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26일

통일여명 편집국

 

 

조선아 너를 빛내리!

 -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 2

통일여명 편집국 6-1-26

 

 

차 례

 

1. 원대한 포부를 안으시고

용남산마루에서 / 민중을 위한 사색과 탐구 / 기계도 목도도 하시며

2. 학우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주시어

사상과 지성을 겸전한 인재로 / 삼국통일과 구석기시대 문제

고쳐주신 나와 ≪고전병≫

3. 대학생들을 정치활동가로

청년사업에 활력을 / 당정책의 열렬한 선전자, 옹호자로 / 동지애의 서사시

4. 민중을 위하시는 마음

저도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입니다 / 된장단지와 간장병

5. 넘쳐흐르는 혈육의 정

남녘을 생각하시며 / 해외동포도 우리 민족

 

1. 원대한 포부를 안으시고

 

용남산마루에서

. . . 1959년 1월 하순 그분께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님을 모시고 쏘련을 방문하시었을 때의 일이다. 참관일정에 따라 모스크바종합대학에 가셨을 때 그 나라 안내자는 자기 대학의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면서 김정일영도자님께서도 여기 와서 공부하시라고 하였다. 으레 자기 대학에 와서 유학하시리라 믿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의 청을 단호히 거절하시면서 그에게 우리 나라에도 훌륭한 김일성종합대학이 있다,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 하신 이 말씀 속에는 실로 많은 것이 담겨져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시겠다는 것은 위대한 주체사상과 그 구현인 조선노동당정책이 꽃피고 있는 이북의 현실에 기초한 학문을 하시겠다는 그분의 투철한 자주의식의 발현이었다. . . . 그분께서는 대학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용남산마루로 걸음을 옮기시었다. . . . 그분께서는 격정을 누르시며 배움의 성지, 용남산마루에 오르니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배워 조선혁명을 책임진 주인이 되리라는 결심이 더욱 굳어집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그러시더니 북받치는 격정을 참을 길 없으신 듯 벅찬 심중을 시에 담아 읊으시는 것이었다. ≪해솟는 용남산마루에 서니 / 삼천리강산이 가슴에 안겨온다 / 이 땅에서 수령님 높은 뜻 배워 / 조선혁명 책임진 주인이 되리 / 아, 조선아 너를 빛내리 // 위대한 수령님 높이 모시고 / 주체의 한길로 억세게 나아가리 / 사나운 풍랑도 폭풍도 헤쳐 / 조선을 이끌고 미래로 가리 / 아, 조선아 너를 떨치리 // 누리에 빛나는 태양의 위업 / 대를 이어 해빛으로 이어가리라 / 주체의 붉은 노을 지구를 덮을 / 공산주의 그날을 앞당겨오리 / 아, 조선아! 나의 조선아!≫ 구절마다 웅심깊은 뜻이 담긴 시었다. 거기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고 어머님의 말씀대로 조국과 민중, 인류의 운명을 책임지고 개척해 나가시려는 그분의 원대한 포부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사나운 풍랑도 폭풍도 헤치면서 조국과 민중, 인류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개척하시려는 의지가 스며있었다. . . .

민중을 위한 사색과 탐구

. . .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종합대학개교의 날에 교수들과 학우들에게 다음과 같은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나는 대학시절을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더 깊이 체득하며 조선혁명을 떠메고 나갈 준비를 갖추는 보람찬 시기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분께서는 이 말씀대로 대학에서 공부하시는 전기간에 김일성주석님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을 전면적으로 학습하고 달통하는데 온갖 정열을 다 바치시었다.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배우는데서 발휘된 그분의 진지하고 성실한 노력은 모든 교수들과 학우들의 귀감으로 되었다. 그분께서는 수령님의 노작원문을 놓고 중요 대목들에는 밑줄을 그어가시며 읽고 새기고 사색하시고 또 읽고 새기고 사색하시면서 거기에 담겨져 있는 심오한 사상과 이론들, 독창적인 원리들과 원칙들을 완벽하게 체득하시었다. . . . 1960년 12월이었다. 얼마전에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공산당 및 노동당 대표들의 회의과정에 노동자계급의 수령의 역할을 거부하는 현대수정주의자들의 비열한 행위가 노골화되었다. 그분께서는 수령님의 노작에 담겨진 사상이론에 기초하여 수정주의자들의 궤변의 본질을 해부하시고 수령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과학적으로 정립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어느날 교수들에게 개인미신에 관한 수정주의자들의 반혁명적 궤변의 본질을 폭로하시면서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노동계급의 수령을 단순한 개인으로 보는 것은 매우 그릇된 견해입니다. 수령은 혁명의 뇌수이며 당과 인민대중의 이익의 최고체현자입니다. 수령은 노동계급의 혁명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수령의 현명한 영도가 없이는 노동계급이 혁명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혁명운동에서 수령의 역할문제는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에 관한 일반적인 논의에 용해시켜도 안되며 민중의 역할과 대립시켜 고찰해도 안된다고 하시면서 혁명운동에서 민중의 창조적 힘을 떠난 수령의 역할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령의 역할을 떠난 민중의 그 어떤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없다고 하시었다. . . . 수령론의 새 원리와 독창적인 이론의 발견과 정립은 인류사상사발전에 대한 거대한 기여였다. 이 위대한 공적을 그분께서 대학 1학년시절에 이룩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 . 그분께서 대학에 입학하셨을 때만 하여도 정치경제학교과서가 위대한 주체사상과 그에 의해 밝혀진 주체의 경제이론에 기초하여 정립 못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경제이론에 다분히 기초한 것이었다. 그분은 이것을 첫눈에 알아보시고 주체의 경제이론에 따르는 새로운 정치경제학을 정립하도록 이끌어주시었다.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수령님의 경제 사상과 이론은 지난날의 경제사상, 경제이론과는 다른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으며 위대한 주체사상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기 노동계급의 경제이론은 사회현상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고찰한 이론이었다면 수령님의 사회주의 정치경제학 이론은 군중노선에 의거한 경제이론입니다. . . .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적을 두고 공부하시었지만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철학, 법학, 문예학, 수학, 물리학 등 과학의 다른 여러 분야들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시었다. . . .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과학탐구에서의 불가능이나 인간두뇌활동에서의 한계성 같은 것을 완전히 깨뜨려버리시었다. 그분께서는 정력적인 탐구로 그 모든 분야의 지식을 섭렵하시었다. 결과 그분의 지식은 동서남북의 어느 각도에서 쳐다보아도 완벽의 미를 지니고 있는 찬란한 원형의 태양과도 같이 결여된 것이 없는 그야말로 백과전서적인 지식이다. 그분의 박식다문을 말하여 주는 수많은 자료들 가운데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군사분야의 한 전문가는 최신항공기들의 성능과 이착륙조건에 대한 상세한 자료들을 꼭 읽어야 했으므로 두루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항공기설계가들이 쓴 글은 물론이고 조종사들의 수기도 읽어보고 외국의 항공잡지도 뒤져보았으며 그 부문 기술서적도 수많이 찾아보았다. 그러나 꼭 알아야 할 적중한 자료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전문가의 고충을 아시게 된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그에게 어느 도서관에 가서 어느 서적을 찾아 읽어보면 그 자료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분의 말씀대로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펼쳐든 전문가는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간 그렇게 애써 찾던 자료들이 그속에 있을 뿐 아니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유용한 자료까지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놀랍고 신기하여 그는 도서관원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그분께서는 전문가들도 읽지 않은 과학도서들을 다 정독하시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정말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늘 책과 함께 사는 우리들도 모르는 책이름을 수많이 대어주시고 그 내용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 . . 사색과 탐구는 창조를 낳고 창조는 발전을 가져온다.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천재의 소지위에 유례없는 심오한 사색과 정력적인 탐구로 가장 짧은 기간에 사상의 최고봉과 현대지성의 정상에 오르심으로써 대학시절에 벌써 졸업논문 ≪사회주의건설에서 군의 위치와 역할≫, 논문 ≪현대제국주의의 특징과 침략적 본성에 대하여≫를 비롯하여 논문, 담화, 연설, 대답, 결론, 서한1,200여건의 문헌을 발표하시어 사상이론의 거성으로서 찬연한 빛을 뿌리시고 인류사상사에 불멸의 공적을 쌓으시었다. . . .

