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9월 9일(월)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 지난 강좌 보기

≪세기와 더불어≫ 강의 (6)
- 제15장 ≪압록강을넘나들며≫에서 제16장 ≪조선은살아있다≫까지

통일여명 편집위원 한철규

안녕하십니까. ≪세기와 더불어≫강의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그리고 항일무장투쟁의 전성기, 곧 둘째 단계에 대한 학습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보천보전투를 중심으로 학습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 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인터넷회고록강좌와 회고록에 대하여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어제로 우리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인터넷회고록강좌가 딱 절반을 마치고 오늘부터 후반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회고록학습과 인터넷강좌의 새로운 계기로 되는 인터넷회고록강좌가 반환점을 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노작이며 최고의 주체사상교재인 회고록을 이름으로 하는 강좌라고 할 때, 내용과 형식, 방법에서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청년주체주의자들이 대담하고 참신하게 시도하는 측면을 위주로 보며 회고록학습에서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우리 편집진과 수강생 여러분이 모두 함께 이 강좌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지들은 회고록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나요? 우리는 회고록학습을 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회고록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회고록은 주체 83(1994)년에 처음 1권이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회고록의 시작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처음으로 집필의사를 밝히신 주체63(1974)년 7월 6일부터라고 보아야 합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회고록을 5부 30권 90개장으로 구상하시었으며, 각부의 제목은 ≪항일혁명≫, ≪인민의 나라≫,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민족의 염원≫, ≪세기의 영마루≫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분망하신 집무활동과정에도 불구하고 짬시간을 내시어 한두줄씩 적어두시고 정력적으로 집필하시어 제1부 항일혁명편을 6권까지 발표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집필은 뜻밖의 대국상으로 하여 일부밖에 진행되지 못하였으나 위대한 주석님께서 회고록의 총적인 구성안과 구체적인 요강을 작성해 놓으시고 주요한 역사적 사실들과 인물들에 대한 풍부한 회상자료들을 남겨놓으신 한편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영도가 있음으로써 회고록발간은 계승본의 형식으로 완벽하게 이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불멸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위대한 주석님의 혁명생애이면서도 주석님께서 쓰신 우리 나라 현대사의 결정판이며 복잡다단했던 현대세계정치사의 총화로 됩니다. 잘 알다시피,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에는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거하면 천하를 얻고 백번 승리하며 민중을 멀리 하고 그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한다는 진리가 관통되어 있습니다. 발표된 회고록에는 굉장히 많은 인물들과 관련된 자료와 고사들이 폭넓게 수록되어 있는데, 조선사람이 1,035명이고 외국사람이 382명으로서 도합 1,417명이나 됩니다. 회고록원본에는 약 360명의 개별적인 인물사진들이 실려있는데, 우리는 이를 기본으로 하고 더욱 많은 사진과 그림, 도해, 악보를 첨가하여 피디에프회고록을 발간하였습니다. 회고록은 지난 10년간 160여개 나라에 광범히 보급되어 수억만 사람들속에서 애독되고 있는데, 남녘땅은 보안법으로 인하여 그 보급사업이 정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청년주체주의자들은 지난 기간 회고록보급사업을 적극 전개하였으며 최근에는 피디에프회고록을 발간하여 인터넷과 시디로 널리 보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운동대오의 회고록학습을 방조하기 위하여 이 인터넷회고록강좌를 조직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본 학습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학습할 내용은 두개 장밖에 안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동지들은 다소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강좌는 포괄하는 장이 4개나 되는가 하면 이번 두개 장은 별로 어렵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당연히 회고록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발간된 것은 항일혁명편뿐이니 우리는 항일혁명편을 학습하고 있습니다. 항일혁명은 곧 무엇인가요? 그렇죠, 항일무장투쟁입니다. 왜 그런가요? 항일혁명이 항일무장투쟁을 주류로 하는 선군혁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주석님의 항일혁명역사를 떠올리면 지하사업이나 대중운동보다는 만주벌과 백두산을 주름잡으시며 영활하게 전개하신 항일무장투쟁을 연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항일무장투쟁의 전성기는 언제인가요?

