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11월 26일(화)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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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행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

한호석 민 2002 4월호 2002 3 15

통일여명 편집국 해설 / 4-3-13

 

(1) 북(조선)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전술

지금 한(조선)반도의 정세와 관련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북(조선)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계속적인 공갈이다. 부시행정부의 공갈은 제국주의국가가 적대국들에 대하여 취하고 있는 협박전술의 전형이다. 미국대통령 부시를 비롯하여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나서서 적대국들을 계속 협박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미국국방부가 작성하여 2002년 1월 8일에 연방의회에 보고했다는 핵공격에 관련한 비밀보고서, 즉 미국이 북(조선), 중국, 러시아,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일곱 나라들을 향해 핵무기를 조준하고 있다는 이른바 ≪핵전쟁태세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의 일부 내용을 누군가가 ≪로스앤젤레스타임스(Los Angeles Times)≫에 흘려줌으로써 일련의 협박소동은 더 험해지고 있다. 이 보고서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짐으로써 부시가 2002년 3월 20일 한미정상회담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북(조선)에 대하여 전쟁을 일으킬 의사가 없다.≫고 했던 말은 거짓말이 되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부시행정부의 공갈을 북(조선)에 대한 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준비행동이라고 보면서, 조미정치협상을 재개하자는 부시행정부의 제의는 저들의 전쟁도발책동을 은폐하기 위한 위장전술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에 ≪핵전쟁태세보고서≫에서 또 다시 입증되었듯이,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전쟁도발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전쟁도발의사를 가졌다고 해서 북(조선)에 대한 전쟁을 제 마음대로 쉽사리 도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미국이 북(조선)과 전쟁으로 맞붙을 경우 북(조선)의 기습적인 대량보복공격으로 참패를 당하고 정상국가로서 영영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조미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그 전쟁은 적어도 1백 시간 안에 승패가 결정되게 되어 있다.

만일 미국이 북(조선)에 대하여 전쟁을 도발하려 할 경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막강한 미사일전력을 총동원하여 미국의 심장부와 태평양지역의 군사적 전략거점들을 집중타격하는 기습공격을 퍼부음으로써 미국의 전쟁수행력을 순식간에 마비시킬 것이다.

북(조선)의 견해에 따르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주체의 군사전략과 영군술≫은 조선인민군에게 준비된 고도의 집중력과 고속의 기동력을 총동원하여 순식간에 미국의 전쟁수행력을 마비시키기 위한 기습공격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 1993년 초 클린턴 행정부의 전쟁도발책동으로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전쟁상황으로 치닫고 있을 때 소집된 조선인민군지휘관회의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미국과 전쟁을 하면 우리가 이깁니다. 만일 우리가 지게 될 때면 지구도 깨져나갈 것입니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자신 있게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인 그가 미국의 전쟁수행력을 순식간에 마비시킬 수 있는 전략과 영군술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모든 군사전략가들이 일치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현대전의 승패는 적군을 얼마나 많이 살상하느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중력과 기동력을 동원하여 적대국의 전략거점들을 집중타격함으로써 전쟁수행력을 마비시키는 기습공격력에 의해서 결정된다. 방대한 무력을 가지고 있어도 집중력과 기동력이 떨어지면 전쟁에서 패한다는 것이 현대전의 실전경험이 증거하고 있는 바다.

1939년에 독일군은 폴란드를 기습적으로 침공하여 개전 18일 만에 폴란드군을 무장해제하였다. 1940년 5월 10일에 확전의 길로 나선 독일군은, 프랑스가 1927년부터 1936년까지 4백억 프랑의 예산을 들여 장장 7백50킬로미터의 길이로 구축한 마지노 요새를 순식간에 돌파해버리고 6월 14일 파리를 점령하였다. 개전 5주만에 전쟁이 결속된 것이다. 허나 이러한 사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전사에나 나오는 고전적 경험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쟁수행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1967년 6월 5일에 이스라엘의 군사전략가 모세 다얀이 이끄는 이스라엘군은 선제기습공격으로 첫날 하루 동안의 전투에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세 나라의 전투기 4백52대를 파괴하여 전쟁수행력을 마비시켰다. 이스라엘군의 전투기는 46대가 격추되었을 뿐이다. 주변 세 나라의 전쟁수행력을 마비시킨 이스라엘군은 집중력과 기동력을 동원하여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을 손쉽게 점령하였다. ≪6일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 전쟁에서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의 군대는 1만8천5백명의 전사자를 냈지만, 이스라엘군 전사자는 6백79명이었다. 당시 아랍연합군은 인구 1억1천만명, 병력 54만7천명, 전차 5천4백4대, 전투기 9백대였고, 이스라엘군은 인구 2백70만명, 병력 30만명(이 가운데 정규군은 7만명), 전차 8백대, 전투기 2백대밖에 없었다.

1973년 10월에 일어났던 제4차 중동전쟁에서 미그 21기의 조종간을 잡은 조명록공군대좌(당시)가 지휘한 조선인민군공군특공대는 이집트공군편대를 이끌고 기상천외한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던 시나이반도를 되찾았다. 이 전쟁에서 판정패함으로써 한때 당대의 군사전략가라고 우쭐대던 모세 다얀은 결국 몰락하였다.

방대한 전쟁물자를 장거리 수송하여 배치하지 않으면 전쟁을 할 수 없는 미군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전략과 영군술에 따라 기습공격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조선인민군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북(조선)에 대한 전쟁도발의사를 가지고 있어도 제 마음대로 쉽사리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전쟁을 제 마음대로 쉽사리 도발하지 못하는 현재의 조건에서 부시행정부가 떠들어대는 북(조선)에 대한 협박전술은 전쟁도발의 전주곡이 아니라 조미정치협상 재개의 전주곡이다. 여기서 부시행정부의 협박전술에 들어있는 정치적 의도가 무엇인가를 간파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 정치적 의도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부시행정부의 협박전술에는 장차 재개될 조미정치협상과 관련된 저의가 깔려있다. 1994년 10월에 제네바 조미기본합의서를 채택했던 당시 미국의 협상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Robert L. Gallucci)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우리는 그 협박전술에 깔려있는 저의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갈루치는 이렇게 말했다. ≪부시행정부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라도 북(조선)과 만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의 그러한 말이 의미하는 것은 그들이 조미정치협상의 현안문제들에 관련하여 북(조선)의 굴복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2002년 2월 14일자) 갈루치의 견해에 의하면, 미국은 북(조선)의 굴복을 받아내기 위하여 조미정치협상에 나서겠다는 저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앞으로 재개될 조미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의 굴복을 받아내려면 어떤 행동으로 나와야 할까? 협상 이전에 협박소동을 되풀이하는 것밖에 별수가 없을 것이다. 조미정치협상이 재개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북(조선)의 굴복을 받아내겠다는 것, 바로 이것이 지금 부시행정부가 북(조선)에 대하여 공갈발언을 연달아 내뱉고 있는 숨겨진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갈루치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북(조선)의 굴복을 받아내려는 부시행정부의 주관적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오늘의 조미관계가 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지적하자면, 북(조선)이 부시행정부의 굴복을 받아내려는 형국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1990년대의 클린턴행정부 전반기에는 북(조선)에 대해서 무조건 위협과 협박, 강압과 공갈을 앞세울 수 있었지만, 지금 부시행정부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 만일 북(조선)이 이라크처럼 군사력이 빈약한 나라라면, 또 만일 북(조선)이 미국의 심장부와 군사적 전략거점들에 대한 기습공격력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라면, 부시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가 전반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은 미국의 심장부와 전략거점들을 타격권에 안에 두고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신흥군사강국이다. 앞으로 재개될 조미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의 굴복을 받아내려는 부시행정부의 주관적인 의사는 북(조선)이 신흥군사강국이라는 사실 앞에서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나는 이전에 발표한 논문들에서 북(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신흥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을 논증한 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서술은 생략한다. 다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새로운 사실을 추가로 언급한다.

