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9일

통일여명 편집국

백두산3대장군의 약력 1

통일여명 편집국 해설 5-5-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혁명활동 약력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당역사연구소, 2000 4
 

1. 주체 1(1912). 4 - 주체 20(1931). 12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의 창시자이시며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의 탁월한 수령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1(1912)년 4월 15일 평양시 만경대에서 탄생하시었다. . . .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1894 7 10 - 1926 6 5)은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한생을 바쳐 오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시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시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지원≫의 사상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일찍이 혁명의 길에 나서시었으며 주체 6(1917)년 3월 23일 당시 조선의 애국자들이 무은 국내외의 조직들가운데서 그 조직규모가 제일 크고 반제자주적 입장이 가장 투철하며 대중적 지반이 튼튼한 반일지하혁명조직인 조선국민회를 결성하고 지도하시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주체 8(1919)년 3.1인민봉기 후 변천하는 정세의 요구에 맞게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에로 방향을 전환시키는데서 선구자의 역할을 하시었다.

어머님이신 강반석여사(1892 4 21 - 1932 7 31)는 조선혁명의 승리와 여성들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투쟁에 한 생을 바치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시며 우리 나라 공산주의여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시었다.

삼촌이신 김형권동지, 동생 김철주동지들도 일찌기 반일혁명투쟁에 참가하여 견결히 싸우신 열렬한 공산주의혁명투사들이시었다. 그리고 외할아버님이신 강돈욱선생님외삼촌이신 강진석선생님도 열렬한 애국자, 불굴의 반일투사들이시었다. . . .

아버님께서는 나라의 기둥이 되라는 의미에서 아드님의 이름을 ≪성주≫라고 지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모님의 혁명적 영향자신의 꾸준한 학습과 탐구 그리고 모순에 찬 사회현상에 대한 목격과 체험, 일제를 반대하는 실천투쟁속에서 위대한 혁명가의 풍모와 자질을 갖추어 나가시었다. . . .

주체 8(1919)년에 일어 난 거족적인 3.1인민봉기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어린 가슴에 우리 인민의 백절불굴의 기상과 조선민족의 슬기로운 영상을 깊이 새겨 준 중요한 계기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버님께서 출옥하신 후 부모님의 혁명활동노정을 따라 우리 나라와 중국의 여러 지방으로 자주 자리를 옮기시면서 학생소년시절을 보내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14(1925)년 4월초 무송제1우급소학교에 편입하시어 이듬해 초봄에 최우등으로 졸업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학교시기 학과학습에 열중하시면서 아버님의 혁명활동을 적극 도우시는 한편 ≪레닌의 일생기≫, ≪사회주의대의≫, ≪로국혁명사와 레닌≫을 비롯한 혁명적인 책들우리 나라 애국명장들과 세계명인들의 전기를 탐독하시었다. 이 과정에 사회현상과 혁명투쟁에 대한 안목을 넓히시었으며 독자적인 사고력과 진지한 탐구력을 키우시었다. . . .

주체 15(1926)년 6월 5일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버님을 잃은 상실의 아픔이 컸지만 아버님께서 남기신 ≪지원≫의 사상, 3대각오, 동지획득에 대한 사상, 두자루의 권총, 이 고귀한 유산에서 큰 힘을 얻으시었으며 아버님의 유언을 지켜 기어이 조국을 광복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할 굳은 각오를 다지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중학까지 공부시키라고 하신 아버님의 유언과 어머님의 염원 그리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는 자신의 포부를 실현시켜 주려는 아버님 친구들의 주선으로 주체 15(1926)년 6월 화전에 있는 화성의숙에 입학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일 실망하신 것은 화성의숙의 사상적 낙후성이었다. 학교당국은 민족주의사상만을 주장하면서 선진사상은 무턱대고 배척하였다. 화성의숙의 제한성은 민족주의운동자체의 제한성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서는 사대주의와 종파주의에 오염되지 않은 참다운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을 키워야 한다고 인정하시고 화성의숙의 청년학생들속에 공산주의사상을 보급하시면서 뜻을 같이하고 생사를 같이 할수 있는 혁명동지들을 하나하나 묶어 세우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준비기간을 거친 다음 주체 15(1926)년 10월 10일 혁명조직을 내오기 위한 예비회의를 여시고 조직의 명칭과 성격, 투쟁강령, 활동규범을 토의하시었으며 10월 17일 타도제국주의동맹(약칭 ≪ㅌ.ㄷ≫)결성을 선포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모임에서 하신 역사적인 보고 ≪제국주의를 타도하자≫에서 반일투쟁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을 전면적으로 분석하시고 조직의 투쟁강령을 제시하시었다. . . .

타도제국주의동맹이 결성됨으로써 조선혁명은 자주성의 원칙에 따라 전진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ㅌ?.ㄷ≫의 결성은 우리 나라에서 새형의 당, 주체형의 혁명적 당창건을 위한 투쟁의 출발점으로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하시고 혁명의 진두에 나서신 때로부터 조선혁명의 참다운 시원이 열리게 되었으며 영광스러운 주체혁명위업이 개척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활동을 더욱 본격적으로 벌이기 위하여 대용단을 내려 화성의숙을 반년만에 중퇴하시고 만주에서의 조선인 반일독립운동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많이 모여 드는 정치적중심지이며 교통상 유리한 곳인 길림으로 혁명활동의 무대를 옮기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길림으로 가시기에 앞서 무송에 들리시어 주체 15(1926)년 12월 우리 나라에서의 첫 공산주의적 소년조직인 새날소년동맹을 무으시었으며 강반석어머님의 혁명활동을 도우시어 우리 나라에서의 첫 혁명적 여성대중조직인 반일부녀회를 결성하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16(1927)년 1월중순 길림육문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시었다.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교도서주임으로 선출된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공산당선언≫, ≪자본론≫, ≪국가와 혁명≫, ≪임금노동과 자본≫을 비롯한 맑스-레닌주의고전들과 그를 해설한 도서들을 수많이 읽으시었으며 선행이론에서 밝힌 문제들을 우리 나라의 구체적 실정과 결부하여 깊이 연구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치서적들과 함께 ≪어머니≫, ≪철의 흐름≫과 같은 혁명적인 소설들과 당시의 현실생활을 반영한 진보적인 문학작품들도 수많이 탐독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타도제국주의동맹의 하부조직이 수많이 무어지고 광범한 청년학생들속에서 반일기운이 높아짐에 따라 주체 16(1927)년 8월 27일에 ≪ㅌ?.ㄷ≫를 보다 대중적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하시었다. 반제청년동맹은 그후 여러 학교들과 길림주변의 농촌지역은 물론 조선청년들이 있는 모든 곳에 깊이 뿌리를 내리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청년운동의 실태와 혁명발전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데 기초하여 주체 16(1927)년 8월 28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하시었다. . . .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은 단순한 청년조직이 아니라 조선혁명의 앞길을 개척해 나갈 사명을 지닌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의 선봉대로서 각계각층 대중단체들을 조직지도하는 혁명적 전위조직이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16(1927)년 12월 20일 무송지방의 청년들을 핵심으로 하고 백두산주변의 청년들을 망라하여 대중적 반일청년조직인 백산청년동맹을 조직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17(1928)년 1월 무송일대에서 연예선전활동을 벌이시던중 반동경찰에 체포되시었는데 이때 강반석어머님의 지도밑에 진행된 무송인민들의 적극적인 투쟁에 의하여 석방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의 대륙침략기도를 저지파탄시키며 인민대중을 반일투쟁에로 더욱 힘있게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주체 17(1928)년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반대하며 일본상품을 배척하는 보다 큰 규모의 적극적인 반일투쟁을 조직지도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르조아민족주의자들의 외세의존사상과 민족허무주의사상, 종파분자들의 그릇된 좌우경적 궤변을 사상이론적으로 논박하시는 한편 이들이 퍼뜨리는 반동적 사상독소의 영향을 막기 위하여 청년학생들과 군중들속에서 강연과 연예선전활동, 연구토론, 출판물을 통한 선전사업을 힘있게 벌여 그릇된 ≪주의주장≫의 반동적 본질과 해독성을 깊이 인식시키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민족주의운동단체들인 정의부, 신민부, 참의부가 통합문제를 가지고 자리다툼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그 거두들을 만나 진지하게 깨우쳐 주시었으며 그들의 내막을 풍자한 혁명연극 ≪3인1당≫을 창작하시어 보여 주시었다. 연극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은 민족주의자들은 형식상으로나마 국민부로 통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김혁, 차광수를 비롯한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은 경애하는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 모시고 따르면서 망국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운 조선의 밤하늘에 높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 비치는 조선혁명의 향도성이 되어 달라는 의미에서 수령님의 존함을 한일자와 별성자를 써서 한별 또는 김일성동지로 고쳐 불렀으며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칭송하는 불멸의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지어 인민들속에 널리 보급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18(1929)년 가을 중국반동경찰에 체포되시어 길림감옥에서 다음해 5월초까지 옥중생활을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옥중고초를 겪으시면서도 혁명활동을 잠시도 중단하시지 않았으며 우리 나라의 민족해방투쟁과 공산주의운동이 남긴 경험과 교훈, 다른 나라의 혁명운동경험을 전면적으로 분석총화하시는 과정에 주체사상의 출발점으로 되는 혁명의 진리를 발견하시었다.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19(1930)년 6월 30일부터 7월 2일에 걸쳐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선혁명의 진로를 밝히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역사적인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조성된 정세와 선행운동의 역사적 교훈을 전면적으로 분석하시고 주체사상의 원리를 독창적으로 천명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 역사상 처음으로 밝히신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은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이나 사회주의혁명과도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혁명으로서 식민지, 반식민지나라 인민들이 자주성을 실현하는데서 선차적으로 수행하여야 할 혁명이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노선을 제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일민족통일전선노선을 제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주적으로 혁명적 당을 창건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카륜회의에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시고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노선을 밝히신 것은 주체사상의 창시와 주체적 혁명노선을 선포한 역사적 사변이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19(1930)년 7월 3일 카륜에서 당조직결성회의를 소집.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당조직의 사상적 대변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출판물로서 잡지 ≪볼쉐위크≫를 창간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첫 당조직을 내오신 데 이어 무장투쟁준비를 위한 첫 사업으로 주체 19(1930)년 7월 6일 이통현 고유수에서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변장해 가시며 돈화, 카륜, 길림, 해룡, 교하, 할빈, 연길, 왕청을 비롯하여 5.30폭동과 8.1폭동의 후과가 심하게 미친 만주의 여러 지방을 다니시며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수습정비하고 혁명조직들을 확대해 나가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시기 할빈에 있는 국제당 연락소와 자쟈툰, 오가자 등지에서 국제당이 파견한 일군들을 통하여 국제당과의 연계도 가지시었다.

국제당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카륜회의에서 내놓으신 주체적인 혁명노선을 비롯하여 우리 혁명의 생명으로 되는 자주성의 원칙, 창조성의 원칙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시하였다. 그리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 커다란 기대를 가지고 길동지구 공청책임비서사업을 위임하였으며 모스크바에 가서 국제공산당에서 운영하는 공산대학에서 공부하실 것을 여러 차례 권고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선생은 인민대중이라고, 인민들속에 들어가 조선혁명의 이론과 방법을 배우겠다고 하시면서 모스크바유학이 아니라 우리 나라와 잇닿아 있는 동만과 북부조선일대의 인민들속으로 들어가시어 그들과 고락을 함께 하시며 적극적인 혁명활동을 벌이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19(1930)년 9월 말 국내 온성지구에 나오시어 두만강연안의 북부조선일대를 혁명의 전략적 기지로 꾸릴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으며 10월 1일 온성군 두루봉에서 당조직결성회의를 소집하시고 온성지구혁명조직핵심들로써 당조직을 결성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군 성원들을 여러 농촌지역에 파견하시는 한편 주체 19(1930)년 10월부터 이듬해초까지 회덕현 오가자에서 활동하시면서 이곳을 농촌혁명화의 본보기로 꾸리.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만으로 나오시던 중 또다시 반동군벌에 체포되어 장춘감옥20일가량 투옥되시었다가 연공인사들의 강력한 항의에 의하여 출옥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간도와 국내의 두만강연안일대의 실태를 충분히 파악하신 데 기초하여 주체 20(1931)년 5월중순 연길현 명월구에서 당 및 공청간부회의(봄명월구회의)를 소집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 ≪좌경적 모험주의노선을 배격하고 혁명적 조직노선을 관철하자≫에서 5.30폭동의 본질과 실패원인, 그 후과와 교훈을 분석총화하시고 혁명의 기본군중을 튼튼히 결속하며 각계각층 반일역량을 굳게 단결시켜 전 민족을 하나의 정치적 역량으로 단합시킬 데 대한 혁명적 조직노선과 그 관철을 위한 과업을 밝히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영도밑에 추수투쟁은 동만의 10여만 농민들이 참가한 대규모적이고 조직적인 폭력투쟁으로 발전하여 일제침략자들과 반동지주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으며 광범한 반일대중을 실천투쟁속에서 더욱 각성시키고 단련시키었다. . . .

2. 주체 20(1931). 12 - 주체 25(1936). 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의 만주강점으로 하여 조성된 새로운 정세하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시급히 조직전개하기 위한 전략전술적 방침을 제시하시기 위하여 주체 20(1931)년 12월 16일 연길현 명월구에서 당 및 공청간부회의(겨울명월구회의)를 소집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식민지해방투쟁의 특성과 유격전의 우월성을 전면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지난 날 정규전의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여겨 왔던 유격전을 무장투쟁의 기본형식으로 규정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격근거지를 창설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 . .

겨울명월구회의는 항일무장투쟁의 시초를 열어 놓았다. 이 회의를 계기로 ≪무장에는 무장에로, 반혁명적 폭력에는 혁명적 폭력으로!≫라는 구호밑에 항일전쟁이 정식으로 선포되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은 새로운 높은 단계인 무장투쟁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활동지대를 확보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곳인 푸르허부근의 한 농촌마을에 몸소 ≪머슴≫으로 가장하고 들어가 달반가량 활동하시면서 ≪반동소굴≫이라고 하던 마을을 혁명화하고 그 경험을 일반화하시었다. 그리고 주체 21(1932)년 봄 동만각지의 10여만 농민대중을 대규모적인 춘황투쟁에로 불러 일으켜 일제와 반동지주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시었으며 투쟁속에서 소규모유격대와 혁명조직들을 단련시키고 혁명군중을 더욱 각성시키시었다.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21(1932)년 4월 안도현 소사하에서 진행된 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에서 반일부대들과의 연합전선을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시었으며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안도에 있는 반일부대 우사령과 담판을 진행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고 무장투쟁을 벌릴수 있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 진데 기초하여 주체 21(1932)년 4월 25일 안도현 소사하 무주툰 토기점골 등판에서 100여명의 청년들로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6월초 원정대오를 친솔하시고 남만원정의 길에 오르시어 안도-무송현경에서 일제침략군과의 조우전을 벌이시었다. 청소한 반일인민유격대가 영활한 유격전으로 적 한개 중대를 완전히 소멸한 이 전투는 항일무장투쟁사에서 처음으로 천하무적을 자랑하는 일제침략군의 신화를 깨뜨려 버린 의의가 큰 전투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남만진출기간에 강반석어머님을 여의는 크나큰 상실의 아픔을 당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해 10월 반일인민유격대의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양강구를 떠나 돈화, 액목, 왕청을 거쳐 반일부대들이 집결되어 있는 라자구로 가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라자구등판에서 마가성을 가진 노인의 도움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시고 군정학습을 조직진행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남북만진출과 군정학습을 통하여 억센 투사로 단련육성된 유격대오를 이끄시고 주체 22(1933)년 2월 요영구를 거쳐 소왕청 마촌으로 오시었으며 이곳에 혁명의 사령부를 정하시고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조직영도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유격구들에서 좌경적인 쏘베트노선을 극복하고 인민정권건설노선을 철저히 관철하여 인민혁명정부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이도록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22(1933)년 4월 소왕청 마촌과 십리평에서 국제당 파견원과 나누신 역사적인 담화에서 좌경적인 쏘베트노선의 부당성에 대하여 지적하시고 주체적인 인민혁명정부노선의 정당성에 대하여 해설해 주시었다. . . .

국제당파견원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조선혁명에 관한 주체적인 노선과 입장에 대하여 전적인 지지를 표시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구창설만을 고집하는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과의 투쟁을 벌이시면서 주체 22(1933)년 봄부터 반유격구창설사업을 적극 추진시키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의 국내진출을 막아 나서는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을 물리치시고 주체 22(1933)년 3월 유격대의 한 부대를 이끄시고 온성지구에 진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성된 군사정치정세와 반일인민유격대 자체발전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시고 주체 23(1934)년 3월 왕청현 마촌에서 진행된 반일인민유격대 군사정치간부회의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하는 역사적인 조치를 취하시었다.

6월에는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라자구에 있는 구국군전방사령인 오의성과 담판을 진행하시어 반일연합전선에 응해 나서게 하시었으며 유격대와 반일부대대표들을 망라한 상설기구로서 반일부대연합판사처를 내오고 그 활동을 강화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22(1933)년 9월 동녕현성진공전투를 비롯하여 반일부대들을 인입한 여러 전투들을 조직진행하시어 반일연합전선을 공고발전시키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놈들이 주체 22(1933)년 가을부터 5,000여명의 ≪정예병력≫과 항공대까지 동원하여 또다시 유격구에 대한 ≪토벌≫공세를 감행하였을 때에는 유격구방어전과 적배후교란작전을 배합할 데 대한 전략전술적 방침을 제시하시고 유격구보위를 위한 전민항쟁을 벌이게 하시는 한편 자신께서는 유격대의 한 편대를 친솔하시고 적 후방인 량수천자, 신남구, 북봉오동, 사동동골, 대두천에 대한 습격전투를 진행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3(1934)년 5월 31일 다홍왜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당대표회의를 소집하시고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 결성을 선포하시었다.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을 확고한 지도사상으로 삼고 그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강력한 당지도기관이었으며 부대안의 각급 당조직들과 지방당조직들까지 모두 장악지도하는 통일적 당지도기관, 최고영도기관이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22(1933)년 3월 왕청에서 진행된 공청일군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 ≪공청사업을 개선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에서 유격구의 공청사업에서 나타난 좌경관문주의와 우경적편향을 지적하시고 공청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과업을 전면적으로 밝히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동만유격구≪토벌≫에 집중된 적의 역량을 분산약화시키며 북만의 공산주의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들의 투쟁을 도와주기 위하여 제1차 북만원정을 단행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3(1934)년 10월하순 원정대를 친솔하시고 설한풍을 헤치며 험준한 로야령을 넘어 북만에 진출하시어 중국공산주의자들의 항일무장부대지휘관인 주보중과 상봉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제1차 북만원정의 길에서 돌아 오신 후 쇠약해 진 몸을 추세우지 못하신채 주체 24(1935)년 2월 24일부터 3월 3일까지의 기간에 다홍왜에서 진행된 당 및 공청간부회의에 참가하시어 반≪민생단≫투쟁을 극좌적으로 벌이고 있는 좌경배타주의자들과 단신으로 맞서 견결히 투쟁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 ≪조선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 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자주적 권리이다≫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만에 있는 조선사람들의 70프로, 조선혁명가들의 80~90프로가 ≪민생단≫이거나 그 혐의자들이며 유격구가 ≪민생단≫의 양성소라고 한 좌경배타주의자들의 황당한 궤변을 과학적인 자료에 기초하여 사상이론적으로 논박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4(1935)년 3월하순 요영구회의에서 조성된 정세와 혁명임무에 맞게 유격구를 해산하고 광활한 지대에로 진출할 데 대한 전략적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원정대를 친솔하시고 태평구를 떠나 로야령을 넘어 북만에 진출하시어 주체 24(1935)년 6월하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의 기간에 걸쳐 녕안현과 액목현을 비롯한 북만의 넓은 지역을 유동하면서 다양한 전법과 전술로 수많은 전투들을 벌여 적들에게 련속 섬멸적인 타격을 가하시었다. . . .

3. 주체 25(1936). 2 - 주체 29(1940). 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의 주객관적 조건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시고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주체적 입장에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전술적 방침을 제시하시기 위하여 주체 25(1936)년 2월 27일부터 3월 3일에 걸쳐 녕안현 남호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여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에서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강화발전을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임무≫라는 역사적인 보고를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혁명의 중추적 역량인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국경지대에로 진출시키며 투쟁무대를 점차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킬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전국적 범위에서 더욱 확대발전시킬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창건준비사업을 전국적 범위에서 적극 추진시킬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5(1936)년 5월 1일부터 15일까지 무송현 동강에서 조국광복회창립대회를 소집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에서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조국광복회창립선언≫, ≪조국광복회규약≫을 발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5(1936)년 5월 5일 조국광복회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었다.

회의에서는 조국광복회 기관지로서 ≪3.1월간≫을 발간할 것을 결정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건하신 조국광복회는 유일한 강령과 규약, 조직체계를 가지고 민주주의중앙집권제원칙에 기초하여 활동하는 우리 나라에서의 첫 상설적인 반일민족통일전선조직체였으며 전민족적 애국역량에 대한 수령의 영도, 당적 영도를 확고히 보장하는 대중조직이며 강유력한 지하혁명조직이었다. . . .

국내에 꾸려진 비밀근거지들은 백두산밀영에 자리잡은 혁명의 사령부의 통일적인 지도밑에 해당 지역에서 벌어지는 무장투쟁과 당조직건설사업, 조국광복회운동, 반일대중투쟁, 전민항쟁준비사업 등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는 지역적영도거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작전기지, 활동기지, 후방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군 주력부대가 압록강연안의 국경지대에로 진출하는 조건에서도 동만일대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과 당조직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장악지도하기 위하여 주체 25(1936)년 3월 지역적 당지도기관인 동만당공작위원회를 내오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과 당창건준비사업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기 위하여 주체 25(1936)년 5월 동강회의에서 국내당공작위원회를 내올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12월 국내공산주의자들에게 친서를 보내시었으며 국내에서 활동하던 박달을 밀영에 부르시어 국내에 당조직을 꾸릴 데 대한 과업과 방도를 전면적으로 밝혀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25(1936)년 12월말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를 소집하시고 국내의 당조직건설사업을 통일적으로 장악지도할수 있는 지도기관을 내올 필요성과 의의, 국내당공작위원회의 사명과 임무, 조직규범과 활동원칙을 밝히시었다.

