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11월 5일(화)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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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장군의 통일전략

김명철 1999 7

통일여명 편집국 해설 / 4-3-7

 

제 4 부 미본토 불바다 : ≪한국≫붕괴의 시나리오

1. 첨단기술 무기중시가 미국의 결정적 패인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은 무기도 기술도 아니고 자기가 하는 위업의 정당성을 자각한 군대와 인민대중의 높은 정치적 열의와 혁명적 헌신성이다.≫(김정일, 1992 3 31)

미국의 첨단기술무기의 신화가 제 발로 걸어 다니기 시작하여 미국에 군사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신화가 만들어 졌다. 이것은 미국이 만들어 낸 의도적 심리전이다. 그러나 신화는 한낱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미군이 첨단기술무기와 장비, 스마트폭탄을 투입하기 시작한 때부터 미국은 멋진 군대구실을 못하고 있다. 도리어 그런 것을 사용함으로써 미군은 이기지 못하는 군대가 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일김일성이 지휘한 항일무장투쟁부터 조선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 유고전쟁을 독자적 관점에서 분석한 끝에 미국의 첨단기술무기나 전자전쟁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의 분석결과에 의하면 미국의 첨단기술무기와 전자전을 뜻밖의 원시적 방법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아래 김정일 10년전에 거기에 대한 대항수단의 개발과 대비를 조선인민군에 명령하였다.

1999년 7월 4일 ≪뉴욕타임스≫는 ≪폭탄은 영리하다. 그러나 사람이 더 영리하다≫는 표제아래 유고공습에 관한 분석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이번 공습교훈중의 하나는 낮은 기술을 가진 대항수단으로써 첨단기술무기나 식별기를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고 지적하였다.

이미 조선인민군은 미군전자전의 약점과 맹점을 철저히 연구하여 유효한 대처방법과 수단을 개발보유하고 있다. 만일 미군이 북조선을 공격하면 미군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김정일식전자전 반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미군은 자신의 첨단기술무기와 전자전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게 되며 아주 흥미 있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다.

이길 수 없게 된 미군 : 조인하는 것은 정전협정뿐

- 지상전에서의 연전연패에 충격

2차 세계대전 후 미군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최대의 특징은 무엇인가. 김정일에 의하면 미군은 이길 수 없는 군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의 이러한 지적은 대단히 정확하다. 누구도 지적하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많은 독자는 ≪무슨 그런 엉터리소리≫하고 웃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사실로 냉정하게 따져 보면 그 지적대로다. 건국이래 2차 세계대전까지 미국은 패전이란 것을 모르고 지나왔다. 2차 대전에서는 나치독일과 제국주의일본에 승리했다. 이때까지가 절정이었다. 미군이 상승군대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전쟁에서의 패퇴가 그후 미군의 행동을 규정≫

1950년 6월 25일에 시작하여 3년 후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한 치열한 조선전쟁에서 미군은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미군은 물량과 장비에서도 북조선측을 압도하고 있었다. 미군에는 불침항공모함이라 불리는 일본이라는 안전한 후방기지가 있었다.

북조선에는 태평양전쟁 때의 일본군과는 달리 전략폭격기도 항공모함도 전함도 순양함도 없었다. 북조선은 주일미군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힘도 없었다. 모든 면에서 북조선은 미국보다 열등했다. 상식적으로 북조선은 경제력과 전력에 있어서 세계≪최강≫의 미군과 맞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일본상공에서는 쉽사리 격추되지 않던, ≪하늘을 나는 요새≫라고 불리는 전략폭격기 ≪B-29≫가 조선상공에서는 툭툭 떨어졌다. 미순양함, 기타 대형함선이 북조선어뢰정에게 격침되고 대파되었다. 지상전에서는 조선인민군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미군은 창군이래 처음으로 포격전, 진지전, 전차전, 백병전에서 압도당해 공포에 떨고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조선의 군대와 국민은 자신들의 항일영웅 김일성의 지휘하에 똘똘 뭉쳐 전우의 시체를 밟고 넘어 극렬한 항전을 계속했다. 지상의 건물이 모두 쓰러져 재더미가 되어도, 논밭이 전쟁판이 되어도, 부모가 형제자매가 자식이 친구가 적에게 살해당했어도 북조선인민은 이악스럽게 싸웠다.

북조선의 험한 기후와 준험한 산들이 북조선국민을 도왔다. 산천은 어떤 의미에서 천연의 요새였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량작전도 대형최신무기도 전략폭격기도 항공모함도 미군에게 승리를 약속해 주지 않았다.

미국은 조선전쟁에 50만 병력을 투입, 3년동안 육해군 해병대를 합해 연 572만을 동원했다. 그 결과 미국측 사망자 5만 4,246명, 부상자 10만 3,284명, 행방불명 8,000이상, 포로 7,000명이상을 내는 미군 역사상 최초의 참패를 당했다. 조선에서 군사재판도 못했고 북조선을 점령하지도 못했다. 미국은 아무 것도 못했다.

조선정전협정에 서명한 다음 미육군 대장 클라크는 성명을 발표, ≪나는 지금 이 시간 내 마음속에 승리를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후에 회고록에서 클라크는 ≪ 승리 없는 휴전에 서명한 사상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는 부러워 할 것 없는 영예를 얻었다.≫고 말했다.(Davidlee, ≪KOREA: The Limited War≫, PP. 432~433, St, Martin`s Press, 1964)

이러한 조선전쟁에서의 참패가 그후 미군의 행동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규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것은 또 ≪푸에블로≫호이래 4차에 걸친 조미군사대결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때부터 미국은 북조선컴플렉스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미군이 주요전쟁마다 이기지 못하고 항상 조인하는 것은 정전협정뿐 상대방의 무조건 항복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베트남전 : 지상전에서의 두번째 패퇴, 정전협정≫

미국은 1956년 인도지나 개입과 1964년 8월 2일 통킹만사건 후 본격적인 군사개입을 개시하여 제2차 베트남전쟁이 시작됐다. 정전이 성립된 것은 1973년 1월 27일이었고 미군의 지원을 받은 남베트남이 무조건 항복한 것은 1975년 4월 30일이었다.

이 전쟁에 투입된 미군병력은 연인원 874만 4천명, 말할 것도 없이 제공권, 제해권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미군병력은 1969년에 54만에 달했다. 미군이 1965~1972년 사이 베트남에 투하한 폭탄은 750만t으로, 실로 2차 세계대전의 3배가 되는 많은 량이었다. 그런데 지상전에서 주도권을 쥔 것은 북베트남군과 해방전선이었다. 패배한 것은 미군이었다. 이 베트남전에 조선인민군이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미국이 자랑하는 전략폭격기 ≪B-52≫를 처음 격추한 것도 북조선조종사였다고 한다. ≪F-4팬톰≫과 공중전을 벌이며 베트남전이 끝날 때까지 북베트남의 공군이 우세를 지키는데 북조선조종사가 큰 역할을 했다.

북조선군인은 북베트남과 해방전선에게 땅굴전법을 지도하고 대공미사일과 고사포를 조작했다. 이렇게 해서 북베트남군과 해방전선군은 지하도처에 설치한 땅굴로 자유로이 이동하여 미지상부대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미군기는 대공포화로 연일 격추 당해 ≪팬톰≫비행기생산이 미처 전선에서 오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투입한 첨단무기는 스마트폭탄이라고 불리는 것이었지만 미군은 패전전국을 바로 잡을 수 없었다. 북베트남측에 이렇다 할 최신무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첨단무기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미군은 사망자 5만 8,135명, 부상자 13만 3,304명, 행방불명 1,500명 이상에 달해 패배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베트남전에서도 미군이 조인한 것은 정전협정뿐이었다. 이 베트남전쟁으로 전쟁의 비참한 광경이 미국영화에 묘사되고 온 세계에 반전운동이 고조됐다. 이 베트남전쟁으로 새삼스레 컴플렉스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미 북조선컴플랙스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전쟁에서 역사상 처음 패전의 쓴 맛을 보았고 베트남에서도 졌기 때문에 미군은 아예 지상전이라면 머리를 흔들게 되었다.

