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15일

통일여명 편집국

민족과 철학 1

통일여명 편집국 해설 5-2-1

 

붉은 노을이 지는 대양위로 여객선이 바람을 가른다. 그 배 앞머리에서 윈슬렛의 두터운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멋진 포즈를 취하는 가냘픈 디카프리오. 두 연인은 모든 세상사를 잊고 하늘을 나른다. 유명한 영화 ≪타이타닉≫의 포스터에까지 나온 이미지장면이다. 이 영화이래 수많은 연인들이 이 장면을 꿈꿨다고 하는데, 부러워 마라. 실제로 흉내내다가는 십중팔구 사고 난다.

아카데미상을 거머쥐며 ≪내가 왕이다≫고 기염을 토했던 카메룬감독은 트럭운전사시절을 잊지않았던지, 영화에 계급적 선을 깔아놓았다. 타이타닉을 만들고 타이타닉을 움직이는 사람은 노동계급이건만 타이타닉을 타고 타이타닉을 즐기는 사람은 부르조아지들이다. 노동계급은 침침한 동력실에서 죽어라 일만 하는데 부르조아지들은 선상에서 연일 파티를 벌인다.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는 부르조아지들은 구명정이 모자라자 노동계급의 탈출로를 아예 봉쇄해 버린다.

노동계급 비슷한 건달 디카프리오와 부르조아지의 아내가 될 윈슬렛은 계급적 차이를 뛰어넘은 모험적 사랑행각을 벌이는데, 계급초월은 불가능하다는 암시인듯 디카프리오는 끝내 얼음바다위로 수장되고 만다. 아, 비극적 사랑이 주는 카타르시스인가, 꽃미남 디카프리오의 매력인가, 영화속의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세상의 연인들은 영화를 보고 또 보며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 사랑 변치 말자고 맹세하고 또 맹세한다.

타이타닉과 그 침몰은 사실이지만 그 영화속의 사랑이야기는 허구이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가를 가려보는 안목에 필요한 것은 역사이다. 그럼 이 영화에 깔려있는 계급적 선에 대한 분석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그것이 철학이다. 세상을 분석하는 두 개의 눈은 바로 역사와 철학인 것이다. 씨줄인 역사가 사실을 준다면 낱줄인 철학은 이론을 준다. 철학과 역사로 무장하면 세상이 보이고 세상에 겁나는 게 없어진다. ≪황야의 무법자≫에게 쌍권총이 있고, ≪조폭마누라≫에게 양 가위날이 있다면, 우리에겐 철학과 역사가 있다.

카메룬감독은 타이타닉의 침몰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계급적 선이라는 철학적 관점을 교직시켜 영화 ≪타이타닉≫을 만들어놓았다. 몽타쥬기법의 전설을 낳았던 에이젠쉬타인감독의 ≪전함 포템킨≫처럼 수병들의 선상반란이나 일어나는 사자상이 없기에, 변혁이 아니라 그저 비판에 그치기에 이 정도는 보수적인 아카데미위원회도 용납한다.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을 ≪공산당≫으로 내몰았다가 얼마나 욕을 얻어먹었던가. 물론 보안법의 ≪아, 대한민국≫은 여전히 왠만하면 ≪공산당≫으로 내몰고있다.

≪타이타닉≫을 보고 무엇이 인상에 남던가? 두 연인의 아름다운 포즈던가, 화려한 파티장면이던가, 석탄을 나르던 동력실의 모습이던가. 세시간이 넘는 이 영화에서 계급적 선을 정확하게 분별해내고 나아가 ≪전함 포템킨≫과의 차이까지 찾아낸다면, 그는 영화적 식견을 넘어 계급적 관점, 즉 철학이 있는 사람이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리를 단번에 베어버리는 알렉산더의 칼처럼 이 혼란스런 세상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진리의 보검이 바로 철학이다.

조선은 ≪살아있는 영혼≫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침몰했던 배라는 역사적 사실은 ≪타이타닉≫과 흡사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일제의 우키시마호 수장만행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계급적 선을 넘어 민족적 선이 깔려있다. 여기에는 ≪전함 포템킨≫의 변혁성을 넘어서는 주체성과 민족성이 구현되어 있다. 이로써 비판적, 변혁적, 주체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배영화들이 모두 세상에 나왔다. 우리는 발전된 자본주의국가에서가 아니라 분단국가, 식민지사회에서 혁명을 하기에 계급적 관점보다 주체적 관점, 민족적 관점이 중요하다. 이것이 철학이다.

