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9월 23일(월)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 지난 강좌 보기

≪세기와 더불어≫ 강의 (4)
- 제20장 ≪혁명의 새로운 고조를 향하여≫에서 제21장 ≪대부대선회작전의 총성≫까지

통일여명 편집위원 한철규

안녕하십니까. ≪세기와 더불어≫강의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그리고 항일무장투쟁의 전성기, 곧 둘째 단계에 대한 학습의 네 번째 시간, 마지막 시간입니다. 이번 시간은 고난의 행군무산지구전투, 대부대선회작전을 중심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은 부대의 이동을 위한 단순한 행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옹근 하나의 전역과 맞먹는 규모가 큰 군사작전이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의 축도였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우리는 이 회상교시를 통해 항일무장투쟁 자체가 고난의 행군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이 얼마나 어려운 행군이었는지를 단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하루에도 20여 차례씩 힘겨운 전투를 하며 무서운 기아,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전개한 말그대로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왜 이러한 행군을 결심하시었나요?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과연 이 행군이 그토록 어렵고 힘든 행군이 될 것임을 예견하시지 못하셨나요?

1유화고난의행군

그럴 리가 있나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의 간고성을 충분히 알고 계시었습니다. 오히려 일부러 힘든 노정을 선택하시었으며 적들을 끌고다니시었습니다. 왜 그러셨나요? 그 이유는 바로 주동을 틀어쥐기 위해서였습니다. 열하원정과 ≪혜산사건≫의 후과를 씻고 항일혁명의 새로운 고조를 일으키기 위해서 선택하신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전술 이시었던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학습하였듯이 국제당의 모험적인 열하원정지시와 중국혁명군대의 맹동주의는 항일혁명군대의 주력 중 하나인 1군을 사실상 궤멸시키었습니다. 이는 결국 일본군의 공격이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로 집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적들의 사기는 높아지고 우리 측의 사기는 저하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더욱이 위대한 주석님께서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1군을 위기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일본군의 배후타격전을 전개하시기 위하여 백두산지구를 잠시 떠나실 수밖에 없는 시기에 바로 ≪혜산사건≫으로 권영벽, 이제순, 박달과 같은 지도핵심들이 체포, 투옥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항일혁명이 일대 시련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난의 행군은 이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던 것입니다.

고난의 행군 주요 노정도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을 계획하신 동기에 대하여 ≪혁명군이 녹아났다고 적들이 선전할 때 그것을 허위라고 까밝히며 혁명군이 살아있다고 선전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국내에 들어가서 총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총소리만 내면 지하조직도 많이 내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이 회상교시를 통해 우리는 고난의 행군의 목적이 단순한 위치이동이나 전투가 아니라 혁명군이 살아있다고 선전하고 지하조직을 지원하는데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우리가 뭐 역사에 없는 고생을 한두 번만 해왔습니까. 국내의 반일투쟁이 시련을 겪고 있고 국내인민들이 백두산쪽만 쳐다보는데 조국해방의 사명을 스스로 걸머지고 나선 혁명군이 팔짱을 끼고 그것을 강건너 불보듯 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동지들과 혁명이 시련을 겪게 되자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난관을 맞받아나가시는 분, 그래서 기어이 화를 복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는 분이 바로 우리의 위대한 주석님이십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에 대하여 한마디로 ≪국내를 한번 들었다놓자는 것≫이라고 통속적으로 표현하시었습니다.

