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26일

통일여명 편집국

새시대 정치학원론 3

통일여명 편집국 해설 5-2-12

 

* ≪선군시대의 정치학원론≫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을 발췌소개함.

1. 김정일시대와 정치방식

1) 선행정치방식과 그 제한성

≪정치는 실천이기에 앞서 논이다. 선군정치 역시 그 자체가 정치학이고 정치론이다. 선군정치는 정치사에 일찍이 있어본 적 없는 독창적인 주체의 정치이다. 선군정치를 주체의 정치론으로, 정치방식으로 정립하게 되는 것은 그것이 자주적으로 살려는 민중의 요구와 지향을 반영한 인류의 향도이념인 주체사상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정치의 정상을 이루는 완성된 정치방식으로서의 선군정치의 위상은 ≪1:세계≫라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주의와 민중의 존엄, 국력을 최대치로 과시해 나가는 이북의 현실에서 그 과학성과 진리성이 명백히 증시되었다. . . . 1989년 12월 21일 루마니아에서 ≪개혁≫, ≪개편≫바람을 타고 반정부소요가 일어났다. 챠우세스코대통령은 다음날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보위상 밀레아에게 반란진압을 명령했다. 그러나 군부는 불복종하였다. 군인들속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총쥔 군인들은 데모행렬속에 끼여 든 반동들이 ≪인민≫임을 표방하며 ≪너희들에게는 부모형제가 없는가.≫, ≪너희들은 인민의 빵을 먹고 있다.≫고 웨쳐 대자 총부리를 내리우고 말았다. 거꾸로 대통령이 체포되고 처형당했으며 당도 사회주의정권도 다 무너지게 되었다. 쏘련방에서도 군대가 1991년 8월사변 당시 사회주의배신자들에게 징벌을 가할 데 관한 쏘련방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명령을 거역하고 반대로 사회주의배신자 옐친의 반혁명의 도구로 전락되어 사회주의붕괴를 촉진시켰다. 폴란드군 역시 1989년 연대성노조의 반사회주의폭동을 외면하였다. 이 나라들에서 군부가 흔들리지 않고 사회주의배신자들에게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총소리를 울리었다면 사태는 달리 되었을 것이다. . . . 쏘련방이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서의 군력을 갖고 있음에도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준엄한 시기에 총소리 한방 울리지 못하고 사회주의를 지켜 내지 못한 것은 군사를 정치와 완전히 분리시켜 군대를 비정치화된 집단으로 만든 현대사회민주주의자들≪개혁≫, ≪개편≫정책의 후과이며 나아가서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군사문제를 올바로 해결하지 못한 것과도 관련된다. . . . 맑스-레닌주의창시자들은 군사력을 자본의 지배를 전복하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한 혁명적 폭력으로, 승리한 사회주의혁명을 보위하는 방어수단으로 규제하고 혁명적 폭력의 담당자로서의 민병에 관한 문제, 조국보위의 담당자로서의 군대건설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다. . . .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의 경우에 군대의 사명과 역할, 폭동에서 군대가 견지해야 할 전략전술적 문제에 대해서는 많이 논의하였으나 군사에 관한 문제를 정치방식의 차원에서 취급하지는 못했다. 맑스나 엥겔스에게 있어서 정치란 곧 프롤레타리아정치였으며 그 핵심적인 내용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관한 문제였다. 사적소유의 근본적 폐절과 전 인민적 소유의 확립이 최대의 관심사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정치방식이 다름 아닌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수립이라는 것이 그들의 견해였다. . . . 맑스, 엥겔스의 무장폭동사상무장한 적에는 무장으로 맞서야 한다는 진리를 밝혀 주었지만 세계최초의 노동자계급의 정권으로 탄생한 빠리콤뮨을 지켜 내지 못했다. . . . 제국주의, 프롤레타리아혁명시기 레닌과 스탈린의 군건설이론과 실천에서 주목되는 것은 제2국제당 수정주의자들이 들고 나온 ≪무장철폐≫주장의 배격, 첫 사회주의혁명무장력인 붉은 군대의 창군신생쏘베트정권의 옹호고수에 관한 문제였다. . . . 그러나 거기에는 프롤레타리아트는 무장을 잡아야 하며 무장에 의거하여 반동적 전제제도를 짓부셔야 한다는 원칙이 제시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무력건설의 방도가 밝혀져 있지 못했다. . . . 레닌, 스탈린의 군건설의 공적은 맑스의 무장폭동사상을 승계, 발전시켜 실천에 구현하여 사회주의10월혁명을 성공시킨 것이며 붉은 군대의 창군과 군력의 강화에 기초하여 미국을 위시한 13개 제국주의나라들의 반쏘무력간섭을 좌절시키고 깔레닌, 제니낀, 꼴챠끄, 백파군을 격퇴하고 신생쏘베트 러시아를 수호한 것이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역사적 승리로 국제적 판도에서 사회주의세력권형성의 근본조건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군대관에서는 당대 사회역사적 조건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론실천적 한계를 보여 주었다. . . . 이러한 규제의 참의미는 붉은 군대의 사명과 역할의 요체는 곧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의 나라의 자주권수호에 있음을 밝혀준 데 있는 것이다. 지위에 있어서 군력을 사회주의건설과 별개의 위치에 놓고 사회주의건설의 평화적 환경마련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 . . 붉은 군대의 군력강화는 자국에서의 사회주의건설의 뗄 수 없는 부분의 위상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경쟁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 . . 이러한 대결정책은 미국의 막강한 군력을 전쟁요인으로 보지 않고 미국을 적대국으로가 아니라 동반자로 보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출현앞에 물먹은 담벽과 같이 주저앉았다. . . . 선행한 노동자계급의 군사정치사상과 사회주의정치방식의 한계성을 몇가지로 도출해 낼 수 있다. 그것은 첫째로 군사문제에 관한 선행한 노동자계급의 정치론에서는 군대를 단지 혁명적 폭력의 최고수단으로만 간주하였다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가계급을 타도하기 위한 투쟁에서 무장폭동이 가지는 의의를 밝히고 무장폭동을 성공에로 이끌어 자본주의제도를 전복하고 사회주의제도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혁명적 폭력을 준비해야 하며 그것이 다름 아닌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으로 구성된 군대로 된다는 것을 제기하였다. 선행한 노동자계급의 혁명론에서는 또한 무장철폐를 주장한 기회주의적이며 수정주의적인 이론의 반동성에 타격을 가하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무장을 놓을 때까지, 반동세력이 멸망하기 전에는 절대로 무장을 철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일관하게 강조하였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군대의 필요성과 그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써 의의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의 지위에 놓지 못했다. 그 한계성은 둘째로 군대를 프롤레타리아독재체계내에서 하나의 공간으로, 수단으로만 간주하였다는데 있다. 선행한 맑스주의클라시크들은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이후 사회주의를 공고히 하고 그 위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독재체계를 튼튼히 확립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수단으로 경찰, 군대,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군대는 단순히 프롤레타리아독재의 무기로만 간주된다. 따라서 선행한 정치이론에서는 군사문제, 군대의 강화와 그 역할문제를 노동자계급의 정치, 사회주의정치의 기본을 이루는 근본문제로 된다는 중요한 사상을 제기할 수 없었다. 이전 쏘련방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가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 한계성은 셋째로 군대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수령과 당의 혁명적 영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실천적으로도 그것을 소홀히 한 것이다. 사회주의정치는 곧 수령의 정치이다.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당과 수령의 영도밑에서만 승리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회주의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명실공히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로 되어야 한다. 수령의 영도는 사회주의군대의 생명선이며 군대를 통하여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그 위업을 완성해 나가는 것은 사회주의정치의 기본방식이다. 그러나 선행한 사회주의정치론과 군사문제에서는 이러한 핵심적 문제가 제기되지도 못했고 구현되지도 못했다. 선행한 노동자계급의 군사사상과 정치방식의 이러한 한계성은 시대적, 역사적 조건당대 혁명실천의 요구로 볼 때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김정일시대와 선군정치방식의 출현

