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8월 12일(월)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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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강의 (2)
- 제3장 ≪길림시절≫, 제4장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던 나날에≫

통일여명 편집위원 한철규

안녕하십니까. ≪세기와 더불어≫ 강의 두번째 시간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세기와 더불어≫의 머리말에서 ≪애국의 넋은 10대의 그 시절에 나로 하여금 길림시가의 포석 위에서 배일의 함성을 외치게 했≫다고 회고하시었는데,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부분이 바로 주석님의 길림시절입니다. 이 시절에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평생을 잊지못하는 혁명동지들을 만나시고 대중투쟁의 전형을 창조하시며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십니다.

 

길림시절의 김일성주석님   화성의숙의 민족주의적 한계를 절감하신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생애 첫 용단을 내리시며 그곳을 떠나십니다. 그리고 일본인이 ≪동 3성 중 배일의 책원지≫라고 하는 길림성으로 가십니다. 위대한 주석님의 화성의숙시절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한 시기라면 길림시절은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과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를 결성한 시기입니다. 전자가 혁명의 씨앗을 심은 시절이라면 후자는 혁명의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힘차게 뻗어올라간 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주석님께서는 길림시절 평생 잊을 수 없는 네 사람을 만나십니다. 청년시절 가장 친근한 혁명동지인 차광수와 김혁, 그리고 일생 유일한 선생으로 여기시는 상월과 박소심입니다. 먼저 상월과 박소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당조직 건설동지사를 무으시는 김일성동지

상월선생은 주석님께서 입학하신 길림육문중학교의 문학선생이었으며 고리끼나 노신의 사실주의문학에 대하여 해설해준 잊지못할 스승이었습니다. 또한 주석님께서는 중국공산당원이었던 상월선생과 중국공산당의 창시자인 진독수의 우경투항주의나 혁명운동에서의 농민의 역할 등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하시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상월선생의 견해를 빌어 ≪진독수의 오류는 진독수의 오류는 제국주의를 반대한다는 구실밑에 농촌혁명을 반대하면서 부르조아지가 혁명전선에서 떨어져나갈가봐 두려워한데 있다. 그의 투항주의적 노선은 오히려 혁명에 대한 부르조아지들의 배신을 조장시키는 결과를 빚어냈다.≫고 지적하십니다. 농민이라는 기층민중의 힘을 믿지못하고 그에 의거하지 못한 진독수의 우경투항주의적 오류는 오늘 우리 혁명운동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릇 우경기회주의는 기층민중의 힘, 민족민주대오의 힘을 믿지 못하고 그에 의거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비판적 지지론≫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것입니다. 주석님께서는 상월선생을 회고하시면서 ≪사람에게 한 생을 두고 회고할 수 있는 스승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행복한 인간이다. 그러니 나도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동지들에게도 그런 스승이 있는지 한번 돌아보기 바랍니다.