그럼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을 어떤 힘으로 이끄시었나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먼저 애국심을 들 수 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부대가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대원들을 향해 ≪이순신장군은 명량해전때 적은 배를 가지고 수많은 왜군의 함대와 싸워이겼다. 그래서 임진왜란의 대세를 역전시키었다. 이것은 세계해전사에 대서특필할 기적이다. 이순신이 무슨 수로 적을 이겼겠는가. 물론 지혜와 책략, 용기로 이겼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요인은 애국심이었다. . . . 애국심만 버리지 않으면 우리도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 물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세는 험악하다. 그러나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확고히 가지고 난관앞에 주저앉지 않으면 우리도 능히 대세를 뒤집어놓을 수 있다. 그러니 신심을 가지고 행군을 계속하자…≫고 연설하시었습니다. 이런 연설을 들은 대원들은 장군님, 명령만 내리십시오, 우리는 장군님을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하면서 밝은 얼굴로 행군길에 나섰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항일무장투쟁의 축도이므로, 고난의 행군을 이끌었던 이 애국심이라는 힘은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홉의 미시가루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은 고난의 행군을 총화하시면서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한 비결에 대하여 첫째로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 혁명적 낙관주의정신을 꼽으시었습니다. 혁명승리에 대한 확신과 낙관이야말로 최악의 곤란을 이겨낸 원동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은 둘째로 혁명적 동지애 를 강조하시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한 홉의 미시가루를 나누어 먹는 정신으로 살며 싸웠기에 굶어죽지 않았으며 헤진 옷을 입고 혹한속을 헤치고 다녔지만 늘 몸이 훈훈했고 마음은 후더웠습니다. 고난의 행군에 참가한 모든 동지들이 단 한 사람도 굶어죽지 않고 얼어죽지 않고 불사신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사랑의 힘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동지애로 뭉친 집단, 동지애에 기초하여 하나로 굳게 단결된 대오는 필승불패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때 다시 한번 절실히 체험하였습니다.≫고 가르치시었습니다.