기계도 목도도 하시며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대학시절 생산실습과 건설노동에 남다른 열성과 성실성을 가지고 참가하시었다. 그분에게 있어서 생산실습과 건설노동은 곧 민중이 있고 생산과 건설로 들끓는 현실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민중은 훌륭한 스승이었고 현실은 또 하나의 훌륭한 대학이었다. . . . 1961년 4월, 대학과정안에 따라 평양방직기계제작소에 나가 실습하시던 때의 사실만 놓고도 그분의 이러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분께서는 매일아침 누구보다도 일찍이 실습장에 나가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안팎을 말끔히 청소해놓으시었다. 작업시간이 되면 담당기대공을 도와 열심히 기대를 돌리시었고 점심시간이면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장휴게실의 벤취에 앉아 도시락을 풀어놓고 허물없이 찬을 나누시었다. 그분께서는 하루실습을 마치고 퇴근길에 오르실 때에도 노동자들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시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시고 화제에 끼어들어 담소를 하시면서 그들 속에 스스럼없이 어울리시었다. 그분께서 얼마나 겸허하시고 소탈하게 생활하셨던지 노동자들은 그분과 같은 일터에서 일하고 함께 버스를 타고다니면서도 얼마동안은 그분이 누구이신줄 몰랐다. 영도자님께서는 이처럼 노동자들 속에 깊이 들어가시어 그들과 한치의 간격도 없이 생활하시면서 일분일초를 아껴 배우고 열심히 일하시었다. 그리하여 그곳 기능공들보다 2배의 부속품을 가공하시었다. . . . 생산실습기간 그분께서는 공장실태를 구체적으로 요해하시었다. 그 과정에 공장에서 생산능력을 높이는 방도의 하나가 바로 설비이용률을 높이는 문제라는 것을 포착하시고 몸소 작업에서 모범을 보여주시면서 노동자들을 일깨워주고 발동시키기로 하시었다. 어느 설비점검의 날이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맡으신 26호선반을 기대공과 함께 말끔히 정리해놓으신 다음 옆에 있는 형삭반앞으로 가시었다. 기대는 이미 유리알처럼 알른알른 닦아져있었다. 담당기대공은 나이는 어리지만 일손이 잰 처녀였다. 기름묻은 걸레를 드시고 형삭반을 살펴보시던 그분께서는 턱틀개손잡이를 돌려보시고나서 왜 이렇게 턱틀개가 잘 돌아가지 않느냐고 물으시었다. 그러자 기대공은 턱틀개손잡이에 기름구멍이 없어 기름을 주지 못해 돌이기 힘들다고 심상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신 그분께서는 이 기대에 기름구멍이 모두 몇개나 있는가고 물으시었다. 열아홉개라고 대답하는 처녀의 목소리에는 기대에 정통하고 있는 기능공들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이 어려있었다. . . . 그분께서는 그럴 수 없다고 하시면서 턱틀개손잡이를 돌려보시며 그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시고나서 공구함에서 홈파는 꼬챙이를 꺼내드시고 축의 한곳에 끼어 있은 기름때를 조심히 긁기 시작하셨다. 두텁게 들어앉았던 기름때가 한꺼풀, 두꺼풀 벗겨지자 마침내 작은 기름구멍이 형태를 드러냈다. 처녀는 전혀 생각지 않던 곳에서 기름구멍이 나타나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분께서는 놀라는 기대공을 너그럽게 바라보시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기계란 돌아가는 부분에 반드시 기름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기대정비도 이런 이치를 알아야 더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 . . 그분께서는 무척 기뻐하는 기대공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다른 기대공들도 혹 기계의 원리를 모르고 기대를 정비할 수 있는데 동무가 한번 설비점검을 잘해서 ≪모범기대창조운동≫을 발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다른 동무들이 동무의 모범을 따르면 이 직장이 설비관리에서 혁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처녀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하겠다고,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 . . 마침내 처녀는 공장적으로 소문난 모범기대공이 되었다. . . . 김정일영도자님께서 생산실습을 끝마치신 어느날 밤이 되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영도자님을 몸가까이 부르시어 평양의 건설형편을 말씀하시다가 수도의 중요한 관문인 와산동-용성사이 도로확장공사를 어느 단위에 맡겼으면 좋겠는가고 의견을 물으시었다. 한동안 심중히 생각하시던 그분께서는 영예로운 그 임무를 종합대학에 맡겨주실 것을 제기하시면서 자신께서도 직접 그 공사에 참가하실 결의를 표명하시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분의 의견을 긍정해주시면서 그 어려운 과업을 친히 종합대학에 맡겨주시었다. 이리하여 조선노동당 제4차대회를 앞두고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1961년 5월부터 이 도로확장공사장에 나가 노력적성과로 수도건설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 . . 드디어 도로확장공사가 시작되었다. 전국이 당대회에 만년대계의 기념비적 창조물들을 선물하려는 한마음 안고 낮에 밤을 이어 치열한 증산투쟁을 벌이고 있는 근로자들의 장엄한 진군으로 끓어번지고 있었다. . . . 목도는 계속되었다. 그분께서는 목도줄을 자신의 곁으로 바싹 당겨 메곤 하시었으며 흙을 퍼담는 학우들이 적게 담을라치면 청년들이 목고를 할 때는 그래도 목고채를 몇개씩 꺾어먹을 생각을 해야지 어깨가 아프다고 갑삭하게 메고 달랑달랑 다닐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목고하다 죽었다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라고 하시며 한삽이라도 더 담도록 하시었다. . . . 그분의 등이 세번씩이나 벗겨졌다는 사실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대견해 하시며 육체적 단련을 해야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투지를 키울 수 있다고 하시었다. 이날 한 일군이 험상궂게 된 그분의 어깨와 등을 보며 억이 막혀 다른 말을 못하고 갈린 목소리로 몹시 아프시겠다고 말씀드리자 그분께서는 처음에는 좀 아리었는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고 소탈하게 말씀하시었다. 그 일군이 격한 마음을 눅잦히며 어깨에 받치개를 하고 목도를 메면 한결 낫겠는데 왜 그냥 맨몸에 일하시는가고 하자 그분께서는 태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작업장에 어깨받치개가 있지만 매번 어깨에 대느라면 목고를 빨리 할 수 없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제일 힘든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받치개를 안받쳐도 일없습니다. 이런 때에 한번 본때있게 단련해야지 언제 또 기회가 있겠습니까. . . .

