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위원장은
통일혁명의 영도자


6.15공동선언은
조국통일의 이정표

    제78호          주체91(2002)년 8월 26일(월)                                                            백두청년회 산하 백두산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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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인터넷 회고록강좌

 

김정일위원장의 명언

당의 모습은 당이 키워낸 인민의 장한 모습에 그대로 반영된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에서

조선인류길학우회

실화로 본 김정일위원장

남새수경재배에 대한 착상


오늘의 새 소식

구국의 소리

≪한국민족민주전선≫ 대변인 성명 (8/25)

≪한민전≫창립 33주년에 부쳐 (8/24-25)

≪한민전≫, 그 자랑찬 행로 (8/24-25)

6.15공동선언실천투쟁의 기수가 되겠다
    (8/24-25)

조선신보 (8/24)

김정일장군님, 러시아태평양함대함선 방문

≪종군위안부≫문제 대한 원칙적입장 표명

오늘의 주요 기사

부고 - 통일애국지사 문재룡 선생 별세
    (범민련 남측본부, 8/25)

여중생 사건, 1차 서울시민 집중홍보의 날
    (통일뉴스, 8/25)

노점상 박봉규씨 분신사태에 대한 성명서
    (대책위, 8/26)

역사비평 가을호, 이회창 아버지 창씨개명
    주장 제기 (오마이뉴스, 8/25)

국민 70%, 이회창 병역비리 있었을 것
    (프레시안, 8/24)

미군기지 내 장기간 기름유출 흔적
    (오마이뉴스, 8/24)


백산칼럼

대이탈리아전


조선중앙통신 (8/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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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정세 초점

민주노동당, 대선 출항!


  민주노동당 권영길대표가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전국을 돌기 시작했다. 9월 8일 당 후보선출대회를 앞두고 민주노동당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항해가 시작되었다.
  12월 대선을 앞둔 진보운동, 민족민주운동의 최상의 목표는 통일단결이다. 단일진보정당만이 민중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자주적민주정부로 가는 첫 계단이 거기에 있다.
  모두 하나의 함대가 되어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자. 흩어지지도 주저하지도 말고 자기의 항로를 끝까지 가자. 그 항해의 끝에, 우리는 무적의 함대로 거듭날 것이며 그만큼의 기대와 신뢰를 얻을 것이다.

제3당에 걸맞는 명실상부한 진보정당 될터
    (민주노동당, 6/14)

6.13선거 - 진보정당 160만표 시대 열렸다
    (오마이뉴스, 6/17)

인터뷰 -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디지털말, 6/20)

현장 - 민주노동당 열성당원 전진대회
    (오마이뉴스, 7/15)

2002 대선승리 위한 범진보진영 주요단체
    지도부 간담회 결과 (민주노동당, 7/16)

민노당, 6.13여세몰아 제3당 굳히기
    (오마이뉴스, 8/1)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대선출마 선언
    (프레시안, 8/9)

민주노동당 대선 행보 본격화
    (오마이뉴스, 8/19)

권영길 후보 이회창-정몽준 비판
    (오마이뉴스, 8/21)

학생운동, 단일한 대선입장 위한 토론회
    (유뉴스, 8/21)

인터뷰 -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유뉴스, 8/22)

게시판 -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선출

소개 -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주한미군 여중생 살인사건 대책위

http://www.antimigun.org/


《인터넷 백두산》 메일링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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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류길학우회

