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9월 13일(금)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지난 강좌 보기

회고록과 영도방법

통일여명 편집위원 강인규

 

영도방법은 영도체계와 영도예술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영도체계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말하며 영도예술전투적 구호혁명적 대중운동, 그리고 혁명적 사업방법민중적 사업작풍을 말한다. 이는 매우 방대한 내용이라 아래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대목만 발췌하였다.

먼저, 회고록의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관련된 부분이다.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된 후 우리는 유격대 안에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를 내왔다. 그것은 카륜에서 조직된 첫 당조직의 확대발전으로 이루어진 결실이었다. 우리의 자주적인 당조직은 그 후 조국광복회 국내조직인 조선민족해방동맹과 농조, 노조들에도 뿌리를 뻗치었다.≫(첫 당조직 - 건설동지사, 세기와 더불어 2권)

김혁차광수최창걸

≪내가 김혁, 차광수, 최창걸과 같은 사람들을 그토록 사랑하고 잊지 못해하는 것은 그들에 나에 대한 노래를 짓고 나를 지도자로 내세워서가 아니다. 바로 그들이 우리 민족이 그처럼 절절하게 바라면서도 실현할 수 없었던 통일단결, 우리 인민의 자랑이고 영광이며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인 참다운 통일단결의 시원을 열어놓고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에서 영도자와 대중의 일심동체를 이룩한 통일단결의 새 역사를 피로써 개척한 선구자들이기 때문이다. . . .

그들의 첫째가는 역사적 공적이 바로 거기에 있다. 지도자를 내세우고 그 지도자를 핵으로 통일단결한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넋은 오늘 우리 당이 일심단결이라고 부르는 통일단결을 낳은 위대한 전통으로 되었다.≫(혁명시인 김혁, 세기와 더불어 2권)

   ≪반일인민유격대를 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하는 것은 단순한 명칭의 교체나 실무적인 재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항일유격대가 걸어온 전투적 노정을 총화하고 그 성과와 경험을 확대하는 방향에서 유격대의 지휘체계를 개선하고 대오를 질량적으로 강화하는 군건설의 새로운 단계를 의미하였다.≫(조선인민혁명군, 세기와 더불어 3권)

≪남호두회의는 한마디로 말하여 조선공산주의운동과 반일민족해방투쟁 역사에서 처음으로 주체를 완전히 확립한 회의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의에서 채택된 일련의 결정들은 그 이후 여러 단계의 혁명에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주체적 입장을 튼튼히 견지하고 어떤 역경속에서나 그것을 민족을 첫째가는 생명으로 변함없이 틀어쥐고 나갈 수 있게 하였다.≫(경박호기슭에서, 세기와 더불어 4권)

≪그는 국내인사들 가운데서 해외의 무장투쟁과 국내정치투쟁의 불가분리성과 일원화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공리공담의 울타리를 벗어나 적극적인 자세로 그것을 실현하였을 뿐 아니라 혁명군과의 연계를 성사시킨 다음에는 우리의 노선을 관철해 나가는 길에서 생명까지 바친 선각자, 투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이제순, 세기와 더불어 5권)

혁명적 출판물은 또한 수령과 당, 대중을 하나의 유대로 이어주는 훌륭한 수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3.1월간≫, 세기와 더불어 5권)

≪조선혁명의 주체노선을 관철하는데서 우리가 중요하게 내세운 전략적 과업은 한편으로는 국내에 무장투쟁과 정치투쟁을 총괄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믿음직한 책원지, 비밀거점을 꾸리는 것이었으며 다른 편으로는 강력한 정치적 역량과 군사적 역량을 마련함으로써 자력광복을 위한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는 것이었다.

국내에 강력한 정치적 역량을 꾸리는 사업은 조국광복회망을 확대하여 각계각층의 광범한 애국역량을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밑에 굳게 묶어세우는 것과 함께 국내에 강력한 당조직망을 꾸림으로써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전반적 항일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핵심역량을 마련하는 것이었다.≫(불굴의 투사 박달, 세기와 더불어 5권)

≪≪국내의 당조직들은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에 소속되고 또 그 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조선에 공산당이 없는 현재의 특수한 상황에서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는 조선혁명전반에 대한 영도적 기능을 담당한 참모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 .

국내당공작위원회는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고 국내당조직건설을 맡아보게 될 지역적 지도기관이다. . . .

우리는 그때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를 소집하고 나를 책임자로 하고 김평과 박달을 위원으로 하는 국내당공작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박달은 이 위원회의 현지집행인으로서 갑산지방을 비롯한 국내 여러 지역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을 주관할 임무를 지니었다.≫(국내당공작위원회, 세기와 더불어 5권)

김정숙동지   ≪김정숙≪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내걸고 우리의 혁명사상을 정력적으로 선전하였다. 이런 과정에 지도핵심들을 소문없이 키워냈다. 그리고 그 핵심들로 반일청년동맹도 조직하고 부녀회도 조직하였다. 조용하던 산골마을은 드디어 우리의 위력한 활동지반으로 되었다. 김정숙은 가는 곳마다에서 인민들은 옹군애병사상으로 교양하였으며 부녀회원들, 청소년들과 함께 원호물자들을 준비하여 부대에 보내주고는 하였다.≫(양민보증서, 세기와 더불어 5권)

