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16일

통일여명 편집국

 

 

조선의 해

 ≪조선의 해≫

통일여명 편집국 6-1-44

 

차 례

 

1. 김정일열풍이 인 해

 

2. 김정일정치로 승리한 해

 

1. 김정일열풍이 인 해

2000년 6월 13일 평양공항에서 남과 북의 정상들이 두 손을 맞잡는 순간 수십억의 세계인이 환호를 터쳤다. 분단 55년만에 처음으로 되는 남북정상들의 만남이라는 의미와 함께 김정일장군의 모습이 가져다주는 충격이 참으로 신선하고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환하게 웃으시는 보조개 패인 모습, 시원시원한 걸음, 우렁우렁한 목소리,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이를 데 없이 활달하신 몸가짐 등 그분의 모습은 경이를 넘어 신적인 경지의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듣던 것과는 천지차이어서 혼란을 느꼈다≫, ≪첫눈에 위대한 분이시라는 것이 느껴 왔다≫ 등 세계는 김정일장군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남의 언론사장단 접견, 푸틴러시아대통령과 강택민총서기와의 상봉, 울브라이트미국무장관 접견 등 세계앞에 보여주신 김정일장군의 모습은 국제사회를 일대 파문으로 몰아 갔고 수십억 세계인의 심장을 사로잡았다. 김정일열풍이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김정일장군은 ≪소탈하시고 솔직하면서도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을 지니신 분≫, ≪순간적인 재치가 번뜩이고 결단력이 빠르신 분≫, ≪일단 옳다고 생각하시면 끝까지 추진하시는 분≫, ≪따뜻하고 자상하신 인간애를 지니신 분≫, ≪민족을 사랑하시는 분≫, ≪아는 것이 많으신 분≫ 등 실로 이 세상에 존재한 수많은 위인들에 대한 칭송을 다 합쳐도 모자랄 격찬의 칭송이 쏟아 졌고 적 아 구별없이 마술에라도 걸린 듯 김정일장군께 매혹되어 버렸다. . . . 그러면 어떻게 되어 김정일장군에 대한 매혹붐, 김정일열풍이 그처럼 강렬하게 일어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 이남과 서방세계에 사는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서 단번에 그들의 심장을 사로잡을 수 있은 것은 그분이 정치가나 지도자이기 전에 인간중의 인간, 위인중의 위인의 모습으로 비쳐 졌기 때문이었다. 그분의 따뜻한 미소,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듯한 시선, 하나의 손세, 한마디의 육성에서조차 짙게 깔려 있는 인간사랑의 섬세함, 따뜻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분의 체취는 온통 사랑으로 다듬어 지고 사랑으로 넘쳐나는 아름다움이련 듯 싶었다. . . . 그러면 여기서 왜 이미 전에 김정일열풍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2000년 6월의 김정일열풍의 요인이 이남민중과 서방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위인중의 위인으로서의 김정일장군의 활력에 넘친 모습을 가감없이 직접적으로 감각한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까지는 이러한 직접적 감각이 차단되어 이루어지지 못한데 근본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 오래전부터 김일성주석을 보좌하시어 이북을 영도하여 오신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 . 이미 오래전부터 이북민중은 그분의 위인상에 감복되어 김정일장군을 자기들의 영도자로 높이 모셔 왔다. 김일성주석께서 뜻밖에 서거하신 이후 김정일장군께서는 집중되는 세계의 이목앞에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는 지론으로 오직 김일성주석의 영생과 이북사회주의의 옹호고수,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는 전선시찰길을 이어 가시며 바쁜 시간을 보내시었다. 그분께서 비록 국제정치무대에 나서시는 것을 마다하시었다고 하더라도 위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위인의 모습으로 비쳐지기 마련이다. . . . 해빛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고 어둠이 영원할 수 없듯이 위인을 갈망하고 그 위인께 심장을 바쳐 받들고 따르고 싶어하는 민중의 심리를 영원히 강압적으로 가로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2000년 세계를 휩쓴 김정일열풍이 바로 이러한 역사의 법칙의 반증이기도 하다. 2000년 김정일열풍을 논함에 있어서 꼬집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김정일장군의 위대성이 이남과 세계민중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가로막고 그분의 위인상을 왜곡하는데 열을 올려 온 ≪반공≫언론들이 김정일열풍의 매개자로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남의 KBS나 ≪조선일보≫, 미국의 ≪워싱톤 포스트≫나 ≪뉴욕 타임스≫, 일본의 ≪산께이신붕≫등 이전에는 이북에 대한 악선전으로 이름을 떨쳤던 ≪반공≫나팔수들이 2000년에 와서 김정일장군의 영상으로 자기들의 지면을 채우고 그분의 위인상선전에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김정일위원장은 열심히 일하고 지능지수가 높으며 독서량도 많은 것으로 알려 졌다. 