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7일

통일여명 편집국

 

 

백두산에 높이 솟은 ≪정일봉≫, 소백수 굽이쳐 흐르고 주체위업은 전진한다

 - 21세기 태양찬가 1

통일여명 편집국 6-1-35

 

차 례

 

1. 백두산에 높이 솟은 ≪정일봉≫

김일성주석께서 김정일영도자의 위대성에 대하여 하신 말씀

백두산, 태양의 산 / ≪정일봉≫ / 혈통

2. 소백수 굽이쳐 흐르고 주체위업은 전진한다

김일성주석께서 김정일영도자의 위대성에 대하여 하신 말씀

후계자 / 명맥 / 주체혁명위업은 전진한다

 

 

1. 백두산에 높이 솟은 ≪정일봉≫

 

김일성주석께서 김정일영도자의 위대성에 대하여 하신 말씀

≪백두산은 우리 나라 조종의 산으로서 조선의 상징이며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사의 발상지이다.≫(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5권)

김정일1942년 2월 16일 새벽에 백두밀영에서 태어났습니다.≫(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8권)

김정일동무를 백두산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항일혁명의 산아라는 뜻이며 민족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 김정일동무를 민족의 영도자로 키운 것은 백두산입니다. 백두산의 투사들이 그를 향도성으로 내세워주었으며 백두산의 정기가 그의 기개로 되었습니다.≫(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8권)

≪나는 백두산을 볼 때면 김정일조직비서를 생각합니다. …… 김정일조직비서는 백두산의 장군입니다. 백두산은 김일성의 백두산인 동시에 김정일의 백두산입니다.≫(≪김정일위인상≫ 2)

백두산마루에 ≪정일봉≫이 솟아 있다. . . . 항일혁명정신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용암에 의해 혁명의 활화산으로 분화구를 터뜨린 백두산에서의 김정일영도자의 탄생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백두산의 아들을 맞이한 민족사적 대행운이었으며 백두에서 개척된 민족자주위업계승의 시원을 열어놓은 역사적 사변이었다. 백두의 웅장거창한 산체와 천변만화의 기상, 백두산 붉은기총대정신, 항일빨치산의 화약내 짙은 군복자락이 그분의 인간형을 규제한 혈통이고 자양분이고 요람이었다. 오늘의 복잡다단한 국제정치기류 속에서 세계를 매혹시키는 김정일영도자의 사상과 영도력, 덕망은 총체적으로 생의 출발을 기초한 이같은 백두산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백두산, 태양의 산

백두산은 우리 나라 3천리의 몸체를 형성하고 있는 조종의 산이요, 그 신성한 정기와 얼로 반만년 민족사를 엮어온 민족의 성산이며 민족의 독립과 진보, 민족운명개척을 추동해온 민족자주의 본산, 혁명의 성산이다. . . . 태양의 산, 이것이 겨레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백두산의 새로운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 겨레가 백두산을 태양의 산으로 간직하는 것은 조종의 산, 민족의 성산으로서의 백두산이 지니는 정신적 의미를 태양숭배의식으로 여과해 받아들인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민족자주의 본산, 혁명의 성산으로서의 백두산의 위상과 의미에 대한 심충적인 이해에서 연유되는 것이라 하겠다. 백두산은 민족의 독립과 자주적 발전, 민족의 존엄과 운명을 지켜주고 이끌어주며 개척해 나가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의 모습, 그 위대성을 고스란히 체현한 영산이기에 곧 태양의 산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백두산은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과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를 상징하는 산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 . . 백두산이자 김일성주석이시고 백두산이자 김정일영도자이시라는 민족의 운명개척을 위한 투쟁에서 형성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그러한 문제의식의 당위가 된다. . . . 백두산일대에서의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에 의한 반일민족해방투쟁으로 마침내 백두산은 민족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투쟁의 기치로, 사령탑으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다가온 것이다. . . . 1920년대 중엽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고 민족자력에 의한 반제자주항전의 닻을 올리신 김일성장군께서는 30년대 초에 항일무장투쟁노선을 제시, 1932년 4월 25일 백두산기슭 안도에서 민족의 첫 혁명무력인 반일인민유격대의 역사적인 창건을 선포하시어 장장 15성상 항일대전의 총성을 울리시었다. 백두산이 김일성장군 주도의 항일혁명투쟁의 발원지, 향도거점으로 자리잡혀진 것이다. 김일성장군께서 백두산에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사령부를 자리잡게 하신 것은 1936년 8월이었다. . . . 조선민족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며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을 따라 일제에 끝까지 항거할 것임을 만천하에 선언한 보천보전투를 위시한 대부대에 의한 국내진공작전들이 잇달았고 북부조선일대가 온통 지하조직망, 반유격구와도 같이 화했으며 바야흐로 삼천리에 조국광복의 기운이 서리서리 뻗어갔다. . . . 오늘의 복잡한 정세하에서 태양의 산으로서의 백두산이 지니는 시대적, 역사적 의미는 그 어느때보다도 부상되고 있다. . . . 백두산을 김정일영도자의 산이라 함은 김정일영도자의 위대성을 상징하는 산이라는 뜻이며 김정일영도자는 백두산적인 모든 것을 고스란히 체현하신 백두산형의 위인이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 . . . 붉다 못해 노랗고 빨갛다 못해 감빛인 태양은 백두산이 자기 몸 속의 이글거리는 용암을 천지의 맑고 깨끗함과 신비로움으로 멋지게 다듬어 무한한 우주공간을 향해 분출시킨 것만 같은 백두산태양이 아닐 수 없다. 그 태양의 붉은 빛을 받아 백두산은 열광하고 천리수해는 쏴쏴 붉은 파도를 일으킨다. 백두산태양의 그토록 거룩하고 위대한 빛과 열에 의해 어둠은 밀려나고 새날이 밝아온다. 자연의 경관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수 없는 시대적, 역사적 의미의 일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백두산해돋이는 다름 아닌 오늘날 백두산정신, 백두산지도력의 체현자로 공인 받으시는 김정일영도자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1998년 10월 어느날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백두산해돋이를 부감하시고자 백두산에 오르시었다고 한다. 원래 백두산해돋이는 백두산이 갖는 지구물리학적 특성으로부터 계절과 날씨 그리고 시간과 보는 장소에 따라 그 양상과 느낌, 멋이 다른데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이미 수차례의 검증을 통해 최선의 것으로 선택한 새벽시간에 그리고 위치로는 백두산정에서도 최고봉인 장군봉에 오르시어 10월의 뜻 깊은 해돋이를 부감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조선의 아침이 여기 백두산에서부터 밝아오듯이 주체혁명위업도 여기 백두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여기에 올라 저 붉게 타오르는 해돋이를 볼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기어이 완성해야겠다는 결심과 각오를 더 굳게 다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백두산의 해돋이를 사랑합니다.≫(≪노동신문≫, 1999 3 5)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바로 백두산해돋이의 이글거리는 화광, 누리를 물들이는 붉은 노을을 온몸에 받아 안으시며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신념과 의지, 열정을 더욱 뜨겁게 새기시는 것이며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백두밀림 속에 펄럭이던 주체의 붉은기를 더 높이 추켜드시는 것이다. . . .

