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위원장은
통일혁명의 영도자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제88호          주체91(2002)년 9월 5일(목)                                                            백두청년회 산하 백두산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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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인터넷 회고록강좌

김정일위원장의 명언

외모나 겉치장은 화려하지 못해도 사상정신적풍모가 훌륭한 사람이
아름다운 인간이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에서

공청이 한 역할

실화로 본 김정일위원장

58 : 38로 승리


오늘의 새 소식

구국의 소리

그날을 위해 억세게 싸워나가렵니다
    (9/2-3)

분노의 지점에서 (9/2-3)

2년전 환희 오늘에 다시 본다 (9/2-3)

조선중앙통신 (9/3)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참가자들에게 선물 [ 오전 | 오후 ]

통일 이루자면 미군 하루빨리 철수시켜야
    - 조선외무성대변인 [ 오전 | 오후 ]

비전향장기수들, 귀환 2돐을 맞으며
    판문점에서 결의모임 [ 오전 | 오후 ]

미국이 찾아야 할 교훈
    - 노동신문 논평 전문 [ 오전 | 오후 ]

오늘의 주요 기사

한청 탄압 항의 기자회견 열려
    (통일뉴스, 9/4)

남북축구대회, 월드컵 경기장 평화의
    공원서 응원축제 (유뉴스, 9/4)

북녘팀 지원 ≪아리랑응원단≫ 지원쇄도
    (오마이뉴스, 9/4)

≪이승복 사건 유죄 판결 유감≫ 언론개혁
    시민연대 논평 (프레시안, 9/4)

비정규직 철폐 100만인 서명운동 돌입
    (민중의소리, 9/4)

미디어선거의 법제도적 과제 마련 위한
    토론회 열려 (오마이뉴스, 9/3)


백산칼럼

부고


일본총리 이북 방문 보도
(조선중앙통신, 8/30)


동영상을 시작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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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정세 초점

민주노동당, 대선 출항!


  민주노동당 권영길대표가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전국을 돌기 시작했다. 9월 8일 당 후보선출대회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항해가 시작되었다.
  12월 대선을 앞둔 진보운동, 민족민주운동의 최상의 목표는 통일단결이다. 단일진보정당만이 민중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자주적민주정부로 가는 첫 계단이 거기에 있다.
  모두 하나의 함대가 되어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자. 흩어지지도 주저하지도 말고 자기의 항로를 끝까지 가자. 그 항해의 끝에, 우리는 무적의 함대로 거듭날 것이며 그만큼의 기대와 신뢰를 얻을 것이다.

제3당에 걸맞는 명실상부한 진보정당 될터
    (민주노동당, 6/14)

6.13선거 - 진보정당 160만표 시대 열렸다
    (오마이뉴스, 6/17)

현장 - 민주노동당 열성당원 전진대회
    (오마이뉴스, 7/15)

민노당, 6.13여세몰아 제3당 굳히기
    (오마이뉴스, 8/1)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대선출마 선언
    (프레시안, 8/9)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민주노동당, 8/9)

민주노동당 대선 행보 본격화
    (오마이뉴스, 8/19)

학생운동, 단일한 대선입장 위한 토론회
    (유뉴스, 8/21)

인터뷰 -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유뉴스, 8/22)

민주노동당 권영길대표, 대학기자 간담회
    (유뉴스, 8/27)

게시판 -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선출

소개 -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주한미군 여중생 살인사건 대책위


http://www.antimigun.org/


《인터넷 백두산》 메일링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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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이 한 역할

≪세기와 더불어≫ 제1권 3장 3절

공청은 청년들의 조직적 결속을 촉진시키고 핵심을 육성하며 우리 혁명의 주체적 력량을 강화하는데서 눈부신 역할을 하였다. 공청의 창립은 새형의 당조직을 내오기 위한 청년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힘있게 추동하였으며 그 위업을 앞당기는데서 중추적이고 근본적인 역할을 하였다. 1930년 여름에 결성된 첫당조직의 성원들 중 대다수는 공청을 통해 육성된 선봉적인 청년투사들이었다.

