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91(2002)년 8월 5일(월)                                                                                         통일여명 편집국 주관

≪세기와 더불어≫ 강의(1회)
- 제1장 ≪비운이 드리운 나라≫와 제2장 ≪잊을 수 없는 화전≫

통일여명 편집위원 한철규

 

  참으로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동지들과 함께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불멸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학습할 ≪세기와 더불어≫ 1권에서 8권은 위대한 주석님의 항일혁명시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석님의 항일혁명투쟁은 곧 항일무장투쟁이므로 결국 우리는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을 통해 주체의 항일무장투쟁사를 학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 나온 김에 먼저 항일무장투쟁사와 관련한 교재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합니다. 우리 민족해방운동가들은 보통 항일무장투쟁사를 대동출판사에서 발간한 ≪항일무장투쟁사≫나 이승환(필명, 이재화)이 집필한 ≪근현대민족해방운동사≫를 가지고 학습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후자는 기본적으로 중국자료를 인용하였고 주체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읽지말기를 권고합니다.

또한 만약 ≪항일무장투쟁사≫를 읽을 바에는 바로 ≪현대조선역사≫를 읽는 것이 백번 낫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무릇 교재는 다소 어렵더라도 권위있는 출판사에서 발간한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개론서를 가지고 학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엔 좀 어렵더라도 한두번 반복해 읽다보면 오히려 학습에서 체계를 잡는데서나, 깊이와 넓이에서 질이 다르다는 점을 이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참고로 ≪현대조선역사≫가 공화국의 역사라면 ≪조선노동당약사≫는 노동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전자에 사실자료가 풍부하고 후자에 위대한 주석님의 사상해설이 풍부합니다. 따라서 전자를 먼저 읽고 후자를 읽는 것이 순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역사서가 모두 김일성주석님의 혁명역사라는 점은 불문가지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주석님의 불멸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항일혁명편≫(1-8권)이 발간되면서, 항일무장투쟁사를 학습하기 위한 최적의 교재가 바뀌었습니다. ≪세기와 더불어≫(1-8권)만큼 풍부하고 심오하며 알기쉬운 항일무장투쟁역사교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세기와 더불어≫는 단순한 역사서만이 아니라 철학서이며 통일전선과 당건설에 대한 이론서이며 혁명의 전략전술론입니다. 그러므로 남측에서 민족해방운동, 지하투쟁을 전개하는 우리 혁명가들, 청년전사들에게 이보다 좋은 교재가 없는 것입니다.   

 

≪현대조선역사≫나 ≪조선노동당약사≫를 읽어본 동지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항일무장투쟁사는 네 단계로 나뉘어집니다. 항일무장투쟁 이전단계와 첫째, 둘째, 세째 단계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계구분의 기준점은 항일민족해방투쟁의 전략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회의, 곧 겨울명월구회의(1931.12), 남호두회의(1936.2), 소할바령회의(1940.8)입니다. 이 각각의 회의에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세가지 노선, 바로 무장투쟁, 통일전선, 당건설의 전략적 방침이 논의되고 구체적 대책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기구분과 중요회의, 그 회의의 3대 전략적 방침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할 때만이 항일무장투쟁사의 체계를 세울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항일무장투쟁사의 체계를 세우면 항일무장투쟁사학습의 절반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김형직선생님항일무장투쟁사의 전략적 시기구분은 ≪세기와 더불어≫에서 사실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항일무장투쟁 이전단계가 1권 1장(비운이 드리운 나라)에서 2권 4장(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던 나날에)까지, 항일무장투쟁 첫째 단계가 2권 5장(무장한 인민)에서 4권 11장(혁명의 분수령) 2절(기이한 인연)까지, 항일무장투쟁 둘째 단계가 4권 11장 3절(경박호 기슭에서)에서 7권 21장(대부대선회작전의 총성)까지, 마지막 항일무장투쟁 세째 단계가 8권 22(혁명의 기치를 끝까지 고수하자)에서 24장(거족적인 반일항전으로)까지라고 할 수 있는데, 동지들이 당장 직접 확인해보기 바랍니다. ≪세기와 더불어≫의 시기구분이 ≪현대조선역사≫와 다른 이유는 말 그대로 역사서가 아니라 회고록이기 때문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0회입니다.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세기와 더불어≫ 1권에서 8권까지를 총총히 짚어보아야 합니다. ≪세기와 더불어≫의 ≪항일혁명≫편은 8권 24장 183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항일무장투쟁 이전단계를 ≪세기와 더불어≫를 중심으로 볼 때, 김형직선생님께서 생전해 계시던 시기와 화성의숙시절, 그리고 길림시절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시간으로서 제1장 ≪비운의 드리운 나라≫와 제2장 ≪잊을 수 없는 화전≫입니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총항일무장투쟁을 관통하는 김일성주석님의 3대 노선 중의 으뜸은 무장투쟁노선입니다. 그 이유는 민족해방투쟁의 최고단계이며 주류가 바로 무장투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김일성주석님의 무장투쟁노선에 김정일장군님의 선군혁명사상의 뿌리가 있습니다. 주석님의 김보현할아버님께서는 늘 ≪남자는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어야 마땅하다≫고 후손들을 교양하셨으며, 주석님의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을 상징하는 권총 두 자루를 유산으로 물려주셨습니다.