회의에서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책임자로 하는 국내당공작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국내당공작위원회는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의 지도밑에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고 국내당조직건설사업을 맡아보는 지역적 당지도기관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밀영에 활동거점을 정하고 서간도땅을 또 하나의 발판으로 삼아 국내와 만주에서 혁명을 확대발전시키며 국내당조직과의 연계를 강화해야 하는 실정에서 장백땅을 군사전략상 요충지로 보시고 주체 26(1937)년 2월 횡산밀영에서 권영벽을 책임자로 하는 장백현당위원회를 조직하시고 그 산하에 구당과 당소조를 내오도록 하시었다. . . .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께서는 도천리와 신파 일대를 중심으로 지하정치활동을 벌이시면서 풍산, 낭림, 부전, 신흥, 북청, 이원, 단천, 허천 등 여러 지역에 진출하시어 당조직건설사업을 추진시키는 한편 도처에 혁명조직들을 내오고 공산주의자들과 광범한 반일군중을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묶어 세우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정치공작원들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주체 25(1936)년 가을에 조국광복회 장백현 신흥촌지회가 처음으로 조직된 데 이어 수많은 조국광복회 지회들과 그 산하에 분회들이 조직되었다. 그리고 상강구, 중강구, 하강구에 조국광복회 구위원회들이 조직되고 주체 26(1937)년초 리제순을 책임자로 하는 조국광복회 장백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에서 조국광복회 조직건설사업을 힘있게 추진시키기 위하여 주체 26(1937)년 1월 갑산공작위원회를 조국광복회 국내산하조직인 조선민족해방동맹으로 개편하도록 하시었다. 조선민족해방동맹은 조국광복회 조직을 국내 깊이에로 확대시키는 하나의 발진기지로 되었으며 그 산하에 수십 개의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이 꾸려지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진보적인 천도교인들을 조국광복회 조직에 묶어 세우기 위하여 주체 25(1936)년 11월 밀영에서 국내의 천도교대표들을 만나시어 조국광복회 운동의 목적을 해설해 주시고 이 운동에 적극 나설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그리하여 주체 26(1937)년 봄 풍산군안의 천도교인들을 망라하는 조국광복회 풍산지회가 결성된 데 뒤이어 갑산, 삼수, 혜산, 장백 지대에 천도교핵심성원들로 조국광복회 지회들이 조직되고 수많은 천도교인들이 여기에 결속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26(1937)년 6월 4일 역사적인 보천보전투를 조직지휘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울리신 총성을 신호로 하여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경찰관주재소, 면사무소를 비롯한 일제의 폭압기구와 통치기관들을 일격에 습격소탕하고 보천보일대를 해방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작성하신 ≪포고≫와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거리에 내붙이고 여러 가지 격문과 삐라들을 살포하면서 힘있는 정치선동을 벌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보천보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신 후 추격해 오는 적들을 구시산에서 소탕해 버리시고 지양개로 철수하여 성대한 군민연환대회를 마련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보천보에서 참패를 당한 일제가 조선강점군 제19사단소속 함흥 74연대와 위만군과 경찰무력까지 동원하여 대병력으로 공격해 오자 6월 30일 간삼봉계선에서 대섬멸전을 조직지휘하시어 적 1,500여명을 살상하고 적들의 ≪토벌≫기도를 완전히 파탄시키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6(1937)년 7월 일제가 도발한 중일전쟁을 계기로 조성된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여 무장투쟁을 국내깊이 확대하며 이에 전인민적 항전을 배합하여 적들에게 보다 심대한 타격을 가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영도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6(1937)년 7월중순 백두산밀영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 지휘성원들의 회의에서와 8월초순 장백현 초수탄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하신 연설 ≪중일전쟁발발에 대처하여 적배후교란작전을 적극 전개하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압록강, 두만강연안일대를 비롯한 광활한 지역에서 적배후교란작전을 더욱 광범히 전개하며 국내에서의 반일반전투쟁을 강화하고 전인민적 항쟁준비를 다그쳐 전반적 조선혁명을 새롭게 앙양시킬 데 대한 전략적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국내에서 인민들의 반일반전투쟁을 강화하며 전민항쟁준비를 적극 다그치기 위하여 주체 26(1937)년 9월에 ≪전체 조선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하시었다. 9월호소문은 전민항쟁호소문으로서 각계각층의 모든 동포들을 조국의 광복을 위한 거족적인 대성전에로 불러일으키는 전투적 기치로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낭림산줄기를 비롯하여 전략적 의의를 가지는 큰 산줄기들에 전민항쟁역량의 무력적 지탱점으로 될 수 있는 비밀근거지들을 더욱 튼튼히 꾸리도록 하시고 국내에서 벌어지는 전반적 혁명운동에 대한 지도를 더욱 강화하며 전민항쟁준비의 돌파구를 열기 위하여 주체 26(1937)년 9월하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한 소조를 친솔하시고 신흥지구비밀근거지에로 진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 기간 여러 가지 약점과 제한성을 가지고 있던 기성의 노조, 농조들을 혁명적으로 개편하고 여러 지역에 새로운 혁명적인 노조, 농조들을 결성하며 노조, 농조안에 당조직을 내오고 당조직들의 지도가 체계적으로 미치게 하시었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은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조직영도하시는 항일무장투쟁과 밀착되게 됨으로써 혁명적인 대중운동으로 새롭게 발전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중일전쟁발발 후 조성된 복잡한 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조선인민혁명군 성원들과 애국적 인민들을 정치사상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하여 주체 26(1937)년 11월 고전적 노작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를 집필하시어 대내기관지 ≪서광≫에 발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과 각지의 당 및 조국광복회 조직들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에 대한 학습을 진행하도록 하시는 한편 주체 26(1937)년 11월하순부터 다음해 3월하순까지 몽강현 마당거우밀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집중적인 동기군정학습을 조직지도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가 ≪혜산사건≫을 조작하여 혁명역량에 대한 대대적인 폭압선풍을 일으킨 것과 관련하여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 비상회의를 여시고 혁명조직들을 보호하며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재건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시었으며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를 대진평지구에 파견하시어 일제의 검거선풍에 대처하기 위한 국내 공산주의자들의 활동방향을 알려 주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일제의 야수적 탄압이 계속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당 및 조국광복회 조직들이 급속히 복구정비되고 확대되어 갔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열하원정이 제기될 때마다 무장투쟁의 불길을 국내에로 확대할 데 대한 자주적인 노선을 확고히 틀어쥐고 나가시면서도 료서와 열하 방면으로 진출한 중국인 항일무장부대들이 차지하고 있던 남만의 일부 지역들의 군사적 공백을 메우면서 군사정치활동을 맹렬히 벌이심으로써 조선혁명의 앙양을 이룩하시고 중국인민들의 반일투쟁을 힘있게 고무추동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성된 난국을 주동적으로 타개하고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 올리기 위하여 주체 27(1938)년 11월 25일부터 10여일간에 걸쳐 몽강현 남패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전진시키자≫에서 열하원정의 좌경모험주의적본질과 그 엄중한 후과들을 분석비판하시고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기 위하여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주적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며 정세에 대한 판단을 옳게 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그리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시급히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일대에로 진출하여 광활한 지역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보다 활발히 조직전개할 데 대한 새로운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남패자회의후 제2방면군을 친솔하시고 주체 27(1938)년 12월초 남패자를 떠나 압록강연안 국경일대에로 진출하기 위한 역사적인 고난의 행군을 단행하시었다. . . .

항일의 여장군이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과 노선을 견결히 옹호고수하시고 수령님의 신변안전을 철저히 보장하시었다. 오중흡7연대는 위대한 수령님만 계시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혁명적 신념을 굳게 간직하고 어떤 역경속에서도 수령님의 명령지시를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였으며 적들의 포위공격속에서도 사령부로 가장하고 사령부로 쏠리는 적의 대부대를 유인하여 끌고 다니면서 희생적으로 싸워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결사옹호보위하였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8(1939)년 4월초 북대정자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역사적 연설 ≪적극적인 반격전으로 일제침략자들을 연속 타격하고 조국으로 진군하자≫에서 고난의 행군을 총화하신 다음 새로운 투쟁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봉건창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벌이시었으며 베개봉에서 일행천리전술로 신속히 무산지구로 진출할 데 대한 대담한 행동방향을 밝히시고 삼지연을 거쳐 적들이 닦아 놓은 100여리의 ≪갑무경비도로≫를 대낮에 보무당당히 행군하여 무포에 이르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신사동신개척 일대에서 군사정치활동을 힘있게 벌이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월 23일 대홍단벌에서 추격해 오는 적들을 유인매복전술로 소멸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7(1938)년 7월 일제침략자들이 쏘련의 하싼호일대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하였을 때 림강과 화전 일대에서 수많은 전투들을 벌여 적배후를 타격하도록 하시었으며 주체 28(1939)년 5월 일제의 ≪할힌골사건≫도발로 하여 쏘몽연합군이 일제침략자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에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을 일제의 반쏘무력침공의 보급로인 철도연선에 집결시키고 관동군의 병력이동과 군수물자수송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전투들을 맹렬히 조직전개하도록 하시었다. . . .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기 위하여 벌린 전투들에서 김진을 비롯한 자기의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친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전사들이 수많이 배출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가 주체 28(1939)년 9월부터 ≪동남부치안숙정특별공작≫의 미명하에 20여만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최종적으로 ≪소멸≫하기 위한 새로운 ≪토벌≫작전을 감행하여 나선 데 대처하여 백두산동북부일대에서 대부대선회작전을 조직지휘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부대이동노정을 위장하기 위하여 부대의 이동방향을 급격히 변화시키는 전술로써 적들을 화룡, 안도 일대의 산과 골짜기에 몰아 넣고 수백리 강행군으로 돈화오지에 진출하시어 주체 28(1939)년 12월 륙과송전투와 쟈신즈전투를 승리에로 조직지휘하시었다. 그리고 은밀히 남쪽방향으로 빠져 안도-무송현경 송화강류역의 백석탄밀영에서 40여일간의 군정학습을 조직지도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9(1940)년 2월 부대를 친솔하시고 백석탄밀영을 떠나 대부대선회작전 2단계의 비밀로정을 따라 두만강연안의 국경일대에 진출하여 3월중순 적≪토벌≫거점의 하나인 대마록구를 치시었으며 3월하순에는 화룡현 홍기하전투를 빛나는 승리에로 조직지휘하시어 추격해 오는 악질적인 ≪마에다토벌대≫를 전멸시키시었다. . . .

홍기하전투를 계기로 ≪동남부치안숙정특별공작≫의 미명하에 감행된 일제놈들의 첫 단계 ≪토벌≫작전은 격파되고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선회작전은 승리적으로 결속되게 되었다. . . .

4. 주체 29(1940). 8 - 주체 34(1945). 8

주체 28(1939)년 9월 파쑈독일의 폴란드침공을 계기로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일제는 ≪대동아공영권≫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중국대륙에 대한 침략전쟁을 결속하지 못한 채 동남아시아지역으로 전쟁의 불길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국제국내적으로 더욱더 고립되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헤어날 수 없는 궁지에 깊숙이 빠져들어 갔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반적정세발전의 추이와 우리 혁명발전의 요구를 과학적으로 통찰하신 데 기초하여 주체 29(1940)년 8월 10일부터 11일까지 돈화현 소할바령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소집하시고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준비 있게 맞이할 데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보고를 하시었다. . . .

최후결전과 새 조국 건설, 이 두가지 과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대신해 줄 수 없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이 해야 하고 우리 인민이 수행하여야 하였다. 그러므로 무모한 전투로 인한 손실을 피하면서 주동적인 활동으로 혁명역량을 보존축적하며 인민들을 정치사상적으로 준비시켜 전민항쟁에 동원시키는 것은 당시 우리 혁명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과업으로 제기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전략적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대부대작전으로부터 소부대작전으로 이행할 데 대한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29(1940)년 초가을부터 시작된 일제의 ≪추기 및 동기토벌≫작전을 분쇄하기 위한 소부대, 소조들의 군사활동을 현명하게 이끄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 중, 쏘 세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국제파시즘의 ≪반공≫연합을 반대하는 반제반파쑈공동전선을 시급히 형성하여야 할 과업이 나서고 있던 정세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시고 주체 29(1940)년 12월부터 주체 30(1941)년 3월중순까지 국제당이 소집한 하바롭스크회의에 참가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에서 각자의 독자성을 존중하는 기초위에서 여러 무장력의 국제적연합을 형성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조, 중, 쏘 세 나라 혁명의 이익에도 다같이 부합되는 공동투쟁의 형식과 방법을 탐구하며 동지적이고 사심 없는 태도로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를 최대한 발양하여 공동전선을 실현할 데 대한 원칙적인 입장을 천명하시었다. . . .

김책과 최용건을 비롯하여 북만과 남만에서 싸우던 혁명투사들은 일찌기 1930년대초부터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끝없이 흠모하며 만나뵙고 싶었던 소원이 성취된 데 대하여 더없이 기뻐하면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조선혁명의 영도자로,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높이 모시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결의를 굳게 다지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하바롭스크회의 후 백두산지구와 원동의 임시기지로 오가시면서 국내와 동남만에서의 소부대활동을 지도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0(1941)년 3월 소부대활동을 위해 원동기지를 떠나시기에 앞서 대원들의 한결같은 요청에 따라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동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었다. 그리고 사진뒤면에 ≪타양에서 봄을 맞으면서 1941. 3. 1. B야영구에서≫라는 역사적인 친필을 남기시었다. 이 사진은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께 있어서 결혼사진이나 다름없는 뜻 깊은 사진이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30(1941)년 4월 ≪쏘일중립조약≫이 체결된 것과 관련하여 일부 대원들과 소부대, 소조 성원들속에서 나타날수 있는 사상적동요를 막고 승리의 신심을 안겨 주기 위하여 이해 5월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라는 혁명적 구호를 제시하시었다. 그리고 6월에는 파쑈독일의 쏘련에 대한 불의의 침공과 관련하여 간백산밀영에서 소부대와 정치공작소조, 혁명조직 책임자들에게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며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진공적으로 벌일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지도밑에 안길, 김일, 류경수, 오백룡, 최광이 책임진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 소조들국내와 동만, 쏘만국경일대에서 군사정치활동과 정치활동을 맹렬히 벌여 적들의 유생역량과 전투기술기재, 군수물자수송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조선인민혁명군의 당면한 전투활동과 최후결전을 위한 작전계획수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께서는 주체 30(1941)년 6월에 소백수골의 백두산밀영에 오시어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북부조선일대와 장백지구에서 조국광복회 조직을 비롯한 혁명조직들을 정비확대하며 광범한 군중을 결속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시키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영도밑에 항일대전의 최후승리를 위한 투쟁에서 혁명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던 때인 주체 31(1942)년 2월 16일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백두산밀영에서 빨찌산의 아들로 탄생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탄생과 장래를 축복하여 항일혁명투사들은 ≪백두광명성 탄생을 알린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 그 태양빛 이어갈 백두광명성≫, ≪백두광명성 탄생은 2천만 민족의 대통운≫, ≪백두광명성 빛나는 조선의 미래 찬란하다≫등 불멸의 글발들을 아름드리나무와 천연바위들에 새기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1(1942)년 7월중순경 쏘련, 중국의 군사간부들과 함께 조, 중, 쏘 무장력의 연합문제를 최종적으로 토의하고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의 독자성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전제하에 국제연합군을 창설할 데 대하여 결정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 겸 국제연합군의 조선지대장으로 활동하시.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하바롭스크회이후 군정훈련에 유리한 지대인 쏘련원동지방에 훈련기지를 정하고 주체 30(1941)년초부터 군정훈련을 조직진행하시었으며 국제연합군이 편성된후 더욱 강화하도록 하시었다. . . .

주체 32(1943)년에 들어서면서 전반적 국내외정세는 조선혁명에 유리하게 전변되어 갔다. 쓰딸린그라드격전에서의 쏘련군대의 승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국을 역전시켰다.

파쑈이탈리아는 항복하고 일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태평양 전선에서 완전히 수세에 빠져 패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혁명발전과 조성된 정세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데 기초하여 주체 32(1943)년 2월 신흥군 서곡리 두무봉회의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그에 배합한 전인민적 봉기, 배후연합작전으로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이룩할 데 대한 조국광복을 위한 3대노선을 제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32(1943)년 9월 조선인민혁명군 정치간부 및 정치교원들앞에서 하신 역사적 연설 ≪조선혁명가들은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에서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을 책임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서는 조국의 역사와 지리, 찬란한 문화전통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구체적 내용과 방도에 대하여 그리고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투쟁과업에 대하여 뚜렷이 밝히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민항쟁준비를 더욱 다그치기 위하여 이미 국내에 꾸려진 비밀근거지들을 튼튼히 다지면서 일제와의 최후결전에서 전략전술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전국의 중요지구들에 여러 가지 형태와 규모로 임시비밀근거지들을 확대하도록 하시었으며 몸소 국내의 비밀근거지와 임시비밀근거지들을 찾으시어 반군사조직 지휘성원들의 훈련을 강화하며 최후공격작전의 출발진지를 튼튼히 꾸리기 위한 사업을 지도해 주시었다. . . .

그리하여 주체 31(1942)년에 성진(김책)에서 백두산회라는 비밀조직이 나온 데 이어 주체 32(1943)년에는 서울에서 ≪김일성대≫가 조직되었다. 평양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촌동생인 김원주동지를 비롯한 혁명적 청년들에 의하여 조국해방단이 조직되었으며 일철비밀결사경성(서울)지구무장봉기준비결사, 라진인민무장대 등 여러 가지 명칭을 가진 무장대들이 온 나라 곳곳에 조직되어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에 합세하여 무장폭동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사업을 다그쳤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전민항쟁세력이 급속히 장성하여 주체 31(1942)년 일제에게 노출된 국내의 반일지하조직만 해도 180여개나 되고 거기에 망라된 성원은 50여만명이나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영도밑에 중요산업지대와 전략적 요충지를 비롯한 국내도처에 기층당조직들이 확대되고 평안남도지구당위원회청진지구당위원회를 비롯한 지역적 영도기관들이 조직되었으며 그를 통하여 해당 지역의 조국광복회 조직들과 전민항쟁조직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 . .

1940년대중엽에 이르러 파쑈독일이 패망하고 그 동맹국이었던 일제가 모든 전선에서 패전을 거듭함으로써 조국광복을 위한 최후공격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유리한 정세가 조성되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의 주체적 역량에 의거하여 일제침략자들을 격멸하고 조국을 광복하기 위한 최후공격작전을 현명하게 조직영도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8월 9일 쏘련의 대일선전포고와 때를 같이하여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에 조국광복을 위한 총공격명령을 내리시었다. . . .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에 호응하여 이미 국내에 파견되어 활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인민무장대들과 무장봉기조직들, 광범한 인민들을 무장폭동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였다. . . .

아군부대들의 맹렬한 공격과 적극적인 전민항쟁에 의하여 결정적 인 타격을 받은 일제는 대일작전이 시작된 지 1주일만인 주체 34(1945)년 8월 15일 황급히 무조건항복을 선언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과 국내의 항쟁세력으로 하여금 저항을 계속하는 일제침략군패잔병들과 적통치기구를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소탕할 것을 명령하시었다. . . .

조국의 광복은 15성상이나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강력한 군사정치적 타격을 안겨 그것을 밑뿌리채 뒤흔들어 놓은 조선인민혁명군과 각계각층을 망라한 전민항쟁역량의 총동원으로 이룩되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을 승리에로 조직영도하시어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으로 하여 우리 인민과 세계 혁명적 인민들로부터 ≪민족재생의 은인≫, ≪만고의 영장≫, ≪천재적 군사전략가≫, ≪피압박민족과 인민의 위대한 태양≫으로 높은 칭송과 존경을 받으시게 되었다.

5. 주체 34(1945). 8 - 주체 36(1947). 2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제가 항복한지 5일만인 주체 34(1945)년 8월 20일 군사정치간부들앞에서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 건설에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이미 쟁취한 승리에 기초하여 조선혁명을 계속 전진시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며 부강하고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건당, 건국, 건군의 당면한 3대과업을 제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개선을 앞두고 짧은 기간에 새 조국 건설을 위한 준비사업을 진행하신 후 주체 34(1945)년 9월 19일 소문도 없이 원산항에 상륙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산에 도착한 다음날인 9월 20일 함경남북도와 철원지방에서 활동하게 될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시면서 새 조선 건설과 공산주의자들의 당면과업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고 자신께서는 서해지구에서 사업하게 될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열차를 타시고 원산을 떠나 9월 22일 오전 평양에 입성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34(1945)년 9월말 남조선에서 온 공산주의운동자들과 하신 담화와 정치공작원 및 평안남도공산당 단체일군협의회에서 하신 연설 그리고 10월초 평양노농정치학교 학생들앞에서 하신 강의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하여≫에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을 다시금 뚜렷이 밝혀 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4(1945)년 10월 5일 당창건을 위한 예비회의를 소집하시고 미제가 남조선을 강점한 조건에서 전반적 조선혁명을 주동적으로 밀고 나가기 위하여서는 모든 조건이 유리한 북조선에 강력한 당중앙지도기관으로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창설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서울중앙≫을 고집하면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설을 반대하는 종파분자, 지방할거주의자들의 책동을 폭로분쇄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주체 34(1945)년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서 당창립대회를 소집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대회에서 하신 역사적인 보고 ≪우리 나라에서의 맑스-레닌주의당건설과 당의 당면과업에 대하여≫에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내올 데 대하여 밝히시고 우리 당의 조직노선과 정치노선을 천명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대회에서 당중앙지도기관인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결성하고 우리 당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었다.

우리 당의 창건은 역사상 처음으로 되는 주체형의 혁명적 당의 탄생이었으며 ≪ㅌ?.ㄷ≫의 결성으로부터 시작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창건위업의 빛나는 실현이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10월 13일 당창립대회를 결속하시고 회의에 참가하였던 각 도당 책임일군들앞에서 ≪새 조선 건설과 민족통일전선에 대하여≫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을 창건하는 역사적 위업을 수행하시고서야 주체 34(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김일성경기장)에서 진행된 환영군중대회장에 나오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10여만군중의 열광적인 환호에 인사를 보내시면서 ≪모든 힘을 새 민주조선건설을 위하여≫라는 역사적인 개선연설을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을 창건하고 인민들에게 개선인사를 하신 후 고향 만경대를 찾으시어 그리운 조부모님을 비롯한 일가분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4(1945)년 10월 공청을 주동적으로 해산하고 대중적인 청년조직인 민주청년동맹을 창립하며 각계각층의 광범한 애국청년들을 하나로 튼튼히 묶어 세울데 대한 노선을 제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35(1946)년 1월 17일 북조선민주청년단체대표자회를 소집하시고 북조선민주청년동맹의 결성을 선포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노동자, 농민, 여성들을 노동조합, 농민조합, 여맹조직에 묶어세우며 중앙조직들을 내오기 위한 결성준비위원회를 뭇고 그 준비사업을 다그치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주체 34(1945)년 11월 북조선노동조합총연맹(직업동맹의 전신)과 북조선민주여성동맹이 결성되었으며 이어 북조선농민조합연맹(농민동맹)이 결성되게 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4(1945)년 11월 현대적 정규군대의 첫 군사정치간부양성기지인 평양학원을 창설하시었으며 학원을 모체로 하여 각 군종, 병종 군사학교를 내오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곳곳에 건국사업과 인민의 안전을 보위할 수 있게 보안대, 국경경비대, 철도경비대를 조직하시었으며 이에 토대하여 그후 정규군의 핵심부대인 보안간부훈련소를 창설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정권건설을 다그치기 위하여 각지에 조직된 지방인민위원회들의 구성과 조직체계를 정비강화하도록 하시었으며 주체 34(1945)년 11월 19일 각 도인민위원회연합회의를 소집하시고 부문별 중앙행정기관인 북조선행정10국을 조직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4(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쏘, 미, 영 3국외상회의에서 제2차 세계대전후 조선문제에 관한 결정이 채택된 것과 관련하여 자주적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시고 조선의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북과 남의 통일적 임시정부수립을 위하여 온갖 성의 있는 노력을 다 기울이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34(1945)년 12월 31일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부장협의회에서 이 결정의 진의도와 근본목적을 뚜렷이 밝히시고 이를 지지하는 우리 당의 입장을 공식표명하시었다. 그리고 주체 35(1946)년 1월 1일 ≪신년을 맞이하면서 전국인민에게 고함≫과 남조선공산당조직 책임일군과 하신 담화 ≪미국과 남조선반동파들의 ≪반탁≫모략책동을 폭로분쇄할 데 대하여≫, 1월 5일에 하신 강연 ≪모스크바3국외상회의 결과와 조선인민이 할 일≫을 비롯한 연설과 담화들에서 미국과 남조선반동파들의 ≪반탁≫음모책동을 폭로하시고 모스크바3국외상회의 결정을 이행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거듭 밝히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주체 35(1946)년 2월 8일 북조선민주주의 정당, 사회단체, 행정국, 인민위원회대표협의회를 소집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염원에 의하여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정권을 무기로 하여 민주개혁을 수행하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낙후한 식민지농업국가였던 우리 나라의 실정으로부터 토지개혁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에서 나서는 선차적 과업으로 제기하시고 토지문제를 우리 식으로 빛나게 해결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주체 35(1946)년 3월초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5차확대집행위원회에서 ≪토지는 밭갈이 하는 농민에게!≫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토지개혁을 실시하는데서 나서는 중요문제들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밝히시었으며 3월 5일에는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발포하시었다. . . .

토지개혁에 의하여 100만 325정보에 달하는 일제의 소유토지 및 친일파, 민족반역자, 지주들의 소유토지가 몰수되어 72만 4, 522호의 토지가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분배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업국유화는 사회주의혁명단계에서 해야 한다거나 모든 산업을 다 국유화해야 한다고 하는 사대주의자, 교조주의자들의 궤변과 일제의 소유로 되어 있던 공장, 기업소들을 적산으로 처리하려는 일부 쏘련사람들의 그릇된 처사를 일축하시고 주체 35(1946)년 8월 10일 ≪산업, 교통운수, 체신, 은행 등의 국유화에 대한 법령≫을 발포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요산업의 국유화를 실시하는데서 일제와 예속자본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소유로 되어 있는 산업시설들을 국유화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무상몰수하여 국가의 소유로 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민족자본가들과 중소기업가들의 산업시설은 국유화하지 않고 그들의 기업활동을 장려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경제개혁들을 실시하는 동시에 근로자들의 민주주의적 자유와 권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주체 35(1946)년 6월 24일에 ≪북조선 노동자, 사무원에 대한 노동법령≫을, 7월 30일에는 ≪북조선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발포하시었다. 그리고 사법, 검찰 기관들을 민주화하며 교육분야에서 일제잔재를 철저히 없애고 인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교육제도를 수립하도록 하시었다. . . .

