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23일

통일여명 편집국

 

 

붉은 해발 아래 항일혁명 20년 3

 -≪붉은 해발 아래 항일혁명 20년≫

통일여명 편집국 6-2-6

 

 

차 례

 

대부대에 의한 군사정치활동과 소부대정치공작을 밀접히 결합하시어

육과송전투

화라즈분지에서

홍기하전투

위대한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어

 

대부대에 의한 군사정치활동과 소부대정치공작을 밀접히 결합하시어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은 올기강밀영에서 작성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전술적 방침을 받들고 두만강연안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은 이 일대를 혁명화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9년 초여름 백두산동북부 두만강연안을 우리 혁명의 강력한 기지로 꾸리시기 위하여 옥돌골에 나가시어 군중정치사업의 본보기를 창조하신 다음 그곳에서 정치사업경험이 있는 동무들을 선발하여 두만강연안마을들에 파견하시었다. 그러시고는 뒤이어 무장소조를 파견하여 정치공작원들의 활동을 무장으로 보호해주도록 하시었다.

그때 무장소조는 큰골비밀연락장소를 거점으로 하여 두만강연안에서 활동하고 있은 정치공작원들의 신변을 무장으로 보호해주는 임무를 담당수행하였다.

무장소조가 비밀연락장소인 큰골수림속에 도착한 것은 부대가 옥돌골에 나가 정치사업을 하고 돌아온 직후였다.

큰골에 자리를 잡은 무장소조는 얼마 안있어 두만강연안마을들에서 정치사업을 하고 있던 정치공작원들과 연계를 맺게 되었다. 그들은 벌써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를 받고 무장소조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장소조를 제일먼저 찾아온 것은 김준동무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를 거느리시고 옥돌골에 나가시어 정치사업을 벌이신 그날 그이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고 옥돌골에 남았었다.

우리(김일, 전문섭)는 그후 이 사실을 알고 참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김준동무로 말하면 과오를 범하고 그해 4월에 처벌을 받은 동무였다. 범한 과오의 엄중성으로 보아 아직은 자기의 과오를 고치기 위한 자체 투쟁을 더 해야 할 동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전사에 대한 가장 높은 신임을 그에게 베푸시어 중대한 정치공작임무를 맡기신 것이었다.

김준동무가 과오를 범하였을 때 그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하시고 원칙적으로 비판하시면서도 처벌을 관대히 하도록 배려하신분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이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과오를 범하고 전사로 강직된후에도 락심해할가 념려하시어 언제나 가까이 데리고 다니시며 고무해주시었다.

김준동무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보살피심과 두터운 신임에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으며 그이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받들고 자신을 꾸준히 단련하여나갔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자신을 튼튼히 무장하기 위하여 그 어느때보다도 노력하였다. 오직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참다운 조선의 혁명가가 되리라 속다짐하며 남모르는 자체수양을 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준동무가 빨리 개준되는 것을 몹시 기뻐하시었으며 이번에는 그에게 크나큰 신임을 베푸시어 정치공작의 중임을 맡기시었던 것이다. . . .

그해 여름 어느날이었다.

무산지구에 나가 지하사업을 하던 김준동무가 불행히 삼장헌병대에 체포되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가지고 한 지방조직원이 올기강밀영으로 찾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밤 잠못이루시고 원쑤들의 악형에 시달릴 혁명전사를 생각하시어 이제 엄혹한 시련을 겪을 수 있는 무산지구의 지하혁명조직을 구원할 방도를 모색하시었다.

오중흡연대장이 한개 중대를 인솔하고 올기강밀영을 떠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에게 김준동무가 체포된 상세한 경위를 알아보고 그가 꾸린 지하조직들을 찾아 선을 이어주며 그들이 시련을 견디여내도록 도와주고 오라는 과업을 주시었던 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중흡연대장에게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두만강을 건느며 제1목적지에 가서는 어떤 일을 하며 제2목적지에 가서는 무슨 일을 하라는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이 시기 국경경비는 참으로 삼엄하였다. 특히 김준동무가 활동하던 무산군 삼장일대는 놈들의 총검이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밀정과 경찰, 헌병들로 한벌 뒤덮여있었다. 적들은 조금만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 사람이면 마구 잡아가두고 학살하였다. 그런 만큼 삼엄한 국경경비망을 뚫고 들어가 김준동무가 박아놓은 국내조직과 선을 잇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오중흡연대장은 이 사업이 조선혁명을 새로운 앙양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한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구상을 실현하는데서 매우 책임적인 사업이라는 것을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그이의 두터운 신임에 충성으로 보답할 굳은 결의를 다지면서 중대를 인솔하고 행군을 다그쳤다.

이튿날 날이 푸름푸름 밝아올 무렵에 그들은 제1목적지인 국내 상사소와 하사소의 깊은 수림속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국내조직원들과 연계를 맺었다.

조직원들가운데는 사슴목장주인을 비롯하여 지난 5월 무산지구전투 때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왔던 청년들도 있었으며 우리의 영향밑에 1930년대초부터 이미 혁명에 참가해온 동무들도 있었다.

김준동무가 체포된 후 선이 끊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파견하신 오중흡연대장을 통하여 그이의 지시를 접수하고 새 힘을 얻었다.

오중흡연대장은 그들에게서 김준동무가 체포된 경위를 상세히 알아가지고 제2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후에 안 일이지만 김준동무는 놈들에게 체포된 때로부터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근 6년이라는 세월을 하루와 같이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의 충직한 전사답게 혁명적 절개를 꿋꿋이 지켜냈다.

오중흡연대장은 제2목적지에도 무사히 당도하여 그곳 지하조직들과 선을 이어놓았다.

비록 김준동무를 잃은 가슴아픈 손실은 있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때에 대책을 세우심으로써 무산지구일대의 혁명조직들은 다시 살아움직이게 되었으며 자기 주위에 군중들을 결속하면서 지하깊이에서 새로운 투쟁을 준비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무렵에 두만강연안일대의 지하조직들에도 공작원들을 파견하시어 혁명조직들이 적들의 준동에 대처하여 지하깊이 대오를 튼튼히 꾸리고 사업을 추진시켜나가도록 면밀한 대책을 취하시었다.

