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10월 13일(일)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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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과 진리

 

통일여명 편집위원 강인규

 

먼저, 주체철학사전에 나오는 진리에 대한 정의를 살펴본다.

객관적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이론, 사상. 모든 지식은 다 객관세계의 반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하여 객관세계를 정확히 반영할 수도 있으며 그릇되게 반영할 수도 있다. 객관세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 지식을 정확한 지식, 진리라고 하며 객관세계를 그릇되게 반영한 것을 허위라고 한다. 진리는 객관적이다. 진리가 객관적이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우리의 지식이 사람들의 주관적 의사나 욕망에 관계없이 객관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는 절대적이며 동시에 상대적이다. 진리가 절대성을 띠는 것그것이 언제나 객관세계를 정확히 반영하고 객관적으로 실재하며 인간의 인식능력이 무한히 발전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상대적인 성격을 띠는 것인식의 대상인 객관적 사물현상이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발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인식능력이 무한하면서도 매개 역사적 세대의 인식능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구체적이다. 진리가 구체적이라는 것은 그것을 담은 과학의 개별적 명제, 이론이 일정한 구체적, 역사적 조건에서만 타당성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진리가 구체성을 띠게 되는 것은 인식의 대상인 객관세계의 사물현상 자체가 일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하며 또 사람의 실천 자체가 구체적, 역사적 조건에 의하여 제약되기 때문이다. 매 역사적 시기에 도달한 모든 진리는 다 구체적 성격을 띤다.

실천은 인식의 출발점이며 진리의 기준이며 이론발전의 추동력이다.≫(≪저작선집≫7권, 418쪽)

진리의 기준은 실천이다. 진리의 기준이 실천으로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실천이 이론과 객관적 현실이 일치하는가 안하는가를 검증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실천은 관념적인 이론을 객관화, 물질화함으로써 현실과 대비하고 그와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검증할 수 있게 한다. 실천은 이론의 진리성뿐 아니라 그의 가치를 검증하는 기준을 이룬다. 지식, 이론, 사상의 참다운 가치는 그것이 실천에 구현되어 사람들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에 얼마나 이바지하는가에 따라 규정된다.

이와 같이 인식의 결과로서의 지식, 이론은 실천에 적용되어 생활력이 발휘될 때 진리로 확증된다. 그런데 이론, 명제의 진리성은 논리적 증명에 의해서도 검증될 수 있다. 실천에 의하여 검증된 명제를 논거로 하여 논리적 법칙의 요구에 맞게 논증한다면 이론의 진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실천과 경험을 가장 정확하게 개괄하였으며 실천에 의하여 검증된 보편적인 진리, 원리는 다른 모든 진리의 기준으로 된다.≫

다음, 회고록의 진리와 관련된 부분을 권별로 살펴본다.

1권

나라가 망하면 산천도 사람도 결코 편안할 수가 없다. 망한 나라의 지붕밑에서는 나라를 판 값으로 호의호식하는 매국노들도 발편잠을 자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은 설사 살아있어도 상가집 개만 못하고 산천은 설사 지경이 남아있어도 제 모습을 보존하기 어렵다.

이런 이치를 먼저 깨닫는 사람을 선각자라고 하며 와신상담하면서 나라의 비운을 가시려고 애쓰는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며 제 한몸을 불태워 진리를 밝히고 만민을 불러일으켜 불의의 세상을 뒤집어엎는 사람을 혁명가라고 한다.≫(우리 가정, 세기와 더불어 1권)

≪역사는 강대국들이 작은 나라를 동정하고 약한 나라 인민들에게 자유와 독립을 선사한 전례를 알지 못한다. 한 민족의 자주권은 오직 그 민족자체의 주체적인 노력과 불굴의 투쟁에 의해서만 보존하고 쟁취할 수 있다. 이것은 여러 세기와 세대를 거쳐 이미 역사에 의해 검증된 진리이다.≫(독립만세의 메아리, 세기와 더불어 1권)

≪내가 ≪공산당선언≫을 학교에 가지고 나가면 학생들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그런 책은 집에서나 보라고 슬그머니 귀띔해주군 하였다. 학교당국이 제일 경계하고 엄중시하는 것이 적색계 책인데 경중에 따라 퇴학처벌도 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통제를 한다고 읽고 싶은 책도 읽지 않으면 큰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책은 퇴학을 시킨다해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타도제국주의동맹, 세기와 더불어 1권)

≪새것을 지향하고 진리를 찾아 모대기는 청년학생들도 이 성시로 찾아왔다.

