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28일

통일여명 편집국

 

 

태양의 수호성, 민족의 어머니 2

 - ≪태양의 수호성, 민족의 어머니≫

통일여명 편집국 6-2-12

 

 

차 례

 

만경대에서 보낸 뜻깊은 하루 / 숨죽은 회전로 앞에서 / 작은 나사못

≪청소돌격주간≫의 봉화 / 일꾼들에게 남기신 당부 / 연필문제에 깃든 지성

백발백중사격술의 비결탁상전등과 전등갓 / 곡산공장을 찾으신 사연

다시 이어주신 ≪구만리≫ / 소나무에 어린 숭고한 뜻 / 기발한 전술적 묘안

간곡한 당부 / 호주의 구실을 다하도록 / 군모를 눌러쓰신 사연

공화국기와 국장을 볼 때마다 / 산파에 깃든 이야기 / 남을 위해 / 보통당원

몸소 바느질을 하시며 / 조국의 진달래향기 속에 / 어머니 품

이름 대신 고운 그림을 / 처창즈가 전하는 불멸의 모습

몸소 선거선전원이 되시어 / 언제나 항일전의 그날처럼

 

만경대에서 보낸 뜻깊은 하루

1948년 8월의 어느 일요일 만경대.

그날 이남에서 조국통일을 위해 투쟁하다 평양으로 들어온 한 혁명가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숙소마당을 조용히 걷고 있었다. 그는 바로 통일혁명가 성시백동지였다.

멀리서 승용차 한 대가 달려오더니 숙소 앞에 이르러 멎었다. 차안에서는 한 일꾼이 20대의 젊은 청년과 함께 내렸다.

그 청년은 성시백동지를 보자 ≪아버지!≫하고 부르며 그에게로 뛰어왔다.

순간 성시백동지는 ≪아니?! 네가 세창이로구나≫라고 외치며 달려와 안기는 아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들을 껴안은 성시백동지도 눈물을 머금었고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들도 두 볼을 적셨다.

아들은 이남에 있는 어머니 생각이 북받쳐 ≪아버지, 어머니도 평안하세요?≫라고 물었다.

≪응, 어머니도 잘 있다. 어머니는 김일성장군님의 품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너희들을 보고싶어 한단다.…≫

성시백동지와 아들은 그동안 서로 가슴에 품고 있었고 또 하고 싶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참으로 뜻밖에 일어난, 감격적인 혈육의 상봉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까지도 이날의 상봉이 어떻게 마련됐는지 그 깊은 사연을 알지 못했다.

여기에는 이남혁명가들에게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이루어주시려는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이시며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여사의 고마운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얼마 전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성시백동지와 담화하시면서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관계부문 일꾼을 통해 평산에 있던 그의 아들이 평양에 와서 중앙당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사께서는 한 일꾼에게 그 아들을 데려오게 하고 이날의 상봉을 마련해주셨던 것이다.

여사께서는 광복 전에는 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후에는 이남에 나가 통일혁명을 하느라고 성시백동지가 오랫동안 아들과 헤어져 있으니 이날 하루만이라도 마음껏 지내라고 그들을 승용차에 태워 만경대에 보내주셨다. 그리고 뒤따라 김정숙여사께서도 몸소 만경대에 오시어 그들을 만나주셨다.

여사께서는 성시백동지의 아들을 보시자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면서 ≪아버지와 만나게 된 걸 축하해요. 얼마나 반갑겠어요≫라고 하신 후 그가 지난날 아버지와 헤어져 산 경위에 대해 들으시고는 ≪지난날 많은 고생을 했겠어요. 먹을 것도 못 먹고 입을 것도 못 입고… 살뜰한 아버지의 사랑도 모르고…≫라고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제 곧 장군님께서도 만경대로 나오신다는 것을 알려주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동무들 부자간의 상봉을 매우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성시백동지와 그의 아들 성세창의 가슴은 여사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감사의 정으로 끓어올랐다. 그런데 때마침 주석님께서 타신 차가 만경대생가 앞에 와서 멎었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신 주석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아, 벌써 왔구만. 건강은 어떻소. 좀 쉬었소?≫

이때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석님께 성시백동지의 맏아들을 소개해 드리셨다. 그리고 그의 생활경위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씀 올리셨다.

주석님께서는 성시백동지에게 장성한 아들이 있다고 기뻐하시며 성세창을 보시며 ≪광복 전에 아버지가 없이 고생이 많았겠소.≫라고 다심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주석님께서는 그에게 앞으로 무슨 문제가 제기되면 조금도 어려워하지 말고 당에 제기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의 전망문제도 의논해주신 후 성시백동지에게 아들걱정은 말라고, 아들은 당에서 맡아 돌봐주겠다고 자애롭게 말씀하셨다.

그날 성시백동지와 그의 아들은 만경대에서 뜻깊은 하루를 보내면서 김정숙여사의 자애 깊은 사랑과 뜨거운 은정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숨죽은 회전로 앞에서

1945년 12월 8일,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청진제강소를 방문하셨을 때의 일이다.

일제는 패망하면서 중요설비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기술문건들을 불태워 버렸다.

녹아 붙은 전기로들, 여기 저기 고철처럼 나뒹구는 깨진 설비들… 제강소를 돌아보시는 김정숙여사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프셨다. 주석님의 숭고한 영상이 뚜렷이 어려 왔다. 철강재야말로 주석님께서 가장 심려하시는 중요한 문제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평양공설운동장(오늘의 김일성경기장)에서 하신 역사적인 조국개선연설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었다.

≪각계각층 인민들은 누구나 다 애국적 열성을 발휘하여 새 조선 건설에 떨쳐나서야 합니다.≫

김정숙여사의 가슴속에는 주석님의 건국위업을 충성으로 받들 일념이 세차게 불타올랐다. 그분은 회전로의 파괴상태를 자세히 알아보시고 나서 동행한 공장복구위원회 위원장에게 회전로를 복구하려면 어떤 문제가 막히는지 물어보셨다.

위원장은 몹시 난처해했다. 막히는 문제가 너무 많아서 딱히 꼬집어 무엇이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철을 생산하는 데 제일 문제로 되는 것이 일제 놈들이 고의적으로 노 내부에 식혀 붙인 철링그와 용선물을 뜯어내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지금 형편에서 용선물과 철링그를 뜯어내려면 기술적 문제가 있는데 마땅한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숨죽은 회전로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렇게 힘주어 말씀하셨다.

≪아무 것도 없는 지금 형편에서 우리가 믿을 것은 오직 자기 힘뿐입니다. 지난날 항일유격대원들은 아무 것도 없는 산중에서 맨주먹으로 폭탄을 만들어 왜놈들을 쳐부쉈습니다.≫

여사께서는 망치와 줄칼을 가지고 재봉바늘도 만들어낸 항일유격대원들의 투쟁경험을 감동 깊게 들려주셨다. 노동자들의 가슴은 확확 달아올랐다. 여사께서는 노동자들을 믿음직한 눈길로 바라보시면서 ≪항일유격대원들처럼 무엇이든 자체의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혁명정신만 가지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덧붙이셨다.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안겨주시는 그분의 말씀에 크게 고무된 위원장은 입철 알갱이들을 펼쳐 보여드렸다.

≪이것은 우리나라 원료와 연료를 가지고 생산하는 입철입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진심으로 기뻐하시면서 입철 알갱이들을 받으셨다. 그러시면서 ≪우리나라 원료와 연료를 쓰는 이 회전로는 참 좋은 노입니다. 청진제강소는 앞으로 크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 원료와 연료를 쓰는 회전로!

노동자들의 가슴마다 부족한 것은 찾아내고 없는 것은 만들면서 자체의 힘으로 회전로를 복구할 신심이 용솟음쳤다.

≪저 굴뚝에서 연기가 솟는 날이면 힘이 절로 나겠습니다.… 나는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노동자들을 바라보시며 하신 여사의 말씀이었다.

그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백두산 여장군께서는 청진제강소 굴뚝에서 연기가 솟구치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받게 되셨다.

작은 나사못

광복 후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이 벌어지던 시기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이 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타 번져가도록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셨다.

김정숙여사께서 당시 평양시 중구에 자리잡은 자동차수리작업장을 찾으셨을 때 있었던 일이다.

여사께서는 작업장에서 땀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일손을 도와주시면서 수리작업이 제대로 되느냐고 물으셨다. ≪하루에 너덧 시간 일하면 잘하는 것≫이라는 노동자들의 솔직한 대답을 들으신 여사께서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밖에 안 되는지 다시 물으셨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자재가 모자라고 부속품이 없기 때문이다≫, ≪나사못 하나 제대로 보장 안되니 정말 맥이 빠진다≫고 말씀 올렸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김정숙여사의 생각은 깊어지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시다가 작업장바닥에 눈길을 멈추셨다. 여러 개의 나사못들이 파묻혀 있는 것이었다. 그것들을 손에 쥔 여사께서는 노동자들에게 ≪이런 나사못들이 모자라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느냐≫고 의미심장한 어조로 물으셨다.

