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8월 16일(금)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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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과 수령관(2)

통일여명 편집위원 강인규

 

무엇보다도, 회고록에는 혁명적 수령관의 뿌리가 밝혀져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불멸의 노작 ≪세기와 더불어≫의 ≪혁명시인 김혁≫≪혁명가 김책≫ 편에서, 김혁과 김책의 참다운 공산주의자다운 면모와 영도자에 대한 충실성을 회상하시면서 주체의 혁명적 수령관이 어떻게 형성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하여 밝혀주시었다.

김혁김책   ≪김혁은 우리 몰래 차광수, 최창걸 동무들과 의논해가지고 길림일대에 그 노래를 보급하였다. 그때 나는 우리를 별에 비기고 노래까지 지어부르는데 대해 아주 엄하게 꾸짖었다.

≪조선의 별≫이 보급되던 그 무렵부터 우리 동무들은 내 이름도 한별이라고 고쳐불렀다. 저희들끼리 이름을 지어가지고는 내 의향에는 관계없이 ≪한별이, 한별이≫하고 불렀다. 한문자로 표기하면 일성(一星), 즉 한별이라는 뜻이었다.

우리 동무들과 함께 내 이름을 김일성(金日成)으로 고치자고 발기한 것은 변태우를 비롯한 오가자의 유지들과 최일천과 같은 청년공산주의자들이었다. . . .

내가 나이도 어리고 투쟁경력도 짧았지만 그들이 나를 세우지 못해 그처럼 애쓴 것은 통일단결의 중심도 없이 각당, 각파가 저마끔씩 영웅호걸행세를 하면서 파쟁으로 혁명운동을 말아먹던 전 세대의 운동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고 나라를 찾자면 2천만 민중이 합심해야 하며 2천만 민중을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게 하자면 영도의 중심, 통일단결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김혁최창걸   내가 김혁, 차광수, 최창걸과 같은 사람들을 그토록 사랑하고 잊지 못해하는 것은 그들에 나에 대한 노래를 짓고 나를 지도자로 내세워서가 아니다. 바로 그들이 우리 민족이 그처럼 절절하게 바라면서도 실현할 수 없었던 통일단결, 우리 인민의 자랑이고 영광이며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인 참다운 통일단결의 시원을 열어놓고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에서 영도자와 대중의 일심동체를 이룩한 통일단결의 새 역사를 피로써 개척한 선구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혁명을 한 새 세대의 공산주의자들은 자리다툼 때문에 대오에 불화를 조성한 적도 없고 의견상이로 하여 우리가 생명으로 내세운 통일단결을 파괴해본 적도 없었다. 통일단결은 우리 대오에서 진짜 혁명가와 가짜 혁명가를 가르는 시금석으로 되어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감옥과 교수대로 끌려가면서도 이 통일단결을 목숨으로 사수하였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공산주의자들에게 그것을 재보로 넘겨주었다.

그들의 첫째가는 역사적 공적이 바로 거기에 있다. 지도자를 내세우고 그 지도자를 핵으로 통일단결한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넋은 오늘 우리 당이 일심단결이라고 부르는 통일단결을 낳은 위대한 전통으로 되었다.≫(혁명시인 김혁, 세기와 더불어 2권)

≪북만부대에서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던 김책은 나이로 보나 혁명투쟁경력으로 보나 만주빨치산의 조선인군정간부들 중에서 좌상대접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또 나로 말하면 그때에는 아직 국가수반도 아니고 당총비서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김책은 쏘련사람들앞에서나 중국사람들앞에서나 나를 조선혁명의 대표자로, 지도자로 내세웠습니다.

어떻게 되어 그가 자기보다 9살이나 아래인 나를 그처럼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내세웠겠습니까.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책이한테는 혁명을 하자면 영도중심이 있어야 하고 그 영도중심의 두리에 모두가 하나로 튼튼히 뭉쳐야 한다는 사상이 온몸에 꽉 차있었습니다. 영도중심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이 결국은 나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책은 나를 만난 다음부터 가장 가까운 동지가 되어 시종일관 변함없이 나를 따르고 받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시국이 어떻게 변하건 상관치 않고 나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고 성실하게 일을 해왔습니다. .