선군정치, 선군정치방식김정일시대에 와서 처음으로 출현한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의 정치사상적 위상에 대해 김정일장군께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시었다. ≪선군정치는 나의 기본정치방식이며 우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만능의 보검입니다.≫ 선군정치방식은 이북에서의 주체혁명위업발전의 새로운 역사적 단계의 요구와 탈냉전-데탕드시대의 시작과 함께 세계적 판도에서 일어난 진보와 반동세력간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희세의 정치가이시고 걸출한 군사전략가이신 김정일장군께서 직접 구상하시고 제시하신 혁명적인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 선군정치방식의 출현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도상에서 이북이 부닥치게 된 도전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1994년 7월 이후 세계의 이목은 이북에 쏠려 있었으며 구체적으로는 김정일장군께 향해져 있었다. 그것은 나라의 운명개척과 사회주의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한 투쟁도상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비상한 정치지도력의 발휘를 필요로 하는 때에 사회주의이북의 창업주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서거로 그 모든 중하가 고스란히 김정일장군께 옮겨진 때문이다. 무릇 사회주의정치사에서도 권력승계과정이 있기 마련이고 또한 김정일장군께서는 이미 30여년전부터 당과 국가, 혁명의 전반을 영도하는 지도자로서의 중임을 맡아 오시었지만 일찍이 있어 본적 없는 가장 어려운 때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단신으로 걸머지셔야 할 역사적 과제를 맡아 안으시게 되었던 것이다. . . . 그러나 김정일장군의 대응은 이를 전면부정하는 향방에서 제시되었다.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이고 버리면 죽음입니다≫. . . 그분께서 수십년간 키우고 다져 오신 강력한 군사력을 믿으시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대국상 이후 첫 현지시찰로 1995년 설날 아침 조선인민군의 어느 한 구분대를 찾으신 김정일장군의 모습에서 국제정치의 이같은 관심사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첫 군시찰은 군대를 믿고 군대에 의거하여 험로역경을 헤치며 미래를 열어나가시려는 김정일장군의 정치적 결심과 의도가 비쳐 진 역사적 행보였다. 김정일장군께서 하신 다음의 가르치심에서 그러한 결심과 의도를 확인하게 된다. ≪총대우리의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것은 우리 당의 변함없는 신념이며 의지입니다.≫ . . . 생사를 판가리하는 극한상황에서 영도자의 전사들에 대한 믿음은 특별한 가치를 갖는 법이다. 인민군대에 대한 김정일장군의 신뢰에서 군인들은 자기들이 틀어잡은 총대위에 사회주의운명도 나라와 민족의 미래도 달려 있다는 시대적, 역사적 사명감을 폐부로 절감했으며 그것은 수령결사옹위정신, 육탄정신, 자폭정신을 핵으로 하는 혁명적 군인정신이라는 정신력으로 폭발되면서 온 사회에 풍미되어 갔다. 끊임없는 군시찰, 거기서 창조되는 혁명적 군인정신, 그것을 생명력으로 하여 수호되고 전진하는 주체사회주의, 이같은 미증유의 정치과정을 가리켜 김정일장군께서는 ≪우리의 영도는 선군영도이고 정치방식은 선군정치≫라고 선언하시었다. 선군정치방식의 출현은 또한 90년대 중엽에 조성된 세계정세와 떼여 놓고 생각할 수 없다. . . . 조성된 정세는 사회주의의 기치는 영원히 내리워지게 되는 것인가, 진보와 정의, 평화에 대한 인류의 지향과 염원은 영원히 실현불가능한 것으로 되는가 하는 엄혹한 정세가 조성되었던 것이다. . . . 군사중시를 제일 가는 국사로 간주하시고 군대를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키우고 강력한 군대에 의거하여 제국주의, 지배주의세력의 강권적, 패권적 침략기도를 저지시키며 사회주의의 전진운동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김정일장군의 선견지명한 정치지략이었다. . . . 이처럼 선군정치는 인류역사발전과 세계혁명발전의 절박한 요구에 부응하여 새롭게 창조된 완성된 정치방식이다. . . . 선행 사회주의정치방식과의 관계에서 볼 때 선군정치는 김정일장군께서 김일성주석의 선군혁명영도를 승계발전시켜 사회주의정치사에서 처음으로 내놓으신 사회주의정치방식으로 자리 매김된다. 백수십년에 달하는 사회주의정치사는 사회주의본성에 맞는 정치방식을 모색하여 온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맑스에 의해 1848년 2월 ≪공산당선언≫이 발표되고 그것이 밝힌 사회주의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당이 창건되면서 시작된 사회주의정치사에 콤뮨정권형태와 쏘베트정권형태가 발견되면서 그에 따른 사회주의정치방식도 나오게 되었다. 콤뮨정권, 쏘베트정권에 의해 실시된 정치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실현에 중점을 두고 노동자계급에 의거하여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방식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을 선노정치방식(先勞政治方式)이라 할 수 있다. 이 선노정치방식하에서 노동자계급의 당과 군대와의 상호관계를 살펴보면 노동자계급의 당이 먼저 건설되고 그에 기초하여 군건설이 이루어진 것으로써 선당후군(先黨後軍)건설방식을 보이고 있다. 맑스는 1847년 6월 공산주의자동맹결성 즉 공산당창건으로 혁명투쟁의 출발을 뗐으며 레닌 역시 10년간에 걸치는 창당준비과정을 거쳐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제2차대회에서 첫 맑스주의적 당강령 채택에 따른 맑스주의당(볼쉐비크당)창건으로 혁명투쟁을 시작했다. 맑스, 엥겔스는 당대에 민중투쟁의 전형적 방식인 무장폭동, 바리케이트전에 직접적으로 총을 들고 참가한 적이 없으며 건군위업을 이루어 낼 수 없었다. 레닌, 스탈린의 경우 볼쉐비크당의 영도로 정권을 쟁취하여 쏘베트정권을 일떠세운 데 기초하여 1918년 1월에 노농 붉은 군대를, 1918년2월에 노농 붉은 해군을 조직할 데 관한 명령을 채택했다. 중국혁명 역시 1921년에 중국공산당이 먼저 창당되고 그 지도밑에 1927년8월1일 남창폭동에 참가하였던 무장폭동부대들과 호남지방 농민폭동군이 합류되어 노농홍군이 조직되었다. 사회주의정치에서 이렇듯 선당후군건설방식은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혁명공리로 인정되어 왔다. 이와는 달리 주체혁명에서는 사회주의정치문제를 이같은 기존혁명공식이나 관례에 구애됨이 없이 주체적으로 풀어 왔음을 보게 된다. 즉 선당후군이 아니라 선군후당의 길이 선택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혁명위업의 개척기에 조선인민혁명군을 먼저 창건하시고 그 강화발전으로 조국광복위업을 이루어 내셨으며 광복후에는 당을 창건하고 그 다음 군대를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킨데 이어 건국위업도 이루어 내시었던 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수령님의 혁명투쟁역사는 군대를 먼저 창건하고 그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승리에로 이끌어 오신 선군혁명영도의 역사이라고 하시면서 김일성주석의 혁명투쟁사를 선군혁명영도사로 규제하시었다. 당이나 정권건설에 앞서 군대를 먼저 창건하고 그에 기초하여 당, 정권건설을 이루어낸 것은 맑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혁명투쟁사와 명백히 구별되는 김일성주석의 군중시의 혁명투쟁사이다. 선군정치는 김일성주석의 선군혁명영도사와의 관계에서 볼 때 그러한 전통의 승계발전이다. 이것은 김일성주석과 더불어 일찍이 60년대부터 군건설위업에 직접 몸 담그시고 조선인민군의 강화발전을 주도해 오신 김정일장군께서 90년대의 복잡한 정세하에서 선대수령이 창조한 군중시의 혁명영도사를 더욱 굳건히 이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주체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발전완성시켜 나가기 위한 유일한 진로로 된다는 판단에서 내리신 선택인 것이다. 이렇듯 선군정치는 단순히 오늘날의 엄혹한 정세극복의 처방으로 내려 진 특수한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선대수령이 마련한 선군혁명영도의 정통성의 계승이며 총대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총대로 끝까지 완성하려는 확고한 의지로 행하여 오신 김정일장군의 수십년간에 걸친 선군혁명영도사의 새로운 높은 단계에의 발전이고 오늘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새롭게 정립된 기본정치방식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선군정치방식은 김정일장군께서 역사상 처음으로 발견하시고 정립하신 독특한 주체의 정치방식이다. 지금까지는 정치방식문제를 주로 국가계급적 성격사명, 기능면에서 고찰하면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민중의 지위와 역할신장을 담보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방식으로 보아 왔다. 선군정치는 제국주의의 포위와 도전속에서 민중의 자주위업을 완성해 나가야 하는 주체위업완성의 합법칙성의 견지에서 보아 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지향을 최선으로 담보하고 그 역할을 최대한 높이게 하는 것을 비롯하여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요구를 가장 훌륭히 실현해 나가는 것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정치방식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그것은 어느 한 일시적인 단계에서의 정치방식만이 아닌 주체위업완성의 전 역사적시대를 포괄하는 주체사회주의정치노선, 완성된 정치방식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방식은 이북고유의 군중시의 국가정치체제에 의해 담보된다.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는 헌법을 개정하여 국가기구체계에서 국방위원회와 국방위원회위원장의 지위와 권능을 격상시킨 군중시의 국가정치체제를 수립했다. 종전에는 국방위원회가 최고인민회의와 그 휴회중의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중앙인민위원회 다음 순위에 있었다면 개정된 헌법에서는 국방위원회가 최고인민회의 다음 순위에 놓임으로써 국방위원회가 법적 지위와 구성, 임무와 권한에 있어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지방주권기관들, 사법검찰기관보다 우위에 놓는다.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중임은 나라의 정치, 군사, 경제역량의 총체를 통솔지휘하여 사회주의조국의 국가체제와 인민의 운명을 수호하며 나라의 방위력과 전반적 국력을 강화발전시키는 사업을 조직영도하는 국가의 최고직책이며 조국의 영예와 민족의 존엄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성스러운 직책으로 음미된다. 헌법의 개정에 따른 이북의 정치체제는 이집트대통령이 내왔던 군사총통제나 70년대까지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 존재했던 군정과는 구별되는 군중시의 국가정치체제이다. 국가기구자체를 군사체제화한 것이 아니라 국가기구체제에서 군사를 우선시하고 군사분야의 지위와 역할을 최대한 높이도록 권능을 규제한 정치체제이다. . . . 그들의 논리는 사회주의가 발전하면 무계급사회가 실현되게 되며 따라서 국가가 필요 없게 된다는 원리에 바탕한 것이었다. 계급이 없어지고 국가가 조락되는 것과 함께 군대도 필요 없게 된다는 논리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선군정치사상을 새롭게 정립하심으로써 기성의 그릇된 정치론에 종지부를 찍으시고 군대가 혁명의 기둥으로서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한 전 기간에 걸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는 독창적인 사상을 제시하시었다.≫

