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10일

통일여명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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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울 데 대하여

 - 김정일장군님 당중앙위책임일군과의 담화 1987 10 10

통일여명 편집국 해설 5-1-1

 

나는 오늘 우리 당창건 42돌을 맞이하면서 당원들과 근로자들 속에서 주체의 혁명관을 튼튼히 세울 데 대하여 다시 한번 강조하려고 합니다.

우리 당은 창건 첫날부터 어렵고 복잡한 혁명투쟁을 통하여 끊임없이 강화발전되어 왔으며 우리 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 왔습니다. 우리 당이 오늘과 같이 불패의 위력을 지닌 혁명적 당으로 강화발전될 수 있은 것은 무엇보다도 항일혁명투쟁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였기 때문입니다. 항일혁명투쟁시기 진정한 혁명가들은 주체의 혁명관을 지니었기 때문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쳐 인민대중과 혈연적 연계를 맺고 그처럼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그마한 동요도 없이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견결히 싸워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혁명관은 그 어떤 책이나 서재에서 얻은 한갓 지식이 아니라 혁명의 길을 처음으로 개척한 위대한 수령님의 영도 밑에 간악한 원쑤들을 반대하는 준엄한 투쟁속에서 체득한 드놀지 않는 신념이었습니다. 혁명관은 이처럼 실천투쟁을 통하여 체득하고 신념화되어야 혁명가의 고유한 품성으로 체질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 혁명은 멀리 전진하여왔고 혁명하는 사람들의 처지와 환경도 많이 달라졌지만 신념화된 혁명관을 지니는 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의연히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가 가야할 혁명의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그런데 오랜 혁명가들은 점점 줄어들고 우리 혁명대오에는 간고한 혁명투쟁에서 단련되지 못한 새세대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부닥치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우리 혁명의 종국적 승리를 이룩하자면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주체의 혁명관으로 튼튼히 무장시켜야 합니다.

혁명관은 일반적인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신념으로 체득하여야 합니다. 사상은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사회적 의식인 것만큼 실천투쟁속에서 체득하여야 공고한 것으로 됩니다. 혁명관도 원리적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실생활을 통하여 체험하여야 그것이 확고한 의지로 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사람들이 자기의 계급적 처지와 이해관계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착취계급을 증오하고 자기의 계급적 이익을 옹호하는 사상감정을 가지며 나아가서 착취사회를 때려부시고 근로인민대중의 새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끝까지 싸우려는 굳은 각오와 의지를 가지고 혁명의 길에 나서게 되었을 때 비로소 혁명적 세계관이 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교시하시었습니다. 이것은 혁명적 세계관의 형성과정을 역사상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밝힌 탁월한 사상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일군들이 당원들과 근로자들 속에서 혁명관을 세우기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을 보면 대체로 인식단계에 머물러 있고 실천투쟁을 통하여 체득하고 신념화하도록 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응당한 주목을 돌리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일군들은 학습회나 강연회를 몇 번 하였는가 하는 통계나 받고 문구를 따라 외우기 위한 경쟁같은 것이나 조직하면 혁명관을 세우는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답식 학습경연도 많은 사람들이 서로 논쟁을 하면서 집체적 지혜를 동원하여 문제의 본질을 폭넓고 깊이있게 이해하게 하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문구를 기계적으로 따라 외우게 하는 방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는 목적은 그들이 문구나 따라 외워가지고 멋이나 부리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혁명투쟁에 높은 자각을 가지고 주인답게 참가하도록 하자는 데 있습니다. 물론 혁명관을 세우자면 인식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인식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각오와 투지를 가지고 혁명에 적극 나서게 하기 위한 전제로서 의의를 가집니다. 우리는 혁명관을 세우기 위한 사업을 형식주의적으로 하지 말고 혁명실천과 밀접히 결부하여 실속있게 함으로써 그것이 확고한 신념과 의지로 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주체의 혁명관은 혁명의 주인으로서 지녀야 할 혁명에 대한 주체적인 관점과 입장입니다. 주체의 혁명관을 세운다는 것은 혁명의 본질과 근본목적, 그 실현방도를 옳게 인식하고 혁명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할 각오와 의지를 신념으로 간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혁명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이며 그 주인인 인민대중 자신이 수행해야할 사업입니다. 혁명의 목적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데 있으며 혁명을 수행하는 근본방도는 당과 수령의 영도 밑에 인민대중의 창조적 역할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결국 혁명의 승패는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인 혁명의 주체를 어떻게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는가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혁명관을 세우는 데서 혁명의 대상에 대하여 잘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혁명의 주체에 대하여 올바른 관점과 입장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혁명의 주체는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인 것만큼 혁명관을 세우자면 수령관, 조직관, 군중관부터 바로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혁명의 주체는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인 것만큼 주체의 혁명관은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하여 생사고락을 같이해 나갈 것을 요구하는 혁명적 도덕관에 의하여 안받침되어야 합니다. 수령, 당, 대중이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으로 결합되어 혁명의 주체를 이루는 것처럼 수령관, 조직관, 군중관, 도덕관은 서로 뗄 수 없이 연관되어 하나의 전일적인 혁명관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체의 혁명관을 확고히 세우려면 혁명적 수령관, 조직관, 군중관, 도덕관을 다같이 체득하여야 합니다.