≪세기와 더불어≫ 제1권 3장 3절

그해 5월에 우리는 조선인려길학우회를 조선인류길학우회로 개편하였다.
   조선인려길학우회는 망라된 인원도 적지 않았고 일정한 정도로 영향력도 있었다.
   본래 조선인려길학우회는 길림에 와서 공부하는 조선인청년학생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로서 민족주의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려길학우회의 고문들가운데는 손정도도 있었다.
   우리가 려길학우회를 류길학우회로 개편하려고 하자 어떤 동무들은 조선인려길학우회가 민족주의자들이 주관하는 순수한 친목단체라는 것을 문제시하면서 그것을 밀어치워버리자고 하였다. 본바탕이 민족주의이면 거기에 아무리 이질적인 것이 량적으로 많이 첨가된다고 하여도 그것은 결국 민족주의화된다는 것이었다. 그 주장의 본질은 낡은 사조로서의 민족주의를 타도하자는데 있었다.
   당시는 대중을 끄는데서 경쟁이 심했다.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서로 대치되어 승벽내기로 군중을 끄는가 하면 같은 공산주의운동내부에서도 파벌별로 저마끔씩 대중을 끌어당기느라고 야단법석을 하였다. 오늘 서울파가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의 지도부를 장악하면 래일은 화요파가 그에 대항하여 한양청년회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모레 화요파가 조선로농총동맹을 만들어내면 이번에는 반대로 서울파가 거기에 맞서서 경성로농회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하나의 풍으로 되고 있었다. 종파분자들은 심지어 다른 파들을 견제하기 위한 테로단도 경쟁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우리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전철을 밟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만일 종파분자들이 하는 식으로 조선인려길학우회를 무시하고 길림에 새로운 청년조직을 또 내온다면 민족주의자들과의 관계에서 복잡한 문제가 생길수 있었으며 학생청년들의 대렬을 분렬시킬수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백해무익한 일이었다.
   우리는 조선인려길학우회속에 들어가 본래의 합법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점차 그 조직을 순수한 친목단체로부터 혁명적인 조직으로 개편하자고 하였다. 공산주의자인 내가 명예회장으로 되었지만 표면상으로는 민족주의자들을 끼고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중국군벌당국의 주의도 덜 끌었다. 나는 조선인려길학우회를 지도하면서 그것을 조선인류길학우회로 개편하였다.
   조선인류길학우회는 겉으로는 조선인청년학생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라고 표방하였지만 실지로는 ≪ㅌ,ㄷ≫의 리념을 실현하는 혁명적인 학생청년조직으로 활동하였다. 조선인려길학우회를 조선인류길학우회로 개칭하고 그것을 순수한 친목단체로부터 혁명적인 조직으로 개편한 것은 우리가 청년학생운동을 하면서 얻은 하나의 큰 경험이었다.

 

남새수경재배에 대한 착상

김정일위원장연구1≫(주체91, 백두청년회)

1977년 12월 어느 날 김정일위원장은 화초시험모형을 보아주고 남새수경재배에 대한 착상을 내놓았다.
   화초시험모형은 물을 채워 넣은 수지그릇에 식물성장에 필요한 영양소와 공기를 넣어주어 화초를 키워내게 되어 있었다.
   위원장은 그 원리대로 한다면 남새도 재배할 수 있다고 하며 남새의 생물학적 특성은 화초와 조금 다룰 수 있겠지만 몇 가지 문제만 풀면 능히 남새도 화초와 같이 재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주었다.
   -수경재배를 하자면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성분을 배합하여 배양액을 만들어야 한다.
   -일정한 기간을 두고 배양액을 교체해 주어야 한다.
   -온실에서 시험적으로 해보아야 한다.
   -수경재배로 하여 생산한 남새는 흙에서 하는 것보다 깨끗할 것이고 유충이요, 뭐요 하는 문제도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연구소의 권위 있는 학자가 수경재배방법과 그 효과성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과 같은 실무적이고 과학적인 가르침이었다.
   땅에서 남새를 가꾸어 온 것은 조상전래의 농법이었다. 먼 옛날에 사람들은 식물은 흙을 먹고 산다고 믿어왔다. 그에 대해서는 그리스의 유명한 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론화≫하였었다.
   17세기 30년대에 와서 벨기에의 헤르몬드라는 학자가 화분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실험을 통하여 ≪식물은 흙을 먹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 결론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식물이 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 하여 큰 의의를 가졌다.
   그러나 물 속에서 식물 특히 남새와 같은 작물을 심는 문제는 최근시기에 와서도 크게 논의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위원장은 땅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합성한 물에서 남새를 생산할 구상을 펼쳐준 것이었다.
   위원장이 내놓은 수경재배방법은 유충과 함께 여러 가지 미세한 독성물질까지 완전히 막을 수 있고 종자의 싹틔우기로부터 생육 전 과정을 과학적으로 관리하며 남새생산의 종합적 기계화와 자동화의 넓은 길을 열어놓을 수 있는 하나의 혁명과 같은 것이었다.

 

≪한국민족민주전선≫ 대변인 성명

91/08/25 ≪구국의 소리≫

이회창은 21일 그 무슨 초청강연회라는데서 자기가 집권하면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과 대결완화를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면서 이른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평화정책의 3대원칙과 5대 평화정책과제라는 것을 내놓았다.

이것은 반평화, 반통일분자로서의 자기의 더러운 정체를 가리우기 위한 한갖 가소로운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각계 민중은 이회창의 국민기만요설행위에 대해 분노에 치를 떨고 있다.

