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9월 18일(목)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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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금과 김금순

서정욱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후의 고전적 노작 ≪세기와 더불어≫에서 빛나는 수령님의 혁명동지에 대한 해설강좌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 일곱 번째 시간으로 자력갱생의 화신 손원금과 영생의 꽃 김금순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손원금과 김금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연구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왜 그토록 두 동지를 높이 평가하시고 깊이 회상하시었는지에 대하여 사색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원금을 만나신 적이 없으셨지만 그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시었습니다.

손원금   ≪원래 나는 손원금이와는 별로 인연도 없고 서로 만나서 통성을 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손원금의 경력이며 활동내용을 십년지기 못지 않게 잘 알고 있었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위대한 수령님께 손원금에 대하여 소개한 사람은 그의 입당보증인인 박영순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손원금의 투쟁사적을 처음으로 소개해 준 사람이 박영순이었다. 작탄강습에 출연하려고 마촌에 온 그는 나와 한방에 누워 뒹굴면서 며칠 동안 신변잡사에 대한 말을 많이 하였다. 그 말 가운데는 손원금의 이름도 이따금씩 껴묻어 나왔다. 열마디에 한마디 정도씩 드문드문 튀어나오는 이름이었지만 거기에는 박영순의 각별한 애정과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도 손원금이 화제에 오를 때마다 호기심을 가지고 듣곤 하였다. 박영순은 그의 친근한 전우이자 입당보증인이었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손원금의 경찰서탈출사건은 손원금의 강의한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1932년 당시의 손원금은 경찰서탈출사건으로 간도지방의 혁명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약장사로 가장한 그는 바이올린을 들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통신연락임무를 수행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갔는데 고문에 만신창이 된 몸을 끌고 구정물이 허리를 치는 하수도구멍으로 빠져나와 옹근 하루낮을 강물속에서 보냈다. 경비가 철통같은 적의 소굴을 무사히 탈출하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하루해를 꼬박 물속에서 보냈다는 것도 경탄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손원금은 유격구에 들어와서 유격대에 입대하고 공산당에도 입당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유격대에도 입대하고 공산당에도 입당하였다. 손원금은 이때부터 성실한 노력으로써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손원금은 박영순과 함께 연길폭탄을 제조하는데서 창발성과 재간을 발휘한 인물들이었습니다.

박영순   ≪박영순은 작탄 제조법과 그 사용법, 보관취급법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그들이 화룡에서 자력갱생하여 개발해낸 폭탄제조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강습참가자들의 한결같은 찬탄을 자아냈다. 수리바위굴병기창을 주관한 박영순, 손원금 동무들이 아주 재간있는 동무들이었다.≫(혈전의 준비, 3권)

손원금은 연길폭탄을 만드는데서 걸리는 문제가 있으면 언제나 그 해결에 앞장섰습니다.

≪연길폭탄을 제작하는데 많은 자재가 들었다. 이 자재를 병기창 성원들 자체의 힘으로 해결하자면 무수한 노고를 바쳐야 했다. 손원금은 언제나 이 노고의 앞장에서 걸린 고리들을 풀어나갔다.≫(혈전의 준비, 3권)

≪≪한번은 소리폭탄은 만들다가 큰 난관에 봉착한 일이 있습니다. 장약함을 만들 종이와 천이 거덜났거든요. 모두가 방도를 찾느라고 머리를 썩였지요. 그런데 원금 동무는 어느새 마을로 뛰어내려가 자기 집 문창호지와 하나밖에 없는 이불을 뜯어오지 않았겠습니까. 재밤중에 헐떡거리며 병기창으로 돌아온 그를 보니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겠지요…≫≫(밀림속의 병기창, 3권)

≪≪원금동무는 무슨 일에서나 앞장에 서곤 했습니다. 철사가 모자라서 작탄제작이 중단상태에 빠졌을 때에도 앞장에 선 것은 손원금이었습니다. 그가 수십 리밖에 있는 남양평에 가서 300미터나 되는 전화선을 끊어왔지요. 유황도 무쇠조각도 양철판도 그 사람이 구해왔습니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특히 손원금은 민중에 대한 헌신성과 복무정신이 투철한 혁명가였습니다.

