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통일혁명의 영도자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제202호          주체91(2002)년 12월 28일(토)                                                                                 백두산편집부

높은 자제력을 가지고 제기된 문제를 푸는 사람이 수양이 있는 사람이다

총화를 통하여

21세기를 주도해 나가시는 위인

구국의 소리

 

 

한나라당이 반역적인 ≪제재≫망발을 늘어놓은 것과 관련해 (12/26)

2002년 학생운동 (12/25-26)

미군의 야수적 폭격과 포격고발 (12/26)

조선중앙통신

(12/27)

 

사회주의헌법발표 30돐기념 중앙보고대회

주석의 존함으로 빛나는 김일성헌법

미사일수출과 관련하여 ≪국제규칙≫을 따지고들려는 미국 비난

오늘의 주요기사

 

 

 

 

IAEA 사찰단원 추방 결정 - 北 원자력총국장 서한 (연합뉴스, 12/27)

조선신보 평양특파원 기자들의 2003년 전망 (유뉴스, 12/27)

네티즌, ≪100만의 힘으로 결집할 것≫ (통일뉴스, 12/27)

미국 아시아 노동자들, 반전평화운동 전개 (통일뉴스, 12/27)

서울지하철노조 ≪새해초 파업 강행≫ (오마이뉴스, 12/27)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라!

  조미기본합의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장본인이 상대방에 대고 합의문 위반을 운운하고 있다. 미국이 조선에게 하는 행동이다.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다.

  2003년 경수로 제공, 정치 및 경제 관계 정상화, 핵무기 핵위협 중지 담보 제공, 미국이 약속한 것 중 무엇이 이루어졌는가. 경수로부지의 빈 구뎅이, ≪악의 축≫ 폭언, 미국의 핵선제공격계획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런 주제에 조미합의문을 입에 담는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미국은 할 말이 없다.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애당초 미국의 적대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며, 조미합의문을 깬 장본인도 미국이다. 조선이 핵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을 가지고 있어도 미국은 할 말이 없다.

  이런 판국에 ≪선핵포기 후대화≫라니, 뻔뻔함과 무모함의 극치다. 사리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해서 갈수록 궁지에 몰리는 측은 미국일 것이다. 조-미불가침조약을 체결하라. 해법은 그것밖에 없다.

조미사이의 불가침조약체결이
    핵문제해결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도
   -조선외무성대변인 (조선중앙통신, 10/25)

온 민족이 애국의 선군정치를 옹호하자
   -조평통대변인담화 (조선중앙통신 10/29)

평화단체들, 북핵 관련 긴급 토론회 개최
    (통일뉴스, 11/2)

통일연대, 제네바합의 파기 미국규탄
    기자회견 (통일뉴스, 11/8)

KEDO의 중유제공중단 - 조선 국내여론은
   ≪결사항전≫ 주장 (조선신보, 11/20)

미국의 중유제공중단결정, 조미기본합의문
    위반 - 조선외무성 대변인 담화 
    (조선중앙통신, 11/22)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호소문
    (조선중앙통신, 11/25)

백남순외무상 국제원자력기구 결의 ≪접수
    할 수 없다≫ 표명 (조선중앙통신, 12/05)

미국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범죄행위를 걷어치워야 한다
    - 조국통일연구원 백서
    (구국의소리, 12/07-08)

≪북미 불가침조약으로 한반도 평화를≫
    (통일뉴스, 12/12)

≪핵시설들의 가동과 건설을 즉시 재개≫
   - 조선외무성대변인 (조선중앙통신, 12/13)

핵시설감시카메라 철수를 국제원자력기구
    에게 요구 - 이제선원자력총국장
    (조선중앙통신, 12/16)

핵시설가동과 건설재개조치는 남조선에
    위협으로도 되지 않는다
    - 조평통대변인 (조선중앙통신, 12/16)

통일연대,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촉구
    (통일뉴스, 12/17)

핵시설봉인과 감시카메라제거작업을
    즉시 개시 (조선중앙통신, 12/23)

핵동결해제는 ≪핵개발계획≫과 아무런
    인연도 없다 (조선중앙통신, 12/23)

북핵문제, 민족공조로 풀어야 
    (민주노동당, 12/23)

동결된 핵시설에 대한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작업을 개시 (조선신보, 12/25)

 
 

오늘의 질문 1 (12/28)

어제의 문답 (12/27) 찾아가기

                             (12/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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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국전선 (12/21)

  조선중앙통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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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화를 통하여

≪세기와 더불어≫ 제2권 5장 1절

하나의 과제는 5.30폭동의 후과를 총화하는 것이었다. 폭동을 설계하고 지휘한 당사자는 아니지만 우리는 이 폭동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과학적으로 정확히 분석총화할 필요를 느끼었다.

폭동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동만에는 아직도 광신적인 테러주의자들과 이립삼노선의 신봉자들이 남아 무모한 폭력투쟁에로 대중을 부추기고 있었다.

일국에서 사회주의혁명승리의 가능성에 대한 레닌의 명제를 교조적으로 적용한 ≪한개 성 또는 수개 성에서의 우선적 승리≫라는 이립삼의 노선은 대중을 폭동에로 떠미는 강력한 자극제의 역할을 하였다.

중국당의 실권을 장악하고있던 사람이 내놓은 노선이고 또 그것이 조직선을 통해 하달된것만큼 사람들은 이립삼이 당직에서 물러나고 그의 주장이 좌경모험주의라고 낙인될 때까지 래동안 그 노선을 추종하였다. 그들은 실패와 좌절의 쓴맛을 보면서도 이립삼이 펼쳐보인 그 달콤한 몽상에서 좀처럼 깨여나지 못하고 있었다.

5.30폭동을 총화하게 되면 사람들이 이런 몽상에서 깨여날 수 있었다.

우리는 5.30폭동총화를 통하여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출세주의와 공명주의, 소부르조아적 영웅주의에 경종을 울리기로 결심하였다.

폭동의 총화는 또한 만주지방의 혁명가들에게 과학적인 전략전술과 대중영도방법을 체득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21세기를 주도해 나가시는 위인

김정일위원장연구3≫(주체91, 백두산편집부)

주체사상국제연구소 명예이사장 이노우에 슈하찌가 김정일위원장님이 진행하신 역사적인 러시아연방방문소식을 끝없는 감격과 격정속에 접한 데 대하여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21세기의 위대한 태양으로 만민의 다함없는 칭송을 받고 있는 김위원장의 러시아연방방문소식은 전 세계를 들끓게 하였으며 자주를 위해 투쟁하는 진보적 인류에게는 무한한 감격과 미래에 대한 끝없는 희망과 낙관, 신심을 안겨 주었고 정의와 진리에 도전하는 자주와 평화의 원쑤들에게는 준엄한 철추를 내린 엄숙한 경고로 되었다.

김정일위원장님의 러시아연방방문소식을 세계 150여개 나라의 텔레비젼방송들이 연일 특대뉴스로 보도하고 5대륙의 연 300억명이 이를 시청하였다는 사실 하나만 놓고도 경애하는 그이의 위대성의 높이와 무게를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다.

