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위원장은
통일혁명의 영도자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제81호          주체91(2002)년 8월 29일(목)                                                            백두청년회 산하 백두산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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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인터넷 회고록강좌

 

김정일위원장의 명언

청년들을 사랑하라!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에서

반제청년동맹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실화로 본 김정일위원장

≪꿩먹고 알 먹는 공법≫


오늘의 새 소식

구국의 소리

서울대 학생들, 학교측의 6.15기념탑 철거
    요구에 강하게 반발 (8/27)

통일운동 선봉장 기개 다시금 떨치자
    (8/26-27)

여중생사망사건 그 이후 (8/26-27)

역사에 길이 빛날 대장정 (8/26-27)

조선중앙통신 (8/27)

청년절 맞으며 활발히 활동하는 청년중앙
    예술선전대 [ 오전 | 오후 ]

청년운동영도업적을 칭송 [ 오전 | 오후 ]

오늘의 주요 기사

존 볼튼 방한 반대 기자회견 열려
    (통일뉴스, 8/28)

부산AG, 남북 동시 입장 전격 합의
    (연합뉴스, 8/28)

≪이회창 아들, 돈주고 병역 면제받아≫
   (프레시안, 8/28)

민주노동당 권영길대표, 대학기자 간담회
    (유뉴스, 8/27)

패륜적인 공안당국의 한총련 대의원 연행
    (민중의소리, 8/27)

민단 총련 함께 제1회 아시아청년평화통일
    포럼 개최 (통일뉴스, 8/28)

분단이후 최초, 재일조선학생소년예술단
    초청공연 마침내 성사 (민중의소리, 8/28)


백산칼럼

엠티


조선중앙통신 (8/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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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정세 초점

민주노동당, 대선 출항!


  민주노동당 권영길대표가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전국을 돌기 시작했다. 9월 8일 당 후보선출대회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항해가 시작되었다.
  12월 대선을 앞둔 진보운동, 민족민주운동의 최상의 목표는 통일단결이다. 단일진보정당만이 민중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자주적민주정부로 가는 첫 계단이 거기에 있다.
  모두 하나의 함대가 되어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자. 흩어지지도 주저하지도 말고 자기의 항로를 끝까지 가자. 그 항해의 끝에, 우리는 무적의 함대로 거듭날 것이며 그만큼의 기대와 신뢰를 얻을 것이다.

제3당에 걸맞는 명실상부한 진보정당 될터
    (민주노동당, 6/14)

6.13선거 - 진보정당 160만표 시대 열렸다
    (오마이뉴스, 6/17)

현장 - 민주노동당 열성당원 전진대회
    (오마이뉴스, 7/15)

민노당, 6.13여세몰아 제3당 굳히기
    (오마이뉴스, 8/1)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대선출마 선언
    (프레시안, 8/9)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민주노동당, 8/9)

민주노동당 대선 행보 본격화
    (오마이뉴스, 8/19)

권영길 후보 이회창-정몽준 비판
    (오마이뉴스, 8/21)

학생운동, 단일한 대선입장 위한 토론회
    (유뉴스, 8/21)

인터뷰 -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유뉴스, 8/22)

민주노동당, ≪정몽준 검증 내가 맡는다≫
    (프레시안, 8/27)

권영길대표, 충북도내 각계인사 간담회
    (유뉴스, 8/26)

게시판 -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선출

소개 -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주한미군 여중생 살인사건 대책위

http://www.antimigun.org/


《인터넷 백두산》 메일링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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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제청년동맹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세기와 더불어≫ 제1권 3장 3절

