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10월 7일(월)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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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강의 (10)
- 제24장 ≪거족적인반일항전으로≫

통일여명 편집위원 한철규

 

안녕하십니까. ≪세기와 더불어≫강의 열 번째 시간,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간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해 온 이 강좌가 어느덧 9주를 넘기고 10주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러 모로 부족한 강좌이건만 그동안 적지않은 동지들이 회고록연구에 참여하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실 우리에게 젊은 패기가 없었다면 이 강좌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을 감히 강의한다는 것만큼 부담스러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강좌의 내용과 형식,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도전과 혁신의 뜻을 헤아려 너그럽게 보아주기 바랍니다. 우리는 동지들과 함께 한 이번 강좌를 통해서 회고록의 심오하고 방대한 내용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강좌를 주관하면서 얻은 성과는 향후 우리의 선전, 조직, 투쟁 사업을 한단계 전진시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한편 이 강좌가 끝나면 그동안 수렴된 의견과 비판에 기초하여 ≪인터넷회고록강좌완성판≫을 제작, 메일링리스트나 시디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학습하는 장은 마지막 장입니다. 8개 절로 되어 있는 이 24장은 당연히 회고록의 체계에서도 결론에 해당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고록 ≪항일혁명편≫ 8권의 대단원이니만큼 응당 항일혁명투쟁의 총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동지들이나 많은 민족민주운동가들이 회고록 중에서도 특히 이 부분을 열심히 반복해서 학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간고한 항일혁명 20년, 성스러운 항일무장투쟁 15년이 응축되어 조국광복의 대사변으로 폭발하는 격정과 환희의 순간이 바로 이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많은 분량이 아니므로 하나하나의 절을 짚어가며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군정학습에 참가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전투훈련을 벌리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

≪해방의 날을 그리며≫조선인민혁명군이 조, 쏘, 중의 국제연합군을 꾸려 원동에서 군정 학습과 훈련을 맹렬하게 전개하던 시절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회고록의 마지막 장의 첫번째 절이 조선인민혁명군의 학습과 훈련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거족적인 반일항전≫을 준비하기 위해 가장 우선하여야하고 가장 중시하여야 할 과업이 바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치군사적 준비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조선인민혁명군은 단순한 군대가 아니라 바로 이고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후결전만이 아니라 새조국건설의 주력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조선인민혁명군을 골간으로 해서 반일항쟁대오가 구축되고 건당, 건국, 건군사업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치군사적 자질과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학습과 훈련에 중점을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을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여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데 대한 전략적 방침은 소할바령회의하바로프스크회의의 주된 결정사항입니다. 전략적 방침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구체적인 집행대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원동의 ≪88야영학교≫에서 진행된 군정학습, 군정훈련은 바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수준과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대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학습과 훈련 과정을 통해서 조선인민혁명군은 모두 한단계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정치군사간부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그 학습훈련강도가 쎌 수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그 당시 우리가 사용한 교육제강은 정규적인 군사교육기관들에서 취급한 교육내용보다 폭도 더 넓고 심도도 더 깊었습니다. 그리고 더 다방면적이었습니다. 훈련강도도 정규군사학교들보다 몇 배나 더 셌습니다.≫라고 회상하시었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소부대작전과 정찰활동을 적극 전개하면서 이러한 과정을 수료하였으니 말그대로 학습과 훈련이 전투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정치교육과 군사교육을 똑같이 중시하시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후결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군사교육을 강화하여야 하겠지만, 조선인민혁명군은 일제와의 판갈이싸움만이 아니라 광복이후 새조국건설에서도 주력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지원≫사상에 의거하여 멀리 내다보시고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시는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때 제일 고심하시었던 문제의 하나가 ≪해방된 조국에 나가 새 조국 건설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고 회상하시었습니다. 당을 창건하고 국가를 건립하고 무력과 경제, 문화를 건설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간부입니다. 그럼 위대한 주석님께서 부족한 간부문제를 어떤 방도로 해결하려 하시었나요? 우리 민족민주대오도 늘상 간부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만이 아니라 10년 전도 그러했고 10년 후도, 20년 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특히 우리 민족민주대오가 지금처럼 간부육성, 후비육성에 노력하지 않고 준비된 간부만 찾는 상황, 비유하면 씨앗을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잘 가꾸려 하지 않고 열매만 따먹으려 하는 현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혁명가는 사상학습, 조직생활, 실천투쟁의 3대 과정을 통해 혁명적 세계관을 확립하고 선전, 조직, 작전에 유능한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첫째 공정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인 바로 학습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군대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한편 어떤 대오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오를 양적으로 확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오를 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다시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대원들의 수준과 역할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오의 체계를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것입니다. 양적인 확대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강화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체계를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기본은 대원들의 수준과 역할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원들의 수준과 역할이 높아지면 체계도 더욱 높은 수준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구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전체 조선혁명의 주체역량 중에서도 주력인 조선인민혁명군의 수준과 역할을 높일 데 대하여 주목하시었으며, 그 방도로 군정학습과 군정훈련을 채택하시었던 것입니다.

