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27일

통일여명 편집국

주체정치경제학 1

통일여명 편집국 해설 5-2-13

 

* 맑스주의잉여가치학설을 설명하기 위해 ≪알기 쉬운 정치경제학≫을 상세히 발췌, 소개함.

1. 상품과 화폐

1) 상품생산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징은 첫째로, 사람들의 노동력까지도 상품으로 되어 자본가들이 임금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 . . 둘째로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컨대 구두, 의복, 식량, 책상, 연필 등을 비롯하여 이것들을 생산하는데 소요되는 기계, 설비, 원료 등 모든 것을 상품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 . . 셋째로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존재이다. 아무리 분업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각종 생산수단과 그것으로 생산해낸 각종 생산물이 각개인의 사적 소유가 아니라면 교환이 있을 수 없다. . . . 이처럼 사회적 분업이 있고 또한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있는 경우에는 상품생산이 있게 된다.≫

2) 상품과 그 속성

물건상품으로 되자면 우선 그 물건이 사람의 어떤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 쓸모가 있어야 한다.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라면 누구도 요구하지도 사지도 않을 것이며 상품으로 될 수 없다. 예컨대 쌀은 굶주림을 면하게 하며, 의복은 추위를 막아주며, 만년필은 글을 쓰는데 사용하며, 기계는 물건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쌀의 사용가치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것이고 의복의 사용가치추위를 막아 준다는데 있다. 이처럼 물건이 상품으로 되자면 우선 일정한 쓸모, 유용성사용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 . . 그런데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모두가 상품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공기나 샘물, 야생과실 같은 것들도 모두 인간생활에 매우 유용한 쓸모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단 십분 만이라도 공기가 없다면 살수 없으리 만큼 커다란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상품으로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간의 노동을 들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구태여 누구도 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 . . 그런데 물건이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이 노동생산물이라고 해서 모두 상품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농민의 노동생산물로서 자기가 소비하거나 지주에게 빼앗기는 곡식은 상품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노동생산물이기는 하나 판매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이 상품으로 되자면 사용가치와 함께 그것이 판매를 위하여 생산된 생산물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물건과 교환되어야 한다. 상품이 가지고있는 이러한 성질을 교환가치라고 한다. . . . 우리가 시장에 나가 보면 어떤 사용가치를 가진 한 종류의 물건이 다른 사용가치를 가진 다른 종류의 물건과 교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양복 한 벌이 구두 두 켤레와 교환된다고 하면 이 경우에 양복 한 벌의 교환가치구두 두 켤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양복 한 벌이 구두 한 켤레나 세 켤레와 교환되지 않고 두 켤레와만 교환되는가? 그것은 그 물건들이 가지고 있는 사용가치가 같기 때문이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이것들은 바로 사용가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교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양복을 같은 양복과 바꾸거나 구두를 같은 구두와는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양복과 구두의 교환에서 한 벌과 두 켤레라는 양적 비율은 무엇에 의하여 결정되는가? 그것은 이 상품들을 만드는데 들인 노동의 양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즉 양복 한 벌을 만드는데 들인 노동의 양과 구두 두 켤레를 짓는데 들인 노동의 양이 서로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품들을 서로 교환할 때에는 그것을 만드는데 들인 인간들의 노동의 양이 서로 비교되고 그것에 의해서 일정한 교환비율이 결정되게 되는 것이다. . . . 우리는 상품을 만드는데 들인 인간의 노동상품의 가치라고 한다. 한 상품과 다른 상품이 어떤 비율로 교환되는가 하는 것은 매개 상품을 생산하는데 들인 노동의 양 즉 상품의 가치의 크기에 달려 있다. 즉 교환되는 상품의 가치가 큰가 적은가에 따라 교환의 비율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상품이 교환되는 비율을 말하는 교환가치가치의 크기를 나타내주는 형태(표현형태)인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상품이 사용가치와 함께 교환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알았고 교환가치의 연구를 통하여 상품이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상품의 교환가치라는 것은 그 상품의 가치를 표현해 주는 형태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리하여 결국 상품은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두 가지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상품의 두 요소, 즉 상품의 속성이다.≫(상품의 사용가치와 가치)

≪상품이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두 요소 또는 이중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성질을 연구 분석하여야 한다. 마르크스는 상품이 이중성을 가지는 것은 바로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이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면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이중성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각각 그 목적, 그 목적을 이룩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노동도구와 원료, 노동행정이 서로 다르고 지출하는 노동의 형태가 서로 다르다. 예컨대 목공은 톱, 자구, 대패, 망치 등을 가지고 나무를 베고 깎고 밀어서 책상과 의자 등을 만들어 내는데, 재봉사는 가위, 재봉침, 바늘과 실 등을 가지고 천을 베고 누비고 꿰매어 옷을 만든다 이리하여 매개 상품에는 일정한 종류의 노동이 깃들게 된다. 즉 책상이라는 사용가치에는 목공의 노동이 깃들어 있고 의복이라는 사용가치에는 재봉사의 노동이 깃들어 있다 . . . 이러한 노동을 구체적 노동이라고 한다. 구체적 노동은 상품의 사용가치를 만들어 낸다. 상품의 사용가치를 만드는 노동이 구체적 노동이라면 가치를 만드는 노동은 어떠한 노동이겠는가? 서로 다른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점에서 각각 서로 다르다. 그러나 모든 노동들에는 공통점도 있다. 예컨대 제화공이나, 목공이나 재봉사나 할 것 없이 그들이 노동할 때에는 모두 다 두뇌를 쓰며 신경을 쓰며 근육과 손을 움직인다. 즉 을 쓴다. 이것이 바로 모든 노동에 공통된 점이다. . . . 이와 같이 모든 상품생산자들의 노동이 이러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본 노동을 추상적 노동이라고 한다. 추상적 노동은 상품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치란 그 상품에 깃들어 있는 인간의 노동이라고 할 때 이 노동은 추상적 노동을 말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상품들을 생산하는 노동이 바로 추상적 노동이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공통성에 기초하여 사용가치가 서로 다른 상품들이 서로 비교될 수 있고 그들 사이에 일정한 교환비율이 설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품교환에서는 그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추상적 노동의 크기가 대비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품생산자들의 노동은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이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노동에 의해서 생산되는 상품도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이중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왜 노동이 이중성을 띠게 되는가? 생산수단이 사적 소유로 되어 있는 사회에서 노동이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이라는 이중성을 띠게 되는 것은 바로 상품생산자들이 상품생산에 들이는 노동이 사적 노동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사회적 노동이라는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이 사적 소유로 되어 있는 사회에서 상품생산자들의 노동은 우선 사적 노동이다. 개개의 상품생산자들은 자기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자기 개인의 계획에 따라 제각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 생각대로 노동한다. 이로부터 그들의 노동은 사적 노동으로 된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편 이러한 상품생산자들의 노동은 사회적 노동이다 상품생산자들은 각각 어떤 한 종류의 물건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낸다. 예컨대 제화공은 구두를, 재봉사는 옷을, 목공은 책상을, 농민은 곡물을 낸다. 그러나 이 물건들은 자기가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팔기 위한 것들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쓸 물건을 만들어 내며 또 다른 사람이 만들어 낸 물건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서로 밀접한 연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의 노동을 본다면 각자의 노동은 사회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노동의 한 부분씩을 제각기 뜯어 맡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상품생산자들의 노동은 사적 노동이면서 그와 동시에 사회적 노동인 것이다. 상품생산의 모순은 바로 사회적 성격을 띤 노동 즉 사회적 노동이라는데 있다. 상품생산자들은 생산수단을 제각기 소유하고 서로 분리되어 노동하고 있기 때문그들의 노동이 직접 사회적으로는 나타날 수 없다. 오직 상품을 시장에서 서로 교환하는 때에만(상품의 가치를 만드는 추상적 노동을 서로 비교하게 되는 때에만) 그들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인지, 또 사회적으로 얼마만큼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노동인지 나타나게 된다. 만약 어떤 구두생산자가 자기 마음대로 구두를 지어 가지고 시장에 팔러나갔을 때 누구도 사가는 사람이 없다면 그 구두를 만드는데 들인 노동은 사회적으로 쓸데없는 것으로 되고 만다. 따라서 그 노동은 사회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되며, 헛수고를 한 이러한 상품생산자들은 마침내 영락될 운명을 지니게 된다. 반면에 사회에서 요구되며 잘 팔리는 상품을 생산자들은 자기의 상품을 유리하게 판매하여 부유해진다 여기에 바로 상품생산자들의 노동이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고 그것이 그들의 사적 노동과 모순된다는 것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생산수단이 사적 소유로 되어 있는 상품경제에서는 사적 노동과 사회적 노동간의 모순이 있고 그것은 수많은 생산자들을 영락시키는 반면에 남보다 유리한 생산조직을 가지고 있는 몇몇 상품생산자들만을 부유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상품의 가치는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인간의 노동인 만큼 그의 크기그 상품을 만드는데 들인 노동의 양에 하여 결정된다. 노동의 양은 노동시간으로 나타난다. 즉 노동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상품의 가치는 커지고 반대로 노동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상품의 가치는 적어진다. 그렇다면 상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게으르고 늦잠을 부리면 부릴수록 상품의 가치가 더욱 커지는 것으로 되겠는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 . . 상품가치의 크기는 매개 생산자들이 저마다 상품을 만드는데 들인 개별적인 노동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상품을 만드는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사회적으로 보통 정도의 생산조건평균적인 기술수준, 평균적인 숙련과 평균적인 노동강도 면에서 상품을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말한다 가령 구두가 100만 켤레 생산되었는데 그중 10만 켤레는 한 켤레당 10시간, 80만 켤레는 8시간, 나머지 10만 켤레는 6시간씩 각각 들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구두 100만 켤레를 만드는데 들인 총노동시간은 800만 시간(10시간×10만)+ (8시간×80만)+ (6시간×10만)이다. 이 경우에 구두 한 켤레를 만드는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은 구두 100만 켤레에 총 800만 시간이 들었으므로 한 켤레 당에는 8시간이 든 것으로 된다. 그러므로 어떤 상품생산자가 한 켤레 당 개별적 노동시간을 10시간을 들여서 구두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는 8시간으로밖에 평가되지 않는다. 바로 이와 같이 상품가치의 크기는 개별적 노동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노동생산능률이 달라짐에 따라 변한다. 노동생산능률이라는 것은 단위시간, 예컨대 한 시간동안에 들인 노동의 효과성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단위시간에 같은 힘을 들이고 얼마만한 양의 물건을 만들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생산능률은 생산도구를 개선하고 선진기술을 받아들이며 기능을 높이고 노동을 잘 짜는 것 등으로 높일 수 있다. 사회의 노동생산능률이 높아지면 한 상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이 줄어지고 따라서 그 상품의 가치는 적어진다. 예컨대 종전에는 한시간에 만년필 한개를 만들던 것을 새 기준을 받아들여 가지고 이번에는 같은 한시간에 두개의 만년필을 생산하게 되었다면 노동생산능률은 두 곱으로 높아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만년필 한개를 만드는데 드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은 절반으로 줄어가고 만년필의 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노동생산능률을 노동강도와 구별하여야 한다. 노동강도라는 것은 단위시간에 들이는 노동의 양을 말한다. 예컨대 같은 시간에 2배가 되는 노동을 들였다면 노동강도가 2배로 높아진 것이다. 노동강도는 단위상품의 가치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예컨대 종전에는 한시간에 만년필 한개를 생산하던 것을 노동강도를 2배로 높여 한시간에 두개의 만년필을 생산하였다면 만년필 한개를 만드는데 들인 노동시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고 따라서 한개 당 만년필의 가치는 종전과 같다.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기능수준은 다 같을 수 없다. 기능이 없는 사람도 있고 높은 기능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무런 기능도 없는 사람의 노동단순노동이라고 하며 높은 기능을 가진 사람의 노동복잡(숙련)노동이라고 한다. 예컨대 잡부의 노동은 단순노동이며 선반공의 노동은 복잡노동이다. 같은 시간 동안에도 복잡노동은 단순노동보다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므로 한시간의 복잡노동은 몇시간의 단순노동과 같은 것으로 평가되고 계산되게 된다. 그런데 생산수단이 사적 소유로 되어 있는 사회에서 복잡노동이 단순노동으로 환산(환산)되는 비율어떤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품생산지들의 뒤에서 수없이 거듭되는 상품들의 교환과정을 거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다.≫(상품가치의 크기)

노동가치설을 끝까지 과학적으로 논증하고 발전시킨 것은 마르크스였다. 물론 마르크스 이전에도 부르조아고전경제학의 대표자들인 월리암 페티,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르도와 같은 학자들은 자본주의사회의 경제현상을 연구하여 노동가치설의 단서를 열어 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부르조아지의 계급적인 제한성으로 말미암아 상품가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까지 수행할 수 없었다. 부르조아고전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를 영원한 사회제도로 보면서 자본주의가 상품생산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상품생산 역시 인류사회에서 영원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였다. 그들은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이중성을 볼 수 없었고 따라서 상품생산 발전의 경제법칙이 무엇인가를 밝혀내지 못하였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본주의사회의 보다 복잡한 현상들을 밝히는데 있어 일련의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계급투쟁이 첨예하게 되어 감에 따라 부르조아경제학자들은 과학적 양심을 완전히 저버리고 자본주의를 미화하며 그 모순을 가리우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궤변도, 거짓도 서슴지 않았다. 이리하여 속류경제학이 발생하였다. 속류경제학은 노동가치설을 극력 반대하였다. 그것은 상품의 가치가 노동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자본가가 차지하는 이윤도 노동자의 노동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오직 착취에 의해서만 이윤을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상품 및 가치에 관한 속류경제학자들의 이론에서 대표적인 것들은 수요공급설, 생산비설, 한계효용설 등이다. 수요공급설은 상품이 교환되는 비율의 기조에는 수요와 공급의 상호관계가 놓여 있다고 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가격(가치를 화폐로 표현한 것)의 기초에 놓여 있는 가치를 무시하고 여기에 겉에 나타나는 상품가격의 변동을 대치하는 이론이다. 이러한 이론으로써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되는 가격이 도대체 무엇을 중심으로 하여 끊임없이 움직이는가 또한 수요와 공급이 서로 일치되는 경우에 가격은 무엇에 의하여 설정되는가를 설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상품의 가격과 다른 상품의 가격 사이의 상호관계가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가를 전혀 밝혀 낼 수 없다. 이 이론은 사람들의 주의를 가격의 변동이라는 상품의 매매과정에서 겉에 나타나는 현상에만 돌리게 하고 가치가 창조되며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생산과정의 분석으로부터 물러서게 하려는 계획에 지나지 않는다. 생산비설에 의하면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들인 비용 즉 자본가가 그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입하는데 지출한 화폐액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다. 소위 이 이론은 한 상품의 가격을 다른 상품의 가격을 가지고 설명하려는 것이며 따라서 이것은 가격이 결국 무엇에 의하여 측정되는가를 밝힐 수 없게 한다. 또한 이 이론에 의하면 상품의 판매액이 그의 생산비와 일치하기 때문에 자본가의 이윤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설명할 수 없다. 널리 알려져 있는 속류경제학의 가치론의 하나는 소위 한계효용설이다. 이에 의하면 물건의 효용(효용)은 그 물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적어지고 상품의 가치는 그 마지막 공급량으로 충족되는 가장 낮은 효용 즉 한계 효용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결국 상품의 가치가 그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정도와 그의 희귀성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타당성을 갖는 상품의 가치, 교환가치와 같은 객관적인 것을 사람들의 주관적인 심리상태의 변화를 가지고 설명하려고 하는 것으로써 완전히 비과학적인 것이다. 이 밖에 속류경제학의 가치론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것들은 대체로 위에서 언급한 것들의 이러저러한 변종들에 지나지 않는다. 진실로 과학적인 가치론은 마르크스에 의하여 비로소 세워졌다. 마르크스는 처음으로 상품 속에 깃들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을 밝히고 노동가치설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상품의 가치란 무엇이고 그 크기는 어떻게 결정되었는가를 보았다. 그러면 상품의 가치의 크기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는가? 그것은 다른 상품과의 교환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치의 크기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상품가치를 표현하는 형태인 가치형태를 또한 고찰하여야 한다.≫(상품의 가치에 관한 부르조아 이론에 대한 비판)