≪정일봉≫

. . . 사람들은 위인이나 명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없는 것을 만들어서라도 출생의 비범성에 대해 강조한다. 예수를 메시아적 존재로 만드는 데서 소구유에서의 출생에 신적 의미를 부여하여 출발점으로 삼은 것처럼 가장 평범한 것일지라도 다각적으로 각색하여 마침내 비범성의 경지에 올려 세운다. 그러나 김정일영도자의 탄생설은 사실 그대로 고금동서에 있어본 적이 없는 비범성의 극치로서 그분의 위대성의 일단으로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역사에 자국을 남긴 많은 위인, 명인들과는 달리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민족의 성산, 우리 나라의 종주산,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탄생하시었다. 1998년 8월 말~9월 초에 이북을 방문한 ≪동아일보≫취재팀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백두산을 취재하고 돌아와 연속특집을 내었는 데 그중의 하나로 ≪정일봉≫과 백두밀영고향집도 소개되었다. ≪정일봉≫(해발고 1,790미터)은 백두산준봉들중의 하나로서 김정일영도자의 생가인 백두밀영고향집옆에 위엄높고 당당한 기상으로 솟은 봉우리이다. 화산분출시 비교적 점성이 큰 용암이 올라와 날카로운 칼벼랑바위를 형성한 채 그대로 굳어진 모양새이다. 그것은 하나의 자연경관일 수 없는 백두산아들로서의 김정일영도자의 위인적 풍격, 위대성을 그대로 상징하는 시대와 역사의 기념비적 봉우리가 아닐 수 없다. . . . 그것은 ≪정일봉≫으로의 명명이 김정일영도자를 충성으로 받들어 모시고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계승완성해 나가려는 확고한 의지에서 전체 민중이 발기한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 . . 70년대 초에 김일성주석께서 백두산지구에 꾸려놓은 곰의골밀영과 홍두산밀영, 지양개밀영을 돌아보시면서 백두산밀영을 찾을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시어 발굴대가 조직되어 찾는 사업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었다. 태풍으로 파괴된 밀영을 다시 꾸릴 것이 아니라 백두산밀영을 찾아 복원할 데 대한 김일성주석의 가르치심에 따라 강력한 발굴대가 조직되어 소백수골에 대한 전례 없는 규모의 조사발굴사업이 진행되었다. 김일성주석께서 친히 현지에서 이 사업을 지도하시어 마침내 수십년세월 이끼에 묻히고 비바람 속에 자태를 묻어온 백두산 사령부밀영지구가 발굴되고 특히 김정일영도자의 생가가 발굴되게 되었다. 김일성주석께서 1988년 8월 어느날 소백수골에 꾸린 백두산밀영의 김정일영도자의 생가를 찾으시었을 때 관계부문 일꾼들은 만경대와 더불어 백두밀영고향집을 혁명의 성지로 우러르면서 고향집을 지켜 선 역사의 봉우리를 김정일영도자의 존함으로 부를 데 대한 민중의 한결같은 요청들이 쇄도하고 있는데 대해 아뢰었다. 주석님께서는 그것을 김정일영도자를 받들어 어떤 복잡한 환경이 조성되어도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려는 민중적 지향으로 심중하게 받아들이시어 동의하시었으며 그때로부터 지난날 장수봉으로 불리우던 역사의 봉우리는 백두산의 주인, 절세의 위인의 존함으로 불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 . . 백두산이 이에 화답하여 신비의 기운을 뻗치었다. 1942년 2월 15일 분화구를 터뜨려 대일본제국을 화산재로 묻어 버리려는 듯 백두산은 옹근 하루동안 뇌성을 울리고 번개를 치며 진동했다. 그러던 것이 2월 16일 새벽을 맞아 신비의 정적이 깃들기 시작하더니 미구에 붉은 태양이 솟아 올랐다. ≪정일봉≫은 그 어떤 사변의 도래를 예언하듯 유다른 정기를 뿜고 솟아 있는데 마침내 밀영의 수수한 귀틀집에서 백두산태양의 해돋이를 알리는 듯 힘찬 고고성이 울려 퍼졌다. 김정일영도자께서 탄생하신 것이다. 백두산이 자기의 분신을, 아들을 안아 올린 이날의 백두산기상기후는 천기조화의 전설로 널리 회자되었는 데 당시 날씨관계를 수록한 ≪천기도≫나 ≪기상월보≫, ≪기상연감≫ 등에 따르면 15일밤까지 동북지방에 놓여 있던 저기압권이 16일아침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백두산을 중심으로 북부내륙지대에서 형성된 1,029헬타파스칼의 고기압기류에 의해 밀려나면서 기상에서의 급변을 가져왔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 . . 