 

58 : 38로 승리

김정일위원장연구1≫(주체91, 백두청년회)

48 : 48
   유엔총회 제29차 회의에 제출된 우리측 결의안에 대한 표결수자이다.
   대외부문 일꾼들은 적을 압도적으로 짓눌러버리려던 당초의 전투목표를 달성 못한 것이 참을 수 없이 분하고 아쉬웠다.
   일꾼들은 다음번 30차 총회를 목표로 비장한 각오와 신심을 안고 회의에 대처할 전술적 묘안들을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한 일꾼을 부른 김정일위원장은 오늘 김일성주석께서 안색을 흐리실 때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유엔무대를 중심으로 벌이는 대적투쟁은 우리 혁명의 가장 절박한 과업인 조국통일문제를 놓고 진행되는 매우 심각하고 치열한 정치적 대결입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는 혁명의 전략적 문제를 놓고 적들과 대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대결에서 어떤 전술적인 목적만을 노릴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전략적 의의를 가지는 승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
   그러자면 전술 안에서 우리의 정당한 원칙적 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혀 그것으로 적을 얽어매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광범한 국제적 지지와 동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결국 표결에서도 승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위원장은 전략적 견지에서 적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원칙적 요구가 무엇인가를 밝히면서 김일성주석께서 천명하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데 대한 제안은 미제의 면상을 후려갈기게 될 것이며 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을 준수할 데 대한 제안은 남조선당국의 발목을 얽어맬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위원장은 곧 펜대를 잡더니 직접 문건을 작성해나가며 한 페이지씩 완성되는 족족 타자수들에게 넘겨주었다.
   어느덧 전술안은 그이의 손에서 다 완성되었다.
   일꾼들로부터 문건을 받아보신 김일성주석은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당의 의도가 이제야 제대로 반영되었다고 만족해하였다.
   조선문제에 대한 유엔총회 제30차 회의의 결의안 표결은 장시간에 걸치는 치열한 공방전에서 진행되었다.
   적들은 당치 않게 ≪제3의 결의안≫과 ≪수정안≫을 들고 나와 사태를 역전시키려고 꾀하는 한편 위협과 공갈, 사기협잡으로 지지표를 한 개라도 더 긁어모으려고 책동하였다.
   그러나 통쾌하게도 표결결과를 알리는 대형 전자계산기판에는 우리측의 결정적 승리를 세계에 선언하는 다음의 표결수자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58 : 38!

 

그날을 위해 억세게 싸워나가렵니다

91/09/02-03 ≪구국의 소리≫ 노동자 농어민 시간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인 비전향장기수들이 어버이장군님의 품으로 돌아간지도 2년이 됐는데요. 그분들이 지녔던 고귀한 뜻, 통일애국의 의지는 이 땅에 그대로 맥맥히 살아있습니다. 그럼 이 시간에는 먼저 현대중공업에서 일하시는 강운모씨의 편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통일애국투사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 그간 안녕하십니까.

지금은 산과 들의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일천추로 고대하고 바라마지 않는 조국통일이 가을처럼 성큼 다가왔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난 광복절에 즈음해서 분단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8.15민족통일대회가 성대히 개최되었습니다. 손에 손에 ≪민족자주≫, ≪자주통일≫ 글발이 새겨진 천깃발들과 통일기를 흔들며 대회장으로 들어서는 북녘동포들을 바라보노라니 선생님들의 강인하고 다정하던 모습들이 하나하나 떠올라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북송 당시 이제 평양에 오면 손을 잡고 백두산에도 오르고 평양의 아름다운 거리도 실컷 거닐고 소문난 옥류관의 냉면도 먹게 해주겠다던 김인서선생님과 유운형, 이종환, 김석형, 황용갑, 한백렬, 방재순선생님들.

이재룡선생님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에 안겨 이번에 귀한 딸자식도 보았다지요. 여기 계실때 우리들이 아버님으로 부를라치면 아직도 총각이라고 겸직해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첫딸은 금딸이라는데 선생님의 생녀를 멀리서나마 축하드립니다.

≪축복≫, 위대한 김정일영도자님께서 지어주셨다는 따님의 이름에는 통일된 이 땅의 앞날에 대한 축복도 함께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은혜로운 김정일장군님의 품에 안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복받은 선생님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8.15민족통일대회장으로 들어서는듯 싶었습니다.