한마디로 말하여 길림은 형형색색의 사상조류가 집결된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내가 공산주의기치를 들고 혁명활동을 벌였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우리는 새로운 고장에서 혁명의 진리를 마음껏 배우며 ≪ㅌ·ㄷ≫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 바쳐 싸워나가자고 결의하였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맑스-레닌주의를 교조로가 아니라 실천의 무기로 대하게 되고 진리의 기준을 추상적인 이론에서가 아니라 항상 조선혁명이라는 구체적인 실천에서 찾으려는 나의 입장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싹텄다고 할 수 있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자기는 맑스-레닌주의연구에 한 생을 바쳐 노동계급의 이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책을 꼭 쓰려고 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살아 펄펄 뛰던 때는 진리를 몰라서 못썼고 진리를 깨닫고보니 이제는 건강이 허락치 않는다고 한탄하였다.

박소심의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안타까왔다. 박소심은 학문앞에 성실하고 꾸준하였으며 탐구력이 있었다. 책속에만 묻혀있지 않고 실천속에 좀더 일찍 뛰어들었다면 노동계급의 혁명위업 수행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가치있는 이론도 찾았을 것이고 실천적인 업적도 쌓았을 것이다. 실천속에서 이론이 나오고 그 이론의 정당성도 실천을 통하여 검증된다. 우리가 순간도 잊어서는 안될 실천조선의 독립이며 우리 인민의 행복이다. 아쉽게도 박소심은 이 진리를 깨닫기 바쁘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아침에 도리를 깨닫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지만 박소심과 같이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기만 하고 가버린 것은 분한 일이었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자본론마르크스레닌

≪이 길림에서 나는 과학적 학설로서의 맑스-레닌주의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 학설의 도움으로 조선의 독립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실천적 진리를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2권

≪선행세대의 운동자들은 한결같이 인민대중이 혁명의 주인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진리를 무시하고 있었다. 수백만 대중의 조직된 힘에 의거해야 일제를 타도할 수 있겠는데 우리 나라의 반일운동자들은 혁명도 독립전쟁도 특수한 몇몇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공산주의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이런 입장에서 기초축성은 별로 하지 않고 몇몇 상층인물들로써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법으로 당을 만들었으며 대중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3인1당, 5인1파식으로 서로 분열되어 여러 해 동안 헤게모니싸움을 벌였다.

선행세대의 노선이나 전략들은 또한 조선의 산 현실에 발을 튼튼히 붙이지 못한 심중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조선의 산 현실에 부합되는 옳은 지도이론을 내놓자면 고전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을 절대시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지도이론을 마련한다고 하여 10월혁명의 경험 같은 것을 통채로 받아들여도 안되었고 국제당이 그 어떤 만병통치의 처방을 가져다줄 것 같이 기대하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어도 안되었다.

카륜회의

≪우리가 믿을 것은 인민대중의 힘밖에 없다. 2천만의 힘을 믿고 그 힘을 하나로 묶어세워 일본제국주의자들과의 혈전을 벌이자.≫

나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웨침이 자주 울리었다.

나는 이런 충동을 안고 오늘 우리가 주체라는 이름을 달아서 부르고 있는 사상을 보고의 구절구절에 담으려고 노력하였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우리가 카륜에서 이처럼 조선혁명의 진로를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길림시절에 이미 청년학생운동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조선혁명에 대한 주체적 입장과 태도를 확립하고 공산주의운동의 새 길을 개척해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투쟁의 나날에 심어지고 옥중에서 무르익힌 그 사상과 입장≪조선혁명의 진로≫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을 뿐이다.

그것이 곧 우리 혁명의 노선으로 되고 지도사상으로 되었다.

우리가 그 논문에서 전개한 내용을 보면 모두가 주체사상을 핵으로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상은 그 후 항일혁명투쟁을 비롯한 여러 단계의 혁명을 거쳐 어렵고 복잡한 실천투쟁속에서 부단히 발전풍부화되어 오늘과 같이 사상과 이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를 갖춘 하나의 철학사상으로 되었다.