≪≪저 젊은이하구 난 구면이라우. 전에 내풍동에서 살 때부터 낯을 익혔수다. 우리 며느리가 중병이 들어 골골하면서도 약 한 첩 쓰지 못하고 있을 때 깽깽이를 들고 약장사를 하던 저 젊은이가 글쎄 돈 한 푼 안 받고 약두 지어다 주고 쌀도 사다주지 않았겠수. 그래서 우리 며느리가 살아났수다. 신세를 갚지 못해 알알했는데 오늘 아침 저 젊은이가 우리 마을에 왔더구만. 집집마다 다니면서 무쇠가 있으면 내라고 하길래 옳지 됐다, 이제는 신세를 갚을 길이 틔였다하고 무릎을 치지 않았겠수. 이건 우리 집 가마 중에서 제일 큰 게라우. 에구, 신세갚음이 되기나 되겠는지…≫≫(밀림속의 병기창, 3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원금의 자력갱생정신을 매우 높이 평가하시었습니다.

≪나는 박영순의 말을 듣고 당장이라도 화룡땅으로 달려가 손원금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를 매혹시킨 손원금의 인간상에서 핵을 이루는 것은 바로 강쇠같은 자력갱생의 정신이었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영순에게 손원금의 모범을 널리 일반화하도록 강조하시면서 만나고싶다는 뜻을 전하시었습니다.

≪≪화룡에 돌아가면 손원금동무에게 그의 경험이 강습참가자들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해 주시오. 언젠인가는 우리들이 서로 만나 정을 나누게 될 것이라는 것도 전해 주시오.≫≫(밀림속의 병기창, 3권)

손원금은 불행히도 작업도중의 폭발사고로 장님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작업도중 폭발사고로 두 눈을 잃고 장님이 되는 불행까지 당했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소왕청유격구의 병기창(모형)그러나 손원금은 결코 낙담하지 않았으며 인터내셔날가를 부르며 작업을 계속하였습니다.

≪손원금이도 실명의 쓰라린 아픔속에서 낙심하거나 비관에 잠기지 않고 ≪동무들, 슬퍼마라. 비록 두 눈은 잃었지만 나에게는 심장이 남아있지 않은가. 두 팔이 있고 두 다리가 있지 않은가!≫라고 하면서 오히려 동무들을 위로하였다. 그리고는 손더듬으로 쇠줄을 자르고 작탄을 조립하면서 인터내셔널의 노래를 불렀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손원금은 유격구가 해산되자 동지들의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하여 부대를 떠나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손원금은 유격구가 해산되자 전우들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부대를 떠나 금곡촌으로 내려갔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손원금은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민중들에게 유격대를 선전하고 민중들에게 투쟁을 호소하였습니다.

≪≪아니다. 유격대는 살아있다. 살아서 더 넓은 지역으로 나갔다. 지금 남북만 도처에서 적들을 치고 있다. 몇십 명으로 출발했던 유격대오가 지금은 대포와 기관총을 가진 수백 수천 명의 대오로 자라났다. 동포들, 형제들! 적들의 선전에 속지말고 인민혁명군을 더 잘 원호하자. 항일전쟁은 반드시 우리의 승리고 끝날 것이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특히 손원금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보천보전투소식을 적극 선전하면서 투쟁을 호소하였습니다.

보천보전적지2경찰주재소   ≪노상에서 보천보전투소식을 들은 그는 연길의 거리거리와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목메인 목소리로 외쳤다.

≪조선동포 여러분, 6월 4일 김일성장군이 부대를 거느리고 보천보를 습격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압록강을 건너 오매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진출하였다. 혁명군의 위력앞에 혼비백산한 적들은 지금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일제의 멸망은 확정적이다.≫

그의 불같은 연설에 연길시는 죽가마처럼 끓어번졌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그런 손원금을 일제놈들은 체포하여 화형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손원금은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화형을 당하였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그러나 손원금은 마지막 순간에도 혁명적 낙관에 넘치며 민중들에게 혁명투쟁을 호소하였습니다.