2년전 그날 역사에 있어본 적이 없는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어머니조국의 품, 자애로운 어버이품으로 떳떳이 찾아가시던 선생님들의 그 장한 모습. 선생님들의 그 모습은 우리 이남 민중의 심장속에 지워지지 않을 승리자의 모습으로 그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비전향장기수.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이 말은 영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 그리고 조국통일을 철석같은 신념과 의지로 굳힌 선생님들에 대한 강인한 부름으로 되었습니다.

통일의 애국투사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 선생님들이 지녔던 그 신념과 의지는 우리 민중의 가슴속에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오늘 조국통일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민족최대의 과제로 되고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우리 애국민중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자주적 통일을 이룩할데 관한 6.15공동선언을 높이 치켜들고 이 땅에서 미제와 이회창과 같은 반통일분열주의세력의 책동을 철저히 짓부셔버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6.15공동선언이행을 방해하고 있는 외세를 몰아내고 이 땅에 통일된 세상을 기어이 안아오고야 말 것입니다.

선생님들. 통일된 새 세상에서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강하신 몸으로 안녕히 계십시요.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더욱 열심히 싸워나갈 것을 선생님들앞에서 다짐하며 이만 펜을 놓으렵니다.

선생님들 꼭 기다려주십시요.

2002년 8월 서울에서...

 

분노의 지점에서

91/09/02-03 ≪구국의 소리≫ 청년학생들과 함께

미군이 이 땅에 침략과 약탈의 더러운 군화발을 들여놓은지도 어느덧 5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는데요. 정녕 그때부터 오늘까지의 하루하루는 우리 민중의 피와 눈물이 강물처럼 흐르고 불행과 고통이 덮쌓인 슬픔의 나날들이었죠. 하기에 사람들은 미군이 이 땅에 첫발을 내딛은 인천 부둣가를 민중의 원한과 울분이 슴베어있는 분노의 지점으로 여기면서 반미의지를 더욱 굳히고 있습니다. 그 심정을 인천대 강모씨의 글을 들으면서 우리 다시금 새겨봅니다.

선창을 가볍게 두드리며 바닷물길은 끝없이 밀려왔다가는 밀려간다. 애끓는 심장을 찢어발기는 듯 싶은 뱃고동소리를 들으며 인천 부둣가에 서있노라니 곡절많은 민족의 수난사가 검푸른 파도인듯 눈앞에 실려온다.

이 인천항이 외국에 개항된지도 1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장구한 세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흐르는 저 물결을 타고 이 땅에 실려오고 실려갔던가.

원래 이 항의 개항은 이조 봉건정부의 의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아무리 쇄국의 자물쇠를 틀고 아득한 바다 건너의 무역선과 상인들을 받아들이려 하던 봉건사대부들도 서울의 목덜미와도 같은 인천에 개항길을 내올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땅을 병탄하는데서 유리한 지역적 거점의 하나로 인천을 선택한 일본 사무라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항의 개항을 강압적으로 요구했으며 거기에 봉건정부는 굴복하고 말았다고 한다.

결국 인천항은 개항된 그 첫시작부터 외세의 침탈과 사대매국무리들의 민족반역책동으로 눈물과 고통으로 점철된 원한과 분노의 지점으로 민중의 기억속에 각인되었다.

인천항은 개항된 첫순간부터 일본과 **상인들의 이권쟁탈의 한마당으로 화했다. 열강들의 각축전장으로 변해버린 ≪한≫반도는 끝내 일제의 식민지 쇠사슬에 통째로 결박당하는 비극을 겪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제물포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온 이 항구는 특히 57년전 미군의 인천상륙과 함께 민중의 가슴속에 더더욱 아물지 않는 상처를 새겨주었다. 해방자, 원조자의 탈을 쓰고 광복의 환희로 설레이던 이 땅에 침략의 군화발을 들여놓은 미국, 그때부터 다름아닌 그 미군으로 인해 우리 민중은 또 얼마나 뼈아픈 예속민의 굴종을 강요당해야 했던가. 인천항은 어제날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민중의 슬픔과 고통만을 실어오고 실어날라야 했다.

흐르는 물결을 타고 실려온 것은 내정에 간섭하고 훈령하러오는 미국인들과 일본인들, 빚돈을 받으러 오는 채권족속들, 여인네의 육신을 탐내러 오는 호색광들뿐이었다.