우리의 운동선에 합류하려고 국내와 일본, 연해주, 만주각지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길림으로 모여들었다. 독립군에 관계했던 청년들, 일본에 가서 고학을 하던 청년들, 백파들과 싸우던 청년들,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광주폭동에 참가했던 청년들, 국민당반동들의 추격을 피해 여기저기 숨어다니던 청년들, 레닌의 숭배자, 손문의 숭배자, 루쏘의 숭배자 등 정견과 소속, 생활경로가 서로 다른 천태만상의 청년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김혁, 차광수, 김준, 채수항, 안붕 등도 그 시기에 우리를 찾아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교양하여 ≪ㅌ,ㄷ≫에 받아들이는 한편 조직을 시내 여러 학교들에 확대해나갔다.
   그 과정에 우리는 ≪ㅌ,ㄷ≫보다 더 큰그릇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망라할 수 있는 조직을 내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이런 필요성으로부터 1927년 8월 27일에 ≪ㅌ,ㄷ≫를 반제청년동맹으로 개편하고 그 다음날 련이어 ≪ㅌ,ㄷ≫의 정수분자들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창립하였다. 반제청년동맹은 ≪ㅌ,ㄷ≫의 구호를 그대로 내세우고 그 강령을 그대로 계승한 반제적이고 대중적인 비합법적 청년조직이었다. 조직의 기본구성은 조선청년들이었으나 우리는 반제적 립장이 강한 중국청년들도 거기에 가입시키었다.

 

≪꿩먹고 알 먹는 공법≫

김정일위원장연구1≫(주체91, 백두청년회)

서해갑문을 건설할 때에 있은 일이다.
   20리날바다로 뻗어나가던 기본언제 건설이 마감고비에 들어서자 공사지휘성원들과 과학자, 건설자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언제마감막이공사를 하자면 새로운 마감막이공법이 있어야겠는데 그것이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언제마감막이공사는 남포 앞바다로 밀려드는 바다물의 세찬 흐름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공사였다. 그런데 갑문방향으로 막아나가던 20리언제의 마감막이구간이 좁아짐에 따라 물살이 어찌나 센지 굉장히 큰돌을 아무리 집어넣어도 바닥에 닿기 전에 저 멀리로 떠내려가군 하였다.
   초당 물살의 속도는 20m였다.
   어떤 방법으로 마감막이공사를 해야 안전하게 하면서도 빨리 할 수 있겠는가?
   이 물음에 대답을 줄 수 있는 공법을 발견하는 것은 과학자들 앞에 나선 초미의 과제였다.
   현지에 파견되어 일하던 과학자들과 과학원 수리공학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불철주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였다.
   그러나 신통한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1985년 9월 19일이었다.
   또다시 갑문건설장을 찾은 김정일위원장은 마감막이공사정형을 구체적으로 요해하였다.
   과학자들이 아직 마감막이공법을 완성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안 위원장은 설사 마감막이공법이 완성되었다 해도 갑실공사가 끝나지 못한 조건에서 마감막이공사를 하면 송림항과 남포항으로 드나드는 수많은 배들의 뱃길이 막히게 된다고 하면서 이런 내용의 말을 하였다.
   먼저 갑실과 무넘이언제 공사에 힘을 집중하여 그 공사를 끝낸 다음에 언제마감막이공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우선 갑실과 무넘이언제 공사에 힘을 집중하여 빨리 끝낼 수 있으니 좋고 마감막이구간으로 쏠리던 물을 갑실쪽으로 에돌려 마감막이공사를 헐하게 할 수 있으니 또한 좋고 남포항으로 드나드는 배들에도 지장을 주지 않으니 더욱 좋다고 하면서 바로 이것이 꿩먹고 알 먹기가 아닌가고 웃으며 말하였다.
   마감막이구간으로 쏠리는 물을 갑실쪽으로 돌려야 한다.
   그러자면 갑실공사부터 끝내야 한다.
   이 얼마나 희한한 공법인가!
   과학자들은 위원장이 착상한 이 공법을 ≪꿩먹고 알 먹는 공법≫이라고 이름짓고 서해갑문건설에 빛나게 적용하였다.