해방 후 우리가 주체를 세울 데 대하여 특별히 강조한 것은 전후시기 사회주의기초건설을 할 때였다.

1955년에 나는 당선전선동부문 일군들앞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를 극복하고 주체를 세울 데 대한 연설을 하였는데 이것인 곧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문헌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주체를 세울 데 대해서는 그 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였다.

주체사상의 본질과 그것이 창시되게 된 경위, 그 사상을 어떻게 구현해왔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외국인들과의 담화를 통하여 여러 차례 설명하였다.

김정일장군님

그러면서도 나는 그것을 체계화하여 하나의 책으로 묶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인민이 그 사상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혁명실천에 구현하면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그 후 김정일비서가 그 사상을 전면적으로 체계화하여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세상에 발표하였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내가 나이도 어리고 투쟁경력도 짧았지만 그들이 나를 세우지 못해 그처럼 애쓴 것은 통일단결의 중심도 없이 각당, 각파가 저마끔씩 영웅호걸행세를 하면서 파쟁으로 혁명운동을 말아먹던 전 세대의 운동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고 나라를 찾자면 2천만 민중이 합심해야 하며 2천만 민중을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게 하자면 영도의 중심, 통일단결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진리를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기 때문이었다.≫(혁명시인 김혁, 세기와 더불어 2권)

≪좋은 사람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그가 어디에 있건 끝까지 찾아가 기어이 손을 잡고 동지로 포섭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나에게 인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 진정한 동지를 얼마만큼 많이 얻는가에 따라 혁명사업의 성패가 결정된다진리를 깨우쳐주었다.≫(두만강을 건너, 세기와 더불어 2권)

9.18사변 - 피바다에 잠긴 동북≪그러나 우리는 9.18사변을 두고 불리한 것만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불리한 저들만큼 따져보면서 비관과 영탄에 빠졌더라면 일어서지도 못하고 절망에 짓눌려 주저앉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 어째서인지 ≪범의 굴에 가야 범을 잡는다.≫는 조선속담을 생각하였다.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을 두고 터득하고 정식화해놓은 그 인생철학이 나에게 심오한 진리를 귀뜸해 주었다.≫(9.18사변, 세기와 더불어 2권)

≪대중은 추수투쟁의 승리를 통하여 5.30폭동을 실패한 원인을 스스로 찾아냈으며 폭력의 양이 결코 투쟁전과를 결정하는 기본요인으로 되지 않는다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확고히 믿게 되었다. 5.30폭동이 실패한 원인이 폭력을 적게 투하된 데 있지 않았던 것처럼 추수투쟁이 승리한 요인 역시 폭력이 많이 투하된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모두다 잘 알게 되었다.≫(무장에는 무장으로, 세기와 더불어 2권)

≪나는 실천투쟁만이 십인십색으로 벌어지는 우리의 논쟁에 아퀴를 짓고 진리가 어느쪽에 있는가를 판정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유격대의 활동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연구에 시간을 아낌없이 바치었다.≫(남만으로, 세기와 더불어 2권)

3권

≪나는 김성도가 이런 대답을 하였을 때 그가 괘씸하다는 생각보다도 가련하다는 생각이 앞서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아무런 과학적 타당성이나 진리성도 없는 망발에 분노를 표시하고 쇠망치와 같이 드센 논리로 그 망발의 부당성을 입증해야 할 그런 정황에서 분노와 경멸 대신 일종의 동정심이 발동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낮에는 적의 세상, 밤이면 우리 세상, 세기와 더불어 2권)

인민혁명정부를 세워주시고 인민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나는 지금껏 제정신으로 살지 못하고 남의 정신으로 살아왔소. 동무는 나에게 참으로 귀중한 진리를 깨우쳐주었소. 인민을 위해 살자! 평범한 이 한마디 말속에 얼마나 깊은 뜻이 담겨져 있소. 나는 평생 이 구호를 잊지 않겠소.≫

이용국은 내 손을 그러잡고 열정적으로 부르짖었다.≫(소비에트냐, 인민혁명정부냐?, 세기와 더불어 3권)