상월선생상월선생이 ≪홍루몽≫을 배워준 스승이라면, 박소심은 ≪자본론≫을 배워준 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맑스의 원전은 길잡이나 입문서가 없이는 독파하기가 쉽지않은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맑스와 레닌의 원전을 통달하다시피한 박소심은 주석님의 맑스레닌주의학습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소심은 돈이 없으면 옷을 저당잡혀서라도 책을 사서 보는 열렬한 독학가였으며 맑스와 레닌의 원전을 뜬금으로 외우는 실력있는 이론가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잠시 동지들은 과연 자신이 열렬한 독학가인지, 주체사상의 원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은 돈이 없다거나 책이 없어서 학습을 하지 못한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습니다. 주체사상의 그 방대한 원전자료가 인터넷에 공개되고 시디로 배포되어 있어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거의 무료로 학습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늘 바빠서 학습하기 곤란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술은 꼬박꼬박 챙겨 마시는 운동가가 있다면, 왜 주석님께서 박소심을 ≪나에게 ≪자본론≫을 안내해준 선생≫이라고까지 극찬하였는지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김형직선생님   그런데 주석님의 사상학습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스승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김형직선생님종자론입니다. 김형직선생님은 주석님께 조선해방의 주체적인 관점과 원대한 뜻, 참다운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애국애족이라는 공통점, 조선과 세계의 역사,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 그리고 동지획득의 사상과 지하조직건설의 방법론, 무장투쟁에 대한 지향 등을 가르쳐주신 위대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김일성주석님께 가장 큰 사상이론적 영향을 준 스승을 꼽으라면 단연 김형직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김형직선생님은 어리신 주석님께서 책을 읽으신 후에는 꼭 그 책에서 중심이 무엇이며 배운 점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시었습니다. 이런 독서습관 덕분에 주석님께서는 복잡한 내용도 명확히 파악하고 짧은 시간안에 많은 책을 볼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중심≫이 오늘식으로 말하면 종자입니다. 진보적인 문학작품만이 아니라 맑스레닌주의원전을 비롯한 진보서적에도 그 기본핵이 되는 종자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종자론에 입각한 독서습관도 주석님의 사상이론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준 ≪스승≫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좋은 독서습관을 길러주신 김형직선생님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김형직선생님의 사상과 지도를 통하여 조선혁명의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관점과 함께 민족주의좌파에 대한 긍정적 견해를 일찍이 터득하시었습니다. 박소심과 차광수가 탄복하고 주석님의 혁명대오에 인입된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자본론박소심은 맑스와 레닌의 원전을 뜬금으로 외우는 이론가였지만, 조선혁명의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이 서있지 못하다보니 교조주의의 우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주석님의 ≪맑스-레닌주의고전들에서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해방이 선차이고 민족적 해방이 후차라고 했지만 우리 나라는 우선 일제의 기반에서 벗어나야 노동자, 농민이 계급적으로도 해방될 수 있지 않는가≫라는 질문과, ≪맑스-레닌주의고전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종주국에서의 혁명과 식민지나라들에서의 혁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고 하면서 종주국에서의 혁명승리가 가지는 의의만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나라 경우에는 일본노동계급이 혁명에서 승리해야 나라가 독립될 수 있단 말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박소심의 말문이 막힌 것이 그 때문입니다. 박소심이 모순에 빠지게 된 것은 발전된 자본주의국가의 혁명경험을 총화한 맑스레닌주의를 전혀 다른 식민지반봉건사회인 조선에 그대로 적용시키는데서 발생한 것입니다. 