동지들은 공화국에서 ≪동지애≫라는 세 글자를 횃불로 그리며 행군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나요? 이 사진은 피디에프 ≪21세기의 태양≫≪통일아리랑≫, ≪백두산≫ 등에 여러번 실려있으니 찾아보기 바랍니다. 이 지구상에 동지애를 이처럼 강조하고 높이 평가하는 나라는 주체조선밖에 없을 것입니다. 항일혁명에서, 조국해방전쟁에서, 90년대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한 비결은 다름아닌 혁명적 동지애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 혁명적 동지애의 최고형태는 무엇인가요? 바로 수령과 전사간의 동지애입니다. 수령의 전사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믿음, 그리고 이에 보답하는 전사의 수령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 바로 이것이 혁명적 동지애의 최고봉이고 조선혁명이 승리한 핵심적인 비결인 것입니다. 바로 이 수령과 전사간의 뜨겁고 열렬한 혁명적 동지애의 원형이 항일혁명시기에 창조된 것이고 특히 고난의 행군 시절에 집중적으로 발현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를 사령관의 안전을 위해 적들을 유인하고 희생적으로 투쟁한 오중흡과 7연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뒤에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신파혁명사적지1-도천리합숙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세째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민중의 사랑과 지원을 지적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가재수의 물방아간주인, 이도화원과 요구 사람들의 예를 들으시면서 ≪고난의 행군에 우리 군대만 참가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행군에는 인민들도 참가하였습니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이어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나자구등판과 천교령에서도 체험한 바이지만 우리가 어려운 처지에 빠질 때마다 구원자, 방조자, 동행자로 나선 것은 언제나 인민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인민이 있는 한 우리가 고난의 행군도 승리적으로 결속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힘을 가다듬었습니다.≫라고 가르치시었습니다. 이민위천민거백승, 바로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거할 데 대한 주체의 진리야말로 고난의 행군이라는 유례없는 시련과 난관을 뚫고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도천리공작으로 떠나시는 백두여장군 김정숙동지에게 ≪곤란에 부닥칠 때마다 동지들에게 의거하고 인민들에게 의거하시오≫라고 가르쳐주시었는데, 간고한 지하사업을 전개하는 우리 혁명가들은 언제나 이 위대한 사상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네째로 부닥치는 정황에 맞는 영활한 유격전법의 능동적 활용을 꼽으시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에는 대부대전술과 소부대전술, 갈지자전법, 은신전술, 망원전술, 피실격허전술, 공격전술 등 창조적인 수많은 전술들이 시험되고 적용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우리는 그때 참으로 다양한 전법과 전술을 적용하였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유격전쟁이 창조한 모든 전법과 전술의 종합적인 시험장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나는 고난의 행군을 총화하면서 아무리 원칙에 맞는 전술이라고 해도 그것을 적용하는데서는 교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진리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었습니다.≫라고 특별히 강조하시었습니다. 우리 운동대오에 만연한 낡은 사상 중의 하나가 교조주의인데, 우리 청년전사들은 사업에서 교조주의를 범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체사상은 사대주의와 함께 교조주의를 반대하면서 창시된 사상이며, 자주성과 함께 2대 개념으로 불리워지는 창조성은 교조주의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기본으로 담고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맞는 원칙이란 없는 법입니다. 변화무쌍한 임기응변이야말로 전술구사에서 명심하여야 할 생명이라는 점,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에 대한 회상을 마무리하시면서 ≪지난날에는 수십만의 일본군이 우리를 포위하고 추격하였지만 오늘은 그와는 대비도 할 수 없이 막강하고 포악한 제국주의세력이 우리 나라를 압살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전쟁시기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라고 지적하시었습니다. 