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통일혁명의 영도자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제180호          주체91(2002)년 12월 6일(금)                                                                                 백두산편집부

부모들이 혁명가라고 하여 자식들이 저절로 혁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혁명화

조선식 사회주의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구국의 소리

 

 

 

 

미국의 핵소동과 노농대중의 자세 (12/4)

≪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북미관계의 근본문제(1) (12/2)

≪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북미관계의 근본문제(2) (12/3)

조선중앙통신

(12/5)

 

 

백남순외무상 국제원자력기구 결의 ≪접수할수 없다≫고 표명

범민련 북측본부 특별총회 반미애국투쟁에 떨쳐 나설 것을 호소

민족공조 강화하여 미국의 ≪국제적협력≫을 짓부셔 버릴 것이다

일제의 극악한 조선인강제연행제도의 범죄성(4)

오늘의 주요기사

 

 

 

 

 

 

 

 

이 후보 심각한 냉전 사고, 대미 추종 (통일뉴스, 12/5)

이회창 후보, 두 여중생 이름도 제대로 몰라 (유뉴스, 12/5)

민주노총, 소파개정 촉구 활동계획 밝혀 (통일뉴스, 12/5)

UN본부, 방미대표단의 서한전달 거부 (민중의소리, 12/4)

SBS ≪손숙…≫7일 ≪SOFA 개정≫ 특별방송 (프레시안, 12/5)

사이버 시위, 미제 불매운동 등 항의 확산 (프레시안, 12/5)

동숭홀 울려퍼진 ≪미친 탱크 떠나라≫ (오마이뉴스, 12/5)

한나라ㆍ민주 불합격, 민노당 합격 (프레시안, 12/5)

시민안전 무시한 전철연장운행계획 중단해야 (민중의소리, 12/4)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라!

  조미기본합의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장본인이 상대방에 대고 합의문 위반을 운운하고 있다. 미국이 조선에게 하는 행동이다.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다.

  2003년 경수로 제공, 정치 및 경제 관계 정상화, 핵무기 핵위협 중지 담보 제공, 미국이 약속한 것 중 무엇이 이루어졌는가. 경수로부지의 빈 구뎅이, ≪악의 축≫ 폭언, 미국의 핵선제공격계획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런 주제에 조미합의문을 입에 담는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미국은 할 말이 없다.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애당초 미국의 적대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며, 조미합의문을 깬 장본인도 미국이다. 조선이 핵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을 가지고 있어도 미국은 할 말이 없다.

  이런 판국에 ≪선핵포기 후대화≫라니, 뻔뻔함과 무모함의 극치다. 사리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해서 갈수록 궁지에 몰리는 측은 미국일 것이다. 조-미불가침조약을 체결하라. 해법은 그것밖에 없다.

미국의 ≪대북 핵 선제공격 포기≫를 촉구
    (민주노동당, 10/22)

이회창, DJ, 권영길의 차이 보여준
    북핵간담회 (민중의소리, 10/23)

조미사이의 불가침조약체결이
    핵문제해결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도
   -조선외무성대변인 (조선중앙통신, 10/25)

이북의 외무성 대변인 담화가 발표된 것과
    관련해 (구국의소리, 10/27)

온 민족이 애국의 선군정치를 옹호하자
   -조평통대변인담화 (조선중앙통신 10/29)

≪한국민족민주전선≫ 대변인 성명
    (구국의소리, 10/30)

 

선군옹호는 애국과 매국을 가르는 시금석
    (조선중앙통신, 11/1)

조선외무성 대변인, 미국의 ≪선핵포기,
    후대화≫주장 배격 (조선중앙통신, 11/2)

평화단체들, 북핵 관련 긴급 토론회 개최
    (통일뉴스, 11/2)

애국의 선군정치를 왜 옹호해야 하는가
    (구국의소리, 11/3)

통일연대, 제네바합의 파기 미국규탄
    기자회견 (통일뉴스, 11/8)

전국민에게 보내는 격문 
    (구국의소리, 11/12)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호소문
    (조선중앙통신, 11/25)

오늘의 질문 1 (12/06)

오늘의 질문 2 (12/06-회원용)

오늘 미중앙정보국≪한국≫지부의 대선공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어제의 문답 (12/05) 찾아가기

                             (11/29-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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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국전선 (12/1)

  조선중앙통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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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혁명화

