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8월 9일(금)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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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과 이민위천(1)

통일여명 편집위원 강인규

 

무엇보다 먼저 살펴볼 점은 이민위천이 ≪세기와 더불어≫의 종자라는 점이다. 종자는 문학작품만이 아니라 수필에도 존재한다. 이민위천은 회고록의 내용과 형식을 규정하는 핵이다. 이민위천은 위대한 주석님의 좌우명으로서 회고록을 관통하는 중심사상이며 회고록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 사건, 일화와 회고록의 구성체계, 제목, 표현의 바탕이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머리말에서 이민위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시었다.

≪이민위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었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 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 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한 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한 생활의 본령이었다.≫(머리말, 세기와 더불어 1권)

≪나는 나의 한 생이 결코 남달리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한 생이며 인민과 더불어 지나온 한 생이었다고 자부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나는 나의 글이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면 천하를 얻고 백 번 승리하며 인민을 멀리하고 그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 번 패한다는 진리, 생과 투쟁의 교훈을 후세에 남기게 되기를 바란다.≫(머리말, 세기와 더불어 1권)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작품에서는 사상적 알맹이, 다시 말하여 이 똑바로 박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었다.

작품의 핵은 내용을 규정하고 형상을 기초지으며 그 생명을 담보하는 기본요인으로 된다.

과학논문을 쓰는 경우에도 필자가 말하려는 사상적 알맹이가 뚜렷이 안겨 올 때에야 체계를 세우고 논리를 전개해 나갈 수 있다. 맑스도 그의 경제학설의 핵을 이루는 잉여가치법칙을 발견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을 핵으로 하여 자본주의경제구조를 전면적으로 해부한 ≪자본론≫을 쓸 수 있었다. 맑스가 ≪자본론≫의 핵을 발견하기까지에는 모순으로 가득 찬 자본주의사회경제제도에 대한 방대한 자료의 연구과정이 필요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품을 창작하거나 과학을 연구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대상들가운데서 본질적 특성을 띠는 핵을 똑바로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종자의 발견이다.≫(김정일장군, 영화예술론, 1973 4 11)

다음으로 살펴볼 점은 이민위천의 원리가 바로 주체의 원리라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이민위천은 주체사상이다. ≪이민위천≫은 ≪주체≫의 생활적 표현이다. 만약 이 글이 회고록이라는 수필이 아니라 논문이었으면,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민위천≫이라는 생활적 표현이 아니라 ≪주체≫라는 철학적, 과학적 개념을 사용하시었을 것이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민위천≫이라는 표현을 분명 ≪주체≫라는 의미로 사용하시었다.

≪≪이민위천≫, 인민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것이 나의 지론이고 좌우명이었다. 인민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인으로 믿고 그 힘에 의거할 데 대한 주체의 원리야말로 내가 가장 숭상하는 정치적 신앙이며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한 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게 한 생활의 본령이었다.≫(머리말, 세기와 더불어 1권)

≪주체사상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입니다.≫(김일성주석, 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공화국정부의 대내외 정책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1972 9 17)

인민대중은 혁명과 건설의 주인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것이 주체사상이 밝힌 혁명의 근본원리이다. 인민대중의 자주적 요구와 리익을 옹호하고 실현하는 정책이 가장 혁명적이고 과학적인 정책이며 인민대중에 의거하고 인민대중의 힘과 지혜를 높이 발양시키는 것이 혁명적 령도의 근본요구이다. 인민을 믿고 그에 의거하면 백번 승리하지만 인민을 멀리하고 그의 버림을받으면 백번 패한다는 것이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께서 좌우명으로 삼으신 이민위천의 사상이며 바로 이것이 우리 당의 모든 활동에서 기본출발점으로, 최고의 원칙으로 되였다.≫(김정일장군,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당이다, 1995 10 2)

≪≪오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주체라는 말은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을 표현하는 술어입니다.≫(≪김일성저작집≫29권, 282쪽)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원리는 혁명과 건설의 담당자와 그의 결정적 역할을 밝힌 원리이므로 주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철학사전)

둘째, 이민위천은 인덕정치, 광폭정치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주석님께서 서거하신 해에 발표하신 노작에서 다음과 같이 이민위천의 정치를 인민의 정치, 인덕정치, 광폭정치로 정식화하시었다.