혁명의 활화산, 백두산에서 민족의 정기를 타고 탄생하셨으니 백두산의 분신이요, 민족해방투쟁의 수뇌부가 있는 백두산밀영지에서 탄생하시었으니 혁명의 산아요, 항일빨치산대장군을 양친으로 하여 탄생하시었으니 빨치산의 아들이라는 김정일영도자의 탄생환경지수는 그분으로 하여금 그러한 위상의 적임인물로 되게 하는 기본요건이었다. . . . 김일성주석에 의해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이 계승완성의 담보를 안았으니 그것은 반만년 민족사의 대통운이고 민족의 창창한 앞날을 내다보게 하는 행운중의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 . . 그래서 백두광야에서 10여성상 혈투의 고군분투를 치르어온 항일빨치산들은 김정일영도자의 탄생을 백두에서 개척된 자주위업의 창창한 전도를 열어 나갈 계승자의 강탄으로 받아들여 그분께 높이 받들어 모셔야 할 위인의 성함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관습을 따라 ≪백두광명성≫, ≪백두태양성≫ 등의 별칭을 드리었다. 백두의 정기를 그대로 지니고 백두산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백두산의 위인으로 대성하시어 조국의 광복과 밝은 앞날을 안아올 김일성장군과 꼭 같은 민족의 찬란한 태양이 되어 달라는 소중한 기원이 담긴 그 별칭은 결코 범인이 갖게 되는 아명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비범한 위인께 드리는 존명, 존칭이 아닐 수 없었다. . . . 사료에 의하면 1980년대 후반기부터 전면발굴이 진행되어 이북의 도처에서 수만점의 항일혁명투쟁시기의 구호나무들이 발견되었는 데 여기서 김정일영도자의 탄생을 널리 홍보하고 민족의 대통운으로 자랑하며 그분께 민족의 밝은 앞날을 기탁하는 내용의 구호나무들이 상당비중을 차지했다고 한다. ≪아 조선아 백두산에 백두광명성 탄생≫, ≪백두산 태양성 솟았다≫, ≪동포들이여 백두산에 독립백두성 솟았다≫, ≪조선아 백두성탄생을 만방에 자랑하자≫, ≪조선아 자랑하라 백두의 광명성≫,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 그 태양빛 이어갈 백두광명성≫, ≪백두산에 김일성장군의 계승인 백두광명성 탄생≫…… . . . 백두밀영고향집은 사회주의 조선과 민족의 융성번영을 밑받침하는 귀중한 만년재보이고 김정일영도자에 대한 충실성교양의 거점이며 민족의 운명과 주체혁명위업계승완성의 역사적 뿌리이고 추동력이라는 것이 김일성주석의 시각이었다. 그래서 주석님께서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에 더 큰 민족사적, 시대적 의미를 부여하시어 백두산밀영의 발굴복원을 자신께서 직접 주도하신 것이며 언제나 마음속 깊이 백두밀영의 수수한 통나무귀틀집 김정일영도자의 생가와 그를 지켜 선 역사의 봉우리 ≪정일봉≫을 소중히 안고 계시었다. . . . 1992년 2월 김정일영도자의 탄생 쉰돌을 앞둔 전야에는 백두산에도 눈이 많이 왔을 것이요, 50년전 그해에도 많은 눈이 내렸드랬소, 나는 요즈음 백두산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금할 수 없소, 백두산의 설경이야말로 장관이요, 흰눈을 떠이고 서 있는 정일봉도 가보고 싶고 소백수의 물소리도 듣고 싶소, 그리고 백두밀영의 쩡한 샘물도 마셔보고 싶소, 김정일동지는 소백수의 물소리와 총포성을 들으면서 자라고 밀영의 샘물을 마시면서 군복자락에 안겨 성장했으니 그는 확실히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 난 백두산의 아들이요, 이렇게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 . . 날이 갈수록 백두산이 겨레의 마음속에 더욱 깊숙이 뿌리내리고 가까이 다가오면서 우리 나라는 백두산을 머리로 하고 백두대간을 척추로 하여 삼천리의 몸체를 이룬 백두의 나라이고 우리 민족은 백두산에서 일어번지는 신성한 정기를 민족자활의 생명력으로 하는 백두산민족이라는 자긍심이 높아가는 것은 다름아닌 ≪白頭山頂正日峯≫에 연원을 둔 것이리라.

