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11월 14일(목)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강조된 문단에 마우스를 올려놓으면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주체적 시각에서 본 한국사회의 성격

주체의 한국사회변혁운동론

통일여명 편집국 해설 / 4-1-8

 

2차 세계대전 후 우리 나라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해방되었으나 한국은 미제에게 다시 강점당하고 사회의 모든 권력을 빼앗기게 됨으로써 우리 민중의 자주성은 민족적으로나 계급적으로 다시금 참혹하게 짓밟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사회는 식민지 성격과 함께 계급적 착취사회의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주체적 시각에서 정권의 소재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기본척도로 삼고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표출되는 여러가지 속성들을 전면적으로 혼합적으로 분석하여 보면 식민지착취사회로서의 한국 사회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라고 규정할 수 있다.

(1) 한국사회의 식민지성

한국은 본질에 있어서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이며, 그의 식민지성은 한국사회성격을 대표하고 있다.

식민지란 외세에 의해 민족의 자주성을 유린당하고 자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 또는 지역을 말한다. 자주성은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다. 민족적 자주권의 상실은 곧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상실됨을 의미하며 자주성을 유린당한 민족은 식민지 노예의 운명을 면할 수 없다. 한국은 사회의 어느 한 분야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모든 부문에 걸쳐 민족적 자주권이 전면적으로 유린당하고 있는 미국의 완전한 속국이다.

① 정치적 예속

한국사회의 식민지성은 사회를 움직이는 모든 정치권력을 미제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정치현실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의 자주성은 자주독립국가의 첫째가는 표징이다. 정치는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결정적 의의를 가지며 경제, 군사, 문화의 모든 부문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정치에서 자주권을 행사하는가 못하는가에 따라 독립국가인가 아닌가를 가르게 된다.

정치성격을 규정하는 데서 관건적인 문제는 정치권력을 누가 쥐고 행사하는가 하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에는 이 문제가 날카롭게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지배가 일제의 총독정치와는 다른 간접적 통치형식을 취하고 있고, 이에 따라 한국의 정치체제가 형태상 미국의 군사적 존재를 배경을 하는 현지지배체제와 독립국의 정권으로 분식된 대리통치체제의 이원적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주인행세를 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현지지배기구들이다.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사령부를 비롯한 주한미중앙정보국지부, 주한미문화원 등은 워싱턴의 대한 지배정책을 식민지 대리정권을 통해 관철시켜 나가는 미국의 현지지배기구들이다. 그것은 하나의 권력구조를 이루고 있는 그의 방대한 기구체계와 사명과 기능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첫째, 한국에 존재하는 미제침략기관들은 해외공관적 한계를 벗어난 하나의 통치권력구조를 이루고 있다.

우선 주한미공관들은 방대한 기구, 정원을 가진 지배기구로 포진되어 있고 1991년 5월말 현재 외교관 명부에 기재된 미외교관만 해도 1,102명이며 이를 보좌하는 일반직원들과 임시 고용된 미국인, 한국인들까지 합치면 무려 수백 명에 이른다. 그리고 주한미군사령부, 한미연합사, 주한미정보국지부, 주한미문화원, 주한미국제개발처 기구들과 회사, 방송국과 출판사 기구, 정원과 그에 매수된 인원들까지 합치면 무려 수천명을 헤아린다. 미국은 세계의 각국에 백 수십 개의 공관들을 상주시키고 있으나 한국에서와 같이 방대한 기구와 많은 상주 인원을 두고 있는 곳은 없다.

또한 한국에 상주하는 미국의 현지 기구들의 외교공관체계가 과거 식민지총독부와 같이 한국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를 움켜쥐고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통치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현지지배권력체계에서 중추를 이루고 있는 주한미대사관은 정치, 경제, 상무, 농무, 행정, 과학기술, 영사, 무관, 교사와 부서들을 두고 한국의 정치를 한손에 움켜쥐고 있다. 이외에 군사적 지배를 위해 주한미군사령부, 한미연합사를 경제적 지배를 위해 각종 경제협력기구들을, 사상문화적 지배를 위해 공보, 문화기구들을, 정보사찰을 위해 현지 기구들은 횡적 지배기구들로 포진시키고 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이 같은 물샐틈없는 현지지배체계를 놓고 초대 미국대사였던 미츄는 ≪한국에는 유엔사령부와 미정부기관 및 정보기관 그리고 수많은 미국인들이 와있기 때문에 한국은 사실상 영향속에 들어 있는 셈이다≫(한국일보 1984년 6월 8일자)라고 실토한 바 있다.

둘째, 주한미공관들은 자기의 업무를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실현하는데 두고 있다.

우선 주한미대사는 대사가 아니라 식민지 총독의 사명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한 유력자는 미대사의 사명에 대하여 ≪첫째, 미국의 영향권, 세력권을 넓히는 것이며 둘째, 미국의 국익을 제고시키는 것이며 셋째, 한국에 미국적 가치관과 이념을 전파 구현하는 것≫(신동아 83년 3월호)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주한미대사관의 각 부서들과 횡적 지배기구들은 미행정부의 관계부서들에 배속되어 미국의 대한 지배정책을 분야별로 담당하고 구현해 나갈 사명을 지니고 있다. 주한미공관들은 외교적 기능이 아니라 한국에서 정책입안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기조정책의 선택권과 최종결정권은 청와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악관의 현지대리자인 현지지배기구들에 있다. 미국은 수백 수천 개의 예속적인 한미간의 조약과 협정, 협약, 의정서, 각서, 공동성명, 합의서 등을 통해 정치, 경제, 군사, 문화, 통일, 외교 분야에서의 기조정책들을 미국의 침략과 약탈적 요구에 맞게 책정해 놓고 있으며 한미연례안보협의회, 한미상공장관회의, 한미어업실무자회의 등 분야별 공관들을 그물처럼 만들어 놓고 정책지령들을 하달하며 한국정책결정에 시시콜콜 간섭하고 있다.

사실상 지금까지 한국정권이 내놓은 정책들은 다 미국의 지령에 따른 것으로서 그의 검은 마수가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예외 없이 다 현지지배기구들을 지렛대로 하여 실현되었다. 이승만의 하야성명은 주한미대사 매카나기와 주한미사령관 맥구르더에 의해 작성되고, 한일회담은 미대사 브라운의 각서로 비준되고 박정희의 6.23성명은 미대사 하비브의 각본에 따라 연출되었으며 전두환의 광주시민 살육작전도 노태우의 6.29선언, 북방정책도 현지기구의 막후 조정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미국은 현지지배기구들은 한국 독재자의 운명을 장악하고 권력을 움직이는 결정적 막후세력이다. 대리정권교체놀음은 미국의 신식민지통치에서 정책조정의 가장 위력한 수단으로 되고 있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목을 떼고 붙이는 것은 미국이며 그 직접적인 시행자는 주한미사령관과 미대사들이다. 바로 이승만은 맥아더의 사생아였고 박정희는 맥그루더의 사생아였으며 전두환은 위컴의 사생아였다. 그러므로 오늘 내외신들까지도 ≪한국의 정치는 미행정부의 직접적 총치밑에 있는 방대한 현지 기관들에 의해 실시≫(UPI), ≪한국정치의 줄을 당기고 있는 인형조정사는 미국≫(미국잡지), ≪주한미대사는 가장 방대한 권력을 가진 식민지 총독≫(영국잡지 동방세계)이라고 낙인찍고 있다.

이같이 한국의 모든 정치권력이 미국의 현지지배기구들의 수중에 장악되고 그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족적 자주권을 완전히 유린당한 미국의 속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운동권의 일부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 통치의 본질과 내용보다 통치방식이나 지배형식을 중요시하면서 한국사회성격을 식민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신식민지로 보고 있다. 어떤 사물, 현상이든지 그의 본질적 성격을 해명하는 데서도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이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고 그것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여 움직여지고 있는가를 기본으로 보아야지 권력이 어떤 방법으로 어떤 방식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형식의 측면만을 중시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현상이 곧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상은 어디까지나 본질의 일부 측면만을 표현하는 개별적인 것이며 조건에 따라서는 본질을 왜곡되게 반영하기도 한다. 한국사회성격을 밝히는 데서는 특히 이점에 각별한 주목을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미국은 저들의 식민지 지배를 가리기 위해 과거 구식민지 때와는 다른 신식민지 간접통치 형식을 취하면서 식민지 한국을 독립국으로 분장시키고 한국에 식민지 하청정권을 외형상 독립국가정권으로 위장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형식만 보고 본질을 규정하려 한다면 식민지 한국은 독립국으로 전도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엄청난 착오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 대한 미제의 신식민지 대리통치로 말하면, 수법이 변한 것이지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대리정권에 의한 대리통치로 그 속주의 실상이 가려져 있는 오늘의 한국은 만주국의 현대판에 지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주인이 바뀐 것뿐이다. 바로 괴뢰만주국이 일제의 군사적 강점으로 일본천황의 칙령에 따라 관동군 참모부 별관에서 생겨나고 부이가 도쿄의 인준을 받아 황제로 옹립되고 모든 정사가 일본지배층이 작성한 일만의정서에 따라 시행되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미제의 군사적 강점으로 미국대통령의 칙령에 따라 미군정청의 밀실에서 생겨나고 이승만을 위시한 역대 위정자들이 미국대통령의 인준을 받아 대통령 권좌에 직위되고 모든 정사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비롯한 예속적인 협정들에 준하여 미국의 현지지배기구의 조정밑에 시행되고 있다. 만주국이 식민지였다는 것은 한국의 국어대사전에도 올라있는 말이고, 한국사가들의 일치한 평인데도 그의 재판인 한국의 식민지성에 대해서 이런저런 논란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런 실권도 없는 한국의 정권은 미국의 식민지 통치를 가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모든 실권이 미제의 수중에 장악되고 모든 권력이 미국의 이익에 맞추어 행사되고 있는 한국에서 독립이요, 상대적 독자성이요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난날 일제가 우리 나라에 침략군과 총독부를 두고 조선사람을 통치한 것이나 오늘날 미제가 한국에 침략군과 현지지배기구들을 두고 마름정권을 움직여 우리 민중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나 그것은 현실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본질에 있어서는 다 같은 식민지 이외의 다름 아니다. 앞으로 한국에 대한 미제의 통치방식에서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모든 실권이 미제의 손에 쥐어져 있는 한 한국사회의 식민지적 성격은 달라질 수 없다.

