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11일

통일여명 편집국

백두산3대장군의 약력 3

통일여명 편집국 해설 5-5-3

 

 

백두여장군 김정숙동지 약력

주체정치사전 1917 12 24 - 1949 9 2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친위전사이시며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이시며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 오산덕에서 탄생하시어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의 영향을 받으시며 성장하시었다. 모진 가난으로 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일가와 함께 1922년 봄 두만강을 건느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연길현 북구에서, 1928년 봄부터는 8도구에서 약간 떨어 진 서산리에서 생활을 하시었다. 이곳에서 일찍부터 독립군에 참가하시어 활동하신 아버님을 여의시었다. 1929년 6월 연길현 부암동 하촌마을로 이사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1930년 봄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정치공작원이 배워 주는 야학에 다니시며 혁명의 진리를 더욱 깊이 체득하시었으며 1931년 9월에는 청소년들의 혁명적인 반군사조직인 소년선봉대에 입대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진행된 1931년 추수투쟁과 1932년 춘황투쟁에 참가하시어 대오의 앞장에서 용감히 싸우시었으며 1932년 7월에는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에 가입하시어 조선혁명의 청년전위로서의 높은 영예를 지니고 활동하시었다. 1932년 7월 15일 일제침략자들의 ≪토벌≫에 어머님과 형님을 잃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이해 늦은 가을 유격구에 들어가시었으며 그후 8구공청위원회 위원, 8구아동단지도자의 중책을 지니시고 공청의 지도일군으로 활동하시었다. 1934년 가을부터는 공청 연길현위원회에 소환되시어 삼도만 능지영에서 생활하시면서 현내 각 구들의 공청사업과 아동단사업을 지도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35년 3월 삼도만유격구역에 오신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 뵈옵고 수령님께서 지도하시는 비서처일군들의 회의에 참가하는 영광을 지니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35년 9월 안도현 처창즈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시어 17살 여성의 몸으로 손에 총을 잡고 항일유격전에 나서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36년 4월 무송현 마안산지구에서 군복차림의 몸으로 경애하는 수령님을 또다시 만나 뵈옵고 귀중한 교시를 받으시었으며 이때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에서 친위전사로 활동하게 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처창즈전투(1935 10), 내도산전투(1936 11), 시난차전투(1936 7), 서강전투(1936 7), 무송현성전투(1936 8)을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시어 영웅적 위훈을 세우시었으며 특히 무송현성전투시기 동산의 잘룩목에서 불멸의 위훈을 남기신 때로부터 ≪항일의 여성영웅≫으로 더욱 명성을 날리시게 되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37년 1월 백두산밀영에서 공산당에 입당하시었으며 이해 봄부터 가을까지의 사이에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임무를 받으시고 장백현 도천리와 국내 신파지구에 나가시어 당조직과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강화하는 사업을 줄기차게 벌리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난의 행군≫시기 청봉밀영에서 혁명의 배신자 엄광호놈과 견결히 싸우시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철저히 옹호고수하시었으며 무산지구진공작전(1939)과 대부대선회작전(1939 - 1940) 등에 참가하시어 수령님의 노선과 방침을 철저히 옹호관철하고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인민들속에 널리 해설선전하는데서 남 다른 모범을 보이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세심한 관심을 돌리시었을 뿐 아니라 홍기하전투(1940 3), 대사하치기전투(1940 초여름)를 비롯한 전투마다에서 자신의 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시어 수령님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보위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적극 보좌해 드리기 위해 언제나 마음을 쓰시었으며 1940년 겨울에는 불의의 정황으로 하여 갑자기 행군하게 되자 방금 얼음구멍을 까고 빨래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젖은 옷을 자신의 가슴에 품어 말리워 수령님께 드리고 1941년 봄에는 자신의 탐스러운 머리채를 자르시어 적구로 떠나시는 수령님의 신발에 깔아 드리는 충성심을 발휘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소부대활동시기에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준비 있게 맞이하기 위한 정치군사활동에 적극 참가하시었으며 특히 1941년 여름부터 사격훈련, 통신훈련, 스키훈련, 도강훈련, 낙하훈련 등 각종 훈련에서 뛰어난 기질을 보여 주시었다. 1944년 3월 8일에 있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대규모 사격경기에서 단연 1등을 차지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41년 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예를 지니시었으며 수령님께서는 이 사진뒤면에 친필로 ≪타향에서 봄을 맞으면서 1941. 3. 1≫라고 쓰시었다.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이 이룩된 후 우리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백두밀림에서 싸우신 김정숙동지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새길신문≫≪김여사의 반생≫, ≪독립과 해방을 위해 여성의 몸으로 반생을 투쟁, 따르자, 이 희생정신을!≫ 등의 제목으로 김정숙동지의 혁명업적을 널리 소개하였다. 광복후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새 조국 건설방침을 받들고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 드리는 사업에 자신의 힘과 지혜를 다 바치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1945년 11월부터 근 1개월에 걸쳐 함경북도 선봉군과 청진시 일대에서 여러 부문 사업을 지도하시었으며 그후에도 평양시를 비롯한 여러 곳의 공장, 기업소와 농촌과 어촌 등을 찾으시어 인민들로 하여금 새 조국 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위훈을 세우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성들의 정치조직인 여성동맹을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의 앞장에서 투쟁하시었으며 여성들이 새 조국 건설에서 한몫을 담당하여 수행하도록 교양하는 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숭고한 혁명적 의리를 지니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 혁명가유자녀들을 혁명의 대를 이어 나갈 혁명투사로 키우기 위한 사업에 모든 정열을 쏟아 부으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제분을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 나가도록 사랑의 한품에 안아 키워 오시었다. 실로 김정숙동지의 생애는 오로지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오신 영광으로 빛나는 불멸의 생애였다. 오늘 항일의 여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의 혁명정신과 혁명업적을 길이 전하며 따라 배우려는 우리 인민들의 염원을 반영하여 회령과 신파땅(양강도 김정숙군 김정숙읍)김정숙동지의 동상이, 평양시 대성산의 혁명렬사릉에는 반신상이 모셔 져 있으며 회령혁명사적지와 신파혁명사적지, ≪김정숙동지혁명사적관≫(회령)≪신파혁명사적관≫ 등이 꾸려져 있고 김정숙동지의 혁명업적이 깃들어 있는 곳들에 혁명사적기념비들이 세워 져 있다. 그리고 1981년 8월부터 양강도 신파군이 김정숙군으로, 신파읍이 김정숙읍으로, 양강도 혜산제2사범대학이 김정숙사범대학으로, 양강도 신파여자고등중학교가 김정숙여자고등중학교로 불리워 지고 있다. 또한 도서 ≪혁명의 어머니 김정숙여사≫(조선노동당출판사, 1979년 발행),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정숙동지를 회상하여≫항일무장투쟁시기≫(조선노동당출판사, 1982년 발행),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정숙동지를 회상하여≫해방후시기≫(조선노동당출판사, 1982년 발행)을 비롯하여 김정숙동지의 혁명활동을 수록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다.

