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21일

통일여명 편집국

 

 

붉은 해발 아래 항일혁명 20년 1

 -≪붉은 해발 아래 항일혁명 20년≫

통일여명 편집국 6-2-4

 

 

차 례

 

해발을 따라

무송일대에서의 대규모적인 군사작전

국경연안에서의 대중정치사업

전국도처에 뻗어가는 혁명조직

서강회의

 

* ≪붉은 해발 아래 항일혁명 20년≫(김일, 최현, 박성철, 오진우, 서철, 임춘추, 오백룡, 전문섭, 한익수, 박영순, 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해발을 따라

북만으로 떠나는 중대를 바래워주신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밀영병원에서 치료하고 있은 4사 1연대동무들의 생활을 다시금 세심히 보살펴주시고 그들이 하루속히 회복되어 전투대오에 서도록 따뜻이 격려해주신 다음 남은 성원들에게 출발명령을 내리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오를 이끄시고 무송지구에 있는 독립연대의 밀영으로 향하시었다. 독립연대는 새 사단의 기간으로 되어야 할 부대인만큼 그곳에 가서 사단을 편성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먼길을 걸어 무송지구에 들어서보니 있어야 할 독립연대는 그곳에 없었다.

독립연대는 배타주의자들에 의하여 자기의 활동지역에서 떠나 멀리 교하, 돈화 방면으로 이동되어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배타주의자들의 해독적 작용이 새 부대의 편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새 부대의 기간으로 되어야 할 독립연대가 없으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획하고 계시는 새 사단의 편성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 것도 없는 빈 터전우에서 새 부대의 편성이 가능하겠는가?

사실상 독립연대의 이동으로 새 사단 편성사업은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간으로 되는 부대도 없이 중대나 연대도 아니고 사단을 새로 꾸린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새 사단 편성을 위한 사업에 착수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통신원을 교하에 보내시어 독립연대가 나오도록 조치를 취하시는 한편 무송, 안도, 임강 일대에 산재하여있는 소부대들을 집결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벌여나가시었다.

무송지구에는 배타주의자들로부터 이러저러하게 압력을 받고 흩어져있는 소부대들과 개별적인 인원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지난날 모두 잘 싸우던 동무들이었으나 배타주의자들에게서 부당한 압력을 받고 부대에서 떨어져 소수인원으로 활동하고 있은 것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송지구에 나오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들은 기쁨에 넘쳐 사처에서 달려왔다.

이때의 그들의 감격과 격동된 심정을 이루다 표현할 수가 없다.

오직 위대한 수령님만을 믿고 그 어떤 어려운 처지에서도 그이의 전사된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일편단심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해 싸워온 그들이었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까이에 오셨다는 소식에 접하자 그들은 앞을 다투어 그이의 품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찾아온 것은 안도현 처창즈부근에서 활동하던 김택환소부대였다. . . .

김택환소부대 성원들가운데는 사민도 한사람 끼어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그 사람은 화룡현 어느 농촌마을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을 모아놓고 글을 가르치던 선생으로서 김택환소부대와 연계를 가지고 그들의 사업을 도와주던 중 사령부를 찾아 떠나는 그들을 따라왔다는 것이었다. . . .

이동백동무의 입대, 그것은 갈 길을 못찾고 동서남북으로 방황하는 이 나라의 뜻있는 모든 사람들을 한품에 안으시어 보람있는 투쟁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낙한 포옹력과 사랑 속에서 이루어진 한 혁명가의 뜻깊은 새 출발이었다.

이무렵에 이동학동무가 인솔하는 소부대도 찾아왔다.

이동학동무는 원래 용감한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역시 배타주의자들과 종파주의자들의 배척을 받고 임강일대에서 소부대로 활동하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송으로 나오시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이었다. . . .

새 사단 편성을 위한 사업은 이와 같이 흩어져있는 소부대들과 개별적인 인원들을 집결시키는 사업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곧 배타주의자들이 우리 혁명에 끼친 해독적인 후과를 청산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였다. . . .

새 사단을 편성하는 사업은 이와 같이 난관과 우여곡절들을 극복하는 투쟁속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통찰력과 거대한 포옹력, 불굴의 투지와 혁명적 전개력에 의하여 한걸음한걸음 추진되었다.

이무렵에 여대원들도 사령부를 찾아왔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1936년 4월 마의하부근의 깊은 수림속에서였다.

김정숙동지는 그때 마안산아동들의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소부대와 함께 마의하부근에서 전투를 하고 돌아오던 길에 때마침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신 통신원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소부대를 만난 사령부통신원은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동무들! 사령관동지께서 무송에 나오시었소! 사령관동지께서 동무들을 부르십니다.≫

삽시에 대원들속에서는 폭풍과 같은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얼마나 마음속으로 흠모하여마지않던 위대한 수령님이신가. 대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에 젖은 뺨을 비비며 감격에 휩싸였다.

김정숙동지는 억제할 수 없는 격정을 가까스로 누르며 통신원의 손을 붙잡고 간청하듯 물었다.

≪통신원동무! 말씀해주어요. 좀더 자세히 말씀해주어요. 사령관동지께서는 건강하십니까?

김정숙동지의 절절한 심정을 헤아린 듯 통신원도 뜨거운 마음을 안고 자세한 대답을 하였다.

김정숙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건강하시며 지금 마안산의 밀영지에서 동무들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너무도 기뻐 ≪고마와요. 고마와요!≫라고 되뇌이며 흐르는 눈물을 닦을 염도 잃었다.

비바람 세차도 눈보라 울부짖어도 북만의 거친 땅을 생각하며 언제 어데서나 원정의 길에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만을 바라온 김정숙동지!

처창즈에서 내도산으로, 내도산에서 마안산으로 20여명의 그 귀중한 아동단원들을 이끌고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하는 것 같은 죄송함을 금치 못해하며 그이께서 하루빨리 돌아오시어 따사로운 사랑의 손길로 돌봐주실 것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김정숙동지!