근로인민출신의 새 민족간부들을 자체의 힘으로 키워 내기 위하여 주체 35(1946)년 6월에 중앙당학교(김일성고급당학교)를, 7월에는 중앙고급지도간부학교(인민경제대학)를 창립한데 이어 10월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창설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성과들에 토대하여 주체 35(1946)년 7월 22일 상설적인 통일전선조직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를 내오심으로써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조직체계를 갖춘 통일전선조직으로 되게 하시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는 공산당, 신민당, 민주당, 천도교청우당 등 4개의 정당북조선노동조합총연맹, 북조선농민조합연맹, 북조선민주청년동맹, 북조선민주여성동맹, 북조선공업기술총연맹, 북조선예술총연맹, 북조선기자동맹, 북조선불교도연맹, 북조선기독교연맹 등 사회단체들이 망라되었으며 600여만에 달하는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이 민주주의기치밑에 굳게 뭉치게 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변화된 사회계급관계와 조성된 정세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시고 주체 35(1946)년 6월 남북조선공산당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하신 연설 ≪현시기 나라를 자주적으로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공산당을 다른 근로자당과 합당하여 근로인민의 대중적 당을 창립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주체 35(1946)년 8월 28일부터 31일까지 평양에서 북조선노동당창립대회가 열리었다. . .

그리하여 주체 35(1946)년 11월에 남조선노동당이 창립되었다. 그러나 종파분자들의 분열책동으로 하여 합당은 형식상으로 진행되었고 남조선노동당은 근로대중의 통일적 당으로서의 자기의 역할을 수행할수 없었다. . . .

남조선인민들은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로 우러르면서 북반부에서 이룩된 민주건설성과에 끝없이 고무되어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을 반대하는 투쟁에 힘차게 떨쳐나섰다.

남조선노동자들은 주체 35(1946)년 9월 미군정의 온갖 폭압의 즉시 중지, 민주주의 적노동법령의 실시 등을 요구하여 총파업을 일으켰으며 그것은 10월에 이르러 전인민적인 항쟁으로 발전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35(1946)년 11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제3차확대위원회에서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을 벌일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으며 12월 당중앙위원회 제14차상무위원회와 민전중앙위원회 제8차회의에서 사상의식개변을 위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을 밝혀 주시었다. . . .

건국사상총동원운동증산경쟁운동, 문맹퇴치운동은 근로자들의 자주성을 구속하던 낡은 사상 잔재와 기술문화적 낙후성을 청산하고 새 민주조선 건설을 성과적으로 추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의 시초로 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영도밑에 짧은 기간에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업이 성과적으로 수행되고 새 민주조선건설사업이 힘있게 추진됨으로써 우리 나라 북반부에는 인민민주주의제도가 튼튼히 서고 조국통일의 믿음직한 담보인 혁명적 민주기지가 창설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혁명은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넘어 갈 수 있게 되었다.

6. 주체 36(1947). 2 - 주체 39(1950). 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반부에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성과적으로 완수됨에 따라 사회주의에로 넘어 가는 과도기과업수행에로 인민대중을 힘있게 조직동원하시었다. . . .

주체 35(1946)년 11월 3일 우리 인민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도, 시, 군 인민위원회 위원선거는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민주선거의 승리에 기초하여 주체 36(1947)년 2월 평양에서 도, 시, 군인민위원회 대회를 소집하시었다.

대회에서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발포한 민주주의적인 모든 법령들을 승인하고 주체 36(1947)년 인민경제계획을 채택하였으며 최고주권기관인 북조선인민회의를 창설하였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체 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염원에 의하여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과도기 첫 시기 당의 경제정책과 경제건설방향에 기초하여 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기초를 튼튼히 쌓기 위한 주체 36(1947)년의 방대한 인민경제계획수행에로 인민대중을 조직동원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첫 인민경제계획이 빛나게 수행되었다. 주체 36(1947)년 국영공업생산액계획은 102.5프로로 넘쳐 수행하였으며 알곡은 주체 35(1946)년에 비하여 17만톤이나 더 생산하였다.

공업생산액에서 국영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0.2프로에 달하였다. 학교수는 전해에 비하여 1.4배, 학생수는 1.3배로 늘어 나고 수많은 병원과 진료소들이 신설되었으며 노동자, 사무원들과 그 부양가족들에게 사회보험에 의한 무상치료제가 실시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6(1947)년 9월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하신 역사적 연설 ≪생산합작사를 조직할 데 대하여≫에서 생산합작사의 조직과 운영에서 나서는 원칙적 문제와 구체적인 방도를 밝혀 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자본주의적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전망성 있게 준비하시면서 개인상공업자들의 긍정적 측면을 이용하고 부정적 측면을 엄격히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시었으며 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이 고상한 애국주의정신을 지니고 나라와 인민의 이익을 위한 사업에 적극 나서게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엄중한 정세하에서 정규무력창설을 지체할 수 없는 긴급한 과업으로 제기하시고 그 준비사업을 면밀하게 진행한데 기초하여 주체 37(1948)년 2월초 북조선인민위원회안에 민족보위국을 내오시었으며 2월 8일에는 조선인민군 열병식을 마련하시고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적 혁명무력인 조선인민군으로 강화발전시키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제의 날로 노골화되는 민족분렬책동을 저지시키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적극적인 구국대책을 세우며 북반부의 혁명적 민주기지를 더욱 강화하고 우리 당을 질적으로 공고화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강령을 제시하시기 위하여 주체 37(1948)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북조선노동당 제2차대회를 소집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대회에서 하신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전조선적인 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적인 민주주의정부를 수립할 데 대한 우리 당의 방침을 재천명하시고 그 실현방도를 뚜렷이 밝히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민족앞에 절박하게 나선 당면한 구국대책과 나라의 통일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이미 주체 36(1947)년 10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회의에서 남북협상방안을 제시하시면서 그 형식으로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의 연석회의소집을 발기하시었으며 주체 37(1948)년 1월에는 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과 개별적 인사들에게 남북협상을 조속히 실현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권위와 넓은 도량, 올바른 통일전선정책에 무한히 감동된 남조선의 진보적인 정당, 사회단체들은 물론 중간정치세력과 우익세력까지도 남북연석회의소집을 적극 지지하여 나섰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7(1948)년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평양에서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를 여시었다.

회의에는 북과 남의 1,000만여명의 당원들과 맹원들을 망라한 56개 정당, 사회단체 대표 695명이 참가하였다. . . .

연석회의는 남조선단독선거를 반대배격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할 데 관한 결의를 담은 ≪조선정치정세에 대한 결정서≫와 ≪전조선동포들에게 격함≫이라는 격문을 채택하였다. 또한 남조선단독선거반대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남조선단독선거를 단호히 반대배격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쏘미 양군의 즉시 철거를 요구하였다.

남북연석회의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북과 남의 대표들이 조국통일문제를 토의한 역사적인 첫 대민족회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연석회의에 이어 4월 30일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를 소집하시고 구국대책에 관한 ≪남북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 공동성명서≫를 채택하도록 하시었으며 5월 2일에는 대동강의 쑥섬에서 연석회의에 참가하였던 남조선의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과의 협의회를 마련하시고 연석회의결정관철을 위한 실천적 방도들과 조국통일의 전망문제를 협의확정하시었다. 쑥섬협의회는 남조선에서 단독선거를 반대하고 통일적인 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에 대하여 합의를 본 사실상의 전조선정치협상회의로 되었다. . .

4월남북연석회의후 북과 남의 모든 애국적 민주역량은 미제가 조작한 단독선거를 반대하여 힘찬 투쟁을 벌이었다. 그리하여 주체 37(1948)년 남조선에서 망국적인 5.10단독선거는 사실상 완전히 파탄되었다. 그러나 미제와 그 주구들은 ≪선거≫결과를 날조하여 친일, 친미파, 민족반역자들로 반동적 괴뢰국회와 괴뢰정부를 조작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7(1948)년 6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의 지도자협의회를 소집하시고 지체없이 남북총선거를 실시하여 전조선적인 최고립법기관을 세우고 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수립할 데 대한 구국방안을 내놓으시었다. .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주체 37(1948)년 8월 25일 남북조선총선거는 승리적으로 진행되었다.

북반부에서는 합법적으로 민주주의적 선거를 실시하여 직접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거하였으며 남조선에서는 비밀리에 선거자들의 서명을 받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먼저 인민대표들을 선출하고 이들이 해주에 모여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를 열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거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남북총선거의 빛나는 승리에 기초하여 주체 37(1948)년 9월 2일부터 10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를 소집하시었다.

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채택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에서 전체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염원에 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수상, 국가수반으로 높이 추대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7(1948)년 9월 9일 조선인민의 통일적 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조직하시고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었다. .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이룩하신 정권건설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북남전체 조선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세워진 유일한 합법적 국가이다. 공화국정권은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의 이익을 대표하고 옹호하는 참다운 인민의 정권이며 철저히 자주적인 우리 식의 사회주의정권이다. . . .

쏘련정부는 조선에서 쏘미양군의 동시철거에 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군대를 주체 37(1948)년말까지 북반부지역에서 완전히 철거시켰다.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공화국의 경제적 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2개년인민경제계획(주체 38(1949)년-주체 39(1950)년)을 수행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체 인민을 조직동원하시었다. . . .

그리하여 주체 39(1950)년 상반년까지 2개년계획에 예견되었던 공업생산과제들이 기본적으로 완수되어 공업의 식민지적 편파성이 현저히 극복되고 공업생산이 일제시기 수준을 훨씬 넘어서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주체 37(1948)년에 우리 나라에서 첫 병기공장이 창설되고 이해 3월에는 처음으로 기관단총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방사업을 전인민적 사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장, 기업소, 농촌들에 인민자위대와 같은 민간군사조직을 내오고 주체 38(1949)년 7월에는 조국보위후원회를 조직하도록 하시었으며 군기기금헌납운동과 인민군원호사업을 전군중적으로 힘있게 벌이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북과 남의 모든 애국적 민주역량을 더욱 광범히 묶어 세우기 위하여 주체 38(1949)년 신년사 ≪국토의 완정과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궐기하자≫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남반부인민들이 공화국의 기치밑에 굳게 단결하여 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구국투쟁을 더욱 광범히 전개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면서 조국을 사랑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애국적인민들 특히 북과 남의 진보적인 모든 정당, 사회단체들을 하나의 민주주의역량으로 총집결하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지도와 북남조선의 민주주의 정당, 사회단체들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주체 38(1949)년 6월하순 평양에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가 열리었다.

대회에서는 북남조선의 70여개의 애국적 정당, 사회단체를 망라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정식으로 결성하였다. 또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강령과 전체 조선인민에게 보내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에 관한 선언서를 채택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조선에서 노동당이 전면적으로 파괴되고 합법적 활동의 가능성이 말살된 조건에서 남반부의 당사업을 수습하고 남북노동당에 대한 통일적 지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주체 38(1949)년 6월 30일 남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연합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북조선노동당과 남조선노동당을 단일한 조선노동당으로 합당하는 조치를 취하시었다. .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후 통일독립국가건설의 밝은 전망이 열리고 있던 때인 주체 38(1949)년 9월 22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장 친근한 혁명전우이시며 수령결사옹위의 귀감이신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께서 32살을 일기로 너무도 애석하게 서거하시었다.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동지의 서거는 우리 민족과 인민에게 있어서 최대의 상실이었으며 우리 혁명의 크나큰 손실이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새 조국 건설시기 나라의 사정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기치를 높이 드시고 중국혁명에 대한 사심 없는 지원을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주체 34(1945)년 11월과 주체 35(1946)년에 그리고 주체 36(1947)년초와 여름 여러차례에 걸쳐 중국 단동과 우리 나라의 평양과 남양에서 모택동주석의 특사와 중국의 군구사령원, 동북민주련군 대표 등을 만나시어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가지도록 고무하고 동북해방작전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으며 전국을 역전시킬 중요한 조치들을 취해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군위업을 수행해야 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일제침략군에게서 노획한 10만여정의 무기와 막대한 양의 화약, 탄약, 식량, 군복, 의약품 등 군수물자들을 보내주시었으며 우리의 포병연대와 공병부대를 파견하여 중국인민과 어깨겯고 싸우게 하시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북부지역과 해상, 철도와 도로들을 중국측이 병력과 전략물자를 동북지방의 필요한 지대에로 이동시킬수 있게 전략적 통로로 이용하도록 해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출신의 우수한 군정간부들과 약 25만명에 달하는 조선청년들은 동북해방전투에 참가하여 장춘, 길림, 사평, 금주, 심양 등 해방전투에서 무비의 영웅성과 희생성을 남김없이 발휘하였으며 중국관내와 해남도까지 해방하는 전투에 참가하여 피흘려 싸웠다.

중국의 모택동주석과 주은래총리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중국혁명이 시련을 겪고 있을 때 물심양면의 원조를 주신데 대하여 여러차례 감사를 표시하였으며 중국의 오성홍기에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붉은피가 스며 있다고 말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의 사회단체들이 국제민주단체들에 가입하도록 하시고 주체 36(1947)년 7월 세계청년축전과 주체 37(1948)년 6월 국제노동청년대회를 비롯한 여러 국제회의와 행사들에 대표단을 파견하시어 평화와 민주주의, 민족적 독립과 사회주의를 위하여 투쟁하는 세계 모든 나라 인민들과의 친선단결을 강화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대외활동방침에 따라 공화국정부는 주체 37(1948)년 10월 당시의 쏘베트사회주의공화국연맹과 인민민주주의국가들인 몽골, 폴란, 체코,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연방과 그리고 11월에는 마쟈르인민공화국, 불가리아인민공화국, 그 이듬해 5월에는 알바니아인민공화국, 10월에는 중화인민공화국, 11월에는 독일민주주의공화국과 대사급외교관계를 맺었으며 주체 39(1950)년 1월에는 베트남민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설정하였다. . . .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 남조선괴뢰도당은 주체 38(1949)년에 이르러 ≪북벌군사전략계획도≫를 작성해 놓고 공화국북반부를 침공하기 위한 침략전쟁도발준비를 노골적으로 추진시켰다. . . .

미제침략자들은 주체 39(1950)년에 들어서면서 새 전쟁 도발책동을 더욱 발광적으로 감행하. . .

위대한 수령님의 발기에 의하여 주체 39(1950)년 6월 7일에 열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이해 8.15를 계기로 민주주의적 원칙에서 남북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적인 최고입법기관을 창설할 것을 제의하는 ≪평화적 조국통일방책추진에 관한 호소문≫을 채택발표하였으며 그것을 남조선의 모든 민주주의 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층 인사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3명의 조국전선대표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적들은 이들을 불법체포구금하는 용납못할 만행을 감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6월 15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결론 ≪우리 당의 평화적 조국통일방안을 실현할 데 대하여≫에서 이승만역도가 남북총선거를 통하여 조국을 통일할 데 대한 우리의 정당한 제안을 반대하는 조건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와 남조선≪국회≫를 단일한 전조선적 입법기관으로 연합하는 방법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할 데 대한 새로운 방안을 또다시 제의하도록 하시었다. . . .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공화국정부의 애국애족적이며 공명정대한 조국통일방안을 어느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범죄적인 침략전쟁을 도발하는 길로 나아갔다.

7. 주체 39(1950). 6 - 주체 42(1953). 7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침략전쟁준비를 다그치면서 38도선일대에서 무장도발책동을 계단식으로 확대해 오던 미제는 남조선괴뢰도당을 사촉하여 주체 39(1950)년 6월 25일 불의에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성된 엄중한 사태와 관련하여 6월 25일 내각비상회의를 소집하시고 적의 침공을 좌절시키고 즉시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넘어 갈데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6월 26일 역사적인 방송연설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에서 우리 인민이 수행하는 전쟁의 정의적 성격을 밝히시고 전체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에게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소탕하기 위한 성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설 것을 호소하시면서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나서는 전투적 과업들을 제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39(1950)년 6월 26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나라의 모든 권력을 통일적으로 장악하며 인적, 물적 자원을 전쟁승리에로 조직동원하기 위하여 국가최고지도기관으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6월 27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전시환경에 맞게 당사업을 개편하고 당단체들과 당원들의 역할을 높이기 위하여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채택하며 국가의 전반사업을 시급히 전시체제로 개편하고 모든 역량을 전쟁승리에로 총동원하기 위하여 전시상태를 선포하도록 하시었다. 이날 또한 조선노동당, 북조선민주당, 북조선천도교청우당 도위원회 위원장연석회의를 소집하시고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한 각 정당들의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수행에 필요한 인적, 물적 수요를 최대한 조직동원할수 있게 전국에 전시동원령을 선포하고 전반적 경제를 전시체제로 개편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자신의 승리를 위하여 인민군대의 지휘체계를 전시에 맞게 개편하고 전투력을 강화하며 후방을 공고히 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들을 취하시었다.

그리하여 전쟁이 개시된후 극히 짧은 기간에 나라의 모든 힘을 전쟁승리에로 기동성 있게 조직동원할 수 있는 전시체제가 수립되고 전당, 전민, 전군이 하나의 강력한 전투대오로 튼튼히 결속되게 되었다. 중요공장기구들에서 노동자연대들이 조직되어 전선으로 나갔으며 청년학생들이 앞을 다투어 전선을 탄원하여 나섰다. . . .

≪우리는 미제가 조선전선에 저들의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투입하기 신속한 기동과 연속적인 타격으로 적들을 철저히 소탕하고 공화국남반부를 완전히 해방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현단계에 있어서의 우리 당의 전략적 방침입니다.≫(≪김일성전집≫ 제12권)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전선의 인민군부대들이 강력한 반공격전을 벌이도록 하시면서 주타격방향을 전선서부로 정하시고 서울해방작전을 조직지휘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작전적방침에 따라 적들의 불의의 침공을 좌절시키고 반공격으로 넘어 간 인민군대는 전쟁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빠른 속도로 진격하여 적의 기본집단을 소멸하고 전쟁개시 3일만에 놈들의 소굴인 서울을 해방하였으며 연이어 적방어지대를 돌파하면서 대전방향으로 진격하였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 39(1950)년 7월 4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선이 급속히 확대되는 조건에 맞게 김책을 전선사령관으로 하는 전선사령부를 조직하고 군부대들에 군사위원들을 파견하여 남진하는 전선연합부대들에 대한 지휘를 원만히 보장할 수 있게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대전지역에서 적의 대집단을 포위소멸할 대담한 구상을 펼치시고 7월중순 서울에 있는 전선사령부에 친히 나가시어 이 작전을 지휘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영활무쌍한 지휘밑에 금강을 신속히 돌파한 인민군연합부대들은 각 군종, 병종 부대들사이의 긴밀한 협동작전밑에 강력한 정면공격과 익측 및 배후 타격, 민첩한 기동과 우회, 매복과 습격 등 다양한 전투 형식과 방법을 적용하여 이른바 ≪상승사단≫이라고 자랑하던 미제침략군 제24보병사단을 완전히 포위섬멸하고 적의 임시≪수도≫인 대전을 해방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연속적인 공격작전의 승리를 위하여 주체 39(1950)년 8월초 화선천리 포화속을 헤치며 최전선인 충청북도 충주남쪽 수안보에까지 나가시어 조선인민군 전선사령부 일군 및 전선연합부대 지휘관, 문화일군회의를 소집하시고 인민군부대들의 공격속도를 더욱 높이기 위한 군사행동방향을 밝혀 주시었으며 싸우는 인민군 지휘성원들과 전사들을 고무격려하시었다. . . .

그리하여 전쟁이 개시된 지 불과 한달반 동안에 남조선괴뢰군의 기본역량과 미제침략군의 주력을 격멸하고 남반부지역의 90프로이상과 인구의 92프로이상을 해방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 차례의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군사위원회들에서 남반부지역이 해방되는데 따라 당조직과 사회단체, 인민정권기관들을 내오며 토지개혁을 비롯한 제반민주개혁을 실시하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킬 데 대한 과업과 방도들을 제시하시었으며 이를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많은 간부들과 정치공작대원들을 해방된 남반부지역에 파견하시었다.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지휘로 바쁘신 속에서도 주체 39(1950)년 7월중순과 7월말~8월초, 8월중순 몸소 서울에 나가시어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의 제반민주개혁수행정형과 인민생활형편을 깊이 요해하시고 구체적인 대책들을 세워 주시었다.

해방된 남반부인민들은 새로운 인민민주주의제도하에서 새 생활의 기쁨을 안고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남진하는 인민군대를 백방으로 지원하였다. 남반부의 수많은 애국적 청년학생들은 인민의용군에 자원입대하여 원쑤격멸의 성전에 떨쳐나섰다. 그 수는 인민군대에 의하여 남반부가 해방된 지 수주일동안에 무려 40여만명에 이르렀다. . . .

주체 39(1950)년 9월중순에 이르러 나라의 군사정세는 급변하였다.

패망에 직면한 미제는 태평양방면에 배치하였던 육해공군의 전부지중해함대의 일부 그리고 ≪유엔군≫의 간판밑에 영국을 비롯한 추종국가군대까지 긁어모아 수십만의 대병력을 조선전선에 투입하였다. 미제는 증강된 역량으로 낙동강계선에서 ≪총공세≫를 감행하는 한편 1,000여대의 비행기, 수백척의 함선과 5만여명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월미도용사들을 비롯한 인민군장병들은 비할 바 없이 우세한 적들의 공세를 물리치기 위하여 영웅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적아간의 역량상 현저한 차이로 하여 전선의 형편은 아군에게 불리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9(1950)년 9월 17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급변하는 군사정세에 대처하여 적들의 발악적인 공세를 저지시키며 적들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성된 정세를 주동적으로 타개하시기 위하여 전쟁 제2계단의 전략적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현계단에 있어서 우리 당의 전략적 방침은 적들의 진공속도를 최대한으로 지연시키면서 시간을 쟁취하여 인민군주력부대들을 구출하고 새로운 후비부대들을 편성하여 강력한 반공격집단을 형성하며 계획적인 후퇴를 조직하는 것입니다.≫(≪김일성전집≫ 제12권) . . .

인천-서울지구와 38도선계선의 영웅적 방위자들은 적의 진공을 지연시키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싸웠으며 낙동강계선에 진출했던 인민군주력부대들은 연합부대단위로 기동방어전을 벌이면서 험산준령을 넘어 짧은 시일안에 일시적인 전략적 후퇴의 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였다.

우리의 노동계급과 농민들은 생산설비들을 안전한 지대에 소개하고 전시생산을 계속하면서 한대의 차량, 한대의 기관차, 한알의 쌀이라도 적에게 내여 주지 않기 위하여 희생적인 투쟁을 벌였다. .

미제침략군놈들은 공화국북반부의 일시적 강점지역들에서 천인공노할 야수적 만행을 감행 . . .

미제침략자들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무고한 우리 인민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였다. 신천군에서만도 3만 5,000여명의 인민들이 무참히 살해당하였다. 미제의 사촉하에 전복된 착취계급의 잔여분자들과 반동분자들이 학살만행에 적극 가담하여 나섰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시적인 전략적 후퇴를 조직하시는 한편 후방의 깊은 곳에 반공격기지를 꾸리시고 후퇴하여 온 인민군부대들의 대오를 정비하고 새로운 부대들을 조직하시었으며 각 군종, 병종 부대들을 현대적인 전투기술기재들로 튼튼히 장비시켜 강력한 반공격집단을 마련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반공격을 준비하시면서 정규군의 대연합부대들로 적후에 강력한 제2전선을 형성할 데 대한 대담하고도 독창적인 전략을 펼치시고 제2전선부대들을 조직하여 주체 39(1950)년 10월중순부터 중부조선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적후투쟁을 맹렬히 벌이도록 하시었다.

공화국북반부의 전지역을 단숨에 강점하려던 미제의 기도는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다.