≪걸프전: 속임수였던 첨단무기, 세번째 정전협정≫

이라크에 대한 걸프전은 1991년 1월 17일에 시작하여 지상전은 2월 24일 개시, 3일후 27일에 정전이 성립됐다.

이 전쟁의 발단은 이라크군 10만이 전년 8월 2일 돌연 쿠웨이트를 침입, 점령함으로써 일어났다. 미군측은 다국적군 54만이라는 대군을 집결시키고 레이다망에 잘 안 잡히는 전투폭격기 ≪F-117≫,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야광카메라를 장비한 ≪아파치≫공격헬기 등을 투입했다.

야광카메라를 포함한 이라크군의 첨단무기는 미군에 비해 구식이고 전자전을 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미군은 주로 야간공격을 했다. 이것을 지원하기 위해 ≪조인트 스타즈≫라는 야간에 적과 우군의 배치를 식별할 수 있는 비행기를 투입했다.

이라크가 발사한 ≪스커드≫미사일을 요격했다는 미군미사일≪패트리어트≫도 볼만 했다. 매일 밤낮으로 TV에 방영되는 걸프전의 영상은 마치 TV게임과 다름이 없었다. 그걸 보고 미군의 압승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한달 하다 전쟁을 그만 두었다.

후에 이 첨단무기의 빛나는 전과는 엉터리였고 속임수였음이 판명되었다. ≪패트리어트≫의 ≪스커드≫미사일 격추율은 사실상 제로였다.

이라크가 발사한 이동식≪스커드≫미사일을 미군은 정찰위성이나 정찰기로 발견하지 못하고 한 개도 지상에서 파괴하지 못했다. 미군이 발견하여 파괴했다고 한 것은 모두 이라크군이 적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짜들이었다.

미공군은 ≪토마호크≫와 신형관통(貫通)폭탄 8,000발을 사용했는데 지하에 숨어 있는 이라크군의 피해는 경미했다. 공군도 피해를 면했다. 정확한 수는 공표되지 않았으나 상당수의 ≪토마호크≫가 격추되었다고 한다.

전차전에서도 미군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그래서 미군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진격하지 않고 지상전확대가 무서워 서둘러 정전협정에 서명해 버렸다. 이라크군은 사실상 별 손실없이 그대로 고스란히 남았다. 미군에는 북조선컴플렉스, 지상전컴플렉스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걸프전에서 이겼다는 부시는 대통령에 재선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라크군은 미군과 맞서 철저하게 싸우지 않았는가.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말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의 영향이다. 러시아의 충고는 실컷 맞고 참아라, 미국의 공격을 참아 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이라크군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고 미국은 어물어물 정전협정에 응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이라크군의 전면반격이 아랍전역에 확대되고 러시아도 끌려들어 가 세계전쟁으로 확대될 가 두려워했다.

김정일에 의하면 전쟁을 하려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를 써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러시아는 미국과 전면전쟁을 벌일 기력이 없다. 그저 미국에 대한 열등의식뿐이다.

명중시키지 못한 ≪토마호크≫: 4일간의 대이라크 미사일공격

미국이 가지고 있는 첨단무기의 대표로 알려 진 ≪토마호크≫가 그리 정확하지 않고 실전에는 쓸모가 없음이 분명히 증명된 것이 ≪사막의 여우작전≫이라 불리는 1998년 12월 대이라크 미사일공격이었다. 클린턴의 여성스캔들을 둘러싼 의회탄핵을 얼버무리기 위해 미정부는 1998년 12월 17~20일간 이라크에 대한 장거리미사일공격을 하였다. 공표된 전과가 흥미롭다.

1998년 12월 20일자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이라크 국내 100개 전략목표를 향해 450발의 해상, 공중발사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를 발사하고 ≪F-16≫, ≪F-15≫, ≪F-14≫, ≪F-18≫등으로 650회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파괴한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대이라크공격을 지휘한 미해병대 앤서니 지니대장은 이 지적에 당황하였다. 그는 목표 명중률이 85%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펜타곤이 발표한 전과에 의하면 목표의 43%가 대파 또는 파괴됐다. 다시 말해 완전파괴율은 40%이하라는 이야기다.

미공군이 발사한 미사일이 90발이었으니까 발사된 미사일비용은 해상발사 ≪토마호크≫ 360발 3억 6천만달러, 공중발사분이 1억 8천만달러로 합계 5억 4천만달러였다. 항만지대에 주둔하는 미군부대의 연간비용은 20억달러이다.

유고공폭: 역시 정전협정 조인

- 야간공격, 비닐로 만들어 놓은 가짜비행기, 전차를 미사일로 파괴한 전과

미군의 첨단무기 전자전의 한계를 똑똑히 보여준 것이 1999년의 소위 발칸전쟁(유고공폭)이었다. 그 결과 미군이 얻은 것은 애매한 정전협정뿐이었고 전승축하나 개선퍼레이드도 없었다. 역시 미군은 이기지 못하는 군대이다.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군을 주력으로 하는 나토(NATO)군은 코소보문제를 둘러싸고 유고에 대해 공군기 2,000대이상을 투입하여 1999년 3월 24일~6월 10일까지 78일간에 걸쳐 맹폭을 감행했다. 이 나토(NATO)군 군사개입은 국제법을 완전히 무시한 폭거이다. 코소보문제는 어디까지나 유고 내정문제이다. 알바니아주민이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했다고 해서 나토(NATO)가 공폭지원을 한다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다. 코소보는 역사적으로 보아 알바니아영토가 아니고 그 것을 유고나 세르비아가 일방적으로 병합하여 수십년이상 군사지배를 실시해 온 것도 아니다. 나토(NATO)군의 개입이유는 여기서 논하지 않기로 한다.

≪40억달러의 전비 : 540발의 ≪토마호크≫발사≫

6월 28일자 ≪에이피통신≫에 의하면 미군은 항공기 725기를 동원하고 병사 5,500명을 파견, 5,000명의 예비역을 소집했다고 한다. 미군전비만도 40억달러에 달했다.

2만발에 가까운 각종 신형폭탄을 투하했는데 미군함선에서는 한발에 100만달러짜리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약 450발을 발사했고 한발에 200만달러 하는 공중발사 순항미사일 약 100발을 발사했다. 그 결과 미군이 보유한 ≪토마호크≫가 바닥이 났다.

전쟁전 해군의 ≪토마호크≫ 보유수는 2,000발, 공군은 150발이었다(1999년 3월 31일자 ≪에이피통신≫). 1991년 걸프전때 미해군이 발사한 순항미사일은 288발이었는데 1998년 12월 이라크에 대한 4일간의 미사일공격에서는 해군이 360발이상을 발사하였고 공군은 90발이상을 발사했다.

이것으로 미군은 순항미사일, 스마트폭탄, 항공기보충에 120억달러를 사용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로써 좋아 날뛰는 것이 레이손, 보잉, 록키드사(http://www.nyu/globalbeat/syndicate/Hartung 062399.html) 등 미국의 군수산업이다.

공군의 차세대 순항미사일 ≪삼군 스탠드 오프공격미사일≫발주는 한발에 40만달러로 30억달러에 이른다. 해군발주는 1,353발로 한발에 75만달러, 약 10억달러에 달한다.

≪40%이하의 폭탄투하율 : 첨단기술인데도 야간공격이 주체≫

3만 3,000회이상 출격하면서 폭탄을 투하한 것은 1만 2,500회로 40%도 안되며 첨단기술인데도 주로 야간공격에 의존했다. (1999년 6월 6일자 ≪뉴욕타임스≫) 걸프전에서도 그랬다. 많은 미군기가 악천후 등의 이유로 투하하지 못한 폭탄을 그대로 싣고 와 아드리아해에 버렸다고 한다. 일부 폭탄이 이탈리아어선의 어망에 걸려 발견되기도 했다. 미군측은 발칸반도의 악천후, 특히 구름과 안개비를 든다. 또한 유고군의 방공망과 나토(NATO)내부의 정치문제를 거론하는데, 본질적으로 기왕의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공격할 때 동장군에 직면하여 패퇴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군은 악천후나 야간에도 적의 목표를 탐지, 식별한다는 ≪조인트 스타즈≫나 위성유도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천후 무기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첨단무기라 할 수 없다. 결국 첨단무기라고 하지만 조종사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최종조건이 된다. 눈으로 보고 판단하려면 폭격기는 고도 4,500m이하로 내려 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구식고사포의 사정거리안에 들어온다. 고사포의 탄막만큼 조종사가 무서워하는 것은 없다.