 

서울대 학생들, 학교측의 6.15기념탑 철거 요구에 강하게 반발

91/08/27 ≪구국의 소리≫ 화제의 초점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서울대학교와 당국은 학생들이 교내에 설치한 6.15기념탑에 대해 무허가 조형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당국의 지시를 받은 학교측이 학생들의 강력한 항의와 규탄에도 불구하고 학교정문근처 잔디밭에 세운 6.15기념탑을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공동선언을 길이 전하며 공동선언이행을 위한 학생들의 의로운 활동을 벌이지 못하게 하려는데 그 저의가 있다 하겠습니다.

서울대학교 정문근처 잔디밭에 세운 기념탑은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대학생들이 세워놓았습니다.

높이 4미터, 세로 2.7미터 규모의 화강암으로 제작한 기념탑위에는 ≪민족의 앞길을 밝히는 6.15남북공동선언≫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당국의 지시를 받은 학교측은 이 기념탑이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설치한 무허가 조형물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철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 구성원들의 모금을 통해 제작된 기념탑을 철거하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학교측은 학생들이 자체로 설치한 6.15기념탑을 승인을 받지 않은 무허가 조형물이라는 이유로 철거하라는 학교측의 방침에 반발해 항의농성을 벌여온 사범대생 김모씨에 대해 1개월 유기정학을 내리는 횡포를 자행했습니다.

학교측이 6.15기념탑을 세운 학생들의 의로운 활동을 찬양은 못할망정 그를 문제시해서 철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천부당한 작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평양상봉에서 채택발표된 6.15남북공동선언은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한 민족자주선언, 민족대단결선언, 통일지향선언입니다.

남북관계발전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사변적 의의를 가지는 공동선언의 채택으로 남북사이에는 닫겼던 대화의 문이 열렸고 민족의 단합과 통일적 발전을 위한 여러 갈래의 접촉과 협력이 폭넓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6.15기념탑을 세우고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려는 것은 사회의 양심이며 정의의 기수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학교측이 학생들의 의로운 활동을 문제시해서 6.15기념탑철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민의와 대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통일적인 행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만약 학교측이 진심으로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을 귀중히 여기고 민족의 단합과 ≪한≫반도의 통일을 바란다면 학생들이 세운 6.15기념탑을 철거하지 말고 보존해야 합니다.

학교측이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끝내 기념탑을 철거한다면 반통일행위로써 민족앞에 더러운 오점을 남기게 되리라는 걸 똑똑히 명심하고 분별있게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통일운동의 선봉장의 기개를 다시금 떨치자

91/08/26-27 ≪구국의 소리≫ 청년학생들과 함께

지금 우리 민중은 8.15민족통일대회를 계기로 더욱 고양된 통일열기를 안고 앞으로 줄기차게 이어질 통일행사들도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걸맞게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는 열망으로 가슴 불태우고 있는데요. 이같은 현실은 우리 청년학생들로 하여금 8.15민족통일대회 성사를 위해 힘찬 투쟁을 벌여온 것처럼 앞으로 있게 되는 통일행사들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계속 줄기찬 투쟁을 벌임으로써 통일선봉장의 기개를 다시금 떨칠 걸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온 겨레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뜻깊은 광복절을 맞으며 서울에서는 8.15민족통일대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북의 각계각층을 망라한 대표단의 참여속에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로 진행된 이번 8.15민족통일대회는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가속하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고무하고 남북관계를 좋게 발전시키는데서 의의깊은 계기로 되었습니다.

내외반통일세력의 악랄한 민족분열책동을 분쇄하고 성공적으로 진행된 이번 8.15민족통일대회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6.15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그 이행을 위해 앞장에서 헌신해온 우리 청년학생들의 적극적인 투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15남북공동선언은 새 세기 조국통일의 이정표이며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입니다. 남북공동선언을 철저히 고수하고 이행하는데 민족의 밝은 앞날이 있고 조국통일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하기에 우리 청년학생들은 6.15공동선언을 새 세기의 가까운 몇해안에 조국통일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하기 위한 필수적 지침으로 새겨안고 지난 2년간 그 이행을 위한 실천투쟁을 과감히 벌여왔습니다.