≪북만의 조국광복회조직건설사업에 대하여 말할 때 김책의 노고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책은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입수하자 그 강령을 한 자 한 자 목판에 새겨가지고 수백부나 찍어냈다. 그가 손수 찍어낸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북만의 항일연군부대들과 각 현의 지방혁명조직들에 널리 배포되었다.≫(삼천리방방곡곡에, 세기와 더불어 6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언제 어떤 정황속에서나 모든 병사, 지휘관들이 한결같이 사령부의 안전부터 생각하는 것이 7연대의 고유한 특성이며 사령관의 명령, 지시를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최상의 수준에서 관철하며 사령부의 의도를 그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포착할 뿐 아니라 그 의도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온몸이 육탄이 되어 앞장서서 끝장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관철해나가는 것이 바로 7연대의 생활과 투쟁의 전투적인 기풍이었습니다.≫(오중흡과 7연대, 세기와 더불어 7권)

≪하지만 김책은 쏘련사람들앞에서나 중국사람들앞에서나 나를 조선혁명의 대표자로, 지도자로 내세웠습니다.

어떻게 되어 그가 자기보다 9살이나 아래인 나를 그처럼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내세웠겠습니까.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책이한테는 혁명을 하자면 영도중심이 있어야 하고 그 영도중심의 두리에 모두가 하나로 튼튼히 뭉쳐야 한다는 사상이 온몸에 꽉 차있었습니다. 영도중심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이 결국은 나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 .

김책   길림시절에 새 세대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이 나를 영도의 중심으로 내세웠다면 1930년대와 1940년대 전반기에는 김책을 비롯한 항일혁명투자들이 나를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내세우고 조선혁명의 주체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나를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 나라 혁명에서는 영도중심이 형성되었습니다.≫(혁명가 김책, 세기와 더불어 8권)

임춘추는 나에게 헌신적이었던 것처럼 김정일동무의 영도에도 충실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 임춘추가 그처럼 자기 수령과 영도자를 열렬히 경모하고 그 영도에 충실한 혁명가로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김혁, 차광수나 김책과 마찬가지로 종파의 해독성을 잘 알고 실지체험을 통하여 수령이 귀중함을 그 누구보다도 뼈에 사무치게 통감한 사람이었기 때문 . . .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   우리 인민은 수령의 사상체계와 영도체계를 확립하는데서 김정일동무가 발휘한 비범한 수완과 혁명적 원칙성, 수령의 노선과 구상을 옹호하고 실현하는데서 그가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정력, 고결한 충성심과 효성에 경탄하였으며 김정일동무야말로 수령의 사상과 의도대로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향도하고 완성해나갈 수 있는 영도자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혁명의 뿌리를 가꾸며, 세기와 더불어 8권)

다음, 회고록의 전투적 구호와 관련된 부분이다.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

그때부터 이 구호는 나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좌우명으로 되었다.≫(조직을 확대하기 위하여, 세기와 더불어 1권)

≪그날 아침 각 학교의 학생들은 약속된 시간에 일제히 교정에서 모임을 가지고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하는 성토문을 발표한 다음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거리는 삽시간에 수천 명의 학생들로 차고넘치었다. 그들은 ≪일제침략자들을 타도하자!≫,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공사를 반대하여 투쟁하자!≫는 조선글로된 플랭카드와 ≪타도 일제≫, ≪타도 매국노≫, ≪회수길회선≫이라고 중국글로 쓴 플랭카드들을 들고 거리를 누비면서 신개문밖에 있는 성의회마당으로 모여들었다.≫(단결의 시위, 세기와 더불어 1권)

≪카륜에서 반일민족해방운동을 그 최고단계인 무장투쟁에로 이행시키려는 조선민족의 의지가 확인되었다면 명월구에서는 그 의지가 거듭 확인되고 ≪무장에는 무장에로, 반혁명적 폭력에는 혁명적 폭력으로!≫라는 구호밑에 일제를 격멸하기 위한 항일전쟁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무장에는 무장으로, 세기와 더불어 2권)

≪그러니 ≪적의 무기를 빼앗아 자체를 무장하자!≫는 비장한 구호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혈전의 준비, 세기와 더불어 2권)

≪항일전쟁의 폭풍속에서 태어난 자력갱생의 넋은 오늘날 김정일조직비서가 제시한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라는 구호와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구호속에서 힘차게 살아 고동치고 있다.≫(밀림속의 병기창, 세기와 더불어 3권)

≪이런 실정을 충분히 참작하여 공청모임은 ≪원쑤의 심장에 포대를 쌓자!≫는 전투적 구호를 제기하였다. 이것은 ≪적군들속에 혁명의 포대를 쌓자!≫는 것은 구호와 대동소이한 말이었다. ≪원쑤의 심장에 포대를 쌓자!≫는 것은 원쑤의 심장부에 우리의 조직체들을 튼튼히 꾸려나가자는 사상이다.≫(공청의 산아들, 세기와 더불어 4권)

≪우리는 ≪설복하고 설복하고 또 설복하자!≫는 구호를 내들고 매일같이 주민들의 집을 찾아다녔다. 구별로도 모임을 열고 조직별로도 회의를 열어 해설에 해설을 거듭했지만 적지 않는 주민들은 적구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그냥 검질기게 고집하였다.≫(혁명의 씨앗을 드넓은 대지에, 세기와 더불어 4권)

≪그러므로 우리는 항일무장투쟁 초시기부터 ≪적군속에 혁명의 포대를 쌓자!≫라는 구호를 내들었다. 적군속에 포대를 쌓는다는 것은 적군속에 우리의 진지를 쌓는다 것을 말한다.≫(기이한 인연, 세기와 더불어 4권)