혈통

. . . 혈통은 단순이 골육관계의 핏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의미의 핏줄을 뜻한다. 총체적으로 애국과 매국, 혁명과 반혁명의 어느 갈래를 이어 받았는가에 귀착되는 문제인 것이다. 김정일영도자는 백두의 민족자주정신에 뿌리를 둔 애국의 혈통, 혁명의 혈통을 이어 받으시어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혁명가로의 성장과 품격형성의 과정을 톺으신 희세의 위인이시다. . . . 김일성주석께서는 이 김씨가문의 가풍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우리 집안 가풍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것은 나라와 백성이니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초개와 같이 바친다는 것, 한마디로 말하여 애국, 애민, 애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7권) . . . 고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께서는 청빈하면서도 의절이 강한 가문의 후손으로 남달리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높으시고 봉건관료들과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항거정신이 강하시었다. 1866년 8월 대동강으로 미국해적선 ≪셔먼≫호가 침입해 왔을 때 만경대와 인근 민중들을 선동하여 밧줄을 늘여 대동강을 막고 나뭇단을 가득 실은 매생이 여러척을 연결시켜 불을 지른 다음 띄워 내려보내어 해적선이 마침내 화염에 쌓여 침몰되게 한 조직자의 일원이시다. 증조할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과 증조할머님이신 이보익여사 역시 일편단심 나라를 위하는 뜨거운 마음을 간직하시고 한생을 꿋꿋이 살아오신 분들이시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왜놈들의 위협에도 조상전래의 성을 쓰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당당히 맞서 자신들의 성과 이름을 끝까지 고수하시었으며 일제의 주구들이 돈뭉치를 쥐고 찾아와 회유하며 손자(김일성장군)의 뜻을 바꾸게 하는 데 협력할 것을 강박할 때도 당당히 뿌리치셨다. . . . 김정일영도자의 할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은 우리 나라에서 반일민족해방운동이 민족주의 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 운동에로 방향전환하고 있던 역사적 시기에 그 선구자적 역할을 하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시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시다. 반일지하혁명조직인 조선국민회의 조직자, 지도자로서 적극적인 반일투쟁을 벌이시던 나날에 두차례에 걸쳐 체포되어 감옥생활을 하셨는가 하면 장백, 무송, 임강 등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반일독립군 무장대의 통합과 압록강을 넘나드시며 지하혁명조직들의 활동을 지도하시던중 일제교형리들로부터 받은 고문과 투쟁 속에서 입은 동상의 후과로 자제분들에게 조선독립의 유훈을 남기신채 너무도 일찍이 별세하시었다. . . . 할머님이신 강반석여사는 남편을 따라 나선 수많은 독립운동자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은 물론 우리 나라 반일여성운동의 시원을 열어놓으신 공산주의 여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위대한 여성혁명가이시며 자제분들을 혁명의 길로 떠밀어주시고 보필해주신 가장 적극적인 방조자이시고 조선의 어머니이시었다. 작은 할아버님이신 김형권선생님은 1930년 8월 김일성장군께서 조직하신 조선혁명군의 무장소조를 이끄시고 국내에 진출하여 파발리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본순사부장 ≪오빠시≫를 처단한 열렬한 혁명투사이시다. 선생님은 김일성장군께서 조직지도하신 초기 항일무장소조에서 맹활약하던중 일제에 체포되어 15년중형을 언도받고 서울마포감옥에서 영웅적 생애를 마치시었다. 삼촌 김철주선생님 역시 김일성장군의 지도밑에 초기 항일무장투쟁에 발 맞추어 공청활동과 중국인 반일부대와의 통일전선사업을 하시다가 왜놈들과의 격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신 열혈의 전위투사이시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이 애국, 항일혁명 가문의 5대장손으로 탄생하신 것이다. . . . 일제의 식민지폭압으로 인한 민족수난의 재난이란 재난, 아픔이란 아픔을 다 겪는 속에서도 애오라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독립의지로 모두가 반일항전의 길에 뚜렷한 자국을 남긴 희세의 애국자, 혁명가의 가문이 김정일영도자의 외가이다. 일찍이 독립운동에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낯설은 이국땅에서 임종을 맞게 되었을 때 자녀들을 불러앉히고 조선독립의 길에 나서라는 유언을 남기고 간 외할아버님, 그 유언대로 자식들을 반일애국의 길에 내세우고 떠밀어 주시다가 일제의 ≪토벌≫을 당해 총칼에 찔리고 불에 타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을 거두지 않으면 안되었던 외할머님, 지하공작중 적과 조우하여 장렬하게 전사한 맏외삼촌과 유격근거지 항일아동단 나팔수로 근거지민중들에게로 향한 일제의 대병력을 유인하고 장렬히 전사한 작은외삼촌 …… 김정일영도자의 친가나 외가는 이렇듯 하나같이 금세기 우리 민족의 운명의 무게를 가장 무겁게 걸머진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문인 것이다. . . . 오로지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민족해방전장의 대장군분들을 양친으로 하여 빨치산의 아들로 탄생하신 김정일영도자께서만이 투쟁가가 아닐 수 없는 자장가, 실제적인 총포성을 자장가로 들으시며 생의 출발을 떼신 것이다. 사령부귀틀집의 창공높이 나부끼는 붉은 깃발, 출전대오의 앞장에서 펄펄 나부끼는 붉은 기폭, 어디서나 대하게 되는 각종 총기류들…… 김정일영도자의 성장의 갈피갈피는 이렇듯 총과 붉은기의 세계였으니 그분께서는 그 총과 붉은기로 대표되는 민족자주위업에 동참한 꼬마 빨치산장군이시었다. 어리신 김정일영도자의 넋에 총과 붉은기 정신을 층층히 장약시켜 주는 데서 가장 큰 역할을 하신 분은 김정숙여사이시었다. 여사께서는 서너살안팎의 어리신 자제분께서 늘 총을 익히고 화약내와 총성에 숙달되도록 관심을 돌리셨다. 자제분께서 나무로 만든 장난감권총으로 왜놈 잡는 놀음이 성차지 않아 진짜총을 요구해 나서시자 항일무장대오에 세우는 심정으로 묵직한 소형 권총을 안겨 주시었다. 그러시고는 백두의 설한풍 속에서 몸도 마음도 무럭무럭 커가는 자제분의 작은 손에 권총을 쥐어 주고 그것을 자신께서 받쳐들고 방아쇠를 당겨 총성을 울리도록 하시었다. . . . 어리신 김정일영도자의 넋 속에 항일의 혈통이 뿌리내리도록 스승이 되고 교육자가 된 것은 또한 항일빨치산들이었다. . . . ≪. . . 김정일이 어려서부터 대가 바르고 배짱이 센 품성을 지닐 수 있은 것은 선천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중요하게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정의롭고 신념이 강한 투사들의 품에서 투쟁과 생활의 참다운 진리를 배우며 아무런 구김살도 없이 씩씩하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김일성,≪세기와 더불어≫ 8권) . . . 광복직후 김일성주석께서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오랫동안 수형생활을 하며 일제의 교형리들에 의해 육신을 망그러뜨린 항일투사 박달을 저택가까이에 두시고 돌봐 주고 계셨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문병차로 자주 자제분을 앞세우고 박달의 침상을 찾으셨다. 자제분께서 혼자 찾으시는 경우도 많았다. 박달은 어리신 김정일영도자의 손을 꼭 잡고는 조선의 창창한 미래를 본다며 눈물을 머금곤 하였다. 그리고는 끝없는 이야기의 세계를 펼쳐 갔다. 김정일영도자의 동심을 저 백두산의 전장에로 이끌어 항일혁명투쟁사의 현장에 세웠다. 어느날 자제분을 앞세우고 박달의 침상을 찾아 반나절나마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신 여사께서는 자제분을 향해 이렇게 당부하시었다. ≪너의 가슴에 항일유격대의 혁명정신을 새겨넣어 주신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드려라. 이 세상에 항일유격대의 혁명정신처럼 귀중한 것은 없다. 그 정신만 있으면 우리는 못해 낼 일이 없고 무서울 것이 없다.≫ ≪어머니, 잘 알겠습니다.≫(≪민족의 어머니 김정숙여사≫, 동방사) . . .