주체의 혁명관을 세우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먼저 혁명적 수령관을 세워야 합니다.

혁명적 수령관을 세우는 데서 수령이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이라는 것을 옳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령의 영도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데 대하여서는 선행한 혁명이론에서도 많이 강조되었습니다. 수령은 물론 인민대중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영도의 중심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수령을 단순히 최고지휘관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지휘의 중요성에 대하여서는 어느 사회, 어느 계급에 있어서나 다 공인되어 있지만 노동계급처럼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으로서 자기수령을 내세운 계급은 없습니다. 수령과 전사사이의 관계를 단순히 지휘하는 사람과 지휘받는 사람의 관계로만 이해하여서는 안됩니다. 만일 지휘하는 사람은 지휘할 권리만 있고 지휘받는 사람은 지휘에 복종할 의무만 있다고 보면 그것은 순수 권리와 의무의 관계이지 동지적 사랑과 혁명적 의리에 기초한 관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한 부르조아민주주의에서는 지휘하는 사람과 지휘받는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권리와 의무의 관계로 봅니다. 부르조아민주주의적 견지에서는 혁명적 수령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령은 어디까지나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이라는 데 그 본질이 있습니다. 생명의 중심이 생명체의 생존과 활동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로 결합되지 않고서는 인민대중이 자주적인 사회정치적 집단으로서 생명력을 지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수령은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이며 수령과 조직사상적으로, 동지적으로 결합되어야만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신념으로 체득하여야 합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난날 수령에게 끝까지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수령의 두리에 굳게 뭉쳐 원쑤와의 판가리싸움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과정에 수령이 우리 민족의 생명의 중심이며 자기의 운명이 수령과 혈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오늘의 역사적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항일혁명투사처럼 수령과 전사사이의 혈연적 연계를 생활적으로 깊이 체험하도록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나섭니다. 물론 지난날 혁명가들이 체험한 것을 문학예술작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수령관을 세우는 데서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한 항일혁명투사들의 전형을 형상한 문학예술작품을 많이 만들어 이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령관을 세우기 위한 사업을 문학예술작품을 통하여 하는 것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오늘의 혁명실천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혁명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구체적 환경은 비록 다르지만 수령의 영도 밑에 수령의 사상과 의지에 따라 혁명투쟁을 해나간다는 점에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나 오늘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수령의 영도 밑에 수령의 사상과 의지에 따라 혁명투쟁을 해나가는 것은 곧 수령이 안겨준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고 혁명투쟁을 해나가는 것으로 됩니다. 우리가 수령의 사상과 의지에 충실할수록 수령과의 연계가 더욱 밀접해지고 보다 값높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게 되며 개인주의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삶의 보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수령의 사상과 의지대로만 사고하고 행동하며 수령과 생사고락을 같이해 나가는 데서 삶의 보람을 찾는 사람이라야 혁명적 수령관이 확고히 선 혁명가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령을 언제나 마음의 기둥으로 굳게 믿고 수령이 내세운 혁명과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가장 값높고 보람찬 삶이 있다는 것을 체득하고 수령의 사상과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혁명실천을 통하여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여야 하겠습니다.

