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12일

통일여명 편집국

≪5대 혁명소설≫ 맛보기

통일여명 편집국 해설 5-7-1

 

 

1. ≪압록강≫(불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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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는 리해할 수 없네, 내가 지난 3월에 관동군사령관직에 앉을때 자네들은 나에게 김일성공산군은 전멸되고, 그 존재를 이미 마쳐버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자네들보다 늙었지만 자신이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문제거리들을 몇달어간에 잊어버릴 만큼 기억력이 감퇴되진 않았네.≫

시종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던 이다가끼참모장은 우에다의 따져묻는 눈길이 자기에게 박히자 지체없이 일어났다.

≪각하께서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십니다. 김일성공산군의 괴멸과 동만공산유격구역의 완전소탕에 대한 실태보고를 올린것은 저였습니다. 그 당시 돈화 및 안도 산간오지들에서 김일성일파의 수차 조우교전한바 있는 우리 관동군토벌대부대들의 통보자료들은 일치하게 김일성이 겨우 10여명 부하의 호위를 받으면서 우리 토벌부대를 피해 산중을 떠돌아다니고 있다는것을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고 우에다는 이다가끼앞으로 몇걸음 다가섰다.

≪내가 관동군사령관앞으로 취임하던 3월당시에는 수하에 10여명의 부하밖에 없어던 김일성이 불과 다섯달이 지난 오늘에는 그대들이 말하는대로 강성한 대군을 이끌고 무송같이 작지 않은 만주국의 현소재지까지 쳐들어올수 있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각하, 김일성공산군의 급속도의 강세현상은 저자신에게도 역시 잘 풀려지지 않은 수수께끼입니다.≫

하고 대다한 이다가끼는 도죠를 흘끔 돌아보았다.

≪헌병대사령관, 자네한테도 역시 그것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인가?≫

슬며시 제자리에 돌아와 앉은 우에다는 역시 도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제반문제의 해명은 어차피 자기에게 의거할 수밖에 없다는 듯한 배포유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천천히 일어난 도죠는 투실투실 살이 진 가운데 손가락으로 약간 처져내린 안경을 밀어올리고나서 역시 그 누구인가를 비웃듯이 입술을 움직이며 침착하고 조리있게 말했다.

≪조선공산군이 반년도 못되는 사이에 오늘과 같이 강성해질수 있는 기본요인은 그들의 사령관인 김일성의 무시할 수 없는 특출한 포옹력과 인간적매력에 있지 않는가를 생각케 합니다.

조선공산군주력부대에 소속되여있는 공산군 병졸들 자신이 여러 촌 민간인들에게 자랑삼아 하였다는 말들을 수집해본데 의하면 김일성은 북만에서 무송으로 은밀히 이동해 나올때 본래 통솔하던 군졸을 거의다 북만공산부대들에 떨궈두고 자기 휘하에 도합 15명정도의 약소한 병력밖에 데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송지구에 나오자 공산군대렬내에서 이단자의 락인을 받고 죽을 운명에 처했던자들을 신임하고 포섭하여 구원해주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주력부대를 편성하는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일찍이 우리 관동군이 이 만주땅을 점령하고 이 대륙에 만주국을 만들어낸 직후에 우리 관동군 첩보부에서는 공산분자들에 대한 정탐과 내부와해를 목적으로 ≪민생단≫이라고 명명한 조선인 민간간첩단체를 조직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각방의 불가피한 소인에 의하여 이 단체를 몇달 존속시키지 못하고 형식상 곧 해산해버렸으나 첩보일군들의 목적은 그들이 예상한것보다 비상히 큰 효과성을 나타냈습니다.

우리 첩보일군들의 모략에 속은 대국민족주의 분자들은 약간이나마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 조선인이면 례외없이 ≪민생단≫으로 몰아 우리의 간첩으로 선포하고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를 기쁘게 한 그와 같은 살륙행위는 동만의 광범한 지역에 파급되었습니다. 많은 조선인핵심공산분자들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없애치울수 있었습니다. 결국 공산대렬내부에서는 불신임이 콜레라처럼 만연되고 항시적인 불안이 조성되었습니다. 만약 오늘까지도 그것이 지속되었다면 우리에게는 평온이 도래하고 대륙에는 우리가 바라는 질서가 이미 수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지난해봄 그들자신에게 엄중한 후과를 가져온 그 사태의 진상을 명철하게 규명해나섰고 올해봄 무송지구에 나와서는 요행 살아남은 ≪민생단≫혐의자들을 모아놓고 그들에 무조건적인 신임을 베풀면서 그들에게 대한 사형론고장으로 되고 있었던 ≪민생단≫혐의문서들을 손수 그들앞에서 소각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버림받고 죽을뻔했던 자들이 김일성의 품안에서 살아났습니다. 이자들이 김일성의 휘하에 들어서서 새 주력부대의 골간을 이루게 되었으며 이 소문이 사처에 퍼지면서 각지에 분산되여있던 무장조선인들이 김일성의 휘하에 결집되였습니다.

이같이 되여 김일성이 친솔하는 공산군주력부대는 급속도로 세력이 커지고 군력이 강해진것입니다.

김일성은 새로운 주력부대를 편성하고 군사적 맹활약을 전개하는 일방 2천3백만 조선인들을 한데 묶어세워 거대한 반일항쟁세력으로 만들 구상밑에 지난 5월초 무송현의 모지점에서 조국광복회라고 명명되는 거족적인 구국민족통일조직을 창립했다고 하는데 그 세력이 또한 놀라울만큼 급속히 확대되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김일성의 군력은 순전히 그의 부하들의 수자로써만 계산할 수 없습니다. 불원가 그는 2천3백만 조선인 전부를 제국을 반대하는 항전에 궐기시킬 수 있습니다.≫.≫

 

≪≪맑스가 공산당을 처음으로 창건할 때 누구에게서 공산당을 조직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뜻밖의 물으심이였다.

말문이 막힌 박달은 당황한 눈길로 이쪽저쪽 헛눈을 팔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숲과 집과 눈과 고드름들은 그에게 무엇이라고 대답 올릴 말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쩔 수없이 된 박달은 장군님께 그저 헤식 웃음만 보여드렸다.

≪다른걸 한가지만 더 물어봅시다....≫

박달이가 당황해하는 양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을 다시 건네시였다.

≪박달동무가 갑산공작위원회라는 조직을 무을 때 어느 누구에게서 승인을 받았습니까?≫

≪네 ? !≫

어망결에 박달은 눈을 크게 뜨며 궁둥이를 약간 들었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생각지 않았던 함정에 갑자기 쑥 빠져든 것 같은 심정이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그 누구의 승인이 없이는 당을 창건하지 못할 것 같습니까?≫

장군님의 이 말씀은 마치 자기를 함정속에 끌어내주시기 위하여 내려뻗쳐주신 은혜로운 손길처럼 안겨왔다.

≪박달동무는 그누구의 승인이나 비준을 받고 조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무의 승인도 받지 않고 조직을 만들었고 그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그 조직은 존재했습니다. 당을 만드는것도 그렇습니다. 그누구의 승인이나 비준에 관계치 말고 우리스스로 당을 만들면 당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권리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더러 조선에서 당을 창건하라 하지 말아라 하고 명령하거나 지시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조선당을 만들고 싶어서 만들어놓으면 그누가 승인하든 말든 우리당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은 지구가 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아득한 옛날부터 돌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동설을 인정하기전에도 지구는 돌고 있었습니다. 지구는 자전하며 공전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없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국제당이 승인하든 안하든 스스로 당을 조직하고 이렇게 조직한 당이 혁명투쟁으르 잘 수행해나간다면 국제당은 자연히 따라다니면서 승인하자고 할 것입니다.≫

빠져나갈 길 없던 함정속에서 구원의 이끄심을 받아 탁트인 대지우에 올라서서 푸른 하늘과 눈부신 태양을 가슴에 안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다름아닌 이 순간에 박달이와 같았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은혜로운 태양을 우러러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박달의 가슴속에서는 심장이 쿵쿵 환희의 북소리를 울렸다. 그 북소리와 함께 그의 마음속에서는 만세의 함성이 귀가 멍멍하도록 솟구쳐올랐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그는 장군님 앞에 깊이 머리를 숙였다....

이것은 1936년이 저물어가던 그해 12월 25일에 있은 일이었다.≫

 

≪장군님의 야광시계의 바늘은 밤 10시 1분전을 가리켰다.

장군님께서는 가림천에서 피여오른 물안개 때문에 약간 선뜩하고 촉촉한 이슬기가 느껴지는 권총의 안전장치를 푸시고 마침내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벼이 대시며 총구를 어두운 허공을 향하여 치드셨다. 초저녁잠에 취하여 졸고 있는 듯하던 뭇별들이 일시에 모두 잠을 깨기나 한것처럼 또렷또렷하게 빛을 냈다.

장군님께서는 10시 정각을 향해 각일각 다가가고 있는 파아란 야관시침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신채 천천히 방아쇠에 손가락을 거셨다.

어쩐지 가림천의 세찬 여울물 소리마저 침묵을 지켜버린듯한 정적이 그이의 전신을 휩쌌다. 그 기이한 정적속에서 야광시계의 잘칵거리는 소리만이 최후의 1분을 재촉하며 어두운 공간에 가득히 서린 듯 싶었다.

수만번이나 방아쇠를 당기셨던 손가락 끝으로부터 짜르르한 것이 그이의 가슴속으로 전류처럼 흘러들었다.

그것이 무엇이며 무엇때문인지 장군님께서도 딱히 아실수 없으시였다. 너무도 많은 지난날의 일들이 이순간에 단꺼번에 번개같이 그이의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였다.

이 고국땅을 마지막으로 하직하시며 조국을 광복하시기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다지시던 일도, 아버님께서 남겨주신 두자루의 권총을 받아드시며 가슴속에 거듭 그 맹세를 굳히시던 일도, 자욱자욱 피로 얼룩지고 눈물로 얼룩지은 지나온 륙칠년동안 조선이 독립되는 날 고국땅에 데려가달라고 당부하던 이 나라의 끌끌한 아들딸들을 이역의 거치른 산야에 묻군하시던 그 가슴아프던 나날들도 일시에 단꺼번에 떠오르시였다.

조국땅에 와서 울리게 되는 이밤의 총성을 위하여 그 얼마나 간고하고 시련에 찬, 그러나 또 얼마나 성스럽고 거룩한 항일 대전의 먼먼 싸움길을 헤쳐오셨던것이랴.

장군님께서는 그 싸움길을 헤치며 예까지 오는동안 중도에서 희생당하여 이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하는 부모님들과 동지들을 마음속으로 부르시며 그 뭇 사람들의 이룩못한 뜻을 합쳐 조국땅에서 울리는 총소리를 들어달라고 엄숙히 청하시였다.

그리고 어둠속에 잠긴 조국의 하늘과 땅을 향해 새삼스러운 눈길을 보내시며 사랑하는 조국과 잠자는 조국의 이민들을 마음속으로 부르시였다.

이 거룩하고 위대한 땅, 이정든 땅의 주인들이면서도 이역의 만리길을 에돌아 세상의 눈을 피하여 야음을 타고 예까지 오지 않을 수없었던 조선의 젊은 아들딸들.....

(조선아, 우리들이 왔다. 그대의 아들딸들이 왔다 !

잠을 깨치라, 살아 일어나라 ! 조선아, 나의 조선아 !)

심장의 절규를 타고 어느 곁에 높이 쳐들렸던 그이의 권총부리에서 튕겨져나온 하나의 붉은 별찌가 캄캄한 어둠을 헤가르며 공중높이 날아올랐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땅을 일시에 들부시는듯한 장엄한 뢰성이 울렸다. 이 암담한 세상에 죽지 않은 조선, 살아있는 조선의 존재를 만천하에 고하는 백두산 뢰성이였다.

좁은 골짜기에 길게 메아리치며 야단스럽게 울린 그 뢰성과 더불어 와지끈 퉁탕거리며 벽력이 쳤다.

곳곳에서 유리창들이 부서지고 돌담들이 무너지고 들보가 꺾어지고 단말마의 비명들이 터졌다.

노호한 기관총들이 사납게 울부짖고 어지러이 날아가는 불줄기들이 어둠을 발기발기 찢어 냈다.

가차없이 들부어지는 총탄들의 뢰성벽력, 돌담 넘어 창문넘어 비호같이 날아드는 무서운 그림자들의 돌입.... 함성과 비명이 불협화음을 울리고 환성과 아우성이 혼탕을 이루었다.