결국 지금도 의연히 간고한 행군길, 고난의 행군은 계속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90년대 주체조선이, 우리 혁명이 겪었던 전대미문의 시련과 난관은 말그대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국주의연합세력이 미칠듯이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는 조건에서 국제사회주의역량이 와해되고 설상가상으로 대자연재해가 연속 발생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서거라는 대국상으로 온 나라가 피눈물에 잠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사이래 이보다 심각하고 위태로운 국면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체조선은 이 모든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고 고난의 행군에서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였으며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전환시키었습니다. 누구의 영도아래 이러한 세기적인 기적이 이루어졌나요? 바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당창건 55돌 촛불행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사상과 영도, 풍모에서 똑같으신 백두의 천출명장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사상이라는 우리 시대의 최강의 보검과 무기로 초강대국이라는 미제국주의와 맞서 90년대 조미대결전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이룩하시었습니다. 미제국주의는 정치사상과 군사의 강국인 조선과의 총포성없는 전쟁에서 패배하여 고립압살전략을 평화공존전략으로, ≪5027작전계획≫을 ≪페리보고서≫로 전환시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민족자주의 좌표인 조미공동코뮈니케도,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도, 세계자주화의 대강인 조러모스크바선언도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선군혁명영도에서 비롯된 빛나는 결실인 것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명명하신 90년대 조미대결전은 조선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통일혁명은 결정적인 전환적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항일혁명시기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처럼 시련과 난관을 타개하시며 정세를 주동적으로 장악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탁월한 영도아래 오늘 우리 혁명은 머지않은 장래에 승리할 것을 확신성있게 내다보며 오늘 가속도행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신 후, 1939년 4월 초 장백현 북대정자회의에서 제2차 국내진공작전, 곧 무산지구전투를 결정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가장 중요한 지향점은 조국진군이었다고 전제하시면서 그 시기에 대하여 ≪1937년 6월이 조국진군의 적기였다면 1939년 5월도 역시 적기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하여 ≪당시의 정세로 보든지 우리 자신의 지향이나 국내인민들의 염원으로 보든지 조선인민혁명군이 조국으로 진군하는 것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절박한 문제로 나섰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히시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에 대하여 ≪혁명군은 죽지 않았다, 김일성장군도 건재하고 혁명도 전진하고 있다≫고 내외에 과시하는 한편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복구하고 그것을 확대≫하며 ≪당조직건설과 통일전선운동을 더 잘하여 인민들을 전민항쟁에로 불러일으키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또한 그 대상으로 무산지구를 선택하시면서 그 이유는 이 지구가 ≪가장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이며 ≪이런 지구에 진출하여 적들을 요정내게 되면 북부조선의 여느 지구로 진출하는 것보다 효과를 몇 배로 크게 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히시었습니다. 한마디로 무산지구전투는 제2의 보천보전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   무산지구전투노정도는 잘 알고 있지요? 이런 질문에 깜짝 놀랐다면 지난 시간의 학습한 것을 다 잊어버렸다는 것이고 복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각성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짚어보지요. 역사적인 제2차 국내진공작전이 아닙니까. 1939년 5월 18일 압록강을 도하해서 청봉의 수림속 나무들에 구호를 새긴 후 건창, 베개봉, 삼지연, 무포를 거쳐 대홍단일대로 진출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유명한 갑무경비도로를 대낮에 행군한 일행천리전술이 구사됩니다. 백두청년회 산하 백두산편집부에서 제작한 피디에프 ≪세기와 더불어≫의 7권 ≪대홍단전투≫ 부분을 보면 구호나무부터 해서 관련된 사진이 풍부하게 실려있으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5월 22일에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보천보연설 못지않게 중요한 연설을 하십니다. 주로 신사동주민들과 목재소노동자들을 상대로 하시었습니다. 뒤를 따라온 일제군경들은 대홍단전투에서 거의다 전멸하였습니다.