김준동무의 체포로 일시 위험에 처하였던 조직은 구원되고 혁명적 인민들은 적들의 발악이 우심한 속에서도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고 조직의 두리에 굳게 뭉치였다.

국내 무산지구와 두만강연안의 넓은 지역은 우리 혁명의 강력한 기지로 다져졌다. 국내 삼장지구와 두만강연안의 옥돌골, 휘풍동, 광평, 대동구, 유수촌, 장인촌, 푸르허, 삼도구, 유동마을, 금장동, 와룡호, 관지마을 등 넓은 지역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지하전선이 펼쳐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같이 백두산동북부 두만강연안을 혁명의 강력한 기지로 축성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밀고나가시는 한편 조선인민혁명군의 이해 동기작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시기 위하여 겨울나이준비를 예견성있게 해나가시었다. 그 중에서도 겨울군복생산에 특별한 주목을 돌리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올기강밀영에 계시면서 여느해 없이 분망한 나날을 보내시는 가운데서도 사령부에서 퍼그나 떨어진 재봉대밀영을 찾으시어 친히 걸린 문제들을 알아보시고 풀어주시었을 뿐 아니라 밤낮없이 마름질을 하고 재봉기를 돌리는 여대원들의 수고를 헤아리시어 자신께서 낚으신 산천어까지 보내주시면 뜨거운 은정과 사랑을 베풀어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보살피심과 뜨거운 사랑에 감격한 재봉대원들은 군복제작에 더욱 성수를 냈다.

불리한 작업조건에서 추위가 오기 전에 전부대성원들이 입을 군복과 수백벌의 예비군복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재봉대원들은 이 과제를 제기일안에 수행하는 것이 곧 위대한 수령님께 충성다하는 길이며 백두산동북부 두만강연안일대에 혁명의 기지를 축성하기 위하여 맹렬한 군사정치활동을 벌이고 있은 기본부대의 활동을 돕는 길이라는 것을 마음속깊이 자각하고 원쑤를 무찌르는 심정으로 군복을 제작하였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는 밤에 낮을 이어 재봉기를 돌리고 또 돌리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맡은 가장 품이 많이 들고 군복제작의 기본공정이라고 할 수 있는 바느질은 언제나 앞당겨 끝내었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남들이 단잠에 든 새벽에도 쉬지 않고 다른 여대원들이 맡은 일손을 거들어주었다. 시침을 맡은 동무들의 일손이 딸리면 남모르게 시침을 하였고 마름질이 딸리면 마름질을 도왔다.

하지만 김정숙동지는 언제 한번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재미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지친 재봉대원들을 고무하고 이끌어나갔다.

재봉대원들은 김정숙동지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으면서 졸음을 물리치고 일손을 다그쳐 불과 한달 남짓한 기간에 전부대가 입을 새 군복과 수백벌의 예비군복까지 생산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크나큰 기쁨을 드리는 영광의 보고를 올릴 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고 지칠 줄 모르는 투쟁을 벌려온 재봉대원들의 충성의 마음은 우리를 크게 고무하였다.

우리는 백두산동북부 두만강연안에 이미 꾸려놓은 지하혁명조직들을 더욱 공고히 하고 새로운 강력한 지하전선을 형성하기 위하여 군사정치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벌려나갔다.

육과송전투

. . . 나(김일)는 적들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소멸≫하겠다고 그처럼 날치고 있은 준엄한 시기에도 혁명의 먼 앞날을 내다보시며 항일무장투쟁의 전반적 앙양을 위한 원대한 구상을 완강하게 실현해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비상한 혁명적 전개력에 다시금 깊은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투명령을 하달하시었다. 7연대가 적의 병영을 습격하고 산림경찰대놈들을 소멸할 임무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 8연대와 경위중대의 임무는 노동자들속에서 정치사업을 벌이는 한편 노획품을 운반하기로 되었다.

이때 독립대대의 황정해중대장이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대원들을 데리고 사령부에 와있었는데 그는 자기들도 7연대와 함께 습격전투에 참가시켜주실 것을 그이께 열렬히 간청하였다. 젊고 유능한 지휘관인 황정해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직접 지휘하시는 전투에 참가하여 마음껏 용맹을 떨치고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황정해중대장은 오중흡연대장의 지휘하에 적 병실을 점령할 가장 어려운 전투임무를 맡게 되었다.

1개 소대의 병력이 목단령에서 육과송으로 내려오는 길목을 지키기 위하여 그리로 파견되었다.

저녁식사후 부대는 곧 출발하였다. 7연대와 황정해중대가 먼저 육과송으로 들어가고 그뒤로 전부대가 은밀히 전진하였다.

우리가 사령부호위기관총소대와 함께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육과송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벌써 산림경찰대병실쪽에서 총소리가 요란히 울려왔다. 습격전투가 개시된 것이었다.

그때 정치사업을 할 과업을 받은 나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목재소노동자합숙마당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으려니 황정해중대가 적 병실을 점거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니 습격전투는 기본적으로 끝난 셈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정황을 알아보시기 위하여 지봉손동무와 김학송동무를 파견하시고 그사이에 합숙에 있는 목재소노동자들과 담화하시었다. 그이께서는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과정에 그날 목단령에서 3개 중대의 적 ≪토벌대≫가 경기 4정을 가지고 육과송에 들어와 묵고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아시게 되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각에 적 병실쪽에서 요란한 기관총소리와 소총소리가 들려왔고 뒤미처 전투현장에 갔던 지봉손, 김학송동무들이 돌아왔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황정해중대가 적 병실을 점거했으나 적들이 지하포대에 들어박혀 완강히 저항하기 때문에 지금 놈들을 섬멸하기 위한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하포대가 있다는 것도 역시 새로운 정황이었다. 놈들이 극비밀리에 지하포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은 누구도 몰랐으며 따라서 노동자들을 통하여 적정을 요해한 정찰조원들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운 정황에 대처하여 곧 전투인원을 증강해주시고 필요한 대책을 세워주시었다. 그사이 우리 정치공작원들은 목재소노동자들속에서 정치사업을 벌이는 한편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아 노획물자운반을 조직하였다.

바로 이때 오중흡연대장의 연락병이 한쪽다리를 끌며 달려와 위대한 수령님께 목메인 소리로 보고하는 것이었다.