2. 김정일정치의 기본방식 - 선군정치

1) 군사를 선행하는 정치

선군정치본질에 있어서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위업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이다. 이것은 군대의 지위역할의 시각에서 고찰할 때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주력군으로서의 군대의 역할에 기초하여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 나가는 정치임을 뜻한다. 군사선행은 선군정치의 핵심적인 사항이다. 군사를 선행한다는 것은 군사를 국사중의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군력강화에 선차적인 힘을 넣는다는 것이다. . . . 김정일장군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인민군대는 우리 혁명의 기둥이며 주체혁명위업완성의 주력군입니다.≫ 선행시기의 사회주의정치에서는 노동자계급농민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핵심역량의 지위에 놓았으며 그들을 혁명의 2대역량으로 내세웠다. 노동자, 농민을 혁명의 주력군으로 내세운것은 맑스-레닌주의적계급투쟁론, 혁명론의 원리에 기초한 것이었다. . . . 1935년 에스파니아에서는 공산당과 각계각층 정당, 사회단체들을 망라하는 강력한 인민전선이 형성되고 1936년 2월의 국회선거에서 승리하여 공산당이 참가한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었다. . . . 4년간에 걸치는 이 전쟁에서 에스파니아민중은 많은 국제적인 지원까지 받았으나 1939년 3월 말 패하고 말았다. 인민전선정부가 전례 없는 국제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도 75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압살된 주요한 원인은 자체의 혁명역량이 잘 준비되어 있지 못한데 있으며 특히 정규군이 뒤늦게 조직되고 통일적인 군지휘체계가 서지 못하는 등으로 군대가 항전을 주도하지 못한데 있다. 이것은 군대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는 하나의 실례이다. . . . 혁명역량관계의 시각에서 보아 선군정치는 혁명군대사회주의위업수행의 주력군으로, 기둥으로, 핵심으로 내세우고 군대민중을 혁명의 2대역량, 사회정치적 지반으로 보며 군대와 민중의 일치를 혁명의 밑뿌리로 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정치이다. . . . ≪지금 우리는 마치와 낫우에 총대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당의 독창적인 군사중시사상, 선군정치노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 . . 군사선행의 선군정치는 정치와 군사의 상호관계에서 군대를 정치의 기본골간으로, 정치의 중심에 놓을 것을 요구한다. . . . 돌이켜 보면 이 세상에 군대가 출현한 것은 원시공동체사회가 붕괴되고 최초의 계급사회인 노예소유자사회가 출현하여 전쟁이 발생하면서부터였다. 전쟁의 담당자로 태어난 군대는 지나온 모든 착취사회에서 착취계급의 계급적 지배와 권력을 폭력으로 밑받침하는 특수한 무장집단으로 역할을 했다. 그 발생의 견지에서 볼 때 군대의 출현자체가 정치의 산물이며 또한 군대가 어느 사회에서나 정치의 수단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만큼 군대를 정치의 중심에 놓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리치로 된다. 때문에 정치가 군대를 외면하고 군대를 비정치화, 비사상화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된 논리로 된다. 그럼에도 이전 쏘련방과 동유럽의 사회주의나라들에서 ≪개혁≫, ≪개편≫의 구호를 들고 군대의 비정치화, 비사상화정치노선을 택한 것은 정치적 무지가 아니라 사회주의붕괴를 목적한 반동적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 . . 총정치국이 군대안의 당조직과 정치사업을 지도하는 당정치지도기관으로부터 군인들의 문화오락을 조직하고 정치군사소식이나 알려주는 일반문화행정기구로 이전되었던 것이다. . . . 선군정치방식이 군대를 혁명의 기둥, 주력군으로 내세운다고 하여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이여의 정치세력들이 민중의 자주적 주체로서의 지위에 차질이 생긴다는 논리는 서지 않는다. 원리적으로 보아 사회주의사회에서 주인으로서의 민중의 지위가 높아지는가 낮아지는가 하는 것은 사회발전수준정도에 따르는 문제이고 주인의 지위를 가지는가 못 가지는가 하는 것은 사회주의운명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군대의 지위를 핵심적 위치에 놓음으로써 사회발전, 사회주의운명과 직결되는 민중의 자주적 지위는 더욱 높아지며 또한 확실하게 담보된다.≫

2) 군에 의거하여 혁명을 전진시키는 정치

≪군사를 선행시킬 뿐 아니라 군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추진시키는 것김정일장군께서 펴나가시는 정치방식의 근본특징이다. . . . 군에 의거하여 혁명을 전진시킨다는 것은 인민군대의 선봉적이며 강력한 힘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를 힘있게 전진시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군대를 혁명의 가장 믿음직한 핵심역량, 전위부대로 내세우고 그에 의거하여 사회주의를 수호하며 사회주의건설을 더욱 힘있게 다그쳐 나간다는 것을 뜻한다. 군대를 본보기로 하여 혁명의 주체를 강화하고 군대의 선구자적 역할을 높여 사회주의건설의 돌파구를 열어 나가며 온 사회를 혁명적으로 일신시켜 나가는 것이 다름 아닌 선군정치방식이다. . . . 군을 단순히 전쟁의 수단이나 조국방위를 위한 수단으로가 아니라 조국보위혁명과 건설을 다같이 통일적으로 담당하여 수행해 나가게 역할한다는데 선군정치방식의 본질적 의미가 있다. . . . 군력의 사명을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의 조국수호에만 매달아 놓은 선행 사회주의정치방식과는 달리 군력을 사회주의위업의 수호, 전진을 총체적으로 떠올리는 지레대로 삼는 정치방식인것이다. . . . 맑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한 사회주의이론과 실천에서는 노동자계급을 혁명의 영도계급으로 보고 노동자계급의 영도적 역할을 높이는 방법으로 점차 계급적 차이를 없애는 방식으로 사회주의위업을 수행할 데 관해 밝혔고 또 그러한 방향에서 사회주의를 전진시켜 왔을 뿐이지 군대를 추동력의 지위에 놓지 못했다. 선군정치는 이와 달리 혁명군대가 혁명적 군인정신, 투쟁기풍, 생활기풍에서 모범을 창조하고 그것을 온 사회에 파급시켜 군대와 민중이 사상과 투쟁기풍의 일치를 이루며 이 군민혼연일체의 위력으로 사회주의위업을 완성할 데 관한 사상인 것이다. . . . 다른 사회적 조직과 집단에 비한 인민군대의 혁명성, 우월성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 . . . 인민군대가 그 정치사상적 준비와 혁명성에서 핵심부대이라는 것이다. . . . 자기 수령, 자기 당에 대한 충실성, 혁명위업에 대한 끝없는 헌신성은 인민군대의 가장 본질적인 우월성이며 근본특징이다. . . . 인민군대는 세상에서 가장 규율있고 전투적인 혁명역량이라는 것이다. . . . 당과 수령의 명령지시관철에서 인민군대가 발휘하고 있는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높은 창조력과 실천력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위력한 것이라는 것이다. . . . 선군혁명영도는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사회주의위업수행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영도이다. . . . 군력에 의거하여 혁명을 전진시키는 선군정치의 의미는 또한 혁명의 주력군, 기둥의 위치에 선 군대의 결정적 역할에 기초하여 사회의 모든 분야를 추동하여 사회주의위업전반을 밀고 나가는 영도방식이라는데 있다. . . . 군력강화에 의거하여 사회주의위업수행을 떠밀어 나가는 정치방식을 구현한다고 하여 노동자계급의 영도적 역할이 무시되거나 약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영도적 역할을 최상의 높이에 올려 세우는 정치가 바로 선군정치방식이다.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노동자계급의 영도적 역할 발현정도는 주요하게 그들이 어떠한 사상정신적 준비상태에 있는가에 따르게 된다.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면 어떤 난관을 겪더라도 계급적 원칙, 사회주의원칙을 철칙으로 지키며 목숨을 버릴지언정 사회주의를 끝까지 지켜 싸우게 된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이북민중이 지닌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자기 수령, 자기 영도자에 대한 신념으로 집약되며 수령결사옹위정신으로 발현된다. 이 수령결사옹위의 핵심부대가 다름 아닌 인민군대이다.≫

3. 선군정치방식의 사상적 기초

1) 군대이자 당, 국가, 인민

≪사회발전은 정치에 의하여 향도되며 정치의 성격과 성공은 그가 의거하고 있는 정치철학에 의해 규제된다. 정치철학은 정치의 나침반이다. . . . 사회주의사회에서도 노동자계급의 당이 어떤 군사정책을 실시하며 정치의 기본방식을 어떻게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떠한 철학을 기초로 삼는가 하는 것과 관련되게 된다. 선행한 노동자계급의 군사정치는 맑스-레닌주의철학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정치는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독재중심의 견지에서 수립되고 시험되었다. 그로부터 군사정치는 당시 군대를 단지 혁명을 분만하고 보위하는 수단이라는 이해에 기초하여 작성집행되었을뿐이다. 김정일장군에 의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발견된 선군정치는 주체사상의 원리에 기초하여 새롭게 정립된 정치철학, 즉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고 인민이라는 지론에 바탕한 정치방식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제국주의의 포위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 강력한 혁명무력이 없이는 인민도 없고 국가도 있을 수 없습니다.≫ . . . 선군정치는 혁명의 주체,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가 다름 아닌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라는 원리에 바탕하여 군대이자 곧 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정치철학을 그 이데올로기적 기초로 삼는 정치이다. . . . 이러한 지론은 사회주의사회군대노동자계급의 당국가정권, 민중요구와 이해관계, 지향과 투쟁목적 등에서 상치되는 것이 아니라 일치하는 혼연일체의 사회이며 군대, 당, 정권, 민중의 어느 하나도 없으면 모두가 없는 운명공동체적 사회라는 본성에서 도출된다. 정권과 민중이 적대관계에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정치구도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선군정치는 군, 당, 국가, 민중일심단결되고 운명공동체로 결집된 이북사회주의의 본성에 뿌리를 둔 이북고유의 정치방식인 것이다. 선군정치는 무엇보다도 군대가 곧 당이라는 정치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군대가 곧 당이라는 것은 군대의 창건과 그 목적사명, 그 정치적 성격에 있어서 당과 군대의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 . 혁명군대에 있어서 당의 영도군대의 생명선으로 되며 그 강화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된다. . . . 원리적으로 보아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계급의 당군대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당은 혁명의 참모부이고 군대는 당의 전략적 목표, 과제실현을 무장으로 받드는 기둥이다. 당과 군대가 서열상 누가 선차냐 할 때 당이 앞자리에 놓이며 따라서 군대는 그 위상에서 명실공히 당군으로 자리매김된다. 이같은 상호관계로부터 군대는 당의 영도를 생명선으로 하며 당의 영도를 받아야만 군력강화도 역사적 사명수행도 이루어낼 수 있다. . . . 1997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창건 65돌경축 열병식을 위시하여 조선인민군이 조선노동당기를 들고 보무당당히 행진해 나가는 모습에서 당군으로서의 조선인민군의 성격을 읽게 된다. 선군정치는 군대이자 국가라는 정치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군대이자 국가라는 것은 총대에서 정권이 나오고 정권은 총대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 . . 선군정치는 군력이자 국력이고 군대의 운명이자 국가정권의 운명이라는 이같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호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정치방식인 것이다. 군대이자 국가이라는 논리는 실천에서 국방사업을 국사중의 국사로 틀어쥐고 나가며 국방강화를 혁명의 천하지대본으로 여길 때 최상의 높이에서 구현된다. . . . 선군정치는 또한 군대이자 인민이라는 정치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 . . 자본주의사회에서 군대와 인민은 대립되는 관계에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에서 군대와 민중이해관계에서의 공통성, 군대의 구성과 성격에서의 민중성으로 하여 하나의 혼연일체를 이루게 된다. . . . 한마디로 말해서 사회주의사회에서 군대와 민중은 요구와 이해관계, 지향과 투쟁목적에서 하나로 일치하는 통일체로서 존재한다. . . . 군대는 곧 당이고 국가이고 인민이기 때문에 군사선행, 군력의 선차적 강화는 곧 당을 강화하고 국가를 강화하며 민중의 이익을 철저히 옹호하는 것으로 된다.≫