≪세기와 더불어≫ 제2권 4장 7절

오태희노인네 집안은 보기 드문 대가정이었다. 노인네 네 형제는 원래 함경북도 온성군 고작골이라는데서 살다가 1914년경에 왕청땅에 이사하였다. 그 네 형제의 자손들을 모두 합치면 수십 명이 되는데 그들이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왕청과 온성땅에 쭉 널려살면서 혁명사업을 하였다. 그 당시 오중화는 왕청5구 당비서로 사업하였고 오중흡은 왕청현 춘화향 원가점에서 공청사업을 하고 있었다. 오중화의 동생인 오중성은 왕청현 석현에서 공청활동을 하다가 1929년초에 온성군 풍리동으로 이사하여 보문학당 교원을 간판을 가지고 혁명사업을 하고 있었다.

오중화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화룡에 있는 사립화성학교 교원을 하였다.

나는 그때 석현에 가서 오중화동무에게 대중을 혁명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혁명가가 되고 다음에는 가족들과 마을사람들을 혁명화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오중화는 그 후 가정혁명화를 잘하였다. 그의 가까운 형제들과 친척들 가운데서 10여 명이 충실한 혁명가로 활동하다가 희생되었다. 그 가운데서 오중화, 오중성, 오중흡과 같은 훌륭한 공산주의자들이 배출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조선식 사회주의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김정일위원장연구3≫(주체91, 백두산편집부)

네팔자력갱생연구회 위원장 쑤바쉬 까지 쉬레스타는 조선민중은 불굴의 의지와 강의한 신념을 지닌 혁명적 민중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난 시기에도 그러하였지만 조선민중은 그처럼 간고하였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세계적인 위대한 성과들을 연이어 이룩하였다.

최근 몇년동안 조선이 겪은 시련과 난관들은 실로 엄혹한 것이었다.

연이은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난관도 그러하였지만 제국주의자들의 정치군사적 압력과 봉쇄책동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끈질기고 악랄하였다.

조선민중은 모든 것이 부족한속에서도 난관앞에 주저하거나 동요한 것이 아니라 필승의 신심 드높이 웃음으로 모진 시련을 맞받아 뚫고 나갔다.

위대한 영도자, 위대한 당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 한치의 드팀도 없이 자기가 선택한 사회주의의 한길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것은 위대한 주체사상을 구현한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참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의 현실은 위대한 영도자의 영도가 있고 시대를 선도하는 위대한 사상을 가진 민중에게는 극복 못할 난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세계앞에 뚜렷이 실증해 주고 있다.

조선에서 이룩되고 있는 위대한 성과들은 자주성을 지향하는 세계 진보적 민중들에게 커다란 힘과 용기를 안겨 주고 있으며 위대한 주체사상의 승리, 인류의 이상인 사회주의의 승리를 확신케 하여 준다.

우리 네팔청년들은 주체사상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풍부화시켜 나가는 김정일위원장님을 열렬히 흠모하고 있다.

그의 현명한 영도가 있고 그의 두리에 일심단결된 민중이 있기에 조선식 사회주의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미국의 핵소동과 노농대중의 자세

91/12/04 ≪구국의 소리≫ 노동자 농어민 시간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 성공적으로 이행되어 나가는 속에 오늘 ≪한≫반도에서는 조국통일의 밝은 전망을 내다보게 하는 감격적인 사변들이 연일 펼쳐지고 있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열기가 날로 높아가는 현실을 보며 온 겨레는 이 감격, 이 환희가 통일로 이어지기를 바라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겨레의 이같은 지향과 염원은 미국의 대북강경압살책동으로 하여 엄중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에 있은 미국대통령 특사의 방북을 계기로 부시행정부의 대북적대시정책은 극도에 달하고 있다.

원래 북이 미대통령 특사를 받아들인 건 새 세기의 요구에 걸맞게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털어버리고 평등한 입장에서 현안문제들을 풀어나가려는데서였다. 그러나 미국특사는 아무런 근거자료도 없이 북의 핵문제를 걸고 들면서 그것을 중단하지 않으면 북미대화도 없고 북일관계나 남북관계도 파국상태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일방적이고도 오만무례한 폭언을 늘어놓았다. 이것으로 하여 미국특사는 방북의 진의가 북을 힘으로 압살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지역에서의 긍정적인 정세발전을 역전시키고 새로운 핵전쟁의 구실을 마련하는데 있었음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날로 무모해지는 미국의 대북핵소동으로 하여 오늘 ≪한≫반도에는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서도 전쟁의 불집이 터질 수 있는 극히 위험한 긴장상태가 조성되고 있다. 이같은 정세하에서 이북은 북미불가침조약체결제안을 내놓았다. 북이 내놓은 북미불가침조약체결제안이야말로 오늘의 긴장상태를 타개하고 ≪한≫반도에 산생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도 현실적인 방도이다.