일제놈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백두산기슭, 그것도 국경수비무력이 어마어마하게 진을 치고 있은 무산지구에 나타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열하원정과 고난의 행군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이 거의 괴멸되지 않았겠는가 오산한데 바로 적들의 실책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무산지구전투가 보천보전투 못지않게 의의가 큰 전투였다고 하시면서 ≪보천보전투가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은 시위한 전투였다면 대홍단전투는 적들이 전멸당했다고 선전하던 조선인민혁명군이 건재해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강대한 역량으로 자라나 일본제국의자들에게 계속 철추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실지로 보여준 역사적인 전투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무산지구전투로 ≪혜산사건≫으로 위축되었던 국내혁명에 새로운 활력이 생기며, 조선인민혁명군이 다 망했다고 떠들어대던 적들의 선전이 완전한 허위라는 것이 만천하에 폭로되었다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두 가지만 확인하지요. 무포가 어떤 역사적 의의가 있는 곳인지 말할 수 있나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과 관련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바로 대답할 수 있는 동지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전기학습을 잘 한 동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70년대 초 김일성주석님의 혁명사상을 주체의 사상, 이론, 방법의 체계로 정식화하시는 그 역사적인 사색을 하신 곳입니다. 주야불식으로 헌신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주위의 일군들과 함께 하루는 무포를 찾으시어 낚시대를 드리우셨는데, 실상은 김일성주의의 체계화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색을 하시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포의 낚시터≫라는 일화입니다. 인터넷≪백두산≫의 오른쪽 ≪HWP파일≫란이나 ≪구국전선인터넷≫의 오른쪽 ≪HWP파일≫란을 열어보면, ≪향도의 태양≫이라는 김정일장군님의 전기가 나오는데, 그 안에 있으니 찾아보기 바랍니다. 우리 성원들 중에 이 전기를 보지 않은 동지는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일행천리전술은 이미 6권에 나오는데, 어디이지요? 아예 제목부터 심상치않은 ≪소탕하에서의 일행천리≫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소탕하에서의 일행천리에 대하여 ≪백 번 하면 백 번 다 과녁을 명중하는 성공적인 모험, 그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철석같은 신념과 투지와 용기를 가져야만 단행할 수 있었다.≫고 회상하시었습니다. ≪백번 하면 백번 다 과녁을 명중하는 성공적인 모험≫, 주체적이고 과학적인 확신에 기초한 모험은 모험주의가 아닙니다. 사실 혁신은 이러한 모험에서 비롯되지요. 이어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싸움이란 결국 지혜와 지혜의 대결인 동시에 신념과 신념의 대결, 의지와 의지의 대결, 용기와 용기의 대결이기도 하다.≫고 가르치시었습니다. 전쟁과 투쟁은 지략의 대결이기도 하지만 담력의 대결이기도 합니다. 우리 청년혁명가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백두산담력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회고록 7권을 학습하면서 분량은 얼마되지 않지만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할 부분이 국사봉회의입니다. 이 회의가 7권의 어디에 나오는지 알고있나요? 이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동지는 회고록학습을 충실히 한 모범적인 동지입니다. 바로 ≪옥돌골에서의 단오명절≫입니다. 국사봉회의가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무산, 연사를 비롯한 두만강 이남지역의 당조직, 조국광복회조직을 건설하는데서 전환적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항일혁명 전기간 언제나 조선혁명을 사고의 중심에 두시었으며, 특히 국내혁명운동을 앙양시키고 지도하는 문제를 중시하시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기회에 위대한 주석님께서 친히 포치하시고 주관하신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의 역사를 간략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춘국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카륜에서 첫 당조직(건설동지사)을 무은 1930년 7월 3일 직후 두만강을 건너 온성지역에서 오중성, 최춘국 등과 함께 첫 국내당조직을 조직하시었습니다. 그 후 한동안은 동만유격구에서의 무장투쟁과 당사업에 집중하시었습니다. 전환적 계기는 1934년 반일인민혁명군이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되면서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가 건설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의 당중앙역할을 수행하였던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의 영도적 활동에 의해, 1937년에는 그 산하에 국내공산주의운동의 정치적 영도기관으로서 국내당공작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국내당공작위원회는 김일성장군님을 위원장으로 하고 당시 참모장이었던 김평과 국내전권대표인 박달을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내당공작위원회가 결성된 후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은 획기적 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후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우수한 정치공작원들과 장백현당과 조선민족해방동맹의 핵심들을 국내의 여러곳에 파견하시면서 국내의 당조직과 조국광복회조직을 건설하도록 조치하시었습니다. 청봉에서 엄광호에 휘둘리며 엄중한 과오를 범한 이동걸(김준)도 총화와 책벌을 마친 후 정치공작원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바로 그 이동걸이 지하조직사업의 성과를 총화한 회의가 국사봉회의입니다. 대홍단전투에서 승리하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동걸이 준비한 국사봉회의에 참석하시었으며 무산, 연사 일대의 조직운동, 혁명운동을 앙양시킬 수 있는 귀중한 전략적 방침을 밝혀주시었습니다. 이동걸이 체포된 후에는 백두여장군 김정숙동지가 그 일을 맡아 책임적으로 수행하시었습니다. 그 조직들이 전민항쟁을 수행하는데서나 해방이후 당건설에서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은 불문가지입니다.

