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10월 6일(일)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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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과 실천

 

통일여명 편집위원 강인규

 

먼저 주체철학사전에 나온 실천, 이론, 인식에 대한 정의를 살펴본다.

실천이란 자연과 사회, 인간을 개조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말하며 이론이란 실천적 경험을 개괄한 지식체계를 말한다. 사람들의 물질적 활동과 정신적 활동의 상호 관계를 반영하는 중요한 인식론적 범주의 하나이다.

≪이론과 실천은 밀접히 통일되어 있습니다. 이론은 실천적 경험을 일반화한 것이며 실천은 진리의 기준입니다.≫

이론과 실천은 밀접히 통일되어 있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 이론의 기초로 되는 것이다. 실천의 요구에 의하여 이론적 연구의 방향이 규정되고 발전이 추동된다. 이론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변혁하는 길을 밝힘으로써 실천의 수단으로 복무한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과학이론발전역사가 뚜렷이 실증하여 준다. 인류의 과학적 이론은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하려는 사람들의 실천적 요구에 따라 발전하여왔다. 실천은 이론발전의 방향을 규정할 뿐 아니라 이론발전의 밑천으로 된다. 사람은 객관세계를 대상으로 이론과 실천하여 실천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합리적 방도를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실천적 체험이 과학과 이론 발전의 귀중한 밑천으로 된다. 모든 실천적 경험 그 자체는 과학이론이 아니다. 실천적 경험은 추상적 일반화를 통하여 체계화되어야 이론으로 된다. 이론이 실천에 기초하며 실천적 경험의 일반화라는 것은 이론이 언제나 실천에 뒤떨어지기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론은 선행한 실천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데 기초하여 새로운 실천의 앞길을 열어준다. 이론과 실천의 통일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이론이 실천활동에서 성과를 이룩할 수 있게 하는 필수적 담보가 되는 것이다. 실천은 과학과 이론에 의하여 뒷받침됨으로써만 성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과학이론은 실천활동의 높은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도를 찾을 수 있게 한다. 이론에 의하여 지도되는 실천만이 목적의식적으로, 계획적으로 진행될 수 있으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혁명적인 이론이 없는 혁명실천은 맹목적인 것으로서 실패와 우여곡절을 면할 수 없으며 오직 혁명적인 이론에 의하여 지도되는 실천만이 올바른 길을 따라 편향없이 발전하고 승리할 수 있다. 이론과 실천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과정을 거쳐 부단히 발전한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은 이러저러한 주객관적 조건들로 하여 분리되고 대립된다. 착취사회에서의 사회계급적 대립과 그 반영으로서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은 이론과 실천의 분리를 낳게 하는 주된 객관적 조건이다. 반동적 착취계급은 실천과 유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근로인민대중의 혁명투쟁을 반대하고 탄압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는 ≪이론≫들은 착취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현실을 왜곡한 비과학적이며 반동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반동적 착취 계급에게 있어서는 이론과 실천의 분리, 대립이 특징적이다. 이와는 달리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에게 있어서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실현된다. 노동계급의 혁명이론은 혁명실천경험을 과학적으로 일반화한 것이며 혁명투쟁의 앞길을 밝혀 주는 지침이다. 노동계급의 혁명투쟁에서 이론과 실천의 통일은 노동계급의 수령과 당에 의하여 보장된다. 노동계급의 수령은 혁명발전의 요구와 실천적 경험에 기초하여 혁명의 지도사상과 이론, 전략전술을 제시하고 그 실현으로 근로인민대중을 조직동원함으로써 혁명투쟁을 승리로 이끌며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철저히 보장한다. 이론과 실천의 상호관계 문제는 노동계급 이전의 철학들에서는 올바르게 해석되지 못하였다. 관념론자들은 이론을 ≪절대이념≫ 또는 ≪주관적 의지≫의 산물로, 실천을 정신적 사유활동으로 보았으며 형이상학적 유물론자들은 실천을 생물학적 본능에 의하여 진행되는 생물학적 활동으로 보고 이론을 현실의 수동적인 반영으로 이해하였다. 오직 노동계급의 철학에 의하여 이론과실천의 상호관계에서 실천이 규제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올바른 이해와 이론과 실천의 통일에 관한 과학적 가치가 확립되었다.≫(주체철학사전)

사물현상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인 파악.

인식의 주체는 사람들 자신이다. 사람은 자체의 능동적인 사고활동을 통해서만 사물현상의 본질을 인식할 수 인다.≫(≪저작선집≫ 7권, 427쪽)

인식의 주체는 사람이다. 인식활동을 벌이는 것도 사람이며 인식의 목적과 대상, 방법과 수단을 결정하는 것도 사람이다. 인식과정 자체가 사람의 의식 속에서 진행된다. 물론 인식활동은 객관적 현실을 대상으로 하여 진행된다. 그러나 아무리 객관적 현실이 있어도 사람이 없이는 인식과정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인식활동은 사람이 지구상에 발생한 다음에 비로소 진행되었다. 사람이 인식의 주체인 만큼 인식과정은 객관적 현실이 거울에 반영되는 것처럼 수동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인식이란 객관적 현실의 주관적 반영과정으로써 그것이 어떻게 반영되는가 하는 것은 사람들의 주동적 활동에 의존한다. 그리고 사람의 준비 정도가 높을수록 현실을 정확하고 깊고 폭넓게 인식하게 된다.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사람을 인식의 주체로 만드는 주된 요인은 그의 사상의식이다. 사상의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이익과 요구에 맞게 현실을 적극적으로 인식해 나가도록 한다. 이미 얻은 지식도 인식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은 사상의식의 조절통제 밑에서 인식과정에서 참가한다.