또 세계문제에도 정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위원장이 외부세계를 방문한 것은 이전 동유럽권이지만 서방세계에 대해서도 잘 안다. 서방의 정보, 언론내용을 빨리 파악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정일위원장은 이념정립, 정치술 등 여러 면에서 응용력이 뛰어난 지도자이다. 김정일위원장이 즐겨 쓰는 습관적인 어투는 인민들이 뭐라고 하겠소이며 호칭으로는 총비서, 국방위원장, 최고사령관이라는 직책보다는 ≪장군님≫으로 불리워 진다≫, ≪그간 북에 대한 편견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김정일국방위원장에 관한 것이었다. 김정일위원장은 소탈한 웃음과 재치와 유모아감각이 있었고 주변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분단 55년만에 남북 수뇌가 만난 역사적 현장을 목격한 것은 한마디로 엄청난 감격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끊어진 국토와 민족의 피줄을 잇는 초석이 된 사건이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다. 그렇게 유쾌하고 솔직한 분인줄을 정말 몰랐다. 김정일위원장 대단히 활달하고 소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남의 말을 경청하는 훌륭한 분≫, ≪인간적으로는 굉장히 평범하시면서도 정치가로서는 굉장히 능력 있고 비범한 지도자≫, ≪천하를 얻고 천하를 움직이시는 멋진 지도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실용주의적이고 결단력이 뛰어나신 지도자≫ - 이것이 ≪반공≫언론들이 김정일장군을 칭송하여 소개한 내용의 일부이다. . . . 이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인 동시에 김정일장군의 위인상에 대한 고차원적인 인정이고 그분의 위대성에 대한 완전승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 . 김정일열풍은 세계를 대거 각성시켰다. 오늘날 세계에는 수많은 지도자들이 존재하며 그들은 감언이설과 국민을 기만하는 공약, 순간적인 제스츄어로 민중을 기만하는 정치를 펴고 있다. 세계의 수억만 민중이 그들이 펴 나가는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를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 . . . 이런 오염된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새 세상 해맞이와도 같은 김정일장군과의 만남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그분의 위인상은 그들에게 ≪아, 저런 분이 계셨구나. 저런 분을 지도자로 모신다면 우리의 삶과 미래는 얼마나 풍요해 질 것인가!≫, ≪저런 위대한 분이 펼치는 정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과 희망을 갖게 했으며 더 나아가 김정일장군께 자기들의 운명, 세계의 미래를 맡겨야겠다는 확신을 자리 잡게 한 것이다. 김정일열풍은 또한 반세기에 걸친 ≪반공≫의 장막에 파렬구를 내고 세계의 정치기류를 일신시켰다. . . . 김정일열풍은 반세기동안 굳어 질대로 굳어진 ≪반공≫의 장막을 무력화시키고 ≪반공≫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키며 세계를 휩쓸었고 세상사람들에게 김정일장군께서 공산주의자이시다면 김정일장군의 사회주의사상은 진정한 사회주의이념이고 위대한 사상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 . . 이처럼 세계를 대거 각성시키고 ≪반공≫의 장막에 파렬구를 내며 세계정치기상도를 변화시킨 김정일열풍은 다름 아닌 백두산의 열풍이다. 그것을 말해 주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2000년 3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사나운 백두의 눈보라를 헤치시며 백두산에 오르시었다고 한다. 그분께서는 한라산까지 끝없이 뻗어 간 산줄기들을 굽어보기도 하시고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백두의 해돋이를 부감하기도 하시면서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이 해를 20세기를 성공적으로 종결 지을 해, 21세기의 리정표의 해로 되게 할 대담하고 통이 큰 작전적 구상을 무르익히시었다. . . . 김정일장군의 이날의 구상과 결단에 의해 2000년의 세계적 사변들이 속출하고 그것은 김정일열풍의 급류가 되어 세계를 휩쓴 것이다. 요컨대 김정일열풍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백두산이라는 사실이다. 2000년의 김정일열풍이 그처럼 강렬한 것은 백두산의 눈보라에서 연원된 때문이며 2000년 김정일열풍이 그렇듯 뜨거운 것은 백두산의 해돋이에서 연원된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참으로 김정일장군의 존함과 영상으로 세계를 꽉 채웠던 2000년, 온 세계가 김정일장군을 향해 해 솟는 바다처럼 설레였던 2000년은 백두산에 진원을 둔 김정일열풍이 세계를 휩쓴 김정일장군의 해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2. 김정일정치로 승리한 해