남포등 불빛이 환한 경찰관 주재소 취조실에서 포태리 가와시마 현장사무소 습격 사건의 관계혐의 자인 보천내기 처서군을 마루바닥에 끓어 앉혀 놓고 그의 등어리에 뭇매를 안기고 있던 안경쟁이 수사관 가네하라는 창유리를 뚫으며 날아든 첫 기총탄환에 어깨우로 쳐들었던 참나무 몽둥이를 미쳐 내리우지도 못한채 대가리로 책상 모서리를 짓찧으며 밑둥잘린 통나무마냥 넘어졌다. 마루바닥에 떨어진 안경이 다리가 부러지고 안경알이 박살났다.

련이어 날아든 탄환이 책상우에 얹혀있던 남포등을 부시며 불을 꺼버렸다. 가네하라의 몽둥이에 어깨박죽을 얻어맞으며 뒤문으로 내뺀 하시지마순사는 가까스로 돌담장우에 기여올라 가시철망을 타고 넘다가 가시쇠줄로 바지가 걸려 거꾸로 매달린채 다음날 아침까지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바지가 쇠줄가시에 걸린 순간 유격대의 억센 손아귀에 붙잡혔다는 환각을 일으키고 실신한 것이다.

다행히도 가시철망을 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나이또 순경은 인분 구뎅이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빈돼지 우리안에 뛰여들어 돼지 분비물에 쩔어든 질적질적한 북데기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질 자리를 찾았으나 어디선가 날아온 탄알이 그의 허벅다리를 꿰뚫었다.

산림보호구 모리나까 주사의 영전을 축하하는 송별연이 벌어진 일본료정 ≪영락정≫에서 불벼락을 당한 보천거리의 ≪세력가≫들은 혼비백산하여 수라장이 된 료정안에서 갈팔질팡하다가 미닫이문을 박차며 뛰여든 습격대원들 앞에서 두팔을 버쩍 쳐들고 ≪고상≫(항복한다는 뜻)을 외웠다.

≪영락정≫에서 요행 빠져나왔던 보천면장은 어느집 감자굴속에 숨어들어간채 다시는 제발로 걸어나오지 못했다. 기절초풍한채 영영 깨여나지 못한 것이다.

보천거리에서 영원히 복락할 것을 꿈꾸어 ≪영락정≫이라 이름붙였던 이 료정은 영원히 씻지 못할 치욕과 패배를 그들의 가슴속에 남긴 ≪항복정≫으로 되고 말았다. 훗날 보천 사람들은 ≪영락정≫을 ≪항복정≫으로 고쳐불렀다.

상전의 영전턱에 만취되여 저들의 소굴로 먼저 돌아왔던 산림 주사보, 산림간수들과 맞은편에 있는 농사시험장의 재향군인 패거리들은 멋모르고 흥떡거리다가 공들여 쌓은 포대구멍으로 총한방을 갈겨볼 경황도 못가진채 영원한 복락을 누릴줄 알았던 이 백두산 가까운 조선의 두메거리에서 무주고혼들이 되고 말았다.≫

 

2. ≪삼천리강산≫(불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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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이 성시백을 처음 만나본 그날은 유난히도 랭혹한 추위가 창밖의 대기를 굳게 얼어붙인 밤이였다. 당중앙청사의 집무실에서 장군님께서 김책이와 함께 정권건설문제를 가지고 심중한 의논을 하고있는데 부관이 먼저 등북행영 화교판사처 부처장 겸 정치주임이라는 직명을 밝힌 명함을 들고 들어오고 뒤이어 책임부관의 안내를 받으며 중키에 얼굴이 갱핏한 중년사나이가 방안에 들어섰다. 그는 장군님께 오늘에 이른 자기의 과거를 놀랄만큼 간명하면서도 설득력있게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리진용의 의병대에서 참모장까지 지낸바있는 애국자로서 자신의 무력을 한탄하며 광복전까지는 하늘을 쳐다보지 않을양으로 고향인 황해도 평산군 주상리에서 땅을 뚜지며 여생을 보냈다. 성시백은 22살에 조국광복의 큰뜻을 안고 중국에 망명, 상해에서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 중공계신문의 편집원, 장개석의 배신에 격분한 상해로동계급의 폭동이 참혹하게 실패한후 주은래의 지도를 받으며 파괴된 조직을 복구하고 대렬을 정비하는 지하투쟁에 참가, 장개석도당에게 체포되여 9년간의 감옥생활, 등이 얼마간 구부정한것은 이 고역에 찬 옥중생활이 가져다준 후유증이라고 했다. 서울중동중학교에서 배우고 옥중에서 더 깊이 익힌 영어와 프랑스어, 일본말에 능한것이 빌미가 되여 중국에서는 그래도 개명했다고 하는 군벌 염석산의 눈에 띄여 그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가정교사가 됐다. 성시백의 높은 지성과 그가 즐겨 화제에 올리는 ≪안로분배주의≫(로동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가 염석산이 마음을 의탁한 그리스도교리와 비슷한데가 있다고 하여 그의 말동무로, 숨은 책사로 되였다. 일본놈들에게 징집되여 중국전선에 끌려왔던 10여명의 ≪학도병≫출신 조선청년들이 염석산이 차지한 제2전구에 탈출해왔다. 성시백은 그들을 데리고 장개석정부의 림시수도인 중경으로 갔다. 거기에는 상해에서 안면을 익힌 림정의 민족주의자들을 비롯해 조선의 망명객들이 집결해있었다. 압록강을 끼고 간고한 항일투쟁을 전개하고계시는 김일성장군부대를 찾아가고싶었지만 왜놈들의 점령지역을 만수천리나 뚫고나간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다. 중국에 망명한 독립운동자들의 집결처라고 하지만 그것은 뿔뿔이 헤여진 류랑객들이 랭습한 안개의 도시 중경에 모인것 같은 모양이였다. 백명안팎의 독립운동자란 사람들이 그 무슨 당, 동맹이란것을 대여섯개나 조직해가지고 어느 당, 어느 파 하면서 반목질시하고있는 모양이 하도 어이가 없어 웃지도 못할 지경이였다.

성시백은 일제와의 결전을 벌리고있는 시기에 이런 반목질시는 민족앞에 큰 죄를 짓는 일이라면서 림정을 반대하는 당, 반대파지도자들을 납득시켜 김구를 수위로 하는 구국전선을 형성케 했다. 이것은 파벌싸움에 시달리고 궁지에 몰린 김구를 ≪기사회생≫(죽음에서 벗어나 삶을 찾는다는 뜻)시킨 구원자의 역할을 했다는것을 의미했다. 김구는 김일성장군님의 항일무장력량과 련합하여 조국광복의 성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정향명의 제기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이렇게 되여 림정의 ≪국무회의≫에서 조종의 산 백두산에 사령부를 두고계시는 김일성장군님께 편지를 보내는데까지 이르렀다.… 성시백은 태평양전쟁이 끝나자 곧 중경을 출발하여 동북으로 옮겨왔으며 행정권을 장악한 ≪동북행영≫밑에 붙었다. 그는 국민당정부시종실과 염석산의 유력한 소개신을 주머니에 넣어두고있어 그닥 명색있는 부서도 아닌 화교판사처라는것을 곧 조직할수 있었으며 처장엔 중국사람들한테 얼마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을 올려앉히고 자신은 부처장 겸 정치부장이란 명목으로 사실에 있어 판사처의 실권을 틀어쥐였다.

성시백은 조국에 개선하신 장군님께 인사를 드리고싶어 찾아왔다면서 심양의 실태도 말씀드렸다. 현재 심양에는 3만이나 되는 교포가 모여들었는데 그중에는 장군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셨기에 북조선으로 나올수 없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도 끼여있다고 했다. 이자들은 미군이 강점한 남조선에 가야 산다면서 반동세력과 련계를 맺고 남으로 도주하고 있다. 미국놈들도 ≪동북행영≫과 련계를 맺고 지난날 일제놈들에게 붙어먹던 패덕한들가운데서 군대, 경찰, 첩보사업에 경험있는자들은 서울에 데려가고 있다.…

≪앞으로 미국놈들은 이자들을 발판으로 삼아 반동세력을 규합해가지고 조선혁명에 커다란 난관을 조성할것입니다. 이자들과 투쟁할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조국은 앞으로 커다란 시련을 겪을수 있다고 보아집니다.≫

장군님께서는 성시백이 정세를 예리하게 판단할줄 아는 사람이라는것을 간파하시였다. 조국앞에 어떤 시련이 닥쳐오는지 알지도 못하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광복의 열파에 들떠 공연히 주먹을 내두르고 웨치며 뛰여다니고있을 때 미제의 침략이 앞으로 어떤 양상, 어떤 형태로 감행될것인지를 벌써 감촉한 사람이 있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성시백에게 언제 조국에 돌아올 예정인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귀국하면 중요한 직책을 맡길 생각이신것 같았다. 그런데 성시백은 북조선이 아니라 남조선으로 갈 결심을 했다는것이였다.

≪평양에 와서 장군님을 모시고 혁명을 하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남조선정세가 앞으로 우리 나라 혁명에 난관을 조성할것은 뻔한데 사업하기 유리하다고 북조선에 올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남조선에 가서 혁명을 계속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성시백이 참으로 어려운것을 결심하고 민족을 위해 한몸을 헌헌히 바칠줄 아는 투사라는것을 아시고 그의 손을 굳게 잡으시였다. 김책도 성시백의 결심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 성시백이 근 두해동안 아무 소식도 없어 김책은 그의 별호를 잊어버릴 지경이 되였는데 난데없이 불법입북자로 취급을 받으며 돌연히 평양에 나타났다.≫

 

≪하지는 마치 우리안에 갇힌 맹수처럼 잔뜩 화가 치밀어올라 궁전처럼 호화로운 사령관실을 오가고있었다.

그는 사령부앞에서 수백명의 청년학생들이 결사적인 투쟁을 단행한 그 시각부터 미군의 심장부를 감히 위협할 생각을 한듯싶은 무모해보이는 시위를 지켜봤으며 붉은 창가림짬으로 지금도 시위자들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처음 시위가 급격히 확대될 때는 경찰이 서툴게 진압작전을 벌려 군중에게 피를 보인데 있다고 생각했다. 사령부소속 군인들의 조소와 야료, 휘파람이 시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 생각은 말할것 없고 이것이 새로 탄생될 반미구국전선의 출범투쟁이라는것을 알수도 없었다.

그러나 전차와 뻐스형마차에서 뛰여내린 젊은이들, 길가던 중년, 심지어 신문기자들까지 란투장에 뛰여들 때 상복의 대하, 미군에게 팔다리와 눈을 빼앗긴 수난자들의 흐름, 일터를 잃고 학교에서 쫓겨난 실업자들과 학생들이 노한 파도모양 뒤설레며 미군사령부를 향해 밀려드는것을 보았을 때 하지는 이 소란스러운 ≪란동≫이 미군의 남조선≪주둔≫이 부당하다는것을 방불히 눈앞에 그려볼수 있게 하려는 시위이며 결국에는 미군이 남조선에서 철수해야 한다는것을 립증하는 전략적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미국의 조밀한 정보망이 감촉하지 못한 이런 시위를 누가 조직했는가? 투쟁이란 혁명의 속성이라면서 극단적인 폭력행위에 매달리던 종래의 남로당의 투쟁방식과는 전혀 양상이 다른 이런 시위를 누가 조직했는가. 하지는 새로운 좌익세력이 등장한것 같아 밀려드는 불안을 물리치기 어려웠지만 시위의 양상으로 보아 선전적목적을 달성하면 해빛에 강서리가 녹아버리듯 스스로 물러갈것 같았다.

그는 해저물녘에 보복을 맹세하며 수치스러운대로 뒤문을 빠져나가 안해가 기다리는 경무대(일제시기의 총독관저, 후에는 력대 대통령의 관저로 리용된 청와대)로 향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도 신문거리는 여전히 시위군중들이 차넘쳤다. 하지사령관은 이날도 뒤문으로 해서 사령부에 들어서지 않을수 없었다. 윤기흐르는 비단벽지, 여섯폭짜리 금박병풍, 조선의 국보중에서 선택한 두폭의 명화, 치렁치렁하게 드리운 붉은 창가림이 마가을빛을 가리워 천정에서 수정무리등이 눈부신 빛을 뿌리는 호화찬란한 사령관실에 들어섰다. 삽시에 신문거리에서 울려퍼지는 구호, 우렁찬 노래소리, 목갈린 성토자의 웨침이 그의 귀를 멍멍하게 만들었다. 하지는 색갈이 바래기 시작한 금발머리가 곤두설만큼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올랐다. 표독스러운 노성을 내질러 부관을 찾았다. 지난밤의 ≪란동자≫들의 동향을 보고하게 했다. 시위자는 더욱 늘어났으며 부상자들과 로약자들에게 시민들이 자진해서 그 수를 알수 없는 무수한 이불포대기와 모포들을 들고왔다고 했다. 부관의 말을 믿을수 없어 창가림의 한귀를 들고 사령부 앞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분명히 시위대렬은 더욱 확대되여 수만에 이른것 같았다. 군용백화점이 자리잡은 신문가입구의 네거리로부터 시청앞광장에 이르는 포장도로는 누웠거나 올방자를 튼 롱성자들이 립추의 여지도 없이 꽉 차있다. 적게 잡아 천여장은 될것 같은 이불포대기와 모포들이 여기저기에 무둑무둑 쌓여있는것으로 보아 부상자들과 로약자들이 마가을추위속에서도 포대기를 깔고 이불이며 모포를 덮는 호사를 거절하고 맨 포장도로우에 눕거나 앉아서 밤을 새운 모양이였다. 바구니며 광주리, 흰김이 서려오르는 바께쯔를 안거나 든 수백명의 녀학생들과 아낙네들이 아침식사를 나누어주고 있다. 인도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백발의 늙은이, 로파, 중년의 아낙네와 양복차림의 사나이, 소년소녀, 아직 국민학교 문안에 들어가보지도 못했을 어린애들… 줄잡아 만여의 시민아이들이 늘어서서 자기네 살붙이를 소리쳐 부르기도 하고 웃음지은 얼굴로 격려의 웨침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그 누구인가의 선창에 따라 주먹을 내두르며 노래를 불렀다.

