된 것 같소.≫

부녀회원은 달빛에 귀밀 쌀을 한줌 들고 비쳐보며 말했다. 김정숙여사께서도 달빛에 쌀을 비쳐보시더니 ≪조금만 더 찧어요≫라고 하시며 부지런히 다시 방아를 찧으셨다.

어느덧 하늘 끝이 희부옇게 들릴 무렵이 되었다. 방아소리는 멎었다.

부녀회원은 놀랐다. ≪귀밀 쌀이 이처럼 희어지다니. 내 평생 귀밀 쌀을 찧어먹고 살아도 이렇게 해보긴 처음이오.≫

부녀회원은 귀밀 쌀을 정성껏 담으며 김정숙여사를 뜨거운 눈길로 우러렀다.

≪장군님을 받들어 모시는 그 정성이 놀랍소.≫ 그의 목소리는 감동에 젖어 있었다.

≪아니에요. 어머니의 정성입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밝게 웃으셨다. 그날 아침 여사께서는 밤새 찧은 햇귀밀 쌀에 강낭콩을 둔 밥을 지어 주석님께 드렸다.

김정숙여사께서 주석님을 모시고 이 마을을 다녀가신 먼 훗날에도 마을사람들은 밤이면 백두산 여장군의 그날의 모습을 그려보며 이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피바다를 잊지 말자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께서는 사람들과 후대들을 투철한 계급의식을 가지고 계급적 원수들을 반대해 견결하게 싸워나가는 투사로 키우는 데 깊은 관심을 돌리셨다.

1946년 정초 어느 날 김정숙여사를 만나 뵙기 위해 여러 명의 여성항일투사들이 찾아왔다. 그 자리에는 여러 명의 청소년들도 섞여 있었다. 여투사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항일전의 나날에 있은 가지가지의 일들을 회고했다.

한 여투사가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토벌가≫였다. 노래는 금방 합창으로 변했다. 한 학생이 여사께 그 노래를 가르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여사께서는 학생의 청을 기꺼이 들어주셨다. 그리고는 천천히 가사를 불러주셨다.

이어 김정숙여사의 선창에 따라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은 비감에 잠겨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사께서는 그들에게 ≪이 노래는 부닥친 참변 앞에서 눈물만 흘릴 것이 아니라 눈물을 거두고 새로운 삶의 길, 투쟁의 길을 찾아서 싸워나가자는 것을 호소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슬픈 감정을 밑에 깔면서도 그것을 의지의 힘으로 이겨나가는 혁명가의 신념이 넘쳐나게 불러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자라나는 후대들의 가슴속에 피눈물나는 지난날을 잊지 말고 계급적 원수들과 견결히 싸워나가야 한다는 뜻을 깊이 심어주시는 김정숙여사이셨다.

그 후 어느 날 김정숙여사께서는 이 노래를 자주 부르는 한 학생에게 그 노래가 그렇게도 좋으냐고 물으셨다. 학생은 노래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지금 학생들이 저마다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여사께서는 기뻐하시며 자신은 노래도 좋지만 피눈물에 젖었던 지난날을 잊을 수 없어 이 노래를 자주 부르게 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놈들은 나라를 잃고 살길을 찾아 이국 땅으로 간 우리 동포들을 마구 죽였어요. 온 동만 땅이 피바다에 잠기고 집을 잃고 혈육을 빼앗긴 동포들의 원한에 찬 울부짖음으로 차고 넘쳤어요. 노래에도 있는 것처럼 돈이 없고 무기 없는 우리 민족은 총에 맞고 칼에 찔려 쓰러지곤 했어요. 우리는 왜놈들의 이 치떨리는 만행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돼요.≫

백두산 여장군의 음성은 분노로 떨리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장군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 청년들은 피바다에 잠겼던 지난날의 조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오늘 남녘 땅에는 왜놈들을 대신해 미국 놈들이 기어들었어요. 우리는 망국노의 쓰라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떨쳐나서야 해요≫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청년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면서 이런 뜻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피바다를 잊지 말라, 이남 땅에 기어들어 또다시 우리 민족을 식민지노예로 만들려는 미국 놈들을 반대해 싸워야 한다는 뜻을 깊이 심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피바다를 잊지 말자!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그날에 하신 말씀은 오늘도 우리 변혁운동가들과 이남민중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백두의 여장군의 기지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는 참으로 용맹하셨을 뿐 아니라 슬기로운 항일의 전설적 위인이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영활 무쌍한 기지로 아무리 어려운 속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시며 주석님께서 맡겨주신 영예로운 혁명임무를 언제나 빛나게 수행하셨다.

1933년 5월에 있은 일이다.

반유격구를 창설할 데 대한 주석님의 구상에 따라 김정숙여사께서는 팔구 공청위원회로부터 적 통치구역의 여러 마을들에 나가 파괴된 공청조직과 대중단체들을 복구할 데 대한 중요한 임무를 받으셨다.

여사께서 동신평 마을에 내려가셨을 때였다. 당시 적 지역 치고 밀정이 없는 마을이 거의 없었다. 여사께서는 밀정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손발을 얽어맬 것을 결심하셨다. 그때 밀정들은 겉으로는 일제의 정책에 불평을 품는 척하면서 조직성원들에게 접근해 조금만 수상한 점이 보이면 경찰에 즉시 고해바치곤 했다.

여사께서는 촌장에게 놈들을 얽어맬 묘한 수를 가르쳐주셨다.

그리하여 어느 날 아침 촌장은 밀정들 속에서 가장 악질이라고 점찍어 두었던 자를 불렀다. 촌장은 긴히 토론할 일이 있어서 찾았다고 하면서 ≪요즈음은 시국이 어찌나 어지러운지 기를 펴지 못하겠다≫, ≪한쪽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들볶지, 한쪽에서는 유격대가 들볶지 어느 장단에 춤췄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미리 준비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벌써부터 촌장이 혹 공산당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던 그자는 신바람이 나서 ≪나도 동감이다≫, ≪유격대든 누구든 빨리 이놈의 세상을 왈칵 뒤집어엎었으면 좋겠다≫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드디어 밀정 놈이 낚시를 문 것이었다. 촌장은 계속해 ≪그래 자네처럼 이 세상이 뒤집혀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느냐≫고 다시 넌지시 물었다.

≪하, 많고 많지요.≫ 그자는 몇 명의 이름을 연거푸 내리 꼽았다. 신통히 가짜로 혁명을 동정하는 척하면서 밀정노릇을 해오던 놈들이었다.

≪음, 그들이 모두 일본 사람들을 미워하고 혁명을 동정해 나서는 사람들이란 말이지?≫

그 말에 더욱 신바람이 난 그자는 또 떠벌였다.

≪그렇구 말구요. 형님도 촌장을 하지만 민족적 양심은 잃지 마시오. 형님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짐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형님, 유격대는 언제 오는지 모르겠소? 무슨 공작원들 같은 분들이 마을에 왔다간 일은 없소?≫

드디어 더러운 개로서의 본색을 드러낸 셈이었다. 순간 촌장의 주먹이 놈의 얼굴로 연거푸 날아들었다.