보천보전투에 대한 기사가 실린 당시 국내 신문항일무장투쟁의 전성기는 바로 둘째단계, 즉 1936년 남호두회의부터 1940년 소할바령회의까지입니다. 첫시간에 학습했지요? 그러므로 이 둘째단계는 항일무장투쟁의 전성기이면서도 항일혁명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항일무장투쟁의 전성기의 대표적인 전투는 무엇인가요? 예, 바로 오늘 우리가 학습하여야 할 보천보전투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보천보전투는 항일무장투쟁 전성기인 둘째단계의 대표적인 전투이며 항일무장투쟁의 대표적인 전투이며 항일혁명의 대표적인 전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항일혁명투쟁, 항일무장투쟁을 연상하면 곧 보천보전투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보천보전투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항일무장투쟁의 집약판이고 꽃입니다. 올해 초 문화방송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프로그램에 위대한 주석님의 보천보전투가 사실이었음을 밝히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내용이 많이 축소되고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진실에 접근해 가고 있는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보천보전투를 이 강좌가 중시하는 이유를 잘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보천보전투에 대하여 공중파방송까지 소개하는 상황이고 워낙 유명한 전투라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규모라든지 진행과정, 결과 등 말입니다. 그런데, 보천보전투의 가장 중요한 의의, 가장 중요한 배경에 대하여는 거의나 잘 모르고 있습니다. 동지들은 자신있게 이에 대하여 대답할 수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그동안 참 충실하게 회고록학습을 하였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보천보전투는 그 규모면에서만 볼 때에는 다른 전투, 이를테면 동녕현성전투에 비교해 결코 크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보천보전투가 이토록 중요한 역사적인 전투, 항일무장투쟁, 항일혁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투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보천보전투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기 직전, 후방기지라 할 수 있는 조선을 더욱 철저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민족말살정책을 노골화하던 시점에 일제에 군사적으로, 정치사상적으로 결정타를 입힌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보천보전투의 결정적 의의는 바로 여기, 정치적 의의에 있는 것입니다. 전투는 군사적 의의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의의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보천보전투가 대포도 비행기도 탱크도 없이 진행한 자그마한 싸움, 보총과 기관총에 선동연설이 배합된 평범한 습격전투로서 어떤 대원들은 오히려 아쉬워하였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이 전투는 ≪전투목표의 설정과 시간의 선택, 불의의 공격, 방화를 통한 충격적인 선동, 활발한 선전활동의 배합 등 모든 과정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입체적으로 맞물린 빈틈없는 작전이었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전쟁이나 전투의 가치는 군사적 의의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치적 의의에 의해서도 규정된다≫고 지적하시며 보천보전투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시었습니다. 그러면 보천보전투의 정치적 의의는 무엇인가요?

보천보전투는 조선과 만주대륙에서 아시아의 제왕처럼 행세하던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보기좋게 후려친 통쾌한 전투였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조선총독부당국이 치안유지가 잘 된다고 장담하던 국내에 들어가 한 개 면소재지의 통치기관들을 일격에 소탕해버림으로써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주었습니다. 일본인들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타격을 받은 셈이었습니다. ≪후두부를 꽝 하고 강타를 당한 것 같다≫느니, ≪천 날 동안 베여들인 새초를 한 순간에 태워버린 듯한 한을 남겼다≫느니 하는 따위의 군경 당사자들의 고백자체가 그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만국평화회의장의 나타나 열강들에게 독립을 구걸하던 약소국 조선에 세계강국 일본군을 사정없이 쳐갈기는 혁명군대가 있으며 그 군대가 일제의 ≪금성철벽≫을 바람처럼 넘어들어가 침략자들을 호되게 징벌하였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쏘련의 출판물들에 조선인민혁명군의 이름과 투쟁소식이 크게 소개된 것도 이 때부터입니다.