주체 39(1950)년 10월하순에 이르러 전쟁은 제3계단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시기 중국인민은 ≪항미원조보가위국≫의 기치밑에 지원군을 조직하여 조선전선에 파견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새로운 반공격준비에 기초하여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적의 유생역량을 대량적으로 섬멸하면서 적들을 38선 이남까지 구축하며 우리의 역량을 정비강화하고 적의 역량을 부단히 소멸약화시켜 전쟁의 종국적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준비를 갖출 데 대한 전략적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39(1950)년 10월하순 몸소 적들과 인접한 운산군 부흥리와 고성리에까지 가시어 운산지구에 침입한 적들에 대한 강력한 반타격전을 조직지휘하시었으며 10월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군관, 장령회의와 11월초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새로운 반공격준비를 더욱 철저히 갖출 데 대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을 제시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11월 25일 아군부대들에 전전선에서 ≪크리스마스총공세≫를 감행해 나선 적들에게 결정적인 반공격을 개시할 것을 명령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적 방침에 따라 아군연합부대들은 적후 제2전선과 배합한 총반공격전을 벌여 미8군사령관을 포함한 적유생역량을 대량적으로 포위소멸하고 수많은 전투기술기재들을 노획파괴하였다.

인민군부대들은 패주하는 적을 맹렬히 추격하여 주체 39(1950)년 12월말까지 공화국북반부의 적강점지역을 완전히 해방하고 38도선 이남으로 전과를 확대해 나갔다. . . .

주체 40(1951)년 6월에 이르러 전선은 38도선을 계선으로 하여 기본상 고착되고 전쟁은 제4계단에 들어서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성된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여 강력한 방어진지를 만들고 적극적인 진지방어전을 벌여 차지한 계선을 견지하고 적을 끊임없이 타격소멸하는 한편 시간을 쟁취하여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한층 강화하고 후방을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전쟁의 종국적 승리를 위한 모든 조건을 마련할 데 대한 전략적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적극적인 진지방어전을 벌이기 위하여 이미 차지한 계선의 진지를 갱도화하고 그에 의거하여 군사활동을 벌일 데 대한 새로운 갱도전법을 내놓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갱도전법과 함께 주체 39(1950)년 12월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비행기사냥군조를 조직할 데 대하여≫를 하달하신 데 이어 주체 40(1951)년에 ≪땅크습격조활동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박격포를 널리 이용할 데 대하여≫, ≪땅크사냥군조 조직과 훈련실시에 대하여≫, ≪저격수조를 조직할 데 대하여≫, ≪이동포병중대(박격포병소대), 독립중기조, 적후파괴조를 조직하며 저격수활동을 강화할 데 대하여≫등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과 훈령들을 하달하시어 비행기사냥군조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주체적인 전법들을 창조하시고 그를 적극 활용하여 적들을 끊임없이 소멸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40(1951)년 6월말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결론≪미제의 정전담판제의에 대한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입장≫과 7월초 정전담판 우리측 대표들과 하신 담화 ≪정전담판방향에 대하여≫에서 우리는 정전을 해도 좋고 전쟁을 계속해도 좋다는 입장에서 정전담판을 진행하며 이와 관련하여 미제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말고 우리의 역량을 더욱 강화하며 적들에게 계속 군사적 타격을 가하여 정전담판의 막뒤에서 꾸미는 적들의 침략적 기도를 철저히 짓부셔버려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 . .

미제는 정전담판장에서 저들의 음흉한 목적을 실현할 수 없게 되자 정전담판을 일방적으로 파탄시키고 주체 40(1951)년에 대규모적인 ≪하기 및 추기공세≫(8월중순~11월중순)를 감행하였다. . . .

미제는 전선서부에서 일대 공격전을 벌릴 것처럼 가장하면서 전선동부에 대병력을 은밀히 증강하여 대규모적인 ≪하기공세≫를 벌이었다.

미제의 교활한 술책을 꿰뚫어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서부의 일부 방어부대들을 신속히 동부에 기동시키도록 하시고 영활한 전략전술로 적의 기도를 앞질러 분쇄하시었다.

≪하기공세≫에서 심대한 참패를 당한 미제는 거기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추기공세≫를 악랄하게 감행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추기공세≫에서도 적들의 주공격방향이 전선서부가 아니라 동부라는 것을 간파하시고 적의 대규모적인 공격이 예견되는 1211고지일대에 갱도화된 방어지대들을 형성하도록 하시는 한편 적들의 상륙기도에 대처하여 예비대를 조성하고 동해안의 방어를 더욱 강화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0(1951)년 9월하순 몸소 포연탄우속을 헤치시고 1211고지 방위자들을 찾으시어 적의 공세를 격파하기 위한 강령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전선현지지도와 뜨거운 어버이사랑에 무한히 고무된 1211고지의 영웅적 방위자들은 하루에도 3만~4만발의 포탄과 폭탄이 쏟아져 바위가 부서져 가루가 되고 적의 수십차례의 ≪파도식공격≫으로 숨돌릴 사이도 없는 가열처절한 전투환경속에서도 무비의 희생성과 대중적 영웅주의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

이수복영웅을 비롯한 인민군용사들은 조국은 곧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 철석같은 신념을 심장에 새기고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을 서슴없이 바쳐 불 뿜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아 부대의 진격로를 열고 끊어진 통신선을 혈맥으로 이어 보장하였으며 수류탄묶음을 안고 적진으로 굴러 들어가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어 한치한치의 조국땅을 피로써 사수하였다. . . .

≪하기 및 추기 공세≫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미제는 다시 정전담판장에 기어 나오게 되었으며 군사분계선확정과 비무장지대설치에 관한 우리측의 정당한 제안을 접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선에서의 승리를 공고히 하며 조국해방전쟁의 최후승리를 앞당기기 위하여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밀고 나가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초기부터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강화하며 군대안의 정치사업을 강화하는데 깊은 주의를 돌리시었으며 주체 39(1950)년 10월에는 인민군대안에 당조직과 정치기관들을 내오도록 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시었다. . . .

그리하여 주체 41(1952)년에 전체 군관의 45프로가 재교육을 받았고 수많은 군사지휘관들이 새로 양성되었으며 매 보병사단의 화력이 전해에 비하여 160프로로 늘어나고 공군무력이 강화되어 미제의 ≪공중우세≫를 격파할 수 있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군대의 기층조직이며 기본전투단위인 중대를 강화하는 문제를 중요한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주체 40(1951)년 10월 모범중대운동을 발기하시었으며 모든 부대들에서 이 운동을 널리 벌이도록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쟁의 최후승리를 앞당기기 위하여 후방을 강화하는데 커다란 힘을 넣으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시생산과 전선수송을 원만히 보장하는데 선차적인 주목을 돌리시었다. . . .

우리의 노동계급과 농민들은 적들의 폭격과 야수적 만행으로 모든 것이 불타고 파괴된 어려운 조건에서도 ≪모든 것을 전선에로!≫라는 구호밑에 대중적 운동으로 증산투쟁과 증송투쟁을 힘있게 벌여 전선에서 요구되는 군수물자와 식량을 제때에 원만히 생산보장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노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의 식량과 생활필수품 공급기준을 높여 주시고 상품가격을 체계적으로 낮추도록 하시었으며 주체 41(1952)년 11월에는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실시할 데 대한 내각결정을 채택하게 하시었다. 그리고 애국열사유가족과 영예군인, 인민군후방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원호사업을 광범히 조직하고 여러곳에 유자녀학원과 유자녀보육원, 영예군인학교들을 세우도록 하시었으며 전재민구호위원회를 조직하시어 전재민들에게 피복과 식량 등을 공급하도록 하시고 전재고아들을 위하여 초등학원과 애육원들을 설치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어려운 시기 언제나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시었으며 ≪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에는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하시며 생활을 검소하게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세심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그처럼 엄혹한 전쟁환경에서도 굶어 죽거나 얼어죽는 사람도, 거리를 헤매는 전재고아도 찾아 볼 수 없었다.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0(1951)년 1월 평양시 복구건설에 대한 방향에 제시하시고 복구건설총계획도를 작성하도록 하시었으며 이듬해 5월에는 평양시 복구건설에 대한 내각결정을 채택하도록 하시고 그 준비사업을 추진시키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후 사회주의공업화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강력한 기계공업기지창설을 위하여 주체 40(1951)년 10월 희천에 새로 건설할 기계공장의 위치를 정해 주시고 12월부터 공장건설에 착수하도록 하시었으며 뒤이어 구성, 덕천 지구에도 현대적인 기계공장들을 건설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농촌경리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는데 기여하게 될 대규모적인 국영농목장들과 농기계임경소들을 대대적으로 내오고 소겨리반, 품앗이반과 같은 협동적 노력조직형태들을 적극 보급발전시키도록 하시었다. 또한 나라의 자원조사사업과 대자연개조준비사업을 예견성 있게 포치하시고 세심히 지도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에 필요한 민족간부들을 키우기 위하여 각 대학을 다시 열게 하시고 주체 40(1951)년 8월에는 전선으로부터 대학졸업생 및 대학생들을 소환하도록 하는 대담한 조치를 취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41(1952)년 4월 과학자대회를 소집하시고 과학연구사업의 방향과 과학자들의 임무를 뚜렷이 밝혀 주시었으며 이해 12월에는 과학원을 창설해 주시고 과학자들의 과학연구사업과 생활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 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시문학예술의 발전을 위하여서도 깊은 주목을 돌리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시 문학예술의 임무와 작가, 예술인들의 활동방향을 뚜렷이 밝혀 주시고 사상예술성이 높고 전투적이며 호소성이 강한 문학, 영화, 연극, 미술 작품들과 전시가요들을 수많이 창작하도록 하시었으며 예술소조공연과 군무자예술축전, 이동영사반 등을 조직하여 싸우는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힘있게 고무추동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가 사회단체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미제가 조선에서 감행한 야수적인 대중적 학살만행과 세균전, 화학전의 진상 등을 폭로단죄하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미제야말로 조선전쟁을 도발한 침략자, 전범자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고 미제는 세계인민들로부터 강력한 저주와 규탄을 받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또한 사회주의, 인민민주주의 나라들과 모든 방면에 걸쳐 친선협조관계를 확대발전시키며 국제적인 반미반전투쟁에서 세계의 모든 혁명역량과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한 활동을 통하여 우리 인민의 정의의 위업에 대한 세계 진보적 인민들의 지지성원과 국제적 연대성을 더욱 강화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보고는 당원들의 당성을 단련하고 선봉적 역할을 높이며 종파주의를 반대하고 당의 통일단결을 강화하며 당사상사업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에로 전당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강화하고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앞당기는데서 강령적 지침으로 되었다.

당 제5차전원회의 문헌토의사업을 전당적인 사상투쟁으로 힘있게 벌이는 과정을 통하여 당원들의 당성이 비상히 높아지고 당의 전투력이 한층 더 강화되었으며 종파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당적 경향들이 극복되고 당안에 오래동안 숨어있던 박헌영, 이승엽간첩도당의 반당반혁명적 음모와 죄행이 드러나게 되었다. . . .

미제는 주체 42(1953)년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의 동서해안으로 상륙하여 전선과 후방을 차단하고 기본전선의 공격과 배합하여 아군주력부대들을 ≪포위소멸≫하려는 야망밑에 모험적인 ≪신공세≫준비에 더욱 광분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해 1월말 미제가 ≪신공세≫의 서막으로 감행한 철원서쪽 정형고지에 대한 대규모적인 공격작전을 임기응변의 대담한 작전지휘로 여지없이 짓부셔 버리시었다.

미제는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의 불패의 기상과 위력앞에 겁을 먹고 마지막 기대를 걸고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신공세≫를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쟁의 주도권을 확고히 틀어쥐고 주체 42(1953)년 5월중순부터 7월하순까지의 기간에 적들에 대한 세차례의 강력한 타격전을 승리에로 조직지휘하시었다.

인민군부대들은 강력한 타격전에서 351고지 습격전투를 비롯하여 1,800여회의 대소전투를 벌여 적들에게 섬멸적 타격을 주고 343평방키로메터의 넓은 지역을 해방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더는 헤어날 수 없는 막다른 궁지에 빠지고 말았다.

적들은 3년간 조선전쟁에서 40만 5,490여명의 미제침략군을 포함하여 156만 7,120여명의 병력을 잃고 1만 2,220여대의 비행기와 560여척의 함선, 3,250여대의 땅크 및 장갑차, 1만 3,350여대의 자동차, 7, 690여문의 각종 포, 92만 5,150여정의 저격무기를 잃거나 격파, 격상 당하였다.

영웅적 조선인민과 인민군대에 의하여 돌이킬 수 없는 군사, 정치, 도덕적 패배를 당한 미제국주의자들은 마침내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에 도장을 찍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주체 42(1953)년 7월 27일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조선인민의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은 위대한 승리로 끝났다. 이날 조국의 수도 평양의 밤하늘에는 전승의 축포가 터져 올랐다.

조선인민이 미제침략군을 비롯한 16개국 무력침공자들과 남조선괴뢰군 등 200여만에 달하는 방대한 무력을 상대로 하여 벌린 힘에 부친 싸움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할 수 있은 근본요인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탁월하고 세련된 영도였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시어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 시대와 역사앞에 쌓아 올리신 불멸의 업적으로 하여 주체 42(1953)년 2월 7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칭호를, 7월 28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으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던 강도일제를 때려 부시고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를 타승하심으로써 한 세대에 두 차례의 혁명전쟁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신 천재적인 군사전략가,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으로 만민의 두터운 신뢰와 높은 존경을 받으시게 되었다.

8. 주체 42(1953). 7 - 주체 49(1960). 1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당과 전체 인민을 전후 인민경제복구건설과 사회주의기초건설을 위한 투쟁에로 조직동원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42(1953)년 8월 5일 당중앙위원회 제6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모든 것을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을 위하여≫라는 역사적인 보고에서 전후인민경제복구발전의 기본방향과 그 수행방도들을 밝히시면서 전후경제건설의 기본노선을 제시하시었다.

≪우리는 전후경제건설에서 중공업의 선차적 복구발전을 보장하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나라의 경제토대를 튼튼히 할 수 있고 인민생활을 빨리 개선할 수 있습니다.≫(≪김일성전집≫ 제16권)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방대한 전후인민경제복구건설사업을 세개의 기본단계 즉 반년내지 1년으로 하는 전반적 복구건설을 위한 준비단계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전쟁전 수준을 회복하는 3개년계획의 수행단계 그리고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를 쌓는 5개년계획의 수행단계로 나누어 진행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단계별 목표와 방향을 뚜렷이 밝혀 주시었다. . . .

전반적 복구건설을 위한 준비단계의 과업은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수행되고 주체 43(1954)년부터 3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에 들어서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3개년계획의 기본과업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괴된 경제를 빨리 복구하며 인민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전쟁전수준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원상복구가 아니라 공업의 식민지적편파성을 없애고 나라의 공업화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방향에서 복구할 것을 예견한 매우 방대한 계획이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3(1954)년 6월 황해제철소를 찾으시고 황철을 전후경제건설의 ≪1211고지≫로 내세워 주시었으며 7월에는 김책제철소와 성진제강소를 찾으시어 제철소를 전망성 있게 복구건설하며 강철과 강재를 더 많이 생산할 데 대한 과업과 방도를 밝혀 주시었다. 그리고 이듬해 11월에는 강선제강소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이곳 노동계급이 3개년계획수행에서 앞장에 서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그리하여 짧은 기간에 황해제철소 1호평로와 대형조강압연직장, 강선제강소 분괴압연직장, 김책제철소 1호해탄로 등이 복구되어 조업을 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계제작공업기지창설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주체 43(1954)년 4월 희천기계공장과 희천자동차부속품공장 지도일군 및 노동자협의회에서 기계제작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었으며 뒤이어 구성과 북중, 낙원을 비롯한 기계공장들과 건설장들을 찾으시고 각종 기계생산기지들을 구색이 맞게 꾸리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기 위하여 평양방직공장, 구성방직공장, 신의주방직공장, 청진방적공장을 비롯한 큰 규모의 경공업공장들을 복구신설하며 도처에 식료가공공장과 일용품공장들을 건설하여 경공업의 토대를 마련하도록 하시었다. 이와 함께 파괴된 농촌경리를 급속히 복구하며 평남관개1단계공사를 진행하여 관개면적을 늘이고 농기계와 화학비료생산기지들을 복구확장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인민들의 생활을 안전향상시키기 위하여 국가의 자금으로 학교와 살림집을 건설하도록 하시었으며 여러차례에 걸쳐 물건값을 낮추며 노동자, 사무원들의 생활비를 대폭 올리게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후시기를 농업협동화실현의 가장 적당한 시기로 보시고 농촌경리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시키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사상의 근본원리에 기초하여 농업협동화를 실현하는데서 결정적 조건은 농촌경리가 현대적 기술로 장비되었는가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농업협동화가 농민들자신의 생활적 요구로 나서고 있는가, 그것을 맡아 할 주체적 역량이 마련되어 있는가 하는데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밝히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업협동화운동에서 자원성의 원칙을 엄격히 지키면서 실물교육을 통하여 농민들을 교양하고 당과 국가의 지도와 방조를 강화하도록 하시었으며 빈농에 튼튼히 의거하고 중농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부농을 제한하고 점차적으로 개조하는 계급정책을 실시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협동조합의 형태와 규모, 생산수단의 통합방식도 농민들의 사상의식수준과 경제형편에 맞게 규정하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43(1954)년을 농업협동화운동의 경험적 단계로 설정하고 처음에 협동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빈농들과 농촌핵심들로 매개 군에 몇개씩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도록 하시었다. . . .

그리하여 농업협동화운동은 경험적 단계에서 이룩한 성과에 토대하여 주체 44(1955)년부터 대중적 단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업협동화기간 평안남도의 농촌경리부문만도 무려 100여차례나 현지지도하시었으며 주체 44(1955)년 11월에는 순안군 원하협동조합을 찾으시고 ≪나도 여기 조합원입니다.≫라고 하시며 함께 농사를 잘하여 조합을 발전시켜 나가자고 뜨겁게 고무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쌀은 곧 사회주의이다≫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농업협동화의 생활력을 높이 발양시켜 알곡생산을 늘이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농업협동화운동은 빠른 속도로 추진되어 주체 45(1956)년말에는 전체 농가호수의 80.9프로가 협동조합에 망라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업협동화와 함께 도시수공업과 자본주의적상공업을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추진시키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전부터 부분적으로 실시해 오던 수공업의 협동화에서 쌓은 경험에 기초하여 전후에 수공업자들로 생산협동조합을 광범히 조직하고 그에 대한 물질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강화하여 조직된 생산협동조합들을 공고히 하도록 하시었다.

결과 전후 수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는 급속히 추진되어 주체 45(1956)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끝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후 자본주의적상공업자들이 전쟁의 피해로 하여 수공업자들과 거의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조건에서 그들을 수탈하지 않고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할 데 대한 독창적인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본주의적 상공업자들을 자원성의 원칙에서 그들 자신의 의사에 따라 생산협동조합, 판매협동조합, 생산판매협동조합 등 여러 가지 협동경리에 망라시키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경리형태의 개조와 인간개조를 밀접히 결합시켜 모든 상공업자들을 사회주의근로자로 개조하며 그들을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에까지 데리고 갈 데 대한 정책을 실시하도록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에 대한 굳은 확신에 기초하여 수정주의, 대국주의자들과 사대주의, 교조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을 단호히 배격하시고 주체 44(1955)년 4월 우리 혁명의 성격과 과업에 관한 테제 ≪모든 힘을 조국의 통일독립과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건설을 위하여≫를 발표하시었다. . . .

남의 것을 통채로 삼키고 기계적으로 본따는 데 버릇되어 온 사대주의, 교조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은 전후 우리 당의 새롭고 독창적인 노선과 방침을 덮어놓고 시비하고 반대하면서 다른 나라의 것만 내세우려고 하였다. 이 시기 대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에 바르샤바조약기구와 쎄브에 들라고 압력을 가하면서 저들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게 하려고 책동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상사업에서 주체를 세우는데 선차적 의의를 부여하시고 주체 44(1955)년 12월 당선전선동일군들앞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에서 우리 당 사상사업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강령적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 . .

≪우리 당 사상사업에서 주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다른 나라의 혁명도 아닌 바로 조선혁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조선혁명이야말로 우리 당 사상사업의 주체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상사업을 반드시 조선혁명의 이익에 복종시켜야 합니다.≫(≪김일성전집≫ 제18권) . . .

주체 44(1955)년은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반대하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우리 당의 일관한 투쟁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되었다. 이때부터 교조주의를 반대하는 우리 당의 투쟁은 현대수정주의를 반대하는 투쟁과 결합되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상분야에서 주체를 세우는 것과 함께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철저히 관철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후인민경제복구사업이 끝나가고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에서 결정적인 승리가 이룩되고 있던 시기 당과 인민앞에 새로운 투쟁강령을 제시하기 위하여 주체 45(1956)년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조선노동당 제3차대회를 소집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당의 자주적이며 원칙적인 대외정책을 다시금 천명하시었으며 사회주의기초건설강령을 짧은 기간에 완성하기 위한 인민경제발전 5개년계획(주체 46(1957)-주체 50(1961))의 투쟁목표를 제시하시었다. . . .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의 ≪반공≫, ≪북진≫소동과 대국주의자들의 압력이 우심해 지고 여러 가지 경제적 난관으로 하여 혁명앞에 어렵고 복잡한 정세가 조성되자 당안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이 머리를 쳐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5(1956)년 8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당에 정면으로 공격하여 나선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을 폭로분쇄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시었다. . . .

전원회의에서는 사회주의나라들을 방문한 정부대표단의 사업총화와 우리 당의 당면한 몇가지 과업에 대한 문제, 인민보건사업을 개선강화할 데 대한 문제가 토의되었는데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은 토의안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허황한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당을 공격하여 나섰다.

항일혁명투사들을 비롯한 회의참가자들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발악적인 도전에 대하여 결정적 타격을 가하였다.

전원회의에서 폭로분쇄된 종파는 단순한 종파인 것이 아니라 미제와 결탁하여 우리 당과 정부를 전복하려고 한 극악한 반당반혁명도당이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원회의에서 앞으로 당안에서 종파활동을 무조건 금지하여야 하며 그것이 어떠한 구실밑에 감행되든지 간에 또 극히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단호히 짓부셔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역사적 교훈은 종파분자들의 더러운 종파적 습성은 죽을 때까지도 고쳐지지 않으며 나중에는 당과 혁명을 배반하고 반혁명의 길로 떨어지고 만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45(1956)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사회주의건설에서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킬 데 대한 혁명적 방침을 제시하시면서 ≪증산하고 절약하여 5개년계획을 기한 전에 넘쳐 완수하자!≫라는 전투적 구호를 내놓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5(1956)년 12월말 강선제강소를 찾으시어 지도일군 및 모범노동자들의 협의회를 소집하시었으며 노동자들을 모이게 하시고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의 기본정신과 국제국내정세에 대하여, 나라가 처한 어려운 형편에 대하여 흉금을 터놓고 그대로 알려 주시면서 우리는 노동계급과 인민들밖에는 믿을 데가 없다고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표시하시었다. 그러시고는 지금 형편에서 강재를 계획보다 1만톤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 수 있다고 하시면서 증산예비를 찾을 방도를 밝혀 주시었다. 주체 46(1957)년 1월초에는 황해제철소를 찾으신 데 이어 각지의 공장, 기업소, 농촌, 건설장, 수산사업소 등을 끊임없이 현지지도하시면서 근로자들을 천리마대진군에로 이끄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해 4월과 10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여시고 뒤떨어진 수산부문과 건설부문을 추켜세우기 위한 대책을 세우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는 구호밑에 우리의 노동계급과 근로자들은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내부예비를 적극 찾아내고 최대한의 증산과 절약투쟁을 힘있게 벌여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였다.

강선의 노동계급은 강철로 위대한 수령님을 옹호보위하고 받들려는 불타는 일념으로 투쟁하여 공칭능력을 타파하고 6만톤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톤의 강편을 밀어내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강선에서 타오른 대고조의 봉화는 삽시에 전국에 타번져 갔다. 김책제철소 노동자들은 19만톤의 능력을 가진 설비로 27만톤의 선철을 뽑아 냈으며 황철의 노동계급은 한해도 못되는 사이에 자체의 힘과 기술로 대형용광로를 일떠세웠다.

주체 46(1957)년에 공업생산은 144프로라는 비약적인 속도로 장성하고 알곡생산계획은 112프로로 넘쳐 수행되었다.