 

2. 학우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주시어

 

사상과 지성을 겸전한 인재로

. . .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대학생들 속에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배양을 기본으로 하는 사상수양을 중시하시면서 그들이 현대과학기술을 소유한 훌륭한 인재로 자라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 주시었다. 1961년 8월 어느날이었다. 지질학을 전공하는 한 학우를 부르신 그분께서는 그를 데리고 평안남도에 있는 연풍호에 나가시어 산수수려한 호수가의 풍치를 보이면서 과학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주위세계의 천태만상을 구체적으로 관찰하여 현상 속에 내재하는 그 본질을 옳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이르시었다. 그러시면서 다종다양한 자연현상과 복잡한 사회현상의 본질을 옳게 인식하려고 하면 그에 대한 관찰능력을 키워야 하며 풍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그분께서는 사물현상의 본질을 깊이 파고들고 해부학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수박겉핥기식으로 공부를 해서는 안되며 자연과학, 기술과학의 경위에는 특히 실천능력을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시었다. 이와 함께 과학과 기술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과학적인 환상이 필요하고 . . . 그분께서는 환상은 어디까지나 우리 나라에 발을 붙인 것이어야지 공중에 뜬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베링해협을 막아서 기후를 변경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할 것이 아니라 서해안간석지를 막아 나라의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키겠는가, 서해바다 속의 지하자원을 어떻게 캐내겠는가, 그러면 우리 나라가 어떻게 변모되겠는가, 바로 이렇게 조선식으로 환상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자연과학탐구의 방향과 자세가 밝혀져있는 뜻깊은 말씀이었다. . . . 그런데 날이 저문 뒤에 평양시 경내에 들어서신 그분께서는 웬일인지 시내 중심가도가 아닌 딴 길로 차를 모시더니 교외의 어느 한 옥수수밭머리에서 차를 멈춰세우셨다. 영문을 몰라하는 그에게 그분께서는 지난 실습때 가져오던 광물표본을 보관한데가 어디라고 했습니까라고 물으시었다. 그 학생은 놀랐다. 오래전에 홀동광산에 실습갔다가 광석표본 몇십점을 채집하였는데 돌아오는 도중 짐스럽기도 하고 또 말이 표본이지 실상은 광물성분이 있을까 말까한 돌멩이에 지나지 않아 이곳 옥수수밭 속에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언제인가 그분께 지나가는 말로 한번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워낙 하찮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자신도 이 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본인조차 잊고 있던 그 일을 새겨두셨던 것이다. . . . 먼지가 뽀얗게 오른 길녘의 어지러운 옥수수잎을 헤치시며 밭가운데로 들어가시는 그분, 거듭 만류하여도 옷이 더러워지면 뭐라느냐고, 이런 일은 자신께서 더 잘하신다고 하시면서 앞장서시는 그분을 뒤따르며 학생은 목메어옴을 금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분께서는 밭고랑에 묻혀있던 광석바구니를 찾아드시더니 흙을 툭툭 털어 그에게 안겨주시었다. 자기 자신이 헌신짝 버리듯 내버린 표본, 아니 제 손으로 땅 속에 묻어버린 과학탐구의 열정을 되찾아 안겨주시는 그분의 은정에 학우의 눈굽은 젖어들었다. . . . 1961년 3월 어느날이었다. 경애하는 영도자님께서는 여러개의 지함들을 자동차에 싣고 기숙사에 가시었다. 그분께서는 웬 영문인지 몰라 주춤거리는 학급학우들에게 학습에 필요한 양식이라고 하시면서 그 지함들을 안겨주시었다. 그러시고는 그들과 함께 기숙사호실에 들어가 손수 그 지함들을 풀어헤치시었는데 거기에는 김일성선집을 비롯하여 혁명전통 교양자료들과 당정책 해설도서들이 들어 있었다. . . . 한 초급일군이 그동안에 있었던 토론내용들을 말씀드리자 그분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따라배우는 학습을 조직화하자는 것은 학습에서 하나의 전환을 일으키자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내 생각 같아서는 수령님의 노작을 기본으로 하여 1년에 책 만페지씩 읽을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책읽기운동을 본때있게 벌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대학기간에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깊이 체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만페지책읽기! 방안은 삽시에 술렁이었다. 해마다 이 방대한 양을 자기 것으로 소화한다면 학습에서는 틀림없이 전환이 일어날 것이었다. 초급일군들은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며 즉석에서 지지하여 나섰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얼굴을 미덥게 둘러보시며 모두 찬성이니 자신께서도 기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혹 어떤 동무들은 목표가 너무 아름차지 않는가고 주저할 수 있는데 따져보면 능히 점령할 수 있는 목표라고 하시며 자신께서 이미 계산해보신 숫자들을 가지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었다. . . . 그분께서는 계속하여 읽어야 할 책의 범위와 내용, 책읽기운동의 형식과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었다. 그러시고는 신심에 차있는 학생들을 바라보시며 열정에 넘친 어조로 이렇게 강조하셨다. …우리 종합대학이 어떤 대학입니까. 위대한 수령님의 존귀하신 명함을 높이 모신 우리 나라의 유일한 종합대학이며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민족간부를 길러내는 중심기지가 아닙니까. 우리 종합대학은 그 성격으로 보나 위치로 보나 수령님의 혁명사상만이 꽉 들어찬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여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만페지책읽기운동을 통하여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배우는 하나의 대진군운동을 벌입시다. 그분의 말씀은 실로 학습에서 하나의 혁명을 일으킬 데 대한 장엄한 선언이었다. 경애하는 영도자님께서는 만페지책읽기운동을 발기하신데 뒤이어 이 운동을 더욱 정력적으로 실속있게 벌여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언제나 깊이 마음쓰시고 몸소 이 운동의 앞장에 서서 현명하게 이끌어 주시었다. . . .