≪연대장동무가 그만 …전사하였습니다.≫

≪무어라구? 오중흡동무가? ! 그게 정말이요?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뜻밖의 비보를 받으시고 믿어지지 않으시는 듯 한동안 침통한 기색으로 묵묵히 서계시었다.

총소리는 멎고 사위는 고요해졌다. 얼마후 적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승리한 7연대와 황정해중대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7연대동무들을 통하여 오중흡연대장의 영웅적인 최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날 밤 10시, 오중흡연대장은 7연대와 황정해중대를 지휘하여 선참으로 육과송목재소에 쳐들어갔다. 그는 전투에서 용감한 동무들로 습격조를 조직하여 가지고 맨앞장에서 부대의 진격로를 열어나갔다. 습격조는 울타리에 구멍이 난 곳을 찾아내어 은밀히 목재소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였다. 적들은 울타리안에 또 가시철조망을 늘이고 거기에 빈 통졸임통들을 매달아놓았었다. 습격조는 통졸임통을 쥐고 소리 안나게 가시철조망을 끊었다. 그런데 마지막철조망을 끊을 때 그만 소리를 내어 적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누구얏!≫하는 소리와 함께 적의 중앙포대에서 기관총연발사격이 시작되었다. 더는 지체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런 때 기회를 놓치면 습격전투에서 실패를 면할 수 없었다.

오중흡연대장은 대원들을 돌격에로 일떠세웠다. 대원들은 순식간에 적의 중앙포대와 병실을 점거했다. 그러나 병실은 텅 비어있었다. 황정해중대가 적 병실을 수색하다가 지하포대로 통하는 통로의 문을 발견하였다. 적들은 우리 습격조원들이 나는 듯이 병실을 점거하자 지하포대로 쫓겨들어갔던 것이다.

오중흡연대장은 황정해동무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 받자 곧 지하포대의 입구에 솜을 틀어막고 불을 지르라고 명령하였다. 지하포대에 있는 적들을 질식시켜 저항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재빨리 소멸할 계획이었다.

1소대장 오일남동무가 대원들을 데리고 적들이 덮던 이불을 가져다가 지하통로의 아가리에 쌓고 불을 질렀다. 연기는 세찬 불길과 함께 지하통로로 빨려 들어갔다.

지하포대에 있던 놈들은 숨이 막히어 견딜 수 없게 되자 발악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전투를 지휘하던 오중흡연대장과 그의 연락병이 쓰러졌다. 오중흡연대장이 서있던 곳은 적지하포대의 총구가 설치된 곳이었는데 급해맞은 적들이 연기를 피하여 그리로 몰키면서 악에 받쳐 마구 올리쏜 총알이 연락병의 허벅다리를 뚫고 오중흡연대장에게 치명상을 입혔던 것이다.

원쑤를 무찌르는 가열처절한 전투때마다 언제나 앞장에서 대원들을 위훈에로 불러일으키던 7연대장 오중흡동무는 땅우에 쓰러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연대장동무!≫

≪연대장동무!≫

대원들의 피타는 부르짖음을 듣고서야 그는 간신히 눈을 떴다.

≪동무들,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끝까지 실천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스럽다고… 그이께 보고해주오. 동무들, 그이의 명령을 꼭… 실천해주오…≫

오중흡연대장은 대원들을 둘러보며 손끝으로 적진을 가리키더니 말끝을 맺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생명의 마지막순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임무를 못다 하고 가는 것을 애달파하며 뒤일을 부탁하는 지휘관의 장렬한 최후앞에서 대원들은 절통한 마음으로 가슴을 치며 복수의 두 주먹을 부르쥐였다. 그들은 성난 사자마냥 단숨에 적진으로 쳐들어가 발악하는 적들을 사정없이 쓸어눕혔다. …

육과송전투는 적들이 예견하지 않았던 돈화의 벽지에 총성을 울림으로써 연길, 안도, 화룡, 화전 일대에 널린 적의 ≪토벌≫역량을 눈깊은 돈화의 밀림속에 끌어들여 분산혼란시키시려는 위대한수령님의 전략전술적 방침을 빛나게 실현한 전투였다.

이제 ≪노조에토벌사령부≫놈들은 백두산동북부에 널려있는 병력을 그러모아가지고 이 천고의 밀림속으로 들어올 것이며 놈들의 이른바 ≪정예토벌대≫들은 돈화벽지의 깊은 눈속에서 다시금 허우적 거리게 될 것이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육과송전투를 통하여 돈화의 벽지에서 적들을 대량 섬멸함으로써 뼈에 사무친 이곳 인민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그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공산군은 다 없어졌다.≫고 떠벌이던 일제의 기만선전을 짓부시고 조선인민혁명군은 살아있으며 그 위력이 날로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돈화지구에서의 첫 총성을 울린 육과송전투는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 구상, 돈화원정의 정치군사적 목적을 실현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전투였다.

육과송전투에서 우리는 귀중한 전우들을 잃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슴아픈 손실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 무한히 충실한 혁명전사이며 우수한 군사지휘관인 오중흡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영광스러운 투쟁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였다.

오중흡동무는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사상을 자기의 뼈와 살로, 유일한 신념으로 만들고 혁명의 길에 나선 이후 일생을 오직 그이의 사상의지대로 살아왔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 지시에 대해서는 두말없이 무조건 접수하고 끝까지 이악하게 철저히 관철하였으며 그이의 심려를 덜어드리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오중흡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심으로 하여 조선혁명의 승리가 있고 조국의 휘황찬란한 미래와 우리 인민의 영원한 행복이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러기에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보위하였다.

오중흡동무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공산주의적 풍모와 혁명적 사업방법, 인민적 사업작풍을 따라배워 자기의 사업과 생활에 철저히 구현한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계급적 원쑤들에 대한 비타협적인 투쟁정신과 확고한 혁명적 원칙성, 불요불굴의 강의한 의지와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에 무한히 충실하였다. 그는 혁명동지에 대한 우애가 깊었고 모든 일에서 조직성과 규율성이 강하였으며 부대관리를 알뜰하게 하고 부닥치는 난관을 늘 자체의 힘으로 뚫고나갔다. 그는 언제나 대원들속에 있으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서 배우며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였고 전투에서는 앞장서고 철수할 때는 뒤에 섰으며 생활에서는 검박하고 겸손하며 쾌활하고 낙천적이었다.