2) 총대철학

≪선군정치는 총대철학, 총관에 기초하고 있다. 총대철학, 총관이란 총에 대한 관점과 견해이다. 선군정치가 군사를 중시하는 정치인 것만큼 총대철학이 선군정치의 사상적기초로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되고 있다. 1995년 6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나는 총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사랑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11살 때 나에게 권총을 주시었습니다. 그때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왜 나에게 장난감 대신 권총을 주시었는가 하는 것을 미처 다 몰랐습니다. 나는 곡절 많은 혁명의 길을 걸어오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왜 어린 나에게 권총을 주시었으며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가슴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계급의 무기, 혁명의 무기, 정의의 무기입니다. 우리의 총에는 항일혁명선열들의 고귀한 피와 넋이 스며 있으며 사회주의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나는 언제나 총과 숨결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하여도 총만은 자기 주인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총은 혁명가의 영원한 길동무이며 동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총에 대한 나의 지론이고 총관입니다.≫ . . . 한마디로 말해서 총대에도 사상이 있다는 것이 총대철학의 본의이다. 총대의 사상적, 계급적 성격, 그 강약에 총대의 가치, 위력이 좌우된다는 지론이 김정일장군의 총대철학의 핵인 것이다.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것이 선군정치의 성격과 사명을 규제하는 사상적 기초이라면 총대철학선군정치의 필연성과 당위성, 선군정치의 영원한 생명력을 특징짓는 사상적 바탕이다. . . . 김정일장군의 혁명적 생애총대집단에서 탄생하시어 총대를 사랑하시고 총대를 키워 온 역사였으며 총대로 준엄한 시련을 성공적으로 헤쳐 온 준엄한 역사였다. 이 역사의 나날에 그분께서는 누구보다도 총대의 본질속성, 총대의 위력, 총대를 다루는 방법, 총대의 역할을 높이는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심원한 이해를 가지시었으며 그것을 혁명실천에 빛나게 구현하시었다. . . . 선군정치총은 계급의 무기, 혁명의 무기, 정의의 무기인 동시에 혁명가와 운명을 같이 하는 영원한 동행자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하여도 자기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 가장 귀중한 혁명동지이라는 총관혁명군대의 총창위에 사회주의의 운명,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영예가 있으며 총대로 개척된 자주위업은 총대에 의해 승리하고 전진하며 완성된다는 총대철학에 기초하고 있는 정치방식이다.≫

4. 선군정치 - 완성된 정치방식

1) 민중을 위하는 정치방식

≪한마디로 말해서 선군정치방식은 ≪이민위천≫의 정치원리를 가장 철저하게, 가장 높은 수준에서 구현할 수 있게 하는 정치방식이다. 즉 민중중심의 정치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완성된 정치방식이라는데 바로 선군정치방식의 본질적 우월성이 있다. 그러면 선군정치가 민중을 위한 완성된 정치방식으로 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선군정치방식이 민중의 이익과 존엄을 가장 철저히 옹호하는 정치방식이기 때문이다. . . . 다음으로 그것이 애민, 애족, 애국을 생명으로 하는 정치방식이기 때문이다. . . . 또한 그것이 군과 민의 일심일체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시키는 정치방식이기 때문이다.≫

2) 자주를 담보하는 정치방식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최상의 경지에서 옹호하고 신장시켜 나가는 완성된 자주적인 정치방식으로 된다. 자위가 있어야 자주도 있다는 것이 선군정치의 본의이다. 선군정치가 완성된 자주적인 정치방식으로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가장 철저히 옹호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 . . 다음으로 그것이 자본주의적광풍이 세계를 어지럽게 휩쓰는 엄혹한 정세속에서 주체식으로, 자기 식대로 사회주의를 건설해 나가도록 하는 정치방식이기 때문이다.≫

3) 평화를 지키는 정치방식

≪한마디로 말해서 선군정치는 전쟁의 위험이 가장 첨예하게 조성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평화를 튼튼히 지킬 수 있게 하는 가장 혁명적인 정치방식인 것이다. 선군정치가 평화를 지키는 가장 혁명적이고 완벽한 정치방식으로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저지시키는 가장 위력한 억제력을 마련하는 정치방식이기 때문이다. . . . 또한 그것이 세계적 범위에서 제국주의, 지배주의세력의 침략책동을 저지시키고 사회주의위업의 승리적 전진을 담보해 주는 정치방식이기 때문이다.≫

5. 선군정치 - 혁명승리의 보검

1) 무적필승의 강군을 키우는 철의 보검

≪선군정치는 총이 곧 혁명이며 총이 없는 혁명승리가 있을 수 없다는 혁명원리에 기초하여 주체혁명위업이 영원히 강력한 총대에 의하여 승리해 나갈 수 있게 하는 혁명적인 정치방식이다. 그러면 선군정치가 무적필승의 강군을 키울 수 있게 하는 철의 보검으로 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선군정치가 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철저히 준비된 군대로 만들기 때문이다. . . . 이전시기의 모든 군사건설론이나 전쟁론은 예외없이 군건설전쟁에서 무기를 비롯한 기술기재의 우월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었다. 클라우제비츠의 군사원리나 맑스-레닌주의군사원리 역시 무기중심론을 제창하는 것이었다. 전쟁사를 통털어 ≪항공우세론≫, ≪함대우세론≫, ≪땅크우세론≫은 더 말할것도 없고 오늘 미국이 제창하는 ≪핵우위론≫에 바탕한 힘의 대결론 역시 원리적으로 볼 때 무기중심론을 주장하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주체의 군건설론은 그 모든 기성의 무기중심론의 군사원리를 교조적으로 답습하거나 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중심론, 사상중심론을 중시하며 그것을 제일의 요인으로 간주하는 혁명적 군건설론이다. 전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군인이며 구체적으로는 사상이라는 것이 주체적인 전쟁관이며 선군정치의 사상적 기초이다. . . . 인민군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중흡7연대칭호쟁취운동≫을 통해서 인민군군인들의 정치사상적 준비는 최상의 경지에 도달되어 있다. 선군혁명영도의 나날에 창조된 혁명적 군인정신은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로 되게 한 근본요인으로 된다. 수령결사옹위정신, 총폭탄정신, 육탄정신으로 일관된 인민군대의 정신상태와 정치적 준비는 군력을 최상의 경지에서 다지게 하는 사상정신적 원동력으로 되고 있다. 선군정치가 무적필승의 강군을 키우는 철의 보검으로 되는 이유는 다음으로 그것이 국방력을 최상의 수준에서 강화하기 때문이다. 선군정치는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나라의 모든 잠재력을 국방력강화에 최우선적으로 돌리는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는 그 자체로서 군대의 무장력준비를 가장 중요한 국사로 간주하는 정치방식이다. 군사중시는 국방력강화를 국시중의 국시로 삼을 것을 요구하는 사상이다. . . . 김정일장군께서는 현대전은 알전쟁, 기름전쟁이라고 하시면서 현대전의 승리는 누가 최신식전투기술기재를 더 훌륭하게 더 많이 생산하며 이용하는가에 많이 달려 있다고 가르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현지지도의 어느 날 수행원들에게 우리 나라에서는 사탕알은 먹지 못해도 살 수 있으나 총알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뜻 깊은 말씀을 하시었다. . . . 선군정치가 무적필승의 강군을 키우는 철의 보검으로 되는 이유는 또한 그것이 군대안에 혁명적 영군체계를 튼튼히 세울 수 있게 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군대의 위력은 곧 규율의 위력, 지휘체계의 기동성, 신속성에 있다. . . . 오늘 이북의 인민군대는 김정일장군을 최고사령관으로 모심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규율 있고 명령지휘체계가 철저히 선 혁명군대로 되었다.≫

2) 사회주의 지키는 필승의 보검

≪핵의혹≫, ≪미싸일위기≫, ≪지하핵시설사찰≫ 등으로 이북을 힘으로 압살하려다가 국제사회의 면전에서 연속 심대한 참패만 당한 미국은 9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이북의 군사적 힘을 약화시키고 내부로부터 와해시키기 위한 유화전략실현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북미합의문 이행을 위한 고위급회담, 경수로회담, 유골회담, 미싸일회담 등 여러 갈래의 회담을 제기해 나섰으며 양곡을 위시한 그 무슨 ≪물자지원≫놀음을 벌리며 추파를 던지었다. 이런 속에서 1999년 5월 말 미대통령특사로 페리가 평양을 방문했다. . . . 페리방북이후 미국은 대북≪한≫정책조정문제를 놓고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몇달씩이나 끌어오다가 베를린북미공동성명, 뉴욕합의문에 기초한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페리보고서는 항복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 . . 선군정치가 사회주의를 튼튼히 지키는 필승의 보검으로 되는 것은 또한 그것이 이북에서 일심단결에 기초한 사회주의의 주체적 역량을 백방으로 다지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 . . 수령, 당, 민중의 일심단결이 가장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은 선군정치의 결과이다. . . . 선군정치가 사회주의를 지키는 필승의 보검으로 되는 것은 또한 그것이 군대를 일당백의 강군으로, 무적의 강군으로 키워 제국주의와의 군사적 대결에서 연전연승하게 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 . . 1998년 8월 31일 이북에서의 첫 위성발사이후 북미관계는 또다시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 . . 이른바 제2북조선침략전쟁계획인 ≪5027작전계획≫을 출판물에 공개하였다. 그에 대한 이북의 대응은 단호하고도 무자비했다. 1998년 12월 2일에 발표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성명에서 ≪외과수술식타격≫이요, ≪선제타격≫이요 하는 ≪타격≫문제에서 그것이 결코 미국만의 선택권이 아니며 그 타격방식도 결코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것, 인민군대의 타격에는 한계가 없으며 그것을 피할 자리가 이 행성위에 없다는 것, 미군뿐이 아니라 그에 추종하는 ≪한국군≫과 일본 역시 타격목표로 된다는 것,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피하지도 않으며 일단 전쟁이 강요된다면 다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등 그야말로 강경고압의 논조로 일관된 입장을 밝힌 것이다. 나라의 자주권을 침해하려는 원쑤에 대해서는 그가 행성의 어디에 있든 무자비하게 타격할 것이라는 것이 선군정치가 택한 사회주의수호원칙이고 방법론이다. 선군정치는 조선인민군을 강력한 공격수단과 방어수단을 갖춘 일당백의 무적강군으로 키움으로써 그 막강한 군력에 의거해 미국의 온갖 자주권침해행위에 응징해 나섰던 것이다. 탈냉전이후 세계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을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고 타승할 수 있었다는데 바로 선군정치의 위력이 있다.≫

