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18일

통일여명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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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여장군 김정숙동지 약력

 - 주체정치사전

통일여명 편집국 주해 6-2-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친위전사이시며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이시며 항일의 여성영웅. (1917 12 24 - 1949 9 22)

김정숙동지께서는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 오산덕에서 탄생하시어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의 영향을 받으시며 성장하시었다. 모진 가난으로 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일가와 함께 1922년 봄 두만강을 건느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연길현 북구에서, 1928년 봄부터는 8도구에서 약간 떨어진 서산리에서 생활을 하시었다. 이곳에서 일찍부터 독립군에 참가하시어 활동하신 아버님을 여의시었다. 1929년 6월 연길현 부암동 하촌마을로 이사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1930년 봄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정치공작원이 배워 주는 야학에 다니시며 혁명의 진리를 더욱 깊이 체득하시었으며 1931년 9월에는 청소년들의 혁명적인 반군사조직인 소년선봉대에 입대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진행된 1931년 추수투쟁과 1932년 춘황투쟁에 참가하시어 대오의 앞장에서 용감히 싸우시었으며 1932년 7월에는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에 가입하시어 조선혁명의 청년전위로서의 높은 영예를 지니고 활동하시었다. 1932년 7월 15일 일제침략자들의 ≪토벌≫에 어머님과 형님을 잃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이해 늦은 가을 유격구에 들어가시었으며 그후 8구공청위원회 위원, 8구아동단지도자의 중책을 지니시고 공청의 지도일군으로 활동하시었다. 1934년 가을부터는 공청 연길현위원회에 소환되시어 삼도만 능지영에서 생활하시면서 현내 각 구들의 공청사업과 아동단사업을 지도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35년 3월 삼도만유격구역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 뵈옵고 수령님께서 지도하시는 비서처일군들의 회의에 참가하는 영광을 지니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35년 9월 안도현 처창즈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시어 17살 여성의 몸으로 손에 총을 잡고 항일유격전에 나서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36년 4월 무송현 마안산지구에서 군복차림의 몸으로 경애하는 수령님을 또다시 만나 뵈옵고 귀중한 교시를 받으시었으며 이때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에서 친위전사로 활동하게 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처창즈전투(1935 10), 내도산전투(1936 11), 시난차전투(1936 7), 서강전투(1936 7), 무송현성전투(1936 8)을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시어 영웅적 위훈을 세우시었으며 특히 무송현성전투시기 동산의 잘룩목에서 불멸의 위훈을 남기신 때로부터 ≪항일의 여성영웅≫으로 더욱 명성을 날리시게 되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37년 1월 백두산밀영에서 공산당에 입당하시었으며 이해 봄부터 가을까지의 사이에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임무를 받으시고 장백현 도천리와 국내 신파지구에 나가시어 당조직과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강화하는 사업을 줄기차게 벌리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난의 행군≫시기 청봉밀영에서 혁명의 배신자 엄광호놈과 견결히 싸우시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철저히 옹호고수하시었으며 무산지구진공작전(1939)과 대부대선회작전(1939 - 1940) 등에 참가하시어 수령님의 노선과 방침을 철저히 옹호관철하고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인민들속에 널리 해설선전하는데서 남 다른 모범을 보이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세심한 관심을 돌리시었을 뿐 아니라 홍기하전투(1940 3), 대사하치기전투(1940 초여름)를 비롯한 전투마다에서 자신의 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시어 수령님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보위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적극 보좌해 드리기 위해 언제나 마음을 쓰시었으며 1940년 겨울에는 불의의 정황으로 하여 갑자기 행군하게 되자 방금 얼음구멍을 까고 빨래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젖은 옷을 자신의 가슴에 품어 말리워 수령님께 드리고 1941년 봄에는 자신의 탐스러운 머리채를 자르시어 적구로 떠나시는 수령님의 신발에 깔아 드리는 충성심을 발휘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부대활동시기에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준비있게 맞이하기 위한 정치군사활동에 적극 참가하시었으며 특히 1941년 여름부터 사격훈련, 통신훈련, 스키훈련, 도강훈련, 낙하훈련 등 각종 훈련에서 뛰어난 기질을 보여 주시었다. 1944년 3월 8일에 있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대규모 사격경기에서 단연 1등을 차지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41년 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예를 지니시었으며 수령님께서는 이 사진뒤면에 친필로 ≪타향에서 봄을 맞으면서 1941. 3. 1≫라고 쓰시었다.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이 이룩된 후 우리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백두밀림에서 싸우신 김정숙동지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새길신문≫은 ≪여사의 반생≫, ≪독립과 해방을 위해 여성의 몸으로 반생을 투쟁, 따르자, 이 희생정신을!≫ 등의 제목으로 김정숙동지의 혁명업적을 널리 소개하였다. 광복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새 조국 건설방침을 받들고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 드리는 사업에 자신의 힘과 지혜를 다 바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45년 11월부터 근 1개월에 걸쳐 함경북도 선봉군과 청진시 일대에서 여러 부문 사업을 지도하시었으며 그후에도 평양시를 비롯한 여러 곳의 공장, 기업소와 농촌과 어촌 등을 찾으시어 인민들로 하여금 새 조국 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위훈을 세우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성들의 정치조직인 여성동맹을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의 앞장에서 투쟁하시었으며 여성들이 새 조국 건설에서 한몫을 담당하여 수행하도록 교양하는 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숭고한 혁명적 의리를 지니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 혁명가유자녀들을 혁명의 대를 이어 나갈 혁명투사로 키우기 위한 사업에 모든 정열을 쏟아 부으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제분을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 나가도록 사랑의 한품에 안아 키워 오시었다. 실로 김정숙동지의 생애는 오로지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오신 영광으로 빛나는 불멸의 생애였다. 오늘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의 혁명정신과 혁명업적을 길이 전하며 따라 배우려는 우리 인민들의 염원을 반영하여 회령과 신파땅(양강도 김정숙김정숙읍)에 김정숙동지의 동상이, 평양시 대성산의 혁명열사릉에는 반신상이 모셔져 있으며 회령혁명사적지와 신파혁명사적지, ≪김정숙동지혁명사적관≫(회령)과 ≪신파혁명사적관≫ 등이 꾸려져 있고 김정숙동지의 혁명업적이 깃들어 있는 곳들에 혁명사적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1981년 8월부터 양강도 신파군이 김정숙군으로, 신파읍이 김정숙읍으로, 양강도 혜산제2사범대학이 김정숙사범대학으로, 양강도 신파여자고등중학교가 김정숙여자고등중학교로 불리워지고 있다. 또한 도서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여사≫(조선노동당출판사, 1979년 발행),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정숙동지를 회상하여≫ 항일무장투쟁시기≫(조선노동당출판사, 1982년 발행),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정숙동지를 회상하여≫ 해방후시기≫(조선노동당출판사, 1982년 발행)을 비롯하여 김정숙동지의 혁명활동을 수록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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