≪우리는 강습과 회의들에서 남호두회의방침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해설하면서 회의의 기본정신을 반영한 당면한 구호를 제기하였다. ≪조국에 무보를 뻗치고 군호를 올리자!≫, 이것은 우리 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 것을 바라고 내놓은 우리의 구호였다.≫(경박호기슭에서, 세기와 더불어 4권)

청봉숙영지에 남긴 구호나무(김정숙동지의 필적)≪우리는 보통사람들이 혁명을 통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하는가를 말할 때마다 그 전형적인 실례로 김산호를 들군 하였다. 그리하여 ≪머슴군으로부터 연대정치위원으로!≫라는 말은 혁명이 보통사람들의 발전과정을 얼마나 강력하게 추동하며 노동자, 농민 출신의 평범한 근로청년들이 혁명의 와중에서 정치사상적으로나 군사기술적으로나 문화도덕적으로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도표와도 같이 되어왔었다.≫(소탕하에서의 일행천리, 세기와 더불어 6권)

≪우리가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면서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는 구호를 내놓았을 때만 해도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달가와하지 않았습니다.≫(≪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 세기와 더불어 7권)

≪우리가 백석탄에서 군정학습을 시작하면서 제시한 구호는 ≪학습도 전투다!≫와 함께 ≪어렵고 복잡한 때일수록 학습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마당거우밀영, 세기와 더불어 8권)

≪오늘은 김정일동무가 내놓은 ≪전당이 학습하자!≫라는 혁명적인 구호를 관철하는 과정에 누구나 다 배우며 일하고 일하면서 배우는 혁명적 기풍이 온 나라에 차넘치게 되었습니다.≫(마당거우밀영, 세기와 더불어 8권)

≪그 후부터 국제연합군 안의 모든 조선인대원들은 ≪조선혁명가들은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조국에 대한 학습을 심화하였습니다.≫(해방의 날을 그리며, 세기와 더불어 8권)

다음, 회고록의 혁명적 대중운동과 관련된 부분이다.

모임을 끝낸 군중은 더욱 기세충천하여 일본영사관이 자리잡고 있은 신시가쪽으로 행진해갔다. 평시에는 영사관경찰의 행패가 심해서 좀처럼 발길을 돌리지 않던 곳이었다. 일본영사관앞에서 반일구호를 힘있게 부르며 기세를 올린 시위군중은 대마로, 북경로, 중경로, 상의가 등 길림의 여러 거리를 뒤덮으며 시위를 계속하였다.

길림의 시위투쟁에서 타격을 받은 일제의 철도회사는 길돈선철도개통식을 무기한 연기하였다. 일본장사꾼들은 상점을 버리고 자기들의 영사관으로 도망쳐들어갔다. 남만철도회사에서 운영하는 동양병원의 유리창도 박살났다.≫(단결의 시위, 세기와 더불어 8권)

문제는 대중을 어떻게 동원하고 조직하며 지휘하는가 하는데 달려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새 세대의 공산주의자들은 하나의 모범을 창조해놓은 셈이었다. 추수투쟁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밀접히 결합시키고 평화적 방법과 폭력적 방법을 적절하게 배합하면서 시종일관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적을 피동에 몰아넣은 독특한 투쟁이었다. 다음해 봄에 있은 춘황투쟁도 이런 투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무장에는 무장으로, 세기와 더불어 2권)

청년의용군 출신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 최광   ≪최광은 공청조직의 지도밑에 임금인상을 위한 투쟁에로 소년노동자들을 궐기시켰다. 양주소에 입직한 후 아동단조직에 받아들여 10여 명의 동료들을 동원하여 파업을 호소하는 선동활동을 벌였다. . . . 그의 호소에 따라 소년노동자들은 3일 동안이나 공장에 출근하지 않았다. 일자리를 떼울까봐 공장으로 나가던 소년공들도 그의 해설을 듣고는 마음을 굳게 가지고 파업대열에 합류하였다. 두 차례에 걸치는 파업을 통하여 소년노동자들은 공장주를 굴복시키고 하루임금을 30전으로부터 40전으로 올리는데 성공하였다.≫(공청의 산아들, 세기와 더불어 3권)

백두산에 있을 때 장백사람들이 물방아로 원호미를 찧어보내서 우리가 굶지 않고 싸웠다는 것, 원쑤들이 마을을 불사르고 물방아를 마사버려도 물방아소리는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 인민에게 의거하고 인민의 힘을 발동하면 그 어떤 강적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였다. . . .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인민이 군대를 돕고 군대가 인민을 돕는 ≪우리 마을, 우리 초소≫, ≪우리 초소, 우리 마을≫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특히 김정일동지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다음부터 그 운동은 전국의 공장, 기업소들과 농장, 가두, 학교들에 빠른 속도로 일반화되고 있다.≫(물방아소리, 세기와 더불어 5권)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이 편찬한 책에는 북해도의 한 토목공사장에 침투한 우리 공작원이 조선인노동자들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에 대해 소개선전하고 그들을 반일투쟁에로 불러일으킨 자료들도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그 공작원은 공사장에서 태업을 자주 조직하고 도주자를 많이 내여 군수생산에 지장을 주었습니다.≫(현해탄 너머에서도, 세기와 더불어 8권)

다음, 회고록의 혁명적 사업방법과 관련된 부분이다. 혁명적 사업방법은 정치사업을 선행하는 방법, 위가 아래를 도와주는 방법, 실정을 요해하고 대책을 세우는 방법, 중심고리를 찾고 거기에 힘을 집중하는 방법, 일반적 지도와 개별적 지도를 결합하는 방법, 모든 사업을 격식과 틀이 없이 창조적으로 하는 방법, 사업을 대담하고 통이 크게 벌이는 방법 등이다.