보천보전투승리 기념탑보천보전투의 의의는 우선 일제식민통치를 끝장내고 민족해방을 이룩하려는 우리 민중의 혁명의지와 투쟁정신을 널리 보여준데 있습니다. 또한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가장 혁명적이며 애국적인 투사들이라는 점을 과시한 데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조선인 다 죽었다고 생각하던 우리 민중들에게 조선인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싸우면 반드시 조국광복을 이룩할 수 있다는 신심을 안겨준데 있습니다. 여운형이 보천보전투소식을 듣고 몹시 흥분하여 보천보까지 찾아갔다든지, 김구가 이 소식에 창문을 열고 배달민족은 살아있다고 몇번이나 외쳤다든지, 조선과 일본에 있던 수많은 양심적인 지성인들이 참군하려고 백두산으로 모여들었다든지 하는 일이 다 보천보전투가 우리 민족에 준 커다란 영향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천보전투에 대하여 이 정도의 일반적인 측면에서만 연구, 분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예, 통일혁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천보전투라는 항일혁명의 대사변을 학습할 때 무엇보다도 통일혁명의 주체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연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통일혁명의 관점에서 볼 때 보천보전투는 어떤 의의가 있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척척 대답할 수 있다면 주체의 통일혁명전략과 항일혁명역사을 하나로 꿰고 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천보전투가 어떤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어떤 준비속에 이루어졌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남호두회의 장소보천보전투는 항일무장투쟁의 둘째단계의 대표적인 전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항일무장투쟁 둘째단계의 전략적 방침을 결정한 남호두회의에서부터 예견된 전투라 할 것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남호두회의에서 발표하신 노작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강화발전을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임무≫의 첫째체계 제목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국경지대로 진출시키며 우리의 투쟁무대를 점차 국내로 확대하는 데 대하여≫이며 그 안에는 ≪우리는 급속한 시일 내에 국경지대와 국내로 진출하여 무장투쟁을 적극 전개함으로써 적들에게 군사정치적으로 타격을 주는 동시에 광범한 인민대중 속에서 정치사업을 정력적으로 조직전개하여 그들을 반일투쟁으로 불러일으켜야 합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보천보전투에 대한 구상과 예견을 암시하는 대목인 것입니다. 이 노작에는 이와 함께 이러한 국내진공전투를 전개하기 위하여 어떤 준비를 하여야 하는지 그 전략적 방침이 다 밝혀져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의 새사단을 꾸리는 문제나, 백두산을 주변으로 보이지않는 밀영망과 반유격구를 광범히 건설하는 문제, 반일민족해방통일전선을 조직하는 문제, 국내당공작위원회를 건설하는 문제들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천보전투는 카륜회의에서부터 그 대강이 밝혀지고 남호두회의에서 보다 구체화된 조선혁명의 진로, 곧 무장투쟁을 기본으로 하는 전민항쟁의 일관된 전략하에서 기획되고 전개된 전략적인 투쟁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보천보전투는 단순한 하나의 군사전투가 아니라 무장투쟁과 통일전선, 당창건의 노선이 모두 하나로 맞물리며 이루어진 통일적인 투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장투쟁을 기본으로 국내의 모든 민중을 하나로 묶어 반일항전에 총동원하는 전민항쟁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보천보전투가 항일무장투쟁의 상징, 항일혁명의 상징으로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학습한 내용의 핵심을 기억하나요? 바로 항일무장투쟁과 국내혁명운동의 일원화이지요. 달리 말하면 해외혁명무력과 국내지하조직의 통일적 결합입니다. 바로 이것이 남호두회의 이래 항일혁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방침이며 조선혁명의 승리를 이룩한 가장 중요한 비결이라는 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보천보전투는 해외혁명무력과 국내혁명조직이 하나의 영도체계로 결합하여 조선혁명역량이 비약, 장성함으로써 이룩된 빛나는 결실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비롯한 조국광복회 조직이 발동되어 조선인민혁명군을 물심양면으로, 군사정보적으로 방조하였기에 성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국내당공작위원회의 위원이며 조선민족해방동맹의 책임자인 박달이나 장백현당위원장인 권영벽이나 조국광복회장백지구회장인 이제순은 보천보시를 방문하여 그 주변정황을 상세하게 파악하여 위대한 주석님께 보고하였습니다.