길림시절에 새 세대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이 나를 영도의 중심으로 내세웠다면 1930년대와 1940년대 전반기에는 김책을 비롯한 항일혁명투자들이 나를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내세우고 조선혁명의 주체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나를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 나라 혁명에서는 영도중심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영도중심을 꾸리는데서 김책은 특출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과 민족해방투쟁역사에서 김책이 차지하는 몫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 . .

김책이 수령의 권위를 어느 정도로 절대화했는가 하는 것은 그가 내 전화를 받을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단추를 채운 다음에야 통화를 시작하군 한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병석에 있을 때에도 나한테서 오는 전화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받군 했습니다. 옆에 사람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노상 그렇게 했습니다. 수령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하지 못합니다.

김책은 내가 없으면 자기도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혁명가 김책, 8권)

다음으로, 회고록에는 주석님의 사상, 영도, 풍모의 위대성이 밝혀져 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겸손하시게도 혁명적 수령관의 뿌리를 참다운 공산주의자들의 혁명가다운 면모와 반종파주의의 관점에서 주로 설명하시지만, 혁명적 수령관이 확립되는데서 결정적인 요인은 위대한 주석님께서 혁명의 수령이 지녀야할 사상과 영도, 풍모의 위대성이라는 3대 징표를 완벽하게 체현하시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카륜에서 이처럼 조선혁명의 진로를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길림시절에 이미 청년학생운동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조선혁명에 대한 주체적 입장과 태도를 확립하고 공산주의운동의 새 길을 개척해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투쟁의 나날에 심어지고 옥중에서 무르익힌 그 사상과 입장을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을 뿐이다.

그것이 곧 우리 혁명의 노선으로 되고 지도사상으로 되었다. 우리가 그 논문에서 전개한 내용을 보면 모두가 주체사상을 핵으로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상은 그 후 항일혁명투쟁을 비롯한 여러 단계의 혁명을 거쳐 어렵고 복잡한 실천투쟁속에서 부단히 발전풍부화되어 오늘과 같이 사상과 이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를 갖춘 하나의 철학사상으로 되었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내가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본 것은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이 좌경의 쑥대밭에서 혁명을 위기에서 건져줄 수 있는 인민혁명정부노선이 탄생하여 유격구인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었소. 김동무가 아주 신통한 정식화를 했다고 나도 방금 전에 동장영동무에게 실토했더랬소.≫ . . .

≪나도 역시 같은 심정입니다. 이번 행각이나 끝나면 나도 처를 데리고 동만 땅에 와서 김동무와 같이 손을 맞잡고 일하고 싶소. 우린 어딘가 낡았소. 때묻었거든…. 조선의 ≪호지명≫이 되시오.

반성위는 이런 말을 남기고 왕청땅을 떠났다.≫(국제당 파견원, 세기와 더불어 3권)

≪간도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조직되어 그 전과를 확대해가고 있을 때 누구보다도 공포를 느끼고 그 존재의 위험성에 대하여 제일 큰 소리로 떠든 것은 일본제국주의 침략세력이었다.

그들은 동만과 남만에서 활동하는 우리의 항일무장력을 그 명칭은 어떻든 ≪김일성군≫으로 통칭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조선인민혁명군, 세기와 더불어 3권)

≪나의 제안에 먼저 반기를 들고나선 것은 이동백이었다. 그는 연세나 지난날의 명망 같은 것은 별로 고려할 바가 못된다고 하면서 실천적으로 전민족을 대표하여 조국광복의 대업을 맡아 나서 지도하고 있는 지도자는 국내외를 통틀어도 김장군밖에 없는데 그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 같은 사람을 발기인으로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조국광복회 회장도 마땅히 김장군이 돼야 하고 발기인도 김장군이 돼야 한다고 다시금 고집해 나섰다. 그는 나의 제안을 참작하여 나와 함께 여운형을 공동발기인으로 하자고 하였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김평박달   ≪우리는 그때 조선인민혁명군당위원회를 소집하고 나를 책임자로 하고 김평과 박달을 위원으로 하는 국내당공작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박달은 이 위원회의 현지집행인으로서 갑산지방을 비롯한 국내 여러 지역에서의 당조직건설사업을 주관할 임무를 지니었다.≫(국내당공작위원회, 세기와 더불어 5권)