주체의 혁명관을 세우기 위하여서는 당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노동계급의 당이라고 할 때 그것은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결합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위부대를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당의 영도는 곧 수령의 영도이며 당에 대한 관점과 입장은 본질에 있어서 수령에 대한 관점과 입장으로 됩니다. 수령은 당의 수령인 것만큼 당과 수령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과 수령을 완전히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수령이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의 중심이라는 데 그 본질이 있다면 당은 수령을 중심으로 인민대중을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시키는 데서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라는 데 그 본질이 있습니다.

당은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당조직들의 결합체입니다. 당에 대한 관점과 입장은 수령에 대한 관점과 입장, 당조직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다같이 포괄하게 됩니다. 수령관을 혁명관의 독자적인 구성부분으로 보는 조건에서 당에 대한 관점과 입장은 결국 당조직에 대한 관점과 입장에 귀착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혁명관의 구성에 대하여 말할 때 수령관과 당관이라고 하지 않고 수령관과 조직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직관은 당조직 뿐 아니라 당의 영도 밑에 수령과 대중을 연결시키는 모든 사회정치적 조직들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포괄합니다. 당조직은 사회정치적 집단에서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정치조직이라는 점에서 다른 모든 사회정치적 조직들과 구별됩니다.

조직을 떠나서는 그 누구도 수령과 혈연적으로 연결될 수 없으며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풍부한 지식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수령과 조직적으로 결합되지 않고서는 수령이 안겨주는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닐 수 없습니다. 조직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곧 자기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부터 참다운 혁명가는 조직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존엄있게 대하며 언제나 조직에 의거하여 생활하고 투쟁하는 것을 어길 수 없는 철칙으로 삼는 것입니다. 지난 시기에는 조직의 귀중성을 주로 단결의 필요성과 관련시켜 많이 강조하여 왔습니다. 물론 혁명을 하자면 조직적으로 단결하여야 하며 단결하여야 위력한 힘으로 혁명투쟁을 벌여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조직의 힘은 곧 단결의 힘이며 단결은 혁명하는 사람들의 힘의 원천이며 승리의 담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귀중성을 깊이 이해하자면 자기의 사회정치적 생명과 결부시켜 보아야 합니다. 인민대중은 당조직을 모체로 하여서만 하나의 자주적인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될 수 있으며 자기운명의 참다운 주인으로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조직을 자기생명의 모체로서 귀중히 여기고 존엄있게 대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수령을 어버이수령이라고 부르고 당을 어머니당이라고 하는 것도 수령을 중심으로 한 당조직이 사회정치적 생명의 모체이기 때문입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 속에서 혁명적 조직관을 세우자면 조직의 귀중성을 원리적으로 인식시킬뿐 아니라 조직생활을 통하여 깊이있게 체득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조직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언제나 조직에 의거하고 조직의 지도와 통제밑에 사업하고 생활하는 것을 습성화하여야 합니다.

당생활은 당원들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생명의 요구를 실현해 나가는 정치생활입니다. 우리의 정치생활은 곧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한 조직사상생활입니다. 당원들은 당생활을 통하여 혁명의 주인으로서 가장 값높고 보람찬 삶을 누리게 됩니다.

당생활은 당조직생활과 당사상생활로 갈라볼 수 있습니다.

당조직생활은 당원들이 당조직에 소속되어 조직의 지도와 통제를 받으면서 당이 맡겨주는 혁명임무를 수행하는 정치활동입니다. 당조직의 주인은 당원들 자신입니다. 당원들은 당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 주인답게 참가하여야 하며 이 과정을 통하여 당성을 끊임없이 단련하고 당조직의 한 성원으로서 언제나 조직의 의사와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습성을 키워야 합니다.

당사상생활은 당원들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정신적 양식을 받아안고 그것을 자기의 피와 살로 만들어 나가는 정치생활입니다. 당원들은 당과 수령의 사상으로 무장하여야 당과 사상적으로 결합될 수 있으며 당원으로서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밥을 먹어야 육체적 생명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당원은 사상생활을 통하여 끊임없이 당과 수령의 혁명사상을 자기자신의 뼈와 살로 만들어야 당과 생사운명을 같이해 나갈 수 있습니다.

당생활은 반드시 혁명과업수행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하여야 합니다. 혁명과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당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며 당과 수령에게 충실한 사람입니다.

