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9일

통일여명 편집국

 

 

문무충효겸전의 천출위인

 - 21세기 태양찬가 3

통일여명 편집국 6-1-37

 

차 례

김일성주석께서 김정일영도자의 위대성에 대하여 하신 말

비범한 예지의 철인 / 철의 신념의 정치가 / 다문박식의 천재

창조형의 지도자 / 희세의 천출명장 / 고매한 인덕의 대성인

충효의 귀감 / 도덕의리의 화신 / 조국애, 민족애의 최고체현자

인간중의 위대한 인간

 

김일성주석께서 김정일영도자의 위대성에 대하여 하신 말씀

김정일동지는 문무충효를 겸비한 참다운 인민의 영도자입니다. 그는 탁월한 사상이론가, 정치가이고 군사전략가이며 조국과 인민에게 무한히 충실하고 효성이 지극한 충신, 효자의 귀감입니다.≫(≪김일성저작집≫ 44권)

김정일동지는 희세의 철학가입니다.≫(≪김정일위인상≫ 1)

≪당중앙위원회 김정일조직비서만큼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은 아마 드물 것입니다. 그가 한번 먹은 마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의 신념은 끄떡없습니다.≫(≪김정일위인상≫ 2)

김정일조직비서는 고난을 웃음으로 이기는 백두의 영장입니다. 장군의 위엄은 고난극복과정에 돋보이게 됩니다. 고난을 이기는 장군이라야 진짜 장군입니다. 김정일조직비서는 고난이 클수록 높은 사명감을 백배로 가다듬고 강적과 싸워이길 멸적의 보검을 더욱 높이 추켜 들고 나아갑니다.≫(≪김정일위인상≫ 2)

김정일동지는 천재중의 천재입니다. 그는 모든 분야에 능통한 인류역사가 낳은 위인들중의 위인입니다. 한 인간이 모든 지성과 재능을 최고봉의 경지에서 겸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김정일동지를 전설적인 위인이라고 합니다.≫(≪김정일위인실록≫ 1)

김정일동지는 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다운 불굴의 의지와 담력, 뛰어난 지략과 영군술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에 우리 혁명무력의 끊임없는 강화발전과 백전백승의 담보가 있습니다.≫ (≪김정일위인실록≫ 1)

≪당중앙위원회 김정일조직비서는 의리도 깊습니다. 그는 한번 뜻을 나누고 손을 잡은 사람은 끝까지 책임지는 특유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김정일위인상≫ 2)

김정일동지는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충실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다 맡아보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밤잠을 자지 않고 일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김일성저작집≫ 41권)

≪세상사람들이 김정일동지에 대하여 열정의 인간, 열정의 화신이라고 칭송하는 데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김정일위인상≫ 2)

김정일조직비서는 한없이 겸손하고 허심합니다.≫(≪김정일위인실록≫ 1)

김정일영도자는 문무충효를 겸전하신 천출위인이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지(智), 인(仁), 용(勇)을 위인의 풍격으로 일컬어왔다. . . . 김정일영도자는 지, 인, 용을 겸전한 희세의 위인이시다. 영도자님은 ≪문≫에서 예지의 철인, 신념의 정치가, 다문박식의 천재, 창조형의 지도자이시며 ≪무≫에서 천출명장이시며 ≪인≫에서 인덕의 대성인, 충효의 귀감, 도덕의리의 화신, 조국애, 민족애의 최고체현자, 인간중의 위대한 인간이시다. . . . 그러기에 김일성주석께서는 늘 김정일영도자를 문무재덕을 겸전하신 천출위인으로 칭송하고 내세우시었으며 송시에서 ≪문무충효 겸비하니 모두다 우러르네≫라고 격조높이 노래하시었던 것이다.

비범한 예지의 철인

김정일영도자의 철학가적 위상에 대해 김일성주석께서는 이렇게 밝히시었다. ≪김정일조직비서는 학창시절부터 남달리 철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깊이 사색하고 탐구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의 특징은 철학적 조예가 매우 깊은 것입니다. 하기에 오늘 김정일조직비서는 현시대에서 단연 으뜸가는 정치철학을 가진 철학가로 되었습니다.≫(≪김정일위인상≫ 1) . . . 역사에는 이름을 남긴 철학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어느 철학가도 김정일영도자와는 견줄 수 없다. 김정일영도자는 인류사상사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철학사상인 주체철학을 완전정통하신 사상이론의 대가이시기 때문이다. . . . 사람위주의 철학인 주체철학을 창시하신 분은 김일성주석이시며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발전풍부화하신 분김정일영도자이시다. . . . 영도자님의 철학적, 사상이론적 예지는 비범한 탐구력과 특출한 사색력, 천리형안의 통찰력과 명철한 분석판단력, 뛰어난 저술력에서 극명하게 표출된다. . . . 영도자님께서 만권장서로 집필발표하신 저서들에 정치와 경제, 사상과 문화, 군사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는 물론이고 자연과학과 기술공학의 제 분야에서 제기되는 이론실천적 문제들까지 완벽하게 해명되고 있는 것은 그분의 탐구와 사색의 대상이 얼마나 광범위한 것인가를 실감하게 한다. 영도자님의 탐구와 사색은 다면적일 뿐 아니라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다. 영도자님께서는 일찍이 ≪나는 사색을 게을리하는 사람과 남의 이론을 본따는 사람을 제일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며 자기 머리로 새롭게 착상하고 전개하는 사람을 특별히 일러줍니다. 나는 언제나 탐구는 진지하게 하고 사색은 창조적으로 할 것을 주장합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 . . 그분께서는 그 어떤 문제에 대하시든지 언제나 기성의 이론이나 관념에 구애되지 않으시고 자신의 독자적인 주견과 혁신적인 안목으로 깊이 파고 들어 비교, 분석, 종합, 추리해 나가신다. . . . 영도자님의 사상이론활동에 의해 오랫동안 정설로만 인정되어오던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들과 기성견해들의 제한성이 밝혀지고 시대의 앞길을 밝혀주는 사상이론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그분의 탐구와 사색의 독창성과 창조성을 웅변해 주고 있다. 실례로 영도자님께서 일찍이 대학시절에 민족의 징표가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에서 말하는 언어, 지역, 경제생활의 공통성과 문화생활의 공통성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성격의 공통성이 아니라 핏줄과 언어, 지역의 공통성이며 이 가운데서도 핏줄과 언어의 공통성이 기본이라고 정의하신 것은 주체적 민족관의 확립과 민족문제해결에서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이론적 발견이다. 또한 사상의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상론, 수령은 개인이 아니라 민중의 최고뇌수라는 수령의 본의에 대한 새로운 해명에 기초하여 전개된 수령론, 혁명의 주체는 수령·당·대중의 통일체라는 원리, 문학예술작품의 핵을 이루는 종자론을 비롯하여 영도자님께서 창출하신 주체의 원리와 이론들은 어느 것이나 다 지금까지 누구도 제기하지 못했던 새롭고 독창적인 원리이고 이론이다. 김정일영도자의 탐구와 사색은 또한 초인적인 정력의 탐구와 사색이라는 데 그 비범성과 위대성이 있다. . . . 그분께서는 새로운 것을 탐구, 사색하실 때는 순간의 휴식도 없이 거기에 심혼을 쏟아 부으시며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실 정도로 무아경에 깊이 잠기신다. . . . 김정일영도자는 천리형안의 통찰력과 분석판단력, 선견지명을 지니고 계시는 탁월한 철인, 위인이시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일꾼이나 민중들을 만나 담화를 하시면서 그들의 얼굴표정만 보고도 그들의 마음 속을 다 알아내는 특이한 관찰력을 지니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또한 복잡한 정세를 순식간에 식별하는 정확하고 기발한 판단력을 지니고 계신다. . . . 그분께서 18살의 나이에 사대주의적 사관에 의해 깊숙이 위장되어 있던 천여년전의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의 허상을 주체의 형안으로 꿰뚫어보시고 그것이 신라가 외세인 당군(唐軍)을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사대배족행위이며 2백여년동안 발해, 신라의 남북조시대를 초래한 민족분열행위였음을 신랄히 논증하신 것은 그분의 식견과 통찰력, 분석판단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절감케 하는 사변적 발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 . 1980년대 중엽 어느날 영도자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이전 소련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현상을 두고 지금 소련의 궤도는 수정주의 궤도이다, 소련이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2~3년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소련의 맥을 짚어보면 말기증상이다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는 특출한 저술력을 지니고 계시는 위대한 철학가, 사상이론가이시다. . . . 영도자님의 천재적인 저술능력은 대학 재학기간에 1천 5백여건, 당무를 보시는 기간인 1964년 6월부터 1994년 6월까지의 30년간에 8백 90여건의 저작들을 집필발표하신 데서 능히 알 수 있다. 이것은 한해에 근 30건, 매달 2. 5건에 가까운 저작들을 내놓으신 것으로 된다. . . . 김정일영도자의 저술은 그 양에서 방대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철두철미 주체의 안목으로 시대와 역사, 민족과 사회가 제기하는 제 문제들에 새롭고 독창적이고 완벽한 해답을 주고 있으며 천금같은 명제와 명언들로 엮어져 있으며 논리가 철학적이고 체계가 정연하며 민중적인 문풍으로 알기 쉽고 설득력 있게 서술되어 있다. 하기에 김일성주석께서는 나는 조직비서의 논문이나 연설, 담화 같은 것을 거의 다 읽어보는 데 그의 이론에서는 항상 새것을 도출하는 독창성이 마음에 들며 시대적 요구에 대답을 주는 시대성이 좋다, 조직비서가 내놓은 이론은 깊이가 있고 체계정연하며 논리가 심오하다, 이것은 그의 이론의 특성이기도 하다, 두뇌가 명석하고 깊은 이론과 철의 논리를 가진 사람은 훌륭한 명작을 내놓는다고 그분의 저술능력을 높이 평가하시었다. 영도자님의 탁월한 저술능력은 거대한 사상을 최대로 집약하고 함축하여 서술하시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 . . 그것은 레닌의 사상을 종합집대성한 스탈린의 저서 ≪레닌주의 제 문제≫가 무려 246페이지에 달하지만 영도자님께서 김일성주석의 주체사상을 종합집대성한 고전적 노작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불과 86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다는 한가지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김정일영도자의 저작들은 거기에 담겨진 사상이론의 독창성과 심오성, 서술의 논리성과 명료성, 함축성과 평이성으로 하여 그것이 발표되자마자 전세계를 풍미하고 만인의 격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계의 진보세력이 영도자님의 저작을 자주시대의 ≪횃불≫, ≪기치≫, ≪지침≫, ≪교과서≫로 극구 칭송하면서 거기에서 역사의 진리와 시대의 진로를 찾고 자주를 지향하며 자주화의 불길을 높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 . . 실로 김정일영도자는 위대한 사상이론활동으로 역사와 시대의 전도를 휘황히 밝혀주시고 인류사상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쌓아올리시는 비범한 예지의 철인, 사상이론가이시다.