≪군중이 우리를 둘러싸고 끓어대자 권영벽이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조국동포들에게 인사 겸 연설을 한마디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운집한 사람들을 둘러보니 별빛같은 시선들이 일제히 나한테로 쏠리었다.

나는 모자를 벗어쥔 다음 팔을 높이 들어 흔들면서 만장을 향해 필승의 사상으로 일관된 반일연설을 하였다.

≪여러 분, 나라가 해방되는 날 다시 만납시다!≫≫(보천보의 횃불 2, 세기와 더불어 6권)

≪논의의 초점은 최후결전준비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모임에 참가한 조선지대의 모든 지휘관들은 전체 인민을 반일항전에 동원하기 위한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며 우리 자체의 힘으로 조국광복을 이룩하자는 나의 제의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시하였습니다.

그 후 우리는 국내에서의 당조직건설과 대중단체건설 정형 그리고 비밀무장조직들의 활동정형을 요해한데 기초하여 조국해방의 3대노선을 내놓았습니다. 조국해방의 3대노선이라는 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그에 배합한 전인민적 봉기, 배후연합작전으로 조국광복의 역사적 위업을 이룩할 데 대한 노선입니다.≫(전민항쟁의 불길은 온 강토에, 세기와 더불어 8권)

≪마을여자들은 그날 손님들에게 떡을 나누어줄 때에도 머슴군 대접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그릇에 떡을 담아주면서도 나에게만은 그저 손에다 쥐어주었다. 나는 마을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수모하는데 대하여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 . .

나에게 얼음을 까달라고 손목을 까닥거리며 불러대던 젊은 여인이 연설을 마치고 말안장에 올라앉은 나를 보고 너무 놀라 ≪에구, 저 사람이 우리 동네에 살던 머슴군총각이 아니요? 저이가 혁명군대장이 됐구려.≫라면서 어쩔 바를 몰라했다.≫(혈전의 준비, 세기와 더불어 2권)

≪그 돈으로 헐벗은 아동단원들에게 옷을 해입힌다면 어머니도 기뻐하실 것이다. ≪어머니, 이 돈을 가지고 어머니의 곁을 떠난지도 네 해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딱한 고비를 여러 번 겪으면서도 장래를 생각해서 그럭저럭 보존해왔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이 20원을 소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 살붙이가 하나도 없는 저 불쌍한 아이들에게 옷을 해입혀야겠습니다.≫≫(20원, 세기와 더불어 4권)

≪≪나를 장군 곁에 붙잡아둔 게 뭔지 알겠습니까?

첫째는 물론 장군의 그 고명한 경륜이구, 둘째는 장군의 기운 바지와 미혼진열병환자들의 울음이었지요.… 격리상태의 열병 환자들을 아무 거리낌도 없이 찾아가 돌봐 주는 걸 보고 나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일신의 위험도 마다하고 아랫사람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돌봐 준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한다하는 거물들을 만나봤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조선혁명의 참된 주인, 조선의 운명을 책임적으로 맡아 안은 진짜배기 주인, 진짜배기 지도자를 찾은 것, 이게 나를 여기 남게 한 근본이유입니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문서보따리를 소각할 준비를 해놓고 집회를 결속하면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 . .모두가 새 출발하여 조국과 인민과 역사앞에 떳떳이 내놓을 수 있는 투쟁행적을 그 백지장들에 적어놓게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이 시각부터 동무들을 그토록 괴롭혀왔던 ≪민생단≫ 혐의가 완전히 무효하다는 것은 언명하는 동시에 동무들 모두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대오에 들어섰다는 것을 선포한다.≫≫(새 사단의 탄생, 세기와 더불어 4권)