지금 일부 당일군들이 당원들의 당생활을 지도하는 것을 보면 주로 당원들이 조직규율을 어떻게 지키고 학습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과 같은 문제에 대하여서만 주의를 돌리고 본신혁명과업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거의나 관심을 돌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일군들은 마치도 당원들이 맡고 있는 본신혁명과업수행에 대하여서는 행정경제일군들만이 관심을 돌려야 할 실무적인 사업인 것처럼 그릇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원들이 당생활이 본신혁명과업을 잘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되지 못하고 있으며 지어는 그 수행을 저애하는 결과까지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당원들의 당생활을 본신혁명과업수행과 밀착시켜야 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생활을 본신혁명과업수행과 밀접히 결부시키라고 하면 일부 당일군들은 행정경제사업까지도 자기가 다 맡아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행정을 대행하는 데 이것도 우리 당의 당생활지도원칙에 어긋납니다.

당일군들은 당원들의 당생활을 실속있게 지도하여 모든 당원들이 당조직을 귀중히 여기고 당이 준 혁명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주체의 혁명관을 세우기 위하여서는 인민대중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가르치신 바와 같이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습니다. 혁명적 군중관은 인민대중을 혁명의 주인으로 보고 인민대중에게 복무하며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믿고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을 해나가는 관점과 입장입니다.

혁명적 군중관을 세우자면 인민대중이 혁명의 주인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당은 인민대중을 영도하는 지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이 인민대중위에 선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은 인민대중 자신의 향도적 핵심역량입니다. 인민대중과 동떨어진 당의 존재에 대하여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당이 인민대중을 영도한다는 것은 대중에게 자기의 주관적 의사를 내리먹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요구와 이익을 과학적으로 통찰하고 그에 기초하여 정확한 투쟁목표를 제시하고 대중을 그 실현에로 이끌어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은 인민대중의 요구와 이익에 맞게 그들의 투쟁을 이끌어 나갈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의무를 원만히 수행하는 것으로써 인민대중에게 복무하여야 합니다. 인민대중의 이익을 떠난 당의 이익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인민대중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데 당활동의 최고원칙이 있습니다.

당은 인민대중의 선진부대인 것만큼 대중의 뒤꼬리를 따라다녀서는 대중에게 충실히 복무할 수 없습니다. 당은 대중이 자기의 참다운 이해관계를 옳게 자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투쟁하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당이 인민대중을 영도하는 것은 바로 대중의 참다운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대중에게 복무하는 것입니다.

일군들이 혁명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라는 관점을 가지지 못하면 군중을 깔보고 군중에게 호령하게 되며 자기를 군중 위에 선 특수한 존재와 같이 생각하면서 당세도와 관료주의를 부리게 됩니다. 군중을 깔보면 자연히 자기를 특수한 존재로 생각하게 됩니다. 군중을 깔보고 자기를 특수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근로대중을 착취하고 압박하던 낡은 사회통치계급의 사상적 유물입니다. 일군들은 인민대중이 혁명의 주인이라는 관점을 확고히 가지고 인민들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이 가장 영예롭고 보람찬 일이라는 것을 깊이 체득하여야 합니다.

인민대중이 혁명의 주인이라는 관점을 확고히 체득하자면 그것을 원리적으로 깊이 파악하는 것과 함께 군중의 힘을 믿고 군중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을 해나가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늘 군중 속에 들어가 그들과 고락을 같이하는 것을 생활화하여야 합니다.

혁명적 군중관은 군중을 혁명의 주인으로 보고 군중에게 복무할 각오를 가질 뿐 아니라 군중의 힘을 믿고 군중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을 해나가는 것을 생활화할 때 확고히 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혁명의 승패는 인민대중의 창조적 지혜와 힘을 어떻게 동원하는가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총명하고 유능하다 하더라도 인류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축적해놓은 지혜와 힘의 극히 제한된 부분만을 체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직 인민대중만이 인류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축적해놓은 모든 사회적 재부를 전면적으로 체현하고 있으며 자연과 사회, 인간 자신을 개조하여 자기운명을 자체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창조적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대중은 사회의 전진운동을 떠밀어 나가는 혁명의 유일한 담당자로 되는 것입니다. 혁명을 하자면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는 길밖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군중의 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자신의 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혁명가의 자격이 없습니다. 군중의 힘을 믿지 못하는 데로부터 사대주의와 외세의존사상을 가지게 되고 비관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군중의 힘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그것은 저절로 발휘되는 것이 아닙니다. 군중은 사상적으로 각성되고 조직적으로 단결될 때에만 자기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군중의 힘은 개별적 사람들의 힘을 산술적으로 합친 것과는 대비할 수 없이 질적으로 구별되는 거대한 힘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혁명적 사업방법의 불패의 생활력은 대중의 힘을 믿고 대중의 창조력을 최대한으로 발동시켜 모든 문제를 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풀어나가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개인의 이해관계를 자극하는 방법만으로써는 사람들의 창발성과 헌신성을 높이 발양시킬 수 없습니다. 집단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더 귀중하다는 것을 자각한 사람만이 높은 창발성과 헌신성을 가지고 혁명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할 수 있습니다.