3) 화폐

원시사회 말기에 처음으로 교환이 발생한 때에는 아직 화폐가 없었고 물건과 물건을 직접 바꾸는 물물교환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물물교환도 우연하게 진행되었다. 예를 들면 도끼가 우연히 신발과 교환되었다. 이 때에는 한 상품의 가치가 오직 다른 가치품에 의하여서만 표현되었다. 이러한 가치형태를 단순한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라고 한다. 여기서는 다만 두 가지 상품만이 서로 교환된다. 이것을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한 자루의 도끼 = 두 켤레의 신발, 여기서 도끼의 가치는 신발에 의하여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는 두 상품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 도끼는 능동적(능동적)으로 자기의 가치를 신발을 가지고 표현한다 신발은 피동적으로 도끼의 가치를 표현해 주는 수단으로만 되고 있다. 이 경우에 도끼의 가치는 신발이라는 다른 상품과 관계를 통하여 상대적으로만 표현된다. 때문에 도끼를 상대적 가치형태라고 한다. 반면에 도끼의 가치를 표현해 주는 역할을 하는 상품인 신발은 등가형태 또는 등가물(등가물)이라고 한다. 신발은 도끼의 등가물로 되고 있다. 이와 같이 눈으로 볼 수 없는 도끼의 가치의 크기가 신발이라는 물체를 통하여 표현된다. 상품교환이 발전하고 많은 상품들이 서로 교환됨에 따라 가치형태가 발전하였다.≫(단순한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여기서는 두 가지 상품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품들이 교환에 참가하는데 이것을 도식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한 자루의 도끼
= 두 켤레의 신발
= 한 벌의 옷
= 20킬로그램의 쌀
= 두 그램의 금 ...

여기서는 한가지 상품(도끼)의 가치가 다만 다른 한가지 상품(예를 들면 신발)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품들에 의하여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보다 발전된 가치형태를 전개된 가치형태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도 한 상품이 다른 상품과 직접 교환되는 물물교환이었다. 그러나 상품교환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상품과 상품이 직접 교환되는 것은 곤란을 발생케 하였다. 즉 도끼를 가진 사람은 신발과 바꾸려고 하는데 신발을 가진 사람은 도끼가 아니라 옷을 요구하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기게된 것이다 이로부터 보다 발전된 가치형태가 필요하게 되었다.≫(전개된 또는 확대된 가치형태)

≪상품교환에서 생기게 되는 이러한 곤란은 상품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해결되었다 물건을 보다 손쉽게 교환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기의 물건을 시장에 가장 자주 나타나는 상품들 중에서 누구나 받기를 좋아하는 상품과 먼저 교환하고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상품과 교환하였다. 가령 자주 교환하러 시장에 나타나고 누구나가 받기 좋아하는 것이 이라면 도끼를 가진 사람은 먼저 자기의 도끼를 쌀과 바꾸고 다음에 그 쌀을 가지고 신발과 바꾸면 되었다. 이 때 쌀은 도끼와 신발의 교환을 중개하여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품, 예컨대 쌀은 차츰 상품교환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이러한 특수한 상품인 쌀은 화폐의 싹으로서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해 주며 다른 모든 상품의 교환을 중개해 주는 일을 하게 된다. 이러한 가치형태를 일반적 가치형태라고 한다. 이것을 도식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두 켤레의 신발
한 벌의 옷
한 자루의 도끼
두 그램의 금 ...
등등

=
=
=
=

20 킬로그램의 쌀

 

여기서 쌀은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를 표현해 주는 일반적 등가물로 되고 있다. 이것은 쌀이 실제상 화폐와 같은 역할을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일정한 시기까지 이와 같은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하는 상품은 지방마다 달랐다. 어떤 지방에서는 쌀, 다른 어떤 지방에서는 소금 등으로 서로 다른 상품이 이러한 역할을 하였다. 상품생산이 더욱 발전하고 교환의 범위가 지방적 범위에서 전국적 범위로 확대됨에 따라 지방마다 일반적 등가물이 다르다는 것은 상품의 교환에 있어서 매우 곤란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차츰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하는 상품이 어떤 한가지 상품 즉 금 또는 은에 고착되어 갔다. 이렇게 하여 화폐적 가치형태가 발생하였다.≫(일반적 가치형태)

≪화폐적 가치형태를 도식적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두 켤레의 신발
한 벌의 옷
20킬로그램의 쌀 ...

=
=

두 그램의 금

 

여기서는 이라는 상품이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를 표현해 주고 상품의 교환을 중개해주는 일반적 등가물로 되고 있다. 이 때 이 금은 곧 화폐이다. 이렇게 금은 장구한 과정을 거쳐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면 금이 다른 모든 상품들을 물리치고 일반적 등가물의 역할을 독차지할 수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금의 자연적 속성이 이러한 일반적 등가형태의 역할을 하는데 매우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은 썩거나 변하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관하기 좋기 쉬우며 모든 부분들이 질적으로 같다는 데 있다. 이상에서는 본 바와 같이 화폐는 오랜 세월에 걸친 상품의 교환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화폐 그 자체도 여기 하나의 상품인 것이고 인간의 노동생산물인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신비성도 없다. 화폐도 역시 상품인만큼 그도 사용가치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화폐의 사용가치모든 상품의 가치를 측정해 주며 상품의 교환을 중개해 주는 등의 사회적인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있다. 화폐가치의 크기는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금을 생산하는데 들인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하여 결정된다. 계급사회에서 화폐는 착취의 도구로 이용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화폐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그러한 화폐를 자본이라고 한다.≫(화폐적 가치형태)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화폐란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치의 크기를 표현해주는 일반적 등가물이다. 이러한 화폐의 본질은 그 기능에서 나타난다. 발전된 상품생산사회에서 화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로, 화폐는 가치척도의 기능을 수행한다. 즉, 화폐는 모든 상품의 가치를 측정해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 . . 둘째로, 화폐는 유통수단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상품교환이 발생한 초기에는 한 상품이 다른 상품과 직접 교환되었다. 그 후 화폐가 생기게 되자 상품들은 화폐를 중개로 하여 교환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화폐를 중개로 해서 이루어지는 상품교환상품유통(매매)이라고 한다 . . . 이 기능은 가치척도의 기능과 더불어 화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 . . 처음에는 금 덩어리, 은 덩어리가 유통수단의 기능을 하였었다. 그 때에는 상품을 살 때마다 이 덩어리를 쪼개서 달아주고 또 받고 하였는데 그것은 매우 불편하였다. 때문에 다음에는 금, 은덩어리를 금화나 은화로 만들어서 돈으로 썼다. 이런 것이 주화이다. 주화는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절서 돌아다니는 동안에 마멸되어 무게가 처음보다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따라서 그 가치도 그만큼 감소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주화는 마멸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상품의 유통을 중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상품의 판매자가 화폐를 받는 것은 그 화폐를 가지고 다른 상품을 사기 위해서이므로 그 화폐를 가지고 다른 상품을 살 수만 있다면 그 화폐가 완전한 것이든, 어느 정도 마멸된 것이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유통수단의 기능을 수행하는 화폐는 반드시 완전한 가치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자본주의 국가의정부는 화폐를 주조할 때부터 일부러 그 주화에 찍힌 명목상의 가치보다 그 주화가 가지고있는 실제상의 가치를 낮춘다. 이리하여 주화는 금화로서 온전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차츰 가치를 나타내는 기호 즉 화폐기호로 되어 갔다. 가치기호 또는 화폐기호(화폐 표상)라는 것은 매우 적은 실제상 가치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또는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완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화폐의 대용물로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백 동전, 동전과 같은 보조화폐 또는 지폐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화폐가 유통수단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자 판매와 구매가 서로 분리되게 되었다. 상품생산자는 자기 상품을 판매하여 받은 화폐를 당장 다른 물건을 구매하는데 쓰지 않고 화폐를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만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경우에는 상품의 생산과 유통에 지장을 줄 수 있게 된다. 이리하여 화폐가 상품이 유통을 매개하는 유통수단의 기능과 관련하여 경제공황의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셋째로, 화폐는 축적수단의 기능을 수행한다. 즉 재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된다. . . . 사람들은 후에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하여 화폐를 축적해 둔다. 이렇게 되면 화폐는 일시 시장에서 떠나 유통을 멈추고 새로운 기능, 즉 축적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이렇게 유통에서 물러나와 축적되는 화폐를 퇴장화폐라고 한다. . . . . 넷째로 화폐는 지불수단의 기능을 수행한다. 상품생산이 발전함에 따라 현금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상, 즉 신용으로 상품을 거래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진다. 상품을 외상으로 거래하고 일정한 시일이 지난 후에 상품기능을 하는 것이다. 임금이나 세금을 지불하는 때에 쓰이는 화폐도 역시 지불수단의 기능을 하게 된다 화폐가 지불수단의 기능을 수행하게 됨에 따라 많은 상품생산자들이 서로 채권, 채무 관계를 가지게 되고 서로 의존성이 심해진다. 가령 갑이 을에게 500만원을 지불할 것이 있고 을은 병에게 500만원을 지불할 것이 있고 다시 병은 정에게 500만원을 지불할 것이 있는 경우에 갑이 약속한 제 기일에 화폐를 지불하지 못하게되면 을뿐 아니라 병이나 정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고 그 금액이 많을 때에는 이들 모두가 파산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화폐가 지불수단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자 이미 유통수단의 기능과 관련하여 나타난 경제공황의 가능성이 더욱 강화된다. 우리는 화폐의 유통수단지불수단의 기능을 고찰한 데서 상품유통에 필요한 화폐의 양을 알아 낼 수 있게 된다. 일정한 기간에 상품유통에 필요한 화폐의 양은 우선 유통되는 상품의 가격총액과 같아야 한다. . . . 다섯째로, 화폐는 자본주의국가들간에서 상품을 매매하며 채무를 지불하는데 사용된다. 이것을 세계화폐의 기능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유통되는 화폐만을 보았다. 그러나 상품의 생산과 교환이 발전함에 따라 국가들 간에 무역이 발생 발전한다. 이로부터 화폐는 국내유통의 범위를 벗어나 세계시장에 나타난다 이러한 세계시장에서 유통되는 화폐를 세계화폐라고 한다. 세계화폐의 기능은 오직 만이 할 수 있다.≫(화폐의 기능)

≪이상에서 우리는 화폐의 기능을 금만이 하는 것으로 보아 왔다. 그런데 오늘 어느 자본주의나라에서나 금화가 직접 유통하는 것이 아니라 지폐나 은행권이 유통되고 있다. 지폐국가가 발행하여 강제로 통용시키는 화폐기호이다. 지폐는 금과 태환되지 않으며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다. . . . 지폐는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품의 가치척도의 기능을 할 수 없다. 지폐는 아무리 많이 발행된다 하더라도 다만 상품유통에 필요한 금화의 가치를 대표할 뿐이다 만일 발행되는 지폐액이 유통에 필요한 화폐의 양과 일치할 때에는 지폐의 구매력은 금화의 구매력과 같다. 그러나 부르조아정부는 보통 국가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상품유통에 필요한 양 이상으로 많은 지폐를 남발한다. 그것은 특히 전쟁, 경제공황 기타 경제상태가 안정치 못할 때 더욱 심하다. 그러면 지폐가 과도하게 발행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지폐가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을 초과하여 발행되면 매 지폐단위(달러, 파운드 스틸링 등)는 보다 적은 양의 금을 대표하는데 불과하게 된다. 즉 지폐의 구매력이 감소된다. 가령 유통에 금화 50억원이 요구되는데 국가가 지폐를 100억원 발행했다면 지폐 2원에 의하여 금화 1원이 대표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상품의 가격이 2배로 올라가게 된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그러므로 지폐가 많이 발생되면 될수록 물가는 올라간다. 예컨대 이 땅에서 광복 후 통화는 3,207배로, 물가는 5,000배로 등귀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물가등귀에서 누구보다도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근로자들이다 노동자, 사무원들의 임금이 명목상으로 올라가는 경우에조차도 그것은 상품가격의 폭등을 따라가지 못한다. 여기서 이득을 보는 것은 자본가, 지주들이다. 이들은 상품가격이 뛰어오르는 것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지불하고 거기서 추가이윤을 얻어낸다. 바로 이와 같이 지배계급은 국가지출을 근로대중의 어깨 위에 넘겨씌우며 그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기 위하여 지폐의 남발을 이용하는 것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금과 지폐, 인플레이션)