이 강사가 항일무장투쟁사를 학습하던 초기에는 그 마지막단계에 군정 학습과 훈련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데 대하여 깊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혹 육과송전투에서 오중흡동지가 전사한 것에 대하여 크게 가슴아파하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조국광복이 멀지않은 조건에서 주체역량을 보존하는데 역점을 두신 것이 아닌지, 그래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원동지역에 근거지를 옮기고 학습과 훈련에 중심을 두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왜 국제연합군을 꾸렸는지, 원동에 훈련기지를 구축하였는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선인민혁명군의 수준과 역할을 높이는 문제와 학습과 훈련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현대조선역사를 본 후로 상당한 세월이 흘러 이 강사 자신도 사상학습과 조직생활, 실천투쟁을 통해 단련되고 ≪세기와 더불어≫라는 불멸의 항일혁명역사교재가 발간되면서, 새롭게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고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바로 학습의 중요성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설파하셨듯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상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람, 그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규제하는 것이 바로 사상인 것입니다. 이 주체의 사상론혁명적 수령관과 함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천재적인 사상이론활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쏘련 및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에 대하여도 바로 주체의 사상론에 근거하여 혁명의 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명쾌하게 해명하시었습니다. 사상사업을 선행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주의위업수행의 선행과제이며 생명선인 것입니다. 어디 사회주의위업수행 뿐이겠습니까. 우리의 통일운동, 혁명운동에서도 사상의 역할은 결정적입니다. 오늘 주체의 통일혁명운동이 세계 최강의 제국주의국가와 맞서 연전연승할 수 있는 비결도 다름아닌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통일혁명 사상과 이론에 있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 남측의 통일혁명운동이 정세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침체와 답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비결도 다름아닌 그 주체들인 주체주의자들과 민족민주운동가들이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통일혁명 사상과 이론에 대하여 제대로 깊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지난 3년간 전심전력하여 사상사업, 선전사업을 전개하고 지금은 이런 인터넷강좌까지 개설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90년대 남측혁명운동의 표류와 침체의 근본원인이 사상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급변하는 조국의 통일혁명정세에 우리 남측의 혁명대오가 발을 맞추어 결정적 승리를 앞당기는 비결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상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체계적이고 과감한 사상개조사업을 통해 준비된 주체주의자, 민족민주운동가를 대거 육성하지 않고서는, 정치사업으로 광범한 대중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결코 통일혁명의 승리를 이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고 핵심이 결정하는 것이고 그 사람과 핵심의 사상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상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조직문제가 해결될 수 없고 조직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투쟁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투쟁이 대중화되지 않는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뼈대가 되는 조직을 결성하고 강화하여야 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바탕이 되고 뿌리가 되는 사상학습, 사상운동을 맹렬히 전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는데 우리 혁명의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취하신 전략적 방침, 실천적 대책이 다름아닌 학습이라는 점을 언제나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대중단체나 일상생활 속에서 학습을 홀시하는 동지들은 특히 이 점에 유념하여야 할 것이며 지금부터라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학습제일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전투적인 학습을 생활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학습이 중요하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붙들고 읽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통일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조선의 혁명가인 만큼 무엇보다도 조선혁명의 지도사상이고 지도이론인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노작을 학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위대한 주석님의 한생의 총화이고 위대한 장군님이 심혈을 기울여서 편찬하신 불멸의 회고록을 학습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회고록에는 우리 혁명가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습니다. 지도사상이 있고 혁명이론이 있으며 영도방법이 있습니다. 대충 보면 그게 그것인 것 같지만, 우리 인터넷회고록강좌가 시범을 보인 것처럼 입체적으로 깊이 분석하면 참으로 방대한 분야의 심오한 진리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수박의 겉을 핥아서는 결코 수박맛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수박의 겉을 핥고 수박맛이 이렇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형식주의적인 학습방법으로는 절대로 회고록의 진리, 노작의 진리, 주체의 진리를 터득할 수 없습니다. 마치 수박을 쪼개서 그 붉은 속을 맛보고 씨까지 깨물어 먹어보아야 비로소 수박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회고록과 노작은 보고 또 보아야, 사색하고 또 사색하여야, 연구하고 또 연구하여야 비로소 그 풍부심오한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우리 동지들이 깨닫게 하는데 이 강좌의 근본목적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의임무친필원고오늘 우리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통일혁명 사상과 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듯이 당시 원동에서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조선혁명 사상과 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습니다. 특히 위대한 주석님의 불멸의 노작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사상에서 주체를 확립하고 조선혁명의 노선과 전략을 터득하는데서 결정적 의의를 가지는 가장 중요한 교재였습니다. 일부 쏘련간부들은 이 노작을 강의안에 넣는 것에 대하여 시비를 걸었지만 임춘추와 같은 혁명가는 도대체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의 수령의 노작을 가지고 학습하는 것을 왜 시비하느냐며 그대로 진행하였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사상에서 주체를 확립하기 위한 원동에서의 학습과정 자체도 주체적인 입장을 철저히 견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당시 ≪조선혁명가는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는 연설을 하시면서 조선의 역사, 문화, 지리에 대하여 간명하게 개괄하시었으며 어려서부터 만주에 살다보니 조국에 대하여 잘 모르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조선에 대하여 잘 알고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었습니다.

