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22일

통일여명 편집국

 

 

붉은 해발 아래 항일혁명 20년 2

 -≪붉은 해발 아래 항일혁명 20년≫

통일여명 편집국 6-2-5

 

 

차 례

 

적들의 모략을 짓부시고

혁명대오의 정치사상적 순결성을 고수하시기 위하여

압록강을 다시 건너

일행천리전술

민족의 태양을 맞이한 무산지구인민들

 

적들의 모략을 짓부시고

. . . 하강구의 울창한 수림속에서 엄동설한의 마지막기운을 몰아내며 1939년의 봄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사나운 눈보라도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도 이제는 고개를 숙인 듯 했다. 그러나 아직은 겨울이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으며 고난의 행군노정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며칠 후 우리는 남패자를 떠난 이래 몽강과 임강, 장백의 수림속을 가로세로 썰며 걸어온 그 피어린 노정에서 마지막으로 되는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12도구치기의 수림속에서 있은 일이었다. 그때는 동강쪽으로 갔던 8연대동무들과 청봉밀영에 들어갔던 여대원들도 돌아와 제2방면군부대의 전체 성원이 오래간만에 한 자리에 모여있었다.

13도구를 치고 노획한 식량과 7연대가 구해온 식량이 있어서 모두들 배고픔을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한가지 딱한 사정은 소금이 없는 것이었다.

식사 때마다 대원들속에서 소금맛을 봤으면 기운이 날 것 같다는 말이 나오군 하였다.

너무도 오래동안 소금구경을 못하여 모두들 얼굴이 퉁퉁 붓고 눈이 맞붙었다.

그런데 그때 소금은 통제품의 하나여서 구하기가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일제놈들은 소금이 부족해서 통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만주는 발해연안에 아주 풍부한 천일염산지와 몽골지방에 많은 암염산지를 가지고 있어서 콩, 석탄과 함께 소금은 만주 3대륙산물의 하나로 대량생산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소금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 생산과 수출입, 판매, 소비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이런 관계로 집단부락이나 목재소, 적의 병영을 습격하는 경우에도 식량과 천, 신발 같은 것은 구할 수 있었지만 소금은 구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 이래 사실상 겨우내 소금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소금맛을 못보니 밥을 먹어도 속이 빈 것 같고 허기진 사람처럼 다리가 휘청거리며 맥을 출 수가 없었다.

숙영명령을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이 이런 사정을 가슴아프게 여기시고 소금을 구해오도록 대원 2명을 12도구쪽으로 파견하시었다. 그중 한 신입대원의 집이 그 마을에 있었던 것이다.

임무를 받은 대원들은 농민으로 변장하고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뒤산에 이르러 동정을 살피면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들은 얼마후 산아래에서 늙은 농민 한사람이 빈 지게를 지고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노인은 바로 우리 동무들이 은신한곳으로 걸어왔는데 뜻밖에도 신입대원의 아버지였다. 농사철을 앞두고 나무하러 오는 길이었다. 이리하여 그 대원은 마을까지 내려가지 않고 산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노인은 나무를 하러 왔다가 혁명군에 들어간 아들을 우연히 만났으니 여간만 반가와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에게 먼저 김일성장군님의 안부를 정중히 묻고는 모두들 얼마나 고생이 막심하겠느냐고 걱정하였다. 그 대원은 아버지에게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여전히 건강하시다는 소식과 함께 어려운 행군을 하던 이야기를 하고 이제는 겨울도 다 가고 일제놈들을 본때있게 답새길 때가 되었는데 우리 동무들이 소금을 먹지 못하여 고생하니 좀 사다줄 수 없겠는가고 물어보았다.

노인은 서슴없이 자기가 구해오겠다고 말하였다.

우리 동무들은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며 다시 만날 지점을 약속하였다.

그 노인은 며칠후 정말 약속대로 소금을 지고 찾아왔다. 두 동무는 너무도 기뻐서 감사를 드리며 노인과 함께 소금을 지고 급히 부대로 돌아왔다.

부대에 소금이 도착하자 모두들 좋아서 야단들이었다.

그들은 무슨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소금자루를 가운데 놓고 모여서서 떠들었다. 성급한 동무는 벌써 자루에서 소금을 몇알 집어 맛을 보기까지 하였다.

오랜 기간 소금구경을 못한 대원들이니 그럴만도 한 일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에 소금을 나누어주기 전에 시험해보라고 지시하시었다.

조선인민혁명군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온 음식물은 어떤 것이나 반드시 검사해 보고야 쓰기로 되어있었다.

후방부일군들은 마침 전투마당에서 붙들어가지고 다니던 적의 개에게 그것을 먹여보았는데 먹인지 한시간이 지나도 아무 탈이 없었다. 그래서 소금을 각 중대에 나누어주었다.

중대들에서는 오래간만에 소금을 두고 국을 끓이면서 신바람나게 식사준비들을 하였다.

당시 사령부에서는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가 작식대책임을 맡고 있었다. 본래 솜씨가 알뜰한 김정숙동지는 배낭속에 늘 고추가루며 기름, 식초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었는데 소금이 생기자 콩장을 만들어 식초를 쳐서 내놓았다.

그날 사령부에서는 전령병들과 사령부호위성원들이 먼저 식사를 하게 되었었다. 그들은 김정숙동지가 만든 반찬을 보고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 나자 모두들 일시에 배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괴로와하는 것이었다.

심한 동무들은 쓰러져서 꼼짝을 못했다.

밥을 먹자마자 이런 일이 생겼으니 음식이 심상치 않은 것만은 명백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급히 각 연대에 소금을 먹지 말라고 지시하시는 한편 지휘관들을 사령부로 부르시었다.

그런데 7연대장과 8연대장의 보고에 의하면 전체 연대가 소금을 둔 국을 먹었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었다. 독립대대에서도 별다른 징조는 없었다. 다른 동무들은 다 일없다는데 유독 사령부에서 식사한 동무들만이 모두 아프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지휘관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한 지휘관이 소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콩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말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중독된 대원들을 뽑으시는 한편 사령부호위성원들을 비롯한 중독되지 않은 동무들로 부대의 호위를 담당하게 하시고 몸소 적 정을 살피시었다. 부대가 숙영지에서 자리를 뜬지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예견하신대로 적들이 누렇게 그 주변으로 달려들었다. 적들은 소금을 들여보내놓고 약효가 나타날만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불의에 공격을 개시했던 것이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싸울수 있는 인원은 얼마 되지 않는데 적의 병력은 수십배나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은 우리로서는 적과 정면으로 맞받아나가 싸울수도 없고 그렇다고 독약에 중독된 부대를 두고 자리를 옮길수도 없었다.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수년간 벼르며 기다리던 기회가 마침내 닥쳐왔다고 생각한 적들은 마음놓고 달려들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배낭의 탄알들을 다 꺼내놓으시오. 오늘은 여기에서 결사전을 해야 하겠습니다.≫ . . .

드디어 위대한 수령님의 신호사격소리가 울리고 뒤이어 우리의 기관총들이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뒤흔들며 불을 토했다.

달려들던 적들은 삼대쓰러지듯 무리로 너부러지고 적의 공격서열은 순식간에 사분오렬되었다. 살아남은 놈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얼마후 총소리가 멎은 골안에 적들의 비명이 그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우리들이 적들에게 섬멸적 타격을 주고 있은 사이에 부대의 주력은 이미 숲속으로 다 들어갈 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곧 철수하여 연대동무들의 뒤를 따르도록 하시었다. 우리가 그들을 거의 따라잡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금 방어진을 치게 하시었다. 우리들은 탄창마다 탄알을 채우며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얼마후 적들이 대오를 수습해 가지고 또 밀려들었다. 장교놈들의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놈들은 겁에 질려 마구 총질을 하면서 산등성이로 기여올라왔다. 우리는 또다시 놈들을 바싹 접근시켜놓고 불벼락을 안기었다.

놈들의 두번째 공격도 좌절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방어진을 거두고 더 깊은 수림속으로 들어가게 하시었다.