삼국통일과 구석기시대 문제

. . . 1960년 10월 어느날이었다. 이날 학급에서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과 그 역사적 의의≫라는 제목으로 학과토론이 있었다. 여러 학생들이 토론하였는데 그들은 이미 강의에서 배운대로 삼국이 신라에 의해 통일되었다는 것을 일치하게 강조하고 거기에서 논 김유신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지도교수는 흡족해 하였다. 학과토론이란 배워준 내용을 공고화시키는 교수의 한 형태인 것만큼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교수는 학과토론을 결속하려고 하였다. 이때였다. 경애하는 영도자님께서 자리에서 일어서시더니 자신의 의견을 말하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 . . 이윽고 그분께서는 말씀하기 시작하시었다.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신라가 3국을 통합하여 국토통일을 이룩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릇된 평가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신라통치배들이 신성한 우리 땅에 처음으로 외세를 끌어들인 사대주의의 첫 조상들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는 본래 동족의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라통치배들은 외세인 당나라침략자를 등에 업고 그 힘을 빌어 민족의 내부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의 침략무력과 합세하여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킨 신라에 대하여 그리고 신라왕조의 외세의존정책을 앞장서서 집행한 김유신에 대해서도 응당 재평가하여야 합니다. 학생들의 눈에는 놀라운 빛이 어렸다. 그중에서도 제일 크게 놀란 것은 교수였다. . . . 그분께서는 나당(羅唐)의 결탁관계도 구체적인 자료를 들어 분석하시고 신라통치배들이 외적을 끌어들인 결과로 민중들이 겪은 피눈물나는 재난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히시었다. 그러시고나서 이렇게 말씀을 끝맺으시었다. 역사는 가장 엄격하고도 공정한 과학입니다. 인민의 역사는 그 누구도 날조하거나 왜곡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신라의 사대주의적인 죄행이 가리워지고 김유신이 감히 명장으로 평가되어온 것은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들이 사대주의 사상에 물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남조선의 부르조아어용역사가들이 신라의 ≪왕업≫을 그렇게도 요란스럽게 역설하는 이유도 바로 외세에 빌붙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괴뢰도당의 반인민적인 책동을 합리화하려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과학에는 이러한 왜곡된 사관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인민의 입장에 선 진정한 역사관, 주체의 역사관을 철저히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드럽게 하신 말씀이었으나 그것은 실로 폭탄과 같은 선언이었다. 교수는 망연자실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그분께서 학과토론으로 준비하신 논문 삼국통일문제를 다시 검토할 데 대하여가 활자화되자 학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벌어졌으며 결국 그분의 견해가 정당하다는 것이 확증되어 사대주의적 사관은 결정적 타격을 받았으며 후일에 해당 시기의 조선역사가 전면적으로 재정리되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명백한 해명을 주시었다. 구석기시대의 유무에 관한 문제는 우리 민족의 유구성과 5천년 역사국의 존엄을 지키는가 지키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사학적 문제였다. 종합대학에서도 이에 대한 견해가 엇갈려 논쟁이 거듭되던 1960년 9월 어느날이었다. 학급학생들이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시던 그분께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지려면 반드시 주체적 입장에서 문제를 고찰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다고 해서 구석기시대가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심히 그릇된 견해라고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나라의 북변인 함경북도 화대지방에서 털코끼이유물이 발굴되고 우리 나라보다 더 추운 이웃지역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된 사실은 바로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었을 것이며 그때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하시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없었던 것으로 단정하고 신석기시대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이주해 왔다는 식으로 문제를 고찰하면 결국 조선민족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결론에 떨어진다고 일깨워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역사연구에서 사료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방법론을 정립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풍부한 사료와 옳은 방법론은 역사연구의 필수적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기본은 옳은 방법론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방법론은 다름 아닌 주체적인 방법론입니다. 그분께서는 역사연구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조선혁명을 중심에 놓고 민족, 민중의 이익에 맞게 고찰하고 평가하는 것이 주체의 방법론이라고 하시면서 이런 방법론에 철저히 의거해야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유적들을 빨리 찾아낼 수 있고 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의 견해는 과학적인 것이었다. 1966년 평양시 상원군 검은모루에서 지금으로부터 100만년전의 구석기시대전기 유물의 발굴, 1966년과 1972년 평양시 역포구역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의 유물 등은 그분께서 밝히신 주체적 견해의 과학성을 논증해 주었다.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비범한 통찰력으로 노예소유자사회의 유무에 관한 사학계와 대학생들의 허무적인 견해도 바로 잡아주시었다. . . . 예지가 비범하고 민족자주정신이 투철하며 주체의 진리에 도통하신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만이 그 모든 것을 예의간파하시고 바로잡으실 수 있었다. . . .

고쳐주신 나와 ≪고전병≫

. . . 1962년 12월 어느날, 학급에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저술되어 있는 ≪공장입법≫의 보건 및 교육에 관한 조항을 놓고 학과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우들은 저마다 자기 유의 견해를 내놓으면서 열띤 논쟁을 벌이었다. . . . 그분께서는 학과토론에서 나타난 결함을 지적하시고 교조주의와 독경주의에 빠져 주체적인 입장과 관점에 서지 못하면 자기 나라 현실의 양상과 그 발전을 볼 수 없는 맹목이 되거나 보아도 비뚤어지게 보는 사시안이 되고만다고 깨우쳐 주시었다. 그러시고나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교육문제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공장대학에 대해 말한 것은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공장대학에 대한 이론은 수령님께서 독창적으로 내놓으신 교육이론입니다. 우리는 우리 당이 내놓은 독창적인 방침들을 고전에서 찾아보려는 그릇된 관점을 결정적으로 없애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조선노동당의 사상이론과 정책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덮어놓고 선행고전가들이 쓴 책에서 무엇을 찾아내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시었다. . . . 1962년 1월 어느날 ≪국제노동운동사≫ 과목시험을 앞두고 그분께서는 학우들에게 ≪공산당선언≫의 내용을 해설해 주시면서 그의 시대적 한계성에 대하여 깨우쳐 주시었다. 그분께서는 저서의 서문에서 마르크스가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라고 정식화한 것은 계급사회의 경위에는 타당성을 가지지만 전체 인류역사를 놓고 볼 때에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하시었다. 원시공동체사회와 공산주의사회는 계급사회가 아니며 따라서 이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이 문제는 주체의 사회역사관에 의해 인류역사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과학적으로 새롭게 해명되었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공산당선언≫의 2장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을 경제적 측면으로만 본 마르크스의 견해는 공산주의 학설을 특징짓는 중요한 사상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너무도 일면적이라고 하시면서 주체사상이 밝힌 바와 같이 공산주의 혁명이론은 반드시 주권문제와 소유문제를 결합시켜 고찰해야 한다고 하시었다. 계속하여 그분께서는 마르크스는 물질적 조건이 사상의식을 규정한다고 하였는데 물론 물질적 생산과 정신적 생산이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경제발전이 사상의식발전에 큰 영향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사상의식이 오직 물질적 조건에 의해서만 규정된다고 보거나 또 객관세계를 그저 반영만 한다고 보거나 또 현실보다 꼭 뒤떨어지기만 한다고 보는 견해는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시대를 대표하는 선진사상은 무엇보다도 인민대중의 요구와 지향을 표현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언제나 현실보다 앞서 나간다는 것을 인류역사는 증명해 주고 있다고 설명해 주시었다. 그분께서는 ≪공산당선언≫의 3장과 4장에 대해서도 주체의 시각에서 새롭게 설명해주시면서 특히 마르크스주의가 기초하고 있는 근본적 원리의 한계성과 그것을 과학이론적으로 극복한 주체사상의 원리를 뚜렷이 밝혀주시었다. 학우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분께서 수령님의 노작은 더 말할 것 없고 고전에 대해서도 환히 통달하시었을 뿐 아니라 비상한 분석력과 창조적 사고력을 지니고 계시는데 대해 다시금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분의 말씀은 어둠은 비치는 햇빛처럼 학우들의 사상의식의 그늘진 구석구석을 밝게 비쳐주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 학우들은 지금까지 마르크스-레닌주의 이상의 완결된 진리가 없다고 생각하던 자기들의 견해가 얼마나 근시안적인 것이었는가를 심각히 깨달았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위대한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며 그 구현인 조선노동당정책이 꽃피고 있는 자기 나라 현실을 깊이 연구하여야 한다는 것을 심장깊이 깨달았다. 이렇게 해서 대학생들의 ≪고전병≫은 차차 수그러들게 되었다. . . .