조선을 잘 알지 않고서는 조선을 사랑할 수 없으며 조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참다운 혁명가가 될 수 없는 법입니다. 이를테면 우리 나라는 ≪자원빈국≫이라고 잘 못 알게 된다면 미제국주의와 그 어용나팔수들이 만들어 퍼뜨린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논리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그 연설에서 강조하시었듯이 우리 나라는 금은보화와 철광석, 석탄, 마그네사이트 등 지하광물이 무궁무진한 ≪자원부국≫인 것입니다. 이는 최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영도아래 북조선의 서해안과 동해안, 그리고 평양, 안주를 비롯한 내륙곳곳에 원유가 무려 50억톤이나 매장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생산해내는 곡물이나 채소, 과일, 그리고 연근해 어류, 패류들은 세계에서도 그 질이 제일인 상등품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 남측은 원유를 비롯한 대부분의 자원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곡류와 어류까지도 수입품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노동자, 민중들이 어렵게 벌어들인 외화가 이렇게 빠져나가는 것도 문제지만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 의존도가 높다보니 그만큼 정치에서도 자주적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미군을 철거시키고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서서 제 발로 걸어나가는 자립경제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임춘추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당시 강의를 맡았던 임춘추, 안길, 김경석, 이봉수 등의 강사들에 대하여 평가하시었습니다. 조선의 혁명가들은 군사업이든 정치사업이든 교육사업이든 무엇이든 맡아 해내는 전천후 혁명가였던 것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풍부한 유격투쟁의 경험을 총화하는 한편 현대식 전법들을 하나하나 체득해 나갔습니다. 사격훈련, 수영훈련, 낙하훈련에 무선통신훈련까지 하였습니다. 특히 낙하훈련에 참여하려고 체소한 여성대원들은 배낭에 벽돌까지 넣고 뛰어내렸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주보중이 낙하훈련에 참여한 것을 높이 평가하시었지만, 주석님 자신도 여러번 낙하훈련에 참여하시었습니다. 주석님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회상하십니다. 우리의 주석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해방의 날을 그리며 아름찬 학습, 훈련 과정을 긴장되게 전투적으로 수행하며 자신들을 튼튼히 준비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 때를 회상하시면서 ≪시간을 앞당기고 미래를 앞당기는 것은 공격정신입니다. 항일혁명의 최후승리를 내다보던 바로 그 시절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혁명적 낙관과 신심에 넘쳐 군정훈련을 다그치며 조국해방의 날을 앞당겨 나갔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관부연락선 천정에 씌여진글≪전민항쟁의 불길은 온 강토에≫는 지난주에 주해를 달아 공개되었듯이 최후결전에 임하시며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수립하신 전민항쟁전략에 대한 내용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조국광복회10강령은 전민항쟁선언이고 9월호소문은 전민항쟁호소문이라고 전제하시면서 조국해방의 3대노선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과 대중단체건설의 정형, 그리고 비밀무장조직들의 활동정형을 요해하신데 기초하여 내놓으신 조국해방의 3대노선이란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그에 배합한 전인민적 봉기, 배후연합작전으로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이룩할 데 대한 노선≫입니다. 위대한 주석님은 이 노선에 대하여 해설하시면서 그 실현가능성의 근거로 다름아닌 민심을 드시었습니다. 백두산으로 향한 민심, 일제치하에서는 더 못살겠다는 민심, 유격대를 찾아가 김일성장군의 부하가 되어 왜놈들과 결판을 내자는 민심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러시면서 바로 관부연락선의 천장에 ≪조선독립대장 김일성≫이라는 글발이나 서울남대문의 ≪근일 김일성대장 조국개선≫의 글을 구체적인 예로 드셨습니다. 이 강사도 10년이상 궁금해 하던 바로 그 글발을 백두산편집부가 발간한 피디에프≪세기와더불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민항쟁의 전략을 내놓으신 점도 그렇지만 전민항쟁의 시기를 선택하신 것도 다름아닌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거하시는 이민위천, 민거백승의 사상이야말로 위대한 주석님의 혁명사상의 진수이며 바로 회고록의 종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최후결전을 위한 작전계획의 골자를 ≪우리 주력부대가 신속히 국내에 진출하여 모든 도들을 차지하고 거기서 전투행동을 벌이는 한편 전국에 호소문을 내어 산에 숨어있는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집결시켜 무장대오를 조직하도록 하며 여기에 배합하여 전인민적 무장봉기를 일으켜 일거에 적들을 요정내고 나라를 해방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하시었습니다. 그러시면서 3.1민중봉기 때 200여만이 떨쳐나섰는데, 최후결전을 한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민중이 항쟁마당에 달려나오겠는가고 강조하시었습니다. 결국 승산은 조선인민혁명군을 골간으로 하는 무장대오와 반일항쟁에 떨쳐나선 애국민중의 결합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은 오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주체주의자들을 골간으로 하는 민족민주대오와 항쟁에 떨쳐나선 반미항쟁에 떨쳐나선 애국민중의 결합에 바로 통일혁명의 비결과 승산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보적 대중정당을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기 위해 투쟁하는 것도 다름아닌 바로 이 전민항쟁을 추동하기 위한 데 있는 것입니다. 전민항쟁이야말로 혁명가와 기회주의자를 가르는 시금석이라는 점, 언제나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시면서 세가지 측면에 주목하시었습니다. 