적들은 이렇게 공격을 시도할 때마다 무리죽음을 당하였으나 이틀동안이나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국 골짜기와 산등성이에 수많은 주검을 남긴 채 물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전원 무사히 안전지대에로 철수하였다. . . .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노인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었다.

≪인민들을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문제나 혁명가답게, 공산주의자답게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합니다. 일제놈들은 교활하고 음흉합니다. 그놈들은 조선혁명의 주력인 우리 인민혁명군을 ≪소멸≫하기 위하여서는 어떠한 방법과 수단도 가리지 않으며 온갖 음모책동을 다하고 있습니다. 선량한 저 노인은 독약을 친 소금이라는 것을 모르고 가져왔습니다.≫

후에 명백히 되었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판단과 조치는 천만번 옳았던 것이다. 사실 노인은 소금에 독약을 친 것을 전혀 몰랐었다. 아들의 부탁을 받은 그는 어떻게 하나 필요한 량의 소금을 사서 보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나 통제품인 소금을 단꺼번에 많이 살수 없었다.

아들과 약속한 날자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도저히 필요한 양을 다 장만할 것 같지 못해 걱정하던 노인은 생각다못해 자기가 가장 믿는 이웃집 노인에게 넌지시 말을 비쳐보았다. 그러자 그 노인은 선뜻 발벗고 나섰다.

대원의 아버지는 아들로부터 비밀을 엄수하라는 당부를 받았던 만큼 자기와 가장 가까운 이 노인에게만 부탁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말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노인 역시 소금을 한근이라도 더 많이 혁명군에게 보낼 마음으로 자기가 믿는 다른 노인에게 또 부탁하여 결국 세사람이 이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세번째 노인의 아들이 적의 밀정이었다. 그놈은 아버지가 소금을 사들이는 것을 보고 슬그머니 넘겨 짚어보았다. 아들이 적의 밀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버지는 아들을 믿고 그만 사실대로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적들에게 정보가 들어갔으며 간악한 놈들은 흉계를 꾸미었던 것이다. 간교한 놈들은 서둘러 농민들을 체포한 것이 아니라 소금을 사도록 그냥 내버려두고 시내상점의 소금을 은밀히 사들여 아무도 모르게 독약을 친 후 다시 나누어주어 팔게 하였다. 그리고 독약도 몇시간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쳤다. 이렇게 되어 독약을 친 소금이 혁명군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연대동무들이 일없을 때 사령부호위성원들만 이 소금을 먹자마자 중독된 것은 무슨 까닭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식초가 작용하여 독약의 효과가 즉시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식초의 작용을 받은 독약은 빨리 효능을 잃기도 하여 사령부호위성원들은 해독도 인차 되었다. 말하자면 김정숙동지가 식초를 친 것이 천만다행으로 독약의 비밀을 제때에 밝혀낼수 있는 단서를 잡게 하였고 또 그 후과를 극복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전투와 행군이 연속되는 그 간고한 환경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 드릴 식찬맛을 조금이라도 더 돋구려고 배낭속에 늘 식초를 가지고 다닌 김정숙동지의 뜨겁고도 뜨거운 지성이 독약으로 하여 입을 수 있었던 무서운 피해를 막아내었던 것이다. 그 식초가 아니었던들 부대는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참으로 ≪소금사건≫은 조선인민혁명군이 국경일대에로, 조국에로 나오는 고난의 행군 과정에 이겨낸 가장 어려운 시련의 한 고비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은 총탄과 포탄으로도 그 어떤 모략이나 흉계로도 ≪소멸≫할 수 없는 불패의 대오임을 원쑤들에게 다시금 똑똑히 보여주었다. . . .

혁명대오의 정치사상적 순결성을 고수하시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제2방면군은 1939년 4월 마침내 북대정자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곳에 이르러 지난 겨울 청봉에서 있었던 뜻밖의 반혁명적 사건에 대하여 상세히 알게 되었으며 이해 겨울이 군사적으로 뿐 아니라 우리들의 정치사상생활에서도 얼마나 큰 시련의 시기였는가를 다시금 깊이 느끼게 되었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전례없는 고난을 이겨내면서 국경일대로 진군하고 있을 때에 청봉밀영에서는 엄중한 하나의 반혁명적 사건이 발생하였었다.

청봉밀영에는 7연대후방일군이던 엄가가 몇명의 후방성원들과 부상자들을 데리고 있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을 단행하시던 중 여기에 부상당한 대원들과 그들을 돌보아주도록 여대원들을 들여보내시었었다.

그것은 간고한 행군이 시작되어 한달여의 시일이 지난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봉밀영에 들어가는 대원들을 위하여 사령부와 경위중대에서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비상미까지 모두 거두어주도록 배려하시었다.

전후좌우로 달려드는 대적 과 하루에도 몇차례씩 싸우며 깊은 눈과 모진 추위를 뚫고나아가야 할 사령부의 안전을 생각할 때 그들은 그것을 선뜻 받을 수가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심정을 헤아리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마시오. 우리야 적을 치고 식량을 구할 수도 있고 힘들면 휴식할 수도 있습니다. …≫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에 목이 메여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20만 대적의 끊임없는 공격을 물리치며 불비와 눈바다를 뚫고 수천리 험한 길을 가셔야 하련만 오히려 밀영에 들어가게 된 대원들을 염려하시는 그이의 한량없는 사랑을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머금고 멀어져가는 대오를 바래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신 여대원들을 청봉밀영의 책임자인 엄광호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사상적으로 변질되어 안일해이한 생활에 물젖어있던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의 원칙성이 강하고 대바른 성품을 잘 알고 있었던만큼 은근히 꺼려하였다.

엄광호로 말하면 원래 기분주의적으로 혁명대오에 끼여든 우연분자였다. 그는 늘 완성된 공산주의자로 자처하면서 걸핏하면 혼자서 혁명을 다 할 것처럼 초혁명적 언사를 쓰고 있었지만 자기의 본바탕은 숨길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반≪민생단≫투쟁시기에 불건전한 자들과 휩쓸려 종파적 행동을 감행하고 강직된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꾸준히 일깨워주시고 가르쳐주시었을 뿐 아니라 그가 자기의 과오에서 교훈을 찾고 개준되기를 기대하시면서 점차 그에게 중대정치지도원의 책임과 연대후방사업의 중책까지 맡겨주시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의 아량있는 포섭과 꾸준한 교양에도 불구하고 이자는 도리어 배은망덕하게 직위불만을 품고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다. 이자는 청봉밀영에 들어가 농사를 지어 부대의 식량을 마련할 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명영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으며 지방조직을 복구정비할 데 대한 임무를 받고도 그 집행을 태공하였다.

사상적으로 변질타락한 이자는 이미 혁명의 이익은 안중에 없었다.

이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혁명적인 노선과 방침들을 음으로양으로 헐뜯으면서 대원들속에 그이에 대한 불신임을 조성하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으며 기회있을 때마다 자기의 투항주의적 본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 충실한 김정숙동지는 청봉밀영에 들어간 첫날부터 엄가의 안일해이한 생활과 불건전한 언행에 대하여 주목을 돌리게 되었으며 그것을 반대하여 원칙적인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엄가는 여대원들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그들에게 이러저러한 형태로 압력을 가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혁명전사들이 엄가의 압력이나 위협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밀영에서는 남패자회의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역사적인 연설≪현정세와 금후 항일무장투쟁의 전략적 과업≫에 대한 학습토론을 진행하게 되었다. 토론에 참가한 모든 동무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에 담겨져 있는 심오한 사상과 그 정당성 그리고 연설의 거대한 의의에 대하여 열렬히 토론하였으며 그이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방침을 끝까지 관철하려는 자기들의 불같은 결의를 다지었다.