인덕정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일찍이 항일혁명의 나날에 그 역사적 뿌리를 마련하시고 혁명과 건설이 전진하는데 따라 더욱 심화발전시켜오신 전통적인 정치방식이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는 인민에 대한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신 우리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시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찍부터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한평생 인민들 속에 계시면서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시었으며 인민을 위하는 모든 것을 다 바치시었다.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는 숭고한 덕성을 지니신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수령으로 모심으로 하여 우리 나라에서 참다운 인민의 정치, 인덕정치의 자랑찬 역사가 펼쳐지게 되었다.

우리 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마련하여주신 인덕정치의 빛나는 전통을 끊임없이 계승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우리 당의 인덕정치는 각계각층의 인민들에게 차별없이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는 폭넓은 사랑과 믿음의 정치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당의 인덕정치를 광폭정치라고 한다.≫(김정일장군,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1994 11 1)

≪주체의 사회역사관은 민중을 중심으로 해서 정치의 본질과 역할, 국가정권의 본질을 새롭게 밝힌 데 기초해서 민중중심의 이북식 사회주의의 정치는 이민위천의 정치이고 이민위천정치의 근본원리는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라는 걸 독창적으로 밝힘으로써 정치사상과 정치실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고 이민위천의 정치의 새 역사를 펼쳐놨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습니다.

≪인민대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수령님께서 베푸시는 정치의 근본원리입니다. 인민대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인민대중중심의 정치의 기본핵이며 근본바탕입니다.≫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김일성주석님께서 베푸셨고 김정일영도자님께서 베푸시는 이민위천정치의 근본원리입니다. 그건 민중중심의 이북식 사회주의정권의 모든 노선과 정책,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지휘와 관리에 일관하게 관통돼 있는 근본바탕이고 기본핵을 이룹니다. 민중중심의 사회주의정권의 모든 정치는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서 시발되고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실현에 복종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북의 사회주의정치의 알파이며 오메가가 바로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고 그리고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사회주의정치의 대단원이라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 민중중심의 사회주의정치의 근본원리가 민중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이민위천의 정치의 근본원리, 구국의소리방송, 1997)

세째, 이민위천은 혁명적 군중노선이다.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거할 데 대한 이민위천의 노선은 바로 민중의 자주적 요구를 반영하여 노선과 정책을 세우고 민중의 창조적 능력을 발동하여 그 노선과 정책을 집행하는 우리 당의 혁명적 군중노선이다.

혁명영화 조선의 별 중에서≪우리는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을 통하여 대중의 힘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다시금 똑똑히 깨닫게 되었으며 대중을 옳게 조직하면 그 어떤 총칼로도 꺾을 수 없는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대중의 힘에 대한 나의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다. 대중에 대한 우리의 영도방법도 이 투쟁을 통해 더욱 세련되었다. 실천투쟁속에서 나도 단련되고 조직도 성장하였다.≫(단결의 시위, 세기와 더불어 1권)

≪주체사상이 밝힌 대중영도의 근본원칙인 혁명적 군중노선은 역사의 주체는 인민대중이라는 사회역사원리,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혁명의 근본원리에 기초하여 나온 원칙이다. 다시 말하여 이것은 인민대중으로 하여금 혁명과 건설에서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하는 영도원칙이다.

주체사상은 혁명적 군중노선을 대중영도의 근본원칙으로 제시하면서 그 기본요구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구체적인 해답을 주었다.