≪≪여러분, 나에게는 눈이 없습니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산천이 환히 보입니다. 승리의 날까지 굳세게 싸워주십시오! 조선혁명 만세!≫

이것은 그가 사형 직전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무기수리소사업을 지도하시는 장군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원금을 자력갱생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하시었으며 특히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손원금의 일화를 널리 소개하시었습니다.

≪당년 25살의 자력갱생의 선구자 손원금은 이렇게 한 생을 마쳤다.≫(밀림속의 병기창, 3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김금순을 처음 만나신 것은 1933년 유격구에서였습니다. 당시 김금순은 아홉살이었습니다.

김금순   ≪마촌에 도착한 후 두 소녀는 나를 만나려고 동행한 북동아동단학교 관리원의 안내를 받아가며 곧장 군부로 찾아왔다. 만나고 보니 그들은 10살 안팎의 애어린 소녀들이었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은 조선독립의 의지가 굳은 어린 혁명가였습니다.

≪나는 얼굴과 종다리에 긁힌 자리가 여러 군데 나 있는 금순이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워 이런 질문을 하였다.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했다. 큰 고개란 많았겠는데 넘기가 힘들지 않더냐?≫

≪발이 부르터서 혼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데리고 온 아저씨가 왕우구로 되돌아가라고 할까봐 힘들지 않은 체 했습니다.≫≫(영생의 꽃, 3권)

≪≪집에 돌아가 부모님들 곁에 있으면 더 좋지 않니.≫

≪좋기야 좋지요 뭐. 그런데 언제 어른이 되겠나요. 어른이 되자면 고생을 많이 해봐야 한다구 아동단 지도원선생님두 말씀해주셨는데ㅗㅗㅗ. 난 고생을 많이 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요.≫

≪어른이 그렇게 빨리 되어선 뭘하니?≫

≪조선을 독립해야지요. 김대장아저씨. 무슨 일이 있어두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말아주세요.≫

나는 금순이의 어른스러운 사고방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조선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려는 그의 각오는 사상적으로 매우 조숙한 것이었다.≫(영생의 꽃, 3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금순의 순결하고 재롱스러운 모습에서 힘을 얻으시었습니다.

≪그가 유희대의 선두에서 배낭을 메고 발을 재게 놀리며 달랑달랑 걸어갈 때면 그 순결하고 재롱스러운 모습앞에서 누구나 다 웃음을 짓곤 하였다. 나 자신도 그의 모습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은 유격구에서 당시 어린 세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투사였고 낙천가였습니다.

≪우리가 산에서 풀뿌리를 우려먹으며 어려운 무장투쟁을 하던 그 시기에는 한 명의 낙천가가 몇 십 문의 대포와 맞먹는 힘을 냈다. 금순이는 그 당시 당, 공청, 아동단의 3대 동맹에서 제일 어린 세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투사였고 낙천가였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은 규율을 엄수하였습니다.

≪원래 아동단원들은 배낭속에 일주일분의 식량을 상시적으로 휴대하고 다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배낭검열을 당한 아동단원들속에는 학교에서 내준 미시가루를 먹어버린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금순이만은 한 숟갈도 다치지 않고 일주일 분을 그대로 고스란히 간수하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다 먹어버렸는데 우리 막내가 참 용케 참아냈구나. 금순이가 제일이다!≫

나는 배낭검열을 끝내자 엄지손가락을 쳐들어 보이며 금순이를 크게 칭찬하였다.

금순이는 수줍은 듯이 웃기만 하다가 이런 말을 하였다.

≪나두 미시가루주머니를 몇 번이나 꺼냈다 넣었다 했는지 몰라요. 먹고 싶은 걸 겨우 참았지요 뭐.≫

≪어떻게 참았느냐?≫

≪다른 애들이 미시가루를 먹을 때 난 눈을 꼭 감고 있었어요. 그래두 먹고 싶으면 밖으로 나가지요. 밖에 나가두 먹구 싶으면 우물에 가서 물을 한 드레박 마시고 오곤 했습니다. 그럼 미시가루를 먹은 것만치니 배가 불렀거든요.≫≫(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을 비롯한 아동단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과 안전을 염려하였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홑옷을 입고 계시는 대장선생님께서 입으시라고 저희들은 옷 한 벌을 지어가지고 왔습니다. 사양마시고 꼭 받아주십시오.≫

금순이가 아동단경례를 맵시있게 붙이고 나서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은 유격구민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재간둥이였습니다.