철의 신념의 정치가

김정일영도자는 오늘 세계의 이목을 한몸에 지니고 계시는 세계정치계의 거성이시며 위대한 정치가이시다. . . . 세계가 우러르는 위대한 정치가로서의 김정일영도자의 풍모적 특징은 그분께서 이 세상 어느 정치인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철의 신념과 불굴의 의지, 숭고한 낙천성을 지니고 계시는 것이다. 김정일영도자는 비범한 철의 신념과 의지를 지니신 특출한 혁명가, 정치가이시다. . . . 혁명가의 신념은 혁명의 승리만을 굳게 믿는 마음이며 의지는 혁명의 목적을 끝까지 실현해 나가는 정신력이다. 그러므로 혁명가의 신념과 의지의 숭고성은 무엇보다도 아무리 시련과 난관이 간고하여도 혁명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는 견결성에서 표출된다. 김정일영도자께서는 혁명의 앞길에 시련과 난관이 중중첩첩 가로놓이고 원수들이 아무리 위협공갈한다고 하여도 혁명의 붉은기를 절대로 내리우지 않으며 원수들에게 사소한 양보도 하지 않으신다. . . .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이 일시에 무너지고 이 나라들에서 붉은기가 내려지는 역사적 이변이 일어났다. 이에 기고만장한 서방은 그 어떤 정치적 파동과 이상기류 속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이북을 고립압살하고 이 사회주의 보루에서 붉은기를 마저 내리워보려고 위협과 제재의 봉쇄망을 초강도로 조여들었다. 엎친데덮친다고 이북은 몇해째 연이은 자연재해로 심각한 경제적 난관을 겪게 되었다. 이 최악의 역경과 엄혹한 시련 속에서 이북이 계속 사회주의의 길로 나갈 것인가 주저앉을 것인가, 붉은기를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 세계의 이목은 이북에 집중되고 이북의 정세추이는 세계정치의 초점으로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 그에 대한 대답이기라도 한듯 이북의 하늘에서는 ≪높이 들자 붉은기≫라는 노래가 온 누리에 장엄히 울려 퍼졌다. ≪백두의 성스런 붉은 깃발엔 수령님의 한생이 어리어 있다 높이 들자 붉은기 맹세로 불타라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 역사의 준령을 헤쳐 넘으며 승리만을 기폭에 새기어 왔다 높이 들자 붉은기 신념의 이 깃발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이 노래는 자신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이 노래는 김정일영도자께서 주체사회주의를 끝까지 고수하기 위하여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드셨음을 온 세상에 알리는 역사의 메아리였으며 이북의 변화에 대해 망상하는 자들에게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는 영도자님의 철의 신념의 준엄한 선고였다. . . . 엄혹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혁명의 길에서 한걸음 물러서면 귀를 잘리우고 두걸음 물러서면 손을 잘리우게 된다고 하시면서 토스레옷을 입고 풀죽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굴함없이 사회주의의 기치, 혁명의 붉은기를 끝까지 고수하여야 한다, 우리는 최악의 경우에는 백두산에 들어가 혁명을 다시 시작해서라도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지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김정일영도자의 결심이고 의지였다. 영도자님께서는 이런 불변의 신념, 불퇴전의 의지를 지니고 계시기에 준엄한 시련의 시기에 동요하고 혁명을 배반하는 변절자, 배신자들을 증오하시며 민중들을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변심, 변절을 모르는 신념의 강자, 의지의 강자로 키우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 지니고 계시는 신념과 의지는 혁명의 길이 아무리 험난하여도 굴함이 없이 분기하여 그것을 뚫고 돌진해 나가는 견인불발의 신념이며 의지이다. . . . 김정일영도자는 시련과 난관을 참고 견디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맞받아 나가 뚫고 과감하게 전진하여야 한다는 투지와 공격정신을 지니고 계시는 견결한 혁명가, 정치가이시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시련과 난관이 아무리 엄혹하여도 그것을 남에게 의존해서가 아니라 자체의 힘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는 강인한 신념과 의지를 지니고 계신다.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 자 이 세상에 없다≫, ≪무엇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조선말이 아니다≫, 이것이 김정일영도자의 신조이며 투지이다. 영도자님께서 1998년 1월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자강도땅의 혹한 속에서 얼어드는 손발을 부비시며 6일간에 6천리길을 달리시며 그곳 사람들이 새로 일떠 세운 중소형발전소들의 실태와 효과성을 확인하시고 온 나라에 자력갱생의 혁명정신, ≪강계정신≫의 불길을 지펴주신 것은 전민이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자체의 힘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경제적 난국을 뚫고 나가도록 하시기 위해서였다. 남들 같으면 열백번도 더 주저앉았을 그 모진 시련과 난관 속에서도 이북민중들이 용기백배, 결사분발하여 5년간의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을 승리적으로 단행하고 오늘은 강성대국건설의 희망봉을 향하여 준마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것김정일영도자의 불굴의 의지와 신념이 낳은 위대한 결실인 것이다. . . . 김정일영도자는 낙천성을 최상의 경지에서 체현하신 위대한 혁명가, 정치가이시다. . . . 혁명가는 낙관주의 정신을 가져야 그 어떤 시련과 난관 속에서도 왕성한 투지와 패기와 정열에 넘쳐 혁명을 해나갈수 있다. 김정일영도자는 가장 숭고한 낙천성을 지니시고 약동하는 생활과 투쟁기풍으로 혁명에 끊임없는 활력을 주시는 위대한 낙천가이시다. . . . 지구가 깨어지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든든한 뱃심과 낭만을 지니고 계시는 영도자님께서는 그 어떤 천지풍파 속에서도 비관과 절망을 모르고 승리를 확신하시며 아무리 큰 시련과 고난도 웃음으로 이겨 나가신다. 방북자들의 말에 의하면 평양과 지방의 곳곳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누가 최후에 웃는가를 보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는 슬로건이 눈에 안겨와 가슴을 끓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고 한다. . . . 그분께서는 인민군대와 공장, 기업소를 현지지도하실 때면 중대병사들과 인민군 군인가족들, 공장예술소조원들의 소박한 예술공연까지 보아주신다. 1998년 1월 분과 초를 쪼개시며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끝마치신 영도자님께서는 방대한 일감이 기다리는 평양으로 빨리 올라가시려던 일정을 미루시고 도의 예술공연을 보아주시었다. 그분께서 혁명을 위하여 한없이 귀중한 시간을 내시어 도안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지도해주신 것만도 고마운 데 또다시 바쁘신 시간을 내시어 예술공연까지 보아주시니 도당의 책임일꾼은 기쁨에 앞서 송구스러운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영도자님께서는 이런 그를 정답게 바라보시면서 내가 오늘 왜 바쁜 시간임에도 예술공연을 보려고 하는지 아는가고 물으시었다. 그러시고는 혁명가들은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생활을 낙천적으로, 정서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심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었다. . . . 그분께서는 계속하여 우리 일꾼들이 준엄한 강행군을 한다고 하여 일만 일이라고 냅다 밀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자신께서 오늘 긴장한 일정이지만 도의 예술공연을 보기로 하였다고 말씀하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는 숭고한 인생관을 지니시고 약동하는 기백으로 미래를 앞당겨 나가신다. 혁명가의 낙관주의는 미래에 대한 열렬한 지향이고 사랑이다. 혁명은 오늘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이다. 영도자님께서는 어느날 일꾼들에게 혁명가들에게 있어서는 오늘보다도 내일을 위하여 살며 투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 이것이 나의 인생관입니다 라고 감명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자기 대에는 비록 낙을 보지 못하더라도 조국의 앞날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하여 한목숨 바칠 각오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이렇듯 숭고한 인생관을 지니신 영도자님께서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구월산과 칠보산, 정방산을 민중의 유원지로 더 잘 꾸리고 국토관리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도록 하시며 찬란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난과 시련을 과감히 뚫고 나가도록 민중들을 이끌어주고 계신다. . . . 이렇듯 김정일영도자는 이 세상의 어느 혁명가, 정치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범한 철의 신념과 불굴의 의지, 숭고한 낙천성을 천품으로 지니시고 광란하는 역풍과 엄혹한 간난신고를 한몸으로 막으시며 주체혁명위업, 사회주의 위업을 전진과 승리의 한길로 줄기차게 이끌어 나가시는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정치가이신 것이다.

다문박식의 천재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인다.≫ 이것은 김정일영도자의 명언이다. 이 명언은 사람의 인식활동에서 지식의 역할을 밝힌 금언이다. . . . 그러나 김정일영도자는 모든 분야, 모든 부문에 걸치는 한없이 넓은 식견과 헤아릴 수 없이 심오하고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계시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며 천재중의 천재이시다. 영도자님께서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를 비롯하여 혁명과 건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과 철학, 정치경제학, 역사, 수학, 물리, 화학, 생물학 등 과학기술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견문을 지니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음악예술분야에서만도 우리 나라에서 창작된 모든 노래들은 물론 동서고금의 음악이론들과 명곡들에 대하여 완전히 정통하고 계시며 최첨단기술인 프로그램기술도 정통하시고 필요한 때에는 자신께서 직접 컴퓨터를 조종하시면서 일꾼들에게 가르치심을 주신다. 영도자님께서는 외국의 정치, 경제 제도와 실태는 물론 역사와 지리, 문화, 생활풍속에 이르기까지 자상히 알고 계신다. 어느날 영도자님께서는 새로 제작한 영화를 보시다가 한 장면에 나오는 노래를 들으시고 노래가 왜 인도네시아의 ≪싸리난데≫와 같은가고 물으시었다. 커다란 충격을 받은 작곡가는 음악자료실에 달려가 ≪싸리난데≫의 노래를 들어보았는 데 첫시작 선율이 그가 지은 노래의 첫시작 선율과 신통히도 같았다. 또한 한 외교관이 한동안 외국에 가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가 그 나라의 지리, 역사, 풍속, 습관 등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것을 요해하시고 영도자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그 나라의 지형과 기후조건, 생산물과 그 가공처리 등 구체적인 데까지 가르쳐주시고 외래침략자들의 발밑에 짓밟혀 허덕이며 살아온 그 나라 민중들의 생활과 그 불행한 생활이 낳은 생활풍속들과 종교유습을 하나하나 일러주시었다. 그분께서 얼마나 넓고도 깊은 지식을 소유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은 1983년에 진행된 중국방문시에 여러 부문의 공장, 기업소들을 참관하시면서 기술적 문제들에 대하여 가르쳐주시고 잘못 통역된 내용을 고쳐주기도 하시고 통역원들도 통역하기 어려워하는 무장장비와 함선들에 대하여 자신께서 몸소 설명해 주기까지 하신 데서 잘 알 수 있다. 그러한 사실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도 김정일영도자께서 국제공산주의 운동과 세계의 정치, 군사, 경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높은 식견을 지니고 계신다며 탄복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 . . 영도자님께서 유년시절부터 매우 영리하고 지혜로우셨다는 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선천적으로 총명하고 영특하다고 하여 곧 대성(大成)하는 것은 아니다. 천부적인 예지를 초인적인 노력으로 수련하고 탁마하여야 지성의 정상에 오를 수도 있고 천재도 되는 것이다. 김정일영도자는 천재의 소지위에 초인적인 비상한 학구로 인류지성의 최정상에 오르신 독학가이시다. 한 심리학자는 건전한 판단력이 구비된 20살 전후부터 60살까지를 독서기간으로 잡을 때 세계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의 기록이 3천권 안팎이라고 했다. 그런데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이미 중학시절에 읽으신 책만 하여도 무려 3천여권에 달한다고 하니 그분께서 일찍부터 학문탐구를 위해 얼마나 정력을 쏟아 부으셨는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 영도자님께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당무를 보시는 다망한 속에서도 학구를 중단하지 않으셨으며 수많은 책들을 탐독하시었다. 백사분망하신 영도자님께서는 독서의 때와 장소가 따로 없으시었다. 그분의 독서장소는 집무실과 저택, 현지지도로 오가실 때의 승용차와 열차칸이었으며 심지어 식사를 하실 때나 복도를 오가실 때에도 독서를 하시었다. . . . 다망하신 집무에 언제나 바쁘시건만 그분께서는 시간을 입체적으로 이용하고 놀라운 독서속도를 창조하시어 최단시간내에 최대한의 독서를 하신다.