 

2. 소백수 굽이쳐 흐르고 주체위업은 전진한다

 

김일성주석께서 김정일영도자의 위대성에 대하여 하신 말씀

≪나는 김정일동지와 같은 후계자를 둔 것을 커다란 자랑으로 생각합니다.≫(≪김일성저작집≫ 제44권)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김정일동지가 당과 국가, 군대의 전반사업을 현명하게 영도함으로써 영도의 계승문제가 빛나게 해결되었습니다.≫(≪김일성저작집≫ 44권)

김정일동무를 받드는 데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앞장에 서 있습니다. …… 항일혁명투사들이 그를 수령의 후계자로 추대했다는 것은 곧 군대가 그를 민족의 영수로 내세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8권)

≪우리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전원회의에서는 김정일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자질과 그가 이룩한 혁명업적에 대한 높은 평가인 동시에 그의 영도밑에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려는 우리 당과 인민의 확고한 의지의 표시로 됩니다.≫(≪김일성저작집≫ 44권)

≪우리 혁명의 대가 굳건한 것은 김정일동무가 항일혁명의 불길 속에서 나서 자란 민족의 영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만민의 지지와 총애를 받는 인민의 영도자입니다. 빨치산의 아들로 태어나 군대와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임 속에서 수령의 후계자가 되고 민족의 영도자가 된 김정일동무의 위업은 앞으로도 필승불패할 것입니다.≫(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8권)

김정일동지가 있기 때문에 조선의 사회주의는 지구가 깨어지고 하늘이 무너져도 끄떡없이 전진할 것입니다. 김정일동지는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완성해 갈 것입니다.≫(≪노동신문≫, 1999 3 19)

김정일동지가 우리의 혁명위업을 훌륭히 계승해 나가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도 모든 일이 잘되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되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 혁명의 전도는 참으로 양양합니다.≫(≪김일성저작집≫ 44권)

백두밀영고향집 앞으로는 사시장철 솟구쳐 흐르는 벽계수가 있다. 백두산이 천지연의 맑은 샘줄기를 여기에 터쳐놓은 듯 신비의 저력으로 끊임없이 솟구쳐 흐르는 이 소백수의 물결에는 백두산에서 시원하여 역사의 망망대해로 굽이쳐 가는 주체혁명위업의 줄기찬 기상이 한껏 어려 있다. 소백수 벽계류의 그 용용함은 백두산이 키운 민족의 영수 김정일영도자에 의한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과 그 승리적 전진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백두산의 정기어린 맑고 억센 소백수의 흐름과 더불어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백두산이 지닌 정신적 의미를 최상의 높이에서 체현하신 백두산의 아들, 민족의 아들로,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성장하시었다. . . .