6.15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청년학생들의 투쟁은 특히 지난 7월 남과 북의 통일운동단체들이 8.15민족통일대회를 진행하는 것 등 5가지 조항의 합의서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더욱 세차게 전개되었습니다.

8.15민족통일대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함으로써 6.15공동선언을 힘있게 고수, 관철해나가는 보다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마련하려는 것은 우리 청년학생들의 한결같은 지향이고 의지였습니다.

그 지향과 의지를 안고 ≪한총련≫ 통일선봉대는 국토순례대행진을 진행했습니다. 6.15공동선언이행, ≪국가보안법≫철폐를 촉구하며 지난 8월 4일 광주에서 시작된 ≪한총련≫ 통일선봉대의 국토순례대행진은 8월과 더불어 고양된 각계층 민중의 통일열기를 한껏 북돋아주었습니다.

범청학련 통일선봉대활동도 8.15민족통일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도록 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350여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범청학련 통일선봉대는 6.15공동선언이행군을 동군으로, 반미반전평화군을 서군으로 하는 2개조를 편성하고 홍보활동과 결의서발표 등 여러가지 다채로운 운동을 전개하여 8.15민족통일대회를 기필코 성사시키려는 청년학생들의 통일의지를 남김없이 과시했습니다.

8.15민족통일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는 청년학생들의 의지는 남북의 통일운동단체들이 공동으로 채택한 5개조항의 합의서를 지지하여 발표한 각 지역총련 의장들의 성명과 호소문들에도 담겨져 있으며 8월 9일부터 11일사이에 진행된 지역별 통일행사들에서도 남김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청년학생들의 이렇듯 강렬한 통일지향에 받들려 8.15민족통일대회는 역사적인 6.15공동선언발표의 사변적 의의를 되새기고 공동선언에 대한 지지와 실천의지를 재확인하는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로 성대히 개최됐던 겁니다.

이번 8.15민족통일대회에서 남과 북의 통일운동단체들은 지난 통일행사들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공고발전시켜나가기 위하여 청년학생통일행사를 비롯한 여러가지 다채로운 통일행사들을 활발히 벌여나갈데 관해 토의하고 ≪7천만 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했습니다.

현실은 우리 청년학생들로 하여금 8.15민족통일대회의 성사를 위해 힘찬 투쟁을 벌여온 것처럼 앞으로 있게될 통일행사들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더욱 줄기차게 싸워나갈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청년학생들은 현실의 이같은 요청에 부응하여 6.15공동선언이행을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나감으로써 통일운동의 선봉장의 기개를 다시금 떨쳐야 할겁니다.

당면해서는 9월 7일부터 8일까지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서 진행되게 될 청년학생통일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투쟁열기를 고조시켜 나가야 할겁니다.

청년학생들은 8.15민족통일대회의 성사를 위해 통일선봉대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온 그 기세로 다채로운 운동들을 활성화해 나감으로써 청년학생통일행사를 성사시키기 위한 분위기가 온 경향에 차넘치도록 해야 할겁니다.

청년학생들은 청년학생통일행사가 갖는 의미에 관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홍보활동을 적극화하여 각계층 민중 모두가 남과 북의 청년학생들의 뜻깊은 회합을 위해 지지와 성원의 목소리를 높이도록 해야 할겁니다.

청년학생통일행사의 성공적 개최는 내외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을 분쇄하기 위한 투쟁을 떠나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난 6.15민족통일대축전때만 해도 민족분열주의세력은 ≪한총련≫을 비롯한 통일운동단체들을 ≪이적≫단체로 매도하며 통일행사참가를 한사코 가로막아나섰습니다.

민족분단에서 살길을 찾는 극우보수세력이 이제 또 어떤 구실을 붙여 청년학생통일행사를 파탄시키기 위해 획책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겁니다.

청년학생들은 반통일세력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예의주시하면서 6.15공동선언이행을 차단하려는 민족분열주의적인 책동에 관해서는 용납하지 말고 단호한 타격을 가해야 합니다.