그런데 이날 엄광호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유식≫을 뽐내며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위대한 수령님의 새로운 전략전술적 방침을 시비하며 자기의 투항주의적 견해를 공공연히 선전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혁명에서는 응당 고조기와 저조기가 있는 것만큼 올겨울처럼 적의 ≪토벌≫이 심하고 광범한 대중의 적의 백색테러앞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때에는 적과 정면으로 대결할 것이 아니라 일단 뒤로 물러서서 유리한 정세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국경일대에로 진출하고 계시는데 대하여 ≪무모한 행동≫이니 뭐니 하면서 중상비방하였다.

엄가의 발언은 모든 대원들을 격분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난국에 처한 조선혁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총검의 숲을 헤치시며 국경지대에로의 피어린 행군을 하고 계시는 때에 후방밀영에 앉아서 그이의 혁명적 방침을 시비하고 투항주의를 설교하는 반혁명적 행동을 대원들은 참을 수가 없었다.

김정숙동지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김정숙동지는 혁명의 객관적 정세는 혁명투쟁에 일정한 영향을 줄 수 있으나 결정적인 작용은 할 수 없으며 불리한 정세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공산주의자들이 취할 혁명적 입장과 태도일 것이라고 하면서 엄가의 그릇된 발언에 대하여 타격을 주었다.

김정숙동지는 혁명이란 언제나 투쟁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으며 유리한 정세도 결국은 끊임없는 투쟁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에 비추어볼 때 엄가의 발언은 결국 혁명을 포기하자는 것이나 같다고 하면서 이것은 만난을 무릅쓰고 국경지대에로 진출하고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우리의 혁명동지들에 대한 노골적인 배신행위라고 냉혹하게 지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노선과 방침, 그이의 현명한 영도를 떠나서는 조국의 광복도 혁명의 승리도 혁명군의 존재자체도 결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철석같은 신념으로 삼고 있은 김정숙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어긋나는 기회주의적인 견해에 대하여 추호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정숙동지의 뒤를 이어 다른 여대원들도 그의 토론을 지지하면서 엄가의 반혁명적인 견해에 대하여 강한 타격을 주었다.

엄가는 김정숙동지의 사리정연하고 원칙적인 반박을 받게 되자 그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궁지에 빠지게 된 엄가는 더욱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자는 갑자기 책상을 탕 치며 소리쳤다.

≪레닌의 ≪일보전진 이보퇴각≫이나 알고 그런 소리들을 하오? 내가 말하는 혁명의 ≪고조기≫와 ≪저조기≫란 것은 레닌의 ≪일보전진 이보퇴각≫이나 같은 것이요. 적들은 지금 조선과 만주를 군사요새로 전변시켰소. 적들은 지금 대병력으로 아군을 공격하고 있소. 게다가 눈이 산야를 뒤덮었소. 이렇게 지금처럼 정세가 불리할 때는 뒤로 물러서서 산중깊이 은신하고 있어야지 적과 맞받아 싸워서는 불리하단 말이요.≫

결국 문제는 엄가의 인식상 부족이나 착오 또는 우연한 말의 실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노선과 방침을 거역하는 그의 근본입장과 태도에 있었다.

엄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혁명임무의 수행을 태공하여온 사실까지도 정당화하려고 꾀하였다.

엄가의 이 모든 행동은 사상적 입장과 관련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여기에서는 자그마한 양보나 타협도 있을 수가 없었다.

치열한 논쟁이 거듭되었다.

김정숙동지와 견실한 대원들의 정당한 비판앞에서 할 말이 없게 되자 엄가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다 그릇되게 진행된 반≪민생단≫투쟁의 여독이라고 하면서 터무니없게도 그 ≪여독≫을 뽑아야겠다고 기승을 부렸다.

반≪민생탄≫투쟁 때에 극좌적 오류를 범하여 혁명에 막대한 해독을 끼친 그자가 이번에는 자기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이처럼 파렴치하게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정치사업을 책임지고 있던 김준동무의 애매한 태도였다.

김준동무는 엄가의 궤변에 넘어가 논쟁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결론을 주지 못하고 되도록 ≪말썽없이≫ 그것을 어물어물해서 덮어버리려고 하였다.

그는 원래 정치이론수준이 그리 높지 못한데다 특히 후방밀영에 들어온 이후 안일해져서 문제를 정치적으로 예리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그저 무난하게 지내기를 바랐던 것이다.

교활한 엄가는 자기 정체를 가리기 위하여 김준동무의 이러한 약점을 이용하면서 여대원들을 모해하는데로 넘어갔다. 이자는 이미 혁명가의 초보적 의리와 양심마저 다 잃어버린 비열한 타락분자였다. 이자는 여대원들속에서 무슨 ≪흠집≫을 잡아 그들을 자기에게 ≪굴복≫시키려고 하였다. 이러한 목적에서 그는 어느날 밤중에 갑자기 ≪비상소집≫을 일으켰다.

그러나 여대원들에게서는 아무런 흠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는 장백에서 갓 입대한 신입대원에게 시비를 걸었다. 부대생활에 익숙되지 못한 그 신입대원은 덤비다가 그만 총을 밀영에 그대로 두고 나왔던 것이다.

엄가는 이것을 구실로 그 신입대원의 무장을 해제하고 그에게 밥을 먹이지 않으면서 압력을 가했다. 그로 하여금 도주하게 만들고 여대원들을 연루자로 몰려는 것이었다. 여러 끼를 굶은 신입대원은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어서 어느날 밤 먹을 것을 구하러 밀영을 뜨게 되었다. 엄가는 기회를 놓칠세라 ≪도주자≫가 생겼다고 하면서 또 ≪비상소집≫을 일으켜 밀영부근의 수림속을 수색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신입대원은 도주한 것이 아니라 후방성원들이 부치던 감자밭에 나가 언감자 몇알을 얻어서 구워먹고 있었다. 그가 밀영을 나온 경위는 극히 단순하였다. 그러나 엄가는 그를 ≪도주자≫로 몰아 체포하고 간첩혐의를 들씌웠다.

≪솔직히 고백하면 살려줄테다. 무슨 임무를 받고 대내에 기어들었는가?≫ 엄가는 으름장을 놓았다.

배가 고파서 감자를 캐먹으러 나갔었다고 순진한 신입대원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나 엄가는 자기가 요구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무서운 고문을 들이댔다. 단련이 부족한 신입대원은 견디여내지 못하고 ≪간첩임무를 받고 왔다.≫고 허위진술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엄가는 ≪대내조직을 대라.≫고 숨돌릴 사이 없이 달구었다. 신입대원은 끝내 엄가가 강요하는대로 여대원들의 이름을 주어 섬기었고 자기가 그들에게 넘겨주었다는 ≪독약≫까지 내놓지 않으면 안되었다.(후에 판명되었지만 그것은 치분이었다.)

엄가는 신입대원의 이 ≪자백≫을 구실로 견실한 여대원들을 잡아가두었다. 이렇게 든든히 올가미를 들씌워놓아야 여대원들이 감히 자기에게 대들지 못할 것이며 자기의 분풀이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자는 여대원들을 가두어놓고 ≪근거문건≫을 만들기 위해 매일과 같이 그들을 심문하고 고문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모략과 박해로도 일편단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정치사상적으로 옹호보위하려는 그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김정숙동지는 격분에 넘쳐 이 비열한 배신자의 음모책동을 규탄하였다.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이다. 우리는 김일성동지의 전사다. 너는 누구냐? 너는 혁명의 원쑤다. 혁명은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라. 너는 혁명앞에 지은 죄로 하여 처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엄가는 더욱 발광하였다.

청봉밀영의 사태는 험악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일군인 김준동무는 사태의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엄가의 허위날조에 넘어가 대열내에 정말 ≪간첩≫이 잠입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리하여 김정숙동지와 여대원들의 신상에는 커다란 위험이 드리우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통신원이 청봉밀영으로 찾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음력설을 앞두고 밀영에 있는 대원들을 생각하시어 13도구전투에서 노획한 식량과 고기 등을 보내주셨던 것이다.

통신원은 청봉밀영에 가면 동무들이 무척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감격과 환희에 넘치는 모습을 그리며 걸음을 다그쳐왔는데 웬일인지 밀영의 분위기는 침울하였다. 여대원들은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는 김준동무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와 선물을 전달하고 대원들의 방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뜻밖에도 두손을 묶이운 여대원들이 침통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대원들은 사령부통신원을 보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반겨 맞았다.