≪이놈의 새끼, 늘 별러오던 참인데 진짜 빨갱이를 오늘에야 붙잡았다. 이놈, 당장 경찰서로 가자.≫

갑자기 눈에 불이 일게 벼락을 맞은 놈은 두 손을 비비며 제발 잘못했으니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촌장은 한참 더 승강이를 하다가 놈을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지난날 인정을 보아서 이번만은 놓아주겠는데 그 대신 연길 도로확장공사장에 부역을 나가서 그 못된 사상을 고치고 와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버선목이라 제 속마음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촌장의 지시에 불응하면 또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판이라 놈은 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이튿날 촌장의 지시에 따라 열 명이나 되는 자들이 한꺼번에 한달 간의 부역을 나가게 됐는데 바로 어제 그놈이 일러바친 ≪시국불평자≫들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누구보다 안달이 난 것은 그자들을 밀정으로 박아 넣은 팔도구 경찰분서 놈들이었다. 한 경관 놈이 촌장을 찾아왔다. 경관 놈은 그자들이 밀정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고 왜 그런 쓸만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10명씩이나 부역에 보냈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촌장은 ≪그런 위험분자들을 그냥 놔두면 마을이 공산화될수 있다≫, ≪앞으로 그런 자가 생기면 계속 강제노동처벌을 주겠다≫고 버젓이 대답했다 .그 말에 경관 놈은 더 어쩌지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마을의 촌장은 적 통치구역에서 밀정 놈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신 김정숙여사의 기지에 크게 탄복했다.

민중의 딸이라고 하시며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께서는 새 조국 건설시기의 나날을 근로하는 민중 속에서 보내시며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수많이 남기셨다.

1945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몇몇 일꾼들과 함께 청진의 한 공장을 찾으셨다. 패망한 일제가 달아나면서 많은 자재들을 불태웠다는 창고자리, 형체만 남은 건물, 끊어진 철도 인입선, 여기저기에 우뚝우뚝 서 있는 텅 빈 저장탱크… 공장의 파괴상은 참혹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러한 공장구내를 둘러보시고 나서 일꾼들에게 헐벗은 사람들에게 옷을 해 입히자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공장을 복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시면서 ≪지금은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 힘으로 공장도 복구하고 새 조국도 건설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일꾼들과 함께 공장구내를 돌아보시다가 유산직장이 자리잡고 있었던 곳에서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셨다. 노동자들은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를 자기들의 일터에서 뵙게 된 행운으로 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면서도 그분을 모신 자리가 너무 지저분해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했다.

여사께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헤아리시고 밝게 웃으시며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셨다. 그리고는 작업장에 꽂혀 있는 삽을 잡으셨다. 당황한 노동자들은 그분께서 험한 일을 하실까봐 급히 만류했다. 그러나 여사께서는 ≪동무들이 일하는 작업장에 왔다가 그냥 가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쌓여있는 돌더미를 쳐내기 시작하셨다.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를 우러르던 일꾼들과 노동자들은 진정을 담아 말씀 올리며 삽을 놓으시도록 몇 번이나 간청했다. 하지만 여사께서는 삽을 더욱 굳게 잡으시고 ≪지금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식사도 휴식도 잊으시고 일하시는데 제가 삽질하는 것이 무슨 큰일로 되겠습니까≫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도 여러분과 같은 인민의 딸이랍니다.≫

일꾼들도 노동자들도 격정에 목이 메어 그분을 우러르며 더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모두 서둘러 연징을 들고 격동된 분위기 속에서 일손을 다그치기만 했다.

몸소 씨앗을 뿌리시며

오늘 이북의 풍요로운 대지를 둘러보노라면 광복된 조국 땅에 씨앗을 뿌리시던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모습이 뜨겁게 안겨온다.

나라를 찾아주시고 땅을 주신 주석님께서는 광복된 조선의 첫봄을 증산으로 맞이하며 한치의 땅도 묵이지 말자는 구호를 제시하셨다. 이 땅의 농민들은 주석님의 호소를 심장으로 받들고 떨쳐나섰다.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역사의 그 봄날 대동군 고평면 신흥리(당시)를 찾으셨다.

땅의 주인 된 기쁨 속에 웃고 떠들며 일하는 농민들과 인사를 나누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이제는 평생소원을 풀었으니 모두 농사를 잘 지어보자고 하시며 호미를 드시고 밭에 들어서셨다. 따사로운 햇빛 넘치는 땅에서 그처럼 명망 높은 백두의 여장군을 모시고 씨앗을 심어 가는 농민들의 기쁨은 한없이 컸다. 여사께서는 농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시며 한나절을 한번도 쉬지 않고 씨앗을 뿌리셨다.

한낮이 돼서야 밭머리에 나오신 여사께서는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지주 집 머슴을 살았다는 한 농민은 자기 집에서도 장군님의 덕분으로 5천 평이나 되는 기름진 땅을 분여 받았다고 감격에 젖어 이야기했다. 그를 바라보시던 여사께서는 ≪땅의 주인이 되어 제 땅에서 농사를 실컷 지어보았으면 하는 농민들의 세기적 숙망을 풀어주신 분은 김일성장군님≫이시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장군님께서 주신 금은보다 더 귀중한 이 땅에 풍년씨앗을 뿌리고 만 풍년을 가꾸어 장군님의 크나큰 은덕에 증산으로 보답합시다.≫

백두의 여장군의 말씀은 농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간직되었다.

이때 한 농민이 요즘 분여 받은 땅을 도로 내놓게 된다는 말이 도는데 앞으로 땅을 영원히 가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사께서는 ≪농민들은 땅의 영원한 주인으로 됐습니다≫, ≪농민들의 절절한 숙망을 김일성장군님께서 풀어주셨는데 누구도 이 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셨다. 여사께서는 농민들에게 항일무장투쟁시기 김일성장군님께서 두만강연안일대에 유격근거지를 창설하시고 근거지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나누어주신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리고 유격근거지 민중이 장군님 주신 땅에 씨앗을 뿌리고 정성 들여 곡식을 가꾼 이야기며 일제≪토벌대≫ 놈들이 다 익어 가는 곡식에 불을 지르려고 발악할 때면 손에 총과 낫을 들고 싸우며 한 알의 낟알도 피를 흘리며 거두어들인 이야기도 해주셨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신 땅을 피로 지켜낸 유격근거지 민중의 이야기는 농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었다.

자신께서 직접 체험하셨던 유격근거지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김정숙여사께서는 땅을 빼앗긴 지주 놈들과 계급적 원수들의 책동에 대해 말씀하셨다. 당시 원수 놈들은 땅이 영원히 농민의 것으로 될 수 없다느니 뭐니 하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한편 견실한 농촌일꾼들과 핵심당원들을 살해하는 비열한 짓을 서슴없이 감행하고 있었다. 참으로 광복된 조선의 첫봄은 계급적 원수들로부터 주석님께서 주신 땅을 지키기 위한 날카로운 투쟁 속에서 흘러갔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둘레에 더욱 굳게 뭉쳐 장군님께서 주신 땅을 끝까지 지켜야 하며 농사를 잘 지어 건국의 기초를 튼튼히 닦아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백두의 여장군의 손길 아래 이북 농민들은 땅을 주신 주석님의 은덕을 더욱 깊이 절감했으며 부강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알곡증산에 떨쳐나섰다.

다그치신 행군 길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많은 나날을 주석님과 떨어져 무거운 혁명임무를 수행하셨다. 그 나날 여사께 있어서 제일 기쁜 날은 주석님을 만나 뵙는 날, 그분이 계시는 사령부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1936년 4월. 김정숙여사께서는 사령부와 멀리 떨어진 마안산 밀영에 계셨다.