이회창은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온 겨레의 염원과 지향에 역행하여 남북관계를 긴장격화와 대결에로 몰아가고 있는 극악한 민족반역아이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발표이후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통일을 향해 좋게 발전하던 남북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은 이회창과 같은 반평화, 반통일분자의 악랄한 방해책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족에 대한 ≪주적론≫을 고창하며 대북정책의 전면 검토니 교류협력사업중단이니 남북대화중지니 하고 떠들면서 남북공동선언이행에 사사건건 난관을 조성하다 못해 공동선언의 일부조항을 폐기해야 한다는 망발까지 늘어놓은 것도 이회창이고 얼마전 서해무장충돌사건을 계기로 전면적인 반북대결소동에 미쳐날뛴 것도 이회창이다.

이렇게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평화통일을 한사코 반대해온 이회창이 감히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우리 국민과 민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우롱이다.

더욱이 이회창이 이른바 5대 평화정책과제라는데서 그 무슨 북의 대량살상무기문제해결을 들고 나온 것은 추호도 용납될 수 없다.

그 무슨 북의 대량살상무기문제는 미국이 이북을 고립압살하기 위해 들고나온 모략극에 불과하다.

이회창이 미국상전의 하수인이 되어 그 모략각본을 그대로 받아외운 것은 결국 한반도의 평화가 아니라 남북대결을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으로 된다.

이번에 이회창이 분수에 맞지 않게 이른바 평화정책의 3대원칙과 5대평화정책과제에 대해 역설한 저의는 딴데 있지 않다.

지금 남북간에 여러 갈래의 대화와 협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한반도정세가 완화의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대세밖으로 밀려나게 되자 한반도평화의 허울좋은 간판을 들고 국민을 기만하여 더러운 집권욕을 실현하는 한편 북을 걸고 정세를 격화시켜 남북대화와 화해분위기를 흐리게 하자는 것이 바로 이회창의 속심이다.

그러나 이회창의 이따위 서푼짜리 흉책은 친미매국역적, 반평화반통일분자로서의 추악상만을 노정시켰을 뿐 우리 국민에게는 절대로 통할 수 없다.

이회창역적은 이제라도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로 향한 대세의 흐름과 온 겨레의 6.15공동선언실천의지를 똑바로 보고 국민기만의 반통일적 야욕으로 가득찬 대권기도를 버리고 정계에서 지체없이 물러나야 한다.

각계각층 애국민중은 반이회창투쟁의 거족적인 분출로 나라의 평화와 통일에 암적 존재인 이회창역적을 가차없이 역사의 오물장에 매장해버리고 민족자주통일의 새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와야 할 것이다.

주체91(2002)년 8월 24일 / 서울

 

≪한민전≫창립 33주년에 부쳐

91/08/24-25 ≪구국의 소리≫ ≪한민전≫창립 33주년 기념방송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철입니다.

이 시간에는 ≪한민전≫창립 33주년에 즈음해서 ≪한민전≫ 전위투사들과 애청자여러분을 위한 기념방송을 마련했습니다.

위대한 주체사상의 기치를 따라 ≪한국≫변혁운동이 걸어온 자랑찬 노정에는 그 이름도 장한 불패의 전위대오 ≪한국민족민주전선≫이 있습니다.

자주, 민주, 통일의 대망을 기폭으로 치켜들고 출범한 ≪한민전≫. 험로역경속에서 자랑찬 추억으로 새겨질 투쟁의 자국을 찍어온 ≪한민전≫이 오늘 창립 33주년을 맞고 있는데요. 그럼 ≪한민전창립 33주년에 부쳐≫, 논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 민중은 6.15공동선언이행으로 자주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민족민주전선≫ 창립 33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3년전인 1969년 8월 25일 ≪한민전≫의 전신인 통일혁명당이 창당됐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주체형의 당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이룩한 자랑찬 결실이었으며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우리 민중의 투쟁에서 획기적 의의를 가지는 역사적 장거였습니다.

통일혁명당의 창당으로 우리 민중은 자기들의 의사와 이익의 체현자이며 옹호자인 믿음직한 전위조직을 갖게 됐으며 정의의 애국위업을 가속화할 수 있는 위력한 무기를 가지게 됐습니다.

통일혁명당의 창당은 실패와 우여곡절을 겪던 ≪한국≫민중운동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승리의 길을 열어놓은 중대사였습니다.