 

3. 대학생들을 정치활동가로

 

청년사업에 활력을

. . . 1960년 9월 초 그분께서 공부하신 학부 정경학과에서 민청원들이 민청초급단체를 뭇고 위원장을 비롯한 초급간부들을 선거하였다. 선출된 초급일군들은 며칠간 사업을 구상하고 설계해보았으나 무엇부터 일을 시작해서 어떤 방향으로 조직을 이끌어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이런 실정을 헤아리신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강의가 끝난 뒤 학급초급단체일군들과 대학 및 학부 민청의 몇몇 일군들을 데리고 대학정원에 나가시었다. . . . …청년운동은 본질에 있어서 노동계급의 수령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운동이며 수령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해 나가기 위한 영광스러운 운동입니다. 다시 말하여 수령의 혁명사상에 기초하여 청년들을 온갖 민족적 및 계급적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하며 그들의 무궁무진한 힘과 창조적 재능을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 남김없이 조직동원하며 대를 이어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 위업을 완성해 나가기 위한 운동입니다. 그런 것만큼 청년운동은 혁명의 전도, 민족의 장래와 관련되는 매우 중요한 운동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청년운동의 본질과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정식화였다. . . . 그분께서는 계속하여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이후시기의 청년운동의 기본임무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었다.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고 사회주의제도가 선 오늘 우리 나라 청년운동의 기본임무는 지난날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나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할 때와는 다르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승리하고 사회주의제도가 세워짐으로써 우리 청년들의 사회계급적 처지와 정신도덕적 풍모는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 청년운동앞에 나서는 중요한 임무는 청년들 속에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을 참다운 혁명가로 키우며 청년들이 사회주의건설에서 선봉대, 돌격대의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 . . 그분께서는 계속하여 민청사업의 중심은 청년들을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수령님의 주위에 철통같이 묶어세우며 수령님의 명령지시를 생명처럼 여기고 모든 것을 다 바쳐 사회주의조국 건설에 이바지하는 지덕체를 갖춘 민족간부가 되도록 교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시었다. . . . 목적지향성없이 그때그때 제기되는 캠페인이나 행사보장으로 부단히 뛰어다니고 천리마학급칭호쟁취운동이나 틀어쥐고 나가던 민청일군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후부터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완성이라는 청년운동의 이정표를 따라 사상교양으로 청년대학생들을 경애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혁명전사로, 과학의 요새로 육박해가는 과학도로 키우기 위한 진군길로 대학민청사업을 확고히 돌려세우게 되었다. . . . 1962년 여름 어느날이었다. 그분께서는 모든 학생들이 한가지 이상의 악기를 익힐 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학급의 초급일군들과 협의하시었다. 이를 계기로 악기제작사업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그분께서는 이왕 악기를 만들 바에는 양악기를 본딸 것이 아니라 독특한 민족악기를 만들어내어 그것을 익히자고 제안하시었다. 그후 그분께서는 민족악기의 일반적 특성을 깊이 연구하시고 새로운 민족악기를 직접 설계하셨으며 박달나무, 오동나무를 비롯한 7~8종의 악기재료들과 공구까지 갖추어놓으시고 학우들과 함께 많은 품을 들여 제작하시었다. 그분께서는 현 하나를 만드는데도 의도하시는 고유한 소리를 얻을 때까지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작업을 반복하시었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민족악기 ≪어은금≫(제작된 곳의 이름을 붙였다.)이 만들어졌다. ≪어은금≫은 12율반음체계로 이루어진 5음계로 된 민족악기 일반의 특성과 함께 음색과 음률이 청아하고 음역이 또한 넓어서 고음과 저음이 울림통에서 부드럽게 조화되어 나오는 전혀 새로운 지탄악기였다. 그분께서는 ≪어은금≫을 타며 기뻐하는 학우들에게 우리는 새 악기 제작과정을 통하여 ≪신비성≫이라는 세 글자를 영영 불살라버렸다고 하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시었다. . . .

당정책의 열렬한 선전자, 옹호자로

. . . 1961년 여름 와산동-용성사이 도로확장공사때 학급의 한 초급일군이 대대정치부의 선동원으로 사업하게 되었는데 그는 선동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거니와 건설장에 나왔으면 웃통을 벗어던지고 일을 해야지 연설이나 하고 다니겠는가고 하면서 그 분공을 마음내키지 않아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경애하는 영도자님께서는 그를 만나 듣자니 선동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고 알아보신 다음 선동사업을 하는 것을 마치도 연설이나 하고 다니는 하찮은 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선동사업은 매우 중요한 정치사업입니다. 선동사업을 잘하여야 전투원들의 사기를 돋구고 맡은 바 혁명과업수행에로 그들을 힘있게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계속하여 선동원은 선동사업의 직접적 담당자라고 하시면서 선동원은 당정책의 선전자로서만이 아니라 대중을 당정책집행에로 조직동원하는 조직자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선동이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낙심하거나 용기를 못낼 때에 부채질해서 용기를 내게 하고 기세를 바싹 돋구어 주어서 그들이 돌격전에 떨쳐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선동원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가고 일깨워 주시었다. 그분의 말씀에 그는 자책감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그때까지 선동사업이 그처럼 중요한 정치사업이며 따라서 선동원의 임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옳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후 어느날 아침, 그가 한 소대전투장에 속보를 붙이고 돌아서는데 뜻밖에도 그분께서 다가오시었다. 그분께서는 속보를 읽어보시고 새 소식인줄 알았더니 낡은 소식이라고 하시면서 지금 동무들은 시간마다 새로운 기적과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전투원들을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과 위훈에로 불러일으켜야 할 속보에 이미 어제저녁 작업총화를 통해서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써붙여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선동사업에서는 계기성과 기동성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야 더 큰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시었다. 그러시면서 그분께서는 종이와 붓을 언제나 옆구리에 차고 다니면서 새로운 혁신적 성과나 긍정적 모범이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속보를 써붙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그는 선동원으로서 속보 한장 제대로 써붙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 . . 실로 보람찬 건설의 나날은 선동원인 학급초급일군에게 있어서 경애하는 그분의 손길아래 정치대학의 한개 과정안을 마치는 것과 같은 귀중한 나날이었으며 군중을 선동하여 조직동원할 줄 아는 정치활동가로 성장하는 천금같은 나날이었다. 그분께서는 신문을 일사천리로 냅다 읽기만 하는 독보원에게 독보를 실효성있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노래를 하라면 천리밖으로 달아나는 동무를 군중문화책임자로 키워주시고 심지어 권투선수였던 제대군인학생을 전국대학생웅변대회에 입선하는 웅변가로 되게 하여주시는 등 학생들 한사람한사람을 품을 들여 정치활동가로 키워나가시었다. 경애하는 영도자님께서는 특히 사회정치활동을 통하여 대학생들을 당정책의 열렬한 선전자, 옹호자로 자래우시었다. . . . 경애하는 영도자님의 지도밑에 종합대학 학생들은 1962년 10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3기 대의원선거를 앞두고 선거선전사업에 동원되어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종합대학 학생들은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능숙하게 풀어나가는 정치활동능력을 갖춘 쓸모있는 인재로 자라나게 되었다.