4) 가치법칙

≪이제 우리는 상품의 교환이 어떠한 법칙에 의하여 발전하는가를 밝히기로 한다. 상품생산에 고유한 경제법칙가치법칙이다. 어떤 사회를 막론하고 상품생산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이 법칙이 작용한다. 그러면 가치법칙이란 어떠한 경제법칙인가? 가치법칙이란 상품의 교환이 상품을 생산하는데 들인 사회적 필요노동의 양에 의하여상품가치의 크기에 따라서 진행되는 상품생산의 경제법칙이다. 생산수단이 사적 소유로 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가치법칙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로, 가치법칙은 각이한 생산부문들 간에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분배되는 것을 자연발생적으로 조절한다. 생산수단이 사적 소유로 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매개 생산자들이 서로 남을 밀어 치우고 자기의 상품을 많이 팔아먹자고 하며 이익이 많이 나는 상품을 생산하려고 경쟁한다 여기서는 전체 사회적 범위에서 어떠한 계획성도 있을 수 없다. 매개 상품생산자들은 제각기 분화되어 각자의 계획에 따라서 독자적으로 생산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생산하는 상품을 사회가 얼마나 요구하는지 또는 자기와 같은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이 얼마나 더 있는지를 알 수 없고 모두 제멋대로 생산한다. 이런 조건에서 사회 전반적으로 생산을 자연발생적으로 조절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 곧 가치법칙이다. 그러면 어떠한 방식으로 조절하는가? 가치법칙은 상품의 교환이 그 상품의 가치에 따라서 실행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상품이 가치에 따라서 교환된다는 것은 상품의 가격이 그 상품을 생산하는데 지출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기초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상품이든지 그 소유자가 자기 마음대로 부르는 가격으로 팔리는 것이 아니다. 상품의 교환이 가치에 따라서 진행된다는 것은 매개 상품의 가격이 어떤 경우에나 항상 꼭 그 가치와 일치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격은 가치를 화폐로 나타낸 것이기는 하지만 가치와 꼭 일치할 수는 없다. 가격은 가치를 중심으로 하여 끊임없이 혹은 그보다 아래로 혹은 그보다 위로 오르내린다. 즉 가격은 가치를 중심으로하여 아래위로 배리한다. 이것은 상품의 가격이 그 상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관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가령 구두가 그에 대한 사회적 수요보다 더 많게 생산되었다며 그 가격은 내려가고, 반대로 되는 경우에는 그 가격이 올라간다. 이와 같은 가격의 변동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관계에 의하여 피할 수 없는 것인데 그 경우에 그 움직임이 어떠한 중심도 없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중심에는 그 상품의 가치가 놓여 있는 것이다.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이와 같은 가격변동을 통하여 가치법칙은 이러저러한 상품의 생산을 축소 또는 확대시키는 것이다. 만일 구두의 가격이 떨어지면 구두가 사회의 수요보다 더 많이 생산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와 반면에 가방값이 올라간다면 구두생산을 축소하고 가방생산에 쏠리게 한다. 이와 같이 상품의 가격은 가치보다 오른 것과 내린 것이 서로 상쇄되면서 결국은 가격이 가치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가치법칙은 상품생산자들로 하여금 기술과 생산력을 발전시키도록 자극한다. 매개 상품생산자들은 각각 그 생산도구와 설비, 기능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같은 상품을 만드는데도 들이는 노동시간이 생산자마다 서로 다르게 된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상품의 가치는 매개 생산자들이 저마다 들인 개별적 노동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만큼 기술기능이 높고 남보다 새로운 생산도구를 쓰는 상품생산자는 그만큼 더 큰 이득을 본다. 그것은 그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보다 적은 개별적 노동시간으로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상품생산자로 하여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도록 자극한다. 그 결과 자연발생적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자라게 된다. 셋째로, 가치법칙은 상품 생산자들의 분화를 통하여 자본가와 고용노동자를 낳는다. 즉 자본주의생산관계를 발생 발전시킨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유리한 생산조건을 가진 일부 생산자들은 이득을 보아 부유해지고 그렇지 못한 많은 상품 생산자들은 경쟁에서 지고 영락되고 만다. 소수의 부유한 상품생산자는 자본가로 되고 영락된 많은 상품생산자들은 드디어는 임금노동자로 굴러 떨어진다. 이와 같이 가치법칙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소상품 생산자들이 분화되어 각각의 관계를 발생 발전시키게 된다.≫

2. 자본과 잉여가치, 임금

1)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

≪우리는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생산을 밝히는데 들어서기 위하여 우선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제로 되는 상품생산과 자본의 시초축적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본가가 임금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며 잉여가치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상품생산이라는 점에 대해서 연구해야 한다. 그러면 자본주의사회란 어떠한 사회인가? 한마디로 대답한다면 자본주의사회는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사회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수단이 자본가의 사적 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기초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의 사적 소유이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여 임금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노동자는 자본가에게서 착취를 당하게 되는가? 그것은 노동자들이 아무런 생산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노예나 농노와 달라서 인격상으로는 자유롭다. 즉 자본가는 노동자를 노예나 농노처럼 인신적으로 예속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자기의 두 주먹 밖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무산자이기 때문에 자기의 노동력을 팔지 않는다면 당장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자본가에게 자기의 노동력을 팔고 고용되어 착취를 당하게 된다. 이로부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착취와 피착취,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맺어진다. . . . 그런데 노예사회나 봉건사회에서는 노예주나 봉건영주가 노예나 농노를 착취하는 것이 표면에 잘 드러나 누가 보아도 착취가 명백하며 따라서 착취를 은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임금을 지불하는 경우 마치 노동자는 노동한 만큼 전부 다 보수를 받으며 아무런 착취도 당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다만 착취가 은폐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면 자본가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며,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은 무엇인가?≫(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기초)

≪도대체 자본가들의 이득은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 . .
 

A

 

B

화폐 - 상품

......

상품' - 화폐'

(500만원) (500만원)

 

(550만원) (550만원)

여기서 구매한 상품 A의 가치가 증가되어 새상품 B로 즉 상품+ (상품)으로 전환된 것은 구매한 상품 A중에 어떤 특수한 상품 즉 그 주된 과정에서 가치를 창조할 뿐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소유자시장에서 바로 이와 같은 상품을 구매한다. 그러한 특수한 상품이 다름 아닌 사람의 노동력이다. 자본의 증가분은 바로 자본가가 노동력을 구매하여 이를 사용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의 증가분이 어디서 생기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인 것이다.≫(자본의 일반적 공식)

노동력이란 인간이 노동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말한다. 어떤 사회에 있어서나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의 노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사람의 노동력이 다른 모든 물건과 마찬가지로 상품으로 매매되고 있다. 그러면 노동력이 언제부터 상품으로 되었는가? 노예사회, 봉건사회에서는 노동력이 상품으로 되지 않았다. 노예나 농노는 노예주나 봉건영주에게 신분상으로 예속되어 있었으므로 그들은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었다 노예사회나 봉건사회들에서 노예와 농노가 매매되었지만 이것은 그들의 노동력이 매매된 것이 아니라 소나 돼지를 매매하는 것과 같이 그들의 몸뚱이 자체가 매매된 것이다 즉 그것은 인신매매였다. 이 경우에는 사람의 노동력이 상품인 것이 아니라 인간자체가 상품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력이 상품으로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선 노동력의 소유자가 누구에게도 신분상으로 예속되지 아니하고 자유로와야 하며 자기의 노동력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노동력의 소유자가 자기의 수중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은 봉건사회의 말기로부터 자본주의사회에 들어오면서 조성되었다.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팔고 자본가는 그것을 산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은 바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산다는 것을 말한다. 노동력을 구매한 자본가는 이것을 생산과정에서 사용하는데(즉 노동자를 부린다) 바로 이 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증가분이 생긴다. 그러면 노동력이란 어떤 상품이며 이것이 어떠한 특수한 상품이기에 가치의 증가분을 낳게 되는가? 노동력이라는 것도 역시 상품인 것만큼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치와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다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는데 들인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도 역시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노동력을 생산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노동력은 다른 상품과 달라서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력은 노동자의 산 실체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므로 노동자의 생존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노동력을 생산한다는 것은 곧 노동자의 생존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생활자료를 소비해야만 한다 즉 식료품, 의복, 신발, 주택 등을 가져야하며 소비해야한다. 그뿐 아니라 노동력이 계속 공급되기 위해서는 노동자 자신 뿐 아니라 그가 부양하는 가족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 . . 노동력의 가치에는 또한 체력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생활자료의 가치뿐 아니라 노동자나 그 가족의 문화적 수요, 즉 자녀의 교육비, 신문, 도서의 구입비, 영화 관람비 등등 최소 한도의 이러한 비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공업부문에서는 기계를 다를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기능노동자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능노동자일 경우에 한하여서는 그의 노동력의 가치에 기능을 습득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노동력의 가치란 한마디로 간단하게 말하면 노동자 자신과 그의 부양가족의 생활에 필요한 생활자의 가치와 같다.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존에 필요한 생활자료가 6시간에 생산된다고 하고 1시간에 50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창조한다고 하면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는 300원으로 될 것이다. 여기서 자본가는 노동력을 그 가치대로 하루에 300원에 사서 일을 시킨다면 노동자는 6시간만 일하면 자기 노동력의 가치를 보충하게 된다. 그러나 자본가는 6시간 동안만 일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 시킨다. 왜냐하면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하루 동안 샀기 때문이다. 가령 자본가가 6시간 동안만 일시키는 것이 아니라 12시간 동안 일을 시킨다면 노동자는 300원의 가치가 아니라 600원의 가치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자기의 가치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 그 이상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해 주는 특수한 능력(속성)을 가지고 있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사용가치그 노동력이 소비되는 과정(즉 노동자가 노동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가치를 보상할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속성)이다. 노동력이 바로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매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본을 증식시킬 수 있는 것이다.≫(상품으로서의 노동력)

2) 잉여가치의 생산은 자본주의기본경제법칙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매하여 그것을 사용한다. 즉 노동자를 공장에 데려다가 노동을 시킨다. 그런데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력을 소비해서 창조해 내는 가치는 그 크기가 같지 않다. 위의 예에서 본 바와 같이 노동에 의해서 창조된 가치는 노동력의 가치보다 크다. 자본가는 노동력의 가치에 대해서 지불하면서 노동자가 일한 전체 노동에 대해서는 지불하지 않았다. 즉 노동자가 그 노동으로 창조한 가치는 600원인데 자본가는 300원밖에 지불하지 않았다. 600원에는 자본가가 지출한 300원 외에 새로운 300원의 증가분이 더 불었다. 이 증가분이 바로 잉여가치이다. 잉여가치란 임금노동자가 자기의 노동력의 가치이상으로 창조하는 가치로서 자본가에게 무상으로 착취당하는 부분이다. 가령 자본가가 방직공장을 경영한다면 그 경우에 그는 우선 생산에 필요한 건물, 방직기계, 설비, 면사, 연료 등을 구입하며 또한 노동력을 구입한다.(즉 노동자를 고용한다) 위의 예에서와 같이 노동자가 자기의 하루생활에 필요한 생활자료를 생산하는데 6시간의 노동이 필요하고 1시간동안에 50원의 가치를 창조한다면 하루의 노동력의 가치는 300원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노동자를 300원에 고용한다. 만약 노동자를 6시간 일시켜 하루 동안에 노동자 1명이 1미터의 광목을 생산하였다면 이 광목의 가치에는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와 또한 노동자의 노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가치가 포함된다. 노동자는 1시간의 노동으로 50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창조하므로 새로운 가치는 300원(50원×6)이다. 따라서 소모된 생산수단의 가치 중 건물, 기계 등의 가치가 200원이고 면사, 연료 등의 가치가 1,000원이라고 하면 생산된 광목 10미터의 가치는 1,500원(소모된 생산수단의 가치 1,200원(200원+1,000원)+노동자가 창조한 새로운 가치 300원)이다. 그러면 자본가가 광목 10미터를 생산하는데 지출한 화폐는 얼마나 되는가? 생산수단에 1,200원(200원+1,000원),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300원, 합하여 1,500원이다. 즉 자본가는 1,500원을 지출하여 1,500원의 가치를 가지는 새 상품을 생산하였다. 이러하게 되면 노동자는 자기가 일한 만큼의 보수를 다 받지만 자본가는 한푼의 이득도 얻지 못하게 된다. 즉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가란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자본가가 생산을 하는 목적은 이득을 얻는데 있는 만큼 그는 노동자를 하루에 6시간만 일시키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12시간 또는 그 이상을 시킨다. 가령 12시간 동안 일시킨다고 하면 노동자가 생산하는 광목은 20미터(10미터×2)로 되며 그 가치는 3,000원(소모된 생산수단의 가치(l,200원×2)+노동자가 창조한 새로운 가치(300원×2))으로 된다. 자본가는 이 상품을 그 가치대로 판매하여 3,000원의 화폐를 받는다. 그런데 자본가가 광목 20미터를 생산하는데는 생산수단에 2,400원(1,200×2),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300원, 합하여 2,700원을 지출하였다. 이리하여 자본가는 300원(3,000-2,700)의 잉여가치를 얻게 되다. 이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일해서 창조한 전체 가치가 600원임에도 불구하고 임금으로 300원밖에 지불하지 않는데서 나온 것이다. 노동자 1명이 하루에 300원의 잉여가치를 생산했으나 그러한 경우에 자본가가 100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다면 자본가는 하루에 3만의 잉여가치를 얻을 것이다. 이로부터 잉여가치는 바로 자본가에게 고용된 노동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 잉여가치는 노동자를 착취한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아주 명백하다. 자본가의 기업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일(하루의 총 노동시간)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노동일의 한 부분(위의 예에서 13시간 중 처음의 6시간)은 필요노동시간이며, 노동시간의 다른 부분(위의 예에서 나중의 6시간)은 잉여노동시간이다. 필요노동시간에 지출하는 노동은 필요노동이며 잉여노동 시간에 지출하는 노동은 잉여노동이니 필요노동시간에는 노동자가 자기와 자기 가족의 생존에 필요한 생활자료의 가치노동력의 가치를 생산하며 잉여노동시간에는 자본가를 위하여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사람이 살아나가며 사회가 존재하고 발전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의 노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의 노동자본가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과정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과정이 두 가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노동자가 자본가의 명령과 통제 밑에서 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만 노동자의 노동 뿐 아니라 그 생산물도 자본가의 소유로 된다는 그것이다. 노동과정이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에서도 노동자의 노동이 싫증나는 일로, 무거운 고역인 것이다.≫(잉여가치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매개 사회라는 그에 고유한 기본경제법칙이 있다. 기본경제법칙이란 그 사회의 생산의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대하여 말하여주며 그 사회의 발전을 규정짓는 법칙을 말한다. 그러면 자본주의의 기본경제법칙이란 무엇인가? 자본가가 공장을 경영하는 것은 물건을 생산하여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잉여가치를 얻자는데 있다. 만일 노동자가 잉여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면 그의 노동이 아무리 사회에 유익한 노동이라고 해도 자본가에게는 필요없는 노동으로 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일정한 시간 자기를 위해 무상으로 노동하여 잉여가치를 만들어 주는 때에만 노동자를 고용한다. 잉여가치를 착취하여 재부를 모으려고 하는 자본기의 탐욕은 한정이 없는 것이다. 자연경제가 지배하던 시기에 노예소유자나 봉건영주가 노예나 농노의 잉여노동을 착취한 것은 자기의 소비와 사치를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치부에 대한 탐욕에는 일정한 제한성이 있었다. 이와는 달리 자본가는 임금노동자의 잉여노동의 생산물을 현물로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로 차지한다. 그리하여 화폐의 일부는 소비품과 사치품을 사는데 쓰고 다른 많은 부분은 자본에 덧붙여 이것을 끊임없이 불려 나간다. 그런 만큼 치부에 대한 자본가의 탐욕은 한이 없으며 실로 잉여가치에 대해서는 승냥이와 같은 탐욕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잉여가치의 생산은 자본가들의 생산의 목적이며 그 추동력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르크스≪잉여가치 학설사≫에서 ≪자본주의 생산의 항구적 목적최소한의 전대자본, 최대한의 잉여가치 흑은 잉여생산물을 생산하는데 있다≫고 지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잉여가치의 생산은 생산을 확대하고 임금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더욱 더 강화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잉여가치의 생산은 자본주의기본경제법칙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잉여가치의 생산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절대적 법칙이다≫고 썼다. 이 법칙의 본질은 생산의 화폐, 기술의 발전, 임금노동에 대한 착취의 강화에 의해서 보다 많은 잉여가치를 창조하도록 보장하는데 있다. 자본가들은 더 많은 잉여가치를 짜내기 위해서 서로 경쟁한다. 이 경쟁은 그들 상호간의 모순을 심각하게 하며 생산의 무정부성을 조장하며 생산의 순조로운 발전을 가로막는다. 이와 함께 그들은 더 많은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데서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계급적 모순을 날카롭게 하며 자본가를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혁명투쟁을 격화시킨다 이리하여 결국 자본주의의 멸망을 촉진시키게 된다. 이상에서 본 잉여가치에 대한 학설은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의 초석이다. 마르크스가 잉여가치를 발견하였기 때문에 온 세계의 노동계급은 처음으로 자본가가 노동자를 어떻게 착취하는가, 자본가의 착취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잉여가치학설은 노동계급이 자본가 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며 자본주의 제도를 전복하기 위한 투쟁에서 강력한 사상이론적 무기인 것이다.≫(잉여가치의 생산은 자본주의의 기본 경제법칙)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착취의 본질을 밝혔으므로 자본이란 무엇인가를 해명할 수 있다. 자본이란 임금노동자를 착취해 가지고 잉여가치를 낳는 가치이다. 그러나 부르조아경제학자들은 생산에 이용되는 모든 것이 다 자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현대의 각종 기계설비 등은 물론 심지어 옛날 원시인들이 쓰던 돌멩이나 막대기도 자본이라고 하며 또는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호미나 보습 같은 것도 모두 다 자본이라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돌멩이로 나무열매를 따던 원시인들도 자본가였어야 할 것이고, 자본가는 이 세상에 사람이 생겨나던 그때로부터 있어야 할 것이다. . . . 부르조아경제학자들의 이러한 허위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을 은폐하며 자본주의가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사회제도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 . . 또 부르조아경제학자들은 화폐 그 자체를 자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 역시 그릇된 주장이다 예컨대 어떤 노동자가 자기가 받은 임금을 가지고 신발을 구입했을 경우 노동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소비품을 사기 위해 화폐를 이용하였을 뿐이므로 그 화폐는 자본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자본가들이 화폐를 사용하는 목적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 있으며 잉여가치를 착취하는데 있다. 이와 같이 생산수단이나 화폐 그 자체가 결코 자본인 것은 아니다. 이것들이 오직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데 사용될 때 비로소 자본으로 되는 것이다. 자본은 단순한 물질이나 화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사회적 관계이며 자본주의사회에 고유한 생산관계자본가와 노동자간의 착취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청산되면 생산수단이나 화폐는 자본으로 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착취를 더욱 명백히 하기 위하여 자본을 불변자본가변자본으로 구분하였다. 자본가는 자본의 한 부분을 가지고 원료, 기계, 건물 등 생산수단을 구입하고 자본의 다른 한 부분을 가지고 노동력을 구입한다. 그런데 자본의 이 두 부분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데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생산수단은 그것이 파멸 또는 소비되는 정도만큼씩 자기의 가치를 새로 생산되는 상품에 옮겨 놓을 뿐이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구입하는데 지출된 자본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크기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자본부분을 불변자본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동력생산과정에서 자기의 가치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잉여가치도 생산한다. 따라서 노동력의 구입에 지출되는 자본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크기가 변한다. 즉 잉여가치만큼 증대된다. 그러므로 이 자본부분을 가변자본이라고 한다. 잉여가치는 결국 자본 전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노동력을 사는데 지출되는 자본,가변자본에 의해서만 창조되는 것이다. 이것은 잉여가치가 생산수단에 의해서는 창조될 수 없고 오직 노동자의 노동에 의해서만 창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산수단(불변자본)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조건으로 될 뿐이고, 노동력(가변자본)은 잉여가치의 창조자이다. . . . 잉여가치는 전체 자본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중에서 오직 가변자본에 의해서만 조성되는 것이므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정도가 얼마나 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가변자본과 그것에 의해서 창조된 잉어가치를 서로 대비하여 보면 된다.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관계를 백분율로 표시한 것이 잉여가치율(잉여가치/가변자본×100)이며 착취율이다.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정도는 잉여가치율로 표시된다. 앞에서 든 예에서 본다면 자본가는 한 노동자 당 가변자본에 300원을 지출하여 300원의 잉여가치를 얻었다. 이 경우에 잉여가치율은 100%이다. 즉 노동자는 100%의 착취를 당하였다. 잉여가치율은 노동자가 하루에 자기의 노동력의 가치를 보상하기 위해서 몇 시간 일하고, 자본가를 위해서 무상으로 몇 시간을 일하는가 다시 말해서 필요노동시간이 몇 시간이며 잉여노동시간이 몇 시간인가를 보여주다. 잉여가치율이 100%라는 것은 노동자의 노동이 절반은 필요노동이고 절반은 잉여노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잉여가치율은 잉여노동시간/필요노동시간×100으로 표시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잉여가치율은 계속 높아진다. 이것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자본의 본질)