실로 국가최고영도자의 외국방문역사를 놓고 보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장장 20여일에 걸치는 5만여리의 멀고도 먼 러시아연방방문노정의 자욱자욱마다에는 세기의 위인이신 김정일위원장님의 인류사에 특기할 불멸의 업적이 수놓아져 있다.

김정일위원장님은 이번 러시아연방방문을 통하여 조러친선의 강화발전과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거대한 공헌을 하셨을 뿐 아니라 공산주의윤리도덕의 최고화신으로서의 숭고한 모범을 전 세계에 보여주심으로써 사람들의 심장을 격동시키었다.

세계 수억만 사람들은 레닌묘를 찾은 김위원장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지닌 숭고한 도덕의리를 다시금 심장깊이 절감하였다.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류의 자주위업을 위한 수만리장정의 길을 그리도 조용히 떠났고 그토록 위대한 업적을 쌓으시고도 그처럼 조용히 돌아온 김위원장의 혁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한없는 겸허성은 지금 만사람을 격동시키고 있다.

김정일위원장님이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을 떠나게 된다는 격동적인 소식에 접한 그날로부터 전체 군대와 민중이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의 낮과 밤을 이어 가면서 그의 안녕을 그리도 간절히 바라고 바라며 조국방선을 금성철벽으로 다지었고 일터마다에서 기적과 위훈을 창조하며 강성대국건설의 진격로를 힘차게 열어 나간 사실은 조선의 일심단결이 얼마나 공고하고도 위력한 것인가를 똑똑히 보여 주고 있다.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나라마다 국가지도자와 민중이 있지만 먼길 떠난 어버이를 그리는 자식들의 심정보다도 더욱 열렬하고 진실한 혈연의 관계를 보여 주며 전민중적 감정으로 뜨겁게 분출된 조선민중과 군대의 영도자숭배심과 김정일위원장님이 지니고 있는 민중사랑의 숭고한 정신세계는 아무리 세상을 둘러보아도 조선밖에 더는 없을 것이다.

위대한 주체사상의 창시자이며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인 김일성주석님의 혁명위업을 선군정치의 위력으로 빛나게 계승완성해 나가려는 김정일위원장님의 철의 신념과 의지는 세계를 격동시킨 역사적인 외국방문의 수만리장정을 끝마치시고 조국에 돌아오시어 겹쌓인 피로를 푸실 사이도 없이 그 길로 진행하신 조선인민군부대시찰과 나남의 노동계급과의 뜻깊은 상봉에도 역력히 어리어 있다.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대외활동으로 인류의 자주위업실현에 불멸의 공헌을 한 김정일위원장님의 역사적인 러시아연방방문을 통하여 세계 수억만 진보적 인류는 그야말로 주체의 억센 지레대로 자주의 궤도를 따라 지구가 움직이도록 하시는 희세의 위인이시며 21세기를 주도해 나가시는 위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 뜨겁게 되새기게 되었다.

세계 진보적 인류는 현 시대의 가장 걸출한 위인 김정일위원장님을 세계정치의 위대한 기수로 높이 모신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 뿌듯이 느끼고 있다.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인 김정일위원장님이야말로 사상에서 최고이시고 영도에서 으뜸이며 풍모에서도 세계 으뜸인 현 시대의 가장 걸출한 정치가, 백전백승의 강철의 영장, 끝없이 고결한 도덕의리를 지니신 성인중의 성인이다.≫

 

한나라당이 반역적인 ≪제재≫망발을 늘어놓은 것과 관련해

91/12/26 ≪구국의 소리≫ 화제의 초점

이미 보도가 됐습니다만 한나라당은 22일 대변인이라는 자를 내세워 이북에 대해 단계적인 제재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악담을 퍼부어댔습니다.

이것은 한나라당과 같은 반민족반통일매국노들의 더러운 입에서만 튀어나올 수 있는 서푼도 안되는 넋두리입니다.

이북에 대한 제재는 곧 전쟁을 의미하며 전쟁은 민족공멸을 자초할겁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지금 이 시각에도 이북의 핵문제를 걸고들며 대북강경책동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미국을 단죄규탄하며 반미투쟁의 파고를 드높여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려는 것은 우리 국민의 확고부동한 의지입니다. 그런데 유독 한나라당만이 민의에 역행해 미국의 장단에 춤을 추며 민족공멸을 초래할 반역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으니 어찌 이를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한나라당은 친미사대매국과 반공반북대결의 골수분자들이 모여있는 구린내나는 낡고 부패한 반역당입니다.

한나라당이 이번 대선에서 참패를 당한 것은 친미사대매국과 반북대결을 원치 않는 우리 국민의 엄정한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또다시 우리 국민 그 누구도 듣지 않는 낡아빠진 반북대결론을 고취한 것은 전쟁에 환장이 된 자들만이 떠들어댈 수 있는 궤변입니다.

민족과 국민의 버림을 받은 반통일당과 같은 한나라당의 존재는 백해무익합니다.

국민여러분은 우리 민중의 의사와 시대의 요구도 모르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반북대결론을 고창하고 있는 한나라당을 지체없이 폭파해치움으로써 민족자주통일의 암적 존재를 가차없이 제거해버려야 할겁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 학생운동

91/12/25-26 ≪구국의 소리≫ 청년학생들과 함께

오늘 이 시간에는 2002년 학생운동에 관해 윤정원씨 모시고 얘기 나눠드리죠.

사회자 : 안녕하세요.

윤정원 : 안녕하세요.

사회자 : 또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세말의 언덕에서 지난 한해동안의 학생운동을 조망해보는 건 금후 학생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도 의미깊은 거라고 그렇게 봐져요. 이에 관해 얘길 나누려고 자리를 같이 했는데요. 그럼 먼저 지난 한해동안 청년학생들이 벌인 투쟁들을 간추려 살펴봤으면 합니다.

윤정원 : 올해 대중운동 전반이 그러하듯이 학생운동에서도 중핵을 이루는 건 역시 반미투쟁이었다고 봅니다.

지난 2월 부시방≪한≫반대투쟁을 계기로 범국민적인 반미항전의 기수로서의 학생운동의 위상을 과시해온 청년학생들은 학원자주, 민족자주쟁취를 위한 백만학도 집중투쟁기간 등 단계적으로 투쟁기간을 설정하고 반미성전을 고조시켜왔습니다.

청년학생들의 반미의지는 미군에 의한 여중생살인사건을 계기로해서 더 강렬히 분출됐는데 10월에 있은 전국대학생총궐기는 그걸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죠.

사회자 : 청년학생들의 반미투쟁은 전민족 대 미국이라는 새로운 대결구도가 형성된 국제적 환경속에서 전개된 것으로 해서 운동사적인 의미가 크다고 보는데요.