정의에 투철하고 애국에 열렬한 우리 청년학생들이 가슴 속에서 용암처럼 끓어번지는 통일의 의지를 과시할 때는 왔습니다.

청년학생들은 통일운동의 선봉장의 기개를 다시금 과시함으로써 빛나는 투쟁성과로 청년학생통일행사를 성사시켜야 할겁니다.

 

여중생사망사건 그 이후

91/08/26-27 ≪구국의 소리≫ 화청년학생들과 함께

이번엔 한양대 강모씨의 글 ≪여중생사망사건 그 이후≫를 임현아씨 보내드리죠.

여중생사망사건, 그것은 큰 사건이었다. 별다른 희망이 없어도 삶 그 자체가 희망인 14살 꽃망울. 그 어리고 귀여운 여중생들이 미군의 장갑차에 치어 숨졌으니 이렇듯 억울한 죽음이 또 어디에 있으랴.

그러나 이 사건을 보잘 것 없는 사건으로 여긴 자들이 있었다. 우선 미국이 그러했다. 저들이 저지른 범죄이기에 그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획책하는 미국엔 이 사건은 공무중에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기야 반세기여의 긴 세월 이 땅을 불법강점하고 민간인살육을 도락으로 삼아온 미국일진대 노상에서 여중생 2명이 죽은 것을 큰 사건으로 생각할리는 만무한 것이다.

이회창을 비롯한 우익보수세력에게도 여중생사망사건은 눈에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사건이었다.

저들이 할애비처럼 섬기는 미국이 하는 짓이라 함부로 입부리를 놀려 화를 자초하기보다는 미국을 비호함으로써 한몫 챙기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 이회창패당이었다.

여중생사망사건을 대하는 이같이 상이한 입장은 그 이후의 행동에서도 판이한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 민중은 여중생사망사건을 민족의 자존과 직결된 문제로 여기고 사건의 진상규명과 범죄자처벌, ≪한≫미행정협정파기와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해 힘찬 투쟁을 벌여왔다. 그 선봉에는 언제나 청년학생들이 서 있었다.

청년학생들이 각계층 시민단체, 운동단체들과의 긴밀한 연대속에 여중생사망사건의 진상규명과 범죄자처벌을 요구하는 범국민대회만도 수차례 진행됐다.

여중생살해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며 부시의 공개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반미실천단까지 결성한 청년학생들은 의정부역사와 미2사단정문앞에서 각 지역에 도사리고 있는 미군기지들앞에서 항의시위와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다채로운 활동들을 전개했다.

지난 8월 10일부터 부산지역의 한 학생운동단체가 연 20일간에 진행한 미군에 대한 처벌과 철수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3만여명이 참가한 것은 여중생사망사건을 계기로 민족의 피맺힌 한을 씻으려는 민중의 지향이 얼마나 강렬한가를 실증해준다.

그러나 미국은 민중의 이같은 항의에도 불구하고 죽은 사람은 있으나 잘못한 자도, 책임질 자도 없다는 오만한 태도로 이 사건에 임했다.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민중의 항거에 공무집행중에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라는 판에 박은 말을 염불처럼 외워댔고 독립기념일에는 미군부대들에서 요란한 불꽃축제를 벌여 여중생사망사건을 백안시하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보였다.

사고운전병이 단골술집을 드나들며 자유롭게 술을 퍼마시고 검찰에 출두해서는 언론의 취재를 초상권침해로 몰아붙이며 퇴장하는 망동까지 했다. 이런 속에서 여중생사망사건이후에도 주≪한≫미군에 의한 범죄는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여중생사망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운동단체들의 항의시위를 취재하던 기자들에게 폭행을 가한 사건, 지난 7월 25일 미8군소속 제퍼슨 아단병장이 만취된 상태에서 차를 몰고가다 앞서가는 승용차 등 차량 2대를 잇따라 들이받고 도주한 사건, 8월 2일 주≪한≫미군 2명이 시민을 폭행한 사건, 장갑차훈련도로를 만든다며 부대부근의 산을 파헤치고 수십년 자란 거목 수천그루를 베어낸 사건, 민중의 항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반하장격으로 날뛰며 제2, 제3의 여중생사망사건을 끊임없이 빚어내는 미국 양키들이야말로 얼마나 후안무치한 족속들인가.