혁명적 대고조속에서 적들의 ≪반공≫공세와 ≪북진≫소동도,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온갖 음모책동도 다 분쇄되었으며 우리를 비방하던 수정주의자들, 대국주의자들도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역경이 순경으로, 화가 복으로 전환되었고 사회주의건설의 대고조속에 천리마운동이 시작되게 되었다.

역사적인 당중앙위원회 12월전원회의를 계기로 발단된 천리마운동은 근로인민대중의 혁명적 열의와 창조력을 높이 발양시켜 경제와 문화, 사상과 도덕의 모든 분야에서 온갖 낡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창조하며 사회주의건설을 최대한으로 다그치기 위한 전인민적 운동이었다.

천리마운동은 사회주의건설에서 우리 당의 총노선으로 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이 일어나고 있던 주체 47(1958)년 3월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소집하시었다.

당대표자회의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경제발전 제1차 5개년계획에 관한 문제, 당의 통일과 단결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한 문제 등을 토의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6(1957)년 7월 도, 시, 군 당일군들과 당조직원들앞에서 하신 연설 ≪당단체를 튼튼히 꾸리며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할 데 대하여≫이듬해 3월 도, 시, 군 당위원장들과 인민위원회 위원장들앞에서 하신 연설 ≪당사업을 개선할 데 대하여≫를 비롯한 많은 노작들에서 당사업의 기본을 사람과의 사업으로 규정하시고 당단체들이 당내부사업과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강화하며 당일군들이 행정식, 명령식과 같은 다스리는 방법, 내리먹이는 방법을 철저히 없애고 설복과 교양을 기본방법으로 틀어쥐고 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당사업의 본질과 기본내용, 당사업방법 등 당사업이론을 새롭게 밝히시었다. . . .

혁명과 건설에 대한 당의 영도를 결정적으로 강화하기 위하여 당위원회를 해당 단위의 최고지도기관으로 규정하시고 국가, 경제, 문화기관, 근로단체 등 모든 기관, 모든 조직들이 예외없이 해당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밑에 모든 사업을 조직진행하는 체계를 세우게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적인 사업방법을 확립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일군들속에서 나타나는 관료주의적 사업방법을 극복하고 혁명적 사업방법을 확립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전에 진행하던 당검열사업을 당집중지도사업이라고 그 이름부터 고치고 지도성원들이 지난날처럼 결함보따리를 들고 다닐 것이 아니라 대중자신이 스스로 결함을 찾고 고치게 도와주고 배워주도록 하시었다. 이것은 새로운 하부지도방법의 창조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7(1958)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역사적인 결론 ≪인민군대내 당정치사업을 개선강화하기 위한 과업≫에서 인민군대내 당정치사업의 방향을 뚜렷이 밝히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내 당정치사업을 개선강화하기 위하여 인민군대안에 전반적으로 당위원회제도를 내오고 각급 당위원회들을 조직할 데 대하여, 인민군대내 당위원회들이 정치기관들의 사업을 지도하며 간부들의 당생활에 대한 지도와 통제를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군인들에게 인민군대는 노동당의 군대이며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을 계승한 혁명적 무장력이라는 것을 옳게 인식시키며 군인들을 사회주의애국주의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킬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 . .

주체 46(1957)년 8월에 진행된 제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의 빛나는 승리는 엄혹한 난국을 타개하고 우리 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 올린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과 신뢰의 표시였으며 인민정권을 강화하는데서 역사적인 계기로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최고인민회의 제2기 제1차회의에서 또다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국수상으로 높이 추대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46(1957)년 7월과 9월에 발표하신 고전적 노작 ≪새 환경에 맞게 군인민위원회사업을 개선강화할 데 대하여≫≪사회주의건설에서 인민정권의 당면과업에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인민위원회의 사업체계와 사업방법을 고치며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는데서 인민정권기관들앞에 나서는 당면과업들을 명확히 밝혀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혁명과의 투쟁에서 사법, 검찰, 내무기관들의 역할을 더욱 높이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면서 주체 47(1958)년 3월 내무일군 열성자회의에서 하신 연설과 4월 전국 사법, 검찰 일군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 ≪우리 당 사법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에서 법의 계급적 성격을 거부해 나선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수정주의적 궤변의 부당성과 해독성을 폭로하시었으며 우리의 사법, 검찰, 내무 기관들이 독재의 기능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 . .

우리 나라에서 농업협동화운동은 3차당대회이후 완성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 . .

주체 47(1958)년 8월 우리 나라에서는 농업협동화가 승리적으로 완수되었다. 이것은 우리 나라 농촌에서 일어난 위대한 혁명이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촌경리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끝난 데 이어 협동조합들을 이단위로 통합하여 더욱 발전되고 공고화된 사회주의적 협동경리로 강화발전시키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개인수공업과 자본주의적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도 농업협동화의 완성과 거의 때를 같이 하여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 결과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4~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빛나게 수행되어 공화국북반부에는 착취와 압박이 없는 가장 선진적인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되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47(1958)년 9월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을 승리에로 영도하시어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위업수행에 쌓아 올리신 불멸의 업적으로 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력영웅칭호를 받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끝난 조건에서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를 하루빨리 쌓기 위하여 사회주의건설의 대고조를 더욱 높이며 인민경제의 기술적개건을 다그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밀고 나가시었다.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를 축성하는 사업은 매우 복잡한 환경속에서 진행되었다. 대국주의자들은 기계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중공업을 창설할 데 대한 우리 당의 노선을 집요하게 반대하였으며 여기에 사대주의자들이 편승하여 나섰다. 소극성과 보수주의, 기술신비주의가 또한 우리의 전진운동을 방해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자체의 힘으로 자립적 공업을 창설할 데 대한 주체적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시고 주체 47(1958)년에 하신 역사적인 연설 ≪시, 군 인민위원회의 당면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 ≪사회주의건설에서 소극성과 보수주의를 반대하여≫,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앙양을 위하여 나서는 몇가지 문제≫들에서 소극성과 보수주의, 기술신비주의를 타파하고 대담하게 생각하고 대담하게 실천하면서 사회주의건설의 고조를 계속 견지하며 인민경제의 기술적 개건을 다그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었으며 당중앙위원회 9월전원회의에서 달리는 천리마에 박차를 가하여 사회주의건설의 대고조를 더욱 높여 나갈 것을 전체 당원들에게 호소하는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보내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철과 기계는 공업의 왕이다!≫라는 구호밑에 공업화와 기술혁명에서 결정적 의의를 가지는 금속공업과 기계제작공업발전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시었다. . . .

기계공업부문의 노동계급은 설계도면도 전문생산설비도 없이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소극분자, 보수주의자, 기술신비주의자들과 대국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을 짓부시면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우리 나라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주체 47(1958)년 11월≪천리마≫호 뜨락또르≪승리-58≫화물자동차, ≪천리마≫호 굴착기를, 12월에는 ≪붉은 별58≫불도젤을, 다음해 9월10월에는 8메터타닝반3천톤프레스를 생산하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8(1959)년 3월 경성군의 한 아마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이곳 노동자들이 자체로 공작기계를 만들어 쓰는 것을 보시고 이 한점의 불꽃을 귀중히 여기시어 이해 5월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의 봉화를 지펴 주시었다. 그리하여 단 한해사이에 전국적으로 계획외에 1만 3천여대의 공작기계를 생산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도록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대규모의 발전소들과 중소규모의 발전소들이 도처에 일떠서고 살림집을 14분에 한세대씩 조립하는 ≪평양속도≫가 창조되었으며 7,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으로 2만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청년건설자들은 3~4년이 걸려야 한다던 해주-하성사이 200여리의 넓은 철길부설공사를 단 75일동안에 끝내는 위훈을 세웠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경공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주체 47(1958)년 6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큰 규모의 중앙공업과 중소규모의 지방공업을 병진시킬 데 대한 독창적인 방침을 제시하시고 전군중적 운동으로 매개 시, 군에 한개 이상의 지방산업공장들을 일떠세우도록 하심으로써 불과 3개월동안에 1,000여개의 지방산업공장이 건설되고 한해 남짓한 기간에 그것이 2,000여개로 늘어나 인민소비품에 대한 수요를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촌경리의 기술적 개조를 위하여 수리화를 앞세우면서 기계화, 전기화, 화학화를 실현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힘있게 밀고 나가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모든 힘을 100만정보의 관개면적확장에로!≫라는 전투적 구호를 제시하시고 전인민적 운동으로 밭관개체계를 세우며 논관개면적을 늘이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여 짧은 기간에 수리화를 기본적으로 끝내도록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건설의 대고조를 더욱 높이며 인민경제의 기술적 개건사업을 밀고 나가시면서 당원들과 근로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대오를 튼튼히 꾸리며 혁명과 건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계승발전시키며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혁명전통교양사업을 강화하도록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기 위하여 주체 47(1958)년 5월에 몸소 보천보와 삼지연을 비롯한 양강도안의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들을 찾으시고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었으며 이해 11월에는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를 여시고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당에 혁명전통교양체계를 세우고 혁명전적지답사단을 현지에 파견하여 항일혁명투쟁시기의 귀중한 사적자료들과 사적물들을 전면적으로 발굴, 수집, 정리하게 하시었으며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 혁명박물관과 혁명사적관, ≪조선노동당역사연구실≫들을 혁명전통교양의 거점으로 잘 꾸리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항일혁명투쟁참가자들의 회상기항일혁명투쟁시기의 경험들을 담은 도서들을 대대적으로 출판하며 혁명전통을 주제로 하는 문학예술작품들을 널리 창작보급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47(1958)년 11월 고전적 노작 ≪공산주의교양에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공산주의교양을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 문제들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밝히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로자들에 대한 공산주의교양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에 비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우월성새 것은 반드시 승리하고 낡은 것은 멸망한다는 진리를 인식시키는 것이며 집단주의정신, 사회주의적애국주의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정신, 노동을 사랑하는 정신, 계속혁명의 사상, 계속혁신, 계속 전진하는 정신으로 무장시키는 것이라고 가르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산주의교양에서 기본은 계급교양이라고 하시면서 공산주의교양을 강화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밝히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산주의교양을 당에 대한 충실성교양, 당정책교양, 혁명전통교양과 밀접히 결부시키고 긍정적 모범에 의한 감화교양을 기본방법으로 하며 생산현장을 거점으로 하여 진행하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인간개조사업을 다그치며 사회주의건설의 고조를 더욱 높이기 위하여 천리마운동을 보다 조직화된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심화발전시키도록 하시고 주체 48(1959)년 2월 강선의 노동계급을 찾으시어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첫 봉화를 지펴 주시었다. . . .

천리마작업반운동은 모든 근로자들을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교양개조하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공산주의학교로, 대중적인 사상개조운동으로 되었으며 인민경제발전을 힘있게 추동하는 대중적 혁신운동으로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하신 혁명적 조치에 의하여 교육부문에서는 주체 45(1956)년에 전반적 초등의무교육제가, 주체 47(1958)년에는 전반적 중등의무교육제가 실시되었으며 주체 48(1959)년부터는 각급 학교들에서 수업료가 완전히 폐지되어 전반적 무료교육이 철저히 보장되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공장들에 일하면서 배우는 공장대학, 공장고등기술학교들이 창설되어 운영되게 되었다.

보건분야에서 빠른 전진이 이룩되고 주체적인 비날론연구에 성공한 것을 비롯하여 과학연구사업에서 자랑찬 성과들이 이룩되었으며 천리마시대에 맞는 혁명적 문학예술이 활짝 꽃 펴나게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48(1959)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새 환경에 맞게 사업체계와 사업방법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체 49(1960)년 2월 청산리와 강서군에 나가시어 보름동안이나 현지지도를 하시었다. . . .

가정방문을 통하여 조합의 일반적 실태를 요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초급일군들과 조합원들을 만나 협의회와 담화를 통하여 이당과 관리위원회 사업에 대한 요해를 심화시키시었으며 군당위원회사업을 깊이 요해하기 위하여 당, 행정일군, 핵심당원 60여명과 담화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청산리강서군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새로운 혁명적인 사업체계, 사업방법을 세워 주시고 몸소 그 실천적 모범을 보여 주심으로써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이 창조되었다.

≪청산리정신과 청산리방법은 우리 당의 전통으로 되어 있는 혁명적 군중노선을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현실에 맞게 구체화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김일성저작집≫ 제19권) . . .

청산리정신은 인민대중의 이익을 옹호하며 그들의 힘에 의거할 데 대한 우리 당의 혁명적 군중노선의 기본요구를 구현하고 있는 대중지도사상이다. 청산리방법은 위가 아래를 도와 주고 모든 사업에서 정치사업을 앞세우며 현실에 들어가 실정을 깊이 알아보고 문제해결의 옳은 방도를 찾으며 사업에서 중심고리를 찾아내고 거기에 힘을 집중하며 일반적 지도와 개별적 지도를 옳게 결합하는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대중지도방법이다. . . .

5개년계획이 수행된 결과 북반부에서는 사회주의기초건설의 역사적과업이 성과적으로 수행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는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와 자립적 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를 가진 사회주의공업농업국가로 전변되었으며 전체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이 새로운 사회주의적기초위에서 보다 강화되고 국가사회제도가 가일층 공고화되었다. . . .

남조선 혁명가들과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 주신 투쟁방침을 확고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온갖 난관과 애로를 이겨내면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게 벌였으며 주체 49(1960)년 4월에는 대중적인 인민봉기를 일으켜 이승만괴뢰정권을 거꾸러 뜨렸다. . . .

재일동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주체적인 노선전환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여 주체 44(1955)년 5월 자기들의 진정한 조직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를 결성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엄 높은 해외공민단체이며 첫 주체형의 해외교포조직인 총련의 결성은 해외교포운동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영도의 빛나는 결실이었으며 재일조선인운동과 재일동포들의 생활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온 역사적 사변이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민족교육사업을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한 중요한 사업으로 보시고 주체 46(1957)년 4월에는 제1차 5개년계획의 첫해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그 어려운속에서도 재일동포자녀들에게 해마다 막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줄데 대한 뜨거운 동포애적 조치를 취하시었으며 주체 49(1960)년 1월 역사적 노작 ≪재일조선인교육사업방향에 대하여≫에서 총련의 민족교육이 나아갈 길을 뚜렷이 밝혀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동적이며 진공적인 외교전을 벌이시어 주체 48(1959)년 12월부터 재일조선공민들의 귀국을 실현시켜 주시었으며 귀국동포들이 사회주의조국에서 행복한 새 생활을 마음껏 누리도록 온갖 조건을 마련해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45(1956)년 6월부터 7월까지의 기간에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몽골을 방문하시면서 수정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역량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통일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대외활동을 적극 벌이시었으며 주체 46(1957)년 1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사회주의나라 공산당 및 노동당대표들의 회의에 몸소 참석하시어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세계혁명발전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지니신 높은 국제적 권위로 하여 우리 나라는 주체 49(1960)년말에 이르러 40여개의 신생독립국가들과 경제관계를 맺고 70여개 나라들과 문화교류를 진행하게 되었다.

9. 주체 50(1961). 1 - 주체 59(1970). 1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혁명과 세계혁명발전을 위한 우리 당의 새로운 투쟁노선과 전략전술적 방침을 천명하시기 위하여 주체 50(1961)년 9월 11일부터 18일까지 조선노동당 제4차대회를 소집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경제발전 제1차 7개년계획(주체 50(1961)-주체 56(1967))의 웅대한 과업을 밝히시었다.

≪7개년계획의 기본과업은 승리한 사회주의제도에 의거하여 전면적 기술개건과 문화혁명을 수행하며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데 있습니다.≫(≪김일성전집≫ 제27권)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 수 있는 혁명적 당을 조직하며 미제를 몰아내고 남조선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할 데 대하여서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남조선에서 반미구국통일전선을 형성하며 남조선의 애국적 민주역량과 북조선의 사회주의역량과의 단합을 실현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 . .

조선노동당 제4차대회사회주의기초건설의 완성을 총화한 승리자의 대회, 역사적으로 내려오던 종파주의를 극복하고 조선공산주의운동의 통일을 확고히 실현한 단결의 대회였으며 우리 당과 혁명 발전에서 새로운 단계의 이정표를 제시한 역사적인 대회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50(1961)년말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2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을 철저히 구현하여 인민경제에 대한 지도관리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데 대한 강령적 과업을 제시하시고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내오시기 위하여 10여일간에 걸쳐 대안전기공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대안전기공장의 발전기직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매 직장을 돌아보시면서 공장의 전반적 실태를 종합적으로 요해하시었으며 직장장들과 수많은 노동자들과 담화하시었다. 계속하여 노동자들의 합숙과 식당, 가정까지 일일이 돌아보시고 나서 공장 당 및 행정 일군들의 협의회를 소집하시고 공장관리운영정형을 더 깊이 요해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50(1961)년 12월중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대안전기공장에 대한 지도사업정형을 총화하시고 이미 무르익혀 오신 구상에 따라 새로운 공업관리체계를 내올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그리고 대안전기공장 당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자본주의적 잔재를 많이 가지고 있던 종래의 지배인유일관리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공업관리체계인 공장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체계통일적이며 집중적인 생산지도체계, 위에서 아래에 내려다 주는 자재공급체계, 정연한 후방공급체계를 세우는 혁명적인 조치를 취하시었다.

≪대안의 사업체계란 한마디로 말하여 경제관리에서 우리 당의 혁명적 군중노선을 구현한 사업체계입니다.≫(≪김일성저작집≫ 제17권)

대안의 사업체계는 공장, 기업소들이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밑에 모든 경영활동을 진행하며 정치사업을 앞세우고 생산자대중을 발동하여 제기된 경제과업을 수행하며 우가 아래를 책임적으로 도와주며 경제를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사회주의제도의 본성에 맞는 가장 우월한 경제관리체계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대안의 사업체계는 당의 유일적영도와 혁명적 군중노선을 결합시켜 인민대중으로 하여금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사업체계로서 사회주의국가활동의 근본원리를 구현하고있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사회주의경제에 대한 지도관리체계로서 뿐 아니라 사회주의사회 전반을 관리운영해나가는 정치방식으로서의 보편적 의의를 가진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50(1961)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새로운 공업관리체계와 함께 새로운 농업지도체계를 세울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신 데 이어 그 시범단위를 꾸리기 위하여 평안남도 숙천군을 현지지도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안의 농업부문의 실태를 전면적으로 요해하시고 군인민위원회로부터 농촌경리의 지도기능을 떼내어 전문적인 농업지도기관인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를 새로 내오시었으며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가 협동농장들을 지도하는 기능농촌경리에 대한 물질기술적 방조를 실현하는 기능을 직접 수행하게 하시었다. 그리고 숙천군에 내오신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를 전국의 시, 군들에 일반화하는 한편 도와 중앙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사회주의농업지도체계를 세우도록 . . .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제1차 7개년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짐으로써 새 전망계획의 첫 2년동안에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는 커다란 성과가 이룩되어 당 제4차대회가 제시한 사회주의의 높은 봉우리를 점령할 데 대한 과업을 빛나게 수행할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열리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 나라안팎의 정세는 더욱 첨예화되고 긴장해 졌다. 미제국주의자들은 꾸바공화국을 반대하는 까리브해위기를 조성하고 베트남에서 침략전쟁을 확대하였으며 남조선에서 새 전쟁준비에 미쳐 날뛰면서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침략전쟁도발책동을 더욱 강화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제의 격화되는 새 전쟁 도발책동에 대처하여 주체 51(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새로운 전략적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원회의에서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이라는 전투적 구호를 제시하시고 전체 인민이 당의 새 전략적 방침 관철에 적극 떨쳐나설 것을 호소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원회의후 국방건설에 큰 힘을 넣도록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간부화, 현대화를 위하여 군대안에서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하여 전사로부터 장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한등급이상의 높은 직무를 담당수행할수 있게 군인들을 준비시키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모든 군인들이 현대적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로 튼튼히 무장하고 주체의 전법과 현대적 군사과학과 군사기술을 충분히 소유하며 우리 나라의 실정과 공업발전수준에 맞게 무기를 더욱 현대화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52(1963)년 2월 전연에 있는 대덕산초소의 인민군구분대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일당백≫의 전투적 구호를 제시하시고 모든 군인들이 정치군사적 준비를 튼튼히 갖추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민무장화와 전국의 요새화를 위하여 전체 인민이 군사를 성실히 배워 현대전에 필요한 군사지식과 전법들을 익히도록 하시었으며 나라의 모든 지역에 튼튼한 방위시설들을 축성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53(1964)년 2월 불후의 고전적 노작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발표하시어 사회주의하에서의 농촌문제의 본질과 내용, 그 종국적 해결을 위한 기본원칙과 방도를 전면적으로 밝히시었다. . . .

≪첫째로, 농촌에서 기술혁명과 문화혁명, 사상혁명을 철저히 수행하여야 하며, 둘째로, 농민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도, 농업에 대한 공업의 방조, 농촌에 대한 도시의 지원을 백방으로 강화하여야 하며, 셋째로, 농촌경리에 대한 지도와 관리를 공업의 선진적인 기업관리수준에 끊임없이 접근시키며 전인민적 소유와 협동적 소유의 연계를 강화하고 협동적 소유를 전인민적 소유에 부단히 접근시켜야 한다.≫(≪김일성저작집≫ 제18권) . . .

농촌을 물질기술적으로 강화하기 위하여 주체 53(1964)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3기 제3차회의에서 주체 53(1964)년부터 주체 55(1966)년까지 농업현물세를 연차별로 완전히 폐지하며 농촌의 기본건설과 살림집건설을 국가자금으로 진행하며 농촌에 중요한 생산설비와 농기계를 국가부담으로 공급할 데 대한 역사적인 법령을 채택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53(1964)년 6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9차전원회의에서 하신 결론 ≪근로단체사업을 개선강화할 데 대하여≫와 주체 57(1968)년 10월 직맹, 농근맹, 사로청, 여맹 중앙위원회 일군들앞에서 하신 연설 ≪근로단체들의 역할을 더욱 높일 데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사회주의하에서의 근로단체사업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심오한 해명을 주시었다.

≪근로단체들은 광범한 군중에 대한 사상교양단체이며 당의 외곽단체입니다.≫(≪김일성저작집≫ 제23권)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53(1964)년 5월 민청 제5차대회에서 변화된 현실의 요구에 맞게 민주청년동맹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으로 개편하도록 하시고 대회에서 하신 연설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의 과업에 대하여≫에서 청년동맹의 각급 단체들을 튼튼히 꾸리고 동맹조직생활을 강화하며 청년들속에서 정치사상사업을 힘있게 벌여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청년동맹과 청년들의 역할을 더욱 높일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9차전원회의에서 지난 날 직업동맹이 공장측과 단체계약을 맺고 기업관리를 감독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하던 낡은 틀을 마스고 완전한 사상교양단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하시었으며 이에 맞게 새로운 사업체계를 세우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모든 농민들이 다 사회주의근로자로 된 현실에 맞게 개인농 때의 농민조직인 농민동맹과 다른 새로운 농업근로자동맹을 조직할 데 대한 혁명적 조치를 취하시었다. 그리하여 주체 54(1965)년 3월 농민동맹이 해체되고 농업근로자들의 새로운 사회주의적 대중정치조직인 농업근로자동맹이 창립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성동맹을 조직적으로 강화하고 그 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들도 세우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53(1964)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0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지도일군들의 당성, 계급성, 인민성을 높이며 그들의 사상관점과 사업태도를 바로 세우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밝혀 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민족어발전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시고 주체 53(1964)년 1월과 주체 55(1966)년 5월 언어학자들과 하신 담화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가지 문제≫, ≪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 나갈데 대하여≫에서 우리 인민이 자기의 훌륭한 말과 글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우리 말을 정확하게 쓰도록 할 뿐 아니라 우리 나라의 고유한 말을 기본으로 하여 다듬고 발전시킬 데 대하여 그리고 민족적인 특성을 살리는 동시에 세계언어발전의 공통적 방향도 고려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문학예술발전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주체 53(1964)년 11월 문학예술부문 일군들앞에서 하신 연설 ≪혁명적 문학예술을 창작할 데 대하여≫에서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을 개화발전시킬 데 대한 강령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었으며 12월에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 나가시어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를 여시고 혁명교양, 계급교양에 이바지할 혁명적 영화를 더 많이 만들어 낼 데 대한 방향과 방도를 밝혀 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교육사업발전을 위하여 주체 53(1964)년 3월에 전국근로자학교 및 근로자중학교강사열성자회의에 참석하시어 성인교육사업을 강화하여 근로자들의 일반지식수준과 기술문화수준을 높일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었으며 주체 56(1967)년부터 전반적9년제기술의무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모든 청소년들을 전면적으로 발전된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키워 낼수 있게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60년대중엽의 복잡한 국제정세를 정확히 분석평가하며 당의 대내외활동방침을 제시하시기 위하여 주체 55(1966)년 10월 조선노동당대표자회를 소집하시었다. . . .