≪마르크스의 잉여가치학설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을 낱낱이 폭로하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부르조아경제학자들은 갖은 방법을 다하여 이 학설을 반대하며 나서고 있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학설을 반대하는 그들의 이론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가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과 잉여가치의 원인을 어떻게 은폐하겠는가 하는데 목적을 두고있다.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하기 위한 그들의 주장의 하나는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를 그대로 두면서도 착취를 없앨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대중의 유족한 생활을 목적으로 투쟁하는 것은 공산주의자나 비공산주의자나 같은 것이며 양자간의 차이는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에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공산주의자는 생산수단의 공유화에 있고 비공산주의자는 소득분배에서 불평등을 제기하는데 의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경제기초를 이루고 있는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를 보존하며 자본주의 제도를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말살하려는 계급적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부르조아경제학자들은 잉여가치의 원천을 극력 은폐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속류경제학자인 세이의 소위 생산의 세 요소설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본가들이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 세이는 노동, 자본, 토지를 생산의 세 요소라고 하면서 이것들이 각각 가치의 원천이라고 한다. 이로부터 그는 이 요소들의 소유자인 노동자자본가토지소유자는 저마다 가치를 창조하는데 참가한 몫에 따라 소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노동자는 노동을 댄데 대하여 임금을 받고, 자본가는 자본을 댄데 대하여 이윤을 받고, 토지소유자(지주)는 토지를 댄데 대하여 지대를 받는다는 것이다. 자본가가 얻은 이윤은 바로 자본가가 가치를 창조하는데 기여한 댓가라고 한다.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자본가가 노동자들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사실 자본이 없이도 생산은 진행되었던 것이며 역사상 자본이 나타나기 전에 생산이 진행되었다. 오늘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자본가와 자본이 없이도 생산이 비할 바 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만 보아도 세이의 이론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른바 한계효용설의 대표자의 한 사람인 오스트리아의 부르조아경제학자 멤 바베르크는 이윤의 원천을 현재의 가치와 미래의 가치 간의 차이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는 자본가가 이윤을 얻게되는 것은 더 많이 미래의 가치를 위해서 현재의 가치를 당장 소비하지 않고 절약하여 생산에 이용한 대가라고 한다. 이 이론은 이윤을 자본주의 생산관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심리적 원인으로 설명하려는 것으로서 그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는 주장이다. 그리고 우리가 해명해야 하는 문제는 잉여가치(이윤)가 어디서 누구에 의하여 창조되는가 하는 문제이고 이미 창조된 것을 절약하는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이것도 역시 자본주의적 착취를 정당한 것으로 묘사해 보려고 애쓰는 부르조아변호론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 이 땅의 일부 경제학자들도 부르조아 경제이론을 이러저러하게 모방하면서 자본주의적착취관계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가의 이윤의 원천을 기업가의 창의와 자본가의 위험 부담에 대한 댓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내막을 은폐하며 나아가서는 미국 독점자본의 식민지 약탈과 예속자본가들의 치부를 정당화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에 대한 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의 왜곡)

3) 잉여가치율을 높이는 두가지 방법

≪자본가들은 잉여가치에 대한 한없는 탐욕을 채우려고 온갖 방법을 다 쓴다. 그들은 잉여가치를 더 짜내기 위해서 두가지 방법을 이용한다. 하나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서 자본가는 더 많은 잉여가치를 짜내기 위해 우선 노동일을 연장한다. 가령 노동일이 12시간인데 그중 6시간이 필요노동 시간이고 나머지 6시간이 잉여노동시간이라고 하면 잉여가치율은 100%(잉여노동시간 6시간/필요노동시간 6시간×100)이다. 자본가가 잉여가치율은 높이기 위해 노동일을 2시간 더 연장시킨다면 노동일은 12시간에서 14시간으로 된다. 그중 필요노동시간이 여전히 6시간이라면 잉여노동시간은 6시간에서 8시간으로 될 것이다. 따라서 잉여가치율은 100%에서 133%(8/6×100)로 높아진다. 이와 같이 노동일을 절대적으로 연장하여 더 많은 잉여가치율을 생산하는 것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한다. . . . 노동일 단축을 위한 노동계급의 투쟁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 투쟁을 통하여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계급적 각성을 높이고 조직성과 단결된 힘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 투쟁은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의 실시를 자기의 투쟁구호로 들고 나온 이후에 특히 세차게 벌어졌다. 이리하여 어떤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노동일을 일정하게 법으로 제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자본가들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기 위해서 노동강도를 높이는 각종 방법을 널리 적용하였다. 노동강도를 높임으로써 더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경우도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 속한다. 노동강도의 강화는 형식상으로는 노동일을 연장하지 않으나 사실상으로는 노동일의 연장과 같은 의의를 갖는다 그것은 노동강도를 높이면 노동자들은 그만큼 단위노동시간에 노동을 더 많이 지출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노동강도를 1.5배 높인다면 이것은 8시간의 노동시간을 12시간으로 연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노동강도가 높아지면 노동자들은 극도로 피로해지고 건강이 파괴되며 폐인으로 되거나 또한 수명이 짧아지게 된다. 식민지나 예속국들에서는 더 한층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시기에 우리 나라 노동자들은 보통 12-16시간의 노동을 강요당하였고 노동강도가 비할 바 없이 높았다.≫(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가들은 노동일을 연장하지 않고 필요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을 택한다. 필요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잉여노동시간이 그만큼 길어지며 따라서 잉여가치율도 더 높아진다. 상기 예에서와 같이 노동일이 12시간이고 그중 필요노동시간이 6시간, 잉여노동시간이 6시간인 경우에 잉여가치율은 100%(6/6×100)다. 그런데 만약 하루의 노동시간은 그대로 두고 필요노동시간만을 2시간 단축하면 필요노동시간은 6시간에서 4시간으로 단축되고 잉여노동시간은 2시간 연장되어 6시간에서 8시간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 경우에 잉여가치율은 200%이다. 이와 같이 필요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잉여노동시간을 상대적으로 연장시키는 방법을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을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한다. 그러면 필요노동시간을 어떻게 단축시킬 수 있는가? 필요노동시간은 노동력의 가치를 보상하는데 필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필요한 생활자료의 가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필요노동시간이 단축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생활자료의 가치가 감소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생활자료를 생산하기 위한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부문들에서 기술이 개선되고 노동생산능률이 높아지면 생활자료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노동생산능률이 높아지면 종전과 같은 생활자료를 생산하는데 종전보다 적은 노동시간으로 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생활자료의 가치가 그만큼 적어진다. . . . 이리하여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여 새 기계 기술을 생산에 도입하여 노동생산능률을 높이려고 애쓴다. 그런데 새로 발명된 기계와 기술을 먼저 도입하는 자본가는 보통수준보다 노동생산능률을 더 높일 수 있으므로 그러한 자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보다 적은 개별적 노동시간을 들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본가는 같은 생산부분의 다른 자본가들보다 더 많은 잉여가치를 얻게 된다. 즉 초과잉여가치를 얻게된다. 초과잉여가치란 새로운 기술을 남보다 먼저 생산에 도입한 소수의 자본가가 다른 많은 자본가들이 얻는 잉여가치의 보통수준을 초과하여 얻는 잉여가치를 말한다. 초과잉여가치는 이처럼 새 기술을 먼저 도입한 자본가의 수중에 들어간다. 초과잉여가치도 역시 노동생산능률을 높이는 결과에 얻어지는 것이므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 속하며 그 변종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 자본가가 초과잉여가치를 오랫동안 독차지 하지지지 못한 자본가는 몰락한다. 동일한 생산부문에서 대다수의 자본가들이 새기술을 도입하게 되면 노동생산능률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게 되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 단축되므로 결국 초과잉여가치가 없어지게 된다. 여기서 다시금 자본가들은 서로 보다 새로운 기술을 먼저 도입하여 초과잉여가치를 얻으려고 경쟁한다. 이와 같이 초과잉여가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본가들 간의 경쟁에서 자본주의사회의 기술과 생산력이 자연발생적으로 발전되게 된다. 그러나 한편 자본가들은 자기만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하여 새로운 기술을 다른 자본가들이 도입하지 못하도록 비밀에 붙이고 자기 혼자만 알고 있으려고 한다. 이것은 생산력의 발전을 억제하게 된다. 이상과 같이 착취정도를 높이는 방법을 역사적으로 본다면 자본주의 발전의 초기에는 노동일을 연장하는 방법 즉 절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방법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술이 일정하게 발전하고 노동일을 줄이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강화되어 감에 따라 자본가들은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방법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자본가들이 이 두 방법 중의 어느 한 가지만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새 기술을 도입하여 노동생산능률을 높여 가지고 상대적 잉여가치를 짜내려고 하며 다른 편으로는 노동강도를 높이고 노동시간을 연장하여 절대적 잉여가치도 증대시키려고 한다. 요컨대 자본가는 잉여가치율을 높이기 위한 어떠한 방법도 서슴지 않는다.≫(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가는 언제나 더 많은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서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생산방법을 도입하여 노동생산능률을 높이려고 한다. 자본주의공업에서 노동생산능률은 세단계를 밟으면서 성장되어 왔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단순협업, 공장제 수공업, 자본주의적 기계제 생산이다. 이것은 공업에서 자본주의발전의 세 단계이며 노동생산능률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마르크스는 공업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세 단계에 대하여 고찰함으로써 자본가가 어떻게 노동자들은 더욱 착취하며 어떻게 상대적 잉여가치를 더 많이 짜내는가를 해명하였다. 노동생산능률 제고에 있어서 최초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자본주의적 단순협업이다. . . . 공장제 수공업이란 작업장 내부의 분업과 수공업적 기술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협업을 말한다. 이것을 일명 매뉴팩처라고 한다. . . . 한개의 완제품을 만드는데 매개 노동자들이 어떤 한가지 공정만을 전문적으로 감당한다. . . . 자본가들은 잉여가치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생산을 확대하면서 점차 기계를 생산에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공장제수공업으로부터 기계제 공업으로 이행하게 되었다. 기계제 공업은 18세기 말엽부터 발생하기 시작하여 19세기에는 구라파의 주요자본주의 나라들과 미국에서 보급되었다. 기계는 세부분 즉 작업기, 배력기, 동력기로 이루어진다 기계제 생산으로의 이행은 산업혁명을 통하여 실현되었다. 산업혁명이란 기계가 생산에 도입됨으로써 산업에서 일어나게 된 기술적 변혁과 그와 관련된 사회적 변혁을 말한다. . . . 공업화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면 자본주의공업화의 자금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근로자들에 대한 약탈에 있다. 자본가들은 공업화를 위한 자금을 국내의 노동계급과 농민을 착취하며 다른 나라 인민을 약탈하여 마련하였다. . . . 그러면 자본주의하에서 기계의 도입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기계의 도입은 우선 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되게 한다. . . . 다음으로 여성 및 아동 노동을 생산에 광범히 도입하여 착취할 수 있게 한다. . . . 또한 노동자를 기계의 부속물로 되게 한다.≫(공업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세 단계)