미국의 범죄행위를 극력 비호해 나선 이회창패당의 굴종행위는 또 얼마나 사람들의 분격을 자아냈던가. 서해해상에서 동족사이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장충돌사건과 관련해서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남북사이의 반목과 대결을 제창하던 이회창패당은 여중생사망사건과 관련해서는 항변한마디 못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오죽했으면 한 정치인이 신문 ≪한겨레≫에 투고한 글에서 걸핏하면 국정조사를 운운하며 **질을 잘하는 한나라당이 여중생사망사건과 같은 엄청난 사건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면서 당대표는 무얼 하느냐, 그 많은 최고위원들, 정책위 의장은 무얼하는가고 꼬집었겠는가.

여중생사망사건을 대하는 상이한 입장과 자세, 그로부터 나타나는 그 이후의 판이한 행동은 우리 청년학생들과 각계층 민중들로 하여금 왜 주≪한≫미군을 몰아내야 하며 왜 극우보수세력은 정치무대에서 제거해야 하는가를 천심으로 새겨안게 했다.

그렇다. 미국이야말로 살인을 업으로 강간을 본업으로, 강도질을 오락으로 여기는 식인종무리이다. 피에 주린 이리와도 같은 양키무리들과는 결단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더욱이 이런 식인종무리들에게 민중의 생명과 재산을 통째로 퍼주며 집권야망을 이루어보기위해 발악하는 이회창패당이야말로 얼마나 얄미운 여우의 족속들인가. 이런 자들이 집권하면 여중생사망사건과 같은 불상사는 더욱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며 미국의 범죄적 만행으로 인해 겪는 민중의 불행과 고통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마땅히 우리 민중은 여중생사망사건을 반미, 반이회창투쟁을 더욱 힘있게 더욱 광범위하게 벌여나가기 위한 결정적인 계기로 삼고 사건의 진상규명과 범죄자처벌,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해 계속 과감히 싸워나가야 할 것이다.

 

역사에 길이 빛날 대장정

91/08/26-27 ≪구국의 소리≫ 위대한 장군님의 러시아 극동지역방문성과를 축하하는 방송

이번엔 ≪역사에 길이 빛날 대장정≫ 이런 제목으로 신은경씨, 김현규씨 두분 얘기 드리겠습니다.

신은경 : 안녕하세요.

김현규 : 네, 안녕하십니까.

신은경 :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러시아연방 극동지역에 대한 방문을 성과리에 마치시고 돌아오신 소식에 지금 온 겨레는 커다란 기쁨에 휩싸여 있는데요. 방문길에 오르신 20일부터 닷새동안 김정일장군님께서 누벼가신 노고의 먼 여정을 되새겨보면 참으로 가슴 뜨거워오르는 우리 민중이죠.

김현규 : 그렇죠. 8월중순 장군님의 러시아 극동지역방문에 관한 보도가 알려진 이래 사람들은 오늘일까, 내일일까하며 장군님께서 러시아방문의 걸음을 내디디실 날을 고대했었습니다. 드디어 20일 김정일장군님의 출발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러시아연방 극동지역을 방문하시기 위해 출발하셨다는 평양발 보도가 전해지자 겨레와 인류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습니다. 세계언론은 ≪김정일국방위원장 러시아 극동지역방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자 극동정세를 거머쥐다≫ 등으로 장군님의 방러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했죠.

신은경 : 이렇게 겨레와 인류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방문길에 오르신 장군님께서 러시아 국경역 하싼을 통과하신 것도 역시 20일이었죠.

김현규 : 그렇습니다. 20일 아침 러시아의 국경역 하싼에 도착하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장군님을 안내해 드리기 위해 하싼에 간 뿔리꼽스끼 극동연방구주재 대통령전권대리인을 비롯한 중앙과 변강, 군책임간부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따뜻한 담화를 나누셨습니다.