하지는 차거운 전률이 둥골을 줄달음쳐흐르는것을 느꼈다. 지난날 미국의 지배를 받아야 할 약자의 숙명을 지닌, 지지리도 가난하고 거기에다 죽음을 별로 대수로와하지 않는 우둔한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저들을 어떻게 해야 사령부앞에서 쫓아버릴수 있겠는가? 서울중심가에 땅크를 끌어들여 수만의 인명을 짓뭉개버릴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지 않아도 서울의 통신사들과 방송들, 어제와 오늘의 석간, 조간신문들은 미군사령부앞에서 단행된 시위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러한 대규모의 항쟁이 폭발한것은 지난 2년간 미군의 무지막지한 군사통치의 후과라고 통렬하게 비난했다. 맥아더사령부의 엄격한 통제하에 들어있지 않다면 도꾜와 지어 오끼나와의 군용방송까지 서울의 통신사들에서 날린 이 소식과 론평을 온 세계를 향해 대대적으로 전했을것이다.

자기에게 감히 항거해나선 시위자들의 웨침이며 노래소리를 주걱턱을 일그러뜨리고 들으며 어찌할바를 몰라 푹신푹신한 주단우를 오가고있는데 문뜩 손기척소리도 없이 씨, 아이, 씨(미중앙정보국 남조선지부)의 정치과장 노불이 마치 제집에 들어오듯 버젓이 사령관실에 들어섰다. 그는 자리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무겁게 드리운 붉은 창가림의 한쪽을 들치고 롱성자들을 내려다봤다. 하지는 이때에야 감히 사령부앞에서 수만의 시민이 소란스러운 롱성을 벌릴 잡도리를 하는것도 알아내지 못한 분풀이의 상대자가 제발로 찾아왔다는것을 깨달은듯 정보일군들에 대한 평소의 조심성을 잊고 한마디 던졌다.

≪거기서도 이런 일이 있으리라는것을 알지 못했소?≫

≪무엇이 있으리라는것은 알았지만 놈들은 ≪란동≫개시시간을 극비에 붙인것 같습니다. 이런 큰 규모의 ≪란동≫을 우리도 모르게 어떻게 조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령관각하도 나도 허헌을 좌익의 주도자로 내세운것을 공산주의자들의 영상을 개선하기 위한 술책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런것 같지 않습니다. 그 령감태기가 주도자로 나선후 화해할수 없을것 같던 좌익진영의 여러 정당을 단결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허헌을 잘못 알고있었던것 같습니다. 허헌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것은 알수 없지만 그는 종래의 ≪남조선란동자≫들과는 다른 특이한 능력을 갖고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 사령부앞에서 벌어지고있는 ≪란동≫을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미처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던 하지는 드센 주먹으로 정수리를 얻어맞은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기와 상대해 싸우게 된 대상이 고작해서 변호사의 퇴물이며 정치엔 문외한이라고들 하던 바로 그 허헌이란 말인가?

≪로씨야인들이 배후조종을 하고있을것이요! 나는 그 허헌이란자를 이 방에서 한번 만난적이 있소. 내가 불렀다는것을 알면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입에서는 마늘냄새인지 그 코린내가 나는 김치냄새인지 역스러운 냄새를 풍기며 이 사령관실에 들어왔댔소. 사령관도 몰라보는 고약한놈이였단 말이요. 그래도 그자를 회유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생활상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온 남조선을 폭압의 란무장으로, 기아지대로 만든 당신이 무엇때문에 적선을 베풀려고 하는가? 주겠으면 인민위원회를 다시 내올 권리를 달라, 시정권을 인민위원회에 넘기라… 이런 말을 하는것이 아니겠소. 그자는 그때에도 분수없는 반항아였소.≫

하지는 허헌을 진작 없애버리지 못한것을 후회했다.

≪조종을 받던 주동적으로 조직했던 그자가 미국을 반대해나선 이상 그대로 둘수는 없소.≫

하지가 끝이 없을듯싶은 넉두리를 하며 사령관실을 오가는데 정보기관요원이 사진기를 두개나 목에 걸고 방에 들어섰다. 노불의 지시가 있었던 모양이였다.

노불은 치렁치렁하게 드리운 창가림을 얼마간 들어올리고는 대여섯대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촬영을 하게 했다. 그중에는 순남이를 손수레에 눕혀가지고 밀고나온 조순옥도 들어있었다.

노불은 쏘파에 엉뎅이를 붙이고 앉아 담배연기를 날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령관각하의 마음은 알만하지만 시위를 조직한 솜씨로 봐서 종전과 같은 탄압을 하는것만으로는 부족할것 같습니다. 철저하고도 면밀한 대책을 세워서 뿌리를 뽑아버리지 않으면 미국의 대조선정책에 큰 위험이 조성될것 같습니다. 유엔에서 조선문제토의를 앞두고 미군철거를 주장하는 대시위를 미군사령부앞에서 단행한것을 보면 상대가 간단치 않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지는 사령부앞에서 벌어지고있는 ≪란동≫이 유엔에 상정될 조선문제토의에 영향을 주게 되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그 볼품 없는 옷주제에 검은테안경을 걸었던 령감태기가 워싱톤까지 소란스럽게 만들수 있다는것이 아닌가? 국무장관 마샬, 이제 곧 국방장관으로 발탁되리라는 웨드마이어, 그들은 길들이기 어려운 짐승의 무리와 같은 조선인들에게 시달리고있는 이 ≪오끼나와의 영웅≫따위는 백명이라도 수치스러운 패자의 구렁텅이에 던져넣을수 있는 인간들이다.

하지는 겨드랑이에 식은땀이 축축하게 고이는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앞에 앉아있는 노불에게 해결방도를 묻고싶지는 않았다. 노불은 조선사람들만이 아니라 미국병사와 장교들, 지어 자기도 감시의 대상으로 삼고있을것이였다.

하지는 자기가 거느리고있는 두뇌진에 의거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나운 비발이 쏟아져내렸지만 장엄한 군중시위는 시작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비를 맞으며 주석단 한가운데에 서서 발을 구르고 두손을 내두르며 앞을 지나는 37만 평양시민들의 환호에 밝은 웃음을 지은 안색으로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였다. 주체37(1948)년도 인민경제계획을 기어이 초과완수할 결의를 보여주는 가장물과 구호판을 들고 목소리를 합쳐 웨치기도 하고 환호도 하며 주석단앞을 지나는 로동자, 농민들, 황철에서 정준택이 말을 할 때는 그저 귀결에 흘려들었을뿐이던 수자들, 자립적민족경제건설을 목적한 공작기계를 비롯한 생산항목들이 이제는 단순한 수자와 항목이 아니라 민족의 래일을 말해주는 생동한 화폭으로 눈앞에 안겨왔다. 남북협상의 성과를 축하하는 구호판과 가장물을 들고 평양시민들이 남조선대표들에게 두팔을 높이 쳐들고 내두르며 목청을 돋구어 환호를 보내면서 주석단을 지날 때 김규식은 갑자기 눈앞이 뿌잇하게 흐려졌다. 창창한 미래를 확신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행진하는 청년학생들… 김규식은 장군님을 돌아봤다. 머리와 얼굴은 말할것 없고 옷도 흠뻑 젖어있었다. 시위군중들도 그 모양으로 전신이 물투성이였지만 모두들 환희에 넘쳐 목청을 다해 장군님께 최대의 경의를 드리고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령도자와 인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단합된 눈물없이는 대할수 없는 아름답고 감격적이며 장쾌한 대화폭이라고 해야 할것이 아닌가!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시는 장군님, 인민이 비를 맞을 때에는 자신께서도 비를 맞으시고 인민들이 조밥과 죽으로 끼니를 에울 때는 자신께서도 그런 음식을 드시며… 장군님께서 어째서 이런 로고를 바치시겠는가? 령도자와 인민이 한뜻으로 뭉치지 않으면 건국위업을 성취할수 없다는 철리를 신념으로 삼고계시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자신께서는 인민들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남조선의 고위대표들을 각별히 우대해주시는것은 외세의 간섭을 배제한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자면 전조선민족의 단결, 바로 이 단합된 민족의 힘에 의거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굳게 믿으시기때문이 아니겠는가!

김규식은 비를 맞으며 군중에게 답례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에서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 성과를 기대할수 없다고 여겼던 남북협상이 장군님께서 바라는 민족대화합을 이룩하고 페막을 앞두게 된것도, 8.15후 불과 3년사이에 그렇듯 막강하고 정예화된 현대적 정규무력을 창건할수 있은것도, 북조선의 전체 인민이 민족의 자주위업을 완수하기 위해 일신을 바칠 결심을 하고 그이께 삼가 충성의 결의를 다지는것도 장군님께서 그렇듯 투철한 리념을 지니고 로고를 다해오신 결과가 아니겠는가.

. . .

≪굴복하지 않고 싸우는 령도자가 어떤 힘을 창조하는지 나는 오늘 보았소이다. 조선민족은 결코 약소민족이 아니라는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도 깨달았소이다. 나는 굴종을 버리고 새출발을 하기로 결심했소이다. 내가 새출발을 하자면 장군님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간을 내주실것을 소청드렸소이다.≫

장군님께서는 김규식을 와락 그러안고싶은 심정이시였다. 그렇게도 바라신 바로 그 종착점에 김규식이 도달한것이다. 일여덟쯤 나이 차이가 있다고 해도 생사를 같이 하며 함께 싸운 운명의 동행자였더라면 그이께서는 김규식의 오동통한 손이라도 힘있게 부여잡으시였을것이다.

≪선생님들은 높은 식견을 가진분들이고 오래동안 정치활동을 해온분들인데 무슨 조언을 드릴 말이 있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환하게 웃으며 겸허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을뿐이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서울에 나가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대통령출마를 그만두는것은 말할것도 없고 반미구국투쟁에서 민족주의진영을 선도하겠소이다. 북의 실상을 민중들에게 알려주면서 반미민중투쟁의 앞장에 서겠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민족주의진영을 반미구국투쟁에 합세시켜야 한다는것은 옳지만 선생님들은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안색으로 말씀하시는 장군님의 어조는 단호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반미구국전선을 편성하는것이 현시기 조선의 정치인들의 초미의 과제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김규식선생, 김구선생들까지 테로의 대상이 될수 있는 모험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열정적으로 말씀하시였다.

≪선생님들은 민족주의진영에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로세대지도자들입니다. 선생님들이 테로의 희생이 되면 민족자주련맹은 어떻게 되고 한독당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생님들은 그 명성과 함께 자신을 보존해야 합니다.≫

≪아!≫

김규식은 가슴밑바닥에서 솟구쳐오르는 감동을 어떻게 주체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버려도 아까울것이 없는 구새먹은 나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 말년을 장렬한 싸움에 바치려고 했는데 명성과 함께 목숨을 오래동안 보존해야 한다고 하시다니! 그의 눈앞은 갑자기 뿌잇하게 흐려졌다.

≪장군님, 저희들로 해서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나나 백범이나 이미 인생을 다 산 늙은이들입니다. 사실 저희들은 장군님의 사상과 적대되는 정견에 의거했던 사람들입니다. 정계의 법칙에 의거해본다면 생명이 없는 산송장과 다름이 없는 패자로 되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장군님께서 관용을 베풀어서 환생시켜주셨습니다. 인생말년에 찾은 진리를 위해 진정한 조선민족의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청춘의 혈기를 되찾은 지금 좀 떳떳한 투쟁에 나섰다가 최후를 맞이한다고 해서 아까울것도 없고 후회될것도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백범이나 내가 나서면 한독당이나 민족자주련맹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뒤를 따를것입니다. 정세가 급박한 이때 목숨의 보존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담배가치를 손에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옆탁에 놓으며 말씀하시였다.