하나는 국내에 있는 비밀근거지들을 전민항쟁의 군사정치적 거점으로 더욱 튼튼히 다지면서 새로운 임시비밀근거지를 꾸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내에 더 많은 소부대들과 소조들,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여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게 전민항쟁역량을 조국해방작전에 철저히 준비시키는 것이었으며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국내의 전민항쟁역량에 대한 통일적 영도를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주석님의 ≪전민항쟁이란 무장봉기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활동거점이 없이는 성사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라는 교시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낭림산줄기를 비롯한 큰 산줄기들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활동기지, 작전기지, 후방기지이자 전민항쟁역량의 무력적 지탱점으로 될 비밀근거지들을 꾸리는 사업에 역점을 두신 까닭을 깊이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오늘에는 어떤 곳이 전민항쟁의 거점이 될 수 있는지를 크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발표된 최성원동지의 논문에서 전민항쟁의 전략적 요충지에 대한 설명을 주의깊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위대한 주석님께서 국내항쟁운동에 대한 통일적 지도를 실현하는 영도기관을 꾸리는 문제에 대하여 강조하신 부분을 깊이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 국내항쟁운동에 대한 통일적 지도를 실현하는 영도기관은 무엇인가요? 혁명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영도조직이란 다른 아닌 당이며 국내혁명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영도조직은 바로 국내당공작위원회입니다. 이에 대하여는 회고록 5권의 ≪국내당공작위원회≫편에 상세히 밝혀져 있으니 반복해서 학습하기 바랍니다. 그런데 국내당공작위원회는 조선혁명의 최고영도기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조선혁명이 당시의 특수한 환경에 의해 국내에 한정하지 않고 만주까지 포괄하며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내당공작위원회가 소속되고 국내당공작위원회를 지도하는 정치조직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국제당인가요? 코민테른이라고 불리워지는 제3국제당은 국제적인 반파쇼운동이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포괄하여 전개되자 주동적으로 해산하였습니다. 또 국제당이 어찌 조선혁명을 책임진 주인일 수 있겠습니까. 바로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입니다. 사상의 영재이시고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 명장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 수위에 모신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가 바로 조선혁명의 최고정치조직, 최고영도조직인 것입니다. 국내당공작위원회국내의 혁명운동을 통일적으로 영도하는 조직이고 각 도나 시, 군의 당위원회해당단위를 통일적으로 영도하는 조직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당조직을 통일적으로 영도하는 조직이 바로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항일혁명시기 사실상의 당중앙은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입니다. 우리는 항일혁명사를 학습하면서 언제나 이 점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내용을 이와 결부지어 연구할 때 그 내용을 깊이 터득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항일혁명사를 연구하는 것은 오늘의 통일혁명의 사상과 이론을 터득하는데 그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 오늘의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의 영도를 받는 국내당공작위원회는 무엇이고 각급 당위원회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명쾌히 답변을 할 수 없는 한, 회고록학습을 충실히 하였다고 할 수 없으며 이 인터넷회고록강좌도 제대로 수강하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인터넷회고록강좌는 바로 이 점을 해설하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체 91년, 서기 2002년은 전위당의 신년서한이 발표되지 않은 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위당이 시사한 논제, 우리 운동대오내의 최대화제가 바로 ≪통일적 혁명영도체계≫입니다. 이 개념을 터득하지 않고서는 조선노동당과 전위당의 관계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으며 통일혁명의 새로운 정세에 맞는 전국적 관점의 통일혁명전략을 수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기관차가 혁명이고 혁명의 기관차가 당인만큼 오늘 우리 혁명가들이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는 바로 우리 혁명의 기관차가 무엇인가를 옳게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여명 편집국은 인터넷회고록강좌를 진행하면서도 이 문제를 다각도로 깊이 분석하였으며 이어서 인터넷당건설론특강을 기획,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혁명을 심장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 동지들이 이 강좌, 특강을 계기로 당을 심장에 품고 살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김일성대의 활동에 대한 일제의 비밀문건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전민항쟁을 지도하고 추동하는 지하조직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백두산회≫를 예로 드시었습니다. 1942년 여름 함북도 성진(김책)에서 결성된 이 조직은 와세대대학에 적을 둔 사람이 지도하였다고 합니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흠모하며 백두산의 조선인민혁명군을 추종하며 명칭도 ≪백두산회≫로 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2000년 4월 15일부터 해서 그동안 백두산3대장군의 위대성선전을 전개한 백두청년회야말로 오늘의 백두산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경성사건≫을 언급하시면서 경성제국대학내에 무장봉기준비결사가 있었음을 특별히 지적하시었습니다. 오늘의 서울대학도 그 당시 못지않게 유산자들의 아들딸들이 들어가는 곳이지만 역시 적지않은 혁명가들이 배출된 곳입니다. 오늘 이 땅의 수재들은 어떤 전민항쟁결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기대가 됩니다. ≪남부군≫의 사령관을 유명한 이현상은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권영벽, 박달을 만나 위대한 주석님의 전민항쟁구상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현상은 20여일간 단식하여 생긴 병으로 가석방되었는데, 권영벽, 박달에게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김삼룡에 대하여 ≪강의한 신념과 능숙한 조직력을 가진 당활동가였으며 나라와 민족과 공산주의위업을 위해 한 생을 바친 애국자였습니다≫라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해방이후 남로당이 비법화되어 정세가 험악해졌을 때도 끝까지 자기의 초소를 지키며 지하에서 남조선의 당사업을 책임적으로 지도한 그를 인상깊게 추억하시었습니다. 