② 경제적 예속

한국사회의 식민지성은 미국의 경제적 지배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 자립은 독립국가의 물질적 기초이며 경제적으로 예속된 나라는 정치적으로도 예속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신식민주의는 경제적 예속을 정치적 예속의 중요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경제에 대한 미국의 지배과정이 한국사회에 대한 식민지적 지배와 예속을 심화시켜 나가는 과정으로서 그의 식민지성을 규정짓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한국을 강점한 미제는 저들의 식민지통치에 유리한 물질적 지반을 구축하기 위해 사회경제관계를 전면적으로 재편성했다. 그의 기본방향은 저들의 식민지군사기지화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한국경제를 군사부속물화하고, 자국 독점자본의 무제한적 진출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두었다. 이로부터 미제는 자신의 사회경제적 계급적 기반을 축성하기 위해 매판자본을 축성하고 농촌에서 봉건적인 지주소작관계를 존속시키는데 중요한 의의를 부여해 왔다.

미국의 이같은 식민지 경제예속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세 단계를 거쳐 강행되었다.

첫째 단계는 미군정 통치시기로서 이 시기에는 주로 적산수탈과 불하를 통해 일제에게 예속되었던 한국경제를 미국경제에 예속시키기 위한 물질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우선 군정통치에 의거하여 한국경제의 명맥을 적산이라는 미명하에 저들의 소유로 강탈 장악했다.

미제는 적산을 군정에 귀속시킨다는 강도적인 군정포고령으로 한국주식회사 총자산의 95%와 공업부문 총투자액의 94%에 해당하는 공업기업소들을 비롯하여 일제가 소유하고 있던 철도, 선박, 체신시설, 금융기관 등 주요 경제부문과 주택, 창고, 점포, 상품재고 등 재산 전부를 수탈 장악하였다. 이와 함께 미제는 인천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하여 일제와 일본인 소유로 되어있던 토지 전부를 군정에 귀속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미제가 적산의 미명하에 약탈한 자산총액은 미국무성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남한 자산총액의 80%이상에 달하였다.

미제는 이같이 일시에 남한경제의 거의 전부를 강탈해 갔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모든 관리경영권과 감독처분권, 이익분배권을 장악함으로써 남한경제를 일제의 식민지예속경제로부터 저들의 식민지예속경제로 재편할 수 있는 전제를 마련했다. 그것은 미국독점자본의 이해관계에 맞게 한국을 저들의 과잉상품투입지로 한국경제를 저들의 군사적 부속물로 재편성하려는 그의 자립적 기초부터 파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제의 경제파탄정책은 주로 귀속재산 불하와 과잉상품을 통해 강요되었다.

미제는 우선 귀속재산을 모리간상배들과 친일, 친미파, 민족반역자들에게 헐값으로 집중 불하해주는 방법으로 자국 독점자본의 진출과 약탈을 보장해주는 현지대리인으로 매판자본을 본격적으로 육성해 나갔으며 적산을 불하받은 자들은 그것을 생산에 이용한 것이 아니라 매각 처분하여 투기행위를 일삼아 경제적 파국을 가속화시켰다.

미제는 또한 군정포고령으로 한국 자체의 대외무역거래를 봉쇄해버리고, 원조의 명목으로 과잉상품과 잉여농산물을 끌어들여 비싼 값으로 팔아 그 대금을 미군유지비에 소비함으로써 산업과 농업을 포함한 경제전반을 혼란과 파산상태로 몰아갔다.

미제는 바로 이같은 방법으로 한국경제를 미국경제에 편입시키고 원조정책을 본격적으로 감행해 나갈 수 있는 길을 터놓음으로써 식민지경제지배의 기반을 닦아놓았다. 그러므로 한 대학교수는 자기 논문에서 ≪8.15후의 미군정통치는 일제하의 식민지경제구조를 청산하고 자립적 경제구조를 수립한 변혁기가 아니라 과거의 식민지경제구조를 미국경제와 다시 연결시키기 위한 조정과정이었으며 한국경제의 대미종속에의 기초가 구축된 시기였다.≫(1950년대의 인식)고 평하였다.

미군정이 남한민중의 거센 항거에 부딪쳐 더 이상 구식민주의적 방식으로 식민지통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된 미제는 식민지대리정권을 만들어 놓고 허울좋은 원조의 간판 밑에 과잉상품을 대량적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한국경제에 대한 신식민주의적 지배체제를 수립했다.

신식민주의적 경제지배체제를 수립하는 데서 기본방식은 군정을 통한 직접적 지배를 토착대리정권에게 귀속재산을 이양해주고 관영기업을 청산하는 형식으로 경제명맥을 움켜쥐었으며, 대리정권을 통해 적산불하와 원조물자제공, 자금대부에서 특혜조치들을 취하게 하는 방법으로 매판자본의 물질적 토대를 확충해 나갔고 기만적인 농지개혁을 실시하게 하는 방법으로 봉건적인 대지주 소유관계를 중소지주 소유관계로 온존시키고 농촌경제를 영세화시켜 나갔다. 이같이 신식민주의적 경제지배체제는 형식만 바꾸어 놓은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 경제지배체제였다.

한국경제에 대한 신식민주의적 지배와 예속을 실현하는 데서 기본수단은 무상경제원조였다. 경제원조는 미국의 신식민주의적 경제정책에서 기본이며 신식민주의적 경제정책을 특징짓는 기본징표가 된다. 미국의 원조란 바로 후진국을 장악하기 위한 재배와 약탈의 올가미이다.

미국학자 메그롬은 미국의 대외원조성격을 규정하면서 그것은

첫째로, 미국의 세계에 대한 군사, 정치적 지배를 실현하는 무기이며, 이를 위해

둘째로, 미국독점자본이 침투할 수 있는 문호개방정책을 강요하는 것이며

세째로, 후진국 개발이 자본주의적 방식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며

네째로, 미국독점자본들이 직접적인 이권을 확보하는 것이며

다섯째로, 피원조국을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시장에 얽매이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식민지대리정권을 만들어낸 후 61년까지 한국에 제공한 27억 5천만달러의 원조를 통해 한국경제에 대한 지배를 전면적으로 실현했다. 한국에 제공되는 경제원조란 본질에 있어서 은폐된 형태의 군사원조이다. 1945년 9월부터 1960년 말까지 한국에 제공된 경제원조 총액의 98.4%가 바로 방위지원 원조로 되어있다. 미제는 이같은 원조를 통해 한국경제를 군사침략기지화에 이바지하는 군사적 부속물로 전락시켰다.

미제는 또한 원조물 투입과 분배를 저들의 경제재편성 목적에 맞게 일방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으로 한국경제를 미국경제의 재생산구조에 편입시켜 종속물로 만들어 버리고, 원조물자 판매대금으로 이루어진 대출자금을 한국경제예산에 집어넣고 그것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한국경제를 재정금융적으로 지배하였으며, 경제원조에 대한 현지 관리기구들을 만들어 놓고 그의 활동체계를 수립하는 방법으로 한국경제를 송두리째 장악하였다.

미국은 이같이 원조와 대리정권을 통하여 식민지 경제지배체제를 조성 강화하고 이른바 재건의 미명밑에 경제의 군사적 부속물화와 기형화, 토착자본의 매판자본화, 국내시장의 미상품시장화를 촉진시켰다.

세째 단계는 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로서 미국이 원조정책으로부터 차관정책으로 선회하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약탈을 심화시켜 나가는 시기였다.

미제는 자국내에서 심각한 달러위기가 조성되고 한국내에서 원조정책의 침략적 본질이 드러나게 되어 식민지통치가 뒤흔들려 위기에 부딪치자 무상원조에 의한 경제파탄정책으로부터 유상원조에 의한 경제개발정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미제는 무상원조를 통해 한국경제를 파괴하고 한국을 저임금지대로 만들며 대리정권을 강요하여 각종 예속적인 협정과 조약들을 체결함으로써 미독점자본이 마음대로 침투하여, 마음대로 착취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여건들을 조성해 놓았다. 미제는 이것을 이용하여 한국에 독점자본을 대대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차관과 직접투자의 형태로 침투하는 자본은 그 탐욕적, 약탈적 본성으로 인하여 그 어느 방법과 수단보다도 상대국의 경제를 가장 철저히 예속시키기 마련이다.

미제는 우선 차관의 형태를 통하여 독점자본을 침투시킴으로써 한국경제를 금융적으로 더욱 철저히 예속시켜 나갔다. 원래 대부자본수출의 한 형태인 차관은 대상국들을 빚으로 얽어매고 금융적으로 지배하여 이를 통해 가장 탐욕적이고 약탈적인 생산자본수출의 한 형태인 직접투자의 길을 열어놓은 것으로서 미제의 해외침략에서 기본수단의 하나로 되고 있다.

