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28일

통일여명 편집국

 

 

태양의 수호성, 민족의 어머니 1

 - ≪태양의 수호성, 민족의 어머니≫

통일여명 편집국 6-2-11

 

 

차 례

 

계수나무에 얽힌 사연 / 태양찬가에 바치신 지성

만강의 봄날에 울려 퍼진 ≪사향가≫ / 스물 아홉 송이의 버섯 / 사격선물

없애버린 장승 / 결사옹위의 총성 / 건국의 기적소리

사슴고기와 볶은 좁쌀 / 행군 길에 바치신 지성 / 몸소 만드신 배낭

박씨 할머니의 뉘우침 / 오곡 동지죽 / 강행군 길에서 먹은 ≪꼬치 떡≫

옮겨진 백리향 / 2개의 총탄자국

기념서명 / 북데기 속의 벼 한 알도 / 고말산의 메아리

뜻깊은 졸업식 날의 이야기 / 책은 가까이, 술은 멀리

어머님과 한 홉의 미숫가루 / 지성 어린 우산 / 얼음세숫물

전장에 울려 퍼진 혁명가요 / 군기에 깊은 뜻 담으시며 / 눈솜

≪비단도 ≪참비단≫이지…≫

 

계수나무에 얽힌 사연

화창한 봄을 맞아 산과 들에 온갖 꽃이 만발한 지금 대성산혁명열사릉도 꽃바다 속에 잠겨있을 것이다.

주체조국을 방문하고 있던 어느 봄날 주작봉 마루에 오른 우리는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이시며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여사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그윽한 꽃향기 속에 계시는 그이의 반신상 앞에 경건히 다가섰다.

봄바람에 푸른 가지들을 흔들며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속에는 주석님께 바치신 김정숙여사의 고결한 충정에 대한 감동 깊은 한 가지 사연이 떠올랐다.

어느 해 가을날, 김정일장군님께서 대성산혁명열사릉을 찾으셨을 때였다.

주석님께 무한히 충직했던 항일혁명투사들의 반신상을 깊은 감회 속에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어느덧 김정숙여사의 반신상 앞에 이르셨다.

오늘도 주석님의 안녕을 지켜드리는 호위장군의 자세인 듯 금수산의사당이 한눈에 안겨오는 곳에 숭엄한 모습으로 계시는 김정숙여사의 반신상을 뜨겁게 바라보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잠시 후 장군님께서는 수행하고 있던 일꾼들에게 생전에 주석님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시던 김정숙여사께서 계수나무를 무척 사랑하신 사연을 말씀하셨다.

일꾼들은 장군님의 말씀에 심취되었다.

김정숙여사께서 계수나무를 사랑하신 것은 꽃이 곱고 향기가 좋아서만이 아니었다. 바로 주석님께서 계수나무를 좋아하셨기 때문이었다.

낮이나 밤이나 사업에만 열중하시는 주석님께서 잠시나마 계수나무의 향기 속에서 휴식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김정숙여사께서는 정원에 계수나무를 심으시고 아침저녁 정성껏 가꾸셨다.

주석님께서는 정원에 들어서실 때마다 김정숙여사의 정성이 깃든 그 계수나무의 향기에 실려 심신의 피로가 다 날아가 버리는 것만 같아 못내 만족해하셨다.

그럴 때면 김정숙여사의 기쁨이 얼마나 크시었으랴.

주석님의 새 조국 건설사업을 적극 받드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자신의 손으로 남새밭도 가꾸어 수령님께서 좋아하시는 상추며 쑥갓 같은 것도 마련하시고 밤이면 빨치산시절의 권총을 굳게 잡고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드리신 김정숙여사.

이렇듯 충성의 마음으로 언제나 가슴을 불태우신 김정숙여사께서는 눈이 오면 계수나무가지에 실리는 눈을 털고 길이 미끄러울까봐 온밤 눈을 치우곤 하셨다. 진정 주석님을 위해서라면 나무 한 그루도 무심히 대하지 않으신 김정숙여사이셨다.

그 충정의 사연들을 되새겨보시는 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안광에 숙연한 빛이 감돌았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주석님에 대한 김정숙여사의 끝없는 충실성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수령님께서도 자주 말씀하시지만 김정숙여사에게 있어서 자신을 위한 일이란 하나도 없었다고, 오직 수령님의 혁명사업을 보좌하시고 수령님의 안녕과 만수무강을 보장해드리기 위하여 한 생을 깡그리 바치셨다고 말씀하셨다. …

그 사연을 돌이켜보면서 우리는 달아오르는 격정 속에 김정숙여사의 한 생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듯 고귀한 충정의 세계를 안고 계신 김정숙여사의 반신상이 모셔져있는 주작봉 마루에 ≪오늘 우리 인민의 지성이 뜨겁게 바쳐지고 있다≫고 혁명열사릉보존소의 일꾼은 말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김정숙여사의 반신상을 찾아 깨끗한 지성을 바치면서 그이께서 생전에 걸으시던 충성의 한길을 끝까지 이어갈 맹세를 다지고 있는 이봉실씨를 비롯한 용성구역 용문동의 여맹초급단체 성원들, 평양 대성고등중학교와 평양 청호고등중학교의 교원들인 김리복, 이영희, 유성건설국 3직장 노동자 황영란, 고려봉사총국의 장미영 씨들을 비롯한 수많은 당원들과 근로자들, 10대의 청소년들…

평범한 날에 이렇듯 뜨거운 충성의 마음을 굳게 간직하고 있는 이북의 동포들 모두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위하여 한 목숨 바쳐 나설 각오와 투지에 넘쳐 있는 것이다.

태양찬가에 바치신 지성

날이 갈수록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더 높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럴수록 이 불멸의 혁명송가 창작에 깃든 감동적인 이야기가 가슴을 적셔준다.

광복의 기쁨이 넘치던 1946년 5월 어느 날, 김정숙여사께서 정원에 있는 채소밭을 가꾸고 계셨다.

김책 동지가 여사를 찾아 왔었다. 그는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서 찾아뵙게 됐다고 하면서 가방 속에서 많은 편지와 함께 가사와 악보도 내놓는 것이었다.

여사께서는 그것을 일일이 다 읽어보셨다. 편지들은 위대한 김일성 장군님에 대한 노래를 하루빨리 지어달라는 각지 민중의 간절한 소원을 말하고 있었다.

김정숙여사를 바라보며 김책동지는 ≪지금 인민들은 장군님에 대한 혁명송가를 목마르게 바라고 있다≫고 절절하게 말씀드렸다.

여사께서는 격동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민들의 이런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정말 기쁘군요. 사실 저는 언제부터 장군님의 노래를 지었으면 하고 생각해오던 참이었어요.≫

김정숙여사의 말씀을 듣고 난 김책동지는 신심에 넘쳐 송가창작을 확신을 갖고 추진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김책동지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 일을 아시고 또 꾸지람을 하시고 만류하시지 않겠는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여사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물론 장군님께서는 그러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산에서 싸울 때 장군님께서 엄하게 막으신다고 해서 노래를 만들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말씀하셨다.

이어 여사께서는 의미 깊은 어조로 ≪저는 최근에야 똑똑히 깨달았어요. 우리가 장군님의 승인을 받기만 기다린다면 10년, 100년이 지난 다음에도 장군님에 대한 노래를 지어 부를 수 없을 거예요.≫

김정숙여사께서는 불멸의 혁명송가를 창작하는 것을 전체 인민의 염원과 혁명의 요구를 실현하는 신성한 역사적 과제로,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여기셨다.

≪노래창작을 곧 시작합시다. 저도 힘껏 돕겠습니다. 우리 인민이 해방된 조국 땅에서 장군님께 삼가 드릴 첫 노래로, 우리 인민이 대를 이어 불러갈 영원한 노래로 잘 만들어봅시다.≫

여사의 말씀은 위대한 태양찬가의 탄생을 예고하는 선언과도 같이 울렸다.

김책동지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떠나갔다. 그는 그 후 시인(이찬)에게 노래창작을 위한 과업을 주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 후 김책동지에게 송가창작실태를 자주 알아보셨다. 어느 날에는 항일혁명투쟁의 체험이 없는 시인의 창작고충을 헤아리시고 ≪혁명가요집≫을 보내주셨다. 그러시면서 ≪이 노래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인식하도록 할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장군님을 길이 칭송하는 혁명의 노래 시상을 능히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석님께서 친히 창작하신 노래들을 비롯해 100여 편의 혁명가요들이 들어 있는 수첩을 김정숙여사로부터 받아 연구하고 지도를 받는 과정에 시인은 혁명송가의 주옥같은 가사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후 어느 날 김정숙여사께 김책동지가 전화를 걸어 왔다. 노랫말을 다 쓴 시인이 여사께 가사를 보여드리고 가르침을 받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여사께서는 가사를 빨리 지었다고 기뻐하시면서 그를 만나주셨다.

가사를 받아 여러 번 읽으신 김정숙여사께서는 귀중한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간청하는 시인에게 장군님을 모시고 항일무장투쟁을 하실 때의 이야기들을 감명 깊게 들려주셨다.

여사께서는 산에서 싸우시던 이야기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로지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시는 장군님의 거룩하신 발자취는 우리나라 그 어디에나 깃들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 발자취는 백두산의 험한 줄기들과 압록강과 두만강의 굽이굽이에도 어려 있습니다. 또 해방을 맞이한 이 나라의 꽃동산에도 깃들어 있습니다.

정말 장군님의 존귀하신 성함은 영원히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서 빛을 뿌릴 것입니다.≫

김정숙여사의 말씀에 심취된 시인은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주의 깊게 들으며 수첩에 다 적어 넣었다.

시인의 감동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새로운 열정과 확신에 넘쳐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를 드렸다.

≪알았습니다. 이제야 시상이 눈앞에 확 떠오릅니다. 정말 여사를 만나 뵙지 못했더라면 제가 이 노래를 완성할 수 없었을 뻔했습니다.≫

여사께서는 시인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며 자신의 이야기가 장군님에 대한 노래를 완성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기쁜 일이 없겠다고 말씀하셨다.

여사의 뜻과 말씀이 그대로 담겨져 완성된 ≪김일성장군의 노래≫ 가사는 얼마 후 발표됐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누구보다 기뻐하면서 가사를 읽고 또 읽으셨다.

영원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이 태양찬가와 더불어 그 창작에 바치신 여사의 충효심과 뜨거운 지성, 크나큰 공적은 만대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만강의 봄날에 울려 퍼진 ≪사향가≫

생전에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렇게 회고하셨다고 한다.

≪김정숙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가였습니다.≫

여기 김정숙여사의 열렬한 애국심을 전해주는 짧은 사연 하나가 있다.

1936년 4월이었다. 새로 편성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주석님의 친솔 하에 만강에 이르러 며칠 간 머물게 됐다.

햇빛이 눈부시던 어느 날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한 여대원과 함께 만강의 개울가로 나가셨다. 수정같이 맑은 물과 푸른 버들가지, 갖가지 꽃들의 그윽한 향기…

봄의 정취에 취하신 김정숙여사께서는 못 잊을 고향산천을 그리는 듯 어릴 적에 사랑하던 노래를 조용히 부르셨다.

그때 숙영지를 돌아보던 주석님께서 개울가로 다가가시면서 ≪동무들도 고향생각이 나는 모양≫이라고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제야 사령관동지께서 개울가에 나오신 것을 아신 여사께서는 얼른 일어서며 몸가짐을 바로 하셨다. 주석님께서는 다정한 음성으로 ≪조국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고향의 봄이 각별히 그리운 법≫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 이윽고 주석님께서는 고향 만경대에 대해서, 조국광복의 길에서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과 어머님에 대해서 그리고 조부모님들에 대해서 감회 깊이 회고하셨다.