나라의 독립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애국역량을 단합시켜야 한다는 것, 애국역량을 단합시키자면 그 기치로 삼을 수 있는 사상과 노선이 있어야 하며 통일단결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길림조직이 이광의 가슴에 심어준 진리였다. 이광은 이 진리를 받아안고 간도로 돌아갔다.≫(이광, 세기와 더불어 3권)

≪추수, 춘황 투쟁은 이광이 길림에서 얻은 진리를 확증하는 중요한 계기로 되었다. 그의 세계관은 이 투쟁을 통하여 새로운 높이에로 또다시 도약하였다.≫(이광, 세기와 더불어 3권)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나가서도 샌다는 우리 조상들의 명언은 얼마나 심오한 생활의 진리를 담고 있는가.

전투는 일상생활의 연장이며 총화라고 할 수 있다. 군인들의 전투성과는 싸움마당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평상시의 생활에서 사전에 결정되는 법이다. 전투는 그 일상생활의 반영이고 단적일 표현일 따름이다.≫(동녕현성전투, 세기와 더불어 3권)

≪≪가인박명≫이라는 고래의 생활철학이 인생이치에 부합되는 실질적인 진리라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수많은 김금순, 김양남이들을 위해 그 철학을 추방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김양남의 둘째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모교인 평양음악무용대학 작곡학부를 졸업하고 만수대 예술단에서 예술창조의 첫걸음을 떼었다.≫(영생의 꽃, 세기와 더불어 3권)

초년 고생은 금을 주고도 사지 못한다고 한 우리 조상들의 명언은 얼마나 심오하고도 박력있는 생활의 진리를 귀뜸해주고 있는가. 고난과 시련은 만복의 어머니이다.≫(영안땅에 울린 하모니카 소리, 세기와 더불어 3권)

4권

다홍왜회의 장소≪그런데 4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을 비롯한 군대 내의 많은 동무들이 내가 다홍왜로 떠나는 것을 한사코 반대하였다.

≪대장동지, 만주성당에서도 파견원이 오고 공청 만주성위에서도 파견원이 왔다는데 어쩐지 심상치 않습니다. 진리가 아무리 대장동지 편에 있다고 해도 어쨌든 대장동지는 혼자이고 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다홍왜에서의 논쟁, 세기와 더불어 4권)

≪우경이 공개적인 반혁명이라면 좌경은 은폐된 반혁명이고 우경이 암이라면 좌경도 그에 못지 않은 독버섯이다. 우경과 좌경은 혁명이라는 하나의 거목 위에 기생하면서도 서로 등을 돌려대고 동상이몽하는 듯하지만 실은 하나의 맥락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개인이 좌경을 하면 집단을 해칠 수 있고 집권당이 좌경을 하면 인민을 잃어 혁명을 망칠 수 있다진리를 명심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도 고수할 수 없다. 이것은 반≪민생단≫투쟁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교훈이며 좌경의 침해로 하여 막대한 출혈을 당한 일련의 나라들에서의 뼈아픈 체험이 전세계 공산주의자들에게 보내는 호소이다.≫(다홍왜에서의 논쟁, 세기와 더불어 4권)

≪나는 언제나 청년들을 혁명의 전위로 보았다. 청년들은 혁명투쟁과 사회적 운동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부문을 담당한 선봉대이고 주력부대이며 미래의 운명까지도 걸머진 골간부대이다. 이것은 실천을 통해 그 진리성이 충분히 검증된 주장이었다. 80고령에 이른 지금에 와서도 나는 혁명의 전위로서 청년들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지 않는다.≫(공청의 산아들, 세기와 더불어 4권)

≪그러므로 조국광복을 위한 대일작전시에 위만군들은 거의나 다 일제에게 총부리를 돌렸거나 와해상태에 있었다.

부정의의 군대였던 일본침략군과 위만군의 수치스러운 운명은 다르게 될 수 없는 역사의 합법칙적 귀결이었다.