≪혁명적 동지애는 항일혁명 전노정을 관통해온 승리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과정에는 우리 대원들의 도덕의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집중적으로 발양되었습니다. 한 홉의 미시가루와 같은 일화는 그 시기에 창조된 무수한 미담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전령병들이 사령관을 위해 배낭속에 한 홉쯤 되는 미시가루를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었는데 내가 그것을 혼자서 먹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대원들과 같이 나누어 먹었는데 이것이 후대들에게 전설같은 이야기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한두 번만 있은 것도 아닙니다.≫(고난의 행군, 세기와 더불어 7권)

한홉의 미시가루마저 대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그런 사연들을 생각하면 나도 역시 가슴이 아프오. 그러나 해산동무, 우리가 밥 한 그릇으로 결혼식을 굼땐다고 해서 인민들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법은 없지 않소. 하기는 우리 인민들속에서도 그런 식으로 혼례를 치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하오. 동무는 그게 분하지 않소? 물론 밀영창고에 있는 전리품으로 조선민족을 다 구제할 수는 없소. 하지만 민족을 재생시키겠다는 결심을 품고 총을 멘 조선의 젊은이들이 김월용이라는 한 사람의 잔치야 왜 보란 듯이 차려주지 못하겠소.≫≫(스쳐버릴 수 없는 인연, 세기와 더불어 6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는 우리 인민이 반만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이시었으며 위인이 지닐 수 있는 모든 풍모와 자질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신 위인 중에 위인이시었습니다.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시고 굳게 믿으시었으며 한 평생 온갖 풍상고초를 다 겪으시면서 오로지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시었습니다.≫(김정일장군, 혁명선대를 존대하는 것은 혁명가들의 숭고한 도덕의리이다, 1995 12 25)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위대한 인민의 수령이시였으며 인민의 어버이이시였다.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령도와 풍모는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그것으로 일관되여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고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 하시였으며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의 힘과 지혜, 우리 인민의 훌륭한 기질을 굳게 믿으시였으며 인민대중에 의거하고 대중의 혁명적열의와 창조적힘을 불러 일으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시였다.≫(김정일장군,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당이다, 1995 10 2)

혁명적 수령관을 튼튼히 세워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혁명적 의리로 간직하기 위해서는 수령과 자기 당의 위대성에 대하여 깊이 알아야 합니다. 당과 수령의 위대성을 체득하기 위한 교양사업에서는 당과 수령의 사상과 이론의 위대성, 영도의 위대성, 사상정신적 위대성을 인식시키는데 기본을 두어야 합니다.≫(김정일장군,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1986 7 15)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는 일찍이 혁명의 길에 나서시어 20세기를 영광스러운 김일성세기로 찬란히 수놓아오신 위대한 혁명가, 걸출한 정치가, 불세출의 위인이시었습니다.

경애하는 수령님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어 자주시대의 유일한 향도지침을 마련해 주신 천재적인 사상이론가이시며 민족재생의 새봄을 안아오신 조국광복의 은인이시며 미일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시는 신화적 기적을 창조하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이십니다.

위대한 수령님은 탁월하고 세련된 영도로 가장 존엄있고 위력한 주체형의 당과 국가, 군대를 창건하시고 그 어떤 시련과 광풍 속에서도 흔들림없이 승리만을 이룩해가는 자주정치의 시원을 열어놓으시었으며 이북땅위에 자주로 존엄높고 자립으로 위력하며 자위로 강력한 민중중심의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신 주체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십니다.

경애하는 수령님은 한평생 ≪민중행열차≫를 타시고 숭고한 민중사랑의 서사시를 엮어가시며 수령과 민중의 혼연일체를 실현하신 사랑과 믿음의 위대한 정치가이십니다. . . .

진정 위대한 사상과 비범한 영도력, 숭고한 덕망으로 민족과 인류의 자주위업에 거대한 업적을 이룩하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주체의 영원한 태양, 만민의 영원한 어버이로 천세만세 영생하실 것입니다.≫(21세기의 태양이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 한민전중앙위, 2002 4 15)

다음으로, 회고록에는 혁명적 후계자관이 어떻게 수립되었는지가 밝혀져있다.