그 물결을 따라 실려간 것은 민중의 피땀이 슴베인 군수물과 막대한 양의 자원,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문화유산들이었다.

6.25전란때 미국이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은 우리 민족의 자주권을 유린하고 ≪한≫반도전역을 강점하려는 야망에서 비롯된 극악한 침략행위였다. 그런데도 역대 사대매국무리들은 미국에 아부굴종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을 국민을 위기에서 구원한 상륙작전으로 극구 찬양하고 그 작전을 지휘한 맥아더에 대해서는 민족의 수호자, 영웅으로 떠받들며 그 동상까지 세우는 추태까지 벌이었다.

이 땅에 외국인으로써 세워져 있는 동상은 오직 맥아더의 동상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자인 일본 천황을 살려주고 우리 민족의 역사유물을 약탈해간 일제의 죄행을 눈감아준 극악한 원수, 6.25전쟁시기 자기의 군사적 무능과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원자탄폭격까지 주장해온 살인괴수, 이런 불구대천의 원수를 은인으로 숭배하며 동상까지 세운 것은 민족의 최대수치가 아닐 수 없다.

최근 학계에서 맥아더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활발해지고 각계층 민중들속에서 그의 동상철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한 의지의 발현으로써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녕 인천항이야말로 외세의 침략행위와 사대매국무리들의 반민족적 행위로 얼룩진 치욕의 항구, 눈물의 항구이며 원한과 분노의 지점이다.

저 뱃고동소리, 파도소리 등 들려오는 모든 것이 통곡소리마냥 구슬프게 들려오고 밝은 대낮에도 암운으로 뒤덮인듯 침침하게 느껴지는 인천부둣가다.

과연 흐르는 저 물결위에 행복을 실어오고 기쁨을 실어다줄 그날은 언제일까. 민족비극의 수난사가 비껴있는 인천부둣가에 서면 솟구치는 파도의 설레임소리가 피를 토하는듯한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전하는 이러한 외침을 들을 것이다.

그날은 민중의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미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민족반역세력을 정치무대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날이다. 자주,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이 이 땅에 정착되는 그날 인천항도 행복의 항구, 기쁨의 항구로 될 것이다.

민족비극의 수난사가 비껴있는 인천부둣가를 거닐며 자주, 민주, 통일의지로 가슴 불태우는 강모씨처럼 우리 모두 그 원한과 눈물의 항구를 마음속으로 밟아보며 투쟁열풍을 더욱 세차게 고조시켜나가야 할줄 압니다.

 

2년전 환희 오늘에 다시 본다

91/09/02-03 ≪구국의 소리≫ 비전향장기수 북송 2주년기념 특집방송

박진수 : 신념의 강자들인 비전향장기수선생님들이 북송되던 때가 어제같은데요. 어느덧 벌써 2년 세월이 흘렀군요.

김혜정 : 그래서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나오는거죠. 하지만 지금도 장기수선생님들을 맞던 이북 민중들의 그 뜨거운 환영의 모습은 어제런듯 눈에 선합니다. 그럼 2년전 그날의 환희 오늘에 다시 보기로 하죠. 윤정원씨, 오일씨 자리함께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 일 : 안녕하세요.

윤정원 : 안녕하세요.

김혜정 : 주체89(2000)년 9월 2일 세기와 연대를 넘기며 평범하게 흘러간 이날이 우리 민족사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날로 사람들의 기억속에 길이 남을 줄이야 어찌 꿈엔들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이날이 바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에 떠받들려 이 땅에서 기나긴 감옥살이를 하던 비전향장기수 63명이 휴전선을 넘어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긴 날 아닙니까.

박진수 : 그래서 이 시간에는 2년전 그날에 비전향장기수들을 맞이하던 이북 동포들의 환희에 넘쳤던 모습, 그리고 비전향장기수들의 운명전환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그에 관해서 얘기를 좀 나눴으면 해가지고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셨는데요. 오일선생님 먼저 부탁드릴까요.