 

영원히 빛날 위대한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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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 정복희 (한민전 성원), 유성철 (대구 교수), 김용진 (본사기자)

시일: 주체 88(1999)년 9월 13일

: 9월 22일은 항일의 여성영웅으로 명성을 떨치신 김정숙여사께서 서거하신지 5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이날을 맞으며 우리 민중의 마음은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가장 가까운 전우이시고 혁명동지이신 김정숙여사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경모의 정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김정숙여사께서 이룩하신 빛나는 업적을 두고 얘기를 좀 나누었으면 해서 이렇게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저는 해방직후부터 김정숙여사는 어떤 분이실까 많이 생각해 왔고 그동안 제나름대로 자료도 많이 연구하고 여사에 대한 도서도 많이 탐독했습니다.

그 과정에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신 김정숙여사의 위인상을 잘 알게 됐는데요. 여사에 대해 깊이 알게 될수록 정말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여장군이시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어요.

여사께서는 주체 6(1917)년 12월 24일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면 오산동(오늘의 회령시 동명동)극빈한 가정에서 김춘산선생과 오씨의 따님으로 탄생하셨어요.

여사의 일가분들은 회령에서 소작살이를 하며 어렵게 사셨고 더욱이 가장인 아버지가 독립운동에 나서시었기 때문에 살림형편은 더욱더 어려워졌고 빚만 늘어났어요. 그래서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 중국 동북땅으로 가셨어요.

그곳에서도 어머님일가는 지주의 땅을 얻어부치며 어려운 생활을 했어요.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탓에 이국땅에 가 피눈물나는 생활을 하게 된 여사의 일가분들은 모두 높은 애국심을 지니시고 혁명조직에 참가해서 활동을 하셨어요.