≪그 후 언제인가 임춘추는 모스크바붉은광장에서 레닌묘를 참관하다가 우연히 심각한 몰로토프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

몰로토프는 그때 임춘추에게 당신들은 쏘련당의 전례를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수정주의를 하지 말고 자기 수령의 사상과 업적을 충실하게 계승해 나가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임춘추   임춘추는 그때 후계자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면 당도 망치고 혁명도 망친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역사의 쓰라린 교훈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후계자의 표징에서 기본을 이루는 것은 수령과 수령의 위업에 대한 충실성이며 도덕의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도덕의리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도덕의리, 이것은 후계자가 갖추고 있어야 할 첫째가는 표징입니다.

그리고 높은 자질과 영도풍모를 지닌 실력가만이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수령의 사상과 의도대로 빛내여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수령의 사상체계와 영도체계를 확립하는데서 김정일동무가 발휘한 비범한 수완과 혁명적 원칙성, 수령의 노선과 구상을 옹호하고 실현하는데서 그가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정력, 고결한 충성심과 효성에 경탄하였으며 김정일동무야말로 수령의 사상과 의도대로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향도하고 완성해나갈 수 있는 영도자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민은 오래전부터 그를 존경하고 받들어왔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   김정일동무를 받드는데서는 항일혁명투사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앞장에 서 있습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김정일동무를 수령의 유일한 후계자로 내세운 것은 그가 당과 국가, 군대를 영도해야 민족의 장래가 담보되고 백두산에서 개척한 주체의 혁명위업이 한치의 편차도 없이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발전 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그를 수령의 후계자로 추대했다는 것은 곧 군대가 그를 민족의 영수로 내세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일, 최현, 오진우와 함께 임춘추는 김정일동무를 우리 당과 국가의 수위에 추대하는데서 선구자의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항일혁명투사들이 김정일동무를 나의 후계자로 한사코 추대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에게 인간적으로 매혹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일이 늘 김정일동무처럼 수령께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충신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면 임춘추는 김정일동무처럼 혁명선배들을 존대하고 혁명전통을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은 없고 김정일동무와 같은 위대한 사상의 대가, 영도의 대가가 없다고 하였으며 오진우는 김정일동무처럼 무비의 담력과 뛰어난 지략을 소유한 영장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최현과 이종산은 종종 김정일동무처럼 인정미가 풍부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혁명의 뿌리를 가꾸며, 세기와 더불어 8권)

다음으로, 회고록에는 혁명적 수령관이 확고한 항일혁명가들에 대한 많은 일화가 밝혀져 있다. 앞서 살펴보았던 김혁, 김책과 같은 대표적인 공산주의자들 외에 차광수, 최창걸, 최현, 오백룡, 오중흡, 유경수, 임춘추, 김일, 이을설 등은 충실성의 모범들이었다.

≪내가 김혁, 차광수, 최창걸과 같은 사람들을 그토록 사랑하고 잊지 못해하는 것은 그들에 나에 대한 노래를 짓고 나를 지도자로 내세워서가 아니다. 바로 그들이 우리 민족이 그처럼 절절하게 바라면서도 실현할 수 없었던 통일단결, 우리 인민의 자랑이고 영광이며 무궁무진한 힘의 원천인 참다운 통일단결의 시원을 열어놓고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에서 영도자와 대중의 일심동체를 이룩한 통일단결의 새 역사를 피로써 개척한 선구자들이기 때문이다.≫(혁명시인 김혁, 2권)

≪이 부대를 무으려고 끼니를 건는 것은 며칠이었고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몇 날 몇 밤이었던가. 이 부대를 위해 세상을 하직하시는 어머니의 곁에도 가있지 못하고 사랑하는 동생들과도 생이별을 한 내가 아닌가. 차광수도, 최창걸도 이 대오를 위해 청춘을 바치지 않았는가. 차광수는 돈화에 정찰을 나갔다가 전사하였다.≫(나자구등판에서, 세기와 더불어 2권)

최현   ≪최현은 서거 직전까지 줄곧 나에 대한 말만 하였다고 한다.