사람의 인식능력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인식의 생리적 기초를 이루는 중추신경계통과 뇌수는 진화의 산물이지만 인식능력은 단순히 생리적 능력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투쟁과 교육을 통해 형성발전되는 능력,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능력이다. 인식능력은 상대적인 동시에 절대적이다. 매개 역사적 세대의 인식능력은 사회역사적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인류의 인식능력은 그 가능성으로 보아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 사람이 인식하지 못할 것이란 세계에 있을 수 없다. 인식과정은 낮은 단계인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성적 인식으로 심화발전한다. 감성적 인식은 감각, 지각, 표상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감성적 인식단계에서는 생동한 직관을 통해 대상의 외적 측면만이 반영된다. 이성적 인식은 개념, 판단, 추리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성적 인식단계에서는 논리적, 추상적 사유를 통하여 대상의 본질과 변화발전의 합법칙성이 반영된다. 인식의 두 단계는 통일되어 있다. 감성적 자료가 없이는 그것을 추상화하고 일반화하는 논리적 사유가 진행될 수 없다. 이성적 인식은 감성적 인식을 담보한다. 사물의 본질과 그 변화발전의 합법칙성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대상의 속성과 측면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감각, 직접적 경험의 역할만을 절대화하고 이성, 사유의 역할을 무시하는 경험론이나 이성의 활동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감성, 경험의 역할을 외면하는 합리론은 다같이 인식과정의 특성을 왜곡한 그릇된 견해이다. 인식의 기초와 추동력, 그 정당성의 기준을 이루는 것이 실천이다. 인식은 실천의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시작되고 실천에 의거하여 진행되며 인식된 지식의 진리성은 실천에 의해 검증된다. 인식된 지식은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하기 위한 실천활동에 이바지한다.≫(주체철학사전)

다음, 회고록에 나오는 실천, 이론, 인식과 관련된 대목이다.

첫째, 실천이다. 이론, 인식과 연관된 내용이 혼합되어 있다.

관전회의를 지도하시는 김형직선생님

≪아버지는 무산혁명에 대한 자신의 이념을 늘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쌀을 주고 입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옷을 주는 새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소박하게 표현하면서 실천활동을 통하여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민중을 선진사상으로 깨우쳐주었으며 각종 대중단체들을 뭇고 그 조직들을 확대하여 그들을 하나의 혁명역량으로 묶어나갔다.≫(독립만세의 메아리, 세기와 더불어 1권)

≪아버지는 생애의 말년까지 방향전환의 방침실천하느라고 애를 태웠다.≫(독립만세의 메아리, 세기와 더불어 1권)

≪책을 읽으면서도 항상 고전에 나오는 혁명의 원리들을 조선의 현실과 결부시켜 생각해보게 되었다. 조선혁명의 실천과 관련해서는 알고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환멸, 세기와 더불어 1권)

≪나는 그 말을 듣자 어쩐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과 같이 실천과 유리되어 학문상으로만 공산주의학설을 연구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길회선 철도부설 반대 투쟁 (영화 "조선의 별")≪대중에 대한 우리의 영도방법도 이 투쟁을 통해 더욱 세련되었다. 실천투쟁속에서 나도 단련되고 조직도 성장하였다.≫(단결의 시위, 세기와 더불어 1권)

≪나는 그때 김찬의 연설을 들으면서 그의 주장이 인민대중에게 혼란을 주고 혁명실천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는 위험한 궤변이며 그런 궤변과 투쟁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올바른 공산주의운동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심각하게 깨달았다.≫(차광수가 찾은 길, 세기와 더불어 1권)

≪거기에 얼마동안 머무르면서 폭동이 세차게 번져가고 있는 동만의 사태에 대처할 조직들의 활동방향을 제시해주고 옥중에서 무르익혀온 구상실천에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안을 세울 작정이었다.≫(준엄한 봄, 세기와 더불어 2권)

≪우리가 훗날 조국광복회 10대 강령에 의무적인 면비교육에 대한 조항을 하나 넣기는 하였지만 사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무료교육을 처음으로 시도하고 실천에 옮긴 것은 고유수, 카륜, 오가자에서였다.≫(잊을 수 없는 사람들, 세기와 더불어 2권)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유격전사를 들추어보아도 우리 나라 혁명실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표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자기 머리로 모든 문제를 생각하고 자기 힘으로 근거지를 꾸리지 않으면 안되었다.≫(무장에는 무장에로, 세기와 더불어 2권)