: 네 여사께서는 31년 9월, 그러니까 열네살 되시던 해에 벌써 김일성장군님께서 결성하신 소년선봉대에 입대하셨죠. 그리고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직영도하신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손에 총을 들고 10여성상 백두밀림에서 강도일제를 반대하여 용감히 싸우시어 빨치산의 여장군으로 명성을 떨치셨는데요. 여사께서는 남달리 애국심이 강하셨고 슬기와 용맹이 출중하고 동지애와 인품이 뛰어나셨어요.

위대한 김정숙여사께서는 주체 24(1935)년 9월 18일 만주의 처창즈유격구에서 김일성장군님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셨는데요.

이날 여사께서는 수여받으신 총을 굳게 잡으시고 혁명선열들의 피가 스며있고 겨레의 조국광복염원이 어려있는 이 총을 잡고 김일성장군님께 끝까지 충성 다하며 혁명이 승리하는 날까지 이 총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것,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이 총을 메고 조국으로 개선하겠다고 굳게 맹세를 다지셨다고 해요. 그후 여사께서는 여성의 몸으로 설한풍 휘몰아치는 만주광야에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을 이겨내며 그 맹세를 끝까지 지키셨어요. 그처럼 위대한 분이 너무도 일찍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아픔을 금할 수 없어요.

: 동감입니다. 저도 직업상 이북 원전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김정숙여사의 업적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아야 할 공적은 민족의 운명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철저히 보위하셨을 뿐 아니라 정력적으로 보좌해 드리신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어떻습니까?

: 그렇습니다. 저 역시 김일성장군님을 몸가까이에서 말그대로 방패가 되시어 한몸으로 장군님을 보위하신 것은 민족운명의 보위차원에서 볼 때 위대한 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간고했던 항일대전시기 언제나 자신의 신변을 돌보지 않으시고 싸우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장군님의 신변에 늘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다고 해요. 그때마다 여사께서는 한몸으로 장군님을 보위해 나서시었죠. 어디 그뿐이예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어 불조차 피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장군님의 식사만은 어김없이 보장해 드리셨다고 해요.

그리고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끊임없는 전투와 행군으로 이어진 항일대전의 나날 여사께서 엄동설한에 김일성장군님의 옷을 빨아 몸에 품고 행군하면서 말리신 사실은 보통여성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외에도 자신의 머리채를 잘라 장군님의 신발깔개를 마련하신 얘기김정숙여사의 숭고한 정신세계와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이죠. 여사에게 있어서 김일성장군님은 겨레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민족의 태양이셨고 친근한 스승이셨으며 생의 전부이셨습니다.

: 지당한 말씀입니다. 김정숙여사께서는 백두산시절 뿐 아니라 해방후에도 김일성장군님의 신변안전과 만수무강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셨다고 합니다.

여사께서 직접 경위대원이 되시어 정원을 돌아보시고 입초도 서곤 하셨다고 하니 여사의 그 숭고한 충정을 어이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천출위인이신 김정일영수께서 오늘 충효의 화신으로 만민의 칭송을 받고 계시는 것도 어머님의 그 충정을 가슴에 새기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김정숙여사의 한평생은 민족의 영수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를 솔선수범으로 보여준 위대한 귀감입니다.

: 김정숙여사께서 조국통일을 위해 쌓으신 공적 등 하많은 업적들을 어찌 이 짧은 시간에 다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만은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위대한 업적은 민족의 태양을 안아 키우시어 휘황찬란한 민족의 앞길을 마련하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 그렇습니다. 위인의 뒤에는 반드시 위대한 어머니가 있는 법입니다.

세상에는 자녀들을 훌륭히 키운 여걸들, 위인들이 적지 않다고 봐요. 그러나 김정숙여사께서 아드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키우시기 위해 기울이신 숭고한 뜻과 노고를 생각할 때 그것은 비교조차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하기에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여사에 대해 회고하시면서 사람들은 자신께서 김정일장군님을 후계자로 키워냈다고 하지만 사실 그 기초는 김정숙여사께서 쌓아 놓은 것이라고, 여사의 가장 큰 공로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하셨어요.

정말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백두산의 아들로, 민족의 태양으로, 주체위업의 승계자로 키우신 김정숙여사의 업적은 민족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빛날 것입니다.