김정숙동지가 나직이 말하였다.

≪빨리 사령부에 이 사실을 알려주세요.≫

통신원이 사태의 전말을 물으려고 하는데 김준동무가 들어와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께 보내는 편지와 ≪독약≫이 들어있다는 봉지를 주면서 빨리 사령부에 가 밀영에서 ≪간첩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보고하라고 하였다.

통신원에게는 이 여대원들이 간첩과 관련되었다는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그 어떤 모략이 숨어있으며 한시바삐 동지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그 달음으로 사령부에 돌아왔다.

청봉밀영의 사태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에 ≪간첩사건≫이란 혁명의 배신자가 꾸며낸 음모라는 것을 간파하시고 격분을 금치 못하시었다. 그이께서는 몸소 ≪독약≫봉지를 펴서 그 빛갈과 냄새를 검사해보시었다. 아니나다를가 그것은 지난 가을 습격전투에서 노획하여 대원들에게 나누어준 치분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정치일군을 청봉밀영으로 파견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아무래도 청봉밀영에서 일이 잘못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무가 빨리 가서 사건을 수습하되 도착하는 즉시로 우선 여대원들을 풀어놓아야 하겠습니다.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밝히고 그들을 데려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

이리하여 그 정치일군은 밀영에 도착하는 즉시에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대로 구금된 여대원들을 풀어주고 사건을 해명하는데 착수하였다.

그는 엄가와 김준동무도 만나보고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와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신입대원에게 전후사연도 알아보았다. 이 과정에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예리한 분석과 정확한 판단에 재삼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간첩사건≫은 완전히 엄가에 의하여 날조되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북대정자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동안 청봉밀영에서 있은 사건의 관계자들을 일일이 만나시어 문제를 전면적으로 요해하시고 방면군당위원회에서 심중하게 토의하신 후 지휘관병사회의를 소집하시었다.

회의에서는 먼저 청봉밀영에서 벌어진 반혁명적 사건을 폭로하는 보고가 있었다.

이어 엄가에게 발원권을 주었다. 엄가는 그 자리에서까지 자기의 죄행을 숨기려고 발악하였다. 그자는 보고에 지적 된 자기의 죄과를 인정할 대신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대원들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들어 낱낱이 까밝히고 추궁을 해서야 그자는 목숨만 살려달라고 비굴하게 애걸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김준동무의 자기비판이 있었다.

그는 혁명이라는 말도 모르는 순진한 농촌청년이던 자기가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겨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혁명의 길, 투쟁의 길에 나선 이후 부대의 정치일군으로까지 자라났으나 그이의 크나큰 은덕과 높은 신임에 보답할 대신 돌이킬 수 없는 엄중한 과오를 범하게 된데 대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진심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자기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신념으로 삼지 못하고 정치이론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일상적으로 노력하지 않은 결과 엄광호의 반혁명적인 책동과 투항주의적 견해를 제때에 간파하지 못하였다는 것, 교활한 엄가가 무원칙하게 호의적으로 대하며 내세워주는데 넘어간 자기는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견실한 동지들이 엄가를 반대하여 투쟁을 벌였을 때에도 그것을 지나친 행동으로 잘못 알고 될수록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엄가의 입장을 두둔하였다는 것, 더우기 엄가가 허무한 ≪간첩사건≫을 조작하였을 때에는 사실여부를 과학적으로 해명할 대신에 반≪민생단≫투쟁시기에 자기가 누명을 썼던 일이 있는 만큼 보신주의적 입장에서 ≪결백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문제를 극좌적으로 처리하는데 추종하였다는 것 등 과오를 범하게 된 원인을 사상적으로 심각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모든 과오를 스스로 돌이켜보게 되는 지금 저에게 있어서 가장 괴로운 것은 제가 사령관동지의 두터운 신임과 은덕을 저버리고 이처럼 험한 구렁텅이에 빠져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사령관동지께서 이끄시는 영광스러운 투쟁의 길에 나섰다가 그이의 혁명전사로서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혁명대오에서 떨어져나가게 된 저의 행동이야말로 혁명앞에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이며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모든 죄과에 대하여 마땅히 혁명앞에 책임을 져야 하며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인정합니다.≫

회의에서는 계속하여 많은 동무들의 토론이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엄광호의 반혁명적인 죄행을 증오와 격분에 넘쳐 규탄하면서 혁명의 배신자를 무자비하게 처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김준동무에 대해서도 그가 범한 엄중한 과오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주었으며 응당한 처벌을 가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김정숙동지의 토론은 회의참가자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김정숙동지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엄가의 죄행을 단죄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령관동지의 혁명전사인 우리가 그이의 혁명노선과 방침을 헐뜯으려고 하는 엄광호의 반혁명적 책동을 보고 어떻게 묵과할 수 있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엄가의 그 어떤 고문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한목숨이 끊어질 지언정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어긋나는 경향과는 타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준 것은 오직 하나 사령관동지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사령관동지를 생각할 때 저는 죽음도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고 그이를 위해서 제 한목숨을 바치는 것이 도리여 영광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동무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누구를 믿고 근 10년동안이나 천신만고를 다 겪으며 원쑤와 피흘려 싸워왔습니까!

지금 조국의 동포형제들이 누구를 믿고 일제의 압제밑에서 그 모진 불행과 고통을 참으며 살아가고 있단말입니까!

그이는 바로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꺼질 줄 모르는 승리의 봉화를 안겨주신 사령관동지이십니다.

오직 사령관동지께서만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고 우리 부모형제의 원한을 풀어주실수 있다는 것을 우리 어찌 한시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오직 사령관동지만을 믿고 따를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그이께 충직한 혁명전사로서 살며 싸워나갈 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충성의 열정이 끓어넘치는 김정숙동지의 열렬한 토론은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끝없이 격동시켰다.

심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김정숙동지의 토론은 회의에 참가한 우리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었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옹호하며 그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첫째가는 가장 숭고한 의무이며 영예라는 것을 다시금 가슴깊이 되새기게 되었다.

토론이 끝난 다음 회의에서는 전체 대원들의 한결같은 의사에 따라 엄가의 책동을 반혁명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준엄한 선고를 내리었으며 김준동무는 혁명군대오내에 두고 과오를 시정하게 하되 정치간부직책에서 철직시킬 것을 결정하였다.

회의에서는 끝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결론을 하시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가 높은 정치사상적 수준에서 진행되었으며 엄광호와 김준동무의 문제가 혁명의 요구대로 공정하게 처리되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었다.

≪혁명투쟁이란 우여곡절과 곤란에 찬 간고한 투쟁입니다. 혁명가의 신념과 의지는 애로와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검열되며 혁명가는 투쟁의 불길속에서 성장하며 더욱더 단련됩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혁명적 수양을 쌓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애로와 난관 앞에서 동요하게 되며 결국은 변질타락하여 영광스러운 혁명대오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엄광호의 변질과정은 이 진리를 다시한번 교훈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혁명을 포기한지 오랜 자입니다. 그는 본래 계급적 입장이 확고하지 못한데다가 조선혁명의 노선과 방침을 연구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자기의 신념으로 삼지 못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그는 적의 반동공세가 격화되자 겁을 먹고 혁명은 어떻게 되든지 자기의 한목숨을 건지며 개인의 안일을 꾀하려는 비굴한 사상에 물젖어 혁명을 배반하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우리의 무장투쟁노선과 방침들을 반대하고 사령부를 모해하면서 맡은 임무를 의식적으로 태공하였으며 혁명의 핵심을 헐고 우리 혁명대오를 파괴하려고 책동하였습니다.