3) 강성대국건설 떠미는 창조의 보검

강성대국건설에서 인민군대는 기둥의 위치, 선봉부대의 지위에 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21세기를 향한 정치비전제시라 할 수 있는 강성대국건설구상을 밝히시면서 이렇게 명시하시었다. ≪내 나라, 내 조국땅위에 하루빨리 사회주의강성대국을 건설하여 그 어떤 적도 건드릴 수 없게 하며 전체 인민이 아무런 걱정없이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나의 구상이며 확고한 결심입니다.≫ . . . 이북은 선군정치가 있어 ≪고난의 행군≫의 승리자가 된 것이고 사회주의강행군으로의 이전을 이루어 냈고 마침내 강성대국건설이라는 낙관의 투쟁목표를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1998년 8월 31일의 ≪광명성1호≫위성발사를 청신호로 하여 강성대국건설은 이미 실천단계에 있다. . . . 그러면 선군정치가 강성대국건설을 어떻게 담보하는가 하는 것이다. 선군정치는 무엇보다도 강성대국건설을 맡아 수행하는 주체적 역량을 비상히 강화할 수 있게 한다. . . . 혁명대오의 정예화군대와 민중의 혼연일체는 선군정치에 의해 더욱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된다. . . . 선군정치는 다음으로 전반적인 국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한다. 강성대국은 군사의 강국일 뿐 아니라 사상의 강국, 정치의 대국, 경제의 강국이다. 선군정치는 단순히 국방력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나라의 전반적 국력을 최상의 높이에 이르게 하는 정치이다.≫

6. 선군정치방식과 21세기

1) 조국통일에로 이어지는 애국의 정치

≪조국통일은 본질에 있어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하나로 잇고 민족적 화합과 단합을 실현하는 문제이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적 자주권을 확립하는 문제이다. . . . 선군정치는 민족자체의 힘으로 통일성업을 이루어 낼 수 있게 하는 근본담보로 된다. 선군정치의 민족통일의지는 1995년 1월 1일 김정일장군의 군시찰에서 . . . 김정일장군께서는 강대한 인민군대가 있는 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며 주체혁명위업완성은 확정적이라고, 강대한 인민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민족의 큰 자랑이라고 언명하시었다. . . . 이남에서는 군사문제와 결부시켜 통일을 논하면 의례히 북침무력통일을 뜻하는 것이지만 선군정치에서는 반대로 군사문제와 통일을 결부시킬 때 그러한 북침무력통일기도를 저지시키고 자주통일, 평화통일을 이루어 내는 것을 염두에 둔다. 인민군대의 총대위에 통일의 전제인 평화가 있다는 취지인 것이다. 이러한 선군정치의 자주, 평화통일의지는 김일성장군의 1997년 8월 4일 노작1998년 4월 18일에 발표하신 노작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자≫ 등에서 구체적인 통일관의 정립이라는 실천을 보여 준다. 김일성주석께서 밝히신 조국통일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정립,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고 애국애족의 기치, 통일의 기치밑에 단결하며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외세의 지배와 반통일세력을 반대하여 투쟁하며 온 민족이 서로 내왕하고 접촉, 대화하며 연대연합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민족대단결5대방침의 제시가 그 요체이다. 21세기를 향한 민족통일의 대강이 아닐 수 없는 이 애국애족의 통일관을 실천에 옮길 사명선군정치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북이 막강한 군력에 기초하여 이러한 민족통일전략을 현실화시켜 나갈 것이라는 민족적, 국제적 공감대가 벌써 형성되어 가고 있다. 이남의 언론들까지도 미국은 이북의 막강한 군력 때문에 핵공격결심 등 군사적 압살기도를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앞으로 이북이 주도하는대로 관계정상화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앞으로 북미관계는 평화공존, 관계정상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노정을 밟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것은 실천에서 북미평화협정체결, 북미국교수립,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그 이후 남북당사자들의 통일회담을 통한 하나의 주권국가로의 정치적 통합(연방제)과정을 뜻하는 것으로서 결국 이북주도의 관계정상화 씨스템 그대로를 의미한다.(≪말≫1999년 10월호) 앞으로 북미관계가 그러한 흐름을 타고 흐를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명백한 것은 북미관계정상화요, 민족통일문제요 하는 중대사가 모두 이북의 막강한 군력에 의해 밑받침되고 있다는 점이다.≫

2) 새 세기를 주도해 갈 정의의 정치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포스트맑스주의요, 그람시이론이요, 시민사회론이요 하는 것들도 다 미국식세계전략과 미국식사회를 재현하려는 시도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 . . 선군정치는 21세기에 가서 미국의 그릇된 세계제패전략실현을 제동하고 그 기초위에서 세계평화와 안전을 담보하며 국제역량관계를 자주적인 새 세계건설에 유리하게 변화시킬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정의의 정치이다. 탈냉전이후 미국은 저들이 주도하는 1극세계질서수립을 노린 새로운 ≪세계화≫전략을 내놓았다. . . . 그것은 이북의 선군정치에 의해 미국의 이북관련 모든 전쟁계획들의 발목이 단단히 묶여진 때문이다. 냉전시기의 국제역량관계를 미쏘대결구도로 특징짓는다면 냉전이후의 국제역량관계는 북미대결구도로 특징지어 진다. 이 북미대결구도에 이북이나 ≪한≫반도만의 전쟁과 평화문제가 실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판도에서의 전쟁과 평화, 나아가 인류의 운명이라는 큰 무게가 실려 져 있다. . . . 최근 중국은 ≪하나의 중국원칙과 대만문제≫라는 백서를 발표했다. 여기에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역력용을 단행할 수 있는 조건이 밝혀 져 있다. . . . 통일을 위해서는 어느 때든지 전쟁을 하겠다는 무력통일의사를 공공연히 밝힌 것이다. 이것은 이북과 같이 작은 나라가 미국의 코를 꿰여 끌고 다니는 판에 12억 인구를 가진 큰 나라인 중국이 미국 하나 다루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반미강경입장표출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가안전보장개념과 군사원리를 새로 제정하고 군력강화로 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으려 하고 있다. . . . 세계는 오늘 푸틴지도부가 군사력강화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이북의 선군정치에서 힘입어서라고 보고 있다. 시리아는 뭐니뭐니해도 이북처럼 군사를 강화해야 나라의 자주권을 지킬 수 있다고 하면서 국가예산의 60%이상을 군사분야에 돌리고 있다. 리비아, 민주콩고, 인디아, 멕시코 등 많은 나라들이 국가예산에서 군사비몫을 대폭 증가하고 있다. 이북의 선군정치를 배경으로 서유럽나라들이 대북≪한≫정책에서 일련의 변화움직임을 보여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 . . 2000년 1월 서방 7개국 성원국중의 하나인 이탈리아가 이북과 국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으로 파구가 뚫려졌다. . . . 이외 유럽동맹은 98년부터 해마다 1차씩 이북과 정치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영국, 스웨덴, 핀란드, 독일의 공식인물들이 평양에 찾아 가 회담탁에 마주 앉고 있다. 프랑스는 1996년부터 외무성통보교류대표단을 정기적으로 보내고 대표단급수도 날이 갈수록 높이고 대화폭도 넓혀 가고 있다. 친미성향이 강한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북과 이미 국교를 수립했으며 필리핀과는 외교관계문제가 성사중이고 그외 캐나다, 프랑스, 독일도 이 문제를 토의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 져 있다. 선군정치는 대국들의 상호관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북의 ≪광명성1호≫위성발사후 미국이 국가 및 전역미싸일방위체계를 수립하려는 것과 관련하여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 대국들사이의 동반자관계에 금이 가고 서로 대결하고 충돌하는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형편이다. 선군정치의 위력앞에 미국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 . . 세계의 자주화란 지배와 예속, 침략과 전쟁이 없고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평화적으로 살아 나가는 새 세계의 건설이다. 선군정치는 이북을 세계사회주의보루로, 사회주의재건의 중심축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세계의 자주화와 세계사회주의위업의 밝은 전망을 열어 놓았다. . . . 미국의 소리방송은 김정일장군의 총비서추대를 앞두고 러시아를 위시한 유럽의 공산주의재건운동자들이 평양에 들어 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3국제당 본부가 사실상 평양에로 옮겨졌다고 말하여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고 하였다. 서방의 어느 한 나라 공산당지도자는 ≪오늘 세계혁명의 중앙은 마땅히 김정일동지께서 오늘의 세계를 영도하시는 평양에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평양은 세계의 중심입니다. 오늘의 세계는 김정일동지의 세계입니다.≫라고 김정일장군의 총비서추대를 세계혁명의 수령추대로 받아들인다는데 대해 확인하였다. 러시아를 위시하여 붕괴된 쏘연방연토내에서 평양선언을 기초로 한 당재건사업이 끊임없이 추진되고 있다. 쏘연방붕괴이후 이전 쏘연방경내에 조직된 22개 당을 망라하고 있는 공산당연맹-쏘련공산당을 위시하여 모든 진보정당들에서 기층당단체들이 조직되고 있으며 그 지도자들은 합법 또는 비합법활동으로 사회주의재건위업을 다그치고 있다.≫