혁명에서 개인의 운명은 집단의 운명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은 어디까지나 집단인 인민대중을 위한 사업이지 그 어느 개인을 위한 사업이 아닙니다. 개인은 오직 집단의 한 성원으로 되어야 혁명의 주인으로 될 수 있으며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습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함으로써만 자기개인의 운명도 가장 훌륭히 꽃피워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당의 군중노선의 우월성은 인민대중에게 민주주의적 자유와 평등을 보장해줄 뿐 아니라 그들이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인민대중은 사회의 주인으로서 평등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서의 임무와 역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러자면 당의 영도 밑에 조직사상적으로 단결되어야 하며 옳은 전략전술에 따라 투쟁하여야 합니다. 군중노선은 반드시 당의 영도와 결부되어야 합니다. 당의 영도를 떠나서는 군중이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서 자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군중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당이 혁명과 건설에 대한 자기의 영도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당의 유일적 영도와 군중노선을 결합시키는 것이 우리 당활동의 근본원칙으로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일군들이 당의 군중노선에 대하여 말은 많이 하고 있지만 혁명적 군중관점이 바로 서지 않고 군중노선을 구현한 당의 혁명적 사업방법을 체득하지 못한 데로부터 관료주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중의 혁명적 열의와 창조적 적극성을 제대로 발양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정책관철에서 신심을 가지지 못하고 지어는 우리 당의 혁명적 사업방법과 인연이 없는 개인주의적 실용주의방법에 기대를 거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혁명적 군중관점을 바로 가지고 우리 당의 혁명적 사업방법을 체득시키는 데 큰 힘을 넣어야 하겠습니다.

혁명적 수령관, 조직관, 군중관이 혁명적 양심에 기초하여 신념화되자면 반드시 혁명적 도덕관과 결부되어야 합니다.

도덕은 외적인 강요나 통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양심에 의하여 자각적으로 지켜야 할 사회적 행동규범입니다. 혁명적 도덕관은 혁명적 양심에 기초한 사람들의 행동규범에 대한 관점과 입장입니다. 혁명적 양심은 개인의 생명보다 사회정치적 집단의 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며 개인의 이익보다 당과 인민의 이익, 혁명의 이익을 더 귀중히 여기는 사회적 의식입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은 혁명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였을 때에는 긍지감을 가지게 되며 그와 어긋나게 행동하였을 때에는 비록 남이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수령, 당, 대중에게 충실하는 것은 혁명의 근본이익으로부터 출발하여 혁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길 수 없는 의무로 됩니다. 이것을 어기는 것은 결국 혁명을 배반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혁명규율의 견지에서 볼 때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운명을 같이하는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되어 있는 수령, 당, 대중사이의 관계는 동지적 사랑과 혁명적 의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만큼 수령, 당, 대중에게 충실하는 것은 혁명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로도 됩니다. 수령, 당, 대중에 대한 충실성은 혁명적 양심에 기초한 도덕에 의하여 담보되어야 하며 또 그렇게 되어야 참으로 공고하고 진실한 것으로 될 수 있습니다.

지난날 우리 인민이 일제의 식민지 노예로서 갖은 천대와 압박을 받으며 민족의 넋마저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어 우리 인민에게 민족자주정신을 안겨주시고 그들을 성스러운 혁명투쟁에로 이끌어 주시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야말로 우리 민족 재생의 은인이시며 우리 인민에게 가장 고귀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안겨주시고 가장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마련하여 주신 자애로운 어버이십니다. 어버이 수령님을 충성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는 것은 조선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우리는 실생활을 통하여 수령은 인민대중의 요구와 이익을 가장 이상적으로 체현하고 있기 때문에 수령의 사상과 의도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으로 된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공산주의도덕의 최고표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강요나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수령을 높이 받들어 모시며 당조직을 존엄있게 대하고 조직규율을 자각적으로 지키며 인민대중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인민대중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무하여야 합니다.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혁명적 도덕은 비단 수령, 당, 대중에 대한 충실성에서 뿐 아니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구현되어야 합니다.