윤정원 : 네,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으로 말미암아 남북관계가 다시금 경색국면으로 치닫게 되고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조성된 환경을 대하면서 온 민중은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새삼스레 절감하게 됐고 치솟는 분격을 금치 못해 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조국통일을 바라는 우리 민족을 한 축으로 하고 미국을 다른 축으로 하는 양국간의 첨예한 대결이 전개됐습니다. 청년학생들이 진행한 모든 반미투쟁은 이 역사적인 대결을 우리 민족의 힘으로 이끌어가는데 큰 기여를 했어요. 부시방한반대투쟁만이 아니라 미국의 무기강매반대투쟁, 대북핵소동반대투쟁, 북미불가침조약체결을 위한 투쟁 등 청년학생들이 벌인 올해의 모든 투쟁들은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을 분쇄하고 자주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위력한 투쟁력으로 됐습니다.

사회자 : 반미투쟁에서뿐 아니라 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들이 있었다고 봐지는데요.

윤정원 : 그 측면에서 우선 지적해야 할 게 구시대적 대결정치에 반하는 입장과 자세를 분명히 한 청년학생들이 새정치실현을 위해 헌신적인 투쟁을 벌여왔다는 거예요. 온 한해 청년학생들이 반미투쟁과 함께 반이회창투쟁에 주력해온 건 그 때문이죠.

≪보수정치 6.15방해 이회창반대 대학생투쟁본부≫를 내오고 이회창심판의 선봉에 서자는 구호 드높이 집회와 시위, 서명운동 등 각종 투쟁을 전개해온 청년학생들인데요.

지난 11월 4일 ≪한총련≫이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대학생 80%이상이 이회창의 대선후보사퇴를 요구한다고 발표한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거지만 그만큼 구시대 대결정치에 반하는 청년학생들의 지향이 강렬했습니다.

사회자 : 구시대 대결정치에 반하는 청년학생들의 지향과 의지가 대선을 계기로 강렬히 분출되었다, 그 얘기죠. 사회의 민주화실현에 바친 청년학생들의 지난 한해동안의 투쟁을 점검해 볼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총련≫합법화, 이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겠어요.

윤정원 : 청년학생들이 올해를 ≪한총련합법화의 해≫로 정했는데 그만큼 그 실현을 위한 투쟁도 격렬하게 전개됐습니다. ≪한총련≫ 의장의 공개강연회, 대의원들의 농성투쟁, 유엔인권위원회 제소를 위한 ≪한총련≫ ≪이적≫규정철회 1천만인 선언운동 등 ≪한총련≫합법화에 대한 범국민적 의지를 모아내기 위한 청년학생들의 투쟁은 연일 고조됐죠.

학생운동말살을 노린 공안당국의 탄압이 노골화될수록 ≪국가보안법≫조항찢기시위, 구속학우석방투쟁 등을 더 강도높이 벌이며 조직을 사수하고 대오의 전투력을 배가해온 청년학생들이었습니다.

사회자 : ≪한총련≫의 합법적 활동보장을 위한 범사회인 대책위원회가 결성되고 ≪한총련≫합법화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1천인선언, 종교인 1천인선언, 이런 선언이 울려나온 건 학생운동에 대한 각계층 운동단체들의 지지가 얼마나 굳건한가를 실증하고도 남음이 있죠.

어떠세요. 6.15공동선언이행에서 조국통일을 앞당겨오려는 투쟁도 청년학생들속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고 보는데요.

윤정원 : 6.15공동선언의 정당성과 활력이 날로 뚜렷이 과시되는 환경에 걸맞게 청년학생들은 지난 5월 각계층 운동단체들과 함께 진행한 자주통일대회를 비롯해서 여러 기회들을 통해 이 역사의 선언이 안고 있는 거대한 사회적 의미에 관해 널리 홍보해왔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학생들이 광복절을 앞두고 교내에 6.15공동선언기념탑을 설치한 것도 그렇고 통일선봉대를 묶고 국토순례대행진을 비롯해서 다채로운 통일행사를 진행해온 것은 다 6.15공동선언을 성공적으로 이행해가려는 의지의 발현이었습니다.

올해 조국통일실현을 위한 청년학생들의 투쟁에서 특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건 지난 10월 금강산에서 남북해외청년학생들의 통일대회를 성사시킨 겁니다. 분열주의자들의 악랄한 도전과 방해책동을 분쇄하고 끝끝내 이북 청년학생들과의 상봉을 이루어냈거든요.

우리 청년학생들이 진행한 모든 투쟁들은 6.15공동선언을 이행해서 조국통일을 이룩하려는 겨레의 지향을 막을 수도, 멈춰세울 수도, 되돌려 세울 수 없는 그런 대세로 시대의 흐름으로 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8.15통일대축제가 열리고 부산아시아경기대회가 통일잔치마당으로 화해서 겨레의 통일열기를 한껏 가열시켜 줄 수 있은데는 청년학생들의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도 깃들어 있습니다.

사회자 : 지난 한해동안의 투쟁과정을 돌이켜볼때 결국 올해는 청년학생들에게 있어서 자주민주통일운동에서 학생운동의 위력이 비상히 강화된 해, 선도부대로서의 지위가 확고히 정착된 해라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럼 올해 학생운동에서 주목되는 점은 어떤 것들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윤정원 : 제 생각에는 무엇보다도 학생운동조직들이 조성된 환경에 걸맞게 투쟁을 능동적으로 조직하고 전개해 온거라고 봐져요. 다시 말해서 책략을 갖고 투쟁했다 그런 얘기겠는데 ≪한총련≫이 ≪학원자주 민족자주쟁취를 위한 백만학도 집중투쟁기간≫을 선포한 건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때를 같이해서였고 ≪보수정치 6.15방해 이회창반대 대학생투쟁본부≫를 구성한 것, 이 역시 이회창이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을 때였습니다. ≪한총련≫출범식도 5월말 6월초에 거행하는게 상례로 되어 왔지만 올해에는 6.15민족통일대축전을 대대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거의 한달이나 앞당겨 진행을 했죠. 이렇게 정세에 발을 붙이고 투쟁시점을 선택해서 다종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며 투쟁해온 결과 보다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봅니다.

사회자 : 올해 청년학생들의 투쟁에서는 계기를 맞고 출몰했다는 일순 사라져버리고 하던 결함들이 많이 극복되고 투쟁을 끝장을 볼때까지 진행해나가려는 노력이 크다고 보았는데요.

윤정원 : 운동을 전망성있게 조직하고 전개해왔기 때문이죠. 청년학생들은 2월에는 ≪반미총력기간≫, 3월에는 ≪학원자주 민족자주쟁취를 위한 백만학도 집중투쟁기간≫, 그리고 4월에는 ≪반미반전평화수호≫, 이렇게 매단계마다 구체적인 환경에 걸맞게 운동기간을 설정하고 투쟁을 벌여왔어요. 그래서 투쟁에서 중도반단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돌격해올 수 있은 거예요.

그리고 대중의 감정정서에 걸맞는 투쟁방식을 다채롭게 창출구사했습니다. 그래서 반미실천단, 반미반전결사단식단 등 수많은 단체들이 주동적으로 조직을 해서 운동을 벌였고 여중생살육사건을 계기로 벌인 투쟁들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촛불집회와 반미시위 등 각종 집회와 시위뿐만 아니라 서명운동, 반미띠잇기운동, 성조기소각 등 각이한 형태의 투쟁들을 벌였잖아요. 그래서 지난 14일 60여개 지역에서 30여만의 참여속에 진행된 ≪오만한 미국규탄과 주권회복을 위한 범국민평화대행진≫과 같은 그러한 범국민적인 반미행사를 성사시키는데도 큰 기여를 했던 겁니다.