≪오늘 세계혁명의 기본전략은 미제에 주되는 창끝을 돌리는데 있습니다.≫(≪김일성저작집≫ 제20권)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좌우경기회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나라들의 통일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단결을 이룩하기 위하여 좌우경기회주의를 반대하여 두 전선에서 투쟁하되 기회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좌우경적 오류를 범하여서는 안되며 공산당, 노동당들사이의 의견상이는 어디까지나 단결의 염원에서 출발하여 사상투쟁의 방법으로 해결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그리고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단결을 실현하기 위하여 반제공동행동과 반제통일전선을 이룩하며 공산당, 노동당들이 자주성을 견지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 . .

당대표자회는 혁명대오를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꾸리며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건설의 전반사업을 개편하고 국방건설을 더욱 강화하도록 하였으며 제1차 7개년계획을 3년동안 연기하기로 결정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56(1967)년 5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부르조아분자들, 수정주의분자들의 책동을 폭로분쇄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시었으며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뚜렷이 밝히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안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주체 58(1969)년 1월에 인민군당위원회 제4기 제4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군벌관료주의를 반대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시었으며 그 여독을 철저히 뿌리 뽑으며 군인들을 당의 유일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기 위한 사업에서 군대안의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도록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대오를 튼튼히 꾸리기 위하여 온 사회를 혁명화, 노동계급화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56(1967)년 5월에 발표하신 고전적 노작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에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독재 문제, 사회주의의 완전승리와 종국적 승리에 관한 문제들에 전면적이고도 심오한 과학이론적 해명을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건설을 전진시켜 중산층을 우리편에 완전히 쟁취하게 될 때, 노동계급과 농민의 차이를 없애고 무계급사회를 건설하게 될 때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의 임무가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적대분자들을 진압하는 계급투쟁의 형식과 함께 사상혁명을 중요내용으로 하는 계급투쟁의 기본형식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밝히시고 사회주의국가는 독재와 민주주의, 계급투쟁과 인민대중의 통일단결을 강화하는 사업을 옳게 결합시켜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불길을 지펴 주시기 위하여 주체 56(1967)년 6월 함경남도 함흥시 용성기계공장을 찾으시고 공장당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노선을 관철하며 사회주의공업화를 완성하기 위하여서는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계속 견지하며 주체 46(1957)년에 천리마운동을 벌이던 때와 같이 다시한번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용성의 노동계급이 이 투쟁의 앞장에 설 데 대한 크나큰 믿음을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57(1968)년 4월에 전국청년총동원대회를 소집하시고 혈기왕성하고 용감한 청년들이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모든 초소에서 선봉대가 되도록 고무하시었다.

그리고 5월에는 제2차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를 소집하시고 천리마작업반운동의 중심과업은 사람과의 사업, 설비, 자재와의 사업, 책과의 사업을 잘하는 것, 다시 말하여 사상혁명, 기술혁명, 문화혁명을 잘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 운동을 더욱 심화발전시킬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우리 인민은 국방건설에 큰 힘을 넣으면서도 주체 56(1967)년에 공업총생산액을 전해보다 17프로 더 높였으며 유례 없는 큰물피해를 이겨 내고 알곡생산을 전해보다 16프로나 더 늘이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57(1968)년 미제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우리 나라 령해에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감행하다가 영웅적 조선인민군 해군에 의하여 나포되자 미제가 이른바 ≪보복≫을 운운하면서 전쟁소동을 미친듯이 벌이고 있을 때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적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천명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명하신 우리 당의 강경하고도 단호한 입장에 겁을 먹은 미제침략자들은 하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저들의 침략행위에 대하여 사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인민군대는 그후에도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EC-121≫사건을 비롯하여 적들이 우리 나라에 대한 정탐파괴행위를 감행할 때마다 단호한 징벌을 가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가 일어 나고 있던 주체 56(1967)년 12월에 최고인민회의 제4기 제1차회의를 소집하시고 공화국정부정강 ≪국가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자주, 자립, 자위의 혁명정신을 더욱 철저히 구현하자≫를 발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58(1969)년 3월 고전적 노작 ≪사회주의경제의 몇가지 이론문제에 대하여≫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에서 절실하게 나선 중요한 경제이론적문제들에 대하여 과학적인 해명을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사회에서 생산력발전을 힘있게 추동하는 결정적 요인이 사람들의 혁명적 열의를 높이는데 있다는 것을 우리 나라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실천적 경험에 기초하여 과학적으로 논증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사회에서 상품생산이 있게 되는 조건과 생산수단이 상품인 경우와 상품이 아닌 경우를 명확히 밝히시고 국가기업소들사이에 오고 가는 생산수단은 상품적 형태를 띠며 가치법칙도 형태적으로 작용한다는데 대하여 명철한 이론적 해명을 주시었다. 그리고 사회주의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생산과 유통분야에서 가치형태와 상업적 형태를 옳게 이용하기 위한 방도, 상품생산과 유통령역에서 가치법칙을 옳게 적용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도 새롭게 밝히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사회에서 농민시장이 있게 되는 근거와 그것을 없애기 위한 방도를 전면적으로 밝히시었으며 상품유통의 조락과 사회주의상업으로부터 공급제에로의 이행문제를 새롭게 제기하시고 그 합법칙적 과정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시었다. . . .

주체 46(1957)년부터 주체 59(1970)년에 이르는 공업화의 전기간에 거쳐 공업생산은 해마다 평균 19.1프로의 높은 속도로 장성하였다. 공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공업과 농업 총생산액에서 공업의 몫은 주체 45(1956)년에 34프로이던 것이 주체 58(1969)년에는 74프로를 차지하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자본주의나라들이 옹근 한세기 지어는 몇세기를 거쳐 수행한 공업화의 어렵고 복잡한 과업을 우리 인민은 불과 1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수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1960년대에 급변하는 남조선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시고 주체 53(196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8차전원회의에서 미제를 몰아 내고 나라의 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주체적 혁명역량북반부의 혁명역량남조선의 혁명역량을 튼튼히 꾸리며 국제혁명역량과의 연대성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혁명적 당창건방침을 높이 받들고 남조선혁명가들은 지하혁명조직을 뭇고 당의 지도핵심을 키운 데 토대하여 주체 53(1964)년 3월 서울에서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 .

남조선혁명가들은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주체 58(1969)년 8월 통일혁명당 중앙위원회를 결성하고 당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다.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통일혁명당의 창건은 남조선에서 혁명적 당을 건설할 데 대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방침의 빛나는 실현이었으며 남조선 혁명가들과 인민들의 장기간에 걸친 피어린 투쟁의 고귀한 결실이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재일조선인운동을 탄압하려는 일본반동당국의 책동을 단호히 폭로규탄하도록 하시는 한편 주체 52(1963)년 10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법≫을 발포하게 하시어 재일동포들에게 공화국공민으로서의 지위를 법적으로 확고히 보장하여 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55(1966)년 당대표자회에서 하신 보고와 주체 56(1967)년 8월과 이듬해 10월에 발표하신 고전적 노작 ≪반제반미투쟁을 강화하자≫, ≪아세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들의 위대한 반제혁명위업은 필승불패이다≫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좌우경기회주의를 반대하고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사회주의나라들의 통일단결을 이룩하며 반제반미투쟁과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의 앙양을 위한 과학적인 전략전술적 방침을 전면적으로 천명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나라들과 공산당 및 노동당들의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선차적 의의를 부여하시고 사회주의나라들과의 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비롯하여 여러 협정을 체결하고 호상 왕래와 접촉을 강화하여 공동보조를 이룩해 나가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원칙에서 미제와 직접 맞서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쿠바와 베트남 그리고 아랍나라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반제반미투쟁에서 출판, 언론계의 역할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주체 58(1969)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미제국주의침략을 반대하여 투쟁하는 전세계 기자들의 과업에 대한 국제회의에 참석하시어 반제반미투쟁에서 세계 진보적 기자들과 언론인들앞에 나서는 과업을 밝혀 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신흥세력나라들과의 정치, 경제, 문화적 연계를 강화할 데 대한 대외활동방침을 제시하시었으며 친히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시고 반둥회의 10돌 기념행사에 참석하시어 신흥세력나라들과의 전투적 단결과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는데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시었다. . . .

10. 주체 59(1970). 11 - 주체 69(1980). 10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59(1970)년 11월 2일부터 13일까지 조선노동당 제5차대회를 지도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에서 당중앙위원히 사업총화보고를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보고에서 총결기간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빛나는 성과들을 전면적으로 총화하시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여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더욱 공고발전시키며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새로운 투쟁과업들을 제시하시었다. . . .

≪사회주의경제건설분야에서 6개년계획의 기본과업은 공업화의 성과를 공고발전시키며 기술혁명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전진시켜 사회주의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더욱 튼튼히 하며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근로자들을 힘든 노동에서 해방하는 것입니다.≫(≪김일성저작집≫ 제25권)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된 근로자들을 어렵고 힘든 일에서까지 해방할 수 있게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기술혁신운동을 널리 벌여 중노동과 경노동의 차이, 농업노동과 공업노동의 차이를 훨씬 줄이며 여성들을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벗어나도록 할 데 대한 3대기술혁명과업을 새롭게 천명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6개년계획의 중심과업인 3대기술혁명의 돌파구를 열기 위하여 공작기계생산에 화력을 집중하도록 하시고 주체 60(1971)년 2월 희천공작기계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기술혁신운동을 힘있게 벌여 다음해 4월까지 1만대의 공작기계를 생산할 데 대한 과업을 주시었다. 그리고 이해 9월과 10월에 구성과 희천의 노동계급을 찾으시어 공작기계생산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키도록 고무하시었으며 11월에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3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3대기술혁명수행에서 기계공업부문앞에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을 밝히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펴주신 새 기술혁신의 거세찬 불길속에서 희천과 구성, 만경대 공작기계공장을 비롯한 온 나라 기계공업부문의 노동계급은 1년 남짓한 기간에 3만대의 공작기계를 생산하는 기적을 창조함으로써 3대기술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열어 놓았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탄생 60돌에 즈음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전사들에 대한 고결한 혁명적 의리와 숭고한 혁명적 동지애에 의하여 주체 64(1975)년 10월 대성산혁명열사릉이 훌륭하게 건립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고 세계 혁명적 인민들속에서 주체사상을 따라 배우려는 지향과 열망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는 현실발전의 요구를 깊이 헤아리시고 주체 61(1972)년 9월 일본≪마이니찌신붕≫기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 ≪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공화국정부의 대내외정책의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와 조선노동당창건 30돌기념대회에서 하신 역사적인 보고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주체사상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밝히시었다. . . .

≪주체사상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자신에게 있다는 사상입니다.≫(≪김일성저작집≫ 제27권) . .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주체의 사상, 이론 및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로 정식화하여 선포하시고 현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원리와 내용들로 주체사상을 더욱 풍부화하고 전면적으로 심화발전시키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몸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을 작성하시고 주체 61(19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인민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더욱 강화하자≫에서 새 헌법의 기본내용과 특징, 새 헌법의 제정발포가 가지는 의의를 전면적으로 밝히시었다. . . .

역사적인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는 끝없는 환희와 감격속에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 . .

전무후무한 위대한 사상이론가, 정치가, 군사전략가, 인민의 어버이로서의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위대성과 영도의 현명성을 실생활을 통하여 절감한 우리 인민들은 김정일동지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로 친근하게 부르며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높이 받들어 모시었다. 인민들은 신념으로부터 김정일동지를 경모하고 칭송하면서 충성과 흠모의 마음을 담아 송가를 지어 불렀으며 김정일동지를 위대한 수령님의 후계자로 추대할 것을 바라는 청원서와 편지들을 당중앙위원회에 보내어 . . .

주체 63(197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전원회의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후계자를 추대하는 사업과 함께 후계자의 영도를 실현할 수 있는 조직사상적 기초를 튼튼히 쌓고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철저히 세우도록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세우기 위한 사업당의 기초축성사업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하며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당의 조직사상적통일과 단결을 강화하고 김정일동지의 영도체계를 확고히 세우도록 하는데 큰 힘을 넣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61(1972)년 가을 당조직들에서 선발한 우수한 일군들과 지식 있는 대학생들로 지도소조를 뭇고 경공업공장들에 파견하여 3대혁명에 대한 지도능력을 시험해 보신 다음 주체 62(1973)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에서 3대혁명소조를 조직하여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파견할 데 대한 역사적인 조치를 취하시었다.

3대혁명소조운동이 힘있게 벌어짐으로써 혁명소조들이 활동하는 모든 곳에서 3대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으며 인간개조사업과 기술개조사업, 문화건설사업에서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62(1973)년 2월 당중앙위원회 부장협의회에서 사상, 기술 문화 혁명을 힘있게 벌여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전인민적인 대중운동으로서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벌일 데 대한 구상을 밝히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구상하신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발기에 의하여 창조되었으며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단위에 급속히 확대되었다.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이 힘있게 벌어짐으로써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에서 거대한 성과가 이룩되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역사적 위업이 적극 추진되게 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63(1974)년 7월 역사적 노작 ≪당사업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에서 당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기본방향과 방도들을 뚜렷이 밝히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요구에 맞게 당사업에서 근본적 전환을 이룩하기 위하여 전당을 주체사상화 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끄심으로써 당사업에서는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63(1974)년 2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기 위하여 사회주의대건설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일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대건설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서는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새로운 천리마속도로 총진군하며 당면하게는 기본건설, 공업, 농업, 수송, 수산의 5개 전선에 힘을 집중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원회의에서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사회주의 대건설전투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전체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세금을 완전히 폐지하고 공업상품가격을 대폭 낮출 데 대한 역사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심으로써 우리 인민들이 사회주의조국에서 사는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깊이 간직하고 사회주의대건설전투에 힘차게 떨쳐나서게 . . .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발기와 정력적인 지휘밑에 진행된 이해의 ≪70일전투≫(10월 21일-12월 30일)에서 새로운 천리마속도, ≪70일전투속도≫가 창조되고 사회주의대건설의 돌파구가 열리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주체 64(1975)년 6월 은률광산의 대형장거리벨트콘베아수송선건설이 완공되고 11월에는 무산-청진사이의 대형장거리정광수송관이 건설되었으며 황해제철소에서 전면적 자동화의 불길이 타올랐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62(1973)년 1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회의들에서 농사제일주의에로 나갈데 대한 혁명적 방침을 제시하시고 농업전선의 사령관이 되시어 농사를 직접 틀어쥐고 지도하시면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는 주체농법을 창조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65(1976)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12차전원회의에서 밭관개의 완성, 다락밭건설, 토지정리와 토지개량, 치산치수, 간석지개간을 내용으로 하는 자연개조 5대방침을 제시하시었으며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밀고 나가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66(1977)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6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 ≪인민정권을 더욱 강화하자≫에서 주체의 정권건설이론을 체계화하시고 인민정권을 강화하기 위한 길을 뚜렷이 밝히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최고인민회의 제6기 제1차회의에서 제2차 7개년계획(주체 67(1978)-주체 73(1984))을 법령으로 채택하도록 하시었다. . . .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는 공산주의의 물질적 요새를 점령하기 위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경제건설에서 일관하게 견지하여야 할 전략적 노선이다.

제2차 7개년계획은 사회주의자립적 민족경제의 위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웅대한 경제건설강령이며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68(1979)년 10월 인민경제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지도하시는 과정에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온 숨은 영웅들을 찾아내시고 그들의 모범을 따라배우는 운동을 힘있게 벌이도록 하시었다. . . .

숨은 영웅들의 모범을 따라 배우기 위한 운동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영도밑에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과 함께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실현하는데서 위력한 추동력으로 되었다.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교육사업에 선차적 의의를 부여하시고 주체 61(1972)년 9월부터 시험적으로 실시해 온 전반적 11년제의무교육을 주체 64(1975)년 9월부터 나라의 모든 지역에서 실시하도록 하시었으며 주체 65(1976)년 4월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린이보육교양법을 제정하여 모든 어린이들을 국가와 사회의 부담으로 키우는 제도를 법적으로 공고히 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고등교육망을 늘이고 일하면서 배우는 고등교육체계를 더욱 발전시킴으로써 6개년계획기간에 기술자, 전문가 대오를 100만명에 이르게 하여 나라의 민족간부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게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육사업에서 이룩한 성과에 토대하여 주체 64(1975)년 10월 당창건 30돌 기념대회에서 하신 보고에서 온 사회의 인테리화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교육사업을 사회주의위업수행에 맞게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주체 66(1977)년 9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14차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교육에 관한 테제≫를 발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육테제에서 사회주의교육의 목적은 사람들을 자주성과 창조성을 가진 공산주의적 혁명인재로 키우는데 있다고 하시면서 사회주의교육학의 기본원리를 새롭게 정식화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교육테제를 철저히 관철하기 위하여 주체 67(1978)년 10월 전국교육일군대회를 소집하시고 교육사업에서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하시고 해당한 조치를 취하 . . .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사회주의문학예술을 발전시킬 데 대한 사상과 방침들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정력적인 지도밑에 빛나게 구현되어 영화, 가극, 연극, 소설을 비롯한 문학예술의 모든 부문이 전면적으로 찬란히 개화발전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주체예술의 대전성기가 펼쳐지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적 생활문화와 생산문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온 나라의 텔레비젼화를 실현하고 현대적 문화시설들을 많이 건설하여 인민들의 문화적 수요를 원만히 보장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농촌 버스화와 수도화를 실현하여 노동자, 농민들의 생활조건에서의 차이를 줄이고 농민들의 생활상 편의를 더 잘 도모하며 모든 부문에서 생산문화와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을 철저히 확립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60(1971)년 4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2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보건사업을 개선강화하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우시었으며 주체 69(1980)년 4월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보건법을 채택하게 하시어 가장 우월한 우리 나라 보건제도와 보건사업에서 이룩된 성과들을 법적으로 공고히 하고 발전시켜 나갈수 있게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 차례의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와 인민군당위원회 제6기 제20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인민군대안에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울 데 대한 강령적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군대의 정치군사적 위력을 강화하는데 큰 힘을 넣으시었다.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대의 세포이며 기본전투단위인 중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주체 62(1973)년 10월 조선인민군 중대장, 중대정치지도원대회에서 하신 연설 ≪인민군대의 중대를 강화하자≫와 주체 68(1979)년 10월 조선인민군 특무장강습페강식에서 하신 연설 ≪특무장의 위치와 임무에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인민군대의 중대가 차지하는 위치와 임무를 밝혀 주시고 중대지휘성원들과 사관들의 역할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를 가르쳐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통일 3대원칙과 5대방침을 제시하시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의 길을 주동적으로 개척해 나가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60(1971)년 8월 6일 역사적인 연설 ≪미제를 반대하는 아세아혁명적 인민들의 공동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에서 새로운 폭 넓은 협상방침을 내놓으시면서 남조선의 민주공화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 인사들과 아무때나 접촉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시었다.

그리하여 주체 60(1971)년 9월부터 북남적십자단체들의 예비회담이 열리고 이와는 별도로 북과 남의 고위급정치회담이 진행되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61(1972)년 5월 북과 남사이의 고위급정치회담에 참가한 남조선측대표들과 하신 담화에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천명하시었다. . . .

그러나 남조선당국자는 주체 62(1973)년 6월 모든 가면을 다 벗어 던지고 ≪유엔동시가입≫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특별성명≫을 발표하여 민족분열을 고착시키고 영구화하려는 ≪두개 조선≫정책을 공공연히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모처럼 마련되었던 북남대화는 결렬상태에 빠지고 민족의 영구분열의 위험이 조성되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62(1973)년 6월 역사적인 연설 ≪민족의 분열을 방지하고 조국을 통일하자≫에서 조국통일5대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우리가 내놓은 조국통일 5대방침은 북과 남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와 긴장상태의 완화, 북과 남사이의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의 실현, 북과 남의 각계각층 인민들과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의 소집, 고려연방공화국의 단일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의 실시, 단일한 고려연방공화국 국호에 의한 유엔가입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김일성저작집≫ 제28권)

주체 63(1974)년 3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3차회의에서 우리 공화국과 미국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할 데 대한 주동적인 제안을 내놓으시었다. . . .

남조선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반파쑈민주화투쟁을 힘있게 벌이었으며 주체 69(1980)년 5월 광주인민들은 대중적 인민봉기를 일으켰다. 광주인민봉기는 반미자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서 전환점으로 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총련을 주체사상화할 데 대한 방침을 내놓으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63(1974)년 5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우리 나라가 블럭불가담운동에 정식 가입하여 활동할 데 대한 방침을 밝히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시었다.

우리 나라는 주체 64(1975)년 8월 이 운동의 정식 성원국으로 되었다. . . .

그리하여 이해 9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제6차 블럭불가담국가 수뇌자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 회의에서 우리 나라는 블럭불가담운동 조정위원회 성원국으로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계혁명발전에 공헌하신 불멸의 업적과 수령님께서 지니신 높은 국제적 권위로 하여 우리 나라는 1970년대에 66개의 신흥세력나라들과 새로 국가관계를 맺고 100여개의 나라들과 정치, 경제, 문화적 협조를 확대발전시켜 나갔다. . . .

주체 58(1969)년 4월 말리에서 첫 ≪김일성동지노작연구소조≫가 조직된 데 이어 1970년대말까지 60여개 나라에 800여개의 주체사상연구소조가 여러 가지 명칭으로 조직되었다. 주체사상연구소조는 지역별, 대륙별 조직으로 발전하였으며 주체 67(1978)년 4월에는 일본 도꾜에서 국제적 상설기관으로서 ≪주체사상국제연구소조≫가 창설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당 제6차대회를 맞으며 주체 69(1980)년에 100일전투(7월 1일-10월 8일)를 힘있게 벌여 생산과 건설에서 혁명적 앙양을 일으키도록 하심으로써 제2차 7개년계획의 3년분 과제를 이해 9월말까지 완수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할 수 있게 하시었다. . . .

11. 주체 69(1980).10 - 주체 78(1989). 1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당과 혁명발전에서 새로운 역사적 전환이 이룩되고 있던 시기인 주체 69(1980)년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를 소집하시었다. . . .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것은 우리 혁명의 총적 임무입니다.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함으로써만 종국적으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김일성저작집≫ 제35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기 위하여서는 자주적 입장과 창조적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며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노선을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혁명화, 노동계급화, 인테리화 하며 인민경제를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1980년대 사회주의경제건설의 기본과업은 완전히 승리한 사회주의사회에 맞는 물질기술적 토대를 마련하며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10대전망목표와 그 실현을 위한 인민경제의 부문별 과업들을 구체적으로 밝히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통일 3대원칙에 기초하여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창립할 데 대한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70(1981)년 신년사에서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결정 관철을 위하여 총진군하자!≫라는 전투적 구호를 제시하시고 그후 여러 노작들에서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총진군운동을 힘있게 벌일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이해 5월에는 남포시를, 6월에는 청진시와 함경북도를, 8월에는 함경남도를, 10월에는 평안북도를 현지지도하시면서 총진군운동에 떨쳐나선 지도일군들과 당원들, 근로자들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하시었다. 그리하여 당 제6차대회결정 관철을 위한 첫해 전투에서 빛나는 성과들이 이룩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영도밑에 위대한 수령님 탄생 70돌을 맞으며 수령님을 중심으로 하는 전당과 전체 인민의 통일단결이 더욱 강화되었으며 주체사상탑과 개선문, 김일성경기장을 비롯한 노동당시대의 대기념비적창조물들이 건설되어 수령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전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탄생 70돌에 즈음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71(1982)년 10월에 전국청년열성자회의를, 11월에는 ≪80년대속도≫창조에 떨쳐나선 천리마운동선구자대회를 진행하고 새로운 진군속도, ≪80년대 속도≫창조운동을 힘있게 벌이도록 하시어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혁명적 고조기를 열어 놓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알곡고지점령을 위하여 주체 70(1981)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4차전원회의에서 30만정보의 간석지를 개간하고 20만정보의 새땅을 찾아내어 간석지 물문제를 풀기 위하여 서해갑문태천발전소를 건설할 데 대한 4대자연개조과업을 제시하시었다. . . .