꿈속에서도 잊은 적 없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어 모두를 한품으로 부르신다니 김정숙동지의 그때의 그 벅찬 감격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었으랴!

한시바삐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기려는 소부대동무들은 걸음을 다그쳐 마침내 그이께서 계시는 밀영가까이에 이르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부대가 온다는 연락을 받으시자 친히 멀리까지 나오시어 그들을 기다리고 계시었다.

자식을 기다리는 어버이심정으로 멀리 마중까지 나오시어 자기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게 된 소부대성원들의 마음은 더욱 뜨거워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품에 안긴 대원들은 높뛰는 심정을 억제할 수 없어 흐느끼며 울었다.

김정숙동지의 양볼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삼도만의 수림속에서 경애하는 수령님을 만나뵈온 그때로부터 한해, 이 한해를 김정숙동지는 엄혹한 시련속에서, 피어린 투쟁속에서 보내었다.

그러나 처창즈의 시련의 나날에도 내도산에서의 격전의 나날에도 김정숙동지의 가슴에 불탄 것은 오직 한마음,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그이의 직접적인 가르치심을 받으며 그이의 영예로운 친위전사로 살며 싸우려는 그 결의가 아니었던가.

그처럼 마음속깊이 소중히 간직한 그 염원이 실현되었으니 김정숙동지가 어찌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처창즈유격구가 해산되면서 내도산을 거쳐 마안산에 와있던 박수완, 김수복, 최희숙동무를 비롯한 재봉대원들, 억울하게 ≪민생단≫혐의를 쓰고도 유격구가 해산될 때 적구로 가지 않고 내도산으로 들어갔던 후방부 여대원들, 유격구가 해산될 때 좌경분자들의 작간에 의하여 혼자 떨어지게 되었으나 낙심하지 않고 오직 사령부를 찾아 천여리길을 헤매어 다닌 김영희동무(지하공작할 때의 가명은 박록금), 지방부녀회사업을 하던 여동무들, 처창즈유격구에서 반일자위대원으로 있던 여성동무들도 모두 이무렵에 찾아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위대한 수령님께 새 사단에 편입시켜주실 것을 간청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직 혁명의 길에 끝까지 충실하기 위하여 불원천리하고 찾아온 그들의 뜨거운 심정과 강의한 의지를 높이 치하해주시고 직접 무장을 들고 싸우겠다는 그들의 열렬한 소망에 따라 모두 부대에 편입시켜주시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속 모여들고 보니 그 역량은 대단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하에 간 연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먼저 이들로써 새 사단의 첫 중대들을 조직하시었다.

이동학, 최처벌, 김택환동무들이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성대원들이 적지 않은 것을 고려하시어 그들만으로 한개 중대를 따로 조직하시었는데 이들이 그후 백발백중의 사격술로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유명한 여성중대였다.

무송일대에서의 대규모적인 군사작전

. . . 1936년 6월 어느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대내 지휘관들을 부르시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송일대의 산림지대를 장악하고 주로 분산배치되어 있는 놈들을 각개격파하고 우리를 찾아 헤매는 ≪토벌대≫놈들을 족침으로써 적들이 함부로 싸다니지 못하게 얽어매놓았다면 이제부터는 대규모적인 군사작전, 적극적인 공격전으로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무송일대에서의 대규모적인 군사작전은 백두산근거지창설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이 일대에서 대부대에 의한 적극적인 공격전으로 넘어가 적들을 완전히 피동에 빠뜨려놓아야 백두산근거지의 후방을 튼튼히 다질 수 있고 반일부대들의 사기를 더욱 북돋아줄수 있습니다. 또한 무송일대에서 대규모적인 군사작전을 벌려 적의 주목이 여기로 쏠리게 함으로써 장차 우리가 국경연안으로 진출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규모적인 군사작전, 적극적인 공격전으로 넘어가 적들을 완전히 피동에 몰아넣음으로써 백두산근거지창설을 위한 준비사업에서 결정적인 국면을 열어놓으시려는 것이었다.

이 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새로운 작전적 방침에 따라 진행한 전투들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은 서강전투와 무송현성전투였다.

서강은 무송에서 백두산쪽으로 100여리 들어가 있었다. 대산림속에 수백정보의 분지가 있었는데 밀경자들이 들어와서 땅을 일구어 인삼을 재배하면서부터 이곳 토질이 인삼재배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즈음에 와서는 큰 물주들이 모개돈을 들이밀어 인삼포를 경영하는 바람에 여기에 큰 마을이 생겨나고 수백수천명의 인삼재배노동자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또한 서강은 무송, 몽강의 원시림지대와 백두산대산림지대를 련결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지난 시기 이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반일부대들은 물론 아군부대들도 줄창 이리로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러기에 일제는 우리 부대의 군사정치활동을 막고 인민들과의 혈연적 연계를 끊으며 부근에 기지를 둔 우리 후방부대들과 반일부대들에 대한 ≪토벌≫을 강화하기 위하여 이곳에다 가장 악질적인 위만군 3연대를 상시적으로 주둔시키고 있었다.

이놈들은 당시 아군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의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었다. 더우기 장차 백두산대산림지대에 우리 근거지의 전방밀영망이 형성되면 이곳이 전방밀영들과 후방밀영들을 련결하는 기본통로로 되어야 하는 만큼 이놈들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제압해놓아야 하였다.

그러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강에 둥지를 틀고 있은 위만군 3연대를 중요한 공격대상의 하나로 정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전투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와 함께 반일부대들의 역량을 인입할 것을 계획하시고 통신원들을 띄워 그 부근에서 활동하고 있은 반일부대들을 부르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강전투의 승리를 공고히 하며 무송일대의 적들을 완전히 제압하시기 위하여 도처에서 적들에게 련속 심대한 군사적 타격을 가하시는 한편 무송현성에 대한 공격전투를 면밀히 준비하시었다.

무송현성은 백두산두리에서 가장 큰 현성으로서 주민이 약 3만명에 달하고 무력도 어느 현소재지보다 많이 배치되어 있는 적의 군사적 거점이었다.