어느 날 여사께서는 대원들과 함께 밀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적들을 물리치고 식량을 해결한 다음 밀영으로 돌아오기 위한 행군준비를 갖추고 계셨다. 그런데 이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밀영도 아닌 그곳에 주석님께서 친히 보내신 사령부통신원이 도착했던 것이다. 통신원을 본 순간 대원들은 달려가 그를 에워쌌다. 그리고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 물음에 통신원은 ≪동무들! 사령관동지께서 무송에 나오셨소. 사령관동지께서 동무들을 부르십니다≫라고 흥분된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통신원이 전해준 소식은 일시에 대원들의 가슴을 크나큰 격정으로 설레게 했다. 여사께서는 꿈만 같으셨다.

≪통신원 동무! 말해보세요.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사령관동지께서는 건강하십니까?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믿어지지 않는 듯 다시금 물으시는 여사의 물음에 통신원은 ≪사령관동지께서는 건강하시며 지금 마안산 밀영에서 소부대 동무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씀드렸다. 순간 여사의 눈가에는 기쁨의 눈물이 어렸다.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거듭 외우신 여사께서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염도 하지 않으시고 길떠날 차비를 다그치셨다.

소부대는 서둘러 행군 길에 올랐다. 단 하루도, 순간도 잊어본 적 없는 주석님의 자애로운 모습이었다. 여사의 발걸음은 날개라도 돋힌 듯 빨랐다. 그분의 뒤를 따라 험한 영, 깊은 밀림도 단숨에 넘고 헤치며 대오는 저녁 무렵에 벌써 마안산을 가까이한 어느 숲 속에 도착했다.

그때였다. 여느 때 같으면 무리한 행군을 한 상황에서 당연히 숙영명령을 내려야 할 지휘관이 그러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자 여기서 하룻밤 자겠소? 그냥 행군을 계속하겠소?≫라고 대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대원들의 시선은 일시에 김정숙여사께 쏠렸다. 여사께서는 ≪전 이 밤으로 그냥 떠났으면 해요. 사령관동지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여기서 숙영한다고 해도 잠들 것 같지 못해요≫라고 하시며 어서 행군명령을 내릴 것을 권고하셨다.

순간 대원들은 어느 때 어떤 조건에서도 오직 주석님에 대한 충성의 한마음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는 김정숙여사의 충효심에 다시금 탄복했다. 지휘관은 지체 없이 출발명령을 내렸다. 소부대는 다시 행군 길에 올랐다. 행군대오의 앞장에는 여사께서 서 계셨다. 그날 밤 백두의 여장군께서는 힘들어하는 대원들의 총까지 메다주시면서 행군 길을 다그치셨다.

잊지 못할 설날에

1937년 음력설 때 있었던 일이다.

이 시기 백두의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석님을 모시고 홍두산 밀영에 계셨다.

설을 며칠 앞두고 주석님께서는 무기수리소와 재봉대를 비롯한 후방성원들의 사업과 생활을 돌보시기 위해 급히 밀영을 떠나셨다. 그분은 밀영을 떠나시면서 산에서 처음 설을 맞는 신입대원들이 집 생각을 더하게 될 것 같다고 근심 어린 어조의 말씀을 하셨다. 여사께서는 주석님의 걱정을 풀어드리리라 결심하셨다. 그래서 끼니마다 절약해두신 밀가루로 만두도 빚고 후방지원물자로 들어온 찹쌀로 떡도 치셨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설날 아침이 밝아왔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밤새워 만드신 음식으로 푸짐한 설음식을 차려놓으셨다.

≪야, 굉장한 특식이다! 만두국도 있고 떡도 있고…≫

순간에 명절분위기로 흥성거렸다. 기쁨에 넘쳐 있는 대원들을 보시는 여사의 생각은 깊어졌다. 친부모들의 사랑이 세심하다고 한들 사령관동지의 사랑에 어찌 비기겠는가.

김정숙여사께서는 기뻐하는 그들에게 ≪사령관동지께서는 급한 일로 밀영을 떠나시면서 동무들과 함께 설을 쇠지 못하는 것을 매우 섭섭해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특히 산에서 처음 설을 맞는 신입대원들을 위해 설음식을 잘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의를 다하느라고 했지만 사령관동지의 그 뜻과 사랑을 백 분의 일도 담지 못했어요. 그러니 이 자리를 뜻깊게 여겨 변변치 않은 음식이라도 다들 들어주세요≫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푸짐한 아침식사로부터 시작된 밀영의 설날은 잊지 못할 하루가 되었다.

사격연습도 하면서 명절을 뜻깊게 보내고있을 때였다. 후방밀영에 가셨던 주석님께서 오신다는 연락이 왔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대원들은 눈 깜박할 사이에 무기와 배낭까지 메고 전투준비태세로 정렬했다.

어느새 밀영에 도착하신 주석님께서는 대오 앞으로 다가오셨다. 지휘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으신 주석님께서는 만족해하시며 앞에 서 있는 신대원에게 설날에 무엇을 해먹었느냐고 물으셨다. 그 대원은 김정숙여사께서 만두국과 찰떡을 해주셨다고 말씀 올렸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주석님께서는 ≪만두국과 찰떡을? 그렇지, 설날에야 만두국과 찰떡을 먹어야지≫라고 하시며 설을 아주 잘 쇠었다고 대단히 만족해하셨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기뻐하시는 주석님을 우러르는 김정숙여사의 얼굴에도 기쁨의 미소가 담뿍 어렸다.

항일전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언제나 인민들을 찾으시고 그들의 가슴속에 백두의 혁명정신을 깊이 심어주셨다.

1947년 11월 어느 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어느 한 피복공장을 찾으셨다. 하셔야 할 일, 가셔야 할 곳들은 많았으나 이곳부터 먼저 찾으신 김정숙여사이셨다.

그때 공장에서는 주석님께서 주신 피복생산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활기 넘친 공장의 모습은 그대로 부강조국 건설열의로 들끓는 새 조선의 모습이었다. 여사께서는 공장일꾼들에게 다정히 인사를 보내시며 공장의 생산능력이며 설비상태, 운영정형에 대해 요해하셨다. 그러시고 주석님께서 주신 과업을 무조건 제 기일 안에 수행해야 한다고 하시며 생산현장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작업대 위에 놓여 있는 옷들을 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바느질을 잘했다고 치하하시며 옷을 정성을 기울여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한 작업반에 이르신 여사께서는 저고리는 목 깃을 곱게 달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저고리의 미흡한 점들을 하나하나 짚으시며 일깨워주셨다.

일꾼들은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쩌면 그리도 피복에 대해 환하실까?!≫

그들은 여사께서 백두산을 넘나들며 격전장마다 명성을 떨치신 항일의 여성영웅이심을 알고 있었지만 그분이 항일의 피 어린 길을 헤치시며 손수 수많은 군복을 만들어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에게 안겨주셨다는 것만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여사께서는 일꾼들과 재봉공들을 둘러보시며 산에서 왜놈들과 싸울 때 유격대의 재봉대원들은 밤을 지새우면서 군복을 만들어 제때에 유격대원들에게 입히곤 했다고 감회깊이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는 제힘으로 천과 솜을 구해다 수동재봉기나 바늘로 군복을 짓곤 했는데 그것도 적들과 싸우면서 했습니다. 재봉바늘이 무뎌지면 갈아 쓰고 부러지면 돗바늘로 만들어 썼으며 한 오리의 실, 한 조각의 천도 아껴 썼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곤란이 겹쳤지만 유격대 재봉대원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해주신 날짜를 단 하루도 어기지 않고 군복을 만들어냈습니다.≫

백두산 여장군의 말씀은 공장 일꾼들과 재봉공들의 심금을 울리며 그들의 가슴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재봉공들의 눈앞에는 그처럼 간고하고 준엄했던 항일의 나날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헌신 분투하던 항일유격대 재봉대원들의 모습이 생동하게 안겨왔다.