원래 도덕은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자각적으로 지켜야 할 보편적인 행동규범으로서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계급적으로 대립됨에 따라 도덕도 계급적 성격을 띠고 서로 대립되게 되었습니다. 착취사회에서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떠난 그 어떤 보편적인 도덕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근로인민대중이 주인으로 된 사회주의사회에서 도덕은 노동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계급 자체를 폐절하고 무계급사회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계급이므로 노동계급의 이익은 전사회의 이익과 일치됩니다. 노동계급의 이익을 반영한 도덕은 전체 인민대중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으로 하여 보편적 의의를 가집니다.

노동계급의 도덕인 공산주의도덕은 역사적으로 발전되어온 도덕 가운데서 모든 합리적인 것을 계승하고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 맞게 발전시킨 가장 우월하고 선진적인 도덕입니다. 공산주의도덕은 인간의 사회적 본성인 자주성과 창조성을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할 가장 보편적인 도덕입니다.

노동계급의 사상을 구현하고 있는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 평등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운명을 같이하는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공산주의도덕을 자각적으로 지키는 것은 사회주의제도의 본성적 요구에 맞는 응당하고도 자연스러운 일로 됩니다.

공산주의도덕이 사회주의사회에 아직 전면적으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주로 낡은 사회의 유물이 남아있는 사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이룩되고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로 발전함에 따라 권력에 의한 사회생활의 규제범위는 점차 줄어들고 공산주의도덕에 의한 사회생활의 규제범위는 더욱 확대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과정은 사회생활에서 권력의 작용이 점차 줄어들고 도덕의 작용이 끊임없이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당은 마땅히 사회발전의 합법칙적 요구에 맞게 공산주의도덕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고 공산주의도덕교양을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공산주의도덕교양사업을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잘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군들은 공산주의도덕교양을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관련하여서는 적지 않게 하고 있지만 일상생활과 관련하여서는 관심을 잘 돌리지 않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도덕교양에서 당과 혁명에 대한 충실성을 키우는데 중심을 두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공산주의도덕을 전면적으로 확립할 수 없으며 당과 혁명에 대한 충실성 자체도 공고한 도덕적 기초 위에서 다져나갈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도덕은 크게 두 부분으로 갈라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덕이며 다른 하나는 개별적 사람들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덕입니다.

집단과 개인의 관계는 수령, 당, 대중과 개별적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표현됩니다.

인민대중이 집단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집단의 중심으로서의 수령과 집단의 중추로서의 당도 다 집단을 대표합니다. 사회적 재부도 집단에 속하여 있으므로 국가와 사회의 공동재부와 개인의 관계도 집단과 개인의 관계로 보아야 하며 조국과 개인의 관계도 역시 집단과 개인의 관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집단과 그에 속한 개인은 운명을 같이하고 있으므로 집단과 개인사이에는 동지애에 기초한 혁명적 의리의 도덕적 원리가 작용합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적 원리는 바로 집단과 개인사이에 작용하는 이와 같은 공산주의적 도덕관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꼭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집단을 떠나서는 개인이 살 수 없는 것만큼 집단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더 귀중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서 개인은 집단의 이익을 자기 개인의 이익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집단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무하는 것을 마땅한 도리로 여겨야 합니다.

사회정치적 집단에 속해있는 개별적 사람들사이에서도 동지애에 기초한 혁명적 의리의 도덕적 원리가 작용하지만 집단과 개인의 관계와는 달리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평등하므로 어느 개인의 이익이 다른 개인의 이익보다 더 귀중하다는 문제는 서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집단안에서 평등한 자격을 가지고 동지적으로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을 도덕적 의무로 여겨야 합니다.

