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통일혁명의 영도자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제109호          주체91(2002)년 9월 26일(목)                                                                                 백두산편집부

제힘으로 사는 사람은 흥하고 남의 힘으로 사는 사람은 망한다

질문쪽지

대양을 날아 넘은 공개전파

구국의 소리

 

주≪한≫미군 범죄 기소율, 일반 형사사건에 비해 크게 낮아 (9/24)

9월총파업, 오늘에 다시 본다 (9/23-24)

조선중앙통신

(9/24)

 

 

 

 

신의주특별행정구 장관을 임명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 진행 [ 오전 | 오후 ]

북, 남, 해외 청년학생통일대회, 북남녀성통일대회 10월 중순에 진행
    [ 오전 | 오후 ]

아시아경기대회 공동입장은 민족사의 일대사변, 공동의 경사
    [ 오전 | 오후 ]

오늘의 주요기사

 

 

 

 

 

 

신의주 특별행정구 정령발표, 기본법 채택 (조선신보, 9/25)

금강산에서 통일연고제 열려 (통일뉴스, 9/25)

북 만경봉호 부산어선 100척이 환영 (연합뉴스, 9/25)

유족들, 고 박승주씨 사망 진상규명 촉구 (민중의소리, 9/25)

87년 KAL기 사건 재조사 국회청원 (오마이뉴스, 9/25)

차세대구축함 사업 국민감사 청구 (통일뉴스, 9/25)

≪조선일보≫, 희생자 두번 죽이지 말라 (오마이뉴스, 9/26)

살인군단, 나가라!

  두 어린 목숨도 모자랐던가. 그들이 짧은 생을 마감한 그 자리에서 4킬로미터, 그곳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 숨을 거두었다.
   똑 같은 미군, 바로 그 부대. 이제 누구나 안다. 그들에게 반성은 없다. 지하철에서 시민에게 주먹질하고, 트레일러로 한 가정의 가장을 깔아뭉개 죽이는, 그들에게 반성은 없다.
   이제 누구나 안다. 우리 목숨을 애완견 목숨보다 못하게 보는 그들은 침략자, 살인마, 점령군이다. 당장 쫓아내야 할 우리의 철천지 원수이다.

미군 훈련차량에 또다시 시민 사망
   (프레시안, 9/17)

미군 트레일러 사고는 예정된 사고
   (통일뉴스, 9/18)

박승주씨 사망사고 새로운 물증 제시
   (통일뉴스, 9/18)

경찰 영안실 강제진입 박승주씨 혈액채취
   (민중의소리, 9/18)

동영상 - 고 박승주씨 사고 현장
   (통일뉴스, 9/18)

동영상 - 고 박승주씨 사고 증언
   (통일뉴스, 9/21)

고 박승주씨 사망사건의 진실(1) 
   (자통협, 9/21)

고 박승주씨 사망사건의 진실(2) 
   (자통협, 9/21)

어제의 문답

우경기회주의(투항주의) (9/25)

오늘의 질문 1

 

 

독점가격은 독점적 고율이윤의 원천 중 하나이다. 그러면 다른 원천에는 무엇이 있는지 3개 이상 열거하고 가장 큰 원천은 무엇인지 답하라. (9/26)

                             (9/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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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국전선 (9/21)

  조선중앙통신 (9/24)
  
[ 오전 | 오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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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쪽지

≪세기와 더불어≫ 제1권 3장 6절

나는 강연을 듣다못해 더 참지 못하고 안창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종이에 써서 들이대였다.

- 산업과 교육을 진흥시켜 조선민족의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라를 일제놈들에게 통채로 배앗긴 조건에서 그것이 이루어질수 있는가?
   - 우리 민족을 정신수양이 낮은 민족이라고 했는데 어떤점이 그러한가?
   - 연사가 말하는 렬강이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들인데 과연 우리가 그들을 본받아야 하는가? 또 우리가 그들의 ≪원조≫에 의해서 독립을 가져올수 있는가?