주석님께서는 그러시고는 깊은 감회에 잠겨 냇가를 거니시며 나직이 노래를 부르셨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 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 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주석님께서 부르시는 ≪사향가≫에 크게 감동되신 여사께서는 주석께 그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주석님께서는 소탈하게 웃으시며 그야 어렵겠는가고 하셨다. 그리하여 그날 김정숙여사께서는 여대원과 함께 만강의 개울가에서 주석님으로부터 ≪사향가≫를 배우게 되셨다.

주석님께서는 여사께서 ≪사향가≫를 부르시는 것을 들으시고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하시며 가정형편을 물으셨다.

여사께서는 아직 그 누구에게도 자세히 이야기한 적이 없는 자신의 집안 내력과 가슴속에 서리고 맺힌 아픈 사연을 주석님께 전부 말씀드렸다.

일제 놈들에게 부모님을 잃고 오빠와 동생이 혁명의 길에서 희생된 사실, 그래서 일찍부터 손에 총을 잡고 혁명의 길에 나선 사실…

주석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우리는 다 같은 처지요.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같은 사람들이 혁명의 앞장에 서야 하오≫라고 하시면서 ≪혁명을 해서 조국을 찾아야 합니다. 혁명의 길에서는 죽어도 영광이고 살아도 영광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주석님께서는 ≪혁명을 잘하자면 무엇보다 먼저 학습을 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총을 쥐고 성스러운 혁명전선에 나선 혁명가로서의 책임을 자각하고 훌륭한 여투사, 여성혁명가가 되라≫며 뜻깊은 가르침을 주셨다.

그날 밤이 지새도록 김정숙여사께서는 잠들 수 없으셨다. 주석님을 모시고 귀중한 가르침을 받은 그 하루는 여사께 있어서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가장 뜻깊고 영광스러운 날로 가슴에 새겨졌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잊을 수 없는 만강의 봄날에 배운 ≪사향가≫를 제일로 사랑하시며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언제나 이 노래를 부르면서 주석님께 끝없이 충직한 친위전사로, 영원한 충성의 별로 한 생을 수놓으셨다.

스물 아홉 송이의 버섯

김정숙여사의 뜨거운 동지애와 불굴의 투지에 대해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김정숙동무는 언제나 자신보다도 동지들을 먼저 생각했고 어려운 난관과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이겨나가는 불굴의 투지를 가진 강의한 사람이었습니다.≫

항일혁명투쟁의 나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1939년 7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오도양차 밀림 속에 도달했을 때었다.

주석님께서는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여사를 부르셨다. 그리고는 여사께 그곳에 남아서 열병에 걸린 한 여대원을 맡아 잘 돌봐주고 그의 건강을 회복시키라는 과업을 주셨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천고의 밀림 속에서 고열로 의식마저 잃은 환자를 혼자서 간호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였지만 여사께서는 명령을 어김없이 수행하겠다는 단 한마디 대답으로 그 임무를 받으셨다.

주석님께서는 한달 후에 꼭 돌아오겠다고 하시면서 초막도 짓고 마른 삭정이도 많이 쌓도록 하셨으며 비상식량까지 다 털어놓게 하신 다음에야 대오를 이끌고 길을 떠나셨다.

어떻게 하든지 환자의 의식을 하루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여사께서는 지체 없이 치료에 착수하셨다. 하룻밤을 밝힌 채 밖에 나가 버섯들을 따 가지고 초막에 들어서던 여사께서는 환성을 올리며 환자를 껴안으셨다. 그 여대원이 의식을 회복했던 것이다. 여사께서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환자에게 밀림 속에 남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주시면서 방금 뜯어온 버섯 스물 아홉 송이를 노끈에 꿰여 초막 기둥에 달아 매셨다. 그러면서 ≪사령관동지께서 한 달이 지나면 우리를 찾으러 오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 송이씩 따서 이 버섯이 다 없어지면 오실 것≫이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셨다.

여사께서는 환자가 팔이 너무 아파서 고통을 겪을 때면 송진을 긁어다 불에 녹여 엿물처럼 만들어 붙여주셨고 산나물도 뜯어다 정성껏 반찬을 만들어 그의 입맛을 돋궈주기도 하셨다. 그리고는 고열환자에게 금물인 찬물을 환자가 찾을 때마다 그를 품에 꼭 껴안고 ≪혁명을 위해서 참아야 한다≫며 여대원을 달래셨다.

이러한 나날이 흘러 어느덧 보름이 되던 날 뜻밖에도 주석님께서 밀가루와 콩기름, 쇠고기 등을 마련해 가지고 찾아오셨다.

주석님께서는 그동안 지낸 형편이며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알아보신 뒤 의지를 굳게 가지고 병을 마감까지 잘 치료하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주석님께서는 이어 여사께 ≪혁명가 한 사람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 열병은 마지막 보름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나는 동무가 환자를 꼭 구해낼 것이라고 믿는다≫는 간곡한 말씀을 남기고 떠나가셨다.

여사께서는 환자치료에 더욱 뜨거운 심혈을 기울이셨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억수로 퍼붓던 밤이었다. 천둥이 울고 번개가 치면서 불어닥치는 세찬 바람은 초막 지붕까지 날려보냈다. 초막 안으로 쏟아지는 비를 맞은 환자는 떨기 시작했다.

여사께서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환자에게 입히시고 덮고 있던 담요마저 그에게 씌워주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쏟아지는 비를 막을 수가 없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환자를 품안에 꼭 껴안으시고 조용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혁명가요를 부르셨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천고의 밀림 속에서 혁명가요를 부르시는 여사의 모습에서 힘을 얻은 환자는 저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니 어느덧 용기가 나고 떨리던 몸도 훈훈해졌다.

여사의 이런 뜨거운 지성으로 여대원은 끝내 병을 이겨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노끈에 꿴 스물 아홉 번째의 버섯송이를 따던 날 주석님께서 대원들과 함께 초막을 찾아주셨다.

주석님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정중히 인사드리는 여사와 여대원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건강한 몸으로 맞아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오. 동무들은 어려운 전투를 이겨냈오. 이제는 전투대오에 돌아가서 원수들과 힘껏 싸워야 하오≫하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스물 아홉 송이의 버섯에 대한 일화.

참으로 거기에는 항일의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께서 지니신 주석님의 명령지시에 대한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과 혁명동지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가슴 뜨겁게 어려있다.

사격선물

백두의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께서 백발백중의 명사수라는 사실은 수많은 일화와 함께 이미 사람들 속에 널리 알려져 있다.

여사께서 8.15광복 후 사람들의 청을 받고 사격하실 때면 대체로 한번에 5∼6발 정도의 총탄을 쏘고는 하셨다고 한다. 여사께서는 몇 발 안 되는 사격으로도 언제나 명사수의 사격솜씨를 남김없이 보여주셨는데 사람들은 항상 사격을 좀 더 해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김정숙여사께서 언젠가 한번은 무려 다섯 개의 탄창을 갈아대며 사격하신 일이 있었다.

1949년 3월 8일에 있은 일이다.

이날 김정숙여사께서는 남녘 땅에서 빨치산투쟁을 하던 여성들과 함께 모란봉실탄사격장을 찾아가셨다. 그들에게 총 쏘는 법을 익혀주시기 위해서였다.

첫 순서로 보병총사격이 진행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실전 속에서 총을 많이 쏴본 사람들이었지만 200미터 밖에 있는 목표를 명중시키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언제인가 주석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어느 한 전투에서 위험에 처했던 자신을 몸으로 막아 나섰던 김정숙여사의 ≪수령결사옹위정신≫에 대해 말씀해주시면서 ≪그는 …이름난 명사수였습니다≫라고 뜨겁게 회고하셨다고 한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사수들에게 다가가 조준하는 방법과 사격자세, 세부적인 사격원리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세심히 가르쳐주셨다.

사수들이 모두 목표를 명중시켰을 때에야 보병총 사격이 끝났다.

이어 권총사격이 진행됐다. 얼마 지났는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수들이 모두 김정숙여사 곁에 우르르 모여드는 것이었다.

여사의 뛰어난 사격술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던 그들은 이번 기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사의 사격솜씨를 보려고 막무가내로 간청을 드렸다.

거듭 사양하시던 여사께서는 마침내 애원하는 처녀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셨다.

그들 가운데는 김정숙여사와 이름이 꼭 같은 정숙이라는 나이 어린 처녀도 있었는데 여사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 정숙이에게 선물을 하나 만들어줄까.≫

김정숙여사께서는 목표 판을 새것으로 바꿔 세우도록 하셨다.

이윽고 목표 판이 나타났다.

권총을 손에 드신 여사께서는 별로 조준하지도 않고 단발사격을 하셨다.

땅, 땅, 땅…

마치 기관총으로 연발사격을 하는 것처럼 경쾌한 소리가 메아리쳐 갔다.

한 탄창을 다 쏘신 여사께서는 또다시 새 탄창을 갈아 끼우시고 연방 사격하셨다.

연속으로 탄창이 교체됐다.

총소리가 멎고 모두가 다가와 보니 다섯 개의 탄창이 모두 비어 있었다.

순식간에 사격을 끝내신 여사께서는 ≪제대로 맞았겠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목표 판을 가져오라고 이르셨다.

목표 판을 가져온 처녀들의 입에서 저절로 경탄이 터져 나왔다.

목표 판에 ≪정숙≫이라는 두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졌던 것이다. 정말 신비로운 명사격술이었다.

없애버린 장승

존경하는 김정숙여사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전 기간 혁명동지들과 민중이 자연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가지며 계급의식을 깊이 간직하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셨다.

여사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실 때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신관념이 심했고 그것이 혁명투쟁에 적지 않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1933년 봄, 5.1절 행사준비로 분주하던 연길현 왕우구 맥동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한가지 난감한 문제를 두고 생각에 잠겨 계셨다. 마을 어귀의 길옆에 서있는 장승에 대한 문제였다. 장승의 위쪽에 새겨진 흉물스러운 사람머리 모양은 보기만 해도 섬뜩한 감을 주었다. 여사께서는 마을에 들어오는 액운을 막는다는 그 장승이 사람들의 혁명의식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장승의 코를 떼어먹으면 병이 있는 여자들이 아이를 낳게 된다는 소문도 퍼뜨리고 있었다. 정말로 어느 날 밤중에 장승의 코가 없어지는 일도 발생했다.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그 장승을 그냥 두고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다. 혁명근거지에 이런 미신적인 ≪괴물≫이 서있다는 것은 적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여사께서는 이 기회에 장승도 없애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미신적 관념도 없애야겠다고 결심하셨다.

어느 날 여사께서는 마을 여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에게 귀신을 본 일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한 여인이 제 눈으로 귀신을 보았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그는 밤에 이웃마을에 다녀오다가 보니 산기슭에서 도깨비가 춤추더라고 말했다.

여사께서는 그것이 도깨비가 아니라 인이 발산하는 빛이라는 것을 대뜸 짐작하셨다. 여사께서는 여인들을 데리고 도깨비가 춤추러 나온다는 곳에 가보셨다. 거기에는 ≪토벌≫왔다가 죽은 일본군 놈의 시체가 있었다.

여사께서는 사람이 죽어 부패될 때에는 인이라는 물질이 나와 퍼런 빛을 내게 된다고 차근차근 깨우쳐주셨다. 그리고 장승도 그 무슨 ≪신령≫이 아니라 옛날 통치배들이 사람들을 몽매하게 만들려고 세워놓은 허수아비라는 것을 일깨워주셨다.

이튿날 그 이야기를 들은 공청원들은 김정숙여사의 능숙한 정치사업방법과 대범하신 행동에 감탄했다. 그 중 일부 성미 급한 청년들은 유격구에 그런 ≪괴물≫이 있는 것은 수치라고 하면서 곧장 장승을 없애버리고 말았다.

이 일로 해서 일부 마을사람들은 ≪≪신령≫이 대노해서 벌을 내릴 것≫이라고 하면서 불안해했다.