첫째, 2002년 3월 11일 미국 연방상원 정무위원회에서 미 중앙정보국 전략 및 핵계획 담당관 로버트 월폴(Robert D. Walpole)은 ≪2015년까지 외국의 미사일 개발과 탄도미사일 위협≫에 관해 증언하면서 북(조선)이 사거리 1만5천킬로미터의 중량급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둘째, 북(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파괴무기 가운데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화학무기보다 독성이 수백 배 이상 강한 생물학무기인데, 이를테면 탄저균 10그램은 사린가스 1톤과 맞먹는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만일 탄저균 6킬로그램이 들어있는 탄두를 미국 워싱턴에 투하하는 경우 워싱턴 인구 60만명은 전멸한다고 한다.

셋째, 미국 국방부에서 탄도미사일방어를 총괄하고 있는 공군중장 로널드 카디쉬는 2002년 2월 27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소위원회에 출석하여, 지금 북(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기 1주일전에 미국에게 발사예정을 통고하고 타격목표를 밝힌 뒤에 교란장치도 없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고 해도 그것을 요격할 길은 전혀 없다고 솔직히 인정한 뒤, 현재의 미사일방어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면 아마도 2004년쯤에 가서야 요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카디쉬는 미사일방어계획이 현재 기술적 난관과 허위보고사건에 가로막혀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신빙성 없는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그의 발언은 미국 군사과학기술의 한계와 미국 군부의 무능을 덮어두고 미국인들을 안심시키려는 술수가 아닌가 생각된다.

카디쉬의 발언에 신빙성이 없다는 사실이 감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의 집요한 감사활동에 의해 세상에 폭로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감사원이 18개월 동안 정밀추적하여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천3백80억달러가 들어가는 요격미사일 개발사업에서 미사일 제조를 담당한 주계약자 보잉사(Boeing Co.)와 컴퓨터프로그램 제조를 담당한 참여업자 티알더불유사(TRW Inc.)는 1997년 6월에 시제품을 제조하여 시험발사하였으나 요격대상에 대한 전자식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시험발사가 실패했는데도 마치 성공한 것처럼 국방부에 허위보고를 제출한 것이다.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에서 중심이 되는 요격미사일 개발사업은 1998년 12월에 보잉사의 경쟁업체인 레이시온사(Raytheon)로 넘어갔는데, 현재 허위보고사건은 국방부의 국방사업범죄수사국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소송을 당한 상태에 있다. (뉴욕타임스 2002년 3월 4일자)

부시행정부 자신도 신흥군사강국 북(조선)에 대해서 언제까지나 무턱대고 위협과 협박, 강압과 공갈로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부시행정부는 북(조선)에 대해서는 교활한 전술을 취하고 있다. 공갈발언과 협상요구를 번갈아 내밀고 있는 전술이 그것이다.

공갈발언과 협상요구를 번갈아 내놓고 있는 전술을 언뜻 바라보면 협상과 대결을 병행하는 양면전술인 것처럼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부시행정부의 전술을 두고 마치 부시행정부 안에서 조미관계와 관련하여 대결강행파(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담당보좌관 등)와 협상추진파(국무부)가 서로 갈라져서 내부갈등을 빚고 있다고 분석하는 세간의 여론은, 제국주의자들의 난폭성과 야만성을 정확하게 간파하지 못하고 현대제국주의의 본질과 행태를 막연한 일반상식으로 더듬어 보려는 천박한 인식이다. 그러한 천박한 인식의 틀을 가지고서는 현대제국주의진영이 전쟁도발의 난폭성과 지배예속의 야만성을 절대로 내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된다.

여기서 분명히 지적해두어야 할 것은, 북(조선)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전술은 협상과 대결을 병행하는 양면전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시행정부의 전술은 머지 않아 조미정치협상에 끌려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북(조선)에 대한 공갈발언으로 협상 재개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면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양보를 얻어내려는 이른바 ≪벼랑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방한하였던 부시가 찾아간 몇몇 곳들 가운데에는 서부전선도 포함되었다. 한국(조선)전쟁이후 역대 미국대통령들 가운데 부정사건으로 탄핵을 받아 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던 리처드 닉슨만 빼고 모든 대통령들이 서부전선에 모습을 나타낸 바 있다. 이번에 부시는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80피트 떨어져 있는 주한미군 관측소(Observation Post Quellette)에서 미군장교를 안내를 받으며, 건너편에 있는 북측의 평화박물관에 1976년 8월의 판문점사건 때 미군이 맞아죽은 도끼가 전시되어 있다는 말을 듣자, ≪과연 그렇군, 나는 저들이 악이라고 생각한다.(No wonder, I think they're evil.)≫고 중얼거렸다. 부시가 그렇게 중얼거린 말은, 그 이전에 군사분계선을 방문했던 두 명의 미국대통령들이 내뱉었던 공갈발언들에 비하면 확실히 기가 죽은 발언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1993년 7월 11일 클린턴(William J. Clinton)은 군사분계선이 가로지른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 들어서서 소감을 묻는 외신기자에게 ≪북(조선)이 핵을 개발해 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종말(the end of their country)을 의미한다.≫고 공갈을 쳤다. 클린턴의 그러한 공갈발언은 그로부터 약 1년전인 1992년에 현재의 대통령 부시의 아버지인 부시(George H. W. Bush)가 군사분계선에서 ≪우리 군대의 능력, 의지에 의문을 품는 자들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한 마디를 기억해야 한다.≫고 했던 공갈발언 보다 훨씬 더 도발적인 것이었다.

클린턴은 방한 직전인 1993년 7월 9일에 방영된 미국 엔비씨(NBC) 텔레비전과 회견하는 자리에서도 ≪만약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해 이를 사용할 경우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듯이 그들의 종말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압도적인 보복을 가할 것이다.≫고 공갈쳤으며, 남(한국)의 ≪연합통신≫(당시 이름)과 진행했던 서면대담에서도 ≪우리는 미국의 군사력이 두 개의 지역전쟁을 치를 수 있고 또 이길 수 있으며 두 전쟁을 사실상 동시에 수행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는 미국대통령들이 이처럼 북(조선)을 겨냥하여 공갈발언을 내뱉은 일련의 행위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이번에 군사분계선에 나타난 부시는 이전에 두 명의 미국대통령들이 북(조선)에 대해서 그러했던 것처럼 강도높은 도발적 발언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전의 부시나 클린턴은 북(조선)에 대해서 매우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공갈발언을 하면서 협상하자는 제의를 내놓지 않았지만, 오늘 부시는 조미정치협상을 재개하려는 의사를 계속하여 표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클린턴의 협박전술과 부시의 협박전술 사이에서 드러나고 있는 중요한 차이다.