박소심은 비록 교조주의의 우를 범했지만 양심적이고 성실한 사람이었기에 후에는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에도 가입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오늘 우리 나라의 혁명운동에는 어떤 교조주의가 오류가 존재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우리 사회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면서 당장 사회주의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는 민중민주계열의 오류와 다른 하나는 사상에서의 주체를 ≪조선혁명≫이 아닌 ≪한국혁명≫으로 보는 일부 민족해방계열의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맑스레닌주의를 교조주의적으로 이해한데서 비롯된 것이라면 후자는 주체사상을 교조주의적으로 이해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교조주의가 ≪한국≫을 식민지가 아닌 제국주의로 보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 후자의 교조주의는 ≪한국≫을 조선의 일부분이 아닌 독자적인 한 국가로 보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청년주체주의자들은 주체사상과 맑스레닌주의의 원리를 조선혁명의 실천적 경험과 밀접히 결부지어 옳게 이해함으로써,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전국적 관점과 민족해방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의 과학적인 전략전술을 확립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회고록 학습에 역점을 두는 이유도 위대한 주석님의 혁명 사상과 이론을 더욱 깊이 터득함으로써 통일혁명운동에서의 역할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다시 돌아와서 이번에는 차광수와 김혁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차광수는 일본에서 대학까지 다니고 서울, 만주 등을 주유하며 산전수던 다 겪은 인물입니다. 이론수준이 높은데다 조선공산주의운동의 좌우경기회주의와 종파주의에 치를 떨었던 차광수였으니 당시 중학생에 불과한 주차광수석님을 쉽게 인정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차광수가 주석님을 떠보려고 두번째 만남에서 대뜸 던진 질문이 바로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의 동맹문제입니다. 당시는 장개석이 중국공산당을 배신한 사건과 관련하여 공산주의운동내부에서 민족주의자들과의 동맹문제가 격렬하게 논쟁되던 때로서, 이 문제에 대한 견해가 진정한 공산주의자와 기회주의자를 가르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참고로 오늘은 어떤 시금석이 있겠습니까. 진정한 맑스레닌주의자와 기회주의자를 가르는 시금석은 바로 주체사회주의에 대한 견해와 입장이며, 진정한 주체주의자와 교조주의자를 가르는 시금석은 조미공동코뮈니케와 6.15공동선언 이후 변화된 정세에 맞는 전국적 관점의 새로운 전략전술에 대한 견해와 입장이며, 진정한 주체주의자와 투항주의자를 가르는 시금석은 ≪비판적 지지론≫에 대한 견해와 입장입니다. 한번 토론해 보도록 합시다)

그런데 차광수가 던진 이 질문이야말로, 김일성주석님께서 가장 자신 있어 하시는 ≪전공≫(?)과 같은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아마 주석님께서는 먼저 빙그레 미소부터 지으셨을지 모릅니다. 주석님께서는 ≪일부 타락한 민족주의자들이 일제에게 굴복하여 ≪자치≫와 민족개량주의를 설교하고 있지만, 양심적인 민족주의자들과 지식인들은 국내와 해외에서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은 반일정신이 강하다, 그런 민족주의자, 민족자본가와는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간명하게 대답해주시었습니다. 단언컨대, 차광수는 이런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대답이 16살 중학생의 입에서 나올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차광수는 위대한 주석님의 뛰어난 사상이론적 자질에 크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비는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하였지만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단 두번의 만남으로, 그것도 한번의 대답으로 최고의 참모장을 얻으신 것입니다. 차광수는 길림시절과 반일인민유격대 창건시절 위대한 주석님의 일급참모장으로서 커다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김혁차광수를 소개해준 인물이 최창걸이라면 김혁을 소개해준 인물은 차광수입니다. 김혁도 차광수처럼 조선공산주의운동의 종파주의, 기회주의의 악폐를 온몸으로 체감한 사람이었으며, 그러하기에 사랑과 믿음에 의거한 공산주의운동, 조선혁명의 진로를 밝혀줄 참다운 영도자를 열렬히 갈망하였습니다. 그런 김혁이었기에 위대한 주석님을 만나뵙고 새 형의 청년공산주의자대오에 결합하게 된 것에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불같은 성격의 김혁은 진정한 운동선을 찾은 이 때부터 모든 열정을 혁명운동에 쏟아부었으며 조선혁명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김혁은 당시 청년공산주의자들의 기관지인 ≪볼쉐위크≫의 주필로서, 공청과 건설동지사의 한 핵심으로서, 수많은 농촌을 혁명화한 주역으로서, 하얼빈조직책으로서, 재능있는 예술인으로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항일혁명시기에 재사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혁명가를 들라면 단연 김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혁은 하얼빈에서 일제에 검거되어 혁명적 지조와 의리를 지켜 싸우다 결국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혁명관이 확고하고 선전가, 조직가, 작전가로서 발군이었던 김혁이야말로, 오늘 신념과 의지의 강자이며 전천후 혁명가를 지향하는 우리 청년주체주의자들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올해의 구호를 ≪오늘의 김혁, 김책이 되자≫로 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김혁에게 하얼빈조직책의 막중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하얼빈조직책이 왜 중요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로 할 수 있는 동지는 회고록의 ≪혁명시인 김혁≫편을 제대로 읽었으며 올해 우리 운동권의 최대논제를 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얼빈시는 바로 국제당과의 연계를 지을 수 있는 곳으로서 하얼빈조직책은 한 개 도시의 조직책일 뿐만 아니라 국제당과 청년공산주의대오의 조직적 연계를 담당하는 연락책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 운동권의 올해 ≪화두≫가 무엇입니까. 