권총과 ≪지원(志遠)≫, 3대각오, 동지획득의 사상을 4대 유산이라고 합니다. ≪지원≫이란 뜻을 원대하게 가져한다는 말로서 조국을 위한 투쟁에서 보람을 찾는 혁명적 인생관이며 대를 이어가며 싸우더라도 기어이 조국을 광복하여야 한다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입니다. 주석님께서는 훗날 3-4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무장투쟁이 장기전으로 넘어가고, 해방이후 민족분열의 장구한 비극을 체험하며 그 깊은 뜻에 숙연한 생각을 금치못하셨다고 하시었습니다.

3대각오란 굶어죽을 아사, 얼어죽을 동사, 맞아죽을 타사로서 혁명가에게 필요한 3가지 각오를 말합니다. 동지획득의 사상이란 ≪동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만이 좋은 동지를 얻을 수 있다.≫는 김형직선생님의 한마디로 압축됩니다. 주석님께서는 김형직아버님으로부터 그 어떤 재물이 아니라 한평생 간고분투할 것을 의미하는 이 4가지 유산을 물려받으셨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당대 최고의 애국자이시며 혁명가이시었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가혹한 옥고를 치르시는가 하면 조국의 산하와 만주를 누비시며, 마치 모래밭에서 금싸라기 찾듯이 구한 동지들로 1917년 평양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었습니다. 그 조선국민회는 3.1봉기 직후 조선의 애국자들이 무은 조직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이었습니다. 조선국민회의 회의 중 무산혁명의 필요성을 강조한 1917년 11월 청수동회의와,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에로 방향전환할 데 대하여 정식으로 선포한 1918연 8월 관전회의는 기억해두어야 합니다.조선국민회결성을 선포하시는 김형직선생님

그 조선국민회가 준비되고 검열된 애국자들만 엄선하여 받아들인 점, 종적인 조직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 회원상호간에 암호를 사용한 점, 문서들도 암호로만 작성된 점, 숭실중학교 개학날을 회원들의 정기모임으로 한 점, 학교계, 비석계, 향토계 등으로 위장한 점, 산하에 구역장을 두고 베이징과 단동에 통신원을 배치한 점, 각계각층의 대중적 지반위에 선 조직이라는 점, 국내는 물론 중국 등 외국에까지 포진해 있었던 점, 등을 주석님께서는 지적하시며 높이 평가하신 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매우 크다고 할 것입니다.

오동진이관린김형직선생님의 동지들중에서 특기할 만한 사람은 오동진과 이관린입니다. 오동진은 1932년 구속되었을 때 예심기록문건이 3만 5천페이지만 되었다고 합니다. 간디의 예심기록문건이 2만 5천페이지였다고 하니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오동진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일제가 얼마나 두려워 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오동진은 주석님이 화성의숙에 들어가는 데서나 길림에서 활동하는 데서나 적지않은 방조를 주었습니다.

이관린은 ≪독립군의 꽃≫, ≪만록총중 일점홍≫이라고 불리워진 독립군의 여걸입니다. 김형직선생님의 영향하에 담력있고 지조있는 독립투사를 성장한 이관린은 오동진과 함께 당시 민족주의세력 중에서도 좌파에 속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시고 믿었던 오동진마저 구속되다보니 이관린은 향방을 잃고 표류하다가 결국 잠적하여 어느 중국인과 결혼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관린이 남긴 교훈입니다. 한 평생 혁명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영도자와 조직은 이처럼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훗날 이관린은 주석님께서 건설하신 조국에 살고싶다며 단신으로 조국에 돌아왔으며 애국열사릉에 묻혀있습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후, 오동진의 소개로 화성의숙에 입교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그곳에서 민족주의교육의 한계를 절감하시었습니다. 봉건왕조를 되살려야 한다거나 자본주의길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다른 진보적 사조에 대하여는 염두에 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이 진보서적을 탐독하는 것을 엄히 단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군사훈련도 모래주머니를 차고 체력훈련이나 하는 식이고 투쟁방법도 소규모 무장소조로 왜놈순사나 처단하고 군자금이나 모으러 다니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창걸차광수김일성주석님께서 화성의숙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최창걸과 같은 훌륭한 동지를 많이 만났다는 것입니다. 김리갑, 이제우, 강병선, 김원우, 박근원, 훗날 배신은 하였지만 이종락, 박차석도 모두 그 때 만난 동지들입니다. 이 동지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단연 최창걸입니다. 최창걸은 주석님의 청년시절 가장 친근한 동지인 차광수를 소개해 준 사람입니다. 그리고 차광수는 김혁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최창걸에서 차광수로, 차광수에서 김혁으로 인연의 끈이 이어진 것입니다.