우리는 아동단원(노래가사)   ≪금순이가 무대에서 탭춤을 추는 날은 왕청사람들의 명절이었다.≫(영생의 꽃, 3권)

≪가창행진을 할 때의 선창은 노상 금순이가 떼곤 하였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과 유희대는 북만혁명을 지원하기 위하여 그 험준한 노야령을 넘어 원정을 가기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의 순회공연에서 김금순은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희대 막내둥이인 금순이조차도 배낭을 매주겠다는 아이들의 제의를 가볍게 밀어버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 힘으로 노야령을 넘었다고 한다.≫(영생의 꽃, 3권)

≪마창에서의 첫 공연은 금순이의 연설로부터 시작되었다.

150명에 달하는 구국군장병들이 채세영과 함께 공연을 보았는데 반영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금순이가 연설을 끝마치자 그들은 ≪밤알만한 처녀애가 어쩌면 저렇게도 말을 잘할까! 저 애를 봐서라도 우리가 항일을 잘해야겠다≫고 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채사령은 감격한 나머지 자기 방에 금순이를 데려다가 무릎 위에 앉히고 그에게 귀걸이와 손목걸이까지 걸어주었으며 순회공연을 잘할 수 있도록 유희대에 두 대의 마차까지 내주었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은 어려운 연락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나어린 금순이는 혁명조직이 그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는 중요한 연락임무를 줄 때 그것을 자기 자신에 대한 최대의 믿음으로 고맙게 받아들였다.≫(영생의 꽃, 3권)

어려운 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한 김금순은 일본놈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금순이는 조직이 준 임무를 책임적으로 수행한 다음 어머니가 계신다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다가 어른들과 함께 일본헌병대놈들에게 체포되었다.≫(영생의 꽃, 3권)

일본놈들은 김금순으로부터 혁명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갖은 악랄하고 교활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습니다.

≪혁명군의 활동, 간부들의 움직임, 유격구와 반유격구를 연결하는 비밀통로, 근거지 주민들의 생활형편과 동향 등은 그가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금순이가 유희대에 망라되어 적구에 가서도 공연활동을 많이 한 것만큼 그를 굴복시키기만 하면 지방조직들의 비밀까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적들은 이런 가능성을 저울질해보고 그에게서 귀맛이 당기는 정보자료들을 있는 힘껏 비틀어 짜내려고 하였다. 처음에는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놓고 달콤한 말로 그를 달랬다. 다음에는 위협도 하고 고문도 하였다.≫(영생의 꽃, 3권)

그러나 조직생활과 실천투쟁에서 단련된 김금순은 혁명적 지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직생활을 통해 정치적으로 단련된 아이들은 지조를 굽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의 아동단원들 가운데는 자기의 정치적 신념을 한 푼의 돈과 바꾼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영생의 꽃, 3권)

≪금순이는 항일혁명의 풍랑속에서 강철로 단련된 불굴의 어린 투사였다. 이 나라의 어린 딸은 살점이 떨어지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입을 연 것은 오직 교형리들을 욕하고 저주할 때뿐이었다.

≪만약 네가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너를 죽일 것이다!≫

금순이를 취조하던 헌병장교의 말이었다.

≪더럽다! 너같은 강도놈들과는 말하지 않겠다.≫

이것이 금순이의 대답이었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은 사형장에서도 ≪조선혁명 만세!≫를 부르짖으며 민중들에게 투쟁을 호소하였습니다.