통일혁명당은 창당후 정세발전의 요구에 걸맞게 자기 조직을 개편하고 확대발전시켜왔습니다.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계기로 우리 민중의 대미의식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대중투쟁에서 반미성향이 두드러지는 새로운 정세속에서 통일혁명당은 정세의 요구와 당 자체발전의 요구에 따라 당의 명칭을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했습니다.

≪한민전≫은 ≪한국≫사회의 성격에 대한 과학적인 해명에 기초해서 이 땅에서 사회의 자주화를 실현하는 것을 기본 강령으로 밝혔으며 반미자주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나가는 것을 자기의 총적 임무로 내세웠습니다.

≪한민전≫의 이같은 정치강령과 투쟁임무는 우리 민중의 지향과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것으로해서 광범위한 민주애국세력의 공동의 정치강령으로 투쟁임무로 됐으며 우리 민중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뚜렷한 좌표를 가지게 됐습니다.

통일혁명당의 ≪한민전≫에로의 강화발전과 새로운 투쟁강령의 제시는 변천하는 정세와 대중운동발전의 요구를 반영한 정당한 조치로써 ≪한국≫민중운동에서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지난 33년간 ≪한민전≫은 주체사상의 기치밑에 우리 민중의 자주적 요구를 반영한 투쟁과제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벌여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와 신뢰를 획득했고 풍부한 경험과 세련된 영도력을 지닌 불패의 전위조직으로 성장강화됐습니다.

무엇보다도 ≪한민전≫의 정력적인 활동으로 민족민주운동의 주체가 더욱 튼튼히 마련된 것입니다.

반미, 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속에서 ≪한민전≫은 정연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사상과 영도의 유일성을 확고히 보장한 강철의 전위대오로, 주체의 전략전술로 자주, 민주, 통일운동을 이끄는 대중운동의 사령탑으로 광범위한 대중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대중과 생사운명을 함께 하며 싸워나가는 애국적 전위대로 더욱 단련됐습니다. 그리고 대중의식화와 조직화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주체사상으로 투철히 정신무장한 전위투사들이 수많이 성장하게 됐고 각계 민중이 자기 운명개척을 위한 길에 나섬으로써 투쟁대오가 급속히 확대됐습니다.

≪한민전≫은 각계 민중과 더불어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여 대중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 올려놓았습니다.

참으로 ≪한민전≫이 걸어온 지난 33년은 주체사상에 기초한 대오의 사상의지적 단합과 통일을 이룩한 불패의 전투대오로 대중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국제적 연대를 강화한 탄력성있는 조직으로 성장한 나날이었으며 반미자주통일의 혈로를 개척해온 자랑찬 행로였습니다.

≪한민전≫창립 33주년을 맞는 지금 ≪한민전≫ 성원들은 지나온 나날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면서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나갈 결의에 충만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는 6.15공동선언의 기치아래 민족자주통일을 이룩하자는 우리 민중의 통일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이북을 ≪악의 축≫으로, 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북침전쟁책동에 광분하면서 6.15공동선언이행을 가로막고 을지포커스렌즈전쟁연습을 벌여 이 땅에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회창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극우보수세력은 6.15공동선언이행을 한사코 방해하면서 이 땅에 반통일의 역류를 몰아오고 있습니다.

현실은 ≪한민전≫이 각계 애국민중과 더불어 미국과 반통일세력의 반동공세를 짓부수고 자주, 민주, 통일대행진을 더욱 힘있게 벌여나갈 것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민족사적 위업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민전≫이 각급 조직을 더욱 튼튼히 꾸리고 자기 역할을 강화하며 조직성원들이 전위투사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나섭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한민전≫ 성원들이 주체사상과 그를 구현한 주체의 전략전술로 투철히 정신무장하는데 힘을 넣어야 할 것입니다.

주체사상과 주체의 전략전술은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승리의 앞길을 밝혀주는 지도적 지침입니다.

≪한민전≫ 성원들은 주체사상의 진수와 전략전술로 정신무장함으로써 그에 기초해서 각계 민중을 의식화, 조직화하고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체사상에 기초한 사상의 유일성, 행동의 통일성을 실현하는 것은 당건설의 근본원칙이며 민중운동의 승리를 위한 결정적 조건의 하나입니다.

대오의 통일단결은 주체사상에 기초해야 가장 공고하고 위력한 것으로 될 수 있습니다.