박달권영벽이제순

그리고 보천보전투를 통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권위가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당공작위원회나 조선민족해방동맹, 특히 조국광복회의 조직사업에 전환적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보천보전투가 군사적 의의보다 정치적 의의가 더 큰 전투였다는 측면은 결국 조선혁명의 전략적인 조직들인 조선인민혁명군만이 아니라 조국광복회와 국내당공작위원회가 강화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 보천보전투를 통해 투쟁이란 조직이라는 역량이 준비되어야 성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으며 또 투쟁을 통해서만 조직이라는 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는 조직과 투쟁, 투쟁과 조직의 변증법을 깊이 터득할 수 있게 됩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잠깐 압록강을 건너와 전투를 벌이고 다시 압록강을 건너갔지만 그 과정에는 조직이나 투쟁의 면에서 커다란 질적 전환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보천보전투를 단순히 조선인민혁명군만의 투쟁으로, 군사적 측면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조국광복회, 국내당공작위원회와 관련지어 정치적 측면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오늘 학습의 기본문제를 주겠습니다. 오늘의 보천보전투는 무엇인가요? 사실 역사적인 사실을 그대로 오늘의 현실에 대입하는 경우에는 교조주의의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기계적인 대입이 아니라 비유적 측면으로 본다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입니다.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보천보전투에 대하여 그 배경과 의의, 성격, 규모, 양상 등을 깊이 연구하는 한편 오늘의 어떤 사건이 유사한 것인지에 대하여 비교분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를 전제로 하면서, 좀 다른 각도에서 답을 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회고록에 나오는 지양개군민연환대회입니다. 아니 왜 엉뚱하게 지양개군민연환대회를 열쇠라고 하는 것일까요?

보천보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구시산에서 쫓아오는 일본군들까지 격파하고 나니 조선인민혁명군에 좀 여유가 생겼습니다. 거기에 보천보전투를 익측과 배후에서 협력한 4사 최현부대와 1군 2사부대도 만났고, 조국광복회회원이 19도구 구장인 이훈이 민중의 지성이라며 음식까지 마련해왔기에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이 기회에 아예 군민연환대회를 벌이기로 기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청청대낮에 역사적인 보천보전투의 승리를 경축하는 역사적인 지양개군민연환대회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 3개 부대와 조국광복회 회원 수백명, 그리고 수많은 민중이 모여 청청한 오월단오날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가진 것입니다. 그날 군민이 한데 모여 꽃밭을 이룬 지양개등판의 광경을 둘러보시면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찌하여 오래동안 생이별하였다가 다시 만남 혈육처럼 저렇게 뜨거운 정으로 얽힐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잠기시었습니다. 그리고 지양개군민연환대회에 대하여 ≪적들은 우리를 고립무원한 존재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헌신적인 사랑과 지원이 파도치는 인민의 바다에 떠있었다. 지양개등판에 펼쳐진 군민합동경축모임은 유격대는 인민의 사랑을 받고 인민은 유격대의 보호를 받으며 험난한 역사의 가시밭을 헤쳐온 항일혁명의 축도였다.≫라고 회상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날 군대와 민중은 떨어져 살래야 살 수 없는 일심동체이기 때문에 혁명군이 건재할 수 있고 백전백승한다는 사상으로 일관된 짤막한 즉흥연설을 하시었습니다. 자, 그럼 오늘의 지양개군민연환대회는 무엇인가요?