전자전에서 유고군의 레이다망에 걸리지 않게 한다 해도 구식고사포나 대공미사일은 낮이라면 눈으로 보고 충분히 조작할 수 있다.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눈으로 조작하기 힘든 야간공격 시간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래 가지고 무엇이 첨단무기니 전자전이니 할 수 있겠는가. 휴대용대공미사일이 무서워 영화에서도 걸프전 때 탱크킬러로 화제가 된 ≪아파치≫공격헬기의 유고전선투입을 단념했다. 어렵게 알바니아까지 운반해 놓고도 말이다. 정말 철저하지 못하고 돈만 잡아먹는 것이 첨단무기 전자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닐로 만들어 놓은 가짜 미그기, 전차, 대공미사일을 파괴≫

미군과 나토(NATO)군 폭격기가 애써서 발견하여 미사일이나 폭탄으로 공격, 파괴한 미그전투기와 전차, 대공미사일, 교량 등은 유고군이 적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가짜인 경우가 많았다. 공폭으로 전사한 유고병사는 300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 전쟁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왜 가짜라는 것을 몰랐는가. 주로 야간공격을 하였고 고고도(高高度)폭격을 하였기 때문에 구별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말도 안된다. 속이는 쪽보다 속는 쪽이 우습다.

가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비닐이나 합판으로 만든 것.
2. 열을 복사시키기 위해 안에다 물을 넣은 것.
3. 금속제라고 속이기 위해 표면에 금속테프를 붙인 것.
4. 폐기처분한 비행기나 전차.

진짜는 모두 지하나 산림안에 또는 주택가에 감추었다. 지하출입구는 견고하여 벙커바스타 2t급폭탄에도 이겨냈다. 1999년 6월 21일자 영국신문 ≪인디펜던트≫에 의하면 나토(NATO)공폭에도 불구하고 유고군은 그대로 있고 무기나 장비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나토(NATO)군 당국자는 코소보에서 유고군의 수천대의 전차, 장갑차, 병사, 수송차, 대포, 미사일발사대가 유유히 철수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미군이 파괴한 것으로 되어 있는 유고공군 미그전투기 11기는 전쟁이 끝난 후 코소보의 수도 푸리스티나공항의 격납고를 나와 아무 손상도 받지 않은 채 이륙하여 세르비아로 돌아갔다. 그 기지는 미군의 미사일공격을 받았는데도 말이다.(1999년 6월 12일자≪뉴욕타임스≫)

≪빗나가기 잘하는 ≪토마호크≫ : 불가리아대통령관저 근처에 착탄≫

정밀무기로 이름난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는 목표지점에서 1,500km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사한다. 그런데 이 무기의 특징은 코스에서 벗어나기 일쑤라는 것이다. 언젠가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쏜 ≪토마호크≫가 목표에서 훨씬 빗나가 파키스탄에 낙하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일이 유고전에서도 있었다. 1999년 4월 28일 ≪F-16≫이 발사한 미사일이 목표에서 크게 빗나가 유고에서 60km에 위치한 불가리아 수도 쏘피아 대통령관저 근처에 착탄했다. 이 탄두가 핵이었더라면 큰일났을 것이다. 조선에서 전쟁이 발생하여 미군 ≪토마호크≫가 일본 수상관저나 황궁에 떨어진다면? 그것이 핵탄두로, 폭발하여 도쿄가 불바다가 된다면?

≪호위기와 전자전 지원기가 필요한 스텔스기≫

유고에서 분명해진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호위기나 전자전 지원기가 필요 없다는 게 특징으로 강조되던 스텔스폭격기는 여전히 호위기와 전자전지원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스텔스기란 자체에서 전파도 적외선도 발사 안하고 기체의 형상이 적의 레이다파를 위로 반사하든가 기체의 특수소재가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적의 레이다에 비치기 힘들어 스텔스(은밀)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두 그렇게 믿고 있었다.

스텔스기 중 유명한 것은 록키드 마틴 노드롭 그라망사제(製) ≪F-117≫과 ≪B-2≫이다. 이 두 폭격기는 미국 첨단기술과 전자전 기술의 최고봉을 상징한다. 스텔스기의 원형은 록키드사의 블랙버드라 불리는 온통 치탄으로 만든 SR71이었다. 미군기 정비원들은 비행이 불안정한 ≪F-117≫을 Wobbly Goblin(건들거리는 도깨비), 자주 추락사고를 일으키는 ≪B-2≫는 hawn Dart(잔디밭의 다트)라는 별명을 붙였다. 약점을 잘 나타낸 이름이다. 일인승 ≪F-117≫은 한대에 4천 500만달러, 4인승≪B-2≫는 21억달러, 북조선국방예산 삼년분에 해당한다.

유고공습 초기 2월 27일 토요일 ≪F-117≫이 대공미사일에 맞아 격추됐다. 격추한 지대공미사일은 구식SAM3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F-117≫과 ≪B-2≫에는 부랴부랴 록키드 마틴 노드롭 그라망사제 전파방해전문기인 해군전자전기 EA-6B Prowler가 따라 가기로 했다.

스텔스기를 채용하기로 했을 때 미공군은 1991년 적의 레이다를 방해하는 ≪EF-111 Ravens≫를 퇴역시켰다.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미본토 호이트만 공군기지에서 발진하는 ≪B-2≫는 공중급유가 필요하고 출격할 때는 ≪F-15≫, ≪F-16≫등의 호위기가 동행하게 되어 결국 12기 이상의 군용기가 새로 필요하게 됐다. ≪B-2≫의 레이다 흡수소재는 특수정비가 필요하고, 장기비행하면 마모되기 때문에 한시간비행에 25시간 정비가 필요하다.(1999년 6월 24일자 ≪위클리디펜스모니터≫)

≪최신무기의 공급을 거부한 러시아≫

만일 러시아가 최신예대공무기를 유고에 공급했더라면 미군기와 나토(NATO)군기의 상당수가 격추 당했을 것이지만 러시아는 주지 않았다. 유고 육군 라도반 라디노비취 전 부참모총장은 ≪교도통신≫과의 회견에서 러시아가 최신예지대공미사일 S300을 공급했더라면 나토(NATO)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99년 6월 24일자 ≪교도통신≫)

이와 같은 일이 조선전쟁 초에도 발생했었다.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을 조선반도 남단 부산일대로 밀고 내려갔을 때 쏘련은 북조선의 탄약공급요청에 빨리 응하지 않았다. 그때 북조선이 한 발짝만 더 밀고 나갔더라도 ≪한≫미연합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을 텐데.

생각건대 러시아는 미국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다. 러시아는 유고전이 확대되어 미국과 군사대결을 하게 될 가봐 머뭇거렸다. 그래서 걸프전 때와 마찬가지로 유고에 군사지원대신 어정쩡한 정전협정을 제안하여 유고가 수락하도록 했다. 티토급의 지도자였다면 유고는 철저히 항전하여 승리함으로써 미군과 나토(NATO)군에게 쓴잔을 마시게 하였을 것인데.

2. 김정일이 단군조선의 최고 일인자가 되는 이유

김정일은 조국통일을 위해 존재합니다. 조국통일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김정일이 아닙니다.≫(김정일, 1995 7 8)

지금까지 살펴 본 군사전략에 따라 김정일이 단군조선을 통일하고 최고 제일인자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설마 그럴 가 할지 모르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가 올 것이다.