한 노인은 장승을 없애버린 화가 자기 집에 미친 것 같다고 하면서 근심에 쌓여 있었다. 그 무렵에 손자가 앓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 노인의 집을 찾아가셨다. 구해 가지고 간 꿀물과 약을 아이에게 먹이며 병구완을 하셨다. 그리고 부엌도 깨끗이 치우고 물독도 가득 채워 놓고 장작도 패주셨다.

여사께서는 노인에게 지금 조선 사람 치고 재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우리 조선 사람들이 겪는 불행은 ≪하느님≫이나 장승을 노엽게 해서가 아니라 일제 놈들 때문이라고 일깨워주셨다. 그러시면서 ≪일제를 쳐부수는 김일성장군님을 믿고 따르면 나라가 광복되고 잘살게 된다≫고 말해주셨다.

노인은 ≪손자의 병도 낫게 해주시고 눈도 틔워주신 은혜를 어떻게 갚겠냐≫고 하며 감격스러워했다.

장승이 사라진 뒤 마을 사람들은 미신관념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들은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을 우러르며 반일투쟁에 힘껏 떨쳐나서게 되었다.

결사옹위의 총성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생전에 자주 이렇게 회고하셨다고 한다.

≪김정숙동무는 나에 대한 충실성이 매우 지극한 동무였습니다.≫

항일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지니신 고결한 충성심은 오늘 우리 이남변혁운동가들에게 수령결사옹위정신의 참다운 귀감으로 되고 있다. 다음 일화도 여사께서 지니셨던 충성심의 열도를 잘 보여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친솔하신 부대가 안도현 대사하치기에 이른 1940년 6월 하순이었다.

대오가 막 강에 들어서려고 할 때었다.

옆 고지에 매복하고 있던 적들이 불의에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령관동지께서 부대를 친솔하고 계신다는 기미를 알아차린 적들이 아군의 뒤를 좇다가 부대가 강에 들어서는 순간 불의에 집중사격을 들이댔던 것이다. 끈질기게 달려드는 그놈들은 가장 악질적인 ≪신선대≫였다. 정황은 매우 위급했다.

그 순간 정황을 예리하게 살펴보신 주석님께서는 권총을 높이 드시며 대원들에게 고지로 반 돌격할 것을 명령하셨다. 돌격나팔소리가 울리고 우렁찬 만세소리가 터지며 전 부대는 비호같이 고지를 향해 돌격해 올라갔다.

성난 사자처럼 달려오는 혁명군의 기세에 적들은 겁을 먹고 갈팡질팡했다.

정황은 순식간에 급변되었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기습을 꾀하던 적들은 완전히 수세에 빠졌다. 그러나 워낙 악질적인 놈들이라 피를 물고 거꾸러지면서도 발악을 계속했다.

주석님께서는 산중턱바위 위에 올라서서 전투를 지휘하셨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석님의 곁에서 잠시도 눈길을 떼지 않으시고 전투정황을 살피시며 호위임무를 수행하셨다.

그런데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밭에 시선을 돌리던 순간 여사의 심장은 고동을 멈춘 듯이 얼어붙었다. 대여섯 명의 적들이 무성한 갈대밭 속에 몸을 은폐하고 주석님께서 서 계시는 산중턱으로 은밀히 기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위기일발의 찰나에 김정숙여사께서는 ≪사령관동지!≫라고 다급히 외치며 번개같이 몸을 솟구쳐 온몸으로 주석님을 막아 나서시었다. 그와 동시에 여사께서는 권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기셨다.

야무진 총성과 함께 선두의 한 놈이 비명을 지르며 땅에 고꾸라졌다.

또 한방의 총소리가 울렸다. 주석님께서 여사의 어깨너머로 쏘신 총소리였다. 두 번째 놈이 넘어갔다.

여사께서는 여전히 주석님을 몸으로 막으신 채 연거푸 적들을 향해 총탄을 날리셨다.

갈대밭으로 기어오던 간악한 놈들은 순식간에 전멸되고 위기일발의 순간은 무사히 지나갔다.

주석님을 위해서라면 원수의 총구 앞에도 서슴없이 가슴을 내밀며 한 몸이 그대로 성새, 방패가 되시고 육탄이 되시는 수령결사옹위의 최고화신이신 김정숙여사에 의하여 주석님의 안전은 훌륭히 보장되었다.

바위 위에 거연히 서시어 전투승리로 대원들을 이끄시는 주석님을 우러르는 여사의 두 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지켜낸 전사의 끝없는 행복의 눈물, 뜨거운 격정의 눈물이었다.

건국의 기적소리

광복 직후인 1945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이날 아침 일꾼들에게 ≪오늘은 청진제철소(오늘의 김책제철연합기업소)에 나가서 공장형편도 자세히 알아보고 공장복구위원회 동무들을 만나 공장복구문제도 의논해보자≫며 떠날 차비를 하자고 하셨다.

일꾼들이 제철소까지는 길이 멀기 때문에 자동차를 준비하겠다고 하자 여사께서는 ≪눈 덮인 산발을 달리던 우리들이 벌써 자동차를 찾으면 되겠는가≫고 하시며 앞장에서 걸으셨다. 여사의 뒷모습을 우러르며 일꾼들은 안타까움에 사로잡혔다.

여사께서 청진지구에서 활동하시는 나날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공장과 농촌, 어촌과 학교, 주택지구들에 나가시면서 차를 타신 일이 전혀 없으셨던 것이다. 김정숙여사의 성품을 잘 알고 있던 일꾼들은 어쩔 수 없어 그냥 따라 나섰다.

근 20리 길을 걸어 제철소에 이르니 공장일꾼들이 달려나와 인사를 올렸다.

여사께서는 연기 한 점 피어오르지 않는 공장구내를 가슴 아프신 듯 지긋이 바라보셨다.

아직 공장이 돌아가게 하지 못한 자책감에 사로잡힌 복구위원회 일꾼들의 사업보고를 받으시며 여사께서는 소결로 직장과 용광로 직장을 돌아보시고 제관 직장 쪽으로 가시다가 한 대의 기관차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 나오는 것을 보고 문득 걸음을 멈추셨다.

공장의 모든 것이 숨죽은 것처럼 고요한데 ≪칙- 칙-≫하고 하얀 연기를 뿜어대는 기관차가 신기하신 듯 여사께서는 그리로 다가가셨다. 기관차에는 스무 살 안팎의 두 청년이 흥이 나서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들이 몹시 사랑스럽고 대견하신 듯 따뜻이 인사를 나누시고 기관차를 움직일 수 있느냐고 다정히 물으셨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청년이 이제 증기압만 좀 더 올리면 움직일 수 있다고 대답을 올렸다.

여사께서 ≪동무들이 기관차를 운전해본 일이 있는가≫고 물으시자 그 청년은 ≪직접 운전해보지는 못했지만 운전하는 것을 보기도 했고 왜놈 때 몰래 기계들을 움직여본 일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겪은 피눈물나는 지난날에 대해 말씀드렸다.

그는 광복 전에 지금 손질하고 있는 기관차에서 조사(조수)로 일했지만 일본 놈 기관사는 그에게 운전기술을 가르쳐주기는 고사하고 기계장치에 손도 못 대게 했다. 그 청년은 일본 놈 밑에서 이 같은 천대와 수모를 당하던 일을 생각하면 분통을 참을 수가 없어서 자기 손으로 기관차를 보라는 듯이 몰아볼 결심을 품고 얼마 전부터 자기 동무와 함께 기관차를 정비한 뒤 오늘 아침에 불을 지폈다고 말했다.

청년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신 김정숙여사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시며 ≪이런 동무들이 바로 새 조선의 주인들≫이라고, ≪이런 동무들이 있는 한 제철소복구는 문제없다≫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여사께서는 어디 기관차를 한번 보자고 하시며 노동자를 앞세우고 몸소 기관차에 오르셨다. 그러시고는 번쩍이는 기계과 계기들을 살펴보시며 한번 기적소리를 울려보라고 이르셨다.

그 청년은 기쁨에 넘쳐 기적 손잡이를 지그시 잡아당기었다.

붕- 붕-

바람소리만이 울부짖던 제철소 구내에 기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사께서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이젠 기관차를 몰아보라고 하셨다. 청년은 더욱 사기충천해서 시동 손잡이를 힘있게 돌려 기관차를 몰아갔다.

제철소 구내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달려오며 만세의 환호성을 올렸다.

감격으로 들끓는 군중을 바라보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손수 기적 손잡이를 잡으시고 기적소리를 다시 높이 울리셨다.

우렁찬 기적소리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저 멀리 푸른 하늘가로 메아리쳐 갔다.

이윽고 기관차에서 내리신 여사께서는 그 두 청년에게 수고가 많았다고 치하하시고 일꾼들에게 ≪오늘 울린 기적소리는 제철소 복구가 시작됐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신호였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 이날 높이 울려주신 기적소리, 정녕 그것은 주석님께서 밝혀주신 새 조국 건설 노선을 받들고 힘찬 진군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리는 건국의 기적소리였으며 나라의 주인, 공장의 주인이 된 조선 노동계급의 힘으로는 못해낼 일이 없다는 신심을 안겨주는 승리의 기적소리였다.

노동계급의 심장 속에, 새 조선의 청년들의 가슴속에 충성의 불씨, 혁신과 투쟁의 불씨를 심어주신 그 역사의 기적소리는 오늘도 조국통일과 민족의 융성번영을 위해 힘차게 투쟁하고 있는 우리 7천만 겨레의 심장을 뜨겁게 달궈주고 있다.

사슴고기와 볶은 좁쌀

항일무장투쟁시기 김일성주석님을 모신 소부대가 처창즈 부근에 자리잡고 있던 때의 어느 날이었다.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식량공작임무를 받고 파견되는 소부대와 함께 일시적으로 주석님 곁을 뜨게 되셨다. 여사께서는 그동안 주석님께 올릴 식사를 두고 생각에 잠기신 채 음식재료들을 살펴보셨다. 쌀도 반찬감도 다 빠듯했다.

여사께서는 그것을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끼니별로 일일이 나누어 놓으신 다음 작식(식사보장)을 맡아볼 대원에게 넘겨주시며 절절하게 말씀하셨다.

≪식량이 넉넉하지 못해요. 그렇지만 사령관동지의 식사만은 건너지 않도록 꼭 명심해주세요.…≫

여사께서는 그러시고 작식대원을 데리고 샘터로 나가셨다. 샘터에 이르러 물 속에서 무슨 꾸러미를 건져내시더니 그것을 푸셨다. 순간 대원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사슴고기가 아닙니까. 이것이 어떻게 아직까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 사슴고기는 오래 전에 한 소부대성원들이 사령관동지께 올려달라고 보내온 것이었다.

그동안 행군과 전투도 여러 번 있었고 숙영지도 몇 번이나 옮겼는데 그 사슴고기가 그때까지도 샘물 속에 잠겨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는 대원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여사께서는 놀라워하는 대원에게 사슴고기가 많지 못하니 한번에 얼마큼씩 써야 한다는 것과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 때에는 꼭 주석님께서 모르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것으로 반찬 만드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셨다.

천막으로 다시 돌아오신 여사께서는 그 대원 앞에 또다시 주머니 하나를 내놓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볶은 좁쌀이에요. 이걸 넣고 10분 정도 끓이면 찻물처럼 된답니다. 사령관동지께 올리는 물은 꼭 그렇게 해주세요.≫

그 좁쌀은 여사께서 행군과정에 틈틈이 볶아서 고이 간수해 가지고 다니신 것이었다.

사연 깊은 좁쌀까지 받아든 대원의 눈가에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말씀을 명심하고 모든 일을 꼭 그대로 잘하겠습니다. …≫

그 대원은 목이 메여 끝내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날 그 대원은 격정 없이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이 사실을 소부대동무들에게 전했다.

대원들은 뜨거운 것을 삼키며 김정숙여사의 모범을 따라 사령관동지께 충성 다할 결의를 다지고 또 다졌다.

행군 길에 바치신 지성

1938년 4월초 김일성주석님을 모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장백현 12도구로 행군해가고 있을 때의 일이다.