맨주먹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혁명가를 부르며 한뜸 한뜸 누벼나간 여투사들. 추위와 굶주림은 언제나 생명을 위협했다. 원수들의 총검이 항상 뒤따랐다. 그러나 항일의 여대원들은 군복 천을 피로 물들이며 장군님께서 주신 임무를 한치의 어김도 없이 무조건 관철했다.

공장일꾼들과 재봉공들은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자기들의 일터를 찾으시고 항일혁명선열들의 혁명정신을 깊이 심어주시는 백두산 여장군의 숭고한 뜻을 다시금 깊이 간직했다.

공장은 세차게 들끓었다. 백두산 여장군께서 심어주신 백두의 혁명정신은 온 공장에 생산전투의 불길을 거세게 지펴 올렸다.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새 조국 건설의 나날 김정숙여사께서 이북 민중의 가슴마다 심어주신 백두의 혁명정신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영도 따라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우리 이남변혁운동가들의 심장에도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한 알의 옥수수를 두시고도

광복 후 새 조국 건설시기, 나라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한 알의 낟알, 1그램의 석탄, 한 조각의 천도 귀중했다.

주석님의 새 조국 건설구상을 받드시고 온 나라 방방곡곡을 찾으시던 나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민중의 가슴속에 국가와 사회 재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애국심을 깊이 심어주셨다.

1948년 가을 어느 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어느 한 식료공장의 원료창고를 찾으셨다. 창고 옆으로는 철길 인입선이 뻗어 있었다. 철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시던 여사께서는 걸음을 멈추셨다. 그리고는 한동안 철길 주변에 눈길을 돌리셨다. 철길 주변에는 옥수수 알들이 널려 있었다. 어떤 옥수수 알들은 이슬에 젖어 불어 있었고 푸른 싹이 돋아나 있는 것도 있었다. 그곳 주인들의 일본새를 능히 짐작케 하는 현상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일부 사람들 가운데는 나라 재산을 귀중히 여길 줄 모르고 되는 대로 일하는 일제 때의 고용살이 근성이 남아 있었다.

한동안 아무 말씀 없이 서 계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그전에도 옥수수 알들이 널려 있었는데 지금도 땅바닥에 널린 채 싹까지 나오고 있다≫고 못내 가슴 아파하셨다. 그러면서 ≪농민들이 애써 지은 낟알을 한 알도 허실하지 말고 잘 보관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셨다.

일꾼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러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여사께서는 ≪우리는 산에서 싸울 때 옥수수가 생기면 한알 두알 세어가면서 먹곤 했습니다. 그것마저 없어 며칠씩 굶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라고 하시며 ≪유격대원들은 왜놈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허기진 배를 그러안고 무섭게 싸웠다≫, ≪무엇 때문이었겠는가≫, ≪나라를 찾기 위해, 공장도, 땅도 다 우리 인민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어 ≪만일 산에서 굶으며 싸우다가 희생된 동지들이 이 흩어진 옥수수를 보게 된다면 얼마나 노여워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나라를 찾기 위해 걸음마다 피를 고이며 혈전을 벌인 투사들의 모습이 일꾼들의 가슴을 때렸다.

조국이 광복되기 전에 입에 풀칠조차 하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아오던 지난날의 생활을 돌이켜보는 일꾼들은 자책을 금할 수 없었다. 하루에도 많은 양의 알곡을 다루는 과정에 점차 낟알 귀한 줄 모르게 되고 한두 알의 옥수수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됐던 것이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양곡을 비롯한 나라의 모든 재산을 자기 재산처럼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새 조선의 주인다운 태도란 바로 이런 것을 놓고 하는 말입니다.≫

여사께서는 오랜 세월 일제와 지주, 자본가 놈들의 착취 밑에 등살을 벗기면서도 입에 풀칠조차 못하고 살아온 옛날처지를 노동자들에게 자주 이야기해줌으로써 그들이 지난날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그러면 한 알의 옥수수라도 저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다.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말씀은 일꾼들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되었다. 공장의 일꾼들과 노동자들은 백두산 여장군께서 몸소 자기들의 일터를 찾으시어 주신 가르침을 깊이 간직하고 나라의 주인, 공장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한 알의 옥수수도 귀중히 여기고 소중히 다룰 마음을 굳게 다지었다.

예견성 있게 취해주신 조치

조국과 민족을 위해 찬바람과 눈비를 맞으시며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그려볼 때면 새 조국 건설시기 주석님의 현지지도를 성과적으로 보장해드리시려고 모든 것을 다하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숭고한 모습이 가슴 뜨겁게 안겨온다.

새 조국 건설시기 주석님께서 삭주 지방으로 현지지도를 떠나시던 날이었다.

그분이 타신 승용차가 평양을 떠나 삭주 경내에 들어서려고 할 때였다. 맑던 하늘에 먹장 같은 구름이 덮이더니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져 내렸다. 댓줄기같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한치 앞도 가려보기 어려웠다. 길은 금새 물에 잠겼다. 일꾼들은 주석님을 모시고 차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렸다.

변덕스러운 산골날씨는 한참 소나기를 퍼붓더니 얼마 후 씻은 듯이 개였다. 주석님께서 타신 승용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 다시 멈춰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방금 전에 내린 소낙비에 길이 뭉텅 끊어져 나갔던 것이다. 일꾼들은 당황했다. 순간 일꾼들의 머릿속에는 평양을 떠나올 때 김정숙여사께서 실어주신 삽과 곡괭이 생각이 떠올랐다.

그날 삭주를 향해 출발하기 전이었다.

일꾼들에게 출발준비에서 미흡한 점들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신 김정숙여사께서는 급히 저택으로 들어가시더니 삽과 곡괭이를 들고 나오시는 것이었다. 일꾼들이 달려가 그것을 받아들고 이것은 무엇에 쓰려고 그러시느냐고 물었다. 여사께서는 의아해하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제 저녁 기상관측소에 알아보니 평북도 산간지방에는 오늘 오후에 소나기가 내릴 것 같다고 했어요. 산골 물에 혹시 길이 패일 수도 있으니 사전에 이런 준비를 해 가지고 떠나는 것이 안전할거예요.≫

김정숙여사께서는 전날 삭주까지 가는 노정과 기상조건까지 일일이 알아보셨던 것이다. 참으로 그 무엇으로써도 헤아릴 수 없고 견줄 수도 없는 참된 충신의 모습이었다.

여사께서 실어주신 삽과 곡괭이로 잠깐 사이에 길을 손질하고 다시 떠나게 된 일꾼들은 삭주로 가는 노정에서 여사의 세심한 보살피심이 얼마나 선견지명 있는 것이었는가를 심장으로 깊이 절감했다.

이렇듯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예견성 있게 취해주신 조치에 의해 주석님께서는 노상에서 지체되는 일이 없이 목적지에 이르시게 되었다.