2001년 10월 16일 부시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남(한국)의 ≪연합뉴스≫와 가진 특별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합뉴스 독자들에게 우리가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만나자고 제의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 올 6월 우리는 그들이 선택하는 시간에 기꺼이 대표를 보내 그들과 만나 다양한 현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아직까지 우리 쪽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있다. 그는 한국과 만나지 않고 있으며 우리와도 만나지 않고 있다. 아마 그가 만나지 않으려는 게 아니냐는 생각까지도 든다.≫

2001년 11월 27일 미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 제임스 켈리(James Kelly)는 ≪ 미국은 대량파괴무기, 특히 탄도미사일과 관련하여 북(조선)과 진지하게 협상하기를 바라고 있다.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미국의 대화의지는 진지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1월 29일 주한미국대사 토머스 허바드(Thomas Hubbard)는 서울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 미국정부는 북(조선)과 대화할 의지가 있고 준비도 되어 있다. 미국은 언제 어디서든지 조건 없이 북(조선)과 대화를 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전달했으며 긍정적인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 1월 28일 워싱턴의 고위 외교소식통은 ≪부시행정부는 언제, 어디서든 전제조건 없이 북(조선)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대화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부시는 2002년 3월 20일 한미정상회담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북(조선)과 조건 없이 대화를 하자는 입장이다. 북(조선)이 이런 대화제의에 긍정적으로 호응해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상대하기 힘든 적수와 담판하는 자리에 마주앉기 전에 상대가 양보할 수 없는 문제를 미리 내놓으면서 치열한 힘겨루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나서 정작 상대와 담판자리에 마주앉았을 때는 그 전에 내놓았던 양보할 수 없는 문제를 슬쩍 거두어들이면서 자기가 그만큼 양보했으니 상대도 그에 상응하게 양보해야 한다고 우겨댄다. 이것이 미국의 ≪벼랑전술≫이 보여주는 행태다.

부시행정부가 조미정치협상이 재개될 경우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벼량전술≫을 구사하면서 지금 내밀고 있는 문제는, 북(조선)이 군사분계선에 근접하여 배치한 재래식무력을 뒤로 후퇴시키고 미사일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한(조선)반도 평화회담 특사 찰스 프릿처드(Charles Pritchard)는 2001년 7월 26일 미국 연방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에서 증언하면서 ≪북(조선)의 엄청난 재래식군사력과 전진배치가 한(조선)반도에서 가장 가시적인 위협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동맹국인 남(한국)과 공조하여 그 위협에 대한 공동의 관심사에 대처할 결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부시는 2002년 2월 1일 백악관을 방문한 요르단 국왕을 만난 자리에서 북(조선)에 대해 ≪재래식 무기를 일부 철수시키고 평화에 대한 의지를 명백히 선언하고 대량살상무기 수출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동방 삼국 순방에 나선 2002년 2월 17일 중간기착지인 알래스카주 엘먼돌프 공군기지에서 연설하면서 조미정치협상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 가운데 북(조선)의 재래식 무기를 뒤로 물리는 문제가 포함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노리는 천만부당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부당한 요구가 조미정치협상에서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부시행정부도 잘 알고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2001년 7월 24일 러시아의 ≪이타르타스통신≫과의 서면대담에서 ≪더욱이 미국의 새 행정부가 북조선의 미사일위협에 대하여 떠들다 못해 이제는 우리의 상용무력의 위협까지 들고 나오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우리에 대한 또 하나의 횡포한 도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도 부시행정부가 조미정치협상이 재개되기 전에 그 협상에서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 뻔한 요구를 자꾸 내놓는 까닭은, 그 요구가 통하리라고 예상할 만큼 어리석기 때문에 그러한 것도 아니고 그 요구를 기어이 관철시켜보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그러한 것도 아니다. 부시행정부가 그런 따위의 부당한 요구조건을 자꾸 내놓고 있는 근본의도는, 조미정치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미리 내놓고 나중에 협상이 일정에 오르면 의제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자기들의 요구를 철회하는 척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양보를 얻어내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자기들은 북(조선)의 재래식무기를 뒤로 후퇴시키라는 요구를 포기할 테니 북(조선)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요구를 포기하라는 식이다.

앞으로 조미정치협상이 재개되면 부시행정부는 그러한 부당한 요구를 꺼내놓지 못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요구를 꺼내놓는 순간 조미정치협상은 깨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조미정치협상이 재개되면 부시행정부가 북(조선)에 대해 일방적으로 무장을 해제하라는 부당한 요구를 꺼내놓지 못하고 ≪유연성≫을 가질 것이라는 점은 이미 미국의 언론에서 몇 차례 흘러나온 바 있다.

2002년 1월 28일 워싱턴의 고위 외교소식통은 부시행정부가 조미정치협상을 재개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북(조선)이 원하지 않는다면 재래식무기를 의제로 하는 논의를 뒤로 미룰 수 있다.≫고 한 걸음 물러섰다. 2002년 2월 14일 ≪뉴욕타임스≫는 부시행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부시행정부가 조미정치협상을 시작하게 되면 유연성이 생기게 될 것이다.≫고 했던 말을 보도하였다. 2002년 2월 21일 남(한국) 군부의 고위당국자도 ≪재래식무기를 현 단계에서 후방에 배치하라고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적다. 한미 양국은 군사적 신뢰구축부터 먼저 추진키로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힌 바 있다.

(2) ≪악의 축≫ 폭언이 노린 세 가지 목표

부시가 북(조선)을 가리켜 ≪악의 축(axis of evil)≫을 형성하고 있는 세 나라들 가운데 하나라고 지목한 것은, 사전에 치밀하게 손익계산을 하고 나서 자기들이 준비한 각본에 따라 내뱉은 폭언이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02년 1월 29일 연방의회 상하양원 합동연설에서 부시가 읽었던 연설문의 초안에는 북(조선)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는데, 백악관이 최종적으로 연설원고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북(조선)을 ≪악의 축≫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외교통상장관 최성홍은 2002년 2월 8일 국회 통일외교위원회 답변에서 남(한국) 정부는 부시의 연설문에 북(조선)에 대한 ≪악의 축≫ 발언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고, 그 발언이 남북 및 조미 사이의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전달하면서 발언내용을 조정해달라고 했으나 백악관이 연설원고 최종본에 ≪악의 축≫ 발언을 그대로 포함시켜 발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부시가 ≪악의 축≫이라는 폭언을 내뱉는 경우, 북(조선)을 심하게 자극함으로써 부시행정부가 되레 역공을 받게 되리라는 점을 예상했을 것이며, 반대파들의 정치공세에 밀리고 있는 김대중정권의 대북정책이 난파의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을 예상했을 것이며, 그 폭언이 남(한국)에서 반미자주화운동을 촉발시키는 기폭작용을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 국제사회로부터도 비난과 반발을 받게 되리라는 점도 예상했을 것이다. 남(한국)의 언론에서도 부시는 그러한 용어(≪악의 축≫이라는 폭언을 뜻함)가 ≪국제무대에서 외교정치적으로 몰고 올 파장을 충분히 예상하면서 이를 국정연설에 포함시켰≫으며, ≪일반적 원칙론을 재천명했다기 보다는 무언가 외교정치적 목표와 속내를 포함하고 있는 단계적 조치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관측≫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악의 축≫ 폭언으로 되레 자기들에게 불리한 사태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으면서도 부시가 그러한 폭언을 내뱉은 것은, 그 폭언행위를 통해서 불리한 사태의 발생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더 커다란 목표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부시행정부가 ≪악의 축≫ 폭언에서 노리고 있었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그 목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라고 생각된다.