어느날 한 단위에 대한 현지지도를 떠나신 영도자님께서는 승용차안에서 귀에 꽂은 리시버로 장편소설을 들으시면서 다른 편으로는 정치도서를 읽으셨으며 돌아오실 때는 녹음기로 노래를 들으시면서 ≪반뒤링론≫을 읽으시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시간이용에서 한시간을 두시간으로, 하루를 이틀로 이용하시는 것이었다. 영도자님께서는 또한 글을 한꺼번에 석줄, 넉줄씩 보시어 시간을 최대한으로 단축하신다. . . . 이런 놀라운 독서속도를 지니신 분이시기에 영도자님께서는 어느날 오전 한나절에 빅토르 유고의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과 스탈린의 저서 ≪소련에서의 사회주의 경제 제 문제≫를 다 읽으셨다 한다. 김정일영도자께서 다문박식하신 것은 이런 초인적인 정력의 독학에 그분의 비상한 기억력이 안배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 . . 그분께서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동지가 많고 벗이 많으신 분이시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잠깐 만났던 사람들, 역사에 있었던 크고작은 정치적 사변들과 자그마한 사실들에 대해서도 다 기억하고 계신다. . . . 1986년 말에 있었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12차전원회의때에 김일성주석께서 1976년부터 해마다 벌여온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에 동원된 미군수에 대하여 물으신 적이 있었다. 누구도 그에 대하여 똑똑히 기억하지 못했던탓에 일어설 엄두를 못냈다. 그때 김정일영도자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주석님께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정확히 보고드리었다. 모두가 그분의 비상한 기억력에 경탄해마지 않는 데 주석님께서는 ≪김정일조직비서의 ≪지식창고≫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고양이 뿔≫과 관련한 자료도 있을는지 모르겠소.≫라고 농담섞인 말씀을 하시며 유쾌하게 웃으시었다. 또 언제인가는 우리 나라 말로 번역되지 않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를 형상한 어느 한 나라의 영화를 보시고나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때의 사망자와 부상자, 참전국과 그 주민수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 그렇듯 초인적인 정력적 학구로 인류가 쌓아 올린 지성세계를 독파하시는 이유가 있다. 영도자님께서 일꾼들에게 하신 다음의 말씀이 이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동무들도 대학공부를 하고 사회과학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알겠지만 학구의 목표는 한 인간의 이상과 사회 앞에 지닌 사명에 관계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놓고볼 때 나의 이상과 사명은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충실히 계승하고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훌륭히 계승하고 완성하려면 사상이론적으로, 실무적으로 철저히 준비되어야 합니다. …… 시대는 멀리 전진하였습니다.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상과 이론으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인류가 이룩한 모든 사상이론적 재부를 독파하고 공산주의건설의 새로운 경지를 끊임없이 개척하는 것을 학구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 . . 정녕 김정일영도자는 비상한 학구와 탐구로 인류지성의 정상에 오르시어 세상만사를 한눈에 헤아리시고 정치를 성공에로 이끌어 나가시는 스승중의 스승, 천재중의 천재이시며 다문박식의 위대한 정치지도자이시다.

창조형의 지도자

언제인가 어느 한 나라의 대통령이 김일성주석과 함께 평양의 거리들을 돌아보면서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도 들려보고 서해갑문과 상원시멘트연합기업소도 돌아보고나서 몹시 흥분하여 주석님께 조선에는 유명한 창조의 영수가 계신다고 말하였다. 주석님께서는 그에 대해 당신이 말하는 창조의 영수가 바로 김정일영도자라고 말씀해 주시었다. 대통령은 머리를 끄덕이며 확실히 조선의 김정일동지는 창조의 태양이시라고 격찬하였다. 이 뜻깊은 대화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북에 가본 외국인들 누구나가 경탄하듯이 김정일영도자는 뛰어난 창조력을 지니신 창조형의 지도자, 창조의 태양이시다. . . . 역사에는 창조형의 위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창조적인 성품으로 보나 창조능력으로 보나 김정일영도자와 견줄 만한 창조형의 지도자는 일찍이 없었다. . . . 김일성주석께서는 ≪김정일조직비서는 창조의 상징이며 새것을 창조하는 것은 그의 활동방식입니다. ……그는 창조를 위해 태어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 . . 영도자님께서는 이렇듯 창조를 취미와 기질로 지니시고 삶과 활동의 방식으로 삼고 계시기에 영원불후의 노작들과 세기적인 건설물들, 세계최고봉의 문예작품들을 끊임없이 창조해 나가시며 오늘의 어려운 속에서도 거창한 창조와 건설을 끊임없이 벌이고 계신다고 본다. 최근연간 이북에서 방대한 산업건설을 진행한 것은 차치하고도 1998년에 근 1.4킬로미터에 이르는 입체다리와 도로양쪽에 울창한 수목림과 2천세대의 주택단지를 형성한 9·9절거리, 1만명 수용능력의 4·25여관을 건설한 데 이어 1999년부터 100미터폭의 100여리에 이르는 평양-남포사이 고속도로건설을 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증으로 된다. 창조형의 지도자로서의 김정일영도자의 특질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원대한 구상력에 있다. 김일성주석께서 감탄하신 바이지만 영도자님의 영도예술의 특징은 기념비적 창조물을 하나 일떠 세우고 공장을 하나 건설하여도 모두 ≪우리 식≫으로 세계적인 본보기가 되게 건설하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남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웅대하고도 통이 큰 구상과 설계를 펼치신다. . . . 그분께서는 당강령을 내놓으시어도 온 사회를 하나의 사상으로 일색화할 데 대한 당강령을 내놓으시고 군건설강령을 제시하시어도 전군을 하나의 사상, 수령의 사상으로 일색화할 데 대한 군건설강령을 제시하시며 나라를 건설해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상의 강국, 정치대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으로 세계가 선망하는 ≪강성대국≫을 건설할 구상을 펼치신다. . . . 군중시위를 조직해도 세계 유례없는 100만명의 대시위를 조직하시고 영화를 만들어도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과 같은 수십부작의 세계대걸작을 만들도록 하신다.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서 모방을 철저히 반대하고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도록 구상하고 설계하신다. 창조는 새롭고 독창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분의 지론이다. . . . 영도자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을 영도하시면서 늘 이것이 창조인가 아니면 모방인가, 이것이 독창적인가 아니면 절충한 것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시고 새롭고 독창적인 것이면 적극 지지, 조장하시고 모방한 것이면 철저히 반대하신다. . . . 영도자님께서 1986년에 첫번째로 제출된 4건의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설계형성안을 모두 부결하시고 두번째로 다시 만든 9건의 설계형성안도 또다시 다 부결하신 것은 그것들이 지난날 잘되었다고 하는 건물들을 본따거나 심지어 다른 나라의 건물들을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영도자님께서 설계일꾼들이 기성관념과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도록 꾸준히 이끄심으로써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오늘과 같이 어서 오라며 두팔을 벌리고 아이들을 따뜻이 품어주는 민중의 어머니당으로서의 조선로동당의 은정을 형상한 새롭고 독특한 ≪품≫설계안이 선택되어 그대로 건설되게 되었던 것이다. . . . 하기에 김일성주석께서는 나는 김정일시대에 건설한 건축물들이 21세기는 물론, 인류가 생존하는 전기간에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김정일식 창조물들은 인민의 지향과 요구를 담고 있으며 인민의 기호를 반영하고 현대지성의 높이에 올라섰기 때문에 어느 것이나 그 가치와 생명력이 영원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김정일영도자는 완강한 진취력과 전개력을 지니고 계시는 창조형의 지도자이시다. . . . 김일성주석께서는 김정일영도자의 이러한 기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세기적인 변혁과 기적은 김정일조직비서의 완강한 진취력과 전개력의 산물입니다. 우리 나라에 건설된 건축물들은 빠른 속도로 일떠섰으며 그 질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되었습니다. 김정일조직비서는 속도전의 구호를 제시하고 모든 부문에서 속도전의 요구를 철저히 관철하여 속도와 질을 다같이 보장하도록 하였습니다.≫ 김정일영도자의 완강한 진취력과 전개력은 그분께서 속도전을 벌여 세기적인 기념비적 창조물들을 불이 번쩍나게 최단시간내에 그러고도 최상의 수준에서 일떠세우도록 하시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1970년대 초에 영도자님의 지도밑에 예술영화촬영소에서는 예술영화 ≪한 자위단원의 운명≫을 제작하였는데 그곳 창조성원들은 그분의 가르치심과 세심한 지도를 받들고 일치단결하여 종전같으면 1년은 걸릴 이 영화를 불과 40일동안에, 그것도 사상예술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걸작으로 완성하였다. 이것이 속도전의 효시로 되었다. 이렇듯 최단시간내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최상의 성과를 이루어내는 것이 영도자님께서 펼쳐주신 속도전이다. 영도자님께서는 속도전을 벌이자면 물론 기술과 지도 문제가 안받침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사상발동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즉 사람들이 마음먹고 달라 붙으면 높은 속도와 성과가 이루어진다고 보고 계신다. 영도자님께서는 1975년 3월 어느날 건설부문 일꾼들에게 자신의 웅대한 평양건설구상을 알려주시고 중요 대상들을 언제까지면 다 건설할 수 있겠는가고 물으시었다. 속타산을 해본 한 일꾼이 자기딴에는 대담하게 용단을 내려 적어도 몇십년은 걸릴 것 같다고 말씀드리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머리를 저으시며 아니다, 나는 이 건설을 수령님의 탄생 70돌을 맞이하면서 다 끝내려고 한다, 우리가 수령님에 대한 충성심을 안고 대담하게 생각하고 달라붙으면 능히 다할 수 있다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었다. 그후 이북에서는 전민이 주석님의 탄신절을 빛나게 맞이하려는 불타는 충성심을 안고 총동원되어 불과 몇년사이에 평양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 . . 영도자님께서는 ≪속도는 인민대중의 마음속에 있다≫는 명언도 내놓으신 것이다. 김정일영도자의 완강한 진취력과 전개력은 그분께서 하나의 과업이 수행되면 연이어 새로운 과업을 제시하시고 계속혁신, 계속전진하도록 하시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 . . 1970년대 중반기부터 불과 10년사이의 평양시건설정형만 보아도 그것을 깊이 감득하게 된다. 이상적인 주택건설의 첫시작인 낙원거리 건설이 한창이던 때 창광거리 건설을 포치하시고 창광거리 1단계의 완공과 동시에 문수거리 건설에 달라붙도록 하시었으며 문수거리 건설이 아직 50퍼센트계선에서 추진되고 있을 때 다음단계의 ≪공격목표≫인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천석식당, 빙상관, 평양제1백화점을 건설하도록 하신 것은 영도자님의 계속혁신, 계속전진의 정신과 기개를 보여주는 파노라마였다. 이처럼 창조형의 위인이신 김정일영도자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이북에서는 당건설과 국가건설, 군건설과 경제문화건설의 모든 부문에서 세인을 경탄시키는 위대한 전변이 일어났으며 속도전과 계속혁명의 열풍 속에서 평양이 웅장화려한 도시로 훌륭히 꾸려지고 짧은 역사적 기간에 세계1등급의 서해갑문(5년)과 김일성경기장(개건확장 4개월), 5월1일경기장(2년반), 인민대학습당(1년 9개월), 평양산원(9개월)을 비롯한 세계적인 기념비적 창조물들이 수풀처럼 일떠 섰다. 그러기에 김일성주석께서는 생전에 ≪우리 식≫의 독특한 창조물들을 김정일식 창조물로 높이 평가하시었으며 지구의 동방에 창조의 왕국으로 우뚝 솟아 인류의 이상국으로 빛을 뿌리고 있는 조선은 오늘 김정일영도자의 조선으로 번영하고 있다고 높은 평가의 말씀을 하시었다. 참으로 김정일영도자는 세기적인 창조를 취미, 기질, 삶과 활동의 방식으로 지니시고 민중을 위한 창조활동을 끊임없이 벌이시어 이북에 주체사회주의의 융성과 번영의 새 역사를 안아오신 창조형의 지도자, 창조와 건설의 영재, 창조의 태양이시다.