조선노동당창건 55돌 기념 군민합동경축대회이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2000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창건 55돌을 경축하며 평양의 김일성광장을 꽉 메우며 진행되었던 군민합동경축대회라고 할 수 있다. 백만의 붉은군대를 대표하는 군인들이 붉은기와 미사일을 앞세우며 보무당당히 행진하는 모습을 보며 광장에 모인 수많은 평양시민, 조선민중은 김정일장군만세, 조선노동당만세를 외쳤습니다. 그 단상에 모인 수많은 내외인사들도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북측인사나 외국인사만이 아니라 국내인사와 해외동포들이 보입니다. 특히 수십년간 남측에 구속되었던 통일애국장기수와 통일애국단체들의 대표들이 단상에서 그 역사적인 경축대회를 참관하였던 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최측근이며 조선인민혁명군 조명록총정치국장이 군복을 입고 백악관을 방문하여 조미공동코뮈니케라는 항복문서를 받아낸 것도 이 즈음(정확히 10월 12일)입니다. 자, 한번 눈앞에 그려보기 바랍니다. 2000년 당창건55돌기념군민경축대회야말로 오늘의 지양개군민연환대회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항일혁명의 승리를 사실상 확정짓고 이를 지양개군민연환대회로 경축했다면, 통일혁명의 승리를 사실상 확정짓고 이를 당창건55돌군민대회로 경축했던 것입니다. 그럼 오늘의 보천보전투는 무엇인가요?

인공위성 ≪광명성≫을 쏘아올린 ≪백두산≫ 우주발사체항일혁명을 통일혁명으로 볼 때90년대 조미대결전에서의 승리를 오늘의 보천보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항일혁명을 90년대 조미대결전으로 볼 때는 좀 달리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볼 수 있나요? ≪백두산≫이라는 우주발사체에 실어 ≪광명성≫이라는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두산≫은 우주과학적으로 볼 때에는 인공위성을 실어나른 우주발사체이지만 군사적으로 볼 때에는 바로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됩니다. 다시 말하여 인공위성 대신 핵탄두를 실어 발사하면 미국대륙을 강타하는 가공할 무기로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쏘련이나 중국과 같은 큰 나라와는 싸우지 않고 리비아나 이라크, 아프카니스탄과 같은 작은 나라들을 공격하는 바탕에는 그 나라들이 미국대륙을 공격할 수단이 없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여 미국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위력한 군사무기를 가진 나라들과는 미국이 감히 대적하지 못하고 평화공존정책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은 ≪백두산≫을 발사함으로써 그 힘과 기술을 과시한 것입니다.

1998년 8월 31일의 이 ≪백두산≫발사사건이야말로 미국의 뒤통수를 후려친 가공할 군사적 공격, 정치적 공세였던 것입니다. 조미간에 합의했던 합의문, 성명들을 휴지장으로 만들며 5027작전계획하에 모험적인 북침도발책동을 자행해 왔던 미국을 결정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은 전략적인 군사정치적 공세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미국은 대조선조정관 페리를 조선에 보내고 그 후 ≪페리보고서≫라는 새로운 전략, 곧 평화공존전략으로 기존의 고립압살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은 집권 8년 내내 그 어떤 정권보다도 호전적이었던 클린턴으로부터 조미간의 적대관계종식을 선언하고 새로운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할 데 대한 조미공동코뮈니케와 더불어 5년내 주≪한≫미군철거라는 비공개각서까지 받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클린턴이 말년에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조선을 방문하며 역사적인 조미수교까지 합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조미공동코뮈니케에 나와있듯이 부시든 누구든 미국대통령은 조선을 방문하여 조미수교를 합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더불어 미군철거를 선언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미공동코뮈니케를 민족자주의 좌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최측근인 조명록차수가 백악관을 방문하여 조미공동코뮈니케라는 항복문서를 받아내었다90년대 조미대결전이나 ≪백두산≫발사가 오늘의 보천보전투이고 노동당창건55돌경축대회가 오늘의 지양개군민연환대회라면, 당연히 당시 보천보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도역량과 방조역량에 비견할 수 있는 오늘의 주도역량과 방조역량도 있을 것입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대표적인 전투인 보천보전투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주도역량으로, 조국광복회와 조선민족해방동맹을 방조역량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조선민족해방동맹은 박달의 갑산공작위원회가 전화발전한 조직으로서 조국광복회의 국내조직을 일컫는 별칭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통일혁명투쟁시기 대표적인 전투인 90년대 조미대결전은 어떤 주도역량과 어떤 방조역량에 의해 승리하고 결속되었나요? 우리 강좌를 듣는 동지라면 이런 정도의 질문에는 바로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조선인민군을 주도역량으로, 전국적 통일전선 및 지역통일전선을 방조역량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중요하니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운동대오 중 일부는 주체의 통일혁명전략도 연구하지 않고 회고록학습도 적당히 하다보니 아직도 반미민족해방투쟁의 주도역량과 방조역량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는 주체의 전국적 관점이 확립되지 않고 반국적 관점에 머물고 있으며 90년대 조미대결전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영도하시는 오늘의 통일혁명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영도하신 지난 항일혁명을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니 오늘의 통일혁명이 항일혁명 이래 아직 완수되지 못한 조선혁명, 조선민족해방혁명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론이 위대한 장군님의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론으로 심화발전되었을 뿐 본질에서 달라진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일혁명의 주도역량이 조선인민혁명군이었고 방조역량이 조국광복회였던 것처럼 오늘 통일혁명의 주도역량도 주체의 혁명무력이며 방조역량도 전국적 및 지역 통일전선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혁명운동을 남측에 한정하고 남측의 혁명역량만을 동력으로 삼는다든지 하는 것은 주체사상과 인연이 없는 반국적 관점의 그릇된 이론인 것입니다.