첫째, ≪악의 축≫ 폭언에서 부시행정부가 노린 것은 미국의 군사비를 증액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목표다.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 2002년 1월 8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국방장관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의 고위보좌관들은 2001년 12월까지만 해도 미 공군의 차세대전투기 에프(F)-22기 구입예산에서 10억 달러를 줄이고, 미 육군병력을 3만명 감축하며, 크루세이더(Crusader) 이동식 곡사포 및 코만치(Comanche) 정찰헬리콥터 개발계획을 삭제하려고 생각하였으나, 미국군부가 이러한 군비감축구상을 반대하는 바람에 럼스펠드는 군비감축을 포기하고 되레 군사비를 200억달러나 더 증액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럼스펠드는 첩보 및 통신장비, 컴퓨터 연결망을 위해 30억달러, 무인군용차량 프레더터(Predator)와 무인군용기 글로벌 호크(Global Hawk) 생산에 수억 달러, 전자식별장치와 로봇 등이 복합된 전차파괴용 무기 및 무선조종 대포 등 첨단 미래형 야전장비 생산에 5억달러, 지상 이동물체 감시용 위성레이더, 구형이 된 트라이던트(Trident) 원자력 잠수함 4척의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부시행정부가 원래의 군비감축구상을 뒤집고 군사비를 증액하기 위해서는 연방의회를 설득하는 고비를 넘어야 하고 사회여론의 비판을 피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미국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있는 적대적 존재를 크게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악의 축≫이 미국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군비를 증강해야 한다는 기만적 논리는 군비감축구상을 뒤집고 군사비를 확보하는 데 그렇게 이용되었다. 부시행정부는 북(조선), 이란, 이라크 세 나라를 그러한 군사비 증액을 위하여 자의적으로 선택되고 악의적으로 규정된 적대적 존재로 등장시키려고 ≪악의 축≫ 폭언을 대통령 연설문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둘째, ≪악의 축≫ 폭언에서 부시행정부가 노린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북(조선)을 ≪악의 축≫에 포함시킨 행위가 노린 것은 김대중정권의 대북정책을 통제하는 목표다.

김대중정권은 올해 말에 진행될 대통령선거에서 다시 집권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김대중정권도 다른 역대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권력형 부정비리를 저질러왔으므로 김대중대통령이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서는 때에는 반대파로부터 가해질 정치보복의 악순환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남(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마다 정치파벌들끼리 서로 상대방에게 가했던 정치보복은 이미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만일 김대중정권이 재집권에 실패하고 반대파가 집권하는 경우, 김대중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반대파로부터 정치적 보복을 당하는 것은 정해진 일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자신과 측근을 겨누고 있는 정치보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재집권해야 하는 지경에 처해 있다. 이것이 김대중정권이 올해 대선을 앞두고 조급증에 빠지게 되는 이유다.

만일 김대중정권이 재집권에 실패하더라도 반대파의 정치보복을 피하거나 경감시킬 수 있는 방도가 있다면, 그것은 집권말기에 남(한국)의 대중들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뚜렷한 공적을 남기고 물러가는 일이다. 개혁정책에서 완전히 실패한 김대중정권에게 그나마 공적을 남길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대북정책밖에 없다.

집권말기에 매우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는 김대중정권이 대북협상에 나서는 경우, 공적을 남기려는 조급증에 빠진 나머지 자칫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협상을 진척시키는 ≪실책≫을 저지를 위험이 있다. 바로 이것이 김대중정권의 대북협상과 관련하여 부시행정부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행정부는 김대중정권에게 올해 안에 대북협상을 재개하라고 허락하기는 해야겠는데, 김대중정권이 대북협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급증에 빠져 자기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시행정부는 김대중정권에게 대북협상을 재개하라고 허락하기 전에 김대중정권의 대북정책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통제·장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부시행정부가 ≪악의 축≫ 폭언에 북(조선)을 포함시켰던 배경이다.

이미 세상이 다 알고 있듯이, 부시가 북(조선)에게 ≪악의 축≫이라는 폭언을 한 행위는 한(조선)반도의 분위기를 아연 긴장시켰다.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수 윌리엄 테일러(William Taylor)는 ≪부시는 집권이래 계속하여 김대중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더니 이번에 ≪악의 축≫ 연설로 그를 완전히 좌절시켰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하였다. 한(조선)반도에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되면 곤경에 빠지는 쪽은 김대중정권이다. ≪악의 축≫ 폭언으로 조성된 긴장국면은 대북협상재개를 준비하던 김대중정권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고, 김대중정권의 대북정책을 헐뜯고 있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남(한국)의 정치적 반대파들에게는 힘을 실어주었다.

김대중정권이 그 곤경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로부터 대북협상을 재개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내는 길밖에 없었다. 김대중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가 또 다시 북(조선)에 대하여 폭언을 내뱉지나 않을까, 혹은 부시가 자기의 대북정책을 아주 금지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매우 불안하였을 것이다.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뒤에 김대중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정상회담을 많이 해봤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처럼 신경을 써 회담에 임한 적이 없었다.≫고 실토한 것을 보더라도 한미정상회담 직전에 김대중정권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부시는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정권이 대북협상을 재개하도록 허락하였다. 2월 20일에 열렸던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는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악의 축≫에 북(조선)을 포함시킨 공갈발언과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한다는 말은 분명히 모순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모순의 뒤에는 부시행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었다.

부시가 김대중정권이 대북협상을 재개하도록 허락하였다는 사실은, 도라산역 행사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미 두 정상이 등장한 도라산역 행사는 미리 준비한 각본에 따라 연출된 것으로서, 부시의 방문기간동안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이벤트≫였다고 한다. 부시행정부는 부시가 서울에 나타나기 오래 전부터 선발대를 보내서 도라산역 행사현장을 두 세 차례 직접 답사하면서 연출각본을 준비하였다. 2002년 1월에는 당시 외교장관이었던 한승수가 도라산역 현장을 방문하였고, 2월에는 외교장관 최성홍이 또다시 도라산역 현장을 방문하였다.

부시는 ≪악의 축≫ 폭언으로 자기들이 김대중정권의 대북정책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김대중대통령에게 확인시킨 뒤에 도라산역에 나타나서 이제부터는 대북협상을 재개하되 자기들의 통제 아래에서 협상을 추진하라고 쐐기를 박았던 것이다.

셋째, ≪악의 축≫ 폭언에서 부시행정부가 노린 것은 남(한국)에게 미국산 무기를 강매하는 목표다.

부시행정부는 앞으로 조미정치협상이 재개되면 주한미군철수문제가 의제에 오르게 되리라고 예견하고 있으며, 그 민감한 의제와 관련한 조미정치협상은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지만 결국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방향으로 결말을 지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전에 내가 발표했던 몇몇 논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다시 논하지 않는다.

미국이 해외주둔지에서 무력을 철수하는 경우, 주둔국의 전력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막대한 양의 무기를 팔아먹는 것은 상습적인 행위다. 그러한 상습적인 무기판매는 한국군을 현대화, 첨단화하는 ≪국방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남(한국)에게 미국산 무기를 팔아먹는 사업은 이전의 무기판매수준에 비할 바 없이 방대한 수준으로 계획되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군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사업에는 요격용미사일인 패트리어트미사일을 도입하는 차기유도무기(SAM-X) 사업, 에이태킴스지대지미사일과 육군의 공격용헬기(AH-X) 도입사업 등이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미국의 보잉사에서 생산하는 전투기 에프(F)-15를 남(한국)에 팔아 넘기는 사업이다.

한국군은 차세대 전투기(Fighter Next, 줄여서 에프엑스(FX)라고 함) 구입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사업은 한국군이 창설된 이래 단일한 사업으로는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사업으로서, 오는 2008년까지 4조2천억원(32억 달러)을 들여 전투기 40대를 사들이는 것이다. 이 구입사업 입찰과정에서는 미국 보잉사의 전투기 에프(F)-15, 프랑스 다쏘항공사의 전투기 라팔(Rafale), 유럽 4개국이 공동으로 개발한 전투기 유러파이터 타이푼(EF)-2000, 그리고 러시아의 로스보르제니에 수호이(SU-35)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어떤 군사전문가의 계산에 의하면, 대당 약 1억 달러 짜리 에프(F)-15의 무게를 순금의 무게와 비교하였더니 전투기 값이 금덩이값과 같다고 한다.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에프(F)-15는 덩치가 크고 무거운 전자장비와 무장을 싣고 비행하기 때문에 에프(F)-5와 모의 공중전을 벌이면 번번이 패한다고 한다. 에프(F)-15에 실려있는 무거운 고성능 전자장비들은 전투반경이 매우 비좁은 한(조선)반도 상공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되레 비행회전속도를 떨어뜨리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며, 따라서 에프(F)-15는 덩치가 작고 가벼워 날쌔게 비행회전하는 북(조선)의 구형 전투기들과 비좁은 공간에서 뒤섞여 공중전을 벌일 경우 격추되는 것은 정한 이치다.