오 일 : 그렇게하죠. 그날 오전 10시 드디어 비전향장기수 63명이 판문점 분리선을 넘어 꿈결에도 밟아보고 싶은 조국땅에 들어섰는데요. 순간 환영나온 이북 동포들이 꽃다발을 흔들고 환호성을 울리며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을 열광적으로 맞이했습니다. 비전향장기수들은 판문각에서 헤어져 긴긴세월 한시도 잊은 적없는 가족, 친척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맞부비면서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오열하는 모습은 참으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그런 진리를 실감케하는 가슴 뜨거운 상봉이었습니다. 그때 비전향장기수 유연철씨의 이마와 가슴에 두른 흰천에 ≪장군님 고맙습니다. 태양의 품이 그리웠습니다≫라고 쓴 혈서의 글발이 잊혀지질 않는군요.

박진수 : 그렇죠. 그건 곧 비전향장기수 모두의 심정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인사였죠.

김혜정 : 비전향장기수들은 이북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평양으로 향하지 않았습니까.

윤정원 : 그들이 평양의 관문인 통일거리 입구에 도착한 건 오후 1시 35분경이었어요. 온 평양시의 많은 동포들이 영접옷차림을 하고 손에 손에 꽃다발, 꽃송이, ***, 이런 걸 들고 통일애국투사들을 환영하려고 떨쳐나섰죠. 저마다 환영이라는 외침과 **악기의 주악소리에 하늘땅이 진감을 했습니다. 그리고 63명의 선녀같은 여성들이 63명의 투사들에게 꽃다발을 안겨줬죠. 제가 알기로는 63개의 꽃다발에 가슴 뜨거운 사연이 깃들어 있다고해요. 혁명적 신념과 지조를 지키고 조국에 돌아오는 불굴의 투사들에게 이 나라의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다 안겨주자, 이렇게 생각한 평양의 중앙식물원 종업원들은 갖가지 아름다운 꽃으로 63개의 꽃다발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63개의 꽃다발에 들어있는 꽃송이수가 비전향장기수들의 옥중투쟁년한을 다 합친 것과 같다는 것이죠. 하나의 사례를 통해서도 이북 동포들이 통일애국투사들에게 준 꽃다발 하나하나에도 얼마나 큰 의미심장한 뜻을 담았는가 하는 걸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김혜정 : 이북 동포들 모두가 그런 뜨거운 마음을 안고 통일애국투사들을 맞이했죠.

오 일 : 네, 그래요. 농업청 직원들은 비전향장기수들이 돌아오면 조국의 쌀로 ***밥을 해먹이려고 **** 햅쌀을 준비했고 국영과수관리국 직원들은 과일중에서도 제일 맛좋고 신선한 과일을, 남새국 직원은 물론 채소국의 직원들도 매끼 신선한 채소를 대접하기 위해 준비해놓고 통일투사들을 맞이했어요. 그런가하면 평양의 이름있는 적십자병원, 평양의학대학병원, 김만유병원 등에서는 감옥살이에서 병든 그들을 회복시킬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맞이했죠. 비전향장기수들이 돌아오면 용궁같은 현대적인 집에서 살 수 있게 북에서는 이미 다 준비해놓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슴 뜨거운 사연들은 끝이 없습니다.

박진수 : 이북의 당, 정, 군의 고위간부들이 다 떨쳐나가지고 비전향장기수들을 뜨겁게 맞아주었는데요. 이건 진짜 어느 나라 역사에도 일찍이 없는 일이 아닙니까.

윤정원 : 역사에는 선대 집권자로 인해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운 전쟁포로들이 후대 집권자의 외면으로 타향의 감옥에서 무주고혼이 됐다는 그런 비참한 일화가 있지만 수십년 세월속에 혈육들마저 생사여부를 모르던 전사들이 수십만의 군중의 열광적인 환영속에 조국의 품에 안긴 예는 고금동서에 일찍이 없는 일이죠. 그래서 아직도 만사람의 심장을 뜨겁게 울리고 있는 그날의 환희는 수령, 당, 대중의 혼열일체, 일심단결된 이북의 참모습 그대로였어요. 그래서 세계는 그를 통해 다시한번 이북의 필승불패의 위력을 절감을 했던거죠.

오 일 : 참으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비전향장기수들이 통일거리입구에서부터 김일성광장과 개선문을 거쳐 금수산기념궁전에 이르기까지에 이북 민중들이 펼쳐놓은 환영의 꽃바다, 춤바다는 차디찬 옥방에서 눈물마저 마르게 했던 그들의 가슴에서 감격의 눈물이 샘처럼 끝없이 솟구치게 했습니다.