≪인민대중을 실천투쟁속에서 끊임없이 각성시키고 단련시켜 그들을 항일전쟁에 튼튼히 준비시키는 것은 우리 혁명발전의 필수적 요구였으며 광범한 대중이 자각적으로, 거족적으로 동원되는 여기에 바로 최후승리의 담보가 있었다.≫(혈전의 준비, 세기와 더불어 2권)

≪그들이 실천속에서 창조해낸 운영방법은 어려운 지하투쟁의 조건에서도 머리를 잘 쓰면 청년들을 시대의 선각자, 역사의 개척자로 훌륭히 교양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단합의 이념아래, 세기와 더불어 2권)

≪우리가 국내에 나가서 혁명가들을 자주 만난 것은 그들을 주체적인 혁명노선과 사업방법으로 무장시켜 복잡한 실천투쟁을 용의주도하게 이끌고 나갈 수 있도록 튼튼히 준비시키자는데 있었다.≫(낮에는 적의 세상, 밤이면 우리 세상, 세기와 더불어 3권)

≪우리는 그 원인을 노선에서 찾았고 그 노선을 작성한 사람들의 사상적 미숙성에서 찾았다. 실정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꼭대기에 앉아서 고전의 일반적 원칙과 선행자들의 경험을 통째로 직수입한 현실성이 없는 지령들을 마구 만들어 내려보내다나니 실천상에서도 무리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소비에트냐, 인민혁명정부냐?, 세기와 더불어 3권)

≪반성위는 나의 말을 주의깊이 들어주었다.

≪내가 공상가라면 동무는 철저한 실천가라고 할 수 있겠구만. 어쨌든 대단합니다. . . .≫(국제당파견원, 세기와 더불어 3권)

≪종파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로 핵심을 양성하여 조선공산주의운동 대열을 다시 꾸리고 조선사람의 당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나는 특히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받았다. 그때 그가 우리에게 준 조언들은 나로 하여금 사고실천에서 주체적인 대를 더욱 튼튼히 견지하게 하였다.≫(국제당파견원, 세기와 더불어 3권)

≪항일유격대 내부에 극단적 군사민주주의가 대두했던 초기만 해도 무정부주의적 경향은 일정한 사회계층, 특히는 소부르조아계층의 혁명성을 과시하는 일종의 정치이념으로 남아 노동계급의 혁명이론과 혁명실천에 무시할 수 없는 해독을 끼치고 있었다.≫(극단적 군사민주주의를 논함, 세기와 더불어 3권)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유격전을 무장투쟁기본형식으로 선택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던 초기에만 해도 우리는 사실 전술상으로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마촌작전, 세기와 더불어 3권)

≪유격대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이 책을 배낭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보풀이 일게 연구하였으며 거기에 밝혀진 교범들을 군사실천에 구현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다.≫(마촌작전, 세기와 더불어 3권)

≪우리는 사고실천에서 자주성에 대한 옹호를 생명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환경에서나 맹호가 되고 우뢰가 되어야 했다.≫(다홍왜에서의 논쟁, 세기와 더불어 4권)

≪공청의 강령을 집행하기 위한 실천투쟁과정을 통하여 청년들속에서는 민족해방투쟁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장식한 훌륭한 혁명가들이 무수히 배출되었다.≫(공청의 산아들, 세기와 더불어 4권)

≪우리는 유격구해산의 조직과 그 실천과정을 통하여 우리 인민의 조직성과 강철같은 규율성,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백절불굴성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으며 그런 인민을 잘 동원하고 지도만 한다면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다는 무한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혁명의 씨앗을 넓은 대지에, 세기와 더불어 4권)

≪나는 반일부대들과의 연합전선에 관한 문제, 반일민족통일전선문제, 새 형의 주체적인 당창건에 대한 문제를 비롯한 몇 가지의 중요한 노선상 문제를 설정하고 그와 함께 실천적인 논의를 거듭하였다.≫(백전노장 최현, 세기와 더불어 4권)

만으로는 사람들의 정치적 생명을 소생시킬 수 없었다. 필요한 것은 실천행동뿐이었다.≫(새 사단의 탄생, 세기와 더불어 4권)

≪그러나 동무들의 혁명가로서의 진가는 과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천행동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새 사단의 탄생, 세기와 더불어 4권)

≪그것은 장군의 창조적이고 실천적인 사고방식과 혁명승리에 대한 드팀없는 확신입니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안영애, 조옥희, 이수덕, 이신자, 정춘실 등을 비롯하여 우리 시대가 낳은 여성영웅들의 사고실천을 지배한 것은 백두의 넋이었다.≫(여성중대, 세기와 더불어 5권)

주의주장에는 관계없이 지난날 내가 만나본 명사들 중 적지않은 사람들은 자기로서의 분명한 탁견이 없었고 사고실천에서 참신성이 부족하였다.≫(불굴의 투사 박달, 세기와 더불어 5권)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의 전기간 혁명투쟁의 실천속에서 단련육성된 우수한 전위투사들로 당의 기층조직들을 확대강화해 나가는 자주적인 당건설방침관철하도록 하였다.≫(국내당공작위원회, 세기와 더불어 5권)