여기에는 다까바시라는 놈이 지휘하는 일본군수비대, 위만군 경찰대, 자위단 등 방대한 무력이 집중되어있었다. 놈들은 현성에 중기와 경기, 박격포까지 배치하였으며 성벽도 견고하게 쌓고 현성뒤의 동산을 비롯하여 소남문과 성의 네귀에는 10개의 높다란 포대를 축성해놓고 있었다.

그런 것만큼 성시를 친다는 것은 사실상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송일대를 군사적으로 완전히 제압하고 반일부대들과의 연합전선을 더욱 공고히 하며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국경연안으로의 진출과 근거지창설을 위한 보다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자면 무송현성을 반드시 쳐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지하조직들을 통하여 무송과 송수진을 비롯한 그 일대의 적정을 구체적으로 장악하시었다. 그리고 친히 정찰조를 파견하시어 그것을 재확인하신데 기초하여 전투계획을 빈틈없이 짜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 전투에도 반일부대들을 참가시킬 것을 계획하시고 만순부대와 ≪문명군≫, 점산호 부대를 비롯한 반일부대들에 통신원을 띄우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부대들이 도착하자 곧 무송현성전투를 위한 작전계획을 발표하시었다.

작전계획에는 우선 적의 역량을 분산혼란시키며 대부대의 은밀한 접근과 공격의 불의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무송현성 남쪽으로 30리 떨어져있는 적의 ≪토벌≫거점인 송수진을 먼저 습격하며 임강, 안도, 몽강으로 통하는 길목들을 차단하여 적의 응원부대들이 무송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대들을 배치할 것이 예견되어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계획에 따라 탕하구자에 강력한 방어대가 배치되고 무송에서 몽강으로 통하는 도로와 무송에서 안도로 통하는 도로에도 방어대가 파견되었다.

그리고 무송현성진공을 하루 앞두고는 송수진의 적을 소멸하고 그곳을 장악하기 위하여 소부대가 떠나갔다.

이렇게 선발대들을 떠나보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6년 8월 16일 저녁 드디어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와 반일부대들을 인솔하시고 무송현성을 향하여 출발하시었다.

나(오백룡)는 그때 기관총수로서 이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다.

부대는 밤이 퍼그나 깊어서야 무송현성에서 얼마 멀지않은 절간에 이르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각 부대에 전투명령을 하달하시었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은 적의 방어종심인 동산포대를 점령한 다음 계속하여 소남문포대를 점령하고 성안으로 돌입하며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구분대는 반일부대의 일부와 함께 대남문을 돌파하고 성안으로 공격해 들어갈 임무를 받았다.

그리고 반일부대의 기본역량은 동문과 북문으로 성안에 돌입하게 되었다.

전투의 운명은 동산포대와 소남문포대를 점령하는가 못하는가 하는데 크게 달려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기관총도 바로 여기에 배치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투명령에 따라 부대는 은밀히 무송현성에 접근하여 성을 포위하였다.

우리가 동산에 도착한 것은 17일 새벽이었다. 그전날 밤에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소부대에 의하여 송수진이 점령되었다는 급보를 받은 무송의 적들은 제놈들의 본거지가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도 전혀 모르고 그쪽에다 응원부대를 보내고 있었다. 적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동성서격전술에 완전히 걸려들었던 것이다.

송수진으로 출동하는 적 응원부대놈들이 멀리 사라지자 성안은 다시 고요속에 잠기었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개시를 명령하시었다. 은밀히 동산포대밑에 접근해있던 우리는 순식간에 포대를 점령하고 소남문포대에로 향하였다.

적들은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습격해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미친듯이 총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포대로 돌입하는 동무들을 위하여 기관총으로 엄호사격을 하였다.

소남문포대밑에 바짝 접근한 아군은 적들이 파놓은 차단호의 벽에 의지하여 집중사격을 하고 연길폭탄을 던지였다.

바빠맞은 적들은 사방에서 박격포를 쏘고 중기를 휘두르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의 주공격방향인 소남문가까이에 지휘처를 옮기시었다.

우리는 적의 포대를 향하여 일체 화력을 집중하였다. 그런데 동쪽과 북쪽으로 공격해들어가던 반일부대들이 겁을 먹고 자의로 퇴각하는 바람에 적의 역량이 소남문쪽으로 쏠리여 놈들의 화력은 더욱 증강되었다.

박격포탄이 날아와서 터지고 중기가 위압적으로 짖어댔다.

맹렬한 사격전이 벌어지고 있은 가운데 날이 활짝 밝았다. 백주에 적들이 욱실거리는 성안으로 돌입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에 지나지 않으며 또 설사 성안에 들어간다 해도 시가전이 오래 계속되면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정황을 민속하게 판단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을 성밖으로 끌어내어 소멸할 것을 결심하시고 부대를 동산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리시었다.

우리들은 지형지물을 이용하면서 동산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적들은 우리가 힘이 약해서 밀린다고 생각했던지 일제히 성문을 열고 따라나왔다.

우리는 뒤따르는 놈들에게 명중탄을 안기면서 한걸음두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이 일대의 지형을 잘 알고 있은 적의 한 구분대는 우리를 따를 대신 우회하여 잘루목을 장악하려고 시도하였다. 만일 놈들이 잘루목을 먼저 차지한다면 아군은 퇴로를 차단당하고 포위될 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잘루목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울리더니 그리로 올라가던 놈들이 삼대쓰러지듯 연방 고꾸라졌다.

후에 안 일이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하여 이미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와 여대원들을 잘루목에 파견하시었던 것이다.

적들은 어떤 희생을 내더라도 잘루목을 장악하려고 발악적으로 공격해왔지만 김정숙동지는 여대원들과 함께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적들에게 계속 불벼락을 안기었다.

적아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김정숙동지는 질서정연하게 철수하고 있은 부대를 살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적탄이 비발치듯하는 대오의 후위에서 적들의 공격을 견제하시며 부대의 철수를 지휘하고 계시었다.