더 놀라운 사실은, 1974년에 실전에 배치되기 시작했던 에프(F)-15는 이제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사가지 않는 기종으로서 머지 않아 생산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낙후기종이라는 것이다. 보잉사는 현재 에프(F)-15를 매년 5대밖에 생산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그 기종의 생산체계를 폐기하지 않고 유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최소한의 생산량이다. 보잉사는 미국국방부와 결탁·공모하여 생산체계를 폐기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가동시키면서 남(한국)에 에프(F)-15를 팔아먹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만일 남(한국)에게 그 전투기를 팔아먹지 못하게 될 경우 보잉사가 수 억 달러를 들여 설치해놓은 거대한 에프(F)-15 생산설비는 하루아침에 고철더미로 날아갈 판이다.

2001년 11월 15일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에서 열렸던 제3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미국 국방장관 럼스펠드를 비롯한 국방부 고위관리들은 한미연합군 전력의 상호운용성을 들먹이면서 에프(F)-15를 사가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하였으며, 남(한국) 국방장관 김동신은 그 회의 도중에 열렸던 한미 국방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차세대전투기 기종선정문제가 논의되었느냐고 기자가 묻자 ≪미국 측으로부터 에프(F)-15 판매에 대한 의견이 있었다. 에프엑스(FX)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데서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호환성과 연합작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하였다. 이것은 미국의 강매요구에 사실상 굴종·순응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미국 연방의회 일부 의원들은 2001년 6월 21일 부시와 럼스펠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남(한국)의 차세대전투기계약은 보잉사가 반드시 따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에프(F)-15의 판매가 성사되도록 노력해달라고 촉구했으며, 몇몇 의원들은 2002년 1월 18일에 직접 청와대까지 찾아가서 김대중대통령에게 에프(F)-15를 사가라고 요구하였다. 서울에서 암약하고 있는 미국 국가정보기관들도 낙후기종강매사업을 위하여 비밀공작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사가지 않는 낙후기종을 강매할 수 있는 대상은 미국의 강압에 굴종·순응하는 속국밖에 없을 것이다. 남(한국)은 바로 그러한 대상이 되었다. 미국은 보잉사의 낙후기종생산체계를 폐기할 때 생기는 막대한 손실을 고스란히 남(한국)에게 떠넘기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으며, 비굴하고 무능한 친미예속정권은 저들의 강압에 굴종·순응하고 있다.

낙후기종을 팔아먹는 무기강매사업에 이처럼 미국의 관계, 정계, 군부, 군수산업체, 국가정보기관들이 총동원되는 경우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일이 그렇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보잉사가 재정적 난관에 빠져있고, 특히 군용기 생산부문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도에 보잉사의 총매출규모는 510억 달러였는데, 그 가운데 군용기 및 미사일 부문이 약 120억 달러로서 전체의 2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 각지에 산재해있는 군용기 공장과 미사일 공장에는 종업원 약 4만 명이 고용되어 있다고 한다.

지난 2001년 11월 1일에 미군 역사상 최대규모의 사업인 통합공격기(Joint Strike Fighter) 개발사업권을 따낸 것은 라키드 마틴사(Lockheed Martin Corp.)였다. 보잉사(Boeing Co.)가 탈락한 것이다. 보잉사는 2001년도에 이스라엘과 그리스의 전투기 입찰경쟁에서도 탈락하였다. 미군의 통합공격기 개발사업이 추진되면 미군과 영국군은 25년동안 3천대를 구입할 예정이다. 이 개발사업의 초기규모는 189억8천만달러에 달하지만 나중에는 2천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다. 보잉사는 이 ≪황금시장≫을 놓친 것이다.

라키드 마틴사는 2001년 회계연도에 미국 국방부와 147억달러의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계약금액 순위에서 7년동안 연속하여 1위에 올랐으며, 2001년 한해 동안 라키드 마틴사의 주가는 46퍼센트나 뛰어올랐다. 그에 비하여 보잉사의 주가는 2001년 5월에 70달러였던 것이 9월에는 43.46달러로, 10월에는 33.31달러로 곤두박질쳤다. 보잉사의 영업수익은 2001년 4.4분기에 겨우 1억달러를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2000년도의 같은 기간의 영업수익 4억8천100만달러에 비하여 79퍼센트나 떨어진 것이다. 세계 최대의 항공기 생산업체인 보잉사는 9월 11일 테러사건 이후 전체 종업원의 15.2퍼센트에 해당하는 3만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2002년도에는 매출이 60억달러나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2002년 2월 5일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tandard & Poors)는 120억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는 보잉사에 대한 장기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하향조정한다고 발표하였다.

만일 보잉사의 군용기 부문과 미사일 부문이 계속하여 재정손실을 입으면서 쇠락하게 되면 그것이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부문에 미칠 부정적인 여파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의 관계, 정계, 군부, 군수산업체, 국가정보기관들이 모두 달라붙어 남(한국)에 낙후기종을 팔아 넘기는 강매작전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남(한국)에게 낙후기종을 강매하려고 하였지만, 남(한국)의 사회에서 반대여론이 들끓게 되었고 심지어 남(한국)의 군부 일각에서도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시간을 질질 끌면서 기종결정을 뒤로 미루어 왔다. 전투기 기종선정은 원래 2001년 7월에 마무리짓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무슨 평가사업이니 어쩌니 하면서 2002년 4월로 연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미국이 남(한국)에 에프(F)-15를 팔아먹는 강매문제는 시간을 더 이상 끌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렀다. 미국이 취할 방도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청와대에 압력을 가하여 문제를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부시가 김대중대통령에게 대북협상을 재개하라고 허락하는 대가로 에프(F)-15를 사가는 ≪교환조건≫을 받아들이도록 최후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 조치는 한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에 이미 취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교활한 부시행정부는 전투기 강매문제를 한미정상회담에서 공식의제로 다룰 경우, 남(한국)의 사회여론이 반미감정으로 들끓게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공식의제로 다루지 못했으며 한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이전에 이미 은밀하게 타결하였을 것이다. 한미정상회담이 끝났는데도 얼마동안 서울에 남아있었던 미국국방부 국제안보담당차관보 피터 로드맨이 강매문제의 실무처리를 사실상 매듭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투기기종선정문제는 부시의 방한과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하여 보잉사의 에프(F)-15로 결정되었다고 보아야 하며, 오는 2002년 4월에 김대중대통령의 최종재가를 받는 형식적 절차를 밟아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3) 곤경에 빠지고 있는 부시행정부