오늘 이러한 반혁명분자를 제때에 제거함으로써 우리의 혁명대오는 더욱 순결해졌으며 우리의 혁명적 단결은 오히려 공고하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준동무가 범한 엄중한 과오에 대해서도 일일이 분석하시고 결론을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김준동무가 정치적 안목이 무디어 옳고 그른 것도 적 아도 구별하지 못하고 사령부를 옹호하여 나선 견실한 대원들의 원칙적인 투쟁을 억제하게까지 된 것은 바로 그 자신의 계급적 입장이 얼마나 모호해졌으며 정치적으로 얼마나 암둔해졌는가를 잘 말해준다고 하시면서 그 누구를 물론하고 자체수양을 꾸준히 하지 않을 때에는 결국 혁명의 이익을 해치는 엄중한 과오를 범하게 된다고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준동무가 반≪민생단≫투쟁의 ≪여독≫을 운운하면서 악랄한 목적을 추구한 엄가에게 추종한 사실을 엄격히 비판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지난 시기 반≪민생단≫투쟁이 좌경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사람들 호상간에 믿지 못하게 되고 혁명대오와 군중과의 이탈을 조성하게 된 엄중한 오류에 대하여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민생단≫투쟁의 좌경적 오류를 규탄한다고 하여 결함에 대한 투쟁도 다 집어치우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비판을 제때에 정확하게 하여 우리 대오를 좀먹으려는 일체 책동을 극복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앞으로 김준동무가 자기의 과오를 빨리 시정할 수 있도록 동지적으로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 . .

압록강을 다시 건너

. . . 우리는 강을 건느면서도 그것이 바로 압록강인줄을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린 대원들의 손목을 잡으시고 강을 건네주시면서 이것이 바로 조선의 압록강이라고 말씀하셔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것이 압록강인줄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1937년 6월 보천보전투때 건는 압록강은 원목 네길이를 이은 떼목 하나가 모자랄 정도로 넓고 깊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강물이 마치도 조국광복을 위한 성전에 나선 우리를 반기듯 사품치며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너비가 진대나무 한기장도 되나마나하였다. 그러고보니 압록강에서도 상류인 것 같았다.

조국땅을 밟는다는 의식은 우리의 가슴속에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의 파도를 일으켰다. 우리는 조국의 푸른 소나무와 흙냄새를 온몸으로 감각하며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조국땅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렇게 우리는 일제가 수천리국경선에 이른바 ≪철통의 방비진≫을 쳐놓고 ≪나는 새도 돌파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던 국경을 쥐도 새도 모르게 감쪽같이 넘어섰다.

전대오가 강을 건너서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휴식을 명령하시었다.

휴식명령이 내렸으나 대원들은 조국의 품에 안긴 벅찬 감격으로 하여 높뛰는 심장을 안고 말없이 서성거리었다. 강가 여기저기에 활짝 피어난 진달래의 꽃향기가 봄바람에 실려왔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는 꽃향기에 홀린듯 ≪진달래!≫하고 환성을 올리며 단숨에 달려가 품에 그러안았다. 그리고 붉게 핀 진달래꽃속에 얼굴을 묻고 가볍게 어깨를 들먹이었다. 얼마나 마음속깊이 소중히 간직해온 조국의 진달래였던가. 강기슭에 피여난 한떨기의 꽃에서도 조국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윽고 김정숙동지는 강가에 소담하게 피여난 진달래꽃을 꺾어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진달래의 그윽한 꽃향기를 맡으시며 ≪조선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깊은 감회에 잠기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니 우리들의 마음은 더욱 감개무량하였다.

이국의 하늘을 지붕삼고 이국의 광막한 산과 들을 잠자리로 삼으면서 수천수만리 광복의 혈로를 헤쳐온 우리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에게 있어서 조국에 대한 감정은 참으로 절절한 것이었다. . . .

이리하여 인적이 없던 청봉기슭에는 잠간사이에 사령부천막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중대천막들이 들어섰으며 취사장이며 우등불 피울 나무까지 준비되었다. 적당한 장소에 필요한 위생시설도 갖추어놓았다.

단 하루밤을 쉬어가도 숙영지를 이렇게 질서있게 꾸리는 것은 장구한 기간의 전투생활에서 하나의 습관으로 된 조선인민혁명군의 엄격한 기풍이었다.

숙영준비를 끝낸 우리는 얼마동안 행군의 피로를 풀었다.

이때 사령부천막에서 비서처동무들이 무엇인가 손에 들고 나왔다. 그들의 뒤에는 몇명의 나어린 전령병들과 여대원들이 손도끼를 들고 따라섰다.

그들은 밋밋하게 자란 분비나무곁으로 가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전령병들이 나무그루의 우와 아래쪽을 손도끼로 가볍게 쳐서 금을 내고 껍질을 벗기자 뒤따라 비서처동무들이 껍질을 벗긴 자리에다 먹으로 글을 썼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도 그들과 함께 구호공작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있은 김정숙동지는 누구보다도 시간이 없었지만 그이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조선인민들의 심장속에 투쟁의 불씨를 안겨주기 위한 구호공작에 자진해나섰던 것이다.

구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민족의 자유와 독립 해방을 위하여 끝까지 싸우자.≫

≪조선청년들, 속히 달려나와서 항일전에 힘있게 참가하자.≫

≪일어나라 단결하라 전체 노력대중들아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싸우자.≫

≪원쑤 일제놈들을 반대하여 싸우자.≫

≪항일대전승리 만세.≫

매우 힘있는 글발들이었다.

≪참 좋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오백룡)는 나무에 글을 쓰고 있은 비서처동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말마시오. 이런 일이야 응당 우리들이 착안하고 사령관동지께 걱정을 끼치지 말았어야 할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소.≫

비서처의 한 일군은 글을 쓰다말고 나를 돌아보며 구호공작을 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진공작전을 지휘하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런 구체적인 일까지 심려하시며 구호의 내용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었다는 것이다.

잠간사이에 숙영지변두리의 나무들에는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사상이 맥박치는 많은 글발들이 나타났다. 우리들은 그 한글자한글자가 부모형제들에게 더없이 큰 힘과 용기를 북돋아줄 것이라는 생각에 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구호목들이 수십수백년을 두고 억센 뿌리를 뻗치며 푸르싱싱 자라날 때 그 힘있는 글발들도 대를 이어가며 우리 인민에게 무궁한 힘을 안겨주게 될 것이었다. . . .

일행천리전술

건창숙영지를 이른아침에 떠난 우리는 하루종일 울창한 밀림속을 행군하여 해가 뉘엿뉘엿 해갈무렵에 베개봉에 이르렀다. 그날이 1939년 5월 20일이었다. . . .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들속에서 벌이게 될 정치사업의 내용에 대하여서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신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내일 이곳을 떠나 무포까지 100여리를 행군하여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숙영하고 있는 이곳 베개봉기슭에서 20∼30리 가면 경치좋은 삼지연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갑무경비도로≫를 따라 한달음에 무포까지 가야 합니다.

행군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대원들에게 행군의 목적 과 의의를 똑똑히 알려주며 행군준비를 빈틈없이 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전대오가 규율을 엄격히 지키고 혁명적 경각성을 높여 적들의 온갖 준동을 제때에 적 발분쇄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일행천리로 동정한다는 의미에서 내일의 군호는 ≪동정≫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새로운 전술적 방침에 전체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마음속깊이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실로 일제의 ≪백전노장≫들을 아연실색케 할 대담무쌍한 전술이었다. 그것은 무비의 담력과 비상한 통찰력, 탁월한 군사적 예지가 없이는 엄두도 낼수 없는 전술이었다. 바로 그렇듯 슬기로운 전술이 있었기에 우리는 적들이 곳곳에서 욱실거리는 국내에 들어와서도 계속 여유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휘원회의가 끝나자 각 부대들에서는 다음날 아침으로 예정된 행군을 위하여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나(오백룡)는 중대의 사무장에게 신발이 떨어진 동무들에게는 예비신발을 갈아신기도록 하라고 이르고 작식대원들에게는 아예 아침에 점심식사까지 다 해놓으라는 과업을 주고나서 대원들의 행군준비정형을 직접 요해하며 미진한 점들을 바로잡아주었다.