≪자본주의하에서 공업과 농업에 기계가 도입되고 대규모적인 생산이 발전하게 되면서 생산력이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기계기술에 기초한 대규모공업은 사회발전에서 큰 진보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노동과 생산의 사회화를 가져왔다. 그러면 노동과 생산의 사회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기계가 생산에 적용된 결과에 공업생산은 더욱 더 대규모적인 기업에 집중된 것이다. . . . 둘째로 기계제 생산이 확대됨에 따라서 사회적 분업이 더 한층 발전하게 되다. . . . 셋째로, 대규모의 기계제 생산이 발전하면서 상품이 대량적으로 생산되며 시장의 규모도 크게 확장된다. 이리하여 서로 분리되어 있던 지방 시장들이 하나의 민족적 시장(전국적 시장)을 이루게 되며 나아가서? 나라들간의 경계 연계가 밀접해지며 세계시장을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이 기계가 도입됨으로써 자본주의하에서 노동과 생산이 사회화된다. 즉 생산이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공장, 건물, 기계설비, 원료 등 모든 생산수단이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로 되어 있고 따라서 수천, 수만명의 공동노동에 의하여 생산된 생산물이 한줌밖에 안되는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로 점유되고 만다. 생산물에 대한 이러한 점유형태는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모순되지 않을 수 없다. 이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모순이 존재한다. . . . 이러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물에 대한 점유의 사자본주의적 형태간이 모순,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모순들과 근로자들의 온갖 고통과 불행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자본주의기본모순은 더욱 첨예화된다. 그 결과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간의 계급적인 적대관계가 더욱 더 첨예화된다 이로부터 노동계급의 계급적 각성과 단결력과 조직성이 날로 강화되며 자본의 권력을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날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게 되는 것이다.≫(노동과 생산의 자본주의적 사회화와 자본주의의 기본모순)

≪자본주의사회에는 어떤 계급들이 있는가? 자본주의는 봉건사회에 있었던 신분관계를 없애버리고 사회는 크게 두개의 서로 적대되는 계급으로 분열되었다. 즉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으로 갈라놓았다. 이 두 계급이 자본주의사회의 기본계급이다. 자본가계급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그것은 임금노동자를 착취하는데 이용하는 착취계급이다. 이 계급은 자본주의사회의 지배계급이다. 노동계급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따라서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여 겨우 연명하는 피착취계급이다. 그런데 노동계급은 그의 사회적 및 경제적 처지로부터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혁명적인 계급이다.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사회가 존재하는 동안 반드시 서로 대립하지 않을 수 없는 두 계급이다. 자본가는 임금노동자를 착취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고 부유해질 수 없다. 반면에 노동자는 생산수단과 생활자료를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본가에게 고용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이 두 계급은 착취와 피착취,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서로 근본적으로 상반된다 그러므로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간의 모순은 자본주의사회의 기본적인 계급모순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이 모순은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격화되고 자본가계급을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은 더욱 더 치열해진다.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착취는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를 반대하여 투쟁하는 노동자의 수효가 증가되고 그의 단결력과 전투력이 강화된다. ≪부르조아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의 매장인을 낳는다. 부르조아지의 멸망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다 같이 불가피하다≫(마르크스, 엥겔스, 공산당선언)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가계급과 노동계급 이외에 또한 지주와 농민이 있다. 자본주의하에서 지주는 대토지소유자계급이다. 지주는 토지를 농업 자본가나 농민들에게 빌려주고 지대를 받거나 또한 자신이 임금노동자를 고용하여 농업을 자본주의적으로 경영한다. 이런 경우에는 지주가 농업자본가를 겸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주는 농업노동자들과 농민들을 착취한다. 농민은 그 대부분의 자기의 작은 토지와 보잘 것 없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낙후한 기술과 손노동으로써 자기의 개인경리를 운전하는 소생산자들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나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농민은 주민의 현저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농민의 기본대중은 지주, 부농, 상인, 고리대금업자들과 자본주의 국가에게 무자비하게 착취를 당한다. 농민의 대부분은 대경리와의 경쟁에서 견디지 못하여 파산당하며 노동자로 전락한다. 다만 극소수만이 부농으로 성장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농민은 노동계급과 함께 피착취 계급이며 피지배계급이다 이 외에도 자본주의사회에는 도시의 소부르조아지와 인텔리층이 있다. 자본가계급은 자기를 반대하는 노동계급을 선두로 하는 근로자들의 투쟁을 말살하며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기 위하여 부르조아국가기구를 이용한다. 그러면 부르조아국가란 어떠한 국가인가? 부르조아국가는 노동계급, 농민을 비롯한 전체 근로자들을 예속시키며 억압하기 위한 자본가 계급이 정치적 도구이다. 우리는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한다 부르조아국가는 군대, 경찰, 재판기관, 감옥 등 각종 폭력기구로써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주치적 소유를 옹호하며 근로자들에 대한 착취를 보장하며 자본주의제도를 반대하는 근로자들의 투쟁을 탄압한다. 군대, 경찰, 감옥 등 폭력기구는 국가기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부분이다. 부르조아국가는 또한 폭력기구를 보충해주는 각종 교육기관, 문화기관, 선전기관 등을 동원하여 근로자들이 부르조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며 지배계급에게 순종하도록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한다. 자본주의국가의 본질이 바로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지는 온갖 수단을 다하여 부르조아국가의 계급적 본질을 은폐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부르조아국가를 마치 모든 계급의 위에 서고 있는 초계급적 국가이고 전체 인민의 이익을 위한 전인민적 국가이며 근로자들의 모든 권리를 보장해 주는 순수한 민주주의국가인 것처럼 묘사하며 자본주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이 있다고 떠든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부르조아적 자유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의 자유이며 부르조아적 평등이란 착취자와 피착취자, 배부른 자와 굶주린 자, 생산수단의 소유자와 무산자간의 실제적 불평등을 은폐하는 하나의 기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모든 권력과 부귀영화가 부르조아지에게 속하며 근로대중에게는 오직 빈궁과 천대만이 차려진다 자본주의사회는 극소수의 착취자들에게는 천당이지만 사회의 절대 다수인 근로자들에게는 지옥이다. 자본주의국가의 형태는 입헌군주제, 공화제, 파쇼독재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 본질은 오직 하나 즉 그것은 부르조아독재이다. . . . 자본주의사회에서 보통 선거권, 국회 등 소위 정치적 민주주의는 부르조아 국가의 본질을 은폐하고 부르조아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부르조아사회와 선거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있는 것은 모든 재물과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는 지배계급이다. 득점 자본가들은 자기의 정치적 지배가 위태롭게 되는 경우에는 부르조아민주주의의 가면마저 내던지고 난폭한 폭력통치(파시즘)으로 넘어 간다. 여기서는 부르조아독재국가의 반동적 본질이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부르조아국가의 본질은 바로 이러하다. 즉 그것은 착취자들만을 위한 국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가계급을 반대하는 노동계급과 피착취 대중의 계급투쟁은 반드시 부르조아 국가기구와 그 모든 폭력수단을 파괴하는 정치투쟁으로 발전하여야 한다.≫(자본주의사회의 계급구성, 부르조아 국가)

4) 임금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물건이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노동력도 상품으로 매매되고 있다.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팔고 자본가는 그것을 산다 노동력도 상품으로 매매되는 만큼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격을 가진다. 노동력의 가격임금이라고 한다. 노동력이란 이미 본 바와 같이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노동능력을 말한다. 노동자는 이러할 노동력을 시간으로 판다. 그런데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파는 경우에 노동력은 사람의 몸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몸에서 빼내어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가 자기의 몸을 파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판 다음에는 자본가의 공장에 끌려가서 자본가를 위해 자기의 노동력을 소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력의 소비노동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노동자와 자본가간에 매매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이라는 것은 노동의 가격인 것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흔히 임금을 노동의 가격, 노동에 대한 보수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자본가는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노동자들까지도 흔히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가령 노동자가 공장에서 하루에 12시간을 노동하였는데 그 중 필요노동시간이 6시간이라면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다만 필요노동시간인 6시간분의 노동에 대한 보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은 마치도 6시간이 아니라 전체노동시간 즉 12시간의 노동에 대한 값인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 그런가? 만약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이 노동력의 가격이 아니라 노동의 가격이라면 노동이 상품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은 상품으로 될 수 없다. 이것을 우리는 기계와 그 기계의 작용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자본가는 기계를 살 수 있으나 그 기계의 작용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살 수는 있으나 노동은 살 수 없다. 이처럼 노동이란 상품으로 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가격을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임금이 노동의 가격이라고 한다면 노동자는 자기가 일한 만큼 전부 값을 받는다는 것으로 된다. 예컨대 노동자가 하루에 12시간 일하고 12시간 분의 보수를 받는다는 것으로 된다. 그렇게 된다면 자본가는 아무런 잉여가치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자본가도, 자본주의 제도도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자본가가 공장을 차려놓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생산을 하는 목적은 잉여가치를 얻자는 것이니 만큼 자본가는 노동력을 사외 절대로 노동자를 일시킨 만큼의 보수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은 노동의 가격인 것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이다. 그러면 왜 자본주의사회에서 임금이 마치도 노동의 가격인 것처럼 나타나게 되는가? 그것은 첫째로 노동자는 노동을 다한 다음에야 임금을 받게 되기 때문에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마치도 그가 한 전체 노동에 대한 보수인 것 같이 나타난다. 둘째로 임금은 노동자가 일한 시간의 길이나 그가 생산한 생산물의 수량에 따라 계산되고 지불되므로 노동자는 자기가 받는 임금이 마치도 자기가 한 전체 노동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임금은 자본가가 노동자의 전체노동 중에서 잉여노동에 대하여는 아무런 보수도 지불하지 않고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 버린다. 임금이란 노동력의 가치를 화폐로 나타낸 것이며 노동력의 가격인 것이다.≫(임금의 본질)

≪자본가는 임금을 지불할 때 노동자를 더 많이 더 교묘하게 착취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쓴다 그러므로 임금을 지불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게 된다. 임금의 지불방법임금형태라고 한다. 자본주의사회의 임금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그 중에서 기본은 시간임금과 도급임금 형태이다. 시간임금이란, 노동자가 일한 시간 즉 시, 일, 주, 월에 따라서 지불하는 형태를 말한다. 자본가는 시간임금제의 조건에서는 노동일을 연장하여 착취를 강화한다. . . . 도급임금이란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의 수량, 또는 작업한 양에 따라서 임금을 지불하는 형태를 말한다. 도급입금에서는 임금이 시간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 제품의 매 단위 또는 작업단위에 대해서 설정된 도급단가에 의해 지불된다. . . . 도급임금은 노동자에게는 시간임금보다도 더욱 불리하다. . . . 자본가는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노동자를 더 많이 착취해서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겠는가를 궁리한다. 그러한 궁리 끝에 만들어 낸 것이 임금의 고한제도이다. 임금의 고한제도란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극도로 높이고 노동자에게서 더 많은 피땀을 짜내는 임금제도이다. 오늘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널리 보급되고 있는 소위 ≪과학적 노동조직≫이라고 불리우는 테일러 제도, 포-드 제도 등이 그의 대표적 실례이다. 이 고한제도는 노동자로 하여금 작업 중 고 어떠한 불필요한 동작도 하지 못하도록 노동강도와 긴장성을 높여 노동자의 마지막 한 방울의 피땀까지도 짜내는 가장 가흑한 착취 방법이다.≫(임금의 형태)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팔아서 얻은 화폐로 겨우 목숨을 유지한다. 그런데 노동자의 생활형편을 알기 위해서는 임금을 명목임금실질임금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명목임금이란 화폐를 가지고 표현한 임금을 말한다. 이것은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판 노동력의 값으로 받은 화폐액이다. 이것만 가지고서는 노동자의 실지 생활형편을 알 수 없으며 그것을 알자면 실질임금을 따져 보아야 한다. 실질임금이라 노동자가 임금을 가지고 구입한 생활자료의 양으로 표시된 임금을 말한다.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알기 위해서는 명목임금의 크기와 소비자료의 가격수준과 편의시설의 요금수준, 노동자기 걸머지는 각종세금과 집세 등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명목임금이 2배로 높아졌다 하더라도 소비자 가격과 편의시설의 요금, 가금과 집세 등이 2배 이상으로 높아 졌다면 생활수준은 도리어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실질임금은 부단히 낮아진다. 그것은 첫째로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불리한 조건으로 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실업자가 더욱 더 늘어났다. 자본가는 이것을 이용하여 취업하고 있는 노동자의 임금마저 더욱 낮췄다. 그리고 실업자가 늘어간다는 것은 노동력의 공급이 그 수요를 능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노동력의 가격이 더욱더 그 가치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노동력이라는 상품가격의 특징인 것이다. 다른 상품의 가격은 그 상품에 대한 시장의 수요와 공급관계에 의하여 움직이면서 결국은 가격과 가치가 일치하게 된다. 그런데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언제나 공급이 수요보다 많기 때문에 그 가격(임금)은 가치보다 항상 낮은 것이다. 그것은 실업자가 존재하며 생산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성년남자 대신에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이 광범히 채용되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또한 같은 노동을 한 경우에도 여성과 아동에게는 성년남자들보다 매우 낮은 임금을 지불한다. 이러한 사정은 성인남자의 임금수준을 낮아지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산에 기계가 도입됨에 따라 생산공정이 단순해져서 기능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적어진다. 이에 따라 기능노동자들도 대다수는 무기능노동자의 처지에 굴러 떨어지게 되고 그들의 임금도 낮아진다. . . . 둘째로 실질임금이 저하되는 것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소비품의 가격이 등귀하고 각종 붕사요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하에서는 소비품의 가격이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는데 임금은 도저히 그것을 따라서지 못한다. 셋째로 자본주의하에서는 각종 세금이 날로 증대되며 집세가 오르기 때문에 실질임금이 저하된다. . . .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에서 주인 행세를 하며 식민지 인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면서도 매우 낮은 임금을 지불한다. 식민지에서의 임금은 종주국에서의 임금에 비해 훨씬 적으며 같은 노동을 해도 민족적으로 심한 차별대우를 받는다. 오늘 이 땅의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낮다. 그러면 우리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저하시키고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미국의 식민지정책에 의해 민족산업이 파탄되고 농촌이 피폐한 결과 약 70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와 반실업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낮추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더욱 낮으며 남성노동자의 그것에 비하여 절반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보잘 것 없는 기아임금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예사로 되고 있다. . . . 오늘 우리 노동자들의 임금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있고 임금의 체불도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 둘째로 각종소비재의 가격과 요금이 등귀하는데 있다. 특히 이 땅의 물가의 등귀는 어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며, 그것은 미국이 식민지 정책이 빚어내고 있으므로 날을 따라 더욱 폭등하고 있다. 이 밖에 위정자들은 철도요금, 이발요금, 목욕비 등 각종 요금을 올리며 심지어 학교의 입학금과 수업료까지 대폭 올리고 있다. 셋째로 미국의 전쟁준비와 관련하여 격증되는 군사비 지출을 메꾸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긁어내는데 있다. ≫(자본주의 발전에 따르는 실질임금의 저하)