우리 당의 군중노선은 근로인민대중의 이익을 적극 옹호하며 대중을 교양개조하여 당의 두리에 묶어 세우며 대중의 힘을 믿고 대중을 발동하여 혁명과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김일성저작선집 7권, 263쪽)

혁명적 군중노선은 노동계급의 당이 혁명과 건설에 대한 영도의 전과정에 인민대중의 이익을 철저히 옹호하고 그들에게 헌신적으로 복무하며 인민대중에게서 배우고 그들을 교양개조하여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며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그들의 창조적 지혜와 힘을 발동하여 풀어나가는 것을 내용으로, 기본요구로 하는 영도원칙이다.≫(주체사상총서 9권)

네째, 이민위천은 일심단결의 바탕이다. 이민위천의 혁명적 군중관은 일심단결의 혁명적 수령관을 낳았다. 수령이 민중을 하늘처럼 섬기며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기에 민중이 수령을 자신의 사상이론적 뇌수로, 조직단결의 구심으로 높이 모시고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우리 인민에 대한 당과 수령의 숭고한 사랑과 믿음은 우리 인민들 속에서 당과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성을 낳고 있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정의감이 강하고 근면하고 용감하고 의리심이 깊고 예절이 바른 인민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우리 인민의 우수한 품성은 우리 시대에 와서 새로운 정신도덕적 기초 위에서 전면적으로 개화발전하고 있다. 우리 인민은 당과 수령의 인덕정치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으며 그 은덕에 충성으로 보답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투쟁하고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우리 인민의 충실성은 어버이수령님을 뜻밖에 잃은 오늘, 더욱 숭고한 높이에서 발현되고 있다.

<영생탑 삽입>   가장 순결한 마음으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우리 당의 우리 혁명의 수령으로 천세만세 영원히 높이 받들어 모시려는 것은 우리 인민의 드팀없는 의지이다. 우리 인민은 어버이수령 김일성동지의 유훈을 높이 받들고 당의 영도 따라 새로운 승리를 위하여 더욱 분발하여 투쟁하고 있다. 우리 인민과 같이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고 조국과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그런 고상한 정신도덕적 풍모를 지닌 인민은 없다. 우리는 이처럼 훌륭한 인민을 키워낸 것은 우리 당의 커다란 업적이며 우리 당이 실시하는 인덕정치의 빛나는 승리이다.

우리 당의 인덕정치는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의 원천으로 되고 있다.≫(김정일장군,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1994 11 1)

다섯째, 이민위천은 필승불패의 비결이다. 이민위천과 일심단결은 혁명과 건설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는 불패의 비결이다.

≪나는 나의 글이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면 천하를 얻고 백 번 승리하며 인민을 멀리하고 그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 번 패한다는 진리, 생과 투쟁의 교훈을 후세에 남기게 되기를 바란다.≫(머리말, 세기와 더불어 1권)

≪우리 당의 인덕정치는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의 원천으로 되고 있다.

사랑과 충성에 기초한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은 가장 공고한 단결이며 이러한 일심단결에 뿌리박고 있는 우리 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이다.

세상사람들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주의라고 하면서 부러움을 금치 못해 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가 인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원리를 철저히 구현하고 있는 참다운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이기 때문이다.

인민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권리를 행사하며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며 주인으로서의 값높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바로 여기에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가 인민대중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는 불패의 사회주의가 되는 근거가 있다. 우리 당은 언제나 사회의 모든 것의 주인인 인민대중을 절대적인 존재로 내세우고 인민들에게 끝없는 사랑과 믿음을 베풀어주는 진정한 인민의 정치, 인덕정치를 철저히 실시해 나갈 것이다.

오늘 우리 당과 인민 앞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개척하시고 이끌어 오신 주체의 사회주의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해야 할 무겁고도 영예로운 과업이 나서도 있다.

우리 당은 지난날 인민을 믿고 의거하여 백전백승하여 온 것처럼 앞으로도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여 주체의 사회주의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 것이다.≫(김정일장군,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1994 11 1)

원호물자를 가지고 온 인민들을 따뜻이 만나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다음으로 살펴볼 점은 이민위천과 회고록의 주요내용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네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이민위천과 주체확립이다.

≪총괄적으로 말하여 선행세대의 전략이나 노선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약점은 인민대중의 힘을 믿지 않고 외면한데 있었다.