행군 대오는 심각한 식량난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다. 주석님께서도 끼니를 번지신 지 벌써 여러 날이 되었다. 때마침 대오는 행군도중에 황소만큼이나 큰 곰 한 마리를 잡게 되었다.

김정숙여사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행군 대오를 진두에서 이끄시는 주석님과 대원들에게 오랜만에 식사를 제대로 대접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식사시간이 되었다. 주석님께서는 대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식탁에는 난데없이 먹음직스러운 순대까지 놓여있었던 것이다.

≪고향집 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우리 어머님이 만든 돼지순대보다 퍽 맛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대원들의 얼굴마다 기쁨이 가득했다.

기뻐하는 대원들을 바라보시는 주석님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훗날 주석님께서는 그때를 잊지 못해 하시며 ≪그때는 쌀이 귀한 때였으므로 좁쌀을 약간 넣고 곰의 피와 고기를 다져 넣어 순대를 맛있게 해먹은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대원들 모두가 별맛이라고 하면서 두고두고 잊지 못하던 곰 순대가 식탁에 오르게 된 배경에는 잊을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 곰 고기를 손질하실 때였다. 여사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가 옆에 있는 여대원에게 곰 순대를 만드는 것이 어떠냐고 조용히 물으셨다. 그 여대원은 순대소리에 펄쩍 놀랐다. 그 깊은 산 속에서 곰 순대를 만든다니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순대를 만들 양념감이며 양푼 같은 그릇들이 깊은 산중에 있을 턱이 없었다. 게다가 행군도중의 짧은 시간에 순대를 만드는 번잡스런 일을 어떻게 벌여놓나 하는 근심이 앞섰던 것이다.

그 여대원의 심정을 헤아리신 여사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도 아직까지 곰 순대를 본 적도, 만든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어요. 그렇지만 밸을 자세히 살펴보니 순대가 될 것 같아요. 곰의 발은 여덟 가지 진미의 하나라고 하니 곰 순대도 맛이 좋을 거예요.

사령관동지께서 요즈음 연속으로 큰 전투를 치르기에 몹시 피로하신 것 같아요. 같은 재료지만 조금이라도 색다르게 해드리면 사령관동지께서 달게 드시지 않을까요.≫

여대원의 가슴속에서는 격정이 치밀어 올랐다. 아무 것도 없는 깊은 산 속에서 그것도 행군의 짧은 시간에 보통 성의를 가지고서야 누가 감히 곰 순대를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언제나 사령관동지의 건강과 안녕부터 생각하며 그 어떤 고초도 달게 여기시는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이셨다. 그 뜨거운 충성심, 고결한 마음에 여대원은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이윽고 여사께서는 대원들과 함께 곰 순대를 만들기 위한 긴장된 ≪전투≫를 시작하셨다. 울창한 밀림의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며 귀따갑게 울리는 도마소리, 분주히 오가며 일손을 다그치는 작식대원들… 조건이 불리하다보니 그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정말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도 닦을 새가 없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뽀얗게 김을 내뿜는 가마뚜껑을 여시는 여사의 얼굴에서는 기쁨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가마 안에는 먹음직스러운 곰 순대가 있었다. 천고의 밀림 속의 곰 순대.

그 사연을 알게 된 유격대원들은 저마다 여사께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백두의 여장군께서는 그러는 대원들에게 힘을 내어 일제를 쳐부수고 사랑하는 조국에 돌아가면 더 맛있는 순대를 대접하겠다고 격정적인 말씀을 하셨다.

몸소 만드신 배낭

1947년 2월 어느 날 밤이었다. 한 일꾼은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이신 김정숙여사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밤이 깊어 자정이 가까운 때였으므로 그 일꾼은 몹시 주저하면서 출입문 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김정숙여사께서 계시는 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이었다.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일꾼은 선뜻 방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일꾼이 문밖에서 주저하고 있을 때 인기척을 느끼고 방에서 나오시던 여사께서 먼저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여사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일꾼을 방으로 안내하셨다. 여사께서 계시는 방에 들어서니 바닥에 국방색 천이 놓여 있었는데 금방 재단을 끝낸 것이었다.

일꾼이 자정이 깊은 밤에까지 휴식을 잊고 무얼 하시느냐고 묻자 여사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어디 맞혀 보라고 하셨다.

어리둥절해 있는 일꾼을 잠시 지켜보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정색한 안색을 지으며 ≪장군님께서 정규적 혁명무력을 확대 발전시켜 나가시는 데 절실히 필요할 인민군대의 새 배낭견본을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일꾼은 형언할 수 없는 격정에 휩싸였다.

그 일꾼의 심경을 헤아리신 여사께서는 주석님께서 모쪼록 배낭을 혁명군대의 정규적 면모에 어울리면서도 전투활동에 편리하게 만들어야 하겠는데 어느 하나의 시제품도 그렇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항일유격대원들이 쓰던 배낭형식을 참작하여야 하겠다고 하셨다고, 그래서 주석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항일유격대원들이 지고 다니던 배낭을 참작해서 시제품견본을 만들어보던 중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김정숙여사께서는 재단한 천 조각들을 방바닥에 하나하나 펴놓으셨다.

그 때 일꾼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여사를 우러르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주석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는 백두산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충실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열렬하고 흔들림이 없는 것이라고…

여사께서는 인상적인 웃음을 지으시면서 함께 주석님의 숭고한 뜻을 실현해보자고 일꾼에게 뜨겁게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여사께서 만드시는 배낭시제품제작에 그 일꾼도 참가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었다.

재봉을 끝내고 실밥까지 말끔히 털었을 때는 새날이 밝아 동녘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완성된 배낭시제품을 정갈한 붉은 보자기에 싸시면서 ≪이제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가 만든 배낭시제품을 보시면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정규적 혁명무력을 확대 발전시켜 나가시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 수만 있다면 나는 이런 밤을 몇 천 밤이라도 새고 싶습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이북 인민군 장병들의 중요한 전투장구류의 하나인 배낭에도 나라의 혁명무력을 확대 강화 발전시키는 일에 바치신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의 한량없는 노고가 뜨겁게 어려 있는 것이다.

박씨 할머니의 뉘우침

≪김정숙동무는 혁명가의 풍모를 훌륭히 갖춘 참다운 여성공산주의자였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생전에 이런 말씀으로 김정숙여사의 혁명적 품성에 대해 회고하셨다고 한다.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여사께서 광복 직후 양덕군 대탕지 마을에서 혁명활동을 벌이시던 때의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한다.

이 마을에는 하숙을 치면서 미신을 몹시 믿는 박씨 성을 가진 한 할머니가 있었다. 이 할머니는 자기네 마을 여성들은 물론 다른 지방에서 온천치료를 하러온 여성들에게도 미신을 퍼뜨리고 있었다. 이 마을의 거의 모든 여성들이 자기 집이나 마을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 할머니를 찾아가 허황한 말을 듣고는 그가 시키는 대로 미신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맹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걱정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김정숙여사께서는 박씨 할머니의 집을 찾으셨다.

이날도 그의 집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방안뿐 아니라 마루에까지 모여 앉아 미신적인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들은 ≪용신당≫이나 ≪애기소≫에 빌면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낳는다는 박씨 할머니의 말에 넋이 나가 여사께서 마당에 들어서시는 것도 모르고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 인기척을 내서야 박씨 할머니는 이야기를 중단했다. 여사께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들으러 왔다고 하시면서 박씨 할머니에게 하던 말을 마저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고는 허물없이 마루에 앉으셨다.

박씨 할머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하기를 주저했다.

여사께서는 박씨 할머니에게 여기서 사시는지 오래 되느냐고 알아보시면서 여기 온천물은 무슨 병에 좋으냐고 물으셨다. 박씨 할머니는 속병, 피부병, 종기 같은 병에 좋다고 말씀드렸다.

이때 김정숙여사와 동행한 일꾼이 온천은 냉병치료에도 좋기 때문에 그 병에 걸려 아기를 못 낳던 여성들이 어린애를 낳을 수 있게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자 박씨 할머니는 아이를 못 낳던 여성들이 아이를 보는 것은 온천 때문이 아니라 신에게 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매일 첫닭이 운 뒤 두 번째 닭이 울기 전에 ≪용신당≫에 찾아가서 빌고 흰 종이에 돈을 싸서 ≪애기소≫에 넣고 온탕을 두 달쯤 하면 반드시 아이를 낳게 된다고 황당무계한 소리를 그럴듯하게 하는 것이었다.

여사께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여성들이 아이를 낳게 된 것은 신에게 빌어서가 아니라 온탕치료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고는 박씨 할머니에게 아기를 낳지 못하던 여자들 가운데 온탕을 하지 않고 신에게만 빌어서 아이를 낳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는 한참 생각해보더니 그런 여자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할머니의 손을 잡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 낳은 여성 치고 온탕을 하지 않은 여성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할머님이 ≪산신령≫에게 빈 다음 온탕을 하라고 가르쳐준 것도 결국 병을 치료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산신령≫에게 빌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온탕을 해야 한다고 하겠습니까.

또 사실이 그렇다면 제고장 ≪산신령≫에게 빌면 되지 구태여 여비를 쓰면서 여기까지 찾아올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김정숙여사의 말씀에 할머니는 오랜 세월 굳어진 신에 대한 믿음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여사께서는 계속해서 착취자들이 남 몰래 돈을 가져가기 위해서 흰 종이에 돈을 싸서 ≪애기소≫에 넣으라고 했다는 것과 지금까지 거기에 넣은 돈을 놈들이 가져가지 않았다면 아마 돈이 ≪애기소≫에 차고 넘쳤을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귀신이란 없다는 것을 명철하고 설득력 있게 밝혀주시는 여사의 말씀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던 박씨 할머니는 그제야 ≪그래서 놋양푼 만한 ≪애기소≫에 수십 년 동안 돈을 넣어왔어도 언제 봐야 몇 개 밖에 보이지 않았구만≫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같이 앉아 이야기를 듣고있던 여성들도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여사께서는 그것보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속아 착취를 당해왔다고 말씀하셨다.

마침내 박씨 할머니는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뉘우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사람들을 속이며 살아왔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할머니의 손을 다시 잡으시며 그것은 할머니의 탓만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우리 여성들은 하루빨리 글을 배우며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시고 행복을 마련해주신 영명한 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부강한 새 조국 건설에 힘써야 한다≫고 타일러주셨다.

여사의 따뜻한 가르치심에 감격한 박씨 할머니는 이제부터는 다시는 미신을 믿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신을 믿으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여사의 말씀은 다른 여성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미신에 깊이 빠져있던 박씨 할머니를 대번에 깊이 뉘우치게 하시는 김정숙여사를 한없는 존경과 흠모의 눈길로 우러러 보았다.

그 후 이 마을에서는 미신을 믿거나 ≪용신당≫, ≪애기소≫에 찾아가는 여성들이 없어졌으며 모든 여성들이 여맹조직에 가입해 주석님의 새 조국 건설방침 관철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고 한다.

오곡 동지죽

1947년 동지 전날에 서울의 어느 한 가정에서는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먹는 것이 조상전래의 풍습으로 되어왔다. 하지만 그때 이 가정에서는 유별나게도 벼, 보리, 조, 콩, 기장으로 오곡 동지죽을 쑤었다. 그 집이 바로 통일혁명가 성시백동지의 가정이었다.

준엄한 지하투쟁의 나날에 언제 한번 가정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던 성시백동지는 이해의 동짓날에는 아내와 함께 오곡 동지죽을 쑤었다.

어디서 생겼는지 탐스럽게 여문 오곡을 내놓은 일도 놀라운데 소매를 걷어붙이고 새알심을 만드느라 흥에 겨워 맷돌질까지 하니 아내에게도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려운 지하투쟁으로 늘 바삐 지내다 보니 가사에 관심을 돌릴 여념도 없던 남편이었다.

오곡 죽이 다 되어 아내가 죽을 푸려고 하자 성시백동지는 그 손을 잡았다.