참으로 오중흡동무는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의 귀감이었다. 바로 이런 충직한 투사를 잃은 우리의 가슴은 헤아릴 수 없이 아프고 쓰리었다.

수많은 전투들에서 기관총으로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기던 용감한 소대장 강홍석동무와 중대정치지도원 최일현동무가 희생된 것 역시 우리의 가슴을 애도의 정으로 넘치게 하였다.

귀중한 전우들의 희생을 본 우리들모두의 가슴은 복수의 일념으로 불탔다.

우리는 육과송목재소에서 철수하여 숙영지로 가는 도중 희생된 동지들의 추도모임을 엄숙히 가지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추도사를 하시었다.

사랑하는 영웅전사들의 희생을 애석해하시며 혁명전우들의 복수전에로 우리를 부르는 비장한 추도사의 구절구절은 우리모두의 가슴을 끝없이 격동시켰다.

온갖 풍상고초를 겪으시며 10여년, 원쑤 일제를 반대하는 준엄한 혁명의 길에서 사랑하는 전사들을 잃으신 일이 어찌 한두번이시겠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마다 슬픔을 감추시며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시었지만 이날 따라 절통함과 애석함을 더욱 이기지 못하시는 듯 추도사를 읽으시는 그이의 음성은 마디마디가 비분에 떨리시었다.

대원으로부터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그리고 연대장으로 10년을 하루같이 애지중지 키워오신 가장 사랑하는 지휘관의 한 사람인 오중흡동무, 용감한 소대장 강홍석동무와 우수한 정치지도원 최일현동무, 이들을 잃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시었겠는가!

우리들은 비통한 눈물을 삼키며 마음속깊이 맹세를 다지었다. . . .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추도식이 끝나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훌륭한 혁명동지를 잃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큰 손실입니다. 너무나 가슴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동무들, 혁명에서는 희생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가 혁명에 나설 때 모든 곤난과 희생을 각오한 사람들입니다. 손실이 아무리 크고 아픔이 아무리 뼈저리다 해도 우리는 이것을 이겨내고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투사의 길인 것입니다.

오중흡동무는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났으나 그의 열렬한 혁명정신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큰 승리를 쟁취하고 조선혁명을 반드시 완성하기 위하여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희생된 전우들의 뜻을 이어 원쑤들을 천백배 복수하리라 다시금 굳게 결의하였다.

부대는 곧 숙영지를 향하여 서서히 출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가 떠난 다음에도 이윽토록 자리를 뜨시지 못하였다.

부대는 육과송골안으로 내려오다가 오른쪽 골짜기로 다시 올라가서 수림속에 자리를 잡았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가 여대원들과 함께 그곳에 먼저 가서 육과송목재소에서 노획한 쌀과 고등어로 식사를 마련해놓고 부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숙영지에 돌아간 대원들은 혁명동지를 잃은 설음이 북받쳐 모두가 식사를 하지 못하였다. 김정숙동지는 해방후에도 고등어반찬을 대할 때면 육과송전투에서 희생된 혁명전우들의 생각이 나서 들지 못하겠다고 말하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대원들이 식사를 못하는 것을 보시고 못내 걱정하시며 어서들 식사를 하라고 권하시었지만 자신께서도 종내 수저를 드시지 못하였다.

우리는 침식을 잊으시고 상심하고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올 때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할 수 없었다.

부대는 여기 육과송골짜기의 숙영지에서 짐을 지고 온 노동자들을 입대시키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이미 육과송에서 철수할 때부터 이들과의 사업을 목적의식적으로 진행하였다.

목재소노동자들은 짐을 지고 따라오는 도중에 그리고 숙영지에 와서도 대원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 조선인민혁명군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싸우는 진정한 인민의 군대라는 것을 더욱 똑똑히 알게 되었다.

≪왜놈들과 경찰놈들은 우리를 마소와 같이 부려먹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참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겠습니다. 김일성장군님의 영도밑에 총을 잡고 당신들과 함께 싸우게 해주십시오!≫

노동자들은 이렇게 저저마다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시켜줄 것을 탄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청원을 수락하시어 부대에 받아들이시었다.

100여명의 신입대원을 받아들인 부대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노동계급출신의 대원들로 대오가 보충된 것은 육과송전투에서 거둔 중요한 성과의 하나였다. . . .

화라즈분지에서

. . . 나(한익수)는 곧 사령부호위기관총소대에서 보관하고 있은 신문철을 위대한 수령님께 가져다드리었다.

신문을 번져가시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한장의 신문우에 시선을 멈추더니 분격하시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비겁분자, 변절자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시오! 적의 ≪위공작전≫에 겁을 먹고 투항한 임수산이 감히 우리를 ≪토벌≫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왜놈의 사냥개가 되고 말았습니다. …≫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들고 계시는 ≪만선일보≫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적의 개로 굴러떨어진 임수산이 조선인민혁명군 ≪토벌≫에 앞장서겠다고 떠벌인 사실과 함께 더러운 변절자의 사진까지 나있었다.

우리들은 그것을 보는 순간 격분을 참을 수 없었다.

임수산이로 말하면 앙양되는 혁명기세에 편승하여 혁명에 참가하였으나 적들의 ≪토벌≫공세가 강화되고 혁명앞에 시련이 닥쳐오자 겁을 먹고 동요하다가 결국은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적들에게 투항변절한 혁명의 배신자였다.

임수산이 노골적으로 비겁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고난의 행군 때부터였다. 우리가 남패자를 떠나 7도구부근의 수림속에 이르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임수산에게 일부 부대를 데리고 동강쪽에 나가서 적을 견제할 임무를 주시었다. 그런데 이자는 적들의 ≪토벌≫공세에 겁을 먹고 안일하게 생활하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지 않았었다.

물론 임가의 비겁하고 우유부단한 행동은 그후 고난의 행군을 총화하는 회의들에서 심각히 비판되었다. 그때 이자는 자기비판도 하고 결의도 다지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자가 범한 과오는 엄중하지만 일단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결심한 이상 실천을 통하여 과오를 씻으리라고 믿으시어 관대히 용서해주시고 그후에도 중요한 임무를 맡기시었다.