≪자본주의하에서 임금이 내려간다고 해도 한없이 내려 갈 수는 없다. 여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게 된다. 이 한계를 임금의 최저한계라고 한다. 임금의 최저한계는 노동자가 겨우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생활자료의 가치이다. 임금에는 최저한계와 함께 그 이상 더 올라갈 수 없는 최고한계가 있다. 임금의 최고한계는 노동력의 가치이다. 자본가들은 절대로 노동력의 가치보다 더 지불하지는 않을 뿐 아니라 가치조차 지불하지 않으며 최저한계 이하로까지 끌어내리려고 애쓴다. 임금이 최저한계로 내려가면 노동자의 건강은 파괴되고 급속히 쇠약해지며 사망율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임금을 인하하려는 것을 반대하며 나아가서 임금인상과 사회보험, 노동보호의 실시, 노동 일의 단축 등을 위해 투쟁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임금수준노동자와 자본가간의 역량 관계와 그들간의 치열한 계급투쟁에 의해서 결정된다. 임금인상을 위한 노동자의 투쟁이 맹렬하고 그들의 세력이 강하면 임금은 점차 그 최고한계로 접근하게 되고 반대로 노동자의 투쟁이 약하고 자본가의 세력이 강하면 임금은 점점 최저한계 또는 그 이하로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임금을 어느 정도 받는가 하는 것은 그들이 임금인상을 해서 얼마나 완강하게 투쟁하는가에 달려 있다. 임금인상을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가 발생한 첫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아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산만하였다 그래서 그때에는 자본가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의 수가 많아지고 계급의식이 높아지고 단결이 강화되었다. 따라서 임금인상을 위한 투쟁이 조직적으로 완강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투쟁을 더욱 잘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이에 단합되었다. 그리고 노동계급은 자기의 을 가지게 되었고 그의 영도를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노동자들 전체가 하나의 조직에 망라되어 공통적인 요구조건을 내걸고 투쟁하게 되었다.≫(임금인상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

3.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1) 단순재생산과 확대재생산

자본주의적 단순재생산이란 잉여가치 전체가 자본가와 기타 착취자의 개인적 소비를 위해 쓰여져서 생산과정이 과거와 동일한 규모로 계속되는 것을 말한다.≫

2) 자본주의적 확대재생산

잉여가치의 일부가 종전의 자본에 첨가되는 것, 또는 잉여가치의 일부가 자본으로 전화되는 것을 자본의 축적이라고 한다. . . . 자본의 축적은 두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하나는 자본의 집적이며 다른 하나는 자본의 집중이다. 자본의 집적이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여 얻은 잉여가치를 축적한 결과 매개 자본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말한다. 자본의 집중이란 이미 있는 여러 개의 자본이 통합되어 하나의 큰 자본으로 되는 것을 말한다. . . . 기술장비가 높아서 한 노동자가 다루는 생산수단의 양이 많은 기업소에서는 생산수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높을 것이다. 이와 같이 생산수단의 양과 이것을 움직이는 노동력 간에는 일정한 비율관계가 있게 된다. 이것을 자본의 기술적 구성이라고 한다. 이미 본 바와 같이 불변자본은 생산수단을 구입하는데 지출되는 자본부분이고 가변자본은 노동력을 구입하는데 지출되는 자본부분이다. 그러므로 생산수단과 노동력으로 구성되는 자본의 기술적 구성은 곧 그 기업의 가치구성 즉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간의 관계에 반영되게 된다. 이와 같이 자본의 기술적 구성을 반영하는 자본의 가치구성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고 한다. . . .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성장하면 노동자 한사람이 담당하는 생산수단의 양이 많아지며 따라서 취업노동자의 수는 그만큼 감소되고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되지 않을 수 없다.≫

3) 자본의 축적과 산업예비군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져서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감소되는데 고용되어야 할 노동자의 수는 급속히 성장하므로 많은 수의 노동자가 고용되지 못하고 남아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잉상태에 있는 인구를 소위 상대적 과잉인구라고 한다. 이것은 바로 실업자를 말하는 것이다. . . .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자가 있게 되는 것은 생산수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자가 생기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한 현상도 아니며 일시적인 현상도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산물이며 영원한 동반자다. . . .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자는 군대에 비유하여 말하자면 예비군과도 같다. 그것은 자본가가 필요한때에는 언제든지 고용해서 착취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예비부대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실업자군을 산업예비군이라고 불렀다. . . . 맬더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과 빈궁을 없애자면 결혼을 억제하고 산아를 제한하여야 하며 거세해야 하며 심지어 ≪인구의 수를 감소≫시키기 위해서 전쟁이나 전염병까지도 필요한 것이라고 하였다. 두말할 것 없이 이 이론은 자본주의 제도가 산생한 모든 사회적 재난의 원인을 자연에 전가시켜 가지고 자본주의 제도의 모순을 은폐하며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혁명투쟁을 마비시키려는 반동적인 견해이다. 현실은 부르조아 경제학자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인류가 현재 도달한 과학기술만 가지고서도 능히 인구의 증가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각종 생활자료를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한쪽에서는 농산물이 과잉생산되어 판매되지 않고 있는데 다른 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쌀이나 빵이 부족하여 굶주리고 있다. . . . 케인즈가 제기하고 있는 국가에 의한 보충투자는 결국 세금, 지폐의 발행, 국채의 발행으로 대중을 수탈하여 마련하는 것이며 또 그 투자란 곧 경제의 군사화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군수품을 생산하는 자본가를 더욱 부유하게 만드는 반면에 인민대중을 더욱 빈곤하게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부르조아국가에 의한 보충투자의 방법으로 완전고용을 보장한다는 케인즈의 이론의 목적은 첫째로, 자본가에서 초과이윤을 보장해 주며 경제의 군사화를 강행하고 있는 부르조아국가의 반인민적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며, 둘째로 자본주의국가가 마치도 사회주의국가처럼 나라의 경제를 조직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실업을 없애는 어떤 새로운 정책을 실시할 수 있는 듯 한 환상을 근로대중 속에 조성시키려는 것이다.≫

4)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적 법칙, 자본주의하에서 노동계급의 빈궁화

노동계급의 상대적 빈궁화란 사회적 재부가 성장함에 따라 자본주의적 기업소에서 생산된 국민소득 중 자본가계급이 차지하는 몫은 더욱 더 증대되는데 노동계급이 차지하는 몫은 더욱 더 감소되는 것을 말한다. . . . 그러면 왜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계급의 생활이 절대적으로 낮아지는가? 그것은 첫째로, 실질임금이 날로 저하되기 때문이다. . . . 둘째로,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노동조건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 . . 셋째로, 실업자수가 급격히 증대되며 실업의 지속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 . . 넷째로, 경제공황이 자주 일어나며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을 도발하고 경제를 군사화하기 때문이다. . . . 식민지와 예속국에서는 자본가들의 착취가 본국에서 보다도 더욱 가혹하기 때문에 힘에 겨운 노동과 극도의 빈궁, 높은 사망율이 보통 현상으로 되고 있다. 과거 일제시기의 조선 노동자들의 처지가 그러하였고 특히 오늘의 우리 노동자들의 처지가 더욱 그러하다. . . . 농민들도 또한 빈궁해진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농업에서도 공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생산이 집적되고 집중되며 대생산은 소생산을 부단히 구축하고 영락시킨다. . . . 자본의 축적이 증대됨에 따라서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인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물에 대한 점유의 사자본주의적 형태 간의 모순은 더욱 심화되고 계급적 모순도 더욱 침예화된다. 자본의 축적은 극소수의 자본가의 수중에 거대한 재부를 집중시키면서 생산의 사회화를 더욱 촉진시킨다.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대규모 기업소들이 형성되고 여기에는 수천수만의 노동자들과 생산수단이 집결된다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은 더욱 강화됐고 자본가와 노동자대중은 더욱 더 날카롭게 대립되게 된다. 이리하여 자본의 축적은 생산의 사회화를 강화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제도를 혁명적으로 전복할 노동계급을 대량적으로 육성하며 모든 피착취대중을 혁명에로 추동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계급의 수는 급격히 증대되며 그들의 단결력·계급성·조직성·혁명성이 강화된다.≫

4. 자본의 순환과 회전

1) 자본의 순환과 산업자본운동의 세단계

자본운동의 제1단계화폐자본이 생산자본으로 바뀌는 단계다. 자본가는 우선 기업을 시작하기 위하여 화폐 (자본)를 가지고 시장에 나가서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사들인다. . . . 자본운동의 제2단계생산자본이 상품자본으로 바뀌는 단계다. 자본가는 사들인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가지고 생산을 진행한다. 다시 말하면 자본가는 공장에 끌려온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움직여서 상품을 생산하게 한다. . . . 자본의 운동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본가는 생산된 상품을 판매해야만 처음에 투자한 화폐(자본)를 회수하고 생산과정에서 창조한 잉여가치를 화폐로 얻을 수 있으며 자기의 목적을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본운동의 제3단계가 진행된다. . . . 이처럼 자본이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 형태를 바꾸면서 세 단계를 거치면서 운동하는 것을 자본의 순환이라고 한다. 자본운동의 전 과정은 다음과 같이 표시된다. . . .
 

 화폐(100만원)-상품

노동력(20만원)
생산수단(80만원)

 ...

 생산

 ...

 상품'(120만원)-화폐'(120만원)

자본운동의
제1단계
(구매단계)

자본운동의
제2단계
(생산과정)

자본운동의
제3단계
(판매단계)

자본은 이 세 단계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운동해야만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산업자본이 발전하는 일정한 단계에선 산업자본의 이 세 형태는 서로 독립적인 자본형태로 분리되게 되었다. 즉 화폐자본은 대부자본으로, 상품자본은 상업자본이라는 독립적인 자본으로 각각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산업자본은 이제는 생산만을 전문으로 하는 자본으로 되게되었다. 이에 따라 자본가들도 세가지 집단, 즉 산업자본가(기업가), 상업자본가(상인), 대부자본가(은행가)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들은 자본운동의 한 단계씩을 뜯어 맡아 가지고 잉여가치를 더 많이 더 잘 짜내기 위한 연합을 이루고 있다. 동시에 노동자들이 만든 잉여가치를 저마다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경쟁(싸움)을 한다.≫

2) 자본의 회전

≪자본의 운동은 1회의 순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본은 부단한 운동 속에서만 자기의 목적인 잉여가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자본은 순환을 계속 반복한다. 다시 말해서 자본은 회전한다. 자본의 회전이란 자본이 한번만 순환하고 마는 일이 아니라 1년이라는 기간을 기준으로 하여 순환이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 . . 여러 생산기간에 걸쳐 일부분씩 점차로 자기의 가치를 생산물에 이전시키는, 생산수단에 투하된 자본부분을 고정자본이라 한다. . . .생산수단 중에서도 원료, 연료 등을 구입하는데 지출된 자본부분은 한 생산기간 중에 자기의 가치를 한꺼번에 전부다 생산되는 생산물에 이전시킨다. 이러한 자본부분을 유동자본이라고 한다. . . . 이미 본 바와같이 생산자본은 불변자본가변자본으로 구분된다. 불변자본은 생산수단을 구입하는데 지출된 자본이고 가변자본은 노동력을 구입하는데 지출된 자본이다. 노동력을 구입하는데 지출되는 자본부분이 생산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창조라는 점에서는 가변자본으로 되지만, 자기의 가치를 그대로 전부 생산물에 이전한다는 점에서는 유동자본의 한 부분이다. . . 자본의 회전속도는 1년을 단위로 하여 측정된다. . . .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경우에는 자본의 회전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1년 동안에 잉여가치가 더 많이 생산되며 잉여가치 연율이 높아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는 자본의 회전을 촉진시키려고 애쓴다.≫

5. 평균이윤과 생산가격

1) 잉여가치의 이윤에로의 전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변자본에 의해서만 창조된 잉여가치마치도 전체자본에 의해서 창조된 것처럼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윤이란 것은 생산에 투자된 전체 자본에 의해서 생산된 것처럼 나타나는 잉여가치를 말한다. 잉여가치가 이윤의 형태를 띠게 되자 잉여가치의 생산에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이 하는 역할의 차이가 가리워지게 되며 잉여가치가 전체 자본의 산물인 것처럼 생각되게 한다. 따라서 이윤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진상을 가리운다. 즉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자를 착취한 것이 아니라 마치 자본자체에 의해서 생산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 . . 잉여가치가 이윤이라는 형태를 띠게됨에 따라 잉여가치율도 이윤율로 나타난다. 이 이윤율이란 전대(前貸)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백분율)이다. 예컨대 어떤 자본가가 1억원의 자본을 들여 2,000만원의 잉여가치를 얻었다면 이윤율은 20%(2,000만원/10,000만원×100)이다. 그러므로 이윤율은 잉여가치율과 다르다. . . . 그러면 이윤율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첫째로 잉여가치이다. 잉여가치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다른 조건이 같다면 이윤율이 높아진다. . . . 둘째로, 이윤율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 따라 달라진다. . . .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이윤율은 낮아진다. 위의 예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4 대 1(불변자본 8,000만원 대 가변자본 2,000만원)이었을 때에는 이윤율이 20%이다. 그런데 이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져서 9대 1(불변자본 9,000만원 대 가변자본 1,000만원)로 된다면 잉여가치는 1,000만원으로 되어 이윤율은 10%(잉여가치1,000만원/자본총액10,000만원×100)로 되며 종전보다 10%가 낮아진다. . . . 셋째로, 자본투자에서 불변자본을 절약하면 이윤율이 높아진다. . . . 넷째로, 자본의 회전속도를 빨리 할수록 이윤율이 높아진다. . . . 이리하여 자본가는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상당한 이윤만 있다면 자본은 과감해진다. 10%의 이윤이 보장된다면 자본은 장소를 가리지않고 적용된다. 20%라면 자본은 활기를 띠며 50%라면 적극적으로 대담해지며, 100%라면 인간의 법을 모두 유린하며, 300%라면 자본에게는 단두대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범하지 않는 범죄는 없다.≫