첫째, 정치사업을 선행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설복하고 설복하고 또 설복하자!≫는 구호를 내들고 매일같이 주민들의 집을 찾아다녔다. 구별로도 모임을 열고 조직별로도 회의를 열어 해설에 해설을 거듭했지만 적지 않는 주민들은 적구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그냥 검질기게 고집하였다.≫(혁명의 씨앗을 드넓은 대지에, 세기와 더불어 4권)

≪나는 쉴참에 사령부성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 수풀속에 들어있는 바늘은 만쌍의 눈이 밝혀도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 우리가 잘만 꾀를 쓰면 대밀림과 대적의 무리속에서 능히 바늘처럼 자신을 숨길 수 있다. . . .

애국심만 버리지 않으면 우리도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 물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세는 험악하다. 그러나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확고히 가지고 난관앞에 주저앉지 않으면 우리도 능히 대세를 뒤집어놓을 수 있다. 그러니 신심을 가지고 행군을 계속하자…

이런 연설을 하자 대원들은 장군님, 명령만 내리십시오, 우리는 장군님을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하면서 밝은 얼굴로 행군길에 나섰습니다. 그런 말에 나도 힘을 얻었습니다.≫(고난의 행군, 세기와 더불어 7권)

둘째, 위가 아래를 도와주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런 재래식 사업방법이 공청일군들의 일본새에서 어느덧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공청일군들은 유격대와 지방의 지부조직들에 내려가서 공청사업을 책임적으로 도와주었다. 현위 사무실에서 말공부와 문서놀음으로 세월을 보내던 사람들이 아래에 내려가 맹원들도 만나보고 소조모임이나 지부회의에도 참석하였으며 공청서기들을 도와 사업계획도 세워 주었다. 현위 사무실에 공청간부들이 모이는 것은 회의가 있는 날뿐이었다.≫(공청의 산아들, 세기와 더불어 3권)

세째, 실정을 요해하고 대책을 세우는 방법이다.

≪만일 그때 우리가 내도산에 가보지 않고 길림에 앉아서 이제우의 보고를 들었거나 지나가는 풍문이나 얻어듣고 사태를 판단하였더라면 천불교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도산에 가서 ≪덩덕궁≫도 보고 기도를 드리는 신자들의 진지한 표정도 보고 집집의 대들보밑에 달아맨 기장이삭들도 보았기 때문에 천불교와 그 신자들에 대한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었다.≫(조직을 확대하기 위하여, 세기와 더불어 1권)

≪우리가 조선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만지방에 적합한 정권형태로 인민혁명정부를 선택한 것은 그것이 반제반봉건민주주의를 목적으로 하는 조선혁명의 성격에도 알맞고 인민의 요구에도 부합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권형태의 기준을 인민의 요구에서 찾고 인민의 이익을 얼마나 옹호고수하며 철저히 대변하는가 하는데서 찾았다.≫(소비에트냐, 인민혁명정부냐, 세기와 더불어 3권)
보천보시가의전경 

≪국내진공을 앞둔 때의 나의 제일 큰 관심사는 조국의 실정을 깊이 요해하는 것이었다. 출판물만으로는 국내의 실정을 속속들이 다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국내에 갔다오는 공작원들과 담화를 많이 하였다. . . .

그 자료들가운데서도 우리가 제일 중시한 것은 인민들의 동향이었다. 인민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이 우리의 주되는 관심사였다.≫(보천보의 불길(1), 세기와 더불어 6권)

네째, 중심고리를 찾고 거기에 힘을 집중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방어에만 매달리지 말고 적의 뒤통수도 쳐야 한다. . . . 포위망만 뚫으면 살 길이 열린다. 적의 거점들과 지탱점들을 연이어 들부수면 소문이 난다. 소문을 내면서 여기에서도 치고 저기에서도 치면 후방이 녹아날까봐 산골 안에 들어왔던 ≪토벌대≫들이 다 달아난다.≫≫(마촌작전, 세기와 더불어 3권)

≪뒤에서 우리를 추격하는 것은 일본군 ≪토벌대≫였지만 앞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만주국군대였습니다. 만주국군대는 우리 부대와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즉 약한 고리는 앞에 있었습니다.≫(고난의 행군, 세기와 더불어 7권)

다섯째, 일반적 지도와 개별적 지도를 결합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정권형태를 인민혁명정부로 결정한 다음 우리는 어느 한 단위에서 먼저 시범을 창조해보고 그것이 좋다고 인정되면 다른 혁명조직들에도 일반화하자는데 합의를 보았다. 시범 단위로는 5구가 결정되었다.≫(소비에트냐, 인민혁명정부냐, 세기와 더불어 3권)

≪그러다가 2년쯤 지나서 서로가 조직원이라는 것을 다 간파하게 되자 그 무명의 조직에 갑산공작위원회라는 간판을 달았다.