≪선생님들이 자신을 보존하면서 민족을 위해 효과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할 방도가 있을것 같습니다. 내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현재 남조선에는 조선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자들을 중심으로한 독립운동자협의회라는 단체가 있다. 현재는 별로 하는 일이 없지만 이 단체의 명칭을 통일독립촉진회라고 바꾸어달고 이 단체에 남북협상에 참가한 우익과 중간 정당, 단체, 그리고 남조선단독괴뢰정부수립을 반대하는 반미, 반리승만 세력을 전부 망라하면 참으로 많은 일을 할수 있는 위력한 통일전선체로 될것이다.…

≪김규식선생과 김구선생이 반드시 이 통일전선체의 의장, 부의장이 되여야 합니다. 비록 반미구국전선이라는 명칭은 달지 않았지만 그것은 명백히 반미투쟁을 전개하는 특수한 형태의 구국전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것입니다.≫

김규식은 그저 감탄해서 장군님의 존안을 덤덤히 마주 볼뿐이였다. 자기가 반미구국전선의 일원이 되여 우익진영을 선도해나가겠다고 말씀드린지 10여분도 안되는데 그 유명무실한 독립운동자협의회를 반미구국전선의 별동대로 만들 생각을 하시다니… 그이의 비상한 사고력에 김규식은 그저 놀랄수밖에 없었다.

≪구국전선의 특수한 형태라고 해도 어차피 민족통일정부수립을 지지해야 하고 남조선괴뢰정부를 반대해야 할것이 아니겠소이까. 미군철수를 요구해야 할것은 더 말할것도 없을것입네다. 미국인들은 우리를 즉시에 탄압할것입네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 대해서는 반대도 지지도 하지 않는 불반대불찬성의 립장을 지켜야 합니다. 촉진회의 활동은 남조선에 한정되여야 합니다. 선생님이 대통령출마를 그만두면 리승만이 대통령이 될것은 틀림없지 않겠습니까. 남조선괴뢰독재정권을 반대한다, 미군의 철거를 요구한다, 이것은 반미구국전선의 투쟁목표와 비슷한것이 아닙니까. 그렇지만 민족주의진영에서 응당 추켜들어야 할 정강이 아닙니까?≫

김규식은 격렬한 감동으로 해서 뇌수의 기능이 마비된것 같았다. 놀라고 감동된 휘둥그래진 눈으로 밝게 웃고계시는 장군님의 얼굴을 한동안 마주보기만 했다. 수십년간 감동이란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얼어붙고 늙어빠진 심장을 어쩌면 이렇게도 뒤흔들게 하시는가! 며칠후 서울에 나가서 장군님의 자주적인 시책과 경이적인 성과, 남조선과는 정반대인 활력에 넘친 자립적민족경제의 건설정형, 식량을 자급자족하게 만든 북조선농민들의 애국적열의, 그 무엇보다도 경이적인 로동자, 농민, 지식인들의 성장과 의식변화… 몇마디의 말로 다 이야기 할수 없는 북조선의 현실과 영명한 김일성장군의 걸출한 령도를 기자들앞에서 피력하면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킬것이며 민족통일정부는 더 많은 남조선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수립될것이 아닌가.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자기와 백범이 려운형과 같은 참혹한 최후를 맞이할가봐 쉬운 길을 택하게 하려고 하신다. 김규식이란 이사람과 김구가 그렇게도 값있는 존재였던가.

김규식은 떨리는 손을 장군님의 무릎우에 놓고 눈물에 흠씬 젖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나라는 인간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라고 그리도 아껴주십니까. 백범의 경우도 마찬가리라고 생각되옵니다. 장군님의 경륜실현에 몸을 바친다한들 후회될것이 없는 몸들이온데 어쩌면 이리도 귀히 쳐주시옵니까. 내 오늘 사나운 비속에서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시위군중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그때의 울음은 장군님을 중심으로 하고 굳게 단결된 민족의 모습에 감동되여 울었지만 지금은 장군님의 덕망과 경륜으로 빛날 래일의 3천리강산이 눈앞에 보여서 눈물을 흘리옵니다.≫

말을 끝낸 김규식은 그 어떤 령감이 머리에 번개치듯 수북한 눈섭밑의 검은 눈이 열정에 넘쳐 황황히 불탔다. 장군님을 이윽히 마주보는 그의 눈이 불이 달린 심지인양 불꽃을 날렸다. 그는 독백하듯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장군님께서는 외세의 간섭과 악랄한 책동을 짓부셔 버리고 민족대단합을 이룩한 위대한 령도자이시옵니다. 약소민족으로 알려진 조선민족에게 위대한 미래를 안겨준 령수이십니다. 내 시 한수를 읊겠소이다.≫

김규식은 장군님의 응답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은근하면서도 온방에 울려퍼지는 음성으로 시를 읊기 시작했다.

작은 꿈도 미처 채우지 못해
꿈에 시달리며 살던 불우한 겨레여
큰 꿈을 품은자는 발디딜 땅이 없었더라
내 안고 모대긴 겨레속에
위대한 꿈을 안은이 그 몇이던가
민족에게 위대한 꿈을 심어준 위인을
내 일찌기 알지 못했어라
힘이 모자라 불우한 운명을
구슬픈 노래에 담아보낸 나의 겨레에게
불우한 운명을 털고 일떠세운 기적의 위인을
내 뵈였나니 유구한 옛도읍 서경에서
그이는 우리의 장군
김일성장군!

 

수많은 군중을 앞에 둔듯 틀어쥔 주먹을 머리우에 높이 추켜들고 결구를 웨친 김규식은 장군님께 말씀드렸다.

≪오늘 저녁에 있기로 된 연회에서 내 이 시를 읊겠소이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부드러운 미소가 어린 모습으로 장군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우선 그 시는 나에 대한 지나친 찬사이고 다음엔 선생님이 나하고 약속한것을 어기는 일이기때문에 그래선 안됩니다. 통일독립촉진회 부의장이 취해야 할 범위를 평양에서도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김규식은 무너지듯 주저 앉으며 장군님의 손을 덥석 모두어 잡았다. 그는 혼신의 힘을 바쳐 부르짖었다.

≪그러하다면 우리 민족을 위대한 꿈, 위대한 사상의 소유자로 만들었다는것만이라도 인정해주시오이다.≫

장군님께서는 다른 한손으로 김규식의 손을 굳게 잡으며 겸허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것도 선생님의 지나친 평가입니다. 우리 민족은 원래 성실하고 근면하며 용맹할뿐아니라 단결력이 강한 우수한 민족입니다. 지금까지 위정자들이 이것을 보지 못하고 계발하지 못해서 망국의 설음을 체험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다만 정책을 내놓고 계발했을뿐입니다. 아직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북조선에서 얼마간의 성과를 달성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공적이 아니라 인민의 공적입니다. 우리 인민의 공적이라고 봐야 정확합니다.≫

김규식은 모두어 잡았던 장군님의 손을 놓고 그이앞에 무릎을 끓었다. 유난히도 큰 머리를 깊이 떨구고 꿇어앉아 량어깨를 후두둑후두둑 떨며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감개를 바이 표현할 방도를 찾을수 없어 뒤늦은 례의를 이제야 차리오니 저의 절을 받아주시오이다.≫≫

 

3. 애국시대(통일혁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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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민중에 대한 가장 큰사랑의 위업을 개척하시고 이끌어오신 분은 우리의 김일성장군님이십니다.≫

장호는 장군님의 초상화를 조금 앞쪽으로 당겨 놓았다. 모두의 눈길이 초상화에 쏠렸다. 장호는 마디마디 감동적으로 이야기했다.

≪장군님께서 어린 시절부터 헤쳐오신 혁명의 길은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형극의 길이었습니다. 어데로 가시거나 왜놈의 천지인데 사지판에 내몰린 망국의 백성들은 그분께 몰려들어 구원을 부르짖었옵니다. 천신만고하여 일으키신 유격대는 아직 청소한데 적의 수만, 수십만의 대병력은 사면팔방에서 밤낮으로 달려들지, 거기에 대륙의 겨울추위는 또 어떠했겠습니까. 일찍이 아버님을 여의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부고마저 때늦게 받고 분묘 앞에서 피눈물을 삼키셔야 하셨습니다. 동생과 삼촌도 전사하셨습니다. 희생에는 끝이 없었습니다. 천금같은 유격대원들이 적탄에 쓰러지고 근거지에서는 숱한 남녀노소가 적의 기습과 굶주림에 쓰러졌습니다. 그러니 장군님의 괴로움이 어떠하셨겠습니까! 어느 역사에 한 인간이 이렇게도 무거운 고통의 짐을 안고 견뎌 낸 일이 있었습니까…≫

장호는 목소리가 흐려지고 있었다. 그의 심정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옮겨져서 숨소리들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장호는 계속했다.

≪그러나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 형언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도 전사들과 민중에게 주실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구천에 사무친 민족의 원한과 분노를 모아 기어이 강도 일제를 타승하시고 조국을 광복하셨으며 이북땅에 민중의 낙원을 펼쳐 놓으신 것입니다.

≪동지들, 세계제국주의의 두목인 미제와 야수적인 매판세력과 대결하게 된 우리는 어차피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혁명은 세대를 이어가며 반드시 승리하겠지만 우리들 제1대는 희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생명을 성급히 모험할 권리는 없습니다.≫ 장호는 주먹을 들어 허공을 연거푸 때리며 말했다. ≪나는 강조합니다. 누구나 생명은 제일 마감에 바쳐야 합니다. 그전에 자기의 충성, 지혜, 열정, 재산, 모든 유용가치를 깡그리 민중에게 바칩시다! 그런 다음 이제는 붉은 피밖에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진 그때, 그때에는 생명까지 통쾌하게 바칩시다!…

나는 자신과 동지들에게 이 말을 잊지 말자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당은 남을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영생이 있습니다!…≫

모두가 자리를 차고 일어나 한덩어리가 되어 부둥켜안았다.

열기오른 얼굴들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회의는 지하 서울시 당위원회를 조직하고 이 위원회가 앞으로 통일적인 당을 창건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모두의 제의에 따라 김장호는 조직의 위원장으로, 다른 동지들은 위원으로 되었다.≫

≪그만큼 싸우는 거리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들의 눈길이 닿는 곳은 어데나 폭풍을 안은 바다처럼 들레이고 소음은 귀가 멀 지경이었다. 학생들과 대거 진출한 시민들은 종심이 끝없이 깊은 산병선을 펼치고 주먹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목청껏 저주의 절규를 터뜨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편대들은 독재기관들을 계속 들부수고 있었다. 기관들의 여러 창문들에서는 하얗게 쏟아지는 삐라와 함께 부서진 기물들이 연속 밖으로 뿌려지고 흐린 하늘에는 여러 구역의 경찰서를 비롯한 독재기관들이 불타는 연기들이 뒤엉켜 시꺼먼 구름층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한쪽에서 숱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터졌다. 최영란은 안타까와 발을 동동 굴렀다. 서쪽으로 열린 큰길로부터 경찰들의 큰 부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놈들은 수십 발의 최루탄을 마구 쏘아 대는 것과 함께 혼란된 항쟁군 속에 덮쳐들어 흉기를 사정없이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때려눕히고 있었다. 그 선두에는 여러 명의 기마수들이 날뛰며 말발굽으로 사람들을 짓밟으며 곤봉과 총탁으로 사정없이 까눕히고 있었다.

장호는 인규와 영란이 말릴 사이도 없이 격전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었다. 그의 눈앞에서 푸른 옷을 입은 처녀가 날뛰는 말발굽에 밟혀 새된 비명과 함께 물탕에 쓰러져 바둥거리고 있었다.

기마수는 야만인이었다. 놈은 잇따라 달려드는 남루한 어린 소년을 곤봉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머리가 터진 소년은 온몸에 선혈을 들쓰고 나둥그러졌다. 순간, 장호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몸을 부르르 떨더니 비호같이 날아들어 헤갈치는 잿빛 말의 굴레를 잡고 기수가 어찌할 사이 없이 ≪앗!≫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육중한 말을 나꿔채어 휘둘렀다. 말은 요란한 비명과 함께 대가리를 장호의 발 밑에 박고 뒷다리를 허공에 버둥거리며 모재비로 나뒹굴었다. 그 바람에 허우적거리던 기수는 돌바닥에 정수리를 찧으며 거꾸로 떨어져 너부러졌다. 강물에 바위가 떨어지면 갈라졌던 물이 공간을 메우듯 군중은 일시에 다시 덮쳐들었다. 놈은 뭇발에 짓밟혀 자연의 오물로 변했다.