오늘 뿐 아니라 지난 반세기이상이나 항시적인 폭발위험을 안고 있는 ≪한≫반도이다. 그것은 미국이 이 땅에 대한 영구강점을 정책화하고 북침핵전쟁연습을 계단식으로 확대하여 온데 기인된다. 이런 여건에서 이북이 선군의 기치를 치켜든 것은 미국의 강경압살정책에 대처하여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가장 정당한 조치이다. 자기의 존엄을 건드리는 자들과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결판을 내려는 이북민들의 결사의 각오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미국이 일방적인 핵소동에 매어달린다면 사태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며 북미간의 관계를 무장충돌에로 이끌어가는 악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이다. 날로 무모하게 강행되는 미국의 대북핵소동을 분쇄하는데 민족자주통일의 활로가 있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지역,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담보가 있다.

미국의 대북강경책동으로 ≪한≫반도의 정세가 날로 첨예화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이 땅의 노농대중으로 하여금 민족의 운명을 걸머쥔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미국의 대북핵소동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전개해 나갈 것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언제나 자주, 민주, 통일투쟁의 주력군으로, 그 앞장에서 모든 대중운동을 이끌어온 노농대중은 반미자주화투쟁의 기치를 더욱 높이 치켜들고 미국의 대북핵소동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정의의 반미성전에 용약 분기해 나섬으로써 시대와 민족이 부여한 중대한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노농대중은 지금 미국이 벌이고 있는 대북핵소동의 저의와 해독성을 똑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핵소동은 핵전쟁의 신호탄이다. 대북강경압살의 도수를 더욱 높여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운동을 차단하고 ≪한≫반도의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켜 북침야망을 실현해보려는데 미국이 벌이는 대북핵소동의 저의가 있다. 미국의 대북핵소동이 극한점에 이르러 열핵전쟁으로 번져지는 경우 우리 민족은 공멸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터지면 남과 북이 따로 없다. 이 민족적 재난을 막기 위해서도 노농대중 모두가 미국의 대북핵소동분쇄와 북미불가침조약체결을 위한 투쟁에 결사분기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지금 벌이고 있는 여중생살인범에 대한 미군법정 무죄판결취소와 범죄자처형, 그리고 강도적인 ≪한≫미행정협정파기투쟁을 비롯한 반미투쟁을 더욱 과감히 벌여나가야 한다. 주≪한≫미군은 이 땅에서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이며 핵전쟁의 온상이다. 주≪한≫미군을 그대로 두고서는 우리 민중이 어느 하루도 편안할 수 없고 핵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농대중은 미국의 핵소동반대, 여중생살해사건진상규명투쟁을 비롯한 모든 반미투쟁을 주≪한≫미군철수투쟁에로 지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노농대중은 미국의 북침핵전쟁머슴꾼인 이회창을 비롯한 극우반통일보수세력의 사대매국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 줄기차게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을 비롯한 극우보수세력은 미국의 지지밑에 저들 후보의 당선을 조작하기 위해 미국의 뒤에 줄서기를 하면서 동족모해와 반북대결에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도발구실을 얻기 위해 내돌리는 미국의 궤변에 맞장구를 치면서 민족적 불화만을 조장하는 극우보수세력들의 책동은 온 민족을 외세의 핵전쟁희생물로 내맡기려는 민족반역행위의 극치로써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이 긴장한 정세하에서 극우반통일세력과 같이 ≪한≫미공조나 부르짖고 반북대결이나 고취해나선다면 ≪한≫반도에 핵전쟁을 불러오고 민족공멸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 6.15공동선언의 성공적인 이행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민족반역세력들에게 역사의 준엄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단결은 투쟁에서 보다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고 승리의 결정적 담보이다. 지난 11월 5일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미국의 오만무례한 핵소동과 관련해서 시국호소문을 발표했다. 호소문에서 실천연대는 각계 애국민중이 ≪한≫반도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비상대책기구를 시급히 구성하고 국민역량을 총동원하여 반미반전평화운동을 힘있게 벌이자고 호소했다. 이것은 노농대중을 선두로 전국민의 일치단결로 이 땅에서 반미성전의 새지평을 열어나갈 밝은 전망을 예언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주력군인 노농대중은 상호간 단결을 더욱 공고히 하는 한편 미국의 핵소동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서 각계층 운동단체들과의 연대연합을 보다 강고히 해나가야 한다.