계급이니 민족이니 주체니 하는 개념을 정확히 알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마치 수술실에서 의사가 날카로운 메스로 척척 해부하듯이 우리에게 개념은 바로 혁명의 메스이다. 이 혁명의 메스를 쥐어주는 것이 바로 철학이고 이러한 개념과 범주(일반적 개념)를 터득하는 과정이 철학학습이다. 하여 개념을 깨우치는 철학학습이 아니면 백날 해봐야 도로아미타불이고 골치만 아프다. 철학학습의 요체는 개념의 정확한 이해이다! 그냥 보지만 말고 이런 말이 나오면 밑줄 좀 쳐라, 쳐! ^^

변증법의 개별과 일반이라는 범주를 이해하면 ≪타이타닉≫에서 남녀주인공이라는 전형화를 이해할 수 있고, 변증법의 내용과 형식이라는 범주를 이해하면 ≪타이타닉≫의 비판적 내용과 사실주의적 형식을 이해할 수 있고, 변증법의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에서 투쟁성이 규정적이라는 진리를 이해하면 ≪타이타닉≫이 왜 변혁적이지 못하고 비판적인 선에 그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써먹을 수 없다면 변증법 공부는 헛한 것이다.

주체철학의 주체역량강화, 주체역할제고의 개념을 이해하면 지난 대선전략이 왜 민주노동당을 강화하고 이회창을 낙선시키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고, 주체철학의 자주성과 창조성의 개념을 이해하면 자주적 민주정부수립이라는 자주적 요구를 이룩하기 위해 지역통일전선이라는 창조적 능력이 필요하다는 이론을 이해할 수 있고, 주체철학의 의식성의 개념을 이해하면 왜 혁명가에게 학습이 첫째가는 임무이고 사상사업을 무엇보다 선행하여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응용할 수 없다면 주체철학 공부를 새로 해야 한다.

철학은 과학 중의 과학, 모든 개별과학의 일반과학이므로 철학적 범주를 터득하면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모든 분야의 학문의 원리를 이해하는 힘이 생긴다.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근본이치도 철학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철학은 공자가 아침에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던 그 도, 노자가 물에 비유하던 그 도, 부처가 세상을 하직하면서 제자들에게 모든 것은 변하니 열심히 공부하라던 그 도를 깨우쳐준다. 한편 그 도의 최고봉, 총화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그리고 이를 깨우칠 수 있다면, 정녕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가?

2002년 광고계의 결정적 카피 1위는 김정은의 ≪여러분, 부~자 되세요≫...도 아니고, 현대카드를 움켜쥐며 내뱉는 ≪떠나라≫...도 아니다. 바로 커다란 게를 잡은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일갈하던 그 ≪게맛!≫이다. 그럼 게를 하나 잡아도 노하우가 필요한데,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노하우가 필요하겠는가. 아프간을 먹고도 모자라 이라크를 먹겠다고 날뛰는 저 미제승냥이들과 싸우는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의 노하우는 무엇인가. 붕괴되어 버린 쏘비에트의 노하우인가, 아니면 승승장구하는 조선의 노하우인가. 이 세상 모든 노하우, 모든 도, 모든 진리의 최고봉이자 총화가 바로 주체철학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이 체계안에 포섭된다. 주체철학을 터득하면 모든 것의 주인이 되고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다.

모든 것? 이게 뭔 소린가? 그건 사회와 자연, 그리고 사람의 운명이다. 이 세 가지 범주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 사회와 자연을 합쳐서 세계라고 한다. 헌데 맑스레닌주의철학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분석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유물론은 세계의 물질성을 밝혔고 변증법은 물질세계의 합법칙성을 밝혔다. 의식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물질과 의식의 대비란 사람의 머리속에서만 이루어진다. 결국 맑스레닌주의철학의 관심에서 중심은 물질이고 사람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반면 주체철학은 관념론, 형이상학의 오류를 해부한 유물론과 변증법의 진리성을 전제하면서 그 물질세계의 주인이 누구이고 그 물질세계를 개조하는 힘이 무엇인가를 밝혔다. 철학의 근본문제와 근본원리에 대한 인류철학사적 의문은 이로써 완벽히 해명되었다. 그럼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바로 사람을 중심에 놓았기 때문이다. 주체철학은 사람의 운명개척을 사명으로 사람을 철학적 고찰의 중심에 놓고 세계를 보았기에, 세계를 물질과 의식이 아니라 사람과 주변세계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과 주변세계와의 관계, 곧 ≪사람이 세계속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라는 철학의 근본문제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의 근본원리를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세계속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철학의 근본문제라고 하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를 철학의 근본원리라고 한다. ≪사람의 운명개척의 방도해명≫은 철학의 사명이고 ≪사람을 철학적 고찰의 중심에 놓는 것≫은 철학의 방법론이다. 모두 사람을 전제로 하였기에 사람, 즉 주체의 철학적 근본문제, 주체의 철학적 원리, 주체의 철학적 사명, 주체의 철학적 방법론이라고 한다. 철학적 사명이라는 목적과 철학적 방법론이라는 방법이 철학적 근본문제가 무엇이고 철학적 근본원리가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두가지 열쇠이다.