사회자 : 그야말로 다채로운 투쟁들이 벌어졌는데요. 그 투쟁속에서 학생운동조직들 상호간, 그리고 각계층 운동단체들 상호간 연대연합을 굳건히 한 것이 아주 주목되는 점이라고 봐지는데요.

윤정원 : 옳은 주장입니다. 모든 대학생들이 일치단결해서 투쟁한 10월 전국대학생총궐기를 떠나 11월 2일에 결성된 ≪미군장갑차 고 신효순, 심미선살인사건해결과 반전평화실현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겁니다.

11월 23일에 결성된 ≪6.15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통일운동연대≫도 같은 맥락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요. 금강산에서 뜻깊은 통일회합을 가지고 단결된 힘으로 공동선언실천운동을 전면적으로 전개할 의지를 새롭게 굳힌 결과 ≪청년학생통일운동연대≫와 같은 그런 단체도 결성됐다고 보면 과언은 아닐 겁니다.

따라서 각계층 운동단체들과의 연대연합도 같은 원리인데요. 독자적인 투쟁보다도 여러 단체들과의 밀접한 연계속에 서로 지지하고 성원하며 공동투쟁을 많이 전개한 결과 공동연대조직도 무어지고 투쟁도 더많은 대중의 참여속에 벌일 수 있은 거죠.

사회자 : 올해 학생운동을 점검해볼때 성과들도 많았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해 자기 성찰의 견지에서 보면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고 봐지는데요.

윤정원 : 오늘의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대중화거든요. 그런데 방법상 문제에서 투쟁을 풍부하게, 전술적 유연함을 갖고 전개하기보다는 다소 좌경적이거나 수동적인 형태로 진행한 적이 없었던가 하는 건 돌이켜봐야 할거 같애요. 그래서 지난 1월에 있은 9기 ≪한총련≫ 중앙상임위원회 간담회에서도 지적이 됐지만 일군들의 그릇된 작풍이 대오의 단합에 저해를 주는 것과 같은 결함들이 근절되지 못하고 있고 대중의 감정, 정서와 거리가 먼 돌출행동들이 아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6.15공동선언에 동의하는 사람, 단체와는 같이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협소한 자기 울타리에서, 자기 우물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연대연합을 주저하거나 분파싸움을 하는 것, 이건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고 보죠.

그리고 투쟁을 일관하게 벌이면서 그 강도를 배가하는 것 그런 문제에서도 좀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올해만 봐도 실천투쟁은 하지 않고 성명이나 같이 하는 식으로 준비된 투쟁들이 일부 있었죠. 그리고 투쟁도 탑을 쌓듯 잘 벌려나가 ***겠는데 한쪽면에만 진행된 투쟁들도 있었고 중도반단한 투쟁도 있었고 그래요.

사회자 : 훌륭한 성과들은 경험으로 되살리고 부분적 결함들은 냉철한 성찰속에서 고쳐나갈 때 청년학생들은 민족의 자랑으로 더 우뚝 설거예요. 승리와 전진의 해 2002년이 그러했듯이 청년학생들이 6.15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미국의 대북강경정책과 민족반역세력의 사대매국책동, 민족분열책동을 반대해 투쟁할 때 내년에도 더 큰 성과를 이루게 되리라는 걸 확신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지난 한해동안의 학생운동을 되돌아보며 많은 얘기 나누었는데요. 다 학생운동강화발전에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이 돼요.

2003년 학생운동에서 보다 큰 성과를 바라며 오늘 얘기 여기서 마감하죠. 지금까지 감사합니다.

윤정원 : 감사합니다.

 

미군의 야수적 폭격과 포격고발

91/12/26 ≪구국의 소리≫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공동백서(3)

미제침략자들은 지난 조선전쟁시기 공화국북반부를 일시적으로 강점하였다가 쫓겨난 이후에도 전선에서 당한 참패를 만회하고 조선민족을 멸살하기 위하여 공화국북반부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을 더욱 발광적으로 감행함으로써 희세의 살인마, 극악한 야수로서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는 1951년 1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기간 공화국북반부 지역에 대한 미군의 야수적폭격 과 포격만행 가운데서 그 일부를 묶어 이 공동백서를 발표한다.

1. 도시와 농촌파괴와 주민대량학살 만행

조선전쟁 초시기부터 감행한 미군의 ≪초토화작전≫에 의하여 공화국북반부의 도시와 농촌은 이미 파괴될대로 파괴되어 있었다.

미제가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미군은 전쟁을 도발한 이후 330일동안에만 하여도 연 20만 180대의 비행기를 출격시켜 8만9400톤의 폭탄과 9052만5000발의 기총탄, 24만7000여개의 로케트탄, 700만갈론의 나팜탄을 공화국북반부지역에 퍼부어 거의 모든 도시와 농촌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미제승냥이들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부터 조선사람을 멸족시키고 저들의 음흉한 군사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비29≫를 비롯한 각종 폭격기, 추격기, 전투기들과 미제7함대의 함선들까지 총동원하여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폭격, 포격만행을 보다 광란적으로 감행하였다.

미제는 1951년 1월부터 3월까지의 기간에 함경남도에 연 3821대의 비행기들을 출격시켜 6770여개의 각종 폭탄과 수만개의 소이탄을 투하하여 8464동의 살림집과 339동의 공공건물 그리고 2896호의 농가를 파괴소각하였다.

함경북도에는 연 2149대의 미군비행기들이 날아들어 6940여개의 각종 폭탄과 수백개의 소이탄을 퍼부음으로써 6700호의 농가와 시, 군소재지들의 3만8269동의 살림집이 불타게 하였다.

5월 6일 남포시에 날아 든 미군 ≪비29≫폭격기 12대는 43개의 대형폭탄과 6000여개의 소이탄을 투하하여 120여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1698동의 살림집을 완전히 파괴소각하였다.

원산앞바다에 기어든 미군함선들은 5월 23일 밤중에만도 시내에 6750여발의 함포탄을 발사하여 65동의 공공건물과 49동의 살림집을 파괴하였으며 주민 11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미제야수들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만행으로 하여 5월 현재 남포시에는 6만명의 인구중 3만여명, 원산시에는 12만3100여명의 인구중 5만700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개천시에서는 8만명이상이었던 인구가 약 6만명으로 줄어들고 1만3000호의 집 가운데서 6500호이상이 파괴되었다.

6월 10일 미군폭격기 13대는 사리원시의 살림집지구에 70여개의 대형폭탄과 380여개의 소이탄을 떨구어 44명의 부녀자를 포함한 69명의 시민을 살해하고 69동의 살림집을 불태워 버리었다.

미군의 만행은 1951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악랄해졌다.

7월부터 8월 10일까지의 장마철기간에 황해남북도일대에 연 1만8685대의 미군비행기가 3202회에 걸쳐 폭격과 기총사격을 감행하고 미군함선들이 531회의 함포사격을 가하여 4458동의 살림집을 파괴소각하고 625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6894명의 평화적 주민을 살해하였다.