. . . 2000년이 다 지나간 오늘의 시점에서 일종의 시합이기도 한 이 실력전을 두고 세계는 하나와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00년은 김정일정치가 승리한 해였다.≫고. . . . 즉 한 민족에게 한해가 영광과 승리를 가져다주는 해가 되어 역사에 길이 남는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 해가 되느냐는 그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의 정치실력과 민중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위대한 민중적 영도자를 수령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민중은 한해를 승리와 영광의 해로 세계사에 기록되게 할 것이요, 그렇지 못한 민중은 수치와 패배의 해로 민족사를 얼룩지게 할 것임은 당연한 리치이다. 실례로 구쏘련이 붕괴되고 사회주의의 기발이 내리어진 1991년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서 인간적인 삶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고통과 슬픔, 민족분쟁의 화근을 가져다 준 수난의 해였다. 하지만 이북에서는 김정일장군께서 역작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의 발표로 세계앞에 주체사회주의의 필승불패성과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다시금 엄숙히 선언하시고 이북민중모두가 수령의 사회주의사상을 신념으로 더욱 깊이 간직하고 사회주의붉은기를 더욱 높이 휘날리며 사회주의의 길로 더욱 힘차게 전진함으로써 사회주의 승리의 이정표가 더욱 뚜렷이 세워진 해로 되었다. . . . 2000년은 김정일장군의 대담하고 통이 큰 구상과 결단에 따라 세계를 놀래운 대사변으로 이어졌으며 김정일정치가 최대의 위력을 나타냄으로써 세계를 석권한 해로 특징지어 졌다. 돌이켜 보건대 2000년은 김정일장군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김정일정치로 빛나게 장식된 뜻깊은 해였다. . . . 김정일정치로 우리 민족은 세계정상에 우뚝 올라섰고 21세기의 중심으로 자리매김되었다. 2000년에 이같은 대행운을 가져다 준 김정일정치는 자주와 총대를 요체로 하는 자주정치, 선군정치로 집약된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어 어떤 환경과 역경속에서도 남을 쳐다보지 않고 오직 제 힘으로, 자기 식대로 혁명과 건설을 해나가는 것이 김정일정치이며 총대로 자기의 사상정신적, 물질문화적 재부를 완벽하게 보위하고 총대를 앞세워 혁명과 건설을 밀고 나가는 것김정일정치이다.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는 김일성주석께서 혁명과 건설을 영도해 오시면서 구현하신 선군혁명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김일성주석서거이후 제국주의고립압살책동을 짓부시고 이북민중을 강성대국건설에로 힘있게 추동하고 있는 만능의 보검이다.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는 군사를 선행시키고 군대를 혁명의 기둥, 나라의 주력군으로 내세워 혁명과 건설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으로서 제국주의자들의 힘에는 힘, 고립압살책동에는 강력한 혁명적 전략으로 맞받아 나가게 하는 위력한 정치이며 가장 자주적인 정치이다. 다시 말하여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는 자주정치, 총대중시의 사상에 바탕한 정치사상, 완성된 사회주의정치방식이다. . . . 2000년은 무엇보다도 김정일정치로 장장 반세기여에 걸치는 북미대결에서 이북의 승리가 확정된 해이다. 2000년 10월 12일자로 발표된 북미공동콤뮤니케는 지금까지의 북미협상의 최대결과물로서 총체적으로 이북의 승리를 확실시해 준 역사적 문서로 평가되고 있다. 이 북미공동콤뮤니케의 골자는 ① 자주권 호상존중, 내정불간섭 ② 휴전협정, 평화체제 전환노력 ③ 미사일회담 땐 시험발사중지 ④ 테러반대 국제노력 지지 ⑤ 경제무역전문가들 상호방문이며 미합중국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울브라이트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 . . 그러던 미국이 공동콤뮤니케 첫번째 조항에서 ≪쌍방은 두 나라사이의 관계가 자주권에 대한 호상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에 기초하여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하면서≫라고 맹약함으로써 지나온 저들의 과거를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담보를 이북에 준 것이다. 