임가자신도 그 비판이 있은 후 얼마동안은 맡은 임무를 충실하게 집행하는 것처럼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요술≫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9년 가을에 이자에게 반일부대에서 넘어온 일부 인원들을 데리고 몽강, 임강 일대에 나가서 훈련도 주면서 대부대선회작전에 필요한 식량을 공작할 임무를 주시었다. 임가는 목적지로 가던 길에 한양구에 있는 밀영에 들리었었다. 그곳에는 우리 부대 기관총이 있었는데 이자는 그것을 더 가져가려고 하였다. 때마침 그곳에 있던 국제당대표가 위대한 수령님의 승인도 없이 왜 자의대로 가져가려고 하는가고 하면서 임가에게 기관총을 내주지 않고 이 사실을 곧 사령부에 알리어왔다. 사실 그때 우리 부대에서는 기관총이 남아서 땅에 묻고 다닐 때였는데 국제당대표도 이런 실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식량공작을 하는데 기관총을 여러 자루 해서 무엇하겠는가.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한동안 생각에 잠겨 계시더니 일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시고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와 함께 한 대원을 임가가 있는 소부대밀영에 파견하시었다.

소부대밀영에 간 김정숙동지는 첫눈에 임가의 거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임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받은 임무수행을 태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혁명군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부화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자는 부대의 식량예비를 마련할 과업을 수행하기는커녕 이미 마련해놓은 식량마저 망탕 축내고 있었다. 그자는 대원들을 횡포하게 대했고 동지간의 의리를 저버리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소부대책임자가 이렇게 변질되니 부대의 질서는 말이 아니었다.

특히 위험한 것은 적의 밀정들을 통하여 물자를 구한다고 흐지부지하며 애매한 관계를 가지고 있은 사실이었다.

김정숙동지는 사령부통신임무를 수행했으니 곧 사령부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임가는 김정숙동지가 돌아가면 자신의 비행이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되리라는 것을 생각했던지 며칠 쉬면서 피로도 풀고 여기 일도 좀 봐주고 가라고 하면서 이러저러한 구실밑에 김정숙동지를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하였다.

김정숙동지는 임가의 태도로 보아 이자가 교활하게 책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그자에게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김정숙동지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밀영을 은밀히 빠져나가는 길밖에 달리는 방도가 없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임가놈은 ≪탈주≫했다는 억지감투를 씌울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비정상적인 사태는 지체없이 사령부에 보고되어야 하였다.

김정숙동지는 같이 간 대원에게 자기의 결심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는 함께 그날 밤으로 밀영을 은밀히 빠져나왔다.

벌써 백두산두리에는 첫눈꽃이 날리고 있었다.

김정숙동지는 불편한 몸으로 사령부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참으로 위험하고 어려운 행군이었다. 적 ≪토벌대≫들과 조우할 수도 있었고 임가놈이 ≪탈주자≫를 잡는다고 뒤따라올수도 있었다. 잡히기만 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북방의 첫추위에 홑옷을 입고 견디는 것도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밀영을 몰래 빠져나오느라고 먹을 것을 조금도 못가지고 떠났기 때문에 굶으면서 강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길을 떠난 다음날에 김정숙동지는 병이 더욱 심해지었다.

언제 적 ≪토벌대≫와 맞다들지 모르며 또 언제 임가놈이 추격해올지 모르는 정황에서 이렇게 되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사령부까지 가닿자면 아직 한주일은 가야 할 터인데 병을 치료할 아무런 방도도 없으니 함께 떠난 대원은 어쨌으면 좋을지 궁리가 나지 않았다. 그는 의식마저 잃은 김정숙동지의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애타게 부르짖었다.

김정숙동지, 정신을 차리십시오.≫

한참만에야 간신히 의식을 회복한 김정숙동지는 안타까와하는 그를 보며 천천히 힘주어 말하였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령부에 가닿아야 해요. 사령관동지께 이 사태를 보고하기 전에는 우리에게 죽을 권리도 없어요. … 사령관동지를 위하는 길에서는 살아도 영광이고 죽어도 영광이에요.≫

바로 이 길이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은 김정숙동지는 분연히 일떠섰다. 그리고는 나무가지를 부여잡고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놓으며 한걸음한걸음 앞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사나운 추위도 혹심한 굶주림도 무서운 병마도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의 일념으로 불타고 있은 김정숙동지의 뜨거운 심장을 식힐 수도 멈춰세울 수도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실한 김정숙동지의 백절불굴의 모습을 보며 함께 떠난 대원은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달려가서 김정숙동지를 부축하고 함께 걷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간고한 행군이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는 한시바삐 사령부에 가닿아야 한다는 그 한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이렇게 수백리길을 걸어 끝내 사령부에 당도하였다.

김정숙동지의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태가 매우 엄중하며 잠시도 방임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곧 사령부와 그자와의 연락선을 끊으시고 사령부의 위치를 옮기시는 한편 전달장 지봉손동무를 다시금 파견하시어 그자를 사령부에 데려오도록 하시었다.

지봉손동무가 소부대밀영에 찾아갔을 때는 이미 그자가 투항변절하여 내려간 뒤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임가와의 연락선을 제때에 끊으시고 예견성있는 조치를 취하시었기에 우리는 적들의 ≪토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놈은 투항하자 곧 적들에게 사령부의 위치를 알려주어 우리가 있던 자리를 은밀히 포위하게 했던 것이다.

혁명투쟁에서 비겁한 자, 불건실한 자가 가는 길은 결국 적에게 투항변절하는 길이다. . . .

홍기하전투

. . . 이윽고 돌격나팔소리가 유량하게 울리었다. 개울홈타기에 매복해있던 7연대와 8연대동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성난 사자처럼 내달렸다.

우리도 뒤따라 돌격해 내려갔다.

그대 맨앞장에서 기관총을 보총처럼 꼬나들고 원쑤들의 복판으로 뛰어든 동무가 있었다. 7연대 4중대 1소대장 김운신동무였다. 순식간에 수십명의 적을 삼대후리듯 쓸어눕힌 그는 한창 백병전을 벌이고 있은 대원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런데 적을 겨누고 세찬 불을 뿜던 김운신동무의 기관총이 갑자기 허공을 그으며 땅에 툭 떨어졌다. 맹호처럼 전장을 휩쓰는 김운신동무를 보고 겁에 질려 죽은 체하고 시체들짬에 엎드려있던 적병놈들이 그에게 집중사격을 퍼부었던 것이다.