선행세대의 운동자들은 한결같이 인민대중이 혁명의 주인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진리를 무시하고 있었다. 수백만 대중의 조직된 힘에 의거해야 일제를 타도할 수 있겠는데 우리 나라의 반일운동자들은 혁명도 독립전쟁도 특수한 몇몇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혁명연극 3인1당  공산주의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이런 입장에서 기초축성은 별로 하지 않고 몇몇 상층인물들로써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법으로 당을 만들었으며 대중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3인1당, 5인1파식으로 서로 분열되어 여러 해 동안 헤게모니싸움을 벌였다.

선행세대의 노선이나 전략들은 또한 조선의 산 현실에 발을 튼튼히 붙이지 못한 심중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조선의 산 현실에 부합되는 옳은 지도이론을 내놓자면 고전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을 절대시하지 말고 모든 문제를 자체의 실정에 맞게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독창적인 방식을 풀어나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였다. 지도이론을 마련한다고 하여 10월혁명의 경험 같은 것을 통채로 받아들여도 안되었고 국제당이 그 어떤 만병통치의 처방을 가져다줄 것 같이 기대하면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어도 안되었다.

≪우리가 믿을 것은 인민대중의 힘밖에 없다. 2천만의 힘을 믿고 그 힘을 하나로 묶어세워 일본제국주의자들과의 혈전을 벌이자.≫

나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웨침이 자주 울리었다.

나는 이런 충동을 안고 오늘 우리가 주체라는 이름을 달아서 부르고 있는 사상을 보고의 구절구절에 담으려고 노력하였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왕우구유격구 인민혁명정부깃발  ≪우리가 조선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만지방에 적합한 정권형태로 인민혁명정부를 선택한 것은 그것이 반제반봉건민주주의를 목적으로 하는 조선혁명의 성격에도 알맞고 인민의 요구에도 부합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권형태의 기준을 인민의 요구에서 찾고 인민의 이익을 얼마나 옹호고수하며 철저히 대변하는가 하는데서 찾았다.≫(소비에트냐, 인민혁명정부냐?, 세기와 더불어 3권)

≪자주성을 유린하는 세력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싸워온 투쟁대열 내부에 있은 것은 상식을 초월하는 역사의 변덕이었다. 이 변덕으로 하여 조선혁명은 심각한 고민과 좌절을 겪었다. 우리는 좌절에서 돌격에로 이전하기 위하여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조선민족과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자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들과 맹호가 되어 싸웠다. 다홍왜회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주의 깃발을 들고 조선혁명의 주체노선을 견지하고 그 권리를 옹호고수하기 위하여 벌인 대사상전이었다.≫(다홍왜에서의 논쟁, 세기와 더불어 4권)

박달  ≪≪맑스나 레닌은 누구의 승인도 받지 않고 당을 만들었는데 우리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국제당은 이미 1928년 12월 테제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앞에 당재건의 과업을 제시하였습니다. 테제에 명시된대로 국내에 우리 당 조직을 내오려고 하는데 누가 감히 그걸 시비하겠습니까. 국제당도 시비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승인이고 비준이고 하는 문제자체가 설정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집안일을 우리 집안사람들끼리 처리하면 되는 것인데 괜히 바깥사람들에게 우리 집일을 어떻게 하라느냐고 물을 필요야 있습니까? 조선혁명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아닙니까.≫

박달은 그제야 자기 생각이 너무나 짧았다고 하면서 우리의 입장과 제안을 적극 찬성해나섰다.≫(국내당공작위원회, 세기와 더불어 5권)

둘째, 이민위천과 무장투쟁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애국심이었고 젊은 혈기뿐이었다. 우리가 3-4년안팎이라고 한 것은 일본의 힘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애국심이 그보다 더 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담보가 있었다면 그것은 2천만 민중의 힘이었다. 2천만을 잘 훈련시켜 도처에서 들고일어나 일본군경들을 족치면 나라를 독립시킬 수 있으리라는 배심이 우리에게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장투쟁을 본때있게 해나가자면 대중적 지반을 잘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인민을 건드리는 놈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흑산이 태평구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이 의지를 다시금 실천으로 힘있게 보여주었다.≫(사도구참변에 대한 대답, 세기와 더불어 4권)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이룩된 원군전통, 군민일치의 전통은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의 나날을 거쳐 더욱 불패의 것으로 확대공고화되었다.