잠시 후 작업장의 일꾼들을 만나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여기저기에 쓸만한 부속품들이 널려 있고 나사못들이 적지 않게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작업장을 함께 돌아보셨다. 안색을 흐리시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여사께서는 일꾼들에게 ≪여기서는 절약하고 증산하자는 장군님의 방침을 잘 관철하지 않는 것 같다≫고 간곡하게 타이르셨다. 그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군님께서 새 방침을 내놓으시면 그 즉시에 심장으로 접수하고 철저히 관철해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여사의 충고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은 일꾼들과 노동자들은 머리를 들지 못했다. 여사께서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나라의 주인이 나라의 물건을 아까운 줄 모르고 이렇게 버리고 낭비해서야 나라살림살이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시면서 ≪부강한 새 조선을 하루빨리 건설하려면 모두 이를 악물고 달라붙어 없는 것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껴 쓰며 이겨나가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의 이 말씀이 전해진 후 이 기업소에서는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청소돌격주간≫의 봉화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이 힘있게 벌어지고 있던 어느 날 김정숙여사께서는 몇몇 일꾼들과 함께 평양시 상수리(당시)의 여성들을 만나신 일이 있다.

여사께서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신 다음 요즘 가두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한 여성이 건국사상총동원운동에 대한 학습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여사께서는 마침 잘됐다고 하시면서 가정과 가두에서 이 운동을 어떻게 벌이고 있는지 물으셨다. 몇몇 여성들이 일어나 남편들이 직장에 나가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잘하도록 뒤에서 받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건국사상총동원운동에서 집안에 있는 여자들까지 나서서 크게 해야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동무들의 말을 들어보면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마치 가장들, 직장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 속에서만 벌어지는 운동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당, 국가, 경제기관 및 사회단체들과 공장, 농촌, 가두 등 모든 부문, 모든 단위들에서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힘있게 벌여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여사의 이 말씀을 듣고서야 여성들은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발기하신 주석님의 깊은 의도를 깨닫고 자기들의 짧은 생각을 뉘우쳤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시며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은 모든 사람들이 실제행동으로써 새 사회 건설에 헌신하도록 하기 위한 실천적 운동≫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러시면서 ≪가두여성들의 건국정신을 실천에 구현하는 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와 마을을 알뜰히 꾸리기 위한 사업에 한결같이 떨쳐나서는 것이≫라고 하나하나 깨우쳐주셨다.

사실 당시 상당수 사람들이 과거 생활난에 허덕이면서 아무렇게나 살아갈 때 얻은 낡은 인습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집은 물론 거리와 마을을 깨끗이 관리하는 데 발벗고 나서지 않았다. 도시경영기관들에서도 수송수단이 없다고 하면서 오물을 제때에 수거하지 못해 골목마다 오물이 쌓여 있었다.

여성들은 김정숙여사의 말씀을 듣고 자기들이 조금만 노력하면 도시미화사업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들에게 여사께서는 ≪건국정신은 생산과 건설을 다그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도시미화사업에서도 건국사상이 나타나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불타는 열정을 지니고 사리를 따져가며 주석님의 높으신 뜻을 실천으로 꽃피워 나가도록 일깨워주고 가르쳐주시는 김정숙여사의 말씀을 새기며 여성들과 일꾼들은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여사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긴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거리와 마을을 위생적, 문화적으로 꾸리기 위한 일에 한결같이 떨쳐나섰다. 모두가 달라붙으니 겨우내 꽝꽝 얼어붙어 산더미같이 쌓였던 오물들이 금새 줄어들었고 거리와 마을의 면모는 하루가 다르게 일신되었다.

이 사실을 아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이 모범을 일반화해 민주수도 평양을 아름답고 문화적으로 꾸리는 데 이바지하도록 이끄셨다. 여사의 가르침을 받들고 평양시에서는 1947년 2월 11일부터 16일까지의 기간을 ≪청소돌격주간≫으로 정하고 모든 시민들이 떨쳐나 자기의 거리와 마을, 일터와 가정을 문화적으로, 위생적으로 가꾸기 위한 일대 바람을 일으켰다. 새 조선의 수도에서 먼저 피워 올린 ≪청소돌격주간≫의 봉화는 전국에 급속히 번져나갔다.

일꾼들에게 남기신 당부

오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간부들에게 늘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계신다고 한다.

≪간부들은 늘 군중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숨쉬고 생활하며 그들의 애로와 요구를 제때에 풀어주는 군중의 참된 충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래에 소개되는 사연을 통해서도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께서 지니셨던 애민정신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1945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 타신 평양행 열차가 명천역(오늘의 화성군 용반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백두의 전설적 여장군을 뵙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안고 명천군 책임일꾼들이 김정숙여사를 찾아왔다. 여사께서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시고 그들에게 어려운 조건에서 건국사업을 해나가자니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위로하시며 군 형편을 알아보셨다. 그들은 군의 간부들은 대체로 농조운동에 참여했거나 그 때문에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투쟁경력도 있어 사업에서 별다른 편향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렸다.

투쟁경력을 은근히 내세우는 그들의 말투며 차림새 그리고 몸가짐들에서 김정숙여사께서는 인민의 일꾼답지 못한 요소를 감지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내색을 비치지 않으시고 군 주민들의 생활형편에 대해 차근차근 물으셨다.

잠시 머뭇거리던 한 일꾼이 이렇게 대답 올렸다.

≪식량이 모자라고 천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나라 사정이 그런 걸 당장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일꾼들이 인민들 속에 나가 지난날 어려운 환경에서 싸우던 이야기를 하면서 일시적 난관을 극복할 데 대해 해설해주고 있지요. 인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건국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그는 제풀에 더욱 열을 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무거운 어조로 실제 주민들이 사는 형편이 어느 정도냐고 재차 물으셨다. 그제야 그 일꾼은 자책 어린 어조로 ≪…소나무껍질을 우려먹는 집들도 있고 토스레옷을 면치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어물어물 대답했다. 그들과 담화를 진행할수록 여사의 마음은 무거워지기만 했다.

얼마 전에 목격하신 장면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투쟁경력을 요란하게 내세우면서 말로는 ≪혁명≫이요, ≪인민대중≫이요 하고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관리처럼 행세를 하면서 제 잇속만 채우는 데 바빴다.

한동안 깊은 사색에 빠졌던 김정숙여사께서는 ≪일제를 반대해 국내에서 잘 싸웠다니 정말 기쁘다≫고 하시면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공산주의자는 그 어떤 벼슬이나 개인의 공명과 출세를 바라며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다≫고 일꾼들을 깨우쳐주셨다. 그분의 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 새겨들을수록 일꾼들은 인민의 심부름꾼답지 못했던 자기들의 지나온 사업과 생활을 깊이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심한 자책으로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고 서있는 일꾼들을 따뜻한 눈길로 둘러보시며 이렇게 타이르셨다.

≪자기는 배불리 먹고 잘 입고 다니면서 굶주리고 헐벗은 인민들을 보고 참아라, 일 잘하면 잘살 수 있다고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일꾼은 조만간에 인민의 버림을 받고야 맙니다. 인민과 같이 먹고 인민과 같이 입고 인민과 같이 숨쉬는 사람만이 인민을 위한 참다운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밤은 소리 없이 깊어 갔다. 그 일꾼들에게는 민중을 위해 투쟁하는 참다운 혁명가란 어떻게 살며 일해야 하는가를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참으로 뜻깊은 밤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일꾼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다.

≪나는 여러분들도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참다운 인민의 충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꾼들이 민중의 참된 충복으로 새 출발을 하도록 따뜻한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신 백두의 여장군을 축복하듯 흰눈송이가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연필문제에 깃든 지성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애국적 생애를 두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게 회고하고 계신다.

≪어머님의 한 생은 길지 않았지만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로서 수령님과 조국, 인민을 위하여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신 한 생이었습니다.≫

1946년 1월 초순이었다.

평양시 주변의 한 농촌마을을 찾으셨던 김정숙여사께서는 가슴 아픈 일을 목격하셨다. 어느 한 집의 윗방에서 여러 명의 학생들이 모래판에 글씨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시는 순간 여사께서는 항일무장투쟁기 장백현 덕수마을에 들리셨을 때의 일이 떠오르셨다.

여사께서 정치공작임무를 마치시고 떠나실 때였다. 여사를 전송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나이 어린 소녀도 있었다. 학교 갈 나이가 다 됐지만 가난에 쪼들려 학교는 고사하고 고된 일에 시달리는 소녀였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를 남겨두고 차마 발길을 떼기 어려우시어 어린 소녀를 품에 꼭 껴안아 주셨다. 그러시면서 그 소녀에게 ≪글을 배워야 한다. 연필을 주고 갔으면 좋겠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없으니 할 수 없구나. 이 돈을 가지고 연필과 종이를 사서 써라≫고 하시며 그 아이의 손에 돈을 쥐어주셨다.

그때로부터 10년이 되는 이때에도 광복된 조선의 아이들이 모래판에 글을 쓰는 것을 보신 여사께서는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셨다. 여사께서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연필이 없어 모래판에 글을 쓰느냐고 물으셨다. 학생들은 연필은 학교에 가서 쓰려고 아낀다고 말씀드렸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학생들의 책보를 하나씩 펼쳐보셨다. 몽당연필뿐이었다. 여사께서는 흐린 안색으로 연필 값은 얼마이며 연필이 없는 학생들은 몇 명이나 되는지, 평양에 나가면 살수 있는지를 물으셨다. 평양에 가면 살 수 있지만 모래판에 글을 쓰더라도 광복 덕분에 공부를 할 수 있게 됐으니 좋을 뿐이라는 학생들의 대답에 더욱 가슴이 저미신 여사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못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 사실을 주석님께 말씀드렸다. 주석님께서는 ≪일제 놈들은 우리 인민을 영원한 노예로 부려먹으려고 연필공장 하나 지어놓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힘으로 연필을 만들어서 그렇게 공부하고 싶어하는 우리 아이들의 소원을 풀어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자신도 연필문제를 푸는 일에 적극 힘쓰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2월초였다.