하싼호에서 국경경비임무를 수행하는 쏘련군대   중일전쟁 이후 일제놈들의 대쏘침략기도도 노골화되었습니다. 당시 쏘련은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여 매우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독일과 일제의 협격을 받지않을까 무척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간고한 항일혁명의 와중에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는 구호를 제출하시며 일제의 배후타격전을 영활하게 전개하시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시면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왜 쏘련을 옹호하였는지를 군사학의 원리를 원리를 인용하시며 ≪공산주의자들의 시점으로 볼 때 이 행성에 하나밖에 없었던 사회주의국가 쏘련은 산병선의 선두에서 약진하는 병사와도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은 바로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선두에서 약진하는 쏘련을 엄호하기 위해 관동군의 배후를 타격하였습니다.≫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럼 일제가 대쏘침략전쟁을 목표로 일으킨 두 개의 사건이 무엇인가? 이런 단답형 문제는 바로 답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바로 하싼호사건할힌골사건입니다. 각각 장고봉사건, 노몽한사건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이 두 사건은 1938년과 1939년에, 쏘련과 몽골의 국경에서 일어났습니다.

할힌골에서 전투태세를 갖추고있는 쏘련군포병대일제가 할힌골사건을 일으켰을 때 조선인민혁명군이 배후타격전을 전개하였던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대사하전투입니다. 이틀동안 500명의 적을 살상한 그 전투에서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개척한 열혈 혁명가가 있습니다. 누구인가요? 우리 나라 혁명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 혁명역사에서 처음으로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은 청년영웅이 바로 김진입니다. 2차대전 당시 역시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았던 쏘련의 영웅 마트로소프보다 김진이 선배인 것입니다. 따라서 김진을 조선의 마트로소프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트로소프를 쏘련의 김진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입니다. 영웅 김진의 넋은 조국해방전쟁 당시 1211고지의 청년영웅의 넋으로 이어집니다. 그 청년영웅이 누구이지요? 우리 동지들 중 ≪조국과 청춘≫이라는 시집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 청년영웅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수복영웅입니다. 영웅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평소 사상학습을 철저히 하고 특히 조직생활을 통해, 실천투쟁을 통해 부단히 사상을 단련하면 누구나 다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김진   20세기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존함과 더불어 영원히 빛나는 김일성세기였다면 21세기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존함과 더불어 영광찬란할 김정일세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영광넘치는 20세기와 21세기를 모두 살아가는 참으로 영예로운 청년세대입니다. 자주민주통일투쟁위원회가 2001년 1월에 발표한 강령적 문건 ≪한국청년전위의 임무≫에 나와있듯이, 우리 청년전사들이야말로 20세기 김일성시대를 투쟁으로 총화하고 21세기 김정일시대를 투쟁을 개척하는 이 땅의 청년주체주의자들, 청년전사들입니다. 우리 조직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우리 활동을 지지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괴뢰 정보원에 의해 구속되었던 지태환, 이은경, 차경애 등의 주체활동가들은, 파쇼 정보원의 탄압과 위협에 맞서 완강한 묵비단식투쟁으로 신념과 지조를 견지하였습니다. 괴뢰 정보원이란 곳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런 곳에서 일체의 동요없이 혁명적 원칙을 견지한 이런 청년투사들이야말로 21세기 청년영웅이라고 불러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백두의 천출명장 김정일장군님의 전사, 제자답게 신념과 의지의 강자가 되어야 할 것이며 21세기 김정일시대를 빛내이는 불요불굴의 청년영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는 제목의 회상에서, 사회주의는 부정의가 아니라 정의라고 전제하시며 ≪사회주의가 정의로운 것이라면 그 첫 체현자인 쏘련을 도와준 것도 정의롭고 성스러운 것으로 되지 허무한 일로 될 수는 없습니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민족이기주의를 하는 나라들이 많다고 하시면서 ≪나는 개인이기주의도 반대하지만 민족이기주의도 반대합니다≫라고 강조하시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을 보면서 공산주의자들에게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기치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깊이 새기는 한편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가장 높은 표현이 바로 무장으로 옹호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60년대 쿠바와 미국의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쿠바 주재 조선대사관직원들은 모두 기관총을 들고 떨쳐나섰습니다. 주체조선은 이런 나라입니다. 베트남혁명도 무장으로 도와준 나라도 바로 주체조선입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전쟁시 현 조명록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당시 젊은 장교로 직접 비행기를 몰고 전투에 참가하여 승리하였던 일은 너무나 유명한 일입니다. 주체조선의 이러한 모범적 사례는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 글의 마지막에서 ≪사람이 누리는 낙중에 남을 도와주는 것보다 더 큰 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특별히 강조하시었습니다. 우리 김일성주의자들과 민족민주운동가들은 이 귀중한 교시를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본위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체본위주의, 부문본위주의, 지역본위주의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단체나 자기 부문이나 자기 지역만 안다면 이미 운동가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운동이란 자신보다 남을 위하는 행위이고 단결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맑스의 공산당선언에 나오는 유명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구호가 공염불이 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을 희생하여 남, 우리를 해방하려고 떨쳐나선 선각자, 혁명가가 아닙니까. 우리 운동풍토가 이상하게 변질되어 운동연한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분파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데, 정말로 경계하고 청산하여야 할 그릇된 낡은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을 불태워 진리의 불을 밝히고 만민을 불러일으키는 혁명가답게 매사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며 이타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온 몸으로 다른 단체, 부문, 지역을 지원해주는 혁명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연대와 단결의 기풍을 고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일제놈들이 20만 ≪토벌군≫을 조직하여 장거리포위추격전을 구상하자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대부대선회작전이라는 통이 큰 구상을 하시었습니다. 미리 정해놓은 노정을 따라 행군하면서 적들을 연속 족치는 한편 대중정치사업을 전개하고 또 학습과 휴식을 취하는 말 그대로 영활한 전술인 것입니다. 그 노정은 피디에프 ≪세기와 더불어≫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직접 그 노정도를 확인해보기 바랍니다. 대부대선회작전이라는 단어만 보면 처음으로 ≪현대조선역사≫를 보던 생각이 납니다. 참으로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 제목만으로도 참으로 통쾌한 감을 가지며 ≪과시 김일성장군님은 백두의 천출명장이시다≫며 존경과 탄복을 금치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만주를 먹고 중국까지 반쯤 먹은 일제가 쏘련까지 먹으려고 하는 판에 대부대를 이끌고 유유히 선회하며 일제군경 20만을 유린하고 타격하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영군술, 작전술이야말로 군사예술의 최고정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전투란 두뇌전, 지혜전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대부대선회작전의 말미에 있었던 홍기하전투, 악질적인 마에다≪토벌대≫를 섬멸하였던 전투를 특별히 인상깊게 회상하시었는데, 기억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대부대선회작전도