스키훈련의 나날에

조국광복을 위한 최후결전을 준비하던 어느 해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진행한 군사훈련 중에는 스키훈련도 있었다. 누구나 스키를 처음 타보았기 때문에 몹시 힘들어했다. 맥을 놓고 주저앉으려는 대원들도 있었다. 그때마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들을 따뜻이 일깨워주시며 스키기술을 익히도록 하나하나 손잡아 이끌어주셨다.

어느 날 아침 한 대원이 매일같이 진행하는 10리 구간 달리기가 힘들어서 여사께 오늘 아침만은 좀 쉬자고 말씀드렸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친 때여서 그의 심정이 이해되셨는지 잠시 대원들을 둘러보시던 백두의 여장군께서는 ≪정말 쉬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도 갔다옵시다. 이런 힘든 고비를 넘기면서 훈련을 정상화해야 건강도 좋아지고 기술도 높아져요≫라고 하시며 대원들과 함께 그날도 끝내 10리 구간을 달리시고서야 돌아오셨다.

그 나날 김정숙여사께서는 스키훈련을 통해 의지를 단련하고 용감성을 키울 생각을 하지 못하던 일부 대원들의 편향도 바로잡아주셨다.

하루는 구릉지대에서 맹렬한 훈련을 하는데 마음이 약한 몇몇 대원들이 속도가 빨라지자 아예 주저앉아버리는 것이었다. 여사께서는 그들에게 같은 구간에서 두 번 세 번 반복훈련을 시키셨다. 여사께서는 ≪우리는 스키훈련을 통해 용감성을 키워야 해요. 스키를 타고 적들을 공격하다가 속도가 높아진다고 주저앉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훈련은 실전의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하시며 그들을 타일러주셨다. 그 말씀을 들으며 잘못을 뉘우친 대원들은 여사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마음을 다잡고 훈련을 맹렬히 진행했다. 그 과정에 대원들의 스키기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높아져갔다.

스키훈련 중간총화나 다름없는 소대집단스키훈련이 진행되던 날이었다.

100리 구간을 다녀와야 하는 힘겨운 스키행군이었다. 출발에 앞서 김정숙여사께서는 대원들에게 ≪오늘은 멀고 간고한 스키행군을 하게 되는 것만큼 집단주의정신을 높이 발양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서로 돕고 이끄는 기풍을 발휘해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돌아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스키행군이 시작되자 백두의 여장군께서는 마지막 조에서 대원들의 행군을 보살펴주시며 따라오셨다.

70리 가량 달리고 났을 때였다. 대오에서 떨어지는 동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사께서는 자신도 힘드셨지만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며 강의한 인내력을 발휘하도록 열정적으로 이끌어주셨다. 백두의 여장군께서는 그들에게 ≪일제와의 최후결전의 마당에서 모두 영웅이 될 때 동무는 낙오자가 되겠느냐≫고 하시면서 그들을 분발시켜주기도 하시고 맥이 없어 진땀을 흘리는 동무들에게 배낭에 간수하셨던 간식을 나누어주기도 하셨다.

여사와 함께 달린 모든 대원들이 끝끝내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제정된 시간을 훨씬 단축해 부대로 돌아왔다. 한다 하는 남자들 못지 않게 높은 성적을 거둔 여대원들에게 모두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여대원들이 행군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질서정연하게 달리면서 집단주의정신을 높이 발휘하며 행군한 데 대해 모두가 감탄했다. 그들은 스키훈련 하나를 통해서도 여대원들을 그토록 강의한 신념과 의지, 무쇠 같은 인내력을 소유한 용감한 여장부들로 키우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를 우러르며 격정을 금치 못했다.

경위대원들과 나누신 담화

조국광복 후 경위대를 항일의 넋을 이은 우리 혁명의 최정예부대로 키우신 것은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이룩하신 업적 중에서 가장 큰 업적중의 하나로 된다. 그 나날 여사께서 경위대원들이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 옹위하는 길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도록 따뜻이 일깨워주시며 하시던 말씀은 세월의 언덕을 넘어 지금도 우리의 귀가에 쟁쟁히 들려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광복 후에도 언제나 변함 없는 친위전사의 모습으로 수령결사옹위의 빛나는 모범을 보여주시면서 경위대원들이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숭고한 모범을 따라 배우도록 자주 일깨워주셨다.

어느 날 경위대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여사께서는 ≪지난날 항일혁명투사들은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우러러 모시고 장군님을 보위하는 것을 가장 큰 영예로 간주했다≫고 하시면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아무리 가열한 싸움이나 간고한 행군 때에도 언제나 사령부의 안전을 첫자리에 놓고 살폈습니다. 숙영지에 들면 맨 먼저 안전한 곳을 골라 사령부의 천막자리를 잡았으며 제일 강력한 기관총들은 언제나 사령부를 보위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그 시절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임무를 받고 떠나갈 때면 ≪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부탁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작별의 인사였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사령관동지께서 건강하십니까?≫하고 묻는 것이 상봉의 인사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셨다.

여사로부터 귀중한 가르침을 받아 안는 경위대원들은 격동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여사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을 보위하는 가장 영예로운 초소에 선 우리 경위대원들은 항일혁명투사들처럼 김일성장군님의 신변을 보위하는 데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고 간곡한 가르침을 주셨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경위대원은 누구보다도 김일성장군님의 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해야 하며 정치 사상적 각오가 높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정치학습에 대해서도 일일이 알아보셨다. 그리고는 당보학습을 잘할 데 대해 강조하시면서 ≪당보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매 시기 제시하시는 노선과 방침 그리고 여러 가지 국제국내정세가 실리는데 그것을 읽지 않으면 김일성장군님의 사상과 의도를 알 수 없고 결국 혁명전사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고 깨우쳐주시며 혁명적 학습기풍을 철저히 세우도록 이끌어주셨다.

그 시절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경위대원들이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 옹위하는 길에서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자기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도록 세심한 가르침을 주기도 하셨다.

경위대원들이 백발백중의 명사격술을 지니도록 그들의 사격훈련을 지도해주신 백두의 여장군께서는 어느 날 보초근무를 설 때 징후판단을 잘해 주석님의 신변을 튼튼히 보위할 데 대해 강조하셨다. 그분은 경위대원들에게 ≪노래에 박자와 소절이 있듯이 모든 소리에는 그에 고유한 고저장단이 있다≫고 하시면서 이런 내용의 가르침을 주셨다.

≪경위대원은 그 모든 소리 가운데서 우리 장군님을 알아보는 소리를 익히고 그에 훈련되어야 합니다. 김일성장군님의 체취가 풍기는 소리만 듣고도 장군님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밤에는 소리판단이 더 중요한 것만큼 밤에 들리는 소리에 대해 미리 익혀두어야 합니다. 한밤중의 사소한 소리도 가려들을 줄 알아야 생소한 소리를 즉시 가려내고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

이 모든 것은 수령결사옹위의 최고화신이신 김정숙여사께서 준엄하고 간고했던 항일전의 나날에 주석님을 보위하시면서 쌓으신 귀중한 경험이었다. 여사의 이렇듯 구체적인 지도와 보살핌 속에서 광복 직후 청소하던 이북의 경위대는 높은 정치 사상적 준비와 군사 기술적 준비, 강철같은 규율로 다져진 정예부대로 자라날수 있었다.