거리에 나가셨던 김정숙여사께서는 몇 자루의 연필을 사 오셨다. 한 잡화상점에서만은 연필을 떨어뜨리지 않고 팔기에 알아보았더니 어느 한 기업가가 보통벌(평양시 근교 한 농촌지대의 지명)의 자그마한 집에 간단한 설비를 차려놓고 연필을 수공업적으로 만들고 있었는데 거기서 연필을 조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신 주석님께서는 바쁜 일을 뒤로 미루시고 그곳을 방문해 흑연과 석탄 가루로 더렵혀진 노동자들의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시며 훌륭한 것을 만든다고 치하해주셨다. 그리고는 나라에서 모든 것을 대주겠으니 앞으로 질 좋은 연필을 더 많이 만들라고 크나큰 믿음과 배려를 돌려주셨다.

그 후 주석님께서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회의의 첫 의정으로 연필문제를 상정하셨다. 반만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중의 새 주권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세우시고 첫 의정으로 연필문제부터 상정, 토의했으니 이런 정사는 동서고금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김일성주석님께서 연필문제를 나라의 첫 의정으로 삼으신 사연에도 김정숙여사의 후대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지성이 깔려 있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백발백중사격술의 비결

항일대전의 나날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께서 소유하신 명사격술은 참으로 신묘한 것이었다. 임의의 순간에 아무리 어려운 조건과 환경에서도 방아쇠만 당기면 영락없이 백발백중이었다.

1935년 9월 안도현 처창즈 유격근거지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이 총을 잡고 김일성장군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 총 한 자루를 백 자루로 알고 쥐겠습니다. 이 총알 한 알을 백 알로 알고 원수를 쏘겠습니다≫라고 하신 그날의 맹세를 실천으로 지켜 나가셨다. 그것은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 있어서 수령결사옹위의 명사격술을 익혀 나가신 과정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신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부대에서는 신입대원들을 축하하는 사격경기가 조직되었다. 이 경기는 한편 신입대원들의 사격술을 평가하는 계기로도 되었다.

신입대원들은 사격경기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조준연습도 하고 사격좌지에서 여러 가지 사격동작도 훈련했다.

김정숙여사께서도 그들과 꼭 같이 훈련에 열중하셨다. 그러면서도 동작이 서툴고 익숙하지 못한 대원들을 열심히 도와주셨다.

드디어 실탄사격경기가 시작됐다.

먼저 구대원들이 사격좌지에 나섰다. 신입대원들에게 자기들의 사격술을 자랑하려는 듯 모두가 능란하게 총을 쏴나갔다. 뒤이어 신입대원들의 사격이 있었다. 그들은 300미터 앞 전신용 목표에 땀흘려 익혀온 사격동작으로 침착하게 한방씩 쏴나갔다. 처음 참가하는 사격경기라 그런지 그들의 성적은 그리 높지 못했다.

이어 김정숙여사께서 사격좌지에 나서셨다. 침착하고도 능란하신 솜씨로 여유작작하게 장탄을 하고 목표 판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셨다.

땅, 땅…

잇따라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목표 판에는 맞구멍이 뚫리고 장내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올랐다. 참으로 놀라운 명사격술이었다. 신입대원들은 물론 구대원들까지도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들은 김정숙여사의 사격술을 따라 배워야 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 백발백중의 명중탄을 안긴 여사의 신묘한 사격술에 탄복했다.

모든 대원들이 사격을 끝마치시고 좌지에서 나오신 김정숙여사를 둘러싸고 그이께 열렬한 축하를 드렸다. 그러면서 백발백중의 비결을 가르쳐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들을 정다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여사께서는 무슨 비결이 따로 있겠느냐고 가볍게 웃으시면서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쏜 탄알이 한 알이라도 빗나가면 장군님을 보위할 수 없고 조선혁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흔들림 없는 수령보위, 혁명수호의 정신을 지니시고 대원들의 가슴속에 백발백중의 비결을 심어주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그 말씀은 오늘도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결사 옹위해 가는 우리의 심장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탁상전등과 전등갓

항일대전의 나날 한 몸이 그대로 방탄벽이 되시여 혁명의 사령부를 사수하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그 고결한 정신으로 광복 후에도 주석님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셨다.

1947년 8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날 한 일꾼으로부터 전용차 제작이 끝났다는 것과 그 열차가 아주 좋다는 보고를 받으셨다. 그 무렵 이북의 노동자, 기술자들은 자기들의 있는 성의와 기술을 다 발휘해 주석님께서 지방을 현지지도하실 때 이용하실 전용특별열차를 새로 만들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매우 기쁘신 음성으로 그 일꾼에게 특별열차제작에 참가한 노동자, 기술자들이 정말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이 좋다면 좋겠지요. 그러나 장군님께서 타실 차라니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아침 모든 사업을 뒤로 미루시고 특별열차가 있는 곳으로 나가신 여사께서는 열차에 오르셨다. 침실과 집무실, 서재들을 차례로 돌아보시며 자그마한 하나의 설비와 비품에 대해서도 눈 여겨 살펴보신 여사께서는 이만하면 차도 괜찮게 만들었고 내부도 잘 꾸렸다고 치하하셨다.

시종 만족하신 표정을 지으시고 열차 안을 다 돌아보시고 밖으로 나오려던 김정숙여사께서는 무엇 때문인지 다시 열차 안의 집무실로 들어가시더니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쳐 놓아 보시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아무 기별도 없이 다시 특별열차가 있는 곳으로 나오셨다. 뒤늦게 연락을 받은 한 일꾼이 여사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다. 여사께서는 그의 인사를 반갑게 받으시고 ≪우리 노동계급이 만든 열차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나왔다≫고 하시면서 열차에 오르셨다. 그러시고는 가지고 오신 보자기를 푸시고 탁상전등과 복숭아색깔의 전등갓을 내놓으시며 ≪어제 와보니 탁상전등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등이 천장에만 있으니 장군님께서 차안에서 책을 보시는 데 불편하실 것 같아서 어제 저녁에 이것을 구해 왔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일꾼들은 전날 직접 책상 앞에 앉아 책상 위에 펼쳐 놓으신 책과 천장의 전등을 번갈아 바라보시며 조명상태를 가늠해보신 김정숙여사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분이 지니신 주석님에 대한 충실성의 높이에 감동을 금치 못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계속해서 ≪이런 전등갓을 달면 밝으면서도 은근한 분위기가 나서 한결 피로가 가셔집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책상 위에 탁상전등도 켜고 전등갓도 밝은 색으로 바꿔 다니 차안이 환하면서도 은은한 감을 주어 책보기가 한결 더 좋았다. 여사께서는 이날 열차 안에 갖춰진 서재에도 들려 주석님께서 무슨 자료든지 쉽게 찾아보실 수 있도록 도서정리도 다시 해주셨다.

역사의 그날, 주석님께서 여행하실 때 피로를 느끼시지 않도록 열차의 진동과 소음도 없앴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시던 김정숙여사의 그날의 말씀은 이북의 철도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의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곡산공장을 찾으신 사연

이북 어린이들이 날마다 먹고 있는 사탕과 과자에도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에 대한 가슴 뜨거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47년에 있었던 일이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날 대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평양곡산공장을 방문하셨다.

작업교대로 혼잡한 첫 아침에 뜻밖에도 백두의 여장군을 공장에 모시게 된 일꾼들과 노동자들의 기쁨과 놀라움은 대단히 컸다. 그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누신 여사께서는 공장의 생산실태부터 알아보셨다. 공장책임일꾼으로부터 생산정형을 보고 들으시며 한동안 아무 말씀 없으시던 여사께서는 공장을 돌아보자고 하시며 먼저 걸음을 옮기셨다.

여러 직장을 거쳐 물엿직장에 이르셨을 때였다. 그분의 얼굴에는 기쁨에 넘친 환한 미소가 가득 어렸다. 주황색 물엿이 흘러나오는 생산공정을 한참동안 바라보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옥수수를 가지고 물엿을 만드는 것을 보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산에서 굶으면서 싸운 것도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자고 싸웠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고생을 많이 했어도 고생한 것 같지 않습니다≫라고 못내 만족해 하셨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일꾼들은 무슨 일로 이날 여사께서 공장을 방문하셨는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물엿을 보시며 왜 그토록 기뻐하시는지 아직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공장을 다 돌아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공장책임일꾼에게 관리일꾼들과 노동자들을 만나보자고 하시며 그들을 모이도록 하셨다. 민주선전실의 크지 않은 방안에 빼곡이 앉은 그들을 지긋이 바라보시던 여사께서는 ≪제가 오늘 여기에 오게 된 것은 장군님께서 몹시 걱정하고 계시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나라가 광복되고 두 해가 지났는데 아직 우리 어린이들에게 사탕, 과자를 먹이지 못하고 있다고 늘 걱정하고 계십니다≫라고 하시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광복된 조국 땅에서 주석님을 모시고 두 번째로 맞이하는 주석님의 탄생기념일 때였다. 이 뜻깊은 날 김정숙여사께서는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수령님께 생신 상을 차려 올리셨다. 사실 전년도에 주석님께서 생일을 쇠지 않겠다고 하시며 엄하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그때는 소문 없이 보통 진지 상이나 거의 다름없게 상을 차렸었다.