김삼룡에 대한 회상교시는 오늘 간고한 지하투쟁을 전개하는 우리 남측혁명가들이 특히 유념하여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소부대활동시기 조선인민혁명군이 사용한 무전기부속품 ≪대일작전의 돌파구≫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만주와 국내의 넓은 판도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조국해방작전에 필요한 정찰자료를 수집한 데 대한 내용입니다. 회고록을 학습하면서 항일무장투쟁의 전성기의 대부대활동과 비교하여 마지막 시기의 소부대활동이 경시되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영활한 소부대활동을 통해 당조직, 조국광복회 조직을 수많이 건설하고 강화하며 전민항쟁역량을 적극 준비하는 한편 일제에게 군사정치적 타격을 가하고 특히 군사정찰활동을 훌륭히 수행한 것은 결코 보천보전투나 대홍단전투에 못지않는 커다란 위훈인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의 이에 대하여 ≪우리가 수집한 수백 수천 건에 달하는 정찰자료들은 대일작전의 준비와 최후승리에 큰 도움으로 되었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이러한 대담하고 폭넓은 정찰활동이 없었더라면 100만 관동군을 격파하는 대일작전이 그토록 짧은 기간에 승리적으로 결속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회상하시었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이 민중의 방조를 받아 전개한 대담하고 영활한 정찰활동이야말로 대일작전의 돌파구였던 것입니다. 동지들은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남만출신의 한 처녀무전수의 영웅적 최후에 대한 일화를 큰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정찰조가 적들에 포위에 들었다, 마지막 정보자료를 보내니 빨리 받아달라, 적들이 무전기가 있는 산을 포위하고 접근하고 있다, 젊은 대원이 먼저 나가 결사전을 벌이다가 전사했다, 뒤이어 노대원도 전사했다, 무전수인 자신도 자료송신을 끝내고 수류탄묶음을 폭파시켜 달려드는 적들을 한놈이라도 잡고 죽겠다 . . . 대일작전의 돌파구는 이런 영웅적인 항일전사들, 영웅적인 항일투쟁에 의해 열린 것입니다. 읽을 때마다 언제나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는 처녀무전수의 일화와 같은 영웅적 일화를 심장에 새기고 살아가는 한, 우리 청년전사들은 오늘의 항일전사, 21세기 혁명전사로서 끝까지 변함없이 투쟁할 것입니다.

이극로≪민족의 얼≫1940년대 전반기 우리 나라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해 벌인 줄기찬 투쟁을 총화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신채호, 한용운, 이기영, 백남운, 계응상, 이극로 등 우리에게 익숙한 애국적 지식인들의 신념과 투쟁을 구체적으로 열거하시면서 민족의 사상과 정신, 얼과 넋을 지키는 투쟁이 왜 중요한가를 인상적으로 회고하십니다. 특히 조선어학회사건의 주동인물인 이극로에 대한 일화는 오늘 우리 말과 글이 기형화되고 병들어가는 남측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극로의 조선어학회활동의 배후에 최일천을 중심으로 하는 백두산에 줄을 댄 지하조직이 있었다는 점과 이극로를 비롯한 조선어학회회원들의 영웅적인 투쟁의 바탕에는 백두산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이 있었다는 점은 많은 점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극로를 비롯한 어학회회원들은 보천보전투 소식을 듣고 주머니를 털어 소주 한 병을 사다가 나누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민족의 얼을 지킨 인물이고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 모두에게 신뢰를 받는 이극로를 4월연석회의 때 주석단에 앉혔으며 회의참가자들의 이름으로 전체 조선민중에게 보내는 ≪전조선동포에게 고함≫이라는 문건도 낭독하게 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수많은 청년학생들과 학자들, 종교인들, 교율자들, 문예인들, 언론인들이 전민항쟁조직들에 망라되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반대하여 끝까지 과감하게 싸웠다고 하시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성공한 지식인들은 예외없이 다 자기 조국과 민족앞에 충실하고 신념과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지식인들에게 조국과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며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혁명적 신념을 간직할 데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반일애국역량과의 단합을 위하여≫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일제와의 최후결전을 앞두고 공산주의세력과 민족주의세력의 대단합을 이룩하시기 위하여 어떤 노선을 제기하시고 어떤 노력을 하시었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공산주의세력과 민족주의세력이 단합을 이룬 기치는 다름아닌 애국애족과 반일항쟁이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카륜회의이래 언제나 반일민족통일전선을 가장 중요한 전략적 노선으로 제기하시었으며 항일혁명 전기간 이를 전략적으로 추진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의 이 통일전선노선은 특히 1936년 5월 5일 우리 나라의 첫 상설적인 반일민족통일전선체인 조국광복회를 창건하시고 백두산을 근거지로 보천보전투무산지구전투를 전개하던 나날에 적극적으로 전개되었으며 1940년대 전반기에는 마침내 꽃을 피웠습니다. 이 시기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주도하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에 공산주의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민족주의세력이 거의나 망라되어 참여했던 것입니다. 결국 식민지민족해방투쟁에서 노는 무장투쟁의 결정적인 역할에 주목하시어 군과 무장투쟁을 앞세우며 항일혁명투쟁을 전개하신 위대한 주석님의 사상과 전략, 혜안과 지략이 풍성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이 보천보전투와 같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지 않았다면 결코 김구와 같은 완고한 반공주의자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통일전선노선에 합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통일전선이란 이처럼 주체가 강하고 그 역할이 높아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법입니다. 1948년 4월연석회의에는 김구, 김규식, 조소앙, 최동오, 엄항섭, 조완구, 김월송 등 이름있는 민족주의자들이 모두 참가했습니다. 김원봉, 여운형, 홍명희, 이극로도 모두 평양을 찾아오고 또 국가의 중책을 맡아 새조국건설에 헌신하였습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은 항일혁명시기의 조선인민혁명군이 전개한 항일무장투쟁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에 기초한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김구와 같은 민족주의자들이 반공대신 연공을 하며 하나의 통일전선에 합류한 것에 대하여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항일의 나날로부터 뜨겁게 간직해오던 애국의 열정이 우리와 김구를 하나로 융합시킨 것입니다.≫라고 뜻깊게 지적하시었습니다.