≪박인진은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창립선언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없다, 그 강령선언이 선전이 아니라 당신들의 진심이고 확고부동한 실천의지라면 우리 천도교인들도 반일민족통일전선에 참가할 용의가 있다≫(박인진도정, 세기와 더불어 5권)

≪우리의 노동계급은 9월호소문을 적극 실천하였다.≫(9월호소문, 세기와 더불어 6권)

신념의지의 연마는 혁명적인 조직생활실천활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부단한 교양자체수양과정을 거쳐야 견고하고 확실한 것으로 될 수 있다.≫(≪혜산사건≫을 겪으면서, 세기와 더불어 6권)

≪김혁이 조직생활과 혁명적 실천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장소봉은 이론에 밝고 두뇌가 명석한 대신 실천이 굼뜨고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었다.≫(≪혜산사건≫을 겪으면서, 세기와 더불어 6권)

≪강돈의 영웅적 생애는 학습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 혁명실천에서도 모범을 발휘하게 되고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위훈의 창조자가 된다는 진리를 말해줍니다.≫(마당거우밀영, 세기와 더불어 7권)

≪그렇다고 해서 적아의 구별이 없이 염통까지 다 뽑아주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믿되 실천을 통해 검열해야 합니다.≫(족제비사냥군, 세기와 더불어 7권)

≪내 개인의 견해에 의하면 국제당은 노선작성과 지도에서 주관주의를 범하였고 항일연군부대들은 그 집행실천에서 맹목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국제당의 주관주의와 모험주의가 원정을 실패에로 이끈 기본요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열하원정, 세기와 더불어 7권)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부대, 소조활동을 지도하신 새별군연봉 ≪우리가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혁명역량을 보존축적하며 대부대활동으로부터 소부대활동에로 넘어갈데 대한 방침을 채택하고 그에 따르는 실천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통보하자 위증민은 조선동지들이 정세도 옳게 판단하고 전략도 옳게 세웠다고 하면서 우리의 방침을 지지해 주었습니다.≫(위증민에 대한 회상, 세기와 더불어 8권)

≪주보중은 언제나 보다 실천적 모범으로 대원들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애썼습니다.≫(동북항일연군의 전우들과 함께, 세기와 더불어 8권)

스탈린≪레닌이 서거한 다음 스탈린은 그의 영구앞에서 6개 조항의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혁명과 건설을 영도하는 과정에 그 결의들을 다 실천에 옮기었습니다.≫(혁명의 뿌리를 가꾸며, 세기와 더불어 8권)

≪항일무장투쟁의 영향밑에 일본땅에 꾸려진 전민항쟁조직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실천투쟁을 통하여 민족자주의식을 높이고 일제의 패망을 앞당기는데 기여하였습니다.≫(현해탄 너머에서도, 세기와 더불어 8권)

둘째, 이론이다.

≪부르조아민족주의운동의 역사가 수십 년 되지만 의숙의 교육에는 그것을 집대성하고 비판적으로 분석총화하는 이론이 없었다.≫(환멸, 세기와 더불어 1권)

≪비밀독서조는 진보적인 청년학생들을 맑스-레닌주의 사상이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것을 사명과 목적으로 하였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이론이나 지식으로 보면 그야말로 맑스주의대가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이었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자본론≪당시까지만 해도 맑스-레닌주의고전들에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해방과 민족해방의 호상관계에 대한 이론적 해명이 적었다. 식민지나라들에서의 민족해방투쟁에 대해서는 과학적 해명을 기다리는 문제가 많았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인류가 아직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헤치며 새로운 경험을 부단히 창조해온 조선인민의 풍부하고도 장구한 투쟁역사는 청년학생들을 하나의 계층으로조차 보지 않던 종전의 이론이 우리 나라의 실정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세기와 더불어 1권)

≪이런 조건에서 혁명을 능란하게 영도해나가자면 그것을 감당할만한 세련된 영도핵심과 올바른 지도이론이 있어야 하였다.≫(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세기와 더불어 1권)

≪공청은 동맹원들의 사상교양사업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 그들속에서 정치이론수준과 지도수준을 높이기 위한 학습에 많은 힘을 넣었다.≫(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세기와 더불어 1권)

≪후꾸모도는 당을 재건하기 위하여서는 ≪이론투쟁≫을 통해 순수한 혁명의식을 가진 자와 불순한 사상을 가진 자들을 갈라낸 다음 순수한 요소들만 결합하여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그의 주장은 분열주의적이고 분파주의적인 것으로서 일본노동운동에 커다란 해독을 끼치었다.