김정숙여사께서 알려드려서야 비로소 그날이 자신의 생신 날임을 알게 되신 주석님께서는 오랫동안 아무 말씀 없이 상을 보시더니 ≪동무들의 성의만은 고맙소. 정말 고맙소. 그러나 내 어찌 생일날이라 해서 상을 받겠소. 나라가 해방됐어도 인민들에게 쌀도 넉넉히 못 주고 아이들에게 사탕 한 알 제대로 쥐어주지 못하는데 생일이라 해서 상을 받은들 내 마음이 기쁠 수 있겠소≫라고 하시며 끝끝내 만류하셨다.

광복된 조국 땅에서 벌써 두 번째로 맞이하는 주석님의 탄생일이었건만 아직 나라의 경제가 원만치 못해 공민들과 어린이들을 위하시는 주석님의 심려를 덜어드리지 못하시는 김정숙여사의 안타까움과 괴로움은 얼마나 컸고 그 때문에 생신 상조차 기꺼이 받으시지 못하신 주석님을 우러르시며 남몰래 눈시울을 적시는 그분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고 쓰렸겠는가.

김정숙여사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이 문제를 풀어야겠다고 결심하셨다. 해당 일꾼들로부터 평양곡산공장에서 전분이나 기름, 간장, 술 같은 제품의 생산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지만 사탕, 과자 생산만은 수공업적 방법으로 얼마간 하면서 부차시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보고도 받으셨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께서 곡산공장의 실태를 현지에서 직접 요해하시고 사탕, 과자 생산을 정상화해 주석님께 기쁨을 드리겠다고 생각하시고 그 이튿날 곡산공장에 나가시게 됐던 것이다.

이날 김정숙여사께서는 노동자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시고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주시며 사탕, 과자의 대량생산을 정상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도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셨다. 이때부터 이북에서는 조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위한 사탕, 과자 생산의 새 역사가 시작되게 되었다.

해마다 맞이하는 민족최대의 명절 때마다 세상에 부러움 없이 행복만을 알고 자라는 이북 어린이들의 가슴에 한 아름씩 안겨지는 고급당과류마다 이렇듯 주석님의 기쁨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으신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여사의 뜨거운 지성과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다시 이어주신 ≪구만리≫

조국의 앞날을 떠메고 나갈 미래의 주인공들인 청소년들을 사랑하시는 것은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이신 김정숙여사의 천품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1946년 봄 김정숙여사께서 양덕군 대탕지마을에 있는 ≪동일여관≫에 숙소를 정하시고 혁명활동을 벌이시던 때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김정숙여사께서 양덕 철도병원 원장을 만나 담화하신 적이 있으셨다. 여사께서는 담화 중에 뜻밖에 한 젊은 철도노동자가 다리를 심하게 다쳐 생명이 위급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 그분은 그 청년의 나이도 물으시고 병상태도 세세히 물으셨다. 그런데 원장은 환자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뼈가 몹시 부서졌기 때문에 다리만은 잘라야 될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것이었다.

한참 말씀이 없으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조용히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인데 다리를 자르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다리를 자르지 않고 고칠 방도는 없는지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그러시고는 약들은 어떤 것이 필요한가 거듭 물으셨다.

그처럼 다심하고 은정 깊으신 백두산 여장군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며 원장은 커다란 자책감으로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는 청년의 다리를 자르겠다는 마음을 고쳐먹고 병원에 항생제가 떨어졌다고 김정숙여사께 말씀드렸다. 항생제만 있으면 다리를 자르지 않고 최선을 다해 고쳐보겠다는 답변을 들으시고서야 여사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얼마간 마음을 놓으시는 것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항생제를 구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적극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약을 못 구하면 평양에 가서라도 필요한 약들을 구해 철도에서 일한다는 그 청년의 다리를 꼭 고쳐줍시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그러시고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의 다리를 원상대로 고쳐주자고 거듭 다짐하시면서 ≪의료일꾼에게 있어서 뜨거운 인간애와 환자에 대한 정성이 기본≫이라고 당부하셨다. 백두산 여장군의 은정 어린 귀중한 말씀과 배려에 접한 환자와 그를 치료하던 의사들은 감격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김정숙여사께서 보내주신 승용차를 타고 원장의 아내는 멀리 평양까지 가서 고급 약들을 구해왔으며 병원에서는 부러진 환자의 다리를 잇기 위한 철야전투가 벌어졌다. 드디어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다. 다 죽게 되고 다리를 잘라야만 하겠다던 그 청년이 6개월만에 완치돼 대지를 마음대로 활보하게 됐던 것이다. 그날 청년은 평양하늘을 우러러보며 갈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백두산 여장군님의 대해 같은 사랑으로 죽었던 이 몸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자 그의 옆에 모여 섰던 의사들과 철도노동자들은 ≪백두산 여장군님이 다 끊어진 줄만 알았던 구만리 같은 저 청년의 앞길을 다시 이어주셨구나!≫라고 하면서 감사의 정에 넘쳐있었다.

소나무에 어린 숭고한 뜻

1948년 4월 어느 날이었다. 만경대혁명학원 건설공사장 구내에 소나무 모들을 실은 자동차가 들어와 멎어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더니 뜻밖에도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 내리셨다. 늘 학원의 원아들을 위해 마음쓰시던 여사께서 학원의 구내에 소나무를 심으시려 친히 학원을 찾으셨던 것이다.

일꾼들과 인사를 나누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어리신 장군님과 함께 학원건설공사장을 둘러보시며 ≪혁명가 유자녀들이 마음껏 배우며 뛰놀 것을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없다≫, ≪건설을 다그쳐 완공을 앞당기자≫고 말씀하셨다.

이어 김정숙여사께서는 어리신 위대한 장군님과 함께 등성이에 오르셨다. 그러시고는 친히 나무를 심을 자리를 잡으시고 삽을 드셨다. 그리고 구덩이를 큼직하게 파기 시작하셨다. 곁에 있던 한 일꾼이 여사께 오늘 작업을 지도만 해주실 것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김정숙여사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나무를 심으러 왔는데 보고만 있겠어요. 내 걱정은 말고 어서 일을 다그칩시다≫라고 하시며 힘차게 삽질을 하셨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자신도 나무를 심겠다고 하시며 학원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으면 학생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일꾼들이 거듭 만류했으나 김정숙여사께서는 ≪우리 손으로 이렇게 학원주변에 나무를 심으니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하시며 구덩이에 나무 모를 넣으셨다. 그러시고는 ≪나무는 가지가 많은 쪽이 남쪽으로 향하게 세우고 심어야 한다≫며 정성껏 나무를 심으셨다. 그리고 어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과 함께 나무주위를 돌며 덮은 흙을 꼭꼭 밟아주셨다. 한 그루의 나무에도 크나큰 사랑과 기대를 담아 정성을 기울이시는 두 분의 모습을 우러르며 일꾼들은 깊은 감동을 금치 못해했다. 덮은 흙을 다 밟아주고 나신 여사께서는 이번에는 갓 심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 죽을 수 있다고 하시며 버팀대까지 든든히 받쳐주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학원에 소나무를 심은 것은 ≪원아들의 성장과 미래를 상징하는 그런 나무를 심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여사께서는 ≪소나무는 설한풍 속에서도 청청한 빛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갑니다. 혁명가 유자녀들을 푸른 소나무처럼 억세게 키워 부모들의 뒤를 잇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였다. 여사께서 만경대혁명학원에 소나무를 심으신 것은 만경대의 원아들이 모진 풍상 속에서도 푸른 기상을 떨치는 소나무처럼 꿋꿋이 자라 주체의 혈통을 억세게 이어나가기를 바라시는 크나큰 기대와 염원에서였다. 혁명의 미래에 바치시는 백두산 여장군의 숭고한 마음에 일꾼들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그날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가 심은 소나무들이 여기 학원 뒷산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듯이 혁명가 유자녀들도 씩씩하게 자라나 혁명의 핏줄기를 든든히 이어나갈 것입니다.≫

참으로 깊은 뜻과 기대가 넘치는 말씀이었다.

이렇게 되어 만경대혁명학원의 구내에는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흘렀다.

오늘도 역사의 그날에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어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과 함께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으시어 원아들을 푸른 소나무처럼 억세게 키우실 염원을 안으시고 심으신 소나무는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사연을 노래하고 있다.

기발한 전술적 묘안

승리로 빛나는 항일전사에는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기발하고 대담무쌍한 전법으로 강도 일제를 쳐부수던 수많은 전투일화들도 들어있다.

1936년 겨울 내도산방어전투 때 있었던 일이다.

전투 당시 적아 간의 역량대비는 800 대 40이었다. 게다가 유격대는 대부분이 재봉대와 병기창, 병원 등 후방성원들이라면 적들은 ≪신선대≫라는 악질적인 부대였다. 참으로 어려운 전투였다.

첫날전투가 끝난 저녁 무렵이었다.

대원들에게 나누어줄 솜 장갑이며 버선들을 가지고 고지에 오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한옆에 잔뜩 쌓여 있는 나뭇단들을 보게 되셨다. 여사께서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가 급히 지휘원을 찾아가셨다. 그리고는 내도산 동쪽 후면고지와 7형제고지, 남쪽고지들에서 일시에 수많은 모닥불을 지펴 올리자고 제기하셨다. 그러면 모닥불이 목표로 되어 적들의 습격을 받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지휘원은 놀라워했다.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닥불을 피워 적들을 유인한 다음 유리한 위치에 매복해 있다가 공격해야 합니다. 만약 적들이 습격해오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손해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야간습격이 무서워 불도 못 피우고 있는 적들은 우리의 모닥불을 보면 아마 저절로 사기가 뚝 떨어질 것입니다.≫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기발한 전술적 묘안 앞에서 지휘원은 눈앞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내도산에서는 통쾌한 싸움이 벌어졌다. 모닥불을 보고 달려들던 적들은 매복전에 걸려 숱한 시체만 남기고 도망쳤다. 한편 숙영지를 습격해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불을 피우고 쉬던 적들은 습격조원들의 급습에 얻어맞곤 했다. 이렇게 되자 적들은 영하 40도의 강추위 속에서 불도 못 피우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게 되었다.