이인모≪현해탄 너머에서도≫는 말그대로 일본에서 전개된 전민항쟁에 대한 회상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국내에 강력한 전민항쟁역량을 꾸리는 한편 일본본토 안에서 전민항쟁운동의 일익을 담당하는 것에 대하여 각별히 주목하시었습니다. 이 당시 일본땅에서의 활동은 일본에 이미 조직되어 있는 조국광복회조직들과 반일조직들을 조선인민혁명군이 최후공격작전을 개시할 때 그에 합세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과 일본군의 군사정보를 정찰하는 것,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일본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은 항일무장투쟁과 반일조선인운동을 결합시키는 역할, 곧 일본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무질서하게 진행되는 조선사람들의 대중운동에 대한 통일적 영도를 보장하는 동시에 이 운동을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게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백두여장군 김정숙동지와 박달은 유망한 유학생들을 물색하여 일본에 파견하는 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때 선정된 인물이 바로 이인모입니다. 이인모는 풍산지역 출신들이 만든 풍우동경고학생친목회 성원들에게 조국광복회 10대강령과 창립선언을 선전하면서 이 친목회를 반일애국단체로 개편시켰습니다. 1944년에 일제경찰에 발간된 가나자와조선인학생민족주의그룹도 바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치공작원인 이철수가 조직한 항쟁조직이었습니다. 오까야마 6고등학교의 조선인학생친목회를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으로 개편한 민덕원이나 북해도에서 징용된 조선인노동자들을 반일조직에 묶어세운 김태현(가명)이나 효고현의 한 공장에서 징용조선노동자들로 협화훈련대특별청년회를 조직한 고영석(가명) 등은 조선인민혁명군이 파견한 정치공작원입니다. 이런 정치공작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일본땅에 조밀하게 꾸려진 조선인들의 항쟁조직들이 조직될 수 있었던 것이며 일제의 군수품생산을 저애시킨다거나 징용노동자들을 집단도주시키는 등의 반일투쟁이 줄기차게 전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영향밑에 일본땅에 꾸려진 전민항쟁조직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실천투쟁을 통하여 민족자주의식을 높이고 일제의 패망을 앞당기는데 기여하였습니다.≫라고 평가하시면서 ≪이런 역사가 없었다면 총련운동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합니다. 총련이 흥하는 것은 그 터가 든든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최후결전의 날≫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영도아래 진행된 조국광복을 위한 최후결전의 준비와 그 투쟁에 대한 내용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다년간 연마해온 유격전법을 완성하고 이를 대규모정규작전에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탐구하는 한편 조국해방작전에 절실히 필요한 정찰훈련, 공병훈련, 무전훈련과 항공육전대훈련을 중점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쏘련군대가 대독전쟁기간에 창조한 최신전쟁경험도 충분히 연구하고 놓은 수준에서 익히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간백산일대에 집결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예정된 통로로 진출하여 각 도를 해방하며 원동의 훈련기지에 집결되어 있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평양지방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항공편으로 신속히 진출하여 이미 꾸려놓은 비밀근거지들을 차지하고 전격적인 군사작전을 벌이는 한편 국내에서 활동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와 정치공작원들은 항쟁조직을 대대적으로 늘여 민중들을 전민항쟁에 불러일으킴으로써 온 민족이 이르는 곳마다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진격에 합세하는 작전계획을 수립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이 작전계획에 대하여 ≪나는 지금도 이 작전계획이 그 당시 우리 나라가 처한 군사정치정세하에서 조국의 해방을 단시일내에 이룩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의 모든 도들에 낙하산을 타고내린 빨치산부대들이 왁왁 쓸어나와 전민항쟁부대들과 함께 사방에서 적들을 답새길판인데 무엇이 어려울 것이 있었겠습니까.≫라고 회상하시었습니다.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계획과 관련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필 1945년 8월 9일 쏘련이 동맹국들과의 협약에 따라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일본군대와 교전상태에 들어가자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에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할 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시었습니다. 간백산밀영을 최후공격작전의 출발진지로 차지하고 있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대오를 늘이면서 작전계획에 예견된대로 진격하였으며 두만강연안에 집결한 부대들은 일시에 적의 국경요새들을 돌파하고 경원, 경흥 일대를 해방하였으며 웅기방향으로 계속 전과를 확대하면서 국내의 넓은 지역을 해방하였습니다. 그리고 해안상륙부대의 선견대로 활동하던 일부 부대들은 지방부대와의 긴밀한 협동작전으로 웅기에 상륙하였으며 전투성과를 확대하면서 청진일대에로 진격하였습니다. 다른 부대들은 금창, 동녕, 목릉, 목단강을 해방하고 적들을 격멸하기 위한 추격전을 벌이면서 관동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두만강 대안에로 진출하였습니다. 이미 국내에 파견되어 활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은 인민무장대들과 무장봉기조직들, 광범한 인민들을 무장폭동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전국각지에서 일제침략군과 헌병, 경찰기관들을 습격소탕하면서 적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이었으며 진격해오는 인민혁명군부대들을 적극 지원하였습니다.