7. 선군정치현장

1) 무적필승의 강군 키우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무장장비에 앞서 사람, 군인대중의 사상정신력을 중시하고 기본으로 보는 당위에 대해 이렇게 밝히시었다. ≪적과의 대결은 군사적 힘의 대결인 동시에 사상의 대결입니다. 나는 군건설과 군사활동에서도 사상론을 주장합니다. 군사적 타격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사상에는 한계가 없으며 그 위력은 원자탄보다 더 강합니다. 군사력에서 기본은 사람들의 사상의식입니다.≫ 군인대중은 무기의 부속물이나 머리수로만 계산되는 인적 재료인 것이 아니라 혁명전쟁의 주체이라는 것이 일찍이 김정일장군께서 밝히신 주체적 군사사상의 요체이다. . . . 사상의 강군건설을 위한 김정일장군의 선군혁명영도에서 무엇보다 중시되는 것은 그것이 본질에 있어서 사상을 틀어 쥔 영도이라는 것이다. 혁명군대가 사상을 틀어쥐면 승리하고 놓치면 망한다는 것이 김정일장군의 지론이시다. 여기서 말하는 사상은 곧 사회주의사상, 수령의 사상을 뜻한다. 사회주의사상이 곧 군건설의 생명이며 혁명군대의 위력은 사상의 위력에 있다는 지론이다. 쏘련방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이러한 사상중시원리에서 이탈하여 군대를 비사상화, 비정치화했기때문에 망했다. . . . 전군의 주체사상화구호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 모든 군인대중이 주체사상을 신념으로 깊이 간직한 사상의 강자, 신념의 강자로 되도록 교양사업을 강화했다. 또한 군대안에서 당조직들의 권능을 더욱 높이고 역할을 강화하여 인민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선노동당기를 높이 추켜들고 나가는 당군으로서의 진면모를 착실히 다지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당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밑에 군사지휘관의 유일적 지휘를 실현하는 부대지휘관리원칙을 강조하고 당의 유일적 영도밑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강철같은 규률당풍에 기초한 군풍의 확립, 군정배합을 잘하는 문제 등 당의 영도체계확립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실천해 나갔다. 사상의 강군건설을 위한 김정일장군의 선군혁명영도에서 중시되는 것은 다음으로 오중흡7연대를 따라 배우는 운동을 힘 있게 벌리도록 하여 인민군대의 위상을 수령결사옹위, 총폭탄정신, 자폭정신이 꽉 차넘치는 수령옹위군의 높이에 올려 세우신 것이다. . . . ≪90년대의 이수복≫으로 불리우는 길영조영웅은 비행도중 뜻밖의 사고가 생겨 불붙는 비행기에서 이탈하여야 할 정황에 부딪쳤을 때 자신의 비행기가 그대로 추락하면 혁명의 수뇌부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포착하고 탈출하지 않고 비행기를 바다방향으로 조종하여 30살의 젊음을 바친 비행사자폭영웅이다. 길영조영웅의 숭고한 정신세계는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기 위하여 한목숨 스스럼없이 바친 수령결사옹위의 자폭정신으로 음미된다. . . . 1996년 3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일당백≫구호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최전연구분대인 대덕산초소를 찾으시었다. . . . 1994년 12월 17일 주≪한≫미군의 헬리콥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섰다가 조선인민군 병사가 쏜 단 한방의 총탄에 의해 추락된 사건이 있기 두달전의 일이다. 당시 미국방정보국 국장 크랙터가 주≪한≫미군의 헬리콥터를 타고 비무장대를 시찰하고 있었다. . . . 다행히 엔진과 연유탕크에 맞지는 않아서 격추위기는 간신히 모면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워싱톤에 돌아 간 크랙터는 북조선과 전쟁을 하면 안된다고 말하였다. . . . 지난 만전쟁 때 다국적군이 수천수만대의 비행기와 미싸일로 이라크의 방위시설물에 파괴력이 강한 폭탄과 포탄을 퍼부었지만 지하구조물들을 다 파괴하지는 못했다. 이라크의 방위시설물이 모래밭을 파고 만든 콩크리트구조물이라는 점을 든다면 이북의 갱도화된 요새는 핵탄을 떨군다 해도 끄떡없을 높은 수준의 것으로 평가된다. . . . 김정일장군께서는 90년대 후반기의 5년기간에 무려 12만여리의 노정을 걸으시어 430여개 단위의 인민군부대, 구분대들을 현지시찰하신 것으로 알려 져 있다. 오늘 세계는 김정일장군의 끊임없는 군시찰을 선군정치방식의 구체적 실체로 주목을 돌리고 있다. . . . 김정일장군의 위치는 곧 사회주의옹호고수, 주체위업전진의 최고사령부이다. . . . 1996년 11월 24일 사상과 사상의 대결장이며 계급투쟁의 전초선인 판문점대표부를 찾으신 김정일장군께서는 먼저 최전연 1선에 서 있는 초병들이 지난 날 나라 없고 주권이 없던 탓으로 망국노의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하였던 부모들의 쓰라린 과거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는 높은 계급적 각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조국의 관문을 철벽으로 지키고 있다고 하시면서 이들의 전투성과를 높이 평가해 주시었다.≫

2) 군민일치

≪오늘날 이북의 인민군대는 역사에 존재해 온 그 어느 나라 군대도 이루지 못했던 사상정신력이나 실천행동에서 가장 공고하고 최상의 수준의 군민일치를 이룬 것으로 하여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그 위상을 더욱 확실히 다지고 있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군민일치의 전통적미풍을 높이 발양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 . . 전쟁승리의 기본담보는 군대와 인민의 단결된 힘에 있습니다. 지난 항일혁명투쟁시기나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우리는 수적으로나 군사기술적으로 우세한 적들을 군민의 단합된 힘으로 타승하고 승리를 이룩하였습니다. 우리가 앞으로의 싸움에서도 군대와 인민이 한덩어리가 되어 적들을 때려 부시자면 군민일치의 구호를 계속 높이 추켜들고 군대와 인민이 혼연일체를 보장하여야 합니다.≫ . . . 김정일장군께서는 완공을 앞둔 1996년 6월 10일 이곳 건설장을 찾으시어 석수가 출렁이는 100리물길굴까지 돌아보시며 군인건설자들의 영웅적 투쟁을 일일이 요해하신데 이어 그로부터 몇달후인 9월 중순의 어느 날 또다시 현지를 찾으시었다. . . . 안변청년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이 발휘한 명령집행에서의 결사관철의 투쟁기풍은 다름 아닌 자기 수령, 영도자의 사상과 영도를 한몸을 내대고 받드는 수령옹위정신의 발현이었고 총대처럼 강한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었으며 무슨 일에서나 승리만을 아는 군인기질의 발현이었다. 이러한 결사관철의 투쟁기풍, 수령옹위정신, 혁명적 군인기질은 전군에 확산되어 조선인민군의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혁명적 군풍으로 확고히 자리 잡혔으며 군대 뿐아니라 온 사회에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사회주의강행군, 강성대국건설의 돌파구를 열어 나가기 위한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추동하는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 . . 이러한 때인 1996년 12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황해북도 은파군 양동마을의 평범한 농민들이 올린 편지를 받으셨다. ≪ . . . 장군님, 저희들은 두석달분 식량을 떼어 군량미로 보내주어도 일없습니다. . . . 광복직후에 김제원농민이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애국미를 바치었다면 오늘은 우리가 위대한 장군님을 받들어 더 많은 군량미를 보내겠습니다. . . .≫ 후방의 자기들은 배를 곯아도 일없지만 조국의 안전을 지켜 선 군대가 배를 곯아서는 안된다는 이 절절한 원군기풍은 군대일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온 나라 민중의 진정 그대로였다.≫

3) 강성부흥의 길 열어 나가다

김정일장군께서는 이 주공전선분야에 혁명의 주력군, 핵심부대의 지위를 부여하고 사명감을 새겨 준 인민군대를 내세우셨다. 그것은 ≪혁명의 주력군≫이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군대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혁명의 기본전선에서 닥쳐 드는 위험도 막아 나서고 제기되는 큰 일감들도 맡아 해제껴야 한다는 선군정치의 근본원리에서 비롯된 분담이었다. . . . 견인불발의 의지와 무비의 희생성을 요구하는 그 마당에서 ≪100리 물길굴을 뚫기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고 웨치던 안변청년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의 혁명적 군인정신≪바다물을 막기전에는 조국의 마른 땅을 밟지 말자!≫혁명적 군인정신으로 승화되어 분출되었다. 농촌지원전투에 참가한 인민군장병들의 투쟁이 얼마나 간고했는지 가을한 벼이삭을 가리켜 사람들은 ≪이것은 낟알이 아니라 군인들의 피와 땀이고 정신≫이라고 했다. . . . ≪우리가 다 맡자≫는 표제아래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농업전선도 우리가 다 맡아 ≪고난의 행군≫의 영예로운 승리자가 되자!≫는 활달한 필체의 글발이 적혀 있고 마치와 낫우에 총과 칼이 그려진 것이었다.≫

4) 군풍의 창조물

≪수수천년 잠자던 구월산은 오늘날 김정일장군의 현명한 영도에 의하여 비로소 민중의 행복이 넘쳐 나는 민중의 산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사회주의생활로 비쳐 지는 명산중의 명산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민중의 문화휴식터로 전변되어 명산, 명소의 가치를 새롭게 빛내이는 곳으로는 함경북도의 칠보산, 평북도의 용문대굴과 황해북도의 정방산 등이 있다. 선군정치에 의한 군풍의 창조물로 부상되는 것은 다음으로 중소형발전소, 양어장, 기초식품공장들이 꼽혀 진다. . . . 발전소건설붐양어장건설로 이어 졌다. 1997년 어느 한 인민군구분대를 시찰하시던 김정일장군께서는 그곳 구분대군인들이 양어장을 건설해 놓고 사철 신선한 물고기를 먹고 있는데 커다란 관심을 돌리셨다. . . . 그래서 그분께서는 인민군군인들과 온 나라 민중이 양어장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양어를 발전시킬데 관한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가장 어려운 시기 자기들의 식생활을 그토록 염려하시는 김정일장군의 의도를 가슴에 새긴 민중들은 군인들의 경험을 받아 들여 각지에 크고작은 양어장을 대대적으로 건설하였다. . . . 1998년 5월 어느 날 김정일장군께서는 군인건설자들이 광량만기슭에 새롭게 일떠세운 현대적인 정제소금공장을 찾으시었다.≫