적진으로 뛰어들어 원쑤들을 무리로 쓸어눕히던 우리 소대기관총부사수 이귀남동무도 진대나무뒤에 숨어있던 놈들의 탄알에 맞아 중상을 당하였다.

그는 쓰러지면서 소리치는 것이었다.

≪진대나무뒤에 놈들이… 소대장동무, 저놈들을 쏘시오! 저놈들을…≫

사랑하는 부사수, 귀중한 혁명동지가 쓰러지는 것을 본 우리는 진대나무뒤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적 병놈들이 몰켜서 우리 동무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하고 있었다.

소대장동무는 진대나무옆으로 붙으면서 그 악종들에게 기관총탄을 퍼부었다. 놈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요행수로 살아남은 세놈이 기급을 해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급히 추격하니 바빠맞은 한놈이 훽 돌아서며 총을 쏘려 하였다. 너무나도 화가 나는 김에 소대장동무는 연발로 냅다 갈기었다. 적병놈의 얼굴과 가슴이 벌둥지처럼 되었다.

살아남은 두놈은 겁결에 ≪아이쿠!≫하고 비명을 지르며 대가리를 싸쥐고 그 자리에 엎디었다. 우리 소대의 38식기관총부사수가 두놈의 등판을 연이어 총창으로 내리찍었다.

이때 어디서 숨어있다가 나타났는지 번들이마에 살이 피둥피둥 진놈이 권총을 쏘며 달려들었다. 소대장동무가 연발탄을 안기자 그놈은 몸의 균형을 잃고 허우적이면서 손에 쥔 권총을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었다. 과연 악질이었다.

≪이놈이 누구냐?≫

≪그게 일본 토벌대장입니다.≫

옆에서 같이 뛰던 졸병놈이 기가 질려 대답하였다.

≪토벌대장≫이라는 말에 참을 수가 없어 소대장동무는 그놈의 군도를 뽑아 목을 내리쳤다. 대장놈의 대가리가 뎅겅 나가떨어졌다.

그것을 보고 기겁을 한 졸병놈은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부들부들 떨다가 나가넘어졌다.

바로 이때였다. 백병전이 벌어진지 5분도 되나마나한데 지휘처에서 별안간 돌격중지나팔소리가 울리고 재빨리 주변의 유리한 지형지물에 의거하여 조준사격으로 적들을 모조리 소멸해버리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이 전달되었다.

이런 예는 드문 일이었다. 특히 매복전에서 강력한 화력으로 적을 제압하고는 곧 돌격으로 넘어가며 일단 돌격이 시작되면 백병전으로 끝까지 적을 소멸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난 기간의 경험으로 보면 흔히 매복전투에서는 매복권안에 들어선 적들을 잘 묘준했다가 불의의 사격을 가함으로써 순간적으로 많은 적을 소멸하여 적의 사기를 꺾어놓은 다음 돌격해나가면 살아남은 적들은 투항하는 것이 상례였다. 10분 내지 15분 정도면 적을 완전히 제압하고 살아남은 놈들을 포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날 전투에서는 적들이 무리죽음을 당하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바위와 나무들에 의지하여 발악적으로 대항하였다.

이놈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전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였고 실전경험도 많은 ≪신선대≫-≪특수부대≫놈들이었다.

≪특수부대≫는 1930년대초부터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며 혁명군을 ≪토벌≫하는데 이골이 난 관동군의 ≪토벌≫전문장교들을 골간으로 하고 혁명의 변절자들, 자본가, 지주놈의 자식들 그리고 적들의 턱찌끼를 얻어먹던 건달뱅이, 부랑자들로 꾸려져있었다. 이놈들은 훈련도 우리 혁명군의 유격전법대로 하고 부대의 일체 활동도 혁명군부대와 비슷하게 했다.

이놈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적의가 골수에 박히고 ≪토벌≫경험도 많았으며 어느 일본군≪토벌대≫나 위만군보다도 악독하였다.

놈들이 지형지물을 이용하면서 악을 쓰고 반항하는 조건에서 돌격을 계속한다면 아군이 많은 희생을 낼수 있었다.

지휘처에서 전장을 굽어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벌써 이 모든 정황을 판단하시고 임기응변의 전술로 아군의 희생을 막으면서 원쑤들을 완전히 소멸해버리실 전술을 펴신 것이었다.

육박전을 벌이던 전체 부대는 돌격중지나팔소리를 듣자 모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발악하는 적 병놈들을 한놈씩 면바로 겨냥하여 쏴갈겼다. 적들은 홈타기나 나무뒤에서 대가리를 내놓기만 하면 영락없이 총탄에 맞아 너부러지군 하였다.

그날 적들은 우리의 매복권안에 들어섰다가 무리죽음을 당하고 조준사격에 의하여 거의 전멸되고 말았다. 살아남은 놈들은 모두 손을 들고 투항했는데 서른명도 되나마나하였다. 전투는 우리 부대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귀중한 전우인 김운신동무와 이귀남동무를 잃은 것으로 하여 몹시 무거웠다.

김운신동무는 우리가 장백에 진출하였을 때 부대에 들어온 첫 입대자들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장백지방의 지리에 밝은데다 사귐성이 좋아 지방공작도 많이 하고 정찰임무도 자주 맡군 하였다. 보천보전투때에도 무산지구전투때에도 김운신동무는 정찰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그는 입대한후 얼마 안되어 기관총사수의 중임을 맡았는데 서강과 대홍단에서 그리고 육과송과 대마록구에서 언제나 돌격전의 선두에서 영웅적으로 싸웠었다.

나어린 대원 이귀남동무 역시 기관총부사수로서 규율있고 동작이 빠르고 전투에서 언제나 용감하였다.

귀중한 전우들을 잃은 비분으로 하여 대원들은 천백배의 복수전을 벌였었다.

그날 사령부보위에서는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가 특출한 공훈을 세웠다. 그리고 김학송동무 역시 잘 싸웠다.

적들은 우리의 전술을 연구한놈들이었던만큼 돌격신호나팔소리를 듣자 지휘처의 위치를 짐작하고 그리로 맹렬한 사격을 가하였다.