후계자

소백수의 줄기찬 흐름과 더불어 주체혁명위업은 멀리도 전진했다. 조국광복과 건당, 건국, 건군의 새 조국 건설, 반미전쟁에서의 역사적 승리와 전후복구건설 그리고 사회주의 제도의 확립, 사회주의 공업국가로의 전변…… 김정일영도자께서도 이 시대적 변혁의 격류 속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하시었다. 그분께서 직업적 혁명가로 등단하시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집무를 보신지도 10년이 되는 1970년대 중엽에 이르러 조선로동당앞에는 주체혁명위업 계승문제를 올바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성숙된 요구로 제기되고 있었다. . . . 조선로동당은 이러한 시대적, 역사적 요청에 부응하여 혁명위업계승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어느 사회주의 집권당의 경우와도 근본적으로 다르게 수령생존시에 후계자의 자질, 풍모, 치적을 완벽하게 갖춘 인물을 내세우고 추대이후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세우는 등 독창적인 해결의 길을 선택하였다. 조선로동당은 김정일영도자를 주체혁명의 탁월한 수령이신 김일성주석의 유일한 후계자로 공식추대함으로써 후계자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였던 것이다. . . . 후계자문제해결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당안에서는 물론 전체 민중 속에서 김정일영도자를 김일성주석의 유일한 후계자로 추대할 것을 요청하는 붐이 일어났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는 온 나라의 당조직들과 정권기관, 행정경제기관, 근로단체, 인민군대와 사회안전기관, 과학, 교육, 문화, 출판보도 기관, 공장, 기업체, 협동농장들에서 김정일영도자를 후계자로 높이 추대할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들과 편지들이 쇄도하고 있었다. . . . 훗날 김일성주석께서는 김정일영도자에 대한 민중의 절대적 신뢰와 지지에 대해 이렇게 피력하시었다. ≪우리 인민은 수령의 사상체계와 영도체계를 확립하는데서 김정일동무가 발휘한 비범한 수완과 혁명적 원칙성, 수령의 노선과 구상을 옹호하고 실현하는 데서 그가 보여 준 불굴의 의지와 정력, 고결한 충성심과 효성에 경탄하였으며 김정일동무야말로 수령의 사상과 의도대로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향도하고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영도자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8권) 바로 이러한 민심성향, 시대와 역사의 요청과 의지에 받들려 조선로동당은 1974년 2월 13일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전원회의를 소집하고 김정일영도자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하고 그분께서 김일성주석의 유일한 후계자임을 공식 선포하는 결정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김정일영도자의 후계자선출과 관련하여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항일혁명투사들이었다. . . . ≪항일혁명투사들김정일동무를 수령의 유일한 후계자로 내세운 것은 그가 당과 국가, 군대를 영도해야 민족의 장래가 담보되고 백두산에서 개척한 주체의 혁명위업이 한치의 편차도 없이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발전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김일성, ≪세기와 더불어≫ 8권) . . .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백두산에서부터 혁명해 온 우리 항일투사들은 다같이 늙어가고 있으니 수령님의 뜻을 100퍼센트로 체현하고 영도자의 풍모를 완전히 갖추신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당의 수위에 높이 추대할 것을 제기한다는 것,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0대에 벌써 혁명의 길에 나서시었고 20대에 항일유격대를 창건하시었으며 30대에 조국을 광복하시고 당과 민중을 현명하게 이끄시었는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연세가 광복된 그때의 위대한 수령님과 같은 30대이라는 것,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당의 수뇌부에 추대하는 것은 혁명의 요청이고 전체 민중의 열망인데 젊고 젊지 않은 것이 무슨 상관이며 그 젊음이 오히려 후계자로서의 첫째 가는 장점으로 된다는 것, 혁명의 운명문제이고 그 장래에 관한 문제이니 혈육관계로 주저하시지 말고 주체혁명위업의 혈통을 잇는다는 거시적 입장에서 어서 빨리 당과 민중의 의사를 받아들이셔야 한다는 것이 항일의 노투사들의 주장이었다. . . . 김일성주석께서는 당전원회의에서 노항일혁명투사들과 정치위원들의 거듭되는 절절한 제기를 수렴하시어 마침내 김정일영도자를 주체혁명위업의 후계자로 추대하는 데 동의하시었다. . . . 그로부터 6년후인 1980년 10월에 소집된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당총비서이신 김일성주석과 함께 당대회주석단에 공식 등단하시어 역사적인 당대회를 지도하시었으며 전체 당원들의 한결같은 염원과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높이 추대되시었다. . . . 1980년 10월 6차당대회가 있은 후 어느날 당과 국가의 책임간부들이 김정일영도자께서 다시금 당의 수뇌부에 추대되신 데 대해 열렬한 축하와 영광을 드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뜻 깊은 자리에서 김정일영도자께서는 자신의 소신을 이렇게 피력하시었다. ≪나는 앞으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나는 또한 수령님께서 창건하신 우리 당을 영원히 수령님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며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당, 전국, 전민을 힘있게 조직동원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성하는 것이 나의 총적 목표입니다. 이것이 수령님앞에, 당앞에, 동지들 앞에 다지는 나의 맹세입니다.≫(≪은혜로운 사랑의 태양≫ 2) . . . 김일성주석께 있어서 그것은 최상의 기쁨이고 복중의 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께서 누리시는 후계자복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김정일영도자를 높이 평가하시었다. 1992년 2월 김정일영도자의 탄생 쉰돌을 앞둔 때에도 일꾼들에게 우리가 백두산에서부터 마련해 온 우리 혁명의 재부중에서 제일 크게 자랑할 것은 후계자문제를 잘 해결한 것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김정일동지는 문무충효를 겸비한 나의 유일한 후계자입니다. 나는 그를 매우 사랑하며 높이 평가합니다.≫(≪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 5부) . . .