5)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 떨치다

≪인민군대를 사회주의사상진지의 지탱점으로 내세운 의도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로 음미된다. 그것은 첫째로, 사회주의사상적진지를 고수할 전위부대를 튼튼히 준비하기 위해서다. . . . 둘째로, 사회주의사회에서 혁명군대가 사상적으로 무장해제되면 사회주의적인 모든 것이 허물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 . .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대를 철두철미 사회주의사상을 신념으로 간직한 사상의 강군, 신념의 강군으로 키움으로써 제국주의와의 사상적 대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지탱점이 되도록 하시었다. . . . 오늘날 세인들은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는 미국이 이북이 발사한 노동1호 미싸일위력앞에 북미기본합의문에 도장을 찍었고 1만 2천Km 탄도미싸일 발사를 가능케 하는 위성발사의 위력앞에 ≪채찍≫으로서의 ≪5027작전≫계획실행의 포기, 일부 경제제재해제조치와 같은 ≪당근≫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 . . 그리하여 1999년 5월 비싼 ≪참관료≫를 지불하는 조건에서의 미전문가팀의 금창리≪지하시설≫참관이 이루어 졌다. 당시 세계의 언론계는 미국의 여전한 굴욕외교에 대해 떠들었고 이북이 3억불의 참관료를 불렀는데 미국은 금창리 지하구조물에 5억달라상당의 쌀을 가득 채워 주었다는 것을 꼬집어 미국의 외교능력을 조소하였다. . . . 지금까지 역사에는 팔레랑식웅변과 설득외교, 비스마르크식철의 외교, 처칠식타산외교, 마쯔오까식간계외교, 몰로또브식침묵의 고압외교 등 각종 외교형태가 존재하여 왔다. 무릇 외교란 자기가 얻고저 하는 바를 얻기 위한 하나의 정치예술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역사에 기록된 그 어떤 유명한 외교형태도 다 하나와 같이 상대방에 대한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한다. . . . 그러나 이북이 취한 외교는 시종 타협을 모르는 원칙적인 것이다. 그들은 능란한 정치정세조정술로 미국과 일본 등을 대화마당에 끌어 내고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자기들의 주장을 고수했다. . . . 그런데 문제는 이상하게도 이북의 타협 없는 원칙외교에 끝내는 미국과 일본 등 그 어떤 대화상대도 다 타협을 하며 이북의 조건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 . . 이북이 그처럼 든든한 담력과 배짱으로 세계정치정세를 솜씨 있게 관리하고 그처럼 외교에서 원칙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 . 1993년 ≪핵사찰≫소동과 1998년 ≪지하핵시설의혹≫소동, 이북의 위성발사후 미싸일소동 등을 끈질기게 벌여온 미국이나 일본 등 제국주의연합세력들이 오늘날 이북과의 정치외교적 대결에서 흰기를 들고 평양을 찾아가고 있는데서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1999년 5월 클린톤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인 페리를 평양에 파견하여 북과의 대결의 평화적 해결을 주문했다. 페리는 평양을 다녀 온 후 평양을 무력으로 굴복시킬 수 없으며 평양은 바그다드나 베오그라드와는 전혀 양상이 다른 국가이며 그를 쉽게 보아서는 된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평화적 방법으로 북미관계를 해결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페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처럼 미싸일소동에 열을 올리던 일본은 전 총리인 무라야마를 단장으로 하여 소위 ≪초당파≫대표단을 무어 평양에 보내 조일국교정상화회담재개를 주문하고 수십만t의 식량을 평양에 보내는 등 조일관계정상화를 위해 추파를 던지고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김정일장군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로 하여 이북은 제국주의자들과의 정치외교전에서 승자가 된 것이다. . . . 사실 미국 역시 이북의 군사적 힘의 강대함을 인정하고 있다. 1999년 유고연방에 대한 공습에 뒤이어 미국방성의 전략가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 날 경우 얼마만한 비용이 들며 누가 승자가 되겠는가 하는 것을 컴퓨터시뮬레이션 한 적이 있다. 이때 컴퓨터는 ≪한≫반도전쟁에서 미국이 지불할 물질적 비용은 일평균 57~71억달라이며 승자는 이북이라는 답을 내였다. 이것은 일평균 5,000여만달라가 탕진된 대유고연방공습에 비해 100~140배가 넘는 엄청난 액수이며 2,600억달라의 미국방예산중 870억달라에 해당하는 아시아 태평양지역 군사비를 전쟁개시 2주일만에 다 소모하고도 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 있어서는 참으로 무서운 결론인 것이다.≫

8. 선군정치에 비낀 영장의 모습

1) 희세의 영장

≪장군님의 군사적 예지의 비범성선군정치시대군대의 지위를 새롭게 자리매김하여 주신데서도 뚜렷이 설명할 수 있다. 이북의 출판물들을 보면 이전에는 사회주의주체적 역량의 3대기둥으로 ≪당, 인민, 군대≫의 순서로 군대를 세번째 자리에 놓았다. 그러나 지금은 ≪당, 군대, 인민≫이라고 쓰고 있다. 이것은 인민군대의 지위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 . 사상으로 이길 뿐만 아니라 전법으로 이기는 것이 싸움이다. 최근에 미군부가 진행한 컴퓨터계산에서 ≪한≫반도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전쟁개시 첫날에 주≪한≫미군의 80%와 미국본토와 일본기지 미군의 46%가 소멸된다는 결과가 나온 것처럼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켰을 때 김정일장군께서 어떤 신묘한 전법을 구사하시어 미군을 무주고혼의 신세가 되게 하실는 지는 누구도 예측불가능한 일이다. 김정일장군께서 지니신 비범한 군사적예지는 군사분야에 완전히 능통하신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군사분야라고 하면 매우 폭 넓은 분야인 동시에 해당 시기의 고도로 발전된 과학기술이 집적된 분야이다. 더욱이 최첨단의 과학기술이 군종병종에 널리 도입되고 있는 현 시기에 이르러 군사분야의 전반에 대하여 완전히 능통하고 지휘통솔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김정일장군께서는 만사능통의 군사적 조예를 지니고 계시는 천재적인 군통수자이시다. 장군님께서는 경이적인 기억력으로 군사분야의 모든 장비들과 기술수단의 능력과 제원, 작용원리들을 환히 꿰들고 계신다. . . . 장군님께서 1999년 한해동안에만도 41차에 걸쳐 2만 5천8백여리의 길을 이어 가시며 121개의 부대, 구분대, 단위들을 현지시찰하시고 그 많은 곳들에서 제기되고 있는 크고작은 문제들에 정확하고 명쾌한 해답을 주시고 그 해결방도를 명시해 주신 것은 그분께서 모든 군종, 병종에 따르는 만사능통의 군사적 조예를 지니고 계시기 때문인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현대과학의 최첨단이라고 말하는 컴퓨터와 전자설비들에 대해서도 전문가이상 능통하고 계신다. . . . 이렇듯 군사에 신통력의 예지를 지니신 분이시기에 전 미국대통령 지미 카터가 ≪김정일최고사령관은 전 세계에 보기 드문 특유한 위인인 것만은 사실이다.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이다.≫라고 격찬한 것은 결코 과찬이 아닌 것이다. 김정일장군께서는 또한 신화적인 명사수이시다. 어느 해 12월 어느 한 구분대의 실탄사격정형을 보아 주신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도 한번 쏘아보시겠다고 하시면서 50m거리에 있는 나무가지에 유리병 열개를 달아매라고 이르시었다. 그날 따라 바람이 세차서 목표물들이 몹시 흔들거리었고 게다가 투명한 유리병들이 해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순식간에 다섯개의 유리병을 쪼각내시었으며 재빨리 권총을 왼손에 바꾸어 쥐시고 나머지 유리병들을 몽땅 날려보내시었다. . . . 이전 쏘련방의 13대 국방상이었던 드미뜨리 야조브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역사에 이름 있는 명장들을 보면 지상전에는 밝으나 해전에는 어둡고 작전체계에는 능하나 무기체계와 그 사용법에는 그렇지 못한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전반적 무력에 대한 통솔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작전술로부터 무장장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어느 군종, 병종, 전문병분야에 대해서도 환히 꿰들고 계시었다. 그분의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지략, 해박한 군사지식에 숙연히 머리가 숙어 졌다.≫ . . . 역사는 위대한 사변을 영원히 기억한다. 사람들은 미국이 1993년 초 이북의 ≪핵개발의혹≫을 빌미로 하여 ≪특별사찰≫과 ≪집단제재≫로 위협해 나섰을 때 김정일장군께서 준전시상태선포와 NPT(핵무기전파방지조약)탈퇴로 대답하시어 미국을 굴복시키시고 협상탁에 끌어 내시어 북미합의서와 클린톤의 담보서한까지 받아 내신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때로부터 5년세월이 흐른 1998년경에 ≪한≫반도에는 또다시 그와 방불한 사태가 빚어 졌다. 이북이 겪는 경제적 난관을 아전인수격의 이북붕괴로 해석한 미국은 이북의 ≪지하핵시설의혹≫을 들고 나오는 한편 . . . 이러한데 기초하여 미국은 ≪5027작전계획≫을 시동시켜 7월부터 그 첫막에 해당되는 이북봉쇄작전을 본격화하여 ≪한≫반도정세를 초긴장상태로 몰아 갔다. 바로 이러한 때인 8월 말 이북은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를 쏘아 올렸다. 이북의 위성발사는 세계를 들었다 놓은 일대 충격적 사변이었다. 이북이 첫 인공지구위성을 단 한번의 발사로 정확히 자기 궤도에 진입시킨 것은 이북의 막강한 국력과 불패의 기상의 일대과시였으며 미국과 그 연합세력들의 도전에 대한 정면적인 대답이었다. . . . 김정일장군의 담력은 그 어떤 위험상황도 두려워 함이 없이 과감하게 결행하시는 담력이다. 장군님의 1996년 11월 판문점시찰이 그 프리즘이며 투상도이다. 판문점을 경비하고 있는 미군과 ≪국군≫은 김정일장군께서 자기들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20m앞에까지 나오시어 군시찰을 하시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하였다. 이것은 대단한 담력을 가진 군통수자라 할지라도 감히 결행할 수 없는 청천벽력 같은 사변이었다. 하기에 장군님께서 판문점을 다녀가신 이틀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판문점의 미군과≪국군≫이 아연실색하고 공포에 전률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 . . 김정일장군은 역사의 그 어느 명장도 따를 수 없는 영군의 천재이시다. ≪김정일최고사령관이 지닌 영군적 예지는 놀랍다기보다는 경이적이며 부럽다기보다는 매혹적이며 출중하다기보다는 전무후무한 것이다.≫ 이 말은 미국방성의 한 고위당국자가 한 말이다. . . . 김정일장군께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사람의 사상이 기본이며 사상에 의하여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사상론을 내놓으신데 기초하여 군인대중을 움직이는데서 사상을 발동하기 위한 정치사업을 선행하도록 하신다. . . . 장군님께서는 또한 인민군대안에 당풍에 기초한 군풍을 철저히 세워 놓으시었다. 장군님께서는 당의 영도체계와 영군체계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명백한 해답을 주시고 인민군대안에서 당의 영도체계를 세우는 문제와 당의 영군체계를 세우는 문제는 다같이 최고사령관의 유일적영도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질서를 세우는 문제로서 표현만 다를 뿐 본질상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 인민군대의 군풍은 본질에 있어서 당풍에 기초한 군풍으로서 인민군대는 당의 군대인 것만큼 인민군대안에는 오직 당의 유일적 영도밑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강철같은 규률이 지배하여야 한다는 것 등 중요문제들을 밝히시어 인민군이 철두철미 조선노동당의 군대로서의 성격을 고수하고 전군에 당풍에 기초한 군풍이 철저히 확립되도록 하시었다. . . . 장군님께서는 1995년 6월 어느 날 인민군대안에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무조건 철저히 집행하는 당적 기풍, 혁명적 군풍을 세워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최고사령관의 명령은 곧 법이며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한 유일한 지도적 지침이다.≫