우리 노농대중이 민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반미반이회창투쟁에 적극 분기해 나설 때 민족자주통일의 앞길에는 보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우리 노농대중이 앞장에 서서 날로 악랄해지는 미국의 핵소동을 단호히 분쇄해 버려야 할겁니다.

 

≪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북미관계의 근본문제(1)

91/12/02 ≪구국의 소리≫ 오늘의 연단

이 시간 끝으로 통일학연구소 소장 한호석씨의 글, ≪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북미관계의 근본문제≫를 임기수씨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분입니다.

1993년 3월 10일 북은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를 앞세워 강요하고 있었던 이른바 ≪북 핵사찰≫을 거부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3월 12일 오전 10시 50분 북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하였다.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한다는 폭탄선언은 그 어떤 나라도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전격적이고 대담한 정치공세였다.

당시 미국 정부와 워싱턴 정치권에서 핵확산금지체제를 강타한 북의 정치공세를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은 북의 초강경 정치공세 앞에서 대경실색하였다. 북은 미국의 허를 찔렀고, 북의 기습공세를 받은 미국은 비명을 질렀다.

놀랍게도, 북의 공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북은 1993년 5월 29일에 사거리 500킬로미터의 준중거리 미사일 1기를 일본의 노도반도 앞바다로 시험발사하였고, 30일에는 사거리 3000킬로미터의 2단형 중거리 미사일 2기를 괌 앞바다와 하와이 앞바다로 각각 시험발사하였다. 이것은 북이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군사전략거점들인 일본 열도, 하와이, 알래스카, 괌,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들을 모조리 미사일 공격 사정권에 두고 있음을 실증한 것이었다.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무력시위였다. 북은 정치공세와 무력시위를 동시에 전개하면서 미국을 전면적으로 압박해 들어갔다.

북의 영변 핵시설에 대하여 이른바 ≪특별사찰≫을 실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만일 특별사찰을 거부하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던 클린턴정부는 북의 강력한 정치공세와 무력시위를 당해내지 못하고 불과 몇 일 뒤에 기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1993년 6월 2일부터 11일까지 뉴욕에서 개최되었던 역사적인 북미정치협상은 북의 전술적 승리와 미국의 전술적 패배를 보여준 사변이었다.

그 정치협상에서 북은 북미관계를 개선하는 원칙을 천명하였고, 곤경에 몰린 미국은 어쩔 수 없이 그 원칙을 수용,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6월 11일 뉴욕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공동성명이 채택, 발표되었다.

1993년의 북미공동성명이 북미관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그 공동성명에서 처음으로 북미 관계개선의 원칙이 천명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북미관계를 개선하는 원칙을 제시하여 역사적 문서를 채택하였던 전술적 승리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이 짤막한 세 개의 문장으로 기록되었다.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무력으로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한다. 전면적인 담보적용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며 상대방의 자주권을 호상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조선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

위의 문장에는 네 가지 원칙이 비껴있다. 그것을 다시 정리하면, 적대정책 포기의 원칙,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원칙, 자주권 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원칙,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원칙이다.

이 네 가지 원칙 가운데 북미 두 나라가 합의하여 공동성명에 포함시킨 공동의 원칙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원칙이다. 나머지 3개의 원칙은 형식상 북미 두 나라가 합의한 원칙처럼 보이지만, 미국이 내심 반대하였고 지금까지도 반대하고 있으므로, 쌍방이 합의한 원칙이 아니라 북이 일방적으로 관철하려고 제시한 원칙인 것이다. 당시에 미국은 내심 반대하였으면서도, 강력한 정치공세와 무력시위로 미국을 압박하였던 북의 요구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기에 합의하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에 1993년의 북미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적대정책 포기의 원칙, 자주권 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원칙,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원칙은 북의 일방적인 정치적 요구를 그대로 공동성명에 포함시킨 원칙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3대 원칙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미국에게 제시한 북미 관계개선의 원칙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1993년에 북미공동성명을 채택한 이후 지금까지 북은 시종일관 그 원칙을 실현하기 위하여 북미정치협상을 추진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4년 8월에 제네바에서 채택된 북미합의성명, 같은 해 10월에 제네바에서 채택된 북미기본합의문, 그리고 2000년 10월에 워싱턴에서 채택된 북미공동성명은 모두 김정일국방위원장이 1993년의 북미공동성명에서 천명한 북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북의 대미전략의 성과였다.