악에 받친 적들은 다음날 아침 또다시 공격해왔다. 이날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적들의 공격이 제일 심한 고지돌출부에 나가 싸우셨다.

전호에서 접근해오는 적들을 노려보던 유격대원들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적들이 눈만 내놓은 백포를 뒤집어쓴 데다가 땅에 납작 엎드려 한치한치 기어오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때 적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살펴보시던 여사께서는 대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적들이 돌격하려고 머리를 쳐들 때 쏩시다. 그러면 놈들을 온종일 눈 속에 처박아둘 수 있습니다.≫

불리한 전투조건을 역전시키게 하는 기발한 명안 앞에서 자신감이 생긴 대원들은 그분의 가르침대로 적들이 머리를 쳐드는 족족 단방에 쏴 죽였다. 그리하여 적들은 끝내 돌격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온종일 눈 속에서 떨다가 물러갔다.

1주일간이나 계속된 이 전투에서 예상치 않았던 정황이 갑자기 조성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여사께서는 임기응변의 뛰어난 전술적 방안들을 내놓으심으로써 적들을 제압하고 전투승리를 보장하는 데 큰 기여를 하셨다. 그때로 말하면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신 지 다섯 달도 채 못되는 때였다.

간곡한 당부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새 조국 건설시기 여러 공장과 농촌을 찾아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확립하도록 하는 데 깊은 관심을 돌리셨다.

1947년 9월 함경북도에서 사업하시던 여사께서 요업공장을 방문하셨을 때의 일이다.

공장의 생산공정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여성들이 일하고 있는 어느 한 작업장에 이르러 그들의 작업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셨다. 그분은 사발을 만드는 어느 한 여성을 만나 일이 몹시 힘들겠다고 하시며 이 공장에서 일하는 지 몇 해나 되는가, 애들은 누구에게 맡기고 출근하는가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알아보셨다.

그러면서 한 달에 사발을 몇 개씩 만드느냐고 물으셨다. 그 여성노동자는 국가계획에 10만 개씩 만들게 되어 있는데 12만 개씩 만들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여사께서는 국가계획을 초과 수행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치하해주시고 나서 선반 위에 가지런히 진열해 놓은 여러 가지 도자기제품들을 눈 여겨 바라보셨다. 거기에는 투박하고 모양 없는 사기그릇제품들도 적지 않게 진열되어 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일꾼들과 노동자들에게 ≪옛날 우리나라의 고려자기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주권을 자기 손에 틀어쥔 우리 노동계급이 오늘 이렇게 질이 낮은 그릇을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물론 아직은 기술도 모자라고 여러 가지 애로가 많겠지만 자기 집 아이들에게 음식을 담아줄 그릇을 만드는 마음으로 정성껏 만든다면 고운 밥 사발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라며 다음과 같이 계속하셨다.

≪그릇의 질을 높이는 문제는 간단한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민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사업의 하나입니다.≫

하나의 문제도 정책적으로 보시는 백두산 여장군의 간곡한 말씀은 공장 일꾼들과 노동자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그 후 요업공장의 도자기의 질은 한 단계 높아지고 생산문화와 함께 생활문화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게 되었다.

호주의 구실을 다하도록

1947년 9월 어느 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석님을 모시고 함경북도 경성군을 찾으셨다.

이날 여사께서는 군 인민위원회, 면 인민위원회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셨다. 인민들이 앙양된 건국열의를 안고 새 조선 건설에 떨쳐나선 데 대해 말씀하고 나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인민정권기관 일꾼들이 현실에 내려가 아래단위들을 어떻게 도와주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일꾼들은 아무런 대답도 올리지 못했다. 사실 그때 일부 인민정권기관 일꾼들은 당의 사상과 의도에 맞게 사업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현실에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내려 먹이는 관료주의적 사업작풍을 답습하고 있었다. 또한 주민생활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공장이나 탄광, 산림 같은 데 자주 나가봐야 그곳 실정도 알고 노동자들의 생활형편도 알 수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광복 전에는 자본가나 기업가가 자기 돈벌이를 위해 노동자들을 마구 혹사했지만 인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된 오늘 인민정권기관은 노동자들의 모든 생활을 책임적으로 돌봐주는 호주가 되어야 합니다.≫

일꾼들의 충격은 컸다.

호주, 그 명칭 속에는 인민정권기관 일꾼들이 생산과 건설, 주민생활 등 자기 단위의 모든 사업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는 입장에서 사업을 조직, 집행하고 인민을 위해 참답게 복무하는 인민의 충복, 인민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감동에 젖어있는 일꾼들을 둘러보시며 김정숙여사께서는 파괴된 공장들을 자체로 복구하자니 애로와 난관이 많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금년도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해야 한다고 하시며 인민정권기관 일꾼들이 책임성과 역할을 더욱 높일 데 대해 강조하셨다.

농사문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여사께서는 인민위원회가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짓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날 여사께서는 인민위원회가 평야지대 농민들뿐 아니라 산골농민들의 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하시며 친히 농민들의 생활문제를 의논해주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며칠 전 산골여성과 담화하시는 과정에 머루, 다래를 비롯한 산열매들이 많다고 하기에 직접 산에 가보니 정말 모든 산들이 보물산이라고 하시며 산을 잘 이용해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게 할 방도까지 하나씩 가르쳐주셨다. 그러시고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경성군에서 어촌경리를 발전시키는 데 큰 힘을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김정숙여사께서는 인민정권기관들이 학교교육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릴 데 대한 문제, 인민정권기관 일꾼들이 주석님의 건국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사업과 생활에서 언제나 검소하고 겸손하며 관료주의를 없애고 인민을 위해 일한다는 자각을 늘 잊지 말 데 대한 문제 등을 일일이 가르쳐주셨다. 이밖에도 여사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인민정권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기 위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렇게 광복조국에서의 하루를 인민정권의 강화발전을 위한 사업에 바치셨다. 여사가 하신 그날의 말씀은 주석님의 뜻대로 인민정권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더욱 높이며 정권기관 일꾼들의 사업 작풍과 방법을 개선하는 데서 귀중한 지침으로 되었다.

군모를 눌러쓰신 사연

혁명가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모습을 삼가 우러르며 이에 대한 대답을 찾는다.

1941년 3월 1일 타향의 봄날에 주석님을 모시고 김정숙여사께서 찍으신 사진.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영광인 백두의 여장군께서 봄날의 붉게 타는 진달래처럼 조용히 웃으시는 그 아름다운 미소.

백두산장군들께서 타향의 봄날에 남기신 역사의 화폭이 전해주는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무장투쟁의 기나긴 나날 다른 여대원들과 같이 단발머리를 하고 다니셨다. 그래서 여사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남기신 얼마 안 되는 사진들에도 모두 단정하신 단발머리 모양새이다.

그러나 타향에서 찍으신 이 사진을 보면 그 시절 김정숙여사의 머리모양을 가늠할 수 없다. 머리칼을 모두 군모 안에 밀어 넣으셨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가슴을 뜨겁게 하는 사연이 숨어 있다. 주석님께서도 이 사진을 찍으시던 날까지도 아직 그 사연을 알지 못하고 계셨다.

그때는 주석님께서 소부대를 거느리시고 만주와 국내로 원정을 떠나게 되신 타향의 봄날이었다.

주석님께서 김정숙여사와 뜻깊은 사진을 찍으신 후 원정에 오르셨을 때였다. 주석님께서 소련국경을 넘어 훈춘 땅을 지나실 때 이상하게 발이 따끈따끈해지는 것을 느끼셨다. 처음에는 행군을 많이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히 생각하셨다. 그러나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 안에 무엇인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와 닿는 감촉에 주석님께서는 신발을 벗어보셨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발바닥에는 머리칼로 정성스레 만든 깔개가 깔려 있었다. 그제야 주석님께서는 방안에서도 이상스럽게 군모를 벗지 않던 김정숙여사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셨다.

주석님께서 머나먼 원정을 떠나게 되셨을 때 여사의 생각은 참으로 깊으셨다. 바치고 바치신 정성이 아직 부족하신 듯 안타까우셨다. 북방의 봄은 아직 차가웠다. 문득 그분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조용히 쓸어보셨다. 칠흑 같이 까맣고 숱이 많은 그분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두고 여투사들 모두가 부러움을 금치 못해 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렇게 귀중한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오리 또 한 오리 잘라 내셨다. 여대원들은 놀라워하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여사께서는 ≪사령관동지께서 원정의 길에서 언제 젖은 신발을 말리실 사이가 있겠느냐≫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제야 사연을 깨달은 여대원들은 격정에 울먹였다. 그렇게 돼서 그분의 머리채는 퍽 줄어들었다. 그러나 주석님의 걸음걸음을 따뜻이 감싸줄 폭신한 신발깔개를 정성껏 만들어 가시는 그분의 마음은 더없이 기쁘기만 하셨다.

주석님께서는 친위전사의 갸륵하고 뜨거운 충성의 마음이 안겨와 가슴이 뭉클해지셨다. 수령을 위해,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깡그리 바치는 무한한 헌신성과 자기희생성은 인간의 아름다움의 첫째가는 징표이다.