(사령관동지께서 부대를 이끄시고 고지에 오르실 때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잘루목을 굳건히 지켜내야 한다.)

김정숙동지는 몇번이고 이렇게 속다짐하며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기었다.

그사이에 아군주력은 아무런 손실도 없이 동산에 올라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

여대원들이 사격을 멈추고 우리의 엄호를 받으며 철수하자 적들은 다시 따라오기 시작하였다. 제딴에는 꾀를 쓰느라고 적들의 일부는 임강쪽으로 에돌아서 우리의 후면을 포위하려 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에도 적들의 기도를 앞질러 간파하시고 놈들을 역포위해 버리시었다. 그이께서는 반일부대의 일부역량으로 동산포대를 방어하게 하시고 아군의 주력을 신속히 이동시켜 동산포대의 북쪽고지와 남쪽고지를 차지하게 하시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사실 놈들은 독안에 든 쥐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적들은 동산포대를 탈환하기 위하여 박격포와 기관총의 엄호하에 총공격으로 이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조선인민혁명군의 일부 역량으로 동산포대에 기어오르는 놈들을 격퇴하고 반일부대들을 구출하도록 하시는 한편 보총집중사격으로 적박격포병들을 소멸하도록 하시었다.

적들의 첫 공격은 여지없이 분쇄되었다.

하지만 적들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악에 받친 일본군수비대놈들은 뒤따라오는 병력을 계속 이곳에 들이밀면서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마지막에는 비행기까지 띄우고 마구 폭탄을 던지며 필사적으로 발악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적들은 수많은 시체를 남겨놓고 골짜기로 밀려내려가군 하였다.

계속되는 전투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고 기진맥진한 놈들은 더는 공격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미 차지한 계선에서 물러서려고는 하지 않았다. 임강, 안도, 몽강 등지에서 증원부대가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전장을 살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의 이러한 기도를 예리하게 포착하시고 즉시 전부대에 반돌격명령을 내리시었다.

바로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대원들은 돌격나팔소리가 울리자 만세를 부르며 나는듯이 적진으로 돌입하였다. 여기저기서 적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대원들은 마지막발악을 하는 놈들을 골짜기에 몰아넣고 무자비하게 족치었다.

≪연길감옥≫이라는 별명과 ≪칠성대≫(나간권총)라는 별명을 함께 가진 김명주동무와 ≪여장군≫김확실동무는 좌충우돌하면서 적을 삼대 베듯 쓸어눕히었다.

특히 백발백중의 명사수인 김정숙동지는 적아간에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은 그 혼잡속에서도 적들을 골라가며 모조리 쏘아눕히었다. 김정숙동지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영낙없이 적병 한놈씩 고꾸라졌다.

참으로 김정숙동지는 이날 전투에서 무비의 영웅성과 희생성을 발휘하여 혁명의 사령부를 보위하고 부대의 전투승리를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날 적들은 관동군사령부의 지휘밑에 잘 훈련된 일본군≪정예≫부대와 비행기를 비롯한 중무기까지 동원하면서 발악하였지만 기울어진 대세를 수습할 수 없었다.

관동군사령부의 ≪토벌≫두목인 도죠놈에게 무송이 위기에 처했다는 보고가 들어간 것은 한창 격전이 벌어지고 있던 8월 17일 오전이었다.

수천명의 공산군이 무송을 포위공격하고 있는데 다까바시부대는 탄알이 떨어져서 운명이 경각에 다달았다는 부관놈의 보고를 받은 도죠는 너무도 강한 충격을 받아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시아를 제패하자는 대일본제국의 육군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 비로소 자기가 불패의 강적 과 맞서게 되었다는 것을 절망적으로 깨달은 도죠는 관하부대들에 긴급명령을 하달하였다.

전관동군내에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신경(장춘)비행장에서는 탄알과 폭탄을 만재한 군용기가 떠오르고 산성진, 통화, 환인, 사평가의 관동군부대가 급히 출동하였다.

장백에서 100여명의 경찰대, 임강에서 3개 중대, 몽강에서 2개 중대의 ≪토벌대≫가 무송으로 떠났으며 국내의 중강진 국경수비대에서도 80여명의 ≪토벌대≫가 편성되어 압록강을 건너 무송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 모든 수습대책도 전멸이 경각에 다달은 무송수비대를 건질 수는 없었다.

8월 17일 오후 적들이 무송으로 들이닥쳤을 때에는 동산 후미진 곳에 무수한 적의 시체가 나딩굴고 있었을 뿐 아군부대는 이미 승리의 개가 드높이 철수하였었다.

우리는 무송현성전투에서 커다란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정치군사적 타격을 가하고 조중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으며 아군의 국경연안으로의 진출에 유리한 국면을 열어놓게 되었다.

무송현성전투는 우선 관동군사령부의 우두머리놈들을 완전히 혼란에 빠뜨렸으며 일제의 어리석은 대륙정책에 커다란 위험을 주었다. . . .

무송현성전투의 승리는 특히 조선인민혁명군이 국경연안으로 진출하는데 유리한 정황을 조성해줄었다. . . .

무송현성전투의 승리는 또한 인민들과 지하조직원들에게 커다란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 . .

무송현성전투는 반일부대들과의 연합전선을 공고히 하는데서도 큰 의의가 있었다. . . .

국경연안에서의 대중정치사업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백두산으로의 자랑찬 행군길에 올랐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동강밀영을 떠나시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무송지구에서 적극적인 군사정치활동을 벌임으로써 이 일대의 적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밀영건설과 지하조직사업을 급속히 추진시킬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국경 가까이로 나갈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놓았습니다.