선봉항에 상륙하는 조선인민혁명군

인민무장대는 전국도처에서 각이한 명칭을 가지고 일제를 격멸하는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각 도의 거의 모든 지역들에서 인민무장대가 활동하였습니다. 함경북도에서는 경흥, 웅기 지구들에 조직된 인민무장대가 개전초기부터 조쏘연합군과 합세하여 잘 싸웠습니다. 청진, 길주, 성진 지구의 무장부대들은 적패잔병들을 소탕하고 8.15해방 전에 벌써 무장으로 공장들을 장악하였으며 경찰기관들을 기습소탕하였습니다. 양강도와 함경남도 일대의 항쟁조직들은 쏘련군이 진격해오기 전에 수많은 경찰서와 적통치기관들을 습격소탕하였습니다. 강원도의 철원, 법동 지구와 평안북도의 염주, 삭주 지구항쟁조직들을 잘 싸웠습니다. 신의주지구의 항쟁조직들은 총공격명령이 내린 다음날부터 경찰관파출소와 국경경비초소들을 들부시고 도경찰부와 도청을 점거하였으며 비행장에 박혀있는 패잔병들을 무장해제하여 8월 하순에 진주해온 쏘련군사령부에 넘겨주었습니다. 평안남도와 평양지구에서는 조국해방단을 중심으로 조직된 큰 항쟁대오가 병기창을 습격하고 도청과 부청을 점거하였으며 적패잔무력을 제압하였습니다. 황해도의 항쟁조직들도 일제가 항복하기 전에 여러 지역의 적들을 습격제압하였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최후결전의 시기를 회상하시면서 ≪여러 해 동안이나 조국해방작전준비를 해온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역량이 본래의 계획대로 전투작전을 전개하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하시었습니다. 아군부대들이 북부국경지대에서 일본군과의 교전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전선부대들의 작전을 지휘하는 한편 항공육전대를 인솔하고 조선으로 출격할 준비를 최종적으로 끝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육전대는 자동차를 타고 비행장에 나갔다가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일본놈들이 항복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때이른 항복은 일미간의 음모의 산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어쨌든 일본이 몇 달만 더 저항했으며 조선인민혁명군과 전민항쟁역량의 힘으로 우리 나라의 전 영토를 다 해방하였을 것입니다. 조선총독부와 조선주둔군은 ≪정치운동단속요령≫을 공포하면서 조선민중의 해방투쟁에 저항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내의 항쟁세력은 저항을 계속하는 일본군패잔병들과 적통치기구들을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소탕하였습니다. 평양시와 평안남도에서는 항쟁조직들과 무장조직들이 쏘련군이 입성하기 전에 일본군의 패잔무력을 소멸하고 무장을 해제하였으며 당조직도 내오고 지방자치기관들도 창설하였습니다. 민중적인 자치기관들이 말단에까지 조직되어 도내의 행정을 틀어쥐고 민정문제를 직접적으로 주관하였습니다. 함경남북도를 내놓고도 국내의 항쟁조직들과 무장대들은 8월 중순의 1주일 동안에만도 근 1천개소의 적통치기관들을 습격소탕하였습니다.

쏘련의 대일작전이 그처럼 짧은 기간에 결속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인민혁명군과 조선인민의 장기간에 걸치는 항전이 선행되었기 때문입니다. 15성상이나 일제침략자들에게 강력한 군사적 타격을 안겨 그 밑뿌리를 뒤흔들어놓은 조선인민혁명군각계각층을 망라한 전민항쟁역량의 총동원으로 조국광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조국광복의 대사변에 대하여 주체적인 관점에서 분석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항일혁명의 승리가 쏘련군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거나 조국해방전쟁의 승리가 중국군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거나 하는 소리는 모두 주체적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에도 맞지않는 것입니다. 조선민족은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되자 위정척사운동과 의병운동, 계몽운동, 독립군운동을 비롯하여 폭력, 비폭력, 합법, 비합법을 비롯한 각이한 방법으로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수십 년 동안이나 꾸준하게 투쟁해왔습니다. 물론 그 주류는 바로 백두밀림에서 개척되고 발전해온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항일무장투쟁, 조선인민혁명군의 항일무장투쟁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백두산이 조종의 산으로서 조선의 만산을 거느리고 있는 것처럼 백두밀림에서 개척되고 발전해온 우리의 항일무장투쟁은 민족적 해방과 사회적 진보를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하시면서 ≪조선의 해방은 20성상에 걸치는 항일혁명투쟁의 총화인 동시에 해내외의 광범한 반일애국역량이 수십 년 동안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치며 희생을 무릅쓰고 거족적으로 벌려온 영웅적인 항전의 결산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개선문해방의 날 온 나라는 끝없는 감격과 기쁨으로 들끓었다≪개선≫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드디어 조국에 개선하신 내용입니다. 1925년 조국광복을 위해 평양을 떠나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혈전만리, 눈보라만리를 거쳐 1945년 드디어 조국을 해방하시며 개선하시었습니다. 오늘 평양에 세워져 있는 개선문의 1925와 1945라는 숫자는 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처음에 1926이라고 되어 있는 숫자를 1925으로 고쳐주시었습니다. ≪ㅌ.ㄷ≫를 결성했을 때가 아니라 평양을 떠나신 때로 하여야 한다는 뜻깊은 지적인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항일혁명을 우리 인민자신의 힘으로 해낸 것처럼 우리는 새 조국건설도 조선사람자신의 힘으로 해내야 하였습니다. 건당, 건국, 건군은 물론, 민족경제와 민족교육, 민족문화를 건설하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포함하는 모든 분야를 우리 인민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자는 것이 바로 우리의 결심이었습니다.≫라고 뜻깊게 회상하시었습니다.