1939년 5월 21일, 부대는 날이 밝기 전에 아침식사를 전부 끝내고 베개봉숙영지를 떠났다.

오중흡연대장이 7연대에서도 전투력이 가장 강한 한개 소대를 데리고 먼저 떠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갑무경비도로≫로 대낮에 행군하게 되는 것만큼 불의의 정황이 생기더라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게 척후대역량을 특별히 강화하도록 하시었던 것이다.

대오는 빠른 걸음으로 밀림속을 행군해갔다. 점심때가 거의 되어올 무렵에 부대는 행군로에서 왼켠으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못가에 이르렀다.

참으로 보기 드문 아름다움 못이었다. 못변두리에는 하늘높이 자란 봇나무며 분비, 가문비 등 갖가지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있는데 수정같이 맑은 물이 백두산 수림의 그림자를 담고 가벼운 봄바람에 찰랑이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삼지연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가에서 전대오에 휴식을 명령하시었다.

휴식명령이 내리자 대원들은 앞을 다투어 물가로 달려나갔다.

본래 삼지연은 흐르고 있은 강이었는데 아득한 태고에 백두산화산이 터질 때 날려온 현무암과 부석에 물길이 막혀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강은 흐르지 못하고 그대신 세개의 못이 가지런히 생기었는데 ≪삼지연≫이라는 이름도 이로부터 생긴 것이라고 한다. 이 못은 물이 흘러들어오지도 않고 빠져나가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명 ≪무구호≫라고도 불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름다운 삼지연에 맑은 미소를 보내시고 호수의 맑은 물로 행군의 갈증을 더시었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가 삼지연의 맑은 물을 정히 떠서 위대한 수령님께 올리었던 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정답게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었다.

≪삼지연은 풍치도 좋고 물맛도 좋습니다. 이 물을 마시고 힘껏 싸워 조국을 해방합시다.≫ . . .

우리는 정다운 삼지연의 아름다움을 가슴속깊이 간직하면서 행군의 피로를 풀며 그 자리에서 점심밥을 먹었다. 삼지연을 출발하기전에 대원들은 백두산부석을 주어 물에 깨끗이 씻은 다음 배낭에 건사하였다.

김정숙동지는 여대원들과 함께 호수가의 한쪽 기슭에 가서 머리고 감고 빨래도 하였다. 찰랑이는 물결과 그리운 정을 마음껏 나누며 조국의 맑은 호수를 가슴속깊이 간직해두려는 뜨거운 마음에서였다.

앞으로 100리가량은 물이 없으니 그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들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출발명령이 내렸다. 우리들의 마음을 그토록 감개무량하게 해주던 삼지연이 점점 멀어져갔다. . . .

적들은 국경경비를 위한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보고 있은 이 도로의 공사를 빠른 시일안에 끝내기 위하여 조선총독부의 추가예산까지 세웠었다. 그리고 이 공사에 경상도와 전라도를 비롯한 조선의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청장년들을 끌어내다가 마소와 같이 혹사하였다. 그들의 피땀의 대가로 1937년부터 1939년 5월상순까지의 기간에 이 ≪갑무경비도로≫공사가 끝났던 것이다.

함남도 갑산군과 함북도 무산군간의 무인지경 처녀림을 관통하는 ≪갑무경비도로≫는 포태리로부터 농사동까지가 75키로메터, 가림리로부터 6토장까지가 38키로메터 그리고 독산으로부터 포태리까지가 7키로메터로서 총연장 120키로메터에 달하였다.

우리는 이 ≪갑무경비도로≫에서도 가장 중요한 구간인 삼지연으로부터 무포까지의 근 100리길을 대낮에 정연한 대오로 보무당당히 행군해갔다.

조선총독부는 이 도로공사를 방금 끝내였을 뿐 아직 준공검사도 하기전이었다. 당시 적들은 준공검사를 받기 위해 도로로 일체 통행을 금지시키고 청소까지 말끔히 해놓았었다.

적들이 아군의 국내진출을 막아보겠다고 특별예산까지 내어 기를 쓰고 닦아놓은 길로, 그것도 방금 준공검사를 받겠다고 말끔히 정리해놓은 길로 밤도 아닌 대낮에 원쑤를 치러 행군해간다는 것은 참으로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원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예견하신 것처럼 우리는 100리 가까운 구간을 행군하는 동안 단 한명의 적과도 조우하지 않았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이날 왜놈군대복장에 ≪고라≫요, ≪하야꾸≫요 하는 따위의 몇마디 낱말까지 배워가지고 척후를 섰던 오중흡연대장일행은 행군이 끝나자 모처럼 꾸민 연극을 한번도 놀아보지 못한 것을 오히려 섭섭해하기까지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기세좋게 대도로로 행군해가고 있을 때 원쑤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미 쳐놓으신 그물에 걸려 여전히 포태산계선의 밀림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비상한 통찰력에 다시금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일제의 등허리를 밟는 통쾌감을 안고 100리 가까운 경비도로를 성과적으로 돌파한 후 해질무렵에 도로에서 떨어져 두만강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 . .

민족의 태양을 맞이한 무산지구인민들

. . . 점심식사 후 부대는 무포지휘관회의에서 이미 위대한 수령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신사동과 신개척 방향으로 진출하였다. 바야흐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하시면서 기본타격대상으로 정하신 신사동과 신개척 일대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조국진군을 선포하게 될 역사적인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노동자들이 내어드리는 자리에 허물없이 앉으시어 그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노동자들에게 매 사람의 고향과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며 살아가는 형편에 대하여 하나하나 물으시었다.

절절한 동정과 깊은 심려가 어린 위대한 수령님의 물으심에 용기를 얻은 노동자들은 일제의 학정밑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은 자기들의 고달픈 처지를 숨김없이 말씀드리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일제의 악명높은 ≪북선개발≫의 희생자들이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이른바 ≪북선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경상도, 전라도 등지의 순박한 농민들을 기만하여 1938년말까지 무산을 비롯한 북부조선일대에 6천여호나 이주시켰었다. 교활한 일제는 그들에게 ≪벌이좋은 일자리≫와 ≪행복한 장래≫를 마련해준다고 ≪약속≫하였으나 이곳에서는 살인적인 노동과 혹심한 생활고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노동보호시설도 없는 채벌장들과 중간토장들에서는 나무에 깔려 죽거나 원목에 치워 병신이 되는 불상사가 매일같이 일어났고 그로 하여 수많은 가정과 부모처자들에게 불행과 참화가 들씌워지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기들로 하여금 정든 고향을 떠나 이러한 생지옥에 와서 고생하도록 만든 일제에 대하여 끝없는 원한과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강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망국노의 설음이며 전체 조선인민의 비참한 처지라고 하시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은 이러한 처지에서 신음하는 조국인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벌써 10년동안이나 일제침략자들과 피흘리며 싸우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이번에 조선인민혁명군은 또다시 강도 일제를 족치며 국내인민들을 반일투쟁에로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압록강을 건너 조국에 진군하였다고 말씀하시었다.

노동자들은 자기들과 담화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를 아직은 몰랐으나 심장을 격동시키는 위대한수령님의 말씀 한마디한마디에서 깊은 감동을 받으며 그이를 존경어린 눈길로 우러러보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예지에 빛나는 안광, 인자한 미소, 소탈하고 겸허한 품성 그리고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목재소노동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틀어잡았다. 노동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위대한 수령님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의탁하며 그이에 대한 다함없는 신뢰와 흠모의 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럴 즈음 마을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다!≫는 놀라운 소문이 쫙 퍼지었다. 그러자 벽지마을 신사동은 감격과 환희로 들끓었다.