미제는 차관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부대조건이 딸린 차관들을 한국에 들이밀고는 그것으로 관영기업을 신설 확장하고 매판자본을 더욱 비대화시켜 나가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지배권을 수직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동시에 손안의 동맹국과 자기 예속밑에 있는 국제금융기구의 차관까지 끌어들임으로써, 경제적 지배권을 더욱 전면적으로 넓혀 나갔다. 1959년에서 1983년까지 한국에 투입된 차관총액은 450억 달러에 달하며 여기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미국독점자본이다. 미제는 이같은 차관정책의 강행으로 한국을 자본투하시장으로 전환시켰으며, 한국경제의 중요 명맥을 보다 철저히 손에 넣고 그를 군사적, 약탈적 목적에 이용하였다.

독점자본의 직접투자는 자본 가운데에서도 가장 강도적이고 노골적인 지배와 수탈의 수단이다. 그것은 직접투자가 현지에서 직접 생산자본의 기능을 하게 됨으로써 식민지 독점고율이윤을 획득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국의 모든 경제부문들을 직접 장악 지배할 수 있게 하고 토착기업들을 새끼회사로 흡수해 들이며 해당부문에서 자금, 설비, 기능, 제품판로까지도 독점하기 때문이다.

미제는 차관을 통해 토착대리정권을 원금상환부담에서 헤어날 수 없게 한 다음, 1970년대부터 직접투자를 본격화하기 시작해 그것을 누진적으로 확대해 왔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한국을 직접투자의 완전한 개방지대로 만들고 있다. 공개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한국에 들어온 직접투자 누계액은 1979년 현재로 총 17억 달러이던 것이 1985년에 와서는 26억 달러, 87년에는 40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한국경제에 대한 미국독점자본을 비롯한 해외독점자본의 지배는 보다 직접적인 것으로 심화되고 그의 지배력은 비상히 강화되었다.

그 결과로 오늘날 한국경제는 자립성을 완전히 상실당하고 자본과 원자재, 설비와 기술, 시장 모두를 미국을 비롯한 외래 독점자본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존립할 수 없는 식민지 하청경제로 되게 되었다.

③ 군사적 예속

한국사회의 식민지성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군사기지화에서 극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미군의 강점과 군사기지화가 민족적 자주권의 중핵적 요소인 영토와 주권의 침탈과 그 상실을 의미하기 대문이다. 식민지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외래침략군의 군사적 강점과 국토의 군사기지화로 민족적 자주권을 상실당하게 되면 그것이 곧 식민지인 것이다.

한국사회의 식민지성은 흔히 볼 수 있는 경제적 예속성에 바탕한 반식민지와는 달리 미제에게 군사전략적으로 완전히 결박되어 있는 군사적 예속성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현대제국주의의 총수로 군림하게 된 미제가 남한을 강점한 목적은 단순히 한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연부원을 약탈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한국을 군사적 교두보로 확보하고 전 한반도와 아시아를 병참기지화하고 지배하려는데 있었다. 이로부터 미국의 대한식민지정책은 한국의 군사적 기지화와 군사적 예속을 기본축으로 전개되었고 여기에 복종되었다. 그러므로 군사분야에서 예속성은 한국사회의 식민지성을 규정짓는 초석이 된다.

미제는 우선 한국에서 군사적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군은 국가주권의 중추적 요소이고 자주권의 수호를 위한 기본 무력수단이다. 그러므로 군사적으로 남에게 예속된 나라는 사실상 독립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군사적 지배권이란 본질에 있어서 군통수권을 의미한다. 명령지휘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군부에게서 통수권은 명줄이다. 바로 그 통수권을 쥔 자가 군대를 쥔 자이며 군대를 쥔 자가 결국 정권까지 쥐게 된다.

미제는 한국에서 군사작전지휘권을 핵심으로 하는 군통수권을 통째로 움켜쥐고 있다. 통수권이양은 처음 잠정군사협정으로 합법화되고 개정협정으로 재확인되었으며 그 후 한미의사록으로 고착화되고 한미연합군사령부 구성에 관한 협정으로 실용화되었다. 그리하여 국군의 통수권은 국군이 생겨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한미사령관에게 장악되어서 한국의 국방부장관이나 합참의장은 실권없는 허수아비가 되고 있다.

통수권은 한 나라의 병력을 실권으로서 그것이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는가에 따라 군대의 사명과 성격이 규정되게 된다. 통수권이 외래제국주의침략군의 수중에 장악되게 되면 그 군대는 민족군대의 복장을 하고 있어도 식민지 용병의 역할밖에 할 수 없다. 통수권이 일제에게 장악되어 있던 과거의 위만군이나 나치독일에 종속되어 있던 헝가리, 루마니아 군대의 처지가 그러했다.

통수권은 미제에게 빼앗긴 한국군, 역시 이름은 국군이지만 본질은 민족의 안보를 지키는 민족군대가 아니라 동족에게 총부리를 돌려대고 반역을 일삼는 미제침략군의 별동대로 자기 국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남의 전쟁터의 총알받이로 끌려다니는 식민지 용병이다. 그러므로 국군의 산파라고 하는 월트리트까지도 ≪국군은 미국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마음대로 써먹을 수 있는 군대≫라고 실토했다.

미제는 또한 한국의 영토권을 쥐고 있다.

영토권은 나라의 자주권의 중핵적인 요소의 하나로서 전 강토에 대한 소유권이고 관할권이다. 민족의 자주권 행사에서 영토권이 그처럼 중요하기 대문에 한치의 땅을 놓고도 국경분쟁이 일어나기 일쑤이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미군의 주둔을 자기 영토내에 허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그 주둔지역과 군사기지 설치구역 그리고 그 사용기간을 엄격히 지정하고 있으며 또 엄청난 기지사용료까지 받아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영토소유권과 관리권은 한국의 자주권에 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사령관의 관할권에 속한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미군의 주둔기간과 군사기지 사용기간이 제한부로 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구식민지 때부터 관례적으로 내려오는 홍콩의 경우처럼 99년간의 조차지라는 시공간적 한계마저 없다. 미제는 무제한 한국의 영토를 강점하고 군사기지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고 있다. 미군의 강점을 합법화한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에는 ≪본 조약을 영구화한다≫고 못박고 있다.

주한미군의 주둔과 군사기지는 아무런 시한부적 제한도 받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공간적 제한도 받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어떤 법적 제한도 없이 한국영토와 영해, 영공의 임의의 공간을 마음대로 자기의 주둔지역과 군사기지 훈련장으로 선택 사용하고 임의의 시설을 군사적 목적에 사용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는 ≪미국의 육, 해, 공군은 한국의 영토내와 그 분구에 배치할 권리를 한국은 허용하고 미국은 수락한다≫고 규정해 놓음으로써 미국이 한국의 전 영토를 군사기지로 사용할 수 있는 침략적 권리를 합법화하였다. 또한 미제는 한미행정협정 10조에서 ≪합중국에 의하여 합중국을 위하여 또는 합중국의 관리밑에서 국익을 위하여 운영되는 합중국 및 미국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만, 비행장에도 입장료 또는 항공료를 부담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음으로써 군사기지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합법화하였다.

현실적으로 미제는 저들의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 그에 대한 엄청난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으나, 한국에만은 40여개의 주요군사기지와 5백여개의 군사시설을 배치하고 막대한 기지와 공공시설물들을 사용하면서도 사용료는 고사하고 오히려 한해에 21억 달러씩 주한미군유지비를 긁어내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서 국민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다.

자국 영토내에 반입되는 타국의 군사인원과 군사장비, 무기들은 국가의 안정과 국민의 생사와 관계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주권국가를 불문하고 그것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특히 반핵, 비핵지대 창설운동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에 와서는 평화애호적인 주권국들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지난날 미국의 예속국가들이었던 뉴질랜드와 필리핀도 그리고 인구 10만밖에 안되는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메넴공화국까지 반핵헌법을 채택하고 자국내 군수병기 반입과 핵적재 함선 등의 기항을 엄격히 금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권은 미국이 우리 민족을 전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들을 제 마음대로 끌어들이고 제 마음대로 배비 전개하고 있어도 법적 제재는 고사하고 항변 한마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에 대한 형사재판권은 주권행사의 주요한 구성부분이다. 그러므로 오늘 지구촌의 주권국가치고 외국인에 대한 형사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없다. 외국에 자기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수십 개 나라들이 체결한 ≪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을 보아도 법을 어긴 미군에 대한 형사재판권은 다 주둔국에서 쥐고 있다. 한미대전협정에서는 ≪미군법회의는 주한미군의 구성원에 대한 전속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못박아 놓음으로써 주한미군의 범법행위에 대해서 한국의 대리정권은 애당초 범접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으며, 그 후 수정되었다고 하는 한미행정협정 역시 ≪근무중이 아닌 행위에 대해서만 1차적 관할권이 한국에 있다≫고 형식상 기재해 놓고는 근무중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미당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게 만들어 놓고 거기에 ≪미군의 요청에 따라 자발적으로 포기한다≫는 조항까지 명문화해 놓음으로써 일차적 관할권마저 부정해 버리고 있다.

그러므로 주한미군은 매일과 같이 강도, 절도, 강간, 방화, 살인과 같은 야수적 만행을 일삼고 있다. 치안본부의 집계에 따르면 88년 한 해 동안에만도 주한미군과 군속의 범죄 건수는 817건, 범죄자 875명 가운데 구속자는 역시 한 명도 없고 90년 1월부터 3월까지 발생한 범죄 건수 171건에 범죄자 183명 가운데 구속자는 역시 한 명도 없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미강점군의 전횡과 만행이 날을 따라 더욱 횡포해지고 있다.