≪한민전≫ 각급 조직들과 성원들은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통일단결하며 대오안에 사상의지적 순결성을 확고히 보장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투쟁대오를 부단히 확대하는 것은 ≪한민전≫을 강화하고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대중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여나가기 위한 중요한 요구입니다.

대중운동에서의 성공여부는 한사람이라도 더많이 쟁취하여 투쟁대오를 확대하고 강화하는데 있습니다.

≪한민전≫ 성원들은 민중속에 들어가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그들을 민족적으로 계급적으로 각성시키고 광범위한 민중을 조직적으로 굳게 결집시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앞에 나선 과제가 아무리 방대하고 투쟁의 앞길이 험난하다해도 주체사상의 기치가 있고 간고한 시련의 언덕을 넘으며 단련되고 세련된 ≪한민전≫이 있으며 그 주위에 굳게 뭉친 우리 민중이 있는한 반드시 자기 위업을 실현하고야 말 것입니다.

≪한민전≫은 앞으로도 각계 민중과 더불어 주체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이 땅에서 미제침략세력을 몰아내고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를 실현하며 6.15공동선언이행으로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앞당기는데서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유감없이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한민전≫, 그 자랑찬 행로

91/08/24-25 ≪구국의 소리≫ ≪한민전≫창립 33주년 기념방송

≪한민전≫이 걸어온 지난 33년간의 행로는 위대한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자기의 대오를 강위력한 주체의 전위대오로 강화하고 발전시켜온 자랑찬 역사이고 모든 시련과 난관을 뚫고 자주, 민주, 통일운동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온 영광찬 노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계속해서 ≪한민전≫이 걸어온 자랑찬 행로에 관해서 윤정원씨, 오일씨 모시고 얘기 나눠드리겠습니다.

사회자 : 안녕들하십니까.

오 일 : 안녕하세요.

윤정원 : 안녕하세요.

사회자 : 8월 25일은 ≪한국≫민중의 애국적 전위대인 ≪한국민족민주전선≫의 전신인 통일혁명당이 창당된 때로부터 33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인데요. 이날에 즈음해서 ≪한민전≫의 전위투사들과 각계 애국민중은 ≪한민전≫이 걸어온 자랑찬 노정을 커다란 자긍심을 갖고 돌이켜보면서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더욱 힘차게 싸워나갈 굳은 결의를 가다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맞으면서 선생님들과 이렇게 얘기를 나누어봤으면해서 자리를 같이 했는데요. 좋은 말씀들 부탁드립니다.

윤정원 : 정말 돌이켜보면 참으로 감회도 새롭고 커다란 자긍심을 갖게 되고 그래요. ≪한민전≫은 창당을 내외에 선포한 때로부터 33년이라는 간고하고도 보람찬 투쟁노정을 줄기차게 이어오고 있잖아요. 우리 전위투사들에 의해 1969년 8월 25일 통일혁명당 중앙위원회가 결성되고 자기의 강령과 창립선언이 만방에 선포됐죠. 이렇게 결성된 통혁당은 85년에 이르러 시국의 변화와 자기 발전의 요구로부터 출발해서 종래의 강령과 규약을 새롭게 개정을 하고 당의 명칭을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을 했어요. 그래서 ≪한민전≫은 우리 민중의 의사와 요구, 이익의 옹호자, 대변자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더 원만하게 수행하게 됐고 이 땅에서 자주, 민주, 통일운동은 보다 높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됐다고 봅니다.

오 일 : 그렇죠. 85년 개칭 당시 ≪한민전≫ 중앙위원회가 발표한 민족자주선언에도 명백히 지적되어 있는 것처럼 ≪한민전≫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고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한국≫민중의 지향과 의사의 체현자이고 애국적 전위대입니다.

우리 ≪한민전≫이 걸어온 지난 33년간의 행로는 위대한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자기의 대오를 강위력한 주체의 전위대오로 강화하고 발전시켜온 자랑찬 역사이고 부닥치는 온갖 난관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자주, 민주, 통일운동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온 영광찬 노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한민전≫은 내외가 공인하고 있는 것처럼 가열찬 투쟁의 불길속에서 조직사상적으로 굳게 다져지고 민중속에 깊이 뿌리박은 주체형의 조직으로 성장했고 어떤 역경속에서도 자주, 민주, 통일운동을 승리에로 향도할 수 있는 위력한 정치조직으로 강화발전됐습니다.