김혜정 : 2년전 그날의 환희가 눈에 선합니다.

박진수 : 참으로 민족사는 물론 인류사에 일찍이 없는 세계적 경사였죠.

김혜정 : 그럼 이런 경사를 낳게 한 힘과 원천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관해서 좀 얘기해 주실까요.

오 일 :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김정일장군님의 위대한 자주정치, 광폭정치의 결실이라 하겠습니다. 비전향장기수들이 극적인 운명전환을 하게 된 것은 장군님의 전사들에 대한 한없이 숭고한 동지적 의리와 믿음과 사랑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8년전 2월 어느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간부들에게 이인모동지를 데려온 것처럼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데려와야 한다고, 자신께서는 그들을 어떻게하나 북으로 데려올 결심을 하고 있다고, 그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혁명의 길에서 생사를 바쳐 싸운 동지들에 대한 의리로 여기며 혁명의 영도자가 전사들에게 베풀어야 할 고귀한 사랑으로 간주한다고, 당이 있는한 그들을 모두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장군님께서는 그해 어느날 또다시 간부들앞에서 장기수역사상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이 제일 오랜 옥중투쟁을 한 혁명가들이라고, 세계역사에는 옥중생활 제일 연한에 대해 많이 전하지만 남조선의 감옥에서 30년, 40여년을 굴하지 않고 옥중투쟁으로 인생의 전부를 보낸 비전향장기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인류역사에서 30, 40년의 옥중투쟁을 하면서 전향하지 않은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우리 당에 의해 교양육성된 혁명가들 속에서만 나오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혜정 : 세계의 눈길속에 옥살이를 한 전 남아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도 20여년밖에 안되지만 세계는 그를 최장기수의 영웅으로 묘사했죠.

박진수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30, 40여년을 한평도 못되는 햇빛 한점없는 감방에서 신념과 의지를 지켜 싸워 이긴 이 땅의 비전향장기수들이야말로 영웅중의 영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사람의 축복속에 영웅으로 높이 찬양받게 된건 그들의 넋을 지켜주시고 믿음과 사랑으로 영웅이 될 수 있게 해주신 김정일장군님의 위대한 품이 있었기 때문이죠.

윤정원 : 네, 맞아요. 장군님의 은혜로운 품, 따뜻한 손길이 있었기에 그들의 운명이 구원될 수 있었고 행복한 삶이 있을 수 있었어요. 장군님께서는 주체89(2000)년 1월 어느날에도 이남에 있는 비전향장기수 모두를 빨리 송환해야겠다고, 그해 6월 어느날에도 비전향장기수들을 그들의 소원대로 모두 데려와야 한다고, 데려다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한 행복한 삶을 마음껏 누리게 해줘야겠다고, 그래야 자신께서도 마음이 좀 놓일 것 같다고 간절하게 말씀을 하셨답니다.

오 일 : 장군님의 사랑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에 대해 더 마음 쓰시는 친어버이의 심정 그대로인데요.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영도자도 많지만 위대한 장군님처럼 아내와 자식마저 잃어버리고 생각조차 못한 비전향장기수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데려다 금방석에 앉히고 빼앗긴 청춘과 행복한 삶을 안겨주시려 심려하시고 노력을 기울이신 그런 영도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앞서 한 선생의 얘기에서 얼핏 비쳤습니다만 인류역사에는 전장에서 포로되어 옥중생활을 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많죠. 오래전 유럽에서 있은 전쟁포로에 대한 얘기도 그중 하나인데요. 패한 군대의 사병들이 포로생활을 강요당한 적이 있었죠. 세월이 흘러 그들을 포로했던 나라에서 포로들을 돌려보내기로 결정을 취하고 해당 나라에 인수해가라고 통보했죠. 그런데 그 나라에선 새로 군림한 왕조가 전 왕조때 포로들을 데려가지 않겠다고 하면서 부모처자가 기다리는 조국으로 송환해 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포로들은 이리저리 방황하며 빌어먹다가 죽고마는 비참한 운명을 면치 못했다는 겁니다.