미제의 군사적 지배로 한국에서는 근 반세기에 이르도록 미제침략군의 강점이 끝없이 계속되고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그의 전략적 소모품으로 징발되고 있으며, 이 땅에는 20세기의 악마의 무기로 불리는 중성자탄을 비롯한 핵무기가 쓸어 들어와 과포화상태를 이루고 있다. 실로 오늘 한국에 반입 전개된 핵병기는 그 총수량에서 무려 1,700여기에 달하며 그의 배비밀도에서 나토지역의 4배에 이르며 그 폭발력에서 히로시마 원자탄의 무려 1,700배에 해당되고 있다.

이리하여 오늘 한국은 미제의 세계전략을 위한 가장 큰 핵전초기지로 종합적인 군사기지로 전화되고 우리 국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화약고 위에서 극도의 위기와 공포감을 안고 살고 있다. 세계는 아직도 식민지들이 적지 않지만 한국에서처럼 제국주의침략자들에 의한 사회발전이 전면 제약당하고 민족적 자주권이 침통하게 유린당하고 있으며 국민의 존엄과 인권이 비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곳은 없다. 한국이야말로 미군의 군사적 강점과 군사적 지배로 모든 자주권을 침탈당한 미국의 전형적인 군사적 속주가 아닐 수 없다.

④ 사상문화적 예속

한국사회의 식민지성은 사상문화적 예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민족자주정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은 그 나라가 식민지인가 아닌가를 가름해주는 매우 중요한 척도의 하나이다.

자주성이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라면 그것은 민족자주정신의 확고성에 의해 보존된다. 민족이 다른 모든 것을 잃더라도 민족자주정신만 가지면 다른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잃지 않았다 해도 민족자주정신을 상실하면 결국은 다른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국가에는 민족정신이 살아 있지만 식민지 나라에서는 민족주체의식이 짓밟히고 외세의존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조류를 이루고 있다. 민족자주정신이 민족적 독립의 사상적 초석인 만큼 제국주의자, 식민주의자들은 독립의식, 민족주체의식을 말살하고 외세의존사상을 주입하기 위한 사상문화적 침투를 식민지화의 주요한 수단의 하나로 삼고 있다.

미제는 한국에서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민족주체의식의 발전과 우리 국민들속에서 자주정신의 발양을 각방으로 방해하여 왔으며 외세의존사상과 숭미, 공미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사상문화적 침투를 강화하여 왔다.

그것은 여러 단계를 거쳐서 제도적으로 체계적으로 자행되어 왔다. 군정통치 시기에는 주로 포고문들을 통해 미국에 대한 노예적 굴종사상을 강요하고 전후에는 냉전국면으로 미국에 대한 환상을 주입하여 왔으며, 60년대부터는 평화봉사단까지 파견하여 숭미사대의식을 퍼뜨려 왔다. 그리고 광주민중항쟁을 계기로 국민들속에서 반미의식이 고양되게 된 80년대부터는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하는 현지지배기구들과 기술, 문화, 예술 부문의 매체들을 총발동하여 친미사대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사상문화적 공세를 더욱 강화하여 왔다.

미제의 집요한 사상문화적 침략으로 한국에서는 사대굴종사상이 민족자주의식을 유린하고 매국배족사상이 애국애족정신을 매도하고 외래풍조가 민족의 고유한 미풍양속을 침식하고 있는 것이 사회적 의식구조의 본질적 특징으로 되고 있다.

한국사회 의식구조에서 첫째 특징은 사대굴종의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것이다.

사대굴종의식은 우선 대미의존사상에서 표현되고 있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제도적으로 강요되고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지배적 사상은 친미사대의식이다. 이것이 국민의식에 반영되어 적지 않은 각계 민중들속에서 미국을 풍요한 나라로 한국의 우방으로 생각하면서 미국이 있어야 우리 국민이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강조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이 같은 의식구조에 대해 한 출판물까지도 ≪이 땅에서는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고 남의 힘이 아니고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의타, 의존심,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타성화된 관념이 존재하고 있다.≫(한국민주주의론 1982)라고 개탄했다.

또한 사대굴종의식은 국민의식에서 표현되고 있다. 오늘 많은 국민들 속에서는 미제 강도성의 신화에 겁을 먹고 그를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로 보고있다. 이렇듯 미국의 지배에 맹목적으로 굴종하는 숙명관이 지배하게 되고 미국이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한 민주화가 실현될 수 없다는 패배주의가 조장되고 있다.

한국사회 의식구조에서 둘째 특징은 매국배족사상이 날뛰고 있는 것이다.

매국배족사상은 반공을 지조로 하여 동족이 이적시되고 이적이 동족시되는 전도된 가치관이 조성되고 있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 반공이 국시로 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반공의 감옥속에서 민족의 한쪽만 내 민족을 보고 남한이 이겨야 민족이 흥할 수 있다는 전도된 관념과 이북을 덮어놓고 부정하는 편견이 조장되고 있다.

또한 매국배족사상은 민족허무주의가 만연되고 있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 이 땅에서는 19세기 제국주의열강들의 침략사가 우리 나라의 물질문명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놓은 개항사로 찬미되고 있다.

한국사회 의식구조에서 세째 특징은 외래풍조가 하나의 사치풍조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외래어의 범람속에서 우리말이 잡탕말로 화해가고 있다. 언어는 민족을 특징짓는 공통성 가운데에서 기본적인 요소의 하나이다. 혈통이 같고 한 영토안에 살아도 언어가 다르면 하나의 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주의자들은 예외없이 글 가운데서 영어, 일본어, 한자어를 빼버리면 우리말은 을, 를과 같은 토씨밖에 남지않는 형편이라고 말해도 크게 과장된 것은 아니다. 광고투성이 거리는 영어와 일본어 전시장으로 화하고 사람들의 일상 언어생활들에서는 영어나 일본어로 말하는 것이 하나의 풍조처럼 되고 있다. 외래어의 공해속에서 우리말의 우수성이 퇴색되어 가고 언어의 이질화로 민족의 동질성이 변질되고 있다.

또한 양풍, 왜풍의 범람속에서 고유한 우리 민족문화와 미풍양속이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에 문화예술무대는 한국화된 갱영화, 째즈음악, 디스코로 더럽혀지고 그 우아함을 꽃피워 온 우리 민족문화는 국적없는 문화로 변질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생활양식과 풍습까지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 한국사회정치무대에서는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금력으로 일색화된 거리에서는 돈을 위해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로 벌어지고 있으며 가두에서는 양주에 만취된 부녀자들이 비틀거리고, 미군기지촌들에서는 위안부와 혼혈아들이 골목을 누비고, 관광지들에서는 외국호색동물들과 밤의 여왕으로 불리우는 윤락여성들이 붐비고 있다. 심지어 이 땅에서는 수술실에서 코큰족들이 생겨나고 미장원에서도 노랑머리, 장발족들이 생겨나고 있다. 자세히 주시해보면 한국은 한국민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풍속의 이방지대에 살고 있는 미국의 문화적 속주이다.

참으로 8.15후 근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벌어져온 사태와 오늘의 참담한 현실은 한국이야말로 미제의 군사적 강점으로 결박되고 정치, 경제, 군사의 모든 분야에서 나라와 민족의 생명인 자주성이 여지없이 유린 말살된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라는 것을 뚜렷이 실증하고 있다.

(2) 한국사회의 반자본주의성

한국사회는 미제에 의해 민족적 자주권이 침탈당하고 있는 식민지사회일 뿐 아니라 외래독점자본과 매판자본과 지주에 의해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대중의 자주성이 계급적으로 구속되어 있는 계급적 착취사회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의 성격을 전면적으로 해명하려면 민족적 억압과 함께 사회계급적 구속을 놓고 계급관계의 견지에서도 한국사회를 고찰해야 한다.

계급관계 견지에서 본다면 첫째로, 사상, 문화, 도덕의 모든 분야에서 부패한 자본주의적 기풍이 지배하고 있으며 둘째로, 소유형태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압도적인 것으로 되어 있으며 세째로, 사회가 기본적으로 자본의 운동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네째로, 노동계급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대중에 대한 사회계급적 구속이 주로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있다. 그러므로 사회발전단계의 견지에서 본다면 한국사회는 자본주의 범주에 속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반적 고찰만으로는 식민지사회관계속에서 있게 되는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관계의 본질적 특성을 밝힐 수 없다. 그것은 같은 자본주의 범주에 속하는 사회라고 하여도 거기에는 아직 채 성숙되지 못한 저발전의 자본주의사회가 있을 수 있고 원래 그 출생부터 기형적으로 생겨난 변칙적인 자본주의사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자본주의는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자생적으로 생겨난 자본주의가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 통치권, 그의 대리정권의 작용으로 외래독점자본과 예속자본이 증식한 결과 극히 변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경제, 군사의 모든 분야에서 다른 정상적인 나라들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특이한 현실과 비정상적인 특성들이 본질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사회성격을 바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가 자본주의로서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비정상적이고 변칙적인 성질들을 전면적으로 분석하고 구체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① 정치분야에서의 변칙성

한국사회가 자본주의로서 가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성질은 무엇보다도 정치분야에서 많이 발견된다. 정상적인 자본주의라면 정권의 수립과정이나 사회의 권력구조와 정치의 내용이 노자관계로 이루어지겠지만 한국자본주의는 그렇지 않다. 한국은 본질상 미제의 식민지사회이기 때문에 정권과 정치의 바탕에는 노자간의 계급적 모순관계보다도 미국과 한국민간의 대립관계, 민족적 모순관계가 주되는 문제로 되어 있다. 정치분야에서의 한국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변칙성은 바로 이 본질적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정치분야에서의 한국자본주의 변칙성은 첫째로 한국정권의 수립과정과 그의 성장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정상적인 자본주의나라들의 정권은 여러 계급들 사이의 첨예한 대립과 치열한 투쟁속에서 자본가계급이 전근대적인 봉건적인 착취관계를 근대적인 자본주의적 착취관계로 변혁시키기 위한 부르조아혁명을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임금노동자들에 대한 자기의 계급적 착취와 억압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지배권을 수립하는 방법으로 창출된다. 그러므로 이 계급적 대립과 투쟁속에서 자본가계급의 손에 의해서 세워지게 되는 자본주의나라 정권은 당연히 자국내 독점자본의 이익과 요구를 실현하는 계급적 착취와 억압의 도구인 부르조아독재정권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정권은 한국내의 여러 계급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의 결과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정권이 아니다. 한국정권은 역사적 사실이 실증하는 것처럼 외래침략세력인 미제에 의해 군사적 강점으로 잉태되고 분만되어 타율적으로 수립된 정권이다. 8.15후 한국사회의 기본 대립관계를 이룬 것은 노자간의 계급적 대립관계가 아니라 일제를 대신하여 우리 나라를 강점한 미제침략세력과 그에 의해 민족적 자주권을 짓밟히게 된 한국민간의 민족적 대립관계였다.