장호는 벌써 그곳에 없었다. 끓어 대는 사람들 속에서 재빨리 등산모와 색안경으로 변장한 그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않은 채 포도의 사람들 속에 유유히 섞였고 1분 후에는 허둥거리며 그를 찾는 인규와 영란의 사이에 끼어들어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허 - 여기서 만났구만!≫

영란은 너무도 놀랍고 기뻐서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울었다.

인규는 울분한 얼굴로 책망했다.

≪선생님이 모험을 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장호는 그 사이에 공세로 넘어가 기세충천하여 적을 들부수고 있는 영용한 군중을 얼없이 바라보더니 주먹을 흔들며 조용히, 박력있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흥이 날 때면 집에서나 동지들 앞에서 부르곤 하는 ≪김일성장군의 노래≫였다.

주위를 경계하여 가사없이 선율만을 그어 가고 있었으나 곡상에 완전히 취해 있었다. 지금 그에게는 투쟁으로 끓어 대는 수만 명의 군중이 새 세상의 새벽을 일제히 손들어 가리키는 역사의 신호수들이었다. 그는 그들의 앞장에서 노을같은 깃발을 들고 전진하는 자신과 동지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서울의 중심거리들에는 이미 규율을 유지하고 있는 적이란 없었다. 그들에게는 심장이 공포에 얼어들어 몸뚱아리가 마비되고 맥을 잃은 손에서 무기가 떨어지는 그러한 사태, 자기들을 매장하려는 군중 앞에서 정신병자처럼 헛소리를 치며 퍼더앉는 희극적인 종말이 오고 있었다.

시민들이 일터를 포기하고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거리에는 관권도, 법도, 황금의 마력도 더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압제자들이 신성시하던 모든것이 뭇발에 낙엽처럼 짓밟히고 있었다. 폭동군은 경찰 백차와 트럭들을 빼앗아 타고 달리며 확성기로 결전을 호소하고 있었고 군중 속 여기저기에 쳐들린 트랜지스터에서는 평양이 보내는 전투적인 성원의 노래가 꽝꽝 울리고 있었다. 세종로와 태평로를 비롯한 거리거리들에 꽉 찬 붉은 얼굴의 바다위에는 누구의 눈에나 서서히 영글어 오는 황홀한 그 무엇이 있었으니 그것은 백발머리 위에 자유의 면류관을 쓰고 두 팔 벌려 눈물로 웃으며 다가오는 위대한 어머니 조국이었다.≫

 

≪재판장은 마감으로 김장호를 불러내며 충고했다.

≪한두 마디 간단히 하시오.≫

백발머리에 무성하게 자란 구레나룻조차 희슥희슥하여 노인티가 풍기는 장호의 얼굴은 한복 차림을 한 장년다운 강건한 몸집과 조화를 이루어 위풍이 자못 재판부를 누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가오는 사진기자들에게 단 한 번 얼핏 자세를 취해 보인 그는 법정의 앞면과 뒤쪽을 간간이 돌아보면서 활달하게 말했다.

≪우리가 받게 된 가혹한 형벌, 그것은 우리가 쟁취한 피어린 승리의 무게를 반증합니다.

외세에 나라 판 역적들을 후려갈긴 그 때문에, 헐벗고 목마르고 눈앞이 캄캄한 민중에게 운명을 열어 갈 등불과 용기와 깃발을 안겨 준 그 때문에 우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자기의 지성과 재산, 육체의 힘과 생명까지 민중에게 바쳐 나선 그 때문에 우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우리는 남의 집 말뚝 한개, 돈 한푼 빼앗은 일 없습니다. 우리는 걸음마다 역적들의 채찍을 잔등에 받느라 부모처자를 굶기고 제 자신도 굶주린 못난이들입니다. 보십시오. 저기 나의 어머님이 오셨습니다. 나는 어머님께 생일상 한번 챙겨드리지 못하고 양말 한켤레 제 손으로 신겨드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끔찍한 꼴로 늙은이의 가슴을 긁어 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궁궐과 권세 위에, 모든 철학과 총칼과 아귀다툼 위에 역사의 신호수로 높이 올라섰습니다. 우리는 약육강식과 이기주의를 반대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지식도 심장도 재산도 사랑도 민중에게 아낌없이 털어 바쳤습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단 하나 남은 목숨을 바치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쑤들은 늦고 늦었지요. 우리는 씨뿌리기를 끝냈으니까요!…≫

재판장은 탁자를 마구 두드리며 발언중지를 명령했다. 한순간 온 장내가 숨을 죽인 가운데 재판부를 노려보던 장호는 상반신을 틀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얼굴에는 붓으로는 도저히 그릴 수 없는, 존엄한 깊은 정신에서 발산하는 희열의 빛이 끓고 있었다.

그는 팔을 들어 방청석을 거쳐 뒤쪽 어덴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바깥을 보시오. 우리의 푸르른 저 새 봄을 보시오! 흙을 움켜쥐고 일떠서는 저 민중의 바다를 보시오! 들립니까, 저 천둥같은 외침소리, 태양을 향해 달려가는 저 왕양한 민중의 바다를 보시오!…≫

장호의 격렬한 외침은 그에게 무리로 달려든 경찰들의 야성 속에 파묻혔다. 판사들과 검사들은 황황히 퇴정하고 여러 출입문으로부터 경찰기동타격대가 마구 몰려들었다. 피고들은 손을 묶이우고 밧줄에 감겼다. 여러 기자들이 사진기와 취재수첩까지 빼앗기고 구타를 당했다. 방청자들은 경찰들의 곤봉에 맞으며 밖으로 밀려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웅들의 이름을 피타게 불렀다.

텅 빈 검사석에 색안경을 쓴 한용달이 서너 명의 부하들과 함께 도사리고 있었다.≫

 

4. ≪역사의 대하≫(불멸의 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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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범!... 굵다란 목과 감때사나운 눈빛 그리고 짧게 깎은 머리며 콩알만한 기미로 특히 인상적이던 오영범, 그이께서 그를 처음 만나신 것은 17년전의 일이다. 그때 군단참모장의 명령으로 지휘감시소에 도착한 오영범은 모가 진 턱을 쑥 내민, 화끈 달아오른 난로같이 열기가 확확 내풍기는 한창나이의 공병소대장이였다.

그때 그는 시뻘건 목덜미로 줄지어흐르는 땀을 팔소매로 빽 문지르고나서 군단참모장에게 명령대로 왔노라고 아주 큰소리로 보고하였다. 그러자 군단참모장이 포대경쪽에 서계신 그이께 ≪일을 친공병소대장≫이라고 말씀드렸다.

≪아, 동무요?!≫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순간 오영범은 제식훈련때처럼 두손을 바지혼솔에 딱 붙이고 홱 돌아섰는데 처음 당장은 환하신 미소를 담고 자기를 바라보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미처 알아보지 못한것 같았다. 어리둥절해있던 그의 얼굴이 돌변한 것은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그는 불현듯 눈이 부신것처럼 두눈을 쪼프리면서 입을 벙긋거렸는데 가슴속에 꽉 들어차는 격정에 숨이 차서 허덕이는듯 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목멘 부르짖음과 동시에 한발 앞으로 나섰으나 별안간 눈굽이 쿡 쑤시는듯 구붓한 눈섭을 흠칫거리며 굳어져버렸다. 또 한순간이 지나서야 서둘러 거수경례를 붙이며 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 567군부대직속 공병중대 3소대장 오영범...≫

≪아, 오영범!≫

그이께서는 한손을 약간 드시며 흙탕에 게발린 군복차림 그대로인 그의 모습을 재빨리 훑어보시였다.

≪동무가 발파를 해서 땅크를 파묻었다는게 사실이요?≫

≪그렇습니다.≫

기여들어가는 소리였다. 순간의 기쁨과 환희는 거품처럼 가라앉아버리고 별안간 가슴속에 눈보라가 이는듯 몸을 옹송그리기까지 했다.

≪그건 왜?≫하고 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그 땅크 한대에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들었는지 아오?... 그래 동문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아냐말이요!≫

≪...≫

그는 아무 대답도 드리지 못하고 달달 말라서 튼 입술만 세차게 깨물고 있었다.

≪왜 대답을 못하오? 그래도 그걸 묻어버릴 결심을 했을 땐 무슨 타산이 있었을게 아니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하고 그는 마침내 갈린 목소리를 가까스로 짜냈다. ≪전... 각오가 돼있습니다. 어떤 처벌이라도 다... 받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가 또 있소?... 말해보오.≫

≪그렇지만... 시간을 지키려니... 다른 방도는 없었습니다.≫

≪그렇다?!≫하시며 그이께서는 흥분으로 하여 푸들거리는 그의 불편을 눈여겨보시였다. ≪그래 그와 꼭같은 정황이 또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소?≫

≪그런 정황이 또 생긴다면... 그땐...또...≫

≪또 묻어버리겠다?!≫

≪예, 달리는... 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군단참모장 등을 둘러보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이 동무 아주 괜찮소. 응?! 배짱도 있구...≫

그이께서는 딱 바라진 그의 어깨를 툭 쳐주시였다.

≪괜찮아.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 대답이였소. 동무가 잠시나마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했더라면 어쩔번 했소. 동문 전투에서 생명과 같은 시간을 지켜냈소. 그것이 중요한거요. 묻어버린 땅크는 아무때건 다시 파낼수 있어도 잃어버린 시간은 영영 되찾지 못하거든!... 오영범동무, 우리 지휘관들에게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그 결단성이요. 특히 전쟁판에선 제때에 통찰하고 제때에 결단을 내리는 사람만이 승리를 얻을 수 있소.≫

그이께서는 그때에야 비로소 그를 향해 손을 내미시였다.

≪동무를 알게 되여 기쁘오≫

그러자 오영범은 너무도 큰 충격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이께서 다정히 손을 잡아주시자 벅찬 감격에 모가진 아래턱을 움씰거리는데 그때마다 콩알만한 기미가 경련적으로 오르내르군하였다.

그때부터 그이께서는 평범한 한 공병소대장에 불과하였던 오영범을 잊지 않으셨고 남달리 관심하시였다. 그를 만나실 때마다 ≪아, ≪오발파!≫ 인젠 중대장이요?≫하며 각별한 정을 표시하군시였다. 그리하여 공병출신으로 자기의 포병구분대를 지휘해본 경험을 쌓고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주체적군사리론과 전략전술을 익힌후 드디여 기계화보병려단을 지휘하는 장령으로 자라난 것이다...≫

 

≪마침내 수령님께서 지구의를 멈추시였다.

≪그렇게 결심했단 말이지. 그렇게 큰 용단을!≫

≪그렇습니다.≫하고 김정일동지께서 열정에 넘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이것은 곧 핵전파방지를 세계전략의 하나로 삼고있는 미제의 세계지휘봉 즉 핵몽둥이를 꺾어버리는 것으로 됩니다. 결국 미국과 우리와의 정면충돌은 더는 피할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나서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와 세계의 자주권을 수호할 력사적사명도 함께 걸머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판가리대결에서 순간이나마 주저하고 물러선다면 우리 혁며은 물론 세계의 자주권이 유린되고 말살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화를 지향하는 나라들의 맨 앞장에 나서서 미국과 결판을 지어야 합니다.≫

≪음-≫

수령님께서는 두손을 허리에 짚으시였디. 이윽고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시는 수령님의 안광에서 광채가 번뜩이였다.

≪옛글에 경천동지라는 말이 있소. 하늘을 놀래우고 땅을 뒤흔든다.- 다시 말하여 위인은 반드시 하늘을 놀래우고 땅을 뒤흔들어놓을만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바로 그 결심이야말로 경천동지격인 대결단이요!≫

수령님께서는 다시 지구의를 천천히 빙 돌리고 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 이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오?... 오래전 일을 생각했소. 항일투쟁시기 어느해인가 김주현동무가 가져온 일본 ≪요미우리신붕≫에 쓰딸린의 연설내용이 실리지 않았겠소. 2차대전이 터지기 직전인 그때 쓰딸린은 히틀러의 로골적인 전쟁도발책동을 념두에 두고서 만약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는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나서야 하며 나서되 맨 나중에 나서야 한다. 즉 저울판에 결정적인 추를, 저울을 기울어뜨리게 할수 있는 추를 던지기 위해 나설것이다라고 했소. 그런데 지금 최고사령관이 미국과 정면으로 맞서 나서되 맨 앞장에 나서서 결판을 지어야 한다고 하니 오래전 그 일이 문뜩 떠오르는구만.≫

모든 사람들은 사뭇 격동된 심정으로 김정일동지를 우러르고 있었다. 핵문제에서의 그 결심이야말로 담대한 심장과 철의 의지, 비범한 지략을 겸비한 령장만이 내릴수 있는 대용단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막부득이한 경우의 무모한 결심은 누구나 다 할수 있다. 그러나 령장의 결심은 시대의 책임을 걸머진 것으로서 변혁하고 창조하고 력사를 전진시키는 것으로 된다. 하기에 위대한 령장을 떠난 빛나는 력사란 없는 것이다.