희세의 천출명장

조국광복 40돌때 이북을 방문하여 김정일영도자와 함께 유람선을 타고 동해바다를 유람하며 군사문제에 관한 말씀을 듣던 이전 소련의 원동군사령관(후에 국방상이 됨)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서서 복장을 정돈한 다음 거수경례를 붙이며 ≪김정일동지는 스탈린의 위엄을 초월합니다. 전 이제부터 당신의 부관이 되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영도자님께서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는가고 하시자 그는 농담이 아니라고, 저는 이제부터 김정일장군, 당신의 부관이 되겠다고 거듭 청드리면서 부관의 자리에 가 앉았다고 한다. 원동군사령관이 영도자님의 부관이 되겠다고 한 것은 그분께서 지니고 계시는 장군다운 기질과 인품에 완전히 반해서였다. 이렇듯 김정일영도자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 어느 명장도 지닌 적이 없는 위대한 무인적 풍모를 지니신 장군중의 장군, 하늘이 낸 명장이시다. . . . 김정일영도자는 불굴의 의지와 무비의 담력을 지니신 백두산형의 장군이시며 뛰어난 군사적 예지와 지략을 겸비하신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군인대중중심의 영군술을 완벽하게 체현하신 위대한 영장이시다. 의지가 강하고 담력과 배짱이 센 것은 천출명장으로서의 김정일영도자에 대한 위인론에서 첫째 항목이라 할 것이다. 김일성주석께서는 ≪김정일조직비서는 배짱도 장군의 배짱이고 담력도 장군의 담력입니다. 나는 그의 영웅남아다운 배짱과 큰 통, 멸적의 의지가 마음에 듭니다.≫라고 평하시었다. . . . 1976년 8월 세칭 ≪미루나무도발사건≫으로 정세가 일촉즉발의 초긴장 상태였던 어느날 제5차 비동맹국가 수뇌자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한 일꾼이 영도자님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놀랍게도 그분께서는 음악을 감상하고 계시었다. . . . 그의 이런 놀라움을 풀어주시려는듯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미국놈들의 발광을 하나의 시대착오적인 정신착란으로밖에 보지 않습니다. 미국놈들의 발광은 어디까지나 서푼짜리 몸부림입니다.…… 미국놈들은 우리 인민의 머리칼 하나 다치지 못할 것입니다.≫ . . . 김정일영도자는 적들이 도전해오면 언제나 적들을 맞받아나가 짓뭉개버리시는 필승의 영장이시다. ≪나는 언제나 인민들을 믿고 동지들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세가 아무리 어려워도 비관에 빠지지 않으며 적들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해오면 올수록 단호하게 맞받아나가고 있습니다.≫ . . . 사람들은 영도자님의 이 말씀에서 적을 맞받아 나가시는 그분의 무비의 결단성과 과감한 공격정신, 그 원천인 민중과 동지에 대한 믿음을 뜨겁게 읽게 된다. . . . 김정일영도자는 장군의 담력과 의지, 영웅남아다운 배짱과 결단성을 지니시고 그 어떤 적의 도발도 맞받아 짓뭉개버리시는 과감한 공격정신의 소유자이시다. 제1차 북미회담이 있은 직후인 1993년 7월 어느날 미국대통령 클린턴은 기자인터뷰에서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여 사용하면 보복하겠다≫, ≪그것은 그 나라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폭언하였다. 북과의 대결을 통하여 저락된 자기의 위신을 춰세워보려는 제스처였지만 그냥 묵과할 수 없는 도발적인 언사였다. 그것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덤비는 격인 풋내기정치가의 망발이 아닐 수 없었다.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이에 이북 외교부의 답변형식으로 대답하게 하시면서 ≪만일 그 누구든 우리를 감히 건드린다면 우리는 우리의 용단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즉시 실천으로 보여줄 것이다.≫라고 강한 어조로 경고하도록 하시었다. 이렇게 되자 미당국은 ≪대통령의 그와 같은 말은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본다≫, ≪그와 같은 위협적인 발언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하면서 바빠맞아 이북에 더욱 빌붙었다. 영도자님께서 취하신 자위적 조치앞에서 벌벌 떠는 미당국자들의 몰골을 보고 이남의 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단 한장의 성명앞에서 강대국이라고 그처럼 우쭐대던 미국이 풀죽이 되고 말았다. 미국이 이북의 자위적 조치에 대하여 그 무슨 ≪제재≫를 운운하면서 모종의 위협을 가할 것처럼 하지만 종이범의 한풀 꺾인 허세에 불과하다.≫ . . . 천재적인 군사적 예지와 지략을 지니고 계시는 것은 천출명장이신 김정일영도자에 대한 위인론에서 또하나의 항목이다. 적과의 대결은 힘의 대결인 동시에 예지와 지략의 대결이다. 군대를 이끄는 통수자는 예지와 지략이 뛰어 나야 그 어떤 군사적 문제도 가장 정확히 풀어 나갈 수 있으며 백전백승할 수 있다. 더욱이 두뇌전인 현대전에서 군통수자의 군사적 예지와 지략은 필수적이며 절대적인 자질이다. . . . 1991년 1월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세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전쟁은 미국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내쫓는 데 그치지 않고 이라크영토를 타고 앉으려 할 것이므로 장기전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영도자님께서는 쌍방의 군사적 잠재력과 전쟁준비상태, 양측이 전쟁에서 추구하는 목적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신 데 기초하여 만전쟁은 미군이 주도하는 다국적 무력의 ≪승리≫로 빨리 끝날 것이며 전쟁은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전쟁이 끝난 즉시로 미국의 침략의 예봉이 이북에로 돌려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시고 만단의 준비를 갖출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걸프전은 그분께서 예견하신 그대로 43일만에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 무력의 우세로 끝났으며 그후 미국의 침략의 예봉이 이북에로 돌려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영도자님께서는 이처럼 비범한 천리혜안의 예지를 지니시고 전략과 전술 문제로부터 인민군대의 조직체계와 군사장비문제, 진지의 요새화문제를 비롯하여 군건설과 전쟁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가장 정확하게 밝혀주고 계신다. 김정일영도자는 적들의 그 어떤 군사적 기도도 단번에 꿰뚫어보시고 그에 영활하게 대처해 나가시는 비범한 군사전략가이시다. . . . 일례로 미군은 ≪팀 스피리트 84≫합동군사연습을 실전단계에서 진행하면서 그 목적을 이북의 ≪빈 익측≫이나 ≪약한 방향≫을 찾아서 공격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들의 기도를 순간에 간파하신 영도자님께서는 즉시에 미군이 노리고 있는 계선마다에 강력한 타격집단을 진출시키시었다. 이것을 알리 없었던 미군은 초기계획대로 이미 점찍어놓은 지점으로 공격작전훈련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인민군대의 강력한 타격집단들이 진출하여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데 당황하여 황급히 훈련을 결속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훈련은 제일 요긴한 대목에 이르러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 . . 가장 탁월한 영군술을 지니고 계시는 것은 천출명장이신 김정일영도자에 대한 위인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다. . . . 김정일영도자의 영군술의 특징은 군인들 속에서 정치사상교양을 선행하여 그들을 사상의 강자로 키우는 것이다. 영도자님께서는 전쟁승리의 결정적 요인을 무기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사람 즉 군인으로, 그들의 사상적 준비상태로 보신다. 그분께서는 이로부터 인민군대내에서 군인들의 사상무장을 위한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강화하도록 요구하시며 정치사업의 기본을 수령결사옹위정신으로 무장시키는 데 두고 계신다. 김정일영도자의 영군술은 사랑과 믿음의 영군술이라는 데 또하나의 특징이 있다. . . . 1995년 2월 한 여성해안포중대를 찾으신 영도자님께서 찬 바닷바람에 여성중대장의 얼굴이 튼 것을 가슴 아파하시며 약크림을 보내주신 이야기는 애병전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바로 그 여성해안포중대를 영도자님께서 1997년 11월, 감익는 계절에 또 오겠다고 병사들과 하신 약속을 지켜 또다시 찾으시었다. . . . 그날 그분께서는 25년전 김일성주석께서 이 중대를 찾으셨을 때 꽃다발을 드린 어젯날의 해안포병의 딸 손경실을 만나시어 그의 가정내력을 다 들으시고는 아버지도 군인이고 형제들도 다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가정의 자식이라고 못내 대견해하시며 그와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었다. . . . 이렇듯 군복무를 하는 딸자식을 찾은 친아버지의 정으로 여성해안포병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고 떠나가신 영도자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손경실의 부모를 친히 만나시어 방선에 서있는 딸의 소식도 알려주시고 그들에게 은정깊은 배려를 베풀어주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이렇듯 인민군 군인들에 대한 사상무장을 최우선시하고 병사들을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는 위대한 주체의 영군술을 창조, 구현하여 전군을 최고사령관의 두리에 정치사상적으로, 도덕의리적으로 굳게 결속시키고 군인대중을 수령결사옹위의 총폭탄될 사상의 강자, 신념의 강자로 튼튼히 준비시키셨다. 비행훈련중 기체사고로 추락되게 되었을 때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고 방패가 되어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길영조비행사, 항일의 혁명전통이 수록되어 있는 혁명사적지의 구호나무들을 불길 속에서 목숨바쳐 지켜낸 17명의 불사조 영웅군인들,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는 결사관철의 일념으로 한몸을 불태우며 1년 365일을 막장에서 살면서 자기의 청춘까지 서슴없이 바쳐 100리 물길굴을 뚫은 안변청년발전소의 군인건설자들, 말그대로 전군에 수령결사옹위정신, 총폭탄정신, 자폭정신이 꽉 들어 차고 전군이 충성의 영웅대오로 자라났다. . . . 하기에 미국방성의 고위당국자까지도 ≪김정일최고사령관이 지닌 영군적 예지는 놀랍다기보다는 경이적이며 부럽다기보다는 매혹적이며 출중하다기보다는 전무후무한 것이다.≫라고 실토했다. 실로 군사적 예지와 무비의 담력, 비범한 지략과 특출한 영군술을 지니시고 90년대의 역풍을 맞받아 나가시면서 총대로 사회주의를 지키고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에로 이끌어 나가시는 김정일영도자를 세계는 전설적 영장, 희세의 천출명장이시라고 경외하고 있다.