: 지금까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정숙어머님의 말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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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탄 속에 빠진 우리 민족을 구원해 주실 분은 김일성장군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루빨리 조국을 광복하자면 2천만 겨레를 장군님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워야 합니다. 뭉치면 일제침략자들이 아무리 강대해도 능히 타승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선민족이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것은 이 세상 그 어느 민족도 가질 수 없는 가장 큰 행운이에요.≫

≪우리는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있습니다.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호위할 영예로운 임무가 우리 소부대에 지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숙영한다고 휴식할 수 없으며 눈을 감고 누워있다 해도 잠들어서는 안됩니다. 온몸이 눈이 되고 귀가 되고 성벽이 되어 조선혁명의 심장이시며 뇌수이신 사령관동지의 안녕을 지켜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늘 우리들에게 하나가 열, 열이 백, 백이 천을 교양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교양하여 조직에 묶어세워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2천만 우리 동포들을 능히 장군님을 중심으로 하나둘 묶어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놈들도 쪽을 못쓰고 맙니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야 어떻게 되든지간에 자기 혼자만 편안히 살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그날그날 밥이나 먹고 흥타령을 부르며 허송세월을 하여서야 무슨 사는 보람이 있겠습니까. 장군님의 말씀대로 하루를 살아도 값높게 살아야 합니다.≫

≪장군님께서는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고 조선혁명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주무시지도, 쉬지도 않으십니다. 자신의 피곤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지 않으시고 일하시는데 그럴수록 우리는 장군님의 건강을 책임지고 잘 돌봐드려야 하겠습니다.≫

미제는 절대로 우리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쑤입니다.

우리는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남녘땅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을 기어이 통일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3천만 인민을 다 해방하자고 그리도 많은 피를 흘렸는데 아직도 나라의 절반땅에서는 우리 인민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짓밟히고 있으니… 정말 가슴이 아프군요. 그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아요.≫

≪동무들은 아마 장군님께서 조국통일문제 때문에 얼마나 심려하시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박달나무마저 얼어터지는 장백의 밀림 속에서 휴식도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15성상 싸워오신 장군님은 해방된 오늘도 조국통일문제 때문에 깊이 심려하시면서 식사도 제시간에 하지 못하시며 매일밤 밝히고 계십니다.≫

≪미국놈들은 조선의 통일을 한사코 반대하고 있어요. 지금 놈들이 남조선에 ≪단독정부≫를 세우려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 나라를 분열시켜 놓고 남조선인민들을 또다시 식민지노예로 만들려는 것이에요.

대체 미국놈들이 무엇 때문에 바다 건너 먼 우리 나라에까지 기어들어와 이런 악독한 짓을 하겠어요. 우리 조선사람은 자기 민족문제를 얼마든지 제힘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조선의 통일은 미국놈들을 몰아내고 우리 조선사람의 힘으로 해결해야 해요.≫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이면 혁명하는 사람이 자기의 초보적인 임무를 마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민족의 철천지 원쑤예요. 극악한 원쑤와 맞선 우리의 투쟁은 앞으로 더 간고하고 복잡할 것이예요. 그러나 우리는 미국놈을 내쫓고 꼭 조국을 통일하고야 말 것입니다.≫

 

영원히 빛나는 존함

조선중앙통신 1998 12 23
 

12월 24일은 불요불굴의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의 탄생81돌이 되는 날이다.

김정숙동지(1917 12 24 ~ 1949 9 22)의 한생은 일찍이 혁명의 길에 나서시어 투철한 혁명적 수령관을 지니시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 끝없이 충직한 참된 혁명가의 한생이었다.

또한 준엄한 항일혁명과 새 조국건설의 벅찬 환경속에서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충효와 문무를 겸비한 주체혁명위업의 걸출한 계승자로 키우신 혁명의 위대한 어머니의 빛나는 한생이었다.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오신 여사의 불멸의 혁명업적과 고귀한 생애는 오늘도 조선인민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다.

이것은 여사의 혁명활동업적이 깃든 김정숙군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 많은 단위들에 그이의 존함을 모신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나라의 북부에 위치하고있는 양강도 김정숙군은 여사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 김일성주석의 주체적혁명노선을 높이 받드시고 국내진공작전을 위한 지하공작사업을 벌이신 곳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여사께서 혁명조직을 확대하고 군사정치활동과 원군사업을 줄기차게 벌이시며 이용하시던 사적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김정숙종합군관학교, 김정숙해군대학 등은 친위전사로서 위대한 수령님을 옹위하신 여사의 숭고한 뜻과 군건설사업에 바치신 그이의 노고를 감명깊이 되새겨보게 한다.

혁명의 미래를 키우는데 헌신하신 여사의 업적은 김정숙사범대학, 김정숙교원대학, 김정숙제1고등중학교 등에도 어리어 있다.

이밖에도 김정숙휴양소, 김정숙요양소, 김정숙탁아소를 비롯하여 여사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단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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