두번째 조항인 휴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제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키자는 내용 역시 이북이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대미압박카드로써 이북의 승리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결국 미국은 가장 원칙적이며 중요한 문제에서 이북에 승복함으로써 1993년 6월 11일자 뉴욕북미공동선언, 1994년 10월 21일자 제네바북미기본합의문과 클린톤 전 대통령의 담보서한에 이어 북미대결에서의 저들의 패배를 완전인정한 것이다. 북미공동콤뮤니케에서 미국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약속한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북과 미국은 국제법상으로 보면 현재 전쟁중에 있는 교전대방이다. . . .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은 그자체가 북미대결에서 미국의 패배를 확인시켜 준 또 하나의 증거이다. . . . 이렇게 적대적 관계로 대립되어 오던 이북에 미국이 국가관리로서는 처음으로 울브라이트국무장관을 보낸 것 자체가 북미대결에서 종지부를 찍고 화해협력으로 동반자관계를 이루어 가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북미대결에서의 패배를 인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 . . 더 흥미 있는 것은 알브라이트국무장관이 평양방문기간 초기의 마음다짐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는 김정일장군을 만나뵙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실용주의적이며 결단력이 뛰어나신 분≫이며 대단히 ≪정중한 분≫이라고 칭송했으며 김정일정치의 대화폭이라 할 수 있는 조선로동당창건 55돌경축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관람하고는 ≪대단히 웅장하고 경이적인 공연≫이며 ≪세계가 다 보아야 할≫ 최고걸작품이라고 아낌없는 칭송을 하였다. . . . 그러면 왜 미국은 북미공동콤뮤니케를 통해 북미대결에서 이북에 승복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그것은 미국이 장장 반세기가 넘는 북미대결에서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세기여에 걸치는 이북과의 대결전에서 최선을 다해 왔다. 군사적 위협과 경제제재도 해봤고 부르조아사상의 자유화바람을 불어넣기 위한데도 매달렸고 감람나무가지와 달라주머니를 흔들며 이북을 회유기만하려고도 해보았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먹혀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북은 더욱 공고화되고 일심단결되었다. 최근 몇해동안 이북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다시없을 기회로 삼아 경제봉쇄와 제재로 고립압살시키려는 비열한 수법도 써봤지만 이북은 온갖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강성대국건설의 대문을 열어 젖혔다. 미국은 이북에서 일어 나는 경이적인 기적의 배경에 놓여진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의 위력을 깨닫게 된 것이며 그 위력앞에는 승자가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 . . 2000년은 김정일정치에 의해 반세기를 넘는 분단역사에 파열구가 뚫려지고 민족통일의 새로운 지평이 열려진 해이다. 분단이후 처음으로 되는 남북정상들의 평양상봉과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의 발표, 그 이후 진행된 이산가족들의 상봉과 이남의 언론사대표단과 백두산관광단의 이북방문 등 활발하게 벌어진 남북접촉과 교류로 2000년은 우리 민족의 통일열기로 뜨겁게 달아 오른 한해였다. . . . 2000년은 바로 자주원칙의 고수를 우리 민족앞에, 세계앞에 다짐함으로써 자주적 통일의 이정표를 마련한 역사적 해였다. 역사적인 평양상봉의 결과물로 발표된 6.15남북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첫 조항에 새겨넣은 데 그 중대한 의미가 담겨 져 있다. . . . 결국 6.15남북공동선언은 이북의 자주사상, 구체적으로는 김정일정치의 승리로 된다. . . . 미국은 김대중의 평양상봉전에 셔먼미국무성 자문관을 서울에 급파하여 주≪한≫미군철 수 등 통일문제에서 이북의 자주론을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에서 제외시키고 대신 이북의 핵, 미싸일문제를 상정시키라고 이남당국에 압력을 가하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에서 자기들의 요구는 무시된 반면에 이북의 자주통일원칙이 대문짝만하게 공포되자 미국은 주≪한≫미군철수문제를 비롯한 반미투쟁의 가속화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저들의 영향력감소 등을 우려하고 있다. . . . 김정일정치는 6.15남북공동선언의 성공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연이어 펼쳐진 남북사이의 접촉과 교류에서도 이북의 강세를 추동하였다. 