당시로 말하면 친일파 잔재세력들과 지주 그리고 얼마 안되는 자본가계급들은 외세에 밀려 애당초 정권을 잡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으며 현실적으로 부르조아정권을 세울만한 사회정치적 경제적 지반도 없었다.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한국에서 활화산처럼 분출하기 시작한 것은 민중의 변혁적 잠재력이었고 급속한 성장으로 정권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애국적 민주세력이었다. 그들의 창의에 의해 남한전역의 방방곡곡에서는 참다운 민중정권기관들인 인민위원회들이 창설되고 바야흐로 그것은 자주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통일적인 중앙정권기관 창설에로 나가고 있었다. 바로 이 같은 정국을 군정통치로 뒤집어엎고 민의에 의해 창출된 인민위원회들을 강제로 해산한 다음 총칼로 5.10 망국단선(48년 5월 10일에 강행된 남한만의 단독선거)을 강행하여 저들의 식민지지배체제를 확립하는데 필요한 식민지대리정권을 조작해낸 것이 미국이다.

이같이 한국의 정권이란 자국내의 계급적 대립관계에 기초하여 자생적으로 수립된 정권이 아니라 미제가 자기의 식민지통치의 요구로 써먹기 위해 무력을 가지고 강압적으로 만들어낸 정권이기 때문에, 그것은 성격상 미국의 하청정권인 식민지 예속정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이 자본주의 범주에 속하는 사회라고 하여 한국의 정권을 고전적인 나라의 부르조아정권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권 일각에서는 한국정권이 노자사이의 불상용적인 계급적 모순과 치열한 계급투쟁에 의해 생겨난 것처럼 주장하면서 예속적 동맹권력으로 그 지위를 격상시키고 있다. 이것은 종래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급투쟁이론을 한국의 정권해석에 기계적으로 적용한데서 비롯된 이론적 착오이다. 바로 그들은 자기 주장의 근거로서 ≪국가는 계급들의 충돌로 발생하였으며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박하기 위한 기구이며 한 계급이 자기의 예속된 계급을 복종시키기 위한 기구이다≫라고 한 고전가들의 명제를 가지고 뒷받침하고 있다.

역사상 국가들의 출현과정을 놓고 볼 때 그것이 대립되는 계급들의 충돌과정에 발생하였고, 국가의 본질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박하고 복종시키기 위한 기구인 것은 엄연한 진리이고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상에 출현한 전형적인 노예소유제 국가, 봉건 국가, 자본주의국가들을 분석하고 정식화한 것이며 한국과 같은 식민지 예속국가들의 특징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로 말하면 한국과 같은 유럽의 식민지국가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마르크스-레닌주의 고전가들의 국가에 관한 정식화는 현대적 국가들의 신식민주의적 대리정권의 발생요인과 그 본질, 자본기능을 원리적으로 밝힌 명제는 아니다.

따라서 한국정권의 발생과정과 그 본질은 오직 주체적 시각에서 분석해보면 계급적 충돌의 산물이 아니라 무엇보다 미국지배층의 대한 식민지예속화정책의 산물이다. 남한에서 군정통치로부터 식민지 대리정권의 창출에 의한 식민지통치에로의 이행은 계급적 대립을 초극해야 할 절박성에서보다도 식민지예속화정책의 효율적 실현을 위한 요구로부터 미국이 그 형식과 방법을 변경시킨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정권의 사명과 기능은 물론 한국에서 노, 농계급의 계급적 반항을 진압하고 예속자본가와 지주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데도 있었지만 기본은 민족해방투쟁을 진압하며 미국의 군사기지화정책구상을 실현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정권은 운동권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속적 자본주의의 지배계급인 독점자본가의 지배도구로서의 성격이 기본인 것이 아니라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과 점령정책의 하수인으로서의 성격과 기능이 기본인 것이다. 이 같은 정권의 변칙성은 한국에서 예속자본이 성장한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정권의 변칙성은 미제의 식민지 통치가 지속되는 한 달라질 수 없다.

정치분야에서의 한국자본주의의 변칙성은 둘째, 한국정권의 권력구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권력구조는 그 권력이 어떤 세력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 어떤 기능적 역학을 수행하는 정치체제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골격구조를 다 갖추지 못하면 불구가 되는 것처럼 자본주의도 자기의 고유한 권력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병신자본주의로밖에 될 수 없다.

발전된 정상적인 자본주의나라들의 권력구조는 독점자본가들을 사회계급적 세력으로 하고 그들의 대변자들로 권력이 구성되고 있으며 따라서 독점자본과 국가권력은 하나로 유착된 정치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의 발전된 형태인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대독점들이 부르조아국가기구를 자기에게 완전히 종속시키고 장악하고 있다. 대독점들은 대통령을 포함한 통치자들을 자기들의 이익의 대변자로 전환시키거나 혹은 그들 자신이 부르조아국가의 요직을 차지한다. 그리하여 어제의 대금융자본가가 오늘의 장관으로 되고 오늘의 장관이 내일에는 독점회사 사장, 중역 등 대리인으로 된다. 나아가서 대독점들은 저들의 공동의 이익과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연합기구를 조직하고 그것을 통해 나라의 정치생활 전반을 지배한다. 오늘 미국에서는 전국제조업자협회, 일본에서는 경제단체연합회, 영국에서는 산업연방으로 불리우는 연합기구들을 결성하고 정부의 고위인물들을 선택 임명하고 있으며, 이들로 하여금 자기의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권력구조는 이와는 대조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한국을 강점한 미제는 처음부터 한국을 식민지군사기지로 장악하는데 유리하게 정치와 경제분야에서 저들의 주구세력을 키워왔다. 미제의 이 같은 식민지세력기반구축정책에 따라 경제분야에서는 예속자본가들이 미국의 식민지약탈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줄 경제적 앞잡이세력으로 자라나게 되고 정치분야에서는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민족반역자들과 군사파쑈분자들이 미제의 대리정권에서 하수인 노릇을 할 정치적 주구세력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두 세력은 다 미제에게 수직적으로 종속된 세력이지 수평적으로 결합된 세력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권력구조는 처음부터 독점자본과 국가권력이 하나로 결합된 정상적인 자본주의나라들의 권력구조와는 달리 미제의 식민지통치권을 정점으로 하고 그의 하수인 세력으로 파쑈집권배들과 예속독점자본가들이 수직적으로 종속되어 미국에 충실히 봉사하는 정치형태로서 이루어져 있다. 다라서 한국에서는 예속독점자본가들이 정권을 쥐고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권력을 좌우하고 있으며 파쑈집권세력과 매판독점세력은 그의 팔다리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한국정권의 이 같은 구조적인 식민지적 체제를 깊이 투시해보지 못하고, 한국의 권력을 미국의 식민지 지배권이 아니라 예속독점자본의 권력으로 보면서 국민국가의 실체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그 근거로서 한국정권의 조직화된 파쑈폭력체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정권이 막강한 파쑈폭력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하여 그 자체가 국민국가로서의 실체 근거로는 될 수 없다. 그것은 고도로 조직화된 파쑈폭력체제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봉사하는가 하는 복무성에 의해 그 성격이 규정되어 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파시즘은 그 자체가 자생적 파시즘이 아니라 미제에 의해 미제의 침략적 요구에 따라 선택된 외인적인 파시즘이고 미제의 힘에 의거하고 있는 예속적인 파시즘이며 미국에 의해 조정되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 복무하는 하청파시즘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주가 마름에게 작인들을 억압 착취하기 위해 부여하는 권리이지 양자관계의 본질을 이루는 주종적 성격에서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파쑈폭력체제가 실재한다고 하여 국가권력구조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미제의 지배권이 예속자본가계급의 권력으로 변경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미제의 지배권이 예속자본가계급의 권력으로 변경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미제의 지배권이 강화되는 것을 의미할 분이다.

정치분야에서 한국자본주의의 변칙성은 세째로, 정치의 내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치는 계급 또는 사회공동의 이익에 맞게 사람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직하고 지휘하는 사회적 기능인만큼 정치의 본질적 내용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정치적 지배권이 행사되는가 하는 정치의 목적과 역할의 두 측면을 포용하고 있다.