고매한 인덕의 대성인

. . . 민중의 영도자는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민중을 끝없이 사랑하는 인덕이 있어야 한다. . . . 김정일영도자는 고매한 인덕을 지니시고 사랑의 정치, 믿음의 정치, 광폭정치를 펴시어 이북땅에 사랑의 대화원을 꽃피우시는 인덕의 정치가, 성인중의 성인으로 경모되고 칭송되고 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김정일영도자께서 어떻게 인덕정치를 펴나가시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김정일동지는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민들을 다 한품에 안아 보살펴 주고 우리 사회의 주인으로 내세워 주고 있으며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떳떳치 못한 가정주위환경이나 사회정치생활경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현재 우리 당을 따르고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차별하지 않고 따뜻이 보살펴주며 우리 혁명대오의 당당한 성원으로 내세워주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인민들 속에 들어가 그들과 고락을 같이하고 있으며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김일성저작집≫ 44권) . . . 김정일영도자의 고매한 인덕은 그분께서 지니고 계시는 민중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에서부터 찾아보게 된다. 민중에 대한 김정일영도자의 사랑은 참다운 인간사랑의 최고정화이며 빛나는 귀감이라 하겠다.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열렬한 민중애로 민중 모두에게 가장 고귀한 정치적 생명을 안겨주시고 그것을 빛내어 주신다. . . . 영도자님께서는 이북의 모든 민중들이 정치적 생명을 지니고 빛내어 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사회정치조직인 당 및 근로단체 조직에 망라되어 정치생활을 하는 정연한 조직생활체계를 세워주시고 정상적인 조직생활을 통해 정치적 생명을 순결하게 빛내어 나가도록 하고 계신다. 영도자님께서는 나라와 민족, 민중에게 충실한 사람이라면 비록 지난날 나라앞에 죄를 지은 사람이나 그 후손일지라도 노동자계급의 전위당인 조선로동당의 당원의 영예를 지니고 정치적 생명을 빛내어 나가도록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베풀어 주고 계신다. . . . 낙원기계연합기업소를 찾아 완성단계에 이른 산소분리기를 돌아보시던 영도자님께서는 이 세계굴지의 기계설비를 만드는 데 헌신한 사람들은 비록 생활경위가 복잡하다 하더라도 입당시키라고 이르시었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어 현지지도를 끝마치고 떠나가시다가 되돌아오시어 일꾼들에게 아까 공장을 돌아보면서 실천투쟁을 통하여 단련되고 검열된 동무들을 당에 받아들이라고 말했지만 그렇게만 말해서는 동무들이 이것저것 재면서 대담하게 할 것 같지 못해서 돌아서 왔다고, 우리는 성분이 복잡한 사람이라도 당을 믿고 따르며 당과 수령을 위하여 자기의 힘과 지혜를 다 바쳐 일하는 사람들은 대담하게 입당도 시키고 표창도 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었으며 그들의 입당 방법과 절차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의 열렬한 민중애는 민중에 대한 헌신적 복무정신을 지니시고 민중들의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데서 강력히 표출되고 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이것은 영도자님께서 노동당과 일꾼들 앞에 제시하신 슬로건이자 곧 자신의 철석같은 신조이기도 하다. 영도자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민중들에게 더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 줄 수 있겠는가에 대하여 늘 생각하시면서 당과 국가의 정책작성으로부터 하나의 공장을 일떠세우고 건물을 짓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철저히 민중의 이익에 복종시켜 나가신다. 어느해 일꾼들은 영도자님께 어느 한 지방에서 성냥이 떨어진 사실을 덧붙여 간단히 보고 올리었다. 영도자님께서는 한 일꾼을 부르시어 성냥이나 소금 같은 것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한시도 떨어져서는 안될 필수품인데 어째서 맨 마지막에 반영했는가고 엄하게 추궁하시면서 우리는 인민의 이익을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며 그와 관련한 문제부터 선차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었다. 그래서 그분의 그날 일과는 성냥문제를 푸는 사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영도자님께서는 이런 분이시기에 아무리 공장을 건설하기에 알맞는 부지라고 해도 민중들에게 해를 준다면 지체없이 다른 곳에 짓도록 하시며 공장건설에 앞서 노동자들의 주택부터 먼저 짓도록 하신다. . . . 인민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국고금을 아낌없이 털어서라도 해주어야 한다. ≪인민을 위해서는 타산을 앞세우지 말자!≫, 이것이 나의 산술이고 우리 당의 계산방법이다. 영도자님의 이 ≪타산≫을 모르는 사랑에 의하여 전례없이 방대한 건설로 모든 것이 긴장한 속에서도 민중들의 식생활개선에 절실한 효모공장은 1년남짓한 짧은 기간에 건설되었다 한다. . . . 김정일영도자의 고매한 인덕은 그분께서 지니고 계시는 동지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옛날 속담에는 팔백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고 했지만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혁명동지이다.≫ 영도자님의 이 명언은 그분께서 혁명동지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를 잘 알 수 있게 한다. . . . 영도자님께서 지니고 계시는 혁명적 동지애의 특징은 우선 혁명동지들에게 진실하고 절대적인 믿음을 주시는 것이라 하겠다. . . . 나폴레옹은 ≪그대들이 나를 믿노니 나도 그대들을 믿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영도자님께서는 ≪나는 그대들을 믿는다. 그대들도 나를 믿으라≫고 하신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동지에 대한 믿음의 철학이다. 혁명동지에 대한 김정일영도자의 믿음은 또한 한번 믿음을 주시면 끝까지 믿어주시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믿음이다. . . . 영도자님께서는 사업상 과실로 하여 지방에 내려가 사상수양을 하고 있는 중앙기관의 한 일꾼이 과오를 씻기 위하여 성실히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기뻐하시며 그를 평양에 소환하여 다시 중요직책에서 사업하게 하시었으며 그가 또 실수를 하여 다시 지방에 내려갔을 때에도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더 큰 믿음을 주시어 그가 사업을 통해 과오를 씻도록 하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 지니고 계시는 혁명적 동지애의 특징은 또한 혁명동지를 무한히 아끼고 따뜻이 보살펴 주시는 것이다. . . . 언제인가 중병을 앓고 있는 한 일꾼을 찾아가신 영도자님께서 그가 전염성을 띤 자기의 병을 생각하며 돌아가주실 것을 눈물 머금고 말씀 드리자 그의 손을 다정히 잡고 어깨를 쓸어주시며 알고 있소, 설사 그렇다 칩시다, 그래 나를 동지의 아픔보다 제 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 작정입니까,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자기를 위해서 바치는 것보다 남을 위하여 바치는 것이 더 많아야 하는 것이 혁명동지들 호상간의 관계인데 그것이 빈말로 끝나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뜨겁게 말씀하시고는 그와 무릎을 같이 하시어 오랫동안 병을 위로해 주셨다 한다. . . . 김정일영도자의 고매한 인덕은 또한 그분께서 지니고 계시는 넓은 도량과 위대한 포옹력에서 찾아보게 된다. . . . 그분의 그 도량, 그 포옹력에 의하여 지난날 이남에서 반동단체에 이름이 올라있던 입북배우가 그 누명을 벗어 던지고 인민배우가 되었으며 국군에 복무했던 사람이 도행정기관의 책임일꾼이 되고 귀환병출신의 기술자가 일류급 기업소의 책임일꾼이 된 것 등 그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 . . 영도자님께서 지니신 도량과 포옹력은 그 폭에 있어서 뿐 아니라 감화력에 있어서도 특출한 것이다. 그 품에 안기기만 하면 반공매국의 일선에 섰던 사람도 연공애국자로 환생하는 것이 영도자님의 감화력이다. 지난날 친미반공의 길을 걷던 최덕신이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영도자의 품에 안겨 생의 말년에 민족의 화합과 대단결을 위해 헌신하고 애국열사로 빛나는 생을 마친 것이 그 예증으로 된다. 최덕신은 영도자님의 품을 청탁병탄의 대하와 같은 품, 흐린 물이건 맑은 물이건 어느 하나 물리치지 않고 다 받아들이는 대하와 같이 넓은 품이라고 생전에 감격하여 말했다. . . . 김정일영도자의 도량과 포옹력은 이북의 민중들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민중들을 자주의 세계에로 이끌어주는 전인류적인 도량이고 포옹력이다. . . . 자주를 지향하는 세계각국의 수많은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과 저명인사들이 끊임없이 평양을 찾고 주체사상신봉자들과 조선통일지지자들이 세계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며 영도자님께서 몸소 이름을 지어 주시고 뜨거운 은정을 부어 주신 ≪진달래≫, ≪솔매≫, ≪새별≫과 같은 외국어린이들이 세계 방방곡곡에서 수많이 자라고 있고 사경에 처했던 평범한 외국인들이 두번 다시 생명을 받아안은 것이며 영도자님으로부터 수많은 외국인들이 높은 급의 훈장과 선물, 환갑상과 생일상을 받는 영광을 지닌 것 등은 영도자님의 위대성과 함께 그분의 전인류적인 포옹력과 도량, 뜨거운 인간애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 . . 오늘 세인이 가장 열렬한 민중애와 동지애,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신 김정일영도자를 인덕으로 민중을 얻으시고 동지를 얻으시며 세계를 얻으시는 성인중의 성인, 인류의 태양이시라고 칭송하는 것은 응당한 것이라고 하겠다.