차광수는 후꾸모도의 이론을 통채로 삼키다 못해 문장까지 그대로 본딴 정우회선언에 침을 뱉고 돌아섰다.≫(차광수가 찾은 길, 세기와 더불어 1권)

카륜회의

≪당을 내오고 옳은 지도이론만 내놓는다면 인민을 궐기시키며 얼마든지 일본제국주의와 싸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우리의 마음속에 움직일 수 없는 신념으로 뿌리를 내리었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우리는 안창호란 인물자체에 대해서는 독립운동에 일생을 고스란히 바친 청렴하고 양심적인 애국지사로 존경하고 있었지만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환영하지 않았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나는 조선의 산 현실에 부합되는 옳은 지도이론을 내놓자면 고전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을 절대시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길림에만 오면 네가 찾는 지도자도 있고 이론도 있고 운동도 있다≫(혁명시인 김혁, 세기와 더불어 2권)

이론투쟁만으로써는 종파사대주의자들과 좌경모험주의자들의 망동을 저지시킬 수 없었다.≫(1930년 여름, 세기와 더불어 2권)

≪맑스-레닌주의 이론에서도 무장투쟁의 의의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는 공식규정은 없었다. 어느 시대에서 다 들어맞고 또 어떤 나라에나 다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처방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무장투쟁의 형식을 모색하는데서고 교조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무장에는 무장에로, 세기와 더불어 2권)

≪사회과학연구회는 맑스-레닌주의와 조선혁명의 지도이론을 연구보급하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삼고 있었다.≫(단합의 이념아래, 세기와 더불어 2권)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홍왜 및 요영구회의를 지도하신데 대하여 쓴 출판물≪ . . . 그와 함께 소비에트노선 집행과 반≪빈생단≫투쟁 과정에서 발로되고 있는 극좌적인 경향을 바로잡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이론투쟁까지 하리라는 각오도 가지고 있었다.≫(국제당파견원, 세기와 더불어 3권)

≪국제당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일부 일군들과 이론가들은 큰 나라에서의 혁명운동이 승리하면 그와 인접한 작은 나라의 혁명투쟁이나 독립운동도 스스로 승리하게 된다는 견해를 유포시켰다.≫(국제당파견원, 세기와 더불어 3권)

≪ . . . 내가 그 어떤 압력에도 굽어들지 않고 자기 신념에 따라 끝까지 정정당당하게 처신할 수 있은 것은 깨끗한 나의 경력과 유격대지휘관으로서의 전투성과이론적 뒷받침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다홍왜에서의 논쟁, 세기와 더불어 3권)

≪이것은 아무런 이론적 타당성도 없는 궤변으로서 교양개조된 파벌경력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을 포섭하고 있는 조선공산주의운동 대열에 대한 불신의 표시였다.≫(다홍왜에서의 논쟁, 세기와 더불어 3권)

≪나는 직업적인 학자들처럼 항일혁명 문학이나 예술을 두고 이론을 전개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만강에서 우리 부대가 진행한 공연활동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피바다≫ 초연무대, 세기와 더불어 5권)

≪장울화와의 인연은 나로 하여금 자산가 일반을 다 타도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계기를 지어주었다.≫(애국지주 김정부, 세기와 더불어 5권)

3.1월간≪≪3.1월간≫은 2천만의 총동원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려는 조국광복회의 이념달성에 이바지하는 것을 기본사명으로 담은 대중정치이론잡지였다.≫(≪3.1월간≫, 세기와 더불어 5권)

≪이돈화의 호는 야뢰였다. 그는 동학의 교리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하는데서 주동적 역할을 한 재능있는 이론가였다.≫(민족종교 천도교를 두고, 세기와 더불어 5권)

≪물론 나는 우리 혁명의 주체적인 노선을 세워나가면서 기성의 이러저러한 이론과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가운데 민족종교로서의 천도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긍정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철저히 우리 나라 역사발전의 특수성과 우리 혁명이 처하고 있는 환경, 선행운동에 대한 역사적 분석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리고 우리의 민족적인 전통과 계급역량관계를 충분히 타산한 과학적 기초 위에서 주체학설을 세우고 우리 혁명의 진로를 탐색하였으며 그에 부합되는 전략전술을 작성하였다.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어떤 하늘의 도움이나 천명에 따라 혁명한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우리 인민자신의 힘을 믿고 그에 의거하여 싸워야 한다는 이론적 대의와 신념을 가지고 투쟁의 길에 나섰다.≫(민족종교 천도교를 두고, 세기와 더불어 5권)

≪그들이 발행한 한 소책자에서는 합법적 가능성을 거부하는 이론은 좌경기회주의적인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모든 합법적 가능성을 충분히 그리고 능숙하게 연결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농민을 준비시키던 나날에, 세기와 더불어 6권)

≪나는 정치이론학습의 비중을 군사훈련보다 낮추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해방의 날을 그리며, 세기와 더불어 8권)

≪박낙권은 이론공부를 하라고 하면 쓴 약이라도 삼킨 사람처럼 얼굴부터 찡그리었습니다. 이론학습시간에는 맨 구석자리에 앉아 강사와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하였습니다.≫(해방의 날을 그리며, 세기와 더불어 8권)

셋째, 인식이다.