주석님께서는 경위대의 성장을 두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평양학원을 비롯한 모든 훈련소의 책임일꾼들에게 중앙경위대의 군무생활을 견학시키고 전체 군관학교들과 훈련소구분대들에 그 모범을 일반화하도록 하셨다.

광복 후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많은 품을 들여 수령결사옹위정신으로 키우신 강력한 경위대가 있었기 때문에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와 그 후 시기에도 혁명의 수뇌부를 철옹성같이 지켜낼 수 있었다.

그 나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 경위대원들에게 하신 귀중한 가르침들은 오늘 김정일장군님의 친위전사인 우리 변혁운동가들의 가슴에도 금문자로 아로새겨져 있다.

어린이들을 위해 바치신 겨울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위대한 혁명생애의 갈피마다 어린이들을 위해 바치신 겨울밤들만 해도 샐 수 없이 많이 새겨져 있다. 사나운 겨울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여사의 숭고한 동지애와 인간애 앞에서는 언제나 무맥할 뿐이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처창즈를 떠난 아동단원들이 내도산에 도착한 것은 어느 해 겨울이었다.

깊은 산중에서 추위에 떨며 고생을 하다보니 일부 아동단원들은 내도산에 도착하자 신열이 나면서 앓기 시작했다. 고열 때문에 가끔 의식을 잃는 아이들도 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정신 없이 앓고 있는 아동단원들을 걱정하시며 그들을 어느 한 집에 따로 있게 하셨다. 그리고는 밤을 새워가며 정성을 다해 간호해주시고 별식까지 만들어주곤 하셨다. 여사께서는 그들을 혁명의 대를 꿋꿋이 이어나갈 기둥감으로, 혁명동지로 여기셨다. 그때 여사께서는 너무 아파 아무 것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 아동단원들에게 좁쌀미음을 한술두술 떠 넣어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프다고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병에 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요. 그 먼길을 오면서도 끄떡없이 견뎌냈는데 이제 와서 병에 못 견뎌 쓰러지겠어요.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은 절대로 병한테 져서는 안 돼요.≫

엄하면서도 따뜻하게 타이르는 혁명의 어머님의 말씀을 새겨들으며 아동단원들은 친어머니의 품에 안긴 때처럼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여사의 극진한 보살피심을 받아 앓고 있던 아동단원들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게 된 어느 날 아침이었다. 밥상에 난데없는 생선국이 올랐다. 큼직큼직한 생선토막이 담겨 있는 국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엄동설한에 생선국을 보자 아이들은 모두 입맛이 당겨 밥상 앞에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영문을 알고 싶은 듯 주인집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눈시울을 찍으며 들려주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인 것이었다.

전날 밤 아이들이 잠에 들자 주인집 아주머니는 무심결에 여름이라면 산천어라도 잡아다 먹였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김정숙여사께서는 산천어가 어디에 많았느냐고 물으셨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 한 10여 리 내려가면 바위연못이 있는데 여름에는 거기서 잡는다고 하면서 얼음이 두껍게 얼어붙은 겨울에 거기서 산천어를 잡았다는 말은 못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신 김정숙여사께서는 그 밤으로 바위연못으로 달려가셨다. 아무리 사나운 날씨일지라도 혁명의 미래를 생각하는 여사께서는 그것을 문제로 삼지 않으셨던 것이다. 여사께서는 강추위 속에서 밤새도록 얼음을 까고 고생해가며 끝끝내 산천어를 잡으셨다.

이렇게 잡으신 산천어를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주시며 아이들에게 끓여주라고 이르신 여사께서는 물 초롱을 들고 어디론가 또다시 급히 나가셨다. 여사께서는 아동단원들이 생선국을 맛있게 먹고 났을 때에야 그 초롱을 들고 집에 들어서시었다. 그 안에는 뜻밖에도 개구리가 담겨 있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대뜸 ≪진창에 갔었구만! 그러다 큰일나겠어…≫라고 하더니 방금 길어온 얼음같이 찬물을 함지에 쏟고 거기다 무작정 김정숙여사의 신발을 신은 발과 손을 그대로 담갔다. 진흙 투성이가 된 신발이 얼마나 꽁꽁 얼었던지 얼마 후에 유리 같은 얼음이 겉에 돋아나면서 한 벌 뒤덮었다. 그제야 주인집 아주머니는 여사의 신발을 벗기고 발을 들여다보더니 이제는 됐다며 한시름 놓는 것이었다.

아동단원들은 김정숙여사의 지성이 깃든 산천어 국과 겨울나이를 하는 개구리를 먹고 금방 몸을 회복하게 되었다.

참으로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동지애, 인간애는 사나운 겨울의 추위도 맥을 추지 못하게 한 뜨겁고 열렬한 것이었다.

무기를 소제하듯

항일무장투쟁시기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부대 내에 세워진 규율과 질서를 자각적으로 지키도록 언제나 대원들을 교양하셨다.

남북만의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이 주석님의 부름을 받고 백두산근거지로 찾아오던 1936년 가을이었다.

주석님께서 친솔하시는 주력부대에 편입된 소부대의 일부 대원들 속에서는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생활을 질서 있게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현상이 있었다. 그런 현상은 작식대 일을 하는 여대원들 속에서도 나타났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부대에 급히 매복전투에 나갈 임무가 하달되었다. 그런데 작식대원들이 식사를 늦게 보장하는 바람에 부대의 행동에 지장을 주게 되었다. 하지만 일부 여대원들은 그런 급박한 정황에서 어떻게 식사를 보장하겠느냐고 생각하면서 교훈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아시게 된 김정숙여사께서는 부대에 남아 있던 대원들의 미숫가루를 모아 가지고 매복전투를 성과적으로 끝마치고 돌아오는 대원들을 20여리나 마중 나가셨다.

그날 저녁 김정숙여사께서는 작식대원들을 도와 매복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 온 대원들에게 푸짐한 식사를 보장하시고는 이어 다음날 아침에 밥을 지을 쌀을 씻어 놓으신 다음 밥 짓는 그릇들을 깨끗이 닦기 시작하셨다. 이때 한 작식대원이 여사께 이제 조금 눈을 붙였다가 금방 일어나서 밥을 지어야 할 그릇인데 닦지 않아도 별일 없지 않겠느냐고 말씀 드렸다.

여사께서는 그에게 ≪저녁에 밥을 지은 그릇으로 다음날 아침에 밥을 지어도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시며 ≪그러나 일단 식사가 끝난 다음에 그릇을 닦는 것은 제정된 질서입니다. 질서는 누구도 어길 수 없습니다. 작식대원은 사수가 총을 쏜 다음에 무기를 소제하듯이 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한 다음에는 곧바로 작식도구들을 닦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하기 위한 작식대의 질서이고 규율입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계속해서 ≪이런 질서와 규율의 요구대로 어제 저녁에 미리 작식준비를 철저히 갖추어 놓았다면 오늘 아침과 같은 정황에서도 얼마든지 부대의 출동에 지장을 주지 않고 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언제나 사령관동지의 사상과 의도대로 살며 싸우려면 우선 제정된 규율과 질서를 잘 지켜야 합니다≫라고 따뜻이 타일러주셨다.