우리는 국내당조직건설에서 얻은 이와 같은 경험에 기초하여 그 후 당지부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쓴 글에서 이 방법을 정식화하였으며 1940년대 전반기에 소조공작을 하기 위하여 국내에 들어가는 동무들에게 이 방법을 활용할 데 대한 과업을 주었다.≫(국내당공작위원회, 세기와 더불어 5권)

≪우리는 조국광복회조직건설사업에서도 역시 시범단위를 먼저 꾸리고 그것을 모체로 하여 사방에 조직을 늘여나가는 방침을 취하였다. 그런 시범단위들은 우선 조직건설의 기초가 있고 운동경험이 있는 곳, 군중의 사상동향이 좋고 혁명성이 강한 곳, 지하전선을 움직여나갈 수 있는 지도역량이 일정하게 마련되어 있는 곳들에 선참으로 꾸리었다.≫(삼천리방방곡곡에, 세기와 더불어 6권)

여섯째, 모든 사업을 격식과 틀이 없이 창조적으로 하는 방법이다.

≪당조직을 확대하고 당대열을 늘이기 위한 박달의 사업방법에서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명당조직의 결성이다. 무명의 당조직이란 정식명칭은 없으나 실지로는 비밀리에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당원들의 당조직을 말한다. 이런 조직은 조국광복회의 내부에도 있었다.≫(국내당공작위원회, 세기와 더불어 5권)

유격전의 특성은 조성된 군사, 정치 정세와 환경에 따라 임기응변하는데 있습니다. 소부대활동은 대부대활동이 위주였던 1930년대 후반기에도 중시되어 왔으며 필요에 따라 적용하였습니다.≫(소할바령에서, 세기와 더불어 8권)

일곱째, 사업을 대담하고 통이 크게 벌이는 방법이다.

≪남만청총대회가 소집되던 그 해 가을에 유하에서 사회과학연구회의 활동에 대한 차광수의 설명을 들은 나는 그 운영방법의 독창성과 참신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으며 이 연구회를 이끌어나가는 세 전우(최창걸, 차광수, 김혁)를 통이 크고 창조성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평가하였다.≫(단합의 이념아래, 세기와 더불어 2권)

≪일제의 폭압이 절정에 치달아오르던 1937년 당시 수백 명의 집단이 백주에 붉은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부른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것이 반일반만시위라는 것을 일만군경들이 다같이 감촉하지 못했다는 것도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이것은 뛰어난 지략과 대담성을 가진 인물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고안해낼 수 없는 큰 모험이었다.≫(이제순, 세기와 더불어 5권)

≪그 후 우리는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과 대중단체건설 정형 그리고 비밀무장조직들의 활동정형을 요해한데 기초하여 조국해방의 3대노선을 내놓았습니다. 조국해방의 3대노선이라는 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그에 배합한 전인민적 봉기, 배후연합작전으로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이룩할 데 대한 노선입니다.≫(전민항쟁의 불길은 온 강토에, 세기와 더불어 8권)

다음, 회고록의 민중적 사업작풍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는 혁명가적 기풍과 민중적 품성으로 나뉘어진다.

첫째, 혁명가적 기풍이다. 혁명가적 기풍은 수령의 교시와 당의 방침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행정신, 혁명의 주인다운 태도, 이신작칙, 불요불굴의 투쟁정신, 혁명적 원칙성과 사업에서의 노숙성, 자기사업에 대한 정상적인 검토총화 등이다.

≪이렇게 늙은이들부터 교양한 다음 야학도 내오고 강연도 하고 사람들속에 어울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면서 마을을 흥성거리게 만들어놓았다. 마을사람들은 차광수선생이 하는 것과 같은 사회주의라면 자기들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혁명사업에 발벗고나섰다.≫(차광수가 찾은 길, 세기와 더불어 1권)

≪그 겨울에 우리가 나자구오지에서 굶어죽지 않고 얼어죽지 않고 총탄에 맞아죽지 않은 것은 기적중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 . 그리고 그때마다 ≪그것은 혁명에 대한 책임감이었다.≫라고 긍지에 넘쳐 자답하군 하다. 그 책임감만 없었더라면 우리는 눈구뎅이속에 그대로 주저앉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나자구 등판에서, 세기와 더불어 2권)

가위계를 통하여 마을사람들을 초보적으로 계몽시킨 다음 이전날의 동창회, 학우회, 친목회 등 계몽단체들을 통합하여 영동친목회를 조직하였다. 이 친목회는 돈화와 할바령, 동쪽 지구인 연길, 훈춘, 화룡, 왕청 일대 청년학생들의 합법적 조직이었다.≫(낮에는 적의 세상, 밤이면 우리 세상, 세기와 더불어 3권)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자력갱생은 역사발전을 촉진시켜온 강력한 추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밀림속의 병기창, 세기와 더불어 3권)

김금순   ≪≪아버지, 어머니들. 왜 우십니까. 울지들 마세요. 혁명군 아저씨들이 꼭 원쑤를 쳐 없앱니다. 조국이 해방되는 날까지 굳세게 싸워주십시오!≫

불을 토하는 것 같은 이 최후의 절규에는 9살밖에 되지 않는 그의 생애가 짤막하게 함축되어 있었다. 사형장에서는 ≪일제놈들을 타도하자!≫, ≪조선혁명 만세!≫를 부르짖는 금순이의 앳된 목소리가 맵짜게 울렸다.≫(영생의 꽃, 세기와 더불어 3권)