콜럼부스의 달걀처럼 해명하고 보면 찬란한 햇살이지만 해명하기 전에는 캄캄한 밤중이다. 이 원리를 해명하기까지는 장구한 인류철학사와 간고한 조선혁명사가 필요하였고 인류철학사를 통찰하고 시대사상을 해명하는 천재적인 사상이론가가 필요했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맑스의 테제만 해도 백년동안 불변의 진리로 여겨져 오지 않았던가. 헌데 대학생시절에 이미 이 테제의 한계를 설파하며 ≪사람은 사회적 관계의 주인이다≫라는 새로운 테제를 내놓은 천재가 있었다. 이 천재는 그 이후 불면불휴의 사상이론활동을 하며 ≪주체사상의 대하여≫ 등 수많은 불멸의 노작을 발표하였다. 인류사상사의 총화이자 최고봉인 주체사상은 이렇게 정립되었다.

지금 잠깐 개괄해놓은 철학의 원리 부분은 ≪민족과 철학≫에서는 1/10분량에 해당하지만 ≪주체사상총서1권≫에서는 1/2에 해당하는, 주체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누구나 가장 어려워하는데, 이 부분을 이해한다면 주체철학의 절반을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이를 심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물론과 변증법의 기초가 없이는 사실 어렵다. 그렇다면 주체철학학습을 위해서는 변증법적 유물론학습을 하여야 한다는 말이 되는가? 그렇다. 주체철학이 수학이라면 맑스레닌주의철학은 그 전제이며 기초가 되는 산수이기 때문이다.

헌데 변증법적 유물론학습을 하려면 그 자체로 방대한 철학학습을 필요로 한다. 그 변증법적 유물론학습을 제대로 하려면 헤겔의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이해하여야 한다. 또 헤겔과 포이에르바하를 이해하려면 그 철학의 바탕이 되는 변증법과 유물론의 역사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리고 변증법과 유물론은 동양의 변증법과 유물론도 이해하여야 한다. 또한 이 모든 철학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원전을 보아야 한다. 참으로 방대한 이 원전은 국내에 출판조차 되지도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내 팔자에 철학학습은 정녕 꿈이란 말인가. 걱정 마라. 꿈은 이루어진다.

철학학습을 이런 식으로 소급해서 올라가면 한이 없다. 특히 원전을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면 천에 999명은 포기한다. 그 천의 한 사람은 평생 철학으로 밥 먹고 살 사람이니 무시하자. 철학학습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하여야 할 점은 소급주의와 원전주의이다. 소급주의와 원전주의만큼 학생을 질리게 하는 것은 없다. 허나 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깨달음이고, 행세식 자랑거리가 혁명의 무기이다. 더욱이 우리는 혁명에 써먹을 무기를 배우려는 것이지 학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문제를 세워두고 보면 답은 간단하다. 권위있는 개론서를 골라 깨달을 때까지 반복학습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십수년의 철학연구와 혁명투쟁을 총화하면서 그 철학개론서로 ≪민족과 철학≫과 ≪주체사상총서1, 2≫를 선정하였다. 여기에 ≪철학사전≫을 배합하고 ≪재미있는 철학강의≫(중국청년철학교재)정도를 보면 그만이다. 그리고 모든 철학학습은 주석님과 장군님의 노작학습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우리의 오랜 학습과 투쟁의 결론이다. 모든 학습이 그렇지만 이러저러한 교재를 여러편 보는 것보다 좋은 개론서를 반복적으로 보는 것이 백배 낫다. 특히 개념과 체계가 서있지 못한 초학자에게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개념과 체계가 선 다음에는 다른 책들을 섞어보아도 혼란스럽지 않다.