원래 동지적 사랑은 상대방을 자주적인 존재로 보고 그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사이에는 동지적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동지적 사랑은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정치적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들사이에서만 있을 수 있습니다. 동지적 사랑은 서로 존중하고 헌신적으로 도와주는데서 표현되어야 합니다. 만일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남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동지적 사랑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정치적 집단안에서의 인간관계는 완전히 평등한 자주적 관계인 동시에 서로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동지적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회정치적 집단의 요구와 이익을 반영한 공산주의도덕은 마땅히 개별적인 사람들의 자주성을 충분히 발양시키는 동시에 집단의 통일과 단합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으로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도덕이 훌륭히 구현된 공산주의사회는 가장 정의로운 사회이며 동지적 사랑으로 결합된 가장 화목하고 단합된 사회입니다.

공산주의사회의 특성에 맞는 공산주의적 인간의 도덕품성은 크게 두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적 도덕품성을 지닌 인간은 무엇보다도 가장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정의로운 사람이란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온갖 부당한 행위를 증오하며 모든 문제를 편견과 사심이 없이 공정하게 대할 줄 아는 공명정대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공산주의적 도덕품성을 지닌 인간은 또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며 사람을 위하여 진심으로 복무할 줄 아는 가장 인민적이며 헌신적인 사람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공산주의혁명가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품성이라고 가르치시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부 일군들속에서는 아직 공산주의도덕품성을 소유하지 못한 데로부터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자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현상이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내리누르려는 현상이 있는가 하면 부당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희생시켜 자기의 이기적 목적을 실현하려는 현상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다 낡은 사회의 유물로서 우리 사회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일군들은 마치도 이런 현상이 혁명의 근본이익과는 크게 저촉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에 대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민대중의 혁명위업에 충실할 수 없습니다. 동지를 속이는 사람은 당과 수령도 속일 수 있으며 자기를 위하여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혁명의 이익도 저버릴 수 있습니다.

매개 사람들이 지켜야 할 공산주의도덕은 동지들사이의 관계와 가정생활, 사회공동생활에서 다 구현되어야 합니다.

동지들사이의 관계에서 혁명적 의리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혁명동지라고 하시면서 혁명은 동지를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었습니다.

혁명동지는 하나의 공통적인 사회정치적 생명을 지니고 혁명위업을 위하여 생사고락을 같이해 나가는 귀중한 전우이며 친근한 형제입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은 참다운 동지를 얻었을 때 가장 기뻐하며 그러한 동지를 잃었을 때 가장 가슴아파 합니다. 동지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혁명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초보적인 도덕품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지 않고 성실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은 당과 혁명에도 충실할 수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동지들사이에 혁명적 의리를 지킬 줄 아는가 모르는가 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은 당과 혁명에 대한 충실성을 옳게 진단하고 평가하는 데서 첫 공정으로 됩니다.

동지적 사랑은 뜨겁고 진실하면서도 원칙적이어야 합니다. 동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동지의 결합을 보고도 못 본 체하며 그것을 고쳐주기 위하여 애써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진실한 동지애가 없고 동지에 대한 의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입니다. 원칙을 지킨다고 하면서 동지를 차갑게 대하고 그의 결함만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도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척도로 하여 사람을 원칙적으로 대하면서도 동지를 믿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는 뜨거운 동지애를 지녀야 합니다.

상하간의 관계에서도 동지적 사랑과 혁명적 의리가 구현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상급과 하급사이의 관계는 결코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다같이 혁명임무를 수행하는 동지들사이의 관계입니다. 아래사람은 웃사람을 보다 중요한 혁명임무를 수행하는 귀중한 동지로서 존경하고 도와주어야 하며 웃사람은 보다 높은 책임감을 가지고 아래사람을 따뜻이 보살펴주고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정은 기층생활단위입니다. 가정생활이 건전하고 행복하여야 사회생활전반이 명랑하고 활기있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가족관계는 혈연적인 관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적 관계와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관계도 사회적 관계인 것만큼 가족들사이에는 해당 사회에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도덕적 원리가 작용하게 됩니다. 우리는 가정생활과정에 맺어지는 부부사이, 부모와 자식사이, 형제자매사이의 육친적인 사랑을 존중히 여겨야 하며 그것이 참다운 동지적 사랑으로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일부사람들은 마치도 공산주의혁명가는 가정도 모르고 오직 혁명만을 아는 인정미없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기를 낳아 키워준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인간의 초보적인 도리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부모처자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조국과 인민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가족들사이의 육친적 사랑을 절대화하여서는 안됩니다.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정치적 생명이 더 귀중하며 혈연적 관계보다 동지적 관계가 더 중요한 것만큼 가족들사이의 육친적 사랑은 어디까지나 동지적 사랑에 복종되어야 합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은 자기 가족을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그들이 다같이 혁명사업에 충실하도록 동지적으로 적극 도와주어야 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에서 도덕을 지키는 것은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건전하게 하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남녀간의 관계는 참다운 사랑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서로 믿고 진심으로 도와주는 동지적 관계로 되어야 합니다.