≪국제당은 조선에서 종파가 청산되기 전에는 진정한 노동계급의 전위대가 나올 수 없으며 종파를 근절하고 새로운 당을 창건하기 위해서는 파쟁도 모르고 집권욕도 없는 새 세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 점차 인식하기 시작했다.≫(첫 당조직 - 건설동지사, 세기와 더불어 2권)

≪그러나 방법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곧 이념에 대한 인식관점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합작은 불가능한가?, 세기와 더불어 2권)

≪사실은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니고 상대방의 인식정도를 저울질해 보자는 것이었다.≫(동녕현성전투, 세기와 더불어 3권)

≪자력갱생하면 살고 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인식은 만사람의 머리를 지배하는 사고방식으로 되고 좌우명으로 되었다. 이 좌우명을 뼈와 살로 만든 사람은 절해고도에서 지조를 지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대오를 떠나 변절투항하거나 중도반단의 길을 걸었다.≫(밀림속의 병기창, 세기와 더불어 3권)

≪내가 날을 세워 가지고 문제를 첨예하게 끌고가자 동만특위의 좌경분자들은 ≪김일성이 ≪민생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비난하였다.≫(다홍왜에서의 논쟁, 세기와 더불어 4권)

≪이 추억은 혁명대오를 내부로부터 분열 와해시키려는 적들의 모략과 간계는 어제만이 아니라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것이며 민족배타주의와 좌경분자들의 정치적 졸렬성은 지금도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똑똑히 인식시킴으로써 후대들에게 조선혁명의 주체확립과 민족의 자주성과 관련된 교훈을 심어주자는데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제기한 문제가 정당하였고 또 그 문제에 대하여 위증민도 충분한 인식이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국제당에 있는 일군들이 조선혁명의 근본문제와 관련한 우리의 제소에 응당 긍정적으로 대답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경박호기슭에서, 세기와 더불어 4권)

≪국제공산주의운동은 세계적인 범위에서 혁명역량을 조직하고 투쟁을 발전시켜 나가는데서 그 조직형식과 지도방식을 서서히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도달되었다. 혁명은 수출입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정과 매개 나라의 혁명역량을 하나로 굳게 묶어 세워야 할 절박성은 각국의 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노선 작성과 집행에서 주체를 세우고 자기 당의 독자성을 견지해야 할 필요성절감하게 하였다. 이러한 변천된 정세는 국제당이 조선혁명의 주체성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담보로 되고 있었다.≫(경박호기슭에서, 세기와 더불어 4권)

≪그러나 그 애의 인식속에 눈보라와 찬바람이라는 두 가지의 표상만으로 새겨진 그 풍토사나운 땅은 왜놈들도 없고 착취도 없고 압제의 채찍도 없는 사회주의나라였다.≫(전우들은 북으로, 나는 남으로, 세기와 더불어 4권)

≪주의주장의 차이로 하여 사이가 벌어졌던 공산주의운동자들과 민족운동자들이 때늦게나마 통일단합의 필요성인식하고 단일전선기관을 내온 것은 민중의 염원과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는 하나의 큰 경사였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우리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조국해방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민족적 권리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그것이 결코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납득시키는데 상당한 시간과 정력을 바치지 않으면 안되었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천지주의 양아들에 대한 이제순의 관점은 사실 우리의 관점과 일치하였다. 이동학은 그 양아들을 여러 가지로 교양하여 우리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바로잡아주었다. 드디어 그는 자발적으로 입대를 청원하게 되었다. 우리는 천지주의 양아들을 본인의 소망대로 혁명군에 받아들이었다.≫(이제순, 세기와 더불어 5권)

≪그런데 일부 공산주의자들이 그 테제가 마치도 당건설과 군중단체의 조직을 동시에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인 데로부터 인식상 혼란을 빚어내게 되었다.≫(국내당공작위원회, 세기와 더불어 5권)

≪정치공작원들의 눈부신 활동에 의하여 국내인민들속에는 ≪백두산바람≫이 억제할 수 없는 힘으로 강하게 스며들어갔다. 그들의 영향밑에 국내의 동포들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민혁명군에 참군하려고 백두산으로 찾아왔다.≫(국내당공작위원회, 세기와 더불어 5권)

≪박인진도정이 청수를 모신 뒤 우리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된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박인진도정, 세기와 더불어 5권)

≪천도교에 대한 나의 인식은 화성의숙시절에 와서 더 깊어졌다.≫(민족종교 천도교를 두고, 세기와 더불어 5권)

≪이런 소년들에게 우리의 혁명노선인식시키자면 인내성있는 노력이 필요하였다.≫(총을 쥔 소년들, 세기와 더불어 6권)

9월호소문에서 중요하게 제기한 문제의 하나는 중일전쟁과 조선혁명과의 호상관계에 대한 옳은 인식을 줌으로써 우리 인민이 신심을 잃지 않고 반일투쟁을 강화해나가도록 하는 것이었다.≫(9월호소문, 세기와 더불어 6권)

≪그는 일가친척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없이 간첩임무를 받은 사람이고 적의 강압과 기만선전에 넘어가 혁명군에 대한 인식을 잘못 가지게 되었던 여성이었습니다. 사람이 계급적으로 각성되지 못하면 그런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순옥은 혁명조직을 통해 체계적인 교양을 받은 여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와 우리 군대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게 되자 즉시 죽음을 각오하고 죄과를 다 털어놓았습니다.≫(밀영에 찾아온 여인, 세기와 더불어 7권)

≪수십 년간의 반일투쟁역사는 인민대중으로 하여금 주의와 당파를 초월한 민족역량의 굳건한 단합만이 조국광복의 날을 앞당기는 지름길로 된다는 하나의 인식에 도달하게 하였습니다.≫(반일애국역량과의 단합을 위하여, 세기와 더불어 8권)

네째, 실천과 이론의 연관이다. 주요하고 특색있는 대목만 인용한다.