한편 당시 조국광복회는 압록강 이남만이 아니라 이북까지 포괄하는 전국적 통일전선, 민족통일전선이었으며 민족해방동맹은 압록강 이남만을 포괄하는 지역통일전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일제가 직접 통치하던 구식민주의시절이라 지역통일전선이든 전국적 통일전선이든 민족민주전선이라는 명칭이 아니라 그냥 민족통일전선이라고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미제가 괴뢰정권을 내세워 간접 통치하는 신식민주의시절이므로 지역통일전선과 전국적 통일전선은 각각 협의의 민족민주전선과 광의의 민족민주전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참다운 민족민주전선이라고 할 때에는 지금처럼 6.15공동선언이라는 민족자주의 강령을 넘어 반미자주의 강령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임진강(38선) 이남의 지역통일전선과 임진강 이남과 이북을 포괄하는 전국적 통일전선을 건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령을 민족자주에서 반미자주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며 항일시기 조국광복회와 민족해방동맹처럼 전국적 통일전선안에 지역통일전선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은 6.15공동선언 이후 4단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1단계는 민족자주, 민주개혁의 민중연대와 민족자주, 민족대단결의 통일연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성과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단계는 민중연대와 통일연대를 통합하여 민족자주, 민주개혁, 민족대단결의 단일전선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는 조만간 실현될 것입니다. 3단계는 그 단일전선의 강령을 상승시켜 반미자주의 민족민주전선으로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때를 단계적 미군철거가 시작되고 보안법이 철폐되며 낮은 단계 연방제가 완수되는 2004년쯤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4단계는 그 민족민주지역통일전선이 전국적인 민족통일전선으로 해소, 통합되는 것입니다. 3단계가 이루어지면 이 단계는 매우 짧은 기간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과거 항일혁명투쟁은 주도역량과 방조역량의 결합, 곧 조선인민혁명군과 조국광복회의 결합으로 반일전민항쟁을 추동하며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통일혁명투쟁도 주도역량과 방조역량의 결합, 곧 조선혁명무력과 전국적 통일전선(민족통일전선)의 결합으로 반미전민항쟁을 추동하며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 더, 항일혁명시기 선거란 것이 없었습니다. 일제가 직접 통치하던 구식민주의시대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통일혁명시기 남측에는 선거란 것이 있습니다. 미제가 간접 통치하는 신식민주의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 강좌의 수강생 중 오늘의 ≪한국≫이 자주독립국가가 아니라 미제에 의하여 비법적으로 조작된 괴뢰정권이라는 것, 48년연석회의에 참석한 대표들로 상징되는 온 민족의 규탄속에 심지어 제주민중의 무장저항하에 총칼로 만들어진 위장정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미제가 만들어낸 ≪한국정권≫이란 일제가 만주에 세웠던 괴뢰정권인 ≪만주국≫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며, 오늘 ≪대통령선거≫란 것은 미제가 우리 민중을 기만하기 위한 선거놀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청년혁명가들은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거나 미제의 주구로 전락한 집권상층개혁파와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민주연립정권을 수립할 수 있다거나 하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의 혁명노선은 일관되게 반미전민항쟁인 것이며 그 반미전민항쟁을 추동하기 위하여 진보적 대중정당도 지역통일전선도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대선≫투쟁도 우리 혁명대오는 철저하게 주체의 혁명적 원칙과 통일혁명전략에 의거하여 진보적 대중정당과 지역통일전선이라는 주체혁명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기본목표로 삼고 전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진보적 대중정당과 지역통일전선이야말로 통일혁명의 위력한 방조역량으로서 주체의 혁명무력이라는 주도역량과 결합하면 능히 반미전민항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항일혁명시기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주도역량과 조국광복회, 조선민족해방동맹이라는 방조역량을 하나로 결합시켰던 체계는 무엇인가요? 