신은경 : 러시아방문을 위해 국경역을 통과하신 김정일장군님께 민족의상을 한 러시아여성들이 빵과 소금을 드렸죠.

김현규 : 그렇죠. 러시아풍습에 따른 거죠.

신은경 : 이렇게 하싼역을 통과하신 그분께서 다음으로 체류하신 곳이 러시아 극동지역의 주요산업도시 꼼소몰스크-나-아무레시였지 않습니까.

김현규 : 네, 장군님께서는 21일 오전 이 도시에 이르셨는데요. 미왈료브시장 등의 영접을 받으시고 민족의상을 한 여성들이 드리는 빵과 소금, 꽃묶음을 받으신 다음 그분께서는 먼저 지난 조국전쟁에서 희생된 꼼쏘몰스크-나-아무레출신 시민들을 위한 기념비에 헌화하셨고 이어 중앙과 시의 고위간부들의 안내를 받으시며 시내 여러 곳을 참관하셨습니다.

신은경 : 어떤 곳들을 들르셨었는지 간단히 되짚어볼까요.

김현규 :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선 가가린명칭 꼼쏘몰스크-나-아무레항공생산연합체를 참관하시고 방문록에 공장발전의 영광스러운 행로에 경의를 드린다는 내용의 친필을 남기셨고 같은 날 오후 아무르조선소를 참관하신 장군님께서는 조선소의 연혁을 들으시고 조선소의 여러 직장들을 돌아보신 다음 방문록에 오랜 역사와 영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곳 조선소노동자들에게 인사를 드린다는 내용의 친필을 또다시 남기셨습니다.

이어 도시의 첫 개발자기념비에 헌화, 유람선위에서의 아무르강 항행, 샤르골야영소참관과 어린이들의 연예공연관람이 있었고 장군님의 방문을 환영해 시장이 차린 연회에 초대되셨습니다.

이렇게 꼼쏘몰스크-나-아무레시에서의 체류일정을 마친 김정일장군님께서 다음으로 방문하신 곳은 하바롭스크시였습니다.

신은경 : 하바롭스크는 러시아연방 극동연방구의 소재지인데요. 이미 지난 방문시에도 장군님께서 체류하신 바 있는 도시여서 환영열기가 매우 높았었다고 그러죠.

김현규 : 그렇습니다. 22일 아침 이 도시에 도착하신 장군님께서는 영접행사후 화학제약공장과 ≪아무르 까벨≫유한주식회사를 참관하셨고 이어 러시아정교사원인 성자 인노겐찌 이르꾸쯔끼사원을 돌아보셨습니다.

하바롭스크변강정부에서 차린 연회에 참석후 장군님께서는 오후에 월로챠예브사단을 방문하셨습니다.

신은경 : 그러니까 장군님의 이번 방문에서 군부대방문도 있은 거죠.

김현규 : 네, 사단에 가신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전통을 이은 사단에 영광을 드린다. 2002. 8. 22 김정일≫이라는 친필을 남기셨습니다.

이런 일정을 보내신후 장군님께서는 하바롭스크를 떠나 다음 방문지인 블라보스토크에 도착하셨고 여기서 23일 푸틴러시아대통령과 상봉하셨습니다.

신은경 : 김정일장군님께서 푸틴대통령과 어떤 내용의 담화를 나누셨는지도 이미 보도가 됐죠.

김현규 : 담화석상에 푸틴대통령은 김정일장군님의 극동지역방문을 열렬히 환영하고 이번 방문이 러조친선협조관계를 가일층 확대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된다고 언급했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극동지역방문이 성과리에 진행되도록 깊은 관심을 돌려준데 대해 사의를 표하셨습니다.

담화에서는 상호간에 자국 정세를 통보하고 두 나라 관계가 계속 좋게 발전하고 있는데 대해 만족스럽게 평가했고 상호 관심사로 되는 국제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철도를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하는 문제를 비롯해 쌍무협조관계를 더욱 발전시킬데 대한 일련의 문제들이 진지하게 토의됐죠.