≪책속에만 묻혀있지 않고 실천속에 좀더 일찍 뛰어들었다면 노동계급의 혁명위업 수행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가치있는 이론도 찾았을 것이고 실천적인 업적도 쌓았을 것이다. 실천속에서 이론이 나오고 그 이론의 정당성도 실천을 통하여 검증된다. 우리가 순간도 잊어서는 안될 실천조선의 독립이며 우리 인민의 행복이다. 아쉽게도 박소심은 이 진리를 깨닫기 바쁘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화전과 길림에서 새 사조를 탐구하고 ≪ㅌ·ㄷ≫와 함께 투쟁의 길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조선혁명의 실천과 관련된 일정한 지도이론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런 지도이론을 구현한 전위조직으로 공청을 내올 것을 결심하고 그 강령과 규약을 만드는데 착수하였다.

강령에서는 공청이 조선혁명의 실천과 밀접히 결부된 이론에 의하여 지도되며 종파를 철저히 배격한다는 것이 특별히 강조되었다.≫(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세기와 더불어 1권)

차광수≪내가 이론이 월등해서 그를 납득시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를 조선의 구체적 현실에 기초하여 판단하며 공리공담이 아니라 혁명실천을 중시하는 나의 입장과 사고방식이 차광수한테 공명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차광수가 찾은 길, 세기와 더불어 1권)

≪새로운 지도이론이 없이는 혁명을 한 걸음도 전진시킬 수 없었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맑스가 과학적 공산주의이론을 창시한 후 실천투쟁에서 첫 사업으로 공산주의자동맹을 창건하고 ≪공산당선언≫을 발표한 것이 그의 활동에서 가장 큰 공적으로 오늘까지도 찬양. . .≫(첫 당조직 - 건설동지사, 세기와 더불어 2권)

≪나는 실천투쟁만이 십인십색으로 벌어지는 우리의 논쟁에 아퀴를 짓고 진리가 어느쪽에 있는가를 판정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유격대의 활동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연구에 시간을 아낌없이 바치었다.≫(남만으로, 세기와 더불어 2권)

국제당파견원 반경유≪나는 반성위를 만난 다음부터 혁명투쟁을 하는데서는 실천가도 중요하지만 그 실천을 선도하고 조종해줄 수 있는 이론가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국제당파견원, 세기와 더불어 3권)

≪이것은 실천을 통해 그 진리성이 충분히 검증된 주장이었다. 80고령에 이른 지금에 와서도 나는 혁명의 전위로서 청년들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지 않는다.≫(공청의 산아들, 세기와 더불어 4권)

≪이 명백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명제를 무조건 절대화하면서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공산주의의 원쑤처럼 여기고 배척하였다는데 바로 사이비 공산주의자들, 행세식 맑스주의자들의 이론실천적 착오가 있었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실천이란 언제나 이론보다 더 생동하고 확고한 믿음을 주는 법이다. 반일부대들과의 통일전선에 대한 우리의 사상이론은 빈말공부가 아니라 진리이며 진실이라는 것이 무송현성전투를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증되었다.≫(정든 성시에서, 세기와 더불어 5권)

≪파쟁과 이론적 결핍과 실천적 능력의 부족으로 소외되고 경시당해오던 조선공산주의운동은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자기의 새로운 길을 힘있게 개척해나가기 시작하였다.≫(국내당공작위원회, 세기와 더불어 5권)

≪천도교는 그 계급적 제한성과 이론적, 실천적 미숙성으로 하여 반일민족해방투쟁에서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지는 못하였다. 바로 이것이 동학만능을 우리가 지지하지 않는 주되는 논거였다.

우리는 천도교를 이러한 관점으로 대하면서도 좋은 측면을 보다 중시하였으며 천도교가 이념상에서나 실천상에서나 통일전선의 대로에서 우리와 손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민족종교 천도교를 두고, 세기와 더불어 5권)

다섯째, 실천과 인식의 연관이다. 주요하고 특색있는 대목만 인용한다.