그 후 작식대원들은 그 어떤 정황에서도 부대의 식사를 보장한 다음에는 금방 그릇도 닦고 쌀도 씻어서 전투행동에 지장이 없게 작식대의 규율과 질서를 철저히 지켜 나갔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 나날에 작식대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에게도 주석님께서는 규율이 있고 절도가 있는 생활 속에서만 부대의 전투력이 강해진다고 하시면서 부대 내에 세워진 규율과 질서를 자각적으로 지킬 데 대해 늘 강조하신다고 깨우쳐주셨다. 그러시면서 사령관동지께서 제정해주신 규율과 질서를 자각적으로 지켜나가야 한다고 일깨워주셨다.

첫 여성낙하산병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자신의 한 생을 통해 땅 위에만 전설적 위인의 자국을 새기신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첫 여성낙하산병이 되어 백두의 여장군으로서의 용맹한 모습을 저 푸른 영공에 별처럼 새기셨음을 우리는 뜨겁게 추억하게 된다.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준비 있게 맞이하기 위해 훈련기지에서 활동할 때였다.

주석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모든 지휘관들과 전사들이 정세의 요구에 맞게 현대적인 군사기술을 튼튼히 소유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셨다. 사령관동지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공격작전, 상륙작전 등 정규군의 현대전법으로 튼튼히 무장하기 위한 군사학습과 훈련에서 언제나 앞장에 서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낙하훈련에서도 남다른 모범을 보이셨다.

남자들도 힘겨워하는 낙하훈련은 여성대원들에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주석님의 명령지시에 대한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을 지니고 계시는 여사께서는 조국이 광복될 그날을 한시라도 앞당길 일념으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셨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진행하는 예비훈련에 남자대원들과 함께 여대원들 모두가 자신감을 가지고 참가하도록 세심히 이끌어 주시는 한편 실제 자신의 모범으로 그 묘리를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다.

마침내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올라 낙하하게 된 날이었다.

비행기가 우렁찬 동음을 울리며 동체를 부르르 떨더니 대지를 차고 하늘로 날아 오르자 여대원들은 커다란 흥분과 긴장에 휩싸였다. 비행기가 푸른 산이며 강과 들을 아득히 아래로 밀어 버리며 창공의 대기 속으로 더 높이 날아오르자 여대원들의 얼굴에는 더욱 긴장된 기색이 흘렀다.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맨 앞자리에 있는 여대원에게로 다가가셨다. 그리고는 먼저 낙하하기로 되어 있는 그 여대원에게 자신의 손수건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동무의 손수건과 바꿔요. 우리 모두 무사히 착륙할 약속으로 말입니다. 땅에 내린 다음 다시 바꿉시다.≫

≪고맙습니다.≫

그 대원은 자기의 초조하고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혀 주시려는 그분의 심정이 헤아려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윽고 비행기가 낙하지점에 접근했다. 비행기동체의 문이 열리고 남자대원들이 뛰어내리자 이번에는 여대원들의 차례가 되었다.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먼저 낙하하기로 되어 있는 여대원의 앞으로 나서시면서 자신께서 먼저 낙하하시겠다는 결심을 밝히셨다. 어느새 그분은 비행기 안에 늘여진 쇠줄에 자신의 낙하산고리를 걸어 놓으셨다.

≪아니?!≫

맨 앞에 앉아 있던 여대원만이 아니라 모두가 소스라쳐 놀랐다. 낙하에서는 맨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 낙하병의 행동이 뒤이어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심리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자신의 실제 모범으로 다른 모든 여대원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아 주시려고 나서신 것이었다.

잠시 후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발을 굴러 힘껏 허공 중으로 몸을 날리셨다. 그분의 전신이 하나의 큰 돌덩이처럼 곧추 떨어져 내렸다. 대원들은 두 손을 모아 쥔 채 눈을 감았다. 이어 ≪야!≫하는 환성이 터졌다. 그분의 낙하산이 활짝 펴진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불과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날렵하면서도 정확한 동작으로 낙하산을 조절하시면서 지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낙하지점을 향해 내려가셨다. 참으로 아름답고 장쾌한 모습이었다. 그 뒤를 이어 힘과 용기를 얻은 여대원들이 하나둘 차례로 뛰어내려 수많은 낙하산들이 하얗게 퍼졌다.

≪전 오늘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낙하산을 타고 그대로 조국 땅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착륙지점에 한달음에 달려와 축하하는 대원들에게 우리나라의 첫 여성낙하산병이 되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렇게 감동과 기쁨에 겨워 말씀하셨다.

이런 용감무쌍한 낙하훈련을 무려 10여 차례나 앞장서 진행하시어 대원들을 광복성전을 위한 훈련으로 힘있게 불러주신 김정숙여사.

조국의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면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 타신 하얀 낙하산이 꽃으로 피어있는 듯 우리의 가슴은 한없는 그리움과 격정으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위대한 공헌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조국광복 후 주석님의 혁명사상과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기 위해 정력적으로 활동하셨다.

1946년 12월이었다.

그 시기 여맹 일꾼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강습들을 중앙에서도 하고 각 도, 시, 군들에서도 폭넓게 조직, 진행하면서 정치과목의 하나로 ≪혁명사≫를 취급했다. 그런데 ≪혁명사≫ 강의에서는 우리나라 민족해방투쟁사 전반을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광복 전에 여러 가지 형태로 전개된 반일투쟁들을 잡다하게 언급하고 주석님의 혁명활동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문제들만 취급하는 데 그쳤다.

이같은 사실을 아시게 된 김정숙여사께서는 어느 날 여맹 중앙일꾼들에게 ≪지금 여맹에서 조직, 진행하고 있는 강습들에서 ≪혁명사≫를 취급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김일성장군님의 혁명투쟁역사를 가르쳐주는 것이 기본으로 되어야 한다≫고 명백히 밝혀주셨다. 그러면서 ≪≪혁명사≫라고 하니까 지난 시기 벌어진 온갖 투쟁을 다 포괄해야 하는 것처럼 잘못 인식하고 있는데 진정한 우리 인민의 투쟁역사는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직, 영도하신 항일무장투쟁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군님의 혁명활동역사를 기본으로 해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순간 여맹 일꾼들은 정치적 안목이 무뎠던 자신들을 심각하게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책감으로 몸둘 바를 몰라 하는 그들에게 여사께서는 ≪우리 인민들과 여성들에게 김일성장군님의 투쟁역사를 옳게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장군님의 혁명역사를 종합적으로 체계화한 책이 나와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런 책으로서 장군님의 전기나 약력, 약전 같은 것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지금 당장 전기를 편찬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잘만 하면 약전은 편찬할 수 있다≫고, ≪우리는 힘을 넣어 먼저 김일성장군님의 약전부터 내고 경험이 축적되고 준비가 갖추어 지는 데 따라 앞으로 전기와 혁명역사도 편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가르쳐주셨다. 참으로 뜻 깊은 말씀이었다.

김일성장군 약전편찬사업, 그것은 항일무장투쟁시기 빨치산청년장군이신 주석님에 대한 수많은 전설 같은 이야기들로 흠모의 정을 꽃피워왔으며 광복 후에는 주석님의 반일투쟁역사를 알려줄 것을 열렬히 갈망하던 온 겨레의 염원이었다.