우리는 적들의 주목이 무송으로 쏠리고 있은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지체없이 장백으로 진출하여야 하며 적들을 계속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한편 대중적 지반을 축성하기 위한 사업을 더욱 힘있게 밀고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부대가 들리는 모든 마을들에서 대중정치사업을 활발히 벌여야 하겠습니다. 필요한곳에서는 며칠씩 묵으면서 선동연설도 하고 담화도 하고 연예공연도 하여 인민들을 각성시키고 투쟁에로 불러일으켜야 하겠습니다.≫

대중적 지반을 축성하는 문제는 백두산근거지창설을 위한 선결조건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송일대에서 적들을 제압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맹렬히 벌이시는 한편 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조직적으로 결속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시키시었다. 그리하여 도처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이 나오고 그것은 날을 따라 더욱 확대강화되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이미 구상하신대로 적들의 주목이 무송일대에 쏠리고 있는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한걸음 더 백두산가까이로 진출시키시어 대중적 지반을 축성하기 위한 사업을 보다 진공적으로 밀고나가시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이르는 곳마다에서 전부대가 달라붙어 대중정치사업을 활발히 벌이였다.

그중에서도 지양개마을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과 만강에서의 연예공연 그리고 대덕수마을에서의 군중대회는 우리들의 기억에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부대가 만강부락에 도착한 것은 1936년 8월하순 어느날 해질무렵이었다.

만강은 우리에게 있어서 생소한 고장이 아니었다. 그해봄 감자씨붙임이 한창일 때에 위대한수령님께서는 부대를 인솔하시고 이곳에 들리시어 적 경찰놈들을 완전히 제압해놓으시고 며칠간 묵으신 일이 있었다.

이런 마을에 우리 부대가 다시 들리었던 것만큼 인민들의 환영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번에 드시었던 촌장인 허씨의 집에 자리를 잡으시었다.

부대가 마을의 집집에 다 나뉘어들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대정치지도원이상 군정간부들을 부르시어 마을에서 정치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일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그이께서는 우리가 지난번에는 만강부락에 와서 신세만 지고 갔는데 이번에는 인민들속에 혁명사상을 깊이 심어주고 가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각계각층 군중속에서 어떤 내용을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정치사업을 하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부대에서는 마을사람들의 준비정도에 맞게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정치사업을 조직진행하였다.

우선 모든 대원들이 중대정치지도원들의 지도밑에 마을사람들의 일손을 도와주면서 그들에게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한조항한조항 해설해주었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여대원들은 마을 아낙네들과 처녀들에게 혁명가요를 가르쳐주고 그 내용을 해설해주면서 부녀해방에 대한 선전사업을 하였다.

하루일이 끝나고 저녁이 오면 마을여인들이 허씨집 마당에 모여 오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김정숙동지는 허물없이 그들속에 끼어 조용히 노래를 부르군 하였다.

권리를 박탈한 자본사회에

청춘의 붉은꽃 못피운 원한

아느냐 그대여 여성동무들


≪자, 우리 함께 부르자요. 제가 부르면 따라 부르세요.≫

김정숙동지가 다정히 말하며 한구절씩 부르면 모두들 따라 불렀다.

마을여인들은 이렇게 ≪여성해방가≫를 한구절한구절 따라 배우면서 그 뜻을 새기는 과정에 자기들의 무권리에 대하여 생각하였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있는 것처럼 일체 구별없는 인륜적 평등과 남녀평등권을 찾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치사업을 더욱 심화시키실 목적에서 친히 노래와 춤, 연극 등 소질이 있는 동무들을 부르시어 연예공연을 준비할 과업을 주시었으며 몸소 공연종목을 짜주시고 연습을 지도해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휴식도 잊으시고 연극조의 연습을 한계단 추켜세우신 다음에는 음악조의 연습을 몸소 지도하시면서 감정을 잡아주시고 화음을 맞춰주시었으며 이어 무용조의 연습도 보아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시를 쓰시고 곡을 지으시고 각본을 만드시었을 뿐 아니라 이렇게 우리들과 같이 밤을 세우시면서 공연준비를 지도하여주시었다.

이리하여 부대가 만강을 떠나기 전날 밤에 우리들은 마을사람들앞에서 훌륭한 연예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 .

음악, 무용에 뒤이어 연극≪한 자위단원의 운명≫에 무대에 올랐다.

비록 무대장치도 변변치 못하고 연기자들의 동작도 서투른데가 있었지만 연극은 그가 가지고 있은 심오한 사상과 예리한 극적 형상으로 하여 관중들의 심장을 완전히 틀어잡았다.

마을노인들은 자기자신의 피눈물로 얼룩진 생활을 생각하며 손에 땀을 쥐고 극에 나오는 노인과 함께 울었고 함께 격분하였다.

그것은 참으로 만강사람들자신의 생활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당시 괴뢰만주국기관의 공식발표에 의하더라도 무송현에 자위단원이 4,000여명이나 되었으니 청년치고 자위단에 안 끌려간 사람이 별로 없었으며 부모치고 아들을 빼앗기지 않은 사람이 거의나 없었다.

노인들은 포악한 왜놈의 구두발에 채워 딩굴면서 잡혀가는 아들을 목이 터지게 부르던 그 잊지 못할 일을 생각하고는 가슴을 치면서 자기자신의 신세를 통탄하고 일제를 저주하였다. . . .

연극이 마감에 이르고 흥분이 고조되자 마을사람들은 주먹을 틀어쥐며 저도 모르게 부르짖는 것이었다.

≪저런 죽일 놈들!≫

≪저놈을 그저… 저 쳐죽일 놈들을 가만둔단 말인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부대선동원들이 구호를 불렀다.

≪일제강도놈들을 타도하자!≫

이때 관중들속에서 두 청년이 무대로 뛰어나와 흥분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제놈들의 개노릇을 하는 자위단에 끌려가지 않겠습니다.

우리도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 바쳐 싸우겠습니다. 우리를 부대에 받아주십시오. …≫

뒤따라 여기저기서 청년들이 무대에 뛰어올라와 입대를 청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시면서 즉석에서 입대를 승낙하시었다.

관중들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오에 새로 들어서게 된 마을청년들을 축하하여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내었다.

연예공연은 끝났으나 마을사람들은 가슴속에 북받치는 감동을 억제하지 못하여 흩어질 줄 모르고 웅성거리었다.