김금순의 장렬한 최후를 보도한 신문자료≪악착한 교형리들은 혁명군의 비밀을 불지 않는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어린 금순이를 죽이려 하였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유격구주민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다 이를 갈며 치를 떨었다. 백초구들판에는 눈물의 바다가 고였다. 그러나 금순이는 오히려 자기를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아버지, 어머니들. 왜 우십니까. 울지들 마세요. 혁명군 아저씨들이 꼭 원쑤를 쳐 없앱니다. 조국이 해방되는 날까지 굳세게 싸워주십시오!≫

불을 토하는 것 같은 이 최후의 절규에는 9살밖에 되지 않는 그의 생애가 짤막하게 함축되어 있었다.

사형장에서는 ≪일제놈들을 타도하자!≫, ≪조선혁명 만세!≫를 부르짖는 금순이의 앳된 목소리가 맵짜게 울렸다.≫(영생의 꽃, 3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금순의 학살소식을 들으시고 참으로 애통해 하시었습니다.

≪나는 금순이가 학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동안 아동단학교에 찾아가지 않았다.

어쩐지 그 학교에 가기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금순이가 없는 아동단학교, 금순이가 없는 아동유희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한정없이 서글퍼졌다. 적들은 내 곁에서 왕청사람들이 그렇게도 총애하던 유희대 나비, 유격구의 종달새를 영원히 앗아간 것이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의 학살소식은 혁명군중을 분기시켰습니다.

≪금순이의 최후에 대한 비통한 소식을 왕청일대의 혁명군중을 분기시켰다. 요영구골 안에서는 금순이의 추도식이 엄숙히 거행되었다. 동만 각 현에서 격노한 수십 명의 남녀청년들이 금순이의 복수를 다짐하며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은 혁명투쟁과 혁명생애는 전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항일의 소년영웅 김금순에 대하여 소개한 동북항일렬사전(1936.5)   ≪국제당계열의 잡지와 중국과 일본의 출판물들은 세계 피압박민족의 해방투쟁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어린 영웅에 대하여 앞을 다투어 보도하였으며 ≪어린 열녀의 약전≫이란 제목으로 금순이의 영웅적 생애를 격찬하였다. 한 뼘도 되지 않는 자그마한 발로 사품치는 강하와 메부리들을 쉴새없이 넘고 건너며 혁명의 노래를 열정적으로 부르던 유격구의 종달새 금순이는 이처럼 9살 나이에 세계를 격동시킨 인물이 되었다.≫(영생의 꽃, 3권)

≪어느 해 였던지 잡지 ≪태평양≫이 그 잡지 특파원과 임춘추의 회견기를 실은 일이 있습니다. 나는 그 회견기를 보고 임춘추가 특파원에게 우리 부대 자랑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전투전에 잘 세운 계획과 오묘한 전술과 신속정확성, 용감성으로 하여 실패를 모른다고 하였으며 우리 대오가 독자성이 강하고 문화적이며 낙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잡지특파원은 그 회견기에서 임춘추가 조선인민혁명군의 전과에 대한 글과 아동단원 김금순의 영웅적 최후에 대한 글을 써보낸 사실까지도 다 서술하고 있었습니다.≫(혁명적 뿌리를 가꾸며, 8권)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후 우리 민족은 지금까지 줄곧 그를 ≪조선의 잔 다르크≫라고 부르며 뜨거운 애정을 담아 추억하고 있다.

그러나 금순이한테는 아직 그런 칭호가 붙어있지 않다. 그와 대등한 나이의 영웅소녀와 없거니와 그의 투쟁업적에 견줄만한 위훈을 세운 처녀애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은 혁명적 의리와 신념이 강한 혁명가였습니다.

≪의리와 신념이 강하면 여염집아낙네들도 혁명을 하며 김금순과 같은 꼬마들도 절개를 지켜 단두대에 오른다.≫(혁명적 의리에 대한 생각, 6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금순을 소년영웅으로, 영생의 꽃으로 높이 평가하시었습니다.