질문쪽지는 앞에 앉은 학생들과 사회자를 거쳐 안창호에게 전달되었다. 반발심에 못이겨 단호하게 서면질문을 들이대기는 하였으나 막상 사회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학생들이 앉아있는쪽을 주시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사실 그때의 내 심정은 복잡하였다. 그 질문때문에 강연중에 있는 연사가 불쾌한 자극을 받게 된다면 안창호를 숭배하고 있은 독립운동자들과 수백명의 청중들에게 큰 실망을 주게 되지 않을가 하는 우려도 생기였다. 안창호의 강연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되면 그의 강연을 위해 남다른 성의를 보인 오동진도 서면질문의 장본인인 나를 고깝게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결과는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안창호에게 서면질문을 들이댄것은 그가 우리의 질문을 받고 잠간만이라도 자기의 주장을 검토하여 민족의 자존심과 자주정신에 배치되는 유해로운 사상을 그 이상 더 먹이지 말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독립운동의 대선배로 존경받는 안창호에게서 그가 청중에게 채 말하지 않은 독립운동의 새로운 지침이나 방략을 듣고싶은 욕망을 억누를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태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크게 번지였다.  
   안창호는 쪽지의 글을 한참동안 내려다보고나서 사회자에게 무엇인가 몇마디 물었다. 후날 손정도에게서 말을 들으니 그날 안창호는 사회자에게 질문쪽지에 김성주라는 서명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아는가고 물었다고 한다.
   그처럼 도도한 기상을 가지고 장내를 쥐락펴락하던 안창호의 연설이 그만 김이 빠져버리었다. 안창호는 조금전까지 일사천리로 펼쳐나가던 강연을 성급하게 마무리짓고 연탁앞에서 황황히 물러섰다.
   연사는 매우 심각하게 질문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좀 자극이나 받으라고 그런 질문을 했는데 안창호자신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강연을 중도에서 스스로 포기해 버린 것이었다.
   실망한 청중은 도산선생이 왜 갑자기 저렇게 주접이 드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출입문쪽으로 밀려나갔다.

 

대양을 날아 넘은 공개전파

김정일위원장연구2≫(주체91, 백두청년회)

아프리카의 어느 신생독립국가에 가고 있던 대형무역선 ≪혁신≫호에서 갑자기 두 명의 위급한 환자가 발생했다는 급한 무전을 보내왔다. 때는 바로 1974년 12월 어느 날 새벽이었다.
   ≪혁신≫호에서 보내온 전문을 받은 해당 부문 일군들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긴급 수술이 요구되는 병이었는데 흔들리는 배우에서는 도저히 수술할 수가 없었고 또 의사역량도 그럴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보통 상식으로는 환자들의 운명이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른 새벽에 가까워오도록 집무실에서 일을 보던 김정일위원장은 해운부문의 항보를 통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국으로부터 멀고먼 인도양 한복판의 선원들을 그려보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위원장은 한 일군에게 주석님께서 아끼시는 선원들을 살려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생명을 의탁하고 바다에 나간 동무들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살려내야 하겠습니다 라고 결연히 지적하였다.
   위원장은 하여야 할 많은 일들을 뒤로 미루고 두 선원을 구원하기 위한 작전을 직접 지휘하였다.
   환자를 구원하는 길은 그들의 생명을 연장하면서 빠른 시간 안에 배를 어느 항구에 입항시켜 대책을 취하는 것인데 ≪혁신≫호가 빨리 가 닿을 수 있는 항구는 스리랑카의 콜롬보나 인디아의 마드라스항이었다.
   그런데 배에서는 마드라스가 콜롬보보다 가깝기는 하지만 배가 가는 방향이 아니므로 거기에 들리면 항행기일이 늦어지고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콜롬보로 가기로 결심했다고 알려왔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위원장은 단호한 음성으로 환자들의 생명은 시간을 다툽니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마드라스로 정합시다, 이럴 때 우리 당이 잠 잘 수 없고 국가와 재외대표부가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다 떨쳐나섭시다, 곧 ≪혁신≫호에 항로를 바꾸라고 무전을 치시오, 변신 없이 받아 볼 수 있도록 공개전파를 날리시오 라고 지시하였다.
   위원장이 취한 조치에 따라 조국으로부터 인도양, 지구의 광대한 공간을 포괄하는 지역에서 두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공개전파가 날아갔다.
   ≪즉시 항로를 바꾸고 인디아의 마드라스를 향하여 전속으로 항행할 것!≫
   마드라스까지는 이틀길이었다. 그 이틀간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조국 땅에 꾸려진 강력한 의료집단은 시간마다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 받고 무전지시로 그에 맞는 처방을 ≪혁신≫호의 의사에게 알렸다.
   역사에 없는 내용의 무전문이 대양을 건너오고 갔다.
   환자의 열, 맥박, 방의 온 습도, 쓰고 있는 약명들이 조국에 보고되면 즉시로 그에 맞는 치료대책이 무전으로 지시되군 하였다.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해당 부문에서는 인도양으로 날아갈 수 있는 비행기를 대기시켜 놓고 인디아주재 조선대사관에는 배가 마드라스항에 입항할 수속과 도착하면 즉시 치료대책을 세울 데 대한 지시가 날아갔다.
   드디어 ≪혁신≫호는 무사히 마드라스항에 입항하였다.
   선원들은 대사관원들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었다.
   환자들은 곧 병원으로 실려갔고 긴급 수술을 받았다.
   생명의 위험은 사라졌다. 두 선원은 소생의 길에 들어섰다. 배는 다시 자기의 항로를 따라 유유히 떠나갔고 환자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그후 완쾌되어 조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들이 조국으로 떠나던 날 100리가 넘는 공항까지 따라나온 인디아의 한 의사는 감동에 넘쳐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사랑의 오아시스인 조선에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주≪한≫미군 범죄 기소율, 일반 형사사건에 비해 크게 낮아