이날부터 한동안 김정숙여사께서는 성글어진 머리채가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쓰셨다. 그래서 그 나날의 충성스러운 친위전사의 모습은 군모를 깊숙이 눌러쓰신 대로 역사의 화폭에 남게 됐던 것이다.

공화국기와 국장을 볼 때마다

사회주의 북부조국의 존엄과 영광의 상징인 남홍색 공화국기가 창공 높이 펄펄 휘날린다. 8월의 햇발 아래 공화국의 국장이 더욱 빛나고 있다. 김일성주석님을 중심으로 굳게 뭉친 온 겨레의 뜻을 모아 공화국을 창건한 지 50년도 더 된 오늘 우리는 전 세계가 찬탄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북부조국의 공화국기와 국장이 만들어지던 반세기 전의 나날들을 감회깊이 더듬어보게 된다.

1948년 봄 어느 날이었다. 한 일꾼을 만나신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국기와 국장 제정사업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다. 여사께서는 ≪우리의 국기와 국장에는 주석님의 새 조국 건설 구상과 방침이 잘 반영되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군님께서는 공화국 국기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들이 흘린 붉은 피와 당의 둘레에 뭉친 우리의 혁명역량을 상징하는 붉은 색을 기본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민의 기백을 상징하는 표시와 미래의 승리를 상징하는 오각별을 반드시 넣을 데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여사께서는 그런 별을 국기뿐 아니라 국장에도 그려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국기와 국장 도안을 심의하는 날 사람들은 국기와 국장 도안을 보며 커다란 기쁨과 감격을 표시했다.

처음 만든 국장 도안에는 용광로가 그려져 있었다. 그랬던 국장에 지금과 같이 수력발전소가 그려져 사람들에게 열정과 희망,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게 된 데는 깊은 사연이 있다.

국기와 국장 도안을 마지막으로 심의하게 되는 전날 밤이었다. 주석님께서는 다음날 심의하게 될 국기와 국장 도안을 펴놓으시고 자정이 넘도록 깊은 사색에 잠겨 계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부강한 새 조선 건설을 위해 밤낮이 따로 없이 헌신하고 계시는 주석님의 건강이 염려되어 잠시라도 쉬실 것을 거듭 말씀드렸다. 주석님께서는 ≪이제 곧 우리가 세울 공화국의 국기와 국장을 결정지어야 하겠는데 국장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며 도안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조용히 주석님의 곁에 앉으셨다. 용광로 대신에 전기화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이 어떠냐고 하시는 주석님의 말씀에 여사께서는 ≪그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정중히 대답 올리셨다. 그런데 전기화를 어떤 형식으로 반영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깊은 사색에 잠겨 계시던 여사께서는 발전소를 그려 넣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리셨다. 그러자 주석님께서는 ≪옳소. 발전소, 우리나라 수풍발전소를 넣는 것이 좋겠소≫라고 하시면서 국장도안에 수력발전소와 송전탑을 힘 있게 그려 넣으셨다.

이렇게 두 분의 백두산 장군들께서 깊은 사색과 노고를 바치시어 완성하신 국기와 국장 도안은 심의위원들의 전적인 지지와 찬동을 받게 되었다.

며칠 후 완성된 국기와 국장 도안을 받아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도안을 자세히 살펴보셨다. 그러면서 참 잘됐다고 감개무량한 어조로 거듭거듭 말씀하셨다.

오늘도 북부조국, 공화국의 국기와 국장은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불멸의 노고와 업적을 길이 전하며 세계만방에 빛을 뿌리고 있다.

산파에 깃든 이야기

회고록≪세기와 더불어≫(계승본) 8권에는 김일성주석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김정숙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지들을 위해 한 생을 살았습니다.≫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의 한 생은 혁명동지들을 위해 바친 고귀한 한 생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 1942년 9월 창평 비밀근거지에 가셨다가 돌아가시는 길에 삼사 연락소에 들리셨을 때였다. 그분은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조국광복회 조직과 반군사조직 책임자, 핵심조직 성원들을 만나시어 당면한 투쟁과업과 그 수행방도들을 밝혀주셨다. 그런 후 여사께서는 지하조직들이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를 물질적으로 지원할 데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삼사, 창평 일대의 깊은 산 속에는 고사리, 고비와 같은 산나물도 많고 대황, 창출을 비롯한 약재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오면서 보니 산에 저절로 나는 파도 어떤 데는 몇 백 평씩 무더기로 자라던데 그것을 잘 절였다가 반찬으로 이용할 수 있게 보내줘도 부대가 어려운 겨울 한철을 별 근심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혁명동지들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사랑하시는 김정숙여사께서 어려운 행군 길에서 백무고원 높은 산 속에 자라는 산파를 보고도 그대로 스쳐 지나지 않으시고 그것을 반찬으로 이용하도록 그 방도를 가르쳐주신 것이었다.

높은 지대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산파는 그때까지 사람들의 눈 밖에 있었다. 산파는 집에서 재배하는 파보다 연하지 못하고 풀 냄새가 약간씩 나지만 김정숙여사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잘 절여놓으면 재배하는 파와 별로 차이 없는 좋은 반찬감으로 이용될 수 있었다.

김정숙여사의 세심한 가르침을 받들고 이 지역 지하조직들은 많은 양의 산파를 채취해 소금에 절여두고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로 정상적으로 보냈다.

산파를 반찬으로 이용할 데 대한 여사의 말씀이 있은 후부터 채소부족으로 고생하던 이 고장 화전민들과 목재채벌장 사람들도 산파를 베어다가 반찬으로 널리 이용하게 되었다. 산파는 지금도 이곳 백무고원 사람들이 많이 먹는 부식물중의 하나로 되고 있다고 한다. 임산작업소의 식당을 비롯한 식당들과 가정에서는 산파 철을 놓치지 않고 산파를 베다가 절여두고 겨울기간에 반찬으로 널리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을 위해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는 동지들을 불같이 사랑하신 위대한 인간, 위대한 성인이셨다. 혁명동지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들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깡그리 바치는 것, 여기에 여사의 가장 큰 행복과 낙이 있었다.

오늘도 감동을 주며 전해지고 있는 김정숙여사의 혁명적 동지애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들 중에는 한 장의 모포에 깃든 애틋한 추억도 있다.

항일의 나날 김정숙여사께서는 한 장의 모포를 무척 애용하셨다. 그분은 아무리 어려운 행군 길에서도 언제나 그 모포를 지고 다니셨다.

한때 김정숙여사께서 나이 어린 여대원을 데리고 사령부 작식대원으로 활동하신 적이 있으셨다. 그분은 야영하는 밤에는 그를 꼭 껴안고 잠자리에 드셨다. 그때마다 한겨울의 혹한을 이겨내게 한 것이 바로 그 모포였다. 찬바람이 스며들까 모포자락을 꼭꼭 여며주고 품에 안아주는 따스한 그 사랑 속에서 여전사는 잠들곤 했다.

준엄한 혈전장에서 김정숙여사의 배낭에는 언제나 그 모포가 얹혀있었다. 사람보다 배낭이 더 커서 누구인지 가려보기 힘들 때에도 주석님께서는 모포를 보시고 김정숙여사를 금방 알아보셨다.

그러던 어느 날 김정숙여사와 나이 어린 여대원이 헤어지게 되었다. 여대원은 김정숙여사를 꼭 붙잡고 자꾸 울었다. 한 모포 밑에서 친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부어주시던 자애로운 품을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사께서도 눈시울을 적시며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해 하셨다. 그분은 여대원에게 기념품을 주고싶으셨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것이 없었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다. 문득 배낭 위에 얹혀있는 모포에 눈길이 미쳤다. 지금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포뿐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여대원의 배낭에 그 모포를 차곡차곡 포개 넣어주셨다. 그러면서 ≪자, 기념으로 가지고 가거라. 새 것은 아니지만 너를 친동생처럼 사랑해온 이 언니의 온기가 스며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되어 여사께서 혈전의 길에서 애용해오시던 모포는 평범한 여대원에게 안겨지게 되었다. 여대원은 김정숙여사의 체취가 어려 있는 그 은정 어린 모포를 보물처럼 정성껏 간수해왔다.

그때로부터 반세기 이상의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다. 여러 해전 과거의 그 나이 어린 여대원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어 주석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는 수십 년 세월 가보로 보관하고 있던 그 모포를 주석님께 삼가 올렸다.

순간 주석님께서는 눈시울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셨다. 잊지 못할 사랑하는 친위전사의 체취가 확 안겨와 가슴이 뜨거워지셨다. 그 시절을 회상하시며 주석님께서는 ≪김정숙동무는 늘 받는 재미보다 주는 재미가 더 좋다고 했습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보통당원

조직생활에서는 높고 낮은 성원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의 숭고한 조직관이었다.

조국이 광복된 후 어느 날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자신께서 속한 당 조직의 세포위원장을 찾아가셨다. 그분의 차림새는 유달리 단정한 한복차림이었다.

≪아니, 오늘은 어딜 가시렵니까?≫

평상시에는 늘 수수한 옷차림으로 노동자들과 한 집안 식구처럼 함께 지내시던 여사께서 명절 옷차림으로 나서신 것이 놀라와 세포위원장은 이렇게 물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당 세포위원장에게 당비를 바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순간 선출된 지 10여일밖에 되지 않는 젊은 세포위원장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비를 받는 날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거야 누구를 시켜 보내도 되겠는데 이렇게 일부러 찾아오셨습니까?!≫

세포위원장은 서둘러 말씀드렸다. 그러자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도 이 세포에 소속돼 생활하는 당원인데 남에게 보내다니요. 어서 당비를 받으세요.≫

세포위원장은 의자를 내놓으며 그분께 앉으실 것을 권했다. 그러나 여사께서는 사양하셨다. 세포위원장이 자리에 앉아 당비수납부를 펼쳐 놓은 다음에야 그분은 의자에 앉으셨다.