신평군 신평읍에서만도 7월 19일 미군비행기들은 밭에서 일하는 24명의 농민에게 48개의 류산탄을 뿌려 그들중 23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7월 11일부터 8월 20일까지사이 평양시에는 250회이상에 걸쳐 연 1만대이상의 미군비행기들이 날아들어 400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4000여명의 시민을 살해하고 2500명이상에게 중상을 입히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7월 30일 하루동안에만도 ≪비29≫폭격기를 포함한 135대의 각종 미군비행기들이 비내리는 날씨를 이용하여 평양시내에 2000여개의 각종 폭탄을 4시간동안 투하하여 529명의 주민을 즉사시키고 329명에게 부상을 입히었으며 840동의 살림집을 파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조국광복 6돌을 맞이하는 전날인 8월 14일 평양시상공에 날아 든 650대의 미군비행기들은 무차별폭격으로 1547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2020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980동의 살림집을 파괴소각하였다.

또한 미군은 8월 한달동안에 함경북도에 2120여개의 폭탄과 6090여발의 함포탄을 퍼부어 2857명의 평화적 주민을 살해하였으며 당시의 나진군에만도 8월 25일 하루동안 27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69명의 시민을 죽이고 150개의 토굴집을 파괴하였다.

11월부터 12월까지 미제야수들은 함경남도에 연 1363대의 비행기들을 들이밀어 1920여개에 달하는 폭탄을 마구 퍼부음으로써 510동의 살림집을 완전히 파괴하고 1932명의 주민을 죽이는 범죄적 행위를 저질렀다.

미군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하여 평양시에서는 1951년 12월 31일 현재 8만여동이던 살림집중에서 6만4000여동이 파괴되었으며 1951년 한해사이에 4768명의 주민이 살해되고 2438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리하여 전쟁전 46만4000명이었던 평양시의 인구가 1951년 12월 31일에는 18만1000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1952년에 들어서면서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미군의 폭격, 포격만행은 더욱 우심해졌다.

1952년 1월 24일과 27일 미군비행기들은 자강도의 거의 모든 군들의 소재지에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였으며 27일 폭격시에만 하여도 자강도의 농촌들에서 138명의 소년을 포함한 242명의 주민이 살해되거나 부상당하게 하였다.

2월 18일 미군비행기 34대는 혜산시 주민지대에 21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48명의 주민들을 폭사시키고 400여동의 살림집을 파괴하였으며 3월 25일 하루에만도 63대의 미군비행기들이 연 39회에 걸쳐 평양시 중구역, 선교구역, 사동구역, 역포구역의 주민지대들에 기여 들어 1370개의 폭탄을 퍼부어 120명이상의 주민을 살해하고 124동의 토굴집과 기타 건물들을 파괴하였다.

4월 6일 미군은 원산시 중청동에 함포사격을 해댔으며 4월 11일에는 구장군, 5월 9일에는 중화군, 5월 13일에는 대동군일대에 나팜탄과 지뢰탄을 비롯한 각종 폭탄을 떨구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수많은 주민들을 학살하고 방대한 면적의 논밭과 산림을 황폐화시켰으며 관개망들을 파괴하였다.

미군비행기들은 5월 19일부터 6월 17일 사이에 강동군, 청진시, 사리원시, 평산군, 정평군에 날아들어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밖에서 놀고 있던 어린이 9명을 비롯하여 무고한 주민들을 수많이 살해하고 농가와 건물들을 파괴소각하였다.

6월 23일과 24일 이틀동안에 걸쳐 수백대의 미군비행기들은 트루맨과 미합동참모본부가 비준한 계획에 따라 수풍발전소에 대한 폭격을 대대적으로 벌인데 이어 장진강, 부전강, 허천강발전소들도 폭격하여 혹심하게 파괴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7월 6일과 13일 미군 ≪비29≫폭격기들은 함흥시내의 밀집된 주민지대에 400여개의 대형폭탄을 퍼부었으며 7월 11일과 12일 새벽까지 사이에는 평양시와 그 주변일대에 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장 잔인무도한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였다.

평양시에만 하여도 미군의 6000여개의 나팜탄, 지뢰탄, 파열탄 및 시한탄이 투하되어 1600개이상의 토굴집이 파괴소각되고 약 6000명의 부녀자와 노인, 아이들이 살해되었으며 주민밀집지대였던 서평양지구가 페허로 되었다.

7월 11일부터 31일까지의 기간에 자강도에 날아든 미제공중비적들은 1000여개의 나팜탄을 비롯한 약 6000개의 폭탄을 퍼부어 200개이상의 농촌마을을 페허로 만들었다.

이 도에서 7월 한달동안의 희생자수는 1951년 1년간의 도내 전체 희생자수의 3.5배에 달하였다.

8월 5일 미극동군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북조선에는 쓸어도 걸릴 것이 없게≫하기 위해 북조선의 78개 도시를 ≪지도우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겠다≫고 하면서 이른바 ≪타격계획≫을 발표한 후 미군의 폭격, 포격만행은 더욱 대대적으로 감행되었다.

미제는 8월 한달동안 강원도에만도 1만684개의 폭탄을 주민지대에 떨구었으며 8월 10일 새벽 1시부터 4시사이에는 평양시의 주민밀집지대에 10여차의 맹폭격을 가하여 노인, 어린이, 부녀자들을 포함한 1000여명의 평화적 주민을 학살하고 수많은 살림집과 토굴집을 파괴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9월 25일에는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9월 26일부터 10월 23일 사이에는 홍원군에, 9월 28일에는 낭림군에 각종 폭탄 5370여개를 떨구어 542명의 주민을 살육하고 362호의 농가를 완전히 파괴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10월 8일부터 29일까지의 기간에 3000대이상의 폭격기, 전투기들을 동원하여 평양시와 그 주변에 주야간 30여차의 맹폭격을 가함으로써 수많은 시민들을 살해하고 수백개의 토굴집과 살림집들을 파괴하거나 불태워 버리었다.

같은 기간 황해남북도 일대의 도시와 농촌들에 날아든 미제야수들은 5000여회의 폭격을 가하여 14개의 군소재지와 27개의 부락을 완전히 불태워 버렸거나 파괴하고 8000여정보의 농토를 황폐화시켰으며 막대한 인적피해를 주었다.

미제는 10월 9일 하루동안에만 하여도 160대의 비행기로 1110여개의 폭탄을 강계시에 떨구어 608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242동의 살림집과 많은 토굴집을 파괴소각하였다.

10월 15일 미군 ≪비29≫폭격기들은 함경남북도의 거의 모든 군들과 리들에 대한 폭격을 일제히 감행하였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군함선들은 함경남북도의 해안지대들에 대한 맹렬한 함포사격을 감행하여 367명의 주민을 살해하고 7000여정보의 농경지를 황폐화시켰다.

10월 18일과 19일 200여대의 미군비행기들은 두번에 걸쳐 대동군일대의 농가와 논, 수수밭에 약 2500개의 대소폭탄을 쏟아 부음으로써 전번 폭격에서 파괴되지 않은 살림집의 반수이상을 파괴하고 어린이만도 386명을 살상하였다.