91/09/24 ≪구국의 소리≫ 화제의 초점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23일 서울 고등검찰청과 지방검찰청에 대한 국회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지난 30개월동안 주≪한≫미군범죄 1020건 가운데 62건만 기소돼 기소율이 6%에 그쳤습니다. 이것은 불공정하게 체결된 ≪한≫미행정협정과 미제침략군들의 살인만행을 비호두둔하는 사법당국의 처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최근 며칠동안에 10건의 미군범죄행위가 발생했습니다.

동두천에서는 미군들이 저들끼리 패싸움을 벌이다가 그것을 말리는 택시운전사를 부상시키고 차를 파손시켰고 경기도 평택에서는 미군차량이 주위의 차를 고의적으로 들이받고 그대로 달아났습니다.

대구시에서는 미군 2명이 상점주인을 구타해 상처를 입혔어요.

얼마전에는 전동차안에서 전 국회의원 서경원씨에게 미제침략군 3명이 주먹을 휘둘러 코뼈를 부러뜨리는 악행을 감행했습니다. 또한 지난 18일밤 파주시에서 트레일러를 몰고가던 미군이 승용차를 들이받는 바람에 승용차운전사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죠.

석달이 넘은 오늘까지 미군은 여중생살인만행에 대한 사죄와 보상은커녕 계속 꼬리를 물고 감행하고 있는 미제침략군들의 야만적인 살인폭행사건은 미군사병 한두명의 범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민중을 식민지 ≪열등민≫, ≪들쥐≫로 모독하면서 짐승사냥하듯 닥치는대로 때려 죽이고 쏘아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거기에서 쾌락을 느끼는 오만하고 파렴치한 미국식사고방식, 살인귀적 본성에서 나온 겁니다.

반세기이상이나 이 땅을 강점하고 온갖 폭행, 살인, 강간, 강도행위를 거리낌없이 벌이고 있는 미제침략군들은 모두 처벌을 받아야 하겠으나 처벌은 고사하고 대낮에 술까지 마시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니 비극인들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사태의 근본원인은 결국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때문입니다. 현 ≪한≫미행정협정에는 각종 미군범죄에 대해 미군수사기관과 ≪한국≫경찰이 수사진행과 내용에 대해 **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 제재규정이 없습니다. 또 살인, 강도 등 강력사건에 대해서도 미군측이 입회하지 않는한 용의자에게 심문할 수 없고 심문결과를 증거로 채택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당국은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항변 한마디 못하는 저자세를 펴고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각계 민중이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파기하고 주한미군 철수하라≫는 목소리를 계속 높이고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 국민에게 있어서 첫째도 둘째도 중요한 것은 이 땅을 반세기이상 강점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모두 철수시키는 겁니다. 그것은 미제침략군들을 그대로 두면 어린이,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라 할 것없이 놈들의 횡포무도한 폭행과 살인의 대상으로 될 것이고 우리 민중은 언제가도 고통과 불행,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국민여러분은 미제침략자들이 민족의 존엄과 인권을 유린하면서 감행하는 모든 범죄적 만행들에 대한 천백배의 사죄와 보상을 받아내야 하며 야수적 집단을 이 땅에서 더빨리 몰아내기 위한 반미투쟁의 파고를 더욱 높여야 할겁니다.