한편 대부대선회작전의 과정에서 가슴아픈 일이 있지요? 바로 육과송전투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었던 오중흡이 전사한 바로 그 전투입니다. 학습한 동지들은 모두 잘 알겠지만 훗날 변절한 지갑룡이 장군님의 지시를 제대로 집행하였다면, 오중흡이 보다 신중하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불상사였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오중흡의 전사를 얼마나 가슴아파하시었는지, 훗날 ≪준엄한 전구≫를 읽으시다가 오중흡이 희생되는 장면에서 너무도 가슴이 아파 더 읽지 못하고 오래 전에 자신의 곁을 떠나간 그를 생각하며 밤을 밝히시었다고 합니다. 오중흡은 한마디로 충신중의 충신이고 전사중의 전사인 동지입니다. 수령결사옹위정신이 불덩어리같았던 오중흡은 고난의 오중흡이 최후를 마친 륙과송전투장행군을 비롯한 항일무장투쟁의 중요고비마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목숨으로 옹위하였던 열혈 혁명가였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오중흡에 대하여 ≪그는 가슴에 큼직한 불덩어리를 안고 싸워온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불덩어리였는가 하면 혁명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그 열정의 핵이 다름아닌 자기 사령관에 대한 충실성이었습니다.≫라고 회상하시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오중흡의 장점을 우리 혁명가들이 따라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장점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이라고 지적하시었습니다. 그리고 그 혁명에 대한 충실성은 ≪우리의 사상과 노선에 충실≫한 것으로, ≪자기 사령관의 명령, 지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행정신과 그 명령, 지시 관철에서의 높은 책임감≫으로, ≪자기 사령관에 대한 오중흡의 충실성은 사령관을 정치사상적으로 뿐 아니라 목숨으로 옹호보위하려는 결사옹위정신≫으로 표현되었다고 회상하시었습니다. 그러시면서 오중흡이 연대장으로 있었던 7연대는 이권행연대장을 닮았다고 하시면서 ≪언제 어떤 정황속에서나 모든 병사, 지휘관들이 한결같이 사령부의 안전부터 생각하는 것이 7연대의 고유한 특성이며 사령관의 명령, 지시를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최상의 수준에서 관철하며 사령부의 의도를 그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포착할 뿐 아니라 그 의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온몸이 육탄이 되어 앞장서서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관철해나가는 것이 바로 7연대의 생활과 투쟁의 전투적인 기풍≫이었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김일성장군님을 향해 날아오는 적탄을 대신 맞아 전사한 이권행도 바로 7연대소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오중흡을 회고하시면서 그 제목을 ≪오중흡과 7연대≫로 하시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혁명가가 되어야 하는가. 바로 오중흡과 같은 혁명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대오는 어떤 대오가 되어야 하는가. 바로 항일7연대와 같은 혁명대오가 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혁명사상과 혁명노선에 충실하고 통일혁명위업을 완수하는데서 높은 책임감을 발휘하며 위대한 장군님을 결사옹위하는 충신, 전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혁명을 진두지휘하시는 위대한 영도자의 사상과 의도를 예민하게 포착하여 우리의 수준과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구현함으로써 주체의 통일혁명투쟁을 전진시키는 오늘의 항일7연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바로 학습입니다. 김일성김정일주의혁명사상을 모르고서는 결코 오늘의 오중흡, 오늘의 7연대가 될 수 없습니다. 주석님과 장군님의 사상과 뜻을 모르는 데 어찌 그 이의 노선을 관철하고 옹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청년주체주의자들이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학습하여야 할 것은 바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혁명사상, 혁명노선 인 것입니다. 최근 좋은 논문들을 연속 발표하는 최성원동지가 강조하는 바도 이 점인데, 백프로 옳은 지적입니다. 우리는 특히 당면하여 전국적 관점선군혁명전략, 통일전선전략, 당건설전략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남측혁명대오가 분열의 고통을 겪고 침체와 답보를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원인도 다름아닌 사상이론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조미공동코뮈니케와 6.15공동선언, 조러모스크바선언이 발표되고 통일혁명의 주객관정세가 급속히 성숙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전의 낡은 사고와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데서 분열과 침체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운동수준이자 곧 사상수준이고 이론수준입니다. 주체주의자라면 누구나 다 오늘의 오중흡이 되고 7연대가 되고 싶어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김일성혁명사상, 김정일혁명사상을 온 넋으로 깨닫고, 온 몸으로 체현한 김일성주의자, 김정일주의자, 그리고 김일성주의자대오, 김정일주의자대오만이 오늘의 오중흡, 오늘의 7연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일성주의, 김정일주의는 참으로 방대하고 심원한 혁명사상, 혁명이론입니다.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 없으며 책상머리에서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루하루 성실히 사상이론 의 탑을 쌓아올리고 반드시 혁명적인 조직생활과 그에 기초한 혁명적인 실천투쟁을 통해서만 그 진리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김일성주의, 김정일주의는 조선혁명의 불길속에서 창시되고 심화발전된 실천적인 혁명사상입니다. 김일성주의, 김정일주의의 1/3이 당건설사상인데, 대중조직활동만으로 그 심오한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산입니다. 물론 통일전선적인 합법정당활동만으로도 터득할 수 없습니다. 오직 혁명적인 조직생활, 특히 비합조직생활을 통해서만 그 심오한 이치를 터득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주의, 김정일주의의 1/3인 통일전선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혁명적인 대중조직과 통일전선사업을 전개한 활동가만이 그 심오한 통일전선사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김일성주의, 김정일주의의 핵이며 역시 1/3에 해당하는 선군혁명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제국주의와 직접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 그런 만큼 근본적인 제한성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 시대 남측에서의 무장투쟁이라고 할 수 있는 비합투쟁, 선전투쟁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시사를 받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김일성주의, 김정일주의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의 혁명생애를 따라배워 모든 생활, 모든 활동을 통일혁명투쟁에 투여할 때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혁명적 조직생활을 하며 혁명적 실천투쟁을 전개하는 동지들은 김일성주의, 김정일주의를 터득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있다고 할 것이며, 행운이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강의를 결속하며 고난의 행군과 대홍단전투, 오중흡과 7연대를 회상하시면서 하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교시를 인용합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오중흡   ≪내가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백절불굴의 혁명정신과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 혁명적 낙관주의정신입니다. 이런 정신적 요인들이 우리로 하여금 만난을 이겨내게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처럼 무서운 곤란을 겪으면서도 항상 낙망하거나 비관에 잠기지 않고 승리할 앞날을 그려보며 그 모든 곤란을 이겨냈습니다. 말하자면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이 강했습니다. 만일 그때 우리가 당면한 난관에만 집착하여 맥을 놓았거나 혁명승리에 대한 전망을 암담한 것으로만 생각했다면 그처럼 엄청난 시련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눈구뎅이속에 주저앉았을 것입니다.≫(고난의 행군)