이윽고 지구의에서 손을 내리신 수령님께서는 다시 회의참가자들을 둘러보시였다. 세찬 흥분에 가슴을 울렁거리고 있는 당중앙위원회 비서, 두눈을 슴벅거리고 있는 부주석,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총참모장,... 도수높은 안경을 통해 최광의 눈가에서 무엇인가 번뜩이는 것이 알렸다. 수령님께서 묻는듯한 눈길을 멈추시자 최광은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한순간 성문처럼 꽉 닫긴 입을 열수가 없어 모지름쓰는듯한 표정이였다. 그는 방금 오늘과 꼭같이 흥분과 격정으로 끓어번지던 다른 또하나의 회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얼마전 조선인민군의 한 병종대회가 폐막되던 날, 대회참가자들이 어버이 수령님과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은후 잠시 휴식하던 광실이였다. 그날도 지금처럼 불빛이 휘황했었다. 수많은 차수, 대장, 상장들이 둘러서있는 가운데 수령님께서는 대회의 성과에 만족해하시며 오늘 전군이 김정일최고사령관동지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있고 전군의 전투력이 비상히 강화된 것을 볼 때마다 기쁨을 금할수 없다고 하시였다. 이어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군대의 위력이 한층 더 강화된 것처럼 동무들의 어깨우의 별들도 더 무거워졌다고, 그러니 여러 차수들과 대장들 어디 대답해보라, 지금 적들은 한사코 우리의 사회주의를 압살해보려고 ≪팀 스피리트≫핵전쟁연습을 재개하고 전쟁의 불집을 터뜨리려고 미쳐날뛰고 있다, 정세는 대단히 긴장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수 있는데 그래 어떤가, 동무들 자신있는가?!≫하고 물으시였다. 다음 순간 전체 지휘관들이 일시에 힘차게 대답올렸다.

≪수령님! 자신있습니다!≫

수천수만의 장병들을 호령하던 엄엄한 목소리의 대합창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물론 나는 동무들이 배심든든해하고 있다는걸 알고있소. 그걸 몰라서 묻는게 아니요. 그러나...≫ 수령님의 안광에 준엄한 빛이 어리시였다. ≪적들은 간악무도하다는걸 알아야 해. 그래 적들이 핵전쟁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 여러 차수들과 대장들, 대답해보오. 적들이 미친듯 핵무기를 퍼부어 우리 조국땅을 불모지로 만들려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

고막이 쩡- 울렸다. 다시 광실은 숨소리조차 없는 정적속에 묻혀버렸다. 침묵, 또 침묵... 모진 압박감에 심장이 터질듯 했다. 바로 그 순간,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서 한걸음 앞으로 나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숨막히는 침묵을 깨뜨리며 불을 토하듯 말씀하시였다.

≪수령님! 만약 적들이 핵무기를 퍼부어 이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든다면 미국도 결코 무사치 못할 것입니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있을수 없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펄펄 끓는 쇠물을 삼킨듯 했었다. 차수들과 대장군들이 거의 일시에 머리를 번쩍 들자 광실의 휘황한 불빛이 그들의 군모채양과 어깨우의 금빛견장에서 강렬한 빛을 휘뿌렸다.

≪지금 미국은 오산하고 있습니다.≫하고 김정일동지께서 계속하시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탄을 떨구어 수십만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미국이 오늘까지 50여년간이나 포탄 한발 맞지 않고 살아오다보니 오만해질대로 오만해졌지만... 안될 것입니다. 이 땅에 단 한알갱이의 핵먼지라도 떨구는 날엔 미국은 불바다가 되고말 것입니다!≫

돌연 온 세계가 그이의 불같은 선언에 입을 다물어버린듯 했다.

뢰성벽력이 울린 뒤끝과도 같이 귀가 메여버린 정적, 한순간에 광실은 더욱더 넓어지고 휘황해진듯 싶었다.

수령님의 만면에도 환한 미소가 어리시였다. 천천히 두손을 허리에 짚으신 수령님께서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과시 장군중의 장군이라고, 백두산의 기상을 지닌 김정일장군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며 만족해 하시였다.

그날도 지금처럼 장내는 격앙되여 있었고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환히 웃고 계시였다. 그날도 지금처럼 최광은 물기에 젖은 두눈을 번뜩이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우러르고 있었다. 지금처럼 심장이 툭툭 뛰는 소리를 듣는 듯 했었다....

마침내 최광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할데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그 결심이야말로 전체 인민군장병들에게 무비의 용기와 배심을 안겨주는 일대사변으로 될 것이라고 흥분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이어 열띤 토론들이 있었다. 이제는 조선의 신념과 의지가 어떤 것인지를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일심단결의 위력이라고, 감히 우리를 위협하는 적들에게 치명적인 반격을 가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옳소. 바로 그렇소.≫하고 수령님께서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김정일동지의 그 결심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것이요. 극도로 오만해지고 있는 미국놈들에게 다시한번 조선의 본때를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최고사령관이 령장다운 대결단을 내렸단 말이요. 대결단을!...≫

수령님께서는 대형지구의를 또한번 돌리시면서 좌중의 모드 사람들을 향하여 엄숙하게 말씀하시였다.

≪이제 김정일동지의 그 결심을 중앙인민위원회에서 토의확정하고 곧 공화국정부성명으로 온 세상에 선포합시다!≫

빙그르 돌던 지구의가 멎었다. 수령님의 눈앞에 바로 붉은색으로 칠해진 조선이 있었다. 오늘따라 더욱 진하고 더욱 선명해보이는 조선, 아침의 해빛이 아름답고 곱다고 예로부터 불러온 그 이름 조선... 조선이 없는 지구가 있을수 있는가?!...≫

 

≪...얼마후 그들이 금수산의사당으로 달려갔을 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정원에 나와계시였다.

≪아, 외교부동무들이 왔구만!≫

수령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드리는 그들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였다.

문선규는 환히 웃고 계시는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긴장되였던 마음이 봄눈처럼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혹시 다른 일때문에 부르셨을수도 있다. 아마도 미국은 우리의 치명적인 탈퇴성명에 기절초풍하여 아직 아무런 대응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깨우에 외투를 걸치고 솔가지를 꺾어드신 수령님께서는 책임부관이 털모자를 드리려 했지만 가벼운 손짓으로 막으시였다.

수령님의 뒤에는 총참모장 최광과 당중앙위원회 김석현비서, 정무원의 여러 책임일군들이 약간 사이를 두고 서있었는데 그들 역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급히 달려온듯 하였다.

≪좋은 날씨요.≫하고 수령님께서 우선우선한 표정으로 말씀히시였다. ≪이처럼 좋은 봄날에야 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떻소. 최광동무?≫

≪예, 좋습니다.≫

총참모장 최광이 대답올렸다.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대기는 유리같이 투명하고 산뜻하였다. 정원길 저쪽에서 검푸른 잣나무들 사이로 흰옷을 팽팽히 조여입은 봇나무의 가늣한 우듬지들이 얼씬거렸다. 높이 떠오른 태양이 의사당별채의 원형지붕과 창문유리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수령님께서 뒤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도 통신자료를 다 봤겠지. 지금 전세계가 우리의 핵무기전파방지조약탈퇴로 법석 끓고 있소≫

(역시 핵문제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문선규는 수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수령님께서는 손에 든 솔가지를 뱅뱅 돌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미국의 ≪워싱톤타임스≫가 뭐랬는지 읽어봤소?... 북조선이야말로 ≪특수한 나라≫라고 하면서 이 나라를 잘못 건드렸다간 뿔받기로 유명한 황소에 핵장치를 싣고 미국에 와서 폭발시킬는지도 모른다고 했지. 또 듣자니 남조선의 김영삼도 ≪비상대책회의≫라는걸 열고 여섯시간동안이나 무슨 ≪대처방안≫을 토의했다고 하더구만. 김영삼이는 지금 그 어떤 동맹국도 민족보다는 나을수 없다느니 피가 물보다 진하다느니 하면서 우리한테 추파를 던지고 있소. 우리의 조약탈퇴성명에 덴겁을 한 모양이지.≫

수령님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자 뒤따르던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따라 웃었다. 수령님께서는 손에 든 솔가지에서 가느다란 바늘잎사귀들을 하나하나 뜯어 가볍게 뿌리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알제리신문은 ≪북조선이 신속대담하게 행동. 미행정부 쇼크상태≫라고 썼소. 아주 신통한 표현이요. 어제 모스크바에선 여러 정당, 단체들의 련대성집회가 있었구... 벌써 나한테 보내오는 련대성전문만 해도 다 꼽을수가 없소. 꾸바의 피델 까스뜨로는 전문에서 우리의 조약탈퇴가 ≪대단한 반격≫이라면서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낸다≫고 했소. 또 어제밤엔 중국의 등소평이 직접 상해에서 내게 전화를 걸오왔소. 그는 김정일동지의 대결단에 감탄을 금할수 없다고 하면서 이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각 군구사령원들에게 통보서를 보내여 김정일동지의 대결단과 그 시기선택이 아주 비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따라배우게 하겠다고 했소. 그러면서 ≪진정르퉁즈다산, 나머 삐앤 쮸장 다레이 디런 후죠더≫ 하고 흥분하여 말하지 않겠소.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참 외교부 1부부장이 중국말에도 능하지?≫

문선규는 수령님의 따뜻한 미소에 끌리듯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예, 그것은 ≪김정일동지께서 번개를 쳤으니 우뢰가 울고 적들이 아우성칠 것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옳아. 그렇게 말했소≫ 수령님께서는 두손을 허리에 짚고 불타는 해를 바라보시였다. ≪참으로 세계의 그 어느 령도자도 이렇듯 한순간에 지구를 뒤흔들어 놓은 일은 없었지. 응?... 그야말로 지진과 같이 들었다 놓았거든. 그래서 지금 일본과 미국의 신문, 통신, 방송들은 하나같이 북조선의 이 비상한 결심의 배경엔 김정일최고사령관의 무비의 담력이 있는 것이라고 떠들고 있는거요.≫

수령님께서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깊은 감회가 어린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흔히 세상사람들은 지략과 전법에 능하고 담력이 큰 령장을 장군이라 부르는데 김정일장군이야말로 지략과 전법이 뛰여날뿐아니라 배짱도 장군의 배짱이고 담력도 장군의 담력이지. 비로 그것을 이번에도 준전시상태선포와 더우기 핵무기전파방지조약탈퇴성명으로 보여줬거든!... 그래서 세상사람들 모두가 찬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부러워하는게 하니겠소. 참 전전해 총참모장이 꾸바를 방문했을 때 피델 까스뜨로수상도 그런 말을 했다지?≫

≪예, 그렇게 말했습니다.≫ 최광이 대답올렸다. ≪그는 자기가 조선을 방문하고 제일 부러웠던게 바로 조선에서 혁명위업계승문제가 빛나게 해결되고 김정일동지의 령도하에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일심단결되여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조선의 힘이자 곧 김정일동지의 령도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음- 피델다운 말이요. 그가 우리 나라를 방문했을 때 나한테도 그렇게 말한적이 있소. 막강한 조선의 힘이 어데서 생겨났는지 알게 되였다고!...≫

수령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심중한 안색으로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런데 지금 어떤 일군들은 우리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는 등 적들에게 강력한 공세를 벌리는 때 어벙벙해서 괜히 들떠있는가 하면 당장 전쟁이 터진다고 하면서 자기 맡은 일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소. 실례로 어제 한 일군을 통해 알아보니 지금 완공단계에 이르렀던 서북부지구물길공사도 거의나 중단상태에 있다는거요. 그래서 내 그 일을 맡은 정무원일군들에게 단단히 말해줬소. 전쟁이 당장 일어난다 해도 농사는 지어야 한다. 뭐니뭐니 해도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다. 이걸 명심해라, 하고 말이요.≫

수령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또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제 정세는 더 긴장해질수 있소. 적들이 단말마적발악을 할수 있다는거요. 지금 미국은 우리의 핵무기전파방지조약탈퇴조치에 불맞은 황소같이 날뛰고 있소. 겉으로는 ≪심각한 일이다≫, ≪철회해야 한다≫하고 우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더욱더 전쟁열에 미쳐날뛰고 있단 말이요. 지금 정세로 말하면 지난 조국해방전쟁 때 아이젠하워가 ≪신공세≫흉계를 꾸미고 그 준비를 미친것처럼 다그치던 때를 련상시키고 있소. 그때 적들이 노린 ≪신공세≫의 요점이 뭔고 하니 ≪수륙병진≫작전이였소. 말하자면 바다에서의 상륙작전과 륙지에서의 공격을 배합하는 것이였지. 거기에 공중으로부터의 륙전대공격도 예견했었소. 그래서 수많은 함선과 비행기, 대포, 땅크들을 본토로부터 조선전선에 대대적으로 들이밀었지. 게다가 일본군국주의무력과 장개석군대까지 끌어들일 흉계를 꾸몄댔소. 정말 어려운 때였지. 아마 최광동무도 그때 일이 생생할거요.≫

≪그렇습니다. 수령님, 그때 적들은 단숨에 공화국북반부 전지역을 점령하고 우리 인민군대를 ≪포위소멸≫한다고 떠들었습니다.≫

최광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하여 갈려 있었다. ≪정말 그때와 지금 정세가 아주 비슷합니다. 그때에도 적들은 천여대의 비행기를 끌어다놓고 원산과 통천 앞바다엔 200여척의 함선집단을 띄워놓고 우리를 위협하였습니다. 적들은 그 무력만 가지고도 조선동해는 물론 중국해안을 봉쇄하고 중국본토까지 공격할수 있다고 떠벌였습니다.≫

수령님께서 가볍게 미소를 그리시였다.