우선 정치의 목적에서 한국정권은 정상적인 자본주의나라 정권들과 본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권력이 한줌도 못되는 독점자본가들에게 장악되어 있는 자본주의나라 정권들의 정치란 철저히 독점자본가들의 이익에 모든 것을 복종시켜 나가는 것을 기본사명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실권이 미제에게 있는 한국에서의 정치는 미제의 침략적이며 약탈적인 요구를 최우선적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모든 것이 복종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정권도 예속자본가들을 비롯한 착취계급의 이해관계도 반영하고 그것을 실현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제의 식민지통치의 사회계급적 경제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것이지 자기 정권의 본질적 속성으로부터 나오는 자율적인 정책발현이 아니다. 한국정권은 미국의 식민지 대리정권인 만큼 일차적으로 자국내 착취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과 침략적 요구를 충분히 실현하는 것을 기본사명으로 하고 있으며 또 그 기능하에서만 자기의 원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정권의 역할도 정상적인 자본주의나라들과는 다르게 규정되고 있다. 정치의 역할은 주체적으로 정권의 기능을 통해 표현된다. 한국의 정권은 한국민을 미제의 식민지통치에 얽어매놓고 그들의 반항을 탄압하는 진압의 기능과 함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미국의 식민지지배정책을 집행하는 도구적 기능을 주되는 기능으로 하고 있다. 매판자본과 지주들의 이익을 옹호실현하는 착취계급의 수단으로서의 기능도 여기에 종속된 기능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정권은 매판자본에 대해서는 특혜를 베풀고 있지만 민족자본에 대해서는 박해를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운동권 사람들 중에서 한국의 반동권력이 일차적으로 한국의 예속독점자본가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한국권력의 매개체적 기능과 현실에 대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매판정권이 매판재벌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은 당위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매판정권은 한국매판재벌의 정권이 아니라 미국독점자본의 매판정권인 것만큼 일차적으로는 미국독점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지 한국매판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는 고유한 의미에서 매판재벌의 주도하에 매판정권의 활동이 매판재벌의 이익에 복종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매판정권의 주도하에 매판자본의 운명과 경제활동이 좌우되고 있다.

정치분야에서 한국자본주의의 변칙성은 네째로, 정권교체에서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정상적인 자본주의나라들의 정권은 독점자본가들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따라 이들의 손에 의해 정규적인 방법으로 교체되지만 한국에서의 정권교체는 미국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저촉되고 미국의 비위에 거슬릴 때마다 미국의 손에 위해 교체되고 있다.

이같이 사회정치생활의 측면에서 투시해 보더라도 한국은 정상적인 자본주의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② 경제분야에서의 변칙성

한국사회가 자본주의로서 가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성질은 경제분야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자본주의경제제도는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고용과 피고용, 착취와 피착취, 지배와 복종관계를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제관계의 가장 공고한 체계이며 질서이다. 다시 말해서 생산수단과 권력을 독차지한 지배계급인 독점자본가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모든 생산관계가 복종되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질서와 체계가 바로 자본주의경제제도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경제체제는 노자간의 계급관계를 주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본질상 미국의 식민지예속경제이기 때문에 경제체제는 노자간의 2대 계급관계가 주축이 되어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적 구조와 체모를 똑똑히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여기에서는 온전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가지 비정상적인 성질들이 표출되고 있다.

경제분야에서 한국자본주의의 변칙성은 첫째로, 경제체제의 체질적인 대미예속성에서 나타나고 있다.

온전한 자본주의나라 경제체제는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여 하나의 독자적인 자본주의적 경제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체질적으로 미국경제의 부속물로 편입된 대미종속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우선 한국경제는 경제명맥을 미국독점자본에게 장악당하고 있다. 자본주의경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하여 고용노동을 착취하는 경제제도이다.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는 생산과정에서 맺어지는 사람들의 관계와 생산물에 대한 분배권을 비롯한 생산관계의 모든 측면을 규정하는 기초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명맥을 누가 쥐고 있는가 하는 것은 온전한 자본주의와 비정상적인 자본주의를 가르는 경제적 시금석이 된다.

온전한 자본주의나라들의 경우를 놓고 보면은 자국내 독점자본이 기본생산수단을 독점함으로써 생산, 분배, 소비 등 나라의 경제생활 전반을 지배장악하면서 자기들의 잉여가치 증식에 복종시켜 나가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경제명맥은 미국독점자본을 비롯한 외국독점자본은 기본생산부문을 거의 완전히 지배함으로써 생산과 분배, 유통과 소비의 경제 전반을 지배통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경제체제는 하나의 독자적인 자본주의경제체제가 아니라 식민지 경제체제에 기반하는 변칙적인 자본주의 경제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로부터 한국경제관계에서 자본주의관계는 식민지관계에 종속된 하위개념을 이루고 있다.

또한 한국경제는 체질상 자본주의적 국민경제로서의 허구적 체모도 갖추지 못한 미국의 완전한 군사적 부속경제로 편성되고 있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는 모든 경제활동이 자국내 독점자본의 이익에 따라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편파적이기는 하나 국가를 단위로 하나의 독자적인 자본주의적 국민경제가 편성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모든 경제활동이 외세인 미제의 식민지 군사기지화 정책에 복종됨으로써 미제의 군사전략적 수효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편성되어 있다.

현실이 실증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공업구조전반이 미국의 군사전략적 수효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편성하고 국민총생산액의 많은 몫이 직접, 간접적 군사비로 방출되고 국민경제와는 거리가 먼 미국의 군사적 기동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사회간접부문이 일면적으로 확대됨으로써 경제전반이 미국의 군사적 부속물로 화하게 되었다. 물론 경제의 군사화 경향성은 제국주의나라들에서 하나의 일반적 현상으로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경제의 군사적 부속물화와 자본주의나라들에서의 경제의 군사화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나라들에서 경제의 군사화는 자국독점자본의 해외진출을 위한 침략적 요구에 맞게 자율적으로 진행되지만 식민지 한국에서는 경제의 군사적 부속물화는 미제의 침략적 목적에 따라 그의 전략적 약점을 보충하기 위한 종주국 경제군사화의 연장으로 미제에 의해 계획되고 타율적으로 강행됨으로써 국민경제를 파탄시키는 근본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분야에서 한국자본주의의 변칙성은 둘째로, 민족산업의 파산과 경제의 기형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상적인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자본주의 경제관계는 자국내 독점자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나라들에서 경제관계의 확대과정은 곧 자국내 독점자본이 국가독점으로 비대화되고 경제구조가 국가적 독점형태의 재생산구조로 한결 확대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식민지경제는 어디까지나 종주국에 편입된 경제이기 때문에 이 나라들에서 경제관계의 확대과정은 외래독점자본과 그에 붙어 기생하는 매판자본이 비대해지고 민족자본이 위축되며 그에 따라 경제구조가 더욱 기형화, 불구화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경제의 식민지적 체질성으로부터 정상적인 자본주의나라들과는 대조적으로 매판자본이 비대해지고 민족자본이 파산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극대화되고 있다. 한국에서 매판자본과 정상적인 나라들에서 독점자본은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에서의 독점자본은 자본주의경제관계의 자율적인 발전과정에 개별적 자본이 생산과 자본의 집적, 집중의 결과로 해당부문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 자본의 한 형태로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내 토착자본이다. 그러나 매판자본은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에서 외래독점자본의 침투로 경제의 자율적 발전이 억제된 상황에서 토착자본의 일부가 종주국 독점자본의 앞잡이 자본, 현지대리인 자본으로 변상(變相)된 그의 하청적 지위에 있는 자본으로서 그것은 민족자본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의 매판자본은 정상적인 이윤동기에 의한 생산활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비호, 육성정책과 특혜조치로 생겨나 그의 과잉자본과 잉여상품을 끌어들여 실현시켜주고 국내의 원료자원을 약탈하여 외래독점자본에게 헐값으로 공급하며 미군의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매국배족적 자본이다.

오늘 한국에서는 외래독점자본에 붙어서 기생하는 이 같은 매국배족적인 매판자본이 비대해 질대로 비대해져 생산액에서 국민총생산의 60%이상, 제조업생산액의 68%, 건설업 생산액의 97%를 점하게 되었으며 독과점적 형태까지 띄게 되었다. 그런데 매판자본의 이 같은 독점화과정은 자율적으로가 아니라 미, 일 독점자본의 본격적인 침투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것은 외래자본에 의한 대미예속성의 심화를 동반하게 되고 국민경제의 예속화, 기형화를 가속화시켰다. 예컨대 1959년에서 1980년 사이에 미국의 한국에 투자한 총 113억 7천만달러의 산업차관 중에서 97%가 매판자본에게 차려졌다. 그 혜택으로 매판자본은 더욱 급속히 비대해져 독점의 형태까지 띠게 되었으나 미국독점자본에 직접 얽매이게 되었으며 한국경제는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고 대외의존형, 수출주도형의 하청경제로 전락되게 되었다. 현실이 입증하는 것처럼 매판자본의 비대화와 독과점화는 일부 운동권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탈매판화, 탈예속화나 민족자본으로서의 전생과 국민경제의 실제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매판성의 극대화, 예속화의 체질화와 한국경제의 식민지성, 기형성의 심화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매판자본이 비대해지는 반면에 민족자본은 파산의 일로를 걷고 있다. 원래 민족자본은 식민지 나라들에서 외래독점자본의 앞잡이로 전락된 매판자본과 구별하기 위한 고유한 개념으로서 민족경제 발전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토착자본을 말한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자본주의나라들에서 자본가 기업들간의 자유경쟁과 독점형성과정에 나타나는 기업파산은 하나의 토착자본내에서 벌어지는 독과점적 현상으로서 총체적인 민족자본 구성에서는 변화가 없지만 식민지 한국에서 민족자본의 파산은 자본의 이질적인 전생으로서 민족경제의 파탄을 의미한다.