≪그러면 그가 왜 자기를 의리도 없고 혁명성도 없고 통찰력도 없는 지휘관이라고 타매하였겠는가. 그가 총화모임에서 강조하려고 한 것은 요컨대 무엇이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한흥권이 자기를 근시안이라고 자탄할 때 나는 나대로 그를 지도하는 상급의 자각을 가지고 마촌작전이 남긴 심각한 교훈을 도출해냈다. 그것이 바로 수시로 변화되는 전투상황에 맞게 중대 상호간의 협동을 원만히 조직하자면 그를 총괄할 만한 지휘, 참모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하자면 지휘체계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조선인민혁명군, 세기와 더불어 3권)

≪≪동무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서산포대를 점령하자! 혁명을 위하여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다 바쳐 싸우자!≫

그리고는 싸창으로 적을 쏘아 눕히면서 앞으로 돌진하였다. 포대 위에서 기관총탄이 우박처럼 날아와 귓부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떤 탄알은 모자에 구멍을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숨을 톺을 사이도 없이 그냥 앞으로만 돌진하였다. 대원들이 땅을 걷어차고 일어나 내 뒤를 따랐다.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서산포대는 30분만에 점령되고 포대 꼭대기에는 붉은기가 휘날렸다.≫(조선인민혁명군, 세기와 더불어 3권)

≪≪나를 키워 준 그 위대한 간부의 이름을 너희들이 수첩에 적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제 공산당은 내 원쑤를 갚아 줄 것이다.≫

박준호는 이렇게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였다. 저고리 앞자락을 활짝 헤치고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공청원의 불굴의 영상을 눈앞에 그려 보라. 그가 어떻게나 떳떳이 걸어갔던지 적군 사병들조차 모두 공산주의자들이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공포에 질려 수군거렸다.≫(공청의 산아들, 세기와 더불어 4권)

역사는 우리에게 아직 죽을 권리를 주지 않았다. 역사와 시대앞에서 자기앞에 부과된 과제를 수행하지도 못하고 한 줌 흙으로 사라져버린다면 그는 불효자이다. 한 가정이나 가문의 범위를 뛰어넘어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준 인민앞에서 불효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천교령의 눈보라, 세기와 더불어 4권)

≪그러므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모든 활동은 이 목표를 실현하는데 복종되어야 했다. 우리는 사고와 실천에서 자주성에 대한 옹호를 생명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환경에서나 맹호가 되고 우뢰가 되어야 했다.≫(다홍왜에서의 논쟁, 세기와 더불어 4권)

인민을 건드리는 놈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흑산의 태평구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이 의지를 다시금 실천으로 힘있게 보여 주었다.≫(사도구참변에 대한 대답, 세기와 더불어 4권)

김정숙은 인민에게 사랑을 바친 것만큼 자기가 그처럼 아끼고 품어준 인민들로부터 응당한 보답을 받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500명의 인장이 찍힌 양민보증서는 그가 인민의 참된 충복임을 증명하는 영원한 증서라고도 해야 할 것이다.≫(양민보증서, 세기와 더불어 5권)

권영벽≪권영벽은 일신이 그대로 방패가 되어 혁명조직들이 당하고 있는 출혈을 최대한으로 막아보려고 애썼다. 그는 우선 이제순에게 이런 백글쪽지를 보냈다. 백글이란 펜이나 연필이 아니라 손톱으로 쓴 글을 말한다.

≪모든 것을 나에게 밀 것!≫

권영벽의 의도를 알아차린 이제순은 지체없이 회답 쪽지를 보냈다.

≪우리는 일심동체!≫≫(권영벽, 세기와 더불어 6권)

≪≪그런 사연들을 생각하면 나도 역시 가슴이 아프오. . . . 하지만 민족을 재생시키겠다는 결심을 품고 총을 멘 조선의 젊은이들이 김월용이라는 한 사람의 잔치야 왜 보란 듯이 차려주지 못하겠소.≫≫(스쳐버릴 수 없는 사연, 세기와 더불어 6권)

김일김일은 나를 대하듯이 김정일동무를 대하였고 나에 대한 의리를 지키듯이 김정일동무에 대한 의리도 지키었다. 나는 김정일동무에 대한 김일의 남다른 경모심에 한두 번만 탄복하지 않았다. 김정일동무가 중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김일은 지팽이를 짚고 역에까지 나가 그를 맞이하였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자기 지도자에 대한 그의 진실한 자세를 두고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혁명적 의리에 대한 생각, 세기와 더불어 6권)

≪(내가 혁명가가 다 된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멀었구나. 사령관동지께서 나를 신임해주셨으니 그렇지 나처럼 설익은 혁명가가 어디 있겠는가. 동지들의 비판이 다 옳다. 이 기회에 내 사상단련을 잘해서 쇠소리가 나는 유격대원이 되어야겠다.)≫(김주현, 세기와 더불어 6권)

마동희   ≪마동희가 어떤 사람인가고 물으면 인민학교 아이들까지도 조직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혀를 끊은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사람이 자기 혀를 스스로 끊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혜산사건≫을 겪으면서, 세기와 더불어 6권)

≪≪좀더 무거운 책벌을 받고 싶습니다. 저를 가장 위험한 곳에 보내주십시오. 저의 과오는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야 씻을 수 있습니다. 제가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야 전우들은 나를 용서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날처럼 동무라고 불러줄 것입니다.≫

이동걸은 그 후 사령부가 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어 8.15해방 전야에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하였습니다.≫(청봉의 교훈, 세기와 더불어 7권)