사령부가 자리잡은 지휘처에 적탄이 집중되자 김학송동무는 기관총의 위치를 재빨리 옮기면서 적의 화력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었다. 적들은 지휘처가 이동하는 줄로 짐작하고 김학송동무의 기관총이 불을 토하는대로 따라가며 화력을 집중하였다. 김학송동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마침내 지휘처에 집중되었던 적의 화력은 방향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한창 적들을 매복권안에 몰아넣고 섬멸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간신히 사격구역을 빠져나온 놈들의 한무리가 바로 사령부가 자리잡은 고지뒤의 능선에 나타났다.

조금만 지체하면 사령부가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이 위기일발의 순간 언제나 사령부의 안전을 제일생명으로 여기고 경각성있게 주위를 살피고 있던 김정숙동지는 곧 몇명의 여대원들을 이끌고 적들에게 명중탄을 안기면서 사령부와는 다른 방향의 능선을 타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적탄이 비발치듯 그리로 날아갔다. 그러나 김정숙동지는 자신의 한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어도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배낭과 작식도구를 무겁게 지고도 쏜살같이 내달리었다.

그리하여 사령부가 자리잡은 고지에서 멀리 벗어나자 곧 바위에 의지하여 평상시에 련마한 높은 사격술로 능선에 올랐던 놈들을 마지막 한 놈까지 모조리 쏴눕히었다.

전투가 끝난 다음에 보니 김정숙동지가 지고 다니던 양재기에는 두군데나 총알이 뚫고나간 자리가 있었다.

참으로 김정숙동지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으로 위대한 수령님께 충직한 혁명전사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자기의 영웅적 투쟁으로, 생동한 모범으로 가르쳐주었다. . . .

부대는 화라즈수림속에 이르러 홍기하전투의 혁혁한 승리를 총화하였다. 이 전투는 위대한 수령님의 영활무쌍한 유격전법을 다시금 만천하에 시위한 전투였다.

그 시기 백두산동북부에는 관동군의 오우바부대, 아까호리부대, ≪노조에토벌사령부≫관하의 마에다부대를 비롯하여 야마시다부대, 이즈미부대, 요시가와부대, 박≪신선대≫ 등 ≪토벌≫에 이름난 ≪특수부대≫들이 다 모여들었는데 그놈들은 모두 조선인민혁명군 ≪토벌≫에서 ≪군공≫을 다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토벌대장≫ 마에다라는 놈과 ≪신선대장≫ 박인호라는 놈이 지휘하는 ≪특수부대≫가 가장 악질적이었다.

홍기하전투에서는 이 악질적인 ≪특수부대≫들이 부대장이하 전멸당하였다. . . .

홍기하전투는 관동군이 그렇게도 힘을 넣었던 ≪노조에토벌사령부≫의 이른바 제3기≪토벌≫작전을 종국적으로 파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관동군두목들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소멸≫하겠다고 1939년 가을부터 벌린 제1기, 제2기 ≪토벌≫작전이 실패하자 다시금 1940년초부터 제3기≪토벌≫작전을 폈으나 도리여 저들의 ≪토벌≫거점인 대마록구가 녹아난데 뒤이어 소마록구에서 저들의 ≪정예부대≫들이 전멸당한 것을 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기하전투는 대마록구전투와 함께 백두산동북부와 국내의 광범한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크게 안겨준 의의깊은 전투였다. . . .

위대한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어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선회작전에 이어 이해 봄과 여름에 감행된 일제의 전례없는 ≪토벌≫공세를 걸음마다 산산이 짓부시며 조선혁명을 계속 줄기차게 전진시켜온 그 고난에 찬 투쟁의 길우에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영활한 전략전술과 함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에게 불사신의 힘과 용맹을 안겨준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가 뜨겁게 아로새겨져있다.

힘겨운 행군과 피어린 전투가 연일 계속되던 엄혹한 시기, 항일혁명전쟁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혁명전반을 영도하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지휘간부들과 전사들을 친어버이심정으로 극진히 보살펴주시며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었다.

1940년 봄 따라오는 수백명의 적들을 족치면서 부대가 철수하고 있을 때였다. . . .

조미료도 없고 요리기술도 없어 그저 맹물에 삶은 개구리요리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을 한 자리에 모시고 명절≪연회≫에 모여앉은 우리는 그것을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더 달게 먹었다.

이날 저녁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들을 우등불가에 모여앉히시고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었다.

≪우리 조선은 문자 그대로 삼천리금수강산입니다. 산도 좋고 물도 맑습니다. 어느 곳 어디서나 끓인 물이 필요되지 않습니다. 비옥한 토지에서는 기름진 오곡을 풍성하게 거둘 수 있게 하며 동서해안의 무진장한 가지가지의 수산물과 가는 곳마다에 매장된 금, 은, 동, 철, 석탄 등 모든 귀중한 자연부원들은 우리 인민들을 모두다 잘살 수 있게 하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민들은 그것을 일제놈들에게 죄다 빼앗겼습니다.

유명한 평양국수, 달콤한 감자(고구마), 가을이면 대동강의 숭어, 기름진 백미, 경치좋은 모란봉과 만경대, 그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기억에 생생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자랑스러운 자연 풍경과 부원을 일제놈들에게 강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간고한 투쟁은 반드시 오늘의 개구리요리를 미구에 대동강의 숭어요리로 전환시키고야 말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하나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현재 적들의 중첩되는 추격과 포위 속에서 굶주리지만 결코 놈들은 우리의 전진을 저지시킬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보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리앞에는 광활한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 광활한 길을 우리는 전세계 노동계급과 피압박인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줄기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가운데는 극히 부분적이었으나 당면한 곤난을 극복하지 못하여 10여년간의 고귀한 자기의 혁명역사를 더럽히고 적 앞에 투항변절한 비열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가련한 자들입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기껏해야 60년전후가 아닙니까? 이 길지 않은 생애를 깨끗이 살지 못하고 목전의 조그마한 이익을 위하여 자기 양심을 팔고 인민을 반역한 비겁분자들을 어찌 가련타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소박한 사람들은 예로부터 하루를 살아도 양심적으로 사는 것을 영예스럽게 여기여왔습니다. 우리들의 양심이란 곧 조국해방을 위한 애국적 양심, 노동계급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불요불굴의 투지, 두려움을 모르는 대담성과 강의성, 모든 곤난을 극복하는 인내성, 영웅성 등의 집중적 표현으로 되는바 바로 이것을 혁명적 양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조선사람의 양심을 수호하여야 하며 언제든지 아름다운 우리의 조국을 피로써 고수하여야 합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아름다운 우리 강토에 외래침략자들이 기여들 때마다 단결된 힘으로 궐기하여 적들을 용감히 물리쳤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민족적 자부심 드높이 일제를 구축하고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더 굳세게 나아갑시다.≫