또한 전근대적인 자본주의공업이 정상적으로 발전된 나라들에서는 대체로 전통적인 중소기업들이 대규모 공업부문에 부속품과 소재들을 전문적으로 생산 보장하는 하청기업으로 계열화되어 자기 존재를 유지하면서 그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넓은 토대부문을 이루고 있으나 식민지 한국에서는 민족자본이 외래독점자본과 매판자본의 이해관계에 저촉되기 때문에 그들의 압박과 횡포속에서 간신히 중소기업으로 존재하면서 항상 파산 몰락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중소기업은 종업원수와 생산액에서 60년에 비해 84년에는 78.1%에서 55.5%로, 66.3%에서 33.9%로 각각 대폭 감소되고 기업 총수에서 종업원 다섯 내지 아홉 명까지의 영세기업이 50%, 50명 미만의 기업체 수가 82%를 차지하는 영세기업으로 전락되고 있다. 그리고 자금 실태를 보면 기업체당 근 2억원의 빚을 지고 있으며 경영실태를 보면 가동률이 79년의 70%로부터 60%로 떨어지고 조업단축, 휴업, 폐업 건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외국자본에 빌붙어 기생하는 매판자본이 비대화되고 반대로 민족산업을 이루는 민족자본이 파산됨으로써 하나의 완결된 재생산구조를 갖추고 있는 발전된 자본주의나라경제구조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경제구조는 심한 기형성과 파행성을 띄고 있다. 원래 식민지경제는 종주국경제에 종속되어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요구에 맞게 재편성되는 것만큼 자율적인 생산구조를 갖출 수 없다. 한국경제는 바로 종주국인 미독점자본의 요구에 맞게 재편성되어 미국경제의 재생산과정에 편입됨으로써 자본주의경제로서의 하나의 완결된 재생산구조를 갖추기 못하고 개개의 재생산고리들이 미국경제에 수직적으로 연결된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이루고 있다.

오늘 한국에서는 공업과 농업간의 심한 불균형으로 경제의 2대 부문간에 유기적 연대가 완전히 파괴되고 그것이 각기 미국의 공업과 농업에 종속된 기형적인 절름발이 경제로 전락되었다. 그뿐 아니라 산업부문에서는 채취공업과 가공공업, 기계공업과 경공업, 내수산업과 수출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군수산업과 민수산업간의 심한 불균형과 편파성으로 인하여 분업적 연계가 완전히 단절된 전형적인 식민지 산업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을 뗄래야 뗄 수 없는 고질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으며 한국경제가 아무리 성장하여도 온전한 자본주의경제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다.

경제분야에서 한국자본주의의 변칙성은 셋째로, 노동대중과 독점세력사이의 적대적 대립이 극도로 첨예화되고 있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사회는 노자간의 적대적 대립관계가 피할 수 없는 불상용적 모순으로 되고 있다. 생산수단과 권력을 움켜쥐고 노동대중의 피땀을 짜내는 자본가계급과 아무 것도 없이 착취와 억압만을 강요당해야 하는 노동자계급간의 관계는 한국에서 그 어느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볼 수 없는 극한적인 첨예한 양상을 띄고 있다. 그 요인의 하나는 한국경제의 식민지성과 기형성으로부터 노동대중의 취업조건, 생활조건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데 있다.

우선 한국에서는 민족경제의 파산과 경제의 기형성으로 인하여 방대한 노동인구가 취업의 길을 잃고 실업대중으로 존재하고 있다. 오늘 한국에서 실업자, 반실업자는 무려 1백만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한국의 노동대중은 한국사회의 식민지성과 반자본주의성으로 인하여 이중삼중의 착취와 압박을 강요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영에서의 전근대적 성격과 현대적 방법의 유착으로 인하여 가장 가혹한 노예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외래독점과 매판자본은 한국에 존재하는 실업대군의 조건을 이용하여 각종 악독한 고용제도를 적용하는 방법으로 고용노동자들을 착취하면서 식민지 초과이윤을 짜내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 한국의 노동자들은 전체 기업의 99%가 기계설비와 구축물에 필요한 안전시설이 방치되고 초보적인 노동보호대책과 위생시설도 없는 노동현장에서 전근대적인 십장제와 감독제에 현대적인 고가성적제와 예정기간표준제가 결합된 악독한 노동관리제에 묶여 하루 평균 9시간 내지 16시간의 노예노동을 강요당하고도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기아임금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노동대중의 이같은 비참한 사회적 생활적 처지는 그들로 하여금 생존의 권리와 자유를 찾기 위해 생사를 판가름하는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이것으로 인하여 오늘 한국에서 노동운동은 그 어느 자본주의나라들에서도 볼 수 없는 격렬성과 첨예성을 띄고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경제분야에서 한국자본주의의 변칙성은 네째로, 농업에서 봉건적인 생산관계가 그대로 존속하고 미국의 잉여농축산물의 수입으로 농촌이 황폐화되고 있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온전한 자본주의사회로 되자면은 경제분야에서 농업까지를 포함하여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유일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산업분야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수립되었다 하여도 농업이 봉건적인 생산관계에 얽매여 있다면 그 사회는 벌써 온전한 자본주의사회가 아니라 반신불수의 자본주의로밖에 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산업분야가 변칙적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농업분야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봉건적 생산관계에 결박되어 있다.

우선 한국에서는 미제의 식민지 농업정책으로 낙후된 지주소작제도가 그대로 온존되고 있다. 물론 기만적인 농지개혁으로 대지주제는 기본적으로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 대신 중소지주제가 재생 부활되었다. 지주소작관계는 농지개혁 직후부터 재생되기 시작하여 총농가와 총경지에서 소작농가 및 소작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1960년에는 각각 26.4%와 11.9%, 1970년에는 33.5%와 17.2%, 85년에는 64.7%와 30.5%, 90년에는 64.7%와 45%로 증대되었다. 그리고 소작료 납부형태와 소작료율도 역시 일제시대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전근대적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다. 최근에 집계된 자료에 위하더라도 소작료 납부형태에서 분납과 현물납의 비율은 13% : 82.0%로 되고 있으며 소작료율은 44.7%에 이르고 있다.

한국농촌에서는 또한 전근대적인 과소농경영이 지배적인 것으로 되어 있어 농촌의 자본주의적 분해과정을 제약하고 있다. 1981년 현재 농가 호당 경지면적은 1.07ha, 농업취업자 1인당 경지면적은 0.4ha 정도에 불과하고 경작지 규모별 농가호수 비율을 보아도 전체농가의 31.3%가 0.5ha이하의 농토를, 36.2%가 0.5∼1.0ha 농토를 경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농업의 기계화, 근대화를 실현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적 경제관계의 확산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농업은 전근대적인 봉건적 생산관계로 생산력 발전이 억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국잉여농축산물의 대량방류로 완전히 황폐화되고 있다. 미국잉여농축산물에 의해 적자농사화 하게 된 한국의 농촌에서는 농업의 기본생산수단인 경지면적이 1967년부터 1985년까지의 사이에 16만 7천 정보나 축소되고 농촌인구는 최근에 연평균 40∼50만씩 줄어들고 있으며 농가호당 부채는 300만원에 달하게 되었다.

농촌에서 낙후된 봉건적인 생산관계의 온존과 미국잉여농축산물의 수입으로 인한 한국농업의 영세화, 황폐화는 민족경제의 한쪽 다리를 불구로 만들어 놓고 있을 뿐 아니라 민족산업의 확대발전을 위한 자본축적과 원료의 보장을 크게 저해함으로써 경제전반에서 자본주의변칙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오늘 한국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경제구조의 체질적인 예속성과 기형성, 대중생활의 극빈성과 노동운동의 치열성, 농촌경리의 전근대성과 황폐화는 한국자본주의경제가 가지고 있는 변칙적이고 비정상적인 속성의 집중적 표현으로서 그것은 미제식민지통치가 가져온 또 하나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③ 군사분야에서의 변칙성

자기를 옹호보위하는 것은 인간의 자주적 본성이다. 그것은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는 나라와 민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든지 자주적인 국방력을 가지지 못한 사회는 사실상 하나의 완성된 사회구조와 기능을 가진 정상적인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한국자본주의는 미제에게 군사적 자주권과 방위력을 통째로 빼앗김으로써 하나의 완결된 사회로서의 구조와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로부터 한국사회는 정상적인 다른 자본주의나라들의 군사분야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가지 변칙적인 성질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구상에 국가가 출현하고 국경이 그어진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 자기 나라, 자기 국경을 지키기 위한 자기의 방위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더욱이 약육강식의 법칙이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국가들 관계에서까지 지배적인 관계로 작용하게 된 제국주의 단계에 와서 자기 나라 독점자본의 이권을 지키고 그의 해외진출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군사력은 필요불가결의 중핵적 요소로 되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나라들 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군사력 증강에 힘을 넣지 않는 나라가 없고 자기 손에 군사적 자주권과 방위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가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미 전술한 것처럼 미군병영에서 미군보충무력으로 생겨나고, 미국에 의해 징발되고 훈련되고, 미국의 군사적 지휘권에 따라 움직이고, 미국의 전략수행에서 하나의 대포알로 복무하는 용병밖에 없다.

지금 이 엄연한 현실을 가리기 위해 미국은 지금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군통수권의 부분적 이양에 대해 운운하고 한국위정자들은 이것을 기회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갖춤새와 기능에서 그 무슨 큰 변화라도 생길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상 우리 민중의 고양된 반미투쟁기세와 내외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군의 작전지휘체계가 철두철미 미제의 군사전략과 지휘체계안에 편입되어 있고 국군의 군사장비가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한 한국군의 고용성과 한국자본주의의 군사적 불구화에서는 그 어떤 본질적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④ 변칙성에 대한 종합진단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 경제, 군사 등 사회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표출되고 있는 한국자본주의의 변칙성들에 대해 고찰했다. 이같은 변칙성들은 서로 떨어져서 따로따로 존재하거나 상호 아무런 관련이 없이 별개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미제의 식민지 통치체제에 근원을 두고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되어 존재하면서 한국사회의 본질적 특징의 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계급적 견지에서 한국사회성격을 밝히려면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본주의 변칙성들을 어느 한 측면만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고립적으로가 아니라 통일적인 연관속에서 고찰한데 기초하여 종합적인 진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운동권과 학계의 일부 사람들은 사회의 어느 한 부문 특히 경제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제의 독점화 현상 하나만 고립적으로 보고 사회성격을 밝히려 하고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사회구분방법론을 교조적으로 적용한 것으로서 한국사회성격을 해명하는 데서는 맞을 수 없다.