10월 19일 미군승냥이들은 98대의 중폭격기들을 동원하여 함흥시와 그 주변에 대한 폭격과 기총사격을 주야간 들이댐으로써 시내의 남부지역에서만 하여도 273명의 주민이 죽거나 부상당하였으며 시내는 완전한 잿더미로 변하였다.

10월 20일, 21일, 22일, 23일, 25일, 28일 미제는 강원도의 군과 리소재지들에 야간폭격을 들이대어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많은 농토와 산림을 황폐화시켰으며 8개의 어촌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10월 29일 밤 2시경 미군야만들은 불타는 집과 건물에서 간신히 살아 교외로 빠져 나온 수백명의 평양시민들에게 조명탄까지 걸어 놓고 무려 3시간동안이나 폭탄을 퍼붓고 기총사격을 가하면서 유혈적인 참극을 빚어내었다.

이날 약 260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되고 284명이 부상당하였는데 그중에는 2살부터 14살까지의 어린이 247명과 32명의 늙은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10월 31일 미군 ≪비29≫폭격기 16대는 원산시 주민지구에 16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215명의 주민을 살육하고 393개의 토굴집을 파괴하였으며 11월 17일 8시 20분부터 무려 10시간동안 청진시에 무차별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했는가 하면 순양함 1척과 10척의 구축함은 240여발의 함포탄을 시내 살림집지구들에 쏘아대어 225개의 토굴집을 파괴하고 189명의 주민을 살해하였다.

이외에도 미제야수들은 11월 23일과 28일 평양시와 신의주시, 의주군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하였다.

미군은 1952년 1년동안에만도 공화국북반부의 평화적 도시와 농촌들에 20여만개의 대, 중폭탄을 투하하였으며 5억여발의 기총탄을 난사하고 40여만개의 로케트탄, 1500여만개의 나팜탄을 퍼붓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평양시에만도 미제공중비적들은 지뢰탄, 소이탄, 세균탄을 포함한 각종 폭탄 5만2380개를 투하하였다.

이것은 평양시의 매 킬로미터당 1000개의 폭탄을 떨군 것으로 된다.

1953년에 들어서면서 미제침략자들은 아이젠하워의 ≪신공세≫기도를 실현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 보려고 전선에서 최후발악하는 한편 후방에 대한 폭격과 포격만행을 더욱 발광적으로 감행하였다.

1953년 1월 1일과 5일, 22일, 23일 미군비행기들은 평양시의 주민지구에 깊은 밤중에도 폭격을 연이어 들이대어 148명의 주민들을 살해하고 570여동의 살림집과 토굴집을 파괴하였다.

1월 2일에는 ≪비29≫를 포함한 약 50대의 미군비행기들이 대동군, 용강군, 강서구역일대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하였다.

이날 남포시 교외에서만도 100여호의 농가가 파괴되고 수많은 농민들과 어린이, 여성들이 무참히 학살되었다.

1월 7일 새벽 2시 미군폭격기 2대는 정평군 정평읍과 그 주변지역에 각종 폭탄 140여개를 쏟아부어 47명의 어린이와 33명의 늙은이를 포함하여 잠자고 있던 수많은 주민들을 무참히 살육하고 190여동의 살림집을 파괴소각하였다.

미제야수들은 1월 10일부터 5일동안 박천군에 연일 발광적인 폭격을 감행하였는데 이때 어린이들을 살해할 목적으로 교활하게도 각양각색 꽃모양의 소형탄이 장치된 지뢰탄을 사용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14일에는 고원군, 16일에는 순천시, 17일 에는 홍원군, 19일에는 사리원시, 20일에는 원산시에 집중공습과 함포사격을 들이댄 것을 비롯하여 매일과 같이 공화국북반부 각지에서 야만적인 폭격과 포격만행을 일삼았다.

1월 21일에만도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야밤삼경에 미군 ≪비29≫폭격기 20대는 10여차에 걸쳐 대형폭탄 200여개를 비롯한 각종 폭탄을 함흥시 주변 농촌들에 퍼부어 320여호의 농가와 많은 양곡을 잿더미로 만들고 2000여명의 무고한 주민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이날 10여명의 가족을 가진 도유친농민을 비롯한 27세대의 가족이 멸살당하였다.

1월 24일 새벽 2시경에는 미군폭격기 수십대가 평양을 또다시 폭격하여 36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00여명을 폭사시키고 수백명의 주민이 한지에 나앉게 하였다.

미제야수들은 3월 7일 밤에는 대동군의 3개 마을에 20분간에만도 500여개의 대소폭탄을 퍼부어 전부 잿더미로 만듦으로써 많은 시체를 잿더미와 흙속에서 파내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4월 13일 미군승냥이들은 120여대의 각종 전투기를 동원하여 청진시내와 주변 산골짜기들에 파열탄, 소이탄을 포함한 각종 폭탄 400여개를 퍼붓고 60여발의 함포탄을 쏘아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학살하였으며 병원과 소학교, 수많은 토굴집과 살림집을 파괴소각하였다.

미군야만들은 국제협약과 전쟁법규도 난폭하게 유린하면서 관개용 저수지들을 마구 폭격하는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미군은 1953년 5월 13일과 14일 평원군 석암저수지(견용저수지)에 36대의 전투폭격기를 내몰아 4차에 걸쳐 40여개의 폭탄을 퍼부어 저수지제방과 수문을 파괴하였다.

결과 당시 대동군과 순안군의 20개리 70여개 부락에서 800여호의 농가가 물에 잠기거나 파괴되었으며 400여명이 사망 또는 행방불명되었다. 또한 약 6000여정보의 농경지가 침수, 유실되었으며 5000여명의 농민들이 농경지와 집짐승 그리고 종곡을 잃고 이재민으로 되었다.

미제는 5월 15일과 16일에 당시 순천군에 있는 대봉산저수지에도 집중폭격을 들이대었다.

이틀동안 연이어 날아든 미제공중비적들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하여 저수지의 제방 60미터가 파괴되고 막대한 저수지물이 부근일대를 휩쓸어 60만9000여평의 농경지가 침수, 유실되었다.

5월 21일 6대의 미군 ≪비29≫폭격기들은 불과 일주일전에 감행한 석암저수지 폭격으로 말미암아 이재민이 된 대동군 지구의 주민들이 임시로 살고 있는 토굴집들을 야수와 같이 폭격하였다.

이날 새벽 2시 30분경 이재민들이 깊이 잠든 틈을 이용하여 갑자기 달려든 미군폭격기들은 6차에 걸쳐 600여개의 폭탄을 퍼부어 120여명을 살해하고 수백개의 토굴집을 파괴하였다.

미제는 그 다음날 새벽에는 대동군의 한 저수지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여 그 일대를 물에 잠기게 하였다.

6월 12일부터 15일까지 사이에 미제공중비적들은 청진시 주변농촌과 부령, 회령, 경성, 어랑, 화성, 화대, 길주, 김책 등 함경북도일대에 끊임없이 날아들어 수많은 폭탄을 무차별적으로 투하하고 기총사격을 가하였다.