어쨌든 인간은 직선으로 가든 에돌아가든 또한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라도 반드시 정의와 진리의 편으로 찾아가기 마련이다.≫(기이한 인연, 세기와 더불어 4권)

≪국제당이 우리의 고충을 진리의 편에 서서 공명정대하게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나의 확신은 우리가 위증민을 통하여 모스크바에 제소한 문제점들이 어느 모로 보나 혁명적 원칙과 혁명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변함없이 믿어온데도 있었지만 국제당이 새로운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던 당시의 사정과도 적지 않게 관련되어 있었다.≫(경박호기슭에서, 세기와 더불어 4권)

≪저 사람들이 모두 ≪민생단≫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늘이 땅으로 될 수 없고 땅이 하늘로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진리이다. 그런데 어째서 저 동무들은 ≪민생단≫에 들었다고 말하여 ≪민생단≫ 책동을 하였다고 저절로 죄를 뒤집어쓰겠는가?≫(새 사단의 탄생, 세기와 더불어 4권)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고서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설교할 때마다 우리는 그 말속에 진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20원, 세기와 더불어 4권)

마안산의 아동단원들을 한품에 안아주시는 어버이수령 김일성장군님

≪이 자그마한 세부를 통하여 나는 후대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애국자가 될 수 있으며 인간에 대한 참다운 사랑을 지진 사람들만이 참다운 애국자가 될 수 있다진리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후대들에 대한 사랑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사랑 가운데서도 가장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이며 인류에게 바쳐지는 송가가운데서도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송가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바로 이 송가를 만들어내는 창조자들이며 이 송가를 위해 투쟁하는 복무자들이다.≫(20원, 세기와 더불어 4권)

≪≪나의 생애에는 나를 위해 준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아슬아슬한 위기일발의 순간에 나를 도와 나선 잊을 수 없는 생명의 은인들이 많다. 지금 너희들과 함께 다니는 손원태선생의 아버지 손정도목사도 그렇고… 그래서 나는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내려다보고 언제나 귀인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은 관념론이 아니다. 인민을 위하여 한 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그 어디서나 인민이 도와 나서게 되어 있다. 이것은 진리이고 변증법이다.

나는 그들이 아버지처럼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인민을 위하여 한 생을 바치는 훌륭한 인민의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고 간곡히 말해 주었다.≫(혁명전우 장울화(2), 세기와 더불어 4권)

이동백≪≪솔직한 말씀을 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나는 선생을 기회주의자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조선사회의 참다운 진로를 탐색하느라고 이리 기웃해 보고 저리 기웃해 본 데 지나지 않지요. 진리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 이러저러한 당파에 관여하게 된 것은 결코 기회주의가 아닙니다.≫

나의 그 말에 이동백은 저으기 놀랐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속심을 그렇게 속속들이 꿰뚫어 들여다보시니 제 기꺼이 손을 들겠습니다. 제가 또 집을 떠나온 건 수십 년 동안 못 찾은 ≪보물≫을 죽기 전에 기어이 찾아 쥐자는 짖궂은 욕망 때문입지요.≫

≪의로운 뜻을 품고 진리를 탐색하는 선생과 같은 분을 보게 되니 참 반갑습니다. 한때는 선생 같은 진리의 탐색자들과 의로운 운동객들이 우리 나라에 적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감옥에 잡혀가지 않았으면 변절하고 또 이렇게 저렇게 피해를 당하고 보니 지금은 정말 희소합니다. 선생이 살아 계신 것만도 천만다행한 일입니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자기 민족 전체를 희생시켜서라도 개인적 치부를 증대시키려는 환장한 부르주아지들의 식민지 쟁탈전쟁에 ≪조국방위≫의 간판을 들고 도와나서는 것은 자기 민족에 대한 배신인 동시에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으로 된다. 그러므로 제국주의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주의위업에 충실하려면 ≪조국방위≫의 간판을 들것이 아니라 ≪전쟁반대≫의 기치를 들고 전쟁보이코트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식민지 예속국가들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식민지 예속국가들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조국해방과 애국주의의 기치를 드는 것은 곧 종주국의 부르주아지를 반대하는 것으로 되며 바로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민족혁명과 계급혁명 그리고 국제혁명위업에 다같이 기여하게 된다.