≪여보, 오늘만은 내가 풀 테니 당신은 받기나 하시오. 그리고 옷을 갈아입소.≫

아내는 동짓날도 절반은 명절이라던데 그래서 남편이 저러나보다 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다음 상으로 다가갔다.

성시백동지는 아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여보, 이 상은 존경하는 김정숙여사의 크나큰 배려에 의해 마련된 것이오.≫

≪예?!≫

성시백동지는 너무도 뜻밖이어서 황송해하는 아내에게 오곡에 얽힌 가슴 뜨거운 사연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성시백동지는 주석님을 만나 뵙기 위해 평양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 주석님의 저택으로 가게 된 성시백동지는 주석님을 한 자리에 모시고 김정숙여사께서 차리신 저녁식사를 들게 되었다.

여사의 지극한 정성과 남녘의 전사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안겨오는 저녁상이었다.

주석님과 여사께서는 몸둘 바를 몰라하는 그를 식탁에 앉혀주시며 별로 차린 것은 없어도 많이 들라고 자애로운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주석님께서는 술병을 드시고 ≪성 동무는 술을 좋아한다는데 얼마나 합니까≫라고 물으시며 알맞게 마시면 몸에도 좋다고, 이남 땅에서야 언제 술 한잔인들 마음놓고 들었겠느냐고, 오늘 저녁은 제 집이나 같으니 마음껏 들라고 하시며 그의 잔에 먼저 술을 부으셨다.

성시백동지는 어느새 어려움도 잊고 고향집에서 부모님들과 같이 한 상에 마주앉은 기분으로 식사를 했다.

성시백동지가 고사리반찬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신 여사께서는 그의 반찬그릇에 고사리반찬을 더 놓아주셨다. 그러시고는 ≪우리나라 백두산일대 밀림 속에는 실한 고사리들이 많다≫고 하시며 행군도중의 쉴 참에 고사리를 뜯으시던 항일무장투쟁시기를 감회깊이 회상하셨다.

이때 성시백동지는 여사께 항일무장투쟁시기 지하사업경험을 들려주실 것을 간절히 요청했다.

그러자 여사께서는 웃음을 지으시고 굳이 사양하시다가 주석님께서 ≪이 동무들에게 항일무장투쟁시기 지하사업경험을 들려주면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말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자 다음과 같은 뜻깊은 말씀을 하셨다.

≪지하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혁명적 신념이예요.

적들에게 추격 당할 수도 있고 연락이 끊어진 채 적들 속에 혼자 남을 수도 있고 또 굶주리고 병들 수도 있어요. 이런 때 신념이 약하면 주저하거나 흔들릴 수 있어요. 때문에 지하사업을 하는 동무들은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그 신념이란 뭐겠어요. 그것은 오로지 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는 한마음이예요. 이 한마음을 굳게 가지면 적들 속에서도 두렵지 않고 혼자서도 외롭지 않으며 난관에 부닥쳐도 자신만만해요. 저는 이것을 지하사업을 하는 과정에 가슴깊이 체험했어요.≫

존경하는 여사께서는 남녘전사들의 생활과 투쟁에서 지침으로 되는 뜻깊고 교훈적인 여러 가지 말씀을 해주셨다.

성시백동지는 그날 저녁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안타까웠다. 생각 같아서는 존경하는 여사의 가르침을 며칠을 두고 받고 싶었다.

그날 밤 주석님의 배웅을 받으며 성시백동지가 현관문을 나섰을 때였다. 여사께서는 성시백동지의 손에 손가방 하나를 들려주시며 ≪성 동무, 38선을 넘어야 하겠기에 맛이나 보라고 조금씩 넣었어요. 오곡이예요. 자, 그러면 모쪼록 신변에 주의하세요≫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적 지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지하활동에 긴요한 물품만을 가지고 가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혁명사에는 그런 상례를 벗어난 경이적인 사실, 알알마다 조선의 위대한 어머님의 뜨거운 사랑이 깃든 오곡을 가지고 적 지역으로 들어간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남게 된 것이다.

성시백동지는 김정숙여사의 사랑이 깃든 오곡을 정히 간수했다가 이 해의 동짓날에 아내 앞에 풀어놓게 됐던 것이다. 이렇게 되여 세상에 있어보지 못한 ≪오곡 동지죽≫이 생겨났다.

그날 밤 오곡 동지죽을 차려놓은 상 앞에 앉은 성시백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존경하는 김정숙여사께서 우리들에게 돌려주신 사랑과 배려를 꼽자면 끝이 없소. 내 그 은혜 만 분의 하나라도 갚을 수 있겠는지 그게 걱정되오.≫

성시백동지와 아내가 그날 밤에 든 특이한 오곡 동지죽은 송죽 같은 절개와 혁명적 신념을 안겨준 귀중한 사상적 보약이었다.

강행군 길에서 먹은 ≪꼬치 떡≫

존경하는 김정숙여사께서 항일혁명의 나날 높은 책임성으로 언제나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셨다는 것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행군 길에서의 ≪꼬치 떡≫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한 실례들 중 하나이다.

1940년 10월 하순경의 어느 날이었다.

주석님께서 인솔하신 소부대는 며칠동안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적들은 이 부대가 사령부라는 것을 눈치채고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소부대가 어느 한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주석님께서는 휴식명령을 내리셨다.

피곤했던 터라 대원들은 나무에 기대여 금방 잠들어 버렸다.

행군 대오와 함께 강행군을 하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대원들이 휴식하는 순간부터 식사준비로 더 바쁜 시간을 보내시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밥을 지을 가마가 없는 것이었다. 지고 다니던 가마가 적들의 총탄에 맞아 못쓰게 됐던 것이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어떻게 하면 소부대의 식사를 보장하실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계셨다.

한 대원이 여사께 슬그머니 다가와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는 볶은 강냉이로 간단히 요기를 하자고 제기했다.

그러자 여사께서는 식량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며 좋은 방도를 찾아보자고 하셨다.

이윽고 그분은 그 대원에게 조용히 귀속말씀을 하신 뒤 샘터로 걸음을 옮기셨다.

샘터 부근에 이른 김정숙여사께서는 그에게 ≪꼬치 떡≫을 만들어보자고 하셨다. 그분은 영문을 몰라하는 대원에게 싸리나무를 한아름 꺾어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삭정이로 모닥불을 피우게 하셨다.

그 사이 김정숙여사께서는 배낭에서 비옷을 꺼내 물에 깨끗이 씻으신 다음 거기에다 밀가루반죽을 하셨다. 그제야 영문을 알아차린 대원은 여사를 도와 함께 떡을 빚었다.

여사께서는 그 떡을 가느다란 싸리나무가지에 꿰어 먹음직스럽게 구워내셨다. 그것이 바로 ≪꼬치 떡≫이었다.

노랗게 구운 ≪꼬치 떡≫을 보신 주석님의 심정은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주석님께서는 아무리 막막한 일이라도 머리를 쓰면 이렇게 좋은 방도가 나온다고 하시며 대단히 만족해하셨다. 그러시면서 이 ≪꼬치 떡≫을 곧 대원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셨다.

대원들은 ≪꼬치 떡≫을 보고 감격을 금치 못했다.

백두산 여장군의 뜨거운 정성이 담겨 있는 강행군 길에서 먹은 ≪꼬치 떡≫, 그것은 그 어떤 진수성찬에도 비길 수 없는 것이었다.

옮겨진 백리향

남북의 우리 겨레가 사랑하는 꽃나무인 백리향에는 존경하는 김정숙여사의 뜨거운 체취가 어려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언젠가 일꾼들에게 ≪우리 어머님은 해방 후 어느 날 수령님께서 계시는 창문 가에 백리향 몇 그루를 심으셨습니다≫라고 뜨겁게 회고하셨다고 한다.

광복 직후 어느 봄날에 있었던 일이다.

주석님의 저택으로 찾아왔던 항일혁명투사들은 뜻밖의 광경에 놀랐다. 정원에서 백리향의 독특한 향기가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꽃밭에는 파란 주단을 편 것처럼 백리향이 한 벌 쭉 깔려 있었다.

≪존경하는 김정숙동지께서 저 백리향을 떠 옮기시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장군님께서도 대단히 만족해하십니다.≫

경위대원이 귀띔해준 말이었다.

항일혁명투사들은 백두산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감동에 젖어들었다.

백리향의 청신한 향기 속에 묻힌 정원의 꽃밭은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황홀해 보였다.

그런데 며칠 뒤였다.

항일투사들은 주석님께서 계시는 창문 가에 새로운 꽃밭이 생겨난 것을 보게 되었다. 그 꽃밭에서도 백리향의 향기가 그윽하게 풍겨나는 것이었다.

항일투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 생긴 꽃밭도 그러하지만 좀처럼 옮겨심기가 어렵다는 백리향이 또다시 자리를 옮긴 것은 정말 희한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가슴 적시는 사연이 숨어 있었다.

어느 날 주석님께서 계시는 창문 가에서 정원의 꽃밭을 바라보시던 김정숙여사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계셨다.

언제 봐도 꽃밭이 좀 멀어 보이고 게다가 바람결이 맞지 않아서 꽃향기가 장군님께서 계시는 방으로 흘러들지 않는 것이었다.

여사께서는 여러 날 동안 꽃밭의 향기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가를 관찰해 보셨다.

그러고 나서 주석님께서 계시는 창문 가에 꽃나무들을 옮겨심기로 하셨던 것이다.

여사께서 살리기 힘든 백리향을 또 옮겨 심으시려고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어느 날 해질 무렵 정원에서 손수 백리향을 뜨셨다.

경위대원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한순간 너무도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서있었다.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신 듯 여사께서는 이마에 맺힌 땀을 씻으시며 이 꽃나무들도 키워보니 그렇게 살리기 어려운 꽃나무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조용히 웃으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들과 함께 백리향을 심으시며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한들 장군님을 위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우리는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그것이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도록 피우고 가꾸어야 해요≫라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여사께서는 그날부터 온갖 지성을 다해 새로 옮겨 심으신 백리향을 정성껏 가꾸셨다.

주석님께서는 밤새워 일하시다가 피곤이 몰려올 때면 자주 창문을 여시고 그 꽃밭을 굽어보곤 하셨다. 그때마다 백리향의 그윽한 꽃향기를 맡으며 피로를 푸셨다.

백리향의 꽃향기에 백두산 여장군의 충성의 한마음이 얼마나 뜨겁게 어려있는 것인가.

2개의 총탄자국

1940년 3월 25일에 진행된 홍기하전투 때였다.

이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주석님의 영활한 지휘 아래 홍기하 기슭에서 매복전으로 뒤쫓아오는 적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때 사령부는 전투지휘에 유리한 골짜기 동쪽의 높은 고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전투는 저녁 무렵에 시작됐다. 마에다 부대 놈들이 매복권 안에 들어서자 주석님께서는 사격명령을 내리셨다. 적들을 향한 일제사격이 불을 뿜었다. 좁은 골짜기 안에 갇힌 적들은 혼비백산해서 갈팡질팡하다가 앞뒤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삽시간에 쓰러져갔다.

한창 통쾌한 섬멸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인데 매복권 안에서 간신히 벗어난 몇 놈들이 사령부가 자리잡은 고지능선에 나타났다.

싸움에 열중하면서도 예리하게 사령부 주변을 살피시던 백두산 여장군이신 김정숙여사께서 그자들을 발견하셨다.

사령부에 닥쳐온 뜻밖의 위험을 포착하신 여사께서는 일신을 돌보지 않고 바위며 쓰러진 나무들을 단숨에 뛰어넘어 그쪽으로 달려가셨다. 그리고 적을 유인하기 위해 놈들에게 총을 쏘면서 사령부와 반대방향으로 달리셨다. 총탄이 김정숙여사의 귓가를 스치며 수없이 날아갔지만 여사께서는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적들을 뒤에 달고 계속 달리셨다.