그날 여사께서는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세포위원장 앞에서 단정한 자세로 당비를 바치신 다음 전달 분공 수행정형을 보고하셨다. 그분은 세포위원장으로부터 새 분공까지 받으신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서시었다.

그때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였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날도 전달과 꼭 같은 차림새로 또다시 세포위원장을 찾아오셨다. 사실 그때 세포위원장은 당비수납부를 들고 김정숙여사를 찾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전달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문턱에 서서 전전긍긍하고 있던 참이었다.

세포위원장은 또다시 어색한 자세로 당비수납부를 펼쳐들었다. 그날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위원장 동무에게 한가지 비판하겠어요≫라고 말씀하시며 어지간히 긴장된 세포위원장을 따뜻이 바라보셨다. 그러시고는 온화하신 음성으로 ≪위원장 동무는 저에게 분공 주기를 몹시 어색해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마세요. 김일성장군님께서도 자주 당 세포위원장을 찾아가시어 분공도 받으시고 분공 수행정형도 보고하십니다. 누구나 다 당 세포위원장에게 자기의 당 생활정형을 보고하고 새 분공도 받는 것은 우리 유격대 안의 당원들의 당 생활에서 떼어낼 수 없는 하나의 기풍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일성장군님께서 세워주신 당 생활기풍대로 사는 것이 당원들의 의무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위원장 동무도 저에게 분공도 주고 잘못한 것은 비판도 해주세요≫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가 뭐 특별한 사람인가요. 저도 이 세포의 보통당원입니다.≫

참으로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는 가장 평범한 보통당원이시면서도 가장 위대한 혁명가이셨다.

몸소 바느질을 하시며

세상에 부러운 것 없이 씩씩하게 자라나는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을 보면 사람들은 반세기 전 백두산 여장군께서 원아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부어주시던 잊지 못할 사연들을 되새겨보게 된다.

1947년 8월 어느 일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날 백두산 여장군께서는 주석님을 모시고 만경대의 원아들을 찾으셨다. 원아들이 막 달려와 백두산장군들의 품에 안겨들었다. 원아들을 안아주시던 주석님의 안색은 차츰 흐려지셨다. 아이들이 입은 옷과 몽당치마, 발가락이 보이는 운동화와 신발, 고무신 등에 눈길이 미치셨던 것이다. 학원을 다 돌아보신 주석님께서는 원아들에게 빨리 옷도 해 입히고 구두도 만들어 신겨야 하겠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주석님의 심경을 깊이 헤아려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돌아오시는 그 길로 학원제복도안을 만드셨다. 여사께서는 투사들을 불러 제복도안에 대한 의견을 물으셨다. 투사들은 원아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담아 김정숙여사께서 밤새도록 노고를 바치시며 완성하신 제복도안이 꼭 마음에 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씀 올렸다.

그 후 김정숙여사께서는 학원제복도안을 주석님께 드리셨다.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옷은 군복형식으로 했습니다. 혁명의 핏줄을 잇는다는 뜻에서 바지와 저고리에 붉은 줄을 치게 했습니다. 저고리 소매 끝에 있는 사람 ≪인≫자 모양의 붉은 줄은 인민의 참된 아들, 딸이 되라는 뜻이고 그 아래에 내려 친 붉은 줄은 혁명의 대를 잇는다는 뜻인데 예전에 아동단에서 여학생들의 치마에 두른 흰줄처럼 한 줄은 인민반, 두 줄은 초급반, 석 줄은 고급반을 표시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지에는 항일의 혁명전통을 잇는다는 뜻에서 이렇게 붉은 줄을 치게 했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자신의 생각에는 ≪저고리 소매단에 친 붉은 줄은 내용이 깊어서 좋고 바지에 붉은 줄을 친 것은 항일의 혁명전통 하나만을 굳건히 이어나간다는 뜻이 뚜렷하므로 제일 좋아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석님께서 평가하신 옷 도안대로 학원제복을 친히 만드셨다. 직접 재단도 하시고 정성을 담아 한뜸 한뜸 누벼나가셨다. 만경대혁명학원 제복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조국의 진달래향기 속에

한치의 땅,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의 풀도 무심히 대하지 않고 거기에서 조국을 느낄 줄 알며 그것을 목숨 바쳐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야 조국을 사랑한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다.

조국의 진달래, 봄날의 상징으로 일러오는 이 꽃이 이제는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간직하셨던 조국에 대한 열화 같은 사랑의 상징으로, 조국의 미래에 대한 확신의 대명사로 되어있다.

1939년 5월 18일 이른 아침이었다. 주석님의 명령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은 5호 물동으로 압록강을 건넜다. 조국 땅으로 들어서시는 김정숙여사의 가슴은 크나큰 기쁨과 격정으로 세차게 설레었다.

압록강 기슭에는 자기의 아들딸들을 반기는 듯 조국의 진달래가 붉게 피어 있었다. 휴식명령이 내리자 대원들은 붉게 핀 진달래 쪽으로 쫙 흩어졌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한달음에 달려가시어 진달래포기를 한껏 끌어안으셨다.

아, 얼마나 그립고 그립던 조국인가. 잊을 라야 잊을 수 없는 조국으로 향한 길을 개척하며 헤쳐온 피의 험산준령은 얼마였던가.

봄바람에 일렁이는 진달래는 조국 땅을 밟으신 백두산 여장군을 반겨 향기를 마음껏 뿜어내는 듯 싶었다. 백두산 여장군의 두 볼을 타고 흐르는 격정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 진달래꽃잎 위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아침이슬을 담뿍 머금은 무성한 진달래꽃 몇 가지를 정히 꺾어 주석님께 드리셨다. 주석님께서는 그윽한 꽃향기를 맡으시면서 감회깊이 말씀하셨다.

≪조선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격정을 금치 못하셨다. 그분은 바위틈에 피어난 진달래포기에 얼굴을 묻으시며 이렇게 속삭이셨다.

≪조국의 진달래!… 비바람도 이겨내고 눈보라도 이겨내고 끝끝내 피어났군요!≫

그러시면서 여사께서는 봄이 꼭 오리라는 걸 믿지 못했다면 이 진달래는 영영 눈 속에 파묻혀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정녕 그날의 조국의 진달래는 오직 주석님만을 굳게 믿고 일제의 모진 발굽 아래서도 억척같이 일어서는 조국의 모습이었다.

조국은 목숨보다 귀중하다. 조국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뼈저리게 체험했기에,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깡그리 바치셨기에 우리의 백두의 여장군께서는 조국 땅에 핀 한 떨기 꽃을 보시면서도 조국을 생각하며 그토록 소중히 가슴에 안으신 것이 아니겠는가.

김정숙여사께서는 항일의 준엄한 나날 언제나 조국의 진달래를 생각하시며 여성의 몸으로 조국광복의 한길에서 무비의 용맹을 떨치셨다.

내 조국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백두의 여장군의 이런 뜨거운 사랑이 스며있다.

백두의 여장군께서 한 품에 안으셨던 조국의 진달래는 겨레의 마음속에 천년만년 붉게 피어 있을 것이다.

어머니 품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만경대혁명학원의 외진 병동에서 울려나온 ≪어머니!≫하고 부르던 원아들의 세찬 흐느낌 소리가 오늘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와락 안기고 싶었지만 뒷걸음질을 하지 않으면 안됐던 열병이 든 아이들을 한 품에 안아주시던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여사의 모습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1947년 11월초의 어느 날이었다.

만경대혁명학원을 돌아보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음식그릇을 들고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는 한 유가족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셨다. 그가 올리는 인사를 받으신 여사께서는 그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느라고 얼마나 수고하느냐고 하시면서 ≪그런데 식사는 어디로 가져가는 것입니까?≫라고 물으셨다.

유가족 아주머니는 ≪…아픈 아이들에게…≫하고는 더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모든 것을 알아차리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아이들이 그렇게 심하게 앓고 있는데 그것을 왜 나한테 알리지 않았느냐고 하시며 여간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어서 아이들이 앓고 있는 격리실로 가보자고 이르셨다.

순간 일꾼들과 유가족 아주머니는 김정숙여사의 앞을 가로막아 나섰다. ≪그곳으로는 절대로 가실 수 없습니다. 열병이기 때문에 거기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꾼들의 거듭되는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김정숙여사께서는 격리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셨다. 격리실 앞마당에 이르자 일꾼들은 또다시 김정숙여사의 앞을 막아 나서며 밖에서 돌아보고 제발 격리실 안에만은 들어가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듯 말씀드렸다.

그러는 일꾼들에게 김정숙여사께서는 ≪그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입니까. … 장군님께서 금싸라기처럼 귀중히 여기시는 아이들이 앓고 있는데 가보지 않으면 되겠습니까≫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친부모가 있다면 아이들이 열병을 앓는다고 그냥 돌아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걱정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 봅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저 없이 격리실 안에 들어가셨다. 격리실 안에는 병 기운이 꽉 차 있었다. 뜻밖에도 김정숙여사를 뵙게 된 아이들은 일시에 ≪어머니!≫하고 외치며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열병을 앓는 몸으로 여사의 품에 안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눈물만 훔치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바라보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격해지는 마음을 금치 못해 하시며 ≪너희들이 그래도 어머니 걱정을 다 하는구나. 나는 괜찮다≫라고 하시면서 뒷걸음질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당겨 한 품에 안아주셨다.