김정일장군의 초청으로 평양에 간 이남의 대규모언론사장단은 김정일장군의 접견을 받고 자기 비판과 객관보도 등 이례적인 태도변화를 보임으로써 ≪김정일장군에 의해 길들여진 이남언론사≫라는 외신의 평가를 받는가 하면 여러 방북팀의 백두산참관이 이남과 세계에 생중계됨으로써 김정일장군의 백두밀영생가, 김일성주석을 위시한 항일투사들의 체취가 어려 있는 혁명전적지, 사적지가 역사상 처음으로 화면을 통해 이남민중들에게 가감없이 공개선전되었다. 그리고 백두산관광단의 백두산관광과 묘향산관광이 실현됨으로서 특정인의 범위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접 이북의 환경보호시책과 인민적 정책 등 민중중심의 이북정치, 김정일정치를 육안으로 유감없이 살펴보게 되었으며 그것은 자그마한 돌 하나가 온 호수가에 물결을 일으키듯 이제 기하급수적으로 이남민중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 . . 2000년은 김정일정치에 의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의 대결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떨친 해였다. 2000년 1월 이탈리아가 이북과 공식외교관계를 설정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에스파니아, 캐나다, 네델란드, 독일, 벨기에, 룩셈부르그, 그리이스, 브라질 등 여러 자본주의나라들이 이북을 공식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설정하였다. 세계가 북행길에 들어선 것이다. 소식통들은 이것을 자본주의세계에 부는 ≪이북과의 수교붐≫, 유럽나라들의 이북 수교도미노현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 . . 그러나 오늘 세계는 평양으로 통하고 있으며 지구는 조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세계속에 조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있는 곳에 세계가 있는 것이다. . . . 푸틴러시아대통령의 지난해 7월 평양방문도 특기할 역사적 사변으로 평가된다. 러시아의 이전 대통령들은 물론 이전 쏘련시기의 국가수반들도 아직까지 이북을 찾아간 적 없는 조건에서 푸틴러시아대통령이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것은 사회주의붕괴, 자본주의복귀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맛을 다같이 체험한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강력한 러시아건설≫을 목표로 내세우고 매진하고 있는 푸틴대통령에게 있어서 제국주의자들의 봉쇄와 고립압살책동을 짓부시고 사회주의길로 꿋꿋이 나아가는 이북은 주목되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 . . 이북방문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역대 러시아대통령들이 조선을 방문하지 않은 것은 커다란 정책적 오류였다.≫, ≪세기교체기에 진행된 나의 조선방문은 매우 중요하고도 귀중한 것으로 된다.≫고 한 푸틴대통령의 발언에서 그것을 감지하게 된다. 푸틴러시아대통령은 ≪강력한 러시아건설을 위해서 강력한 군대건설이 필수적이다.≫고 주장하면서 강력한 러시아군대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이전 쏘련국가의 곡을 러시아의 국가곡으로 제정하고 러시아국기와 국장들에 사회주의쏘련시기의 붉은색을 두드러지게 새겨 넣었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의 수렁에 빠져들어가 강대국들의 농락의 대상으로 되어 있던 러시아는 푸틴러시아통령에 의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 . 2000년을 빛나게 장식한 비전향장기수 북송 역시 이북의 승리, 사회주의승리의 역사적 사변의 하나이다. . . . 세계를 경탄과 환희로 몰고 갔던 조선로동당창건 55돌경축10.10행사는 명실공히 주체사회주의의 승리의 대축전으로서 김정일장군치하의 사회주의이북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읽게 해주는 김정일정치의 역사적 화폭이다. 미국의 CNN과 이남의 SBS로 생중계되어 이남과 세계의 수억만 민중에게 유감없이 전달된 군중시위 및 열병식, 홰불행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등 10.10경축행사들은 그처럼 어려웠던 지난 6년간의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한 이북민중의 승리자의 노래였으며 김정일장군만 계시면 그 어떤 시련도 다 이겨내고 사회주의의 승리를 떨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앞에 시위한 일심단결의 대축전, 사회주의승리의 대축전이었던 것이다. . . . 그러면 2000년이 김정일열풍이 휘몰아 치고 김정일정치가 승리한 조선의 해로 될 수 있은 바탕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 . . 김정일장군은 높은 정치실력으로 그러한 특유의 정치현실을 창조하신다는 것이 집약된 답변이 된다. . . . 