우리 부대 여대원들이 마당 한가운데서 춤판을 벌이었다. 마을처녀들이 끼어들어 춤판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노래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돌아가는데 군중은 둘러서서 손벽장단을 치면서 흥에 겨워하였다.

한편 이날 밤 부대정치일군들은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만강에 머물러있는 며칠동안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핵심들을 장악하고 대중을 혁명조직에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이여 이미 만강을 비롯한 그 주변의 여러 마을들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을 꾸려놓았는데 부대가 떠난 다음 혁명조직들이 제발로 걸어나갈 수 있도록 모든 대책을 빈틈없이 세워주어야 했던 것이다.

만강의 밤하늘로는 삼태성이 기울 때까지 즐거운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고 여기저기 조용한 숲속에서는 부대정치일군들과 각 마을의 조직책임자들이 마주앉아 오손도손 이야기가 그칠줄을 몰랐다. . . .

전국도처에 뻗어가는 혁명조직

1937년초에 들어서면서 국내혁명운동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열어주신 휘황한 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였다.

지난 시기 국내공산주의운동에서 발로되었던 좌우경적 편향은 점차 극복되고 반일운동은 새로운 앙양의 길에 들어섰다.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은 백두산밀영으로는 갑산과 신파, 흥남과 함흥 그리고 청진과 경성, 명천, 길주, 성진, 단천, 북청, 흥원 등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새로운 소식들이 연이어 들어왔다.

국내소식에 접한 우리들(김일, 한익수)의 마음은 무척 흥분되었다.

더우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박달동무를 비롯한 민족해방동맹 성원들이 갑산일대에서 벌인 투쟁소식은 참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격동시켰다.

박달동무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갑산으로 돌아간 이후 갑산일대에서는 조국광복회 국내조직을 내오기 위한 투쟁이 활발히 벌어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받고 박달동무가 백두산밀영을 떠나 오풍동으로 돌아간 것은 1936년 12월말이었다.

그는 마을에 도착한 후 오풍동비밀연락장소에서 갑산공작위원회 성원들의 모임을 가지였다.

모임에서 먼저 박달동무가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광복구상과 그이의 말씀을 자세히 전달한 다음 그이께서 지시하신대로 갑산공작위원회를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개편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조선민족해방동맹은 우리 인민의 전설적 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는 조국광복회 국내조직의 하나로 되었다.

조선민족해장동맹은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투쟁강령으로 채택하였으며 기관지로서 ≪화전민≫을 발간하기로 하였다.

모임이 있은 후 민족해방동맹은 지난 시기 발로되었던 좌경적 편향들을 극복하고 종파분자들과의 투쟁을 강력히 벌이면서 갑산일대에서 자기의 하부조직을 정비확대하고 실천투쟁속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선진분자들로 대열을 늘이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같이 국내공산주의자들을 발동하여 국내깊이에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을 급속히 확대발전시켜나가시는 한편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몸소 키우신 우수한 정치공작원들을 수많이 국내각지로 파견하시어 조국광복회 운동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고 우수한 정치공작원들이 조국의 북부 풍산, 삼수로부터 다도해가 설레이는 조국의 남단 부산에 이르는 나라의 방방곡곡, 도시와 농어촌, 공장과 광산 지대에로 무수히 파견되어갔다.

극비밀리에 진행하는 사업이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시 국내에 파견한 정치공작원들의 활동을 다는 알 수 없으나 우리들이 알고 있은 것만 해도 신파일대의 지하사업은 경애하는 수령님의 충직한 혁명전사인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가 지도하였으며 삼수군과 성진방면에는 최경화동무가, 명천군방면에는 조동무가, 풍산군방면에는 이경윤동무가 각각 파견되어 조국광복회 국내조직을 내오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적들도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6년 10월 이후 간도성 장백현에 근거를 두고 있은 항일연군(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말함)에서는… 장백현 및 선내각지 특히 시국상 관계로 군사상 가장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흥남 기타에 다수의 정치공작원을 파견하여 군중단체 ≪조국광복회≫, ≪조선민족해방동맹≫, ≪반일회≫ 등을 조직하여 항일인민전선의 통일을 도모하며 또 그의 단원들 중 우수한 분자들을 선발하여… 세포를 조직하고 혹은 일조 유사시에 무장봉기, 후방교란의 전위적 실행기관인 생산유격대 조직에 노력하여왔다.≫

놈들자체가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국내도처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조국광복회 국내조직을 내오며 그 두리에 광범한 반일군중을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충직한 혁명전사인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가 신파를 중심으로 이 일대에서 벌린 투쟁은 실로 눈부신 것이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를 도천리-신파지구로 파견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었다.

≪도천리는 장백현 하강구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신파를 거쳐 국내깊이에 조국광복회 조직망를 확대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도천리-신파지구를 장악하고 그곳 인민들이 혁명투쟁에 한사람같이 일떠서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 지구가 혁명화되고 그곳에 강력한 지하조직망이 형성되면 우리는 그곳을 발판으로 하여 국내에 혁명적 지반을 급속히 확대해 나갈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것은 물론 매우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인민들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공산주의자의 고상한 품성으로 그들을 감화시키어 그들의 존경과 신임을 쟁취한다면 능히 이 중대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심장깊이 아로새긴 김정숙동지는 무산에서 살길을 찾아 오빠와 올케를 따라온 처녀로 가장하고 도천리의 중심부락인 학교촌에 자리를 잡았다.

김정숙동지는 도천리를 비롯한 요방자, 삼수골 일대의 지하사업을 지도하는 한편 국내 신파지구에서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을 튼튼히 꾸리고 그를 확대하기 위한 사업에 각별한 주목을 돌리었다.

김정숙동지는 우선 조직원들을 통하여 신파를 비롯한 국내형편을 구체적으로 요해하고 지하사업에서 단련된 핵심들과 국내에 친척, 친우 등 공작토대를 가지고 있은 동무들을 선발하여 신파와 그 주변일대에 파견하였다.