부시 정부가 등장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2002년 10월의 북미정치협상에는 대통령 특사 제임스 켈리가 파견되었는데, 그의 상대역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뉴욕에서 열린 북미정치협상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북미관계개선 3대 원칙을 미국에 제시하여 북미공동성명을 채택하게 하였던 바로 그 사람, 그리고 이듬해 1994년 10월에 북미기본합의문에 서명하였던 바로 그 사람 강석주 제1부상이었다. 이 사실은 북이 북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변함없이 견지하면서 추구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언론들과 분석가들은 북이 1993년의 북미공동성명에서 천명한 북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국과의 정치협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북이 경제재건에 요구되는 물질적 보상을 얻어내기 위해서 핵무기개발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으며, 핵무기 개발이라는 협상수단을 이용하여 미국과의 정치협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의 모든 언론들과 분석가들은 북이 북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는 목적도 순전히 북의 경제재건에 요구되는 물질적 보상을 얻어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북이 ≪달러≫를 얻어내기 위해서 미국에게 맞서서 그토록 치열하게 정치, 군사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보는 견해는 ≪한≫반도의 정치, 군사적 근본문제를 ≪달러≫획득의 문제로 바꿔치려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오해다. 물론 북미관계와 북일관계에서 경제지원 또는 경제협력이라는 표현으로 제기되고 있는 물질적 보상문제가 배제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미관계와 북일관계의 핵심문제는 경제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치, 군사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북미 관계개선 3대 원칙에는 물질적 보상문제가 들어있지 않다. 북의 대미협상전략은 물질적 보상을 얻어내려는 목적이 아니라 ≪한≫반도의 정치, 군사적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에 집중되어 있다. 북은 오로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북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국과의 ≪총포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북미관계의 근본문제(2)

91/12/03 ≪구국의 소리≫ 오늘의 연단

이 시간 끝으로 통일학연구소 소장 한호석씨의 글, ≪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북미관계의 근본문제≫를 임기수씨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그 두번째분입니다.

부시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월 스트리트 저널≫ 2002년 10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이 농축우라늄을 만드는데 쓰이는 물품을 제3국으로부터 사들였다는 ≪정보≫를 부시정부가 파악한 시점은 2002년 7월이었다고 한다. 부시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8일자도 미국이 지난 여름에 북이 농축우라늄을 제조하는데 쓰이는 물품을 구입했다는 ≪정보≫를 확인하였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30일 브루나이에서 북의 백남순외무상과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의 회동이 이루어진 직후에, 부시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북이 비밀스럽게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정부 소식통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은 2002년 9월말, 그러니까 제임스 켈리가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에 북의 농축우라늄 핵무기개발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뒤늦게나마 ≪한국≫정부당국에 제공하였다고 한다.

지난 10월 16일에 발표한 미 국무부의 성명은 그 문제를 언급한 대목에서 북이 ≪핵무기 개발에 요구되는 우라늄을 농축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최근 입수했다.≫고 표현하였다.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북이 농축우라늄 관련물품을 제3국에서 반입했다는 부시정부의 주장은 날조다. 농축우라늄을 제조할 목적이 아니라 일반적인 산업용으로 반입한 물품에 대해서 ≪핵의혹≫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부시정부가 2002년 7월에 북이 농축우라늄 관련물들을 반입하였다는 ≪정보≫를 파악하였다고 하면서도 이 사실을 즉각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10월 26일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에서 이루어진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이후에 북이 농축우라늄 제조를 북미정치협상에서 시인했다는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미국 언론에 그 ≪정보≫가 미리 새어나가는 바람에 10월 16일에 앞당겨 공개하였다고 한다. 미국은 그날 낮에 발표하지 못하고 일과시간이 끝난 저녁에 서둘러 발표하였다. 백악관이 국무부보다 한 발 앞서서 발표하였다.

아래에서 논하겠지만, 북미정치협상에서 북이 농축우라늄 제조를 시인했다는 부시정부의 주장도 북이 농축우라늄 관련물품을 반입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북의 협상대표자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왜곡이다.