충효의 귀감

김정일영도자의 덕망에서 정수를 이루는 것은 수령에 대한 충효이다. 일찍이 김일성주석께서 ≪당중앙위원회 조직비서는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고 있는 충신의 귀감이며 효성이 지극한 효자의 귀감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영도자님은 수령에 대한 충효심이 남달리 지극하신 충신, 효자로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원래 충신이요 효자요 하는 말은 봉건유교교리에서 나왔지만 그것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더욱이 이북과 같이 수령·당·대중이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수령은 그 생명체의 중심인만큼 수령에게 충성하고 효성하는 것은 지극히 응당한 일이며 민중의 마땅한 도리로 된다. 특히 수령에게 충효하는 것은 수령의 후계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풍모로 된다. . . . 김정일영도자는 김일성주석을 생전에 충효일심으로 높이 받들어 모신 충효의 사표이시다. ≪위대한 수령님은 인류의 태양이시고 김정일은 태양의 전사입니다.≫. . . 바로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는 영도자님이시기에 그분께서는 모든 일꾼들과 민중들이 오직 김일성주석만을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시고 그 권위를 절대화하며 주석님의 권위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자그마한 드팀도 없도록 이끄시었다. 김일성주석을 받들어 모시는 김정일영도자의 충성이 얼마나 지극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은 주석님께서 의도하시고 걱정하시는 문제를 풀고 주석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리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하신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후의 어느해 추운 겨울날에 황해북도 인산군의 대촌중학교앞을 지나가시던 주석님께서는 길가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이 모두 홑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시고 못내 가슴 아프시어 점심식사까지 건늬시었다. 이런 가슴아픈 사연을 오랜 세월 잊을 수 없으셨던 영도자님께서는 주석님의 탄신 65돌을 맞으며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과 학생들, 이북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의 어린이들과 학생들, 재외생활을 하는 모든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옷과 내의류, 모자와 신발, 학용품 일식을 만들어 주석님의 선물로 보내주시었다. 한날한시에 꼭같이 훌륭한 선물옷을 떨쳐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보고 싶으시어 평안남도 안주시 연풍고등중학교를 찾으셨던 주석님께서는 ≪내 60평생에 기쁜 날이 며칠 되지 않는 데 오늘처럼 기쁘기는 처음이오! 정말 내 마음이 이렇게 즐겁기는 처음이오!≫라고 거듭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전후의 어려운 날 길가에서 만난 홑옷 입은 아이들을 품에 안으셨던 그때의 아픈 마음의 웅어리가 비로소 풀리시는듯 손수건을 조용히 눈언저리로 가져가시어 눈굽을 찍으시었다. 영도자님께서는 이렇듯 주석님께서 큰 경기장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시면 그것을 잊지 않고 계셨다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종합경기장인 김일성경기장을 마련하시고 빙상관을 부러워하시면 세계적인 빙상관을 건설하시고 평양시민의 주택문제를 근심하시면 창광거리, 광복거리, 통일거리, 문수거리와 같은 현대적인 대규모 주택단지를 일떠 세우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는 김일성주석의 안녕과 만수무강을 위하여 온갖 효성을 다하신 효자중의 효자이시다. . . . 김일성주석의 다음의 말씀은 영도자님의 효성이 얼마나 지극한 것이었는가를 폐부로 절감하게 한다. ≪나는 조직비서가 나의 건강과 기쁨, 장수를 위하여 애쓰는 지극한 충성과 효성에 접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군 합니다. 늙으면 눈물이 헤퍼진다고 하지만 내가 이따금씩 눈시울을 적시게 되는 것은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조직비서의 충효성에 감동되어서입니다.≫ . . . 이렇듯 효성의 한마음으로 사시는 영도자님이시었기에 그분께서는 주석님의 무거운 사업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하여 일찍부터 당과 국가, 군대 사업 전반을 맡으시어 불면불휴의 정력적 영도를 하시고 주석님의 피로와 시력상실을 덜어 드리기 위하여 문건을 녹음하여 올리고 행사 때마다 일정도 그에 맞게 면밀하게 짜주시었으며 자신께서 닫긴깃 양복을 입고 나라일을 맡아할 테니 주석님께서는 제낀깃 양복을 입고 낙을 누리며 푹 쉬시도록 간절히 권고하기도 하시었다. . . . 이렇듯 주석님의 안녕과 만수무강을 위해 이 세상에서 하실 수 있는 정성이란 정성은 다하시고도 주석님께서 서거하셨을 때는 수령님을 받들어 모시는 데서 우리의 정성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라고 목메어 말씀하시었다 하니 영도자님의 효성은 하늘이 감복할 인륜의 극치라 하겠다. 김일성주석에 대한 김정일영도자의 충효는 주석님께서 서거하신 이후에도 변함이 없음은 물론이고 그 위대함과 숭고함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1994년 10월 어느날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영도자님께서는 우리는 수령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 한 맹세와 서거하신 다음에 하는 맹세가 달라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수령님을 생존해 계실 때보다 더 잘 그리고 영원히 높이 받들어 모심으로써 세상사람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도덕관을 가지고 자기 수령을 받들어 모셔야 하는가 하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 . . 수령에 대한 충성심에는 0. 001%가 비어도 안되며 수령을 따르는 충성의 한마음은 어느 하루, 어느 한순간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영도자님의 충성의 철학이며 도덕관이다. . . . 누리에 주체의 최고성지로 숭엄히 서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은 수령영생위업을 펼치신 김정일영도자의 수령에 대한 숭고한 도덕관, 고결한 충효지심의 빛나는 상징으로 된다. 주석님을 갑자기 잃은 슬픔의 눈물, 상실의 아픔이 강산에 차넘치던 1994년 7월의 그날 김일성주석께서 오랫동안 계시면서 사업하시던 금수산의사당에 주석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높이 모실 위대한 구상을 밝히신 영도자님께서는 금수산기념궁전을 개관할 때까지의 1년동안 무려 400여차례의 말씀을 주시고 눈내리는 이른새벽, 비오는 깊은 밤중에도, 명절날에도 거의 매일과 같이 현지에 나와 계시었으니 기념궁전을 세계에서 제일가는 수령영생궁전으로 일떠 세우기 위하여 바치신 그분의 지성을 온몸으로 감득하게 한다. 이 나날에 영도자님께서는 기념궁전입구의 홀에 모실 주석님의 대리석입상을 설계가들이 주석님께서 대원수복을 입으신 모습으로 형상한 것을 보시고는 수령님께서는 대원수복을 입으시고 인민들 앞에 나서신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수령님께서 금수산의사당에서 손님들을 기다리실 때나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실 때의 모습이 우리 인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것만큼 그런 모습으로 형상하여야 한다고 하시었고 입상의 배경에 찬란한 햇빛을 받아 붉게 피어 오르는 아침노을을 형상하여 주석님의 대리석상이 광휘를 뿌리는 태양으로 부각되도록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또한 이미 있는 계단을 대담하게 개조하여 어서 오라 두팔을 벌리신 어버이주석님의 따사로운 품처럼 대계단을 형성하도록 하시었고 수령의 영구를 지하에 안치한 다른 나라의 전례를 깨고 기념궁전의 제일 높은 곳에 영안실을 정중히 꾸리도록 하시었다. . . . 영도자님께서는 금수산기념궁전을 개관한 후에도 궁전외부에 만년대계의 화강석대광장을 건설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비 한방울, 눈 한송이 맞지 않게 현대적인 외랑을 만들고, 주석님께서 생전에 사랑하신 꽃과 나무들로 숲을 이룬 아름답고 숭엄한 정원을 꾸리고, 기념궁전까지 이십여리의 현대적인 대도로를 내도록 하시었다 하니 금수산지구를 주체의 최고성지로 꾸리고 거기에 주석님을 더 잘 모시려는 그분의 충효심은 끝이 없는 것이다. 하기에 한 해외교포인사는 ≪금수산기념궁전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돌아가신 위대한 수령님께 드린 영생의 집이며 수령님을 천상에 받들어 올린 태양의 집입니다.≫라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고 일본의 한 인사는 ≪김일성주석님을 동서고금에 없는 최고성지인 금수산기념궁전에 생전의 모습 그대로 모시고 그분의 사상과 업적, 위업이 조선의 넋이 되어 줄기차게 계승되어 나가고 있으니 이는 선대수령을 받드는 후계자의 지극한 충의지심을 떠나서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격찬하였다. 정녕 김정일영도자는 주석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나 서거하신 후에도 일편단심 변함없는 지극한 충성과 효성을 다하여 높이 받들어모심으로써 인륜도덕의 최고경지를 창조하신 대성인이시며 혁명하는 사람들이 선대수령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를 만천하에 감동깊이 보여주고 계시는 충효의 최고화신이시라고 숭앙하게 된다.