≪그래, 그렇게 호언장담을 했지. 그렇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끝내 ≪신공세≫는 파탄되였소. 그때 우리는 전체 당조직들과 당원들에게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보내여 전체 인민을 결사전에 불러일으키는 한편 전선에서는 351고지공격전투를 비롯하여 세차례의 강력한 타격전을 벌려 적들의 그 어떤 군사적모험도 수치스러운 패배를 면치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소. 결국 적들은 ≪신공세≫고 뭐고 다 줴버리고 정전담판장에 끌려나오지 않을 수 없었소. 끌려나와 항복서에 도장을 찍었지...≫

수령님께서는 감회깊으신 표정으로 준엄한 전화의 그 나날을 더듬고나서 일군들을 차례로 둘러보시였다.

≪이번에도 우린 그렇게 결사전을 벌려 놈들에게 수치스러운 참패를 안겨야 해. 내 동무들을 오라 한것도 바로 그때문이요. 정세가 아무리 준엄하고 당장 전쟁이 터진다 해도 끄떡없이 모두 뜬뜬해서 일하도록 동무들이 잘 짜고 들어야겠소. 그저 김정일동지가 하라는대로만 하면 돼. 지금 김정일동지는 적들에게 숨쉴 틈을 주지 않고 또 한차례의 드센 타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소.≫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수령님의 다음 말씀을 기디라고 있었다. 문선규 역시 흐느끼듯 숨길을 톺으며 생각하였다. 그것은 무엇일가? 핵무기전파방지조악에서의 탈퇴성명으로 지구의 한귀퉁이가 깨여져 나간듯 세계를 놀래웠는데 그이께서 또 준비하시는 드센 타격은 과연 어떤 것일가?...

≪지금 김정일동지는≫하고 수령님께서 생각깊으신 음성으로 계속 하시였다. ≪낮에 밤을 이어가며 휴식없이 일하고 있소. 오늘 새벽에도 전화를 걸어보니 작전대에서 꼬바기 새웠더구만. 동무들, 생각해보오. 사람이 무쇠가 아닌 이상 그렇게 무리하고서야 어떻게 견디여 내겠소. 나는 지난 조국해방전쟁때에도 사흘밤까지밖엔 새워보지 못했소. 그런데 김정일동지는 닷새, 엿새 계속 밤을 밝히고 있으니... 지금 김정일동지가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걸머지고 로심초사 하고 있는데 그럴수록 우린 그를 아껴야 하오. 김정일동지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곧 혁명을 지키는 것이란 말이요!... 그러니 당과 국가, 군대의 책임적위치에서 일하는 동무들이 잘 보좌해주어야겠소. 모두가 자기 맡은 책임을 다하여 김정일동지의 사업부담을 덜어야 겠소. 그래 나도 지금 농사일은 물론 철도와 광산, 탄광 등 경제부문 여러사업을 맡아보고 있는 것이요.≫

사람들은 모두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고 있었다. 지어 문선규는 멀리 서평양쪽에서 울려오는 전기기관차의 웅글진 기적소리조차 꿈결에 듣는듯했다.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뜨거운 격정이 그들 모두의 가슴속에 밀물처럼 넘치게 흘러들고 있었다.≫

 

5. ≪영생≫(불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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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카터는 용기를 내여 입을 열었다.

≪주석각하, 현재 귀국이 추방조치를 취한 기구의 사찰원들과 감시기재를 그냥 두어둘수 없겠는지요. 물론 각하의 부하들은 거절하고있습니다만…≫

≪아, 그 문제말입니까. 화제가 빗나갔던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말한 특별사찰문제도 그 문제와 무관계한것은 아닙니다. 두 문제가 다 신뢰문제에 귀착되는것이니까요.≫

≪옳습니다!≫

카터가 기대를 가지고 큰소리로 응답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선규의 의향을 물으시려는듯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카터쪽으로 주시였다.

≪나는 카터선생을 믿고 우리 일군들과 그 문제를 토론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우리는 일구이언하지 않습니다.≫

카터는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너그럽게 웃고계시는 김일성주석을 대하게 되자 그의 얼굴에 환희에 찬 웃음이 퍼져갔다.

≪사찰원들이 그냥 남아있게 되는 경우 국제원자력기구와 귀국의 련계가 유지되는것으로 됩니다. 이것을 원자력기구의 한정적사찰이 계속되는것으로 리해해도 되겠는지요?≫

≪좋도록 생각하십시오.≫ 김일성동지께서 여전히 웃음을 담고계시였다. 카터는 감사의 뜻으로 약간 고개를 숙여보이며 웨치듯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회담은 더욱 활기를 띠고 진행되였다. 조미간의 현안문제뿐아니라 일련의 전망적인 쌍무관계문제들이 진지하게 론의되였다.

카터는 회담의 첫시작때와 마찬가지로 김일성동지를 줄곧 바라보며 그이의 모습에서 단 한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카터는 이 순간 또하나의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기로 결심하였다. 그것은 미국인유골문제였다. 최근 몇해어간에 지난 조선전쟁시기 이 나라에 와서 죽은 미군병사들의 유골을 조선측이 인도주의적조치로 돌려보내고있었다. 그런데 현재 정세의 악화로 이 사업이 중단되자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미국내에서 제기되고있었다. 카터도 이것을 우려하고있었다. 그는 이번 걸음에 다른것은 몰라도 이 문제 하나만은 중단됨이 없이 계속되게 하려고 마음먹고있었다.

카터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주석각하, 귀국정부는 지금까지 우리 미군병사들의 유골을 돌려보내줌으로써 미국의 모든 국민들과 저자신을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각하께서 저를 위해서라도 이같은 관용을 계속 베풀어주었으면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이 문제 역시 흔연히 대답하시였다.

≪좋습니다. 카터선생의 부탁인것만큼 그 문제도 우리 일군들과 토론하겠습니다.≫

≪주석각하, 그 문제가 제가 바라는대로 해결되리라고 믿어도 좋겠습니까?≫

≪믿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카터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가슴에 한손을 대고 머리를 깊이 숙였다. 지금까지 내내 불안과 위구, 초조감에 싸여있던 크리스텐슨의 얼굴에도 환희와 감사의 정이 어리였다.

≪그런데 카터선생.≫

수령님께서는 시종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조미사이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를 좀더 이야기해봅시다. 지금 우리에게 5메가와트 흑연감속로가 하나 있는데 당신들은 거기서 우리가 플루토니움을 뽑아내며 그것으로 핵무기를 만들어낸다고 하고있습니다.≫

카터는 김일성동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몰랐으나 그 어떤 말씀이라도 다 받아들이려 한다는 뜻을 표시하려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렇기때문에 지금까지 진행해온 회담들에서 우리 측 대표단은 우리의 흑연감속로를 경수로체계로 교체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핵동력공업에서 경수로체계가 도입되면 더는 ≪핵문제≫가 존재하지도 않게 될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카터선생.≫

≪지당한 말씀입니다.≫

카터가 인차 긍정하였다.

≪우리는 원래 흑연감속로를 건설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전 쏘련의 체르넨꼬시기에 협정을 체결하여 경수로를 들여오기로 하였댔습니다. 그러나 그 실현이 지연되여오다가 쏘련이 해체되고 보니 경수로건설이 완전히 불가능하게 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계속하여 원자로의 형태들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흑연감속로가 페연료로서 원자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니움이 다량 나오는데 비하여 경수로는 그것이 극히 적은 량이 나온다고 하시였다.

카터는 유심히 들었다. 원자로에 대한 그이의 해박하면서도 통속적인 설명은 원자력전문가이기도 한 카터자신도 놀랄 지경이였다.

≪크지 않은 우리 나라가 국제적인 경제기술적봉쇄속에서 흑연감속로를 건설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우리는 자립적인 핵동력공업을 창설하기 위하여 막대한 자금과 노력과 시간을 소비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동결시킬 의사가 있습니다. 그대신 조미회담에서 우리측이 이미 제기한대로 경수로가 제공되여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더는 ≪핵문제≫가 존재하지도 않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조미관계개선의 기초인 신뢰문제도 크게 한걸음 전진하는것으로 될것입니다. 카터선생, 나는 경수로문제가 조미관계에서 하나의 시금석이라고 보는데 선생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카터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주석각하, 그러니 주석각하의 말씀은 미국이 귀국에 경수로를 제공해달라는 뜻인가요?≫

≪아니, 신뢰를 표시해달라는거지요!≫

한참만에 카터가 말했다.

≪솔직히 저는 이번 회담이 이렇게 생산적이며 전진적으로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아울러 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랬을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경수로문제에 대한 보충적인 설명이나 요구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씀하시였다.

≪그럼 우리 점심식사나 합시다.≫

≪…≫

카터는 인차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였다.≫

 

≪카터는 수저를 놓고 그이의 이야기에 심취되여버렸다.

그이의 화제는 서해갑문에로 옮아가서 갑문의 통과능력이며 저수량 그리고 발전량과 호수에서 사는 물고기의 종류며 호수물이 적시게 될 경지면적까지 구체적인 수자를 들어 말씀하시였다. 카터는 그이의 박식과 견문 그리고 비상한 기억력에 놀랐다.

≪우리 나라 애국가에도 있는것처럼 아침이 빛나는 이 강산, 은금의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은 반세기이상 분렬의 비극을 겪고있습니다.≫

그이의 말씀은 여기서 갑자기 중단되였다. 정적이 흘렀다. 카터는 그이께서 느끼시는 분렬의 아픔이 자기에게 그대로 옮겨지는듯싶었다.

대동강물결은 정오의 해빛을 받아 수천수만의 불꽃을 날리고있는듯하였다. 카터는 선실밖에 시선을 주었다가 수령님을 바라보며 어줍게 물었다.

≪당신께서는 생전에 통일이 되리라고 믿습니까? 누구의 령도하에 통일이 되리라고 봅니까?≫

≪어려운 과업이지만 나는 통일에 대하여 락관하고있습니다. 나라의 통일은 민족지상의 과업이며 한결같은 소망입니다.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이 통일을 갈망하고있으며 조국통일의 기운은 날로 더욱 높아지고있습니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단일민족이 외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갈라진 자기 조국을 통일하려는 지향과 거족적인 투쟁을 막을 힘을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리고 조국통일이 누구의 령도하에 실현된다기보다 민족공동의 지향과 노력에 의하여 실현된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조국통일을 위한 가장 정당한 강령이 있습니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은 북남이 합의한 통일의 근본원칙입니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에 기초한 련방제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선생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지지와 찬동을 받고있습니다. 온 민족이 통일을 바라고 통일력량이 강화되고 가장 정당한 강령이 있는 한 우리 나라의 통일은 민족의 단합된 힘과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반드시 실현되고야말것입니다.≫

드디어 ≪모란봉≫호는 바다에 들어서고있었다. 잔잔한 호수같다가도 천만산악처럼 일떠서는 자연의 대경치, 천변만화의 조화를 다 부리는 그 바다를 바라보며 일생 바다를 사랑하여온 카터는 황홀경에 잠기였다. 허나 그것은 자연의 바다가 아니였다. 그것은 김일성주석의 바다와 같은 넓은 도량이였다.

오 바다여! 도량의 바다여! ! …

카터는 부지불식간에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오찬이 끝나고 잠시 쉬게 되였을 때 크리크모가 배의 란간을 붙잡고 경치를 바라보고있는 카터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카터에게 은근히 불만을 암시했다.