이날 불덩이같이 달아오른 그들의 머리도 짚어주시고 지금 무엇을 먹으며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알아보신 여사께서는 일꾼들에게 아이들의 병을 깨끗이 고치고 그들의 몸을 빨리 회복시킬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셨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흘렀다.

바로 그때였다. 처음부터 김정숙여사의 친어머니사랑에 목이 메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원아들이 격해지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이며 세차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의 한없이 따사로운 품에 안긴 원아들이 격정에 넘쳐 터뜨린 이 목소리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이 강산에 영원히 메아리쳐갈 것이다.

이름 대신 고운 그림을

이북 어린이들의 행복의 보금자리인 탁아소에 가보면 옷장에 그려진 사과, 복숭아, 비행기 등 고운 그림들을 보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조국의 미래를 꽃피워 가는 길에서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남기신 또 하나의 사랑의 일화가 담겨있다.

광복 후 어느 날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3.8탁아소(오늘의 김정숙탁아소)를 찾으셨다. 여사께서는 귀여운 어린이를 품에 안아 볼도 다독여주시면서 탁아소의 운영정형을 일일이 알아보셨다. 그러면서 탁아소에서 이렇게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는 것을 보시면 장군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실 것이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아기 방이며 취사장 등 여러 시설들을 돌아보시며 탈의실의 옷장과 신발장 앞에 이르셨을 때였다. 여사께서는 옷장과 신발장의 문들마다에 붙어 있는 어린이들의 이름을 주의 깊게 살펴보셨다. 이윽고 그분은 옷장과 신발장에 이름을 써 붙이면 글을 모르는 어린이들이 어떻게 자기의 장을 알아볼 수 있겠느냐고 하시며 이름을 써 붙이는 것보다 그림을 그려 붙이면 아이들이 자기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아무개 어린이의 옷장에는 사과를 그려 붙이고 아무개 어린이의 신발장에는 비행기를 그려 붙이고 그것을 누구누구의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좋겠다고 세심히 가르쳐주셨다.

이렇게 해서 이북에 처음으로 세워진 3.8탁아소와 더불어 온 나라 탁아소마다 어린이들의 옷장에는 이름 대신에 갖가지 고운 그림들이 그려지게 되었다. 오늘 이북 땅에 수풀처럼 일어선 탁아소들마다 백두산 여장군의 이런 세심한 사랑과 배려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처창즈가 전하는 불멸의 모습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길지 않은 한 생의 순간 순간을 수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한 불멸의 이야기들로 수놓으셨다.

1935년 초봄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삼도만 유격구를 떠나 처창즈로 오셨다. 그때는 처창즈 사람들이 극도의 식량난을 겪고 있던 어려운 때였다. 일제는 갓 창설된 유격구를 초창기에 없애보려고 대대적인 ≪토벌≫공세를 취하는 한편 유격구 주민들을 굶겨 죽이려고 처창즈를 서둘러 봉쇄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식량위기는 더해만 갔다. 숟가락으로 떠서 나누어주던 낟알과 알로 세어주던 소금마저 떨어졌다. 소나무의 껍질마저 죄다 벗겨졌다. 김정숙여사의 마음은 참으로 쓰리고 아프셨다. 더욱이 안타까우신 것은 밭갈이 철이 사정없이 흘러가는데 사람들은 허기져 파종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일부 사람들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내걸고 구해온 종곡을 먹어버리는 것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즉시 공청원들을 파견해 인민들이 종곡을 먹지 않게 해설사업을 하도록 하셨다. 그리고는 자신도 민중 속에 들어가 봄철파종과 관련한 선동사업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공청원들과 청년들을 부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봄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굶겨 죽이려고 날뛰는 원수 놈들의 악랄한 책동을 짓부수고 살아서 끝까지 혁명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봄의 농사전투는 삶과 혁명을 위한 결사전입니다. 이 결사전에서도 우리 공청원들이 앞장서서 군중을 이끌어 나갑시다. 모두다 공청파종대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섭시다≫라고 뜨겁게 호소하셨다. 여사의 불같은 연설에 공청원들 모두가 열렬히 호응해 나섰다.

다음날부터 처창즈의 들판에 공청파종대가 하얗게 붙었다. 괭이 날이 햇빛에 번쩍거리고 일이 빠르게 진척됐다. 혁명의 노랫소리가 높이 울려 퍼졌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


노랫소리가 높으니 일은 더욱 사기가 났다. 지쳐 쓰러졌던 주민들이 씨앗자루를 안고 밭으로 나왔다. 다만 한 고랑에라도 더 씨를 묻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무릎걸음을 하고 쓰러지면서도 손에서 호미를 놓지 않았다. 그때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들에게 보다 큰 신심을 안겨주시기 위해 ≪오늘은 이렇게 굶주리며 갖은 고난을 다 겪지만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을 따라 혁명하기에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다≫고 하시면서 혁명이 승리하고 조국이 광복되면 조국인민들에게 처창즈에서 고생하며 싸운 이야기를 옛말처럼 들려주자고 말씀하셨다.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의 이렇듯 헌신적인 투쟁과 그분이 안겨주신 신념이 있었기에 처창즈 사람들은 시련을 이겨내고 최후승리의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몸소 선거선전원이 되시어

1946년 10월 어느 날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께서는 중구지구의 한 선거 분구 사무실을 방문하셨다. 여사께서는 이곳 선거위원회 일꾼들에게 선거선전을 하러 나왔다고 자신을 소개하신 다음 선거선전사업정형에 대해 물으셨다.

백두의 여장군을 미처 알아 뵙지 못한 일꾼들은 그분께 위에서 내려보낸 제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달하고 있는 데 대해, 군중이 선거방법에 대한 실무적 문제들은 알고 있으나 선거가 가지는 정치적 의의에 대해서는 아직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고 계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동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선거선전사업에서 중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거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선거가 가지는 거대한 정치적 의의를 똑똑히 알려주는 것입니다≫라고 일깨워주셨다.

이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선거분구위원회에서 가두여성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선거의 노래≫였다. 여사께서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노래보급이 끝나자 선거분구위원회 위원장은 김정숙여사를 진짜로 선거선전을 하러 온 선전원인 줄 알고 모였던 김에 강연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수행한 일꾼이 그에게 급히 다가가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이시라는 것을 알려주자 그는 너무도 뜻밖이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다시 감동한 목소리로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 강연하시겠다고 청중에게 알렸다. 순간 장내는 커다란 감격으로 웅성거렸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들을 바라보시며 첫 민주선거가 가지는 정치적 의의와 중요성에 대해 알기 쉽게 해설해주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강연을 마치시면서 이렇게 호소하셨다.

≪유권자 여러분! 김일성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첫 민주선거에 100% 참가해 찬성의 한 표를 바침으로써 장군님께서 세워주신 인민정권을 반석같이 다집시다.≫

역사의 그날 김정숙여사께서 하신 이 말씀은 오늘 경애하는 장군님의 조국통일 구상을 받들고 투쟁하고 있는 이남민중의 가슴속에서도 뜨겁게 메아리치고 있다.

언제나 항일전의 그날처럼

위대한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여사의 생애는 너무도 짧았다. 하지만 생전에 주석님의 안녕과 만수무강을 위해 그분이 바치신 다함 없는 충성의 열도는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이 뜨거웠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항일전의 나날 사령부 작식대원으로 일하시던 그 지성 그대로 광복 후에도 주석님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셨다.

광복 직후 이북의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워 사람들은 얼마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식량난을 이겨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시기 주석님께서는 ≪나라가 해방됐지만 아직은 우리 인민들이 잘살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우리도 인민들과 같이 조밥을 먹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때 주석님의 진지 상에는 늘 조밥이 올랐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러한 진지 상을 주석님께 드릴 때면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해하셨다. 여사께서는 잡곡을 가지고서라도 어떻게 하면 주석님을 위해 드릴까 하고 여러 모로 마음쓰셨다. 어느 날에는 좁쌀과 팥, 강낭콩을 섞어 밥을 지어드리셨고 국수도 해드리셨으며 또 어느 날에는 강낭콩을 두고 묽게 쑨 강냉이죽이나 수제비 국도 대접해드리셨다.

어느 날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석님으로부터 대동강에 모래무치라는 맛이 매우 좋은 물고기가 있다는 말씀을 듣게 되셨다. 그 순간부터 여사께서는 주석님께 맛좋은 그 물고기를 대접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김정숙여사께서는 모래무치가 난다는 고장을 찾아 길을 떠나셨다. 수십 리 길을 걸어 끝내 모래무치를 구해오신 여사께서는 그날 저녁 그것을 정성스럽게 구어 주석님의 진지 상에 올리셨다. 주석님께서는 모래무치를 맛있게 드시면서 ≪어려서부터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오늘에야 모래무치 맛을 보게 되는구만. 참 별맛이오. 아주 좋은 고기로군≫하고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만족해하시는 주석님을 우러러 ≪장군님께서 기뻐하시니 제 마음도 가볍습니다. 산에서 싸울 때는 마음뿐이지 아무 것도 대접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것을 왜 못하겠습니까≫라고 말씀 올리셨다.

정녕 혁명의 수령을 받드는 김정숙여사의 정신세계는 비길 데 없이 순결하고 숭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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