박진수 : 그걸 어떻게 옛말이라고만 하겠습니까. 참으로 많은걸 시사해주는 얘긴데요. 한번 맺은 인연, 한번 주신 사랑과 믿음을 어떤 역경속에서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믿어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지켜주시며 한품에 안아 내세워주시는 한없이 위대한 사랑을 지니신 김정일장군님 같으신 절세의 위인은 이 세상에 없어요.

윤정원 : 네, 바로 그런 분이시기에 장군님께서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6.15공동선언조항에 찍어박으신거죠. 그로부터 얼마후인 9월 2일엔 그들을 데려다가 한품에 안으셔서 온갖 사랑을 다 베푸셨잖아요. 그래서 비전향장기수들이 돌아오는 날엔 평양의 수십리의 영도환영을 받도록 해주셨고 4월초엔 김일성광장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을 환영하는 군중대회를 성대히 진행하도록 조치해주셨고 그리고 장군님께서는 비전향장기수 63명 전원에게 조국통일상을, 김일성주석님탄생 90돌을 맞으면서는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해주셨어요. 그리고 현대적인 주택에 가정집무를 일체 갖추어주도록 하셨고 총각들은 가정을 이루도록 하셔서 얼마전에는 비전향장기수 이재룡씨의 아내가 평양산원에서 튼튼하고 귀여운 딸을 낳았죠. 그래서 이북 민중들은 물론 우리 민중들들도 기쁘게 해줬죠. 그러나 누구보다 기뻐하신 분은 김정일장군님이셨어요. 그분께서는 그들 부부가 올린 감사편지를 받아보시고 딸의 이름을 친히 친필로 ≪축복≫이라고 지어주시는 최상의 영예와 행복을 안겨주셨죠.

김혜정 : 장군님은 정말 친부모도 헤아릴 수 없는 다심하신 분이십니다.

오 일 : 김정일장군님의 품속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은 세상에 부러운 것없이 청춘을 되찾고 행복한 삶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난 비전향장기수 이동환, 윤용길, 신인영씨를 신미리 애국열사릉에서 영생하도록 해주셨고 그 유족들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을 베풀어주셨어요.

김혜정 : 이북에 간 비전향장기수들은 정말 복을 받았습니다. 김정일장군님 계셔 그들을 지옥에서 낙원으로 갈 수 있었고 온갖 행복을 누릴 수 있었어요. 참으로 김정일장군님은 한없이 숭고한 동지적 의리를 지니신 도덕의리의 최고화신이십니다.

박진수 : 우리 민중은 통일의 구성이신 김정일장군님을 받들고 따를 때만이 조국통일도 이룩되고 민족의 미래가 담보되어 있음을 확신하고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관철에로 더욱 힘차게 떨쳐나서야 하리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김혜정 : 감사합니다.

오 일 : 감사합니다.

윤정원 : 감사합니다.

 

부고

91/09/05 백산칼럼

최근 두 사람의 장례가 있었다. 한 사람은 통일애국지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희극의 황제였다. 한 사람은 평생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수많은 방송과 영화에 출연하였다. 한 사람의 죽음은 거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죽음은 연일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문재룡선생과 이주일이다.

우리는 이 칼럼을 쓰면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위원장 외에는 존칭과 직함을 붙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김양무선생처럼 문재룡선생이 그런 경우이다. 통일애국의 길에서 헌신하다 최근 별세한 분들에 대해서는 도리상 존칭을 생략할 수 없다.

문재룡선생의 한 생은 깨끗하다. 노동과 통일운동이 전부다. 문재룡선생이 빚보증으로 구속되었던 일도 사실 운동과 관련된 것이었음은 공개된 비밀이다. 몇 년 전 김양무선생의 별세 이후 가장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후배들은 선배들이 못다 이룬 조국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분투하고 또 분투할 것이다.

이주일이 만인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우리 민중과 애환을 같이 하였기 때문이다. 이주일과 전두환은 당시 대머리, 푸른집에서 산다(청와대, 초원의 집),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점에서 닮았고 웃기는 줄 알면서 웃기는 것과 웃기는 줄 모르면서 웃긴다는 데서 달랐다. 아들의 사고시에도 무대에 섰던 프로희극인 이주일은 그 때부터 폭음하였고 그것이 사망원인으로 되었다. 한 부고를 접하면서는 통일애국의 결의를 다지었고 다른 부고를 접하면서는 건강과 절제의 중요성을 되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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