2천 300만 동포가 해방의 구성으로, 민족의 태양으로 우러르며 흠모하고 있은 김일성장군, 일제침략자들이 그 존함만 들어도 벌벌 떠는 전설적 영웅이신 김일성장군! 바로 김일성장군님께서 끌끌한 조선군사들을 이끄시고 날새도 넘나들지 못한다는 일제의 삼엄한 국경경비망을 뚫고 이렇게 찾아오시었으니 신사동사람들의 그 감격과 기쁨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가 있으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마을이 떨쳐나서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노동자들과 담화하고 계시는 귀틀집으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그이를 뵈옵겠다고 앞을 다투어 귀틀집안으로 들어섰다. 삽시에 군중은 귀틀집밖에까지 덮이었다. 노동자들은 그제야 자기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분이 바로 오매에도 그리던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감격에 넘쳐서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노동자들과 하시던 이야기를 잠시 끊으시고 마을사람들을 맞이하시었다.

누데기토스레옷으로 앞이나 겨우 가린 마을어린이들의 그 가련한 정상은 우리들의 가슴을 더욱더 쓰리게 하였다.

얼마나 고역과 가난에 시달리었으면 사랑하는 자식들의 아래도리도 가리우지 못하고 아이들을 저렇게 벌거벗기고 있겠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른들 틈을 비집고 나온 한 어린아이를 무릎에 앉히시고 모여선 군중을 향하여 뜻깊은 연설을 하시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여러분!

우리는 또다시 조국에 진군하여 그립던 동포들과 이처럼 상봉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처럼 헐벗고 굶주리며 천대받는 노동자, 농민의 아들딸로서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손에 무장을 들고 강도 일제와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일제침략자들과의 싸움에서 계속 승리하고 있은 것은 우리 인민들로부터 물심양면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적극 지지성원하여 주고 있은 애국적 인민들에게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전하시었다.

세상에 나서 언제 한번 사람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마을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고마운 말씀에 모두 목이 메여 뜨거운 것을 삼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 나라는 자원이 풍만하고 산좋고 물맑은 아름다운 나라이며 우리 인민은 슬기롭고 용감하며 근면한 인민이지만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은 피땀을 흘리면서도 풍만한 자원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으며 더욱더 비참한 처지에 빠져들어가고 있는데 대하여 몹시 가슴아파하시면서 우리 인민들이 날을 따라 더욱더 어려운 처지에 빠져들어가고 있은 것은 그 무슨 팔자탓이 아니라 일제가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조선인민에 대한 파쑈적 폭압과 식민지적 약탈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시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일제침략자들이 우리 나라의 귀중한 부원과 재부를 닥치는대로 약탈하여 가고 우리 인민의 피땀을 악착스럽게 짜내고 있는데 대하여 그리고 우리 인민에 대한 정치적 폭압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데 대하여 생동한 실례를 들어가며 알기 쉽게 해설하시었다.

참으로 그때 조선인민은 일제침략자들의 강도적 약탈과 폭압정책으로 말미암아 생사존망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으며 온 나라는 검은구름이 무겁게 드리운 인간생지옥으로 변하였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귀여운 자식들에게 옷한벌 해입히지 못하고 신 한켤레 사신기지 못하면서 억눌리고 천대받으며 살고 있은 마을사람들의 눈물겨운 정상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더니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씀하시었다.

≪과연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민족문화와 풍만한 자원을 가진 슬기롭고 용감한 우리 인민이 일제의 영원한 식민지노예로 되어야 하겠습니까?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어이 침략자 일제를 내쫓고 조국의 광복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성스러운 혁명위업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는 투쟁에서 무비의 용맹을 떨쳐왔다고 하시면서 이러한 우리 민족이 혁명승리의 신심을 굳게 가지고 합심협력하여 나선다면 그 어떤 간악한 원쑤도 능히 소탕할 수 있다고 강조하시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우리 동포들은 민족의 역사에 있어본적 이 없는 진정한 혁명무력인 조선인민혁명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조선에서 일제를 몰아내고 조국의 광복을 성취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노동자, 농민의 군대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10년동안의 자랑찬 투쟁노정을 걸어왔으며 영활한 유격전술과 무적의 힘으로 강도 일제를 족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조선인민혁명군은 일제침략자들에게 군사정치적 타격을 주고 우리 인민들에게 해방의 서광을 비쳐주기 위하여 또다시 조국에로 진격하였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여러분에게 온갖 불행과 고역을 들씌우고 있는 우리 인민의 피맺힌 원쑤 일제침략자들을 소멸해버리고야 말 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일본제국주의자들이 7.7사변이후 전중국을 집어삼키려고 광분하고 있지만 놈들의 멸망은 불가피하다고 하시면서 그 근거를 과학적으로 논증하시었다.

당시 일제는 중일전쟁을 ≪속전속결≫하려던 계획이 파탄되게 되자 대륙침략전쟁의 후방기지인 조선과 만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중일전쟁을 ≪속전속결≫하는 선결조건이라고 간주하고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공세를 감행하는 한편 조선과 중국동북지방에서 파쑈적 폭압을 전례없이 강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에 벌써 일제가 발악하면 할수록 더욱더 많은 반제세력의 반항에 부닥치게 되리라는 것을 명철하게 내다보시었다.

그이께서는 시간이 흐르는데 따라 더 많은 조선인민들과 중국인민들이 반일투쟁에 나설 것이며 세계적으로 반파쑈인민전선운동과 반제민족통일전선운동이 세차게 전개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리하여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도처에서 강력한 규탄을 받게 될 것이며 궁극에 가서는 멸망하고야 말 것이라고 확신성있게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암운이 드리운 조국땅에서 내일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지 못해 살아가던 벽지마을사람들에게 무한한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나큰 환희와 흥분에 휩싸여있는 마을사람들을 미덥게 바라보시며 조국광복의 휘황한 전망을 펼쳐주시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역사적인 연설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은 조국강토에서 일제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조국을 광복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나아가서 광복된 조국땅우에 우리 인민들이 유족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는 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조국을 광복하고 새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우리인민의 절절한 염원입니다.

우리 인민의 이 염원은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뚜렷이 밝혀져 있습니다. 우리는 조국광복회강령에서 조국의 광복을 성취하고 인민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는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 것을 우리 인민의 투쟁과업으로 내놓았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회강령이 실현되면 독립된 조국땅에 노동자, 농민이 나라의 주인이 될 인민정부가 수립되고 인민대중은 진정한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리고 노동자, 농민들은 공장의 주인, 땅의 주인이 되어 착취와 압박이 없는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며 녀성들은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고 어린이들은 면비교육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마을사람들의 가슴가슴을 끝없는 희망과 감격으로 부풀어오르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서 밝힌대로 조국땅에 살기 좋은 인민의 나라를 수립하기 위하여 강도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조국의 광복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 역사적인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과업을 천명하시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하기 위하여서는 전체 인민이 일제를 반대하는 성전에 힘있게 떨쳐나서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조국광복의 위업은 몇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전민족이 하나와 같이 반일전선에 굳게 결속되어야 합니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전민족이 반일전선에 하나로 뭉치자면 노동계급이 선봉이 되어 투쟁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노동계급은 조선민족의 가장 선진적인 부대이며 무산대중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반일전선의 선두에는 바로 당신들, 노동계급이 서야 한다고 힘있게 호소하시었다.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 수행에서 차지하는 노동계급의 위치와 사명에 대하여 깨우쳐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절절한 말씀은 노동자들을 무한히 격동시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노동계급앞에 나서고 있은 구체적인 임무를 명시하신 다음 신사동임업노동자들은 일제의 원목약탈을 반대하여 태업을 비롯한 각종 형태의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조국의 임업자원을 지켜내고 원쑤들을 곤경에 몰아넣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기기 위하여서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투쟁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일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이 감행하는 침략전쟁의 목적과 본질을 인민들속에서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해설선전함으로써 광범한 인민들이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을 반대하여 떨쳐나서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또한 일제가 침략전쟁을 확대할 목적으로 조작한 각종악법과 동원령을 단호히 거부하며 일제의 전쟁확대책동을 각방으로 저지파탄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광복의 날을 하루속히 앞당기기 위하여서는 전체 인민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적극 지지성원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은 반드시 손에 총을 잡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광범한 인민들속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선전을 광범히 하여 혁명군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적극 지지성원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연설을 마치시면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시었다.