청소한 우리 공화국이 지구상의 ≪최강국≫과 맞서 싸워 그를 타승할 수 있은 것은 적측이 거의 순수한 군사력만 동원한 반면에 우리측에서는 전민이 동원되고 군민이 단결하여 싸웠기 때문이다.≫(물방아소리, 세기와 더불어 5권)

≪군민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명시하였다.

- 본군은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옹호보위하며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군민이 일치단결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한다. . . .

조선인민혁명군 잠행조례는 군민일치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데서 참으로 거대한 생활력을 발휘하였다.≫(인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세기와 더불어 5권)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찌하여 오래동안 생이별하였다가 다시 만남 혈육처럼 저렇게 뜨거운 정으로 얽힐 수 있는가. 나는 그날 군민이 한데 모여 꽃밭을 이룬 지양개등판의 정경을 둘러보면서 이런 생각에 잠기였다. 적들은 우리를 고립무원한 존재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헌신적인 사랑과 지원이 파도치는 인민의 바다에 떠있었다. 지양개등판에 펼쳐진 군민합동경축모임은 유격대는 인민의 사랑을 받고 인민은 유격대의 보호를 받으며 험난한 역사의 가시밭을 헤쳐온 항일혁명의 축도였다.

나는 그날 인민혁명군을 대표하여 연설을 하였다. 군대와 인민은 떨어져 살래야 살 수 없는 일심동체이기 때문에 혁명군이 건재할 수 있고 백전백승한다는 사상으로 일관된 짤막한 즉흥연설이었다.≫(지양개군민연환대회, 세기와 더불어 6권)

세째, 이민위천과 민족통일전선이다. 참고로 ≪세기와 더불어≫ 8권에 ≪이민위천≫이 머리말 외에 본문에는 단 한 번 나오는데, 그것은 아래의 박인진도정과의 담화에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장투쟁을 본때있게 해나가자면 대중적 지반을 잘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여기로부터 반일민족통일전선에 대한 구상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3.1인민봉기에 떨쳐나선 평양인민들내가 조직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 화성의숙시절이라면 민족의 힘을 처음으로 느끼고 뇌리에 새겨둔 것은 3.1인민봉기 때였다. 내가 인민들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을 묶어세우고 그들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을 하겠다는 결심을 품은 것은 길림시절이었다.

2천만의 총동원으로 이루어지는 거족적인 항전이 없이는 식민지노예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순수한 계급혁명이라면 노동자, 농민 대중이 혁명의 동력으로 되겠지만 우리 혁명의 성격자체가 봉건을 반대하고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혁명인 것만큼 노동자, 농민은 말할 것도 없고 청년학생, 지식인, 애국적인 종교인, 민족자본가들도 다 혁명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우리는 주장하였다. 우리의 원칙은 민족해방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반일애국역량은 다 집결하고 다 동원시키자는 것이었다. . . .

우리는 카륜에서 반일민족통일전선노선을 모색하던 60여년 전에도 역시 그렇게 부르짖었다. 정치는 그릇이 크지 못하면 대중을 다 담지 못하며 정치가가 도량이 넓지 못하면 대중이 그 정치가를 외면해버린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우리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조국해방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민족적 권리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그것이 결코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납득시키는데 상당한 시간과 정력을 바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자신의 투철한 조국애와 민족해방을 위한 실천투쟁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들이라는 것을 온 민족앞에 과시하였으며 드디어는 민족해방투쟁의 진두를 떳떳이 나서게 되었다.