김책, 안길, 최춘국, 유경수, 조정철 조선인민혁명군의 지휘성원들은 이 전략적 과업을 위해 고향이 아니라 국내각지에 파견되었으며 강건, 박낙권, 최광, 임철, 김만익, 공정수 등의 지휘관들은 중국혁명을 지원하기 위하여 동북지방에 파견되었습니다. 동북지방에 적지않은 지휘관들을 파견하신 사실에 대하여 주목하여야 합니다. 국제주의의 기치아래 중국혁명을 위해 바친 조선혁명가들의 피와 노력은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국내각지에 파견된 모든 지휘성원들이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이 제기하신 전략적 과업을 수행하기 전에는 고향에 갈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꿈결에도 그리워하던 고향이건만 정작 조국광복이 이룩된 조건에서는 무엇보다도 화급한 건당, 건국, 건군의 전략적 과업을 위해 미루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1945년 9월 19일에 원산항에 도착하시었습니다. 그러시고는 원산시당을 책임진 이주하와 담화를 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주하를 비롯한 원산시당일군들이 ≪공산주의기치아래 프롤레타리아트는 단결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사회주의혁명과 쏘비에트를 꿈꾸고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답답해 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 때를 회상하시면서 ≪이주하를 비롯한 원산시당일군들, 원산의 유지들을 만나보고 나서 나는 우리가 8.15해방 후 즉시 건당, 건국, 건군의 3대과업을 내용으로 하는 새 조선 건설의 이정표를 작성하고 그것을 마련한 기초우에서 조국행을 한 것과 조국에 발을 들여놓는 그 길로 지정된 파견지로 떠나갈 결심을 한 것이 천만번 정당하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조국개선을 환영하는 평양시군중대회에서 연설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백두여장군 김정숙동지는 청진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조국에 들어오시었으며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도 여대원들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오시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10월 9일 강선제강소를 돌아보고 10월 10일 당을 창건한 다음 10월 14일에야 평양시환영군중대회에 참가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연단에 나설 때 ≪조선독립 만세!≫를 부르는 군중들의 함성과 환호성은 최고조에 달하였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 환호성을 듣는 순간 나의 심신에서는 스무 해 동안 쌓이고 쌓인 피곤이 한꺼번에 다 날아가 버리었습니다. 민중의 환호성은 열풍이 되어 내 몸과 마음에 뜨겁게 와닿았습니다.≫라고 회상하시면서 ≪10여 만 군중의 뜨거운 열기와 환호를 한 몸에 받으며 단상에 서 있을 때 나를 지배한 것은 그 어떤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도 그려낼 수 없는 행복감이었습니다.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어느 때였는가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순간이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민중의 아들로서 민중을 위해 싸웠다는 행복감, 민중이 나를 사랑하고 신임한다는 것을 느끼는데서 오는 행복감, 그 민중의 품에 안긴 행복감이었을 것입니다.≫라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폭발한 민중의 환호성은 조국과 겨레를 위해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이 겪어오신 반생의 간난신고에 대한 표창이고 답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 답례를 민중의 사랑과 신뢰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날 연설에서 민족대단결을 강조하시었습니다.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애국성업에 이바지하자고, 온 민족이 하나로 굳게 단결하여 이 땅우에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해 나가자≫, 바로 이것이 위대한 주석님께서 조선민족에 보내신 역사적인 호소였습니다. 대회에 모인 군중은 하늘땅을 진감하는 박수와 환호로써 지지를 표시하였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날 오후에야 만경대 고향집에 가시어 그리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시었습니다.

이로써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에 대한 10차례에 걸친 강의가 모두 끝났습니다. 동지들이 경애하는 김일성주석님의 위대한 혁명사상과 불멸의 혁명위훈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항일혁명의 전 노정과 진리에 대하여 강조하신 회상교시입니다. 후에 다른 인터넷강좌가 마련되면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항일혁명의 전 노정은 인민대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고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광복성전의 1선에 내세워준 사랑과 믿음의 역사이며 인민대중자신이 자기의 피와 땀으로써 당당한 역사의 주체임을 과시해온 위대한 투쟁의 창조적 역사입니다. 이 인민과 인민혁명군의 투사들이야말로 새 조국 건설을 담당하게 될 우리 혁명의 주체였습니다. 인민의 사랑과 지지속에서 인민의 힘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여 투쟁할 때 그 어떤 준엄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으며 그 어떤 어려운 투쟁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찾아낸 귀중한 진리입니다.≫(개선,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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