위대한 주석님과 애국청년들은 자주 모여 조국해방에 대한 토론을 하고 우의도 다지곤 하였습니다. 그 모임장소가 바로 김시우총관집이었는데, 이유는 그 집에 진보적인 서적이 많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김시우가 우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석님께서는 모임이 있을 때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며 망을 봐주던 김시우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회고하시었습니다. 김시우는 한평생 민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도, 조국에 돌아온 후 그 사실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시우와 함께 화성의숙시절 주석님께 인상깊었던 은사는 바로 최동오숙장이었습니다. 최동오는 민족주의사상이 강해 주석님을 비롯한 학생들과 갈등도 있었지만, 한 생을 민족을 위해 헌신한 양심적인 인물입니다. 훗날 김일성주석님께 길림에서 수감되고 수사를 받으실 때, 증인으로 불려왔지만 모른 척 눈감아 주거나, 해방직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간부를 맡으면서 주석님과의 인연이 이어집니다. 그 인연은 최동오의 아들인 최덕신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최동오와 달리 이남에 남아 결국 반공일선에서 군인으로 외교관으로 민족앞에 큰 죄를 짓고 살았던 최덕신은, 말년에 이북으로 들어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천도교청우당의 중책을 맡으며 조국통일에 헌신하였습니다.

 

1926년 10월 17일, 그 김시우총관집에서 조선노동당의 역사적 뿌리인 타도제국주의동맹이 결성되었습니다. 약칭으로 ≪ㅌ.ㄷ≫이라고 하는데, 영어식으로 ≪티.디≫로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트.드≫로 읽습니다. ≪ㅌ.ㄷ≫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최고강령을 조선과 온 세계에 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것으로, 당면목표이자 최저강령을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해방을 이룩하는 것으로 한 비밀결사조직입니다. 무릇 비밀조직은 이처럼 명확한 명칭과 강령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ㅌ.ㄷ>를 조직하시던 때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노작 ≪조선노동당은 영광스러운 ≪ㅌ.ㄷ≫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1982.10.17)에 밝혀져 있듯이, ≪ㅌ.ㄷ≫의 결성은 조선공산주의운동과 조선혁명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선언이며 우리 나라에서 종전의 당과 구별되는 새형의 당, 주체형의 혁명적 당창건을 투쟁의 출발점입니다. ≪ㅌ.ㄷ≫의 강령은 조선노동당의 강령의 기초로 되었고, ≪ㅌ.ㄷ≫가 내세운 자주성의 원칙은 조선노동당의 건설과 활동의 원칙으로 되었으며, ≪ㅌ.ㄷ≫가 키워내기 시작한 새세대공산주의자들은 조선노동당창건의 골간으로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ㅌ.ㄷ≫는 조선노동당의 뿌리입니다.

 

≪이런 이치를 먼저 깨닫는 사람을 선각자라고 하며 와신상담하면서 나라의 비운을 가시려고 애쓰는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며 제 한몸을 불태워 진리를 밝히고 만민을 불러일으켜 불의의 세상을 뒤집어엎는 사람을 혁명가라고 한다.≫

 

≪나의 가정≫편 말미에 나오는 위의 인용문은 김일성주석님께서 내리신 선각자, 애국자, 혁명가에 대한 개념규정입니다. 여기서 애국자와 혁명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혁명가는 애국자와 조국과 민족을 위해 투쟁한다는 점에서 같으나, 혁명의 진리를 터득한 점, 대중을 교양조직하고 동원하는 점,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건설하는 점에서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단순한 애국자가 아니라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혁명의 진리를 깊이 터득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인터넷회고록강좌를 개설하고 동지들과 함께 학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은 주석님의 길림시절에 대하여 학습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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