6월 24일부터 29일에 이르는 6일간 미제는 흥남시와 함주, 영광, 낙원, 북청, 홍원 등 시, 군에만도 각종 전투폭격기들을 들이밀어 폭탄을 마구 퍼부음으로써 100여개의 토굴집과 농가들을 파괴하였으며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었다.

6월 29일 오후 5시경 염주군 농촌주민지대에 무리로 달려 든 미군전투폭격기 28대는 30여호의 농가와 토굴집을 파괴하고 수많은 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미제침략군은 정전담판이 최종단계에 들어선 시기에도 야수적인 폭격, 포격만행을 계속하였다.

7월 1일 밤 함주군일대에 날아 든 미군폭격기 7대는 농촌주민지대에 25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200여호의 농가와 토굴집을 파괴하고 1만5000여평의 밭을 황폐화시켰으며 같은날 이천군 일대에서는 갑자기 날아든 미군비행기들의 기총사격으로 많은 농가들이 순식간에 불타버리고 수십명의 농촌부녀자들이 무참히 희생되었다.

7월 2일 황주군과 안악군 등지의 주민지대를 목표로 날아든 미군 ≪비29≫폭격기와 전투기들은 400여개의 각종 폭탄을 투하함으로써 근 100명의 어린이와 부녀자들을 살육하고 80여호의 농가와 토굴집을 형체없이 만들었으며 8000여평의 농경지에 피해를 입혔다.

7월 5일 어랑군과 김책시 해상에 침입한 미군구축함들은 함포사격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살림집들을 파괴하였다.

미제승냥이들은 7월 6일에는 문덕군에, 7일에는 김책시에, 8일에는 함주군과 흥남시일대에, 10일에는 순천시와 고원군 일대에 연이어 날아들어 무차별적인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인적, 물적피해를 입혔다.

7월 12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평양시와 평원군, 은천군, 안악군, 어랑군 등지의 주민지구와 농촌지대들에서는 미군전투기와 ≪비29≫폭격기들의 야수적인 폭격이 하루종일 계속되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경 은천군에 날아든 미군폭격기 2대는 논밭에서 김매는 농민들을 향하여 20여개의 폭탄을 투하하는 동시에 20여회에 걸친 맹렬한 기총사격을 가하여 무리로 쓰러뜨렸으며 같은 날 오후 1시경에는 안악군 농촌부락들에 소이탄을 투하하고 기총사격을 가하여 10여호의 농가를 불태우고 수많은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2. 교육, 문화, 보건기관, 민족문화유산 파괴만행

미제침략자들은 조선전쟁을 발발한 첫날부터 공화국북반부의 교육, 문화, 보건기관들과 문화유적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51년 초에 이르러서는 공화국북반부의 학교, 병원, 극장, 휴양소, 구락부 및 문화유적의 거의 전부가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제침략군은 전쟁이 끝나는 마지막날까지 공화국북반부의 교육문화발전을 억제하고 우리 민족이 이루어 놓은 찬란한 문화전통과 그 재부를 말살하려는 목적밑에 파괴행위를 계속하였다.

미군의 야수적 폭격으로 하여 1951년 5월 현재 평양시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과 단과대학 6개, 소학교 43개, 중학교 20개, 전문학교 5개, 기술전문학교 4개, 야간성인학교 20개 등 99개의 학교가, 남포시에서는 각급 학교 24개, 개천시에서는 고급중학교 1개와 중학교 6개, 소학교 31개, 강계시에서는 사범학교 2개, 임산학교 1개, 고급중학교 1개, 소학교 4개, 사리원시에서는 11개의 학교가 무참히 파괴되었다.

6월 10일 미군폭격기 4대는 북청군에 21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4개의 소학교와 1개의 중학교를 완전히 파괴하고 공부하고 있던 수십명의 학생들을 무참히 살해하였다.

9월 14일 미군의 폭격으로 원산시 주변농촌에 소개된 제1중학교가 불타버리는 것과 함께 3명의 학생이 숨지었다.

미제는 9월 21일 천내군 풍전리를 폭격하여 소학교와 2개의 병원을 파괴하고 8명의 학생과 17명의 환자를 학살하였다.

11월 7일 미군전투기 8대는 숙천군을 폭격하여 숙천고급중학교건물을 폐허로 만들고 35명의 학생을 살해하였다.

1952년 1월부터 11월에 이르는 기간 미군야수들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복구신축된 각급 학교들이 파괴 또는 소각된 것은 무려 200여개에 달한다.

평양시 중구역 지구에서는 1952년 7월 11일부터 12월 31일사이에만도 56개의 분교사가 폭격당하였고 자강도와 평안북도를 제외한 도들에서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1952년에 희생된 학생수는 수천명을 헤아리고 있다.

교육기관들에 대한 미제의 야수적인 폭격행위는 이원, 길주를 비롯한 많은 지역들에서 끊임없이 감행되었다.

6월 15일 27대의 미군비행기들은 김책시를 폭격하여 도서관과 3개의 구락부를 불태워 버리었으며 7월 3일에는 함경북도 고무산골짜기에 있는 소학교까지 폭격파괴하고 학생 5명을 살해하였다.

7월 19일 미제공중비적들은 평양제10소학교에서 국가졸업시험을 치고 있는 학생들과 교정에서 뛰놀고 있는 수백명의 학생들에게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80여명을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고 6개의 교실을 완전히 파괴하는 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미제는 9월 16일 사리원시 부근에 있는 고아원에도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18명의 고아를 살해하고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29일에는 창성군에 있는 애육원과 유자녀학원에 12대의 비행기로 맹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건물들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이 폭격에 의하여 43명의 어린이가 살해되고 17명이 부상 당하였다.

10월 16일 미군비행기들은 자강도 강계시에 대한 무차별적 폭격을 감행하여 3개의 소학교와 4개의 애육원을 파괴하였으며 17명의 어린이를 살육하였다.

10월 18일과 19일 대동군에 대한 폭격시에는 18개의 소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진료소와 종합병원, 가축병원들이 파괴되었다.

10월 20일, 21일, 22일, 23일, 25일, 28일 강원도의 군소재지들에 대한 야간폭격을 감행한 미군비행기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였을 뿐 아니라 2개의 대학과 3개의 전문학교를 포함한 수십개의 학교와 병원을 파괴하였다.

미제승냥이들의 폭격, 포격만행에 의하여 공화국북반부의 교육시설들은 거의 다 파괴되었으며 남은것은 안전지대에 건설된 일부 가교사와 지하교실뿐이었다.

미제에 의하여 전쟁기간 파괴된 소학교와 중학교, 고급중학교, 사범전문학교수는 3746개이며 교실수는 2만4804개이다.

이것은 전쟁전 학교수의 72프로, 교실수의 88프로에 달하는 것이다.

미제침략자들은 우리 인민의 문화정서생활의 중요한 거점의 하나인 극장, 영화관을 비롯한 문화시설들에 대한 파괴행위도 서슴없이 감행하였으며 심지어 교회당도 마구 폭격하였다.