이동백  우리의 이러한 장구한 희생적인 투쟁의 결과로 보람찬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조국광복회 창립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국광복회≫라는 명칭 자체도 당당하게 내걸고 강령의 첫 조항에 우리 민족 성원 전체의 자력으로 조국광복을 이룩하고 동만유격근거지에 세웠던 것과 같은 진정한 인민의 정부를 세우려 한다는데 대해서도 뚜렷이 밝혀야 한다.

나의 이야기를 주의 깊이 듣고 난 이동백은 무릎을 치며 환성을 올렸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5권)

≪≪제가 꼭 여쭈어 알고싶은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한울님≫을 숭상하듯이 장군도 숭상하는 대상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도정의 그 질문을 우리에 대한 믿음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대답하였다.

박인진... 물론 나에게도 신처럼 숭상하는 대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민이다. 나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겨왔고 인민을 하느님처럼 섬겨오고 있다. 나의 하느님은 다름아닌 인민이다. 세상에 인민대중처럼 전지전능하고 위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

천도교 경전박인진은 그 대답을 듣고 내가 백두산에 온 보람이 있다, 좀 때늦긴 하지만 진짜 ≪한울님≫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의미심장하게 말하였다. 그리고 천도교 시조 최제우의 ≪인내천≫ 사상이 우리의 생각과 상통한 데가 있다면서 대단히 흡족해하였다.≫(박인진도정, 세기와 더불어 5권)

네째, 이민위천과 전민항쟁이다.

≪내가 조직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 화성의숙시절이라면 민족의 힘을 처음으로 느끼고 뇌리에 새겨둔 것은 3.1인민봉기 때였다. 내가 인민들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을 묶어세우고 그들의 힘에 의거하여 혁명을 하겠다는 결심을 품은 것은 길림시절이었다.

2천만의 총동원으로 이루어지는 거족적인 항전이 없이는 식민지노예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순수한 계급혁명이라면 노동자, 농민 대중이 혁명의 동력으로 되겠지만 우리 혁명의 성격자체가 봉건을 반대하고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혁명인 것만큼 노동자, 농민은 말할 것도 없고 청년학생, 지식인, 애국적인 종교인, 민족자본가들도 다 혁명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우리는 주장하였다. 우리의 원칙은 민족해방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반일애국역량은 다 집결하고 다 동원시키자는 것이었다.≫(카륜회의, 세기와 더불어 2권)

≪이 타산은 살아도 유격근거지에서 살고 죽어도 유격근거지를 베고 죽는다는 각오를 가지고 어떤 경우에도 군대와 혼연일체가 되려는 인민의 의사에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인민을 최대한 동원한다면 그것은 무서운 힘으로 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치백노인이 나에게 귀뜸해준 유격대의 예비였다. 아니 유격구의 인민은 우리가 의거해야 할 예비정도가 아니라 가장 믿음직한 주력군이었다.≫(마촌작전, 세기와 더불어 3권)

≪몇몇 선각자나 투사들의 힘만으로 나라의 독립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은 세계혁명운동사의 총화인 동시에 우리 나라 민족해방운동사의 교훈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항일혁명을 시작한 첫날부터 시종일관 전민항쟁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때 우리가 말한 전민항쟁이란 전민을 혁명화하여 항일혁명에 총동원시킨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시말하여 온 나라, 온 민족을 망라하는 거족적이고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반일항전으로 나라의 해방을 실현한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전민을 혁명화하자면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해야 하며 전민항쟁으로 일제를 타도하자면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인민을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튼튼히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 전민항쟁과 관련된 우리의 주장이었습니다.

전민항쟁 준비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백두산에 틀고앉아 무장투쟁을 압록강연안과 국내에로 확대하면서 조국광복회의 기치밑에 당건설과 통일전선운동, 대중조직건설을 활발히 벌이던 때부터였습니다. 온 민족의 총동원으로 나라의 해방을 이룩할 것을 호소한 조국광복회10대강령은 사실상 전민항쟁선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리가 전민항쟁방침을 독자적인 노선으로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무적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한 것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다음부터였다고 봅니다. 전인민적 반일항전문제를 가지고 백두산밀영에서도 회의를 했고 초수탄과 신흥에서도 회의를 하였습니다. 9월 호소문은 전민항쟁호소문이라고 이해해도 됩니다.≫(전민항쟁의 불길은 온 강토에, 세기와 더불어 8권)