오늘날 ≪유일한 초강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강권과 횡포를 휘두르고 있으면서도 유독 곤경에 빠지고 있는 지역이 있으니 그곳은 한(조선)반도다. 미국의 정반대 쪽에 있는 동방의 작은 땅 한(조선)반도는 지금 미국이라는 강대한 제국주의세력이 자행하고 있는 무한정한 전쟁책동과 약탈야욕을 최전선에서 강력하게 억제하는 것으로 하여 반제투쟁의 험난한 길을 가고 있는 진보적 인류에게 승리의 여명을 비쳐주는 희망의 땅으로 거연히 솟아오르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어째서 한(조선)반도에서 곤경에 빠져들고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이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될 수 있다. 그 까닭은 포악한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책동과 약탈야욕을 억제하는 힘이 한(조선)반도에서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조선)반도에서는 제국주의의 준동을 억제하는 강력한 억제력의 집중점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 억제력은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이다. 만일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이 미약하여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책동과 약탈야욕을 억제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 진보적 인류의 반제자주화운동은 그 최전선이 붕괴되고 자주위업을 향한 인류사의 전진궤도에는 심각한 장애가 조성될 것이다.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화운동은 이 민족을 불행과 고통에 몰아넣었던 제국주의세력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투쟁을 힘있게 전개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조선)민족의 범위를 넘어 인류역사의 앞길을 선도하는 거창한 세계자주화운동의 최전선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1백년동안 제국주의자들이 지구 곳곳에서 저지른 침략과 파괴의 불길 속에서, 지배와 약탈의 고난속에서 전세계 피압박민족이 한없이 흘렸던 눈물과 피땀의 값을 한꺼번에 되찾고 자주시대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놓는 21세기의 세계사적 임무는, 제국주의자들에게 가장 많이 희생당하고 가장 심한 고통을 강요당한 한(조선)민족의 자주력에 의하여 반제자주화운동으로 수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화운동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그 위대한 운동은 본시 하나의 뿌리인 민족주체역량에서 발생되고 전개되는 것이지만, 현상적으로 보면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갈래의 운동은 북(조선)의 반제혁명전략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혁명투쟁이다. 북(조선)의 반제혁명은 1930년대에 시작되었던 김일성주석의 항일혁명에 그 역사적 근원을 두고 있다. 일제 식민지시기에 김일성주석이 영도했던 항일혁명은 일제 관동군의 침략무력에 맞서 싸우는 간고한 혈전을 벌였고, 지금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영도하고 있는 당대의 반제혁명은 미 태평양사령부 휘하의 방대한 무력과 대치하면서 첨예한 반제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1930년대이후 지난 70년동안 한(조선)민족이 전개해오고 있는 반제혁명은 자주의 기치를 따라 전진하였다.

항일혁명전선에서 반제자주의 총성이 울렸던 때로부터 세월은 멀리 흘러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몰라보게 바뀐 지금, 북(조선)의 반제혁명은 새로운 정세에 조응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새로운 반제혁명전략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이다. 선군혁명전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민군대를 혁명과 건설의 최전선에 앞세우고, 온 나라가 군사를 중시하며, 반제혁명무력을 강화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부시는 북(조선)이 인민을 굶기면서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북(조선)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선군혁명의 간고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물음은 북(조선)은 왜 잘 먹지도 잘 입지도 못하면서 군사력을 강화하려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간접적인 답변은 주한미군사령관 토머스 슈워츠(Thomas Schwartz)의 발언에서 얻을 수 있다.

최근에 토머스 슈워츠가 발표했듯이,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군 병력 80만명을 지휘하고 있으며 4백50만명 이상의 병력을 무장시킬 수 있다. 또한 미군 태평양사령부 휘하의 전함 2백50척, 항공모함 4척, 헬기 1천대, 공군기 1천5백대, 전차 3천대, 장갑차 5천대, 포 6천문이 동원될 수 있으며, 거기에 일본 ≪자위대≫ 무력이 가세할 수 있다. 북(조선)이 이처럼 세계 최대 규모의 제국주의군사력에 단독으로 맞서는 조건에서 반제자주위업을 수행해야하므로 자체의 군사력을 중시하고 강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자명한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에게 짓밟혔던 프랑스가 종전 후 국력을 집중하여 군사력을 키워야 했던 것처럼, 일제 식민지 36년동안 일본군에게 짓밟혔으며 3년동안의 한국(조선)전쟁을 거쳤던 북(조선)도 국력을 집중하여 군사력을 키워야 했다. 1963년에 다쏘항공사가 미라주전투기 독자생산에 성공하였을 때, 프랑스제 핵폭탄을 실은 프랑스제 전폭기를 보유하려던 제국주의진영의 군사전략가 드골(Charles de Gaulle)이 추구했던 군사강국의 꿈이 실현되었다면, 1998년 8월에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의 발사가 성공하였을 때, 반제자주진영의 군사전략가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자국산 핵탄두를 탑재한 자국산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는 반제군사강국의 꿈을 마침내 실현하였던 것이다. 프랑스가 독자적으로 군사력을 건설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북(조선)도 군사력의 독자화, 자위화를 실현함으로써 중국이나 러시아의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 군사강국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물론 북(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놓여있는 근본적인 차이는, 전자는 반제자주진영의 선봉에 서 있는 영도국인 반면 후자는 제국주의진영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 시기 사회역사의 진보를 추동하였던 모든 사회변혁운동의 전략들이 당대에 제기되었던 가장 절실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처럼, 오늘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도 단순한 강병책(强兵策)이 아니라 현 시대가 제기하고 있는 가장 절실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렇다면 현 시대가 제기하고 있는 가장 절실하고 근원적인 문제란 무엇일까?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은 그 문제를 자주위업, 다시 말해서 현대제국주의진영의 억압과 속박, 착취와 약탈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그 전략에 의하면 인류진보의 역사는 인류의 자주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된다.

세계사를 돌이켜보면, 나침반과 화약을 사용했던 발생기의 제국주의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제국주의자들이 ≪중상주의 정책≫과 ≪새로운 대륙의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아메리카대륙을 침략하고 정복하고 파괴한 역사, 곧 16세기 이후 서유럽에서 상업자본이 축적된 역사로부터 출발하였다. 서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이후 전함과 대포로 무장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일본의 제국주의세력은 ≪문명화(civilization)≫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세 대륙에서 침략과 약탈의 만행을 확대하면서 세 대륙 인민들에게 식민지의 재앙과 고통을 끊임없이 강요하였다.

그리고 20세기에 출현한 현대제국주의진영은 핵무기와 전략미사일로 무장하고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정복과 예속의 공간으로 삼고, 전 인류를 지배와 약탈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날뛰고 있는 중이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범선 세 척을 이끌고 아메리카행 뱃길에 올랐던 때로부터, 그리고 1497년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범선 네 척을 이끌고 인도행 뱃길에 올랐을 때로부터 500년이 지난 오늘, 현대 제국주의진영의 수장인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W. Bush)는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를 이끌고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고 있다.