사령부와 멀리 떨어진 지점에 이르러 김정숙여사께서는 아름드리나무에 의지해 접근해오는 적들에게 백발백중의 명중탄을 퍼부으셨다. 적들은 한 놈도 살아남지 못했다.

사령부가 위치한 능선에서 울리는 뜻밖의 총소리를 듣고 경위중대원들이 손에 땀을 쥐고 달려왔을 때는 이미 총소리가 멎은 뒤였다. 그들이 영문을 몰라 주변을 살피고있는데 여사께서 마주 달려오시며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안심들 하세요.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사하십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김정숙여사로부터 전말을 듣고 난 대원들은 여사의 배낭 위에 얹혀진 양재기에서 2개의 탄알자국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여사께서 적들을 유인하며 달리실 때 적탄 두 알이 그 양재기를 뚫고 지나갔던 것이다.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가.

하지만 김정숙여사께서는 줄곧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사하시다고 되풀이하시며 기쁨에 넘쳐 환히 웃고 계셨다.

자신이 겪은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직 주석님의 안녕을 지켜드렸다는 그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행복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이신 김정숙여사.

수령결사옹위의 최고화신이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를 우러러 보는 대원들의 눈가로 뜨거운 눈물이 고여 올랐다.

기념서명

1945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파괴된 공장들을 찾아 쉼 없는 정치활동을 벌이시던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여사께서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셨을 때였다. 뜻밖에도 숙소 앞에서 몇 명의 여학생들이 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들을 반갑게 대해주시며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고 물으셨다.

상냥하고 너그러운 여사의 인품에 매혹된 여학생들은 자기들은 청진여자중학교(당시) 학생들인데 그분께서 학교에 오셨을 때 크나큰 충격을 받아 가까이에서 만나 뵙고 싶어 찾아왔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여사께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시고 귀한 손님들을 추운데서 떨게 해서야 되겠느냐고 하시며 학생들의 손을 잡아 집안으로 이끄셨다.

여사께서는 각 학생들의 가정형편에 대해 물으시고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일일이 알아보셨다. 그들의 스스럼없는 대답을 들으신 여사께서는 ≪학생들은 새 조국 건설의 역군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시면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학습경험에 대하여 차근차근 말씀해주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러시면서 ≪노력이 천재라는 말도 있듯이 꾸준하고 인내성 있게 학습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인재로 될 수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그분의 소탈한 품성에 어려움을 다 잊은 학생들은 여사를 모시고 사진을 찍고 싶다며 자기들의 소원을 말씀드렸다. 여사께서는 학생들의 절절한 마음을 헤아리시고 학습에 지장이 없도록 일요일에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너무나 기뻐 손뼉을 치며 환성을 올리던 학생들은 이번에는 저마다 수첩을 꺼내들고 기념서명을 해줄 것을 간청했다.

여사께서는 학생들을 믿음 어린 눈길로 바라보시며 그 수첩들에 활달한 필체로 다음과 같이 쓰셨다.

새 조선의 참된 딸이 되거라!

1945년 12월 8일

김정숙

글자마다 이 나라의 모든 새 세대들이 주석님의 높은 뜻을 받들고 새 민주조선을 떠메고 나갈 참된 일꾼으로 자라나기를 바라시는 김정숙여사의 뜨거운 축복이 담겨 있는 그 귀중한 글을 받아든 학생들은 세찬 격정에 휩싸였다.

귀중한 글발이 쓰여진 수첩을 소중히 받아든 학생들은 학교에 오셨을 때 ≪학생 동무들은 새 힘이 용솟음치는 젊은 시절을 결코 헛되게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시절은 흘러가면 되돌아오지 않습니다≫라고 하신 김정숙여사의 간곡한 가르침이 인상깊게 되새겨졌다.

학생들은 수첩에 쓰여진 그 글을 해방된 조국의 미래이며 새 세대들인 나라의 모든 청년학생들이 가슴에 소중히 새겨야 할 삶과 투쟁의 영원한 좌우명으로 받아들였다.

북데기 속의 벼 한 알도

흥에 겨운 타작이 한창이던 50여 년 전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존경하는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석님을 모시고 당시 대동군 신흥리의 한 마을을 방문하셨다. 마을 한 곳에서는 몇 집이 한군데 모여 탈곡장을 차려놓고 벼 타작을 하고 있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회고록에서 ≪김정숙은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렸던 집에서도 그냥 앉았다가 일어서는 법이 없이 나무도 패주고 물도 길어주고 방아도 찧어주었다≫고 회고하신 일이 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항일의 그날처럼 건국의 나날에도 어디를 가든지 인민들의 일손을 도우시면서 그들을 새 조국 건설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셨다.

신흥리의 한 마을을 찾으신 그날도 여사께서는 탈곡장에 먼저 들리셨다. 사기가 나서 벼 타작을 하던 농민들은 뜻밖에도 전설적 위인들이신 백두산 장군들을 뵈옵는 커다란 감격과 기쁨으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잘 지은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즐거운 탈곡장에 그토록 뵙고 싶던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과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장군님을 함께 모시였으니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 것인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수북히 쌓여 있는 벼 더미를 돌아보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농민들에게 농사를 잘 지었다고 치하하시면서 풍작의 기쁨을 그들과 함께 나누셨다.

여사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고 탈곡장에 펼쳐진 흐뭇한 광경을 바라보시다가 타작을 한 벼 북데기를 추려내기 시작하셨다. 농민들은 황급히 그만두시라고 말씀드리면서 더욱 어쩔 바를 몰라했다. 백두의 여장군으로 명망이 높으신 분이 먼지 날리는 탈곡장을 찾아주신 것만도 영광스럽고 황송한 일인데 그런 궂은 일까지 하시게 하는 것은 백성 된 도리에 너무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다정하게 웃으시며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을 많이 해봤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북데기에서 낟알을 한알 한알 골라내셨다. 북데기를 들출 때마다 먼지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혀 개의치 않으시며 한 톨의 낟알이라도 북데기에 묻어나갈세라 정성을 기울이셨다.

농민들은 그만 눈시울이 짜릿하니 젖어들었다. 목이 메여 더 말씀을 드릴수가 없었다. 그들은 북데기에서 낟알을 골라내면서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제 땅에서 마음껏 농사지어 처마가 들리도록 벼 가마니를 쌓아올리게 되다보니 마지막 거두기를 설치면서 한 톨의 낟알도 건국사업에 얼마나 귀중한가를 잊어버릴 번한 사실을 심각히 뉘우쳐졌다.

주석님께 무한히 충직하시고 조국과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셨기에 김정숙여사께서 한 톨의 벼도 그토록 소중히 여기셨고 그런 마음을 우리 농민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심어주셨음을 이 땅의 겨레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고말산의 메아리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조국을 끝없이 사랑하셨다.

여사께서는 열렬한 조국애를 지니시고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총 들고 찾은 조국을 총대로 굳세게 지키고 빛내야 한다≫는 투철한 혁명의식, 계급의식을 깊이 심어주셨다.

김정숙여사께서 광복된 조국에 돌아와 청진지구에서 활동하실 때의 일이다.

1945년 12월 17일. 이날 여사께서는 고말산에 오르셨다. 고말산은 청진 앞 바다에 뻗어나간 고말반도에 솟은 산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비교적 험한 산이다.

백두산 여장군을 맞이한 기쁨에 겨워서인지 불어오는 해풍에 소나무며 참나무들은 끝없이 흔들거렸다. 솟아오른 아침해는 출렁거리는 수면 위에 은구슬을 뿌려놓은 듯 했다. 그침 없이 날아예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도 유정했다.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조국의 모습이었다.

광복된 조국산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신 백두산 여장군의 가슴속에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여사께서는 ≪이처럼 아름다운 조국, 혁명선열들이 피 흘려 찾은 조국강산을 부강하게 건설해나가자≫고 격정 어린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이윽고 여사께서는 문득 한곳에 시선을 멈추셨다. 앞의 산기슭에는 시꺼먼 형체의 건물이 서있었다. 일제시기의 청진감옥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백두산 여장군의 안광에는 결연한 빛이 서렸다.

일제의 악착한 고문과 박해 속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혁명가, 애국자들이 그 얼마였던가. 단두대에서도 ≪조선혁명 만세!≫를 부르짖으며 죽음도 맞받아 나간 투사들의 절규가 금방이라도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귀중한 동지들과 애국자들의 생명을 앗아간 저주스러운 ≪괴물≫의 형체를 바라보시는 김정숙여사의 가슴속에서는 일제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이 끓어올랐다.

여사께서는 근엄한 음성으로 ≪얼마나 많은 조선 사람들이 일제의 학정 아래서 맞아죽고 굶어죽었습니까. 우리의 부모형제들을 학살하고 전우들을 희생시킨 왜놈들과는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고 왜놈들이 더는 견디지 못하겠으니 항복했지만 아직도 옛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하시며 우리는 왜놈들과 그 앞잡이 놈들에 대하여 언제나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조국은 해방됐지만 38선 이남 땅에 미군이 들어와 있고 쫓겨간 왜놈들이 다시 기어들 야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손에서 총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원수가 있는 한 절대로 총을 놓을 수 없다!

이것은 백두산 여장군의 신조였다.

며칠 전 청진시 보안서를 찾으셨을 때와 청진시 공장, 기업소 노동자대표들을 만나신 자리에서도 그리고 부령 야금공장을 찾으셨을 때도 세상에 제국주의가 있는 한 우리는 손에서 총을 놓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백두산 여장군이셨다.

김정숙여사의 말씀을 받아 안는 일꾼들의 가슴속에는 우리 민족의 운명개척의 길을 가로막으려고 악랄하게 책동하는 적들에 대한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여사께서는 온 나라의 겨레들과 새 조국 땅에서 자라나는 새 세대들의 가슴마다에 귀중한 진리를 안겨주고 싶어지셨다.

여사께서는 권총을 들어 목표로 정한 솔방울들을 겨냥하셨다. 백두산 여장군의 눈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 하고 지나갔다.

탕, 탕, 탕…

잇단 총성과 함께 솔방울들이 날아 떨어졌다.

백두산 여장군께서 울리신 총성은 귀중한 조국, 사랑하는 조국을 다시 빼앗긴다면 또다시 노예가 된다, 총대를 더욱 억세게 틀어잡고 원수들의 침해로부터 조국과 혁명을 튼튼히 지켜내야 한다는 심오한 뜻을 사람들의 가슴속에 심어주며 멀리 메아리쳤다.

김정숙여사께서 광복된 조국 땅에 울리신 총성, 그것은 원수가 있는 한 혁명의 무기를 더욱 굳세게 틀어잡아야 한다는 투쟁의 진리를 우리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주고 있다.

뜻깊은 졸업식 날의 이야기

몇 해 전 12월 8일 금성친위 강건종합군관학교의 <김일성동지혁명사적관>을 돌아보시던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오래도록 걸음을 옮기지 못하신 일이 있었다.

제1중앙군관학교 제2기 졸업식에 참석하셨던 50여 년 전 백두산 3대 장군들의 불멸의 영상을 담은 진정으로 뜻깊은 사진이었다.

광복 직후 인민군대를 무적의 강군으로 키우시기 위해 온갖 노고와 심혈을 다 바쳐오신 김일성주석님과 존경하는 김정숙여사의 불멸의 모습을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느끼시는 감회는 참으로 깊은 것이었다.

이해 설날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장군님께서는 못 잊을 그날을 다시금 뜨겁게 회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사진에 어머님은 머리를 수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울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때 어머님에게 왜 우시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님은 ≪이렇게 끌끌한 우리 군관 대열을 보니 항일혁명투쟁시기가 생각나고 먼저 간 혁명동지들이 생각나서 그런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정숙동지께서는 평양학원과 군관학교들에 자주 나가 혁명무력을 강화하는 데 온갖 심혈을 다 바치셨다≫, ≪건군 역사에 남기신 어머님의 공적은 참으로 크다≫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셨다.