≪각하, 지금 본국에서는 각하께서 김일성주석의 미소외교에 넘어가고있다는 반영입니다.≫

≪그건 선생의 생각이겠지요?≫

크리크모는 대답대신 눈살이 꼿꼿해서 카터를 쳐다보았다. 카터는 성낼 대신 너그럽게 웃었다. 그리고 의미있게 한마디 했다.

≪전후 50년간 우리의 대조선정책에서 가장 큰 착오가 뭔지 아오? 그것은 이 나라 국가수반을 너무도 몰랐다는것이요.

그런데 나는 이번에 김일성주석에 대하여 많은것을 알았소. 이것은 미국에 매우 유익한것으로 될거요.≫

카터는 김일성주석과 다시 마주앉았다. 그리고 두 나라사이에 제기된 나머지 현안문제들을 협의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틀간의 회담이 모두 끝났다.

배에서 내린 미국손님들은 서해갑문을 참관하고나서 휴계실에서 잠시 쉬였다. 여기서 김일성동지와 작별하게 되여있었다.

≪주석각하, 나는 한가지 사실을 고백하고싶습니다.≫

명상에 잠겨 쏘파에 앉아있던 카터가 곁에 앉으신 김일성동지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예, 어서…≫

≪우리들사이가 이렇게 깊어진것이 나로서는 매우 뜻밖입니다.≫

카터는 진심을 고백했다. 오래동안 적으로 되여온 두 나라 사이였고 날카로운 정치문제들을 상정시킨 이번 회담이였다. 이런 경우에 흔히 회담은 격렬한 론쟁으로 일관되거나 회담끝에는 서로 상대에 대한 적의감이 타오르기마련이다. 카터는 그래서 커다란 불안과 위구를 안고 평양을 찾아왔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처음부터 우리들의 관계가 이렇게 되기를 희망했고 또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카터에게 신뢰어린 미소를 보내시였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했습니까?≫

≪두가지 근거를 가지고 당신이 나의 벗으로 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는 진정을 보내면 진정이 온다는 생활의 법칙을 믿었기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어느 정도 알고있었기때문입니다.≫

말씀의 뜻을 새기며 눈을 내리감고있던 카터는 다시 시선을 쳐들고 그이를 바라보았다.

≪나도 오래전에 주석각하를 리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주석각하께서 쓰신 회고록이 나의 리해를 크게 도와주었습니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리치입니다. 처음은 평양에 오기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회고록을 읽고나서 주석각하를 한번 만나보고싶은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되였습니다. 나는 각하의 회고록을 안해와 자식들은 물론 가까운 동료들에게 읽으라고 권고했습니다.≫

≪저도 매우 감동해서 읽었습니다.≫

카터옆에 서있던 로잘린이 기회를 놓칠세라 끼여들며 김일성동지께 머리를 가볍게 숙여보였다.

≪모두들 나의 회고록을 흥미있게 읽었다니 감사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 부부를 번갈아보시였다.

≪주석님의 생애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생애입니다.≫ 카터는 말했다.

≪또 그 말씀인가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얼굴에 지었던 미소를 활짝 터치며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아니, 영광스럽기보다 고난스러운 한생이였지요.≫

카터는 웃지 않았다. 그는 자못 신중한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어째서 자신의 생애를 그렇게 평가하십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음을 거두시였다.

≪카터선생이 굳이 알고싶다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예…≫

≪나는 회고록을 쓰면서 자기 생애를 깊이 돌아보았습니다. 그 과정에 그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거기에는 두가지 리유가 있습니다. 나는 열네살때부터 혁명의 길에 나섰는데 지금까지 한생을 상대하여 싸우기도 하고 맞서기도 한 적은 세계적으로 강대한 제국주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을 헤쳐나와야 했습니다. 나는 별의별 비극적인 체험과 고통스러운 체험을 다 겪어보았습니다. 그러자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카터는 그 말씀이 솔직한 인간적인 고백이라고 느끼며 또 물었다.

≪다른 하나의 리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인민은 나를 무한히 신뢰하고 따르고있는데 나는 인민에게 주어야 할것을 다 주지 못하고있습니다. 당신도 한때 대통령직을 지녀보았기때문에 리해하겠지만 국가수반직은 영광스럽다기보다 조국과 인민의 운명에 대한 거대한 중하를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고생을 전제로 하는 관직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와 같이 과거사회로부터 뒤떨어진 경제와 문화를 넘겨받았고 큰 나라들사이에 끼여서 현대력사의 복잡한 문제들의 초점으로 되고있는 나라 국가수반의 경우에는 더구나 그렇습니다. 나는 아직 우리 인민들에게 나라의 통일을 가져다주지 못했고 그들의 생활을 응당한 수준으로 높여주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민이 겪고있는 분렬의 고통은 참으로 큽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은 아직 풍부하다고 할수 없습니다. 나는 자기 생애에서 반드시 실현해야 할 이 문제들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민앞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책이 나를 늘 고통스럽게 하고있습니다.≫

카터는 그이의 고백에 마음속으로 두번 다시 머리숙였다. 조선인민이 그이를 진심으로 따르고 존경하는 까닭을 비로소 알게 된듯싶었다.

≪주석각하, 나는 당신이 한생을 두고 겪으신 그 풍상고초때문에 바로 당신의 생애가 훌륭하고 영광스럽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나의 친구인 그라함은 당신은 ≪현세의 모세≫라고 하였는데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덤덤히 듣고계시다가 웃음을 띠며 화제를 이으시였다.

≪카터선생은 또 그런 말씀을 반복합니다. 감사합니다. … 한가지만 더 말하고싶은것은 나의 한생은 그 고난에 못지 않게 최상의 희열을 느낀 매우 기쁘고 영광에 찬 한생이기도 했습니다. 고난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기쁨도 느껴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옳은것 같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범상하게 웃으시였다. 그러나 카터는 그이의 마지막말씀에 더욱 심각해졌다.

항일대전끝에 조국으로 개선한것, 인민을 위한 민주개혁을 실시한것, 3년간 전쟁에서 미국을 엎어놓고 사회주의를 건설한것, 세여보면 정녕 김일성주석께서 느끼실수 있는 기쁨이 많았다. 이제도 그이는 조국통일의 기쁨을 기다리고계시였다. 시종 가셔지지 않는 김일성주석의 미소가 그것을 말해주고있는듯하였다.

≪카터선생!≫

그이의 부르심을 듣고 카터는 고개를 쳐들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여전히 웃으시며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나는 카터선생이 ≪여생에 모든것을 얻는다≫라는 책을 썼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카터의 입가에 느슨한 미소가 어리였다. 허나 다음말씀을 기다리는 그의 눈빛은 어딘가 긴장해보이였다.

≪제목의 의미가 깊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은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고 그 기간도 한정되여있습니다. 우리들과 같이 인생말년에 들어선 사람들일수록 자기 생애에 목표했던바를 끝까지 달성하기 위해 서둘러 살아야지요.≫

≪옳습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카터는 돌연 흥분하여 응대하였다.

≪카터선생, 인민을 위해서 세계의 평화를 위해 힘껏 일해봅시다.≫

≪감사합니다. 주석각하.≫

카터는 웃음을 짓고 김일성동지를 바라보았다.

≪모란봉≫호는 잔잔한 물결을 가르며 유유히 흘러갔다.≫

 

≪7월 7일은 일년사시절에 스물네절기를 가진 우리 나라 기후에서 여름더위가 비로소 시작된다고 하여 소서라고 부르는 날이였다. 그러나 이해날씨는 삼복더위 못지 않게 찌는듯이 무더웠다. 그것은 해마다 우리 나라에 영향을 미치던 중국장강일대에서 형성된 저기압골이 이해에는 예상외로 남태평양에서 아열대성 저기압골의 강한 영향에 압도됨으로써 전례없는 강한 비구름과 함께 아열대성기후를 도래하게 한것이였다. 그리하여 지구의 곳곳에서는 때아닌 폭우와 물란리가 펼쳐지는가 하면 유럽의 어느 지역에서는 섭씨 51도라는 살인적인 고온을 기록하고있었고 남조선의 대구지방에서도 기온이 섭씨 39도를 뛰여넘었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아픔이 날씨가 몰아온것이라는 착각이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갑자기 밀려드는 불안감과 초조감을 느끼며 서둘러 문건을 펼치시였다. 그러시고는 수표하기전에 한번 더 보려고 한장한장 번지며 아픔에 대해서는 잊으려고 애쓰시였다.

이때라도! ! 야속하다. 어찌하여 천리혜안의 선견지명을 지니신 그이께서 그 아픔이 치명적이라는데 대해서는 알지 못하시였던가. 어찌하여 천재적인 예지를 지니신분이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시였단 말인가?

문건을 몇장 넘기고 그이께서는 누구를 찾을가 하고 생각하시였다. 아픔을 더는 참을수 없으시였던것이다. 허나 그이께서는 ≪소동≫이 일어날것을 꺼리시였다. 그 ≪소동≫이 평양에 전달되여김정일동지께 걱정을 끼치게 될것이 념려되시였다.

짐작컨데 이때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아픔이 날씨가 몰아온것이라는 착각을 하신것 같았다.

그이께서 동통이 올 때 무슨 생각을 하시였는지 그것은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허나 그이께서 그 아픔을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참고계신것만은 분명하였다. 그이께서는 아마도 그 아픔이 시간이 흐르면 멎으리라고 믿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으시였을것이다. 자칫하면 ≪소동≫이 일어나 단잠을 자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깨우게 되고 또 자신께서는 일을 못하게 될것을 걱정하여 혼자서 아픔을 참아내신듯싶었다.

그이께서는 원래 웬간한 아픔에 대해서는 내색하시지 않는분이였고 자신은 휴식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휴식에 대해서는 너무도 다심하게 관심하는분이시였다.

그러나 야속하다. 어찌하여 천리혜안의 선견지명을 지니신 그이께서 그 아픔이 치명적이라는데 대해서는 알지 못하시였던가. 어찌하여 천리혜안의 예지를 지니신분이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시였던가?

그이께서는 계속 아픔을 참으며 일하시였다.

가슴에 오는 동통이 더는 참을수 없게 되였을 때 그이께서는 잠간 일손을 멈추고 누구를 찾을가 생각하시였을지 모른다. 의사를 부를가, 채순이를 찾을가, 아니면 책임서기? 부관? … 그러나 잠자리에 편안히 누워있는 그들을 부르시고싶지 않았을것이다. 수령님께서는 원래 그런분이시였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혼자서 아픔을 참으며 일하시였다. 집무탁우에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문건, 농업부문문건, 통일회담문건 등 여러 문건들이 펼쳐져있는것으로 보아 그때 동시에 많은 분야의 일을 헤아려보신것이 분명하였다. 그이께서는 그처럼 일감이 밀리고 바쁘시였던것이다.

동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하여 그이께서는 이러다가 혼절하여 쓰러지지 않겠는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일어나시였을것이다. 지어 래일 만나기로 약속하신 김정일동지를 못만나실것 같은 불안을 느끼시였을지 모른다.

그때라도! 어찌하여 그이께서는 그것이 현실로 되리라는데 대하여서는 느끼지 못하시였던가. 누가 곁에 있어서 벌써 창백하게 변해진 그이의 얼굴모습을 발견이라도 했다면?

허나 그이께서는 혼자 계시였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 그이께서는 통일회담문건에 아직 수표를 하시지 못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오르신것 같았다.

그리하여 격전을 벌리듯 아픔과 싸우며 그 문건을 한장한장 번지여 간신히 마지막장을 넘기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우에 펜대를 총검처럼 틀어쥐고 1994년 7월 7일이라는 날자와 함께 근 한세기동안 조국과 민족의 기치로 되고있던 ≪김일성≫이라는 존함을 쓰시였다. 때마침 날카로운 푸른 번개불이 캄캄한 어둠을 가르며 먼 하늘 끝으로 쭉 뻗어나갔다. 뒤이어 천지를 깨버릴듯한 폭음이 일어났다.

아마도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었을것이다.

잠자던 어린 아이들까지 그 소리에 소리에 놀라서 깨여났다.

하지만 그밤, 김일성동지께서만은 듣지 못하시였다. 그때는 벌써 그이의 심장이 쇼크상태에 들어가는 순간이였다.

우뢰끝에 바람이 불며 하늘에서 비물이 좔좔 쏟아져내렸다.

밤하늘을 쩍 가르며 번개불이 펑끗 하더니 또다시 뢰성이 터졌다. 뒤따르는 바람소리, 비소리… 하늘이 울고 땅이 울고 산천초목이 태를 쳤다.

아, 그것이 바로 인류의 불행을 예고하는 하늘의 눈물인줄 누가 알았으랴!

원통하구나!

하늘아, 땅아! …

주체83(1994)년 7월 8일 2시.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심장은 고동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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