바로 ≪조선노동당의 통일적 혁명영도체계≫가 아닙니까. 조선노동당의 통일적 혁명영도체계에 남측 민족민주운동의 지도핵심대오가 어떻게 하면 결합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 대답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기타를 메고 거리를 몇번 오가기만 하면 혁명대오에서조차 풍각쟁이 취급을 받으며 경시되던 시절에 김혁을 하얼빈조직책으로 임명하시었던 위대한 주석님의 영도예술과 국제당과의 연계임무에 격정을 금치못하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곳으로 기쁘게 떠났던 김혁의 혁명적 모습은 수령과 전사의 전형적인 모습으로서 참으로 감동적이며 인상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광수와 김혁에 대한 이야기를 매듭짓기 전에 꼭 지적할 부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혁명적 수령관입니다. 혁명적 수령관은 김혁, 차광수, 최창걸과 같은 청년공산주의자들이 김일성주석님을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내세우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당시 공산주의운동대오내의 종파주의의 해악성을 뼈저리게 절감한 김혁, 차광수는 위대한 주석님을 청년공산주의운동대오내의 단일한 영도구심으로 옹립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서며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김일성주석님께서 위대한 사상이론가, 탁월한 영도자, 숭고한 혁명가로서의 자질과 천품을 완벽하게 체현하신 천출위인이시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혁, 차광수가 야심이 없는 순결하고 참다운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학력도 부족한 동지를 지도자로 모신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김혁, 차광수는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을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하였기에, ≪조선의 별≫이라는 혁명송가까지 지어부르며 솔선수범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운동대오의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가 바로 분파주의가 아닙니까. 파벌이 난무하고 자리다툼이 벌어지는 곳에는 예외없이 야심과 출세욕을 감춘 분파주의자들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혁명을 시작하였을 때의 초지를 견지하여야 하며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을 위해 헌신하고 분투한 김혁, 차광수의 숭고한 모범을 따라배워야 할 것입니다.

조선의 노래

차광수, 김혁, 최창걸, 박소심과 같은 공산주의핵심들이 있었기에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이라는 청년전위조직을 건설하실 수 있었습니다.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공청)은 1927년 8월 27일 조직된 반제청년동맹의 핵심중에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조선인들로 그 다음날 8월 28일에 조직되었습니다. 조선이 1991년부터 8월 28일을 청년절로 기념하고 있다는 점은 상식으로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당시 공청의 역할에 주목할 점은 1928년 조선공산당의 해체 이후 상당기간 당적인 역할까지 도맡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공청은 길림의 청년운동만이 아니라 길림, 하얼빈 등의 도시노동계급과 만주지역의 광범한 농민대중과의 사업을 전개한 사실상의 당조직이었습니다. 길제로 공청의 골간핵심들은 카륜회의 직후 결성된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의 창립성원들과 일치합니다.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혁명영화 <조선의 별>중에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과 같은 비합법청년전위조직이 건설되고 조선인유길학우회와 같은 합법청년대중조직이 강화되자, 힘있는 대중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조건이 마련되었습니다. 주체를 강화하였으니 주체의 역할을 높이는 일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마침 일제가 중국침략의 교두보로 길회철도선을 건설하려하자 이를 객관적인 계기로 삼아 광범한 반일대중투쟁을 전개하게 됩니다. 