사회공동생활에서 공산주의도덕을 자각적으로 지키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회공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생활입니다. 노동에 성실히 참가하는 것은 사회적 인간의 신성한 도덕적 의무입니다. 사회적 노동에 성실히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며 또한 창조적 인간으로서의 보람찬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모든 근로자들은 노동을 사랑하며 누가 보건 말건 자기가 한 노동의 결과에 대하여 사회 앞에 책임지는 입장에서 노동을 성실히 하여야 합니다.

사회의 모든 성원들은 노동에 성실히 참가할 뿐 아니라 노동의 창조물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노동에 의하여 창조된 재부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사회적 집단에 대한 충실성의 표현일 뿐 아니라 노동과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올바른 태도로 됩니다.

우리는 또한 모든 사람들이 예절을 잘 지키며 늙은이와 어린이, 애기어머니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따뜻이 돌보아주는 사회적 기풍을 세우는 데 주목을 돌려야 합니다.

주체의 혁명관이 확고한 신념으로 되자면 인생관화되어야 합니다.

인생관은 크게 개인주의적 인생관과 집단주의적 인생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적 인생관은 개인의 안일과 향락을 최고의 목적으로 여기는 인생관이라면 집단주의적 인생관은 자기의 운명을 집단의 운명과 결부시키고 집단을 위한 투쟁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는 인생관입니다. 개인주의적 인생관에서는 개인의 인생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으며 인생은 개인의 한 생으로 끝나는 것으로 됩니다. 그러나 집단주의적 인생관에서는 개인의 생명보다 집단의 생명이 더 귀중하며 인생은 개인의 한 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더불어 영생하는 것으로 됩니다.

우리가 혁명을 하는 것은 자기자신과 자기세대를 위하여서 뿐 아니라 후대를 위하여 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그저 자기자신의 안락만을 위하여 살다가 한 생을 마친다면 남을 것이란 아무 것도 없으며 그런 사람의 한 생은 아무런 보람도 없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보람있는 것으로 되자면 영생하는 집단을 위하여 무엇인가 기여하는 바가 있고 남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날 항일혁명투사들이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끼니를 에우고 풍찬노숙하면서 굴함없이 싸운 것은 편안하게 사는 것이 좋은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순간을 살아도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 떳떳하고 보람있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대가 없이는 우리 세대가 있을 수 없으며 우리 세대가 없이는 다음세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자신과 자기세대를 위하여서 뿐 아니라 후대를 위하여 훌륭한 미래를 마련하여야 할 신성한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류의 운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인민을 위하여서 뿐 아니라 인류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투쟁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이기주의를 배격하는 것처럼 민족이기주의도 반대하여야 합니다. 혁명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혁명의 민족적 임무와 국제적 임무에 다같이 충실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 인민은 나라가 분열되고 세계반동의 원흉인 미제와 직접 맞서 사회주의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투쟁하고 있으며 평화와 사회주의의 동방초소를 지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우리 민족을 위한 투쟁인 동시에 인류공동의 안전과 번영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입니다. 우리의 투쟁은 비록 어려운 투쟁이지만 그만큼 더 영예롭고 보람찬 투쟁입니다. 역사는 자기인민과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한 사람들의 업적은 영원히 남아있으며 그들의 위훈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인민과 인류를 위하여 충실하게 사는 것이 곧 자기자신을 위하여 가장 충실하게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수령, 당, 대중에게 충실하는 여기에 가장 빛나는 삶의 길이 있다는 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함으로써 혁명관이 인생관화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혁명관을 세우기 위한 사업은 혁명의 주체를 강화하여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사업입니다.

우리는 혁명관을 세우기 위한 사업을 실속있게 벌임으로써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주체의 혁명관이 확고히 선 참다운 공산주의혁명가로 튼튼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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