대동강하류의 20리날바다를 막는 세계굴지의 서해갑문 건설공사가 불과 5년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우리의 설비, 자재, 기술로 훌륭히 완공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4대자연개조사업을 적극 추진시키도록 하시는 한편 주체 71(1982)년 1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농촌진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농촌에 3대혁명소조와 청년농촌지원대를 파견하는 조치를 취해 주시었으며 이해 5월 농업부문 관계일군협의회와 12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 농촌기술혁명을 다그치며 농업생산을 늘이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농촌에 뜨락또르와 자동차, 모뜨는 기계와 모내는 기계, 벼수확기와 이동식벼탈곡기 등 현대적 농기계들을 더 많이 생산공급하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수산물고지점령을 위하여 주체 69(1980)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확대회의에서 겨울철 물고기 잡이와 가공을 잘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들을 수산사업소들에 파견하시었으며 몸소 신포수산사업소에 나가시어 수산업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요해하신데 기초하여 현지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하시고 물고기 생산과 가공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대책을 세워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0(1981)년 6월에 진행된 함경북도 당위원회 및 청진시당위원회 전원회의 연합확대회의주체 71(1982)년 8월 함흥에서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6차전원회의 그리고 이해 9월에 있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상무회의를 비롯한 여러 회의들에서 강철고지와 유색금속고지, 석탄고지를 점령하는데서 나서는 과업과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밝히시었으며 유색금속고지와 석탄고지 점령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검덕광업종합기업소와 안주지구탄광연합기업소를 우리 나라 경제의 생명선으로 규정하시고 여기에 힘을 집중하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검덕광업종합기업소에 1,000만톤능력의 제3선광장이 불과 한해동안에 훌륭히 일떠 섰으며 금속공장, 탄광, 광산들이 대대적으로 개건확장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1(1982)년 2월 화학공업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하신 연설주체 72(1983)년 3월 경공업부문 지도일군협의회에서 하신 연설 그리고 6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7차전원회의에서 하신 결론에서 화학고지와 천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뚜렷한 과업과 방도를 제시하시고 화학섬유와 화학비료, 합성수지, 합성고무 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며 경공업발전에서 일대 전변을 일으키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72(1983)년 11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8차전원회의에서 전력고지점령을 위한 혁명적인 대책을 세우시고 대규모의 수력 및 화력 발전소들과 중소규모의 수력발전소들을 새로 많이 건설하도록 하시었으며 세멘트고지점령을 위한 혁명적인 조치들도 취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72(1983)년 8월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 제2차 7개년계획의 마지막해인 주체 73(1984)년에 순천, 안주, 청진, 남포, 함흥 지구 등 5개 지구의 기본전선에 힘을 집중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총돌격전을 벌이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제2차 7개년계획 수행에서 이룩된 자랑찬 성과에 토대하여 주체 74(1985)년과 주체 75(1986)년을 조절기로 정하고 인민경제의 선행부문들인 석탄, 전력, 철도운수와 금속공업을 빨리 발전시키도록 하시었으며 ≪1985년 6월공작기계 새끼치기운동≫을 힘있게 벌이도록 이끄심으로써 1만톤프레스, 대형산소분리기 등 기계공업발전과 기술혁명수행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대형설비들을 자체의 힘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71(1982)년 2월과 주체 75(1986)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제7기, 제8기 대의원선거를 통하여 우리의 공화국정권을 더욱 튼튼히 다지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70(1981)년 4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3차전원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결론 ≪대안의 사업체계를 철저히 관철하여 공장관리운영을 개선하자≫와 주체 73(1984)년 12월 역사적인 노작 ≪주체의 경제관리 체계와 방법을 철저히 관철하자≫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사회주의적 방법에 자본주의적 방법을 뒤섞어 놓은 얼룩이방법, 범벅식방법으로 사회주의경제를 관리운영하려 하여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시면서 사회주의경제관리의 기본원칙들을 전면적으로 구현한 대안의 사업체계를 비롯하여 주체의 경제관리체계를 확고히 고수하고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한 과업을 밝혀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경제에 대한 지도와 관리에서 일관하게 견지하여야 할 기본원칙은 정치적 지도와 경제기술적 지도,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매개 단위의 창발성, 민주주의와 유일적 지휘, 정치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을 옳게 결합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주체의 경제관리체계를 철저히 옹호관철하려면 대안의 사업체계의 기본핵을 이루는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를 강화하며 경제지도일군들의 책임성과 역할을 높이고 경제조직사업과 생산지휘를 바로 해나가며 기업관리를 규정화, 규범화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2(1983)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이듬해 3월 정무원 책임일군들과 하신 담화 그리고 주체 74(1985)년 5월과 11월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에게 하신 교시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경애하는 김정일동지는 백두산형의 위인, 희세의 철학가, 천재적인 사상이론가, 탁월한 정치가, 영도의 거장, 창조와 건설의 영재, 문무를 겸비한 다재다능한 재사, 무적필승의 영장, 숭고한 인덕을 겸비한 인민의 지도자이며 수령과 그 위업에 충실한 충성과 효성의 최고화신이라고 하시면서 나의 사상이자 김정일동지의 사상이며 나의 영도이자 김정일동지의 영도이며 나의 인격이자 김정일동지의 인격이며 나의 풍모이자 김정일동지의 풍모이라고 말씀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시대는 김정일시대이며 현시대의 충신은 김정일동지께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김정일동지를 충성으로 높이 받들며 김정일동지의 두리에 전당과 전체 인민을 굳게 묶어세우며 김정일동지께서 제시하신 사상과 노선, 방침을 철저히 관철해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광범한 군중을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우기 위하여 주체 70(1981)년 10월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제7차대회에서 하신 연설 ≪청년들은 주체혁명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가 되자≫와 11월 직업총동맹 제6차대회에서 하신 연설 ≪노동계급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투쟁에서 핵심부대가 되자≫등 여러 연설들에서 근로단체들의 역할을 더욱 높이며 그에 대한 당적 지도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당과 인민의 한결같은 염원을 헤아리시어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탄생하신 생가뒤의 산봉우리에 ≪정일봉≫이라는 글발을 새기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사업을 더욱 심화발전시키며 우리 당 건설의 역사적 경험으로 간부들과 당원들을 튼튼히 무장시키기 위하여 주체 75(1986)년 5월 고전적 노작 ≪조선노동당건설의 역사적 경험≫을 발표하시었다.

사람과의 사업을 기본으로 틀어쥐고 온 사회에 대한 정치적 영도를 실현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당 건설의 근본원리입니다. . . . 우리 당이 당건설에서 견지하고 있는 기본원칙은 첫째로 당안에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것이며, 둘째로 당이 대중과 혼연일체를 이루는 것이며, 셋째로 당건설에서 계승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김일성저작집≫ 제40권)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과업을 제시하시기 위하여 우리 식 사회주의의 생활력과 세계 사회주의운동의 추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주체 75(1986)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회의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라는 역사적인 시정연설을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경제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가는 것은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한 중요한 과업으로 된다고 하시면서 제3차 7개년계획(주체 76(1987)-주체 82(1993))의 전망과업과 그 수행방도를 제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6(1987)년 1월초 경제부문 책임일군들과 하신 담화에서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더욱 높이 발휘하여 제3차 7개년계획의 높은 고지를 앞당겨 점령하자!≫라는 전투적 구호를 제시하시었다. 그리고 3월 화학공업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하신 연설에서 철두철미 우리 식대로 살아나갈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6(1987)년 7월 제3차 7개년계획을 앞당겨 수행하기 위한 총동원대회를 소집하시었으며 주체 77(1988)년 2월에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 공화국창건 40돌을 맞으며 200일전투를 벌이도록 하시고 전체 당원들에게 당중앙위원회 편지를 보내며 당중앙위원회 구호를 발표하게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200일전투 중앙지휘부의 최고사령관이 되시어 주체 77(1988)년 4월 광복거리 건설장을 비롯하여 여러 중요대상 건설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면서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고조를 일으키도록 이끄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진두지휘하신 200일전투의 불길속에서 평양시와 온 나라 이르는 곳마다에 대기념비적 창조물들이 연이어 일떠섰으며 제3차 7개년계획수행에서 결정적 의의를 가지는 동력기지, 금속기지, 화학공업기지 건설이 힘있게 추진되고 600여리의 북부철길건설이 완공된 것을 비롯하여 방대한 규모의 중요대상건설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3차 7개년계획기간 채취공업, 전력공업, 금속공업과 함께 사회주의경제건설과 기술혁명의 새로운 단계의 요구에 맞게 기계공업과 전자, 자동화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주체 77(1988)년 11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4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공작기계공업과 전자, 자동화 공업을 빨리 발전시키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제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대적인 공작기계생산기지와 전자자동화 공업기지를 튼튼히 꾸리고 수치조종공작기계와 로보트를 대대적으로 생산하며 직접회로와 전자계산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전자요소와 자동화 계기, 기구의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이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농촌테제를 앞당겨 실현하는 것을 사회주의완전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관건적 고리로 보시고 주체 75(1986)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회의이듬해에 열린 중앙인민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2차회의를 비롯한 여러 회의들에서 농촌에서의 사상혁명, 문화혁명, 기술혁명을 적극 다그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었다.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촌기술혁명을 두 단계로 나누어 제1단계에서는 벌방이 많은 도들에 힘을 집중하여 먼저 끝내며 제2단계에서는 산간지대 도들에 힘을 집중하여 끝내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수리화를 적극 다그치면서 중소규모의 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건설하여 농업생산에서 전력의 이용분야를 넓히고 전기화의 성과를 공고히 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건설이 진척되는데 따라 높아 가는 인민들의 요구에 맞게 식의주문제를 원만히 풀어 그들의 전반적 생활수준을 한계단 높이 올려 세우는 것을 투쟁목표로 내세우시고 농사제일주의, 경공업제일주의, 수산제일주의 방침을 제시하시어 먹는 문제와 인민소비품생산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룩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의 경공업혁명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여 인민소비품에 대한 인민들의 수요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하여 주체 78(1989)년 6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6차전원회의에서 하신 결론 ≪일군들의 혁명성,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을 높여 당의 경공업혁명방침을 관철하자≫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경공업을 한계단 추켜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를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밀고 나가시었다.

그리하여 경공업공장들에서 생산기술적 토대가 더욱 강화되고 생산이 정상화되었다. 또한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발기하신 ≪8월3일인민소비품≫생산운동이 힘있게 벌어져 여러 가지 인민소비품생산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원대한 수도건설구상과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평양시에 현대적인 창광거리, 문수거리, 안상택거리, 광복거리, 청춘거리가 일떠 서고 만경대학생소년궁전, 5월 1일경기장, 빙상관, 창광원 등 문화체육시설들이 수많이 일떠서게 되었다.

언제나 창조와 건설을 인민과 결부시켜 영도하시며 군대도 인민군대, 정권도 인민정권, 병원도 인민병원, 기념비적 창조물에도 인민이라는 이름을 달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의 중심부의 명당자리에 현대적인 도서관을 건설하도록 하시고 그 이름도 인민대학습당으로 부르게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7(1988)년 3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3차전원회의에서 현대과학발전의 세계적 추세와 우리 나라 사회주의건설의 현실적 요구에 맞게 전자공학, 생물학, 열공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과학기술을 빨리 발전시킬 데 대하여 가르쳐 주시었으며 과학기술발전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기 위하여 과학기술발전 3개년계획(주체 77(1988)-주체 79(1990))을 채택하게 하시고 전자공학과 생물학, 열공학을 발전시키는데 힘을 집중하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교육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하여 11년제의무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돌리시면서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학생들의 나이와 지적 발전수준에 맞게 교육 내용과 방법을 개선하며 우리 당의 인민적 교육시책이 낳은 본보기학교, 평양제1고등중학교와 같은 학교를 더 많이 내오도록 하시는 한편 고등교육사업을 강화하는데 계속 큰 힘을 넣으시어 20대, 30대의 박사, 학사들을 비롯한 능력있는 과학자, 기술자, 전문가들을 더 많이 키워 낼 수 있게 교육사업을 개선강화하고 대학들의 양성규모를 더 늘이며 여러 단과대학과 고등전문학교들을 새로 내오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하면서 배우는 고등교육체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공장대학, 농장대학, 어장대학들을 많이 내오고 그것을 잘 운영하며 텔레비젼방송대학을 새로 내오도록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71(1982)년 4월에 발표하신 고전적 노작 ≪주체의 혁명위업을 무력으로 튼튼히 담보하자≫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전군 주체사상화가 전면에 나선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우리 당의 위업, 주체혁명위업의 믿음직한 보위자인 인민군대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강령적인 과업과 방도들을 밝히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군에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영군체계를 확고히 세우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1(1982)년 6월 당중앙군사위원회를 소집하시고 김정일동지가 인민군대를 당적으로 지도하고 있는데 군사적으로도 직접 지도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 인민군대의 모든 군사사업을 집중시킬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그리고 주체 74(1985)년 9월 조선인민군 지휘관 및 정치일군대회와 주체 77(1988)년 2월 인민군대의 책임일군에게 하신 교시를 비롯한 여러 기회에 전군이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명령지시에 절대복종하고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혁명적인 령군체계를 철저히 세울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 .

80년대중엽이후 사회주의나라들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강경압살책동과 끈질긴 ≪평화적 이행전략≫ 그리고 사회주의배신자들의 책동에 의하여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맑스-레닌주의가 현대사회민주주의로 수정되고 ≪개혁≫, ≪개편≫이 노선화, 정책화됨으로써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길로 나아 갔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7(1988)년 3월과 9월에 발표하신 고전적 노작 ≪주체의 혁명적 기치를 튼튼히 고수하며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칠데 대하여≫, ≪주체의 혁명적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자≫에서 우리 당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노선과 그 정당성을 논증하시고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지 우리 당의 노선과 정책을 철저히 옹호관철하며 자신이 선택한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계속 힘차게 전진할 데 대하여 또다시 강조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8(1989)년 5월 중앙인민위원회 제8기 제26차회의에서 하신 연설과 6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6차 전원회의에서 하신 결론에서 우리에게는 개혁할 것도 개편할 것도 없다고 하시면서 모든 일군들이 우리 당의 노선과 정책의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의 기치를 계속 높이 추켜들고 나가며 당의 영도를 강화할 데 대한 혁명적 원칙을 튼튼히 견지하고 청산리방법과 대안의 사업체계를 철저히 구현해 나갈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개혁과 개편 정책을 넘겨다보거나 오염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외부로부터 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어긋나는 그 어떤 이색적인 사상과 풍조도 스며들지 못하게 모기장을 든든히 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영도밑에 80년대후반기 우리 당과 인민은 ≪우리 식대로 살아 나가자!≫는 구호밑에 그 어떤 광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체의 혁명적 기치, 혁명의 붉은기를 견결히 고수함으로써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튼튼히 다져지고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더욱 깊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제12차, 제13차, 제14차, 제15차 전체대회에 보내주신 축하문주체 74(1985)년 5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의장에게 보내주신 축전≪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결성 30돌에 즈음하여≫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총련이 주체사상화의 방침을 계속 주선으로 튼튼히 틀어쥐고 조직안에 주체의 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우며 총련조직을 우리 당의 영도에 충실한 애국적인 조직으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 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이념으로부터 출발하여 주체 73(1984)년 9월 남조선수재민들에게 5만석의 쌀과 10만톤의 세멘트, 50만메터의 천과 많은 양의 의약품들을 구호물자로 보내주시는 동포애적 조치를 취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8(1989)년 남조선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고문인 문익환목사와 ≪전대협≫대표 임수경학생을 뜨겁게 맞아 주시고 그들의 애국적 장거를 높이 평가하시며 통일사절로 민족앞에 내세워 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방침을 높이 받들고 남조선인민들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더욱 세차게 벌이었으며 통일혁명당은 주체 74(1985)년 7월 당의 명칭을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으로 고치고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투쟁에 대한 지도적 역할을 더욱 강화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국제무대에서 혁명역량과 반혁명역량, 반제자주세력과 지배세역사이의 투쟁이 더욱 첨예화되고 있던 시기인 주체 71(1982)년 4월 당중앙위원회, 최고인민회의 합동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시정연설을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온 세계의 자주화를 실현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1(1982)년 9월과 주체 73(1984)년 11월, 주체 76(1987)년 5월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주체 73(1984)년 5~7월에 이전 쏘련을 비롯한 유럽사회주의나라들을, 주체 77(1988)년 6~7월에 이전 몽골인민공화국을 방문하시어 사회주의나라들사이의 단결과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며 사회주의원칙을 고수해 나가도록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0(1981)년 12월 유고슬라비아따뉴그통신사대표단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주체 75(1986)년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중앙인민위원회 연합회의에서 하신 역사적 결론 ≪블럭불가담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하여≫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제국주의자들의 분열, 리간, 쟁탈 책동을 짓부시고 블럭불가담운동을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블럭불가담나라들이 자주성의 원칙반제자주의 이념에 충실하며 의견상이나 분쟁문제들을 어디까지나 단결의 원칙에서 협상의 방법으로 풀어 나갈데 대한 문제, 남남협조를 실현하며 새로운 공정한 국제경제질서를 세울 데 대한 문제 등 블럭불가담운동에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원칙적 문제들을 밝혀 주시고 블럭불가담운동의 확대발전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8(1989)년 7월 반제연대성, 평화와 친선의 이념밑에 진행되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우리 나라에서 하도록 하시고 친히 개막식에 참석하시어 우리 시대 청년들의 사명과 자주시대의 전진을 힘있게 추동하기 위한 세계청년학생들의 투쟁과업을 제시하시었다. . . .

12. 주체 79(1990). 1 - 주체 83(1994). 7

1980년대말 1990년대초에 이르러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은 엄중한 도전에 부딪치게 되었다.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적책동과 사회주의배신자들에 의하여 이전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에서 연이어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복귀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빚어졌으며 이를 기화로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사회주의의 종말≫에 대해 떠들면서 사회주의보루인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90년대 첫해인 주체 79(1990)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제국주의자들이 어리석게도 역사의 흐름을 되돌려 세워 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고 있지만 인류가 사회주의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은 어길 수 없는 진리이고 역사발전의 법칙이라는 것을 엄숙히 천명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79(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시정연설 ≪우리 나라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더욱 높이 발양시키자≫에서 주체사상을 구현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나라 사회주의의 본질적 특성과 우월성을 밝히시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발양시키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제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을 완성하기 위하여서는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그 기능과 역할을 끊임없이 높이면서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일 데 대한 우리 당의 총노선을 계속 튼튼히 틀어쥐고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나가야 하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기본전략목표인 사상적 요새와 물질적 요새를 점령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당과 인민의 한결같은 의사와 염원을 깊이 헤아리시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 국가와 혁명무력의 중책을 하나하나 넘겨 주시어 우리 혁명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전당, 전군, 전민의 조직적 의사와 한결같은 염원에 의하여 주체 80(1991)년 12월 24일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전원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시었으며 주체 81(1992)년 4월 20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칭호를 받으시었으며 주체 82(1993)년 4월 9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되시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의 절절한 염원과 의사를 반영하여 주체 81(1992)년 2월초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탄생하신 2월 16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맞이할 데 대한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을 비준해 주시어 2월 16일을 매해 가장 뜻깊게 맞이하는 것을 전통화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탄생 50돌에 즈음하여 김정일동지의 위대성을 칭송하는 송시를 쓰시었다.

백두산마루에 정일봉 솟아 있고
소백수 푸른 물은 굽이쳐 흐르누나
광명성 탄생하여 어느덧 쉰돌인가
문무충효 겸비하니 모두다 우러르네
만민이 칭송하는 그 마음 한결같아
우렁찬 환호소리 하늘땅을 뒤흔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1(1992)년 3월, 주체 82(1993)년 1월과 3월에 항일혁명투사들, 혁명가유자녀들을 만나주시고 그들과 하신 담화 ≪사회주의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에서 문무충효를 겸비하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위대성과 김정일동지께서 시대와 혁명앞에 쌓아 올리신 불멸의 업적을 전면적으로 밝혀 주심으로써 우리 인민들의 가슴속에 김정일동지에 대한 숭배심을 더욱 깊이 심어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1(1992)년 10월 전국열사가족대회주체 82(1993)년 7월 전국노병대회를 마련하시어 전쟁노병들과 혁명열사가족들이 김정일동지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드는데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시었다. 그리고 주체 81(1992)년 12월에는 조선지식인대회를 소집하시어 모든 지식인들이 당의 영원한 동행자, 충실한 방조자, 훌륭한 조언자, 당정책의 열렬한 옹호자, 철저한 관철자가 되며 지식과 기술로써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며 우리 식 사회주의를 견결히 고수하고 더욱 빛내어 나가는데서 앞장에 서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주체 82(1993)년 2월에 진행된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제8차대회에 ≪청년들은 당의 영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하자≫라는 역사적인 서한을 보내시어 새 세대 청년들이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영도를 대를 이어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총비서이시고 국가주석이시었지만 당중앙위원회 조직비서가 당사업을 맡아 하는데 조직비서로부터 분공을 받고 조직비서에게 그 집행정형을 보고하는 것은 당원의 의무라고 말씀하시면서 무슨 일을 하나 하시어도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 일일이 보고하고 모든 일을 해나가시는 모범을 보여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1(1992)년 2월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탄생 50돌경축 재일본조선인 축하단과 하신 담화 ≪총련사업에 대하여≫를 비롯하여 총련의 여러 대표단과 하신 담화들과 여러 대회들에 보내신 축하문과 축전들에서 총련은 그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79(1990)년 10월 당창건 45돌 경축연회에서 하신 연설에서 우리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굳게 통일단결되고 불패의 전투력을 지닌 혁명적 당으로 더욱 강화발전시켜 나가는데서 나서는 원칙적 문제들을 제시하시면서 모든 당조직들과 당원들이 당중앙위원회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말단기층조직이며 당생활의 거점인 당세포를 강화하는데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시고 주체 81(1992)년 9월 함경북도당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당세포를 강화할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었으며 당사업을 더욱 개선강화하고 그 영도적역할을 높이도록 이끌어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1(1992)년 12월 당, 행정경제기관 일군들과 하신 담화 ≪일군들은 참다운 인민의 충복이 되자≫를 비롯한 여러 노작에서 모든 일군들이 광범한 군중을 당의 두리에 묶어 세우며 인민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할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 . .

우리 인민은 주체 81(1992)년 4월 주체의 혁명위업, 사회주의위업을 계승완성하기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선 역사적인 환경속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80돌을 민족최대의 경사로, 인류공동의 대정치축전으로 뜻깊게 맞이 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영도밑에 이 뜻깊은 날을 맞으며 온 나라의 곳곳에 수령님의 혁명사적기념비들이 세워 졌으며 수도에 5만세대의 살림집이 건설되고 2단계 궤도전차화가 실현되었다. 그리고 평양-개성도로를 비롯한 만년대계의 기념비적 창조물들과 새로운 공장, 기업소들이 수많이 건설되었다.

위대한 수령님 탄생 80돌 경축행사는 세계적 범위에서 국제적인 대정치축전으로 진행되었고 130여개 나라에서 420여개의 대표단과 각계인사들, 예술인들이 평양으로 찾아 와 위대한 수령님께 만수축원의 인사를 올리었으며 국제적인 대예술축전인 제10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전례 없는 규모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혁명위업과 군건설위업, 반제자주위업수행에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으로 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를 받으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탄생 80돌 연회에서 하신 역사적인 연설 ≪인민대중의 역할을 높이는 것은 자주위업의 승리를 위한 담보≫에서 자신의 80평생은 인민의 아들로서 인민의 사랑과 믿음속에 인민을 위하여 바쳐 온 투쟁의 한생이라고 하시면서 앞으로도 인민의 사랑과 믿음속에서 인민을 위하여 끝까지 복무할 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한생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바쳐 온 한생이며 인민들과 함께 투쟁해 온 한생이었다고 하시면서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수행에서 지침으로 되는 고귀한 혁명의 진리와 승리적으로 전진하여 온 우리 혁명의 실천적 경험을 후대들에게 알려 주는 것을 숭고한 의무로 여기시고 빛나는 한생을 총화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집필에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시었다. . . .