≪민족과 철학≫은 주체철학개론서다. 주체철학을 철학적 세계관, 사회역사관, 인생관, 수령관의 체계로 나누어 노작과 총서1, 2권에 나온 내용을 이남현실과 연관지어 알기쉽게 해설하고 있다. 80년대 말에 출판되어 90년대의 시대상과 오늘의 시대감각을 반영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주체철학의 주요개념을 체계적으로 해설하는데서는 예나 지금이나 손색이 없다. 이 정도의 내용과 깊이를 보장하는 철학교재는 개인의 소총명이 아니라 검증된 대표집필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 안심하고 보라.

≪관≫이란 ≪견해와 관점, 입장의 전일적 체계≫다. 뭔 소린지 모르겠으면 일단 외워두어도 좋겠다. 그러면 ≪세계관≫이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 입장의 전일적 체계≫이고 ≪사회역사관≫이 ≪사회역사에 대한 ...≫이고 ≪인생관≫이 ≪인생에 대한 ...≫이고 수령관이 ≪수령에 대한 ...≫이 아니겠는가. 만약 이러한 답이 바로 연상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고 철학적 자질이 있는 사람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철학학습도 잘 하지만 철학학습을 하다보면 머리 나쁜 사람은 머리 좋은 사람이 되고 머리 좋은 사람은 더 좋아진다. 머리가 좋아지고 싶으면 단전호흡도 좋고 ≪엠씨 스퀘어≫도 좋고 가수 보아가 ≪마셔 보아요≫하는 그 무슨 드링크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철학학습을 하라.

철학이란 무엇인가. 어원으로는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 정도로 풀이되는데, 정확히는 세계관을 주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세계를 보는 견해와 세계를 대하는 관점, 입장을 주는 학문이다. 세계를 해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혁하는 학문, 세계의 본질과 법칙을 밝혀내어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는 이론적 무기를 주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그 이론적 무기가 바로 개념이고 범주이니 철학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개념이해라고 할 것이다.

E=MC²이라는 공식이 도출되는 과정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최선이고, 적어도 그 도출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차선이며, 그도 저도 안될 땐 이 공식이라도 외워두는 것은 마지노선이다. 외우는 것은 포기하는 것보다 백배 낫다. 외워두고 틈나는대로 중얼거리다보면 어느 순간 도통할 때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는 말라. 철학의 개념과 원리의 이해도 비슷하다. 다만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근본원리는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원리보다 더 심오하지만 그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주체철학의 심오한 진리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간명한 개념과 체계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체사상의 가장 큰 장점의 하나이다.

문제는 사상학습을 홀시하고 철학학습을 대충 굼때는 운동권의 그릇된 학습기풍이다. 바꿔 말해 주체철학의 이치는 너무나 간명한데, 운동권이 공부를 너무나 안 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운동권경력이 10년이 다 되어가거나 넘어가는데, 아직도 ≪민족과 철학≫ 하나 정복하지 못했다면, 어찌 문제가 아닐 수 있겠는가. 사실 ≪민족과 철학≫은 2학년이나 3학년으로 넘어가는 운동권대학생들의 겨울방학학습교재가 아닌가. 이러니 메모리형교사니 바이러스형교사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게 뭔 말이냐고? 통일여명혁신3호를 안 봤군. 궁금하면 찾아보아.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눈 딱 감고 시간당 20페이지씩 하루 5시간만 투여하라. 세상이치를 터득하려는데, 이 정도도 노력하지 않겠단 말인가. 그러면 3일이면 볼 수 있고 이런 식이면 6대 개론서도 18일안에 다 볼 수 있다. 속도는 질에 비례하는 법, 개론서학습은 다소 벅찬 목표를 세우고 전투적으로 진행하는데 요령이 있다. 이 인터넷청년사상강좌의 ≪6대 개론서 요점강의≫를 참고하면 그 속도와 이해가 배가될 것이다. 첫 시간이 너무 길면 질릴 테니 나 이만 들어가련다.

내 강의는 ≪우격다짐≫이야! 왜냐고? 맛만 보여주고 들어가잖아. 웃기지? 웃기잖아? 자, 오늘은 여기까지. ☜ 조회수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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