그분의 말씀을 새겨 안는 일꾼들은 잊지 못할 그날을 커다란 감동 속에 돌이켜보았다.

1948년 10월 14일 아침, 주석님을 모시고 여사께서는 제1중앙군관학교 졸업식에 나오셨다.

학생들은 백두산 위인들을 한 자리에 모시고 졸업식을 거행하게 된 한없는 기쁨과 행복으로 흥분되었다.

이날 주석님께서는 ≪군관들은 부대의 전투력 강화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연설에서 인민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하기 위한 강령적 과업들을 제시해주셨다.

졸업식장을 꽉 메우고 질서정연하게 줄지은 학생들을 바라보시는 김정숙여사의 눈가에서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지난날 천대받던 이 나라의 아들들이 주석님의 슬하에서 혁명군대의 지휘관들로 대견하게 자라났으니 그분의 심정이 어찌 뜨겁지 않을 수 있었으랴.

이날 오후 주석님과 김정숙여사께서는 학생들이 진행하는 전투사격을 배합한 전술훈련도 직접 봐주셨다.

훈련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산등성이에까지 오르신 여사께서는 지휘관들로부터 훈련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구성과 훈련내용도 구체적으로 알아보셨다.

학생들이 모두 군관학교에 입학한지 1년밖에 안되지만 훈련과제들을 막힘 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으신 여사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이제 그들의 훈련모습을 보시면 장군님께서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어제 저녁 일이 아무리 바빠도 군관학교 졸업식에는 꼭 참가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군관학교 학생들에 대한 장군님의 기대가 매우 큽니다≫라고 큰 믿음과 영광을 안겨주셨다.

잠시 후 시작된 전술훈련은 그야말로 실전을 방불케 했다.

불의의 정황에서도 능숙하게 훈련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볼수록 대견했다.

쌍안경을 들고 훈련과정을 주의 깊이 살펴보시던 여사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학생들이 사격을 잘합니다. 엎드려 사격도 아니고 달려가면서 순간정지사격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목표, 움직이는 목표들을 저렇게 명중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소에 전투사격훈련을 많이 한 것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시종 만족한 표정으로 전술훈련을 마지막까지 다 봐주신 여사께서는 훈련을 아주 잘했다고 학생들을 거듭 치하하셨다.

≪동무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니 힘이 솟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오늘 전술훈련을 보시고 매우 만족해 하셨습니다.≫

이날 여사께서는 훈련이 끝난 다음에도 병영 막사에 들려 학생들의 잠자리도 살펴보시고 식당에 가서는 몸소 소매를 걷어올리고 근무성원들의 일손도 도와주셨다.

그리고는 학교의 책임일꾼들에게 ≪학생들이 자그마한 불편도 느끼지 않도록 친어머니심정으로 돌봐주어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셨다.

이런 뜨거운 사랑과 크나큰 믿음을 지니시고 인민군대의 강화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신 백두산 여장군, 존경하는 김정숙여사의 불멸의 업적을 우리 겨레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책은 가까이, 술은 멀리

50여 년 전 겨울 어느 날이었다.

주석님을 오랫동안 모시고 싸워온 한 항일혁명투사가 사업보고를 하려고 주석님의 저택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오는 도중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술을 약간 마시게 되었다. 원래 술이 센 그로서는 그 정도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는 혁명전우인 그 투사가 온 것을 보시고 너무 기뻐서 달려나와 반겨 맞으셨다. 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시던 여사께서는 그를 주석님께서 계시는 방으로가 아니라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주석님께 사업보고를 하려고 온 그가 술을 마시고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셨던 것이다.

김정숙여사께서는 그에게 피곤할 텐데 여기서 좀 쉬고 나서 주석님을 만나 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는 펄쩍 뛰면서 빨리 만나 뵙게 해달라고 졸랐다. 여사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이부자리를 펴놓으신 다음 방에서 나가시여 문을 잠그셨다. 한참동안이나 속이 상해 어쩔 바를 모르던 그 투사는 먼길의 피로와 술기운으로 어느새 잠에 들었다.

얼마 후 잠에서 깨어난 그는 이부자리를 개어놓고 옷차림을 단정히 한 다음 김정숙여사께서 문을 열어주시기를 기다렸다.

여사께서는 조심스럽게 문을 여셨다. 그가 정중한 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신 여사께서는 어서 가자고 하시면서 그를 주석님께서 계시는 방으로 안내했다.

주석님의 귀중한 가르침을 받은 그는 방을 나서다가 뜻밖에도 복도에서 그를 기다리고 계시던 김정숙여사를 또 뵙게 되었다. 여사께서는 그를 휴식하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깜박거리는 그에게 여사께서는 정색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조국이 해방된 지 얼마나 됐습니까. 그런데 벌써 해이되어 장군님께 사업보고를 하러 오면서 술을 마시고 오면 되겠습니까.≫

김정숙여사의 음성은 엄했다.

여사께서는 죄책감으로 머리를 들지 못하는 그에게 ≪장군님께로 오면서 술을 마셨으면 다 깬 다음에 만나 뵈어야지 어떻게 그대로 장군님 앞에까지 갈 수 있느냐≫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이 일을 용서할 수 없어서 비판한다고 가슴 아파하셨다.

여사께서는 자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친 그에게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혁명의 지휘성원이 되자면 책을 가까이하고 술을 멀리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조용히 타이르셨다.

여사께서 주신 그날의 가르침은 참으로 교훈적인 명언으로 우리의 가슴을 울려준다.

어머님과 한 홉의 미숫가루

간고했던 고난의 행군시기 생겨난 한 홉의 미숫가루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만 사람의 심장을 울리며 오늘도 전해지는 그 한 홉의 미숫가루에도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여사에 대한 감동적인 일화가 깃들어 있다.

1938년 12월 상순경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새 작전지구로 가기 위해 남패자를 떠날 때였다.

행군에 앞서 새 무기와 탄약 그리고 솜을 두툼하게 넣은 겨울군복과 새 내의, 신발, 행전, 미숫가루 등이 들어 있는 꾸러미를 공급받은 대원들의 기쁨은 대단했다.

하지만 김정숙여사의 마음속 한 구석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사령부 식량 때문이었다.

그 해 따라 눈보라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세차게 기승을 부렸고 추위는 영하 40도를 오르내렸다. 적들은 이번 ≪동기토벌≫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완전소멸≫하겠다고 하면서 엄청난 병력을 끌어들여 남패자 일대를 사면 포위했다. 게다가 식량도 그다지 충분하지 못했다.

대오와 함께 남패자를 떠나시는 김정숙여사의 얼굴에는 행군기간 어떻게 하면 주석님의 안녕을 보장해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근심이 어려 있었다.

행군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끈질기게 따라오는 적들과 하루에도 몇 차례씩 힘겨운 전투를 하면서 대오는 한걸음 한걸음 전진했다. 식량도 점점 떨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휴식시간 때였다.

자신의 몫으로 배당된 미숫가루를 들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계시던 여사께서는 조그만 주머니를 꺼내시더니 거기에 한 숟가락 덜어 넣으셨다. 여사께서 모진 굶주림을 이겨내시며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모으신 미숫가루는 차츰차츰 늘어났다.

얼마 지나서 부대의 식량과 함께 비상용 미숫가루마저도 다 떨어졌다. 식량을 구할 길도 막막했다.

김정숙여사의 작은 주머니에는 불과 한 홉이 될까말까한 미숫가루가 저축되었다. 그 동안 어려운 고비를 넘으시면서 모으고 아껴오신 그 미숫가루는 여사의 배낭 속 깊은 곳에 누구도 모르게 간직되었다.

모진 굶주림은 점차 전진하는 행군 대오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허기진 대원들을 위해 행군하시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묵은 풀잎도 뜯으시고 마른 열매도 따셨다. 소나무를 만나면 껍질을 벗기시고 다래넝쿨 같은 것도 걷어 모으셨다. 때로는 응달진 계곡의 깊은 눈을 헤치고 풀뿌리도 캐셨다. 하지만 그 미숫가루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으셨다. 결코 자신을 위하여 마련하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행군이 시작되어 한달 만인 그 이듬해 1월초 부대가 장백현 7도구치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주석님께서 주신 과업을 받고 김정숙여사께서는 여대원들과 노약자들을 데리고 청봉밀영으로 들어가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게 되셨다.

떠나기에 앞서 한 전령병을 조용히 부르신 여사께서는 사연 깊은 그 미숫가루 주머니를 그의 손에 꼭 쥐어주시며 ≪한 홉이 되겠는지… 정 요긴할 때 사령관동지께 대접해주세요≫라고 당부하셨다. 사령관동지를 위해 그처럼 어려운 고비를 넘으면서도 정갈히 보관하시고 아끼시던 그 한 홉의 미숫가루는 이렇게 전령병에게 넘겨졌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언제나 자신께만 특별한 음식이 차례지시면 드시지 않아요. 그러니 동무들이 방법을 잘 써야 해요. 우리는 언제나 사령관동지께서 건강하셔야 조선혁명이 승리할 수 있고 우리의 밝은 미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라고 하시며 전령병의 배낭에 미숫가루 주머니를 깊숙이 찔러주셨다. 그리고는 ≪행군이 아무리 어려워도 동무들은 사령관동지의 건강과 신변보위를 책임지고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시며 전령병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청봉밀영으로 떠나셨지만 주석님께 바치시는 백두의 여장군의 뜨거운 마음은 그 한 홉의 미숫가루에 담겨져 있게 되었다.

여사께서 예상하신 대로 부대는 그 후 며칠째 낟알구경도 못하고 맹물을 끓여 마시거나 생눈을 먹으면서 강행군을 하게 되었다. 어느 휴식시간에 주석님께서는 전령병으로부터 그 한 홉의 미숫가루에 대한 깊은 사연을 듣게 되셨다. 주석님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정숙 동무가 그랬단 말이지…≫라고 하시더니 더는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김정숙여사만이 마련하실 수 있는 바로 그 한 홉의 미숫가루는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추위와 기아 속에서도 불보다도 뜨거운 충효심과 혁명적 동지애로 대원들의 가슴을 푸근하게 했으며 고난의 행군을 억세게 이겨내게 했다.

지성 어린 우산

새 조국 건설시기 주석님의 저택 현관 안에는 우산 하나가 한쪽 구석에 언제나 놓여 있었다.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여사께서 사용하시던 우산이었다. 그분은 그 우산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석님을 잘 모시기 위해 사용하셨다.

위대한 공산주의 혁명투사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석님께서 댁을 나서실 때마다 항상 먼저 나가 밖을 살피신 다음에야 차에까지 모셔드렸다. 비가 오나 무더울 때면 그 우산으로 주석님을 바래드리고 또 맞으셨다.

무더운 여름철의 어느 날이었다.

한낮이 다 될 무렵 김정숙여사께서는 물이 들어 있는 물뿌리개를 들고 더운 김이 확 달아오른 마당으로 나오셨다. 마당에 물을 조용히 뿌리고 나서 빗자루로 쓰셨다. 그리고는 땅에 습기가 잦아들도록 또다시 물을 뿌리셨다. 주석님께서 들어서실 때 시원한 감을 느끼시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정성에 의하여 저택의 마당에는 시원한 기운이 돌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주석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대문 밖에 당도했다. 여사께서는 재빨리 우산을 드시고 달려나가 뜨거운 햇빛을 막아드리셨다.

그 후 어느 날, 현관청소를 하시던 여사께서는 우산을 바라보시며 한 일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에서 남들이 100년, 200년을 두고도 못다 맞을 눈비를 다 맞으셨어요. 늘 어깨에 내린 눈을 털 사이도 없이, 비에 젖은 옷을 말릴 사이도 없이 원수들과 싸우셨지요.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우산을 받쳐드릴 수 없었지만 지금에야 무엇 때문에 장군님께서 비 한 방울이라도 맞으시게 하겠어요.≫

그러시면서 여사께서는 ≪장군님은 조선의 운명≫이시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 서거하신 이후 그분이 따스한 손으로 받들던 우산은 어리신 자제 분들의 손에 받들어지게 되었다.