김정숙동지는 파견되는 조직원들을 면밀히 준비시키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조국광복회의 조직원칙과 그 운영방법 등 지하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충분히 습득시킨 다음에야 공작지로 파견하군하였다.

한편 김정숙동지는 신파지구지하조직과 직접 연계를 맺고 그들의 사업을 체계적으로 지도하였다.

당시 신파는 1,000여호나 되는 산간도시로서 적의 군사요충지였다.

적들은 신파거리에 내륙지대의 한개 군경찰서인원에 해당한 70여명의 경찰을 두었고 헌병대와 나남 19사단소속 국경수비대를 배치해놓고 있었다.

놈들은 압록강연선에 날새도 넘나들지 못하도록 삼엄한 경계망을 펴놓았는데 압록강을 건느는 유일한 수단인 한척의 나루배도 낮에만 경찰의 감시밑에 운행하게 하였고 밤이면 쇠를 잠그고 열쇠는 경찰이 보관하였다.

김정숙동지가 도천리에 내려온 며칠후였다. 김정숙동지가 신파에 건너가겠다고 하기에 지하조직에서는 국경경비가 삼엄하니 정황을 보아가며 천천히 가는 것이 어떤가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는 적들의 경비가 심한 곳이라고 하여 혁명임무를 미룬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럴수록 놈들의 소굴에 대담하게 들어가 활동해야 한다고 하면서 계획했던 대로 길을 떠났다.

그날 김정숙동지는 행상인으로 차린 한 지하공작원과 함께 신파로 건너갔다.

당시 조직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파지구 조국광복회 조직은 성원이 몇명 되지 않았고 조직성원들의 혁명열의는 높으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모든 사업이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 그곳에 건너간 김정숙동지는 장거리에서 얼른 일을 보고 조국광복회 신파지회의 비밀연락장소로 이용하는 석전양복점을 찾았다.

김정숙동지는 이곳에서 신파지하조직책임자를 만나 조국광복회 신파지회의 활동정형을 구체적으로 요해하고 나서 지하조직성원인 한 여인의 안내를 받아 신파에 둥지를 틀고 있은 적기관을 상세히 요해하였다.

신파일대에서 지하사업을 잘하자면 우선 적을 잘 알아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신파조직과 첫 연계를 맺은 김정숙동지는 적들이 눈에 쌍심지를 달고 단속하는 압록강나루터를 무수히 넘나들면서 조국광복회 신파지회사업을 지도하였다.

그는 석전양복점, 광선사진관, 샘물터국수집 등을 비밀장소로 정하고 그를 거점으로 이곳 조직원들과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그들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내놓으신 조국광복회 10대강령과 창립선언의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시키고 그 관철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였다.

여성의 몸으로 적들이 그물처럼 경비초소를 늘인 압록강을 수없이 넘나들면서 지하사업을 지도하는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의 대담하고 세련된 모습은 신파지구지하조직원들에게 투쟁의욕을 북돋아주었으며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안겨주었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의 지도밑에 신파지구지하조직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광복구상을 인민들속에 널리 해설선전하며 광범한 반일군중들을 조국광복회두리에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을 적극 밀고나갔다.

김정숙동지의 지도밑에 신파지구 조국광복회 조직에서는 악질면장과 악질경부보와 같은 자들을 몰아내는 투쟁의 앞장에서 잘 싸운 사기점주인을 비롯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반일군중을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는 사업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묶어세우고 조직적으로 결속하였다. 그리고 ≪친목회≫, ≪학우회≫, ≪상조회≫와 같은 합법적인 단체들을 뭇고 여기에 광범한 군중을 망라시켜 그들을 혁명적으로 단련하였다. 그 뿐 아니라 김정숙동지의 적극적인 지도밑에 조직에서는 혁명군부대에 보낼 원호물자들을 마련하고 적정을 탐지하며 실천투쟁속에서 단련된 우수한 청년들을 혁명군부대에 보내는 사업을 매우 활발히 벌였다.

드디어 신파조직은 인민들속에 튼튼히 뿌리를 박고 제발로 걸어나갈 수 있는 믿음직한 혁명조직으로 자라났다.

신파지구 뿐 아니라 이 시기 정치공작원들의 발길이 닿는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민족의 태양 김일성동지의 원대한 구상이 빛나게 실현되어 조국광복회 국내조직은 전국적 판도에 혈맥과도 같이 뻗어갔다. . . .

서강회의

. . . 다음날 부대는 지양개수림속에서 오중흡소부대를 만났다. 다시금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긴 소부대동무들은 기쁨의 눈물을 감추지 못해하였다.

≪수고들 했습니다. 부대와 떨어져서 활동하느라니 어려운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부대원들을 뜨겁게 포옹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오중흡중대장은 그간 소부대가 수행한 사업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상세히 보고드리었다.

지양개비밀장소에는 소부대동무들이 준비한 600여벌의 군복과 군모, 탄띠 그리고 행전까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지금 현대적인 군수공장들을 가지고 있은 우리에게는 그리 큰 것이 아니지만 당시의 형편에서 600여벌의 군복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눈덮인 산중에서 마련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소부대동무들과 그들을 도와준 장백인민들의 지성에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금할 수 없었다.

적들이 주민들의 일거일동에 눈을 밝히고 있던 당시의 형편에서 원군사업은 곧 목숨을 내거는 일이었다.

적들은 농민들의 호주머니속에서 담배종이를 발견해도 연락쪽지라고 트집을 걸었으며 고등어 한손을 들고 가도 헤집어보았고 성냥 두갑을 사가도 그중 한갑을 압수하였다.

그러나 장백사람들은 혁명군에서 군복을 만들 천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자 경비병놈들의 눈을 속이고 멀리 국내에까지 들어가 필요한 물자를 구해왔다.

도천리와 가재수, 신흥촌과 관도거리, 흥산, 19도구, 주경동, 약수동, 대사동, 평강덕, 요방자, 14도구, 신방자 등 지하조직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던 장백의 마을들에서는 짧은 기간에 실로 놀라운 수량의 원군물자를 마련하였다.