≪혁명적 세계관은 사람들이 자기의 계급적 처지와 이해관계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착취계급을 증오하고 자기 계급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사상을 가지며 나아가서는 새 사회를 건설하려는 각오를 가지고 혁명의 길에 나서게 되었을 때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나도 맑스-레닌주의고전을 비롯한 혁명적인 책들을 보고 계급적 처지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사회현상을 보고 불평등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착취계급과 착취사회를 증오하는 사상이 자라서 결국 세계를 개조하고 변혁해야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투쟁의 길에 나서게 되었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그는 국내인사들 가운데서 해외의 무장투쟁과 국내정치투쟁의 불가분리성과 일원화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공리공담의 울타리를 벗어나 적극적인 자세로 그것을 실현하였을 뿐 아니라 혁명군과의 연계를 성사시킨 다음에는 우리의 노선관철해 나가는 길에서 생명까지 바친 선각자, 투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이제순, 세기와 더불어 5권)

≪반유격구창설의 필요성은 무장투쟁의 실천속에서 더욱 절박하게 제기되었다. 광대한 영역을 사수하자니 힘이 달렸고 힘이 달리는 그 타개책을 빨리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만일 유격전을 해보지 않고 고전이나 뒤적거리며 러시아 볼세비키들이 어떻게 했소, 중국 서금의 경험이 어떻소 하는 식으로 탁상공론만 하였더라면 해방지구 형태의 유격근거지 외에 또 다른 형태의 유격근거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그 창설을 그토록 절감하고 빨리 다그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낮에는 적의 세상, 밤이면 우리 세상, 세기와 더불어 3권)

이제순≪≪그건 크게 염려할 게 없습니다. 배우면 됩니다. 타고난 혁명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나 혁명할 생각을 가지고 실천투쟁속에서 하나하나 착실히 배워가며 경험을 쌓으면 혁명가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 사업에 필요한 지식은 우리가 주겠습니다.≫

우리는 이제순을 위한 단독강습을 진행하였다.≫(이제순, 세기와 더불어 5권)

≪이제순은 사색실천을 원만하게 결합한 창조적인 인간이었다. 그는 법정과 옥중에서도 사색을 중단하지 않았다. 법정에서의 그의 사색공산주의자로서 일생을 어떻게 마치겠는가 하는데 집중되었다.

≪법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은 나 자신이 더 많은 ≪죄≫를 뒤집어쓰면서라도 동지들을 구출하는 것이다!≫≫(이제순, 세기와 더불어 5권)

≪천도교에 대한 화성의숙시절의 나의 지식실천과 결부되지 못한 협소하고 생경한 것이었으며 아직 범속하고 단편적인 것이었다.≫(민족종교 천도교를 두고, 세기와 더불어 5권)

≪사람은 학습을 많이 해야 신념도 강해지고 혁명을 하려는 열정도 높아집니다.

김정일동무가 사람은 아는 것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인다고 한 말은 아주 의미심장한 명언입니다.≫(마당거우밀영, 세기와 더불어 7권)

≪주요지휘관들의 투항은 그들로 하여금 공산주의자들의 신념이나 의지에도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하였고 그런 인식을 토대로 하여 인민혁명군에 대한 와해공작을 추진시키게 하였습니다.≫(남패자의 수림속에서, 세기와 더불어 7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상적 미숙성은 학습과 혁명실천을 통해 극복되고 또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은 사상적으로 단련되고 원숙해지는 법입니다.≫(청봉의 교훈, 세기와 더불어 7권)

≪조선혁명에 대한 올바른 이론전략전술, 조국의 역사와 지리, 경제와 문화, 도덕과 풍습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자력독립도, 새 조국 건설도 할 수 없고 혁명에 대한 자주적인 입장과 독자적인 주견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해방의 날을 그리며, 세기와 더불어 8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일찌기 맑스레닌주의에 정통하실 수 있으셨던 비결은 조국광복에 대한 염원이 누구보다도 강하셨기 때문이며 실천적 관점에서 열심히 선진사상을 탐구하시었기 때문이다. 길림시절의 투쟁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통해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주체사상의 핵이 창조되었으며, 이 사상항일혁명을 비롯한 여러 단계의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이라는 실천을 지도하는 한편 그 실천을 통하여 더욱 풍부화되고 심화되어 오늘의 주체사상, 주체의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 체계로서의 주체사상으로 완성되었다. 주체사상은 조선혁명의 사상이론적 총화이며 조선혁명은 주체사상은 구현이다.

≪맑스-레닌주의를 교조로가 아니라 실천의 무기로 대하게 되고 진리의 기준을 추상적인 이론에서가 아니라 항상 조선혁명이라는 구체적인 실천에서 찾으려는 나의 입장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싹텄다고 할 수 있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이 길림에서 나는 과학적 학설로서의 맑스-레닌주의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 학설의 도움으로 조선의 독립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실천진리를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선진사상의 탐구, 세기와 더불어 1권)

≪이 사상은 그 후 항일혁명투쟁을 비롯한 여러 단계의 혁명을 거쳐 어렵고 복잡한 실천투쟁속에서 부단히 발전풍부화되어 오늘과 같이 사상과 이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를 갖춘 하나의 철학사상으로 되었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그저 우리 인민이 그 사상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혁명실천에 구현하면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그 후 김정일비서가 그 사상을 전면적으로 체계화하여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세상에 발표하였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주체사상은 반세기가 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이론활동의 빛나는 결실이며 조선혁명의 사상이론적 총화이다. . . . 조선혁명의 역사위대한 주체사상이 구현되고 전면적으로 승리하여 온 역사이다.≫(김정일장군,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자, 1983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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