≪그때 김정숙동무가 앞장에 서서 엄광호의 패배주의를 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사령부의 노선이나 작전적 방침과 어긋나는 그릇된 사상에 대해서는 추호의 타협도 하지 않고 견결하게 투쟁하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사상론자였습니다.≫(청봉의 교훈, 세기와 더불어 7권)

≪그렇지만 그가 남긴 말에서 우리는 큰 힘을 얻었습니다. 원쑤들에게 두 손을 묶이우고 두 눈을 빼앗긴 최악의 상태에서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한 최희숙의 말속에는 얼마나 견결하고 자랑스러운 혁명적 기개가 높뛰고 있습니까.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 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진리성을 확신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며 혁명절개가 강한 투사들만이 할 수 있는 명언입니다. 그 말은 여투사 최희숙의 한 생의 총화이기도 하였습니다.≫(여투사들의 절개, 세기와 더불어 7권)

한 홉의 미시가루와 같은 일화는 그 시기에 창조된 무수한 미담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전령병들이 사령관을 위해 배낭속에 한 홉쯤 되는 미시가루를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었는데 내가 그것을 혼자서 먹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대원들과 같이 나누어 먹었는데 이것이 후대들에게 전설같은 이야기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한두 번만 있은 것도 아닙니다.≫(고난의 행군, 세기와 더불어 7권)

오중흡   ≪혁명에 대한 오중흡의 충실성은 또한 자기 사령관의 명령, 지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행정신과 그 명령, 지시 관철에서의 높은 책임감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오중흡은 사령관이 주는 명령, 지시라면 한치도 드티지 않고 최상의 수준에서 무조건 집행하였습니다. 그 명령, 지시가 아무리 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타발하거나 불평을 부리지 않았습니다.≫(오중흡과 7연대, 세기와 더불어 7권)

≪그는 사령관이 준 과업을 수행한 다음에는 꼭꼭 그 결과를 보고하였으며 명령, 지시 집행과정에서 나타난 부족점에 대하여 하나도 숨기지 않고 낱낱이 총화하였습니다.≫(오중흡과 7연대, 세기와 더불어 7권)

≪황정해는 오던 길로 되돌아가 비밀문건을 건사한 후 위증민을 들쳐업고 수림속으로 달렸습니다. 적탄이 인차 우박처럼 날아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위증민을 안고 달리었습니다. 자기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위증민만은 살려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황정해는 어깨에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그런 상태로 더는 위증민을 안고 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는 위증민을 기관총수에게 넘기었습니다. 그리고는 기관총을 잡고 엄호사격을 하면서 적들을 견제하였습니다.≫(위증민에 대한 회상, 세기와 더불어 8권)

≪위증민은 운명직전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붓을 들고 보고서도 집필하고 유격투쟁을 총화하는 글도 썼습니다. 어떤 날은 로군의 사업과 관련된 문건기안도 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손에서 일을 떨구지 말자는 것이 혁명가로서 그가 품고 있던 지향이었던 것 같습니다.≫(위증민에 대한 회상, 세기와 더불어 8권)

≪위장도 중요했지만 김책은 어미소를 더 끌고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미와 새끼가 서로 울음으로 화답하는 소리를 들으니 처남집에 맡기고 온 자식들 생각에 눈물이 저절로 쏟아지고 송아지도 아이들도 다 불쌍한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미소를 놓아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16년 동안이나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김책과 같은 혁명가가 아니고서는 체험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혁명가 김책, 세기와 더불어 8권)

≪그때 김정숙은 그들에게 ≪전사의 일생은 수령의 역사속에 있습니다. 김일성장군님에 대해 더 많이 소개해 주십시오.≫하고 말해주었습니다.

나는 그 말속에 김정숙의 남다른 품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타향에서 봄을 맞으며, 세기와 더불어 8권)

어버이수령님의 동상건립사업을 지도하여 주시는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동지

낙하산훈련을 시작 할 때 우리는 모성들과 일부 허약한 여대원들을 제외시키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자 여대원들이 다 섭섭해하였습니다. 안정숙은 나를 찾아와 울면서 항변까지 하였습니다. . . .

그들은 조국해방의 날을 앞당기는 것이 사랑하는 자식들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이라고 하면서 훈련에 참가시켜 달라고 강경히 요구하였습니다.≫(해방의 날을 그리며, 세기와 더불어 8권)

≪만향고개에서 부대의 전진이 좌절되자 오백룡은 자기네 선견대가 고지의 적화점과 포진지를 까부시겠다고 자청해 나섰습니다. 그는 대원들을 데리고 고지에 기여올라 아군의 전진을 막고 있는 화점들을 모조리 까부시고 부대의 진격로를 열어놓았습니다.

쏘련군장병들은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조선빨치산이 제일이라고 하였습니다.≫(최후결전의 날, 세기와 더불어 8권)

≪동무들은 내가 강선제강소로 갈 때 고향집에도 들리지 않았다고 하면서 만경대갈림길에 대한 노래를 지어부르고 있지만 사실 항일혁명투사들은 개선후 누구도 고향에 가보지 않고 건당, 건국, 건군을 위한 기초작업을 하였습니다.

사령관의 명령지시를 관철하기 전에는 고향에 갈 권리도 없다는 것이 바로 우리 투사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개선, 세기와 더불어 8권)

둘째, 민중적 품성이다. 민중적 품성은 어머니다운 품성, 겸손성과 소박성, 풍부한 인간성과 문화성 등이다.