신은경 : 또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김정일장군님을 위해 푸틴러시아대통령이 차린 만찬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김정일장군님께서 태평양함대의 함선 ≪아드미랄 빤쩨레예브≫호를 방문하셨다는 소식도 전해졌잖아요.

김현규 : 장군님께서는 이번 러시아방문기간에 이 함선과 월로챠예브사단 이렇게 두 군데의 군부대를 찾으신 셈이죠. 선군영장으로써 국제정치의 원로로써 머나먼 러시아 극동지역에 역사의 발자취를 남기고 오신 김정일장군님이신데요. 이 극동지역이 이미 광복전 조선인민혁명군의 조국광복을 위한 최후공격작전이 무르익었던 역사의 고장이란 걸 생각할 때 이번 방러길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참 감회가 깊으셨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신은경 : 그렇군요.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계승본에서도 본 바 있지만 극동지역은 광복전 경애하는 김일성주석님과 항일의 여성영웅 김정숙여사,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발자취가 어린 곳이죠.

김현규 : 네, 또 우리 나라보다 퍽 쌀쌀한 북방의 기후에 빈틈없이 물려돌아가는 빡빡한 일정을 보내시느라 장군님의 노고가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정말 우리 민족의 자주와 번영, 세계의 평화와 자주화위업의 전진을 위해 헌신의 장정을 하고 돌아오신 김정일장군님을 생각하면 우리 민족이 받아안은 영수복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금 새겨보게 되는데요. 24일 역사적인 러시아연방 극동지역방문을 성과리에 마치고 돌아오신 김정일장군님께서 먼길에 피곤을 푸시며 잠시라도 푹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 겨레 모두의 한결같은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은경 : 김정일장군님의 이번 방러기간 우리 민중속에서는 장군님에 대한 칭송과 방러성과를 축원하는 목소리들이 높았었는데요. 이제 러시아방문일정을 성과리에 마치고 돌아오신 장군님의 소식에 힘입어 우리 민중은 자주, 민주, 통일투쟁에 더큰 성과를 거두어나갈 겁니다. 지금까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김현규 : 네, 감사합니다.

 

엠티

91/08/29 백산칼럼

오늘은 노동자동지들과 1박 2일로 엠티를 가는 날이다. 어린 시절 소풍가듯이 유쾌한 분위기이나, 만에 하나 있을 지 모를 경우에 대비하는 은근한 긴장감도 흐른다. 먼저 선발대가 자리를 봐두었으니 우리는 그저 가기만 하면 된다.

도착하고 보니 주위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뒤편은 높은 산이라 정취가 아주 좋다. 남부지방은 연일 궂은 날씨라는데, 여기는 구름도 별로 없고 햇볕도 좋다. 다들 만족해 하는 표정이다. 저녁식사는 뒷풀이 때 겸하기로 하고 먼저 학습부터 하기로 하였다. 학습은 3차로 진행되었다.

1차는 ≪통일혁명전략≫, 2차는 ≪상반기 총화와 대선투쟁방침≫, 3차는 ≪영도예술≫이었다. 1차는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위원장의 노작을 모은 통일여명자료집을 가지고 내가 발제하였고, 2차와 3차는 오래 전에 분공을 받은 다른 동지들이 발제하였다. 1차, 2차에는 주로 질문이 많이 쏟아졌고 3차에는 회고록의 일화와 현장경험을 들며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오래간만에 만나서인지 귀중한 경험담도 많았고 다들 몰라보게 성장하였다.

자정을 넘겨서야 저녁식사 겸 뒷풀이 시간이 되었다. 얼큰한 찌개에 술잔이 돌아가지만 이런 자리에서 과음하는 사람은 없다. 토론하는 과정에서 다 하지 못했던 정감어린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이 밤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한동안 보기 힘들 것이다. 뜻과 운명을 같이 하는 동지들이 함께 보내는 유정한 밤,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의 밤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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