동지애의 서사시

. . . 이 나날에 경애하는 그분께서는 기본임무인 학습에서 한사람이라도 뒤지는 사람이 있을세라 극진히 보살펴주시고 도와주시었다. 학급에는 군대에서 제대되어 야간고급중학교를 거쳐 종합대학에 온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기초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하다나니 강의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어떤 강의에서는 학습장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 . . 그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그분께서는 다정하신 어조로 동무는 어렸을 때에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대학에 입학하였으니 처음에는 공부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동무 자신이 굳게 마음을 먹고 달라붙으면 아무리 어려운 과학의 요새라도 능히 점령할 수 있다, 앞으로 동무의 학습을 교수들과 학급동무들은 물론 나도 힘껏 도와주겠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었다. 그후 그분께서는 그 학생에 대한 개별방조대책을 세워주시었다. 그리하여 동지들의 적극적인 방조와 집단의 관심 속에서 그의 학업실력은 차츰 높아지게 되었다. . . . 그러나 그분께서는 일없다고, 잘 쓰지 못했으면 뭐라는가고 하시며 학습장을 받아드시고 한장한장 살펴보신 다음 오후 다섯시에 돌려주겠다고 말씀하셨다. . . . 그분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하나하나 명심하면서 그분께서 돌려주신 학습장을 펼쳐본 그는 눈이 둥그래졌다. 한번 더 보겠다고 가져가셨던 학습장에 그분께서는 활달하신 필체로 강의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리해 주셨던 것이다. 두달가까이 강의받은 그 많은 내용을 첫 페지부터 마지막까지 다 보아주시면서 잘못 정리한 부분과 빠진 부분들을 수정보충해 주시고 중요한 대목들에는 친히 밑줄을 그어주시었다. 글자마다 글줄마다에 그분의 한없이 뜨거운 사랑이 역력히 어려있는 학습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는 밀물처럼 밀려드는 감격을 억제하지 못하여 속으로 뜨거운 것을 삼키고 또 삼키었다. 그러나 그는 그분께서 자기의 학습장을 보아주시느라고 점심식사도 건느신 것까지는 몰랐다. . . . 그분께서는 교실이나 휴게실, 심지어는 복도에서 잠깐 만나실 때에도 그가 잘 모르는 학습문제에 대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었고 그의 첫 학기시험이 끝난 다음에는 앞으로 발표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라고 가르쳐 주시었다. 학과토론을 앞두고는 그가 준비한 내용을 알아보시고 문제점과 중심도 잡아주시고 읽어야 할 수령님의 노작들도 하나하나 찍어주시었다. 그리하여 그의 학과토론이 교수를 놀라게 하고 높은 평가를 받게 해주시었다. 그분의 이런 사랑과 보살피심에 의하여 한때 대학공부를 그만두고 생산현장에 나가려고까지 마음먹었던 그는 대학을 최우등의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 . . 어느해 가을에 있은 농촌지원전투기간 대학에 남아있었던 한 학생이 학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쓸데없이 자주 외출하면서 불건전하게 생활하여 사회적인 여론까지 환기시켰다. 경애하는 영도자님께서는 10월 어느날 이 사실을 놓고 학급에서 회의를 열고 사상투쟁을 벌이도록 하시었다. 회의에서는 그 학생이 저지른 엄중한 과오를 비롯하여 일부 학생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건전한 현상들이 날카롭게 비판되었다. 영도자님께서는 회의가 끝난 다음 대학생들 속에서 혁명적 생활기풍을 세울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담화를 하시었다. 그분께서는 . . . 우리는 혁명의 시대, 투쟁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혁명은 투쟁으로 시작되고 투쟁 속에서 전진하며 투쟁으로 끝납니다. 혁명투쟁은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들에게 안일과 해이, 순간의 답보와 침체도 허용하지 않고 언제나 불굴의 혁명정신과 강의한 의지를 가지고 긴장하게 투쟁하며 계속 혁신, 계속 전진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분께서는 특히 우리 혁명의 복잡하고 긴장한 내외정세는 대학생들 속에서 혁명적 생활기풍을 세울 것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한다고 하시면서 지금 적지 않은 동무들이 고생을 모르고 행복하게 자라왔기 때문에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어떻게 마련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는 조건에서 혁명적 생활기풍을 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이지 않으면 안일해이하여 일하기 싫어하고 혁명하기 싫어할 수 있으며 그들이 나중에는 사상적으로 변질하여 혁명의 대를 옳게 이어나갈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하시었다. 그러시면서 최근연간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서 청소년교양사업을 잘하지 못함으로써 발로시킨 엄중한 후유증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 . .

 

4. 민중을 위하시는 마음

 