감사합니다.

 

9월총파업, 오늘에 다시 본다

91/09/23-24 ≪구국의 소리≫ 노동자 농어민 시간

반미투쟁의 함성이 온 천지를 진감하던 56년전 9월의 그 나날들은 우리 민중의 반미투쟁역사에서 자랑스러운 한 페이지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럼 이번에는 ≪9월총파업, 오늘에 다시 본다≫ 이런 제목으로 김현규씨 말씀드리겠습니다.

9월 15일은 지금으로부터 56년전 철도부문 노동자들을 비롯한 각계각층 민중들이 미군정통치를 반대하고 민주개혁의 실시를 요구해 총파업에 분기했던 역사적인 날입니다.

돌이켜보면 9월총파업은 강도일제를 대신한 미제국주의자들의 비법적인 ≪한국≫강점과 식민지예속화정책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의 폭발이었습니다.

1946년 9월 15일 철도부문 노동자들은 미군정청당국에 쌀배급과 임금인상, 해고감원반대와 민주주의, 노동법령실시 등 6가지 사항을 제기하고 일주일내에 회답해줄 것을 요구해 나섰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청당국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해버리고 총칼탄압으로 대답했습니다. 이에 분격한 철도노동자들은 일제히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9월말 부산철도노동자 7000여명의 투쟁으로부터 개시된 파업에는 경향 각지의 철도노동자 4만여명이 참가했습니다.

철도노동자들은 총파업투쟁위원회를 내오고 투쟁선언서를 발표했습니다.

선언서에서 노동자들은 우리는 ********를 기다리느냐, 아니면 생존을 위하여 싸우느냐를 결정한다. 기아와 폐허의 ****에서 동족을 구출하고 생존과 자유의 길을 열고 조국의 완전한 자유독립을 위하여 최후의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우리는 피투성이의 투쟁을 전개하자고 하면서 각계각층 민중이 이 투쟁에 과감히 호응하고 동참해 나설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에 따라 파업은 삽시에 ≪한국≫전역에 확산되었습니다.

9월 25일에는 출판노조산하 노동자들이 투쟁에 궐기했으며 체신, 식료, 전기, 조선, 해운 등 산업부문들과 학교, 병원, 은행, 심지어 군정청 하부기관 등에까지 투쟁이 파급됐습니다.

그리하여 9월총파업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사무원, 지식인, 학생, 소시민들은 물론 일부 하급관리들과 경관 둥을 비롯해 각계각층 민중이 참가했습니다.

투쟁에 궐기한 각계각층 민중들은 생활안정을 위한 경제적 요구와 함께 이북에서 실시한 것과 같은 제반 민주개혁들을 실시할 것 등의 구호를 들고 집회와 농성, 시위를 격렬히 벌였습니다.

이에 당황한 통치배들은 탱크로 중무장한 수많은 군대와 경찰, 테러단을 동원해 서울철도기관구를 불의에 기습하고 파업농성중이던 이곳 노동자 40여명을 살상하고 1700여명을 체포하는 만행을 자행했습니다.

이러한 미군정청당국의 야만적 파쇼폭거에 분격한 노동자들은 투쟁기세를 더욱 높였습니다. 노동자들은 미제국주의의 ≪한국≫강점과 식민지예속화정책을 반대하는 정치투쟁에로 넘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9월총파업은 마침내 영웅적 10월민중항쟁을 불러오는 직접적인 계기로 되었습니다.

9월총파업은 이 땅을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식민지파쇼통치를 감행하는 미제국주의침략자들과 그에 아부기생하는 주구배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했고 노동자들의 조직력과 단결된 힘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이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사회변혁운동에서 노동자계급의 영도적 역할을 담당, 수행했습니다.

노동자들을 비롯한 각계각층 민중이 참여한 9월총파업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예속화정책을 반대하는 반미구국투쟁이었으며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정당한 투쟁이었습니다.