당시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가 사업한 도천리 한 마을에서만 하여도 국내작전을 전후한 시기에 수백메터의 광목과 수백켤레의 지하족을 구해왔다.

지금도 도천리주민들은 마을사람들을 이끌어 원군사업을 조직하였고 몸소 위험을 헤치며 각지 지하조직들을 지도한 김정숙동지의 투쟁모습에 대하여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정숙동지가 도천리에 내려간 것은 1937년 이른봄이었다.

동강에로의 행군과정에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도천리-신파 지구에 나가 지하조직들의 사업을 지도할 데 대한 임무를 받은 김정숙동지는 오중흡소부대와 함께 다시 되골령을 넘어 장백으로 나왔으며 곧 도천리로 내려갔다.

당시 도천리에는 조국광복회 지회가 있었으나 조직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그 활동이 활발하지 못했고 지하사업경험이 없는 지휘일군들은 적들의 감시와 밀정을 경계하던 나머지 광범한 군중을 조직에 인입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이지 못하고 있었다.

김정숙동지는 지회일군들에게 조직이 폐쇄되어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더 많은 군중을 쟁취함으로써 적들을 고립시키고 적과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쥐여야 한다고 가르치었다.

김정숙동지의 불굴의 혁명적 의지와 고상한 인민적 사업작풍, 세련된 군중공작방법은 도천리일대의 군중을 짧은 기간에 조직에 결속할 수 있게 하였으며 조국광복회 도천리지회로 하여금 사업을 폭넓게 능동적으로 벌여나갈 수 있게 하였다.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의 지도밑에 도천리지회일군들은 대담하게 적기관에 침투하여 놈들의 기밀을 탐지하였으며 적들로 하여금 어리석게도 도천리를 ≪양민촌≫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조직에 단합되자 밀정들은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고 밤이면 도천리는 완전히 우리 세상으로 되었다. 야학도 조직에서 운영하였고 구장은 물론 10가장들도 모두 조직원이었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역사적인 조국진군이 가까와오던 시기에 김정숙동지는 지하조직원들을 더욱 굳게 단합시키고 원군사업을 활발히 벌이도록 이끄는 한편 몸소 적의 군사요충지인 신파지구의 적 병력과 그 배치정형을 정찰하였다.

김정숙동지는 밤과 낮이 따로 없는 긴장한 나날을 보내었다. 어느날 밤이 늦어서 삼수골에 갔다오던 한 조직원은 길에서 신파에 갔다오는 김정숙동지를 만났다.

≪왜 이리 늦었습니까? 이렇게 혼자 밤길을 다니시면 위험합니다.≫라고 하면서 그는 김정숙동지와 함께 마을로 돌아오게 된 것을 다행하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김정숙동지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혼자 먼저 가세요. 나는 이 길로 천상수부락에 갔다가 내일 아침 돌아가겠어요.≫

천상수는 그곳에서 산속으로 30리를 더 가야 하는데 거기에 오중흡소부대가 임시거점을 정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조직원은 깜작 놀라며 ≪아직 저녁도 못자셨겠는데 어떻게 이제 그 먼데를 가십니까?! 더구나 천상수는 요방자를 지나가야 하는데 요방자에는 ≪토벌대≫가 주둔해있습니다. 이 깊은 밤에 가시면 위험합니다. 못가십니다.≫라고 한사코 만류하시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밥을 한두끼 굶는다고 일이 나겠나요? 그까짓 ≪토벌대≫야 조심히 살펴가면 되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김정숙동지는 그밤으로 30리 수림속 오솔길을 헤치고 천상수부락에 가서 소부대동무들을 만나 사업을 토의하고서야 돌아왔다. 어느날 저녁이었다. 때아닌 비가 쏟아지고 광풍이 불었다.

이날 밤 김정숙동지는 혁명조직을 내오기 위하여 남강성이라는 마을에 나가기로 되어있었다.

김정숙동지가 길떠날 차비를 하는 것을 본 도천리지회일군들은 이렇게 사나운 날씨에 어떻게 밤길 20리를 갔다오겠는가, 다음날 가도록 하라고 권고하였다.

지휘일군들의 권고에 김정숙동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산에서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며 이런 비를 한두번만 맞아보지 않았습니다. 이만한 비에 갈 길을 안가겠습니까?≫

밖에서는 계속 폭우가 쏟아지고 세찬 바람에 숲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김정숙동지는 문을 열고 잠시 생각에 잠겨 어두워지는 밖을 내다보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이밤도 폭우속에 대오를 이끄시고 험한 밀림을 헤치며 어려운 행군을 하실 지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비바람을 피해서 따뜻한 아래목에 앉아 편안한 밤을 보내겠습니까!

오늘은 남강성마을에 혁명조직을 내오는 기쁜 날이데 그곳 동지들이 우리를 얼마나 기다리겠습니까? 한시바삐 장군님께 새 혁명조직이 태어났다는 기쁜 소식을 보고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이 넘치는 이 말에 지회일군들은 가슴이 후더워져 더는 만류하지 못하고 그러면 누가 한사람 같이 가도록 하자고 제기하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는 그것도 마다하였다.

≪내가 혼자 가도 될 일인데 왜 다른 사람이 또 가겠습니까. 우리는 할 일이 많고 일손이 모자라는데…≫

끝내 김정숙동지는 혼자 비바람 사나운 밤길을 떠나갔다. 밤은 깊어가고 비바람이 멎지 않아 걱정하던 지회일군들은 김정숙동지를 기다리다 못해 영마루까지 마중을 나갔다.

그때 함빡 젖은 몸으로 영을 넘어오던 김정숙동지는 마중을 나온 사람들을 보자 웃으면서 ≪동무들은 나를 내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여기까지 마중을 나왔습니까? 나를 그렇게 약하게 보고서야 어떻게 함께 일을 하겠습니까?≫하고 나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나날에 적정에 대한 귀중한 정찰자료들과 원군물자들, 군복제작을 위한 물자들이 마련된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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