저도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입니다

. . .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 학우들과 더불어 와산동-용성사이 도로확장공사에 동원되시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그분께서 쉴참에 작업장을 돌아보시는데 바께쓰와 부삽을 든 웬 할머니와 학우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을 보신 그분께서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그리로 가시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시자 한 학우가 기계가 일하는 작업장에서 조금씩 나오는 석탄을 퍼가겠다고 하기에 위험하다고 만류하는 중이라고 아뢰었다. 그분께서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집에 석탄이 떨어졌습니까라고 다정히 물으시었다. 할머니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귀한 탄이 땅 속에 묻혀버리는 것이 아까워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비록 적은 탄이라도 귀중히 여기는 할머니의 마음이 고마웠다. 할머니 말씀이 옳습니다. 비록 많지는 않다고 해도 아까운 석탄을 그대로 묻어버릴 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할머니를 치하하신 그분께서는 학위에게 우리는 이런 점에서도 인민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하신 다음 부근의 주민들이 석탄을 마저 파가게 하자고 말씀하시었다. 그러시고 인차 석탄을 파내어 안전한 곳에 옮겨놓도록 조치를 취하시었다. 그분의 발기로 공사장의 불도저가 흙을 밀어제낀 다음 굴착기가 석탄을 파내기 시작했다. 잠시사이에 둔덕진 곳에 자그마한 석탄무지가 생겨났다. 그분께서는 할머니, 이제는 마음놓고 퍼가도 됩니다라고 하시며 그의 손목을 잡고 석탄무지로 가셔서 삽으로 바께쓰에 석탄을 골라 퍼담으시었다. 학우가 삽을 넘겨받으려 하자 그분께서는 내가 할머니의 일을 좀 도와드리면 뭐라는가고 하시며 삽을 놓지 않으시었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는 고마우신 분도 다 있다고 하면서 이 늙은 것때문에 수고를 끼쳐서 안됐다고 말씀올리었다. 그분께서는 웃으시며 할머니, 괜찮습니다, 할머니는 오늘 저희들에게 참으로 귀중한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할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이 아까운 석탄을 그냥 땅에 묻어버릴 뻔하였습니다, 할머니처럼 다문 한덩어리의 석탄이라도 귀중히 여기고 아까워하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라고 치하하시고 그의 가정과 생활형편에 대해 따뜻이 물으시었다. 뜨거운 인정에 끌린 할머니는 스스럼없이 대답 올리고나서 여기에 뭘 하려고 큰 공사판을 벌였는가고 물었다. 그분께서는 할머니에게 공사의 목적과 의의를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었다. 그분의 친절성에 더욱 마음이 끌린 할머니는 저… 듣자니 여기 공사장에 우리 수령님의 자제분께서 나와 계신다는데 한번 만나뵈올 수 없을까? 며칠전에도 그분께서 우리 동네상점에 들리셨다는걸 글쎄 한발 늦어 만나뵈옵지 못했다우라고 절절한 부탁을 드리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었다. 그분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말씀하시었다. 글쎄올시다. 이 큰 공사장에서 당장이야 어데 가서 찾겠습니까? 할머니가 정 소원하신다면 꼭 만나보시게 될겁니다. 할머니는 아쉬워하며 이젠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석탄바께쓰를 머리에 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안됩니다, 할머니, 우리 젊은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서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들어다드릴 터이니 어서 집으로 가십시다라고 하시며 손수 석탄바께쓰를 드시었다. 그러시고는 앞에 서서 비탈진 언덕길을 오르시었다. 이때 한 학우가 할머니네 집까지 가져다드리겠다고 하면서 그분에게서 바께쓰를 넘겨받았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할머니와 헤어지셨다. 그런데 몇걸음 걸어가던 할머니는 바께쓰를 들고 가는 그 학생으로부터 그분이 바로 꼭 만나뵙고 싶던 수령님의 자제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너무도 뜻밖의 일에 놀라움이 이만저만 크지 않았다. 할머니는 어쩐지 보통분이 아니시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니…라고 하면서 그분께로 되돌아갔다. 할머니는 허리 굽혀 인사를 드리며 아니 글쎄 이 늙은 것이… 이 늙은 것을 위해서 그 험한 일을 하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목메인 소리로 말씀 올리었다. 그분께서는 만면에 자애로운 미소를 담으시고 할머니의 두손을 따뜻이 감싸쥐시며 말씀하시었다. 할머니,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저도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입니다. 인민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인들 마다하겠습니까! 인민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참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는 말씀이었다. . . .

된장단지와 간장병

1963년 8월 여름방학 때였다. 함경남도와 양강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을 수행하시던 그분께서는 어느날 풍산읍상점을 찾으시었다. . . . 천천히 된장매대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어 진열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시던 그분께서는 판매원에게 물으시었다. 된장, 간장은 떨구지 않고 넉넉히 공급하고 있습니까? 예, 떨구지 않고 넉넉히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마음이 놓이시는듯 매우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또 물으시었다. 그런데 된장맛은 어떻습니까? 점원이 된장맛이 괜찮다고 말씀드리자 그분께서는 어디 좀 봅시다. 주민들에게 공급하는 그대로 좀 떠오시오라고 말씀하시었다. 점원은 새 그릇에 된장을 정히 담아 그분께 드리었다. 그것을 받아드신 그분께서는 몇걸음 창문가로 다가가시었다. 두메산골의 해는 짧기도 해서 상점 유리창들에 비꼈던 저녁노을도 어느덧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된장빛깔을 눈여겨보시던 그분께서는 된장의 질이 시원치 못하다고 하시었다. 좀 시큼하기는 하지만 모두들 장맛이 그만하면 괜찮다고 한다고 점원이 말씀 올리자 그분께서는 부드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아닙니다. 된장맛이 좋아야 국맛이 좋습니다. 여름에 호박국을 끓여도 그렇고 겨울에 시래깃국을 끓여도 그렇고 장이 맛있어야 국이 구수하고 밥맛도 돋굽니다. 점원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그분께서는 된장그릇을 점원에게 돌려주시며 이 장을 만드는 공장에 질을 높여달라고 제기해 보았는가고 물으시었다. 점원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드리지 못하자 그분께서는 부드럽게 이렇게 일깨워 주시었다. 상업일군들은 주는 상품을 파는 것으로 자기의 임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교시하신 바와 같이 상업일군들은 인민들의 살림살이를 맡은 어머니이며 주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업일군들은 상품을 파는 데만 머리를 쓰지 말고 사가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상품이 모자라거나 질이 낮은데 대해서 투쟁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점원은 자책감을 금할 수 없는 듯 더욱 깊이 머리를 숙이었다. 이때에야 그분께서 오셨다는 것을 알고 상점일군들이 달려왔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시며 그분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풍산사람들에게 벌방 못지않는 생활을 마련하여 주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고산지대에서 사는 인민들의 생활이 걱정되시어 어젯밤도 잠을 이루지 못하시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창밖을 내다보시며 그분께서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시었다. 이윽고 그분께서는 점원에게 주민들에게 공급하는 된장을 반킬로그램쯤하고 간장을 한병 달라고 하시었다. 그러시고는 그것을 가지고 차에 오르시었다. 며칠 후 그 된장단지와 간장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도하시는 중요회의장에 놓여졌고 이 회의에서는 산간지대민중들의 생활을 급속히 향상시킬 데 대한 문제가 토의되었다.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들을 가리키시면서 주민들에게 맛좋은 된장과 간장을 많이 만들어 공급해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었다. 회의 이후 풍산의 장맛과 간장맛이 훨씬 좋아졌다. . . .