2) 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상품가치의 생산가격에로의 전화

≪자본가들은 이윤율이 높은 부문에 자기 자본을 투자하여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맹렬한 경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부문들에 종사하는 자본가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는 결과에 각 생산부문마다 서로 다른 이윤율이 드디어 균등하게 되어 평균적인 이윤율이 이루어지게 된다. . . . 평균이윤율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에 각 생산부문의 자본가들은 동일한 양의 자본을 지출했을 경우에는 그가 어떤 부문에 종사하든지 대체로 동일한 양의 이윤을 차지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평균이윤을 얻게 된다. 평균이윤이란 각이한 생산부문에 투자된 동일한 크기의 자본에 대한 동일한 양의 이윤을 말한다. . . .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균이윤율이 형성되게 되면 서로 다른 생산부문에 있는 자본가들 사이에 잉여가치가 균등하게 분배된다. 예컨대 피혁부문의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해서 착취한 잉여가치의 일부는 기계 제작부문의 자본가들에게 차례진다. 이렇게 한 부분에서 자본가들이 착취한 잉여가치의 일부가 부단히 다른 부문에 있는 자본가들에게 나누어진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자기를 직접 고용하고 있는 자본가에만 착취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고용하지 않은 다른 자본가에게도 착취를 당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자본가 전체가 노동자 전체를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여기로부터 전체 자본가는 전체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데 일치된 이해를 가진다. 이것은 전체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면 할수록 그만큼 평균이윤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모든 자본가는 자기가 직접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다른 자본가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착취를 강화하는데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자본가들은 잉여가치의 분배에서 서로 경쟁하지만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데서는 마치도 친형제처럼 저들끼리 연합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렇게 전체 자본가와 전체 노동자가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은 노동자들이 개별적 자본가와만 투쟁하거나 또는 노동자들이 부분적 이익을 위해서만 투쟁하는 것으로서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변경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3) 이윤율저하경향의 법칙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이윤율은 떨어진다. 왜 그런가? 자본주의사화에서 날이 갈수록 자본축적이 늘어나고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진다. 자본가마다 기계를 사용하고 기술을 개선하여 상품을 싸게 생산하여 초과이윤을 얻으려고 애쓴다. 개별적 기업에서 기술적 개선이 광범히 보급되는데서 대다수 기업소들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자본가들의 욕망과는 달리 이윤율이 점점 떨어지게 된다. 예컨대 잉여가치율이 다같이 100%인 경우에 10억원의 자본을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에 각각 5억원씩 지출하였다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1대 1이고 이윤율은 50%(잉여가치5억원/(불변자본5억원+가변자본5억원)×100)이다. 그런데 5년 후에 자본이 축적되어 10억원에서 40억원으로 늘고 불변자본이 30억원 가변자본이 10억원으로 되었다면 이번에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3대 1이고 이윤율은 25%(잉여가치10억원/(불변자본30억원+가변자본10억원)×100)로 된다. . . . 이렇게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지면 이윤율이 저하되게 된다. 그런데 이윤율이 낮아진다고 해서 자본가들이 차지하는 이윤의 총액 즉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하는 잉여가치의 총량이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이윤율은 낮아지지만 자본가들이 착취하는 이윤총액은 계속 늘어간다. 그것은 자본총액이 더욱 더 증가하고, 그에 따라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총수가 늘어가고 착취정도가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 보다시피 이윤총액은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이윤율이 낮아지는 경우에도 이윤총액은 늘어난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이윤율이 낮아지지 않도록 하려고 애쓴다. 그러면 이윤율의 저하를 억제하는 요인들은 어떠한 것들인가? 그것은 첫째로, 노동자에 대한 착취정도(잉여가치율)를 높여 노동자를 더욱 혹심하게 착취하는 것이다. 둘째로,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보다 더욱 더 낮게 지불하는 것이다. . . . 셋째로, 노동생산능률이 높아짐에 따라 생산수단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불변자본에 지출되는 자본부분을 적게하며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성장을 더디게 한다. 넷째로, 노동자를 희생으로 하여 불변자본을 절약하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늘릴 목적으로 공장에 노동보호 또는 노동안전시설을 하지 않고 그 비용을 절약한다. 이로 인해서 노동자들 중에는 불구자와 사망자가 계속 늘어난다. 자본가에게는 노동자가 회생되건 불구자로 되건 이윤만 많이 나면 그만이다. 다섯째로, 자본가는 자기 상품을 식민지와 예속국가들에 수출하여 가치 이상으로 비싸게 판매하여 식민지 초과이윤을 얻는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이윤율의 저하를 억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은 다만 이윤율의 저하를 얼마간 완화시킬 수 있을 뿐이지 이윤율의 저하를 아주 막아내지는 못한다. 이리하여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이윤율저하경향의 법칙이 작용한다. 이 법칙의 작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더욱 날카롭게 한다. 그것은 첫째로,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모순을 더욱 심하게 한다. 왜냐하면 자본가들이 이윤율을 낮아지지 않도록 임금을 낮추며 노동강도를 높이며 노동일을 연장하는 등으로 착취를 더욱 강화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자본가들 내부의 모순을 더욱 격화시킨다. 그것은 이윤율이 낮아지는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창조한 잉여가치를 서로 더 많이 차지하자고 싸우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보다 유리한 부문에 자본을 투자하려고 하며 또한 자기 기업의 선진기술을 비밀에 붙이고 원료, 원천지, 판매시장 등을 독차지하려고 싸운다. 셋째로, 종주국의 자본가들과 식민지 예속국가 인민들 사이의 모순을 격화시킨다. 그것은 이윤율이 낮아지는 것을 식민지예속국가 인민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함으로써 메꾸려고 하기 때문이다. 넷째로,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을 심하게 만든다. 자본가들은 이윤율의 저하를 이윤총액의 증대로 메꾸려고 생산규모를 확대한다. 그러나 자본이 측적됨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소비자인 노동자들은 점점 더 빈궁해지기 때문에 그들의 구매력은 계속 줄어진다. 이로 인해서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이 심해지며 이것은 경제공황을 일으키는데로 끌고 간다. 이윤율저하경향의 법칙의 작용은 자본주의사회가 이미 자기의 수명을 다 살고 이제는 그것이 반동적인 것으로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이다.≫

6. 상업자본과 상업이윤

1) 상업이윤과 그의 원천

≪노동자가 창조한 잉여가치는 다만 산업자본가에게만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상업자본가에게도 분배된다. 상업자본이란 상품의 매매, 즉 유통에 투하된 자본이다. . . . 상업이윤이란 산업자본가가 자기의 상품을 판매해 주는 대가로 상업자본가에게 넘겨주는 잉여가치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상업이윤의 원천은 산업자본가에게 고용된 노동자가 창조한 잉여가치이다.≫

2) 자본주의적 유통비, 상업의 제 형태

≪대상업자본은 소상업자본에 비해서 우월하므로 중소자본가는 대자본가와의 경쟁에서 견디어 내지 못하여 끊임없이 파산된다. . . .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또한 대금분할 지불판매 즉 월부판매 같은 이른바 신용상업이 널리 보급되고 있다. 신용상업은 얼핏 보기에는 소비대중에게 퍽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것은 소비자를 가혹하게 착취하는 것이다. 자본가는 신용상업으로 높은 값을 받아내거나 팔리지 않는 불량상품을 팔아먹는데 이용한다. 이 경우에 소비자는 상품대금을 제 때에 갚지 못하여 저당을 잡히거나 그것을 물어주기 위해 고리대금만 짊어지게 된다.≫

3) 자본주의국가의 대외무역

대외무역이란 나라와 나라사이에서 진행되는 상업이다. . . . 자본가는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생산을 확장한다. 그러나 주된 소비자인 노동자와 농민의 구매력은 생산이 확장되는데 비하여 훨씬 낮은 형편에 있다. 그 결과 국내시장에서는 상품을 판매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이윤을 얻자면 새로운 시장을 외국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발전된 자본주의국가의 자본가들은 자기의 공업제품을 뒤떨어진 나라에 비싼 값으로 팔고 그 나라에서는 아주 싼값으로 공업원료와 식량 등을 사들여 굉장한 이윤을 얻는다. 즉 부등가교환에서 큰 이득을 본다.≫

7. 대부자본과 대부이자, 화폐유통

1) 대부자본과 대부이자

대부자본이란 화폐를 가진 자본가가 일정한 보수, 즉 이자를 받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그것을 요구하는 다른 자본가에게 빌려주는 자본을 말한다. . . .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대부한 돈은 고리대자본, 즉 고리대금이었다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것은 대부자본이다. . . . 대부자본은 바로 산업자본에서 떨어져 나온 화폐자본이며 그리고 대부자본은 그 자본의 소유자가 아닌 다른 자본가, 즉 기능자본가에 의해서 이용된다는데 그 특성이 있는 것이다. . . . 돈을 빌린 자본가는 그것을 이용하여 잉여가치를 짜내고 그 중에서 돈을 빌려준 자본가에게 일정한 금액의 보수를 지불한다. 이것을 이자라고 한다. 따라서 이자란 대부자본가가 화폐를 대부하여 준데 대한 대가로 기능자본가가 넘겨주는 잉여가치의 한 부분을 말한다. . . . 이자율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점점 낮아진다. 그 원인은 첫째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균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자율의 최고한계가 평균이윤율인만큼 평균이윤율이 낮아지면 이자율도 낮아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둘째로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대부하려는 화폐의 총액이 그 수요보다 더 급속히 증대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들은 기업활동에서 손을 떼고 돈놀이만 하여 이자나 받아먹으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는 금리생활자가 늘어난다. 따라서 대부자본의 총액이 날로 늘어간다.≫

2) 자본주의적 신용과 은행

≪대부자본의 운동은 신용을 통하여 진행된다. 즉 신용을 통하여 일시 이용되지 않고 있는 화폐가 대부자본으로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신용이란 대부자본의 운동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신용이란 자본가들 사이에서 대부를 직접 주고 받고 하는 것이며 또한 자본가들이 상품을 외상으로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 . . 은행이란 이윤을 얻을 목적으로 자본가들의 수중에서 놀고 있는 화폐자본을 예금의 형태로 수집하여 이것을 요구하는 자본가에게 대부하는 자본주의기업이다. . . . 은행이윤도 역시 모든 이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에게서 짜낸 잉여가치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대부를 받는 자본가가 은행에 지불하는 이자의 원천이 잉여가치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은행은 근로자에 대한 착취의 도구이며 약탈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은행은 대부자본가들이 은행에 예금을 해 가지고 이자를 받아먹으면서 놀고먹을 수 있게 해주며 또한 대부자본을 요구하는 산업자본가에게 보다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자금을 대어주는 일을 한다. 그리하여 산업자본가가 착취한 잉여가치 중에서 이윤을 얻어먹는다. 여러 점을 고려할 때 은행은 화폐자본의 상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주식회사, 주식자본

≪대자본가들은 주식회사에서 주인 노릇을 하면서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게 된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주식회사의 최고기관은 주주총회다. . . . 주권의 많은 부분이 여러 중소소유자들 사이에 널려 있는 만큼 대개 그 회사의 주권의 20-30%만 쥐면 그 회사에서 주인 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주식회사의 실권을 장악하고 그것을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주식수를 통제주(統制株)라고 한다. 이와 같이 주식회사는 소수의 대자본가가 다수의 중소자본가들의 자금을 자기에게 복종시키고 이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형태이다. . . . 설사 노동자들이 얼마간의 주권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들이 결코 기업의 주인으로는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자본가로 될 수 없는 것이고 여전히 주식회사는 자본의 민주화는커녕 대자본가들이 일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소액의 화폐까지 긁어 모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근로대중을 더욱 가혹하게 착취할 수 있게 하는 도구로 되고 있을 뿐이다. 자본가들이 자본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목적은 이처럼 착취를 더욱 강화하자는데 있으며 그와 동시에 또한 노동자들의 혁명정신을 마비시키며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그들의 투쟁을 억제하는데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자본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노동자들도 기업의 주인이라고 기만하면서 자본가들과 공동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것만큼 협력해야 하며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한다.≫

8. 지대, 농업에서의 자본주의발전

1) 자본주의적 농업제도

농업자본가지주에게서 일정한 기간 토지를 빌려가지고 자기의 자본으로 생산수단을 사고 농업노동자를 고용하여 농업을 경영한다. 자본주의농업제도란 바로 농업자본가가 지주의 토지를 임차하여 이윤을 얻을 목적으로 농업을 경영하는 것을 말한다. 농업자본가는 지주에게서 일정한 기간 토지를 빌려쓰는 대신 농업노동자를 착취하여 얻을 잉여가치 중에서 계약에 규정된 지대를 지주에게 지불한다. 이리하여 지대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한 잉여가치의 일부분이다.≫

2) 자본주의지대의 두 형태

≪자본주의 농업에서 토지에 대한 독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경영대상으로서의 토지에 대한 독점적이고 다른 하나는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서의 토지에 대한 독점이다. 경영대상으로서의 토지에 대한 독점으로부터는 차액지대가 생기게 되며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서의 토지에 대한 독점으로부터는 절대지대가 생기게 된다.≫

3) 농업에서 자본주의발전의 특수성

≪농업에서도 공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소규모생산은 대규모생산과의 경쟁에서 파산, 영락된다. . . .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공업에 비하여 농업이 낙후하며 도시와 농촌과의 대립이 매우 심하다. . . .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시와 농촌간에 대립이 있게 되는 경제적 기초는 무엇인가? 그것은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착취자들이 농민들을 각종 방법으로 착취하는데 있다. 도시에 있는 상인들은 공업상품을 농촌에 비싼 가격으로 팔고 농산물은 낮은 가격으로 구매하는 방법으로 농민을 착취하며, 은행과 고리대금업자들은 높은 이자를 받아먹거나 저당대부의 방법으로 농민들의 얼마 안되는 재산마저 털어간다. 그리고 자본주의국가는 각종 가렴잡세를 부과하여 농민들을 수탈한다. . . . 이처럼 도시에 비해 농촌이 낙후하여 도시와 농촌 간에 대립이 심해지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제도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9. 사회적 자본의 재생산과 국민소득, 경제공황