사회자 : 참으로 지난 33년은 ≪한민전≫이 이 땅에서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해 힘차게 싸워온 투쟁의 나날이었거든요. 이 기간에 우리 ≪한민전≫의 건설과 활동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가 이룩됐다고 보겠는데요.

윤정원 :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한민전≫은 창립 첫시기부터 당대오를 조직사상적으로 강화하는데 여기에 큰 힘을 넣어왔어요. ≪한민전≫ 중앙위원회는 주체의 기치아래 당안에서 사상의 유일성, 행동의 통일성을 확고히 실현하는 것을 당건설의 근본원칙으로 삼고 당조직들과 당원들로 하여금 주체사상을 사고와 행동의 기준으로, 활동의 지침으로해서 그것을 조직사상활동에 적극 구현해나가도록 이끌었어요. 이와 함께 ≪한민전≫ 대오를 질적으로 공고화하기 위해서 주체형의 지도핵심을 육성하고 전위대열을 정예화하는 작업을 줄기차게 진행을 했죠. 그리고 전대오를 조직사상적으로 더욱 공고화하기 위해서 조직성원들속에서 사상무장작업도 한층 심화시켜나갔구요.

오 일 : 그래요. ≪한민전≫은 대오의 주체사상화를 조직의 존립과 직결된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여기에 힘을 넣어왔어요. 결국 ≪한민전≫대오가 주체의 정수분자들로 튼튼히 꾸려지고 대오의 사상의지적 통일과 단결이 더욱 공고화됐고 중앙으로부터 하부말단조직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조직체계를 가진 강철의 대오로 성장했습니다. 이와 함께 ≪한민전≫은 자기의 대중적 기반을 확보하고 각계층 민중과의 혈연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작업도 알차게 벌여왔는데요. 그래서 ≪한민전≫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을 비롯한 광범위한 대중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어떤 역경속에서도 탄력성있게 활동할 수 있는 전위조직으로 강화됐습니다.

사회자 : 그리고 ≪한민전≫이 ≪한국≫민중의 애국적 전위대로써 각계층 민중을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담당자로, 또 주체로 만들기 위한 의식화와 조직화작업에서도 커다란 성과가 있었다고 보겠는데요.

윤정원 : 네, ≪한민전≫은 창립 첫날부터 각계층 민중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는 일에 큰 힘을 기울여왔거든요. 그래서 ≪한민전≫의 조직성원들은 의식화작업의 기본을 각계 민중을 주체사상으로 정신무장시키는데 두고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의 대민선전활동을 적극 벌여왔어요. 특히 ≪한민전≫은 ≪구국의 소리방송≫과 ≪구국전선 인터넷≫을 통해서 그리고 여러가지 선전매체를 통해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의 불멸의 혁명활동역사, 주체사상을 광범위한 대중속에 보급을 했죠. 또 ≪한민전≫ 성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해서 경향 각지에는 주체사상연구소조들이 결성이 되어 갖고 활발히 운영이 되고 그들의 활동에 의해서 대중의 자주의식화가 크게 촉진됐습니다. 결과 대중운동의 주체가 가일층 강화된거죠.

오 일 : 그리고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보급활동은 87년 6월항쟁이후 각계층 민중속에서 더욱 활발히, 더욱 힘있게 벌어졌는데요. ≪구국의 소리방송≫을 듣고 ≪구국의 길≫, ≪자유언론≫, ≪애국≫, ≪새날≫, ≪자주민주통일≫, ≪구국의 광장≫, ≪새세대≫, ≪구국의 횃불≫, ≪통일여명 인터넷≫을 비롯한 출판보도물 매체들이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는 건 다 ≪한민전≫의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인 의식화작업에서 비롯된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습니다.

사회자 : 주체사상신봉자대열이 늘어나고 각계층 민중속에서 자주, 민주, 통일운동이 강화발전하고 있는 것도 ≪한민전≫ 성원들의 노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민전≫은 대중을 투쟁대오에 결속시키는 작업도 알차게 벌여왔잖아요.