도덕의리의 화신

양심의리는 인간의 고유한 미덕이며 사람들을 자각적이고 아름다운 행동에로 추동하는 정신적 힘의 원천이다.≫ 김정일영도자의 이 명언은 양심과 의리가 인간의 가치를 규제하는 중요징표이며 사람들이 참되게 살도록 추동하는 요인임을 가르쳐준다. . . .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양심과 의리에 살아야 참다운 인간이고 참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착취하는 사람과 착취받는 사람이 따로 있고 사람들이 제가끔 개인이기주의에 기초하여 사는 계급사회에서는 참의미에서의 도덕의리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것은 오직 수령·당·대중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결합되어 집단주의에 기초하여 서로 동지적 관계를 맺고 사는 사회주의사회에서만 꽃펴날 수 있다.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사랑과 믿음에 기초한 참다운 인간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며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 참다운 도덕의리가 꽃펴나는 바탕으로 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가장 고상한 도덕적 풍모, 도덕의리에 투철하고 고결한 인간적 풍모를 소유한 인간으로 되어야 한다. 이것은 김정일영도자의 도덕의리에 관한 논지의 요체이다. 이런 숭고한 윤리도덕관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영도자님께서는 사람들이 양심과 의리에 사는 아름다운 윤리도덕의 세계를 이북땅에 펼쳐주고 계시며 몸소 그 귀감이 되고 계신다. 도덕의리의 귀감으로서의 김정일영도자의 고매한 풍모는 그분께서 혁명선배들을 극진히 존대하는 데서 뚜렷이 부각된다. 김일성주석께서는 혁명선배를 존경하고 내세워주는 김정일영도자의 숭고한 도덕의리심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시었다. ≪내가 김정일동지의 성품가운데서 제일가는 장점으로 보는 것은 나와 같이 혁명투쟁을 한 오랜 혁명투사들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는 나와 같이 혁명투쟁을 하여 온 노투사들을 혁명의 원로로 존경하고 내세워주고 있으며 그들의 사업과 생활을 극진히 돌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항일의 노투사들 모두가 김정일동지를 좋아하며 지도자로 높이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개척하여온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 나가는 데서 매우 좋은 일입니다.≫(≪김일성저작집≫ 44권) . . .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전 소련의 흐루시초프는 정권을 쥐자마자 혁명선배들을 긁어내리는 행동을 하였다. 그가 혁명선배들을 긁어내린 것은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지난날 주체혁명위업을 개척하는 길에서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충성을 다한 항일혁명투사들, 그시기 주석님의 혁명활동연고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귀중히 여기시고 은정을 베푸시는 것을 자신의 숭고한 임무로 여기신다. 이북의 부주석을 오랫동안 역임했던 항일혁명투사 김일이 난치의 병을 앓고 있을 때 영도자님께서는 문병을 하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은 데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수령님을 모시고 싸워온 노혁명가들이 건강한 몸으로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새 세대들이 마음이 든든해서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시며 그를 격려하시었고 부주석이 어려운 대수술을 받을 때에는 그가 진정하여 수술을 받을 수만 있다면 몇시간 아니 백시간이라도 일없다고 하시며 수술이 끝날 때까지 내내 환자의 손을 꼭 잡으시고 수술입회까지 하시었다. 항일혁명투쟁시기 김일성주석께 식사를 보장해드린 작식대원이었던 장철구어머니가 앓고 있을 때에는 그런 어머니를 금을 준들 바꿀 수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육친의 정으로 극진히 보살펴주시었으며 그가 사망하였을 때에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했던 탓이기나 한듯 친자식이 없는 그에게 취사원을 제때에 보내주지 못한 사실까지 가슴아프게 회고하시었다. 영도자님께서는 이북에 있는 항일투사들만이 아니라 해외에 살고 있는 혁명열사의 유가족들, 김일성주석의 혁명활동연고자들을 일일이 찾아내시어 그들의 여생을 빛내어 주시며 혁명가유자녀들을 잘 돌봐주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마땅한 도리로 여기시고 그들에게 크나큰 신임과 배려를 베풀어주고 계신다. 김정일영도자의 숭고한 도덕의리는 6·25전쟁시기의 전쟁노병들과 전쟁승리를 위해 희생적으로 투쟁한 사람들, 전후 천리마대고조시기의 영웅들과 노력혁신자들, 천리마운동선구자들을 혁명의 2세대로 존중하며 그들에게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고 계시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도자님께서 역사의 어느 갈피에도, 세계의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전국노병대회를 큰 규모로 성대히 마련해주시고 전쟁노병들을 사회적으로 내세워주고 존대하도록 해주시는 것은 혁명의 2세대에 대한 그분의 믿음과 사랑, 의리가 얼마나 큰가를 말해준다. 이북에서 평양의 보통강반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을 웅장하게 일떠 세우고 혁명열사들과 애국열사들, 영웅전사들이 나서 자라고 배우며 일한 고향과 학교, 공장과 농장, 인민군부대들을 그들의 이름으로 명명하고 있는 것은 혁명의 각이한 연대들에 위훈을 세운 선열들과 영웅전사들을 길이 기리고 그들의 위훈을 역사에 오래오래 전해주시려는 영도자님의 거룩하신 의리심에 의해 취해진 조치들인 것이다. 평양 신미동에 있는 애국열사릉의 묘비에 새겨붙인 열사들의 돌사진에 깃든 사연 또한 영도자님의 숭고한 의리심을 길이 전하고 있다. 1998년 4월 어느날 중앙의 어느 한 단위를 현지지도하시던 영도자님께서는 새로운 기술로 만든 돌사진을 보시고 대단히 만족해하시면서 변하지 않는 돌사진을 보니 애국열사릉이 생각난다고, 글만 새긴 열사들의 묘비들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허전했는 데 이제는 됐다고 하시며 애국열사릉의 묘비에 당장 돌사진을 새겨붙이자고 하시었다. 이렇게 되어 공화국창건 50돌전으로 열사릉에 열사들의 돌사진을 다 새겨붙이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하신 영도자님께서는 몸소 열사릉을 돌아보시고 와서 열사들의 돌사진을 새겨붙이니 능의 면모가 달라졌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일꾼들에게 모두 열사릉에 가보았는가고 물으시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하여 짬을 낼 수 없어 아직 가보지 못한 몇몇 일꾼들이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자 그분께서는 매우 섭섭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애국열사릉에 돌사진을 새겨붙인 것을 알면서도 아직 가보지 않은 것을 보니 동무들에게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조국의 해방과 사회주의 건설, 나라의 통일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다가 희생된 애국열사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사람의 심장을 숙연하게 하는 숭고한 혁명적 의리가 담긴 말씀이다. . . . 도덕과 의리를 귀중히 여기시는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우리 민족사에 이름을 남긴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들의 업적을 길이 전하게 하신다. 영도자님께서 우리 나라의 원시조인 단군의 묘를 발굴하도록 한 데 이어 단군릉을 웅장하게 건설하도록 하시고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의 능고려의 태조 왕건의 능을 훌륭히 건설하도록 하신 것만 보아도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한없이 넓은 도량과 고결한 의리심을 지니신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나라와 민족에 관계없이 세계 모든 나라 혁명가들과 반제, 반파쇼 투사들, 진보적 인사들과 민중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투쟁업적을 응당하게 평가하신다. 영도자님께서는 ≪우리 당과 인민은 마르크스엥겔스, 레닌, 스탈린을 노동계급의 수령으로 존대하며 그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합니다.≫ 라고 공언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이미 1985년 6월 어느날 한 일꾼과 노동자계급의 수령으로서 뿐만 아니라 명장으로서의 스탈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명장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스탈린을 빼놓으면 안됩니다, 스탈린은 이름있는 대원수이며 무시할 수 없는 명장입니다라고 단언하시었다. 제국주의자들과 현대수정주의자들이 스탈린을 악랄하게 비방중상하고 그의 시체마저 불살라버려 그의 이름과 공적이 역사의 장막 속에 사라져가고 있을 때 그를 노동자계급의 수령으로, 명장으로 일러주시고 내세워주시는 것은 고결한 의리심을 지니신 김정일영도자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의거인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 좌절로 동부독일이 붕괴되었을 때 모스크바주재 칠레대사관에 피신중이던 동독 호네커 당서기장이 자국송환을 거부하고 평양에로 올 것을 요청하자 큰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북에서 특별전용기까지 보내어 사실상의 정치망명을 받겠다고 한 것김정일영도자의 숭고한 의리심의 발현이었다. . . . 김정일영도자의 숭고한 도덕적 풍모는 동지들에 대한 의리심이 각별하신 데서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 . . 영도자님께서는 1957년 11월 허담을 처음 만나시었을 때 그가 수령을 위해 한생을 바치는 것을 생활신조로 하여 살아가는 사람임을 아시고 그에 대한 믿음을 굳게 간직하시었고 그 이후로는 그에게 변함없는 믿음을 안겨주시었다. 그분께서는 1988년 1월에는 허담을 가까이 부르시어 나는 사진에서 사람들의 얼굴보다도 동지들사이에 주고받은 믿음과 의리에 대하여 추억하곤 한다고 하시면서 다정히 껴안고 사진을 찍어주시었으며 1989년 2월에는 그의 ≪사업일지≫의 첫 장에 ≪너는 허담. 충실한 당의 전사 나는 정일. 1989. 2. 7. 김정일.≫ 이라는 친필을 써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이렇듯 믿음이란 믿음, 사랑이란 사랑은 다 안겨주시어 그가 사망할 때까지의 35년간 주석님과 영도자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외교부장, 당중앙위원회 비서 등 중책을 역임하면서 한생을 빛나게 살도록 해주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의 의리는 동지들의 정치적, 육체적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 주시는 고결한 의리이다. 이남에서 34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비전향장기수이며 전 인민군 종군기자였던 이인모옹을 이북으로 데려다 폐인상태에서 완인으로 소생시키고 ≪김일성훈장≫수훈자, 2중영웅으로 되게 하신 김정일영도자의 덕의에 관한 이야기는 이남에도 널리 알려져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키고 있다. . . . 이처럼 김정일영도자는 혁명선배와 동지들에 대한 의리심이 하늘처럼 높으신 덕인중의 덕인이시며 덕과 의로 사시고 덕과 의로 천하를 얻으시며 덕과 의의 새 세계를 펼쳐가시는 대성인이시라고 극찬하게 된다.

조국애, 민족애의 최고체현자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열렬한 조국애, 민족애를 천품으로 지니고 계신다. 영도자님의 조국애는 조국에 대한 그분의 주체적 견해, 조국관에 연원하고 있다. 영도자님께서는 조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시었다. ≪조국은 단순히 나서 자란 나라나 고향이 아니라 사람들의 참된 삶이 있고 후손만대의 행복이 담보되는 곳이라야 합니다. 비록 나서 자라기는 하였지만 참된 삶이 없고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나라나 고향은 조국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 . . 김정일영도자는 열렬한 조국애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것을 견결히 지켜 나가시는 절세의 애국자이시다. . . . 1999년 5월 말 이북을 방문했던 미대통령특사일행까지 이북의 정책, 일심단결된 이북민중의 민족적 자존심과 강의한 의지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 것은 김정일영도자께서 나라의 존엄과 영예, 자주권을 얼마나 중시하시고 그것을 견결히 지켜 나가시는가에 대한 뚜렷한 증시로 된다. . . . 김정일영도자는 열렬한 조국애를 지니시고 조국통일을 위하여 온갖 심려와 노고를 다 바치시는 민족의 구세주이시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누구보다도 민족분열의 아픔과 고통을 가슴깊이 안고 조국통일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계신다. 1981년 9월 어느날 영도자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조국통일은 나의 사명입니다. 조국통일은 수령님앞에서 책임진 나의 당면과업입니다.≫ 영도자님께서는 조국통일을 겨레의 숙원을 풀어주기 위한 당면과업인 동시에 김일성주석의 후계자로서 주석님앞에 책임진 당면과제로 심장깊이 간직하고 계시었다. 그러기에 그분께서는 때로는 설날에도 조국통일문제로 하루를 보내시었고 자신의 생신날에조차 조국통일사업부문의 일꾼들과 함께 한밤을 지새우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는 열렬한 조국애로 조국강토를 끔찍이 아끼고 귀중히 여기시는 애국자중의 애국자이시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 조국강토를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은 그분께서 90년대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황해남도의 구월산과 함경북도의 칠보산을 세계적인 명산, 민중의 유원지로 꾸리신 데서 뜨겁게 감득하게 된다. . . . 그분께서는 이날 칠보산이 조선의 5대명산에 속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시면서 칠보산은 묘향산이나 구월산에 비길데 없이 경치좋은 명산이다, 옛날사람들이 5대명산을 꼽았다면 오늘 노동당시대에는 6대명산을 꼽고 칠보산을 단연 첫자리에 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 . . 조국강토에 대한 영도자님의 열화같은 사랑은 이북의 신문, 방송이 연일 대대적으로 전하듯이 강하천정리를 비롯한 국토관리사업을 전국가적, 전민중적인 사업으로 벌이도록 하시며 강원도 안변, 고산 등의 뙈기밭들을 800 ~ 1000평짜리 규격포전으로 개조하는 시범을 창조하여 전국에 토지정리의 선풍을 일으키시는 데서도 직감하게 된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조국과 함께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신다. 영도자님의 열렬한 민족애는 그분께서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을 고창하시는 데서 깊이 체득하게 된다. 영도자님의 규제에 따르면 조선민족제일주의 정신은 한마디로 말하여 조선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빛내어 나가려는 높은 자각과 의지로 발현되는 숭고한 사상감정이다. . . . 영도자님께서는 이러한 우리 민족의 고유한 특성, 민족성을 중시하시며 그것을 옳게 살려 나가도록 깊이 관심하고 계신다. . . . 그분께서는 음악도 민족음악을 위주로 하여 발전시키고 미술도 민족적 감정과 정서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조선화를 기본으로 하여 발전시키며 무용도 우리 나라식 장단에 맞추어 우리 나라 춤을 추어야 한다고 주창하신다. . . . 실례로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만나서 인사할 때 악수보다도 고개숙여 인사하는 우리 나라 고래의 인사법을 쓰며 여인들이 양복보다도 우리 나라의 아름답고 우아한 치마저고리를 더 많이 입고 다니며 민속명절도 민족적 색채가 뚜렷한 단오라든가 추석같은 것을 선호하신다. . . . 영도자님께서는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한 국보로 여기시고 그것을 잘 보존관리하도록 깊은 관심을 돌리고 계신다. 1997년 봄, 구월산을 찾으신 그분께서는 깊은 계곡에 있는 월정사에 들리시어 절간을 돌아보시고 대대로 길이 잘 보존할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었다. 그러시고는 깊은 산 속에 살면서 월정사를 관리하고 있는 주지의 수고를 헤아리시어 그에게 손수 금시계까지 안겨주시는 은정을 베푸시었다. 김정일영도자의 열렬한 민족애는 이북뿐 아니라 이남과 해외의 온 겨레에게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데서 강렬하게 분출되고 있다. . . . ≪우리는 남녘동포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쁜 일이 생겼을 때도 그렇고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도 그렇고 늘 남녘동포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분열된 조국땅에서 사는 참된 애국자는 남녘동포들을 항상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남녘동포들의 불행과 고통을 외면한 참된 애국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남녘동포들을 항상 마음에 안고 사는 참된 애국자만이 최고의 애국인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투신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 때도 남녘겨레들을 생각하고 밤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 때에도 남녘겨레들을 생각하면서 조국통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 . . 영도자님께서는 재일동포자녀들이 이국땅에서도 보란듯이 무럭무럭 잘 자라도록 건강과 장수의 영약인 산삼을 모두에게 빠짐없이 보내주시고 한신대진재때에는 거액의 위문금을 보내주시었으며 주석님을 잃은 그 슬픔과 불행의 나날에도 재일동포들에게 교육원조비를 어김없이 보내주시고 미국에 사는 손원태 교포를 조국에 데려와 80돌 생일상까지 차려주시었다. 이러한 영도자님이시기에 1998년 9월 일본당국이 이북의 인공위성발사를 빌미로 하여 재일동포들에 대한 탄압책동을 가해나섰을 때 우리 해외동포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치는 놈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과 의지를 담은 외교부 대변인성명을 발표하게 하시었다. 이렇듯 영도자님은 해외동포들의 삶의 은인이시고 생명의 보호자이시다. 오늘 우리 겨레는 민족의 존엄과 긍지를 만방에 떨쳐주시고 민족의 모든 귀중한 유산들을 보호하고 빛내어주시며 겨레 모두의 삶을 보살펴주시는 민족사랑의 최고체현자이신 김정일영도자를 민족의 태양, 민족의 어버이로 경모하며 높이 우러르고 있다.