9월총파업이 있었던 때로부터 벌써 5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그 투쟁의 나날에 피나게 절규하던 노동자들의 요구가 어느 하나도 실현되지 못한 것이 오늘 이 땅의 현실입니다. 이 땅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지배와 예속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그속에서 국민의 민주민권은 고사하고 생존권마저 유린말살당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미국이 강요하는 세계화정책과 그로인한 신자유주의구조조정책동은 우리 민중, 특히 1300만 노동자대중을 헤어날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정리해고로 일터에서 쫓겨난 수많은 실업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고 비정규직만해도 800만명이 넘는다는 이 사실을 통해서도 우리 노동자들의 처지를 잘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은 이 땅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식민지통치가 지속되는한 민족의 자주권과 민주민권, 조국통일을 실현하려는 우리 민중의 염원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의 ≪한국≫강점과 그 식민지통치를 반대해 투쟁하는 것은 56년전 그날에나 오늘에나 우리 노동대중앞에 부과된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노동대중은 마땅히 온 겨레가 겪고 있는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주≪한≫미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에 과감히 나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56년전 그날 미군정의 파쇼폭압중지와 민주주의적 노동법령의 실시를 요구해 총칼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히 싸운 9월총파업 참가자들처럼 한사람같이 분기해 각계 민중과 함께 싸운다면 얼마든지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노동대중은 56년전 9월의 대지를 반미의 불길로 진감시켰던 그 기세, 그 기백으로 반미자주화투쟁의 열풍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려 자주, 민주, 통일의 그날을 하루빨리 안아와야 할 것입니다.

노동대중을 비롯한 각계 민중은 56년전 그날의 그 기세, 그 기백으로 이 땅에서 저주로운 주≪한≫미군을 몰아내는 반미투쟁에 한사람같이 분기해 나서야 할겁니다.

 

우경기회주의(투항주의)

91/09/25 청년문답

아래의 단어들을 통해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사상적 오류는 무엇인가.

프랑스의 내각주의파, 영국의 페이비안협회, 독일의 베른슈타인주의, 러시아의 합법적 맑스주의, 경제주의 / 제2국제당의 ≪조국방위≫ / 마르토프와 멘셰비키 / 진독수의 오류 / 흐루시초프 / 87년 ≪비판적 지지론≫ / 이른바 ≪6.15대선연합론≫

우경기회주의(투항주의)

- ≪우경기회주의의 대표적인 조류로서는 지난 시기에 나타났던 프랑스의 내각주의파, 영국의 페이비안협회, 도이췰란드의 베른슈타인주의, 로씨야의 합법적 맑스주의, 경제주의, 멘쉐위크 등을 들 수 있다.≫(우경기회주의, 정치사전)

- ≪레닌은 제2국제당 수정주의자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노동계급의 혁명적 원칙을 버리고 ≪조국방위≫의 구호밑에 제가끔 자기 나라의 부르주아 편에 붙은 것을 사회주의위업에 대한 변절로 낙인하였다.≫(조국광복회, 세기와 더불어 4권)

- 마르토프는 러시아혁명 당시 대표적인 우경기회주의자. 멘셰비키는 소수파란 러시아어이지만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제2차대회 이래 마르토프파를 지칭(소련공산당사 1권)

- ≪진독수의 오류는 제국주의를 반대한다는 구실밑에 농촌혁명을 반대하면서 부르조아지가 혁명전선에서 떨어져나갈가봐 두려워한데 있다. 그의 투항주의적 노선은 오히려 혁명에 대한 부르조아지들의 배신을 조장시키는 결과를 빚어냈다.≫(상월선생, 세기와 더불어 1권)

- ≪스탈린이 살아있을 때는 쏘련에서 만사가 다 잘돼나갔습니다. 그런데 흐루시초프가 집권한 다음부터 일이 비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쏘련당안에서 현대수정주의가 대두하고 쏘련사람들이 사상적으로 병들기 시작하였습니다.≫(혁명의 뿌리를 가꾸며, 세기와 더불어 8권)

- ≪이러한 결과로 애초 설정을 하였던 ≪비판적≫ 지지론조차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폭적≫ 지지론으로 바뀌어 갔으며 종래는 운동대오가 야당의 선거운동원으로 전락할 위기로까지 몰렸다. 비판적 지지론의 주된 맹점은 운동대오의 분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민중의 분열을 가속화하였다는 점이다.≫(한국전위조직운동사)

- 이른바 ≪6.15대선연합론≫은 2002년판 ≪비판적 지지론≫으로서 민족민주세력의 독자성을 견지할 데 대한 원칙을 위반하고 민족민주세력은 어떤 경우에도 집권세력과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부정한 오늘날의 대표적인 우경기회주의, 우경투항주의이론(이른바 ≪6.15대선연합론≫의 본질과 오류, 통일여명 편집위원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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