김정일장군의 정치실력에서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것은 무비의 정치적 결단성이다. . . . 김정일장군의 정치적 결단성은 90년대 사회주의 수호전에서 여실히 발휘된바 있다. 그분께서는 ≪나는 정세가 아무리 준엄하여도 비관에 빠지지 않으며 어렵고 복잡한 때일 수록 모든 일을 웃으며 낙관적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겹쌓일 수록 그것을 맞받아 나가는 것이 나의 의지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 혁명앞에 첨예한 정세가 조성될 때마다 심사숙고하면서 맞받아 나가는 전술로 제국주의자들을 제압하고 난국을 타개하는 것은 김정일장군의 영도방법론이다. . . . 김정일장군의 영도의 갈피에는 시련의 고비들이 수없이 많았어도 그러한 오류는 단 한건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90년대의 북미대결의 역사적 장들마다에는 김정일장군의 정치적 결단의 자국자국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1993년 3월 준전시상태선포와 핵확산금지조약에서의 탈퇴선언, 대국상이후 선군정치에로의 진입, ≪광명성1호≫발사, 중요 계기마다에서의 고압적 자세의 담화, 성명, 선언의 발표… 정치지도자는 적절한 시기에 대담하게 용단을 내릴 줄도 알아야 하지만 일단 내린 용단은 끝까지 굽히지 않고 관철시켜 나가는 단호성, 강의성이 있어야 한다. . . . 그분의 단호한 용단들은 이북민중에게는 승리의 자신감과 멸적의 용기를 주는 승전나팔로 되었으며 제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에게는 무서운 폭탄선언으로 되었다. . . . 김정일장군의 정치실력에서 중요한 것은 또한 세련된 정치수완의 발현이다. . . . 전민의 마음을 속속들이 헤아려 보시는 예리한 정치적 안광, 당과 국가의 크고작은 모든 문제들을 철두철미 민중의 의사와 이익에 맞게 처이해 나가시는 투철한 민중성, 사상문화 수단들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대중의 심장에 불을 지피시는 특이한 묘술 등 그분께서 지니신 정치적 수완은 세계정치사에 전무후무한 것이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창조된 강계정신과 성강의 봉화, 당, 군민의 일심단결, 혁명적 군인정신의 창조김정일장군의 정치적 수완의 창조물은 이북사회의 면면들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김정일장군의 높은 정치실력은 영활무쌍한 정치지략에서도 그대로 발현된다. . . . 그분께서는 정세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정확한 판단력을 지니시고 영활무쌍한 지략으로 제국주의연합세력과 그 추종자들을 쥐락펴락하시며 주체혁명의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시고 복잡다단한 세계정치를 주도하신다. . . . 19세기는 영국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질서가 세워 졌던 ≪영국의 시대≫였다고도 한다. 그런데 19세기 말 영국중심의 세계질서는 미국에 의해 이미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영국식민주의자들을 누르고 영국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20세기를 ≪미국중심의 세계≫로 뒤바꾸어 놓았다. 미국은 20세기에 세계제왕노릇을 하면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악의 산실 ≪판도라의 상자≫역을 하였다. 20세기 미국은 지구촌의 온갖 화근의 진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희극인지 비극인지 20세기말인 오늘에 이르러 이 같은 ≪미국중심의 세계질서≫가 다름 아닌 이북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 . . 2000년 김정일열풍, 김정일정치의 승리는 21세기가 이북중심의 세기가 될 것임을 보여 주는 확실한 징조이다. . . . 그런 시각에서 보아 21세기는 시대사상의 체현자이시며 민족과 인류의 자주적 운명개척의 영수이신 김정일장군에 의해 주도되는 김정일세기로 될 것임이 분명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결국 ≪21세기는 태평양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 예언자들의 주장은 경제적 측면에 머물러진 고찰의 시각을 세계정치전반에 대한 분석으로 확대시키는 교정을 가할 때 정확한 것으로 될 것이다. 2000년은 20세기를 빛나게 결산화하고 21세기의 미래를 약속해 준 해 - 김정일정치의 위력을 과시한 조선의 해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This counter provided for free from HTMLcounter.com! copyleft © 통일여명 편집국
이 문서는 Internet Explorer v5.0을 기준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