지난 500년 인류역사가 증거하고 있는 것은, 진보적 인류가 자기의 자주위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실현의 길을 결정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적대세력인 제국주의자들과 투쟁하는 반제자주화운동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 이후 지난 500년동안의 역사적 경험에서 진보적 인류가 깨달은 진리다. 이 깨달음은 천년기를 마감하는 20세기에 이르러 한(조선)민족의 피어린 반제자주화운동을 통하여 마침내 세계관의 기초를 가진 과학적인 혁명사상으로 완성·확립되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은 그 혁명사상을 구현하는 반제혁명전략이다.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위업을 수행하는 모든 민족성원들, 그리고 인류의 반제자주위업을 추구하는 진보적 인류성원들은 이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전략이 어떠한 실천적 경험에 의해서 창제되었으며, 지금 어떠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가장 격심한 고난을 겪었다는 20세기 말 ≪고난의 행군≫ 시기에 제국주의자들이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전쟁도발직전까지 몰아갔던 숨막히는 고비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언제나 혁명군대의 병사들 속에 있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들 속에서 현대제국주의진영의 포악한 책동을 물리치고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수호할 반제자주역량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북(조선)의 해설에 따르면, 1995년 1월 1일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이 창제된 날이라고 한다. 2001년 11월 18일자 ≪로동신문≫은 그 날을 가리켜 ≪이 땅우에 선군정치의 첫 포성이 울린 력사의 날≫이며 ≪우리 건군사에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라고 칭송하였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던 그 해 설날 아침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푸르싱싱한 다박솔로 뒤덮여 있는 포진지≫를 찾아갔다. 그는 다박솔로 뒤덮여 있는 중대 주변을 둘러보면서 동행한 일군들에게 ≪다박솔중대요, 이런 곳을 다박솔중대라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중대병사들에게 ≪동무들, 설명절을 잘 쇠고 있습니까?≫하고 인사를 하였다. 병사들은 ≪명절을 잘 쇠고 있습니다!≫라고 화답하였다. ≪다박솔중대≫의 대공포 진지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병사들의 화력복무훈련을 지켜보았고, 중대의 교양실과 병실도 세심히 둘러보았으며 병사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촬영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다박솔 중대≫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고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었다고 한다. ≪우리 당에 무한히 충실한 강대한 인민군대가 있는 한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며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은 확정적입니다.≫(로동신문 20001년 11월 2일자) ≪나는 앞으로도 전사들과 같이 흙냄새도 맡고 포연이 자욱한 전투초소들에서 전사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최고사령관이 될 것입니다.≫(로동신문 2001년 11월 18일자)

≪평양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94년 7월부터 2000년말까지 6년 6개월동안 인민군대에 대한 현지지도를 무려 2백75회나 하였으며 찾아간 부대는 5백60여개나 된다고 한다.(연합뉴스 2001년 10월 15일자)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고난의 행군≫시기를 지나면서 때로 강냉이가루빵과 토장국으로 끼니를 때우며 진행하였던 현지지도의 기나긴 행정은, 반제자주화운동의 최고단계인 반제혁명투쟁이 왜 자기의 전선에 노동계급보다 혁명군대를 앞세워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현대 제국주의진영에 맞서 투쟁하는 자주시대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에 의해서 선군시대라는 또 하나 새로운 칭호를 얻게 되었다. 선군혁명전략은 마침내 2000년 10월에 조미공동성명을 채택함으로써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위업을 실현하는 길을 열어놓았으며, 현대제국주의진영의 무한정한 전쟁책동과 약탈야욕에 억제의 쐐기를 박은 역사적인 사변을 일으켰다.

둘째 갈래의 운동은 남(한국) 민족민주운동권의 반미투쟁이다.

남(한국)은 지난 시기 반미투쟁이 일어나지 않는 ≪불모의 땅≫으로 생각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반미자주화운동의 열풍이 부는 중심지로 바뀌고 있다. 남(한국) 일반대중 속에서 반미자주의식은 고양되고 있으며, 그 기반 위에서 민족민주운동의 반미투쟁은 더 강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번에 부시의 방한을 반대하는 반미투쟁이 전례 없이 고조되었던 것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1993년 7월 10일 클린턴이 방한하였을 때는 미국이 북(조선)을 겨냥하여 전쟁도발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정세가 극도로 긴장되었던 시기였는데도 남(한국) 민족민주운동권의 반미투쟁은 그리 위력적이지 못했으며, 남(한국) 일반대중에게서 반미자주의식의 열기는 느끼기 힘들었다. 당시 남총련학생들 5백여명이 광주의 아메리칸 센터앞에서 시위투쟁을 벌였고, 서울에서는 전국농민회총연합회성원 1천여명이 시위투쟁을 벌인 것이 전부였으며, 당시에 내걸었던 투쟁구호도 ≪쌀수입 강요하는 클린턴 방한 결사반대≫라는 생존권 투쟁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반미자주화운동에 참가하는 범위도 매우 폭넓게 대중화되었고, 반미자주화의 구호를 정확하게 내걸었으며, 시위투쟁의 양상도 더욱 치열하게 변하고 있다. 이번에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하여 일어났던 반미투쟁은 부시행정부에게 실로 위협적인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 2002년 2월 21일자는 부시방한반대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서울 현장에서 장문의 보도기사를 내보내면서 이렇게 적었다. ≪지난 군부통치시기에 일어났던 반미시위들은 이번에 부시의 방한에 즈음하여 일어난 비난공세처럼 격렬하지 않았다. 오늘의 시위는 최대의 반미시위였으며, 부시의 방일을 환영했던 도쿄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과 남(한국) 민족민주운동권의 반미자주화운동이다. 이 힘의 주체는 현대제국주의진영의 중심축인 미국을 겨냥하여 각기 다른 방향에서 위협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한(조선)반도에서 전개되는 반제자주역량의 공세에 떠밀리며 차츰 곤경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4) 미국은 결국 무엇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개발, 생산, 보유, 수출을 금지하고 있는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체제는 본질에 있어서 제국주의자들이 대량파괴무기를 동원하여 전 세계를 통제·지배하는 현대제국주의진영의 동량구조(棟樑構造)다. 반제혁명국가들과 반미국가들이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게 될 때, 또는 대량파괴무기가 미국의 하위동맹국들에게 확산될 때, 현대제국주의진영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만일 대량파괴무기가 확산되어 비확산체제가 무너지는 경우, 미국은 대량파괴무기로 무장한 반제혁명국가들과 반미국가들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침략전쟁을 도발하기 힘들게 되며, 다른 한편에서는 대량파괴무기로 무장한 동맹국들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서 벗어나 제각기 독자노선을 걷게 될 것이다. 만일 현대제국주의진영의 침략전쟁도발책동이 반제혁명국가들, 반미국가들의 강한 군사력에 의하여 억제되는 경우, 미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구축해놓은 자기의 신식민지체제를 상실하게 될 것이며, 자기를 추종하던 하위동맹국들이 이탈하는 경우, 현대제국주의진영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대량파괴무기확산문제는 단순히 군사부문에 국한된 문제라고 볼 수 없으며 21세기에 현대제국주의진영의 존폐문제가 걸려있는 최대의 현안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확산체제를 유지하느냐 유지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 21세기초에 부시행정부는 지금 그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현대제국주의진영이 장악하고 있는 대량파괴무기비확산체제가 존폐의 위기상황으로 몰려가게 된 근본원인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군혁명전략으로 영도하여 세계 정치무대에 반제군사강국으로 등장시켰다. 북(조선)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도발책동을 억제하는 한편, 미국이 대량파괴무기를 독점함으로써 구축·유지해온 현대제국주의진영을 뒤흔들고 있다.

지금 부시행정부는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체제와 남(한국) 지배권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략적인 양자택일의 갈림길로 떠밀려가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은 강력한 반제자주역량을 발휘하여 부시행정부를 양자택일의 벼랑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게는 남(한국) 지배권을 장악·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량파괴무기비확산체제를 장악·유지하는 것이다. 만일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체제가 무너지면 남(한국) 지배권을 잃어버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제국주의진영 전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워싱턴에 포진하고 있는 제국주의 전략가들은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체제를 장악·유지하기 위해서 결국 남(한국) 지배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략적 선택의 벼랑으로 떠밀려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부시행정부와 공화당 정권이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체제를 장악·유지하는 전략문제를 놓고 처해 있는 곤경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닉슨행정부와 공화당정권이 베트남전쟁에서 퇴각하는 전략문제를 놓고 처해 있었던 곤경과 매우 유사하다.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30년 전의 미국은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중미정치협상의 길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워싱턴을 주름잡았다는 제국주의전략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는 당시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수상과 정치협상을 벌이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 기밀해제된 미국의 비밀자료에 의하면, 1971년 7월 9일에 있었던 저우언라이와 키신저의 비밀회담에서 키신저는 북베트남과의 종전협상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남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것과 베트남전쟁이 끝나면 대만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도 철수하겠다는 것을 약속하였고, 그와 더불어 중화인민공화국정부는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것과 대만은 중국의 분리될 수 없는 영토의 일부로서 반드시 중국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고 한다. 그 회담에서 키신저는 ≪우리의 입장은 남베트남에서 어떤 특정한 정부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남베트남정부는 보다시피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곧 전복될 것이다. 미군이 철수한 뒤에 그 정부가 전복되더라도 우리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뉴욕타임스 2002년 2월 28일자) 키신저는 1974년에 당시 대통령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에게 제출한 1급 비밀 비망록에서 미국이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기 위해서 1977년 초까지 대만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하면서 그와 더불어 주한미군도 철수시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연합뉴스 1999년 5월 15일자)