김정일이 싫어 못 견디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북조선의 현 체제가 변하지 않으면 조선은 통일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것들은 모두 언론이 조작한 이미지 때문이다. 섭섭하게 들릴지 몰라도 김정일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나 북조선의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생각이 어찌 되었건 필자의 분석에 의하면 조선반도통일의 주역으로 나서서 그 최고지도자로 등장하는 이는 역시 김정일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문제의 근본원인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미국인 까닭에 김정일의 군사전략이 주효하여 전쟁을 안하고 미국을 굴복시키는 무혈승리가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 예상에 반하여 미국이 북조선과 전면전쟁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가고 북조선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평화협정을 맺고 주≪한≫미군이 무력화, 중립화되는데에 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개≫는 미국 ≪사자≫로부터 이제 더 이상 소용이 없어졌다는 통지를 받고 해고당해 그 존재이유가 없어짐으로써 역사무대에서 퇴출당한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조선문제의 기본대상이 일본이었더라면 김정일의 무혈승리론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정일은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김정일을 도왔다.

국가주석을 한사코 사양한 진의

1998년 9월 5일 북조선은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새로운 헌법을 채택, 신지도부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김정일은 국가주석에 추대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억측과 분석이 있었지만 모두 정답이 못되었다. 그러면 진상은 무엇인가?

헌법초안에는 국가주석에 관한 규정이 있었고 측근뿐만 아니라 당, 군, 정부간부도, 국민도 김정일이 국가주석에 오를 것을 바랐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사양했다. 김정일은 헌법개정위원회가 만든 헌법초안을 보고 국가주석에 관한 규정을 모두 삭제하라고 했다. 그는 (누구도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내 마음도 이해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김영남과 기타 간부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통일은 눈앞에 다가왔다. 수년 안에, 2003년쯤에는 조선은 통일되고 북조선과 남조선은 모두 지방정권이 되고 연방정부가 수립된다. 나는 그 지방정권의 주석은 되지 않겠다. 김일성은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고 건국의 어버이이다. 그는 영원한 주석으로 경모되어야 한다. 그 북조선에는 새로운 주석은 필요 없다. 앞으로 몇년 안에 통일이 되면 지방정권북조선의 대표는 다른 사람이 하면 된다.

나는 미국과의 군사문제인 통일대업을 이루기 위해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해 미국과의 정치군사문제를 해결한다. 조미외교관계도 수립하고 평화협정도 조인한다. 주≪한≫미군은 무력화, 중립화된다. 내가 조선통일의 주역이 되고 통일조선의 최고책임자가 된다. 미국과의 여러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남북교섭을 하면 된다.≫

금후 2~3년 안에 미국은 북조선을 외교승인하고 평화조약도 체결, 평양에는 미대사관이, 워싱턴에는 북조선대사관이 설치될 것이다. 그후 1년쯤 되어서 일본은 북조선과 역사적 청산을 하고 국교를 정상화할 것이다. 그후 1년 안에 ≪한국≫은 자연 붕괴하고 새로운 민주연합정권이 서울에 수립되어 1년안에 북조선과 연방통일을 이룰 것이다. 김정일은 2003년에는 실무적 처리로 남북조선을 통일할 결의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김정일의 이 말을 듣고 김영남을 비롯해서 당, 군, 국가간부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소집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일이 국가주석에 추대되지 않았고, 채택한 헌법을 보고 출석한 대의원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때 김영남이 일어나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국가 최고지도자라고 선언했다. 헌법조문에 없는 김영남의 발언내용을 헌법으로 규정한다는 초법규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헌법상으로도 김정일국방위원회 위원장이 북조선국가의 최고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헌법의 규정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조선로동당 총비서인 김정일이 북조선이라는 국가를 지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는 당이 만든 당의 강령을 실행하는 제도적 기관이다. 조선인민군도 조선로동당이 창건하였고 조선로동당의 강령실현을 무력으로 뒤받침하는 수단이다.

김정일에 의하면 자기의 최대의 관심사는 통일이지, 통일후 조선이 사회주의를 할 것인가 자본주의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때 가서 조선민족이 정할 일이라고 본다.

≪신 지하관광지≫금창리: ≪관람료≫ 3억달러

현재 북조선에는 외화를 벌 수 있는 새로운 관광지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명승지로 세상에 이름난 금강산이고 또 하나는 북조선 두메산골이 있는 금창리 지하땅굴이다. 여기서는 금강산이야기는 그만 두고 금창리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이 금창리를 둘러싼 조미공방전의 전개와 결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금창리는 1998년 8월 17일자 ≪뉴욕타임스≫덕택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하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그 입장료는 자그만치 3억달러이다. 그런 엄청난 입장료를 내고 누가 보러 가겠는가 하겠지만, 미정부는 그 관람료를 전액 지불하기로 약속하고 1999년 5월 20~22일 가서 관람했다.

이런 지하굴을 누가 발견했고, 그런 비싼 관람료를 어떻게 해서 받게 되었는가.

≪고지식한 미군사정찰위성과 국방정보국≫

이 평범한 산골지하굴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미국군사정찰위성인데 그 화상을 분석한 것은 미국정보국이었다. 그 엄청난 관광가치를 알아낸 사람은 미국방정보국장 패트릭 휴즈중장이었다 아마 패트릭 휴즈중장은 김정일의 ≪극비부탁≫을 받고, 미군소유의 초은밀정찰위성을 써서 뭐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듯 언론에 흘렸을 것이다.

미국의 속셈은 어떻게 해서라도 제네바핵합의이행을 피하고 핵합의파탄의 책임을 평양에 전가하여 북조선이 핵합의를 위반했다고 세계에 호소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정보기관은 얼간이었다. 속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니 ≪정말 고지식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술수를 누가 걸었는가. 김정일이다. 그가 걸어 놓은 올가미에 미국정보기관이 걸린 것이다. 그 올가미란 다음과 같다.

1998년 6월 필자는 북조선당국의 초대를 받아 항공편으로 평양에 가서 1주일간 머물렀다. 북조선간부는 ≪선생, 우리는 2003년까지 꼼짝 않고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좀 앞당길 순 없나요.≫하고 질문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2003년이라는 수자는 움직일 수 없지만 그것을 앞당길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을 텐데요.≫하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두 달도 안돼서 금창리지하핵시설의혹이 시작됐다. 그 정지작업은 아마 6월 이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정세추이를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새로운 대미공세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 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조선에 시비를 걸어오게 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몇몇 후보지 중 금창리를 선택했고 조선인민군 간부를 집무실에 불렀다. 미군의 정찰위성이 북조선상공을 통과하는 시간에 금창리에 수천명의 인민군공병을 동원하여 비밀공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하라고 명령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미국정찰위성이 그 광경을 고감도카메라로 촬영하였다. 정찰위성에서 송신된 화상을 분석한 국방정보국의 분석관은 즉시 패트릭 휴즈중장에게 보고하였다. 미국내에서도 가장 이름난 대북조선강경파인 국방정보국장은 손을 치며 좋아했다. ≪이제는 클린턴대통령의 대북조선 유화외교정책을 몰아 세우고 북조선을 때릴 수 있게 됐다.≫무지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미국의 대북조선강경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북조선을 비난하면 할수록, 강경책을 취하면 취할 수록 야단나는 것은 미국정부이지 북조선이 아니다. 오히려 북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북조선의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패트릭 휴즈중장은 ≪뉴욕타임스≫전 도쿄지국장이었던 데이빗 상가기자를 불러 금창리지하시설공사의 화상분석결과를 흘렸다. 그 것이 앞서 말한 기사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일부러 정부가 언론에 흘려 여론이나 관계국의 반응을 살피는 일이 종종 있다. 때로는 같은 정부안에서도 반대파가 상대편에 불리한 정보를 흘리는 때도 있다.

김정일은 나아가 미국의 행동을 견제하는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최초의 조치는 8월 31일 발사한 인공위성, 물론 이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독자적인 정찰위성과 통신용위성을 가지기 위한 시험이었고 장래 인공위성발사사업에 참여할 것을 노린 것이었다. 또 한가지 목적은 미국에 대한 위협이었다. 언제든지 미국본토를 때릴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시위였다.

두번째 조치는 미정부에 거액의 ≪관람료≫를 청구하는 것이었다. ≪관람료≫를 청구한 것은 금창리의 지하시설이 비어 있음을 뜻했고 보여줄 수 있다는 의사표시였다. 9월 10일 북조선 유엔대표부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북조선은 금액을 밝히지 않은 채 관람료를 요구했다. 북조선은 미국팀이 금창리 방문에서 아무 것도 발견 못할 경우 위자료지불을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구체적 액수가 명시된 것은 미국측 교섭자 찰스 카트만이 11월 16~18일 3일간 군용기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였다. 16~17일 2일간 협의했는데 그때 북조선측이 3억달러를 제시하였다.