2) 강철의 영장

김정일장군의 선군정치는 철의 신념과 의지의 정치이다. 나는 주체의 사회주의신념을 굳게 가지고 역사의 역풍을 맞받아 나갈 것이다, 우리는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90년대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갈 것이다라고 세계앞에 선포하시고 역사적인 선군혁명영도의 길에 나서신 장군님이시다. 김정일장군의 철의 신념과 의지는 어떤 역경속에서도 변함없이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의 한길로만 나아가는 신념과 의지이다. . . . 1996년 11월 판문점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이런 심각한 말씀을 하시었다. ≪사회주의는 우리 인민의 생명입니다. 우리 인민이 사느냐 죽느냐, 다시 말하여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리느냐 아니면 남의 노예가 되어 천대와 멸시를 받느냐 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노래에도 있는 것처럼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이고 버리면 죽음입니다.≫ . . . 또한 장군님께서는 1996년 4월 어느 날에도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이 혁명을 하느라면 힘에 부칠 때도 있고 주저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은 그때마다 나에게는 당이 있다, 나는 당의 혁명전사다, 내가 설사 이 길에서 죽는다고 하여도 당은 나를 붉은기폭에 싸안아 영생의 언덕에 내세워 줄 것이다, 당과 수령을 위하여서는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이다는 신념을 더욱 굳게 가다듬고 부닥치는 난관과 애로를 용감히 뚫고나가야 합니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이 이런 신념을 지니지 않고서는 멀고 험한 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나갈 수 없으며 당과 영원히 운명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선군혁명영도의 나날 인민군장병들의 가슴속에 신념의 억센 기둥을 심어 주시고 그들을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키워 나가시었다. . . . 장군님의 선군정치의 나날도 여전히 ≪쪽잠≫≪줴기밥≫으로 이어 지는 숭고한 헌신의 나날이다. 장군님께서는 어느 날 일군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었다. ≪나는 현지지도로 날과 날을 보내기 때문에 어느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자 보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잠을 자는 것은 현지지도의 길의 자동차안에서 잠간 눈을 붙이는 것뿐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이제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 오히려 침대에서 자는 것이 불편해 보입니다. 나에게는 자동차안에서 조금 자는 것이 제일 단잠이고 쉬는 때이며 그것이 휴식의 전부입니다. 나는 이것을 고생으로 생각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여기에서 커다란 긍지와 보람을 느끼군 합니다.≫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 주는 말씀이다. . . . 김정일장군의 혁명적 낙천성은 그 어떤 시련앞에서도 태연자약하시고 만만한 투지로 그것을 헤쳐 나가시는 낙천성이다. . . .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누가 최후에 웃는가를 보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는 슬로건에는 그분의 태연자약하심과 만만한 투지가 투사되어 있다. . . . 노래는 사상감정의 분출이라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의 예술공연을 통하여 그들의 예술적 기량보다 사상정신상태를 보신다. 그분께서는 군인들이 격정에 겨워 부르는 노래에서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열렬한 애국주의정신, 원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과 비타협적 투쟁정신, 대중적 영웅주의와 혁명적 동지애 등 그들의 사상정신상태를 읽으시면서 이런 충성의 대오, 사상의 강군을 가지고 있는 한 주체혁명위업의 승리, 사회주의승리는 문제없다는 만만한 투지와 낙관을 더욱 깊이 간직하시는 것이다. 김정일장군의 혁명적 낙천성은 미래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낙천성이다. . . .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라≫ 이것은 장군님의 명언이며 인생관이다. . . .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특히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노래를 통한 정서교양을 잘할 데 대하여 강조하고 계신다. 장군님께서는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노래는 사람들의 문화정서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생활의 흥취를 돋구어 주는 단순한 예술형식이 아니라 혁명과 건설의 위력한 무기입니다. 나는 음악을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중요한 무기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 혁명적인 인생관을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고 난관이 클수록 혁명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신심과 낙관에 넘쳐 힘차게 전진하는 것은 인민군장병들이 지녀야 할 혁명적 투쟁기풍입니다.≫

3) 인덕의 최고사령관

흐루시쵸프는 붉은 군대를 세계최강의 무장력으로 강화발전시키고 쏘독전쟁에서 역사적 승리를 이룩한 스탈린의 영군업적을 거세말살하기 위하여 공장, 기업소, 도시와 거리들에서 스탈린의 이름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그의 동상과 기념비까지 제거했으며 고르바쵸브쏘련군대를 비사상화, 비정치화하여 오합지졸로 전락시키고 레닌, 스탈린의 위업, 사회주의위업자체를 말살하였다. . . . 국제노동운동의 역사적 교훈은 수령의 영군업적을 옹호고수, 계승발전시켜 나갈 때 수령의 위업과 영생이 담보될 수 있으며 그것은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후계자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 . . 선군정치는 김일성주석께서 개척하신 선군혁명영도의 계승이며 김일성주석께서 마련해 놓으신 인민대중중심의 주체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며 주체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 정치방식이다. 이러한 근본문제로부터 출발하여 김정일장군께서는 현지시찰단위를 선택하여도 김일성주석께서 다녀가시고 김일성주석의 군영도자욱이 새겨 져 있는 단위부터 택하시고 찾으시어서는 김일성주석의 현지지도사적물부터 돌아보시며 군인들이 김일성주석의 군건설영도업적을 영원히 옹호고수하고 빛내어나가도록 교양하신다. . . .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사령부를 결사옹위하기 위하여 자폭한 길영조비행사의 영웅적 행동을 높이 평가하시어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해 주시고 그가 소속되어 있던 구분대를 길영조비행대대로 명명해 주시었으며 그의 모교에 반신상을 세워 주시었다. . . . 터지는 수류탄을 몸으로 덮고 병사들을 구원한 김광철영웅, 불길속에서 항일의 혁명전통이 수록되어 있는 혁명사적지의 구호나무들을 목숨 바쳐 지켜 낸 17명의 불사조영웅들, 안변청년발전소건설에 청춘을 서슴없이 바친 영웅건설자들을 비롯하여 90년대의 영웅들을 높이 내세워 주고 계시는 것은 당과 수령께 무한히 충직했던 혁명전사들에 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과 의리의 발현인것이다. . . . 김정일장군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을 귀중한 혁명동지, 혁명전우, 친아들딸로 여기고 계신다. 장군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을 ≪나의 전사들≫, ≪나의 비행사≫, ≪나의 아들들≫이라고 한없이 친근하게 불러 주시며 군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제일 큰 기쁨으로 여기신다. 그분께서는 자주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나는 전사들속에 있을 때 제일 큰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그들의 전투적사기와 낭만에서 힘과 용기를 얻군 합니다.≫ 나는 앞으로도 전사들과 같이 흙냄새도 맡고 포연이 자욱한 전투초소들에서 전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최고사령관이 될것입니다. . . . 다음해 감 익는 계절이 되었을 때 그분께서는 여성해안포중대가 나를 기다리겠는데 짬을 낼 수 없다고, 대신 일군들이 가보라고 하시면서 전사들에게 선물로 고급손목시계까지 보내주시었다. 또 한해가 바뀐 1997년 11월 어느 날, 병사들과 한 약속을 그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시는 장군님께서는 동해지구에 대한 현지시찰의 바쁜 일정을 앞두시고 중대를 찾아 주시었다. 이 세상 만복을 받아 안고 한 없는 기쁨과 감격에 휩싸여 있는 여성해안포병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그분께서는 기념사진도 찍어 주시고 그들이 가꾼 감도 보아주시었다. 중대를 떠나시기에 앞서 그분께서는 감회 깊은 음성으로 내가 감이 익을 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이제는 지킨 것으로 됩니다라고 말씀하시었다. 세상에는 한나라의 최고사령관이 전사들과 그 무슨 ≪약속≫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것도 없거니와 전사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진정으로 마음을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것은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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