이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이야말로 오늘 우리 운동가들이 따라배워야 할 대중투쟁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에서 배워야할 경험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주체적 역량을 준비한 후 객관적 계기를 놓치지않은 점, 합법조직들을 발동하고 비합조직은 될수록 표면에 나서지않은 점, 청년학생을 선봉으로 하고 광범한 시민대중을 동원한 점, 대중정치사업을 선행한 점, 투쟁구호를 제 때 정확히 든 점, 투쟁수위를 낮은 수준에서 점차 높은 수준으로 높여나간 점, 상황변화에 맞게 임기응변을 잘 한 점, 완강하게 전개하며 결실을 거둔 점 등일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 대중투쟁을 지휘하시면서 ≪대중의 힘은 무궁무진하다는 것, 대중을 옳게 조직하면 그 어떤 총칼로도 꺾을 수 없는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회고하신 대목은 특별한 주목이 필요합니다. 대중의 조직된 힘이 얼마나 위력적인가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으로 경험해보아야만 체득할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 청년학생운동가들은 대중운동경험이 풍부하지 못하고 선도투가 많은데, 무엇보다도 위대한 주석님의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을 깊이 연구하고 실지 대중투쟁에 적용함으로써 혁명적 대중노선의 진리성과 대중의 무궁한 저력을 크게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렇듯 대중을 교양하고 조직동원하면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는 진리를 터득하시는 한편 고루한 민족주의자들과 행세식 맑스주의자들의 종파주의와 사대주의, 교조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성찰하시게 되었습니다. 한때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길림지역의 한 중학교의 독서조사건의 불똥이 튀어 길림감옥에 수감되시게 되셨는데, 이 기간을 지난 조선민족해방운동을 전면적으로 깊이 총화하시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러한 사상이론적 총화를 바탕으로 1930년 6월 30일 카륜회의에서 불후의 고전적 노작, ≪조선혁명의 진로≫을 발표하시었습니다. 조선혁명의 지난 기간을 총화하시고 조선을 식민지반봉건사회라고 독창적으로 규정하시면서 반일무장투쟁, 민족통일전선, 자주적 당건설의 3대 노선을 밝히시며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조선혁명의 진로를 개척할 것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후의 노작이이야말로 위대한 ≪주체사상선언≫이라고 하는 것이며 1930년 6월 30일을 주체사상이 창시된 시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제기된 3대 노선이 항일혁명의 전기간을 관통하는 조선혁명의 일관된 전략이며, 조선의 민족자주위업이 완성되지 못한 오늘에도 의연히 그 의의가 살아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한국혁명의 진로≫가 아니라 ≪조선혁명의 진로≫를 따라 투쟁하는 주체적이고 전국적인 사상관점을 견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카륜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새로운 진로를 밝히신 직후, 정치 및 반군사 조직인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시는 한편 7월 3일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를 조직하시었습니다. ≪조선혁명의 진로≫에서도 무장투쟁노선이 우선적으로 강조되고 또 조선혁명군이 가장 먼저 조직되었다는 점은, 위대한 주석님께서 언제나 총대를 중시하시고 앞세우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고 할 것입니다. 혁명도 자주성도 결국 총대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밝히신 자주적 당건설방침의 핵심은 당중앙을 선포하고 하향식으로 당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층당조직을 확대한 후 상향식으로 당중앙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국제당이 조선공산당을 해산시킨 조건1국1당제의 원칙에 의거하여 중국지역에서 활동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중국공산당에 들어가야 되는 조건에 맞는 창조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조선공산주의자는 반드시 조선의 공산당을 건설하여야 한다는 자주적인 입장이 놓여있는 것입니다. 만약 새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도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면 국제당의 결정과 충돌하였을 뿐만 아니라 너도나도 당중앙을 선포하는 혼란이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제당의 조선공산당해산과 중국공산당으로의 전당 방침에 좌절하여 당건설을 유보하였다면 조선혁명에 대한 당적 지도가 보장되지 못했을 것이며 해방직후 공산당을 창당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주석님의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당건설방침은 참으로 주체적이면서도 현명한 당건설노선인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창조하신 주체적인 당건설노선은 그대로 통일혁명당을 창당하는 과정에도 적용되었으며, 비록 당조직은 아니지만 당조직을 지향하는 우리 청년주체주의자대오에도 응용되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사상적 기초를 튼튼히 축성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이를 지도사상과 영도핵심, 군중지반의 3대 요소로 규정하시었습니다. 