≪미의회가 설정한 2단계 시한 설정≫

≪뉴욕타임스≫기사에 의하면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는 미의회는 클린턴정권의 대북조선외교를 비난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그 결의안은 대북조선 중유공급자금을 동결한다는 것이다.

미의회 대북조선강경파가 지적한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1. 북조선이 제네바핵합의 후 몇년 안 가서 붕괴한다고 클린턴정권은 예측했는데 북조선은 오히려 강력해졌다.

2. 북조선은 제네바핵합의를 위반한 채 핵무기개발을 단념하지 않고 비밀핵시설에서 핵무기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미의회강경파는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다. 중유자금을 끊어서 야단나는 것은 북조선이 아니고 미정부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중유공급자금지출을 중단할 경우 미정부가 제네바핵합의를 위반하게 된다.

미의회가 채택한 결의안은 단계시한을 설정했다. 최초의 시한은 3월 1일로, 그때까지 클린턴정권은 북조선이 제네바핵합의를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회 앞에서 보증할 수 있으면 중유공급자금 1천 500만달러 지출을 승인한다. 두번째 시한은 6월 1일로, 그때까지 금창리문제에서 일정한 진전을 보이면 나머지 2천만달러지출을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상원이 1998년 9월 2일 결의안 채택, 하원이 9월 17일 채택, 양원협의회에서 합의한 것이 10월 19일이었다. 이리하여 누구나 1999년 3월위기, 6월위기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미군이 북조선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정부의 간접적 대북조선 군사위협 : 5027작전 기사≫

미정부도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단, 직접적이 아니고 간접적으로 말이다. 대북조선공갈은 미정부고관의 발언이 아니고 ≪뉴욕타임스≫전 도쿄지국장 군사문제기자 리처드 할로란의 기사라는 형식이었다. 미정부도 직접 북조선을 위협하는 것은 꺼렸던 모양이다.

그 기사는 소위 5단계 5027작전에 관해 직접 언급하지 않고 ≪한≫미연합군이 평양까지 침공하여 북조선정권을 타도하고 ≪한국≫주도하에 조선반도를 통일한다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내용은 진행형으로 이제부터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를 최초로 게재한 것은 뉴욕대학 전쟁, 평화, 뉴스미디어연구소의 홈페이지로, 11월 14일이었다. 그후 11월 19일자 ≪워싱턴타임스≫에 게재되었다. 거의 같은 내용이 홍콩에서 발행하고 있는 정치경제전문주간지 ≪For Eastern Econ-omic Review≫12월 3일호에 전재되었다. 미의회와 미정부내의 강경파는 이만한 기사면 북조선이 움츠러들 것으로 알았는지 모른다. 흥미 있는 점은 이 기사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러스타임스≫같은 일류 일간지에는 게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본토 워싱턴에 대한 핵사용 선제공격 가능성 시사≫

북조선으로서는 그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북조선에게 최고의 대미 반격재료였다. 북조선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북조선은 극렬한 반격으로 돌아섰다.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복≫에는 보복,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이라는 것이었다.

이전의 입장에서는 표현은 억세도 내용은 추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와 달랐다. 공격목표를 일본과 미국본토, 워싱턴으로 명시했다. 공격수단은 ICBM이고 핵사용도,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1998년 12월 2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성명은 미국도 일본도 공격목표이고 선제공격은 ≪미국만의 독점물이 아니고≫, ≪지구상에서 북조선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날 12월 3일, 국방차관 전창렬이 발표한 성명은 한술 더 뜬 내용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예 미국을 날려 버리겠다.≫고 언명했고, 12월 7~11일 북조선각지에서 열린 반미집회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발언이 있었다. 집회의 연설자들은 ≪조선인민군은 워싱턴, 도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웨쳤다.

이상하게도 미국정부도 일본정부도 이러한 위협에 반발을 하지 않았고 조선인민군의 능력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북조선의 공갈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미군이 북조선을 공격하면 서울만이 아니고 도쿄, 워싱턴, 뉴욕이 불바다가 된다. 상상할 수 없는 생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미정부 수그러지다≫

북조선의 강경반응에 미정부는 수그러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강경발언은 했지만 군사적 대응은 취하지 않았다. 먼저 11월 10일, 미국무성 고관은 제네바협정의 파기도 불사한다고 강하게 나왔다. 북조선은 다음날 경고를 냈다. ≪미측이 핵합의를 파기하겠으면 맘대로 하라. 우리도 파기한다.≫고 ≪조선중앙통신사≫는 지적했다.

11월 11일 대북조선정책을 재평가한다기보다는 의회대책의 최후수단으로 전 국방장관 월리엄 페리가 북조선정책조정관으로 임명됐다. 그의 임무는 북조선의 노여움을 사지 않고 미의회강경파를 알아듣게 하는 정책진언을 대통령에게 하는 일이었다. 대단히 힘든 임무이다. 카트만조선반도 평화담당특사는 11월 19일 문제의 지하시설이 ≪핵관련 활동에 쓸 수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발언했다가 2일후 21일에는 그 것을 수정, ≪확증은 없다≫고 했다.

클린턴은 11월 19~20일에 일본을 방문하고 21~22일에는 ≪한국≫을 방문하였다. 북조선은 중대한 위협이라 지적하면서도 강경책은 내놓지 않았다. 12월 4일, 당시 미태평양군 총사령관 죠세프 브르와해군대장은 북조선과의 대결에 대해 경고했다. ≪북조선은 ≪전갈≫같은 놈이다. ≪전갈≫을 잘못 밟으면 쏜다. 죽어 가면서도 쏜다. 그러고도 또 쏜다.≫

훠리주일미대사는 12월 14일 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지하핵시설 의혹사찰을 계속 거부한다 해도 조미합의가 깨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단히 위험한 사태가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9년 1월 11~14일 월리엄 콘국방장관은 일본을 방문하고 14~16일 서울을 방문하였는데, 13일 일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북조선 선제공격을 부정하고 사실상 3월위기설과 6월위기설을 모두 부정했다. 죠세프 브르와대장도 1월 18일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에서 군사적 위기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 다시 3월위기설과 6월위기설을 부정했다.

≪미국의 북조선대표단 여비부담과 3억달러 식량지원≫

미국은 결국 북조선과 교섭하기로 했다. 그것도 4차에 걸쳐서. 교섭에 드는 일체 여비와 숙박비는 미국측이 부담했다. 북조선측은 김계관외교차관이 수석대표였고 미측은 카트만조선반도 평화담당특사였다.

- 제1차:평양
11월 16~18일
북조선은 3억달러 배관료(拜觀料)요구. 미국거절

- 제2차:뉴욕, 워싱턴
12월 4~11일
12월 4~5일 뉴욕
7~8일 워싱턴
10~11일 뉴욕
북조선 금창리는 국가안전보장상 중요한 군사시설이므로 3억달러지불을 요구
미국은 관람료 지불거부

- 제3차:제네바
1월 16~17일, 23~24일
북조선이 미측방문을 인정할 용의
미국 40만t 식량지원 제시(2억달러상당)

- 제4차:뉴욕
2월 27일~3월 15일
3월 16일 합의 발표

조미합의내용발표. 북조선측이 미국측에 금창리에 대한 만족할만한 Access(방문)를 허용. 미국측은 조미관계개선조치(단수형)를 강구할 것을 약속

성명문에는 사찰이라든가 시찰이라는 표현은 없고 어디까지나 Access로 방문 또는 참관이라는 표현이다.

북조선이 미국측의 복수방문을 인정

미국 60만t(3억달러 상당)의 식량지원을 약속. 20만t은 3월 22일 직접 지원이라는 형식으로 발표. 나머지 40만t은 여름이후 WFP(세계식량계획)의 지원요청에 응한다는 형식으로 제공

금창리방문 : 5월 20일~22일

14명의 미전문가팀이 5월 22일부터 22일까지 지하시설의 내부와 시설주변의 복수 댐, 변전소, 건설관계시설 등을 방문, 비디오와 사진촬영을 하였다.