이 명백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명제를 무조건 절대화하면서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공산주의의 원쑤처럼 여기고 배척하였다는데 바로 사이비 공산주의자들, 행세식 맑스주의자들의 이론실천적 착오가 있었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5권

≪실천이란 언제나 이론보다 더 생동하고 확고한 믿음을 주는 법이다. 반일부대들과의 통일전선에 대한 우리의 사상과 이론은 빈말공부가 아니라 진리이며 진실이라는 것이 무송현성전투를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증되었다.≫(정든 성시에서, 세기와 더불어 5권)

≪실로 한 편의 훌륭한 시나 연극이나 소설이 천만 사람의 가슴을 격동시키며 혁명적인 노래는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적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은 항일혁명시기의 문학예술활동을 통하여 우리가 도달한 진리이다.≫(≪피바다≫ 초연무대, 세기와 더불어 5권)

이제순≪반일애국운동을 하는 과정에 이제순이 터득했다고 하는 인생철학 가운데는 흥미있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서 제일 힘든 것은 선구자, 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여 남이 한 가지를 할 때 두 가지, 세 가지를 하거나 남이 한 걸음을 걸을 때 두 걸음, 세 걸음을 걷는 것이 제일 뻐근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는 사실 심오한 진리가 있었다. 그것은 남들의 앞장에서 사회개조의 어려운 길을 개척해가는 혁명가의 고충을 반영하고 있는 진리였다.≫(이제순, 세기와 더불어 5권)

≪사람들이 처음부터 혁명가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며 생활과 투쟁속에서 투사로, 혁명가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혁명가로 성장하는 과정은 서로 다르지만 사상이 견실하고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불타는 사람이 옳은 지도를 받게 되면 누구나 다 혁명가로 된다는 것은 혁명의 진리이며 역사의 교훈이다.≫(이제순, 세기와 더불어 5권)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 중의 하나가 정의와 진리를 대변하는 양심적인 지성인들과 시대의 선각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출판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3.1월간≫, 세기와 더불어 5권)

동학 1세 교조 최제우≪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나 그것을 계승한 2세, 3세 교조들은 천도교가 유교, 불교, 선교의 3교 종합, 다시 말하면 여러 종교를 유기적으로 합일한 최후의 진리이며 따라서 그것은 절대로 천주교와 같은 이단적인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민족종교 천도교를 두고, 세기와 더불어 5권)

≪영혼설은 불가불 숙명론에 떨어진다. 숙명론으로부터는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지론이 나올 수 없으며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자신에게 있다진리도 도출할 수가 없는 것이다.≫(민족종교 천도교를 두고, 세기와 더불어 5권)

인민의 지지를 떠난 군대가 결코 강군으로 될 수 없으며 싸움에서 승자로 될 수 없다는 것은 항일혁명의 전 기간 우리가 뼈에 사무치게 체험한 진리이다.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시종일관하게 주장해왔다.≫(인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세기와 더불어 5권)

≪조선노동당이 작성하고 시행하는 모든 정책의 기초에는 반드시 인민성이 놓여있다. 인민성은 우리 당과 군대와 국가의 성격을 지배하는 기본인자이다. 우리는 체험을 통하여 인민성을 기본적인 생존방식으로 삼고 있은 당과 군대는 필승불패한다진리를 확증하였다.≫(인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세기와 더불어 5권)

6권

≪조선의 인민대중은 백두산에서 울리는 목소리라면 어떤 것이나 다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었고 대소와 경중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실행하였으며 백두산을 지원하는 일이라면 지어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다.≫(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세기와 더불어 6권)

권영벽인민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는데서 사는 보람을 느낀다고 한 권영벽의 말에는 심오한 진리가 깃들어 있었다. 인민을 조직동원하는 것은 혁명가들이 한시도 놓쳐서는 안되는 항구적인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민을 부단히 의식화하고 조직화하는 여기에 바로 우리 혁명의 생명이 있고 승리가 있고 영구불멸성이 있다.≫(권영벽, 세기와 더불어 6권)

≪혁명은 비상한 힘과 속도로 사람을 격동시키고 각성시킨다. 혁명을 가리켜 새것을 낳는 학교라고 한 어느 명인의 말에는 사실 심오한 진리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총을 쥔 소년들, 세기와 더불어 6권)

≪동지애와 동지적 의리를 중시하는 것은 집단주의를 생명으로 하는 우리 대오의 존재방식인 동시에 본질적 요구이기도 하였다. 항일유격대원들은 한 자루의 총, 한 포대의 쌀, 한 켤레의 신발을 구하기 위해서도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았다. 그 과정에 그들은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혁명적 신념과 함께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가장 고상한 공산주의적 윤리를 창조하였으며 단결이 곧 승리라는 하나의 진리를 도출하게 되었다.≫(혁명적 의리에 대한 생각, 세기와 더불어 6권)