아주 중요한 질문이며 지난 시간 강의의 핵심내용입니다. 군대와 통일전선은 조직원리상 그냥은 하나로 결합할 수 없습니다. 이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조직을 하나로 묶어주기 위해서는 다른 차원의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당체계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와 국내당공작위원회의 체계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는 어떤 조직인가요? 항일혁명시기 사실상의 당중앙이었습니다. 그럼 국내당공작위원회는 무엇인가요? 항일혁명시기 압록강 이남이라는 지역의 혁명운동을 지도하던 영도조직이었습니다. 그럼 오늘의 통일혁명을 당중앙은 무엇이며 임진강(38선) 이남이라는 지역의 혁명운동을 지도하는 영도조직은 무엇인가요? 두말할 것도 없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전위당입니다. 항일혁명시기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의 위원장과 국내당공작위원회의 위원장은 같은 사람인가요, 아닌가요? 동일인입니다. 바로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이시었습니다. 그럼 오늘 통일혁명시기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총비서와 전위당의 책임자는 어떨까요? 동일인가요, 아닌가요? 만약 동일인이라면 누구이겠습니까? 이 어려우면서도 쉬운 문제는 오늘 동지들에게 던지는 숙제입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항일혁명시기 보천보전투에서 승리하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과 오늘 통일혁명시기 조미대결전에서 승리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은 사상과 영도, 풍모에서 완전히 똑같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은 회고록학습을 할 때나 주체사상학습을 할 때, 지하사업을 할 때나 대중사업을 할 때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오늘 강의를 결속하면서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역사의 그날 보천보민중들에게 하신 연설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억세게 싸워 나가자≫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 발췌합니다. 그럼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복수의 총검을 더욱 억세게 틀어잡고 기아와 빈궁, 무지와 몽매속에서 허덕이는 2천 300만 겨레를 해방하고 기어이 조국을 광복하고야 말 것이며 독립된 조국땅 위에 착취없고 압박없는 인민의 나라를 세울 것입니다.

여러분! 조국을 광복하는 것은 오늘 조선민족의 사활적 요구입니다. 우리 모두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억울하고 비통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앉아서 한탄만 하지 말고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기치 아래 더욱 굳게 뭉쳐 침략자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광복의 대업을 실현하기 위한 성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섭시다. 투쟁만이 살 길이며 민족재생의 유일한 길입니다. . . .

여러분은 백전백승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존재하는 한 우리 나라가 반드시 독립된다는 확고한 신심과 민족적 자부심을 굳게 가지고 조선인민혁명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억세게 싸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저 불길이 온 삼천리 강토에 활활 타 번지게 합시다.

동포형제들!

최후승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 광복된 조국땅에서 다시 만나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부르고 행복하게 살아갈 그날을 위하여 총매진합시다.

조선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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