≪그는 어느 고장에 가나 사람들과 쉽게 친숙해졌다. 군중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성미가 덜렁덜렁하고 지식이 해박하며 말주변이 좋은 그를 무척 따르고 존경하였다.≫(차광수가 찾은 길, 세기와 더불어 1권)

≪≪영안에서 온 최성숙동무가 잘 있습니까?≫

우리의 대화는 반성위의 이런 물음으로 시작되었다.

아랫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반성위의 특출한 장점이라고 하던 최성숙의 말이 되살아 오르며 새삼스럽게 가슴이 뭉클해졌다.≫(국제당파견원, 세기와 더불어 3권)

≪≪할아버지.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나를 하늘이 낸 장수에 비기는 건 너무 과분한 평가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떨어진 장수가 아니라 이름없는 농사꾼의 집에서 태어난 인민의 아들이고 손자입니다. 조선의 군사로서 나는 지금까지 해놓은 일이 너무도 적습니다.≫≫(인민의 품, 세기와 더불어 3권)

≪젊은 사람을 보고 ≪님≫이라니요. 그저 김일성이라고만 불러주시오.≫

내가 이런말로 겸양의 뜻을 표시하자 온몸에서 화약내가 물씬물씬 풍기는 이 병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펄쩍 뛰었다.≫(백전노장 최현, 세기와 더불어 4권)

최현 ≪최현이 첫상봉을 통하여 나에게 남기고 간 인상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그가 매우 솔직하고 소탈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보는대로 말하고 생각나는대로 표현하는 사나이였다. 그의 사상과 감정은 순간순간마다 얼굴에 그대로 다 드러나곤 하였다.≫(백전노장 최현, 세기와 더불어 4권)

≪≪저는 아무 것도 이룩해 놓은 것 없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우왕좌왕하기만 해온 기회주의자올시다.≫

나는 한평생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초면에 자기를 기회주의자라고 서슴없이 소개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무한히 양심적인 사람만이 무한히 솔직한 법이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나를 장군 곁에 붙잡아둔 게 뭔지 알겠습니까?

첫째는 물론 장군의 그 고명한 경륜이구, 둘째는 장군의 기운 바지와 미혼진열병환자들의 울음이었지요.… 격리상태의 열병 환자들을 아무 거리낌도 없이 찾아가 돌봐 주는 걸 보고 나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일신의 위험도 마다하고 아랫사람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돌봐 준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한다하는 거물들을 만나봤지만 어림도 없습니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박달   ≪박달을 만나고보니 어째서인지 외할아버지가 하던 이 말이 되살아났다. 외형상으로 수더분하게 보이는 이 박달이야말로 속대가 바로선 사람이었고 허식이나 겉치레를 모르는 솔직하고 소탈하고 성실한 인간이었다. 요새 사람들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는 정녕 심장에 남는 사람이었다.≫(불굴의 투사 박달, 세기와 더불어 5권)

≪살인귀들의 고문장은 박달의 육체를 여지없이 파괴해버리었다. 척추가 부러지고 다리뼈가 부서졌다. 그렇지만 그의 넋은 변하지 않았고 동요하지도 않았다. 그는 불구의 몸으로 우리의 후대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옥고를 치르며 7-8년 동안이나 기적적으로 역경을 이겨냈다.≫(불굴의 투사 박달, 세기와 더불어 8권)

≪적들의 마수에서 무사히 풀려난 김정숙은 도천리에 돌아와 마을사람들속에 에워싸이기 바쁘게 ≪아이구, 난 배가 너무 고파서 혼났어요. 형님, 나 밥부터 줘요.≫하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한집안식구들끼리만 할 수 있는 허물없는 말이다. 그가 도천리사람들을 한집안 식구처럼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말을 선뜻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양민보증서, 세기와 더불어 5권)

≪김책을 매우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일군들도 있지만 사실 그가 무섭게 구는 것은 건달군들과 아첨쟁이들, 불평분자들, 이기주의자들, 탐위분자들과 종파쟁이들 앞에서였지 아래일군들과 인민들앞에서는 무한히 인자하고 겸손하였습니다.≫(혁명가 김책, 세기와 더불어 8권)

김정숙인간을 불처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을 위한 희생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동지들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해내는 것이 그의 성품입니다.≫(타향에서 봄을 맞으며, 세기와 더불어 8권)

≪그를 메마르고 딱딱한 군사지휘관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인간 강건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강건은 냉철하고 고지식하면서도 다정다감하고 인정미가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주장이나 견해에 치장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을 아무 분칠도 하지 않고 그대로 숨김없이 터놓군 하였습니다.≫(북만에서 온 투사들, 세기와 더불어 8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자체가 영도방법, 영도예술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위대한 주석님의 영도와 풍모의 위대성을 다음과 같은 회고록 서문의 짧은 문장을 통해 단적으로, 심장으로 절감할 수 있다.

나는 나의 한 생이 결코 남달리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한 생이며 인민과 더불어 지나온 한 생이었다고 자부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나는 나의 글이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면 천하를 얻고 백 번 승리하며 인민을 멀리하고 그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 번 패한다는 진리, 생과 투쟁의 교훈을 후세에 남기게 되기를 바란다.≫

 

This counter provided for free from HTMLcounter.com! copyleft © 백두산편집부
이 문서는 Internet Explorer v5.0을 기준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