1) 사회적 자본의 재생산, 사회총생산물과 그의 구성

사회적 자본이란 간단히 말해서 사회에 있는 개별적 자본의 총량을 말한다. . . . 개별적인 자본가의 사회적 연계는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들이 생산한 물건들이 어떻게 판매되어 어떠한 연계를 맺어야 사회적으로 재생산이 진행될 수 있는가? 자본가들은 사회전반의 계획이 없이 제멋대로 생산하므로 그들 사이에 연계는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데로부터 이런 물건은 지나치게 많이 생산되는데 다른 물건은 부족하게 생산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자본이 순조롭게 운동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2)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모습

≪확대재생산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비재의 생산보다도 생산수단의 생산이 보다 급속한 속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다만 자본주의 제도하에서 뿐 아니라 어떠한 사회제도, 예컨대 사회주의하에서도 생산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소비재생산보다도 생산수단의 생산이 우선적으로 즉 보다 급속한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확대재생산의 경제법칙이다. . . . 재생산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기업소에서 생산된 생산물이 원활하게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의 총생산물이 실현되고 재생산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사회생산물의 매개 부분, 즉 각종 생산수단과 각종 소비재간에 일정한 비율(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각종 생산부문간에 균형이 잘 유지될 수 없다. 자본주의나라들의 경기변동과정은 바로 재생산을 위한 균형관계가 항상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많은 자본가들이 저마다 독립적으로 마음대로 생산하기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는 아무런 계획이 없고 경쟁과 무정부 상태가 지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개 생산부문의 확대는 극히 불균형적으로 진행되며 금년에 어떤 생산부문이 지나치게 확대되었다면 명년에는 또 다른 생산부문이 지나치게 확대되곤 한다.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에서 확대재생산에 필요한 균형이 잡혀진다는 것은 우연한 현상이며 오히려 균형이 부단히 파괴되는 것이 정상적인 현상으로 되고 있다. . . . 자본주의하에서는 균형이 심한 불균형 속에서, 동요와 곤란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생산이 확대되면 될수록 생산의 무정부성은 더욱 심해지며 각 생산부문들간의 불균형이 더욱 심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재생산의 모순이다. . . . 그러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왜 생산과 소비간에 심한 불균형이 생기게 되는가? 자본가는 이윤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선진기술을 도입하며 새공장을 건설하는 등 생산규모를 확대한다. 이러한 데로부터 자본가는 생산을 확대하는데 필요한 기계, 설비품 등 생산수단을 많이 주문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부문의 자본가들은 그 생산을 더욱 확대하여 많은 물건을 생산하게 된다. 이 결과 생산수단의 생산이 성장하게 되며 사회총생산물 중에서 생산수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보다도 훨씬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수단의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의 확대는 소비재의 생산과 아무런 연계가 없이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생산수단을 구입한 자본가는 그것을 가지고 생산규모를 확대하여 소비재를 더욱 많이 생산하여 공급하게 된다. 이리하여 생산수단이 생산이 확대됨에 따라 소비재의 생산도 또한 확대된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소비재를 구입하여 소비해야 할 근로대중(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전체인구의 압도적 대다수를 차지한다)은 날로 더욱 빈궁해지므로 상품의 소비는 도리어 상대적으로 감소되며 팔리지 못하는 상품이 많아지게 된다. 이로부터 생산과 소비간의 심각한 모순이 나타난다. 물건은 많이 생산되지만 많은 부분이 판매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사정은 소비재의 생산에 타격을 주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생산을 축소시키기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소비재생산의 축소는 이번에는 다시 소비재를 생산하는 생산수단의 생산에 타격을 주어 그 생산을 축소시키게 한다. 이러하여 소비재나. 생산수단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타격을 받아 생산이 축소되게 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편 할수록 이러한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은 더욱 날카로와진다. 그것은 단적으로 경제공황에서 나타난다. 이상과 같은 모순으로 인해서 자본주의적 재생산은 결코 정상적으로 원활하게 진행될 수 없으며 파탄과 경제공황을 겪으면서 진행된다.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모순은 자본주의에 고유한 것으로서 오직 자본주의를 청산할 때에만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다.≫

3) 자본주의사회에서 국민소득과 그의 분배

≪국민소득은 분배와 재분배를 통하여 결국 그 일부가 소비되고 다른 일부는 축적되게 된다. 소비되는 국민소득 부분에는 근로자들이 소비하는 부분과 착취자들이 소비하는 부분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근로자들이 소비하는 부분은 매우 보잘 것 없으며 심지어 최저생활비도 보장하기 힘들 정도다. 국민소득의 많은 부분이 착취자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에 낭비되며 또한 대중을 억압하는 국가기관의 유지와 식민지 인민들을 침략하고 학살하기 위한 전쟁준비와 그 수행에 이용된다.≫

4) 경제공황

≪그러면 경제공황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많은 것을 만들어 내어도 그것을 구입할 인민대중의 구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건이 잘 팔리지 않는다. 이로부터 상품이 남아돌아 가게 된다. 상품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 과잉하게 되면 수백 수천의 공장과 기업소들이 문을 닫게 되고, 따라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당하고 실업이 급격히 증대된다. 그리고 도시와 농촌에서 수많은 소생산자들이 파산 영락되고 상업은 혼란에 빠지고 신용상 연계도 파괴된다. 취인소들에서도 파산이 일어나며 주권, 국채 기타 유가증권의 시세가 폭락한다. 파괴의 물결이 공업기업소, 상사, 은행 등 모든 부문을 휩쓴다. 이리하여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파산과 혼란이 일어나 심한 경제적 파국이 닥쳐온다. 이러한 현상을 경제공황이라고 한다. . . . 자본주의기본모순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면서 경제공황을 일으키게 한다.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은 첫째로 생산의 무정부성으로 나타난다. 생산이 사회적 성격을 띠고 각 생산부문들간에 상호긴밀한 연계가 있는 것만큼 사회전체의 생산이 원만히 진행되려면 통일적인 계획이 있어서 각 생산부문이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이 사적 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매개 자본가들은 사회에서 어떤 상품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서로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하려고 제각기 제멋대로 생산을 확대한다. 그 누구도 다른 자본가에게 어떤 종류의 상품을 얼마나 생산해야 한다는 것을 지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회 전반적으로 생산은 무계획적으로, 무정부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드디어 생산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며 이러한 혼란이 심해질 때에 경제공황이 일어나게 된다. 둘째로 생산과 소비간의 적대적 모순으로 나타난다. 자본가들마다 서로 경쟁에서 승리하고 남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 생산되는 상품의 생산비를 낮추려고 애를 쓴다. 이를 위해 자본가들은 기술을 개선하며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고 생산규모를 확대한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져 이윤율의 저하를 가져온다. 자본가들은 이것을 이윤의 절대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보상하려고 투자액을 증대한다. 이 모든 것은 생산을 더욱 더 확대하는 길로 나가게 한다. 그러나 반면에 자본이 축적되고 생산이 확대됨에 따라 근로자에 대한 착취는 더욱 강화되고 실업자 대열이 늘어가고 생활필수품가격은 점점 올라가 근로자들의 생활은 더욱 가난해진다. 그리하여 생산이 확대되어 자본가들의 공장에서는 물건이 많이 쏟아져 나오지만 근로자들의 구매력, 소비능력은 더욱 더 이에 따라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생산과 소비간에 생기는 이 모순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은 쌓이고 쌓여 일정한 시기에 가서 상품은 팔리지 않게 되고 드디어 경제공황이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경제공황의 원인은 자본주의 제도 자체에 깊이 뿌리 박고있다. 그러므로 경제공황은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그림자와 같이 따라 다닌다. 공황을 없애자면 자본주의를 없애는 길 밖에 다른 길이란 없다. . . .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공황은 일정한 기간을 두고 반복하여 폭발하고 있다 한 공황의 시초로부터 다음 공황의 시초에 이르는 기간을 경기순환이라고 한다. 한 경기순환은 4개의 국면, 즉 공황, 불경기, 활기증진, 호경기로 이루어지고 있다. 경기순환은 공황으로부터 시작된다.황은 생산과 소비간의 적대적 모순이 극도에 달하여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경기순환의 첫국면이다. 이 국면에서는 지불능력있는 수요(구매력)이상으로 상품이 생산된 결과, 팔리지 못하는 상품이 창고나 상점에 대량 쌓이게 되고 물가는 폭락한다. 그 결과생산이 급격히 줄어들고 실업이 격증하며 임금이 심히 낮아진다 도시와 농촌에 있는 수많은 소생산자와 중소자본가들이 대량으로 영락, 파산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공황을 산업지진이라고 불렀다. 공황시기에는 막대한 생산시설들과 수많은 생산물이 인위적으로 파괴되고 생산의 규모를 좁은 범위의 소비에 적용시킨다. 이것은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을 폭력의 방법으로 일시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황은 사회생산력을 심히 파괴하고 점차 불경기로 넘어간다. 불경기는 공황 직후에 오는 경기순환의 한 국면이다. 이 국면에서 특징으로 되는 것은 공업생산이 침체상태에 있으며 상품가격이 낮고 상업이 활기를 잃고 많은 화폐자본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공황의 국면에서 벌어졌던 것과 같은 생산의 파괴현상은 일단 정지되지만 아직 수많은 기업소가 문을 닫고 많은 실업자가 있으며 임금도 계속 낮은 상태에 있다. 그리고 사회의 구매력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불경기시기에는 그 다음에 올 활기중진과 호경기의 전제조건들이 조성된다. 자본가는 쌓여있는 상품의 일부를 불사르고 폐기해 버린다 그리고 자본가는 물가가 저하된 조건에서 생산비를 낮추는 방법으로 이윤을 얻으려고 애쓴다. 자본가는 이 목적을 위해 첫째로 임금을 낮추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등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더욱 강화한다. 둘째로, 설비, 기계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등 고정자본을 갱신하며 새로운 생산방법을 도입한다. 고정자본의 갱신은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부문들에서 생산의 성장을 추동하게 된다. 설비를 생산하는 기업소들은 주문을 받게되며 각종 원료와 자재에 대한 수요가 생기게 된다. 이는 다시 생산수단의 생산과 관련된 일련의 생산부문들의 생산을 자극한다. 이에 따라 각종 원료·자재·노동력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생산과 유통은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불경기는 활기증진으로 넘어가게 된다. 활기증진은 기업소들이 공황의 타격으로부터 벗어나 생산의 확대에 들어서는 경기순환의 한 국면이다. 이 시기에는 생산수준이 점차 공황 전 수준에 이르게 되며 물가는 올라가고 자본가의 이윤도 늘어난다. 이리하여 활기증진은 호경기로 넘어간다. 호경기는 생산이 이전의 경기순환에서 공황 직전에 도달한 최고생산수준을 능가하는 경기순환의 한 국면이다. 호경기시기에는 생산이 확장되며 새로운 기업소와 철도들이 건설된다.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므로 그것이 잘 팔리고 물가도 올라간다. 상인은 앞으로 물가가 계속 올라갈 것을 타산하고 될수록 더 많은 상품을 구입하여 저장하려고 하며 산업자본가는 이에 추동되어 생산을 더욱 확대한다 자본가마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억만장자가 되어 보려고 미쳐 날뛴다. 이 모든 것은 생산과 상업의 규모를 무제한하게 확대하도록 추동한다. 이리하여 생산의 규모는 또 다시 지불능력 있는 수요(구매력)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게 된다. 이리하여 새로운 경제공황을 일으킬 수 있는 전제조건이 새롭게 조성되어 간다. 생산은 공황이 닥쳐오기 직전의 최고수준에 도달하나 아직도 더 많은 물건이 판매될 수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과잉생산은 벌써 존재하지만 그것이 아직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투기는 물가를 올리며 상품에 대한 헛수요를 턱없이 팽창시킨다. 과잉상품이 쌓이게 되며 공황의 물결은 다시금 자본주의 경제를 휩쓸게 된다. 이렇게 자본주의 재생산은 일정한 기간을 두고 주기적으로 경제공황을 겪으면서 진행된다. 그러면 공황이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일어나게 되는 이유(물질적 기초)는 어디 있는가? 그것은 고정자본의 갱신에 있다. . . . 고정자본의 대량적인 갱신은 생산을 침체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과잉생산공황이 일어나게 하는 조건으로도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고정자본의 대량적인 갱신은 공황이 주기적으로 거듭되게 하는 물질적 기초로 되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나라에서 공업부문의 기본생산수단의 수명을 보면 평균 약 10년이 된다. 이것은 공황과 공황 사이의 기간과 대체로 일치되고 있다. . . . 경제공황은 자본주의의 온갖 모순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이고 또 그 모순의 폭력적 폭발이다. 경제공황은 자본주의 나라의 공업, 농업, 상업, 금융 등 모든 경제분야에 심대한 타격을 주며 자본주의모순을 더욱 더 첨예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를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의 길로 이끌어 간다. 경제공황은 전반적 성격을 띤다. 어느 한 생산부문에서 일어난 공황은 급속히 한 나라의 모든 경제부문을 휩쓸고, 더 나아가서 조만간에 전체 자본주의 세계에 파급된다. 그리고 경제공황은 무엇보다도 먼저 생산력을 파괴하며 막대한 재부를 낭비하게 하며 경제를 퇴보시킨다. 19세기의 공황시기에 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제생활 수준은 3-5년씩 후퇴하였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수십년씩 후퇴하였다. 경제공황은 자본주의의 약탈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매 공황시기마다 기아와 빈궁에서 허덕이는 수백만 근로자들이 헤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국가는 자본가를 공황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상품을 구입하고 바닷물에 넣거나 불태워 버리거나 부숴버린다. 심지어는 파종한 농작물마저도 갈아엎어 버린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억제하는 장애물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다. 생산이 감소되고 물건이 대량 파괴되는 조건에서 경제공황은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에게 헤아릴 수 없는 불행을 가져다준다. 공황시기에는 수천,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기아와 빈궁속에서 헤매지 않으면 안된다. 자본가는 이와 같은 대중적 실업을 이용하여 노동강도를 높이며 임금을 낮추는 등 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를 강화한다. 노동자 뿐만 아니라 수많은 근로농민, 수공업자들도 파산 몰락하여 극도의 빈궁과 기아 속에서 신음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경제공황은 근로자의 생활수준을 극도로 악화시킨다. 이리하여 경제공황은 노동자와 농민대중을 한편으로 하고 자본가와 지주 고리대금업자들을 다른 편으로 하는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간의 계급적 모순을 극도로 첨예하게 만든다. 공황시기에 노동자들은 자기들이 장기간의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단체계약의 체결, 노동시간의 제한, 노동조건의 개선. 사회보험제의 실시 등 초보적인 권리마저 몽땅 빼앗기고 만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되자면 오직 자본주의 제도 그 자체를 뒤집어엎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한다. 이와 함께 공황으로 인해서 혹심한 피해를 입은 소생산자들로 이제는 자본주의가 무능력하며 자본주의 제도는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본주의 제도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노동자의 뒤를 따라오게 된다. . . .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은 자본주의 사회의 어떤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으로부터 생기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전쟁 또는 경제의 군사화하는 방법을 가지고는 경제공황으로부터 자본주의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 후 4차에 걸쳐 미국에서 일어난 공황이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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