회고록은 혁명하는 사람들이 생활과 투쟁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참된 진리, 경험과 교훈을 밝혀 주는 더없이 귀중한 혁명의 교과서로서 커다란 감화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심장을 틀어잡았다.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고전적 노작 ≪우리 나라 사회주의는 주체의 사회주의이다≫를 비롯한 노작들에서 사회주의의 주체와 사회주의사회의 기본정치방식, 사회주의위업의 종국적 승리의 결정적 담보인 영도의 계승문제를 비롯한 사회주의사상이론을 더욱 심화발전시키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계급교양을 더욱 강화하며 사회주의사회의 기초인 집단주의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교양을 공산주의도덕교양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하도록 하시었으며 주체 82(1993)년 12월에는 전국공산주의미풍선구자대회를 진행하여 온 사회에 집단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한 공산주의적 미풍이 더욱 활짝 꽃펴나게 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게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1(1992)년 9월 함경북도당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밝히시면서 함경북도가 지리적으로 보아 자본주의가 복귀된 나라와 인접해 있고 세계적인 관심의 초점으로 되고 있는 나진-선봉지구를 끼고 있는 것만큼 다른 지역들보다 자본주의사상의 침습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도안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켜 자본주의병균에 오염되지 않게 할 데 대하여 강조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80(1991)년 12월 고전적 노작 ≪인민군대 중대정치지도원들의 임무에 대하여≫를 비롯한 여러 노작들에서 모든 군인들을 일당백으로 키우고 전군을 혁명화하여 인민군대를 불패의 혁명무력으로 강화할 데 대한 과업과 방도를 밝혀 주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1(1992)년부터 주체 82(1993)년 사이에만도 조선인민군 지휘관, 정치일군대회를 비롯하여 10여차례의 대회들을 진행하도록 하시어 전군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나가는데서 전환의 계기가 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79(1990)년 2월에 있은 당중앙군사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기회에 인민군대안의 정치사상교양사업의 기본방향을 뚜렷이 밝히시었으며 그 이듬해 12월 조선인민군중대정치지도원대회에서 하신 연설에서 관병일치, 군민일치의 미풍을 더욱 높이 발휘할 데 대하여서와 당원과 청년동맹원의 일치를 보장할 데 대한 독창적인 군건설사상을 밝혀 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군대의 중대를 강화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주체 80(1991)년에 조선인민군 중대장대회, 중대정치지도원대회, 사관장대회를, 주체 81(1992)년에는 중대사로청초급단체위원장대회를 소집하도록 하시고 중대의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한 강령적 지침을 안겨 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시장이 무너지고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우리 공화국에 대한 악랄한 경제적 봉쇄로 하여 경제적 난국이 조성된 어려운 조건에서 주체 79(1990)년 1월초에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17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제3차 7개년계획에 예견하였던 경제장성속도를 조절하고 경제규모를 줄이면서 그 어떤 환경에서도 자체의 힘으로 살아 나갈 수 있도록 나라의 경제적 자립성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에서 경제구조를 더욱 완비하며 대외무역에서 방향을 전환할 데 대한 혁명적 조치를 취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원회의에서 하신 결론 ≪증산과 절약투쟁을 힘있게 벌여 사회주의건설에서 대고조를 일으키자≫에서 중첩되는 난관앞에서 동요하지 말고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사회주의건설에서 다시 한번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킬 것을 호소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 맞게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앙양을 일으키기 위하여 주체 79(1990)년 5월 중앙인민위원회 제9기 제1차회의, 정무원 제9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연설, 4월 경제학자들과 하신 담화에서 정무원을 비롯한 행정경제기관들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고 사회주의경제의 본성에 맞게 주체의 사회주의경제관리 원칙과 방법을 철저히 관철하며 경제지도관리사업을 개선강화할 데 대한 방향과 방도를 뚜렷이 밝혀 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제3차 7개년계획의 성과적 수행을 위하여 전국생산혁신자대회전국농업대회, 전국전력공업부문 열성자회를 비롯한 부문별 대회열성자회의, 협의회 등을 연이어 소집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0(1991)년에 함흥시 6월 1일 전기기구종합공장과 흥남비료연합기업소, 용성기계연합총국을 비롯하여 함경남도만도 무려 세차례나 찾으시었다. 이해 8월말과 9월초에는 함경북도 무산광산연합기업소와 농업과학원 경성분원시험장, 회령식료연합회사, 온성군 왕재산협동농장, 경성군 일향협동농장을 비롯한 도안의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을 현지지도 . . .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밑에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중첩되는 난관과 시련속에서도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밑에 90년대속도창조운동을 힘있게 벌여 제3차 7개년계획을 빛나게 완수하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82(1993)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21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제3차 7개년계획 수행정형을 총화하시었으며 역사적인 결론 ≪당면한 사회주의경제건설방향에 대하여≫에서 농업제일주의, 경공업제일주의, 무역제일주의로 나가며 인민경제의 선행부문인 석탄공업과 전력공업, 철도운수를 확고히 앞세우고 금속공업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데 대한 새로운 경제전략을 제시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의 새로운 경제전략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하여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으로 사회주의총진군을 힘있게 다그치자!≫라는 혁명적 구호를 제시하시었으며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7차회의에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완충기(주체 83(1994)-주체 85(1996))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 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도록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79(1990)년 6월 역사적인 연설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철저히 관철하자≫에서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사회주의농촌테제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힘차게 나아갈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농촌에서의 사상혁명, 문화혁명, 기술혁명을 힘있게 밀고 나가면서 농촌수리화의 과업을 높은 수준에서 완성하기 위하여 대동강과 례성강, 압록강과 대령강을 하나의 대관개망으로 연결시키는 2천리물길을 새로 건설하는 방대한 공사를 주체 79(1990)년까지 완공하여 서부지구 곡창지대들에 관개수가 흘러 넘치는 천지개벽을 이룩하게 하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농촌테제발표후 30년간의 투쟁을 통하여 이룩된 성과와 사회주의농촌건설이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선 현실적 요구를 깊이 헤아리시고 주체 83(1994)년 2월 전국농업대회에 보내신 서한 ≪사회주의농촌테제의 기치높이 농촌문제의 종국적 해결을 위하여≫에서 사회주의농촌문제를 종국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명확히 밝히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협동적소유를 전인민적소유로 넘기는 사업을 군을 단위로 할 데 대한 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는 가운데 주체 83(1994)년에 평안남도 숙천군과 평양시 만경대구역의 협동농장들을 전인민적 소유로 넘기는 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교육에 관한 테제≫ 발표 15돌을 맞으며 교육부문에서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교육 내용과 방법을 개선하고 그 질적 수준을 높여 후대교육사업과 민족간부양성사업에서 커다란 전진을 이룩하도록 하시었다.

사회주의교육테제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통하여 우리 나라는 170여만의 인테리대군을 가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교육은 온 사회를 인테리화하는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의 과학기술을 최단기간에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주체 82(1993)년에 과학연구기관들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과학원을 새로 내오도록 하시었으며 과학연구사업을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를 실현하는데로 적극 지향시키고 나라의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에 올려 세우는데서 나서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성과적으로 해결해 나가도록 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2(1993)년 2월 문학예술부문에서 오랜 기간 일하면서 공로를 세운 일군들을 불러 주시고 당의 문예방침을 더 잘 관철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할 데 대하여 간곡히 교시하시었다. 그리고 나라의 체육발전을 위하여 체육교육을 강화하고 국방체육과 대중체육에 힘을 넣으며 국제경기들에서 우승하여 공화국기발을 휘날린 선수들을 높이 평가하고 내세워 주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사정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무상치료제를 계속 실시하며 당의 예방의학적 방침을 더욱 철저히 관철하도록 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민족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켜 민족의 유구성을 빛내이며 주체적 입장에서 민족사를 정립체계화하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81(1992)년 5월초 개성에 가시어 성균관을 돌아보시고 1,0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고등교육의 전통을 살려 경공업종합대학인 고려성균관을 내오도록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 82(1993)년 1월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에 의하여 왜곡되었던 단군과 고조선역사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강동군에 있는 단군릉을 발굴할 데 대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를 밝혀 주시었다.

그리하여 주체 82(1993)년 2월 단군의 유골과 유물이 발굴되고 최신형의 연대측정기구들에 의하여 그것이 5011년전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확증되었다. 신화적인 존재로만 전해 오던 단군이 실재한 인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단군이 평양을 도읍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첫 국가를 세웠다는 것이 확증됨으로써 평양이 우리 민족의 첫 발상지이며 단군은 조선의 원시조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2(1993)년 9월 몸소 현지에 나가시어 강동군 대박산기슭에 단군릉터를 잡아 주시었으며 단군릉건설과 관련하여 47차례의 귀중한 교시를 주시었다.

단군릉건설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주체 83(1994)년 10월초에 후세에 길이 빛날 국보로, 노동당시대의 대기념비적 창조물로 최상의 수준에서 훌륭히 완공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구려의 건국시조 동명왕릉과 고려태조 왕건왕릉도 훌륭히 개건하도록 하시었으며 개건된 능에 친필비문을 세우도록 하시었다. . . .

우리 나라 원시사회의 전모가 밝혀지고 고조선중심의 고대사와 고구려중심의 중세사체계가 세워 지게 되었으며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전통에 기초한 고대사, 중세사체계가 전면적으로 정립되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2(1993)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6차회의에서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더욱 개선강화할 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도록 하시었으며 이듬해 4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7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화유물보호법을 채택하도록 하시어 민족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고 옳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법적 담보를 마련해 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이룩하시려는 온 민족의 절절한 염원을 반영하여 주체 79(1990)년 1월 1일 ≪신년사≫와 5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회의에서 1990년대를 역사적인 조국통일의 연대로 되게 할 데 대하여 호소하시었으며 주체 79(1990)년 8월과 주체 80(1991)년 8월에 발표하신 노작 ≪온 민족이 단결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기자≫,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에서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었다. . . .

나라가 분열된 후 45년만에 처음으로 주체 79(1990)년 8월 해내외통일운동단체대표들과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백두산정에서 진행된 범민족대회개막백두-한라대행진출정식, 판문점에서 진행된 제1차 범민족대회는 민족대단결로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되었다.

북과 남, 해외에서 동포들사이의 여러 가지 접촉과 교류, 통일행사들이 성대히 진행되었으며 주체 79(1990)년 11월에는 애국적인 통일운동조직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결성되고 뒤이어 주체 81(1992)년 8월에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이 결성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적 단합과 통일의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남조선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을 성사시키기 위한 가능한 모든 대책과 조치를 취하시었다. 그리하여 주체 82(1993)년 3월 신념과 의지의 화신인 비전향장기수 이인모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남간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우며 남조선괴뢰도당의 유엔단독가입책동을 짓부시기 위한 투쟁을 진공적으로 벌이도록 하시었다. 그리하여 주체 80(1991)년 9월 유엔총회 제46차회의에서 우리 나라가 유엔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이해 12월 제5차 북남고위급회담에서는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고 뒤이어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발표되게 되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안팎의 분열주의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책동으로 하여 또다시 긴장상태가 격화되고 조국통일의 앞길에 엄중한 난국이 조성된 시기인 주체 82(19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에서 민족단합의 정치강령이며 조국통일의 대헌장인≪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발표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 취하신 중대조치에 따라 주체 83(1994)년 6월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이 진행되고 북남최고위급회담을 평양에서 7월 24일부터 27일까지 개최할 데 대한 합의서가 채택되게 되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80(1991)년 4월 평양에서 진행된 국제의회동맹 제85차총회 개막회의에서 하신 연설 ≪자유롭고 평화로운 새 세계를 위하여≫에서 제국주의의 침략과 전횡을 막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자주성을 견지하고 힘의 정책을 반대하여 국제적인 공동투쟁을 힘있게 벌일 데 대하여 호소하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며 반제자주역량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하여 주체 80(1991)년 10월(4일~13일)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방문하시었다. . . .

주체 81(1992)년 4월 위대한 수령님 탄생 80돌을 축하하기 위하여 평양에 온 각국 공산당, 노동당들과 진보적정당 대표들은 사회주의조선의 참모습을 목격하고 조선식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해야만 승리할수 있다는 것을 더욱 굳게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회주의운동을 재건하며 사회주의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 나가기 위한 공동투쟁강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주체 81(1992)년 4월 혁명적 당들의 평양회합을 가지고 ≪사회주의위업을 옹호하고 전진시키자≫라는 역사적인 평양선언을 채택발표하였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세계 진보적 인민들의 자주적인 지향과 격변하는 국제정세를 깊이 통찰하시고 블럭불가담운동을 계속 강화발전시켜 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여느해와 마찬가지로 주체 83(1994)년 새해도 자신께서 나라의 왕으로 내세워 주시고 제일 사랑해 주시는 학생소년들과 함께 맞으시었다. . . .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해 심장병을 앓으시는데다가 눈수술까지 받으시어 안정치료를 받으셔야 하였지만 의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쉬임없이 혁명활동을 벌이시면서 앞날의 일을 미리 예견하신듯 모든 부문의 사업을 하나하나 깨끗이 마무리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해의 역사적인 신년사를 하신 데 이어 2월과 3월에 전국농업대회, 전당당세포비서대회, 전국석탄공업일군대회를, 그후 조선소년단 제5차대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를 마련하시고 대회참가자들에게 서한과 축하문을 보내주시었으며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 청소년학생들이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두리에 일심단결하여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힘차게 투쟁해 나가도록 불러일으키시었다. . .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뜻깊은 4월 25일 주체혁명위업수행의 주력군이며 혁명의 기둥인 조선인민군 창건절을 맞으며 인민군지휘성원들을 만나시어 전군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 조국통일과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할 데 대한 강령적인 교시를 주시었다. 그리고 5월에는 총련의 한 책임일군을 만나주시고 우리 서로 혁명을 위해 오래오래 함께 살자고, 신심을 가지고 병치료를 잘하라고 다정히 말씀하시며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베풀어주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조국의 융성번영을 이룩하며 인민들에게 보다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 주시기 위하여 농장의 포전길을 쉬임없이 걸으시면서 6월에는 무더운 날씨도 마다하시지 않고 온천군 금당협동농장과 평양시 대성구역의 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제건설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기 위하여 7월 5일과 6일 이틀간에 걸쳐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소집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역사적인 결론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새로운 혁명적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에서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반공화국책동과 우리 나라에 대한 고립압살, 제재책동을 짓부시고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더욱 빛내이기 위하여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기 위한 부문별 과업과 방도들을 밝혀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역사적인 교시는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경제적 봉쇄에도 끄떡하지 않고 사회주의경제건설을 힘있게 다그쳐 나갈수 있게 하는 경제건설강령이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기신 마지막유훈교시로 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민족지상의 최대과업인 조국통일과 온 세계의 자주화위업의 실현을 위하여 이해 4월세계 여러 나라 전직 국가 및 정부 수반, 정치인들의 평양방문단 성원들을 만나주시고 꾸바 쁘렌싸 라띠나통신사 사장과 미국 ≪워싱톤타임스≫기자단, 미국 씨엔엔텔레비죤방송회사 기자단, 일본방송협회 기자단이 제기한 질문에 대답을 주시었으며 6월에만도 꾸바여성법률가와 벨지끄노동당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하여 18개의 외국 대표단과 인사들을 접견해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6월 16일과 17일 량일간에 걸쳐 평양에 찾아 온 전 미국대통령 카터를 만나주시고 미국의 ≪특별사찰≫과 ≪제재≫문제에 언급하시면서 미국이 우리 나라의 ≪핵문제≫를 유엔에 끌고가 우리에게 제재를 가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제재를 받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며 살아왔지 제재를 받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다, 우리는 미국이 제재조치를 취소시켜도 좋고 안 시켜도 좋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었다. . . .

카터는 귀국도중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일성주석님은 매우 정력적이고 지혜로우시며 모든 문제에 대하여 세심하고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시었을 뿐 아니라 너그러우신 분이라고 하면서 ≪김일성주석은 마치도 미국의 초기대통령이며 가장 명망이 높았던 죠지 워싱톤, 토마스 제퍼슨, 아부라함 링컨 모두를 합친 종합체와도 같은 걸출한 분이시다≫라고 높이 격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카터와의 회담을 통하여 핵문제와 관련한 조미회담과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여 놓으시었다.

한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6월 20일부터 7월 5일까지사이에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하여 수십차례의 가르치심과 10여건의 친필교시를 주시었다. 7월 6일에는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와 전화로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토의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7월 7일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날에도 순간의 휴식도 없이 긴장하게 사업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이른 새벽부터 집무를 시작하시어 정해진 산책시간마저 바쳐 가시며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건을 한자한자 다듬어 완성하시고 활달하신 필체로 ≪김일성 1994. 7. 7≫이라는 역사적인 친필을 남기시었다. 그리고 오전 10시에는 한일군을 부르시어 일기예보에서 많은 비가 내리겠다고 하는데 직접 현지에 나가서 수위와 댐상태를 알아보고 올 데 대하여 이르시었으며 이어 오후날씨를 알아보시고는 큰 강들과 저수지들에서 수위가 넘쳐 나지 않도록 비상대책을 세울 데 대하여 가르치시었다. 오후 3시 55분에는 한 일군에게 카터의 우리 나라 방문 후 동향과 일본의 정세에 대하여 분석해 주시면서 외교사업을 잘할 데 대하여 가르쳐 주시었으며 4시 9분과 5시 25분, 5시 37분에는 해당 일군들에게 전화를 거시어 전력문제를 비롯한 혁명적 경제전략관철에서 나서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저녁 7시 30분경에 5분도 되나마나하게 식사를 하시다말고는 또다시 집무실로 들어 가시어 문건을 보시면서 어떤 대목에는 밑줄을 그으시고 어떤 대목에는 여백이 모자라게 가필하시면서 밤이 깊도록 집무에 전념하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듯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쌓이고 쌓인 정신육체적 피로도 푸실 사이 없이 생을 마치는 마지막순간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다가 주체 83(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집무실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서거는 우리 민족이 반만년역사에서 처음으로 당한 최대의 국상이었고 그 무엇으로써도 만회할 수 없는 가장 큰 상실이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서거하시었다는 비보는 7월 9일 낮 12시 중대방송으로 온 나라, 온 세상에 전해 졌다. . . .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민족의 어버이로 혁명의 수령으로 모시고 보람찬 삶을 누려 온 우리의 노동계급과 협동농민들, 인민군장병들과 지식인들, 청년학생들과 어린이들,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모두가 상제가 되어 낮에 밤을 이어 위대한 수령님의 영구와 동상, 혁명사적기념비들을 찾아 호상을 섰고 가장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며 끝없이 추모하였다. 애도기간 (7월 8일~20일)에만 하여도 무려 연 2억 1,200여만명의 각계층 인민들과 군인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추모하여 조의를 표시하였다.

7월 19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는 어버이수령님과의 영결식이 엄숙히 거행되었다. 어버이수령님의 영구를 모신 행렬의 선두차에는 수령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태양상이 모셔져 있었다.

100여리 연도좌우에 겹겹이 늘어 선 200여만의 수도시민들은 가슴을 치고 땅을 치며 오열을 터쳤으며 ≪어버이수령님! 가시만 안됩니다. 수령님께서 가시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랍니까.≫라고 목놓아 통곡하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영결하였다.

20일에는 김일성광장에서 중앙추도대회가 엄숙히 거행되고 동시에 전국의 모든 지방들에서 추도식이 진행되었다.

남조선 청년학생들과 재야인사들, 광범한 인민들은 적들의 파쑈적인 폭압속에서도 굴함없이 각지에 분향소와 제단을 꾸려놓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였으며 추도모임을 가지었다. 대학들에 애도의 뜻을 표시하는 대자보가 게시되고 각지에 수만매의 삐라들이 뿌려졌으며 여러단체들과 각계인사들이 애도성명을 발표하고 합법적 및 비합법적인 경로를 통하여 수많은 조전과 추모의 글발들을 보내여왔다. 감방안에서도 애도단식투쟁이 벌어졌다. . . .

세계 정치원로이시며 자주시대의 걸출한 수령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서거에 대한 비보에 접하여 중국, 꾸바, 캄보쟈를 비롯하여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국가 및 정부 수반들과 정당지도자들, 각계 인사들, 광범한 인민들이 진심으로 되는 애도의 뜻을 표시하면서 4,000여건의 조전을 보내어오고 3,300여개의 화환을 진정하였으며 우리 나라 대사관, 대표부, 영사관을 조의방문하였다.

20여개의 나라와 국제기구들에서 애도의 날과 애도기간을 정하고 조기를 띄웠으며 160여개 나라에서 추모행사가 진행되었다.

지어는 미국대통령을 비롯하여 정치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의 현직, 전직 대통령, 수상들과 자본주의나라 고위정객들, 어용출판물들도 공개적으로 애도의 뜻을 표시하였다.

유엔사무총장과 유엔총회의장도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였으며 유엔본부청사에 조기까지 띄웠다. 이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와 관련하여 애도기간 세계 120여개 나라에서 700여개의 출판보도물이 특집을 조직하였으며 200여개의 통신, 방송이 연 2,200여회에 걸쳐 특별방송을 하였다. .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는 위대한 영도자,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인간이시었으며 위대한 철학가, 위대한 정치가, 위대한 군사전략가, 위대한 영도예술가이시었다.

천재적인 사상이론과 비범한 영도력, 고매한 덕성과 뛰어난 인품, 소탈한 품성과 검소한 생활에 이르기까지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풍모와 거룩한 영상은 역사가 일찍이 알지 못하는 특출한 위인상으로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찌기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어 일제와 미제를 반대하는 두차례의 혁명전쟁과 두 단계의 사회혁명, 두차례의 복구건설사업과 여러 단계의 사회주의건설사업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심으로써 낙후한 식민지반봉건국가였던 우리 나라를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강국으로 일떠세우시었으며 온 세계의 자주화위업 수행에 불멸의 공헌을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민위천≫, ≪이신위민≫의 임념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하늘같이 여기고 인민을 위해 한평생을 다 바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을 광복하신 후 반세기동안에만도 8,000여차에 1만 8,000여개의 단위를 찾아 55만여키로메터의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계자주화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면서 국가수반, 당수반, 정부수반을 비롯하여 연 7만여명의 외국손님들을 접견하시었으며 50여차에 연 80여개나라들을 공식 및 비공식 방문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혁명위업과 세계자주화위업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으로 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원수칭호와 공화국영웅칭호(3차), 노력영웅칭호를 받으시었다. 그리고 70여개 나라와 국제기구들로부터 180여개의 최고훈장과 메달, 30여개 도시의 명예시민칭호, 외국의 이름있는 20여개 대학들에서 명예교수와 명예박사 칭호를 받으시었으며 170여개 나라 당 및 국가, 정부 수반들, 진보적 인민들로부터 축원의 마음이 깃든 16만 5,000여점의 선물을 받으시었다.

중국과 몽골에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건립되고 세계적으로 ≪국제김일성상≫이 제정수여되고 있으며 세계 100여개 나라 480여개의 거리, 기관 단체들에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졌다.

108개 나라 출판사들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고전적 노작들이 63개의 민족어로 번역출판되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쌓아올리신 혁명업적은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불멸할 것이다.

선대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효와 가장 숭고한 공산주의적 도덕의리를 지니신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주체의 태양으로 영원히 모시려는 우리 인민과 세계 혁명적인민들의 한결같은 염원과 의지를 반영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랜 기간 계시면서 집무를 보신 금수산의사당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금수산지구를 주체의 최고성지로 최상의 수준에서 꾸리고 금수산기념궁전에 어버이수령님을 생전의 모습으로 모시어 영원히 인민들과 함께 계시게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자!≫라는 신념의 구호를 제시하시고 수령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도록 하심으로써 우리 당과 인민이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위대한 수령으로 대대손손 영원히 높이 받들어 모시고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과 불멸의 업적을 만대에 길이 빛내어나가며 혁명과 건설을 수령님의 뜻대로, 수령님식으로 해나가게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일인 4월 15일을≪태양절≫로 기념하고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주체년호≫를 제정하도록 하시었으며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우리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헌법에 명기하게 하시었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의 사상으로 더욱 빛나고 있으며 경애하는 수령님의 영도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탁월하고 세련된 영도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우리 당과 인민의 최고수위에 계시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천세만세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며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의 뜻이 꽃 펴나는 김일성조국, 김일성민족의 무궁번영속에 김일성동지의 혁명역사는 계속 흐르게 될 것이다.

 

This counter provided for free from HTMLcounter.com! copyleft © 통일여명 편집국
이 문서는 Internet Explorer v5.0을 기준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