그것은 우선 마르크스와 레닌이 자기의 이론을 내놓을 때 그 기초로 삼았던 사회역사적 조건과 오늘의 한국의 현실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시기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생산양식의 운동법칙을 규정할 때 일반화의 대상으로 삼았던 현실적 사회는 오늘의 한국과 같이 식민지성에 의해 모든 사회관계가 제약되고 있는 식민지 예속국이 아니라 자본주의생산양식이 전일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유럽의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이었다. 이것을 고려함이 없이 정상적인 자본주의를 분석하여 나온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을 식민지 예속국인 한국사회에 교조적으로 적용한다면 불가피하게 한국에서의 매판자본의 독점화 현상을 발전된 고전적인 자본주의나라들에서의 독점체 형성과정과 동일시하게 되고 따라서 식민지 한국을 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로까지 격상시키게 되는 커다란 이론적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또한 마르크스와 레닌이 내놓은 경제방법론 자체가 한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물론 사회생활의 물질적 기초로서 사회성격규정에서 중요한 분야의 하나이다. 그러나 경제 역시 사람들이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람들의 생활의 한 분야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또한 사람들이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사람들의 생활의 한 분야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또한 정치권력에 의해 제약받고 있는 만큼 경제부문 하나만 가지고서는 사회성격을 충분히 해명할 수 없다. 더욱이 정상적인 궤도를 따라 형성되고 발전되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외래침략세력에 의해 변칙적으로 생겨나고 외래독점체들의 지배와 통제밑에서 극히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한국과 같은 비정상적인 자본주의사회에서 매판자본의 독점화 현상이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복잡한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안고 본질적으로 대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성격을 경제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이한 개별적 현상에 국한시켜 해명하려는 것은 옳은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

민중의 자주성 문제를 중심에 놓고 사회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자본주의의 변칙성들을 불가분리적인 연관속에서 하나로 통일시켜 고찰해보면 한국자본주의는 사회구조 전반이 미제에 의해 지휘조정되고 사회생활 전반이 미제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완전히 예속화, 식민지화된 자본주의이며 자본의 운동법칙이 식민지성에 의해 극히 변칙적으로 불균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철저히 기형화되고 불구화된 자본주의사회이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성격을 계급관계의 견지에서 본다면 예속적이고 기형적인 자본주의사회, 한마디로 말하여 반자본주의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반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반자본주의사회란 남의 손에 명줄이 쥐어져 있어 자본주의로서의 자기 구조와 형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예속적인 자본주의, 남의 힘에 의거하여 끌려가는 기형적인 자본주의, 절뚝거리며 끌려갈수록 더욱 예속화 기형화되는 온전치 못한 자본주의 예컨데 반신불수의 자본주의이다. 반자본주의란 이같은 자본주의인데 반신불수의 병신자본주의인 만큼 그것을 이해하는 데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가지 편향을 극복해야 한다.

첫째 편향은 반자본주의 성격을 봉건과 자본주의가 절반씩 혼합되어 있는 절충적인 사회로 보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부 사회성격규정에서 논의되는 것을 보면 적지 않게 이 같은 입장에 서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변칙성에 중점에 두고 한국자본주의의 성격을 밝히려는 것보다 주로 자본주의와 봉건관계의 양적인 비율을 놓고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논증하는데 치우쳤다고 보아진다. 물론 봉건관계에 비해 자본주의관계가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할 때 반자의 개념을 차치하고 자본주의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전제가 조성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비중관계만 놓고 봉건관계가 지배적일 때에는 반봉건사회라고 부르고 자본주의관계가 지배적일 때에는 반자본주의사회라고 부른다면 그 자체의 본질적 특성을 밝힐 수 없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자본주의 관계의 비중이 커진다면 반자본주의사회는 다시 자본주의사회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인식상 착오가 아닐 수 없다. 반봉건사회나 반자본주의사회는 다 식민지사회에 있게 되는 식민지사회의 한 형태로서 그것은 고전적인 봉건사회나 자본주의사회와 구별하기 위한 개념다. 반자본주의란 개념은 그 어떤 양적 규정이 아니라 바로 질적 규정이다. 그것은 봉건관계와 비교해 자본주의관계가 지배적이라는데 이론적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예속화정책에 의해 생겨난 자본주의가 예속적이며 기형적인 반신불수의 자본주의라는데 이론적 기초를 두고 있다.

둘째 편향은 반자본주의 성격을 봉건사회로부터 자본주의에로 넘어가는 그 어떤 중간단계에 있는 과도적 사회로 인식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단계론적 고찰로서 반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될 수 없다. 한국자본주의는 봉건으로부터 자본주의에로 넘어가는 과도적 단계에 있는 미성숙된 자본주의, 따라서 앞으로 온전한 자본주의로 완성될 수 있는 자본주의인 것이 아니라 원래 생겨날 때부터 불구화, 기형화된 자본주의로 생겨났고 그것이 앞으로 성장한다고 하여도 반신불수의 병신자본주의 밖에 될 수 없는 사회인 것이다.

(3) 한국사회의 식민지성과 반자본주의성과의 상호관계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사회는 민족적 대립관계의 견지에서 조명해보면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사회이고 계급적 견지에서 투시해보면 반신불수의 반자본주의사회이다.

총체적으로 보아 한국사회는 가장 악랄하고도 교활한 미제의 식민지통치에 의해 민족적 자주권이 여지없이 유린당하고있는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사회이며 극히 변칙적이고 악성적인 자본주의적 착취방식에 의해 노동자, 농민 등 광범한 근로대중의 자주성이 계급적으로 혹독하게 구속되고 있는 반자본주의사회이다. 재언하면 한국은 식민지 성격과 반자본주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이다.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로서의 한국사회성격을 인식하는 데서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노정되고 있는 것은 한국사회성격을 이루고 있는 두 요소인 식민지 성격과 반자본주의 성격간의 상호관계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오늘 현실적으로 이에 대한 이해부족으로부터 운동권 일각에서는 한국변혁운동의 이론과 전략전술 수립에서 일련의 오류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 한국사회성격을 이해하는 데서 식민지 성격과 반자본주의 성격을 서로 동떨어진 별개의 개념으로 인식해도 안되며 그렇다고 하여 두 요소의 상대적 독자성을 완전히 무시해도 안된다.

만일 식민지 성격과 반자본주의 성격을 서로 동떨어진 별개의 개념으로 인식을 한다면 한국변혁운동에서 민족해방운동과 계급해방운동을 각기 따로따로 수행해야 한다는 이론에 귀착하게 된다. 반대로 식민지 성격과 반자본주의 성격의 상대적 독자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한다면 한국변혁운동의 특성을 무시하고 실천에서 좌우경적 편향을 범하게 된다

한국사회성격은 식민지 성격과 반자본주의 성격이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리적 연관과 통일속에 있으면서도 양자는 상대적 독자성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여 양자는 하나로 결합되어 하나의 사회체제를 이루면서 그의 본질적 특성을 총체적으로 규명하면서도 동전의 양면처럼 각기 민족적 관계와 계급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둘째, 한국사회성격은 본질상 식민지사회이기 때문에 두 성격 가운데에서 본질상 기본 바탕을 이루고 규제적 위치에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식민지 성격이며 반자본주의 성격은 그에 의해 규제되는 부수적 성격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지금 일반자본주의 발전논리에 따라 한국에서의 자본주의성을 자본제생산양식의 보편적 관계로 보고 식민지성을 제국주의체제내에서 재편성된 특수한 형태로 보면서 식민지 성격의 본질적 규정성을 부인하고 자본주의 성격의 규정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들은 이 같은 전도된 논리적 기반에 기초하여 한국사회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라는 그 나름의 왜곡된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자본주의 관계속에서 식민지 관계가 파생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 관계속에서 변칙적인 자본주의가 생겨나게 된 것은 변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실증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로 상태를 달리하게 된 것도 미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식민지 관계속에서 생겨나고 식민지 관계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자본의 운동법칙도 고전적인 자본주의 관계에서와는 다르게 식민지 관계와 귀착되어 변태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 역시 종주국 독점자본의 이익과 요구에 부응하는 한도내에서만 가능하며 그 한계를 마음대로 넘어설 수 없다. 그러므로 설사 매판자본이 아무리 거대화되고 독점적 형태를 띈다해도 그 자본의 매판적 성격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약탈정책의 현지대리인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기에 식민지 한국에서는 독점자본의 물질적 기초인 국가주권이 부재하며, 독점대상기업들과 재생산고리들이 모두 외래독점에 수직적으로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독점자본주의가 형성될 수 없다.

이같이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는 식민지관계에 의해 자본주의 관계가 제약되고 규제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식민지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변칙적 자본주의로서의 반자본주의 속성을 불식할 수 없다.

한국사회의 식민지반자본주의 성격을 한국민중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근본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의 변혁운동은 한국에서 이 같은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관계를 청산하고 우리 민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사회성격을 바로 인식하고 그에 근거하여 과학적인 변혁운동이론 전략전술을 창출해 내야 한다.

 

 

 

 

 

 

 

This counter provided for free from HTMLcounter.com! copyleft © 통일여명 편집국이 문서는 Internet Explorer v5.0을 기준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