오 일 : 그래요. ≪한민전≫은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자주적인 주체를 강화하기 위한 대중조직건설을 일관성있게 추진해왔는데요. 특히 ≪한민전≫은 80년대중반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하는 대중운동정세에 걸맞게 대중성과 민주주의, 합법성의 원칙을 구현한 주체적인 대중조직건설노선을 밝히고 그 실현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한민전≫은 무엇보다도 대중운동의 주력부대를 튼튼히 꾸리는데 모를 박고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의 대중조직건설에 깊은 관심을 돌렸고 그에 대한 지도와 영향력을 강화했습니다. 이와 함께 중소상공인을 비롯해서 지식인, 애국적 군인, 종교인은 물론 자주와 민주, 통일을 지향하려는 모든 민주애국세력을 대중운동에 결집시키기 위한 활동도 벌였죠. 그래서 오늘 경향 각지에는 ≪한민전≫ 산하 조직들과 함께 여러 계급계층별 그리고 통일전선적인 대중운동단체들이 수많이 결성돼서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윤정원 : 그뿐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난 기간 ≪한민전≫은 우리 민중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대중운동을 더높은 단계에로 발전시켜 나가는데서도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가 있잖아요. 지난 30여년간 ≪한민전≫은 우리 민중의 권익을 대변하는 애국적 전위대로서의 직무를 유감없이 수행을 했다고 봅니다.

≪한민전≫은 조성된 정세와 운동발전의 요구에 걸맞게 대중투쟁을 적극 조직하는 것을 당의 주요한 활동방침으로 내세우고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우리 민중의 투쟁에 지도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각계층 민중과 함께 줄기찬 투쟁을 벌여왔던거죠.

유신철폐투쟁과 79년 10월 부마항쟁, 또 80년 5월 광주민중봉기, 그리고 87년 6월민중항쟁을 비롯해서 지난 기간의 모든 변혁투쟁에는 우리 ≪한민전≫의 역할과 각계층 민중들의 피땀이 스며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민전≫ 산하조직들과 성원들은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된 새로운 정세하에서 각계층 민중을 공동선언이행을 위한 투쟁에로 적극 불러일으키고 있죠.

사회자 :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우리 민중의 투쟁대오에는 언제나 우리 ≪한민전≫도 있었고 그 선봉에서 전위대로서의 역할을 담당수행해왔지 않습니까.

오 일 : 그래요. ≪한민전≫은 급변하는 내외여건과 운동정세발전, 그리고 ***즈음해서 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정확한 구호와 전술을 작성제시해서 대중투쟁을 목적지향성있게 이끌었습니다.

≪한민전≫ 중앙위원회 명의로 된 시국선언과 투쟁구호, 성명, 선언문을 발표해서 대중운동의 향방을 제시해주고 투쟁지침을 마련해서 각계층 민중을 투쟁에로 선도했습니다. 오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우리 민중의 대중운동이 주체의 궤도위에서 확신성있게 전진하고 있는 것도 결코 우리 ≪한민전≫의 활동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회자 : 지난 기간 ≪한민전≫이 어떤 역경속에서도 주체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정의의 길, 애국의 길을 힘차게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하기에 오늘 ≪한민전≫이 각계층 민중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국제사회가 우리 민중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윤정원 : ≪한민전≫은 세계 진보적 역량과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대외활동도 폭넓게 적극적으로 벌였습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 정당, 단체들, 국제기구들과의 연대를 강화해서 국제무대에서 ≪한민전≫이 자기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대외적 권위를 높였고 세계 진보적 민중들과의 유대를 실현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국제사회가 우리 민중의 투쟁에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는 건 ≪한민전≫의 대외활동과 관련이 된다고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 일 : 참으로 ≪한민전≫이 걸어온 지난 33년은 온갖 시련의 언덕을 넘으며 투쟁의 한길을 달려온 자랑찬 노정이었다고 자부하게 됩니다.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한민전≫의 결성으로 우리 민중은 비로소 자주, 민주, 통일실현을 위한 진정한 정치적 참모부, 투쟁의 사령탑을 가지게 되었고 대중운동은 주체의 궤도를 따라서 힘차게 전진하게 됐습니다.

사회자 : 정말 옳은 말씀이십니다. 지금까지 ≪한민전≫이 걸어온 영광찬 행로를 돌이켜봤는데요. 우리 ≪한민전≫은 앞으로도 각계 민중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대중운동의 전위대오로써 시대와 민중앞에 지닌 자기의 중임을 다해나갈 겁니다. 그럼 오늘 얘기를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오 일 : 감사합니다.

윤정원 : 감사합니다.

 

6.15공동선언실천투쟁의 기수가 되겠다

91/08/24-25 ≪구국의 소리≫ ≪한민전≫창립 33주년 기념방송

이 시간 끝순서 되겠습니다. 6.15공동선언실천투쟁의 기수가 되려는 ≪한민전≫ 전위투사들의 의지, 김혜정씨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위대한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한국≫ 민중의 애국적 전위대인 ≪한민전≫이 자기의 출범을 선언한 때로부터 33돌을 맞이하고 있다.