마동희≪마동희를 신념이 강한 인간으로 만들어준 것은 혁명실천이었다. 그는 백암지방에서 살 때 반일회도 조직해보았고 교편을 잡고 화전민의 자식들에게 애국주의교양도 해보았다. 인민혁명군에 입대한 후에는 구대원들과 함께 간고한 무송원정도 해보고 경위중대의 학습강사로서 대원들의 정치, 문화적 자질을 높이기 위한 계몽사업도 해보았다. 그 과정에 사람이 망국노가 되면 상가집 개만도 못한 신세가 되며 민족이 살아나갈 길은 투쟁에 있다는 것, 혁명을 해야 살길이 열리고 혁명을 하지 않으면 자자손손 마소보다도 못한 노예살이를 하게 된다는 것을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이었고 그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만들었다.≫(≪혜산사건≫을 겪으면서, 세기와 더불어 6권)

≪그가 그처럼 의리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은 신념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신념이 강한 사람은 도덕과 의리도 잘 지키는 법이다. 혁명가는 정의를 옹호하고 불의를 증오하며 진리만을 말해야 한다는 것, 혁명하는 사람들이 동지들과 인민들에 대한 의리를 잘 지키자면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가 지니고 있던 생활의 신조였다.≫(≪혜산사건≫을 겪으면서, 세기와 더불어 6권)

≪쏘련과 일본사이에 중립조약이 체결되었을 때에도 우리 대오에서는 도주자가 생기었다. 우리의 적지 않은 대원들속에는 쏘련에 대한 의존심 즉 지금말로 하면 사대주의가 있었다. 일부 지휘관들이 민족자주의식을 배양하는 교양에는 힘을 덜 돌리고 쏘련옹호, 쏘련중시, 쏘련제일의 사상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다나니 쏘련만 믿고 의존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폐단이 생겨났다. 말하자면 쏘련의 지지나 도움이 없이는 조선독립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처럼 내가 민족자주의식이야말로 혁명가의 신념을 좌우하는 하나의 결정적 요인으로 된다진리를 절감한 때는 일찍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혁명을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자주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자력독립의 관점을 확고히 가지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도주자나 변절자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자신이나 자기 나라 인민의 힘은 하찮은 것으로 보면서 큰 나라의 덕으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보려고 시도하던 사람들가운데서는 낙오자들과 투항분자들이 생겨났다.≫(≪혜산사건≫을 겪으면서, 세기와 더불어 6권)

7권

강돈≪강돈의 영웅적 생애는 학습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 혁명실천에서도 모범을 발휘하게 되고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위훈의 창조자가 된다진리를 말해줍니다. 내가 알고 있은 빨치산영웅들은 예외없이 일상생활에서 학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학습을 게을리한 사람들속에서는 후대들앞에 모범으로 내세울만한 영웅들이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정신적 양식을 풍족하게 마련하고 있은 사람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반드시 혁명을 위해 큰 위훈을 세우기 마련입니다. 인민무력부간부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수복영웅도 학창시절에 공부를 착실하게 했다고 합니다.≫(마당거우밀영, 세기와 더불어 7권)

≪나는 고난의 행군을 총화하면서 아무리 원칙에 맞는 전술이라고 해도 그것을 적용하는데서는 교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진리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었습니다.≫(고난의 행군, 세기와 더불어 7권)

최희숙≪원쑤들에게 두 손을 묶이우고 두 눈을 빼앗긴 최악의 상태에서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한 최희숙의 말속에는 얼마나 견결하고 자랑스러운 혁명적 기개가 높뛰고 있습니까.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진리성을 확신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며 혁명절개가 강한 투사들만이 할 수 있는 명언입니다. 그 말은 여투사 최희숙의 한 생의 총화이기도 하였습니다.≫(여투사들의 혁명절개, 세기와 더불어 7권)