금창리지하시설은 무혐의로 판정

미국무성은 5월 25일 핵개발의혹이 제기된 금창리지하시설 참관에 관하여 현 시점에서는 무혐의로 북조선이 1994년의 조미핵합의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콘국방장관은 ≪그거 좀 들여다보는데 3억달러니 터무니없이 비싼 값이다.(That`s a pretty expensive peek)≫고 말했다. (1999년 1월 12일자 ≪로이터통신≫) 미정부는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결국 여비, 숙박비도 지불하고 북조선측이 요구하는 3억달러 ≪관람료≫지불에도 응했다.

왜 미국은 보겠다고 달라붙는가! 무시해 버릴 수는 없는가. 거절당하면 더 보고 싶어하는 것이 미국이다. 참 이상하기도 하다.

달아날 데가 없는 ≪사자≫: 잘못하다가는 뉴욕이 불바다

미국≪사자≫는 이제 북조선≪이리≫를 피해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북조선은 ≪하늘을 나는 고슴도치≫, ≪전갈≫이 되었으니까.

미국은 2003년에는 1994년 제네바핵합의에서 약속한대로 경수로 2기를 북조선동해안 신포시근교에 있는 금호에 건설, 테스트운전으로 인도해야 하고 조미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미국측이 아무리 철야공사를 한다 해도 무리다. 북조선은 미국이 2003년의 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치명적 오산≫

미국은 대북조선정책에서 치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오산을 저질렀다.

1. ≪큰 곰≫, ≪용≫이 ≪이리≫와의 동맹을 사실상 휴지화 했기 때문에 북조선 ≪이리≫는 미국 ≪사자≫의 군사적 압력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2. 2세후계자 김정일김일성에 비길만한 정치가, 군사지도자가 아니어서 군부에 기대지 않고는 정권유지를 못할 거다.

3. 2003년이라는 경수로 인도기한을 설정해도 아무 걱정 없다. 쏘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국가가 붕괴한 것처럼 북조선도 몇년안에 스스로 붕괴해 ≪한국≫에 흡수될 것이다.

4. 제네바핵합의 후 1~2년만 중유를 공급하고 KEDO공사착공은 늦추면 된다.

최대의 오산은 김정일에 대해 근본적으로 틀린 인물판단을 내리고 2003년이라는 수자를 명기하고서도 북조선은 붕괴할 것이니 제네바핵합의에 의한 미국측 이행의무는 일체 무시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컴퓨터가 있고 조선말을 읽을 줄 아는 전문가도 여럿 있다. 국제문제가 아시아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대학과 연구소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아시아를, 특히 북조선을 모르고 있었다. 민족의 문화전통 안에 자기의 존재이유와 존엄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도 기꺼이 바치는 가치관을 미국인은 이해 못한다. 미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를 버리고 민족문화를 팽개친 우에 성립한 물질적 가치중심의 나라이다.

그러나 올바른 판단을 한 면도 없지 않다. 북조선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은 옳았다. 그 점에서 미국은 현명했다. 가령 이라크나 유고에 대해 미국이 가한 미사일공격이나 공폭을 실시했다면 일본열도는 불바다가 되고 미본토도 핵공격을 받아 이 지구가 송두리채 없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1. 북조선이 미국의 군사적 압력에 굴복한 것이 아니고 미국이 북조선의 군사적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력을 총동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조선이 전시체제를 펴고 ICBM을 미본토 주요도시를 향해 조준하고 있었다.

2. 김정일김일성보다 월등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군은 김정일이 마음대로 구사하는 수족이라는 것도 판명됐다. 김정일은 군을 대미정치군사문제 해결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3. 북조선은 붕괴하기는커녕 겹치는 자연재해, 식량위기를 극복하고 보다 강력하게 되었다. ≪한국≫은 북조선의 김정일에 의해 그 존재이유를 상실하고 역사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4. 중유공급을 늦추고 KEDO공사를 게을리하다 결과적으로 궁지에 빠질 것은 북조선이 아니고 미국이다. 북조선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미국을 몰아세우고 있다. 제네바핵합의를 자연 소멸시킬 작정이던 미국은 이제 그 이행을 재촉받게 되었다.

결국 미국은 ≪깡패국가≫라는 레텔을 붙이고 그 붕괴를 누구보다도 기다리고 있던 가장 싫은 김정일의 북조선을 향해 교섭을 간청해야 하고 그 대표의 비행기값, 숙박비를 부담하고 엄청난 관람료를 지불하는 꼴이 됐다.

창피를 당한 것은 미정보기관, 특히 국방정보국이고 국장인 패트릭 휴즈중장이었다. 이전 국방장관 월리엄 페리는 클린턴의 친서를 들고 평양으로 날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측이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 : 전쟁이냐 평화냐≫

이른바 ≪금창리지하핵시설의혹≫은 우선 끝냈고, 미정부는 미의회가 설정한 3월 1일과 6월 1일이라는 시간문제도 해결했고 금년의 중유공급문제도 해결됐다. 그렇다고 근본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미국측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분명히 말해 미국측이 마음대로 선택할 길은 남아 있지 않다. 김정일은 미국이 나오는 것을 보아서 대응할 것이다. 미국이 어느 길을 택하든 간에 거기에 미국의 존망이 달려 있다.

◎ 선택1 : 전쟁. 제네바핵합의를 파기하고 선제공격

이 선택의 경우 세갈래로 세분된다.

1. 새로운 지하핵시설의혹을 끄집어 낸 북조선측이 제네바핵합의를 위반했다고 비난하며 핵합의를 파기

2. 인공위성발사를 ICBM발사실험이라고 우기며 제네바핵합의를 파기

3. 북조선측의 비밀핵무기개발과 미사일개발계획이 미국의 사활적 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선제공격 감행

1, 2의 선택은 북조선도 제네바핵합의를 포기하고 공개적으로 핵무장에 나서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북조선은 미측의 선제공격을 예측하고 전시체제를 펴며 미국과 핵전쟁준비를 한다. 북조선이 도리어 주≪한≫미군, 주일미군, 하와이, 괌도의 미군, 미본토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3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북조선이 총력을 다해 미국에 보복공격을 가한다. 그렇게 되면 즉각적으로 핵전쟁이 되어 버린다. ≪한국≫, 일본만이 핵의 참화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다. 미본토 특히 뉴욕과 워싱턴, 시카고는 ICBM의 세례를 입어 불바다가 된다.

수백만, 수천만 미국인이 생지옥을 헤매다 죽어 갈 것이다. 먼저 전멸하는 것은 일본이고 미국이다. 북조선은 핵전쟁준비가 되어 있어 당장 전멸을 안한다. 물론 끝에 가서는 전멸하겠지만.

미국이 발사한 핵탄두를 탑재한 순항미사일이나 ICBM이 목표를 빗나가 중국, 러시아 또는 일본에 착탄할 수도 있다. 중국, 러시아방공사령부는 미국미사일에 대해 Launch on Warning(적의 핵탄이 날아온다는 징조를 보이면 착탄하기 전에 맞받아 아군측에서 발사하는 것 - 역자주)으로 미본토를 향해 ICBM을 발사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20~30분안에 미본토에 미리 조준되어 있던 목표에 도달, 폭발할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은 전면 핵전쟁으로 이렇게 터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때도 조선전쟁때도 없던 원자력발전소가 ≪한국≫에는 12기, 일본에는 51기, 미본토에는 102기가 가동하고 있다. 이 것들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ICBM보다 수백배 더 무서운 것이다.

≪북조선이 보복공격을 하면 체르노빌의 참사가 동시다발할 것이다.≫고 미핵통제연구소 소장 폴 레벤탈이 1994년 2월 3일자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에서 말하고 있다. 가동중인 원자력발전소 1기는 수폭150~180개분의 죽음의 재를 뿌린다. 수폭은 원폭 80~100개에 해당한다. 어디까지나 단순계산이다.