 

5. 넘쳐흐르는 혈육의 정

 

남녘을 생각하시며

. . . 1960년 4·19민중봉기때의 일이다. 반미, 반독재, 자주통일의 구호를 높이 들고 연일 수많은 열혈청년학생들과 민중들이 항쟁의 거리에 떨쳐나섰다. 그들 가운데는 잔인한 독재의 총칼아래 피를 뿌리며 쓰러진 봉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분께서는 서울 한성여자중학교 진영숙 학생에 대한 비보에 접하시었다. 애어린 진영숙 학생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는 친미독재정권을 타도해야 한다는 애국의 일념을 안고 어머니에게 한장의 유서를 남기고 죽음을 각오한 항쟁의 거리에 뛰어들었다.그의 뜨겁고 아리따운 마음을 담은 유서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저의 마음은 이미 거리로 나가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해서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건강히 계셔요. 시위대오의 선두에 서서 통일을 절규하며 친미독재타도에로 학우들을 부르던 진영숙은 원쑤들의 총탄에 맞아 붉은 선혈로 항쟁의 마당을 적시며 쓰러졌다. 이 소식에 접한 그분께서는 훌륭하고 기특한 소녀의 모습을 그려보시며 애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잠을 이루지 못하시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학교에 나가신 그분께서는 전교 교직원, 학생들에게 진영숙의 영웅적 소행을 알려주시고 그를 남산고중의 명예학생으로 등록하고 매일아침 출석호명을 할 때 그의 이름을 불러 학우들의 대열에서 영생하도록 할 것을 호소하시었다. 피의 광장에 쓰러진 그가 삭막하고 매정한 남조선땅에서 고결한 생의 흔적마저 짓밟히도록 그냥 둘 수 없다는 그분의 깊은 뜻이 어린 제의였다. 이에 교직원, 학생들은 적극 지지해 나섰다. 그때부터 영웅소녀 진영숙 학생은 몸은 비록 초야의 이슬처럼 쓰러져갔지만 그의 이름과 넋은 이북의 학생들과 민중들 속에 의롭고 장한 모습으로 영생하게 되었다. 이남의 학우들에 대한 김정일영도자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은 대학기간에 간단없이 이어졌다. 4·19민중봉기에 이어 이듬해 4월에는 서울과 지방의 여러 대학들에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라는 구호를 들고 남북학생회담을 요구하는 반정부구국투쟁이 또다시 화산처럼 폭발했다.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학우들에게 이 투쟁소식을 알려주시면서 남녘학우들의 투쟁을 고무하는 연대활동을 힘있게 벌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이에 따라 남녘청년학생들의 투쟁을 지지성원하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 학생들의 군중집회가 진행되고 지방대학들에서도 연대투쟁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호소문, 담화문들이 신문, 방송을 통해 꼬리를 물고 나갔다. 남녘청년학생들의 반독재구국항쟁을 지지성원하는 북녘학생들과 각계층 민중의 연대투쟁의 목소리는 천지를 진감하며 남녘땅 전역에 메아리쳐 갔다. . . .

해외동포도 우리 민족

1960년 10월 어느날 우리 나라 준민족형성에 관한 조선사강의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강의가 거의 끝날 무렵에 학생들에게서 뜻밖의 질문이 제기되었다. 질문인즉 민족형성에 관한 고전의 명제에 따르면 언어, 지역, 경제생활의 공통성과 문화생활의 공통성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성격의 공통성 등 네가지 가운데서 어느 한가지만 빠져도 민족이 될 수 없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우리 나라 해외동포들의 경우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때에 휴식종이 울려 질문에 대한 해명은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하고 수업을 끝냈다. 그리하여 휴식시간에 학생들 사이에 자연히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 시기 사학계에서는 선행고전의 명제에 교조적으로 대하면서 민족형성을 자본주의의 대두와 결부시켜 우리 민족이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 형성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 해방후에 형성되었다고 보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학생들의 논쟁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학우들의 논의를 주의깊이 듣고 계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1910년대 유럽나라들의 현실에 기초하여 전개한 고전의 내용은 당시 그 나라 실정에는 맞을는지 모르지만 우리 나라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통일적인 자본주의적 민족시장이 형성되어야 경제생활의 공통성이 이루어질 수 있고 민족이 형성되게 된다는 고전가들의 견해를 교조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분께서는 조선민족은 근대자본주의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는 과정에 하나의 핏줄로 이어지고 같은 언어를 쓰는 공고한 사회적 집단으로 결합되었다고 밝히시었다. 그러시고는 지금 일부 학자들 속에서 우리 민족이 일제식민지통치시기에 형성되었다고 하는 것은 제정신이 없는 황당한 소리라고 하시면서 민족문제는 고전에서가 아니라 우리 수령님의 노작에서 찾아야 정확한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하시었다. 경애하는 영도자님께서는 이런 주체적 시각에 기초해서 민족의 기본징표를 다음과 같이 새롭게 정립하시었다. 민족을 이루는 기본징표는 핏줄, 언어, 지역의 공통성이며 이 가운데서도 핏줄과 언어의 공통성은 민족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징표로 됩니다. 민족은 핏줄과 언어, 지역의 공통성으로 하여 결합된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체적 민족개념에 기초해서 그분께서는 우리 민족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밝히시었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한강토안에서 한핏줄을 타고 같은 말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입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민족에 관한 주체적 시각에 따라 해외동포들의 지위를 명확히 밝혀주시었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도 다같은 조선민족입니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조선동포들은 지난날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지주, 자본가들의 가혹한 착취와 압박에 못이겨 정든 고향을 버리고 살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너간 사람들입니다. 그런 것만큼 재일동포들이 지금은 비록 일본땅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도 조선민족입니다. . . . 1960년 9월 어느날이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일본에서 살다가 조국의 품에 안긴 한 귀국자 학우를 만나주시었다. 오전 첫 강의가 끝나자 복도휴게실에 나오신 그분께서는 그 학우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다정히 물으시었다. 귀국자학생은 적이 놀랐다. 대학입학 후 아직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벌써 그분께서는 자기의 이름까지 알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가 인사불성이라고 생각되어 몸둘 바를 몰라하자 그분께서는 화제를 돌리시어 조국에 온지 얼마나 되는가, 어느 지방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가, 부모들도 다 귀국했는가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나하나 물으시었다. . . . 영도자님께서는 그후에도 그를 자주 만나 건강은 어떤가, 기숙사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없는가, 밥은 잘 먹는가고 하시면서 학습과 생활에서 걸린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시었다. . . . 영도자님의 극진한 보살피심과 가르치심 속에서 보낸 학창시절의 나날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찬 나날이었다. 그는 마침내 1964년 3월에 대학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과학연구기관에 진출하여 청춘의 정열과 지혜를 다 바쳐 마음껏 과학을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졸업후에도 그의 사업과 생활을 육친의 정으로 따뜻이 보살펴 주시며 유능한 과학자가 되도록 끊임없이 손잡아 이끌어 주시었다. 그가 쓴 논문이 신문에 발표되었을 때에는 몹시 기뻐하시면서 친히 그것을 읽어보시고 우단점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었으며 앞으로 과학연구사업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고 날이 갈수록 더욱 두터워지는 그분의 은혜로운 사랑과 배려에 의해 지난날 일본땅에서 광산의 버력처럼 버림받던 그는 그후 가치있는 논문들을 수많이 발표하여 박사로, 학계의 권위있는 학자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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