인간중의 위대한 인간

김정일영도자는 위대한 혁명가이시기에 앞서 위대한 인간, 인간중의 인간이시다. 영도자님의 위대성은 사상과 영도, 덕망의 위대성인 동시에 인간적 풍모의 위대성이다. 그것은 특출한 정열뜨거운 인정미다정다감한 인간성, 검소검박, 청렴결백의 평민성으로 특징지어진다. 김정일영도자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가장 열렬한 정열을 지니신 열의인이시다. . . . 김정일영도자의 정열은 그것이 혁명의 승리를 위해, 나라의 통일과 융성번영, 민중의 행복을 위해 불타는 것으로 하여 가장 숭고하고 열렬한 정열이다. 불타는 정열을 지니시고 비상하고 경이적인 정력으로 집무를 하시는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늘 하루가 24시간밖에 되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신다. . . .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관장하시느라 늘 시간이 모자라시는 김정일영도자께서는 한꺼번에 두가지, 세가지 일을 복합적으로 하시어 하루 24시간을 48시간, 72시간 맞잡이로 이용하신다. 김정일영도자께서 낮과 밤을 이어 분과 초를 쪼개어가며 정열적으로 일하시는 과정에 생겨난 ≪쪽잠≫≪줴기밥≫(주먹밥)에 대한 일화는 이남사회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영도자님께서는 현지지도를 하실 때 차안에서 등받이에 기대시어 잠깐 쪽잠을 달게 주무시는 것으로 수면을 대신하시고 줴기밥을 싸가지고 다니시면서 도중에 그것을 달게 잡수시는 것으로 끼니를 에우시는 것이다. 그분께서 쪽잠과 줴기밥으로 침식을 대신하시는 것은 민중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데도 있지만 더 많은 시간을 얻어내어 더 많이 일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영도자님께서는 이 쪽잠도 제대로 못주무시고 줴기밥도 제대로 못드시는 때가 드문하다. 1998년의 어느날이었다. 멀리 동해안일대를 현지지도하시던 영도자님께서는 새벽 3시가 지나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시었다. 그분께서는 차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실 예정이었는 데 길이 나빠 차가 몹시 들추는 바람에 끝내 쉬실 수가 없었다. 그분께서는 도중에 길가에 차를 세우게 하시고 토지정리와 관련한 협의회를 하시었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아침식사도 안하시고 길을 떠나신 영도자님께서는 점심식사시간도 퍼그나 지나자 몹시 시장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운전사에게 뭘 좀 군입질할 것이 없는가고 물으시었다. 운전사는 밥가마치 한덩지밖에 없다고 말씀드리며 몹시 난처해했다. 영도자님께서는 밥가마치를 내놓기 저어하는 운전사에게 밥가마치가 어떻는가고 하시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시었다. 이렇게 되어 영도자님께서는 그날 밥가마치 한덩지로 끼니를 에우시고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시었다. 과연 어느 영도자, 어느 집권자가 언제 이런 헌신적 복무의 역사를 수놓은 사례가 있었던가. . . . 특히 김정일영도자의 건강에 대해 가장 심려하신 분은 김일성주석이시었다. 주석님께서는 영도자님께 혁명은 하루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몸이 건강해야 혁명을 잘할 수 있다고, 건강을 돌보면서 일하라고 거듭 권유하시었다. 그러나 주석님의 교시라면 0. 001퍼센트의 드팀도 없이 무조건 접수하고 무조건 관철하시는 그분이시지만 주석님의 그 교시만은 집행하지 않으시었다. 그분께서는 주석님의 강력한 조치와 민중의 간청에 못이겨 어쩌다가 휴식하러 가실 때에도 문건과 일감을 몇개 트렁크씩 가지고 가시어 밤낮으로 일을 하신다고 한다. 당중앙위원회의 집무실이 휴식장소로 옮겨졌을 따름이다. 이런 영도자님을 우러르며 일꾼들이 안타까운 말씀을 드리면 그분께서는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힘들지 않는 법입니다. 내가 늘 말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일하는 것이 휴식입니다. 나는 일을 하여야 마음이 편안합니다.≫라고 하시며 소청을 물리치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는 다정다감한 인간적 풍모를 지니신 정의인이시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 지니고 계시는 인정미는 한없이 자애롭고 다정한 인정미이다. 그것은 영도자님께서 사람들을 언제나 정답고 따뜻이 대해주시는 데서 느낄 수 있다. 1998년 11월 함경북도 경성군 상온포마을의 한가정을 찾으신 영도자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온 가족의 손을 하나하나 다정히 잡아주시고는 집구경을 하자고 자애에 넘쳐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매 방들과 부엌까지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집구조가 쓸모있게 되었는가, 전기난방화한 방바닥이 더운가를 세심히 헤아려보시고나서 집을 정말 잘 지었다고 거듭 만족해 하시었다. 집을 돌아보실 때 벽시계를 보시고 텔레비전을 방영할 시간이 되었다고 하시며 스위치를 넣어보게 하시었다. 정녕 영도자님의 그 모습은 세간난 자식집을 찾은 친어버이의 정다운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기에 집주인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온 가족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고 집구경을 하자고 하시면서 방안에 들어서실 때 우리는 꼭 친아버지를 모시는 심정이었습니다.≫라고 두고두고 외우고 있다고 한다. 영도자님의 자애롭고 다정한 인정미는 이북사람들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고위인사들까지 받아안는 인정미이다. 김일성주석께서는 1987년 5월 한 일꾼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었다. ≪내가 이번에 등영초를 만났는 데 그는 나를 만나 후계자를 잘 두었다고 기뻐하면서 조선의 김정일동지를 만나보니 그가 인정이 많은 지도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1983년 6월 베이징에서 김정일동지와 상봉하던 때를 추억하면서 그의 정다운 인정미가 안겨와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열렬한 혁명가이며 중국 주은래 총리의 미망인인 등영초가 그 뜨거운 인정이 못잊혀져 눈물을 흘리는 영도자님의 인정미, 그분의 인정미는 직위고하를 불문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뜨겁게 받아안고 목메어 하는 한없이 자애롭고 다정하며 뜨겁고 포근한 인정미인 것이다. . . . 김정일영도자는 인정이 많으시고 다정다감한 분이시기에 눈물도 많으시다. 김일성주석께서는 김정일조직비서는 인정이 많을 뿐 아니라 눈물도 많습니다, 그는 늘 웃는 얼굴이지만 슬픈 일이 생길 때에는 어린애처럼 눈물을 흘립니다, 나도 눈물이 많은 데 조직비서도 눈물이 많습니다, 사람은 눈물이 많은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김일부주석의 영구를 안장하던 날 영도자께서는 영결식이 끝나자 조객들도 유가족들도 귀로에 올랐지만 분묘곁에 홀로 서시어 고인과 말없는 대화를 나누시며 오열하시었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에도 종시 눈물을 거두지 못하시었다. 집무실에 돌아오셔서도 홀로 추도가를 들으시며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 풍만한 정서를 지니고 계신다는 것은 그분께서 음악을 무척 사랑하시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 . . 영도자님께서는 일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음악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다가 문득 이런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나의 첫사랑은 음악입니다.≫ 순간 일꾼들은 말씀의 높은 뜻이 헤아려져 그분을 우러러보았다. . . . 사실 영도자님께서는 음악을 ≪첫사랑≫처럼 열렬히 사랑하시었기에 그분께서는 어리셨을 때 벌써 ≪조국의 품≫, ≪축복의 노래≫와 같은 명곡을 작사, 작곡하시었고 사람들과 팔을 겯고 노래를 부르시었다. 영도자님의 인간생활은 노래와 함께 흐르는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그리우실 때도 분노하실 때도 노래를 들으시고 노래를 부르신다. 외국방문의 길에 계시는 김일성주석이 그리우셔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을 부르시고 불치의 병에 걸린 동지와 팔을 겯고 ≪동지애의 노래≫를 부르시고 변절자, 배신자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삭이지 못하시어 달리는 차안에서 ≪적기가≫를 부르고 또 부르신 영도자님이시었다. 이런 분이시기에 그분께서는 ≪고난의 행군≫의 그 어려운 시기에 온 나라 민중들이 필승의 신념의 노래, 의지의 노래, 낙관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시련과 난관을 맞받아 뚫고 나가도록 하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비상히 다양한 대상에 대하여 정서를 가지며 그것이 남다르신 것이 특징이다. 실례로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 칠보산 등 명승지에 가시면 그 절승경개에 황홀해 하시며 송도원이나 서호의 백사장을 거니실 때면 바다는 언제 보아도 마음에 든다고, 앞이 확 트이고 속이 깊고 담찬 것이 꼭 대장부의 기상같다고, 바다는 해돋이와 같은 열정이 있고 노도와 같은 격조가 있으며 달밤과 같은 서정이 있어 참 좋다고 하시며 떠나기 아쉬워 하신다. 그러나 영도자님께서는 이 모든 아름다운 자연풍경보다 더 귀중히 여기시며 사랑하시는 경치가 있으니 그것은 융성번영하는 사회주의 조국의 경치인 것이다. . . . 그분께서는 여러가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보다도 목화꽃을 좋아하시고 사랑하시는 데 그것은 목화꽃이 사람들에게 귀중한 솜을 주는 장한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수줍은듯 꽃송이를 활짝 터치지도 않고 땅만 보면서 피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 . 김정일영도자는 검소검박의 인격자이시기도 하다. . . . 실례로 김정일영도자께서 늘 점퍼를 입고 다니시며 추운 겨울에도 민중들과 다름없는 솜옷을 입고 계시는 그 수수한 옷차림 하나에서도 가슴뜨겁게 느끼게 된다. . . . 김일성주석께서 김정일조직비서에게는 물욕이 없으며 자기 재산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쩌다가 생기는 귀한 물건을 동무들에게 주곤 하였는데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동무들의 밝은 얼굴을 보는 것을 제일 좋아하였다, 김정일조직비서는 지금도 귀한 물건이 생기면 그것을 항일의 노투사들이나 같이 일하는 일꾼들, 일을 많이 하는 과학자나 예술인들, 공로있는 노동자, 농민들에게 주고 있다고 하신 말씀 한마디에서도 그분께서 얼마나 검소하고 청렴결백한 생활을 하고 계시는가를 헤아려 보게 된다. . . . 그러기에 우리 겨레와 세계민중들은 검소검박하시고 청렴결백하시기 이를데 없는 김정일영도자를 위대한 인간적 풍모를 지니신 최고의 인격자, 인간중의 위대한 인간으로 흠앙하고 칭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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