≪우리모두 광복된 조국에서 다시 만나 진정한 노동자, 농민의 새 주권을 세우고 나라의 풍만한 자원을 개발하여 인민들이 살기 좋고 번영하는 새 조선을 건설할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억세게 싸워나갑시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목재소노동자들과 인민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으며 그들에게 새로운 고무적 힘을 주었다.

한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령병에게 미리 준비시켜가지고 가셨던 조국광복회창립선언과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등사한 선전물들을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시었으며 앞으로 혁명조직을 내오고 투쟁할 방향과 임무들을 제시하여주시었다.

남포등을 켜놓은 귀틀집안에서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모두가 조국광복의 길을 밝혀주시는김일성장군님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귀담아듣고 있었다.

한편 이날 정치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과업을 받고 입대청원자들을 비롯한 핵심노동자들을 따로 만나 이 일대에 조직의 뿌리를 박기 위한 사업들을 활발히 벌이였다. 노동자들에게 지하공작방법도 대주었으며 일정하게 파악이 있는 대상들에게는 구체적인 임무와 차후 접선암호까지 알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에 따라 대원들 역시 마을사람들속에서 정치사업을 적극 벌이였다. 대원들의 꾸밈새없고 진정에 넘친 소박한 정치사업은 마을사람들을 크게 감동시켰으며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었다.

특히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는 마을사람들과의 사업을 능숙하게 하였다.

이날 김정숙동지는 마을에 들어서자 한 여대원과 함께 열네댓살 난 어린 딸을 데리고 목재판에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한 노인의 귀틀집에 들리었다.

노인과 그의 딸은 갑자기 총을 맨 녀자군대들이 자기 집에 들어서는 것을 보자 놀라서 말을 하지 못하였다. 일제놈들의 학정밑에서 주눅이 들대로 든 그들의 모습은 김정숙동지의 가슴을 몹시 쓰리게 하였고 원쑤들에 대한 치솟는 격분을 금할 수 없게 하였다.

김정숙동지는 겁에 질려 서있는 처녀애를 그러안으며 그의 손이 거칠어진 것을 보고 손이 왜 이렇게 텄느냐고 친언니의 심정으로 다정히 물어보았다.

쳐녀애는 여전히 불안에 싸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 애의 늙은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어린 것이 목재소의 합숙에서 부엌일을 하느라고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김정숙동지는 배낭에서 소중히 간직했던 크림통을 꺼내어 처녀애의 손등에 손수 발라준 다음 크림통을 처녀애의 손에 쥐어주며 아침저녁으로 그것을 바르라고 친절히 알려주고 나서 그애의 이름을 물었다.

겁에 질려있던 처녀애는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자기 이름을 말하였다.

김정숙동지의 소박하고 겸손한 음성은 대번에 노인과 그 딸의 굳어졌던 마음을 풀어주었고 귀틀집안에 화목한 분위기가 돌게 하였다.

김정숙동지의 살뜰한 마음씨에 감동된 노인은 귀한 손님들을 그냥 보낼수 없다고 하면서 아궁에 불을 지피라고 딸을 재촉하는 한편 자신은 감자초롱을 들고 부엌으로 내려섰다.

김정숙동지는 같이 갔던 여대원과 함께 배낭에서 밀가루를 꺼내어 반죽을 하면서 노인에게 정치사업을 하였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거느리시고 이 마을에 오시었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알려주면서 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우리 조선은 반드시 해방되며 헐벗고 굶주리는 모든 조선사람들이 다같이 잘살 수 있는 새 세상이 꼭 온다고 말해주었다.

김정숙동지의 말 한마디한마디는 노인을 무한히 감동시켰다. 노인은 눈물이 글썽해서 말하였다.

≪…내 평생에 이런 기쁜 날을 처음이웨다.≫

김정숙동지는 이날 저녁 인민혁명군의 저녁밥을 짓고 있은 마을여인들속에 섭쓸리어 그들의 바쁜 일손을 도와주면서도 쉬임없이 정치사업을 하였다. 김정숙동지가 어떻게나 부엌일도 잘하고 이야기도 귀에 쏙쏙 들어가게 잘하였던지 마을여인들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 여인은 다른 여대원에게 김정숙동지가 총도 잘 쏘느냐고 가만히 물어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김정숙동지가 총알 열알이면 왜놈 열놈을 쏘아잡는 명사수라는 말을 듣자 눈이 휘둥그래져서 한참 국수꾸미를 솜씨있게 만들고 있은 김정숙동지를 존경어린 눈매로 우러러보았다.

김정숙동지는 이처럼 자신의 실천적 행동으로 인민들을 감화시키군 하였다. . . .

1939년 5월 23일 경위중대와 8연대, 독립대대는 그전날 7연대와 헤여진 대홍단벌의 국사당부근에 이르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대오를 멈추어세우시고 대홍단벌의 좀 둔덕진곳에 경위중대와 8연대, 독립대대를 매복시키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사동, 신개척 일대에서 아군이 벌린 맹렬한 활동에 넋을 잃은 적들이 곧 뒤따르리라는 것을 타산하시고 바로 이곳에서 놈들에 대한 일대 섬멸전을 벌이시려는 것이었다. . .

7연대와 짐을 지고 온 노동자들까지 교차사격권내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전부대는 더욱 맹렬히 적들을 답새겼다.

아군의 강력한 타격에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던 적들은 삼장과 무산쪽에서 역량을 보강받고서야 겨우 대오룰 수습해 가지고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적아간의 사격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관총좌지가 있는 둔덕우에 나서시어 전투를 지휘하시었다.

기관총수들은 주춤하고 사격을 멈추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안전이 염려되어 마음놓고 갈겨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히려 대원들을 안심시키며 전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기관총좌지곁을 떠나지 않으시었다.

기관총사수들은 뜨거운 마음을 안고 원쑤들이 머리를 쳐들 수 없게 더욱 세찬 불벼락을 안겼다.

≪뚜루룩, 뚜루룩≫

총구에서 불꽃이 연방 튀어나왔다.

새초밭에 엎드린 적들은 움쩍만 하면 벌써 목숨이 날아나군 하였다.

치열한 화력전에 견디어 배길 수 없게 된 적들은 마침내 사분오열되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은 무질서하게 패주하는 적들에게 섬멸적 타격을 주어 그 대부분을 대홍단의 진펄에 처박아넣었다.

대홍단전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대승리로 끝났다.

대오는 이윽고 대홍단벌을 횡단하여 수림속에 들어갔다. 여기서 우리는 적의 한개 소부대를 만났으나 놈들은 우리를 발견하자 숲속으로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영활한 지휘밑에 진행된 무산지구전투는 일제침략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대한 군사정치적 타격을 주고 조선인민혁명군의 불패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시위한 빛나는 전투였으며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총화한 역사적인 전투였다.

일제는 조선인민의 혁명적 기세를 꺾기 위하여 보천보전투 이후 식민지적 파쑈폭압을 더욱 강화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소멸≫하려고 미친듯이 발광하였지만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아내지 못했으며 제놈들이 그처럼 자랑하던 국경요새도 아군에 의하여 일격에 녹아나고 말았던 것이다.

일제가 ≪공고한 후방≫이라고 장담하던 조선에서 생긴 이러한 ≪엄중한 사태≫는 놈들의 식민지통치체계를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으며 적들의 대륙침략전쟁 수행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무산지구전투의 승리는 조선인민의 민족적 기개와 존엄을 다시 한 번 온 세상에 떨친 자랑찬 역사적 사변이었다.

세상사람들은 조선인민이 일제의 전례없는 파쑈적탄압속에서도 민족해방의 기치를 높이 들고 굴함없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적들은 야만적 폭압으로 백두산서남부와 국내 함남북일대에 다져진 혁명의 지반을 파괴하고 다시는 국내에 조선인민혁명군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게 하려고 발악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진공작전을 승리적으로 단행하심으로써 무산지구에 다시금 혁명의 터전을 닦으실 기틀을 마련하시었으며 백두산동북부에 의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반적 조선혁명을 더욱 앙양시킬 웅대한 구상을 힘있게 구현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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