1951년 1월부터 6월까지 사이에 미군폭격기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의하여 평양모란봉극장을 비롯하여 평안남도도립극장, 평양국립극장, 함흥영화관, 함경남도도립극장, 원산시립도서관, 강원도 철원도서관, 황해남도 장연영화관 등이 혹심하게 파괴되었으며 7월 하순부터 8월 중순사이에는 평양시립극장을 비롯하여 평양시내의 2개의 영화관과 원산영화관, 강서영화관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7월 30일 미제야수들은 평양교외에 있는 국립영화촬영소(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수십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파괴하였으며 8월 14일에는 평양해방투쟁관(조선혁명박물관), 평양레코드제작소, 국립예술극장을 폭격하여 파괴하였다.

전쟁기간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평양시에서는 9개의 극장과 20개의 영화관, 64개의 교회당이, 사리원시에서는 1개의 도서관, 4개의 구락부, 4개의 교회당이, 안악군에서는 2개의 교회당이, 강계시에서는 4개의 교회당이 파괴되었다.

그뿐아니라 미군의 폭격으로 신의주시에서는 17개의 교회당가운데서 2개만이, 남포시에서는 1개의 작은 교회당만이 남게 되었다.

미제승냥이들은 적십자표식이 있는 건물들과 병원은 공격하지 않기로 되어 있는 국제협약마저 짓밟고 보건기관들에 대한 파괴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1951년 1월 3일과 4일 평양중앙병원의 지붕위에는 고도 6000∼8000미터에서도 볼 수 있는 적십자표식이 뚜렷이 띄어져 있었지만 미제공중비적들은 30미터의 저공으로 날며 폭탄을 마구 투하하여 병원을 파괴하고 보건성건물을 폐허로 만들었다.

미제는 2월 강계시중앙병원에 대한 폭격을 감행하여 의사와 환자 200여명을 살해하였으며 9월 23일에는 안변군에 있는 양로원을 완전히 파괴하고 노인 27명을 학살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10월 13일 성천군료양소에 폭격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33명을 살해하고 50동의 건물을 파괴하였으며 16일에는 강계시에 대한 무차별폭격을 감행하여 적십자병원을 파괴하고 치료중에 있던 33명의 환자와 17명 어린이의 생명을 앗아갔다.

17일에는 병원과 아동공원이 있는 동창군 대유노동자구에 대한 야간폭격을 감행하여 134명의 어린이와 26명의 환자를 살해하였다.

미제승냥이들의 날강도적인 폭격에 의하여 1951년 한해에만 하여도 평양시에서는 32개의 병원과 진료소가, 사리원시에서는 16개의 병원과 진료소가 파괴되었다.

미군은 군사적 목표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옛절간, 고분, 누각, 성문들도 가차없이 폭격파괴하였다.

미군야만들은 1951년 1월 3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모란봉의 영명사에 수많은 폭탄과 소이탄, 휘발유통을 투하하여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5월 6일에는 고대건축유적인 절간들이 있는 금강산 일대에 많은 양의 나팜탄과 소이탄을 투하하여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있던 옛절간인 장안사의 건물 700간을 불태워 버렸다.

6월 13일, 14일 2일간에 걸쳐 미제공중비적들은 고산군 설봉리에 대한 맹폭격을 감행하여 석왕사를 파괴소각하였다.

그리하여 석왕사의 응진전과 호지문, 대웅전과 팔상전을 비롯하여 50채에 달하는 웅대하고 호화스러웠던 건물들이 일시에 잿더미로 되고 말았다.

6월 25일 미제야수들은 또다시 금강산일대를 폭격하여 외금강 특수박물관으로 귀중히 이용되어 오던 대웅전을 비롯한 신계사의 목조건물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었다.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하여 거대한 절간이었던 백운사도 파괴소각되었으며 내금강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던 표훈사도 심히 파괴되었다.

특히 미제는 금강산 4대 절간 가운데서 가장 컸으며 금강산에 있는 총 60여개 절간의 중심이었던 유점사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드는 귀축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3000여간에 달하는 40여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과 돌등, 9층탑 등이 완전히 잿더미로 되었으며 금강산의 4대절간은 불타버렸거나 못쓰게 되었다.

전쟁기간 묘향산에 있는 보현사의 대웅전, 만세루, 심검당 등 여러채의 중심건물들이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불타 없어졌을 뿐 아니라 해주의 부용당과 안주의 백상루, 성천의 동명관, 강계의 북문과 인풍루, 희천의 위성관, 평양의 숭령전과 숭인전도 그 형체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처럼 미군의 야만적인 폭격만행에 의하여 웅장화려하고 우아하던 공화국북반부의 민족문화유산들, 절간들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불타버리고 말았다.

미제침략자들의 폭격, 포격만행에 의하여 공화국북반부에서 입은 인민경제피해액은 초보적인 자료에 의하더라도 약 4200억원(당시 화폐)에 이르렀다.

공업부문에서는 8700여개소의 공장과 제조소, 생산설비들이 파괴되었으며 농촌에서는 37만정보의 농토가 피해를 입고 농경지가 9만정보나 줄어들었다.

그리고 60여만동의 살림집, 5000여개의 각급 학교, 1000여개의 병원과 진료소 260여개의 극장 및 영화관과 수천개의 문화후생시설들이 파괴되었으며 도시와 농촌은 잿더미로 되었다.

도시와 농촌을 폐허로 만들고 전쟁역사에 일찍이 있어 보지 못한 온갖 야수적 방법과 범죄적 수단을 다 동원하여 우리 민족을 멸족시키려고 한 미제의 만행은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극악무도한 것이었다.

조선인민은 천추에도 잊지 못할 미제침략자들의 이 극악한 만행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그 값을 천백배로 받아내고야 말 것이다.

주체91(2002)년 12월 11일 / 평양

지금까지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공동백서(3)을 보내드렸는데요. 우리 민족에게 자행한 미군의 귀축같은 살인만행을 천백배로 복수할 결의를 안고 연일 반미항전을 힘차게 벌이고 계실 민중여러분의 투쟁에서 보다 큰 성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제의 문답

91/12/27 청년문답

다음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과 관련된 내용이다. 잘못 설명된 것은 무엇인가?

 

1. 사회주의헌법은 김일성주석님께서 친히 작성하시어 1972년 12월 27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발표되었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조선노동당과 공화국정부의 정책을 옹호하며 사회주의혁명의 전취물을 튼튼히 지키는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예리한 무기이다.

3.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는 사회주의헌법을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수정보충하였으며 그것을 김일성헌법으로 정식화하였다.

4.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지도밑에 수정보충되어 1997년 9월 5일에 채택발표된 사회주의헌법은 혁명발전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것으로 하여 사회주의위업수행의 위력한 무기로 된다.

5. 김일성헌법은 김일성주석님의 영생을 확고히 담보해주는 도덕의리의 최고헌장이며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선군영도밑에 사회주의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한 위력한 무기이다.

6. 조선의 사회주의헌법은 혁명적 수령관으로 일관된 수령영생헌법, 김일성헌법이다.

 

정답 : 4(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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