나를 보좌하는 일군들이 문병을 갈 때마다 그는 ≪수령님께서 건강하시요? 김정일조직비서동지께서 건강하시오?≫하고 묻곤 하였다.≫(백전노장 최현, 세기와 더불어 4권)

≪혁명에 대한 오중흡의 충실성, 자기 사령관에 대한 오중흡의 충실성은 사령관을 정치사상적으로 뿐 아니라 목숨으로 옹호보위하려는 결사옹위정신에서도 표현되었습니다. 오중흡은 사령관의 신변안전을 위해서라면 연대와 함께 육탄이 되어 뛰어들었고 어떤 간고한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 . .

자기 사령관에 대한 오중흡의 남다른 충실성은 고난의 행군시기에 집중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오중흡은 행군의 첫 시기 갈지자전술을 쓰면서 근 보름동안이나 결사적인 후위전을 벌려 사령부를 보위하였습니다. . . .

그는 행군노상에서 허기증과 무력증으로 신고하는 대원들을 보고 우리가 지금 10년을 하루같이 고생을 하지만 그러나 고생끝에는 낙이 오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가 일제를 격멸소탕하고 해방된 조국땅을 향해 행군할 때를 생각해보라, 조선사람으로 태어나 이 이상 더 보람차고 영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오늘의 이 간고한 행군이 해방조국으로 잇닿은 걸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말씀은 김일성사령관의 말씀이다, 모두다 사령부를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하였습니다.

오중흡   오중흡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슴에 큼직한 불덩어리를 안고 싸워온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불덩어리였는가 하면 혁명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그 열정의 핵이 다름아닌 자기 사령관에 대한 충실성이었습니다.≫(오중흡과 7연대, 세기와 더불어 7권)

≪혁명가로서의 유경수의 인간미는 자기 사령관의 명령, 지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행정신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는 사령관의 명령을 집행하는데서 맹세나 약속을 번지르르하게 하지 않았지만 일단 한 맹세나 약속은 어김없이 이행하는 좋은 품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믿을 만한 사령관동지의 품밖에 없다. 사령과 동지를 잘 모시고 받들어야 우리는 조국의 해방도 이룩할 수 있고 자기자신의 운명도 개척할 수 있다. 사령관동지의 의도대로 하기만 하면 우리는 이긴다. 이것이 바로 유경수가 일상적으로 간직하고 있던 신념이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나의 명령이나 지시를 훌륭하게 집행할 수 있었다.≫(≪혜산사건≫을 겪으면서, 세기와 더불어 6권)

≪임춘추는 내가 발표한 논문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를 가지고 국제연합군시절에 정치강의에 출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른 나라의 일부 지휘관들이 우리의 논문을 강의안에 포함시키겠는가고 하면서 좀 고려해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임춘추는 우리는 벌써 오래전부터 김일성사령관을 조선민족의 지도자로, 수령으로 모셔오고 있다, 자기 수령의 노작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데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도 많은가고 하면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에 대한 강의를 계속하였습니다. . . .

임춘추는 어떻게 되어 임춘추가 그처럼 자기 수령과 영도자를 열렬히 경모하고 그 영도에 충실한 혁명가로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김혁, 차광수나 김책과 마찬가지로 종파의 해독성을 잘 알고 실지체험을 통하여 수령이 귀중함을 그 누구보다도 뼈에 사무치게 통감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혁명의 뿌리를 가꾸며, 세기와 더불어 8권)

≪이런 때에 소부대공작을 나갔던 김일이 무거운 쌀자루를 메고 기지에 돌아와 김정숙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빵이 주식으로 되어있는 그곳 형편을 생각해서 쌀을 좀 구해왔는데 다른데 쓰지 말고 사령관에게 꼭 밥을 대접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김일김일이 나를 위해 쌀자루를 메고 다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자기는 만날 통강냉이만 먹으면서도 나한테만은 어떻게 하나 쌀밥을 마련해 주려고 항상 마음을 썼습니다.≫(혁명의 뿌리를 가꾸며, 세기와 더불어 8권)