여기서 영도핵심은 지도핵심, 골간핵심과 동의어로서 공산주의신념이 확고하고 조직적 수완과 대중사업능력을 갖춘 핵심활동가를 말합니다. 물론 지도사상은 주체사상이며 군중지반은 대중과의 혈연적 연계를 말합니다. 그럼 조선혁명의 참모부이며 조선민중의 영도조직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위대한 주석님의 ≪ㅌ.ㄷ≫에 그 뿌리를 두고 건설동지사를 첫 당조직으로 하며 수십성상의 조선혁명을 영도하여온 조선노동당입니다. 위대한 주석님의 혁명사상으로 일색화되어 있으며 위대한 주석님의 영도업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조선노동당이야말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당, 김일성입니다. 그럼 한민전은 무엇입니까. 한민전은 남측지역의 혁명운동을 영도하며 조선노동당의 혁명영도체계에 결합된 전위당입니다. 그리고 남측청년주체주의자대오한민전과 남측민중을 연결시켜주는 비합법인전대이며 그 후비대오입니다. 전위당이든 인전대이든 반드시 지도사상, 영도핵심, 군중지반의 튼튼한 조직사상적 기초를 구축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혁명투쟁에서 응당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 어떤 파쇼적인 탄압에도 허물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전 우리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서거 8주기를 전후하여 회고기간으로 설정하고 그 기간 위대한 주석님의 숭고한 혁명생애를 가슴 깊이 되새겨보았습니다. 위대한 주석님의 혁명생애는 한마디로 민중과 더불어 지나온 한 생이었습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는 숭고한 좌우명에 기초하시어 민중속으로 들어가시는 첫자욱을 떼신 곳이 바로 길림입니다. 그래서 주석님께서는 길림시절을 잊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 ≪나는 인민들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혁명활동을 시작하였고 오늘도 인민들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혁명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인민들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인생을 총화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혁명가의 생명은 군중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되며 군중을 떠날 때 끝이 난다≫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운동이 대중화되지 못하고 비약하지 못하는 이유는 뿌리깊은 분파주의와 함께 독버섯같은 관료주의 때문입니다. 그럼 관료주의를 타파하는 기본방도가 무엇입니까. 바로 민중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주체사회주의를 건설하시면서 관료주의와의 투쟁을 이론투쟁이 아니라 8천여회 55만킬로미터에 달하는 현지지도를 통해 수행하시었습니다. 전위당의 대외기관지인 ≪구국의소리방송≫은 운동대오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 한 특징입니다. 그런 ≪구국의소리방송≫이 왜 한총련과 민주노총의 지도부에 대하여 관료주의를 적시하며 강도높게 비판하는가에 대하여 관련 운동가들은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민중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데서 관료주의가 생기는 것이고 관료주의가 생기면 더이상 운동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운동가들의 일상은 책상앞에서 시작되어 책상앞에서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대중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마감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습은 혁명가가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기초적 공정이며 사회의 진보와 변혁에 이바지할 밑천을 마련하는데서 단 하루도 중단해서는 안되는 필수적 정신노동이다. 선진사상의 탐구과정을 통하여 길림시절에 터득한 교훈으로부터 나는 오늘도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학습은 첫째가는 임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선진사상의 탐구≫편 말미에 위와 같이 혁명가에게 얼마나 사상학습이 중요한가를 강조해서 가르쳐주십니다. 혁명가는 임무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죽을 권리도 없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학습은 임무 중의 임무, 첫째가는 임무로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깊이 새겨야 할 귀중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인터넷회고록강좌는 동지들의 일상적인 사상학습을 방조하기 위하여 기획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4, 5, 6, 7장으로서 무장투쟁과 유격구에 대하여 학습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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