유관순   ≪3.1의 영웅 유관순과 함께 김금순과 같은 소년영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자랑이고 영광이다. 최근에 금순이를 형상한 소설도 나오고 영화도 나왔지만 그것만으로는 후대들에게 그의 위훈을 충분히 소개할 수 없다. 금순이와 같은 소년영웅들의 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서는 금상이나 동상을 세워주어도 아까울 것이 없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은 9살을 살고 영생을 얻은 소녀였다. 9살이며 꽁다리연필처럼 짤막한 생애이다. 그러나 번개와 섬광과도 같이 번뜩거리다가 사라진 이 어린 나이에 그는 인생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적 높이에 도달하였으며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산 모범으로 똑똑히 가르쳐주었다. 세상에는 100살을 살 때까지 민족앞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가버린 사람들이 수두룩하지만 그는 9살에 후대들의 추억속에 영생할 위훈의 창조자가 되었다.

김금순과 같은 어린이를 세계적인 소년영웅으로 키워낸 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공로라고 말할 수 있다.≫(영생의 꽃, 3권)

≪금순이는 죽었지만 그의 기개와 넋은 오늘도 후대들의 심장속에 마촌과 요영구골 안을 뛰어다니던 천진난만한 그 시절처럼 생동하게 살아 고동치고 있다.≫(영생의 꽃, 3권)

김금순의 일가는 이름난 혁명가의 가정이었습니다.

≪금순이의 일가는 이름난 혁명가의 가정으로 항일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참혹한 수난을 당하였다. 아버지는 왕우구에서 지하혁명조직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민생단≫으로 몰려 피살되었고 어머니는 손에 총을 잡고 근거지를 지키다가 싸움터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금순이의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나는 그에게 내적으로 어려운 과업을 많이 주었다.

금순이의 아버지는 한번 과업을 받으면 무슨 일이든지 끝까지 해제끼고야 마는 강의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금순이까지 셈하면 그의 일가에서 다섯 명이 희생된 것으로 된다.≫(영생의 꽃, 3권)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금순의 동생, 김양남을 찾아내주시고 그의 역할을 높여주시는 한편, 그의 건강을 각별히 보살펴주시었습니다.

아동단원들과 함께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을 찾아오신 김정숙동지

≪하지만 그처럼 가혹하고 무자비한 운명의 신도 이 훌륭한 가정의 핏줄을 이어주기 위해서 후대를 한 명 남겨주었다. 금순이의 어머니가 전투장에서 마을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간 금순이의 두 살 난 동생 김양남이 기적적으로 세상에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가 김금순의 동생이라는 것을 맨 처음 포착하고 나에게 그의 경력을 보고한 것은 김정일조직비서였다.≫(영생의 꽃, 3권)

≪김양남은 김정일조직비서의 직접적인 지도밑에서 만수대예술단을 창립하고 그것을 세계적인 1류급의 예술단체로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할 공로자의 한 사람이다. 1971년 2월 만수대예술단은 조국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의 서반구 쿠바땅에서 역사적인 첫 원정공연의 막을 올렸다. 그때 김양남은 정치부단장으로 예술단을 인솔하였다.

김정일조직비서는 김금순의 일가가 남긴 단 한 명밖에 없는 후손으로 2살 때부터 남의 집 젖을 먹고 자라나 머슴꾼으로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보낸 김양남의 과거를 늘 가슴아프게 여기면서 그를 친혈육처럼 각별히 아끼고 사랑해주었다.

김양남이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에는 수십 명의 전문가들로 강력한 의료진을 뭇고 낮에 밤을 이어 집중적인 치료전을 벌이게 하였으며 각국에 주재하고 있는 우리 나라 대사관들에 그의 병력서를 보내 효능 높은 고가 약들을 대량 구입해 들이게 하였고 제약공업이 발전했다는 여러 나라들에 특별비행기도 무시로 띄워보냈다. 김양남은 이런 은정속에서 무려 10여 차례에 달하는 수술을 받으면서 거의 2년동안이나 생명을 연장하였다.≫(영생의 꽃, 3권)

≪얼마 전에 김양남의 둘째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모교인 평양음악무용대학 작곡학부를 졸업하고 만수대 예술단에서 예술창조의 첫걸음을 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물렀고 고모가 불렀으며 아버지가 부르던 혁명의 노래를 지금은 그가 부르고 있다.≫(영생의 꽃,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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