명맥

후계자, 그것은 영광의 정상이기 전에 책임의 최정상이다. 나라와 민족, 민중의 운명이라는 엄청난 무게가 실려진 사령탑의 위치이다. . . . 그분의 생애와 활동을 살펴보면 어린 시절부터 항일혁명전통을 나라와 민족의 귀중한 재보로 보시고 옹호고수해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이켜 보면 그분의 혁명활동은 사실상 항일혁명전통의 옹호고수로 시작되고 그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유년시절인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벌써 학우들 속에서 ≪김일성장군의 약전연구소조≫를 뭇고 김일성주석의 위대성으로 정신무장하기 위한 첫 봉화를 드신 것이라든가 열네살의 어리신 나이에 백두산에로의 답사길을 앞장서 개척하시어 전후 반당수정주의분자들의 책동으로부터 당과 수령의 사상과 권위, 업적을 옹호보위한 것이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하시면서 문학예술분야에서 항일혁명문학의 재현, 수령형상분야의 개척 등으로 당선전사업이 철두철미 수령의 사상과 영도 업적을 핵으로 하는 혁명전통내용으로 일관되게 한 것 등이 이를 극명하게 말해 준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 백두의 혁명전통계승에서 선차적인 주목을 돌리신 것은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심화발전시켜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혁명과 건설이 진척되어 나가도록 하신 것이다. . . . 이러한 높은 사명의식으로부터 그분께서는 일찍이 노동자계급의 100년사상사를 총결산하는 3년여에 걸치는 재평가기간을 거쳐 마침내 후계자로 추대되신 직후인 1974년 2월에 김일성주석의 혁명사상을 정식화하신 데 기초하여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할 데 관한 구호를 추켜드시고 그것을 조선로동당의 최고강령으로 선포하시었다. 조선로동당은 당 제6차대회에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주체혁명의 총적 임무로 선포하고 그 실현에서 나서는 강령적 과업들과 수행방도를 전면 밝히었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는 한편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라는 슬로건을 제시하시어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를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개조하며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수령께 끝없이 충실한 충신으로 준비시키기 위한 투쟁을 적극 추동해 나가셨다. . . . 김정일영도자께서 백두의 혁명전통의 옹호고수, 계승발전에서 중시하신 것은 또한 항일혁명사적물들을 만년대계의 재보로 보존관리하며 전민이 백두의 혁명정신을 지니고 항일유격대식으로 살아 나가도록 하신 것이다. 백두의 혁명정신은 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옹위하는 수령결사옹위정신이며 그 어떤 난관도 맞받아 뚫고 나가는 돌격정신이며 억천만번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싸우는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이며 자기 손으로 나라를 찾고 사회주의 낙원을 세우겠다는 자주의 정신이다. . . . 1998년 9월 11일자 ≪동아일보≫는 방북취재팀의 집중편집기사에서 ≪백두산 항일구호나무 철저히 보존≫이라는 제하로 현물로 본 구호나무보존실상을 이렇게 평했다. ≪백두산일대에서 활동했던 항일유격군의 전적지보존관리에 쏟은 북한당국의 노력은 치밀하고도 철저했다. 그 손상을 막기 위해 8~11미터높이의 두꺼운 6각형 전도유리로 씌워 보존, 밤에는 두꺼운 휘장으로 전체를 감싼다. 내부는 순도 99%의 아르곤으로 채워져 있고 섭씨 20도의 상온을 유지하기 위해 컴퓨터시설을 갖춘 중앙통제소에서 관리한다. 부근 나무가 쓰러져 구호나무를 훼손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고목들을 철봉으로 떠받쳐 높고 있으며 벼락피해를 막기 위해 피뢰침까지 설치했다. 산불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곳곳에 50여개의 스프링클러를 설치, 주변 10리에 폭 1백여미터는 나무를 완전히 벌채해 방화선을 쳐 놓았다. 이런 철저한 관리덕분에 50년이 지난 오늘 항일유격군들이 나무껍질을 벗긴 뒤 몸체에 먹으로 적은 ≪타도제국주의≫ 등의 구호는 육안으로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 구호나무뿐이 아니다. 김정일영도자의 직접적인 구상과 지도로 왕재산과 삼지연, 백두산 등 온 나라의 혁명전적지, 사적지들마다에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의 동상이 모셔지고 대노천박물관이 꾸려졌으며 이르는 곳마다에 항일혁명투쟁을 상징하는 대기념비들이 일떠서 온 나라는 그야말로 혁명전통교양의 전당으로 꾸려졌다. . . . 김정일영도자의 혁명전통 옹호고수, 계승발전의 의지는 혁명의 원로들인 항일혁명투사들을 극진히 존대하는 숭고한 도덕의리로 표현되었다. . . . 평양교외의 대성산 주작봉마루에는 김정일영도자의 항일혁명열사들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의 상징이 아닐 수 없는 혁명열사릉이 있다.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된 능대문에 들어서서 화강석돌계단으로 약 200미터쯤 올라 기념문주를 통과하여 다시 돌계단으로 더 오르면 항일혁명투쟁시기의 무장투쟁과 지하투쟁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부주제군상들이 있는 군상군이 펼쳐 진다. 혁명의 붉은기를 숭엄하게 드리우고 희생된 전우들을 경건히 추모하는 두편의 추모군상이 고결한 자태를 드러내고 종합화환진정대, 김일성주석의 친필비와 항일혁명투사들의 불멸의 업적과 위훈을 후세에 길이 새기는 헌시비가 거연히 서 있는 교양마당을 거쳐 항일혁명열사들의 동상이 열 지어 선 반신상구역이 드넓은 부지에 전개되어 있다. 능의 정상에는 조형적으로 우아하게 형상된 햇살을 배경으로 세차게 휘날리는 붉은 깃발이 부각되어 혁명열사들의 반신상들을 숙연히 감싸안고 있다. 항일혁명열사들을 이렇듯 붉은기와 더불어 영생의 언덕에 높이 세워주신 분이 김정일영도자이시다. . . . 김일성주석께서는 김정일영도자의 이러한 노혁명가들에 대한 존대의 의미를 이렇게 평하시었다. ≪김정일동지가 나와 함께 투쟁하여 온 혁명가들을 존경하고 내세워 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마련한 혁명전통을 계승하여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려는 그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혁명하는 사람은 언제나 혁명의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하며 혁명전통을 순결하게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혁명전통을 계승해 나간다는 것이 별것이 아닙니다. 혁명위업을 개척한 혁명선배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사상과 업적을 고수하고 빛내어 나간다면 그것이 곧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혁명선배들을 어떻게 대하며 그들이 이룩한 혁명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것은 혁명의 참다운 후계자와 배신자를 가르는 시금석으로 됩니다.≫(≪김일성저작집≫ 44권) . . .