아직은 그 누구도 주석님의 약전이나 전기와 같은 책을 편찬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광복 직후에 벌써 주석님의 혁명활동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약전부터 편찬할 것을 발기하시고 이 사업을 세심히 지도해주신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

오늘도 우리의 가슴속에는 ≪장군님의 약전을 내는 것은 그분의 위대한 혁명역사를 길이 빛내기 위한 의의 깊고도 영예로운 사업일 뿐 아니라 우리 인민들을 장군님의 사상대로 살며 그분의 둘레에 굳게 뭉쳐 새 조국건설투쟁을 힘있게 벌여나가도록 고무하기 위한 중요한 사업으로 될 것입니다≫라고 토로하시던 여사의 말씀이 깊이 간직돼 있다.

한 벽돌공장에 깃든 이야기

1947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석님을 모시고 벽돌을 생산하는 어느 한 공장을 방문하셨다. 첫 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하던 그때 크게 걸리고 있는 문제의 하나가 바로 벽돌생산을 늘리는 것이었다. 백두산 위인들께서 찾아주신 이 공장은 벽돌생산에 필요한 원료원천이 풍부하고 선박수송에 편리한 대동강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석님께서 공장일꾼들과 담화를 하시는 동안 여사께서는 몇몇 일꾼들과 함께 공장 안의 여러 작업장들을 돌아보셨다.

벽돌 다지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곳에 이르신 여사께서는 노동자들에게 다가가 일이 힘들지 않은지, 언제부터 공장에서 일하는지, 여성노동자들이 어린애들을 어디에 맡기고 일하러 나오는지 등등 자세히 알아 보셨다. 그리고는 갈라 터진 그들의 손을 어루만지시며 얼마나 아프고 쓰리겠느냐고 하시면서 일꾼들에게 치료대책을 세워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다.

일꾼들과 노동자들은 밀물처럼 차 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했다. 손노동으로 수많은 벽돌을 생산해야 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그 정도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김정숙여사께서는 노동자들의 그 갈라 터진 손에서도 우리 노동계급이 겪고 있던 어렵고 힘든 작업실태를 헤아려 보시며 자식들의 자그마한 상처에도 가슴 아파하는 친어머니의 심정으로 그리도 깊이 마음 쓰시는 것이었다.

이날 밀차가 다니는 철길주변에 깨진 벽돌이 수없이 널려 있는 것을 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일꾼들에게 ≪지금 나라의 건설현장들에서는 벽돌을 많이 요구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손노동으로 벽돌을 생산해 가지고서는 수요를 보장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질 좋은 벽돌을 많이 생산하고 힘든 일을 없애 나가려면 노동자들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고 생산공정을 기계화해야한다.≫고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다.

백두의 여장군께서는 성형기 앞에 이르러 이모저모로 살펴보시고 나서 그것을 조금만 기술적으로 개조하면 지금과 같이 손으로 두드리는 공정을 얼마든지 없앨 수 있겠다고 하시면서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이 힘을 합칠 데 대해 차근차근 깨우쳐주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일꾼들과 노동자들을 바라보시며 ≪동무들이 나라의 주인이며 공장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질 좋은 벽돌을 더 많이 생산해 건설현장들에 보내주어야 합니다≫라고 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어 소성로 곁에 이르셨다.

소성로 곁에서는 노동자들이 건조된 벽돌을 등짐으로 져 날라다 안에 쌓기도 하고 구워낸 벽돌을 꺼내 나루터 가까이까지 옮겨 쌓기도 했다. 그들이 힘들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못내 가슴 아파 하시던 여사께서는 ≪하루빨리 기계화를 실현해 근로자들의 힘든 노동을 덜어주는 한편 생산을 부쩍 늘려야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오래도록 한 자리에 서 계셨다.

이날 주석님과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벽돌이 쌓여있는 대동강 나루터에 나가시어 그것을 쉽게 빨리 운반하기 위한 대책까지 친히 세워주시고서야 공장 문을 나서시었다.

광복 후 일제가 다 파괴해 놓은 폐허 위에서 1947년도 인민경제계획이 그처럼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힘차게 수행된 사실들은 이 벽돌공장뿐이 아닌 온 나라 그 어디에나 새겨져 있는 백두산 여장군의 육친의 사랑과 뜨겁게 잇닿아 있다.

참으로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는 우리 노동자들이 무쇠마치의 주인답게 나라의 맏아들 구실을 잘하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시며 극진히 보살펴주시던 우리 노동계급의 위대한 어머니이셨다.

스스로 지키신 규정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군사일꾼들에게 늘 군사규정의 요구를 모범적으로 지키는 지휘관만이 대오관리를 잘할 수 있고 부대를 전투력이 강한 집단으로 꾸릴 수 있으며 적과의 싸움을 옳게 지휘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 직접 군사규정의 요구를 엄격히 지키는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셨다.

조국광복 후 어느 겨울날에 있었던 일이다.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거리에 나갔다 돌아오시다가 뜻밖에 저택 정문에서 한 지휘관에게 단속을 당하게 되셨다. 정문보초의 근무정형을 검열하기 위해 나왔던 그 지휘관은 경위대에 새로 배치되어 왔기 때문에 미처 김정숙여사를 알아 뵙지 못했던 것이다. 보초병은 김정숙여사를 알고 있었지만 지휘관이 단속하므로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사를 단속한 지휘관에 대한 민망스러움과 함께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 짙게 비쳐 있었다. 그날은 눈바람이 부는 매운 겨울날이었다. 그러나 여사께서는 규정대로 보초소로부터 얼마간 떨어진 곳에 그냥 서 계셨다.

지휘관은 그분께 저택으로 찾아오신 용무를 물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가볍게 웃음을 지으시며 나는 이 집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셨다. 지휘관은 의아해하며 사실여부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저택으로 들어갔다. 여사께서는 군사규정의 요구를 엄격히 지키는 그 지휘관이 못내 대견스러우신 듯 그대로 밖에서 기다리셨다.

잠시 후였다. 되돌아 뛰어나온 지휘관은 김정숙여사께 정중히 인사를 드리면서 처음이다 보니 이런 큰 실수를 했다고 하며 너무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는 지휘관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여사께서는 ≪아주 잘했습니다. 규정은 그렇게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장군님을 호위하는 경위대원들은 규정을 더욱 엄격히 지켜야 합니다. 정말 잘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그분은 ≪모든 지휘관들이 동무처럼 규정을 엄격히 지키고 요구성을 높이면 부대의 전투력이 그만큼 강화된다≫고 거듭 높이 치하해주셨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일제 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시던 백두산의 여장군이시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저택 보초소에서도 이렇듯 스스로 군사규정을 지키시니 여사를 우러르는 그 지휘관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하나의 작은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실천적 모범으로 그 지휘관이 속해 있던 중앙경위대를 항일유격대식 생활기풍이 철저히 선 부대, 군사규율에서나 전투정치훈련에서나 가장 우수한 모범부대로 키우시기 위해 바치신 김정숙여사의 커다란 노고를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일화인 것이다.

훗날 주석님께서는 중앙경위대가 눈에 띄게 성장한 모습을 보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평양학원을 비롯한 모든 훈련소의 책임일꾼들을 부르시어 중앙경위대의 군무생활을 견학시킨 다음 그것을 전체 군관학교들과 훈련소, 부대들에 일반화하도록 하셨다. 강철같은 규율 속에서 군사규정의 요구대로 엄격히 군무생활을 하는 경위대원들의 씩씩한 모습을 보며 일꾼들은 백두산 여장군의 슬하에서 성장한 부대가 다르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후 중앙경위대의 이 훌륭한 경험은 정규적 혁명무력건설의 귀중한 토대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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