1971년에 있었던 저우언라이와 키신저의 비밀회담 이후의 동아시아정세는 그 회담에서 합의한 내용대로 재편되었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남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하기 시작하여 1973년 1월 27일 파리에서 열린 정치협상에서 ≪베트남에서의 평화재건 및 전쟁종식에 관한 협정≫이 채택되자마자 3월 29일에 ≪미국-남베트남 연합군사령부≫를 해체하고 미군철수를 완료함으로써 남베트남 지배권을 포기하였고, 6년뒤인 1979년에는 대만에서 미군을 철수함으로써 대만 지배권을 포기하였다. 남베트남 지배권의 포기는 종전과 평화, 자주와 통일로 이어졌고, 대만 지배권의 포기는 미국과 대만의 국교를 단절시키고, 대만에 주둔시켰던 미군을 1979년안에 모두 철수시키고, 미국이 대만과 맺었던 공동방위조약을 폐기시키는 조치로 실행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남베트남과 대만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는 과정과 중미수교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이 서로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중미 수교협상에서 남베트남과 대만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하였으며 실제 그 약속대로 포기하였던 것이다.

2002년 2월 부시가 남(한국)을 방문했던 때로부터 꼭 30년전인 1972년 2월에 당시 미국대통령 닉슨(Richard M. Nixon)과 국가안보담당보좌관 키신저는 중국을 방문하였고, 상하이에서 중미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공동성명은 그 뒤로 8년동안 진행되었던 중미수교협상의 근거가 되었다. 1978년 12월 중미수교를 위한 제2차 공동성명이 발표되었고, 마침내 1979년 1월 1일 중미 두 나라는 8년 동안의 수교협상끝에 국교를 수립하였다.

닉슨행정부와 공화당정권은, 베트남민족의 강력한 반제자주역량에 떠밀려 베트남전쟁에서 패퇴하면서 남베트남과 대만에 대한 지배권을 한꺼번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베트남과 대만에 대한 지배권의 전략적 포기를 확인하였던 중미비밀회담이 열렸던 때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부시행정부와 공화당정권은 한(조선)민족의 강력한 반제자주역량에 떠밀리면서 비확산체제 유지냐 아니면 남(한국) 지배권의 포기냐 하는 전략적 택일의 궁지에 빠져들고 있다. 나는 미국이 30년전에 그러했듯이 결국 비확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한국) 지배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만일 부시행정부가 조미정치협상에 나서지 않고 공갈발언이나 하면서 계속 버틸 경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두 번째 인공위성을 탑재한 ≪백두산 2호≫의 발사준비를 명령할 것이다. 만일 부시행정부가 조미정치협상에 끌려나온 뒤에도 ≪확실한 검증≫이요, ≪재래식 군비감축≫이요 하면서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고, 남(한국) 지배권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경우, 그 협상은 결렬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발사체 ≪백두산호≫의 연속발사로 대량파괴무기비확산체제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며, 현대제국주의진영의 중심부에는 결국 붕괴의 파열구가 뚫리게 될 것이다.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체제의 존폐문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정에 맡겨져 있다. 부시행정부는 비확산체제존폐문제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눈치를 살피면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초강대국의 자존심을 지켜보겠다고 이따금 공갈발언이나 내뱉는 것밖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부시행정부는 30년전에 닉슨행정부가 그러했던 것처럼 적대국과의 정치협상에 끌려나와 적대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앞으로 조미정치협상이 진행되는 몇 년 동안의 과정에서 두 나라는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게 되겠지만, 결국 북(조선)이 대량파괴무기를 더 이상 개발하거나 수출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미국에게 제공하는 동시에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조선)반도의 통일과정에 간섭하지도 개입하지도 않겠다는 보증을 북(조선)에게 제공하는 방향으로 최종결말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말은 조미국교수립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미국대통령 부시는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체제의 존폐문제를 미국의 국가이익이 걸려있는 최대 문제로, 더 나아가서 현대제국주의진영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계정치문제로 여기고 있는 반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체제의 존폐문제를 이용하여 한(조선)민족이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를 완전히 벗어나서 통일된 자주강국을 건설하는 민족사 최대의 과업을 완수하고, 더 나아가서 현대제국주의진영의 준동을 억제하는 반제자주위업의 전략적 과제를 실행하려 하고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이 시종 주도하게 될 조미정치협상에서는 한(조선)민족의 자주위업과 통일위업을 실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며 현대 제국주의진영의 준동에 억제력을 발휘하는 승전보가 들려올 것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전략에 의하여 비확산체제의 존폐문제가 결정될 ≪운명의 시간≫ 2003년이 가까워올수록 부시행정부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다. ≪악의 축≫ 폭언이 나왔던 2002년 1월 29일 미국 연방의회 상하양원 합동연설에서 부시는 ≪시간은 우리편에 있지 않다.≫고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부시가 ≪악의 축≫ 폭언을 내뱉은 그 다음날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Ari Fleischer)도 기자회견에서 ≪지금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며 대통령이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명의 시간≫에 붸기고 있는 부시행정부는 차츰 풀이 죽고 기가 꺾이어 조미정치협상에 끌려나올 것이며, 결국 대량파괴무기비확산체제의 유지와 남(한국) 지배권의 포기를 맞바꾸게 될 것이다. 한때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이었으며 한(조선)반도 군사문제에 관한 권위있는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리온 시걸은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 2001년 6월 23일자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조미정치협상의 경험에 관하여 이러한 흥미로운 평가를 남겼다.

≪미국의 역대 모든 행정부는 북(조선)과의 협상에서 거부(denial), 분노(anger), 흥정(bargaining), 좌절(depresson), 수용(acceptance)의 다섯 단계를 밟아왔다. 부시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이 대북협상에서 발을 잘못 들어놓았던 경험을 상기할 때, 새 행정부도 그들처럼 길을 잘못 드는 것을 지켜보자니 괴롭다.≫

과연 리온 시걸이 괴로움을 안고 지켜보고 있는 대로 부시행정부는 ≪악의 축≫이라는 폭언을 내뱉으면서 ≪거부≫와 ≪분노≫의 단계를 거치고 있는 중이며, 적어도 올해 안에 ≪흥정≫의 단계로 들어설 것이다. ≪흥정≫의 단계는 ≪운명의 시간≫ 2003년에 가서 ≪좌절≫의 단계로 이어질 것이며, 마지막에는 ≪수용≫의 단계로 마감될 것이다. 부시는 마지막 ≪수용≫의 단계에서 남(한국) 지배권을 포기하고 한(조선)민족의 평화통일과정에 개입하지도 간섭하지도 말라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요구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조미정치협상을 앞두고 있는 부시가 1970년대의 중미 정치협상에 나왔던 두 명의 미국 대통령 닉슨과 포드의 발자취를 다시 밟아가게 될 정치적 행로는 그렇게 예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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