·≪한국≫의 경우
원발 12개 ×수폭 150~180개=수폭 1,800~2,160개분의 죽음의 재

일본의 경우
원발 51개 ×수폭 150~180개=수폭 7,650~9,180개분의 죽음의 재

·미국의 경우
원발 102개 ×수폭 150~180개=수폭 1만 5,300~1만 8,360개분의 죽음의 재

조선반도, 일본, 하와이, 미본토 모두 같은 북반구에 위치, 동일위도상에 있어 죽음의 재가 제트기류를 타고 직통으로 배달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일본해라고 불리는 동해나 태평양해안에는 핵해일이 발생할 것이다.

미정부수뇌부가 옳은 정신을 가진 자들이라면 전쟁을 선택하여 제네바핵합의 파기로 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 선택2: 평화. 북조선을 외교승인. 조미평화조약 조인. 이 선택의 전제조건은 다음 세 가지

1. 제네바핵합의 2003년 조항을 지키지 못할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지금까지의 불이행을 전면적으로 사죄

2. 거기에 대해 만족할만한 정치적, 경제적 보상을 북조선에 제시. 합의사항의 개정을 요청. 2003년을 2007~2010년으로 연기하는데 동의를 요구한다.

3. 인공위성발사에 반대하지 않고 미사일수출중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외화보전을 한다.

이 선택은 군사적 선택을 포기하고 김정일정권과 평화공존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조선의 김정일이 조선반도의 실질적 승자라는 것을 미국이 전 세계에 선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실질적 지배자인 미국이 북조선을 외교적으로 승인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것은 동시에 ≪한국≫이라는 개가 소용이 없어졌다는 통지를 받고 해고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선택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 미국이 현행 제네바핵합의를 이행하는 것을 뜻하는데 미국이 2003년이라는 시한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할 것은 분명하다. 당장 공사를 시작하여 24시간 교대해 가며 아무리 서둘러 봐도 2007년이나 2010년 정도 되어야 끝날 것이다. 이것도 북조선이 제네바합의의 연장을 인정했을 경우 가능한 이야기이다.

김정일은 미국이 처음부터 핵합의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대책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국이 북조선의 붕괴를 기대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거꾸로 미국의 행동을 옭아맬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김정일은 미국이 평화의 선택을 하는 길 외에 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군사적 선택은 미국으로서는 택할 수가 없다. 소위 페리보고서라는 것은 이 방향으로 갈 것이다. 물론 페리보고서가 그저 시간을 벌기 위한 술책일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미국이 선택할 길은 한정되어 있다.

영변, 금창리, 인공위성, 미사일을 둘러 싼 교섭을 다시 되풀이한다면 미국관계자들은 모두 우울증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이다. 미국관계자들은 진절머리가 나서 두 번 다시 그 같은 교섭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빠르면 이제부터 2년 내에 미정부는 북조선과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국교를 수립,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반도가 극도로 긴장하고 일촉즉발의 준전시상태에 들어간 채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한다. 현 클린턴정권은 대단히 불리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백악관을 공화당에 내주어야 하고 공화당대통령이 나서서 북조선과 평화적 결말을 짓게 될 것이다. 그것은 민주당정권이 전쟁을 시작, 공화당정권이 해결한다는 관례대로 될 것이다. 김정일로서는 공화당쪽이 훨씬 일하기 쉽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군의 무력화, 중립화≫

아래에 열거하는 것같이 지금까지 조선통일의 기회는 일곱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조선민족 앞을 가로 막은 것이 미국이고 미군이었다. 그러나 이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미국교수립과 평화협정조인으로 미국과 주≪한≫미군이 드디어 무력화되고 중립화되는 것이다.

통일의 기회

1. 1945년 8월 일본으로부터 조선광복, 그러나 미군이 남조선에 진주. 조선은 남북으로 분단

2. 1945년 12월 미영쏘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조선임시정부수립과 5년간의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는데 미국이 합의이행을 거부

3. 1948년 4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가 평양에서 열려 남북통일에 합의하였으나 미국이 남조선에 단독≪정부≫를 수립

4. 1950년에 일어난 조선전쟁, 미국의 군사개입으로 분단상태 유지됨.

5. 1960년 4월 ≪한국≫에서 일어 난 인민봉기로 이승만≪정권≫이 붕괴. 통일기운이 고조됐으나 다음해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박정희군사쿠테타로 탄압 당함.

6. 1972년 7월 남북공동성명 발표. 남북통일이 합의되었으나 미국의 반대로 통일은 실현되지 않음.

7. 1991년 12월 남북화해불가침교류협력에 관한 협정이 조인되었으나 미정부의 반대로 이행되지 않음.

그러나 이제 이와 같은 미국의 군사간섭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이미 미국은 그와 같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태를 가져온 것이 김정일이다.

일본과 공존공영을 바라는 김정일

일본에 대한 김정일의 전략목표는 일본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으로 하여금 과거를 청산하고 일본에 대한 한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과 일본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이웃으로, 우호국으로 공존공영하는 것이다.

그의 판단으로는 현상은 도리어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금후 몇년안에 조미국교가 정상화되면 조일교섭이 재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은 언젠가는 일본에 대한 한을 풀어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우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두 가지 이유는

1. 조선문제의 기본대상국은 미국이지 일본이 아니다. 현재 조선반도를 무력으로 분단하고 조선내정에 무력으로 간섭하고 ≪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북조선과 전쟁상태에 있는 것은 미국이다.

2. 일본도 역시 미국의 영향아래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의향을 무시하고 미국보다 먼저 북조선과 국교를 서두를 생각이 없다.

3. 가령 있다 해도 조선민족을 멸시하고 북조선을 싫어하기 때문에 조일교섭은 잘 안된다. 김정일은 일본이 아니고 미국이 조선문제의 기본 당사국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상대국이 미국이니까 북조선컴플렉스라 할가, 북조선신드롬을 가지고 있어서 전쟁이 날가 말가 하다가도 전쟁까지는 안 가고 끝에 가서는 교섭을 통해 조미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리라 보고 있다.

일본은 미국이 북조선에 선제공격을 가했으면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왜 미국이 북조선에 융화적으로 나오는지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일본은 자기들이 미국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북조선컴플렉스를 이해 못한다.

북조선에는 강력한 군사력이 있고 미본토를 파괴할 수 있지만 김정일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는 군사력을 실제로 사용하지 않으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전략목표는 미국과 전쟁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을 교섭장으로 끌어들이고 교섭을 통해 조선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사실상 북조선은 미국과 여러 분야에서 단독적이긴 하지만 교섭을 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조미교섭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어 왔다. 미국측이 북조선요구를 거의 다 받아 들였다. 최종적이며 본격적인 교섭은 이제부터이다.

≪조일교섭만이라면 전쟁으로 갈 공산이 크다≫

북조선을 싫어하고 조선민족을 멸시하고 과거청산을 하기 싫어하는 일본은 북조선과 국교를 정상화하는데 관심이 없다. 김정일은 지금까지의 조일교섭을 총괄해 보고 일본과의 교섭은 아무리 해도 소용없고 비생산적이어서 조미국교정상화가 끝날 때까지 미루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 김정일이나 북조선 정부당국자로서는 북조선 안전보장상 중대한 위협이다. 그 이유는

1. 핵무장하고 일본각지에서 주둔해 있는 4만 7,000명의 주일미군은 총부리를 북조선으로 겨누고 있다.

2. 최근 채택한 미일가이드라인관련 법안은 전적으로 북조선에 대한 군사행동을 염두에 두고 일본이 대북조선공격의 후방기지, 출격기지로 기능하는 것을 의미한다.

3. 일본의 국방예산은 북조선의 50배이상인 약 5조엔이다. 경제규모, 과학기술의 수준, 국토와 인구면에서 북조선을 압도하고 있다.

4. ≪자위대≫는 이미 북조선에 대한 선제공격작전을 연구계획하고 있다.

5. 일본은 조선식민지지배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을 안하고 도리어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과거 전쟁범죄에 대한 법적, 제도적 반성도 없다. 독일은 나치숭배를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일본은 그렇지 않다.