≪무산지구에서 울린 조선인민혁명군의 총소리는 기가 죽었던 국내인민들에게 우리 혁명이 계속 상승일로를 걷고 있다는 신심을 주고 ≪혜산사건≫의 여파로 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위축되었던 국내혁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준 강심제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무산지구에서 이룩한 우리의 군사적 승리는 또한 조선인민혁명군이 다 망했다고 떠들어대던 적들의 선전이 완전한 허위라는 것을 만천하에 폭로하였습니다. 이 전투가 있은 후부터 우리 인민들은 적들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절대로 곧이 듣지 않았습니다. 무산지구전투가 있은 뒤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국내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은 조선인민 혁명군이 건재하는 한 조국광복의 새날은 반드시 오고야만다는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항일혁명의 흐름속에 앞을 다투어 뛰어들었습니다.≫(대홍단전투)

≪사령관이 준 명령, 지시에 대한 오중흡의 태도에서 우리 일군들이 본받아야 할 다른 하나의 우점은 한 가지 일을 해낸 다음에는 연이어 다른 일거리를 맡겨달라고 간청해나서는 점이었습니다. 오중흡은 한자리에서 맴도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한 가지 일을 수행하고는 꼭꼭 다른 일거리를 붙잡군 하였습니다. 지금식으로 표현하면 계속혁신, 계속전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7연대가 다른 연대들보다 고생을 특별히 많이 한 것은 오중흡이 일욕심이 많은 연대장이었다는 사정과도 관련됩니다.

오중흡은 쉬운 일거리를 맡길 때보다 어려운 일을 맡길 때 더 기뻐하는 특이한 기질을 가진 군사지휘관이었습니다.≫(오중흡과 7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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