마지막으로 살펴볼 점은 이민위천과 관련된 주요일화이다. 회고록에는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거하여 난국을 타개하시는 위대한 주석님의 수많은 일화가 감동적으로, 인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는 운이 좋아서 내가 봉변을 면한 것이 아니라 인심이 좋아서 군벌에게 잡히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인민이 하늘이고 민심이 천심이더라고 말하였다. 그때부터 ≪교하의 아주머니≫라는 말은 슬기롭고 희생적인 우리 인민을 상징하는 하나의 대명사, 어려운 고비에서 자기를 희생시켜 혁명가를 도와주는 것이 체질로 되어있는 여성들을 상징하는 뜻깊은 대명사로 되었다.≫(1930년 여름, 세기와 더불어 2권)

≪≪방은 좁지만 짚을 펴고 지내면 불편한데로 그럭저럭 급한 대목을 넘길 수 있을 거네. 여기에 숨어있으면서 몸들을 추세우라구. 바깥소식은 내가 며칠에 한번씩 와서 전해주지. 자네들이 이 산막을 떠날 때는 길안내도 내가 해주겠네.≫

노인이 이런 말을 하면서 산막에 불을 지펴줄 때 우리는 고마움에 목이 메여 다같이 눈물을 흘리었다. 그처럼 한적하고 쓸쓸한 등판에서 마노인과 같이 성실한 은인을 만난 것은 누구에게나 쉽게 차례질 수 없는 행운아였다. 대원들은 모두 ≪하느님≫이 우리를 굽어본다고 농을 하였다.≫(나자구등판에서, 세기와 더불어 2권)

≪노인이 군사전문가는 아니지만 의병장도 할 수 있는 대담한 작전가였다. 빨치산 대장의 아버지가 다르기는 달랐다. 노인이 짜준 탈출안은 사실 어지간한 지휘관들도 궁리해내기 어려운 묘안이었다. 그때도 절실하게 체험한 바이지만 우리 인민의 두뇌는 세상의 그 어떤 난사도 다 해결해낼 수 있는 지혜의 샘이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인민을 찾아가야 한다는 나의 신조는 이런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천교령의 눈보라, 세기와 더불어 3권)

≪나는 입맛이 없을 때에도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하여 개다리소반의 밥과 찬을 억지로 다 들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최일화어머니의 입가에는 느슨한 웃음기가 내비치곤 하였다.

인민이 우리에게 바치는 정이란 참말로 깨끗하고 구김살이 없었다.

만일 그 정을 강물이나 시냇물에 비길 수 있다면 나는 거기에 ≪청류≫나 ≪옥류≫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그 정은 길이로써도 잴 수 없고 무게로써도 가늠할 수 없는 무한대한 것이다.

인민의 사랑속에 사는 사람은 행복하고 인민의 사랑을 받지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이것이 나의 일생을 관통하고 있는 행복에 대한 가치관이다. 지난날에도 그러하였지만 지금도 나는 인민의 사랑을 받는데서 최대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인생의 첫째가는 진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 진미를 아는 사람만이 인민의 참된 아들이 되고 충복이 될 수 있다.≫(인민의 품, 세기와 더불어 3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불멸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머리말의 마지막 두 단락에서, 바로 20세기와 더불어 살아오신 위대한 주석님의 생애야말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한 생, 민중과 더불어 지나온 한 생이었으며, 민중을 믿고 민중에 의거하는 이민위천의 삶과 투쟁이었음을 참으로 겸손하고 소박하게 밝히시었다.

≪나는 나의 한 생이 결코 남달리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한 생이며 인민과 더불어 지나온 한 생이었다고 자부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나는 나의 글이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면 천하를 얻고 백 번 승리하며 인민을 멀리하고 그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 번 패한다는 진리, 생과 투쟁의 교훈을 후세에 남기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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