혁명의 어머님께서 서거하신 후 어느 날이었다. 새 조국 건설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시던 주석님께서 조용히 저택의 마당에 들어서셨다. 바로 이때, 어리신 자제 분들께서 사연 깊은 우산을 손에 받쳐들고 주석님께로 다가가셨다.

발꿈치를 드시고도 우산을 제대로 받쳐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는 어리신 자제 분들을 바라보시는 주석님의 눈가에는 촉촉한 물방울이 반짝였다. 주석님께서는 백두의 여장군의 체취가 스며있는 우산을 펼쳐 드시고 어리신 자제 분들을 품에 꼭 껴안으셨다.

얼음세숫물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여사께서는 역사가 일찍이 알지 못한 충실성의 숭고한 귀감으로 만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감동 깊은 이야기들을 수없이 남기셨다. 아래 사연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1946년 겨울이었다.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대동강이 얼었는가를 자주 알아보셨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은 한 일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난 여름에 장에 갔다가 얼음덩이에 담근 물고기를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장사꾼은 겨울에 대동강에서 얼음을 까내고 보관했다가 그렇게 쓴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우리도 얼음을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사께서는 얼음덩이를 보관할 수 있는 저장고를 훌륭하게 꾸려놓으셨다.

날씨는 추워져 대동강은 두텁게 얼어붙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대동강에서 큰 얼음덩이를 까내고 벼 겨 속에 차곡차곡 저장하셨다.

이듬해 여름이 왔다. 김정숙여사께서 얼음저장고를 어찌나 정성스레 관리하셨던지 문을 여니 한 아름씩 되는 얼음덩이가 그대로 보관돼 있었다. 차고 시원한 얼음덩이를 바라보시며 여사께서는 대단히 기뻐하셨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주석님께서 세수를 하려고 하시자 여사께서는 얼음덩이가 둥둥 떠 있는 그릇에서 시원한 냉수를 가져다 드리셨다. 주석님께서는 기쁨과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시며 ≪정말 시원하군. 어디서 이런 얼음이 생겼소. 이렇게 더운 때에 얼음이 어디서 났소?≫라고 말씀하셨다.

얼음에 깃든 깊은 사연을 알게 되신 주석님께서는 한동안 깊은 감동에 잠겨 계셨다.

전장에 울려 퍼진 혁명가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어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이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사상과 영도를 받들고 조국통일과 민족번영을 위한 투쟁의 한길에서 힘차게 진군하고 있는 온 겨레의 혁명적 신념이며 낙관이다.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의 한 생은 혁명승리에 대한 필승의 신념과 낙관을 지니시고 난관과 시련을 헤쳐오신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의 빛나는 생애였다. 여사께서 지니신 혁명적 신념과 낙관이 어떤 것이었는지 시사해주는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한다.

1938년 춘기대반격전의 나날에 있은 쌍산자 전투 마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적 기마병 놈들은 단숨에 능선을 점령할 기세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주석님께서는 적 기마병 놈들을 가까이 접근시키신 다음 사격을 명령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맨 앞에서 달려드는 말을 보기 좋게 쏴 눕히셨다. 앞선 말이 곤두박질을 하자 적들의 대열은 수라장이 됐다. 당황한 적들이 성급하게 덤빌수록 여사께서는 신비한 명사격술로 적들을 쏴 눕히셨다.

첫 공격에서 기마병 놈들이 격퇴 당하자 적들은 이번에는 보병을 앞세우고 고지로 기어올랐다. 능선을 누렇게 뒤덮고 악을 쓰며 달려드는 적들에게 대원들은 복수의 총탄을 퍼부었다. 하지만 적들은 병력을 계속 갈아대며 악착스럽게 달려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싸움은 더욱더 치열해졌다.

어느덧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야간 습격전에 이어 강행군을 하고 숨 돌릴 새 없이 이른 새벽부터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에 비까지 내리니 대원들도 어지간히 지쳐갔다.

주석님께서는 비를 다 맞으시며 몸소 기관총을 쥐시고 전투를 지휘하셨다.

잇따라 격퇴 당한 적들은 무력을 총동원해서 총돌격을 해왔다. 정황은 불리했다. 일부 반일부대의 지휘관들은 부대를 철수시키자고 제기해왔다. 놈들을 견제하느냐, 아니면 퇴각하느냐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바로 이때 사령부가 있는 쪽에서 힘찬 노랫소리가 울려나왔다. 김정숙여사께서 부르시는 혁명가요소리였다.

설한풍이 휩쓰는 험한 산중에

결심 품고 싸워 가는 우리 혁명군


노랫소리는 총성을 짓누르며 전장에 힘차게 메아리쳤다. 노랫소리는 대원들의 가슴을 복수심으로 더욱 끓게 했다. 노랫소리는 어느덧 합창으로 번져 전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전장에 울리는 노랫소리에 적들은 전율했다. 산 너머로 피해갔던 일부 반일부대 병사들도 노랫소리를 듣고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다.

김정숙여사께서는 혁명가요와 함께 희생된 전우들의 이름을 부르시며 이것은 누구의 몫, 이것은 누구의 몫이라고 외치시며 총을 쏘고 또 쏘셨다.

전장에 울려 퍼진 노랫소리는 백두산 여장군의 정신적 깊이를 보여주었고 혁명적 낙관주의를 시위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여러 전투에서도 대원들의 가슴에 필승의 신심을 안겨주시며 전투승리에 크게 공헌하셨다.

주석님께서는 춘기대반격전에서 세운 김정숙여사의 공헌을 높이 평가해 표창선물로 금반지를 수여하셨다.

그것은 간고한 항일의 나날 언제나 필승의 신심과 낙관에 넘쳐 승리만을 떨쳐오신 백두산 여장군에 대한 가장 영예롭고 가치 있는 표창이었다.

군기에 깊은 뜻 담으시며

1947년 어느 가을날이었다.

중앙보안간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시고 돌아오신 백두의 여장군 김정숙여사께서는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다 무슨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어느 한 일꾼이 무슨 그림을 그리시느냐고 묻자 여사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며 이제 열병식이 있게 되면 각 부대들이 군기를 앞세우고 행진하게 되는데 그 도안을 생각해보는 중이라고 말씀하셨다.

군기!

김정숙여사의 말씀을 들으며 일꾼들은 보무 당당하게 행진하는 부대들의 대오 앞에 휘날리는 군기를 보는 것만 같아 가슴이 울렁거렸다.

며칠 후, 여사께서는 주석님을 모신 자리에서 몇 개의 군기도안들을 놓고 밤늦도록 토의하셨다. 그 곁에는 어리신 장군님께서도 계셨다.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역사의 밤이었다.

백두산 3대 장군께서 보아주신 그 군기도안이 바로 오늘 세계최강의 강군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조선인민군의 군기로 되었다.

어느 날 군기제작 작업장을 찾으신 김정숙여사께서는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군기는 당과 혁명을 위하여, 조국의 자유독립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부대가 걸어온 영광스러운 전투적 행로를 상징하는 깃발이며 그 부대의 존재를 의미하는 생명입니다. 세상에는 군대도 많고 군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 인민군대의 군기처럼 깊은 뜻이 담겨진 군기는 많지 못할 것입니다.≫

여사께서는 손수 군기에 정성을 담아 한뜸 한뜸 수를 놓으시며 이제 우리 군대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군대로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우리 조선인민군은 영원히 백전백승의 혁명무력으로 세계를 뒤흔들 것입니다≫라고 의미 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1948년 2월 8일.

평양역 광장에서는 주석님을 모시고 역사적인 조선인민군 열병식이 거행됐다. 그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김정숙여사의 뜨거운 심혈과 염원이 깃든 군기들이 만 사람의 시선을 모으며 창공높이 휘날렸다.

눈솜

혁명가는 고생을 낙으로 여기며 필승의 신념과 낭만에 넘쳐 강행군 길도 주저 없이 끝까지 걸어나간다.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께서 어느 해 겨울날에 조선인민혁명군 여대원들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대오가 처창즈 유격구를 떠나 행군 길에 오르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펑펑 쏟아지는 그 눈은 유격구를 떠나 처음으로 새로운 투쟁의 길에 나선 여대원들로 하여금 앞날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대오가 어느 한 숲 속에 당도해 숙영 준비를 할 때였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삭정이를 한 아름 안고 여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오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삭정이로 모닥불을 피우시며 그들에게 첫 행군 길에서 눈을 맞는 감상이 어떠냐고 다정히 물으셨다.

누구도 금방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자 여사께서는 두 손으로 눈송이를 받으시면서 ≪이걸 봐요. 하얀 솜 같아요. …이제부터 우리 집이 산과 들이라는 것을 알고 포근히 덮고 자라고 이렇게 눈솜을 보내주네요≫라고 말씀하셨다.

눈솜!

혁명적 낭만에 넘치는 그분의 말씀은 여대원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덥혀주었다.

여사께서는 ≪이제부터는 낯선 광야에서 눈비를 맞으며 싸워야 하는 것만큼 모두 마음의 준비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그들을 고무해주셨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침대로 가는 곳마다 일제 놈들을 족치고 광범위한 인민들의 가슴에 혁명의 불씨를 심어줘야 합니다. 그러자면 이렇게 눈비를 맞으며 어려운 싸움의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길이 바로 장군님을 모시고 조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셨다.

눈은 끝이 없을 듯 싶게 계속 내렸다. 여대원들은 두텁게 쌓이는 눈을 새삼스럽게 바라보며 격정을 금치 못했다.

≪비단도 ≪참비단≫이지…≫

사람들은 흔히 고운 마음씨를 비단에 비긴다.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여사께서 혁명동지들을 위하신 마음은 정녕 비단결보다 더 고운 것이었다.

1940년 10월.

김정숙여사께서는 연계가 끊어져 소식이 없는 오백룡 소부대를 기다리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셨다.

여사께서는 그들이 돌아오면 입혀줄 솜옷을 정성껏 만들고 계셨다. 솜옷을 다 만드시고도 여사께서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 같아 그들에게 줄 여러 가지 기념품들도 만드셨다.

어느 날 그 솜옷과 기념품들을 보신 주석님께서는 감동 깊은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김정숙동무가 정말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 적 지역에서 고생하던 동무들이 이 솜옷을 받아 입으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아마 한지에서 떨며 배고프던 생각이 다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기념품도 정성껏 잘 만들었습니다.≫

여사께서는 끼니때마다 소부대성원들을 생각하시며 식량을 조금씩 나누어 정성스레 보관해 두셨다.

며칠 후 부대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주석님께서는 길을 떠나기에 앞서 소부대성원들이 오면 찾을 수 있도록 식량과 솜옷을 묻게 하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모닥불자리를 파고 강대를 밑에 편 다음 그 위에 쌀과 솜옷들을 쌓으셨다. 그리고 습기가 스며들지 않도록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을 꼭꼭 다져 넣으셨다.

그 후 이곳에 도착한 소부대성원들은 자기들을 위해 남겨둔 쌀과 겨울옷을 발견하고 사령관동지의 위대한 어버이 사랑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쁜 마음에 흥겹게 떠들어대며 새 솜옷에 팔을 꿰던 그들은 옷 주머니 속에 무언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저마다 꺼내들었다. 그것은 담배쌈지며 학습장주머니 같은 물건들이었다. 거기에는 ≪혁명승리≫, ≪조국광복≫이라는 글자가 곱게 수놓아져 있었다.

김정숙동지의 솜씨로구나!≫

사령부와 멀리 떨어진 채 가열 처절한 전투들을 벌이며 눈 덮인 밀림을 헤쳐온 소부대성원들을 위해 귀한 식량과 따뜻한 솜옷을 남겨준 것만 해도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일인데 정성껏 만든 기념품까지 손에 들고 보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부대성원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탄성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정숙 동지의 마음은 비단결이야!≫

≪아무렴, 비단도 ≪참비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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