이 나날 ≪한민전≫은 반미자주화와 반파쇼민주화투쟁과 함께 외세에 의해 분열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에서 언제나 민중의 앞장에 서있었다.

그러나 해놓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우리 ≪한민전≫이다.

특히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실천투쟁을 힘있게 벌이는 것은 오늘날 우리 ≪한민전≫앞에 제기되는 중요한 과제이다.

6.15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의 숙원인 조국의 통일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통일의 이정표이다.

6.15공동선언을 빨리, 그리고 철저히 이행하는 여기에 조국의 통일이 있고 우리 민족의 밝은 앞날도 있다. 6.15공동선언발표이후 수많이 진행된 남북간의 대화와 교류들, 이산가족상봉 특히 이번 광복절에에 서울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한 8.15민족통일대회는 6.15공동선언의 활력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나는 ≪한민전≫의 한 성원으로써 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실천투쟁에 모든 것을 다하겠다.

더욱이 이 투쟁에 이 땅 각계 민중을 불러일으키는데 앞장서 나가겠다. 하여 꿈에도 소원인 우리 겨레의 숙원인 조국의 통일을 실현하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겠다.

지금 이 시각에도 러시아방문길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불면불휴의 노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그 숭고한 모습이 안겨와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우리 민중인데요. 바로 그래서 세계를 또다시 경탄시키는 위인의 거룩하신 모습앞에 머리를 숙이며 그처럼 위대하신 분을 통일태양으로 모시고 있기에 통일은 기필코 오고야 말 것임을 폐부로 절감하는 우리 민중입니다.

우리 민중은 불패의 전위대오 ≪한민전≫과 함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따라 6.15공동선언이행에 더욱 열심히 나섬으로써 우리 민족의 최대숙원인 조국통일을 기어이 안아오고야 말겁니다.

지금까지 ≪한민전≫창립 33주년에 즈음해 ≪한민전≫ 전위투사들과 애청자여러분을 위한 기념방송을 보내드렸습니다.

≪한민전≫의 ≪구국의 소리방송≫입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요.

 

대이탈리아전

91/08/26 백산칼럼

대이탈리아전의 결정적 장면의 4위는 안정환의 역전골이다. 초반 페널티킥을 실축한 안정환이 연장전에서 이영표의 센터링을 받아 그림같은 헤딩슛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실로 결정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결정적 장면 3위, 그것은 히딩크감독의 후반 파격적인 선수교체이다. 1대 영으로 지나 2대 영으로 지나 마찬가지라는 심오한 축구철학에 기초하여 부동의 수비수들을 빼고 공격수들을 대거 투입하는 이 놀라는 용병술, 결국 이 공격정신이 설기현의 동점골을 낳았던 것이다.

그럼 결정적 장면 2위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영표의 눈부신 활약이다. 이탈리아의 플레이메이커 토티가 우리 측 골문근처에서 헐리웃액션으로 경고를 받자, 심판에 항의하는 이탈리아선수들 너머로 지나가며 손가락 두 개를 살짝 들어보이는 이영표! 아, 심판이 자칫 토티의 경고가 2번째라는 사실을 망각할까봐, 이를 일깨워주며 지나가는 저 영활한 모습, 정말 보면 볼수록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드디어 결정적 장면의 1위이다. 그것은 바로 경기시작 전 이탈리아선수를 경악시켰던 붉은 악마의 카드섹션 ≪AGAINE 1966≫이다. 학력이 낮은 이탈리아선수들을 위해 사려깊게 초급영어를 사용하면서 조선에 패배한 악몽을 떠올리게 한 심리전의 백미가 아니었던가. 상대를 놀래우면 절반은 이긴 것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에 따르면, 이 날의 승부는 여기서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운동권의 최대 화두인 전국적 관점이 별게 아니다. 북과 남은 하나라는 관점이 전국적 관점인 것이다. ≪AGAINE 1966≫를 내건 붉은 악마도, 이를 한 순간에 이해한 온 국민, 온 민족이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인 것이다. 최근 경평통일축구대회가 9월 7일로 확정되었다. 그날 다시금 월드컵의 흥분과 함께 조국통일의 열기를 맛보도록 하자. 올해의 결정적 장면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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