부시정부가 북이 농축우라늄을 만드는데 쓰이는 물품을 사들였다는 ≪정보≫를 지난 7월 이후 두 달 동안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북이 농축우라늄을 만드는데 쓰이는 물품을 사들였다는 ≪정보≫를 북미정치협상에서 시인하였다는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미국 언론에 새어나가자 서둘러 공개하였던 까닭은 무엇인가? 선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부시정부는 등장 이후 처음으로 북과의 정치협상에 나설 때, 북이 강력한 정치공세로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무척 긴장하였다. 부시정부는 북의 정치공세에 맞설 수 있는 대항수단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그들의 머리 속에서 정치협상의 대항수단으로 고안해낸 것이 바로 농축우라늄 제조에 관한 ≪정보≫였던 것이다. 부시정부가 그러한 정치협상의 대항수단을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외부에 공개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의 농축우라늄 제조에 관한 ≪정보≫를 2002년 7월에 처음으로 파악했을까? 그렇지 않다. 미국이 북의 농축우라늄 제조에 관한 ≪정보≫를 처음으로 파악했다는 시점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보≫파악의 시점에 관한 내외 언론의 보도내용을 종합해보면,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이 북의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의혹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 시점은 1999년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파키스탄이 농축우라늄 핵무기로 폭발실험에 성공하였을 때, 미국 연방정부 산하 동력자원부가 북도 앞으로 6년 안에(다시 말해서 2004년 안에)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때는 1998년이었다. 미국 연방의회 하원의원 의장 벤저민 길먼이 뉴욕에 있는 아시아협회에서 연설하면서 북이 농축우라늄 핵무기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던 때는 1999년 10월이었다. 지난 10월 20일 미국의 씨엔엔티브이방송에 출연하였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단편적인 정보는 그 이전부터 있었지만 1999년에 이르러서는 북이 적극적으로 핵무기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올해 여름에는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정세현통일부 장관은 10월 17일 국회에서 제임스 켈리차관보는 수년 전부터 북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0월 21일 ≪한국≫ 국방부 대변인은 ≪북이 농축우라늄 관련 장비를 외국에서 도입하려고 시도한다는 첩보를 정부가 지난 99년에 입수, 미국에 제공했다. 이준국방장관도 지난 18일 국회 국방위에서 이 사실을 비공개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북이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파악했다고 주장하는 1999년은 클린턴정부 시기다. 이것은 미국이 북의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관한 ≪정보≫를 3년 동안 의도적으로 덮어두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1999년부터 최근까지 약 3년 동안에 걸쳐 북이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정보≫를 파악하였다고 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미국은 1999년에 북의 ≪핵의혹≫이 제기되었다고 하면서도 왜 ≪페리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워싱턴에서 북미공동성명을 채택하였으며, 클린턴의 방북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하였을까? 그리고 그 ≪정보≫를 왜 3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공개하면서 북의 ≪핵의혹≫을 유포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이 북의 ≪핵의혹≫을 제기, 유포하고 있는 행위의 이면에는 자기의 정치적 목적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은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밝혀내기 위한 목적에서 북의 ≪핵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북이 비밀스럽게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제3자가 확인할 수 없는 ≪극비정보≫를 ≪핵의혹≫이라는 이름으로 날조하여 국제사회에 유포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문답

91/12/05 청년문답

다음의 유명한 대목이 나오는 소설의 제목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는≫하고 다시 말씀을 이으시는 김정일동지의 어조는 더욱 준열해졌고 그이의 손세에서도 힘찬 박력이 두드러졌다. ≪우리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가입한 것이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항시적인 핵위협을 제거하려는 것이었지 결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대국들의 희생물로 내맡기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따라서 미국과 그에 추종한 국제반동들이 핵압력소동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할 경우 그에 대응한 강력한 자위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한두번만 말해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이 핵문제를 구실로 기어이 우리를 압살해보려고 하는 이상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계속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이라는 울타리안에 박혀 단련을 받고 있겠습니까.≫ ≪음-≫ 수령님께서 조용히 물으시었다. ≪그러니 김정일동지의 생각은?≫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엄숙하게 말씀하시었다. ≪저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자는 것입니다!≫ 한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어버린듯 하였다. 거대한 폭발의 굉음이 방금 귓전에서 터진 것처럼 모두가 숨을 죽였다. 당과 국가, 군대의 책임적 위치에서 사업하고있는 정치국위원들이었지만 세찬 충격에, 말로는 다 표현할 길 없는 격동과 흥분에 온몸이 뒤흔들린 듯 하였다. 특히 핵대결전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문선규의 흥분은 절정에 달했다.≫

 

정답 : 역사의 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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