위대한 수령님의 절절한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혁명가의 고귀한 칭호를 영원히 간직하려면 어떻게 살며 싸워야 하는가를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어떤 시련이 앞을 막아도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만을 굳게 믿고 그이께서 이끄시는 혁명의 한길에서 일생을 바쳐가리라는 충성의 결의로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우리는 이날 저녁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밤이 깊도록 조국의 역사와 지리에 대하여, 아름다운 고향산천에 대하여 그리고 해방된 조국의 내일에 대하여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즐겁게 보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노래들을 대견히 들어주시고 자신께서도 친히 어린 시절에 즐겨부르시었다는 모란봉노래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시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적들이 우리에게 판가리싸움을 걸고드는 엄혹한 시간, 처창즈수림속의 개구리요리가 대동강의 숭어요리로 바꾸어질 휘황찬란한 내일을 눈앞에 그려보던 잊을 수 없는 그밤은 그후 우리들을 그 어떤 시련과 난관에도 꿋꿋이 이겨내고 앞으로만 나아가도록 힘있게 떠밀어주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대원들에 대한 사랑, 그것은 한없이 따사롭고 자애로운 육친적 사랑인 동시에 끝없이 깊고 억센 혁명적 사랑이었다.

바로 경애하는 수령님의 이 위대한 사랑은 우리들의 심장을 언제나 그이에 대한 더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의 일념으로 불타게 하였으며 그이를 위하여서는 청춘도 생명도 기꺼이 바치게 하였던 것이다.

적들이 그 어떤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조선인민혁명군을 없애려고 미쳐날뛰면서 그 예봉을 혁명의 사령부에 돌리고 있던 그때 위대한 수령님을 견결히 옹호보위하는 것은 곧 조선의 운명을 보위하고 혁명의 승리를 보장하는 길이었다. 하기에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사랑의 품속에서 자라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간부들과 전사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이께서 계시는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지켜냈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의 희생적인 투쟁은 그 빛나는 귀감이었다.

1940년 초여름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이른 아침에 대사하골을 따라 행군하신 일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지우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울리며 탄알이 비발치듯 쏟아져 내려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대오를 친솔하고 계신다는 기미를 알아차린 안도현 ≪신선대≫놈들이 밤을 타서 은밀히 뒤를 따르다가 고지우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난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신선대≫는 1937년 진창전투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불벼락을 맞고 즉사한 악명높은 ≪특수부대장≫ 이도선의 형 이도일이라는 놈이 지휘하고 있었는데 그놈은 ≪대일본제국의 충신≫이 되기 위하여 ≪쇄골분투≫하겠다고 떠벌이면서 아군≪토벌≫에 피눈이 되어 날뛰고 있은 악질주구였다.

그처럼 불리한 지형에서 적들과 맞다들린만큼 우리의 마음은 자못 긴장해졌다.

이 위급한 순간 총소리가 울리는 고지를 노려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결연히 싸창을 뽑아드시고 돌격명령을 내리시었다.

돌격나팔소리가 골짜기에 낭랑히 울리자 대원들은 비호같이 고지로 달려 올라갔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의 영활하고 과단성있는 지휘에 의하여 부대는 위험한 고비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적들을 수세에 몰아놓고 본때있게 족칠 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심으로 하여 조선혁명의 승리와 휘황한 조국의 미래가 있다는 반석같은 신념을 안고 언제 어디서나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경각성있게 보위하여온 김정숙동지는 이날에 있은 불의의 조우전에서도 그이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전투가 한참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중턱에 있는 바위우에 오르시어 전투전반을 지휘하고 계시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을 지켜 주위를 예리하게 살피고 있던 김정숙동지는 잡관목을 헤치며 그이를 향하여 다가오는 적의 한 무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심장이 딱 멎고 디디고 선 땅이 그대로 내려앉을 것만 같은 이 숨막히는 순간 김정숙동지는 온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어 위대한 수령님을 막으며 맨앞에서 다가드는 놈에게 명중탄을 안기었다.

어느새 위대한 수령님께서 돌아서시며 김정숙동지의 어깨너머로 다음놈을 쏴눕히시었다.

두 자루의 권총이 엇바꾸어가며 불을 뿜을 때마다 적 한놈씩 쓰러졌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던 만큼 적들은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모조리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다가오는 놈들을 마지막 한놈까지 쓸어눕히시고 여전히 그 바위우에서 전투를 지휘하고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이윽토록 바라보던 김정숙동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주르르 흘러내리었다.

그것은 결코 기쁨의 눈물만이 아니었다. 조선이 운명과 혁명의 미래를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 민족의 태양으로 전체 인민이 높이 우러러모시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귀중한 신변에 잠시나마 위험이 닥치게 된 그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는 끝없이 숭고한 자책의 눈물이었으며 그이의 안녕을 위해서는 생명도 기꺼이 바칠 결의로 가슴불태우고 있은 혁명전사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의 눈물이었다.

참으로 경애하는 수령님의 대원들에 대한 위대한 사랑과 그이에 대한 대원들의 불같은 충성심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오의 사상의지적 통일단결의 기초로 되었으며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전략전술, 영활한 전투지휘와 함께 ≪노조에토벌사령부≫의 광란적인 ≪토벌≫작전을 여지없이 분쇄할 수 있게 한 필승불패의 힘의 원천으로 되었던 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영도밑에 조선인민혁명군은 이해 봄과 여름에 걸쳐 감행된 일제의 ≪토벌≫공세를 산산이 짓부셔버림으로써 적들에게 심대한 군사정치적 타격을 가하였으며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준비있게 맞이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 단계에로의 이행을 성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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