김정일동무가 일군들에게 당과 수령에 대한 강건의 충실성과 혁명적 원칙성을 따라배우라고 강조하는데 그것은 옳은 요구입니다. 강건은 후대들이 따라배울만한 재능있는 일군이며 매력있는 군사지휘관입니다. 너무도 젊은 나이에 전사했으니 그렇지 살아있었더라면 무력건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북만에서 온 투사들, 세기와 더불어 8권)

≪≪대장동지, 저를 처벌해도 좋고 강직시켜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 오백룡이 살아 있는 한 백마를 어데도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백마에 대한 추억, 세기와 더불어 3권)

부대가 적의 포위속에 들자 중대정치지도원 왕대흥은 김택근을 비롯한 몇 명의 전우들로 결사대를 무어가지고 포위를 돌파하기 위한 백병전을 벌였다. 왕대흥은 총창과 총탁으로 다섯 놈의 정안군을 쓸어눕혔다. 그리고는 자신도 눈구덩이에 묻혀 더는 일어나지 못하였다.≫(천교령의 눈보라, 세기와 더불어 3권)

경위대원들   ≪나에게로 날아드는 적탄을 몸으로 막고 전사한 이권행도 7연대출신이었고 사령부의 명령, 지시를 관철하는 길에서 귀중한 생명을 바친 오일남, 손태춘, 김혁철도 7연대출신이었습니다.≫(오중흡과 7연대, 세기와 더불어 7권)

≪그날 아침 내가 인적기를 느끼고 진대나무밑에 엎드리면서 싸창을 갈긴 순간은 눈깜박할 사이였다. 그처럼 짧은 순간 식사중에 있던 강위룡과 이을설은 나의 안전을 염려하여 보초소로 뛰어왔다. 먼저 강위룡이 나를 완력으로 진대나무밑에서 끌어내였다. 그러는 사이에 이을설이 경기관총을 휘둘러댔다. 솔직한 고백이지만 나는 그 순간 우리의 운명이 여기에서 결판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그래서 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강위룡이 나를 진대나무밑에서 끌어내려고 모지름을 쓸 때에도 그들이 죽으면 나도 함께 죽으리라는 비장한 생각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 불사신같은 경위대원들은 탄막속에 몸을 통채로 내대고 천신만고하여 나를 사경에서 구원하였다. 적들이 포위환을 좁히며 다가들자 이을설은 수류탄을 뽑아들고 우뚝 서서 ≪이놈들아 덤빌테면 덤벼들라. 너 죽고 나죽고 해보자!≫고 부르짖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서슬푸르고 도고했던지 적들은 비실비실 뒤로 물러났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강위룡은 나를 탄막속에서 완전히 뽑아내었다.≫(경위대원들, 세기와 더불어 6권)

백두여장군 김정숙동지는 수령결사옹위정신의 화신이시었다. 김정숙동지에 대한 위대한 주석님의 회상실기를 보며 우리는 혁명적 수령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수령님을 결사옹위하시는 김정숙동지

김정숙의 한 생은 나를 위해 바친 한 생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나와 결혼한 다음에도 시종일관 나를 사령관으로, 지도자로, 수령으로 내세워주고 받들어주었습니다. 나와 김정숙과의 관계는 수령과 전사와의 관계, 동지와 동지사이의 관계였습니다.

김정숙은 자기를 늘 수령의 전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날까지 나보고 보통 집안에서 쓰는 호칭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부를 때에는 그저 장군님이라고 하든가 수상님이라고만 하였습니다.

해방 후 언제인가 여기자들이 김정숙을 소개하겠다고 하면서 그를 찾아온 일이 있습니다.

그때 김정숙은 그들에게 ≪전사의 일생은 수령의 역사속에 있습니다. 김일성장군님에 대해 더 많이 소개해 주십시오.≫하고 말해주었습니다.

나는 그 말속에 김정숙의 남다른 품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타향에서 봄을 부르며, 세기와 더불어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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