≪이념의 차이나 재산의 유무는 인간을 평가하는데서 절대적 기준으로 될 수 없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사람평가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조국애와 민족애, 인민애, 인간애일 것입니다. 인간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 민족을 사랑하며 민족애가 강한 사람이 조국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의 법칙이며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진리를 무시하게 되면 사람과의 사업에서 좌우경을 범하게 됩니다. 한때 항일혁명투쟁역사를 소개선전하는 일부 글들에서 유통사를 악질적인 반공지주라고 규정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확한 평가라고 볼 수 없습니다. 출신과 경력만을 보고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그들의 운명을 경솔하게 다루게 되면 사람과의 사업에서 엄청난 과오를 범할 수 있습니다. 애국자를 매국자로 볼 수도 있고 혁명의 지지자를 반혁명분자로 몰아붙일 수도 있으며 그와 반대로 매국자를 애국자로 보게 되고 반혁명분자를 혁명의 지지자로 잘못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중국인지주 유통사, 세기와 더불어 7권)

8권

≪혁명이란 사상의지나 규율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의지, 도덕의리와 함께 낭만적인 감정정서를 가지고 하는 것이 혁명입니다. 나서 자란 고향산천과 부모처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의 감정을 떠나서 애국주의가 싹터날 수 없습니다. 자기 집단에 대한 애착과 헌신의 감정도 없이 공산주의사상과 같은 심원한 사상을 영원한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단순한 생각입니다.≫(미래에 대한 낙관, 세기와 더불어 8권)

≪항일혁명의 승리는 혁명은 총대를 가지고 해야 한다진리의 정당성을 확증해주었으며 해방 후 우리로 하여금 새 조국건설과 사회주의위업을 수행하기 위한 투쟁의 전행정에서 혁명적 건설노선을 확고히 틀어쥐고 강유력한 혁명무력을 건설하는데 모든 힘을 다 바치게 하였습니다.≫(혁명가 김책, 세기와 더불어 8권)

김정일이 어려서부터 대가 바르고 배짱이 센 품성을 지닐 수 있은 것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중요하게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정의롭고 신념이 강한 투사들의 품에서 투쟁과 생활의 참다운 진리를 배우며 아무런 구김살도 없이 씩씩하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혁명의 뿌리를 가꾸며, 세기와 더불어 8권)

≪안길의 강의를 여러 번 들어보았는데 아주 구수했습니다. 오랜 정치일군인 그는 정치과목강의도 독특한 방법으로 하였습니다. 그의 강의는 해학과 비유로 일관되어 있어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웃음속에서 혁명의 진리를 터득하였습니다.≫(해방의 날을 그리며, 세기와 더불어 8권)

학습도 전투라는 말은 우리가 실지생활에서 찾아낸 진리입니다. 혁명가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순간도 학습을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학습을 하지 않으면 사상에 독이 쓸고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민을 믿고 인민이 우리를 믿고 온 민족이 우리를 지지하는 한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는 이 진리, 이 확신은 우리에게 천백 배의 힘과 용기를 안겨주었으며 일제격멸의 최후결전에로 우리를 세차게 떠밀어주었습니다.≫(대일작전의 돌파구, 세기와 더불어 8권)

≪항일혁명의 전 노정은 인민대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고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광복성전의 1선에 내세워준 사랑과 믿음의 역사이며 인민대중자신이 자기의 피와 땀으로써 당당한 역사의 주체임을 과시해온 위대한 투쟁의 창조적 역사입니다. 이 인민과 인민혁명군의 투사들이야말로 새 조국 건설을 담당하게 될 우리 혁명의 주체였습니다. 인민의 사랑과 지지속에서 인민의 힘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여 투쟁할 때 그 어떤 준엄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으며 그 어떤 어려운 투쟁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찾아낸 귀중한 진리입니다.≫(개선, 세기와 더불어 8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불멸의 노작 <세기와 더불어>는 참으로 심오하고 풍부한 진리의 보고이다. 그 수많은 진리 중에서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회고록을 통해 우리에게 깨우쳐주시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무엇인가. 바로 이민위천, 민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 데 대한 주체의 원리이다.

≪이민위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었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 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 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한 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한 생활의 본령이었다.≫(머리말, 세기와 더불어 1권)

≪나는 나의 글이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면 천하를 얻고 백 번 승리하며 인민을 멀리하고 그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 번 패한다진리, 생과 투쟁의 교훈을 후세에 남기게 되기를 바란다.≫(머리말, 세기와 더불어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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