주체혁명위업은 전진한다

1993년 4월 어느날 미국 윌리암 캐리대학 고려연구소 조덕천소장은 평양을 방문하고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았다. 그날 장시간에 걸치는 담화가 진행되었다.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에서 주석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발표하신 직후여서 자연히 전민족대단결과 관련한 문제들이 주요 화제에 올랐다. 손님은 김일성주석께 통일된 연방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시기를 바란다는 진정도 말씀 드리고 민족통일과 관련한 해외교포의 소신도 피력하면서 그에 대한 주석님의 고견도 받았다. 그는 주석님께 자기의 심중을 터놓으면서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발표한 것과 김정일영도자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한 것은 국내외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씀 드리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그의 소신을 감사히 받아들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국가의 중요한 사업들을 김정일동지에게 하나하나 넘겨주고 있습니다. 국방위원회 위원장과 같은 중책을 맡아 수행하자면 밤을 새워가면서 긴장하게 사업해야 하는데 이제는 내가 나이가 많다 보니 그렇게 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일동지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넘겨주었습니다. 김정일동지는 지금 지칠줄 모르는 정력과 패기를 가지고 매일밤을 새우면서 당과 국가의 중요한 사업들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습니다.≫(≪김일성저작집≫ 44권) . . .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혁명위업수행에서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군대와 국가기구체계에서의 자신의 직책을 고스란히 넘겨주시어 당, 국가, 군대의 최고영도자로서의 김정일영도자의 위상을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공고히 하는 데 마음쓰시었다. 김정일영도자께서 1991년 12월에 소집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전원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신 데 이어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에 추대되신 것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김정일영도자께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신 것은 영도자님의 자질과 이루어놓으신 혁명치적에 대한 시대와 역사의 높은 평가인 동시에 그분의 영도밑에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려는 당과 민중의 확고한 의지의 실현이었다. 김정일영도자께서는 당과 민중의 이러한 신뢰에 최선으로 보답하시었다. 그분께서는 90년대의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로동당과 군대를 틀어쥐시고 제국주의 새 전쟁 도발책동과 반사회주의 고립압살책동, 수년간의 자연재해 등으로 겹쌓인 난관과 시련을 과감히 이겨내고 사회주의와 민족의 운명을 옹호고수하시었으며 주체사회주의의 불패성과 위력을 만천하에 과시하시었던 것이다. 이 나날들에 김정일영도자께서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 주체혁명위업완성의 주력군으로 내세워 주시고 그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영도하신 선군정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인민군대는 우리 혁명의 기둥이며 주력군입니다. 나는 인민군대를 틀어쥐고 오늘의 준엄한 난국을 타개하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김정일영도자의 의지였다. 그분께서는 인민군대만 강하면 그 어떤 천하대적이 덤벼들고 천지풍파가 닥쳐와도 두려울 것이란 없고 내 나라, 내 조국을 세상에서 가장 부강하고 살기 좋은 강성대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지니시고 어려울수록 군대강화에 힘을 넣으시었다. 그분께서는 군대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양시켜 혁명의 수뇌부와 사회주의를 견결히 옹위하고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걸린 문제도 풀어 나가시었다. 그리고 인민군대가 혁명적 군인정신과 같은 혁명정신, 투쟁기풍, 생활기풍 등의 본보기를 창조하도록 하시고 전국, 전민이 인민군대를 따라배우게 하여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군대와 민중의 사상과 행동의 통일체로서의 군민일치를 핵으로 하는 이북사회의 밑뿌리가 그 어느때보다도 튼튼히 다져져 주체혁명은 유례없는 난관과 시련을 이겨내고 억세게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 . . 김일성주석서거 이후 김정일영도자를 당과 국가의 최고직책에 높이 추대하여 모시고 김일성주석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려는 것이 이북민중의 한결같은 지향이고 의지였다. 1997년 9월 21일 조선로동당 평안남도대표회가 소집되고 여기서 도안의 전체 당원들과 민중들의 한결같은 의사와 염원을 반영하여 김정일영도자를 조선로동당의 총비서로 추대할 데 관한 결정서를 채택했다. 김정일영도자의 선대수령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심에 의해 3년여에 걸쳐 미루어져 오던 전당적 지향의 대하의 둑을 터뜨려 놓은 일이기라도 한 듯 이를 계기로 각급 당조직들에서 연이어 대표회들이 열리고 꼭 같은 결정들이 채택되었다. 조선로동당창건 52돌 전야인 10월 8일에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이러한 전당적인 추대결정상황을 종합하여 김정일영도자께서 조선로동당의 공인된 총비서로 추대되시었음을 공식선포하는 특별보도를 발표하였다. 한해후인 199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새로운 국가지도기관이 구성되고 김정일영도자께서 나라의 최고직책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시었다. . . . 특히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지위와 권능을 종전과 달리 ≪나라의 정치, 군사, 경제 역량의 총체를 통솔지휘하여 사회주의조국의 국가체제와 인민의 운명을 수호하며 나라의 방위력과 전반적 국력을 강화발전시키는 사업을 조직영도하는 국가의 최고직책이며 우리 조국의 영예와 민족의 존엄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성스러운 중책≫(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한 김영남 대의원의 추대연설)으로 격상시킴으로써 당과 국가, 군대의 전반사업에 대한 최고영도자로서의 김정일영도자의 유일적 영도체제가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다져지게 되었다. 이로써 이북에서는 수십년을 헤아리는 주체혁명위업의 승계의 역사에서 후계수령의 공식적 추대와 그 지위와 역할을 담보하는 제도장치에 이르기까지 승계시스템이 완비되기에 이르렀다. . . . 새로 보충된 헌법의 서문에는 이렇게 지적되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은 조선로동당의 영도밑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높이 모시며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 나갈 것이다.≫ 김일성주석을 생존시와 다름없이 영원한 수령으로, 국가주석으로 높이 모시고 김일성주석의 혁명위업을 한치의 편차도 없이 꿋꿋이 이어 나가 주체혁명위업을 기어이 완성하시려는 김정일영도자의 세계를 향한 정치선언이었다. 선대수령의 위업에 대한 충성의 맹약을 법조문으로 명문화하여 최대국시, 정치비전으로 내세우는 이러한 정치행정에서 세계는 후계수령으로서의 김정일영도자의 위대성의 극치를 보았으며 주체혁명위업의 창창한 앞날을 보았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일찍이 이렇게 예언하시었다. ≪인민의 영도자로서의 품격을 훌륭히 갖추고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는 김정일동지가 우리의 사상과 영도를 믿음직하게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모든 일이 잘되어 나갈 것이며 우리 혁명은 어떤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활력 있게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김일성저작집≫ 44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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