6. 일본은 북조선에 대해 극렬한 적개심을 가지고 조선민족을 멸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북조선과 일본이 교섭하게 되면 일본은 반드시 교섭을 깨기 위해 생트집을 잡는다. 예를 들면 있지도 않은 ≪납치의혹≫이라든가 북조선 ≪인권문제≫를 들고 나온다. 또 과거청산도 거부할 것이다. 교섭은 결국 결렬되어 버린다.

조일양국간의 긴장은 고조되고 전쟁가능성이 높아져 전쟁으로 결말 짓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정부는 경제력, 첨단기술, 국방예산규모를 감안하여 북조선과 전쟁하면 이길 줄 안다. 일본의 국내여론도 대북조선때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언론의 부채질로 대북조선 선전포고가 부득이하다는 분위기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분석에 의하면 일본이 북조선의 수백배예산을 군사력증강에 써도 일본은 북조선을 이기지 못한다. 일본의 지리적, 경제구조상의 특징과 인구분포의 특징으로 보아 북조선에 선제공격을 가해도 보복공격을 받으면 일본열도는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다. 일본국토를 지킬 수 있는 방위망구축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악몽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북조선이 먼저 교섭하는 것은 미국이니까. 이런 의미에서 일본이 미국의 영향하에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일본의 가장 현명한 안전보장정책은 북조선과 우호선린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결국 평양과 워싱턴이 국교를 수립하고 평화조약을 맺게 되면 일본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본은 북조선에 대해 과거를 청산하겠다고 자진해서 희망해와 북조선이 요구하는 전후 배상금과 보상금지불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조일국교정상화도 북조선이 바라는 모습으로 성립하게 된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이나 아시아 어느 나라도 일본편을 들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완전히 고립무원상태가 된다. 일본은 아마 처음에는 분하겠지만 별 도리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도 냉정을 되찾아 이번에는 태도를 180°바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김정일은 일본에 대한 한도 역사적으로 풀게 될 것이다. 남은 것은 ≪한국 개≫의 처분문제뿐이다.

구만주국과 같은 운명의 길을 걷게 되는 ≪한국≫

≪한국≫은 옛날의 만주국에 비교할 수 있다. ≪한국≫이 만주국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은 필연이고 피할 수 없다.

≪만주국과의 공통점≫

≪한국≫은 구만주국과 공통점이 있다.

1. 종속정권으로 정통성에 하자가 있다.

만주국은 일본에 종속된 꼭두각시로 정통성이 전혀 없었다. ≪한국≫은 미국의 종속≪정권≫으로서의 성격과 민족정통성에 하자가 있다는 점에서 만주국과 기본적으로 같은 처지에 있다.

2. 주둔 사령관이 실권을 장악

만주국에서는 관동군사령관이 대사와 관동청장관을 겸해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군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해 ≪한국≫군의 통수권을 장악하고 있다.

3. 뿌리가 같은 관동군

관동군은 만주국의 뿌리인데 그와 같이 ≪한국≫의 뿌리는 관동군이다. ≪한국≫이 수립될 때 그 중추를 점한 것이 일본육군사관학교나 만주군관학교 출신자였다. 그 전형적인 예가 박정희였다. 따라서 존재이유가 없어지면 괴뢰정권은 소멸된다. 구만주국의 경우 1945년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내부에서 내란이 일어 난 것이 아니다.

≪존재이유의 상실≫

조미외교관계의 수립과 평화조약의 조인은 ≪한국≫의 근본적인 존재이유를 박탈하는 것이 된다. 민족정통성에 대한 결함 때문에 국민을 탄압함으로써 겨우 존재할 수 있었는데 그 존재의 최대요인은 다음 두가지이다.

1. 미국의 지지와 지원
2. ≪국가보안법≫

먼저 미국이라는 뒤받침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북조선과 대결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조선문제의 근본장애라는 사실을 얼버무리기 위해 ≪한국≫이 필요했다. 그 장애요인이 없어지니까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필요 없다. 다시 말해 ≪한국≫은 쓸데가 없어졌다는 통지를 받게 된다. 서울에게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없다.

미국과 북조선이 우호관계를 수립하게 되면 ≪한국≫으로서는 북조선과 대립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국가보안법≫이 필요 없게 된다. 1948년 12월 1일 성립된 역사적 유물에 지나지 않는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한국≫은 이미 존재이유가 없다.

역대 ≪한국정권≫이 ≪한국≫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 ≪국가보안법≫으로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사람이 박해를 받고 구속되고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투옥되고 사형에 처해졌던가. 북조선과 통일을 하자고 했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국가보안법≫의 희생이 되었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습격을 당하고 간첩사건이 날조되었던가. 진상이 모두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기왕에 베를린, 바르샤바, 모스크바, 프라하, 부크레슈티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부정되는 순간 현지의 사회주의 정권이라는 것이 하루밤사이에 망했다. 국가로서의 조직제도가 다 존재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강력한 군대, 공산당조직이 있었지만 누구도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 ≪정권≫이 넘어지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날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는 금후 4~5년내에 일어 날 것이다. 조미국교정상화후 2~3년내에, 조일국교정상화후 1년내외에. 이제 금방이다.

≪민주연합정권탄생과 남북조선 연방통일≫

≪한국≫에서는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국가보안법≫이 소멸된 후 또는 그 파기를 담보하는 정권으로 탄생할 것이다. 어찌되었건 신≪한국≫정권은 민주연합의 거국일치정권이 되고 다음 두가지 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1. 철저한 민주화

역대≪정권≫의 시책을 모두 검토해 명예회복해야 할 일은 명예회복하고 손해배상해야 할 일은 손해배상하여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을 재검토하여 민주화를 실시한다.

2. 대미, 대일관계 재검토

지금까지의 대미, 대일 조약협정은 유지하되 필요한 것은 재검토하고 시정한다. 특히 미군주둔문제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

3. 북조선과 화해통일

북조선과 연방통일교섭을 진행, 민족화해와 단결의 원칙하에 통일을 달성한다. 그 결과 북조선과 ≪한국≫은 연방조선의 지방정권이 된다.

구≪정권≫의 군부와 정보기관의 일부 불만분자가 궐기하여 쿠테타나 내란을 일으킬 수도 있겠으나 미국이 지지하지 않고 국민도 지지하지 않으니 곧 투항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 : 통일조선의 주역

이렇게 민족화해와 대단결원칙에 기초하여 연방통일을 달성하는 주역은 바로 김정일 그 사람이다. 김정일이 단군민족의 총의에 따라 통일된 조선의 최고지도자, 대통령에 취임하게 될 것이다.

미국대통령도 일본총리대신도 중국, 러시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국가지도자도 김정일의 연방조선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이 미워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들도 진심으로 경의와 축사를 보내게 될 것이다.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언론이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되돌아 보건대 조선민족에게 20세기는 암흑과 비극의 100년, 한 맺힌 100년이었다. 20세기초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존엄성 높은 민족은 망국의 백성, 유랑민이 되어 만주, 일본, 미국으로 흩어져 나갔다. 말도 이름도 문화도 토지도 부모처자도 다 빼앗기고 먹을 것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 이러한 암흑시대에 많은 우국지사가 민족해방을 위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45년 해방되었어야 할 조선이 분단되고 비극의 시대로 추락했다. 이 비극의 시대에 통일운동을 강력히 전개하여 드디어 통일을 달성하는 주역은 김정일이다. 여기까지 이르는 길에서 김정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시련을 겪었다.

특히 김일성이 서거한 후 사실상 동맹국도 다 사라지고 자연재해와 경제적 곤경이 겹쳐 조선전쟁에 버금가는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국민이, 군대가, 시대가, 역사가, ≪하느님≫까지 김정일을 도왔다.

누가 보아도 결정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김정일 세계≪최강≫미국과 사투를 벌여 타고난 정치적 수완과 군사적 수완을 발휘, 미국을 군사적, 정치적으로 압도, 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최대장애인 미국을 무력화, 중립화하는데 성공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김정일 미국에 대한 한을 풀고 나아가 일본으로 하여금 역사적 청산을 하게 하고 국교정상화를 달성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한도 풀게 될 것이다. 김정일 ≪한국≫민주화의 대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남북조선연방통일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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